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서적 에너지 그리고 사회적 삶

 

         a²+b²=c², E=mc² 이 수식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가슴이 꽉 막히나요? 누가 생각나나요? 그래요. 처음은 피타고라스, 다음은 아인슈타인입니다. 공식이자 이론이죠. 그저 암기하거나 외우는 것이라면 답답할 겁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조금 더 이해를 하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본다면 어떠시겠어요. ‘각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라는 서술형보다 가슴에 더 다가오지 않는가요. 암기에서 이해로 조금 다가간 것이겠죠.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것과 그것이 정식화되는 과정 속에서 과학자들은 그 아름다움에 멈칫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과물이 핵폭탄이나 원자력으로 이어져 길들이지 못하는 짐승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수학이나 과학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을까요? 물론 현실을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사회라니요? 사회,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는 있기나 한 것일까?” 사회학 세미나 자리에서 사회학교수님들의 자조적인 현실 개탄의 이런 목소리만큼 암울한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삼권분립은 있기나 한 것인지, 대한국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나 한 것인지, 민주주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인지. 그 동안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제도와 시스템의 결과물들은 녹아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바스라진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열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물리현상들을 밝히고 이론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이제는 조금 더 넓고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의 성과는 IT만이 아니라 현실 곳곳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나 힉스입자 역시 조금 더 다르게 미세하게 우주를 다시보고 현실을 다시 그려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볼 생명체는 자연계의 에너지 흐름과 다릅니다. 생명은 자기조직화를 통해 에너지가 낮은 곳으로 흘러 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것과 반대로 엔트로피(무질서도)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게 됩니다. 생명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물론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또 다시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그 시스템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가정아래서 말입니다.

 

에너지.그래요. 이제 사회를 보는 시선을 달리해보죠. ‘에너지를 줘 보는 겁니다. 복잡한 사회구성이론이 아니라 조금 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그림으로 직감하듯이 느낌에 맡겨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치는 만남이나 모임들, 조직체의 어떤 운영이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뚫고 있는 것을 자연계 현상과 같이 에너지라고 해보는 겁니다. 앞에 감정을 실어서 정서적 에너지라고 해보죠. ‘정서적 에너지의 흐름이 만남과 모임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그러하듯 사회라는 것도, 그 관계에서 정서적 에너지가 큰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해보는 겁니다.

 

 

자본이 집적되고 고도화되는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삶을 단편으로 잘게 썰고 나눕니다. 그 시스템 아래서는 종합적인 시야나 다른 삶들은 볼 수도 없습니다. 서로 아파할 틈도 주지 않으면서 우리 일상과 삶을 옭죄고 있습니다. 사회적 삶을 만들고 해결하는 정치를 복원하고 세계화하지 못하는 이상, 그 상황은 자립적인 나를 지키기도 버겁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소진되는 나로 침몰하게 만들고 사회와 접촉점이라는 것도 소비하거나 욕망해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자가발전 하는 자본의 집적은 사회를 밀도있게 만들려는 우리의 작은 노력들을 허망하게 거품처럼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사회나 공동체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점점 더 큰 외로움과 결핍은 사회적 욕구를 강하게 만들면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극을 벌려놓습니다.

 

이론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학자는 근육이란 표현을 씁니다. 근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회를 보는 시력과 근력을 키워 함께 사회를 건강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무기라고도 합니다. 이론의 쓸모를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용하다는 관점부터 양자물리학과 수학처럼 문제대상을 확대하면서 적용 성을 넓히는 것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자연과학 공학, , 사물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과도함은 우리의 삶과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의 폭력에서 구해낸 근대과학정신은 애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신민이자 국가권력의 도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 신경과학 등등 여러 자연과학의 성과를 사회와 정치에 적용하는 이론을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도 제대로 바라보려는 관점도 그 만큼,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고도화에 대해서는 사회의 경제-정치적 삶의 이면을 보려는 마르크스의 저작이 요긴할 것이고 응용력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 있어서 고전사회학과 최근 사회학의 성과를 잇고 있는 사회학이론을 다시 접목시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론의 흐름을 서로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소개하는 책의 이론은 단순합니다. “사회적 삶의 에너지는 상호작용의 의례의 사슬에서 생겨나고, 정서적 에너지가 큰 쪽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만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때로는 만남으로 실망하고 에너지를 소진하는 경험이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남이나 모임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에너지를 전달해주기도 하죠. 어떤 사람을 만나면 너무도 강렬해 다시 만남이 이어지기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모임과 조직은 활력과 에너지를 주어 두고두고 찾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책은 이론의 정합성으로 인해 기초적인 개념, 역사적 접근, 실제 적용사례 등을 면밀하게 맹점을 다시 짚어보고 뇌과학의 성과에 대한 반론을 이 이론에 근거하여 펴기도 합니다.

 

아마 당신 곁의 일과 사람, 그리고 사랑, 수많은 관계의 출발점을 다시 살펴보고 다시 시작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론은 비난이나 비평보다 보다 더 오래 관점과 해석, 분석을 지속하게 만들죠. 어쩌면 물리, 화학, 생물학이란 자연과학의 잣대로 사회현상을 보려는 것보다 짜릿한 쾌감을 느낄 줄도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인문사회과학에서 자연과학, 공학으로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관점도 생기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봄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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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도 회자가 많이 되는 책이라 보지를 않고 있었다. 이리저리 근거리에서 얼쩡거리기에 집어들었다. 북플에 읽은 책으로 올리니 무려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고 7백명 가까운 사람이 읽고 있거나 읽으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공동체 감각이 회복되고 있는 것인가?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을 하며, 타자신뢰 타자공헌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한번은 강신주저자가 말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서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또 한번은 이렇게 몰려가는 마음들을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그림자만 보이는 것일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 눈빛을 미처 볼 수도 없다. 눈동자에 비치는 상대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정작 필요한 이야기들은 사라지고 미워할 수 있는 용기, 자유만 뇌리에 남은 것은 아닐까?

 

 

 2. 두 책 모두 황제내경을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그 기본으로 정기신을 이야기한다. 모호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고 증명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과학이라는 것이 낱낱이 해부하거나 분석해 재현을 논한다면, 실체로 있는 것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것, 과학이란 개별 모드가 아니라 명확히 해부할 수는 없지만 통째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과학이어야 하지 않는가 반문하고 있다. 두 책을 연결시켜보면 정기신에 대한 개념은 보다 명확히 잡힌다. 건강열풍에 못지 않게  근육맨이나 몸짱이라서, 정작 너무 건강해서 몸을 버리는 일은 제어할 수 있는 쓸모는 있을 것이다.

 

 

3. 한 두 장만 남기고 있다. 가늘고 길게 살 것인가? 짧고 굵게 살 것인가? 골골거리면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식물이든, 회충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체에게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저자는 같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러 사례와 과학적 이유를 부드럽게 대고 있다. 불멸을 꿈꾸는 욕망이나 매미와 유충, 단회번식을 하는 연어 등등의 진화의 선택, 경우의 수를 살피면서 또 다른 건강만 살핀다면 정말 좋을까? 악착같이 목숨을 부지하거나 연장하는 일. 삶과 생명이 갖는 아우라에 대한 성숙으로 이어지는 독서이길 희망해본다. 그냥 우주의 일이었으면 싶다. 연연해하지 않고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여기에 더 충실해지는 계기로 이어지는 일이면 좋겠다 싶다.

 

4. 오랜 지인의 책이다. 책이라기보다는 활동보고서다. 이렇게 책은 그의 흔적들을 종합하여 볼 수 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더욱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 같은 것이다. 중간 보건소의 주말 근무 행정이 외국 이주 노동자에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정책을 펼 수 없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열정의 기획이 행정이라는 관료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것은 이렇게 가로막히는 질문에서 시작하기 마련이지 않을까? 똑같은 질문이 반복된다면 그 질문은 자꾸 목을 넘겨 가슴가까이 지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막히는 병목들이 이런 패턴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삶의 동선과 다른 목없는 이들의 삶의 동선은 너무도 다르고 이질적이다. 단 한번이라도 교차하는 매듭에서 서로 필요한 정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 비법양념장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이모저모 해보았다. 책이라도 한권있으면 곁에 두고 보면 어떨까 싶어 윤동주시집도 살겸 같이 고른 책이다. 목차를 보고 상상한다. 된장찌개소스 - 김치청국장찌개 소스, 고추장소스....몸에 찰싹 달라붙는 것부터....발사믹 드레싱은 아직이다. 참터에서 고맙다고 상품권을 얻었다. 전시회도 볼 겸, 눈내리는 일요일 동네서점에서 배회하다가 산 책 중에 하나가 정물화 스케치 바이블이다. 이 또한 요리같은 것이겠다. 몸으로 하는 것에 관심들이 곤두선다.

 

 

 

볕뉘. 친구들로 향하는 영토를 확장하는 일.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빠르고 깊은 길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위주로 돌아가는 모임이 아니라 중심을 달리하는 모임들에 스스로 맡기는 일들도 나만의 세상이 아니라 좀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진입로인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여. 다른 몸에 따듯한 가슴과 마음을 섞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같이 변하면 어떨까. 머리 속이 아니라 가슴과 몸의 리듬에 뫔 기울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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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볕뉘.

 

1. 미리미리 정리해두지 않으면 고생한다. 정리를 해두었다고 여겼는데 알송달송한 것이 많다. 일에는 여지를 두면 꼭 뒤탈이 있는 것 같다. 한번 세세히 들여다보았으려니, 알아서 진행되고 있겠지 하면서 걱정 매두었는데 덜썩 일이 왔다. 어찌할까하다.  발품을 좀 더 팔기로 한다.

 

2. 나무로 보여주려한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중동난 일들이나 실험적으로 한 일들도 눈여겨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한편은 같이한 시간이 짧더라도 전체적인 맥락과 측면을 한번쯤은 맛을 봤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부분적인 것만 가지고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왜곡되지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서도 미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보았다. 마음이 빠져나간 연유들과 애정도 그러하며, 그물망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결이 강했을 때 모임도 열정과 성과를 달리하기 때문인 것도 하다.

 

3. 초기 뿌리단계에는 일요모임이라고 모임을 준비하는 기간이 더 있었다. 세미나와 토론 정관, 선언문등을 작성하는 과정들이 카페를 통해 기록되고 나누어졌다. 창립을 하고 자체 세미나가 활성화된 것이 그나마 차년도를 원활하게 끌어갈 수 있던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강물처럼 전년도의 에너지와 활력이 다음년도를 자연스럽게 끌고 같던 것 같다.

 

4. 그런 면에서 1, 2, 3, 4기의 색깔을 달리해두었다. 노랑계통에서 녹색, 분홍, 그리고 적색으로 조금씩 온도도, 밀도도 농도도 진해지는 것으로 나무들의 잔가지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표시해두었다. 누군가는 그 가지들에 활력을 더 주면서 꽃들이나 열매를 맺으면 좋겠다. 여러 과실수들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묘목프로젝트, 과실프로젝트, 씨앗프로젝트 등등  따로따로 나누어서 살펴보아도 좋겠다 싶다.

 

5. 총회 워크숍에서도, 지금도 자료를 작성하며 건네면서도 자료에 남겼던 말은 전하지 못했다. '앎을 함으로 가져가고, 앎을 삶에 말걸고 삶으로 가져가는 이도, 모임을 삶에 말걸고 삶과 섞거나 삶의 일부로가져가는 이가 더 있다면 모임도 삶의 곁은 조금씩 색깔이 변하지 않을까.'   물론 사람이 가장 큰 변수였던 것 같다.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 관계를 풀어나가는 힘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다. 곡절들 사이 어렴풋하게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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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진전될수록 초기 정보는 물론 수정·보완되지만, 수정된 정보도 본질적으로 여러 참여자들이 처음 취한 입장과 어긋나지 않고 심지어 그 토대 위에서 발전되기도 한다. 참여자들이 주고받을 노선의 선택은 만남 초기에 정하기가 쉽지, 일단 상호작용이 진행되고 나면 도중에 변경하기란 쉽지 않다. 22

 

개인이 처음에 투영한 상황 정의가 그의 후속 협력 활동을 계획하게 한다는 행동의 관점을 강조하려면, 상황 정의에 독특한 도덕적 성격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상황 정의에 담긴 도덕적 성격이다. 어떤 사회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든 타인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존중과 대우를 받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보장하는 원리에 다라 사회가 조직된다. 이와 관련된 두 번째 원리도 있다. 자신이 어떤 사회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거나 명시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주장과 일치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24

 

상호작용(대면 상호작용)은 개인들이 마주 보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행동을 말한다. 한 상호작용은 한 시점에 개인들이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상호작용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만남 emcounter'이라는 용어를 써도 무방하다. ’공연performance'이라는 말은, 한 시점에 한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하겠다. 특정 참여자와 그의 공연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 공연에 기여하는 관객·관찰자·동료들이 벌이는 또 다른 공연도 다룰 수 있다. 공연에서 전개되는 미리 정해진 행동 유형과 다른 시점에 연출했던 행동 유형을 배역 part' 또는 배역 연기 routine'라 칭하겠다. 이들 상황적 용어는 통상 쓰는 구조적 용어와 쉽게 연결된다. 27

 

앞무대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제를 맡은 사람이 매우 상이한 여러 앞무대 가운데서 적합한 유형을 선택해야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군대 조직에서는 과제 수행에 필요한 권위와 기량이 한 계급에는 그들의 앞무대에 비해 넘치고 다음 계급에는 그들의 앞무대에 비해 처지는 임무가 생기곤 한다. 계급별로 앞무대의 격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임무도 계급에 넘치거나미흡하게 되는 셈이다. 43

 

경청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학생은 눈으로 선생을 응시하고, 귀는 사방으로 열어둔다. 그렇게 경청하는 학생 연기를 하느라고 진을 뺀 나머지 그는 결국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처럼 사람들은 종종 표현을 택할지 아니면 행위를 택할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다. 과제를 잘 해낼 시간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과제에 집중하느라고 잘하는 모습을 연출할 능력이 없을 수 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조직에서는 극화 기능을 업무 담당자가 아니라 업무의 의미 표현을 전담하는 전문가에게 공식적으로 위임한다고 한다. 49

 

귀족청년의 덕목 - 그는 자신의 모든 말과 움직임이 주목받기 때문에 평상시 행동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고 사소한 임무라도 엄격하게 예절을 지키며 행하는 법을 익힌다. 자기가 얼마나 관찰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성향에 호감을 보이는지 의식하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유와 고귀함이 저절로 배어 나오게 행동한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 몸가짐, 품행은 모두 그의 탁월함과 우아하고 고상한 감각을 보여주는 징표로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지닐 수 없는 소양이다. 이런 소양이 그의 권위에 사람들을 손쉽게 굴복시키고 사람들의 성향을 그의 입맛대로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이다. 50

 

사실상 사람에게는 자기가 존중하는 집단의 수만큼 많은 사회적 자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대개 상대하는 집단에 따라 자기의 각기 다른 면을 보여준다. 부모와 선생님들 앞에서는 얌전하기 짝이 없지만 거친제 또래 친구들 앞에서는 불량배처럼 욕설을 내뱉고 건들대며 걷는 청소년이 많다. 우리는 자식을 클럽 친구 대하듯, 고객을 고용 노동자 대하듯, 상사나 고용주를 친한 친구 대하듯 하지는 않는다. 68

 

사람의 인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인성을 침해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선이다. 93

 

볕뉘. 기대하고 있던 책인데 이제서야 번역되어 나왔다. 읽고 있는데 파본이다. 교환신청을 해두었다. 읽은 만큼 밑줄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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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이라고 말할 수 있다.(1)

 

 

3장 정서적 에너지와 일시적 감정

 

뒤르켕은 사회학의 핵심적 문제를 제기했다. 무엇이 사회를 결합시키는가? 그의 대답은 도덕적 유대를 생산하는 기제가 사회를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제가 정서에 초점을 맞추고, 정서를 강화시키고, 정서를 전환시킴으로써 도덕적 유대를 생산하는 기제라고 주장한다. 153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르든 장기적인 정서적 색조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차분하고 평탄해서 주목을 끌지 못하는 정서도 다루어야 한다. 이론적 의미에서는 내가 정서적 에너지라고 부르는, 오래 지속되는 정서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또한 극적이고 단기적인 감정도 장기적 정서를 형성하는 배경으로 보아야 잘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거의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는 네 가지 종류의 감정이 있다. 분노, 두려움, 행복, 슬픔이나 절망은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원초적 감정이다. 포유동물은 두려움과 분노, 공격성을 인간과 공유한다. 인간에게 이 원초적 감정들의 생리적 토대는 뇌에서 진화가 덜 이루어진 부분인 소뇌에 있다. 그렇지만 행복은 두뇌의 특정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내외피질 영역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행복은 기쁨, 의기충천, 흥분, 열광으로, 슬픔은 그와 대비되는 실망, 울적함, 침울함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감정이다. 기초적인 생리심리학적 유형과 관련 맺고 있는 이 감정들을 나는 높은 정서적 에너지와 낮은 정서적 에너지라고 부른다. 159

 

성공적인 명령 하달 의례는 관심의 초점 공유를 강제하고 상황 지배적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복합적인 정서이다. 양쪽에서 다 성공적인 역할 취하기가 이루어진다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스스로의 지배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될 것이고, 명령을 받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나약함, 좌절감, 두려움)과 지배자에대한 분노나 강한 부정적 감정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다. 이는 혹독하게 억압을 당한 사람들이 왜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하는경향을 보이는지, 그리고 나중에 자신도 그럴 수 있는 처지가 되면 가해자 역할을 하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167

 

뒤르켕의 선구자적 분석은 이런 다양한 차원을 다 해부해 논의한 것은 아니었다. 뒤르켕은 네 차원을 합쳐 전체적 수준에서 도덕적 밀도라고 개념화했다. 좀 더 발전시킨 논의로 기계적 유대유기적 유대를 구별하고 복수의 원인을 살펴본 정도이다. 172

 

정서적 에너지의 낮은 쪽 끝에는 표현과 활동에서 모두 물러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울감이 있다. 우울감은 높은 정서적 에너지보다 복잡하다. 권력 차원에서 가장 낮은 쪽에 있는 사람들은 낮은 정서적 에너지, 동기의 상실 같은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는 아주 강한 통제를 받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통제당한다는 감각이 중간쯤일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은 분노이다. 자신들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일시적으로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진다. 중간 수준의 부정적 상호작용을 체험하는 경우에도 독특한 정서적 영향이 있다. 175

 

가장 폭력적인 분노는 좌절감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을 때 표출된다. 좌절감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나약한 사람은 폭력적으로 분노를 드러내지 못한다. 저항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을 때라야 화를 낼 수 있다. 이는 분노의 핵심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의 활성화 원리에 따름을 보여준다. 좌절에 반응할 정서적 에너지를 얻기에 충분한 사회적 지지가 있을 때만 화를 낼 수 있다. 지나치게 나약한 사람은 지배에 대해 분노로 반응하지 않고 우울증에 빠진다. 183-184

 

또 다른 단기적인 부정적인 감정에는 두려움이 있다. 가장 강렬하고 짧은 형태의 두려움은 활동이 갑작스럽게 교란될 때 생긴다. 극단적인 두려움은 경악 반응 다음으로 강한 감정이다.울음은 두려움을 좀 더 복잡한의미로 표현하는 방식이며 고통에 대한 사회적 구조요청이다. 성인은 인식의 지평이 넓기 때문에 우는 일이 별로 없다. 비교적 짧고 단순한 물리적 위협이나 불쾌감 외에 가장 중요한 두려움은 사회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강압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회적 배제에 대한 두려움은 더 오래 지속된다. 울음(무력감을 호소하는 소통의 형태)은 문제가 사회적 상황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정서적 에너지 적응 형태에 속한다. 강압 상태에 있거나 배제된 사람은 쉽게 동정을 구할 수 없다. 정서적 의사소통 형태로서 울음은 두려움과 회피를 더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정서적 반응이다. 186

 

다양한 단기적인 감정 체험의 결과는 내가 정서적 에너지라고 부르는 장기적 정서의 형성 과정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그러나 정서적 에너지가 극적인 감정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도전이 없는 지배 상황 또는 참여하면 자신감을 더해주고 마음이 끌리는 상황이 있고, 종속 상태에 있거나 집단에서 인기가 없음을 느끼는 경우처럼 극적이지 않은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상황도 있다. 극적인 단기적 감정이 장기적인 정서 형성에 더 중요한 작용을 할지 아니면 일종의 예외 상황으로 치부할지는 검증되지 않은 문제이지만, 유출 효과가 있음은 틀림없다. 긍정적인 단기적 감정(기쁨, 열광, 성적인 열정)은 정서적 에너지에 축적될 것이다.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방식은 다르겠지만 긍정적인 단기적 감정은 장기적인 정서적 에너지에 축적될 것이다. 187

 

부르디외문화적 자본개념도 단순히 경제적 자본의 위계에 대한 대응물로서 문화의 위계를 보는 것이라면 지나치게 정태적인 개념화다. 달리 말하면, 계층화의 핵심은 물질적 자산이나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정서적 에너지의 불평등에 있다. 사람들에게 물질과 문화를 스스로 사용할지 아니면 남들에게 넘겨줄지를 좌우하는 것은 정서적 에너지의 흐름이다. 190

  

  

4장 상호작용 시장과 물질 시장

 

상호작용 의례의 흐름도 208

 

상호작용 의례에 토대를 둔 정서적 유대에 어떻게 합리적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까? 유대는재화이며,사람들은 자기가 들인 비용에 비례해 얻을 수 있는 유대의 정도를 최대화하려 한다. 그러나 유대는 집합적 재화라서 서로 협력해야만 생산될 수 있으며, 동시에 아주 단순한 유형의 집합적 구조이기도 하다. 상호작용 의례는 무임승차자 문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대 게임은 그림 4.2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9

 

사회적 상호작용의 시장은 지역의 생태학적 조건의 규제를 받는 일련의 물물교환 시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주어진 상호작용 상황에서 개인은 자기의 정서적 에너지에 가장 높은 보상을 주는 상호작용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이 실상이다. 따라서 상호작용 의례의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행동은 합리적 행위이다. 222

 

인간이 정서적 에너지 추구자라면 의식적으로 계산할 필요가 없다. 앞서 내가 선택이나 결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대부분 은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행동은 정서적 향성(tropism)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정서적 에너지의 사회적 원천이 행동을 직접적으로 활성화시킨다. 가장 강력한 활성화 상황은 즉각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개인은 상황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주관적으로 자신이 에너지로 충만해 있고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확고한 결정 또는 강한 의지력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양한 대안의 편익과 투자비용을 의식적으로 계산할 필요는 없다. 정서적 에너지가 강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즉시 알아차린다. 252

   

 

5장 내면화된 상징과 생각의 사회적 과정

 

대화는 상징에 집단 소속감을 불어넣는 상호작용 의례이고, 생각은 어느 한 순간 상징이 지닌 정서적 에너지로 흘러들어가는 내면화된 대화이다. 대화의 시장에서 개인은 자신이 지닌 상징 자원과 정서적 에너지 수준에서 상호작용 의례의 열광을 가장 높이 생산해주는 대화를 향해 움직이고 정서적 에너지를 낮추는 대화는 피한다. 내면의 대화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마음 속 생각도 정서적 에너지를 높여주는 내면의 대화에 쏠린다. 255

 

잘 알려진 것처럼 중상위 계급은 노동 계급에 비해 말을 멈추고 속으로 다른 말을 생각해보며 머뭇거리는 순간이 더 많다. 이는 사회계급 간 전형적인 상호작용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증거이다. 생각의 형태는 물론이고 내면 대화의 양에서도 차이가 있다. 노동 계급은 앞뒤 연결 없이 말을 풀어내며, 그래서 생각하느라고 멈추는 순간 없이 상투적인 발언을더 많이 하는 편이다. 생각 예행연습의 사회적 분포가 있는 것이다. 260

 

연결망이 하는 일을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연결망이 개인의 일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형성된 사상에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세대를 가로질러 이루어지는 전체 연결망의 행위이다. 그리고 관념은 다면적 상징이어서 문법적 설명의 흐름, 함축적 의미나 어감에 따라 다른상징과 연결되기 때문에 다른 맥락에서 재해석된다....사상의 가치는 사상 자체에 내재하거나 역사의 밖에 있는 어떤 순수한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해체하고 다양하게 조합하여 재통합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체 연결망에 의해 창조된다는 뜻이다. 263-264

 

미래에 위대한 인물이 될 제자가 위대한 거장에게서 얻는 것이 사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거장에게서 전수받는 것 가운데 하나는 높은 정서적 에너지이다. 심지어 거장과 단절하는 경우에도 정서적 에너지를 얻는다. 저명한사상가는 에너지 대가이기도 하다. 그들은 고도로 생산적이어서 엄청난 양의 출판물을 쏟아내는데,그중에서 명성을 얻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연구에 강박증을 가진 것처럼 보일 만큼 긴 시간 연구에 매진한다. 사유 자체가 그들에게 활력을 주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생각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사유의 마력이 절정에 달하는 결정적 순간에 새로운 사상이 머릿속으로 찾아온다. 265

 

한 세대에서 지적인 작업의 활동적인 생애는 대개 35세 전후로, 철학 분야에서는 경쟁적 위치에 있는 큰 인물이 보통 세 명에서 여섯 명 정도 등장한다. 이는 세대를 잇는 지적 계보의 숫자 또는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학파의 숫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소수자의 법칙 law of small number'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사상가나 학파의 숫자는 둘 이하일 수도 있고 여섯 이상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높거나 낮으면 창조성과는 길항한다. 한 사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창조성이 나오지 않는다. 저명한 스승 하나와 그 계보가 지배한다...창조성은 경쟁 상황에서 생긴다. 경쟁적 지식인들의 연결 사슬은 암암리에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서로의 사유 방향을 구조화한다. 268

 

창조적 사유는 긍정적인 면으로나 부정적인 면으로나 정신적 제휴를 만드는 과정이다. 사상은 집단 소속의 상징이자 동시에 비소속의 상징이다. 누가 집합적 사유의 내부자인지 누가 그 울타리 밖에 있는지를 가르는 표지이다. 지식인들은 동맹자에게 의존하고, 경쟁자에게는 더욱더 의존한다. 269

 

저주의 긍정적인 매력은 출구가 막힌 에너지의 정화라는 프로이트식 억압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저주를 내뱉는 사람이 공식대로 저주를 뱉는 과정에서 그리듬으로 자기 합류를 성취하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자아 통합의 의례인 것이다. 286

 

생각의 세계는 보통 광대한 영토로 여겨진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염탐이 필요할 만큼 환상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생각은 자유롭고 족쇄가 없고 무한대로 열려 있어서 외부에서는 접근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이 사회생활의 의례를 내면화하고 상징적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다시 외부로 내보내려는 충동을 담는 것이라면, 생각이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한나라 시대 중국의 농촌 사람들은 사적인 생각도 겉으로 행하는 의례와 관련된 것이라 거의 비슷했을 것이고, 21세기로 접어드는 시점의 미국 중간 계급의 사적인 생각과는 아주 달랐으리라.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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