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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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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 2016-06-23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으니 좋습니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전 `삼십세`라는 시를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고 맘에 두고 사는데요, 그 유명한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라는 문장때문입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라는 노래를 매번 `마흔 즈음`으로, `쉰 즈음`으로 바꿔 불러보듯이 이 구절도 `마흔 살`,`쉰 살`로 바꿔 읽곤 합니다. 그래도 매번 `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라는 것이 그래서 늘 어렵고 곤혹스러운 장르인 것 같습니다.^^

여울 2016-06-2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편 한 편 너무 아려 시집을 그만 덮었습니다.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만 속내를 들켜버려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어젠 또 다른 시집을 읽다 그만 눈물이 고이곤 말았네요. 주책없이 ㅎㅎ
 

1.

 

 도록 - 수채화 도록의 몇 작품을 옮겨본다. 배경을 칠하고 말리는 사이. 깊이가 느껴지지 않자 올리버그린과 탁색을 섞고 날렵한 터치로 수정을 받았다. 시작이 반일 것이다. 바탕에 새기고 올린다는 건은 절반의 자신감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깊은 심도를 느낄 수 있길 바랬는데 얕고 가벼운 색으로 칠하기만 했나보다. 아무 것도 도드라지지 못하게 말이다. 화폭 위에서만 날개짓만 했나보다. 날개가 마치 녹아버려 접힌 듯이 말이다.

적요.

낮 두시 한여름 태양의 적요를 견디기 힘들다.

비라도
나리려나 심장을 향한 납빛을 식힐 수 있으려나.

2.

 

적요 - 서운함의 목록을 셈해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본다. 그리고 가능한 멀리서 지켜본다. 아무래도 나대었나보다. 멀리 희미하게 둔다. 안개가 짙다. 무진이다.

기행이다. 짓이다. 서러움도 서운함도 눈으론 볼 수 없다. 껌벅껌벅 눈뜬 앞도 가늠할 순 없다. 적요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 것도 없다. 좀더 밝은 등대. 좀더 강렬한 태양. 좀더 활활탈 불덤불. 부산.

부산이다. 바람이다. 비다. 안개도 걷히고 등대도 보이고 비바람이 걷잡을 수 없다. 지금 앞에 서있어야 할 것은 바람비다. 비바램이다.

비의 적요.

 

발. 막차, 아니 오늘 첫차. 기제사에 다녀가는 길. 한낮의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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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 장인 기제사. 젯상에 올리려 문어 한마리 챙겨온 지가 여러 해다. 돌아가시기 한달 전 태어난 막내가 고딩이니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동생들은 형수를 타박아닌 타박을 하고 바뀌지 않은 정치색은 한걸음도 나아가질 못한다.

그만큼의 시간들이 접혀도 또 타박을 하고 꼬투리를 잡고 아이들은 쑥쑥 큰다는 걸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느낌은 벼락같이 오는 것이라고 핑계 삼아본다.

말미 논쟁을 부드럽게 거절하는 세련을 아직 옷섭처럼 추스리지 못한다.

에둘러 늦밤에 몸을 싣는다. 막차가 아니라 내일을 미리 기다리는 차라고 이름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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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밑 - 어스름이 깊다. 누군가 마음자리 깊던 곳. 빈집마당 꽃밭이다. 아직 남은 여운들.

봉선화는 여전히 울의 경계를 지킨다. 그래서 처량이라 한 것일까.

울 안에서 담밖으로 뻗친 저 잎은 또 무엇인가.

발. 어린이를 남녀 구분하지 않고 젠더로만 자라게 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한다. 실험의 자리는 어디든 열려있다. 해보지 않아 늘 말이 많다 싶다. 쑥쑥 자란다. 벼도 세상도. 너무 멀리 보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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