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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품기) 정치와 진리, 책세상문고, 한나아렌트

정치라는 말에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물리지요?  이 단어를 쓰면 저 자신도 물립니다. 현 시류와 겹쳐져 기분도 별반 좋지 않군요.  정치하면 흔히들 떠올리시겠지만 저도 마키아벨리를 떠올립니다. 군대 근무중 불침번을 서면서 진중문고판을 읽고 무슨 이야기인지? 서양사에 무지한 나로서 이해하기도 곤란하였답니다. 그 무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 궤적을 읽으며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정치를 도덕이나 진리의 수준에서 끌어내거나 독립적인 사고나 논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역시 고수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힘의 급변관계 속에 살아남고자 하는 치열한 흔적들이 보였던 때문일까요.? 진리와 이상과 다른 수준에서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명제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셋만 모이면 정치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둘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합리적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 합의이겠지요. 여기에 권력의 맛이 비벼져 일방으로 흐른다면 너무 살맛나지 않겠지요. 이것을  일터에 가져와 봅니다. 3명이상 사는 곳이니 힘의 관계가 작용하고, 일반적인 문화 정서보다는 힘을 쫓는 무리들이 있겠지요. 그리고 주요한 결정이 내려주는 과정에, 아니면 일상의 문화 원칙보다도 힘에 기웃거리는 부류들이 있게 마련이겠지요. 이 권력의 냄새들에 밝은 자들은 일상 업무, 정서와 달리 정치적 결정들은 달리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능적으로란 표현이 맞겠군요. 힘이 분산되어 있지 않고 집중되어 있고 일상의 문화로부터 뿌리내린 상향은 보기 드무니, 그 사이 틈새가 있는 것이지요.

그 와류일까요? 처세책인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경영처세책도 나오더군요. 냉정히 토요일 퇴근길에 용감히 후배에게 일감을 떠넘기라고 합니다. 처세를 단순히하면 일도 매끄럽고,,,어쩌면 이 자본주의 시대 효율성과 이윤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적절한 방법이라는 서글픈 생각이라고 여겨지더군요.

이런면에서 이 책은 모두에서 이런 마키아벨리는 시대상황이 만들어 내었지, 다시 태어났다면 다른 논리를 내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정치와 진리는 소속 과가 다른 것이지만, 전체주의와 획일화에 맞선 원저자 한나 아렌트의 잣대로 보면 그나마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공적인 영역에서 의사결정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의 사적영역의 역할을 담당한 그리스-로마시대의 정치가 오히려 공적영역이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과,  경제란 사적영역이 공적영역을 침범한 현재는 불가사리처럼 제 몸을 부풀리기에 혈안되어 있는 자본주의 그늘때문에 다양성(복수성)도  공적영역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목이 메여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접근이 또 다른 철학체계로 접근하면 달리 해석되겠지만, 일단 그 논리를 부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옳든 그르는, 신념이든 그렇지 않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아니면 자신의 진리를 관철하는 것과 정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지구는 둥글다'라는 진리는 알면 끝나는 것이지? '부안 핵 폐기장'관련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전문가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관련된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인정한 후, 그것을 전제로 의사결정이 행해지는 과정이 정치라 합니다.  끊임없는 과정으로서, 문화로서 정치를 이야기 한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중원을 우리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점령하고 우리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배치하는 것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평생 야인을 지향하는, 권력의 손에 놓일 수 있으나, 끊임없는 아래로부터 공적영역에 참여케하고 즐기고, 끊임없는 변화를 놓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더욱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정보혁명을 통해 예전처럼 많이 알고 있음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음이 더 이상 권력과 자신의 힘과 연계성이 많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학연-지연-혈연이 그 빛을 바래고 있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겠지요. 클린턴의 참모 딕모리스도 "신군주론"에서 원칙과 지향이 지름길임을, 늦게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임을 정치가들에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정보로 인한, 재산, 돈으로 인한 아래위 간격이 많이 좁혀지고,  그리스-로마시대 시민처럼 공적영역에 적극 참여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그 간격이 우리의 힘으로 좁혀지길 기대해봅니다.(초고 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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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과 경쟁,

일상문화의 중요성, 문화만들기...

부패의 끈의 연결 등등 움직임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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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님의 "2007년 책과 나-문학편"

문학차별주의자인 저는, 밑천 드러나는 얄팍한 앎을 이렇게 변명하고 맙니다. 소설이 제게 들어오면 어김없이 중동나고 맙니다. 이런 특이한 편식이 득이 아니라 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가는 길에 김우창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문학이다. 눈을 딱 감고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물려버리고 맙니다. 돈냄새가 잔뜩 배여나서 그런가요? 님의 글로 다시한번 해보렵니다. 생각과 즐거움, 슬픔의 잔뿌리가 내리도록 더듬더듬 가보렵니다. 행여 제대로 간다면 오로지 님의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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