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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들은  죽어서도   영원히

                                살수 있다는 영혼 불멸설(도교적 신선사상)을 믿었습

                   니다. 따라서 고분은 죽은자의 쉼터 혹은 새로운 삶터였고 그 속에 그려지는

         벽화에는 죽은자의 땅과 하늘 그 안에서 새 삶을 누리는 모습을 담으려고 했을 것 입니다.

또한 죽은자의 무덤을  잘 꾸미는 것은 산자의 몫이였고 죽은자의 장식품이 산자의 자랑거리기

도 했습니다. 현재 발굴되는 고구려 무덤들은 그 시대를 대표했던 왕의 무덤이었거나 왕실관 관

련된  사람들의 무덤이었을 것이라고  판단되어 집니다. 따라서 이들의 무덤을 일반인의 무덤과

는 달리 특별하게 꾸미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고 덕분에 우리는 고구려시기의 지배계층의

생활풍속과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는 행운이 있는 것입니다. 

  그시대 사람들이 무덤에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먼 후대 사람인 현재의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의도는   결코 아니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무덤의   피장자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시대   화사들이 그려놓은 장식문양들을

보고 그 상징성과 아름다움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고구려 사람들이 죽은자의 안식처에그림을 그렸던 긍극적인 목적은 죽은자를 위한 최대

한의 의전 행위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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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6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따금씩 방송을 통해 보게 되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을 보면 참 감동적입니다.
죽은자를 위한 최대한의 의전 행위로 죽은자의 안식처에 그림을 그렸다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고분이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무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분벽화란 이러한 고분의 벽이나 천정에 그려지는 그림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고분이 현존하고 있습니다.고분벽화는 고구려시기  국내성을 포함하여 평양성 등의 고분에 분포되어 있으며  백제는 무녕왕능이나 능산리 고분군 등이 있고 신라는 어숙묘라고 하는 무덤에  벽화가 조금 그려져 있으나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학자들이  관심있게 연구하는 분야는 고구려 고분벽화입니다.

 이는 그 시기가  357년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중 절대년도를 알수 있는 무덤 중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것으로 그림의 내용역시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그시대의 생활상, 종교상 등 여러가지 내용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연구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분벽화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 부터 해 왔으나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잭트에 고구려 역사편입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학계에서는 고분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가 고분벽화를 연구하면서 느낀점. 학술적인 내용 등을 주로 써 가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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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아저씨 2004-03-1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수련님의 서재에 관심이 가는군요,.
좋은 글 읽고 의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수련 2004-03-17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이란 오래되어 사용할수 없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이슈로 작용하며 우리곁에 자리하고 있는것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서로 향유할 수 있는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고 짧게 쓰려고 하니 더욱 어렵네요
너무 길고 어려우면 읽는 사람이 짜증날까봐~~~~~~
 

명사적 의미의 단청이란 붉은 색과 푸른색의 조화를 뜻하는 말로  최상의 축하라는 의미로도 쓰입

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단청은 목조건축물에 문양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것에 국한하여 쓰입니다. 우리나라의 단청의 역사는 그 유구로 보아 고구려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현존하는 건축물 유물은 없지만 고분벽화의 그림에 목조건축물 부재에 단청이 되어 있고 최근에

는 고분속 실재 목재부재에 단청이 되어 있는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목조건축물에 본격적으로 일정한 체계를 지닌 단청

을 했던 것으로 판단되어 집니다.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단청의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은 남한의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

석사 무량전 북한의 성불사 응진전, 박천심원사 보광전, 연탄 심원사 보광전 등 고려시대 건축

물에 그려단청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청도 딱히 고려시대의 단청으로 속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청안료의 수명한계로 인하여 박락되고 퇴색되어 후에 보수단청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단청의 문양을 알아볼 수 있는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로 보면 될것 같습니다.

단청의 색은 오방정색과 오방간색을 이용하고 있으며 윗쪽은 녹색위주 아랫쪽은 붉은색 위주로

상록하단의 원칙을 지켜 채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색채에 자연의 채광을 과학적으로 적용한 예에

해당되는데, 어두운 곳에서는 푸른색이 채도가 높아보이며 밝은 곳에서는 붉은 색이 채도가 높아

보이는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붕이 햇볕을 가리고 있는 창방이상은 주로 청색위주의

채색을햇볕을 강하게 받는 기둥쪽은 붉은색 위주의 채색을 하게 된답니다.

단청의 문양은 종교적인것, 주술적인것, 교화적인 것 등 수 없이 많으며 이들은 강한 상징성을 내

포하고 있어서 우리는 문양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정서의식을 알 수 있고 신앙의 추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단청에 쓰이는 안료로는 처음에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연안료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대

부분 공업용 안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청에서는 시아닌 그린 등을 이용. 재조하여 사

용하는 안료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는 3500여개의 사찰과 유교건축물, 관아 건축물 등에 단청을 하고 있는데 일년에 드는

예산 만도 백억은 족히 넘습니다.

이는 일반건축물과 문화재 건축물을 합한 숫자이며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우리가  오래된 사찰에 가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것이 단청일 것 입니다.

목조건축물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단청은 우리민족의 정서를 듬뿍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예술의

일부인 전통미술로서 단청문양은 세계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은 수준높은 디자인의 보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단청에 대하여 써보았는데....자세하고 깊이있는 내용은 차츰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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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아저씨 2004-03-1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단청의 안료를 전부 수입에 의존해 쓰고 있다니..안타깝습니다. 시대적 추세라면야 할 말 없겠지만 보존성이나 질감 표현이나 그밖에 문제점이 더러 있을텐데 어쩔 수 없는 모양이지요?
오방정색과 오방간색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채광을 적용한 상록하단의 원칙은 처음 알았네요.
꾸벅!
바쁘시더라도 한 수 배우겠습니다.

수련 2004-03-1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료개발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고려시대 불화를 그렸던 당채나 진채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대는 조선시대보다 앞선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물감의 질은 무척 좋았습니다.
물론 당나라에서 수입한 물감에 의존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우리화사들이 만들어 썼을 물감들도 적잖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의 우리는 그시대를 따라갈수 없을까? 아니면 노력을 하지 않는것일까요? 저부터 반성해 봅니다.

조선인 2004-04-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언 베리 선생님도 안료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말씀하시더군요. 공업용 안료는 나무에 슴벅이는 때깔이 다르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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