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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
로베르토 비조키 지음, 임동현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치치스베오 cicisbeo
18세기 발달했던 관습에 따라 남편이 부재중 일때 귀부인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모든 활동을 챙기도 돕는
시종기사를 말한다. 오랜세월을 거치고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치치스베오에 대한 사전적의미가 좀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지만 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간단하게 한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치치스베오가 명쾌하게 설명된 한 문장으로 와 닿았던건
"관습에 따른 차가운 우정"이라는 문장이었다. 공식적으로 공인된 관계이지만 더 이상 발전은 할수없는
이성간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은 이 책을 솔깃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이기도 하다.

치치스베오가 등장한 사회적인 배경을 먼저 생각해 보면 귀부인이 여성으로서 사교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에서 여성조력자보다 어느정도 남편을 대신해 줄 만한 보조자가 필요했던것
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것이고 실제적으로 치치스베오는 공식적인 여성의 일상사의 호위를 책임지며
여성해방, 그리고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의 근접경호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꽤 복잡한 여러가지 사회적인 현상과 시대적인 영향으로 치치스베오는 단편적인 귀부인의 서포터로서
가 아니라 꽤 밀접하고 중요한 일들에 대한 결정권을 갖기도 했다. 고용인이라는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약의 연장조건도 치치스베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파워를 갖기도 했고, 치치스베오는 여러
명이 한사람의 귀부인을 호위하기도 했다는 사실, 또 한 집안의 장손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장남을
제외한 형제들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가문의 재산이 쪼개지는 것을 막기위한 장자상속의 전통은 이 부분에서도 연관이 있다.
계몽주의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치치스베오는 하나의 사회현상의 변화과정에서 등장하며 여러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다보니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으로 치치스베오에 대한 이해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점점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고용인이라는 개념보다 오히려 치치스베오는 귀부인의 사생활
을 하나의 또다른 테두리안에 넣게하는 공인된 규제가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시종기사라는 직책의 치치스베오는 귀족청년으로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며 귀족의 삶을 배워나가는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들의 삶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또 다음 세대의 귀족들의 삶의 연장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관습의 모방처럼 쳇바퀴돌듯 그들의 삶이 알게 모르게 이어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방적인듯 보수적이고, 폐쇄적인듯 파격적인 시대적인 현상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지만 명확한건
그 시대의 여성의 삶은 역시 독립적이지 않았던건 사실인것 같다.
한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런 그림속 장면들이 주는 느낌이 전과는 참 다르게 와 닿는다.
귀족문화사라는 장르의 미술전시도 꽤 여러번 봤고, 종종 하나의 장면으로 익숙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
과 후의 관점으로 책속 내용들과 연결짓는 장면들을 찾아보게 될 것같다.
단편적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치치스베오라는 직업과 연관되어 유럽의 귀부인과의 에피소드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라고 착각했던 시작과는 달리 이 책의 책장이 넘어가는 만큼 더 묵직하게 그간의 여러장르
의 유럽문화사에서 무심코 넘어갔던 부분에 대한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했다.
유럽문화사, 더 나아가 유럽의 역사, 그리고 그중에서도 미시문화사라는 용어자체가 낯설면서도 참 와
닿는다. 이 책을 통해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시대의 현상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참 오랜세월 전부터 여성의 문화사라는 장르는 꾸준히 변화와 개혁을
거쳐왔지만 알려지지 않고 묻힌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폭넓은 변화의 개혁을 이루지 못한것들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고, 큰 일이지만 무심히 넘어가
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문화의 변천사는 인간의 삶의 담고있다. 그래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지난 역사, 그 중에서도 여성의 문화사라는 장르에 대한 접근이 참 반갑다.
여성. 남성의 구분을 떠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돌아보는것은 미래를 향한 또 다른 변화의 초석이
될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