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몇가지 스며드는 질문.]

-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라면 어떻게 하겠다란 풍부한 가정이 스며들지 않는다면?
- 출혈 경쟁의 늪과 출판사-..갑-을-병-정의 수직적 관계의 해소 전망이 없다면 ?
- 이것을 하고자 하는진보의 운신의 폭은 어쩌면 자본량에 비례한다면?
- 진보와 자본의 공생이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기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 일까?
- 도서운동의 최대 소비처, 저자, 출판사. 공급망. 저자 쌍방이 서로 남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동네서점을 살리는 것과 인터넷 서점을 살리는 방법은 없는가? 인문서점이 급속히 소멸되었다면?
- 소극적 참여든 적극적 참여든 그 곁가지에 있는 관심은 더 큰 범위로 발화될 수는 없는 것일까? 윤리적 소비뿐만이 아니라 윤리적 생산(공급)에 대한 가정을 해볼 수 없는 것일까? 그 자본의 먹이사슬과 장점이 교집합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더할 수는 없는 것일까?
- 제3세계에 대한 생각은 터질 수 없는가? 그 아이들과 마을이라면 책운동이 불가능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이는 누구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할 수 있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2. [활동에 대한 몇가지 다른 생각들.]

지금 활동이나 [하고자한 것들]이 공유될 수는 없는가? 언제든 한가닥을 끄집어내어도 정말 다시 해볼 수는 없을까? 불매가 아니라 좀더 서로 덧셈이 조금이라도 되는 방법이 없을까? 인터넷서점의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규약 및 동네인문서점을 살리기 위한 네트워크 구성이라든가? 구매시 몇 %을 동네서점 살리기에 쓴다라든가? 서로 인터넷서점이 판매만이 아니라 책으로 연결하여 생각을 키우는 활동에 동참해마지 않는 방법으로 진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시간은 없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자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일까? 날이 선 비판을 좀더 세련되고 익숙한 방향이나 아이디어로 점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불매]가 아니라 [선택]되는 구매, 공공서재에 대한 인문학 서적의 점유율이란 목표로 관의 무능에 대해 발랄함을 날릴 수는 없는 것일까?



3. [ 몇가지 더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문제들]

소비사원에 들어선 우리는 선택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소비만으로 단락을 차단한다는 발상도 좋지만 그 자본의 맥락과 현상을 좀더 날카롭게 분석하여 그 흐름에 무너지고 부서지고, 결국 우리에게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시선을 모으고 돌리는 수고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서비스의 품질도 중요하겠지만, 과도한 관심으로 흘러가는 자본의 이기로 이미 만들어진 것, 만들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을 놓치는 한 별반 할 것이 없다. 끊임없이 꼬리만 탓하거나 그 꼬리만 보고 탓하게 된다. 저 몸통은 또 다른 곳으로 몸을 돌린지가 오래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4.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참에 독서운동-비정규직-사라져가는 것들-자본의 몰려다님-갑을의 관행-제도권의 무능에 대해서도 함께 깊숙히 들여다보는 혜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 분노와 아픔이 저 끝에까지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너무 시간이란 함수에 연연하여 하고자 한 것, 하려한 것들의 가능성에 대해 묻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5. [뜬금없는 진보-자본의 유대(진보의 살림살이)에 대해]

진보는 얼마나 자본주의적이어야 하는가?/소비자의 진화/얼마가 있으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원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돈들이지 않고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진보를 자칭하기까지 얼마나 살림살이에 명민해야하는가?/R라딘에 선택적 소비를 하는 것이 진보적인가? 소비를 한다는 자체가 진보적인 말일까?/몽상과 공상/자본가가 얼마나 진보적일 수 있을까? 귀농이나 사회활동을 하거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데 얼마만한 자본이 필요한가? 자본대비 기업, 자본에 대비하여 얼마나 효율이 큰가? 얼마나 살림살이를 드러내지 않는가? 얼마나 자본의 실핏줄을 타고 가면서 생각해야 하는가? 얼마나 돈의 향기 속에서 사고하지 못하는가? 진보의 막장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6. 나는 요구한다. 당신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돈에 너울치는 현실을 꿰뚫어보려는 계산이 있다면 당신의 진보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친자본을 요구한다. 나에게도 나의 시선에 대한 무능에도 칼을 들이민다.

7. 다른 시선, 다른 관점이 섞이거나, 정신이 만나 열매를 맺으려면, 더구나 칼날같은 날 것이란 자본주의의 시선이 칼바람처럼 부는 곳에서, 새로움이 움트려면 그 날 것이 속속들이 재워지고 채워지고 칼날이 무뎌지고 바래지고 익혀 겨우 발효가 될 쯤, 제대로 익은 맛을 나려면...그렇게 자본주의의 양분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다른 맛이 나려면 말이다.

8. 아~ 하는 사이. 어~ 하는 사이. 우리는 자본의 홍수로 너무 떠밀려내려왔다. 자본으로 호흡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정신도 자본으로 호흡하는 방법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50만원으로 100만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미리 계산해내지 않는 이상. 살림살이가 비교되지 않는 이상. 진보는 자본의 진창을 헤엄칠 수 없다. 자본으로 경중을 가려보지 않는 이상. 그 힘을 입체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상. 어쩌면 활동이란 것이 몇발자욱 딛기도 힘들 것 같다. 

뱀발. 소극적 불매에 참여한지는 꽤 되니 이것저것 불편하다. 기부라는 것도, 참여라는 것도 하고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나누는 것일 것 같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생각들은 내내 가시지 않아 혼자 품고 있을까 하다가 질문들을 던져본다. 이렇게까지 번지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아픔을 제대로 딛고 이익을 좀더 넓게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좀더 예민하고 깊이 타산하고 품어야겠단 반성이 많이 들고, 많이 배우게 된다. 앞장선 분들 마음의 짐으로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터넷이란 공간은 대화하기 힘들다. 그 무서운 복기와 물기... 대화는 구술이란 말, 문자를 독해하는 능력이 아니다. 만나지 않고선 그리 할 말이 없다. 설마 나도 물릴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남겨야겠다. 몇년 뒤 다른 일로 복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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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힘으로 휴대폰 배터리 충전술까지…
高等 에너지원 연구개발 붐
“광합성·유전자공학 등 첨단기술 총동원 다양한 아이디어 나와”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ciimccp@joongang.co.kr

02 인공광합성으로 태양열을 에너지로 전환

재생가능 자원 가운데 햇빛을 활용하는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인공 촉매를 이용하며 햇빛을 전기화학적 에너지로 전환해 인간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공광합성이다. 녹색 식물들이 자연적으로 하는 광합성을 화학물질을 통해 비슷하게 해내는 것이다.

사실 합성생물학도 생물을 활용해 태양에너지를 포집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캘리포니아주의 로런스 버클리 내셔널 연구소는 ‘인공 잎’을 연구하고 있다. 물 분자를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고 여기에 촉매를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전기화학적으로 반응시켜 메탄올 같은 유기합성 연료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인공광합성이다. 연구진은 이런 인공광합성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 물질을 찾아냈다. 산화코발트의 나노크리스털이다. 이미 작은 규모의 실험에선 효과가 입증됐다. 다만, 아직 대규모 상업적 생산이 가능한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가장 정통적인 방법은 햇빛을 곧바로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햇빛을 전기로 바꿔주는 전지가 대표적이다. 이 분야에선 기존 실리콘이나 반도체보다 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그리고 싸게 생산하게 해줄 물질의 개발이 필요하다. 햇빛을 이용해 끓인 물로 발전용 터빈을 돌리는 장치도 있다. 이 분야에선 효과적으로 빛을 모으는 집광기 개발이 필수적이다.

03 떨어지는 비를 이용한 발전도 연구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이용해 전기를 얻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피에조 전기 현상, 또는 압전 현상이라고 해서 어떤 물질이 움직이거나 진동할 때 전기를 생산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미나텍 연구센터는 빗방울이 떨어지면 전기가 쏠쏠하게 생산되는 장치를 개발했다.

플루오르화 폴리비닐리덴스 중합체라는 물질로 만든 박막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피에조 전기 현상이 일어나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 기술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덴마크에 피에조 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그 외 여러 가지 탈것에서 나오는 진동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도구를 거리에 설치해 가로등을 밝히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걷는 힘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휴대용 발전기도 개발 중이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우주 태양열 발전과 리튬 에어 전지, 조류를 이용한 연료 생산을 비롯한 차세대 에너지 기술을 소개했다. 우주 태양열 발전은 3만5000㎞ 상공에 거대 태양열 발전 전지판을 설치해 우주에서 24시간 발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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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몸과마음으로녹여내는법 

락서 여기~

[ㅁ ㅇ . ㅡ ㄹ]의 변주 :  머리가 마음으로 번져 몸으로 우려난다면, 마음이 머리로 몸으로 피어난다면, 마음에 피는 향기가 바람결에 울타리를 벗어나 저기로 머문다면, 나가 여기있는 것이 아니라 늘 저기에 있거나 숨어있는 것이라면, 몸이 마음으로 번져 머리로 녹여낸다면, 나가 늘 빈 너로 채워지는 것이라면, 잃어버린 나가 늘 여기저기 있는 것이라면, 머리에 든 것이 아니라 머리에 든 것이 흐르는 것이라면 마음이되고 몸이 될 것이고, 몸도 장미향처럼 향을 내는 것이라면 가슴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흔들리는 것이고, 나는 여기저기 들어올 곳 많은 울타리이고, 너는 저기여기 갈 곳 많은 빈 나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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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모여 검은 먹지를 태우듯 초점이 맺혀야 할 곳을 [ --->  ]에 두면 어떨까? 그(녀)가 한 것, 해온 것도 좋겠지만 [ -려는] 것이면 어떨까? [-고 싶은]에 두면 어떨까? 서로가 함께 나누면서 하는 일이라면 [했던 것], [해야할 것], [해오던 것]도 좋지만, 정작 마음이 모여 서로를 태우는 곳을 [--려는]/[--고 싶은]에 빨간 밑줄이나 벨을 두면 어떨까? 작업장이 위험요소가 있으면 빨간 부저를 울려 전라인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려는/-고싶은]에 예민해지거나 감수성을 높여, 그것에 정지화면을 두면 어떨까?  그래서  그 [날 것]을 숙성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시선, 잘난 시선, 많이 아는 시선이 아니라 [다른 시선]은 켜와 개입의 여지를 두는 것이다. 제대로 익고 숙성시키려면 제맛이 나도록 두엄간이든 아주 작은 햇살 한줌이든, 내팽겨치되 마음은 등한히 하지 않는 그런 것은 어떨까? 

[했던/해야할/해오던 것들]은 모임을 익숙하게 만들어버리지만 [-려는/-고싶은]은 조금은 설레게 만들지 않을까? 

[모임의 온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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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_9 내맘대로 독서 편린 결산 (1) (ing)

-그런데--


14-1. 다시 니클라스 루만으로 가본다. 노신의 쇠로 된 방이 나름대로 코드로 둘러싸여 프로그래밍된 궤도를 돌고있는, 종언에 휘말려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문학,예술, 자본, 법, 교육, 과학이라고 해보자.  스스로 나르시즘의 퇴행에 갇혀 끊임없이 복제품만 낳는 강철로 된 방이라고 하자.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자본의 충실한 시녀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 단단하기만한 쇠방은 서서히 삶을 조여오고, 더 이상 숨쉴,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함을 칠 수 있는가? 고진은 맑스를 다시 읽는다. 그 자본의 고리를 끊으려면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고, 소비의 고리를 물고 있는 자본의 머리 턱의 이빨은 그렇게 끊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문학은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14-2. 지젝은 헤겔과 레닌을 불러들인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다시 총체성을 이야기한다. 무페와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으로의 귀환을 명한다. 정치의 영역 그 가장자리를 다시 자리매김할 것을 권면한다. 


14-2-1.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순환고리에서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는 말한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헤겔과 칸트가 다시 필요하다고, 누구는 말한다. 프로이트는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과학은 거기에서 토대를 쌓았으므로 무효하고. 누구는 말한다. 겨우존재하는자는 말할 수 없다고, 그 전유로 인해, 여전히 겨우존재하는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반없다고. 그리고 삼중고-사중고로 응축되는 지점을 응시해야된다고. 누구는 말한다 나는 안다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정식에서 출발한 어떤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생산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14-3. 다시 맥루언으로 들어가본다. 고대인,중세인,근대인의 차이점으로 몸에 배인 현대인들이 전지구적인 앎의 토대를 허물었으므로 중세인의 열정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머리가 통일되었으므로 가슴과 손, 발, 마음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이는 소비로, 어떤이는 생산으로, 어떤이는 ...일리는 있으면서도 없다. 

14-4.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문명교류사라든가 접목된 사실들을 보는 다른 관점은 지금을 되돌아보는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사로 환원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경제인류학자인 폴라니의 관점은 맑스의 경제사를 보는 관점과 다르다. 다른 시선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유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교차하기도 하지만, 보지 못했던 다른 공백을 볼 수 있기때문이다. 북친의 관점에서 보는 것,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의 기후-기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시야를 확보하게 합니다. 시대의 한계로 본질적으로 갖는 제한된 시야를 열어주는 또 다른 사실들을 접목시키는 것이 현실의 바다를 조금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런지요.

너에게 가는 길

14-5. 김우창은 시적 삶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강팍한 현실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이데올로기의 삶이 아니라 예술이 이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상의 예술화. 시적언어도 시적동선도 부족한 건조증에 걸린 일상들은 정작 사회운동의 장에 열려야 하나, 현실은 더욱 더 메마르다. 여유가 집나간 무한궤도 상의 나날이다. 더 열심히 돌면 돌수록 소진된다.

14-6. 하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현실이라는 것이 조각조각 모여 총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핵폭탄에 의해 깡그리 소멸되며 다시 장을 여는 국면이 오히려 우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헤겔이 말하고 있는 그 전제에 대한 일갈은 맑스의 머리를 거꾸로 쳐박고 있다는 표현과 맥이 닿은 것일까?  

14-7

 

사회

14-13. 부르디외는 상징자본, 문화자본을 이야기한다. 계급이 다른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화의 이전이 존재한다. 환원의 사유는 차제하더라도 열외의 세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스피박 호비바바는 이야기한다. 열외자가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암묵지보다 더 견고해서 지금 사회의 틀로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열외자는 생성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상식으론, 지금의 주류문화로 건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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