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기간 짬짬이 책한권을 중심에 두고 왔다갔다 돌아다닌다. 중심에 둔 책은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이란 조효제님의 번역서이다. 그 행간에서 조교수님이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진보연하는 분들을 의식하면서 어쩌면 의무감이자 사명감에서 10년 번역에 매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정리본이자 마지막 번역서임을 밝히고 있다. 두께와 무게, 심적인 부담감도 그에 비례하지만 가지고 있던 생각줄기들이 촘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자리잡은 생각틀이 안심부위인지 등심인지 안창살인지도 모르고 그저 쇠고기인 줄만 알았고 그저좌파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스무살때부터 결빙된 겉멋배인 이념을 주장하기만 하지는 않는가?그리고 그저 B급이든 C급이든 모호한 이름표를 붙이지는 않았던 것일까? 존재론,인간론,사회론,인식론을 바탕으로 이념간의 색깔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다.

당신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져 당신을 끌고가는 생각줄기를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왜 저편의 생각이나 삶을 섞어야 되는지 바탕을 마련해줄 수 있다. 삶에서 이념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들을 삶에서 어떻게 섞으며, 어떻게 서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거시기를 이야기할 수 있다.

무지개색깔이 여덟가지가 아니라 일곱, 아홉, 열둘...아니 나눌 수 없는 예민한 색들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양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다면 말이다. 좀더 극단적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어쩌면 보수의 삶이나 이념의 또다른 극단을 자양분으로 몸이 자라거나 썩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프게 성찰해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는 책은 아닐까?

그렇게 마음줄기를 가다듬고, [넛지]든 [젊은베르테르의 슬픔], [자본주의]를 변두리에 두고 연휴기간 생각들을 모은다. 

 

 

 

 

뱀발. 보통씨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야 지금의 시선이지만, 25살의 괴테는 경직된 딱딱함을 이렇게 파격적인 소설로 외려 녹였다. [12가지 이념]을 찬찬히 들려다볼 사회가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 독서도 생각도 숙성될 수 있다면 역자의 바램이 조금이라도 충족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딱딱한 경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난 외려 부드러움으로 녹아나올 수 있다고 여긴다. 이론의 힘도 보태지고 말이다. 자칭, 타칭 진보를 자처하시는 분들이라면 읽고 서로 나누면 좋을  것 같다. 설이 지난 뒤 너무 묵직하게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가 되지만 서두. 말이 되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역자를 방패막이 삼아 다시 한번 권면해본다. 진정 올해의 책이 될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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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진저리를 치며
너를 거부했지만 
 
아무래도
난 너희들에게
갇혀 살았다

몸의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너는 자꾸 손짓한다. 몸짓한다.

그래야만
내가 산다고
남들이 사시나무떨듯
그렇게 버려질 때
머금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산다.

네가죽어야
그래야만 내가산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가 죽는 것도 죽을것도
다 너희들때문이다

박박 북북 꿈의 가장자리에서
네가 지워질 무렵
너의 몸도 나의 몸도
너희를 잊고 다시 산다. 다시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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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은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이 아니다. 눈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조금씩 단단해지고 커진다. 마음도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단단해지고 자란다.

한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시공간에서 늦다. 현실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뒤에서야 밀려가는 물결에 아쉬움을 싣기만 한다. 머리주의자가 몸을 끌어모으려는 발상자체가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번역하고 해석하고 아전인수의 피나는 노력만이 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머리를 유보한 채로 끊임없이 몸의 겹침이 있고난 뒤에야 아 이것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뒤늦은 깨우침이 따른다.

몸을 섞어 느끼지 못하는 불감처럼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현실에 뒤처진다. 몸을 섞은 만큼만 방향전환하는 것이 현실이다. 몸으로 자란 이들이 머리를 만나기를 저어하는 것이 이처럼 뼛속 깊은 습속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이렇게 몸과 몸을 굴려야 마음이 붙고 붙은 마음들로 현실은 다르게 자랄 수 있다. 

뱀발.  나의 머리는 시공간을 달리한다. 아니 어쩌면 늘 습속을 저버리지 못하고 못난 나를 고정점으로 보는데 익숙한지 모르겠다. 아주 조금씩 다를 뿐 어쩌면 축은 움직이지 못하거나 한축의 꼭지점을 두고 빙빙도는지 모르겠다. 일터, 가족, 강도를 달리하는 너, 모임하나둘셋, 마음이 붙어있어 나란 서사(너-나-)의 반경은 넓어지지 못하고 그들의 몸에 안착하지 못하면서, 자꾸 머리안만 들여다보려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나란 머리주의자의 고백은 지난 모임에서 발화로 상기된다. 생각이 맴돌고 조금은 달라지고 변하지만 생각처럼 모임이 변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한다. 생각이 맴돌다나니 마음도 몸의 뭉침도 빈곤한 우리의 동선이 느껴진다. 5년이 왜이리 짧은 것인지가 오년이 왜이리 긴 것인지로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주의자가 컴잉아웃만 하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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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표현력의 차이 = 문자<말<몸,음 : 어제 허각이 되고 장재은이 떨어지다. 출근길 책을 빌리니 시디를 준다. 시디 가운데 한곡 조르바 댄스가 이 가을날 걸리다. 왠일인지 춤이 추고 싶어진다. 따단, 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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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본 달님에게로 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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