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박노영교수님과 아카데미와 각별하죠. 지역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기도 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큰 흐름을 짚어보는 조금 스케일이 크다죠. 이론의 빈곤이 아니라 빈한한 때입니다. 철학이라는 것도 기원이 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라죠. 여기가 철학의 기원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며 다르게 보는 혜안을 가져오는 것이자, 시대를 관통하거나 솟아나는 새말들을 가져오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다른 시각, 다른 관점을 공구는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새로 공부하는 셈치고 먼길이지만 될수록 함께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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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 2016-04-2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강은 꼭 듣고싶었는데 일이 꼬여버려서 못 가게되어 속상하네요.
등산을 하다가 높은 봉우리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한눈에 뒤돌아보다보면 지난 온 것이 명료해지곤 하죠. (그 매력때문에 매번 능선이 긴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대요)^^
`인권사상+사` 도 그런 매력이 있어보입니다. 숨을 참지 않고 길고 먼 길을 오래 걷기.

2016-04-21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민아카데미 4월 일정안내]

▲정치철학세미나
-4월9일(토) 오후2시
-장소:아카데미책방
-텍스트: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카운터펀치(논픽션읽고쓰기모임)
-4월12일(화) 저녁7시30분
-장소:아카데미책방
-텍스트: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읽기모임
-4월6일,20일(격주 수요일) 오전10시30분
-장소:아카데미책방
-텍스트:10권 `사라진 알베르틴`

 

 

 

 

 



▲에퀴녹스(SF읽기모임)
-4월19일(화) 저녁7시30분
-장소:아카데미책방
-텍스트:코니 윌리스 <여왕마저도>

 

 

 

 

 



▲한 달에 한 번 영화와 음악의 만남 `동시상영관`
-4월26일(화) 저녁7시30분
-장소:아카데미책방
-영화 <라벤더의 여인들> &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기획강좌
박노영 교수의 “인권사상사로 인권 이해하기”
-4월20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7시(총6강)
-수강료:회원3만원/일반5만원

★회원 만남의 날(봄소풍)
-4월16일(토) 9시
-흑석리일대 트래킹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 벙개
-4월29~30일(금,토)
-자세한 일정 추후공지

(문의:042-489-2130/010-3993-9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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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씨앗은 그 씨앗의 부재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감염시킬 수 있는 역설적인 에너지를 찾을 때에만, 요컨대 다른 사람들이 부채의 법칙’, 청산 불가능한 채무를 수긍하게 되어야만 전파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156

 

철학을 하는 이유는 욕망하기 때문이고 욕망은 자기의 움직임을 의문시하면서 배가된다. 이 같은 성찰의 이유는 통일성 그 자체를 잊게 하는 근원적인 실종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현실과 의미의 결합이 언제나 달아나고 새로이 시도되다가 또다시 상실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통일성을 잃게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을 하지 않는다면 철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세계의 침묵이 담론을 횡설수설 헛소리로 만들거나 세계에 내재하는 로고스가 이미 모든 것을 말해서 말들이 반복밖에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를 말하게 만들고 이미 존재하는 의미, 담론을 미완으로 둠으로써 참되게 하는 누락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수동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가 우리에게 에너지를 투입하는 유년기”, 철학자가 포착한 상처다. 세계가 우리를 잠식하기 때문에 말은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또한 행동은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세계를 침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에 노출되어 있기에 철학을 하고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과 행하게 되는 것을 명명할 책임이 있다. 166-167

 

1. 왜 욕망하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 전체가 동일한 석양빛에 물들어 있음은 분명합니다. 뼈와 살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한 여인뿐만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사회, 세월이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 타자들, 무엇보다 순간들을 한데 모으기보다는 흐트러뜨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황혼. .....역사와 사회에도 끌어당기기와 밀어내기가 교대로 갈마들기 때문에 그 둘 모두 욕망의 소관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27-28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거래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외부를 덮어주고는 그 안으로 파고들어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밤이 다 가도록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알키비아데스는 말하지요.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화를 낼 수도, 이분과의 교제도 끊을 수도 없었어. 그렇다고 어떻게 하면 이분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 유혹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지. 나는 어쩔 수가 없었어. 결국 나는 이 분의 노예처럼 되어버렸지. 아무도 이런 식으로 노예가 된 적은 없을 거야. 그렇게 나는 이분 주의를 맴돌기만 했어향연219 31

 

소크라테스는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거래에 의문을 품고 도대체 어디에 금이 있다는 건지 큰소리로 자문했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였지요. 알키비아데스는 가시적인 것, 즉 본인의 아름다움과 소크라테스의 지혜라는 비가시적인 것을 교환하기 원했습니다. 그는 굉장히 큰 위험을 무릅쓴 겁니다. 만약 소크라테스에게 지혜가 없다면 몸을 맡겨봤자 아무것도 못 얻는 거잖아요.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이 거래는 일종의 내기, 그것도 판돈을 전부 잃느냐 따느냐가 아니라 운이 좋으면 전부 거둬들이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사중손실이 되는 내기입니다. 32

 

소크라테스가 유일하게 추구한 목표는 알키비아데스의 논리를 무력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력화가 성공했다면 알키비아데스는 지혜가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요. 지혜가교환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귀해서가 아니라 지혜는 결코 자기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항상 상실되고 항상 새롭게 부재의 현존을 찾아 나섭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는 그 자체가 교환에 대한 의식, 의식적인 교환, 대상은 없으며 교환만 있다는 의식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하나의 소유처럼, 사물처럼, 어떤 처럼 받아들이는 알키비아데스의 논리를 중단시킴으로써 그러한 반성을 불러일으키기 원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와 아테네인들의 사물화논리에 딴죽을 건 거죠. 37-38

 

소크라테스는 욕망이 납득되거나 극복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고 숙고되기를 바랐습니다.....더 많음은 아주 적은 것,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요. 그는 욕망의 가능성 자체가 실제로 부재의 현존을 표시한다고, 어쩌면 모든 지혜는 그 부재에 귀를 열고 그 부재 곁에 거하는 것이라고 입증하기를 원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지혜를 찾는 대신에 자신이 왜 찾는가를 찾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철학한다는 것은 지혜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하는 거예요. 39-40

 

철학한다는 것은 욕망의 움직임에 충실히 순종하기, 그 움직임 안에 있기, 그러면서도 동시에 욕망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욕망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46

 

철학한다는 것은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되 욕망을 그러모아 기록함이요. 그러한 기록은 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 또한 질문으로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왜 욕망하는가? 왜 타자를 찾는 동일자의 움직임이 도처에 존재하는가?”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욕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한다.” 47

 

2. 철학과 기원

 

통합하는 힘이 인간들의 삶에서 사라지고 대립들이 그러한 관계와 생생한 상호작용을 잃어버리고 자율성을 획득할 때, 바로 그때 철학의 욕구가 탄생한다.”...철학의 기원은 일자의 상실, 의미의 죽음입니다. 49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단편 선집] - 이 단편들은 다른 한편으로 이 조화, 구성요소들의 논쟁과도 다름없는 이 조화가 더 이상 이해받지도 못하고 이야기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꿈을 꾸고 있거든요.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그네들의 분리된 세상 속으로 틀어박혔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랬듯이 통일성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건 통일성이 그 증인들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통일성이 상실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65

 

어째서 의미, 통일성이 사라졌을까?”라는 우리의 예리한 물음은 금세 사용하기 어려운 재료로 부딪혀 날이 무디어집니다. 그 재료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자기가 잃어버리는 것을 간직합니다. 지금 제기된 질문은 역사가의 입장에서 답할 것을, 어쨌든 역사가로서 대답을 찾을 것을 요구하지요. 예를 들자면, 그리스에서 철학이 수태되고 태어난 그 시대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하나하나 증거에 입각하여 살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67

 

철학자는 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을 통해 성장하고 소양을 계발하는것입니다. 그는 이 방식의 깊이를 가늠하고 이 방식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우리는 매번 욕망의 대상을 잃어버리고서 매번 원점에서 출발한다고요. 가령 플라톤의 저작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우리는 매번 새롭게 취하고, 해독하고, 기록해야만 합니다. 그 메시지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그 안에서조차도 우리가 느끼는 통일성에 대한 이 동일한 욕망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71

 

통일성의 상실은 우리가 철학을 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라는 의미에서 철학의 동기입니다. 통일성의 상실과 더불어, 욕망이 반영됩니다. 음악학자들은 동일한 단어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멜로디 악구, 작품에 선율적인 통일성을 부여하는 악구를 지칭합니다. 통일성의 상실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철학의 역사 전반을 지배하고 그로써 하나의 역사를 만듭니다. 76

 

철학의 기원은 역사적 지표를 따라서 기원전 7세기,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보학처럼 거꾸로 읽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리하여 결국은 피조물이 자기를 만든 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신이 인간을 만들어낸 한에서 인간도 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철학의 기원은 바로 오늘날입니다. 77

 

정신이 생각하는 세계의 통일성과 사회의 통일성 그 자체 그리고 이 두 통일성의 합일은 항상 회복될 필요가 있는 거예요. 역사는 이러한 추구가 자기 뒤에 남기는 흔적이자 자기 앞에 열어놓는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차원과 미래의 차원, 이 두 차원은 현재라는 차원이 충만하지 않을 때, 현재가 그 영원한 현행성 속에서 부재를 드러낼 때, 현재가 자기 자신과 일체성을 갖지 못할 때에만 그 현재의 양쪽으로 뻗어나갑니다. 프루스트가 사랑은 마음으로 감지하게 된 시간(그리고 공간)이라고 했듯이...78

 

헤겔이 말한 대로 통일성이 상실되고 우리는 분열 속에서 살아가고 사유하기 때문에 철학하려는 욕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또한 그 상실이 현실적이고 현존하지만 상실 자체가 상실되는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이를테면 그 상실의 초시간적인 통일성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79

 

3. 철학의 말에 대하여

 

실제로 일어난 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말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은 사람, 그 일의 창시자와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심판대 앞에서든 혁명 진압 세력 앞에서든 자기가 만들어낸 그대로 상황을 책임지고 자기가 입 밖에 낸 말의 대가를 치를 자격이 있습니다. 그 말은 말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발화 이전부터 있었던 것을 취하는 한에서만 어떤 반향을 얻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말은 아무 효과도 얻지 못했겠지요. 91

 

생각한다는 것, 다시 말해 말한다는 것은 들릴 듯 말 듯한 의미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고 온전하게 분절 담론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이 불편한 상황에 전적으로 처해 있을 겁니다. 92

 

말은 곧 사유이자 즉각적으로 소통입니다. 다시 말해 말 안에는 내가 나의 반대편이 될 수 있는 역량 혹은 바깥에 있을 수 잇는 역량(하지만 안은 어디에 있을까요?)이 있습니다. 95

 

철학은 세계와 인간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목소리를 높이는 말입니다. 철학은 욕망하는 말, 별들로부터 멀어진 말, 천체들의 침묵이 신들에게서 박탈한 말입니다. 105

 

철학은 시학에 맞서서 대변인에 지나지 않는 확실한 그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드러내는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어쨌든 그 의미가 깃들 수 있는 단어들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계명이 적힌 석판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지요.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말에 도사린 위험, 분절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의미를 담론으로 바꾸는 능동적인 힘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셈입니다. 109

 

철학의 말은 이 편재성을 극단까지, 절정까지 밀어붙입니다. 철학의 말이 순전히 자기가 말하는 바인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은 자기가 다루는 주제들의 자율적 충동에 넘어가지 않든가,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 말은 은유를 발굴하고, 상징을 꼼꼼하게 살피고, 자기 담론의 구성을 검증합니다. 그래서 담론은 가급적 정련된 언어를 구성하고 논리와 엄격한 공리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한 논리와 공리들에 힘입어 담론이 끊어지거나 빈틈이 생기는 일 없이, 요컨대 무분별하지 않게 표명될 수 있을 테지요.....하지만 그러면서도 철학적 담론은 자기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그 담론은 자기를 장악하지 않아요. 자기도 그 점을 잘 알고, 스스로를 장악하지 않기를 열렬히 소망합니다. 111

 

우리는 욕망이 철학으로 반영된다고 했습니다. 이 반성/반영, 이 재연이 말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자기가 말해야 할 것에 끌려가는 동시에 끌려가지 않는 말 덕분이지요. 마치 알키비아데스의 욕망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욕망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크라테스처럼 말입니다. 반성은, 미리 준비된 말일지다로, 철학자가 욕망의 법칙, 궁수의 맹목과 상처, 세계가 우리를 에워싸는 유년기를 면하게 하지 못합니다. 부재와 현존의 대립, 다수의 항들에게서 일어나는 운동,우리는 그것들을 말의 한가운데서 되찾습니다. 116

 

욕망은 철학의 말에 반영됨으로써 스스로를 의미작용의 지나침모자람으로 인식합니다. 그게 바로 모든 말의 법칙이지요. “왜 철학하는가?” 오늘 우리는 그 질문에 또다른 질문으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왜 말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말하기를 원하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인가?” 117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포이어바프에 대한 테제11. 여기에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지요. 나는 철학의 무력, 무능, 무효의 실제 범위를 숙고하기에 좋은 출발점이 마르크스의 이 테제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날의 마르크스의 강경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곧 알게 될 겁니다 122

 

플로티노스나 칸트의 사상도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도 그 뿌리, 그 문제의식 자체는 이 현실에 담그고 있습니다. 비록 이데올로기의 꼭대기, 그 절정은 완전히 현실과 어긋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요. 예를 들어 데카르트 철학에서 칸트 철학까지를 살펴보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가 점점 더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듯 보입니다. 이론에서 점점 더 결정적인 개념이 된 거예요. 그 이유는 실제로도 하나의 흐름이 생겨나고 점점 세력을 넓히다가 프랑스대혁명과 그이후 유럽을 뒤덮었기 때문이죠. 인간과 사회의 신세계가 자신의 실현을 방해하는 구세계 속에서 잉태되고 있었고, 그 신세계는 자유에 대한 철학적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욕망의 가능한 표현을 찾았습니다. 125

 

이데올로기의 진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진실은 자기 시대의 현실적인 문제의식에 호응하지요.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거짓됨은 그 문제의식에 대한 화답, 실제 사람들의 문제를 일깨우고 확립하는 방식 자체가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있어서 실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127

 

마르크스는 철학을 가장 근본적인 심급, 욕망의 심급에서 이해하고 철학을 욕망이 낳은 딸로서 보여줍니다. 128

 

이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더는 꿈꾸지 않아도 되게끔 - 나는 칠학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이라고 하고 싶군요. - 현실을 수정하고 삶을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다. 밤의 잠에 푹 빠진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한낮의 이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새롭거나 순진무구한 시선을 던지고, 우리 자신이 똑바로 설 수 있습니다. 130

 

세계를 바꿔야 한다면 그 이유는 다른 것을 향한 열망이 세계 속에 있기 때문이요. 세계에 부족한 그것이 이미 있기 때문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세계의 부재가 현존하기 때문입니다. 저 유명한 문장도 단지 그런 뜻일 뿐입니다. 인류는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 제기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칭하는 현실 속의 경향들이 없다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전에우리가 말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게 허용되겠지요. 뭐든지 말해도 될 뿐 아니라 뭐든지 해도 될 겁니다.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세계가 이미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예고하고 내다보고 촉구하는 뭔가가 현재에 있기 대문이에요. 인류는 그저 어느 주어진 한때의 존재 양상, 심리 사회적 조사 연구로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33-134

 

의미는 이미 사물들, 인간관계들 속에서 어슬렁대고 있습니다. 세계를 실질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 의미를 해방시키고 전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134

 

마르크스는 사유가 실현에 이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현실이 사유에 이르러야 한다”(헤겔 법철학 비판서설)고 했습니다. 현실이 사유를 추구할 때에만, 세계가 말을 추구할 때에만 사유와 말은참될 수 있습니다. 135-136

 

행동이라는 이름을 얻기에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이 역설적인 수동성의 힘을 전제하고 그 힘에서 잠재적 보증을 얻는다고 하겠습니다....주려면 받아야 하고, 말하려면 들어야 하며, 변화시키려면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스인들이 괜히 동일한 단어로 수용하는 행동과 말하는 행동을 모두 지칭했던 게 아닙니다. 136

 

역사의 의미를 논하는 방법으로 눈에 보이는 무질서를 해독하고 실재의 질서를 나타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요컨대, 확실하고 틀림없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오류 없는 정치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행동의 오류가능성은 그 근거가 철학과 행동의 관계를 좀더 가까이서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깊이 숙고해보아야 합니다. 세계가 변화를 요구한다면, 그건 도래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정말로 도래를 요구하는 이유는 그러한 도래가 사실 어떤 식으로든 방해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140

 

적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통찰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이 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적은 나의 사유 그 자체 안에 있습니다. 사회계급들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가 이론과 단절되는 것은 실천, 즉 사회관계의 조용한 변화가 이론과 단절된다는 뜻입니다. 142

 

현실의 해석, 사회가 정말로 욕망하는 것의 발화에 대한 이해, 다시 말해 혁명 이론 그 자체도 마르크스주의가 보기에는 실천과 단절되어 있는 게 정상입니다. 혁명 이론은 마르크스가지배 관념이라고 불렀던 것, 지배 계급의 관념에 조금씩 지속적으로 포위당합니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이렇듯 끊임없이 오류와 미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말에 순수하게, 혹은 순진하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에 부응하지 않습니다. 말은 모순을 통해서 필요로 하는 것에 부응하거든요. 그는 사회를 활성화하는 다른 것, 절대적 결핍을 향한 운동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구현된다고 보았습니다....운동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언어와 분절, 이론과 조직화에 자발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 욕망, 이 암묵적인 의미와 욕망에 대한 욕망, 명시적인 의미 사시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가 빠져 있는 무질서와 분리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자 존재해야만 합니다. 143-144

 

사유는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이미 사유된 것, 이미 수립된 분절화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기표와 기의를 분리하는 모든 것과의 투쟁, 욕망이 말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것과의 투쟁입니다. 144

 

(안에서부터 이미 사유된 것으로 곤두박질하고, 수립된 것으로 퇴락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진영운운하지만 사실 그러한 진영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 사이에, 인간과 타자들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그의 사유 사이에 스며드는 불투명성입니다. 정립된 마르크스주의, 혁명적이라고 자처하는 양심 안에서 루카치가 말했던 물화로서의 자본주의를 감지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145

 

세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철학이 노후한 장식품, 양갓집 규수의 소일거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철학은 그런 것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도 철학이 현실 속의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점, 혹은 그런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겪는 결핍이 명명되는 동시에 변화되는 순간 말입니다. 147

 

철학을 하는 이유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현존 속에 부재가 있기 때문에, 생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아직 권력이 아닌 우리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외되고 상실됨으로써 사태와 행위, 말해진 것과 말하기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하여 결핍의 현존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148

 

 

볕뉘. 강독과 메모지를 붙여놓고서도 옮기지를 못했다. 지난 가을의 음미를 다시 안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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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사는 생물. 가령 도마뱀이나 살모사들은 온몸을 숨기고 눈만 빼꼼이 드러내고 긴긴 시간을 버티면서 표적에 집중한다. 이렇게 사냥을 해서야 체내에 수분을 공급할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려면 수분이 많은 딱정벌레 등 그 먹이사슬을 가져야 한다. 그 딱정벌레같은 곤충은 드물기만한 식물에서 수분을 다 얻지 못한다.

그들에겐 간간히 부는 바람도 드물게 피는 안개도 생명줄이다. 바람에 몰려오는 부스러기같은 쇄설물들이 그 바람에 날려가는 사이. 안개가 피고 지는 사이. 그 사이를 놓칠 수 없다.

안개 속의 물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쇄설물의 양분을 내 몸으로 만든다.

바람, 안개, 먼지가 그들을 살게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로 모두가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없다.

 

 

볕뉘. 책짐을 나르고 일찍 잠에 들어 한밤에 깨었다. 이 사막의 생태계라는 프로그램이 잡혔다. 물론 극한으로 밀어붙여 사유를 끌어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맥락이 극적이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해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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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를 위한 몇가지 메모

 

 

 

 

1. 참터

 

 

 

총회를 마치고 뒤풀이, 카페에서 수제맥주 한잔으로는 역시 말이 고프다. 근처 저렴하고 손님이 북적이는 조개탕과 문어집으로 가서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5년을 미리 내다본다는 가모임과 1.5-2년을 내다보는 나..그렇게 십여년을 지켜온 모임. 막 시작하는 다모임은 궁금하다. 무엇인가 의제를 끌고가야 하는 것은 아니냐란 질문이다. 지역 현안을 만들고 끌고가고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이다. 의제 설정이 모호하고, 구체화하기 힘들다는 대답이 있었지만, 정말 되짚고 되물어 봐야하는 것일 것이다. 또 다른 질문하나 연대, 가치있는 같이 모임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질문이 엇나가더라도 같이 탐색하고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충분히 할 수 있고 시도해봐야 한다.(그러려면 그동안 이력을 추려서 현실에 대입해봐야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기준점으로 하고싶던 것이, 현실이 역량을 고려할 때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유추해봐야 한다.) 청소년자원활동(성적상한? 지역인재로 키우도록,) : 그렇지 하지만, 아직 성원들은 모임이기주의가 있어, 질투도 하고 시기도 한단 말이야. 시기와 질투 모임 자중심주의가 걷히려면 몇 걸음이 필요해.같이 밥도 먹고 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다가 '짠'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여야 해. 그러다가 서로 강렬하게 끄는 자장 같은 것이 확인되기도 해야지. 거기에 양념삼아 시행착오라는 시련도 있어야 할 것이고 말야. 멀뚱멀뚱 쳐다보다 1년 다 지나가는데 뭘 할 수 있겠어. 연대와 소통은 상대를 위해 간, 쓸개를 내주는 일이야. 그래서 서로가 따듯해지고 질투도 시기도 열정에 불쏘시개로 쓰여 사라질 때. 네모임 내모임의 간극은 없어지는 거야. 하늘과 바다의 그라디에이션...경계가 없어지며 아름다워지는거지. 서로.

 

 

 

2. 씨앗

 

 

 

담꽃이라는 찻집이 있다. 소개를 받고 찻집에 들어서니 약속했던 분 외 지인 몇분이 더 계셨다. 공예를 하고, 민화를 배우고, 도예를 한 경험이 있고, 손재주와 감식안이 넘친다. 미쳐 알지 못했던 재주를 다시 듣다. 그러다보니 지난 날로 돌아가고, 그래도 연명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을 밷어내신다. 차 한잔 하다보니 몇몇 바램과 아쉬움을 건넨다. 계절별 특강(충*대 인문특강 버전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특색있고 차별이 되는 강좌 - 인문소비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서두), 낮시간 활용(기존 소모임에는 그래도 문턱이 있다. - 그 정도는 넘어줘야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주부모임, 시민교육(애초의 목적도 그러하였으며, 시민정치교육이 일상화되면서 특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강조.), 청소년 교육(타겟과 대상, 어떤 학생이 올 것이냐. 중학생, 고등학생....; 뭔가 정해진 것이 없다. 학교에서 배제되는 아이들 아니면 하자센터처럼......하지만 지금 여기 현실에 맞는 노력을 파격의 맛을 주면서 만들어가는 것, 그 형상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지만....)  등등에 대해 가감없이 말해주었다.  야생화와 수양매화? 수양벚꽃이 한텸에 있었고, 돌담아래 막 심어둔 수선화가 일렬로 고개를 방긋내밀고 있다. 조팝꽃이 피면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된다고 한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3. 처가 

 

 제사다. 술자리다. 삼촌들의 정치쟁점을 너무 오래 지켜보았다. 두 아이의 아빠인 36의 삶의 외침이 그 사이로 뚫고 들어왔다. 새누리의 논리를 집요하게 만들어내는 막내삼촌과 한겨레논조의 야성에 절대 여당논리에 물러서지 않는 큰삼촌.....의 반복된 논쟁의 그늘. 그 속에 다양한 이견들이 자라지 않는 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술잔의 정이 나눠지더라도....성인이 너무 많다. 일방으로 통하는 발언은 자숙되는 것이 서로 심신과 앞으로 삶들에 좀더 다른 평화가 온다 싶다. 취하지 않고 돌아온 날이 었다. 작은 일에 분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에 분개하고 마음 높여야 되는 때이다. 그러지 않으며 발언권을 얻지 못한 시간들은 청춘 영혼들의 씨앗마저 숨죽일 수 있다 싶다. 너무 마음과 말을 삼가한 것 같다.

 

 

 

 

 

 

 

 

 

 

 

볕뉘. 다 하는 일들이 생색이 나지 않는 곳이다. 위신도 서고 뽀대도 나야하는데, 말을 하자마자 직접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아가질 않는다. 누리기보다는 책임져야하는 곳이기에 일의 향배와 스스로 다짐의 향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묘하게 층이 분리되고, 그 시공간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간극을 완충하거나 좁히거나, 유화시키지 않으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놀람이 스며들었다. 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놓칠 수도 있구나 하는 섬뜩함같다. 일말의 책임이 아니라 발랄한 책임의 쌍끄리가 필요하다 싶은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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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 2016-03-3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울마당님 글을 읽으러 가끔 들렀는데 오늘은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어떤 감정에서 나오는 우발적 행동인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그 이름에 걸려 넘어져서 이렇게 인사를 남깁니다.^^ 아이들 동글동글 뒷태가 정말 격하게 사랑스럽네요.ㅎ 여울마당님 봄꽃 사진을 보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야겠네요.ㅎ

2016-03-31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중 2016-03-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여울 마당님도 건강한 봄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6-04-04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