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시빛 서재 (모시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1 Jul 2026 10:42:15 +0900</lastBuildDate><image><title>모시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모시빛</description></image><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두루미 잠자리[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7106</link><pubDate>Sun, 12 Jul 2026 1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71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7928&TPaperId=173871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19/71/coveroff/k1520379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7928&TPaperId=173871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a><br/>전영재 지음 / 목수책방 / 2025년 03월<br/></td></tr></table><br/>두루미 잠자리<br>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nbsp;전영재, 목수책방, 2025-03-14.  &nbsp;  <br>&nbsp;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가 이 땅에 생긴 지 벌써 73년이 되었다.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이니 곧 73주기가 다가온다. 이 여름, DMZ는 어떤 풍경일까.&nbsp;&nbsp;&nbsp;DMZ는 서해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248킬로미터,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과 북 4킬로미터 양쪽으로 조성된 철책에 갇힌 땅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냥 이곳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암흑과 같은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마치 폐허가 들어차는 느낌이었는데, 오래 전 스치듯 DMZ에 관한 다큐를 보고 그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었고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각인도 되었던 곳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DMZ에 관광투어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고싶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 방법만이 제한적이라도 근처라도 가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nbsp; 이 책은 많은 DMZ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방송기자 전영재 작가가 그동안 취재했던 DMZ의 다양한 생태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DMZ는 전쟁의 모습을 담은 폐허의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동물이 모여들고 식물이 자라도록 스스로가 회복한 공간이었다. 인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공간이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사라지자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고 풍요로운 야생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자연 회복력,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살아고 있는 곳에서는 멸종이 되어가는 동식물이 이곳에서 제 이름을 드러내며 달리고,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곳, DMZ. 그리하여 저자는 이곳을 이제 ‘분단선’이 아닌 ‘생명선’이라 명하고 있다. &nbsp; 보지 않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그곳에 동식물이 모여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철새들이 날아오고 씨앗들이 자리잡으며 하나하나 희귀 동식물이 생명을 움트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롭게 이곳을 변화시키고 있다.&nbsp; 어쩌면 날개를 가진 ‘새’들이 먼저 이곳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텃새들과 겨울을 보내려고 온 수많은 철새들―“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가운데 가장 기품 있고 아름다운 새로 여겨지는” 두루미, “전 세계에 50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 기러기, “ ‘새들의 황제’라 불리지만 사실은 사냥 능력이 없어서 죽은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고 사는” 독수리, “목뼈가 14개나 있어서 몸체를 움직이지 않고도 머리만 270도 돌려 사방을 볼 수 있는” 수리부엉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던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 “1912년 함경북도에서 한 개체가, 1927년 서울에서 한 개체가 발견되었다”라는 아주 낡은 기록만 있는 호사비오리 같은 멸종위기종 등 맹금류와 다양한 새들이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nbsp; 강원도 철원은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겨울 철새들에게 젖줄이 되는 ‘샘통’ 지역은 한 번도 언 적이 없는 곳으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늘 영상 1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철새들에게 얼마나 낙원같은 곳이겠는가. 그리하여 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미꾸라지 등이 많아 두루미과 새들이 이곳을 찾아 겨울을 보내고 떠나는 모양이다.&nbsp; 책속에 “두루미 잠자리”라는 사진이 있다. 야생의 동식물 이야기가 나오니 ‘두루미’와 ‘잠자리’가 연상되었는데 곤충 ‘잠자리’가 아니라 두루미의 침대(?), 침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느 저자가 취재하여 찍은 다양한 휘귀종의 동식물,&nbsp;예쁜 색감을 가진 다양한 새와 꽃, 식물 사진도 나오지만 ‘두루미 잠자리’ 사진이 인상깊었다. 왜인지 비무장지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졌고 울컥했다. 책 속 사진과는 다르지만 저자가 촬영한 영상 속 이미지가 유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어 캡쳐했는데, 책 속에 사진을 보면 기분이 다를 것이다.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두루미떼가 비무장지대 그 어느 곳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 모습……. 평화롭고, 아득하고… <br>“두루미의 잠자리” https://v.daum.net/v/20160229211005154/MBC (www.imnews.com)<br> &nbsp; 새들 다음에는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물을 토대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등장한다. 역시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물범, “야생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증식도 어려워 복원이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 광릉요강꽃, 이 광릉요강꽃이 어떻게 군락지를 이루게 되었는지, ‘둠벙’이라 부르는 물웅덩이 근처에 사는 수서곤충이며 희귀종 물거미며, ‘불새’라고 불리는 호반새, 희망의 상징 희망새 등이 또 얼마나 기껍게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nbsp; 다음으로는 가슴떨리게도 지뢰밭에서 살아가는 희귀한 동식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불리는 솜다리꽃, 신비의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고라니와 멧돼지, 삵과 너구리, 족제비와 하늘다람쥐, 호랑이, 반달가슴곰, 산양 등…. 4000~4500살 정도되는 습지, ‘자연의 타임캡슐’, ‘자연사 박물관’, ‘자연의 고문서’라 불리는 이탄층 ‘용늪’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야생 생물들이 살아가는 이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역사, 문화, 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원이며 가치가 있는지를 알리고 이 땅이 계속 희망과 생명의 땅이 되도록 이곳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에 관해 독일이 동서독 국경 지역을 그뤼네스반트(Grunes Band)로 보전한 사례가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참조하여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북한에 있는 옛 역사적 유적지와 이 생명력 넘치는 야생의 생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기원하게 된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19/71/cover150/k1520379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197143</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우리는 계절마다] - [소설 보다 : 겨울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11</link><pubDate>Thu, 09 Jul 2026 17: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349&TPaperId=17382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7/63/coveroff/89320423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349&TPaperId=17382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겨울 2023</a><br/>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br/></td></tr></table><br/>&nbsp;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br>소설 보다 : 겨울 2023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12-07.  &nbsp;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nbsp;  &nbsp;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엔 그랬다. 웃음보다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논리를 따지고 정의를 따지면서도 운명이나 운, 감각적인 것들에도 쉬이 끌리던 시절이었다. 쉽게 감정의 파고가 출렁였던,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나. 어쩌면 계절마다가 아니라 날마다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였기에 삶이 다채로웠던 듯도 하다. 실제로 그러했다기보다 현실이나 상황은 늘 그렀듯 그저 덤덤하게 흘러갔대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소용돌이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떠한 ‘사건’보다도 그저 늘 그러했던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해야 할 일이 명백하게 주어져 뚜렷함에도 그저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우리는 계절마다」의 ‘희조’와 ‘미정’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무섭구나’.&nbsp; 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내게로만 뻗어나갔다면 요즘 아이들은 내향적이라고 하면서도 제 감각이나 감정의 파고를 외부로 표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 잠시 잠깐 학생들 무리를 스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욕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그들의 언행은 꺾이지 않고 전달된다. 의식하며 사용하는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건지 그것이 더 놀라운 청소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보이는 곳에서와는 다른 또 어떤 폭력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지.&nbsp; 경제적으로 풍족한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아이들의 ‘결핍’은 무엇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결핍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비슷할 듯한데, 어떤 점이 크게 다르고 어떤 조건이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크게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선 더더욱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지 않을 테니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익숙해 주위 사물을 게임 속 배경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래도록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자극적인 게임에 노출된 채 게임 속에 빠져 현실 속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세상이 사람들 대부분을 NPC로 인식한다는 게 머리로는 인식되면서도 가슴으로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런 인식에 어른이 책임이 있다면, 미정의 엄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할까. 더불어, “너네가 결코 걸레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를 붙인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nbsp;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nbsp;  &nbsp; 개학날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이미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한학기 내내 친구없이 생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아무래도 생활반경이 좁아서 잦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학교에서 맺게 되는 관계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터넷 속으로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하여 관계맺음,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게 된다. 너와 나만이 지닌 ‘비밀스러움’으로 형성되는 유대, 단순히 친구 관계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나’와 ‘미정’에게 시작되었다.   &nbsp;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nbsp; &nbsp;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웃기지도 않아. 은총이니 뭐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 널 겁주려고 그랬던 거야.”  &nbsp;  &nbsp; 왜 그 나이대는 수많은 긍정적인 단어 속에서도 죽음이나 허무와 같은 불온한 단어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선 그러한 단어 속에 빠진 나를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나’의 은총! ‘나’는 그것을 “우리가 가진 열띤 열망”이라 생각해왔다. &nbsp; 열망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시절이 청소년인 것은 아니다. 열망이란 특정한 세대의 소유물은 아니며 다만 그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어리숙하고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은총’의 마음으로 다소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변하는 시대, ‘비밀스러운 서사’를 공유하고픈 청소년들의 열망은 정말 그랬던 것이 의심스럽게도 표출되고 노골적이 되어 간다. 청소년의 불온한 열망이 “계절마다” 반복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면,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음침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르게’ 다루어야 할 때다. 그들은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은총’과는 다른 ‘은총’이 이들을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꼰대같은 염려의 마음이 든다.   &nbsp;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7/63/cover150/89320423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77634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관계가 달라졌다면[반려빚] - [소설 보다 : 가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06</link><pubDate>Thu, 09 Jul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989&TPaperId=173828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80/94/coveroff/893204198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989&TPaperId=173828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가을 2023</a><br/>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9월<br/></td></tr></table><br/>관계가 달라졌다면<br>소설 보다 : 가을 2023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문학과지성사, 2023-09-07.  &nbsp;  &nbsp; &nbsp;반려빚?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사’였다. 그러니까, ‘빚’을 반사하는 것.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인지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은데도 전혀 그런 의미의 반려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생각이란 내가 익숙한 단어에, 상황에 맞추어 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문자로 ‘반려’라는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어찌나 ‘반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소설의 ‘반려’는 반려동물을 이야기할 때의 그 반려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로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nbsp; 이 소설은 ‘정현’ 인생의 반려인 1억 6천만원의 빚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친구 ‘서일’로 인해 생겼으나 서일이 떠난 뒤로도 정현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남은 빚. ‘빚’을 두고 뉴스에서나 벌어질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정현에게 어떤 형태로 ‘반려’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믹스커피를 생각하고, 장보기 품목이 달라지고 숨쉬는 순간마다 ‘빚’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데, 한마디로 빚이 ‘정현의 목줄’을 잡고있는 형태다.   &nbsp;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얼마나 더? 하도 오래돼서 요샌 빚이 내 반려자 같고 그래.”정현의 말에 서일은 정색을 했다.“넌 진짜 뭘 아껴본 적이 없구나. 어떻게 반려자랑 빚을 비교해? 그건 반려라는 단어한테 모욕이야.”   &nbsp;  &nbsp; 힘들고 죽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서술하지만 ‘반려빚’이라 칭하며 그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또한 없고 서일에 대한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빚’으로 자조하며 ‘빚’을 일상화하는 정현의 행동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서일의 말처럼 “진짜 뭘 아껴본 적 없는” 이의 방식은 이런가 싶었다. 한편으론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정현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불편한 것이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며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분명 전세사기를 비롯하여 팍팍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얘기인데,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님에도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다소 꿈처럼 여겨졌다. 정현이 늘 꿈속에서 맞닥뜨리는 반려빚의 에피소드들처럼, 아직 꿈인 듯 몽롱한 기분. 소설은 마지막까지 꿈,이었다. &nbsp; 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생각지 못한 다른 결로 나아가야 그것이 소설이겠지. 또한,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정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순응, 아니니 목줄에 잡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nbsp; 하지만, 저 빚이 이성애 관계에서 생긴 빚이라면 정현의 태도가 같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에서 내내 정현의 태도는 ‘빚’이 아니라 ‘서일과의 관계’, ‘서일에 대한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려’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 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첫 이미지에 맞게 정현에게 ‘반려빚’은 평생은 아니었다. 원인인 ‘서일’이 돈을 되돌려 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실제 ‘빚’의 주도자인 서일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던 정현은 어떻게 하려나.   &nbsp;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려빚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 와 현관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 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80/94/cover150/893204198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80947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소설 보다 : 여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8</link><pubDate>Tue, 07 Jul 2026 1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571&TPaperId=173787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01/10/coveroff/89320415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571&TPaperId=173787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여름 2023</a><br/>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6월<br/></td></tr></table><br/>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br>소설 보다 : 여름 2023,&nbsp;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3-06-09.  &nbsp;  <br>&nbsp; 제법 되뇌던 말이다.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nbsp; 이 말을 소설 제목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차피’라는 말에 가득한 허무를 살짝 비켜내고 다른 이들은 어떤 순간에 저러한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어차피’란 말이 중간중간 간섭하며 ‘어차피 결론은 하나일 텐데’라고 하고 있었지만.  &nbsp;  희주는 자신을 저격하며 말하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대놓고 회원님은 뒤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강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nbsp;  &nbsp; 희주의 눈에 비친 것처럼 나 또한 주호가 답답했고 상황 자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수영 초급반에서 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 뒤로.” &nbsp;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쭈뼛쭈뼛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번 있고 나면 적당히 자리잡은 질서 속에 수업은 이어진다. 수영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고 초급반 수강생들은 줄줄이 일정한 흐름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막혀 버린다. 그건 선두에 선 주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주호는 매번 늘 앞에서 물살을 가른다. ‘잘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주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호’가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호로 인해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여러 날 겪었다면 왜 주호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호를 앞질러 나서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던가? 눈치없는 남자 주호에게 폭발하는 강사를 보며 생각했다. 왜 강사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늦게 자기 화를 못 누르고 주호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건가.&nbsp; 수영장의 주호를 보면 일상에서도 어벙벙하며 세상일에 무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호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호는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안전문제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어느 직장이든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공장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쉬이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는 주호의 마음을, 그 ‘난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nbsp; 희주 또한 주호와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큐를 본 후 ‘우리 모두 30년 후에는 다같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가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다. 희주의 이 말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누구도 희주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지구는 죽고 인간은 죽는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nbsp;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수영 강습반에서 만나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음을 배우고 서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소설에 담겼다. 언뜻 보면 ‘찐따’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연민하는 과정은 제목이 주는 체념이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고 한편으론 동화같기도 하다. 전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의지하며 상처받은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려는 모습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nbsp;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그럴 수가 있는 걸까요.˝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중동이나 갈망 없이도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nbsp;  &nbsp;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결국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졌는데, 어차피 멸망할 세상 남을 해하는데 애쓰기보다는 희주처럼 애틋한 마음을 주위로 돌려 오지랖 좀 부린들 어떠하랴 싶었다. 누군가는 허무를 누군가는 사랑을. 아직 버티고 나아가는 세상에서 후자가 더 필요할 듯 싶다.  &nbsp;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50년 뒤, 빠르면 30년 뒤에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생각했다.  &nbsp;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01/10/cover150/89320415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011040</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오늘 하루, 삶의 풍경[소설 보다 : 봄 2023] - [소설 보다 : 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4</link><pubDate>Tue, 07 Jul 2026 15: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334&TPaperId=173787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8/29/coveroff/89320413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334&TPaperId=173787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봄 2023</a><br/>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3월<br/></td></tr></table><br/>오늘 하루, 삶의 풍경<br>소설 보다 : 봄 2023,&nbsp;강보라,&nbsp;김나현,&nbsp;예소연, 문학과지성사,&nbsp; 2023-03-14.  &nbsp;  <br>&nbsp;「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nbsp; 이런 제목은 주로 그림 제목에서 보게 된다. 정물화가 떠올려지는 그림, 뱀과 양배추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릴까를 상상하다가 이런 제목의 그림이 정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그림을 찾아보기부터 했다. 아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딱히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을 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림 또한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나름대로 이런 제목으로 어떻게 뱀과 양배추가 그려질지 구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이라면?  &nbsp;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은 그 시절 현오와 나 사이에 통용된 은밀한 놀이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사람인지, 시대의 흐름 덕에 과대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부자여서 모든 게 가능했던 경우는 아닌지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어떤 때는 일종의 반작용으로, 그저 교양 없고 몰취미한 사람들이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nbsp;  &nbsp; 소설을 읽자마자 특정한 이가 떠오르며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게 되었는데, 아주 우습게도 소설 속 문장마다 그 사람이 일치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만 남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 이건 이런 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전형성인가. 아니, 자신이 구별에 따라 남에게 함부로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는 것 없이도 타인을 함부로 규정짓고, 제 허영에 맞추어, 제 기분과 안위에 맞추어 남을 재단하는 사람이 이 땅에 많다는 건, 많더라도 그 사람을 마주하며 잠시라도 함께 일해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나와’ ‘현오’에겐 ‘놀이’라니…. 맞다. 숨쉬듯 당연하게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사람을 나도 안다.  소설 속 ‘나’는 여행을 떠나 그 속에서 배낭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수히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을 듯싶다. 아, ‘딱히 변화될 리 없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아는 모두가 얘기했지.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하느니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무용할지라도.&nbsp;&nbsp;「오늘 할 일」을 보며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오늘의 다짐으로 굳게 하면 어떨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nbsp;「오늘 할 일」의 두 사람처럼 나 또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 것을 해왔다. 물론 그건 일상보다는 ‘업무’를 수행할 때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해야 할 목록이 길어질 때면, 삶이 이다지도 바빠서야 되는가 정신없이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업무가 여유로울 때는 굳이 업무를 끄집어내어 미리 일 할 거리를 정리하느라 또한 바빴던. 결국 늘 바쁘고 바쁜 삶의 연속이 되어버리는 업무 목록 리스트 작성!  ‘나’와 ‘선일’은 다이어리에 할 일을 작성한다. 그건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참 다른 느낌인데, 실제 두 사람이 쓴 할 일 목록이란 ‘나’의 경우 “출근길에 책을 읽는 것,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것, 그리고 일을 맡아줄 업체를 찾는 것”, 직장을 그만두고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남편 ‘선일’의 경우 “원고지 30매 쓰기”다. 이들의 하루하루의 목록이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다. 또한, 해야 할 일 뒤로 집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걱정, 이사한 집의 소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불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에 산적한 일들 속에서 작은 일하나 게획대로 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럼에고 그들은 매일 '오늘 할 일'을 적는다. 신혼부부, 이 두 청년들이 불안을 안고서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힘껏 하루하루를 달려나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 또한 청년이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요즈음 청년들의 문제적인 행동들에 관한 뉴스를 주로 접해서인지 이런 모습의 주인공들이 귀엽게 느껴지고 흔하지 않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했다. 원체 삶이 팍팍하여 작은 일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려는 청년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생각 나 안쓰럽기도 하고.   &nbsp;  지금 식탁에는 환한 속을 펼쳐 보인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오직 감상될 목적으로 거기 있는 것처럼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가능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속에 두서없이 할 일을 욱여넣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백지로 남길 수도 있었다. 무거운 닻이라도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보며, 나 역시 두 발을 묵직히 디딘 채 멈춰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nbsp;  &nbsp; 「사랑과 결함」은 위 두 소설보다 감정적인 격동이 많이 느껴진 작품이다.&nbsp; 어린 나에게 고모 ‘순정’은 맹목적인 사랑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한 대상이다. ‘순정’은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소박당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드세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다. 어린 시절 고모가 제게 준 사랑으로 그리고 자신 또한 삶에서 겪은 많은 일들로 ‘고모’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 ‘성혜’는 고모가 가진 그 결함이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그럼에도’라는 것을 이해한다. 흔히 이야기하듯 사랑이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을 소설로 보여준다면 이러할까. 그 대상을 이성이 아니라 ‘가족’으로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니라 ‘고모’를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이성적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감정, ‘사랑하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고모’가 사랑을 쏟아주었던 기억과 감정을 성혜가 가지고 있기에 고모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마음없이 마냥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또한, 왜 ‘사랑’받았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느끼게 한다.   소설에선 이렇게 말한다.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그렇다. 어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얼마만큼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사랑은 존재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의 방식과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8/29/cover150/89320413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982931</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모던타임즈의 재생[카나트] -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8097</link><pubDate>Wed, 01 Jul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8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1825&TPaperId=17368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2/21/coveroff/k5120318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1825&TPaperId=17368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a><br/>고선우.이연파.최장욱 지음 / 허블 / 2025년 09월<br/></td></tr></table><br/>모던타임즈의 재생<br>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nbsp;고선우,이연파,최장욱, 허블, 2025-09-19.  &nbsp;  &nbsp;  &nbsp; 유럽 폭염이 심각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파리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지중해뿐만 아니라 독일,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번지고 있다고. 뉴스를 보면 폭염 지역 기온은 40도 이상이며 45도 이상을 기록한 곳도 있다. 고온에 트램, 신호등, 선로까지 녹아내려 기차가 멈추고 전력공급 차질 등 도시 인프라가 마비･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300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아 위험에 노출된 더 많은 사망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nbsp; 유럽 폭염 속 우리나라는 장마 소식이 들린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여름, 우리에게도 폭염이 닥칠 거라고 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려는지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어릴 적 미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저 우주를 유영하거나 로봇이 등장하고 세상은 더할나위 없이 각진, 그러니까 기계가 가득한 세계로 그려지곤 했다. 공상과학 글짓기나 그림에서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상과학의 세계엔 이토록 원시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제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자연’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자연을 극복해 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nbsp; 내가 어릴 적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상과학 글짓기 대회가 아닌 ‘한국과학문학상’ 속 세계는 어떠할까. 미래과학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놀라움, 경이, 찬탄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경각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인간의 삶이 늘, 그러한 것인지도.&nbsp; 한국과학문학상 여덟 번째 작품집 「카나트」는 이러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소설이었다. 아주 먹먹한 느낌이 드는. 순간, 과학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nbsp; 카나트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개발된 지하수로로 사막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여 유용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간 기술의 집합체다. 고선우의 소설 「카나트」의 세계 역시 여전히 카나트가 필요한 사회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사막화로 물이 비싼 도시, 거대한 수로 카나트에서 물을 공급받는다면 물을 가진 자가 아마도 상위의 권력자가 아닐까. 거대 기업 ‘오아시스’가 이 역할을 맡는다. 오아시스는 물의 공급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까지 제시한다.   &nbsp;  ‘오아시스’는 바이오 로봇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오랜 기간 연구 개발한 끝에, 인체의 장기와 팔다리의 일부분을 로봇화하는 하이브리드 생체 로봇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로 인체의 물 의존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가 곧바로 학계에도 발표되었다.  &nbsp;  &nbsp; 이건 폭염 문제 해결방안으로 인간이 폭염에 견딜 수 있도록 신체 일부를 로봇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인데, ‘로봇화’ 수술의 대상은 사회에서 부를 가진 자의 몫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고? 로봇화 수술 비용 문제를 생각하더라도 그건 가진 자나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봇 신체를 갖고자 가지지 못한 이들은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아, 이래서 내가 작가가 못되는 모양이다.  &nbsp;  학교에서 배운 ‘노동자 계층을 위한 역사’에서 선생님이 가장 강조했던 건 여러 세기에 걸쳐 반복되었던 혁명과 투쟁 뒤에도 결국 순응한 자들만이 살아남았다는 교훈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었다. 인류의 90퍼센트가 사라졌던 그날에도 살아남은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섰던 노동자, 그에 맞서지 않고 길들여진 사람들. 딱 할아버지의 삶이 그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마실 물이, 다른 손에는 먹을 음식이 있었다. 그 이상을 쥘 손이 없기에 더 많은 걸 꿈꾸지 않아야 했다.   &nbsp;  &nbsp; 소설은 시작부터 ‘노동자 계층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시작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시감은 소설의 결말이 예견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늘 그래 왔던 것을. 현재의 노동 시장은 점점 인간 대신 AI가 대체할 것이라 하고 있다. 나아가 피지컬 AI가 등장하며 인간의 노동력이 점점 필요없어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카냐트 속 세계에선 일반 로봇보다는 ‘인간의 몸을 기초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로봇’이 더 대접을 받는다. ‘오아시스’ 노동자들에게 효율성을 강조한다. 물부족 사회에서 인체의 물 의존율을 낮춘 노동자란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겠지. 그렇다면 아예 ‘하이브리드 로봇’보다 그냥 일반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욱 더 효율적이진 않을까? 굳이 라이더들에게 하이브리드 로봇화를 해주는 ‘오아시스’의 세계. 이 사회에선 인간화 지수 20%, 로봇화 지수 80%면 인간 등록이 말소된다.&nbsp; ‘오아시스’의 라이더 ‘아이작’은 업무 중에 잦은 실수를 하고 종종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할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날들, 몰래 우물에 들어가 물을 훔쳤던 날의 기억, 훔친 물맛이 주는 기쁨과 두려움. 그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이 떠올리는 옛기억처럼 그립고 먹먹하다. 기억은 부분부분 생각나지 않기도 하는데 뭔가 계속 희미하거나 파편화되고 지명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작의 신체는 건강하다.&nbsp; 아니, 아이작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필연적으로 재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라 한다면, 아이작은 하이브리드 로봇인 건가. 아이작은 재수술을 받고 배달 업무에서 물 저장소 감시자의 지위로 올라서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자부심을 느낀다”. ‘오아시스’는 효율적인 업무와 생존을 위해 노동자에게 '신체 기계화 수술'도 진행해주며 ‘하이브리드 로봇’ 지수가 높아질수록 더 좋은 업무를 제공하는 아주 착실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오아시스’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작’들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 아이작들은 꿈꾸지 않는, 꿈꿀 수 없는…….&nbsp; 소설을 읽고 나면 왜 먹먹한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은 아이작이 보여주는 파편화된 어린 날들의 얘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과거는 서정적으로 서술되어 있고 되돌아가지 못할 추억들은 언제나 그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생을 마감하는 자의 의식처럼 점점 흐릿한 기억이기에 더더욱. 생을 마감하는 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작은 이미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로봇화 수술의 부작용이 기억상실이라면 ‘아이작’은 점점 더 기억을 잃어버리고 건강한 신체만을 가진 채 업무 매뉴얼만 정확히 숙지하며 충실한 업무를 지속할 것이다. 1936년 영화 모던타임즈의 찰리처럼 ‘오아시스’가 만든 철저한 ‘하이브리드 노동자’로서 말이다. 이것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어지는 “노동자 계층의 역사”다. &nbsp;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2/21/cover150/k512031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2217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눈과 돌멩이] - [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link><pubDate>Tue, 30 Jun 2026 1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off/k622135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a><br/>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br>눈과 돌멩이-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nbsp;&nbsp;위수정,김혜진,성혜령,이민진,정이현,함윤이, 다산책방, 2026-01-23.  &nbsp;  &nbsp;  &nbsp;&nbsp;대상작으로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 이민진 작가의 「겨울의 윤리」라고 한다. 대체로 수상작 모두 재밌게 읽었으나 나 또한 이 두 작품이 소설의 분위기나 문체 등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겨울 이미지다.&nbsp; 일본의 눈 덮인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눈과 돌멩이」를 읽으며 『설국』이 생각났다. 특히, 일본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자동적으로 설국이 생각나는데, 생각보다 『설국』의 세뇌가 강하구나 새삼 느꼈다.&nbsp; 눈을 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라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며 쌓이는 ‘눈’을 보고픈 강렬한 욕구가 남아 있는지 소설을 보면서 눈내리는 산골짜기 어디쯤으로 가고 싶었다. 어쩜, 이런 기분에 나도 친구들에게 눈풍경 좋은 곳으로 여행가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여행장소를 정하고 여행 갈 날을 기다릴지도. 그러나 그 이후……. ‘수진’처럼 죽은 후 나의 유골을 여행하고자 한 그곳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암 투병 중 자살한 친구의 유골을 다른 나라에 가서 뿌리고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죽은 후 나의 친구들은 나의 유언대로 유골을 다른 나라에 뿌려 줄까, 난 어떤 친구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nbsp;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리울 수 있나?그리워? 그립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nbsp;  &nbsp; 수진의 친구 ‘유미’와 ‘재한’은 유골을 들고 일본으로 향한다. 암투병 중 자살한 수진은 자신의 유골을 일본 나고야 도가쿠시 신사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폭설까지 내리는 낯선 곳은 그들에게 매순간 불안과 위험을 준다. 그들의 기억 속 수진은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기도 하고, 이해못할 유언과 낯선 곳에서 폭설로 인해 고립될 상황에서 수진을 떠올리며 믿기지 않는 현실과 함께 다양한 감정에 빠져든다. 가까웠던 누군가가 떠나면 누구라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 무력함과 슬픔을. 이어서 뒤따르는, 대상이 모호한 분노도”   &nbsp;  소리와 풍경의 불일치가 오히려 재한의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것은 낙관이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먼 곳의 풍경은 천천히 멀어졌고,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타인의 기억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재한은 창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이쳤다. 뻐근한 눈알을 깜빡였다. 슬픔이 날아가도록. 저 흰 풍경 속으로 모두 다 사라지도록. 유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송이는 얼굴에 닿는 순간이 끝이었다. 바늘처럼 날카롭게 톡, 치고 소멸하는 차가운 감각.   &nbsp;  눈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국 미치게 만든다. 자비를 모른다.  &nbsp;  &nbsp; 설경은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수많은 감정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고립되기 전 마주쳤던 ‘여장 남자’인 근처에 사는 일본인 ‘코요’. 코요에 대한 편견을 가득 안고 있지만 고립 상황에서 현지인의 도움은 매우 절실하다. 이런 상태에서 ‘코요’를 만난다는 건, 소설에서 ‘코요’가 이들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알게 한다. 재한은 ‘코요’에게 편견을 가지고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남성인 ‘재한’의 이러한 반응은 편견없는 ‘유미’와 대조되는데, 여행 내내 현실을 대하는 태도나 수진에 대한 기억과 감정 표출방식에서 두 사람은 차이가 나타난다.&nbsp; ‘코요’의 존재가 이들과 연결되는 지점, 그 역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는 점이다. 코요는 자신의 집 정원 한곳에서 그의 연인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코요’의 애도의 형태는 재한과 유미보다 더 적절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적절함’이란 내내 재한과 유미가 그들의 우정이 ‘지극히 느슨하고 끊임없이 수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계속 그들의 불안하고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수진의 유골을 뿌리기 위한 이 여행에서 표출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애초에 정말 이런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나 싶기도 하다. &nbsp; 그러나, ‘코요’의 연인은 죽은 것이 아니라 떠나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또다시 이미 ‘코요’의 그의 연인을 위한 애도 방식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주춤해진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그래, 사람에 대한 마음이란 그들에 대한 기억하는 방식도 잊기 위한 방식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온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식은 정해지지 않은 것일 텐데도, 과도하게 뭔가 그래야 하는 것이 있기라도 하는 양 그것에 매몰되었나 싶다.&nbsp; 수진과 재한, 유미. 그들이 처음 일본 여행을 계획한 것은 일본의 설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히쓰마부시란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장어요리로 나고야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라는데 재한은 코요와 대화를 나누며 ‘히쓰마부시’를 ‘히쓰으 마부시이’라고 잘못 발음하였음을 알게 된다. 재한은 장어덮밥을 이야기한 것인데 잘못된 발음으로 인해 재한은 ‘비통’, ‘눈부시다’라는 단어를 읊조린 것이다.&nbsp; 이제 고립도 끝나고 무기력하고 미치게 만드는, 자비를 모르는 눈도 그쳤다. 밤이 지나 ‘흩날리던 희뿌연 풍경 속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나무 사이로 내리던 눈송이들 속에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둔’ 그들은 무엇을 할까. ‘수진’을 ‘수진’에 대한 기억을 떨구어 내고팠던 그들의 아침은 어떤 모습이 되려나.<br>  숲에서 나오며 재한은 주머니 안의 돌멩이를 만져보았다. 코요의 눈빛과 그의 정원이 떠올랐다. 여기다 버리고 갈까, 잠깐 고민하다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돌멩이는 국외 반입 금지일 텐데. 재한은 앞서 걷는 유미를 불렀다. 유미가 뒤돌아 재한을 보았다. 하얀 풍경 때문인지 유미의 얼굴도 환했다. 돌멩이는 유미에게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히쓰으 마부시이 먹으러 가자. 재한은 일부러 끝을 길게 늘여 말했다. 재한은 주머니 속 돌멩이를 꼭 쥐었다. 그것은 단단했고 언제든 만질 수 있었다.   &nbsp;  &nbsp; 계속 이미지와 감각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말이 생각나는, 눈송이보다 돌멩이를 움켜쥐고픈 마음이 들었던 소설이다.  &nbsp;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150/k622135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1655</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주인 노예 남편 아내] -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link><pubDate>Wed, 24 Jun 2026 1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off/k0520320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a><br/>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br/></td></tr></table><br/>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br>주인 노예 남편 아내,&nbsp;우일연, 강동혁, 드롬, 2025-12-24.  &nbsp;  <br>  &nbsp;&nbsp;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의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보긴 하지만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이 이유도 크다. 보면서 계속 앞장과 마지막장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 말, “이거 소설이었나?” 이 책은 퓰리처상 보도 부문 수상작이다.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고 실제 이야기다. 책을 읽을수록 그 사실을 잊고 다시금 이 글이 주는 이야기에 놀란다.&nbsp;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것을 어느새 잊고 두 부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왜 그동안 이 두 부부에 대해서 몰랐을까. 난 엘렌 크레프트도 윌리엄 크래프트도 처음 알았다. 이들이 미국 남부를 탈출한 ‘노예’라는 것을. 더구나 여자인 엘렌이 백인 주인으로 남편인 윌리엄이 흑인 노예로 변장하여 탈출했다는 것을. 책 제목은 그것이었다. &nbsp; 막연하게 노예는 ‘흑인’일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가 엘렌이 백인이라고 하는 것에 놀란다. 엘렌은 혼혈로 피부색이 밝았기에 병약한 백인으로 분장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여정은 길고 위험하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노예들이 그들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경로가 아닌, 기차와 증기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담대한 방법으로 노예 부부가 탈출하는 그 긴 여정의 이야기다. &nbsp; 두 부부는 1848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에 살고 있던 노예였다. 이 책에선 ‘노예’를 ‘예속 피해인’, 노예를 부리는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 명명한다.  &nbsp;  이 시기에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nbsp;  &nbsp; 우리나라 또한 노비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다. 어떻게 이다지도 역사는 다를 게 없을까. 엘렌이 노예가 된 이유는 어머니가 노예이기 때문인데, 엘렌의 어머니 또한 혼혈이었다. 자기 자식을 노예로 만드는 아버지라니. ‘흑인’의 피에 그토록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흑 성적 대상으로는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순이라니.   &nbsp;  브레머는 엘렌에게 왜 예속 가해자들에게서 도망쳤느냐고 물었다. 브레머는 그들이 엘렌을 학대했는지 궁금해했다.엘렌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잘해줬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지는 않았죠.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nbsp;  &nbsp;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엘렌의 저 말이 엘렌이 기나긴 여정을 버티는 힘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엘렌은 ‘예속 가해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또한 자신의 이복 자매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백인’ 중심, ‘백인’ 우월인 시대, 엘렌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위장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순수한 혈통 중심의 사회, 왜 인종 간 차별이 계급이 생기게 된 것인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지금 시대에도 결국 여전한 차별과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 참담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이 떠나온 세계는 “흑인이 말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세계, 아무리 자유 흑인이라도 총을 들었다가는 등에 39대의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세계, 백인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사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인 세계”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음과 같은 세상이었다.  &nbsp;  별만 떠 있는 새벽이 오기 전인 이 시간에는 많은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나온 풍경에는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이곳에는 커튼과 붉은 깃발이 달린 노예 우리나 경매장이 없었다. 담장이 높고 가시 박힌 슈거 하우스도 없었다. 소금물 웅덩이나 후추 병, 소금자루가 갖추어진 채찍이나 쳇바퀴도 없었다. 부부나 부모나 아이가 판매되는 법원도 없었다.  &nbsp;  &nbsp; 두 부부가 ‘예속 피해자’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탈출의 긴 여정 속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도움을 준 이들 덕분이다―물론, 엘렌은 이들의 이 여정에 ‘신앙’의 힘이 있었음도 얘기한다.―그중에는 그들과 같은 ‘예속 피해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이들 부부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의 힘은 ‘예속 피해자’가 증가할수록 더욱 더 강해지고 견고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단지 현재 삶의 평안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단순함을 떠나 보편적인 문제 인식으로 확산되기까지, 또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다.&nbsp; 이 부부의 여정은 실화이기에 이들이 노예제도가 성행하는 남부를 탈출하여 자유의 땅으로 도착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시점에서도 이들의 탈출 여정이 놀라운데 당시에는 어떠했을까. 이들에 대한 비판과 찬탄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들로 인해 노예문제에 대한 논쟁 또한 가속화되었을 것이고 이들을 영웅화한다거나 무엇에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고 깎아 내리려는 이들도 있다.   &nbsp;  엘렌은 대단히 유능했고 큰 인기를 얻었으며 태도도 자신감 있게 변했다. 엠마 미첼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허영심을 갖거나 자기 분수를 잊을지도 모른다고 약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엘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을 여자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제가, 단지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우쭐해질 거라고 생각을 대체 어떻게 하실 수 있나요?”  &nbsp;  임신 마지막 3개월 동안, 엘렌은 남부에서 더 많은 나쁜 소식을 들었다. 신문에서는 엘렌이 자유롭게 살면서 너무 불행해진 나머지 남편을 버리고 미국 신사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며 예속 가해자들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애걸한다는 기사가 실렸다.마치 남부의 권위자들이 엘렌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녀의 몸을 되찾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력에 괴로워한 나머지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차지하려는 것만 같았다. 엘렌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이 없으며, 그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말이다. 그들은 엘렌을 아내가 될 능력도 없는 사람, 남편을 버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들은 가짜 뉴스를 통해 엘렌의 의지를, 욕망을 도용하려 했다.   &nbsp;  &nbsp; 이 책 전반에서 이들이 무사히 자유의 땅으로 탈출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면-우습게도 이 책이 그들이 무사히 탈출한 기록임을 알면서도-, 후반부에는 이들 부부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엘렌’에 대해 아니 ‘여자 노예’에 대해 가지는 사회의 압력은 편견은 ‘인간에 대한 억압 철폐’를 주장하며 ‘평등’을 외치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모순되게 이어지는지…….   &nbsp;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크래프트 부부가 받은 반응을 보면, 이들이 앞서 한 여행이 성공한 이유는 엘렌이 백인 행세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이 많고 장애가 있는 백인 남자 행세를 했기 때문임을 잘 알 수 있다. 크래프트 부부가 그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서로 친밀한 관계나 남편과 아내라는 점,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성적인 친족 관계’라는 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드러난 지금, 크래프트 부부는 조지아주를 떠나 이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편견에 마주하게 되었다. 남부를 벗어나고 미국을 벗어났는데도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인과 노예, 그건 아니라도 주인과 하인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졌는데도 말이다.  &nbsp;  &nbsp; 작가는 “엘렌의 성공은 그녀가 속한 세상의 위선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라고 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역사가 이미 알려주었지만 이 책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구조는 더더더 세월이 지나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아니, 어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해서 ‘꺼리’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고 부르면 되려나.&nbsp; 이처럼 여전히 ‘차별 꺼리’를 양상해내는 국가들 혹은 사람들이 있지만, 두 부부가 지나온 풍경이 변화였듯이 역사는 어쨌든 변화해왔다. “노예와 노예주라는 두 범주의 사람이 ’원래‘ 존재하지 않으며, 납치와 인신매매가 등 예속화(enslaving)”하는 것이 문제다.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냐와 더불어 속도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문제가 되는 제도를 ‘인식’하였음에도 그것을 철폐하지 않으려는 이들로 인해 계속 ‘예속 피해자‘가 생겨난다. 이 땅의 “예속 가해자”의 “예속”에 대한 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인식이 “속도를 갖춘 가능성”에 의해 빨리,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150/k0520320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181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매혹적인 밤[밤의 반만이라도] - [소설 보다 : 봄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60</link><pubDate>Thu, 18 Jun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32&TPaperId=17341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86/99/coveroff/89320426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32&TPaperId=173419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봄 2024</a><br/>김채원.이선진.이연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03월<br/></td></tr></table><br/>매혹적인 밤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br><br>소설 보다 : 봄 2024,&nbsp;김채원, 이선진, 이연지, 문학과지성사, 2024-03-14.  &nbsp;  <br>”그거 아니? 사람들은 누구나 밤을 갖고 태어나. 갓난아이 속에 갓 난 어둠이 있는 셈이지. 그런데 사람의 몸속에 밤이 심겨 있는 건 아주 잠깐뿐이야. 보통 사람들은 탯줄처럼 밤과 연결되어 있다가 밤에게 버림받아. 너도 그렇고. 그런데 나랑 내 딸은 버림받지 않았단다. 밤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기를 선택했고, 내가 계속 밤을 품고 있기를 선택한 거야. 너, 내가 앞이 안 보인다고 눈에 뵈는 것도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천만에. 나는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에 무슨 꿍꿍이가 들어차 있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어. 다 내 밤 덕분이지. 그리고 너도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이담에 나는 내 딸한테 내 밤을 물려줄 거란다.“  &nbsp;  &nbsp; 빛조차 감지 못하는 전맹인 엄마 ‘미수 씨’의 말이다. 보통 밤은 어두움이고 불길하고 불안정함을 대표하는 말이다. 다운의 엄마 미수 씨의 ‘밤’은 그렇지 않은 걸까. 제 아이에게 ”밤을 물려줄 거라“ 말하는 저 자랑찬 언사라니. ‘밤’이 장애를 말한다면 다운은 전맹인 엄마 미수의 장애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결국 제 엄마처럼 흰 지팡이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다운이다. 엄마는 제 말을 잘 지킨 셈이다.&nbsp; 어떤 존재에게 매혹됨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닮고 싶게끔 한다. 사소한 하나라도 같은 것을 찾아내고야 말며 닮아지려 버둥거리게 한다. 어린 시절엔 동화 속 공주가 그렇게 부럽고 좋다고 하면서도 마녀에게 끌리게 된다. 겁먹어서 얼어붙은 건가? 마녀들을 매력적으로 그리며 기존 동화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속절없는 끌림은 결핍과 욕망에서 발현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nbsp; 이들 모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인 ‘미숙’ 또한 다운을 좋아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끌림이 있는 만큼 제게도 ‘밤’이 있노라(”나한테도 있어요, 나만의 밤이“) 외치며 기꺼이 제 밤을 찾아내고야 만다. &nbsp; 미숙의 밤들……. 미숙의 삶에 켜켜이 쌓인, 묻어둔 어떤 밤들. 어쩌면 미숙은 제가 가진 ‘밤’이 있기에 그 모녀에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 삶 속 그 밤들이 마냥 어두운 채로 제 삶을 휘감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을지도. 조금씩 꺼내는 미숙의 ‘밤’이 미숙을 외롭고 힘들게 두지 않고도 미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임을,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위로와 격려, 채찍을 얻었을지도 모른다.&nbsp; ‘밤’을 힘있는 매혹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아련함이 있다. 무서운 어떤 것에 대한 이미지가 그 또렷한 경계가 파스텔톤으로 바뀌는.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86/99/cover150/89320426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586999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반려, 거미[거미는 토요일 새벽] - [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53</link><pubDate>Thu, 18 Jun 2026 1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419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035979&TPaperId=173419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9/44/coveroff/k7920359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035979&TPaperId=173419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a><br/>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br/></td></tr></table><br/>반려, 거미<br>거미는 토요일 새벽,&nbsp;&nbsp;정덕시, 은행나무, 2024-11-25.  &nbsp;  <br>  &nbsp;&nbsp;“개가 사람을 물었는데”&nbsp; 옆집 개가 사람을 물었다. 피를 닦을 휴지를 찾고 병원 얘기가 오가는 소리가 휴일 새벽 동네를 흔들었다. 개에 물린 남자는 다음날도 찾아와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외쳤다.&nbsp; 옆집 대문을 지날 때면 개가 짖을 때가 있었다. 개를 키우지 않고 개의 습성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개가 짖을 때면 가끔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옆집인데 설마 경계한다고 그렇게 짖어댈까 싶어서. 왜 어떨 때는 짖었다가 어떨 때는 짖지 않을까 의아함도 가지며. 사람을 물은 저 개가 또 사람을 물게 될까. 그동안 짖는 일은 있어도 사람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왜 그 사람은 물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정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반려동물 관련 다양한 산업이 성행하고 물림 사고 등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 반려동물 유기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nbsp; 반려식물도 키우기 힘든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더더욱 난제라 내게 속하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반려동물’을 너무나 제한적으로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다.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일은 그또한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일 테니……. 어쩌다 나도 ‘타란툴라’를 마주치면 스파크가 튀거나 은근하게 소유하고픈 마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nbsp; 이 책은 반려동물 ‘두희’에 관한 이야기다. 반려동물의 종류는 ‘거미’, ‘타란툴라’이고 화자인 수현에겐 17년을 함께 한 ‘가족이었다’. ‘두희’의 죽음으로 시작해 어떻게 두희와 함께 하게 되었는지 ‘두희’와 함께 했던 날들을 회고하며 ‘두희’가 수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nbsp;   내 인생에 블루프로그가 없었다면 어쩌면 내 삶은 훨씬 평탄했을지 몰랐다. 두희가 없는 삶 속에서는 두희로 인해 엄마와 척을 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소라와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또 타란툴라에 대한 편견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지금보다 단조로운 삶이 분명했다. 나는 단순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내 인생에 블루프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포포를 지키고 싶어하는 원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와 당신이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무언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래서 서로를 관찰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건 내게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nbsp;  &nbsp; 그러니까 결국 반려거미를 보내고 남아있는 자의 넋두리다. 떠난 것에 대한 애도이며 상실에 대한 위로다. ‘거미’를 반려동물로 삼고 살아가는 수현은 ‘거미’를 반려동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외롭고 힘겹다. 수현은 ‘두희’와 교감하고 있지만 이를 쉬이 드러내지 못하며 ‘두희’로 인해 일상이, 관계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거미 ‘두희’를 떠나보내고 난 뒤의 수현이 기억하는 17년은 아주 길다. 두희가 가족이기에, ‘가족’에 대한 얘기가 많다. 경험한 자로서 수현이 느끼는 ‘가족’에 설명이 충분히 이해된다.   &nbsp;  “괜찮아. 가족이잖니. 원래 가족끼리는 한 번씩 싸우면서 지내는 거야. 너무 화목하기만 하면 그것도 밋밋하고 재미없어.” 엄마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사람처럼 활기가 넘쳤다. 엄마에게 가족이란 모든 사건의 주범이며, 동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것 같았다. 내게도 가족이란 마법 같은 단어였다. 그것은 평생을 할애해도 이해할 수 없는 단어였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단번에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두희는 내 가족이었다.   &nbsp;  어쩌면 가족이란 서로에게 불가피한 영역을 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nbsp;  &nbsp; 그렇다면, 위와 같은 의미에서 가족인 ‘두희’를 수현은 이해했을까. 얼마나. ‘반려묘’만 해도 사람의 손길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별히 스킨쉽도 쉽지 않고 비바리움에 두고 ‘보는’, 어쩌면 ‘관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두희’에 대한 수현의 마음이란 ‘교감’이 아닌 일방적 관계인 것은 아니었을까. 장식장에 둔 고가의 장식품, 명품가방을 대하는 그런 것. 글쎄, 반려견이 제 이름에 반응하지만 ‘두희’라 부르면 그것이 제 이름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타란툴라 거미에 대하여.  &nbsp;  “두희는 자기 이름이 두희였다는 걸 알았을까?”“그건 모르겠지만 걔도 너의 무언가를 알아채는 순간들이 있었을 거야. 그게 아주 찰나였을지라도.”&nbsp;&nbsp;오로지 열일곱해를 두희에게 마음쓰며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던 수현은 ‘두희’와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두희’의 존재가 그저 나쁘기만 한다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의미함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긍정의 영향을 미쳤음을,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그러한 존재였음을 느끼고 알아간다. &nbsp; &nbsp;내 생애 의미있는 어떤 것, 그것이 무엇인든 그 존재가 나를 더욱 더 단단하게 올려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9/44/cover150/k7920359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99444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우미는 愚美[최애의 아이] - [소설 보다 : 겨울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93</link><pubDate>Wed, 20 May 2026 2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396&TPaperId=172882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7/31/coveroff/89320433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396&TPaperId=172882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겨울 2024</a><br/>성혜령.이주혜.이희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br/></td></tr></table><br/><br>우미는 愚美[최애의 아이]<br>소설 보다 : 겨울 2024,&nbsp;성혜령, 이주혜, 이희주, 문학과지성사, 2024-12-09.  &nbsp;  &nbsp;  &nbsp;&nbsp;딱히 열광적으로 연예인의 팬이 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국 특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의 세계에 놀랄 따름이었다. 열광적이라고 한다면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굿즈’라고 표현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거나 팬덤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아이돌 팬덤은 경계 너머의 세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 경계를 넘어가는데 뭔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고(조건보다는 진입장벽인가), 그 조건이란 대표적으로 나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암튼.  아이돌 팬덤에 대한 관심과 인식 전환이 된 계기는 누가 뭐라 해도 12·3 불법계엄 이후 ‘남태령의 밤‘일 것이다. 눈오는 날의 키세스 군단, 응원봉. 그리고 응원 문화의 선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BTS 아미들까지. &nbsp; 하지만 세상은 넓고 급변하며, 사람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어떤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소설 보다 : 겨울 2024』에 수록된 「최애의 아이」의 ’우미‘와 같은 아이돌 팬도 있으니까. ’팬덤‘의 분위기와 지향하는 바가 있을지언정 개개인의 팬의 마음은 또 다를 테니까.  예전에, 커다란 스케치북 한 면을 모두 연필로 검게 칠하고 가수의 이니셜대로 지우고 있더라는 어떤 학생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미는 고무지우개 위에 유리의 이니셜을 새기고 회의 시간에도 유리의 이름을 반복해서 적는 아이돌 유리의 팬이다. 애정하는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행동은 소소하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우미는 다르다. 하긴, 그런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면 소설이 나아가겠는가. ’우미의 다름‘. 우미는 미성년이 아니며, ’최애‘ 아이돌 ’유리‘의 팬으로서 다른 것을 꿈꾼다.&nbsp; 최애 아이돌의 연인이 되는 것은 아이돌 팬이라면 한번쯤은 꿈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돌의 연애나 결혼 기사가 파파라치든 공식적인 연예기사로 보도되면 그 아이돌의 ’생명력‘은 끝인 경우도 허다하다. 우미는 ’연인‘이라는 환상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애 아이돌 유리의 아이를 갖는 것을 꿈꾸고, 이룬다. <br> 그렇게 남자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던 순간이, 여자로 평가하는 눈빛과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해져 움츠리고 다녔던 자신의 이십대가 생각나 슬퍼졌다. 거기에 대한 반발로 미소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이 박여버린 높은 미적 기준이 거꾸로 자기 자신을 슬프게 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기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비참하지?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의 아이를.  &nbsp;  &nbsp; 우미의 이 꿈이 가능한 현실, 에 놀랍지만 우미의 이러한 독백을 보건데, 우미가 아이돌 ’유리‘를 애정하고 ’유리의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것은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미‘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루어낸 집착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추고 싶은 우미는 ’愚美‘가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고 싶은 ’우미‘가 있다면, 역시 그 욕망을 걸머쥐는 법을 아주 잘 아는 또다른 이들이 우미의 대척점에 있다. 욕망에 관한 탁월한 쟁취능력이 갖추어진 익숙한 그들-정치인이라거나 권력층이라 일컬어지는 혹은 남성이라 대변될 수 있는-, 어쩌면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환경, 그들만의 공고한 카르텔, 시스템.  &nbsp;  우미와 같은 화이트칼라 계층에 소시오 패스 비중이 높은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나라 곳간 빼먹는 건 눈감아도 공병을 훔친 기초 수급자 노인은 실형을 주는 판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nbsp;  &nbsp; 처음부터 ’최애‘ 아이돌에 대한 우미 행동의 의외성은 소설 마지막까지도 이어진다. 단순히, 요즘 넘쳐나는 한국형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행태를 다루는 건가 싶은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놓은 채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황에 그저 놀라워하고만 있기에는 그저 개개인을 ’소시오 패스‘로 격앙하여 이야기하기에는 ’자기들만 인간인 줄 아는 역겨운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7/31/cover150/8932043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37316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탱크 데이[탱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72</link><pubDate>Wed, 20 May 2026 2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882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834195&TPaperId=172882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90/61/coveroff/k92283419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탱크 데이[탱크]<br>탱크,&nbsp;김희재, 한겨레출판, 2023-07-25.  &nbsp;  <br>  &nbsp;&nbsp;탱크가 핫하기에.&nbsp; 이 소설은 2023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덕분에 아니 때문에, 이 책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이 책에서 느꼈던 그 이미지에는 스타벅스가 일으킨 ‘탱크 데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탱크 텀블러를 확장하면 소설 속 탱크가 되려나.&nbsp; &nbsp; 소설 속 탱크는 전투용 차가 아니라 ‘컨테이너’다. 5평 정도되는 텅 빈 기도실이다. 흔히 이러한 기도가 먹히는 곳이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이듯 탱크 또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마을 야산에 놓인 밀폐된 공간이다. 그냥 놓인 빈 공간이 아니라, ‘자율적 기도 시스템’으로 ‘홍보’되고 커뮤니티에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돈도 받는 곳이다. 마케팅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상업시설 같다. 최초의 탱크 설립자 ‘루벤’에게 사사 받아 ‘탱크의 시대’를 창립한 이는 황영경이라는데, 루벤의 이름은 종교 색채가 강하고, 이런 설립자 운운은 ‘사이비’ 냄새를 열렬하게 풍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빈 컨테이너를 기도 공간이라며 운영하는데 왜 사람들은 종교 공간이나 시설이 아닌 이 탱크를 찾는가. 아, 비종교인도 있을 테니……. 그것도 그렇지만 ‘탱크에서 기도하면 원하는 미래가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한 형태로 이 공간은 홍보되었다. 근데, 바로 이런 이유가 ‘사이비’의 전형 아니던가. &nbsp; 물론 소설에선 ‘탱크’를 이렇게 말한다. “뿌리 없는, 종교도 아니고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도 아니고 딱히 자기계발도 아닌, 그야말로 뭣도 아닌 것”이라고. 하지만 설립자 루벤은 주술처럼 이렇게 말한다.  &nbsp;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nbsp;  &nbsp; 어쩌면 너무 뻔한 말. 그리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말. 이미 저러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현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탱크 데이’라는 날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이미 조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홀린 듯이 모여드는 이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마음껏 욕설과 조롱을 펼칠 공간이 있다는 것, 허락이듯 구원이듯 그것을 허용하는 공간이 주어졌으니, 주저없이! 뭔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nbsp; 그러니까 ‘신성한’ ‘영험한’ 곳으로 홍보되는 탱크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보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그 삶에서 ‘어려움’과 ‘외로움’과 ‘불편함’과 ‘슬픔’ 등등을 겪은 이들이 찾을 것이라는 걸. 이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은 욕망의 성취 혹은 결핍의 채움, 그리고 고통의 치유. 공간이 주는 상징에 ‘의미’와 ‘의지’를 더해 사람들은 제 결핍과 욕망을 내어놓는다. 어쩌면 자기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쏟아내고 버리고 싶은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탱크’를 선택했다. 어떤 이는 실제 종교시설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심리상담사를 찾거나 병원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점집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친구나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nbsp; ‘탱크 데이’에 이 책이 떠오른 걸 보면, 제목 때문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이비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의 문제’로 탱크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탱크를 찾은 이들 중 왜 ‘둡둡’은 닉네임으로 나오는지, 왜 ‘둡둡’은 죽는지, 성정체성은 어떤 경우라도 해결되지 못할 문제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믿음과 신념에 관한 문제 이 부분이 강한 건 여전하다. 그럴 것이라 예상한 듯 작가는 한국에 ‘탱크의 시대’를 만든 황영경이 손부경에게 하는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nbsp;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게 아니라 탱크를 믿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잘못된 숭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야. 너는 언젠가 사람들이 탱크를 신으로 모시게 될 거라고 했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탱크 안에 가만히 앉아 억만장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신자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때 난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도하는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너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부경아, 그거 아니.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거. 너는 삶을 방어하듯 살지. 늘 최악의 것을 먼저 상상하고 그래야 최악의 것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지.   &nbsp;  &nbsp; 무엇이든 결국 선택한 자의 몫이라 이야기한다. ‘탱크’ 또한 그러한 것이라면, 컨테이너 ‘탱크’는 계속 이어질까. 적어도 ‘탱크’를 찾는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들로 희망을 꿈꾸기도 하며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한 ‘믿음’을 품는 곳이라고 한다면 ‘탱크 데이 스타벅스’는 어떤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적어도 ‘문화를 파는 공간’이라는 스타벅스에 맞게 어떤 문화든 파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겠다. 저렴하고 몰염치한 문화도 수용되는 곳. 그것을 부추기는 곳이 한국형 스타벅스라는 것. 권력을 향한 풍자도 아니고 5.18이나 민주적 가치나 활동, 참혹한 참사에 대한 조롱을 당연시하는 마케팅. 그러한 행태가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결재라인을 거치는 동안 전혀 걸러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그 공간은 어떤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이런 일들은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이러한 행태를 해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제미를 느끼고 나아가 돈까지 번다니, 그치지 않을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소설 속 탱크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nbsp; ‘탱크 데이’에 몰려드는 무리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행태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지속된 신념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지 탱크에 가두어 그들의 내면의 소리가 무엇을 뱉어내는지 듣고 싶, 아니 듣고 싶지는 않다. 뻔한 말같지 않은 말이 난립할 테니까.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그저 긍정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조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도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싶어 숨을 돌릴라 치면 무섭게 되돌아가는 어떤 힘이 있는 듯, 계속 제자리를 맴돌게 하는 나라다.&nbsp; 여러 사건들로 단련된 민주시민들이 탱크를 뒤집고 단도리를 하는데도 조금만 숨을 돌리면 되돌아가고 무수한 탱크 데이가 생겨나 회의가 들라치면, 이처럼 불매운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을 ‘방어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용하게 된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90/61/cover150/k9228341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906190</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소란한 속삭임] - [소란한 속삭임]</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811</link><pubDate>Wed, 13 May 2026 21: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7089&TPaperId=17274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8/83/coveroff/k21203708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7089&TPaperId=17274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란한 속삭임</a><br/>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2월<br/></td></tr></table><br/>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br>소란한 속삭임,&nbsp;예소연, 위즈덤하우스, 2025-02-26.  &nbsp;  &nbsp;    &nbsp;&nbsp;인터넷 시대 별의별 사람의 이야기를 빠르게, 많이 접하게 된다. 세상에 그런 사람(사람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인간’이라 칭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한)을 봤다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놀라면서 눈으로 훑게 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nbsp; 이 소설을 보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이, 어떤 상황에 동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내게 그 일이 일어나는가 아닌가도 관건이지만 이처럼, 타인에게 쉬이 ‘무엇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특히나 소설 속의 이유를 들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난 어떻게 행동하려나.&nbsp; 마치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엮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하루하루를 보낸 일상인 것처럼 되어버린, 갈수록 세상에 대해 무감해지며 어떤 말도 표정도 짓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 같은 요즘의 삶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다시 연결을 꿈꾸고 있다. 타인을 힘들어하면서도 오히려 타인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 때문일지도.&nbsp; 그리하여 만들어진 연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해방클럽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속삭이는 모임’의 구성원이다. 그러니까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하는’, ‘서로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이 주요 활동인 모임. 급작스럽게 지하철에서 만나 만들어진 이 모임. 그러면 왜 속삭이는가.<br>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nbsp;  &nbsp; 속삭임의 힘은 있는 건가. 분명 모임의 몇몇은 속삭임이 주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믿는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부드럽게 타이를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는 힘 같은 것.” 속삭이는 말의 힘을 믿으며 무엇이라도 속삭이지만 온갖 소리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당연처럼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말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보다 오래 전부터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고 금값이 비싸지고 있지만 웬걸, 한국 사회에서는 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긴 하다. 그리하여 모아와 시내 두 명의 회원만이 있는 모임에는 속삭임만이 아니라 ‘소란함’도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50대 여성 '수자'. 이리하여 제목이 ‘소란한 속삭임’인가.&nbsp; 궁극적으로 속삭이는 모임에서 이들은 무엇을 해방하고자 하는 걸까. 어떤 비밀을 속삭이고 싶은 건지, 결국 속삭이는 모임에 합류하게 된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인지, 당연하게도 각자가 가진 사연이 드러나고, 그 사연을 소란함으로 또는 속삭임으로 상쇄하고자 할 것이다. 다만, 홀로가 아닌 채로.   &nbsp;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만큼 아픈 사람이 없다는 걸 모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모아는 시내와 수자, 자신 모두 마음 깊숙이 어디 한 군데가 단단이 틀어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감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nbsp;  &nbsp; 생각해보면 어떤 모임이란 추구하는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나간다.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해도 그렇게 어느 한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은 소설에서 나타난 것처럼 서로가 가진 필요를 ‘감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건 끼리끼리인가.&nbsp; 짧은 소설 속에서 아래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남은 이유와 슬픔 그리고 못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악’ 때문에. 내게도 소란한 소삭임이 필요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만, 명동역 4번 출구를 지날 때면 이 모임을 떠올려보기는 할 듯하다.  &nbsp;  '저는 슬퍼요.''왜요?''분명히 이유를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유를 잃어버리고 슬픔만 남았어요.' 모아가 시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저는 반대예요. 슬픔은 잃어버리고 이유만 남았어요.''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자꾸 이유들만 머리에 남아서 악에 받쳐요.“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98/83/cover150/k21203708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98833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감사의 정원, 바우어새[바우어의 정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781</link><pubDate>Wed, 13 May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27478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531&TPaperId=172747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71/17/coveroff/893204353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감사의 정원,&nbsp;바우어새<br>소설 보다 : 봄 2025,&nbsp;강보라, 성해나, 윤단, 문학과지성사, 2025-03-14.  &nbsp;  &nbsp;    &nbsp;&nbsp;‘감사의 정원’. 실시간 검색어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바우어의 정원. 바우어의 정원은 따스하고 나른한 봄날의 정원을 떠오르게 했다. 모네가 그린 그림같은 프로방스의 어느 정원의 풍경을 떠올렸는데, 책을 읽고 각인된 건 새틴 바우어새였다. <br> &nbsp; 정원에서 연상된 기억으로 ‘감사의 정원’ 기사를 클릭했다가 다시 한번 이 ‘새대가리’를 떠올리는 아이러니. 새틴 바우어새(Satin Bowerbird)라는 이름은 (쓸데없이 정장을 갖춘) 젠틀한 새를 연상시킨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섬에서 서식하고 우리나라말로는 ‘정자새’라고 한다는데 이 새의 특징이 ‘정원(Bower, 亭子)’을 만들기 때문이다.&nbsp; 암컷새에게 구애하기 위해 수컷새가 타고난 외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탁월한 기술을 발휘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새틴 바우어새가 가진 기술은 집짓기로 한국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기술이다. 바우어새가 짓는 집은 새들이 일반적으로 짓는 둥지와 달리 크고 화려하고 정교하다. 집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란색 물건들로 정원을 꾸민다. 파란색 물건은 꽃이며 열매며 깃털이며 다른 종의 사체 등 자연에서 얻은 것 외에 인간이 만든 파란 플라스틱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바우어새의 종은 다양하여 파란 물건이 아니라 녹색이나 빨간색 등을 사용한다거나 집을 꾸미는 방식과 형태 또한 다양하다). 가히 탁월한 건축가요 인테리어 능력자라 할 수 있다.<br>[EBS 다큐프라임:천국의 새 2부- 너에게 정원을 바친다]&nbsp;&nbsp; 바우어새는 거대한 집을 짓고 갖가지 파란 것들로 장식하고 나면 온갖 기교를 부려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러나,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을 쪼며 괴롭히고 결국 내쫓는데 쫓겨난 암컷이 혼자 새끼를 기르든 말든 관심이 없다. 이미 짝짓기를 끝낸 후부터 새로운 암컷을 찾을 결심을 하고 제가 그토록 구애하며 매달린 암컷을 내쫓은 거니까. 이 바우어새는 그렇단다.<br> 새틴 바우어가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장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던 내담자들. 그들은 오직 그 순간에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처럼.   &nbsp;  [KBS동물티비 : 애니멀포유 animal4u_새틴바우어새의 비밀의 정원]<br>&nbsp; 그렇다. 나는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상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은’ 기괴한 바우어의 정원이 된 광화문 광장을 본다. 마치 수컷 새틴 바우어새가 지어놓은 바우어를 보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위한 구애인지 누구를 위한 구애인지 구애 자체에 매몰되어 버린, 어떤 종. 감사의 정원엔 6.25 참전국들의 공을 기리기 위한 석재 조형물이 늘어서 있다. ‘감사의 빛’이라는데 기사에 나타난 대로 ‘받들어 총’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조형물. ‘감사의 빛’인지 ‘감사의 빚’인지 ‘감사’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이 조형물과 정원은 새틴 바우어새가 매몰되어 지은 바우어 같지 않은가!<br> “마지막에 좀 이상한 말을 했어요. 제가 겪은 건 유산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출산이라고. 자기가 유학한 프랑스에서는 다들 그렇게 표현한다고요. 제가 어리둥절해하니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데, 오디션 끝나고 그 몸짓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왜 뒤늦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뭔가를 헐값에 팔아넘긴 기분이 드는 건지……”  &nbsp;  &nbsp; 받들어 총. 우리가 기억해야 할 6.25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마땅히 해야 할 감사가 왜곡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암컷 바우어에게 수컷 바우어가 지은 그 공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의 공간이자 범죄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참…… 여전하다. 어떤 이들의 결집은 억지스러운 말과 타인을 향한 비난과 험한 말을 쏟아붓는 것, 총칼을 받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지원하고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71/17/cover150/89320435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71171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