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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오른손 - 성립의 드로잉 에세이
성립 지음 / 쿵 / 2017년 9월
평점 :

"늘 언제나, 누구나, 하고싶은일, 잘하는 일, 그 생업의 일체를 꿈꾼다. 모든 사람의 꿈일 거다."
책 표제에서 작가가 써 놓은 이 책의 시작이다.
겉표지를 분리하고 나면 단정한 드로잉노트 같기도 한 에세이 집이 드러난다.
찰나의 선들로 성립되는 그림들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이름이 본명이 아닌 필명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자 하는 일들을 계획하고 성취해가는 그런 과정을 성립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는 데서 오는 필명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사적인 생각.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작가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소개하는 그림 그리는 법도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만 내게 더 멀고 낯설게 다가오는 건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낭만적인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누군가는 사진을, 누군가는 그림을, 또 누군가는 글을 남긴다.
자기 그림의 완성 기준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만큼만 그리면
된다. 학창시절에 편지지 대신 커다란 백지에 여러가지 그림을 그리고 빼곡히 편지를 써서 보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그 친구의 그림솜씨에 감동하고 놀라기는 했지만 정작 그 마음까지 헤아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을 어려워 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정답을 미리 정해 두고 있어서라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이 책에서도 많은 이들이 풍경을 그리기 어려워 하는 이유를 그곳의 모든것을 그리려 하니 그럴거라고
이야기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그리면 되는데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은연중에 우리 모두는 완벽함이 완성의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단정한다.

피카소는 어린이들을 모두 천재라고 했다. 우리가 자랄수록 배울수록 그 천재성을 잃는다고 했다.
그림과 대상이 닮지 않았다고 못 그린 그림이 결코 아니라고,
머리속에 그림에 대한 정답을 만드는 순간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서툰 그림은 어른의
손이 닿아 아무리 노련한 그림이라도 따라가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흉내 낼 수도 , 흉내 내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순수한 아이들의 그림이 참 좋다.
그 어떤 유명한 화가의 명화보다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감동을 남긴다.

단순한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작가의 예술가로서의 성찰들을 들어보고, 또 다른 여러사람들의 드로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림은 글과 다르게 은유적 시선을 전해준다.
그래서 정답이 없다. 스케치부터 꼼꼼한 채색으로 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찰나의 선으로 이루어지는 드로잉
이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조금 가볍고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많을 때는 하나의 선을 그을수 있는 정도의 잠깐이라도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책과 커피 만큼이나 어려가지 단상과 핸드드로잉은 마치 한편의 명상과 같은 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