왜 협동조합은 자본은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노동은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협동조합이 무엇을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가 라루브 설립자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16p

 

모든 나라의 협동조합인들의 힘을 모아 상호부조와 사회 평화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를 통하여 모든 관대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믿고 있는 이상인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1889) 이렇게 오래전부터 ICA설립자들은 목표를 설정했다. 20p

 

무엇을 어떻게 협동해야 할지, 그 모든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가 있어야 한다. 설계도 없이 어찌 집을 지으랴! 하지만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도를 볼 수 있는 눈, 그래서 잘못 지을 때는 부수고 다시 짓고, 낡으면 수리하고, 고장나면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6p

 

남들이 다 외상으로 거래해도 그들은 꼭 현금으로 거래해서 재정 안전성을 도모했으며,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끌어내기 위해 조합과 많이 거래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잉여는 배당하지 않고 적립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한 사업과 교육에 쓰는 등 지금 우리가 적용하는 협동조합 7원칙의 대부분이 그들의 운영 방식과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36p

 

모든 권력은 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ICA 안내서에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65p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임금노동자인 실무자들이 핵심 운영 주체가 되어, 조합원이 통제하는 정책 파트는 사라지고 사업 파트만 남게 된다.(수직적 균열 상태), 다른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작동하는데 기층 조합원 단위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리더들과 일반 조합원들 간의 균열이 생긴다(수평적 균열 상태) 그러니 오너십 리스크는 결국 결사체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업체로만 남게 되거나 개방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상실한 소수의 음모적인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37p

 

노동의 협동이 필요한가? 앞서 본 라루브의 사례에서 라루브의 민주주의의 99%는 일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합원 노동의 협동은 단순히 실무를 나누어서 한다거나 노동 비용을 줄인다는 제한적인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협동2원칙과 3원칙을 실현하여 주인 노릇하는 조합원들의 협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사고해야 할 것이다. 149p

 

생명이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리려고 새가 노래한다’, ‘나비가 춤춘다고 하지만, 나비는 꿀을 찾아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추는 것처럼 인생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박경리 157p

 

협동조합을 조합원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면서도 사회와 세상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섬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다 떠나서,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65p


'2시간45분'

들리지 않아
듣지도 못해
보이기만 하려는 현대인들은
모여도
모여있지 않고
있어도
있지 못해.
모임도 협동도
산으로 간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조합원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정념과 이해관계.
쉽게 여기서 나온다를 인정하라.
힘을 만들지 말고
이걸 지으라고
수직과 수평의 균열°
그 사이사이
노동의 협동°°이란
주인을 만드는 카드.
점을 그물씨앗으로 엮는 한 수.
한 달에 한 번.
총회말고 이거.
분기에 한 번도.
한 명말고 여러 명도.
뭐든지 해보자.고 싹이라도 나.
자유롭고
행복하려는 나-너.
나비처럼 춤추고 싶다고
아니 일한다.
정작 나비는.
어때 이렇게만 해보자
모임도 조합도 춤출 수 있다는데
ㆍㆍ
<마치며>가 백미.
김신양 , 《협동조합의 돈과 민주주의*》한티재
ㆍㆍㆍ
* 동전의 양면; 이분법은 이제 그만. 너가 문제야.
이론과 실천이 아니라 <이론-실천>이라는. 따로가 아니지.


왜 협동조합은 자본은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노동은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협동조합이 무엇을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가 라루브 설립자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 P16p

모든 나라의 협동조합인들의 힘을 모아 상호부조와 사회 평화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를 통하여 모든 관대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믿고 있는 이상인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1889) 이렇게 오래전부터 ICA설립자들은 목표를 설정했다. - P20p

무엇을 어떻게 협동해야 할지, 그 모든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가 있어야 한다. 설계도 없이 어찌 집을 지으랴! 하지만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도를 볼 수 있는 눈, 그래서 잘못 지을 때는 부수고 다시 짓고, 낡으면 수리하고, 고장나면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P26p

남들이 다 외상으로 거래해도 그들은 꼭 현금으로 거래해서 재정 안전성을 도모했으며,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끌어내기 위해 조합과 많이 거래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잉여는 배당하지 않고 적립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한 사업과 교육에 쓰는 등 지금 우리가 적용하는 협동조합 7원칙의 대부분이 그들의 운영 방식과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 P36p

모든 권력은 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ICA 안내서에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 P65p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임금노동자인 실무자들이 핵심 운영 주체가 되어, 조합원이 통제하는 정책 파트는 사라지고 사업 파트만 남게 된다.(수직적 균열 상태), 다른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작동하는데 기층 조합원 단위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리더들과 일반 조합원들 간의 균열이 생긴다(수평적 균열 상태) 그러니 오너십 리스크는 결국 결사체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업체로만 남게 되거나 개방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상실한 소수의 음모적인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P 137p

왜 ‘노동의 협동’이 필요한가? 앞서 본 라루브의 사례에서 "라루브의 민주주의의 99%는 일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합원 노동의 협동은 단순히 실무를 나누어서 한다거나 노동 비용을 줄인다는 제한적인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협동’은 2원칙과 3원칙을 실현하여 주인 노릇하는 조합원들의 협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사고해야 할 것이다. - P 149p

생명이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리려고 ‘새가 노래한다’, ‘나비가 춤춘다’고 하지만, 나비는 꿀을 찾아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추는 것처럼 인생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박경리 - P157p

협동조합을 조합원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면서도 사회와 세상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섬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다 떠나서,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P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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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움직인 하루다. 지진 피해 관련 서류를 내고난 점심짬을 이용해 미니벨로를 탄다. 퇴근,  에돌아 조박저수지로 향하고 효자역 관통육교를 지나칠 무렵 전시장에 다가오는데, 타이어 쿠션이 예사롭지 않다. 왠일이람, 내려서 공기압을 확인해보니 괜찮은 듯 싶은데, 곧이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불쾌하다. 어라. 또 펑크라니... ...책을 넣은 에코백 무게가 문제인 듯하다.  앞으로 옮겨 제법 긴 거리를 끌고 가니 <경인바이크>가 늦은 시각인데도 반겨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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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차용하고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챙겨놓은 모습이 성격을 가늠하게 한다. 불편하신 몸인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응대하고 수리를 해주신다. 그의 동선에 알맞은 공간 배치다. 타이어 두께가 너무 얇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된다. 랜턴을 밝혀 사이즈를 확인해주고 또 다른 사양들의 타이어를 추천해주신다.  감사드려요. 6천원. 


0


제법 라이딩을 하였더니 배가 고프다. 이러다간 저녁 때를 놓칠 수도 있겠다. 잠시 보아둔 부추-계란요리를 시도한다. 스크램블처럼 휘휘 젓다가 부추투입 양조간장을 심심하게 간을 한다. 된장국에 강황밥을 지어, 간빠레오또상 사케 한잔에 늦은 저녁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를 오물거려본다. 잘했어. 잘했다. 


1


인강 불교강좌를 듣고 있다는데,   60대중반의 기업임원을 한 꼰대형 남성이 제일 많이 변한 걸 본단다. 108배를 꼬박꼬박하고 앎에서 태도변화까지 확연하다고 한다. 중년남성이 가장 변하기 힘든데, 정말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누리고 가진 것들이 많았는데 굳이 그걸 되살펴보는 이가 확률로도 드물다고 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사람들은 '수동적인 지복'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러 번의 기회를 대부분 놓친다. 그는 꾸준히 변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스피노자는 덧셈의 철학자이다. 삶의 철저한 덧셈의 지향하는 것으로 읽었다.









 

어떤 이는 심문하는 언어인 능동/수동의 언어를 가장 많이 피해간 저작이라고 한다. 표현의 과정이나 관계에 그만큼 충실하다는 것일까. 









이렇게 꼬리를 물다보니 사과나무가 생각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 ...아 그러고 보니 네번째 사과를 말한 아나키스트 원조도 있었군.  변할 수 있을까, 변화의 수레바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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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절 전 상가부터 너무 달렸나보다. 일요일 대구 인사가는 유니와 같이 내려와 작업실인근을 미니벨로로 다니기 시작하고, 이튿날 차를두고 로씨난데로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나서야 몸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저녁 두부와 저렴한 팽이버섯과 부추, 대파, 김치를 사서 보관 겸 마파두부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세탁기를 돌린다. 끓는 물로 햇반을 데우고, 양념장을 만들고, 감바레 오또상 정종 한잔을 보탠다. 역시 일인상은 어렵다. 실패했다는 말, 음식을 남기지 않게 다 들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다시 일인 요리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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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등기를 보내고, 형제자전거;  로씨난데 1의 펑크를 수리한 곳이기도 한데 틀어진 휠과 기어의 유격을 손 봐줄만 한 곳이라 여기 다시들렀다.  수리점 앞에 지인 할베들이 서너 분이 모여 잡담중이다. 이 사람 뭐 실력있는겨? 야매 아니뎌. 농 사이라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조이고, 고무망치로 치고, 거꾸로 돌려 치고 틀고 하더니 돈도 받지 않을 요량으로 타보라고 한다.  급급 기어변속. 어 매끄러운데,   틱하며 벨트가 주저 앉는다.  아 다시 풀고 조이고 거꾸로 놓고 작업을 하더니, 바퀴 축이 틀어진 걸 발견하신거다. 육각렌치를 끼우고 지렛대처럼 몇 번 축을 흔든다.   그리고 나서 조심하지 말고 타라한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걸, 이만원을 건네니 만원만 받겠다고 한다. 선물처럼 주고 싶은 듯, 베푸는 마음이 보였다. 이 정도라구 난 말야.


-1


책방사장님과 양자역학 이야기(데이비드 봄 다큐)와 켄로치 최근 영화, 철학과 연계성, 현대인의 듣는 귀와 보여주려고만 하는 습속들의 한계 등등을 나눈다. 그러다가 오늘은 줄운동 미션의 날이라 로씨난데 2를 타고 봄빛이 도는 봄길을 다닌다. 매화가 핀 데가 있을 텐데 하니, 정말 화사하게 핀 몇 그루를 발견하는 맛이 짭잘하다. 며칠 전에 꼽아 둔 전시실의 홍매화와 청매화도 방긋방긋하다. 


0


몇 달동안 여기 상태로 지낸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차분해져 가기로 해. 몸도 마음도 말야. 의미와 논리, 차이와 반복.....우리는 동일한 것을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의식이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과 강제를 겪는 과정이다.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인식되는 것이다. 행위의 99%는 특이하다. 그 특이함을 인식하는 것은 폭력과 강제를 겪기 때문이다. 세상이 삶이 그러한데도 우리는 습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안주하려 한다. 이를 '수동적 지복'이라고 한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가 분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식하는 순간. 어쩌면,


1


한 마디를 놓쳤는데, 하이데거가 이런 인식을 과정을 선물이라고 여겼는데, 아니 여겨야 한다고 하자 들뢰즈는 부득불 말한다. 기호라고....그래야 한다고....


차오르고 그저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아느냐고,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타자의 나르시시즘을 안 첫 타자가 니체다. 니체가 가진 부는 형제자전거 사장이 갖는 순간적인 마음하고 비슷할 것이다. 차고 넘치고 뿌듯해하는 순간들. 말이다.


2


봄은 이렇듯 넘치고 있다. 아니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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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는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돌아가면서 차례로 동맹을 맺는다


즉 진보와 반동좌파적 정치프로그램과 우파적 정치프로그램국가적인 동기와 초국가적인 동기가 동맹을 맺고남성주의적인 기획과 여성해방적인 기획 그리고 유아적인 기획과기술을 사랑하는 태도와 기술을 두려워하는 태도금욕주의적 도덕과 쾌락주의적 도아방가르드적인 예술관고 보수적인 예술관이 동맹을 맺으며 분석적인 치료법과 카타르시스 치료법스포츠를 즐기는 삶의 양식과 즐기지 않는 삶의 양식업적에 대해 준비된 태도와 업적을 거부하는 태도성공에 대한 믿음과 성공에 대한 불신점점 더 기독교적인 생활방식과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 않는 생활방식종교 통합적인 개방과 지역적인 폐쇄인본주의적인 윤리와 인본주의 이후의 윤리나의 모든 관념에 동반할 수 있어야 하는 나와 자신의 가면의 거울장식장으로 존재하는 해체된 자아가 차례로 동맹을 맺는다


개인주의는 모든 방향으로 동맹을 맺을 능력이 있으며니체는 개인주의의 디자이너요 예언자다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을 오늘의 시장에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더디게 성공시키는 시장의 물결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었다. 219-220p


 -2


흔적과 밑줄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계속 맴돈다. 저자들은 이전의 사상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면역이란 키워드로 역추적된 피터와 피터가 읽는 니체로 돌아온다.  들뢰즈 역시 그렇게 거슬러 올라오며 겹치는 부분이 있다. 많이. 


-1


위의 대목에서는 이분법의 사례로서 밑줄을 그러두려했지만, 오히려 근대인에서 생태인으로 넘어가는 인류를 재귀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원한감정의 복수와 계층의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 넘치게 만드는 언어를 구사하는 개인의 탄탄한 근력을 원한 니체. 하지만 무참히 엉뚱한 가위질로 무리의 대중개인을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 전쟁과 광기로 몰아부친 것을 전혀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이라는 것은 이리 맹목이고 무섭다.


0


개인주의에서  발췌한 오독의 역사. 전신, 영화, 대중매체의 결탁으로 맺어진 허상이자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 역시 그런 고비를 평행하게 맞고 있는 시점이기도 할 것이다. 수백년을 반성조차 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니체의 사용설명서를 읽어보지도 않았다.


1


니체의 개인주의는 위처럼 상반되는 모습들을 면밀하게 조향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 포스트휴먼, 나란 자아의 해체, 아와 비아. 그 거울상들은 그림자들로 버걱거린다. 제대로 되비치는 그림자들의 영향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서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개인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야 나 이외인 비자아가 제대로 감지될 수 있다. 사물이 춤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세워진 개인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2


인류는 사회적 유아일 뿐이다. 자기애만 있어 남을 볼 수 없는 유아. 그는 어른으로서 나. 자기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타자 나르시시즘을 발견한 첫 인물이다. 주는 것의 행복을 아는 자. 그것이 무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3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짜라투스트라. 태양.  자신의 화살을 갈망하는 활. 자신의 별을 갈망하는 화살. 서로서로 위대한 정오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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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근원적 나르시시즘은그것이 근대의 시작과 함께 문장(紋章)과 대가만을 빤히 쳐다보는 국가들의 특징이 되기 전에는우선 종족과 왕국에서만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합니다개인에 대해 말하자면개인의 자기긍정이 - 18세기에는 적절한 사랑, 19세기에는 신성한 이기심, 20세기에는 나르시시즘, 21세기에는 자기 디자인으로서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도 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니체는 현대의 유일한 언어이론가로서 이러한 근본상황을 조망하였습니다. 175p 


제퍼슨 성경그래서 나는 찌꺼기에서 금을 분리해서 금을 그에게 돌려준다반면 나는 찌꺼기를 몇 명의 제자들과 어리석음과 악함에 넘길 것이다라고 한다제퍼슨은 역사적 예수를 찾은 것도 아니고 이해 가능한 예수를 찾은 것도 아니다그는 찬양의 대상을 찾았고그를 칭송하는 것은 공동의 도덕적 가치를 붙잡음으로써 화자를 확실한 공동승리자로 만든다나중에 레오 톨스토이도 비슷한 수단으로 신약의 개인적 버전을 편집했고 그것을 일종의 다섯번째 복음으로 제시했다다시 말해 복음주의와 계몽의 러시아 식 공존방식을 제시했다. 187p나는 그리스도이다그러나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를즉 진지하게 그의 가르침에 끌리고··· ··· 자신에게 모든 인간적인 탁월함을 돌리고 싶어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189p 

 


니체가 고대 유럽적인 전통과 단절했다는 것은 말의 간접적인 자기칭송 기능이 계몽의 일정한 수준부터 더 이상 이신론 理神論 적이고 교양 개신교적인 타협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기적의 보고를 생략하고 청중 앞에서 예언자적 협박이나 호소하는 계시록을 말하는 방법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반드시 제퍼슨 식의 절충주의를 넘어서는 표현전략을 개발해야만 한다. 192p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린 텍스트와 고통스러운 유사성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워야 하고, 익숙한 복음의 잔고를 적어도 형식적으로 계속 기록한다고 인식될 만큼 비슷해야 한다. 새 편집은 당분간 이전 형식을 전복시킴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새로운 약속을 해도 되는 사람은 옛 말들을 가지고 전대미문의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짜라투스트라의 저자는 말의 자기찬미적 힘을 근본부터 새롭게 제시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암호화된 원한감정을 통해 그에게 각인된 억제로부터 말을 해방시키려고 한다. 니체가 친구인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나는 이 책으로 이제까지 말로 말해졌던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단언할 때, 이런 의도가 함께 울린다. 니체가 동일한 상대에게 나는 이제 아마 십중팔구 유럽에서 가장 독립적인 인간일 것읻라고 확인할 때, 이런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3p

 

즐거운 학문의 저자는 원한감정이 세계 생산의 한 방식이며, 그것도 이제까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해한 생산방식이라고 확신했다. 비판적인 저자가 이런 정황을 예리하게 주목하면 할수록, 그의 모습은 더 포괄적이고 더 무시무시하게 나타난다. 이제까지 고대 문화, 종교, 도덕이라 불렸던 모든 것 속에는 원한감정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양식이 지배적이었다. 한 시대동안 윤리적 세계질서로고 자칭했던 모든 것은 그 필적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험담의 체계들이며 스스로 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이제까지 도덕이라 불렸던 것은 복수의 보편주의다. 194p

 

그는 미래의 언어 흐름을 원한감정에서 분리해서 자기찬양의 에너지를 새롭게 설치하고 정비한다는 것은 세계사적행위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미 행한 최고의 것에도 고마워하지 않을 만큼 내게 많은 것을 원한다. 천년 동안 내 이름에 엄숙한 선서를 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라는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글을 친구에게 보내기도 한다. 195p

 

교화서, 성서, 독립과 극복의 책, 진정한 높은 지대 공기의 책, 유언장, 다섯 번째 복음서, 문작적 자식 차라쿠스트라 등이 니체가 붙인 꼬리표들이다. 옛날의 4대 복음은 원한감정의 선전책자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 원한감정은 패배를 성공으로 바꿔 쓰고, 세련되고 경멸하는 듯한 태도로 택스트와 사실들 위를 부유하면서 억제된 복수심을 즐긴다. 모든 어두운 충동은 이제 끝이다. 내 앞의 어느 누구도 올바른 길, 위로 올라가는 길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서 다시 희망과 임무, 문화가 규정한 길들이 비로소 존재한다. 나는 이를 알리는 즐거운 전령이다. 지금까지의 복음과 반대복음이기를 원한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해방이라는 의미의 부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위한 해방이란 의미의 긍정을 내용으로 한다. 그것은 더 이상 거짓말할 필요가 없는 복음이며, 부정적 엔트로피 또는 창조성의 복음이다. 196-197p

 

니체라는 이름을 가진 언어사건의 특징은 좋은 소식과 자화자찬을 분리하던 고대문화의 전통이 여기서 훼손되며, 그로써 근대 작가가 하는 행위, 즉 자신을 위해 텍스트를 설정하는 행위가 예기치 않게 폭로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존과 그에 대한 좋은 뒷말 사이에 일치가 가능해야 한다면, 실존은 최고의 찬사를 들을 정도로 스스로를 향상시켜야만 한다. 기회외 그 실현 사이를 중재하는 것은 이기심이다. 가장 오랫동안 비방받아온 이 단어 속에는 인간의 최고 가능성들이 인식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나중의 자화자찬은 자신의 변화과정에 대한 예감과 이기심의 완성을 자화상 안에 합친다. 즉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그가 누구인지가 그가 라는 우연을 포착함으로써 합쳐진다. ‘완벽한자화상은 바로 그 순간에 실현될 것이다. 208-209p

 

모든 가치의 전도; 디오게네스는 미쳐 날뛰는 소크라테스의 재출현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는 모든 고통이 지닌 가치의 전도를 추진했고, 이치를 따지기 싫어하는 태도를 수정했으며, 한 시대 동안 창조적인 삶과 이 삶의 자기찬양의 힘 사이에 그어져 있던 경계를 없앴다. 저는 지금, 세계사가 되려하는 견유주의를 가지고 저 자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은 이 사람을 보라입니다. 견유주의라는 표현은 여기서 두 방향을 가리킨다. 우선 섭생문제와 건강문제를 복음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대부분을 요약하는 말이며, 이미 21세기 전체의 방향을 예고하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좋은 소식과 자기찬양 에너지의 병합을 향한 방향이다. 그래서 견유적이란 말과 복음적이란 말은 이제부터 항목별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 210-211p

 

우리는 니체를 최초의 진정한 후원자로 불러도 될 것이다. 좀더 고상한 선물은 부채를 지우지 않는 선물, 보답하지 않아도 되는 귀족 작위의 수여 같은 선물을 건네 줄 경우이다. 니체는 이런 목적을 위해 받고-도망가는 선물을 고안해서, 격언, 시와 논증의 형식으로 사방에 뿌린다. 그에 따르면 후원자와 동등해지겠다는 자극을 받은 모든 사람은 고상하게 될 수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귀족은 역사적 형태의 귀족에서 읽어낼 수 없다. 아마 예수라는 인물의 부드러운 바보스러움과 부처의 주체적인 위생학을 제외한다면 인류의 역사에서 이제까지 진정한 고상함은 없었다는 것이 니체의 결정적인 설정이다. 212-213p

 

고상하다는 것이 모욕당하지 않고 먼 목표를 겨냥하는 힘으로부터 유래하는 행위나 사상을 위한 칭호가 되어야 한다면, 고상하다는 술어는 이제 더 이상 전통을 가지고 방어될 수는 없다. 고상함은 미래를 향한 입장이다. 니체는 부의 이념, 즉 부를 얻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낭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망할 때에만 보람이 있다는 부의 이념을 그의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감염시킨다는 의미에서 관대함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역사는 부채 경제의 시대와 관대함의 시대로 갈라진다. 전자가 항상 부채상환과 보복을 생각한다면, 후자는 오로지 앞으로 - 선사하기에만 관심이 있다. 모든 삶은 장차, 알게 모르게 이 기준과 일치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이 기준 이전에 살고, 이 기준 이후에 산다. 주는 사람은 오로지 순수한 자기소모를 통해 저축 이성의 순환고리를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지출만이 욕망과 욕망의 계산이 미치는 중력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즉흥성과 원심력을 소유한다. 예금주와 자본가는 투자하면서 돌아올 수익을 기대하지만, 후원자는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주는 것에 만족한다. 니체가 생성의 무죄라 부르는 것은 근본적으로 낭비의 무죄이며 따라서 지출의 가능성을 위해 추구되는 부의 축적이 무죄다. 214-215p

 

짜라투스트라가 자기긍정과 세계긍정의 언어로 등장할 때, 그 언어는 극단적으로 자화자찬이고 뻔뻔스러운형식으로 도발의 압력을 감염시켜야 한다. 도발할 만한 독자에게 치료용 모욕이 되고, 이 모욕이 면역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도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예방접종 서술과 일치한다. 다른 방식으로 이미 후원자가 된 사람은 아마 니체가 없어도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혼자일 수 없고 더더욱 혼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발적인 관대함의 천성이다. 후원자의 관대함은 그 자체가 다른 생각의 산출, 다시 말해 경쟁을 지향한다. 관대함은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요청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은 관대함을 독점하는 퇴폐적인 사람이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은 권력에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216-217p

 

우리는 개인주의를 우연한 또는 피할 수 있는 심성사적 조류가 아니라 인류학적 분기점으로 이해한다. 역사 이전의 첫 번째 고립은 자연으로부터 인간 해방으로, 역사적인 두 번째 고립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로 귀결되었다. 개인주의는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돌아가면서 차례로 동맹을 맺는다. 진보와 반동, 좌파적 정치프로그램과 우파적 정치프로그램, 국가적인 동기와 초국가적인 동기가 동맹을 맺고, 남성주의적인 기획과 여성해방적인 기획 그리고 유아적인 기획과, 기술을 사랑하는 태도와 기술을 두려워하는 태도, 금욕주의적 도덕과 쾌락주의적 도, 아방가르드적인 예술관고 보수적인 예술관이 동맹을 맺으며 분석적인 치료법과 카타르시스 치료법, 스포츠를 즐기는 삶의 양식과 즐기지 않는 삶의 양식, 업적에 대해 준비된 태도와 업적을 거부하는 태도, 성공에 대한 믿음과 성공에 대한 불신, 점점 더 기독교적인 생활방식과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 않는 생활방식, 종교 통합적인 개방과 지역적인 폐쇄, 인본주의적인 윤리와 인본주의 이후의 윤리, 나의 모든 관념에 동반할 수 있어야 하는 나와 자신의 가면의 거울장식장으로 존재하는 해체된 자아가 차례로 동맹을 맺는다. 개인주의는 모든 방향으로 동맹을 맺을 능력이 있으며, 니체는 개인주의의 디자이너요 예언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을 오늘의 시장에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더디게 성공시키는 시장의 물결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었다. 219-220p

 

사회는 곳곳에서 그 구성원 개개인의 인간성에 대항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사회는 구성원이 각각의 주주에게 일용할 빵을 보장하기 위해 먹는 사람의 자유와 문화를 포기하는 데 찬성표를 던지는 주식회사다. 가장 원하는 미덕은 체제순응주의이다. 자기신회는 이 체제순응주의에게는 공포다. 체제순응주의는 현실과 창조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름과 관습을 사랑한다. 나는 문기둥의 대들보에다 이렇게 적고 싶다. 우리는 하루를 설명으로 보낼 수는 없다. 요셉이 자기 외투를 창녀에게 남겨두듯이, 너의 이론을 남겨놓아라, 그리고 도망가라. 226-227p

 

내가 너의 속을 비춘다, 고로 너는 존재한다. 자신의 화살을 갈망하는 활, 자신의 별을 갈망하는 화살로서 위대한 정오를 맞이할 준비되어 있기를


니체의 관심은 침투된 침투의 이론, 타자에게로 흘러넘쳐 들어가는 윤리, 흡수와 새로운 발광의 논리에 쏠려 있다. 니체의 언어는 아직까지 찬미된 바 없는 비자아를 칭송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인격의 타자성 이상의 것인 타자성에 전념한다. 화자를 관통해 나가는 이질성, 즉 그를 침투하고 가능하게 만드는 이질성에 스스로를 내맡긴다. 자신의 내면에서 세계라는 이름의 풍부한 이질성까지 찬미하고 낯선 것의 찬미로 이어진다. 우리는 티체를 타자 나르시시즘의 발견자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서 궁극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그의 안에서, 그를 관통하고 황홀하게 만들고 고문하고 놀라게 만드는 악곡처럼, 그에게로 합성되는 타자의 성격들이다. “권력에의 의지는 작곡이론의 서곡일 뿐, 어떤 의지도 없다. 권력에의 의지도 없다. 의지는 단지 어법일 뿐이다. 오직 힘들, 말들, 몸짓들의 다수성이 있을 뿐이고, 스스로 긍정하고 상실하고 변화시키는 자아의 지휘 아래 이루어지는 그것들의 자기 작곡만이 있을 뿐이다. 230-232


우리는 하루를 설명으로 보낼 수 없다.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 제 3부<복음의 개선에 관하여>



볕뉘. 

니체는 또 다르게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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