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시빛 서재 (모시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30 Jun 2026 14:54:1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모시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모시빛</description></image><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눈과 돌멩이] - [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link><pubDate>Tue, 30 Jun 2026 1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off/k622135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a><br/>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br>눈과 돌멩이-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nbsp;&nbsp;위수정,김혜진,성혜령,이민진,정이현,함윤이, 다산책방, 2026-01-23.  &nbsp;  &nbsp;  &nbsp;&nbsp;대상작으로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 이민진 작가의 「겨울의 윤리」라고 한다. 대체로 수상작 모두 재밌게 읽었으나 나 또한 이 두 작품이 소설의 분위기나 문체 등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겨울 이미지다.&nbsp; 일본의 눈 덮인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눈과 돌멩이」를 읽으며 『설국』이 생각났다. 특히, 일본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자동적으로 설국이 생각나는데, 생각보다 『설국』의 세뇌가 강하구나 새삼 느꼈다.&nbsp; 눈을 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라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며 쌓이는 ‘눈’을 보고픈 강렬한 욕구가 남아 있는지 소설을 보면서 눈내리는 산골짜기 어디쯤으로 가고 싶었다. 어쩜, 이런 기분에 나도 친구들에게 눈풍경 좋은 곳으로 여행가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여행장소를 정하고 여행 갈 날을 기다릴지도. 그러나 그 이후……. ‘수진’처럼 죽은 후 나의 유골을 여행하고자 한 그곳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암 투병 중 자살한 친구의 유골을 다른 나라에 가서 뿌리고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죽은 후 나의 친구들은 나의 유언대로 유골을 다른 나라에 뿌려 줄까, 난 어떤 친구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nbsp;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리울 수 있나?그리워? 그립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nbsp;  &nbsp; 수진의 친구 ‘유미’와 ‘재한’은 유골을 들고 일본으로 향한다. 암투병 중 자살한 수진은 자신의 유골을 일본 나고야 도가쿠시 신사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폭설까지 내리는 낯선 곳은 그들에게 매순간 불안과 위험을 준다. 그들의 기억 속 수진은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기도 하고, 이해못할 유언과 낯선 곳에서 폭설로 인해 고립될 상황에서 수진을 떠올리며 믿기지 않는 현실과 함께 다양한 감정에 빠져든다. 가까웠던 누군가가 떠나면 누구라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 무력함과 슬픔을. 이어서 뒤따르는, 대상이 모호한 분노도”   &nbsp;  소리와 풍경의 불일치가 오히려 재한의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것은 낙관이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먼 곳의 풍경은 천천히 멀어졌고,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타인의 기억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재한은 창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이쳤다. 뻐근한 눈알을 깜빡였다. 슬픔이 날아가도록. 저 흰 풍경 속으로 모두 다 사라지도록. 유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송이는 얼굴에 닿는 순간이 끝이었다. 바늘처럼 날카롭게 톡, 치고 소멸하는 차가운 감각.   &nbsp;  눈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국 미치게 만든다. 자비를 모른다.  &nbsp;  &nbsp; 설경은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수많은 감정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고립되기 전 마주쳤던 ‘여장 남자’인 근처에 사는 일본인 ‘코요’. 코요에 대한 편견을 가득 안고 있지만 고립 상황에서 현지인의 도움은 매우 절실하다. 이런 상태에서 ‘코요’를 만난다는 건, 소설에서 ‘코요’가 이들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알게 한다. 재한은 ‘코요’에게 편견을 가지고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남성인 ‘재한’의 이러한 반응은 편견없는 ‘유미’와 대조되는데, 여행 내내 현실을 대하는 태도나 수진에 대한 기억과 감정 표출방식에서 두 사람은 차이가 나타난다.&nbsp; ‘코요’의 존재가 이들과 연결되는 지점, 그 역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는 점이다. 코요는 자신의 집 정원 한곳에서 그의 연인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코요’의 애도의 형태는 재한과 유미보다 더 적절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적절함’이란 내내 재한과 유미가 그들의 우정이 ‘지극히 느슨하고 끊임없이 수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계속 그들의 불안하고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수진의 유골을 뿌리기 위한 이 여행에서 표출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애초에 정말 이런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나 싶기도 하다. &nbsp; 그러나, ‘코요’의 연인은 죽은 것이 아니라 떠나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또다시 이미 ‘코요’의 그의 연인을 위한 애도 방식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주춤해진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그래, 사람에 대한 마음이란 그들에 대한 기억하는 방식도 잊기 위한 방식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온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식은 정해지지 않은 것일 텐데도, 과도하게 뭔가 그래야 하는 것이 있기라도 하는 양 그것에 매몰되었나 싶다.&nbsp; 수진과 재한, 유미. 그들이 처음 일본 여행을 계획한 것은 일본의 설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히쓰마부시란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장어요리로 나고야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라는데 재한은 코요와 대화를 나누며 ‘히쓰마부시’를 ‘히쓰으 마부시이’라고 잘못 발음하였음을 알게 된다. 재한은 장어덮밥을 이야기한 것인데 잘못된 발음으로 인해 재한은 ‘비통’, ‘눈부시다’라는 단어를 읊조린 것이다.&nbsp; 이제 고립도 끝나고 무기력하고 미치게 만드는, 자비를 모르는 눈도 그쳤다. 밤이 지나 ‘흩날리던 희뿌연 풍경 속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나무 사이로 내리던 눈송이들 속에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둔’ 그들은 무엇을 할까. ‘수진’을 ‘수진’에 대한 기억을 떨구어 내고팠던 그들의 아침은 어떤 모습이 되려나.<br>  숲에서 나오며 재한은 주머니 안의 돌멩이를 만져보았다. 코요의 눈빛과 그의 정원이 떠올랐다. 여기다 버리고 갈까, 잠깐 고민하다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돌멩이는 국외 반입 금지일 텐데. 재한은 앞서 걷는 유미를 불렀다. 유미가 뒤돌아 재한을 보았다. 하얀 풍경 때문인지 유미의 얼굴도 환했다. 돌멩이는 유미에게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히쓰으 마부시이 먹으러 가자. 재한은 일부러 끝을 길게 늘여 말했다. 재한은 주머니 속 돌멩이를 꼭 쥐었다. 그것은 단단했고 언제든 만질 수 있었다.   &nbsp;  &nbsp; 계속 이미지와 감각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말이 생각나는, 눈송이보다 돌멩이를 움켜쥐고픈 마음이 들었던 소설이다.  &nbsp;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150/k622135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1655</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주인 노예 남편 아내] -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link><pubDate>Wed, 24 Jun 2026 1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off/k0520320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a><br/>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br/></td></tr></table><br/>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br>주인 노예 남편 아내,&nbsp;우일연, 강동혁, 드롬, 2025-12-24.  &nbsp;  <br>  &nbsp;&nbsp;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의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보긴 하지만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이 이유도 크다. 보면서 계속 앞장과 마지막장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 말, “이거 소설이었나?” 이 책은 퓰리처상 보도 부문 수상작이다.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고 실제 이야기다. 책을 읽을수록 그 사실을 잊고 다시금 이 글이 주는 이야기에 놀란다.&nbsp;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것을 어느새 잊고 두 부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왜 그동안 이 두 부부에 대해서 몰랐을까. 난 엘렌 크레프트도 윌리엄 크래프트도 처음 알았다. 이들이 미국 남부를 탈출한 ‘노예’라는 것을. 더구나 여자인 엘렌이 백인 주인으로 남편인 윌리엄이 흑인 노예로 변장하여 탈출했다는 것을. 책 제목은 그것이었다. &nbsp; 막연하게 노예는 ‘흑인’일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가 엘렌이 백인이라고 하는 것에 놀란다. 엘렌은 혼혈로 피부색이 밝았기에 병약한 백인으로 분장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여정은 길고 위험하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노예들이 그들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경로가 아닌, 기차와 증기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담대한 방법으로 노예 부부가 탈출하는 그 긴 여정의 이야기다. &nbsp; 두 부부는 1848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에 살고 있던 노예였다. 이 책에선 ‘노예’를 ‘예속 피해인’, 노예를 부리는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 명명한다.  &nbsp;  이 시기에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nbsp;  &nbsp; 우리나라 또한 노비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다. 어떻게 이다지도 역사는 다를 게 없을까. 엘렌이 노예가 된 이유는 어머니가 노예이기 때문인데, 엘렌의 어머니 또한 혼혈이었다. 자기 자식을 노예로 만드는 아버지라니. ‘흑인’의 피에 그토록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흑 성적 대상으로는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순이라니.   &nbsp;  브레머는 엘렌에게 왜 예속 가해자들에게서 도망쳤느냐고 물었다. 브레머는 그들이 엘렌을 학대했는지 궁금해했다.엘렌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잘해줬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지는 않았죠.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nbsp;  &nbsp;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엘렌의 저 말이 엘렌이 기나긴 여정을 버티는 힘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엘렌은 ‘예속 가해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또한 자신의 이복 자매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백인’ 중심, ‘백인’ 우월인 시대, 엘렌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위장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순수한 혈통 중심의 사회, 왜 인종 간 차별이 계급이 생기게 된 것인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지금 시대에도 결국 여전한 차별과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 참담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이 떠나온 세계는 “흑인이 말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세계, 아무리 자유 흑인이라도 총을 들었다가는 등에 39대의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세계, 백인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사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인 세계”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음과 같은 세상이었다.  &nbsp;  별만 떠 있는 새벽이 오기 전인 이 시간에는 많은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나온 풍경에는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이곳에는 커튼과 붉은 깃발이 달린 노예 우리나 경매장이 없었다. 담장이 높고 가시 박힌 슈거 하우스도 없었다. 소금물 웅덩이나 후추 병, 소금자루가 갖추어진 채찍이나 쳇바퀴도 없었다. 부부나 부모나 아이가 판매되는 법원도 없었다.  &nbsp;  &nbsp; 두 부부가 ‘예속 피해자’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탈출의 긴 여정 속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도움을 준 이들 덕분이다―물론, 엘렌은 이들의 이 여정에 ‘신앙’의 힘이 있었음도 얘기한다.―그중에는 그들과 같은 ‘예속 피해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이들 부부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의 힘은 ‘예속 피해자’가 증가할수록 더욱 더 강해지고 견고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단지 현재 삶의 평안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단순함을 떠나 보편적인 문제 인식으로 확산되기까지, 또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다.&nbsp; 이 부부의 여정은 실화이기에 이들이 노예제도가 성행하는 남부를 탈출하여 자유의 땅으로 도착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시점에서도 이들의 탈출 여정이 놀라운데 당시에는 어떠했을까. 이들에 대한 비판과 찬탄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들로 인해 노예문제에 대한 논쟁 또한 가속화되었을 것이고 이들을 영웅화한다거나 무엇에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고 깎아 내리려는 이들도 있다.   &nbsp;  엘렌은 대단히 유능했고 큰 인기를 얻었으며 태도도 자신감 있게 변했다. 엠마 미첼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허영심을 갖거나 자기 분수를 잊을지도 모른다고 약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엘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을 여자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제가, 단지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우쭐해질 거라고 생각을 대체 어떻게 하실 수 있나요?”  &nbsp;  임신 마지막 3개월 동안, 엘렌은 남부에서 더 많은 나쁜 소식을 들었다. 신문에서는 엘렌이 자유롭게 살면서 너무 불행해진 나머지 남편을 버리고 미국 신사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며 예속 가해자들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애걸한다는 기사가 실렸다.마치 남부의 권위자들이 엘렌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녀의 몸을 되찾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력에 괴로워한 나머지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차지하려는 것만 같았다. 엘렌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이 없으며, 그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말이다. 그들은 엘렌을 아내가 될 능력도 없는 사람, 남편을 버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들은 가짜 뉴스를 통해 엘렌의 의지를, 욕망을 도용하려 했다.   &nbsp;  &nbsp; 이 책 전반에서 이들이 무사히 자유의 땅으로 탈출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면-우습게도 이 책이 그들이 무사히 탈출한 기록임을 알면서도-, 후반부에는 이들 부부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엘렌’에 대해 아니 ‘여자 노예’에 대해 가지는 사회의 압력은 편견은 ‘인간에 대한 억압 철폐’를 주장하며 ‘평등’을 외치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모순되게 이어지는지…….   &nbsp;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크래프트 부부가 받은 반응을 보면, 이들이 앞서 한 여행이 성공한 이유는 엘렌이 백인 행세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이 많고 장애가 있는 백인 남자 행세를 했기 때문임을 잘 알 수 있다. 크래프트 부부가 그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서로 친밀한 관계나 남편과 아내라는 점,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성적인 친족 관계’라는 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드러난 지금, 크래프트 부부는 조지아주를 떠나 이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편견에 마주하게 되었다. 남부를 벗어나고 미국을 벗어났는데도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인과 노예, 그건 아니라도 주인과 하인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졌는데도 말이다.  &nbsp;  &nbsp; 작가는 “엘렌의 성공은 그녀가 속한 세상의 위선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라고 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역사가 이미 알려주었지만 이 책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구조는 더더더 세월이 지나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아니, 어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해서 ‘꺼리’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고 부르면 되려나.&nbsp; 이처럼 여전히 ‘차별 꺼리’를 양상해내는 국가들 혹은 사람들이 있지만, 두 부부가 지나온 풍경이 변화였듯이 역사는 어쨌든 변화해왔다. “노예와 노예주라는 두 범주의 사람이 ’원래‘ 존재하지 않으며, 납치와 인신매매가 등 예속화(enslaving)”하는 것이 문제다.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냐와 더불어 속도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문제가 되는 제도를 ‘인식’하였음에도 그것을 철폐하지 않으려는 이들로 인해 계속 ‘예속 피해자‘가 생겨난다. 이 땅의 “예속 가해자”의 “예속”에 대한 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인식이 “속도를 갖춘 가능성”에 의해 빨리,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150/k0520320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181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매혹적인 밤[밤의 반만이라도] - [소설 보다 : 봄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60</link><pubDate>Thu, 18 Jun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32&TPaperId=17341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86/99/coveroff/89320426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32&TPaperId=173419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봄 2024</a><br/>김채원.이선진.이연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03월<br/></td></tr></table><br/>매혹적인 밤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br><br>소설 보다 : 봄 2024,&nbsp;김채원, 이선진, 이연지, 문학과지성사, 2024-03-14.  &nbsp;  <br>”그거 아니? 사람들은 누구나 밤을 갖고 태어나. 갓난아이 속에 갓 난 어둠이 있는 셈이지. 그런데 사람의 몸속에 밤이 심겨 있는 건 아주 잠깐뿐이야. 보통 사람들은 탯줄처럼 밤과 연결되어 있다가 밤에게 버림받아. 너도 그렇고. 그런데 나랑 내 딸은 버림받지 않았단다. 밤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기를 선택했고, 내가 계속 밤을 품고 있기를 선택한 거야. 너, 내가 앞이 안 보인다고 눈에 뵈는 것도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천만에. 나는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에 무슨 꿍꿍이가 들어차 있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어. 다 내 밤 덕분이지. 그리고 너도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이담에 나는 내 딸한테 내 밤을 물려줄 거란다.“  &nbsp;  &nbsp; 빛조차 감지 못하는 전맹인 엄마 ‘미수 씨’의 말이다. 보통 밤은 어두움이고 불길하고 불안정함을 대표하는 말이다. 다운의 엄마 미수 씨의 ‘밤’은 그렇지 않은 걸까. 제 아이에게 ”밤을 물려줄 거라“ 말하는 저 자랑찬 언사라니. ‘밤’이 장애를 말한다면 다운은 전맹인 엄마 미수의 장애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결국 제 엄마처럼 흰 지팡이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다운이다. 엄마는 제 말을 잘 지킨 셈이다.&nbsp; 어떤 존재에게 매혹됨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닮고 싶게끔 한다. 사소한 하나라도 같은 것을 찾아내고야 말며 닮아지려 버둥거리게 한다. 어린 시절엔 동화 속 공주가 그렇게 부럽고 좋다고 하면서도 마녀에게 끌리게 된다. 겁먹어서 얼어붙은 건가? 마녀들을 매력적으로 그리며 기존 동화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속절없는 끌림은 결핍과 욕망에서 발현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nbsp; 이들 모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인 ‘미숙’ 또한 다운을 좋아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끌림이 있는 만큼 제게도 ‘밤’이 있노라(”나한테도 있어요, 나만의 밤이“) 외치며 기꺼이 제 밤을 찾아내고야 만다. &nbsp; 미숙의 밤들……. 미숙의 삶에 켜켜이 쌓인, 묻어둔 어떤 밤들. 어쩌면 미숙은 제가 가진 ‘밤’이 있기에 그 모녀에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 삶 속 그 밤들이 마냥 어두운 채로 제 삶을 휘감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을지도. 조금씩 꺼내는 미숙의 ‘밤’이 미숙을 외롭고 힘들게 두지 않고도 미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임을,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위로와 격려, 채찍을 얻었을지도 모른다.&nbsp; ‘밤’을 힘있는 매혹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아련함이 있다. 무서운 어떤 것에 대한 이미지가 그 또렷한 경계가 파스텔톤으로 바뀌는.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86/99/cover150/89320426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586999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반려, 거미[거미는 토요일 새벽] - [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53</link><pubDate>Thu, 18 Jun 2026 1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035979&TPaperId=173419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9/44/coveroff/k7920359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035979&TPaperId=173419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a><br/>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br/></td></tr></table><br/>반려, 거미<br>거미는 토요일 새벽,&nbsp;&nbsp;정덕시, 은행나무, 2024-11-25.  &nbsp;  <br>  &nbsp;&nbsp;“개가 사람을 물었는데”&nbsp; 옆집 개가 사람을 물었다. 피를 닦을 휴지를 찾고 병원 얘기가 오가는 소리가 휴일 새벽 동네를 흔들었다. 개에 물린 남자는 다음날도 찾아와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외쳤다.&nbsp; 옆집 대문을 지날 때면 개가 짖을 때가 있었다. 개를 키우지 않고 개의 습성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개가 짖을 때면 가끔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옆집인데 설마 경계한다고 그렇게 짖어댈까 싶어서. 왜 어떨 때는 짖었다가 어떨 때는 짖지 않을까 의아함도 가지며. 사람을 물은 저 개가 또 사람을 물게 될까. 그동안 짖는 일은 있어도 사람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왜 그 사람은 물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정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반려동물 관련 다양한 산업이 성행하고 물림 사고 등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 반려동물 유기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nbsp; 반려식물도 키우기 힘든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더더욱 난제라 내게 속하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반려동물’을 너무나 제한적으로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다.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일은 그또한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일 테니……. 어쩌다 나도 ‘타란툴라’를 마주치면 스파크가 튀거나 은근하게 소유하고픈 마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nbsp; 이 책은 반려동물 ‘두희’에 관한 이야기다. 반려동물의 종류는 ‘거미’, ‘타란툴라’이고 화자인 수현에겐 17년을 함께 한 ‘가족이었다’. ‘두희’의 죽음으로 시작해 어떻게 두희와 함께 하게 되었는지 ‘두희’와 함께 했던 날들을 회고하며 ‘두희’가 수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nbsp;   내 인생에 블루프로그가 없었다면 어쩌면 내 삶은 훨씬 평탄했을지 몰랐다. 두희가 없는 삶 속에서는 두희로 인해 엄마와 척을 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소라와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또 타란툴라에 대한 편견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지금보다 단조로운 삶이 분명했다. 나는 단순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내 인생에 블루프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포포를 지키고 싶어하는 원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와 당신이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무언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래서 서로를 관찰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건 내게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nbsp;  &nbsp; 그러니까 결국 반려거미를 보내고 남아있는 자의 넋두리다. 떠난 것에 대한 애도이며 상실에 대한 위로다. ‘거미’를 반려동물로 삼고 살아가는 수현은 ‘거미’를 반려동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외롭고 힘겹다. 수현은 ‘두희’와 교감하고 있지만 이를 쉬이 드러내지 못하며 ‘두희’로 인해 일상이, 관계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거미 ‘두희’를 떠나보내고 난 뒤의 수현이 기억하는 17년은 아주 길다. 두희가 가족이기에, ‘가족’에 대한 얘기가 많다. 경험한 자로서 수현이 느끼는 ‘가족’에 설명이 충분히 이해된다.   &nbsp;  “괜찮아. 가족이잖니. 원래 가족끼리는 한 번씩 싸우면서 지내는 거야. 너무 화목하기만 하면 그것도 밋밋하고 재미없어.” 엄마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사람처럼 활기가 넘쳤다. 엄마에게 가족이란 모든 사건의 주범이며, 동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것 같았다. 내게도 가족이란 마법 같은 단어였다. 그것은 평생을 할애해도 이해할 수 없는 단어였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단번에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두희는 내 가족이었다.   &nbsp;  어쩌면 가족이란 서로에게 불가피한 영역을 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nbsp;  &nbsp; 그렇다면, 위와 같은 의미에서 가족인 ‘두희’를 수현은 이해했을까. 얼마나. ‘반려묘’만 해도 사람의 손길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별히 스킨쉽도 쉽지 않고 비바리움에 두고 ‘보는’, 어쩌면 ‘관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두희’에 대한 수현의 마음이란 ‘교감’이 아닌 일방적 관계인 것은 아니었을까. 장식장에 둔 고가의 장식품, 명품가방을 대하는 그런 것. 글쎄, 반려견이 제 이름에 반응하지만 ‘두희’라 부르면 그것이 제 이름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타란툴라 거미에 대하여.  &nbsp;  “두희는 자기 이름이 두희였다는 걸 알았을까?”“그건 모르겠지만 걔도 너의 무언가를 알아채는 순간들이 있었을 거야. 그게 아주 찰나였을지라도.”&nbsp;&nbsp;오로지 열일곱해를 두희에게 마음쓰며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던 수현은 ‘두희’와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두희’의 존재가 그저 나쁘기만 한다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의미함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긍정의 영향을 미쳤음을,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그러한 존재였음을 느끼고 알아간다. &nbsp; &nbsp;내 생애 의미있는 어떤 것, 그것이 무엇인든 그 존재가 나를 더욱 더 단단하게 올려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9/44/cover150/k7920359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99444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우미는 愚美[최애의 아이] - [소설 보다 : 겨울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93</link><pubDate>Wed, 20 May 2026 2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396&TPaperId=172882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7/31/coveroff/89320433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396&TPaperId=172882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겨울 2024</a><br/>성혜령.이주혜.이희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br/></td></tr></table><br/><br>우미는 愚美[최애의 아이]<br>소설 보다 : 겨울 2024,&nbsp;성혜령, 이주혜, 이희주, 문학과지성사, 2024-12-09.  &nbsp;  &nbsp;  &nbsp;&nbsp;딱히 열광적으로 연예인의 팬이 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국 특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의 세계에 놀랄 따름이었다. 열광적이라고 한다면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굿즈’라고 표현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거나 팬덤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아이돌 팬덤은 경계 너머의 세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 경계를 넘어가는데 뭔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고(조건보다는 진입장벽인가), 그 조건이란 대표적으로 나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암튼.  아이돌 팬덤에 대한 관심과 인식 전환이 된 계기는 누가 뭐라 해도 12·3 불법계엄 이후 ‘남태령의 밤‘일 것이다. 눈오는 날의 키세스 군단, 응원봉. 그리고 응원 문화의 선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BTS 아미들까지. &nbsp; 하지만 세상은 넓고 급변하며, 사람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어떤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소설 보다 : 겨울 2024』에 수록된 「최애의 아이」의 ’우미‘와 같은 아이돌 팬도 있으니까. ’팬덤‘의 분위기와 지향하는 바가 있을지언정 개개인의 팬의 마음은 또 다를 테니까.  예전에, 커다란 스케치북 한 면을 모두 연필로 검게 칠하고 가수의 이니셜대로 지우고 있더라는 어떤 학생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미는 고무지우개 위에 유리의 이니셜을 새기고 회의 시간에도 유리의 이름을 반복해서 적는 아이돌 유리의 팬이다. 애정하는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행동은 소소하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우미는 다르다. 하긴, 그런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면 소설이 나아가겠는가. ’우미의 다름‘. 우미는 미성년이 아니며, ’최애‘ 아이돌 ’유리‘의 팬으로서 다른 것을 꿈꾼다.&nbsp; 최애 아이돌의 연인이 되는 것은 아이돌 팬이라면 한번쯤은 꿈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돌의 연애나 결혼 기사가 파파라치든 공식적인 연예기사로 보도되면 그 아이돌의 ’생명력‘은 끝인 경우도 허다하다. 우미는 ’연인‘이라는 환상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애 아이돌 유리의 아이를 갖는 것을 꿈꾸고, 이룬다. <br> 그렇게 남자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던 순간이, 여자로 평가하는 눈빛과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해져 움츠리고 다녔던 자신의 이십대가 생각나 슬퍼졌다. 거기에 대한 반발로 미소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이 박여버린 높은 미적 기준이 거꾸로 자기 자신을 슬프게 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기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비참하지?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의 아이를.  &nbsp;  &nbsp; 우미의 이 꿈이 가능한 현실, 에 놀랍지만 우미의 이러한 독백을 보건데, 우미가 아이돌 ’유리‘를 애정하고 ’유리의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것은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미‘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루어낸 집착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추고 싶은 우미는 ’愚美‘가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고 싶은 ’우미‘가 있다면, 역시 그 욕망을 걸머쥐는 법을 아주 잘 아는 또다른 이들이 우미의 대척점에 있다. 욕망에 관한 탁월한 쟁취능력이 갖추어진 익숙한 그들-정치인이라거나 권력층이라 일컬어지는 혹은 남성이라 대변될 수 있는-, 어쩌면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환경, 그들만의 공고한 카르텔, 시스템.  &nbsp;  우미와 같은 화이트칼라 계층에 소시오 패스 비중이 높은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나라 곳간 빼먹는 건 눈감아도 공병을 훔친 기초 수급자 노인은 실형을 주는 판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nbsp;  &nbsp; 처음부터 ’최애‘ 아이돌에 대한 우미 행동의 의외성은 소설 마지막까지도 이어진다. 단순히, 요즘 넘쳐나는 한국형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행태를 다루는 건가 싶은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놓은 채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황에 그저 놀라워하고만 있기에는 그저 개개인을 ’소시오 패스‘로 격앙하여 이야기하기에는 ’자기들만 인간인 줄 아는 역겨운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7/31/cover150/8932043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37316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탱크 데이[탱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72</link><pubDate>Wed, 20 May 2026 2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834195&TPaperId=172882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90/61/coveroff/k92283419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탱크 데이[탱크]<br>탱크,&nbsp;김희재, 한겨레출판, 2023-07-25.  &nbsp;  <br>  &nbsp;&nbsp;탱크가 핫하기에.&nbsp; 이 소설은 2023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덕분에 아니 때문에, 이 책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이 책에서 느꼈던 그 이미지에는 스타벅스가 일으킨 ‘탱크 데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탱크 텀블러를 확장하면 소설 속 탱크가 되려나.&nbsp; &nbsp; 소설 속 탱크는 전투용 차가 아니라 ‘컨테이너’다. 5평 정도되는 텅 빈 기도실이다. 흔히 이러한 기도가 먹히는 곳이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이듯 탱크 또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마을 야산에 놓인 밀폐된 공간이다. 그냥 놓인 빈 공간이 아니라, ‘자율적 기도 시스템’으로 ‘홍보’되고 커뮤니티에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돈도 받는 곳이다. 마케팅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상업시설 같다. 최초의 탱크 설립자 ‘루벤’에게 사사 받아 ‘탱크의 시대’를 창립한 이는 황영경이라는데, 루벤의 이름은 종교 색채가 강하고, 이런 설립자 운운은 ‘사이비’ 냄새를 열렬하게 풍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빈 컨테이너를 기도 공간이라며 운영하는데 왜 사람들은 종교 공간이나 시설이 아닌 이 탱크를 찾는가. 아, 비종교인도 있을 테니……. 그것도 그렇지만 ‘탱크에서 기도하면 원하는 미래가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한 형태로 이 공간은 홍보되었다. 근데, 바로 이런 이유가 ‘사이비’의 전형 아니던가. &nbsp; 물론 소설에선 ‘탱크’를 이렇게 말한다. “뿌리 없는, 종교도 아니고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도 아니고 딱히 자기계발도 아닌, 그야말로 뭣도 아닌 것”이라고. 하지만 설립자 루벤은 주술처럼 이렇게 말한다.  &nbsp;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nbsp;  &nbsp; 어쩌면 너무 뻔한 말. 그리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말. 이미 저러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현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탱크 데이’라는 날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이미 조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홀린 듯이 모여드는 이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마음껏 욕설과 조롱을 펼칠 공간이 있다는 것, 허락이듯 구원이듯 그것을 허용하는 공간이 주어졌으니, 주저없이! 뭔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nbsp; 그러니까 ‘신성한’ ‘영험한’ 곳으로 홍보되는 탱크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보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그 삶에서 ‘어려움’과 ‘외로움’과 ‘불편함’과 ‘슬픔’ 등등을 겪은 이들이 찾을 것이라는 걸. 이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은 욕망의 성취 혹은 결핍의 채움, 그리고 고통의 치유. 공간이 주는 상징에 ‘의미’와 ‘의지’를 더해 사람들은 제 결핍과 욕망을 내어놓는다. 어쩌면 자기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쏟아내고 버리고 싶은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탱크’를 선택했다. 어떤 이는 실제 종교시설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심리상담사를 찾거나 병원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점집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친구나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nbsp; ‘탱크 데이’에 이 책이 떠오른 걸 보면, 제목 때문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이비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의 문제’로 탱크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탱크를 찾은 이들 중 왜 ‘둡둡’은 닉네임으로 나오는지, 왜 ‘둡둡’은 죽는지, 성정체성은 어떤 경우라도 해결되지 못할 문제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믿음과 신념에 관한 문제 이 부분이 강한 건 여전하다. 그럴 것이라 예상한 듯 작가는 한국에 ‘탱크의 시대’를 만든 황영경이 손부경에게 하는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nbsp;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게 아니라 탱크를 믿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잘못된 숭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야. 너는 언젠가 사람들이 탱크를 신으로 모시게 될 거라고 했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탱크 안에 가만히 앉아 억만장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신자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때 난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도하는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너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부경아, 그거 아니.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거. 너는 삶을 방어하듯 살지. 늘 최악의 것을 먼저 상상하고 그래야 최악의 것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지.   &nbsp;  &nbsp; 무엇이든 결국 선택한 자의 몫이라 이야기한다. ‘탱크’ 또한 그러한 것이라면, 컨테이너 ‘탱크’는 계속 이어질까. 적어도 ‘탱크’를 찾는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들로 희망을 꿈꾸기도 하며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한 ‘믿음’을 품는 곳이라고 한다면 ‘탱크 데이 스타벅스’는 어떤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적어도 ‘문화를 파는 공간’이라는 스타벅스에 맞게 어떤 문화든 파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겠다. 저렴하고 몰염치한 문화도 수용되는 곳. 그것을 부추기는 곳이 한국형 스타벅스라는 것. 권력을 향한 풍자도 아니고 5.18이나 민주적 가치나 활동, 참혹한 참사에 대한 조롱을 당연시하는 마케팅. 그러한 행태가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결재라인을 거치는 동안 전혀 걸러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그 공간은 어떤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이런 일들은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이러한 행태를 해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제미를 느끼고 나아가 돈까지 번다니, 그치지 않을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소설 속 탱크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nbsp; ‘탱크 데이’에 몰려드는 무리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행태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지속된 신념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지 탱크에 가두어 그들의 내면의 소리가 무엇을 뱉어내는지 듣고 싶, 아니 듣고 싶지는 않다. 뻔한 말같지 않은 말이 난립할 테니까.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그저 긍정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조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도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싶어 숨을 돌릴라 치면 무섭게 되돌아가는 어떤 힘이 있는 듯, 계속 제자리를 맴돌게 하는 나라다.&nbsp; 여러 사건들로 단련된 민주시민들이 탱크를 뒤집고 단도리를 하는데도 조금만 숨을 돌리면 되돌아가고 무수한 탱크 데이가 생겨나 회의가 들라치면, 이처럼 불매운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을 ‘방어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용하게 된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90/61/cover150/k9228341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906190</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소란한 속삭임] - [소란한 속삭임]</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811</link><pubDate>Wed, 13 May 2026 21: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7089&TPaperId=17274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8/83/coveroff/k21203708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7089&TPaperId=17274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란한 속삭임</a><br/>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2월<br/></td></tr></table><br/>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br>소란한 속삭임,&nbsp;예소연, 위즈덤하우스, 2025-02-26.  &nbsp;  &nbsp;    &nbsp;&nbsp;인터넷 시대 별의별 사람의 이야기를 빠르게, 많이 접하게 된다. 세상에 그런 사람(사람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인간’이라 칭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한)을 봤다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놀라면서 눈으로 훑게 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nbsp; 이 소설을 보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이, 어떤 상황에 동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내게 그 일이 일어나는가 아닌가도 관건이지만 이처럼, 타인에게 쉬이 ‘무엇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특히나 소설 속의 이유를 들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난 어떻게 행동하려나.&nbsp; 마치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엮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하루하루를 보낸 일상인 것처럼 되어버린, 갈수록 세상에 대해 무감해지며 어떤 말도 표정도 짓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 같은 요즘의 삶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다시 연결을 꿈꾸고 있다. 타인을 힘들어하면서도 오히려 타인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 때문일지도.&nbsp; 그리하여 만들어진 연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해방클럽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속삭이는 모임’의 구성원이다. 그러니까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하는’, ‘서로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이 주요 활동인 모임. 급작스럽게 지하철에서 만나 만들어진 이 모임. 그러면 왜 속삭이는가.<br>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nbsp;  &nbsp; 속삭임의 힘은 있는 건가. 분명 모임의 몇몇은 속삭임이 주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믿는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부드럽게 타이를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는 힘 같은 것.” 속삭이는 말의 힘을 믿으며 무엇이라도 속삭이지만 온갖 소리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당연처럼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말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보다 오래 전부터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고 금값이 비싸지고 있지만 웬걸, 한국 사회에서는 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긴 하다. 그리하여 모아와 시내 두 명의 회원만이 있는 모임에는 속삭임만이 아니라 ‘소란함’도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50대 여성 '수자'. 이리하여 제목이 ‘소란한 속삭임’인가.&nbsp; 궁극적으로 속삭이는 모임에서 이들은 무엇을 해방하고자 하는 걸까. 어떤 비밀을 속삭이고 싶은 건지, 결국 속삭이는 모임에 합류하게 된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인지, 당연하게도 각자가 가진 사연이 드러나고, 그 사연을 소란함으로 또는 속삭임으로 상쇄하고자 할 것이다. 다만, 홀로가 아닌 채로.   &nbsp;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만큼 아픈 사람이 없다는 걸 모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모아는 시내와 수자, 자신 모두 마음 깊숙이 어디 한 군데가 단단이 틀어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감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nbsp;  &nbsp; 생각해보면 어떤 모임이란 추구하는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나간다.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해도 그렇게 어느 한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은 소설에서 나타난 것처럼 서로가 가진 필요를 ‘감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건 끼리끼리인가.&nbsp; 짧은 소설 속에서 아래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남은 이유와 슬픔 그리고 못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악’ 때문에. 내게도 소란한 소삭임이 필요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만, 명동역 4번 출구를 지날 때면 이 모임을 떠올려보기는 할 듯하다.  &nbsp;  '저는 슬퍼요.''왜요?''분명히 이유를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유를 잃어버리고 슬픔만 남았어요.' 모아가 시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저는 반대예요. 슬픔은 잃어버리고 이유만 남았어요.''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자꾸 이유들만 머리에 남아서 악에 받쳐요.“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8/83/cover150/k21203708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98833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감사의 정원, 바우어새[바우어의 정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781</link><pubDate>Wed, 13 May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78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531&TPaperId=172747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71/17/coveroff/893204353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감사의 정원,&nbsp;바우어새<br>소설 보다 : 봄 2025,&nbsp;강보라, 성해나, 윤단, 문학과지성사, 2025-03-14.  &nbsp;  &nbsp;    &nbsp;&nbsp;‘감사의 정원’. 실시간 검색어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바우어의 정원. 바우어의 정원은 따스하고 나른한 봄날의 정원을 떠오르게 했다. 모네가 그린 그림같은 프로방스의 어느 정원의 풍경을 떠올렸는데, 책을 읽고 각인된 건 새틴 바우어새였다. <br> &nbsp; 정원에서 연상된 기억으로 ‘감사의 정원’ 기사를 클릭했다가 다시 한번 이 ‘새대가리’를 떠올리는 아이러니. 새틴 바우어새(Satin Bowerbird)라는 이름은 (쓸데없이 정장을 갖춘) 젠틀한 새를 연상시킨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섬에서 서식하고 우리나라말로는 ‘정자새’라고 한다는데 이 새의 특징이 ‘정원(Bower, 亭子)’을 만들기 때문이다.&nbsp; 암컷새에게 구애하기 위해 수컷새가 타고난 외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탁월한 기술을 발휘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새틴 바우어새가 가진 기술은 집짓기로 한국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기술이다. 바우어새가 짓는 집은 새들이 일반적으로 짓는 둥지와 달리 크고 화려하고 정교하다. 집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란색 물건들로 정원을 꾸민다. 파란색 물건은 꽃이며 열매며 깃털이며 다른 종의 사체 등 자연에서 얻은 것 외에 인간이 만든 파란 플라스틱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바우어새의 종은 다양하여 파란 물건이 아니라 녹색이나 빨간색 등을 사용한다거나 집을 꾸미는 방식과 형태 또한 다양하다). 가히 탁월한 건축가요 인테리어 능력자라 할 수 있다.<br>[EBS 다큐프라임:천국의 새 2부- 너에게 정원을 바친다]&nbsp;&nbsp; 바우어새는 거대한 집을 짓고 갖가지 파란 것들로 장식하고 나면 온갖 기교를 부려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러나,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을 쪼며 괴롭히고 결국 내쫓는데 쫓겨난 암컷이 혼자 새끼를 기르든 말든 관심이 없다. 이미 짝짓기를 끝낸 후부터 새로운 암컷을 찾을 결심을 하고 제가 그토록 구애하며 매달린 암컷을 내쫓은 거니까. 이 바우어새는 그렇단다.<br> 새틴 바우어가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장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던 내담자들. 그들은 오직 그 순간에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처럼.   &nbsp;  [KBS동물티비 : 애니멀포유 animal4u_새틴바우어새의 비밀의 정원]<br>&nbsp; 그렇다. 나는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상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은’ 기괴한 바우어의 정원이 된 광화문 광장을 본다. 마치 수컷 새틴 바우어새가 지어놓은 바우어를 보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위한 구애인지 누구를 위한 구애인지 구애 자체에 매몰되어 버린, 어떤 종. 감사의 정원엔 6.25 참전국들의 공을 기리기 위한 석재 조형물이 늘어서 있다. ‘감사의 빛’이라는데 기사에 나타난 대로 ‘받들어 총’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조형물. ‘감사의 빛’인지 ‘감사의 빚’인지 ‘감사’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이 조형물과 정원은 새틴 바우어새가 매몰되어 지은 바우어 같지 않은가!<br> “마지막에 좀 이상한 말을 했어요. 제가 겪은 건 유산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출산이라고. 자기가 유학한 프랑스에서는 다들 그렇게 표현한다고요. 제가 어리둥절해하니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데, 오디션 끝나고 그 몸짓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왜 뒤늦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뭔가를 헐값에 팔아넘긴 기분이 드는 건지……”  &nbsp;  &nbsp; 받들어 총. 우리가 기억해야 할 6.25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마땅히 해야 할 감사가 왜곡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암컷 바우어에게 수컷 바우어가 지은 그 공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의 공간이자 범죄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참…… 여전하다. 어떤 이들의 결집은 억지스러운 말과 타인을 향한 비난과 험한 말을 쏟아붓는 것, 총칼을 받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지원하고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71/17/cover150/89320435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71171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빛바래서는 안 될 텐데[혼모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27745</link><pubDate>Mon, 20 Apr 2026 1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2774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12637524&TPaperId=172277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72/coveroff/e91263752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빛바래서는 안 될 텐데  &nbsp;  혼모노, 성해나, 창비, 2025-03-28.  &nbsp;    &nbsp;  &nbsp;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혼모노 열풍이 조금 비껴간 시점이었다. 난 소설보다는 외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 책의 인기는 높은지 알라딘 서점을 클릭하자마자 40만부 기념 양장판 출간 소식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전 책 표지의 빨간 사과는 핑크빛이 감도는 사과로 바뀌었다. 사과, 그래 사과가 문제인가. 뜬금 사과의 색이 저렇게 옅어지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nbsp; 학습된 힘인지 DNA에 새겨진 탓인지 ‘일본스러운’ 것들에 대해선 기껍거나 선뜻 순순하게 몸과 마음이 나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혼모노』에는 일곱 편의 단편 중 표제작인「혼모노」가 소설에서 연상되는 색채와 그 제목으로 인해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이긴 했다. &nbsp; 그리고 혼모노 속 “역 근처 버거집을 지나다 질겁한다. 앞집 신애기가 창가 자리에 앉아 버거를 먹고 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어떤 날의 ‘롯데리아’와 ‘보살집’이 계속 머리를 점령했다. 그날의 일들은 지리멸렬하고 조각조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원히 조각만 드러나는 건 아닌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멍해질 때가 있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났나, 내가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거나 덮이는 것은 아닌가 싶은 날들이 흘러간다. 그러다 또 한번씩 터져 나오는 조각들에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딱지가 쌓이기만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소설 속 문장처럼.<br>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렁인다.  &nbsp;  &nbsp; 굳이 버거집 풍경을 상상하면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은데, 혼모노를 보면서도 그저 코미디 같기만 했고 무당 ‘문수’를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라거나 능력을 벗어난 것을 취하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행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두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에게 도취되고 있는 박수무당 문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한동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미 애매한 형태로 바라보게 된 것을.&nbsp; 영험한 신이 떠나가 버린 무속인은 무속인인가. 박수무당 문수가 그냥 문수가 아니라 직업인 ‘박수무당’이라면 현재의 문수를 가여워할지언정 ‘문수’를 ‘무당’으로 찾을 일도 박수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당’이라는 역할을 맡은 ‘문수’의 역할은 끝이다. 그러나 ‘문수’는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의한다. 미친 듯이 작두를 타며 자신에게 도취된 문수여, 왜 이전에는 그러하지 못했는가. 이것을 자각이라고 해야 할지, 광기라고 해야 할지 문수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어느 쪽으로 하고 싶은지 나 또한 어정쩡하다. 다만, 생각보다 벅찬 환희도 없고 문수에 대한 애정도 생기지 않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감정의 파고는 매우 덤덤하다. &nbsp; 이미, 12.3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입되었기에 ‘무속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 없는 자의 망나니같은 마지막 몸짓, 자의식 과잉의 몸짓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nbsp;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nbsp;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nbsp;  &nbsp; 나야말로 ‘존나 흉내만 내는 놈’, 아니 ‘존나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놈’에 대해 조소하고 싶은데 실제 겪어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던 시절이 생각나 웃지도 못했다. 이제껏 가만히 있다 ‘무당’이라는 역할 측면에서 신기가 없는 문수가 ‘신애기’에게 경쟁의식과 질투를 느끼면서 비로소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 무언가를 어떤 형태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니. ‘진짜’가 된다는 건 뭐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되는 것인지, ‘진짜’는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간혹 어떤 이의 처절한 몸부림은 연민보다도 환멸을 더 느끼게 한다. 내게 ‘박수무당’ 문수는 환멸이었을까.&nbsp; 얼른 환멸을 끝내고 싶다. 마음 속에 지속적인 환멸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한 일 아닌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리하여 누가 만들어낸 이 환멸이 얼른 명징하게 해소될 수 있기 위해선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흐르고 있는 그날의 진실이 명확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그 사실, 진실을 드러내는데 문수처럼 작두 위에서 버둥거리는 관련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 이들이 흘리는 저 가짜 피와 광기가 그들로 인해 피눈물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 무엇도 아닌 양 만들어버리려는 것이 단순히 ‘화가 난다’는 말로 멈춰지지 않는다. 꽃이 피고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맑다고 그날이 그 일들이 모두 빛바래지면 안되는데……. 빨간색이 분홍빛으로 변한 표지 ‘혼모노’를 보며 진짜진짜 그 생각만이 가득해지는 날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72/cover150/e9126375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40725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신화·종교</category><title>무속은 종교인가[방치된 믿음] - [방치된 믿음 -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18347</link><pubDate>Wed, 15 Apr 2026 1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183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42637279&TPaperId=172183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0/71/coveroff/e2426372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42637279&TPaperId=172183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방치된 믿음 -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a><br/>이성원.손영하.이서현 지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11월<br/></td></tr></table><br/>무속은 종교인가  &nbsp;  방치된 믿음, 이성원, 손영하, 이서현, 바다출판사, 2025.  &nbsp;    &nbsp;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가, 그래서 사람을 안달하게 한다. 불안과 희망 속에서 욕망과 바람을 조금이라도 확고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보다 눈에 잡히는 인생을 살아가고픈 이들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다.&nbsp; &nbsp;사람을 믿는 것, 신을 믿는 것, 신을 대리한다는 이를 믿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 이상하게 견고한 믿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무속. 사회면에서 주로 다뤄지거나 연예면의 주요 콘텐츠이기도 하다. 물론, ‘정치’면을 휩쓸고 있기도 하다.&nbsp; &nbsp;사회면에서 보게 되는 무속은 무속인이라 불리는 이들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에 무속인은 ‘무’는 사라지고 ‘속인’의 대표가 된다. 속이는 사람. 그리하여 무속인은 한편으로는 ‘사기꾼’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무속인의 인기는 대단하다. 새해가 되면 일상적으로 무속인을 찾고 일상의 변화가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무속인을 찾는다. 아니, 아무 일이 없어도 무속인을 찾는다. 무슨 일이 있을까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찾아오게 될 노화나 질병이 그즈음이 아니라 ‘언제’ 오는 지도 운명의 상대가 ‘언제’ 오는지, ‘누구’인지 이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데 무속인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nbsp;  &nbsp; &nbsp;이 책은 기자들이 파헤치는 무속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무당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의 저자인 3인의 기자는 최근 10년 동안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 무속 관련 범죄 판결문을 분석하여 무속인에게 입은 피해자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실제 피해자들과의 사연은 대부분 비슷한데, 무당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여 돈과 사람을 착취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도 있고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가해자’로서 보다 시원하게 법적 처벌을 받는 무당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유는?  &nbsp;  무속 범죄에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법원이 굿 같은 무속 행위에 대해 결과로 판단하기보다는,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주는 행위로 봤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실제 굿이 치러지거나 무속인이 신도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증거가 있다면 죄가 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부가 인정하는 통상적 종교 행위의 범위가 모호하기에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기도 했다. 법원은 굿을 비롯한 무속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무교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에 자문을 구할 때가 있다. 그러나 무속 신앙은 율법과 교리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기에 적법이나 위법이냐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할 수 없다.  &nbsp;  &nbsp; &nbsp;법적인 다툼이 있었는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라고 볼 수 있을까? 무속인이 행한 행위가 결과가 예상한 바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위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행위와 금액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경우가 있고, 무속인 본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무속의 결과를 과장하여 무속행위를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nbsp; &nbsp;무속인 본인의 역량.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는 무속인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연예인이 무속인이 된 사례로 연예면에서 제법 보았다. 이쯤되면 무속인의 지위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nbsp; &nbsp;기자들이 실제 만난 무속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무당은 산에도 있지만 도시에 많다. 무속인이라면 당연 ‘신당’, 점집을 차리는 줄 았는데 이 책을 통해 ‘수행’하는 무속인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화는 있어서 강남 지역에 신당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논현동의 무당들은 신당 표시를 하지 않고 입소문으로 고소득이나 권력층 손님들을 받고 있으며, MZ 무당은 카카오톡과 유튜브 등을 중점으로 고객을 포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를 통해 이뤄지는 콘텐츠 속에도 ‘가스라이팅’이나 ‘거짓’의 형태를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상화되고 확대되고 있는 ‘무속시장’이 창출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무속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속은 종교일까? 잘 모르겠다. 오락? 무속을 단순한 ‘오락’으로 치부하며 소비할 수 있을까. 단순한 오락이 주는 문제가 ‘병폐’ 수준으로 지속되고 있는데, ‘무속’을 소비하면서도 그 ‘무속’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경하기 이를데 없는데, 무속이 뒷골목 깡패처럼 군림하고 계속 그렇게 나아간다면 무속은 늘 어두울 수밖에 없다.&nbsp; &nbsp;무속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전무하다. 무속인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신고가 필수가 아니기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점집을 운영하는 무속인도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정부의 종교지원 사업 지원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지원이야 받지 않고, 뒤로~ 그렇게 해쳐먹는 경우가 있기도 했겠지만……. &nbsp; &nbsp;기자들이 만난 ‘무속인’ 중 ‘여성 무당은 해방된 첫 번째 여성’이라고 주장한 자도 있고, ‘올바른 무당이라면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 경우도 있다.  &nbsp;  채 씨는 신병을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신병은 영적인 몸이 영적 창의력에 굶주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며 자신처럼 1940년생 여성들은 억압적인 유교 사회에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당은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며 “여성 무당이야말로 진정으로 해방된 첫 번째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nbsp;  올바른 무당이라면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정 씨(‘나라 만신’ 김금화 수제자. 민중 무당)의 생각이다. “무당은 하늘에서 선택받았기에 사람들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행이 충분하면 신이 무서워서라도 나쁜 짓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신은 무정하고 배려와 용서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nbsp;  &nbsp; 무속은 다른 종교와 달리 ‘제도’적이지 않다. 그러나 무속인은 실제 무속행위를 통해 소득을 벌고, 이러한 행위가 사기가 아니라 직업으로 인정되는 무속인 범죄 사건을 보면, 무속이 더 이상 어두운 형태로 시장을 형성하고 사회에서 성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이 부르짖듯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무속이 제도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무속인들은 ‘무속인 인증 자격제’ 도입을 얘기한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들이 제도적으로 편입되어 무속범죄와 같은 일들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무속도 이와 같은 정도의 정리는 필요할 듯하다. 더불어, ‘믿음’과 절대적 ‘신’이라는 단어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모든 종교의 ‘사악한’ 행위들이 정리되고 그 위상 또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격하되기를 바란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80/71/cover150/e2426372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807131</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여행·기행·예술</category><title>질퍽한 삶을 넘어서서[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16282</link><pubDate>Tue, 14 Apr 2026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162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0823&TPaperId=172162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73/2/coveroff/k4420308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0823&TPaperId=172162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a><br/>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08월<br/></td></tr></table><br/>질퍽한 삶을 넘어서서  &nbsp;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이주헌, 쌤앤파커스, 2025.  &nbsp;    &nbsp;    &nbsp;&nbsp;어릴 적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죽기를. 이왕이면 ‘청춘’에. 단, 조건은 그냥 그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무엇으로든 무엇이 되었든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삶으로 ‘일찍’. 그때의 삶은 화려하기보다는 몹시도 질척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정녕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던가 싶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마냥 세상을 치켜뜨고 바라보던 그때의. 그때 훗날의 세상은 너무도 멀리만 보여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그렇기에 집착이나 애착도 쉬이 잡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nbsp; 그러나 이제 살아온 세상을 생각하는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는 다른 꿈을 꾼다. 삶이 ‘명작’이고픈 마음은 그래도 늘 있었던 듯하지만 반항과 욕심을 걷어내고 ‘반추’하는 오늘의 나는 세상에서 한번은 어떡하든 쨍하게 해뜨는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부르짖는다. 늘 허겁지겁하고 푹푹 발이 빠지는 것과 같은 삶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고. 남은 길은 어떡하든 꽃길만 가득하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nbsp;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에는 ‘아름답지 않은 삶’의 기준은 무언가, 저자가 생각하는 관점은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 ‘아름답지 않은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림 속의 이야기일지,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삶인지도 궁금했는데 결국 작가의 생애는 그림과 완전히 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스물 다섯 명의 화가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나아간다.&nbsp; 그들의 ‘내면’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어떨 때 ‘행복’하였는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어떠했는지, 그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미는 어떠한 ‘순수’로 귀결되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련해진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처럼 화가들의 삶에 드리워진 굴곡이 참 많다 싶다. 예술가에게는 마치 그것이 예술의 혼을 불사르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명작’에 대한 열망과 현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또한 다른 것이니까. 명작으로 그것이 등가되는 것은 아니니까.&nbsp; 사랑, 이별, 소외, 외로움, 괴로움, 가난, 질병, 죽음 등은 우리네 삶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우리가 겨우 눈을 뜨고 한숨을 쉬며 일터로 나아가 어떤 날은 영혼을 담아 어떤 날은 영혼을 가출하며 일을 하듯 이들 화가들도 삶의 과정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거기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담긴다.  여러 화가들 중에서 ‘강렬한 색채’로 각인된 앙리 마티스의 말이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기억에 남는다.   &nbsp;  그는 한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하나의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면, 아니 예민한 감수성이 방법의 도움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롭겠나. 나는 완전히 흔들리겠지만, 생각해보면 평생을 살아오면서 안 그런 적이 없었지. 절망의 순간에 이어 행복한 계시의 순간이 찾아온다네. 그런 계시 덕분에 나는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이뤄내지.‘   &nbsp;  &nbsp; 스물 다섯 명의 ’화가‘들. 시작도 끝도 다르게 흘러가는 각자의 삶에서, 결국 어떠한 삶이었든 그들은 그들이 남긴 그림과 함께 기억된다. 화가의 생애를 조금 알게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고, 화가의 삶에 애도하게 되기도 한다. 화가들이 시대를 반영하여 그림을 그리고, 또한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그림의 소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그림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림에 대해 무지한 나는 ’필‘이 느껴지는 그림에 보다 집중하게 될 터이지만, 그림 속에 담겨진 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nbsp; 그리고 앞서 보다 꽃길만 가득한 아름다운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고 있긴 하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 ’절망의 순간을 넘어 찾아 온 행복한 계시의 순간‘은 정녕 꽃길이지 않을까 싶다.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 삶이 이다지도 질퍽질퍽하고 있지만 순수한 감수성으로 조금 휘청하다 ’이성을 넘어서‘ 확고하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br>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73/2/cover150/k4420308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73028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에세이</category><title>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일까[어떤 동사의 멸종] - [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03803</link><pubDate>Wed, 08 Apr 2026 1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038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40845X&TPaperId=172038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29/31/coveroff/89594084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40845X&TPaperId=172038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a><br/>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06월<br/></td></tr></table><br/>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일까  &nbsp;  <br>어떤 동사의 멸종-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시대의창, 2024-06-17.  &nbsp;  <br>  &nbsp;&nbsp;“우리에게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니까”&nbsp; 광고를 듣다가 모든 동사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는 세상을 떠올렸다. 단어 하나에 책제목이 연상되어 참으로 쓸데없이 이어지는 잡다한 생각들…. &nbsp; 이 책은 네 가지 직업에 대한 저자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콜센터 상담원,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원을 저자는 각각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라는 동사로 이야기한다. 무수한 직업 중 위 네 가지 직업을 경험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일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nbsp;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대규모 단종이 예고된 ’인간의 노동‘이라는 카메라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보려 한다. 인간에게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nbsp;  &nbsp; 어느 순간 AI 노동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일찌감치 고효율을 따지며 동사 형태가 더 어울리는 노동은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사무직 노동이 AI로 대체되고 것이 더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여러 보고서를 인용하여 AI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을 표시하고 있는데, 저자가 참고한 보고가 다소 오래된 자료인만큼 책이 출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떤 대체확률이 높은 직업의 순위는 또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nbsp; 아무튼. 이 네 개의 노동을 통해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는 특정한 종류의 인간 특성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어‘ 갔을까. ’직장‘,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을 생각하더라도, 이 직업군이 속한 ’곳‘에 대한 보도는 긍정적인 내용들이 없었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 외에 가해지는 특성이 이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직업들은 ’사라진다‘는 동사에 아주 걸맞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현장 경험은 생생하기에 왜 이 직업의 대체확률이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원은 사라져야 할 직업이라고 꼽고 있다.   &nbsp;  돼지의 배설물은 따뜻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씻어낼 수 있지만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은 1년, 2년이 지나도 말끔히 사라지는 법이 없고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nbsp;  &nbsp; 그러나,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소위 ’까대기‘ 업무를 하는 사람 중에서 우울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얘기에 갸웃한다. 어떤 일터의 분위기가 문제인건가. 사람이, 문제인 건가.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 점잖은 척하면서 쏟아놓는 오물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결국 ’직업‘이라는 종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는 존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람을, 직업으로 상하를 나누며 나는 ’너‘보다 ’너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우월감. 다른 사람을 낯추며 본인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그런 사람‘. ’그런 인간’  &nbsp;  &nbsp; 최근 흑백요리사의 열풍으로 ’요리‘, ’셰프‘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과거에는 ’식당 아줌마‘, ’밥 해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던 ’요리사‘는 ’셰프‘라는 외국어로 명명하면서 다르게 인식되고 대우받고 있다. 한편으로 그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 이야기한다. 특정한 몇 명만이 열광적인 지지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 그거야 어디든 무엇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결국 ’일‘의 좋고 나쁨이란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아닌가. 직업의 세계에 귀천이 있음을 제도와 인식이 강화하며, 오로지 ’나‘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런 인간들이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를 ’아름답지 않고 천한‘ 것으로 취급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이 노동의 세계.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29/31/cover150/89594084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29316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에세이</category><title>다시 봄, 조금새끼[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03798</link><pubDate>Wed, 08 Apr 2026 1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037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630067&TPaperId=172037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09/71/coveroff/s5226309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630067&TPaperId=172037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a><br/>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06월<br/></td></tr></table><br/><br>다시 봄,&nbsp;조금새끼<br>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nbsp;이미경 ,&nbsp;남해의봄날, 2020-06-15.<br>  &nbsp;    &nbsp;&nbsp;문득, 눈을 떠보니 목련이 절정이었다. 벚꽃은 꽃망울이 나뭇가지에 몽울몽울 모여 준비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 피려 한다. 어제 내린 비가 멈추고 햇살은 어제보다 더 따스해졌고 어김없이 봄은, 와 있다. 내가 더디게 느꼈을 뿐. 2026년도 벌써 3월 중순이 한참 지나있으니 짧게 피고 지는 꽃들처럼 어김없이 봄도 금세 지나갈 테다. 늦게 느낀 만큼 이 봄은 얼마나 짧게 느껴지려나.  예전엔 해가 바뀌기만 해도 겨울보다 봄이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 2월이면 아, 봄이다! 하고 외쳤더랬는데 계절의 변화가 쉬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의 변화때문인건가. 봄이 느껴지는 봄비와 봄꽃. 목련이 활짝 피었을 때마다 와 있는 봄을 알지 못하고 올해는 이렇게 시간이 흘렀고, 문득 이 책의 그림들이 생각났다.&nbsp; 전국 구멍가게의 풍경을 그린 『동전 하나로도 따뜻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처럼 이 책 또한 전국의 또다른 구멍가게를 그렸다. 여기서 ‘그린’이란 실제로 그림으로 그렸다는 말이다. 책 속에 가득한 목련 나무와 벚꽃 나무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이끄는 책이다. 대부분의 구멍가게 앞에서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나무들 대부분이 목련이나 벚꽃 나무다. 그리하여 봄의 느낌이 강한 책이다. 우리집 구멍가게에도 목련이나 벚꽃나무가 있었더라면, 아니 다른 나무라도 있었더라면 이 구멍가게 속에 그림으로 남았으려나……. 아무튼 출판사도 남해의 봄날이라서인지 봄날이면 떠오르는 책.<br><br>&nbsp; 구멍가게 2탄격인 이 책을 보며, 전국에 이렇게 많은 구멍가게가 있었나 생각했다. 어쩌면 한번쯤 지나쳤을지 모르는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진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 주변 풍경과 더불어 정겹고도 쓸쓸하다. 작는 구멍가게가 낯설지 않아서 정겹고, 언제 이 가게가 문을 닫을지 몰라 쓸쓸한. ‘오늘도 문을 연’ 구멍가게들. 풍경뿐만 아니라 구멍가게의 이야기도 귀기울여 본다. 어찌어찌해도 세상은 변하고 구멍가게도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br> 지금은 사라진 마을 앞 째보선장이 고깃배와 어부로 북적였을 때, 가난한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가면 동네 아낙네들은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며 남정네들을 기다렸습니다. 고기가 안 잡히는 조금 때가 되면 어부들은 잠시 집으로 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고 나면 아낙네들의 배가 점점 불러 오고 열달 후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이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부른다 하네요. 꽃 같은 나이에 혼인해 바닷물보다 짜디짠 세월 속에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를 얻은 할머니들이 바닷가 산비탈에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nbsp;  &nbsp; &nbsp;바닷가 마을 전남 목포의 온금슈퍼 속에서는 ‘조금새끼’라는 단어를 만난다.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면 바닷가 마을은 아주 북적였을 듯. 생각해보면 조금새끼는 2002년의 ‘월드컵 베이비’와 같다. 비록 그 단어 속의 정서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말이다. 조금새끼는 목포 바닷가의 고즈넉함과 짠기가 그득하다. 하지만 월드컵베이비는 케이크의 단 맛이 그득하다. 그런 느낌이다. 어느 순간 똑같은 간판 몇 개 수백개 즐비한 편의점처럼 줄지어 선 조각 케이크 같다고나 할까. 너무 달아서 머리가 울릴 정도인.&nbsp; 내 눈 앞에는 편의점이 수두룩하지만 이 봄날에는 저자가 그린 슈퍼를 찾아가 보고 싶다. 인스턴트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한아름 품고 있는 그런 곳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문을 열었을까…….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09/71/cover150/s5226309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09716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