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시빛 서재 (모시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20 Sep 2026 09:05: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모시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모시빛</description></image><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여우야, ‘인간’이란 그런단다[너의 나쁜 무리] - [너의 나쁜 무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22020</link><pubDate>Thu, 17 Sep 2026 1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22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522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522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의 나쁜 무리</a><br/>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여우야, ‘인간’이란 그런단다<br>너의 나쁜 무리,&nbsp;&nbsp;예소연, 한겨레출판, 2026-04-04.  &nbsp;  <br>&nbsp; 요즘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쪼~금 더 된 어느 때부터 “나쁜 무리”가 많음을 느낀다. 그들은 매일매일 매시간, 이렇게 확인하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부터 우리는 한패야”  이러한 ‘나쁜 무리’들이 내 삶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나쁜 무리’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유치하게 기민하다. ‘나의 무리’가 아닌 ‘너의 무리’, 나는 ‘너’를 알지만 나는 그들과 ‘한패’가 되지 않으려 한다.&nbsp; “정말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길이 들었군요.” _「작은 벌」&nbsp; 아, 생텍쥐페리 「어린왕자」속 ‘길들이다’는 단어가 이토록 불온하게 들리는 상황이라니. 여우야, ‘인간’이란 그런단다.   &nbsp;  &nbsp;《너의 나쁜 무리》는 일곱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읽었을 땐 불온하게 봤다. 뭐 이렇게 하나같이 나빠. ‘뭐지!’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그 감정이 많이 소멸되어 ‘뭐지?’.  〈작은 벌〉은 탈주극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보호자가 사설 구급차 운전원 ‘이중일’에게서 구급차를 빼앗는 상황을 보여준다. 어떡하든 이중일을 속이고 구슬려 구급차를 탈취하려는 이들과 어리버리하게 휩쓸리는 이중일의 모습엔 살고자 하는 자와 살기 싫은 자의 대비가 뚜렷하다. 구급대원으로 타인의 삶, “환자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이중일은 그럼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에게는 ‘평화’가 올까? 그렇다면 제목은 왜, 「작은 벌」일까.  &nbsp;  그들은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이중일은 속으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nbsp;  &nbsp;「추운 뺨에 더운 손」은 관계 ‘맺음’이 아니라 이미 관계인 사이의 ‘끊을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다. 추운 뺨에 더운 손은 한 명의 상태일까, 두 명의 상태일까. 추운 뻠에 갖다대는 더운 손이 타인의 것이라면, 일단 두 사람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것이 허용되는 관계인 것이니, 이미 이뤄진 관계에서 그 상황을 호의, 선의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아니면 거부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  &nbsp;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볼 수 있는 게 마임이야.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을 통해서.   &nbsp;  &nbsp; ‘선의’를 쉬이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선이’에게 ‘선의’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이미, 선의로 해석될 수 없기에.&nbsp; ‘선이’의 엄마는 다른 사람의 돈과 물건을 훔친다. 이런 엄마라서 부끄러운 ‘선이’는 엄마와 분리되고 싶다. 그러나 ‘엄마’라는 이 관계가 완전히 타인이 될 수 있는 존재일 수 없다. 더구나 어린 ‘선이’에게는 더욱. 그렇기에 선이는 “나로 살고 싶고”, 나로 살고 있는 이들을 미워한다. 엄마에게 짓눌린 어린 ‘선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방법은 있는가. 이해는 해야 하는 건가. ‘선이’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친구 ‘기문’이다. 선이는 ‘기문’이 그 옛날 자신의 엄마가 훔쳤을 ‘기문’엄마의 금두꺼비를 달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건 그들의 관계도 더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여기에 ‘기문’은 ‘마임’ 이야기를 한다. ‘기문’의 마임 철학을 통해 ‘선이’는 ‘선의’를 볼 수 있을까.    표제작과 같은 「너의 나쁜 무리」속 이 ‘무리’들을 뭐라 불러야 좋을까. “쉽게 오염되거나 잃어버리기 쉬운 물건은 아예 들이지조차 말라”고 했던 여사, “여사와 우리가 되기 위해 애썼던” 유선. 버림받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둘은 동일한 사람에게 버려진 사이다. ‘여사처럼 살 거다’라 외치지만 ‘너도 떠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여사를 위해 기꺼이 버림을 선택한 유선이다. 정말 진심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건가. 「너의 나쁜 무리」속 전개는 점점 점입가경이 되는데, 궁금해진다. 이들의 행동이 ‘연대’라 할 수 있나. ‘유대’라 할 수 있나. 어떤 의미로 서로의 비밀을 움켜쥔 사이에서 무척 강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일수록 접착력을 더 강화하며 쉬이 물드는. 나쁘지 않은 것, 맞나?  &nbsp;  나는 여사처럼 살 거다. 아주 많은 사람에게 마음 주고 몸 주고 절절매며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갈 테다. 그러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도 했다. 나쁘지 않은데……? <br> &nbsp;「아무 사이」. 아무 사이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사이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이를 말하는 걸까. &nbsp; 시터 일을 하는 ‘희지’는 이 일에 의미를 둔다. 이전일을 하면서 쌓인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변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들을 돌보며 이들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희지’는 성심성의껏 노인들을 돌보고 애정을 쏟는다. 그런데, “아무 사이”라니. 여기 “아무 사이”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전혀 관계맺음이 필요없는 사이, 이미 맺어진 그 어떤 관계에도 불구하고 ‘엮이고 싶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니까, ‘희지’를 이른바 ‘고용’하고 있다 여기는 보호자가 ‘희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심지어 희지의 돌봄을 받는 노인조차도 마찬가지다.   &nbsp;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요.”“희지 씨, 그러지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정말로. 그래서 괜찮은 거예요.”   &nbsp;  &nbsp;「작은 벌」에서는 최소한의 관계맺음도 없기를 바라는 건조한 사이에 끈끈이가 뿌려져 뭉침이 이루어졌는데, 「아무 사이」에선 최선을 다한 ‘애정’을 주었음에도 끈끈이가 붙지 않을 수 있음을 보는 듯하다.&nbsp;「너의 나쁜 무리」속 ‘여사’님의 말마따나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에 사람 마음을 초조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각각의 소설에 있다. ‘징글징글한’ 관계다. 이 징글징글함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항상 반경 안에 있게 되고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마는 꼴”을 보게 된다.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젠더</category><title>삼성이체로부터[자연은 퀴어하다] - [자연은 퀴어하다 -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10193</link><pubDate>Fri, 11 Sep 2026 2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101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7780&TPaperId=175101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9/29/coveroff/k12213778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7780&TPaperId=175101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연은 퀴어하다 -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a><br/>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삼성이체로부터<br>자연은 퀴어하다&nbsp;-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  &nbsp;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노승영 (옮긴이), 에이도스, 2026-04-14  <br> &nbsp; ‘퀴어하다’. 이 단어를 흘낏, ‘퀴어’보다는 ‘자연’에 방점을 두고 책을 펼쳤기에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않았다. ‘자연’에 관한 다큐 정도로 생각하고 책을 펼치는데,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퀴어’를 너무 간과한 건가. 원제를 본다. 『Forest Euphoria』. 그리고 작가 소개를 본다.&nbsp; ‘퀴어하다’가 자연스러운가. 대체로 ‘퀴어’라는 단어는 ‘동성애’라는 특정한 의미를 부각하며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의미를 들이댄다면 제목이 자연스럽지 않다. 혐오와 멸칭, 황색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소모적인 논쟁의 형태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가졌다. 저자가 확장하여 이야기하고픈 ‘퀴어함’은 뭘까. 적어도 생물학자로서 저자가 왜 자연에서 “Euphoria”를 외치는지 너무나 공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케팅 측면에서 “퀴어하다”를 붙이고야 마는 까닭도 알겠다.&nbsp; 시작부터 저자는 ‘명료함의 결여’,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스스로 ‘명료함이 결여’된 인간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 온 아르메니아인. 시작이 어디에서부터였나 따져가는 건 중요한 부분이 아닐 테다. 그것이 ‘저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르메니아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모호한 위치’에 있는 나라로 평가받는다. 현재 저자는 ‘인종학살을 피해 아르메니아에서 미국으로 피란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여성 생물학자’로 소개되고 있다. &nbsp; 저자는 이 책을 쓴 의도를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의도가 이 책을 끌고 가기보다는 숲에서, 자연에서 “Euphoria”를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 이 책을 쓸 수 있게 하는 ‘동기’를 강화하고 ‘의도’를 견인하였다고 본다. 이 순서는 중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 속한다. 그러니까 자연 이야기에 인간 이야기가 삽입된 것에 내가 너무나 ‘퀴어하지 않게’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퀴어함’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nbsp;  퀴어는 오늘날 문화에서 ’정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성 및 성별 범주를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탈‘인가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nbsp;  &nbsp; 자연은 다양하고, 복잡하고, ’순수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양성과 복잡함과 다르게 ’순수성을 부여‘할 때는 대체로 생물종의 ‘성별이나 번식’에 제한하여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자연에, 생물종에 “지독한 폭력을 가한다.” 이분법적 강박과 이성애 규범을 강제하면서 말이다. 생물학종은 모두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단순한 암수 구별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저자는 생물학자로서 연구를 깊이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이고 이성애적인 접근’ 체계가 얼마나 지배적인지, 심지어 기존 질서를 그대로 따름에 따라 객관적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학자의 선호에 따라 생물종에 ‘혐오’를 담은 명명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통제, 예측 가능성, 확고한 정의(定意)를 요구하며, 청결, 순수, 상업적 생산성을 기대”하는 우리 문화에서 저자와 같은 성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소외되고 배제당한다. 외롭고 아프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nbsp; 이럴 때, 저자 앞에 나타난 자웅동체이거나 삼성이체인 ‘균류’와 같은 존재들! 이러한 생물들은 다양하고 많다. 혹고니는 동성끼리 짝을 이루며, 뱀장어는 뚜렷한 생식기간이 없이 살아가기도 하며, 달팽이 또한 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분법적 사고와 ‘인간 중심’의 사고 체계에 따르면 모두 배제되는 문제적 생물군들. 이것은 저자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환’시켜 주는 존재가 된다.   &nbsp;  균류는 전복적이다. 나는 이 전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들의 논바이너리 몸에서, 범주와 정의의 거부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강하게 했다. 그들을 연구하면서 명료함과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나은 언어를 찾았으며 더 중요하게는 나의 유동성, 양서류성, 집단적 반향을 향한 끌림을 인정받고 공감받았다. 그들은 내가 스스로의 사람됨을 찾고 이해하고 찬미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nbsp;  &nbsp; 버섯에 대한 EBS 다큐를 꽤 흥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 몇시간 짜리로도 버섯에 대해 제법 매료되었는데 ‘명료함이 결여된’ 생물학자의 눈에 버섯은 얼마나 흥미로울까. 이러한 균류로 인해 저자는 “퀴어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모호하고 뒤죽박죽인 자연에 대해 생각한다. “이성애 규범 바깥의 생식을 연구하며 진화와 생물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자연의 “퀴어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아간다.&nbsp; 이 책은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하고 싶지만 기존 위계 질서 속에서 힘겨웠던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재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얼마나 힘겨웠는지 ‘균류’에 동질의식과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을 정립해 나가는 저자의 몸부림이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소외’되고 배척당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처음부터 명확히 밝힌 저자의 의도, 그건 다음과 같다.  &nbsp;  이 책에서 나는 자연이 얼마나 퀴어한지 탐구한다. 나는 어릴 적 경험, 퀴어 정체성, 균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의 작업을 통해 자연이 억압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고 똑바로 정의될 수조차 없음을 배웠다. 자연에 편재하는 퀴어함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규칙에 도전한다. 성이 셋 이상인 균류, 까마귀의 동성 동반자 관계, 달팽이와 장어의 간성 몸에서 우리는 인류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영감을 얻는다. 궁극적으로 퀴어함은 우리 모두를 정체성과 무관하게 더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하고 이행적이고 혼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이고 협력적이고 비위계적인 존재 방식으로 초대한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9/29/cover150/k12213778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9292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노엄 촘스키는 못 듣는다[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02246</link><pubDate>Tue, 08 Sep 2026 09: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5022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9971&TPaperId=175022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1/69/coveroff/k3921399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9971&TPaperId=175022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a><br/>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노엄 촘스키는 못 듣는다<br>스즈키 도시타카,&nbsp;김소연 (옮긴이),&nbsp;&nbsp;오팬하우스,&nbsp;2026-05-27.  &nbsp;  &nbsp;새벽이 아닌 휴일 오전, 집단으로 날카롭게 울어대는 새들의 소리에 나가보았다. 까치 무리와 까마귀 무리의 대치! 제법 오래 이어진 이 대치를 ‘굳이’ 직관하며 새들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었다. 전선줄에 병정처럼 늘어선 까치와 까마귀 무리들. 어디서인지 계속 수를 늘려가는 이들의 전투는 무엇때문일까. 까마귀에 의해 둥지가 점령당한 것 같은 까치들이었기에 까마귀는 왜 까치 둥지를 침략하는 건지 궁금했고 잠시 뒤엔 까치와 까마귀가 서로 연합하는 듯이 보여 이건 또 뭘까 궁금했다. 멀리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에 ‘고양이’가 섞여 있어 둥지를 공격한 고양이에 맞선 새의 연합작전(?)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까지, 그리고 점차 나뭇잎의 흔들림도 잠잠하고 새들의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뭔가 멍하고 소외된 듯한 기분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그때 이 책을 알았다면 뭘했을까. 새의 말이 들리는 저자였다면 당장 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챘겠지만 내겐 그저 새의 감정과 기분을 나타낸 듯 다르게 들렸던 소리가 기억난다.&nbsp;&nbsp; 이 책은 ‘새 언어’ 탐구 과정을 기록했다. ‘새new’가 아니라 ‘새bird’. 저자인 스즈키 도시타카‘는 아시아 최초로 영국 동물행동연구협회 국제상’을 수상한 일본의 생물학자이다.  &nbsp;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과 자연의 괴리가 생각났다.하지만 박새들은 그건 틀린 생각임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언어가 있듯 새에게는 새들의 언어가 있다. 인간의 언어는 동물 언어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연을 올바르게 보는 눈을 잃었지만 새들은 다른 동물의 언어까지 제대로 이해하며 살고 있다.  &nbsp;  &nbsp; 핵심은 이거다. 저자는 ‘박새’가 ‘언어’를 가지고 있음을 오랜 시간 탐구와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과학계, 동물학회에 반향을 일으키며 세계 유수의 실렸고 저자는 이 과정을 이 책에 담고 있다.&nbsp; 하지만 페이지를 넘겨가면 약간 당황하게 된다. 이 책은 20년의 연구, 탐구서인데 책의 내용이나 서술이 몹시 가볍게 느껴진다. 20년의 노력이 아니라 잠깐의 취미활동을 기록한 것처럼. 굳이 서론을 길게 하지 않고 핵심만을 간략히 서술하는 것, 그 심플함이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겠다. 오랜 실험과 탐구를 담은 책인데 그와 관련된 ‘사진’ 한 장 없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일러스트로 그려진 그림이 유쾌함을 주는 요소일지도. 저자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새가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이 놀라운 연구를 좀더 ‘탐구’하고팠던 나에게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았고 저자가 ‘논문’에는 어떻게 썼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이런 나의 생각이 풀리게 된 건, 저자가 중학생 대상으로 강연을 제법, 주욱 했다는 서술에서였다. 아, 그러한 활동으로 이 책이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읽히고 다가갈 수 있도록 서술된 건가! 내 아쉬움은 진정시키며 다른 저작물이 소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nbsp;  하지만&nbsp;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무언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nbsp;중요한 것은 동물의 울음소리가 그저 감정의 표현인지 인간의 말처럼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만약 사고 절약 원칙에 따라 생각해도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한다고밖에 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해낸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나밖에 없다! 나는 ‘동물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2천 년 이상에 걸친 역사상 최대의 오해를 풀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nbsp;  &nbsp; 생물학자이자 연구자인 저자는 일본에서 가장 흔한 새 중 하나인 ‘박새’의 소리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을 알아내고 각각에 ‘의미’가 있음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나아가, ‘새’가 ‘언어’를 사용함을 단계별로 증명했다. 분명 그러할 것인데, 이를 위한 ‘증거’가 없다고 그것이 아닌 것이 될 수 없다는 이 마음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험했다. 대표적인 것이 ‘나뭇가지’ 실험이다. “박새의 ‘츠르르르르’가 ‘뱀’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그 소리를 들은 박새는 뱀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평소에는 뱀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뱀으로 착각”할 것이라는 가설에 따라 ‘츠르르르르’ 소리를 들려주며 나뭇가지를 움직이는 반복된 실험을 한 결과, “‘츠르르르르’ 소리를 들은 박새는 머릿속에 뱀의 이미지를 연상하고, 뱀처럼 생긴 것을 찾는 것을 확인했다”&nbsp; 또한 인간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박새도 “인간처럼 규칙을 사용해 울음소리를 조합하고 어순에 따라 의미를 이해할 것”, “박새에게도 문법 능력이 있다‘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또한 이를 실험으로 증명해냈다.&nbsp; 책에서는 간단히 서술되었지만 이 실험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건 아니다. 몇 년에 걸쳐 반복된 실험을 진행한다. 저자는 매번 박새가 언어 능력이 있음을 기본으로 하여 이와 관련된 의문을 품고 이 의문에 맞게 실험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새의 언어 능력을 파헤치고픈 저자의 욕구는 일상에서 개그 프로를 보던 순간에도 ’새의 언어‘ 능력을 탐구할 수 있는 가설을 떠올리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 집중하고 이에 따른 행동력을 보이는지, 이러한 열정이 ’새‘가 언어가 있음을 증명하는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nbsp; 저자는 새들의 언어 세상과 인간 세상을 이어주는 노력 또한 진행했고 ”동물들의 대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하루하루는 더욱 풍요롭고 멋지게 바뀔 것“이라 믿는 1983년생(자료를 찾아보니 1983년생이라 하여 또 놀란다) 학자다. ’20년간 박새 연구를~‘이라며 책소개에 있는 저자 사진을 보며 ’어려‘보이고 ’음악가‘ 같은 모습이라 매치가 잘되지 않았는데, 20년, 학자, 탐구 이런 단어를 기본으로 하여 내게 ’과학자‘, ’연구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구나 싶었다. &nbsp; 이 책의 추천자인 ’최재천 교수‘는 저자에 대해 ”내가 가장 시기하고 질투하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 또한 저자의 이 열린 사고와 행동력에 감탄한다. 특히나, 노엄 촘스키와 비교되어 더더욱! 사실 이 책보다는 시작과 동시에 추천사인 최재천 교수님이 노엄 촘스키와 만난 일화를 보며 놀랐다. 노엄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 활동해온 영향력있는 학자다. 노엄 촘스키의 그동안의 저서가… 물론 학자로서 확고한 자기주장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 놀라는 건 아니다. 그저 생각보다 유연하지 않고 경직된 학자인가 생각들었을 뿐이다. 찾아 보았다. 1928년생이다. 2009년에 이미 80대가 넘은 학자였다. 이 나이쯤되면 자기가 아는 세상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세계와 다른 얘기를 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며&nbsp;조금만 감정이 상하면 삐지기도 한다.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다른 주장을 가진 이를 만났을 때 ’공격‘력이 살아나 더 신나지 않았을까. 좀더 논쟁할 수 있을 테니… 왜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노엄 촘스키에게 가져다 흔들고 싶은지 이해가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책에서도 계속 강조하듯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저자가 이야기한것처럼 ”우물 안에 있어도 괜찮은 것은 올챙이 때까지뿐“이다.   &nbsp;  그는 내게 요즘엔 무슨 연구를 하느냐 물었다. 나는 너무도 당당하게 까치의 언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 설명을 듣던 그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끝내 내 말을 끊으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단언했다. &nbsp;(…) 그날, 밤 늦게 나는 한국 방문을 거절한다는 그의 이메일을 받았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1/69/cover150/k3921399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016945</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여행·기행·예술</category><title>모네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모네가 사랑한 정원] - [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91910</link><pubDate>Thu, 03 Sep 2026 1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919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7807472&TPaperId=174919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094/18/coveroff/89278074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7807472&TPaperId=174919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a><br/>데브라 N. 맨코프 지음, 김잔디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03월<br/></td></tr></table><br/>모네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br>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데브라 N. 맨커프 (지은이),&nbsp;김잔디 (옮긴이),&nbsp;&nbsp;중앙books(중앙북스), 2016-03-30.  &nbsp;  &nbsp;    &nbsp; 86세에 사망한 모네는 생애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다. 거기다 2,500점이 넘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그만큼 모네의 이야기는 많을 테다. 그래서 모네에 대한 책을 보면 본 적 없는 그림이 계속 나온다. 모네 생애와 작품을 이야기하는 저자마다 지면이 허락하는 한, 대표적인 것 이외 더 소개하고픈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네에 대한 책은 한 두 권으로는 미진한 느낌이다. 물론 모네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모르는 것이 약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조금 아니까 아직 힘이 되지 않는다.&nbsp; 이 책은 모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공간 “정원”을 중심으로 한 모네의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정원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 정원은 그냥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네가 창조한 공간이다. 모네 자신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라고 말했고,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했을 정도다. 모네의 정원을 가본 많은 이들도 모네의 정원에 대해 찬사했다. 어떤 이는 모네를 이해하려면 정원을 보라고, 그림보다 정원이 낫다고 했을 정도다.&nbsp; 처음 모네가 정원을 가꾼 곳은 1871년 파리와 떨어진 아르장퇴유다. 이곳 테라스에 화분을 놓고 화단을 장식, 정원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때 정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들을 그리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이때의 정원은 전원주택에서 꽃을 가꾸는 것처럼 소소한 형태였고 대규모의 정원으로 확대하게 된 건 지베르니에 정착하고서다. 1883년 파리 북서쪽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처음 정착하고서도 모네는 빛을 그리는 화가로 자연 풍경을 그리기 위해 노르망디 해안, 루앙, 리비에라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곧 자신의 정원에 자신이 그리고픈 세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 세계를 위해 ‘정원을 창조’했다.&nbsp;<br>그는 화단을 색과 높이에 따라 분류한 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규모의 정물화처럼 꾸몄다. 강렬한 자연광 아래에서 꽃을 관찰하여 싱그러운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무성한 풀과 나무, 꽃을 심고 굽이치는 둑을 만들었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어 물의 정원을 조성했다.&nbsp;  &nbsp;  &nbsp; 이렇게만 보면 실제 모네가 정원을 창조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가늠되지 않는다. 모네는 정원과 관련한 서적을 찾아 읽는데 시간을 더 들였고 정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카유보트와 소설가 옥티브 미르보, 비평가 귀스티브 프루아 등)과 교류‘ 하고 온실을 두 개나 만들고 정원사를 여섯 명 고용했다. 1893년 초 초지와 연못이 있는 땅을 추가로 구입해 앱트 강의 지류인 루강이 더 잘 흘러 나가도록 공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의 다툼과 복잡한 행정절차를 모두 감내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모네의 정원은 ’물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모네는 습지와 같은 이 땅을 “밝은 색 수련이 잔잔한 수면에 떠 있고 주위에는 갈대와 버드나무, 아이리스가 자라는 연못정원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실현시켰다.&nbsp; 모네는 19세기 후반 ’자포니즘(Japonisme)‘의 열풍 속에 ’우키요에‘에 매료된 대표적인 화가다. 우키요에는 모네의 화풍과 정원 조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물의 정원‘은 우키오요에 판화에 등장하는 전통 풍경과 일본식 아치형 다리를 본따 설계하였고, 로저 마르크스가 “당신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하자, “내가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꼭 찾아내야겠으면 옛 일본식이라는 정도로 해두시오.”라고 말했을 정도다.&nbsp; 모네의 대표작으로 ’수련‘ 연작이 꼽힌다. 이 정원의 수련을 관찰하여 그린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네는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순간 수련에 매료된 모네는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장일치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lt;수련&gt; 연작이 탄생한다.<br>로저 마르크스는 예술 잡지 &lt;가제트 데보자르(Gazett des Beaux-Arts&gt;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평단이 가장 대담하다고 평가한 요소를 소개했다. 모네는 &lt;수련&gt; 연작을 그리면서 지상의 닻에 얽매여 있던 풍경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땅도 하늘도 그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잔잔하고 비옥한 물이 캔버스의 들판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빛이 넘쳐흘러 녹청색 잎의 표면에서 활기차게 뛰논다. 화가는 원근법의 피라미드식 선이나 단일 초점을 추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서양의 전통적인 회화규칙에서 벗어났다.˝  &nbsp;  &nbsp; 모네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났다. 평단이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 모네의 기본을 달라질 리 없는데 평단이 변한 건가. 시간의 흐름과 모네의 끝없는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 빚어낸 것일테다. 인상파를 조롱하던 때, 루이 르루아의 평론이 실린 때가 1874년이고, &lt;수련&gt; 연작이 전시되던 때는 1909년이니 무려 35년의 시간이 흐른다. 물론, 그 사이에 모네는 런던의 안개 연작도 &lt;건초더미(1890~1891년)&gt; 연작도 호평을 받았다.   &nbsp;  유명 신문 &lt;르 샤리바리&gt;의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lt;인상:해돋이&gt;를 풍자하여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에서 이렇게 썼다. “대체 뭘 그린 걸까? 어디 보자. ’인상‘이라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나 역시 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렇다고 이 그림에 인상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조롱하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르루아의 발언은 화가들의 모임에 ’인상파‘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인상파 화가들은 이후 11년에 걸쳐 전시회를 일곱 번 더 개최했으며 1886년에 마지막 행사를 가졌다.  &nbsp;  &nbsp; ’인상파‘ 화가로서 찰나의 순간을 화폭에 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빛의 흐름을 표현하려 했던 모네는 강렬한 햇볕에 노출된 탓에 극심한 눈의 피로와 고통이 있었고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수술 후에도 심한 부작용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잘 보이지 않거나 사물의 색이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을 겪는 건 자연을 그리는 화가로서 얼마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럼에도 모네는 기억과 감각에 의지해 붓을 놓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린다.&nbsp; 이때 그린 그림들을 보면 이전에 그렸던 색채보다 훨씬 강렬하다. 원래 그의 붓터치처럼 거칠고 생략된 표현도 더욱 두드러진다. 이때 모네가 그린 그림들을 많이 보게 되니 비로소 모네가 ’추상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두 그림만으로는 알 수 없는 변화된 그림의 색채, 그 색채의 강렬함이 노년 모네의 고통 강도 같이 느껴진다. &nbsp; 모네의 그림과 정원이 유명해지고 이곳에 많은 화가들이 모네와 교류하고자 찾아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화가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이들 중 모네가 교류한 사람도 있지만 전혀 교류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한다. 오랜 시간 이웃에 살면서도 전혀 교류가 없을 수는 있지만, 모네의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모네에 대한 유명세도 있었을 텐데, 굳이 관심두고픈 세계가 아니었는지, 단순한 사람 사이의 인사들도 없이 완전한 단절이었는지, 특별히 그러한 관계가 된 연유도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  마음을 나누는 일, 사람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웃과의 일을 떠나 모네 자체는 오랜 생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모네를 돌보아 준 이들이 많았던 건 모네의 복일 게다.&nbsp; 꽃을 좋아하고 사랑한 모네가 죽을 때 관에 검은색 천이 덮여 있어서 이것을 걷어내고 창문에 걸려 있던 화사한 꽃무늬 커튼을 덮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꽃을 사랑한 모네가 마지막 쥐고 있던 꽃은 무엇일까 했는데 모네의 이런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nbsp;  꽃이나 화환은 절대로 원하지 않아. 꽃으로 장식하는 건 헛된 일이야. 내 정원에 있는 꽃을 이런 일에 쓰려고 꺾는 건 신성모독이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094/18/cover150/89278074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094187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여행·기행·예술</category><title>눈부신[모네, 빛의 순간들] - [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9409</link><pubDate>Wed, 02 Sep 2026 16: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94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9770&TPaperId=174894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6/13/coveroff/k93213977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9770&TPaperId=174894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a><br/>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눈부신<br>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nbsp;박송이, 빅피시, 2026-05-27.  &nbsp;  &nbsp;  &nbsp; 모네는 ‘빛’, ‘인상’이라는 단어들로 소개된다. 이 책은 ‘빛의 순간들’이라는 이름으로 모네의 대표작 100점을 연대기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다. 2016년부터 파리에서 거주한다고 하는데, 미술관이나 모네의 자베르니 정원에서 모네의 작품을 책에 쓴 것처럼 설명하겠구나 싶었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화가와 작품 이야기다.&nbsp; ‘인상주의’하면 파스텔톤 풍경화가 떠오른다. 모네의 작품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빛’의 활용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로서는, 미술책에서 본 그림만으로는 ‘빛’의 흐름이나 머묾을 세세히 잡아내기 어려웠다. 설명을 듣는다 해도 예민한 그 감각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그러니, 어쩌면 그림은 한 순간의 ‘인상’이고 그림이나 화가의 이야기에 더 관심갖게 되는 것 같다. 신화나 성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은 어떤 내용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게 되니 풍경 그림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궁금해하는 것하고는 좀 다르니까. 그래서인가. 미술계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 나올 때면 화단계 영향력있는 이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비난과 비판을 주로 하는 것이.&nbsp; 모네 또한 파리 유력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한 대표적인 화가다. 모네가 활동하던 초창기, 당시 화단에서는 “전통적인 역사화나 신화적인 주제를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모네의 그림은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가 주관하는 공식 전시회에 입선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조롱받거나 거부당했다. 물론, 모네는 1866년 살롱전에 &lt;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gt;을 출품하여 수상했다. 이는 모네가 입선을 목표로 하고 그린 그림, 그러니까 현재로 생각한다면 입시용이나 공모전 수상 패턴을 분석하여 이에 맞게 그려서 수상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고 모네 자체는 ‘빛’의 표현에 더 관심을 두었기에 이 그림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nbsp; 모네를 ‘빛’의 표현으로 이끈 이가 모네의 스승 외젠 부댕이다. 15세 모네가 그린 캐리커쳐에 매료된 외젠 부댕이 모네를 자연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외젠 자신이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함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모네는 이 경험 이후로 “야외에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이해”함과 동시에 ‘풍경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나아가 모네에게는 “빛의 표현”, “밖에서 보고 기억한 ‘관념적인 색채’가 아니라 야외의 자연광을 받은 ‘지금 눈에 보이는 색’이야말로 그의 관심사였다.”&nbsp; 모네는 1866년 살롱전 입선 후, 바로 파리 근교의 빌 다브레에서 정원이 딸린 집을 빌려  2.5m가 넘는 큰 캔버스를 야외에 설치하고 대규모 인물화를 제작한다. 캔버스가 너무 커서 윗부분에 손이 닿지 않아 정원의 땅을 파고 도르래를 설치해 캔버스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렸다. 이 그림이 모네의 연인 카미유 동시외가 그려진 &lt;정원의 여인들&gt;이다.  &nbsp;  살롱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림에 주제가 없다’, ‘붓질의 마감이 거칠다’는 이유로 모네는 그해 살롱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모네의 전작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비평가이자 소설가 에밀 졸라는 “모네는 살롱의 문을 열었지만, 그가 들고 온 ‘빛’이 너무 눈부셔 심사위원들은 서둘러 그 문을 닫아버렸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bsp;  &nbsp; 이런 평가는 또 있다. &lt;까치(1869년)&gt; 또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살롱 출품을 거절당했다. 이유는 “그림이 지나치게 밝아서 눈이 멀 것 같다”는 것.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나는 평이다. 주제가 없다라니, 내가 보기에 &lt;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gt; 또한 무슨 큰 주제가 있나 싶은데 말이다. ‘빛이 너무 눈부셔 서둘러 그 문을 닫아버렸다’라는 에밀 졸라의 평이 너무나 인상깊다!&nbsp; 이렇게 화가로서 초기부터 평단으로부터 외면받았기에 모네의 삶은 어려웠다. 모네의 일대기를 보면 “평생 가난과 궁핍”하다는 설명들이 있기에 정말 아주 가난한 거리의 화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모네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고 어린 시절은 풍족하게 보냈던 것 같다. 모네의 궁핍은 ‘화가’가 되어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한 것과 카미유 동시외와의 결혼을 아버지가 반대함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인 카미유는 아들을 낳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1867년 아들 출산 시에는 카미유의 곁에 있지도 못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모네는 20대 후반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충분히 독립하였을 나이인데 아버지가 된 상황에서도 모네는 여전히 ‘어린’ 느낌이다. 부유한 집안의 철없는 아들 같은 느낌이랄까.&nbsp; 화가로도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한 가정을 가졌으니 경제적인 궁핍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모네는 계속된 경제적 궁핍에도 철학이 있었으니, “열 병의 저렴한 와인 대신 단 한 병의 좋은 와인을 택하는 삶”이 그것이다. 모네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항상 어느 정도의 안락함 속에서 살아야만 하네. 그래야 네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을 수 있기 때문이지”&nbsp; 모네는 빚을 지거나 임금을 체납하면서도 고용인들을 해고하지 않고, 돈을 잘 벌 때도 아끼고 저축하기보다 저명한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와 함께 모네에 대한 많은 글 중엔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 호소하는 내용이 많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그의 그림은 &lt;여름(1874년)&gt;과 같이 “햇빛이 비치는 풍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듯한 상쾌함”이 깃든 그림들이다. 글쎄, 이것은 좀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안정화하기 위한, 지난 어떤 경험으로 인해 쌓인 방어기제였을까. 모네는 1868년 6월,&nbsp;강물에 몸을 던진다. 곧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는데, 모네는 화가 프레데릭 바질(Frédéric Bazille)에게 보낸 편지에 이를 ‘실수’라고 표현했다. 모네의 전기학자들은 이를 모네의 ‘자살 시도’라고 얘기한다. 이때, 모네의 상태는 아버지의 후원 중단으로 인한 지속된 궁핍,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그림까지 압류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고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실감도 있었을 테다.&nbsp; 모네 인생을 보면 동료와 후원자를 비롯하여 ‘인복’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네의 경제적 궁핍 호소에 그의 그림을 사주거나 경제적 지원을 하였던 이들이 많다. 그들은 화가로서 ‘모네’를 보았을까. 인간 ‘모네’를 보았을까. &nbsp; 모네는 “빛이 매 순간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는 눈부신 대화들을 기록할 뿐”이며 이것이 그가 꿈꾸던 화가의 삶이라고 했다. 그저 낯선 구도를 중시하며 과감한 붓질을 통해 “ 빛의 표현”하던 모네는 그의 아내이자 모델 카미유가 사망하는 순간에도 “사별의 아픔을 겪는 남편이기보다 빛의 변화를 포착해야만 하는 화가라는 실존적 숙명을 깨달았다. 임종의 안색에서 푸른색, 노란색, 회색의 조화를 분석하는 본능을 자각한 순간, 그는 슬픔을 앞서는 예술적 관찰력에 경악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고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1879년)〉를 완성해냈다. 모네는 단순히 정적인 풍경을 담기보다는 빛의 산란이나 구도를 위해 거칠고 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예술적 집착이 정점에 달했던 1890년 5월 초, 모네는 봄이 오면서 돋아난 초록빛 나뭇잎들이 겨울의 황량한 구도를 망치자 기상천외한 지시를 내렸다. 인부들을 고용해 그림 속 참나무의 잎을 일일이 다 따 버리게” 하기도 했다. 사진작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구도로 대상을 촬영하기 위해 자연에 험한 짓을 하는 일이 있다는데 잠시 이 상황이 동일시되어 순간…… 문화해설사인 저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nbsp;  자연의 시간마저 자신의 캔버스에 맞추려 했던 이러한 행위는, 화가를 넘어 창조주로서 대상을 통제하고자 했던 모네의 광기 어린 집착을 여실히 보여준다.<br> &nbsp; 광기 어린 집착이라, 예술가들에게 필연적이고 오히려 이런 면모가 유명한 예술가라는 인정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lt;건초더미(1890~1891년)&gt;를 그리던 때에는 이웃 농부들의 사유지를 “최적의 각도를 찾기 위해 수시로 농작물이 심어진 구역을 가로질렀고”, “농부들의 대화 소리나 마차의 굉음이 자신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며 항의”하기도 했으며 이에 농부들과 갈등이 멈추지 않았다. 탈곡을 위해 건초더미를 치워야 하는 시기가 되자 모네는 농부들에게 탈곡을 늦추는 대가로 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다. 또한, 연작이 많았던 만큼 “갤러리에 천창을 설치해 외부 날씨와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의 색채가 실시간으로 변하게”하거나 “작품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어, 전체의 흐름과 공간까지를 모두 작품”으로 여길 수 있게 전시되도록 갤러리도 직접 구상하고 기획하기도 했다. &nbsp; 삶의 안정기, 모네는 1899년부터 1901년까지 매년 작업을 위해 런던을 찾았다.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머물던 시절 매료된 ‘안개’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안개를 불편하고 성가진 존재로 여겼는데 모네가 그림을 그리고 나자 안개가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nbsp; 모네는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많은 화가들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네는 86세까지 생존했다. 자연의 ‘빛’을 중시하는 화가로서 일찌감치 ‘눈’으로 고통받았는데 말년에는 백내장과 수술 후 부작용으로 색채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 이때 모네는 기억과 감각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으며 사망한 해에는 폐암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 86세의 화가는 신체적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첫 번째 아내 카미유, 두 번째 아내 알리스와의 사별, 아들과 의붓 딸,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때문에도 슬픔과 아픔 속에 있었다. 모네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다. &nbsp; 그의 작품들은 여러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모네의 그림을 ‘국가’가 소장해야 한닥 강력하게 주장한 친구와 모네의 그림을 사랑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모네의 그림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까지,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클레망소도 대표적인 사람이다. 모네가 사망할 당시 모네의 관 위에 검은 천이 덮여 있었다. 이때, 클레망소는 “안 돼! 모네에게 검은색은 안 돼! 검정은 색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관 위의 검은 천을 치우고 창문에 걸려 있던 화사한 꽃무늬 커튼을 뜯어와 덮었다고 한다. 검은색을 싫어하고 꽃을 사랑한 친구의 마지막을 진정 “꽃길”이 되도록 해준 것이다. &nbsp; 모네의 삶은 꽃길이었을까. 모네가 사랑하고 가꾼, 그의 예술의 공간인 자베르니는 개방된 곳이라고 한다. 화창한 여름, 그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6/13/cover150/k93213977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6138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여행·기행·예술</category><title>에밀 졸라[마네와 모네] -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9397</link><pubDate>Wed, 02 Sep 2026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9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531748&TPaperId=17489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95/99/coveroff/k1725317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531748&TPaperId=17489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a><br/>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br/></td></tr></table><br/>에밀 졸라<br>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김광우 (지은이), 미술문화, 2017-10-23.<br>&nbsp; 2026년 클로드 모네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란다. 모네는 마네와 함께 거론되는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화가다.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것 외에, 학창시절 기억에 의존해도 마네와 모네는 늘 헷갈렸고 대표적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해지는 때, 2025년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회가 있다고 하여 오직 ‘모네’ 작품만을 생각하며 전시회를 갔다. 모네 작품은 어디에를 연발하며 그저, 모네 작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아예 잊어버린 채 돌아왔다. 전시회 제목에 딱 쓰인 것이 모네인지라 모네의 수많은 작품이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 모네의 작품은 1점이었다. 모네는, 그러니까 미끼였던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 JAG)’의 주요 소장품 143점에 모네 작품이 하나일 줄 어찌 알았겠는가. &nbsp; 사실 대부분이 그렇지만 모네, 마네는 화가의 일대기도 그림도 제대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 조그맣게 있었던 그림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외에는 다른 책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접해 보지 못한 화가였다. 우리나라는 ‘고흐’에 관한 책은 정말 많은데 생각보다 다른 화가들에 대한 책들은 많지 않다. 아니, 고흐에 관한 책이 너무 절대적인가. 두 화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둘 다 같은 제목으로 그린 그림 때문에도 헷갈렸고 주의깊게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전시회에서 본 모네의 그림은 팸플릿에서는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전시회에서는 인상적인 기억이 되지 않았다. 작품이 한점이기에 오히려 더더욱 모를 화가로 남았는데 이 책을 보고 모네와 마네를 명확히 구분한다.&nbsp; 마네와 모네는 대조적이구나. 비슷한 화풍이었던 것 같다며 마네, 모네를 한 유형 한 묶음으로 생각했는데, 두 화가의 그림과 일대기를 보며 어쩌다 이런 혼란을 고정시켰는가 싶었다. 미술 수업을 제대로 안 들었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때문이었을까!&nbsp; 인상주의라는 이름 하에 간단한 인상을 말하자면 마네는 선명함, 모네는 흐릿함이다. 두 화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화가로 마네가 모네보다 연상이며, 동일한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 몇 있지만 마네가 ‘인물’에 중심을 둔 사실주의적 그림을 주로 그렸다면 모네는 ‘풍경’에 중심을 둔 ‘인상주의’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대충 요약하는데 저자는 세련되게 이들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nbsp;  마네는 의도적 구성이나 생략으로 화가 자신만의 느낌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게는 모델이 매우 중요했다.  &nbsp;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으로,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nbsp;  &nbsp;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를 살며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책은 이런 마네와 모네의 삶과 작품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동일한 제목의 그림이 각각의 특성을 가진 채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주고 있다. &lt;풀밭 위의 오찬&gt;(대체로 그림 제목이 풀밭 위의 식사, 풀밭 위의 점심 식사, 풀밭 위의 오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책은 풀밭 위의 오찬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오찬’ 표현이 이상하게 별로다.), &lt;생리자르역&gt;을 비롯하여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마네와 모네의 그림들도. 앞의 두 작품이 마네오 모네의 명확한 차이점을 보여준다면 모네가 살고 있던 아르장퇴유에서 모네 부부를 그린 마네의 그림은 아르장퇴유에서 모네가 그린 그림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nbsp; 이 책에서 두 화가를 알게 되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에밀 졸라”를 비롯한 평론가이기도 했다. 두 화가는 파리 화단의 인정을 위한 살롱전(국전)에 끊임없이 출품하였지만 대체로 평단으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이 때마다 두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여 그림을 해석하고 화가의 의도를 설명하며 그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은 에밀 졸라였다. 전통적인, 익숙함에 길들여지고 그것만이 옳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틀린’ 것으로 치부하는 다른 평단을 향해 제대로 된 비평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당시에도 누드 그림은 성행했는데, 그러고 보면 왜 그다지도 ‘누드’ 그림에 열광하였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만은 적나라하게 공격받았다. 모두들 외설적이라 비난했고 황제는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이 그림은 그래도 ‘낙선전’에 전시되었고 황제의 비난 덕분에 홍보가 되어 인기가 좋았다. &nbsp; 이 책은 마네와 모네에 대한 평단의 비난에 대한 에밀 졸라의 비평이 잘 담겨 있다. 에밀 졸라의 시각으로 그림에 대한 비평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이 두 화가를 대표하는 평들이 에밀 졸라에게서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평을 저자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번역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이를 보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림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뭔가를 느끼거나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어떤 점이 포인트가 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두 화가의 작품을 다룬 책인데도 “에밀 졸라”만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nbsp; 두 화가의 공통점은 평단에 비난 단골이라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비난에는 ‘기존과 다르다’, ‘새롭다’, ‘낯설다’라는 평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형태로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오늘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바로 ”과거의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하고 미술 자체의 본질과 순수성을 추구했던 혁신적 태도”인 “모더니즘”이다. 저자가 처음 설명하고 있듯이 마네는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인상파를 연(물론 본인은 인상파이기를 거부했다 한다) 화가로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로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자 추상 미술을 연 화가로 대표되고 있다.&nbsp; 이처럼 훗날에도 이름을 날리며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되기까지 이들에게 온갖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동료, 평단, 친구, 화단,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두 화가를 둘러싼 반응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 ‘나( 더더군다나 예술가라면)’ 를 알아주는 이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95/99/cover150/k1725317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959971</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환상의 존재들[﻿괄호 밖은 안녕] - [괄호 밖은 안녕]</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3175</link><pubDate>Mon, 31 Aug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3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7743&TPaperId=17483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8/77/coveroff/k1521377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7743&TPaperId=17483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괄호 밖은 안녕</a><br/>이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환상의 존재들<br>괄호 밖은 안녕,&nbsp;이주혜, 문학동네, 2026-04-10.  &nbsp;  <br>&nbsp; 책을 덮고 나면 ‘번역’이란 단어가 둥둥 떠오르는데 아, 이주혜 작가가 번역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소설집 속에 반복된 ‘번역’이란 언어와 언어만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 동식물, 기억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낯선 곳’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공간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 ‘언어’가 아닌 것을 ‘의미화’하여 해석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한편으론 이 낯선 곳에서 여행하면서 ‘번역’으로 인한 어려움이 전혀 없다. 「안개의 기분」에 등장하는 “사슴 키리‘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어찌 이다지도 소통이 어려움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nbsp; 번역으로 힘든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든 어떻든 소설 속 인물들은 여행을 떠나는데 이 여행 장소는 주로 ‘일본’이다. 일본은 또한 ‘번역’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언어를 이해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왜 굳이 여행의 장소는 일본인 걸까. 세계화가 된 지 오래, 점점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배경은 이제 한국소설에서 아주 기본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일본이라는 공간이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일까. 분명 우리나라와는 심리적정서상 이질감과 거리낌이 있는 ‘일본’이란 나라, 꼭 이 나라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필연성이 있는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젊은 세대에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가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을 본 것도 같다. 굳이 배척할 필요야 없지만 굳이 더 챙기고(?) 그럴 것까지야 있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아직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하여. 하지만, 그런 점에서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이 주는 ‘소설적인 요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래서 일본이 배경인 소설들이 주는 이미지, 정서가 대체로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nbsp; 아무튼. 소설에서 일상을 벗어나고픈 이들은 자신의 언어가 닿지 않는 낯선 곳을 선택한다. 여행은 보다 ‘낯선 방향으로’ 가서 ‘익숙함을 발견’하고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여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낯선’ 곳으로 가, ‘낯선 것 이상의 기묘한 것’을 만나고 ‘과거를 기억’하고 온다. 과거의 ‘기억’을 괄호 밖으로 끄집어내어 ‘해석’하고 온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타인에 의해서든 자이로든 단단히 갇혀 두었던 그 기억 속 말들을 끄집어낼 때, 그것은 적어도 해석되고 해체되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끔 만든다. 그렇다면 이건 치유의 과정인 건가. 「안개의 기분」에서 마주치는 말하는 사슴 ”키리“를 보자. 느닷없이 나타난 키리는 “마음을 다하면 저절로 상대방의 말을 할 줄 아는” 존재다. 소설집에서 이런 존재는 불쑥 나타난다. 여행을 떠난 ‘나’는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놓은 ‘언어’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된 걸까. 그것을 위해 작가는 툭툭, 여행 속에서 이러한 존재들을 내밀고 있는 것인가.  &nbsp;  여자는 음성언어 외의 언어 소통에 능숙했다. 오직 손짓과 몸짓, 표정만 동원할 뿐인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절로 이해되었다. 여자는 마임 배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동작이 섬세하고 표현력이 뛰어났다. 몸에서 출발한 언어는 의식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게 단단한 괄호에 담겨 곧바로 내 몸에 도착했다._「괄호 밖은 안녕」  &nbsp;    「괄호 밖은 안녕」속 비오는 날에 만난 맨발의 여자도 그렇다. 사슴 키리처럼. 그러나 이런 존재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 이들을 마주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환상처럼 유령처럼 마주한 이들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그들 너머의 기억을 소환하니까. &nbsp; 어떤 기억들을 소환하느냐, 「안개의 기분」에서는 민해라는 이름이 ‘민중해방’의 민해인지를 묻는다거나 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이 성이 같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기억을, 「괄호 밖은 안녕」에선 가정폭력에서 도망친 이웃집 여자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가족사를, 「초록 비가 내리는 밤」에선 남성 가부장제의 피해자를, 「여름 손님입니까」에서는 내가 질투한 엄마의 조카인 영란 언니를, 「순영, 일월 육일 어때」에선 결혼과 임신을 이유로 ‘수은’의 인생에서 사라진 언니다. 대체로 ‘가족’에 관한 기억이다. 위안이 되는 존재로서의 ‘가족’ 인지 상처를 주는 가족인 것인지.&nbsp; 「초록 비가 내리는 집」은 인상적이다. 가부장적인 남편 ‘박천일’에게 40년이 넘는 세월을 순종하며 살아야 했던 ‘양순덕’이 병으로 사망하며 화분 100여개와 그 식물을 키워낸 기록을 적은 노트를 남긴다. ‘박천일’은 아내의 기록을 읽어내지도 식물을 키워내지도 못하고 ‘손우정’에게 집을 세주는데 사회에서의 또다른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손우정’은 ‘양순덕’의 기록을 보며 식물을 되살리고자 한다.<br> 손우정은 비를 피하는 게 화분에 이로울지 맞는 게 이로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 저 많은 화분 중 초록으로 살아난 식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손우정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식물들이 번개와 폭우를 견뎌내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화분들 간 틈이 거의 없게 바짝 붙여주고 가장자리의 아주 작은 화분들은 창고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아놓았다. 손우정은 화분 백 개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우리 꼭 살아남자.  &nbsp;  &nbsp; 식물을 가꾸는 아내와 함께 산 남편이 전혀 해내지 못하는, 아내의 기록마저도 무슨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남편과 다르게 타인인 ‘손우정’은 ‘양순덕’의 식물에 대한 기록을 읽어내고 해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이 당한 억압에서 해방되고 치유하고자 하는 ‘손우정’은 서로 본명도 모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할리와 로사」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싱글맘의 서사, 가정폭력 피해자, 돌봄 노동에 갇힌 여성들 등 가부장제, 남성 피해에 맞선 여성의 상처에 대한 공유와 연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꼭 살아남자".&nbsp; 생각해보면 “마음을 다하면” 될 일인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존재하는 관계들이 있는 법. 그리하여, 낯선 여정이 해방이 되고 ‘이소’를 꿈꾸는 이들이, 괄호 밖으로 나가기 위한 존재들이 소설에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이 현실에서는 환상의 존재들이 필요하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8/77/cover150/k1521377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28777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습설의 삶[복자에게] - [복자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3162</link><pubDate>Mon, 31 Aug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831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496&TPaperId=174831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77/7/coveroff/89546744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496&TPaperId=174831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복자에게</a><br/>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09월<br/></td></tr></table><br/>습설의 삶<br>복자에게,&nbsp;김금희, 문학동네, 2020-09-09.  &nbsp;  <br>  &nbsp;&nbsp;‘고고리섬’이 어디메쯤 있는지 찾아본다. 가장 닮았을 섬으로 상상하며 섬 찾기를 멈춘다.  제주의료원 산재 사건을 찾아본다. 제법의 기사들이 검색된다. 10년, 재판은 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읽게 되면, 사실 먹먹함이 더 배가된다. 여기에 그들이 살았었구나, 어딘가에 살고 있겠구나, 좀더 실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문장을 빌려오자면 ‘습설’의 삶이 내게로 옮겨오는 듯하다. 내 삶은 옮겨가지 못하고 겹겹이 습설이 되어가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nbsp;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 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습설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nbsp;  &nbsp; 사는 동안 무엇을 털어내어야 했을까.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거나 푹 파묻힌 습설의 삶을 사는 이로써 새삼 묻게 된다. 털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nbsp; 작가는 소설을 다 쓰고 나서 한 문장을 떠올린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라는 문장이라고 했다. 순간 난 생각했다. 누구의 실패일까. 무엇을 실패라고 보는 걸까. 내겐 ‘습설의 삶’이 기억나는 한 문장이다. 돌이켜 보니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라면 그 삶 내내 실패와 실패의 거듭이겠구나 싶다. 다만, 저 말은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말이다. 우리나라 판사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정말로 ‘습설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듯이 습설의 삶을 느끼는 판사들도 분명 있겠지. 이영초롱 판사는 어떤가. &nbsp; 소설은 나, ‘이영초롱’이 1999년 열세 살 한때 살았던 고고리섬에 좌천되어 오면서 어린시절 만난 ‘복자’와의 시간을 회상하고, 또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고고리섬 고모에게 맡겨진 이영초롱은 ”씩씩하고 많이 웃고 더 진취적인 아이“ 복자를 만남으로써 섬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섬 어른들 사이 갈등에 휘말린 상황에서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로 이영초롱은 복자의 간절한 부탁을 거부함으로써 상처를 주고 화해하지 못한다. 이 이후로 이영초롱은 편지를 쓴다.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복자야, 복자에게…… 끝나 버린 그들의 관계처럼, 부치지 못하고 폐기되어 버린 편지들이다.<br>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nbsp;  &nbsp; 어린 시절의 이영초롱은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가 연상되었는데, 필시 훗날 제 이러한 행동을 후회할 것이다 싶었다. 일찌감치 고모로 인해 ”미안함“을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기억으로 간직했기에, 이영초롱은 눈을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판사가 되었다고 본다. 눈은 빨리 털어내지 못했는데 법정에서 욕설은 내뱉으면서 이영초롱 판사는 고고리섬으로 가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복자는 힘든 삶 속에 있었고…… 그건 어린 시절 그때 이영초롱이 한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영초롱 판사는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가 그랬던 것처럼 ‘복자’의 삶에, 사건에 개입하여 ‘복자’를 위해 ”힘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nbsp; ‘복자’는 실제 사건이 모티프가 된 ‘제주의료원 산재 사건’의 당사자다. 병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한 수많은 간호사들이 유산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했고, 간호사로 근무하다 유산한 복자는 이들과 함께 산재소송을 진행 중이다. 허나, 익숙하듯 ‘병원’과 ‘대형로펌’이라는 거대 자본 골리앗 연합에 이들은 작은 돌조각 하나도 제대로 쥐지 못한 다윗일 뿐이다.&nbsp; 소설은 산재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재판’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이영초롱과의 연결이 이루어져 전개된다. 하지만 사건이 중심이 된 소설이기보다는 고고리섬을 중심으로 이영초롱의 고모, 복자에게 엄마같은 이선 고모, 친구 고오세, 그리고 이영초롱의 동료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삶 속에서 각자의 빛과 어둠을 품고 살아가며 복자의 산재 사건도 이의 한 부분이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연상되는. 소설은 오세가 드론을 띄워 찍은 고고리 영상을 통해 이러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nbsp;  오세는 드론을 띄워서 찍은 고고리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바다 위에 그 작은 고고리섬이 떠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연속해서 몰아치는 파도를 견뎌가며 섬은 마치 가지를 뻗듯 선착장과 부두를 만들고 꽃처럼 다채로운 지붕의 집들을 피우고 보리밭과 해바라기밭을 보듬으며 거기에 있었다. 해안의 거친 바위들, 섬의 유일한 공장인 보리 도정공장과 밭둑의 고인돌들까지, 그렇게 위에서 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드론이 점점 내려앉아 지붕의 시점이 되고 잠자리들의 시점이 되고 우리의 눈높이가 되고 갯강구들의 자리까지 내려와 착륙하면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nbsp;  &nbsp; 참,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슬픔을 지는 존재들일 것도 같다. 살아간다는 건 사실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본능을 감당하는 일도 억제하는 일도 힘겹다. 지성과 이성을 끊임없이 담금질하여 문명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끊임없이 사람들과 관계맺음 속에서 감정을 교류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nbsp; 하지만 마냥 어렵다, 버겁다, 힘들다고만 할 수 없으니… ”마냥 우울하고 슬플 수가 없어서“,  ‘복자’처럼 “할망! 나! 슬! 펏! 저! 소리치고 나면 슬픔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듯하고 그냥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괜찮은 듯“ 살아가는 거겠지. 그조차 하지 못했던 이영초롱은 그러한 삶을 깨달아가는 것일테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냉소적인 이영초롱이 유년의 상처와 죄책감을 털어가는, ”나 슬펏저“라고 외치는, ‘실패를 용인할 줄 아는 이’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인생에서 ‘복자’인지, ‘이영초롱’인지.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77/7/cover150/89546744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77077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오만원이든 오천만원이든[반의반의 반]</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6379</link><pubDate>Fri, 28 Aug 2026 0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637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8673&TPaperId=17476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3/59/coveroff/k74203867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오만원이든 오천만원이든<br><br>백온유,&nbsp; &nbsp;[반의반의 반」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외, 문학동네, 2025-04-02.<br>&nbsp;&nbsp;아버지가 그랬다. 폰지갑에 있던 5만원이 없어졌노라고. 어디에서 없어진 건지는 알지만, 아니 그렇기에 누군가를 의심하지만 자신이 폰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기에 따지지 않을 거라고. 오천만원도 아니고 오만원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이 의심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강하게 하기보다 아버지의 과거 행동까지를 소환하며 뭔가 점점 거리를 두게 되고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nbsp; 이건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다.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속 영실처럼 오천만원이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그 말을 한 곳은 병원이었고 나는 심각하게 나타났던 섬망을 떠올리며 정말 치매가 진행되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점점 아프고 병들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다.&nbsp;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에서 소설에서 ‘잃어버린 오천만원’의 행방은 ‘영실’이 잃어버렸다고 할 수 없다. 잃어버렸다면 영실은 그 돈을 찾아야 하는데 찾지 않는다. 딸인 ‘윤미’와 손녀인 ‘현진’은 오천만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두 모녀는 오천만원을 요양보호사 ‘수경’이 가져갔다고 의심한다. 정작 ‘수경’은 영실이 자신에게 준 것이라 하고 영실은 ‘수경’을 감싸며 더 의지한다. 요양보호사가 영실을 돌보고 있는 것처럼 영실은 인지능력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 환자다.&nbsp; 오천만원은 각자에게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그리게 한다. ‘윤미’와 ‘현진’이 떠올리는 과거 속에서 ‘영실’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현진을 낳고 젊은 시절 이혼하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살아온 ‘윤미’는 결정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조차 ‘영실’의 외면으로 딸인 ‘현진’과 오래도록 헤어져 있어야 했다. 이때, ‘영실’이 ‘윤미’에게 한 말은 “현진이는 내가 돌볼 테니 죗값을 잘 치르고 와라˝였다. 그렇기에 점점 ‘윤미’는 마음이 자꾸만 차가워지고 ”오한처럼 다가오는 원망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어머니의 모성에 의문을 가진다. 계속 어머니에게는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이런 어머니의 인색한 사랑을 서운해하는 것조차 부질없을 정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nbsp; 그러면 ‘현진’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현진은 자신의 외할머니가 남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할머니를 조금도 닮지 않은 엄마를 바라보며 줄곧 아쉬움을 느꼈다“. ”오십대 중후반까지도 할머니에게는 영화배우 같은 아우라“가 있었고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를 풍기며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어느 정도 위안을 가지기도 했다. 강인한 할머니, 하지만.&nbsp;현진은 할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로 어느 정도는 자신과 엄마에게 위악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발음이 어눌해질 때,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다리에 힘이 없어서 손녀의 작은 등에 억지로라도 업혀야 할 때, 그럴 때마다 정신이 온전한 건 너무 괴로우니까. 자기 자신이 초라해질수록 말을 함부로 하고 노망을 가장한다고 이해했다. 할머니는 천부적으로 연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어디까지가 위악이고 어디까지가 노망인지 알 수 없어졌다.&nbsp;&nbsp; 애정과 사랑이라는 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상호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 DNA에 박힌 것처럼 맹목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거나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따위로 복잡미묘한 마음을, 현실적인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손녀 ‘현진’이 바라보는 ‘영실’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는다. ”위악“이란 말이. 내가 느낀 지점이기도 하다. 분명히 아픈 ‘노인’은 위악을 부릴 줄 안다. 아픔을 과장할 줄도 안다. 그리고 ‘영실’처럼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이 현실적인 치료를 하게 하고, 아픈 몸을 의탁할 자식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힘’일 테니까.&nbsp; 또한 ‘윤미’처럼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가 된 ‘아버지’를 보며 점점 ‘많이 힘들고 지친 아픈 환자’, ‘늙은 아버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아버지로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셨느냐, 내게’를 따져가게 되는 것을 본다. ‘도리’에 매몰되어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빠져 있다가 점점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간다. 미래를 그리기보다 ‘과거’의 일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잦다. 돌봄이란 끝나지 않을 일이다. 멋지고 다정한 아버지가 아니었던 과거를 계속 떠올리며 ‘반의반의 반’으로 줄어드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게, 아픈 부모를 돌보는 많은 이들이 겪게 되는 일일까. ‘영실’이 잃어버렸다는 오천만원이, 아버지가 잃어버렸다는 ‘오만원’이 실제하는 힘을 작용하긴 할까. 이 불편한 감정적 소모가 반의반의 반이라도 줄어들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있을까. 삶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는데, 소설에 대해 삶을 묻고 싶어진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3/59/cover150/k7420386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435920</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창문 넘어 도망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6281</link><pubDate>Thu, 27 Aug 2026 2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628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7765&TPaperId=17476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32/83/coveroff/k1720377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32&TPaperId=17476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off/893643883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창문 넘어 도망치기<br><br>&nbsp; 최근 재활용센터에서 절단된 다리가 발견되었다. 이 뉴스 이후 그 다리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다리가 심하게 부패하여 절단한 것이라는 뉴스가 이어졌다. 어느 요양병원 환자의 입에서는 구더기가 나왔다는 뉴스가 전해진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을 보면서, 다시금 요양병원에 대한 노인들의 두려움과 기피가 크겠구나 생각했다.&nbsp; 요양병원을 가는 것은 이제 끝이 아니겠느냐는 인식, 심각한 몸 상태에도 요양병원을 꺼리는 아버지에게 요양병원을 가라고 더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알란’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더더욱.&nbsp; 창문 넘어 도망치는 대신 자식들에게 소리부터 지를 아버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점차 변화하는 상황에서 요양병원을 믿고픈 마음이 가득한데, 현실에서 나타나는 요양병원 사건을 접하고 보면 이로 인해 안타깝게 욕을 먹는 병원도 존재하겠지만 안타깝다.<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아버지의&nbsp;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09-02. /&nbsp;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nbsp;예소연 외,&nbsp;&nbsp;다산책방, 2025-02-18.  &nbsp;  &nbsp;  &nbsp; 절대 혁명할 수 없는 아버지로 인해&nbsp;「아버지의 해방일지」와&nbsp;「그 개와 혁명」&nbsp;속 아버지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창문 넘어 도망치신 100세 노인이 더! 아버지도 100세가 되면 달라지려나.&nbsp; 죽음이 유쾌할 수는 없겠으나 삶을 보다 긍정적인 마무리로 그리고 세상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그리하여 엄숙하거나 혹은 형식적인 장례식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그런 것을 생각해봤는데 안될 일이다. 좀더 편안하게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nbsp; 한편으로 그것은 내가 삶에 가지는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가 삶에 대하여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nbsp;&nbsp;「아버지의 해방일지」&nbsp;속 아버지와&nbsp;「그 개와 혁명」&nbsp;속 아버지는 닮아 있다. 그래서 두 소설이 너무 닮은 느낌이었다. 두 소설 속에 나타난 혁명. 전위적인 분위기, 무엇보다 두 아버지들의 성격이나 행동들이 너무나 같다. 그러나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생애에 더 초점을 두고 보니 내게 이 두 소설은 낯설게, 그리고 멀게만 느껴지던지.&nbsp; 새삼스레 아버지의 생애가 어떠했다고 해도 마지막 즈음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해방’하고 죄고 있던 것을 좀더 놓기를 바랐건만. 그렇게 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좀더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nbsp; 너무 오래 생각해보지 않은 부모님의 노후. 죽음을 향해 가는 나이에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돌봄이란 것이 사회화로 대체되고 있지만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될 일이 없다. 돌봄은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힘겨운 일이 되고 있다. 아니, 죽음이 그런 건가.&nbsp; 소설 속 부녀 관계가 낯설어서인지 더더욱.<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150/89364388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48518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그냥 끄~~적</category><title>유령들의 별점[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0600</link><pubDate>Tue, 25 Aug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7060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7800&TPaperId=174706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off/k99213780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유령들의 별점<br>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 김세라, 은빛, 2026-03-25.  &nbsp;  <br>&nbsp;  &nbsp;&nbsp;희한한 광경을 봤다. 그것도 ‘책’이 있는 곳에서, ‘독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공간에서.&nbsp; 이 광경에 놀라 흔한 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기가 막혀 탄성도 튀어나왔다. 참 애달프다 싶기도 하고 짜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정 시기부터 집중적으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의 연장선이겠거니 해도…… 유럽 도시 기행 3편이 출간되기 전이었으니 집중될 곳이 여기였나? &nbsp; 내게 이 책은 ‘강순희의 삶’이었다. 특별히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아내 강순희’도 아니었고 그냥 ‘강순희’였다. 그건 강순희 삶의 일부였을 뿐이다. &nbsp; 발단은 이 책은 ‘강순희’의 이야기이니 ‘강순희’에 대해 더 검색하다 출판사 소개글도 읽고 스크롤을 더 내리던 과정에서 본 텅 빈 별점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는 별점을 작성토록 하고 있는데 별점을 매기는 게 탐탁지 않아 서재에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거의 페이퍼로 작성했다. 어느 순간 리뷰로 몽땅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내 서재는 페이퍼 수가 더 많다. 타인의 글에 별점을 매기는 건 쉽지 않다. 좋았어도 별로였어도 편하지 않다. 내 별점이야 내 기준에 따라 부여하는 건데도 신경쓰인다. 어차피 내 감상을 적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공개된 공간에 작성하는 마당에 내 기준의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보면 소심하게 대충, 어떨 땐 신중하게 대충 별 수를 클릭하고 별점이라는 게 없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부여할 ‘별점’에 대해 항상 조심스럽다는 말이 더 맞다. 아무튼, 별점!이 어떤 상품을 평가하는데 가시적이긴 하다만, ‘테러’라는 말처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순수한 상품의 가치를 난도질하는 데도 직빵이긴 하다. &nbsp; 그래서 별점. 뜬금없이 책의 별점과 리뷰, 나아가 좋아요를 이렇게 들여다보기도 처음이다. 한편으론 그건 또 타인의 이 책에 대한 의견이고 감상이니까. 그런데, 별점이 너무 낮은 리뷰가 연속적이라 어떤 부분들이 별로였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보았는데, 이런!  어떻게 서로 다른 리뷰어들의 서재 구성이나 리뷰의 수, 리뷰를 작성한 시기, 리뷰의 글자체와 글자 줄간격, 내용들이 거의 같을 수가 있지? 별점에 색깔이 있는 이들의 리뷰를 보면 각각 개성있는 서재 구성과 글자체가 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싶다만. 그럴 수 있지. &nbsp; 좋아요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클릭해봤다. 좋아요를 누르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 목록이 뜬다. 딱히 서재의 글이 없기도 하지만 좋아요 누른 사람들의 서재 구성과 글자체나 글의 내용이 왜 다 비슷한 걸까.&nbsp; 재밌는 건 리뷰에는 구매자도 뜬다는 거다. 구매하지 않은 이들의 별점은 왜 또 그렇게 하나같이 낮게 나타나는지. 물론 책을 사는 곳이야 오프라인도 있고 다른 서점도 있으니 꼭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는 경우도 많을 테다. 이 책의 경우 출간되고 나서도 몇 달 내내 계속 지역의 전 도서관 대출현황을 보았을 때, 작은 도서관에서도 쉽게 대출이 되지 않을 만큼 인기도서였던 걸 생각하면 책을 빌려 읽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읽고 싶은 책도 무수히 많은데, 시간들여 공들여 굳이 맘에 안 드는 이의 책을 읽는 심리는 뭘까. 아니, 적극적으로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감상을 공유하려는 그 마음의 기저는 뭘까.&nbsp; 물론, 안다. 왜 그러는지.&nbsp;&nbsp; 그냥 너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고 그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오늘부터 또 계속 여기저기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굳이 이 곳을 찾아와 다시 들여다보았다는 거다. 어제 이후 날짜로 업데이트 된건 없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그게 잊혀지지 않아서, 이걸 굳이 글로 남긴다. 나도, 참.&nbsp;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 수십 명 이름이 일렬로 뜨는데 하나같이 마치 유령들이 줄지어 선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름 옆에 프로필 이미지가 하나같이 텅 빈 채 있어서다. 마치 유령들이, 귀신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영혼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서, 갈 곳 모르고 자꾸 엉뚱한 길로 가는 것 같아서, 이 잔상이 너무 깊게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 서재의 많은 이들이 서재명에 따라 프로필 이미지를 정체성처럼 나타내며, 수많은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 이야기 하는데, 책을 토대로 삶을 이야기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무엇 꺼낄 것이 있다고 나를 감추고 영혼없는 모습으로 적의만 가득한 걸까.  아, 그러고보니 나도 프로필 이미지가 없다. 그건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뭘 넣어 알라딘 서재의 ‘나’가 될까 확정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새삼 유령처럼 보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보니 프로필 이미지를 채워넣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nbsp;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97/cover150/k9921378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9769</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또한 나의 것[오직 그녀의 것] - [오직 그녀의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846</link><pubDate>Wed, 19 Aug 2026 15: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8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1546&TPaperId=174598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43/coveroff/k3720315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1546&TPaperId=174598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직 그녀의 것</a><br/>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9월<br/></td></tr></table><br/>또한 나의 것<br>오직 그녀의 것,&nbsp;김혜진, 문학동네, 2025-09-30.  &nbsp;  &nbsp;  &nbsp;어떤 형태의 직업을 가진 이든 평생 그 일을 이어온 사람의 생애는 비슷하지 않을까. 거기에 내게 조금 익숙한 세상엔 적절한 동조나 차별성을 찾아내려 할 테고, 내게 낯선 세상의 이야기는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며 바라보게 될 터이다. 편집자의 삶이란 잘 안다고도 낯설다고도 할 수 없는 세계, 이 책을 펴고 읽는 순간에도 페이지가 몇 장을 넘어가는 순간에도 이 책이 이런 내용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nbsp; 1990년대 초 출판계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엄청난 ‘사건’을 바탕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일’을 주요 소재로 소소한 업무와 함께 제 삶을 이야기하는 회고록이나 자서전 형태의 일기와도 같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일 중에서 왜 그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인연들, 그 과정에서 일에 대해 자신이 가지는 감정과 태도들을 담고 있어 어쩌면 후배들에게 또는 어떤 직장의 신입들에게 ‘일하는 자세’를 들려주는데 적합한 이야기처럼도 느껴진다. 사회초년생에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올라선 이가 들려주는 어쩌면 직업에서 성공한 이야기처럼. 그래서, 그녀는?&nbsp; 그녀, ‘석주’가 조금이나마 목적을 가지고 생기있게 활동한 건 대학 시절 문학 창작 동아리에 가입한 것, 거기에서 나아가 소설 창작 수업을 청강한 것이다. 이후로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에 맞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스물 넷에 ‘교한서가’에 교열자로 입사한다. “크게 보면 오탈자와 문법적인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 교정이고, 문맥과 흐름을 파악하여 표현과 문장을 다듬는 것이 교열”로 교열자는 교정자로 원고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교열자로서 석주는 상사 ‘오기서’ 아래에서&nbsp;“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어 보였고, 과도하게 수용적인 자세는 태만하게” 보여 “원고에 어느 정도로 관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점차 교열 업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후 ‘오기서’의 추천으로 부서를 이동하여 인문교양부 편집자로 일하면서 ‘편집자의 마음 같은 것’이 자리하며 편집 일에 대한 열정이 셩겨난다. 편집자 소모임을 찾아가기도 하며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닮은꼴의 꿈을 좇는 듯” 보이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으며 소속감을 느낀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편집자 ‘조원호’와 매일의 산책같은 사랑과 연애를 시작한다.  &nbsp;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고요.   &nbsp;  &nbsp; 물론 연애만큼이나 일에 대한 ‘석주’의 열정과 애정 또한 깊어간다. 직장생활을 해본 이라면 반복된 일 속에서도 혼을 쏟아가며 일을 해내고, 소진이 오기도 하는 반복된 업무의 일상을 보낸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트러블이 있으면 일은 더 힘들어지기도 하고 보상처럼 승진이 걸려 있다거나, 주어진다면 더욱 열정적으로 그 일에 매몰되기도 한다는 것을. 출판사의 편집자인 석주에게는 어땠을까.&nbsp;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고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은 이라면 이후 업무와 관련하여 ‘석주’가 맡게 되거나 하게 되는 일이란 건 예측이 된다. 또한 1990년대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성 편집자라면 당시에도 당연하게 흘러갔을 노동하는 여성, 전문직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을 지도 짐작된다. 일과 사랑이란 왜 이분법처럼 나눠지는 선택이어야 하는 것인지.   &nbsp;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nbsp;  &nbsp; 그렇다. 이 소설은 ‘석주’가 말하는 것처럼 “닮은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와 같다.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스토리. 하지만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오는.  &nbsp;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br>&nbsp; 여기에서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오직 그녀의 것. 업무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름에도 ‘석주’의 서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석주’가 하는 일을 다른 업무로 대체한다고 했더라고 보편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얼마간 자신과 닮은 듯했고 때때로 자신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석주’가 그 마음까지를 모두 알려주는 꽉 닫힌 엔딩.  &nbsp;  특별한 사건도, 감정의 동요도 없는 그 이야기에 어째서 마음이 끌리는지 석주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읽는 건 작가가 상상한, 현실에는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인물은 얼마간 자신과 닮은 듯했고 때때로 자신처럼 느껴졌다. 석주는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라는 것 또한.  &nbsp;  &nbsp; 이것이 ‘오직 그녀의 것’이 ‘나의 것’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98/43/cover150/k3720315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98435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봄날의 햇살[달걀의 온기] - [달걀의 온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389</link><pubDate>Wed, 19 Aug 2026 1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3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4593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4593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걀의 온기</a><br/>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04월<br/></td></tr></table><br/>봄날의 햇살<br>달걀의 온기,&nbsp;&nbsp;김혜진, 창비, 2026-04-08.  &nbsp;  <br>  &nbsp;&nbsp;“넌 봄날의 햇살같아.”&nbsp; 우영우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분명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빛나는 언어 표현도 우영우를 대하는 ‘봄날의 햇살’ 행동도.&nbsp; 한국인은 ‘정’이라는데, 최근에는 외국인에게 어필하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부담스럽게 여겨지거나 의심부터 하게 되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오랜 시간 뼈 속에 박힌 이 정서가 쉬이 사라지진 않겠지 싶으면서도, 개인주의를 넘어 점점 이기주의로 치닫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정인지, 오지랖인지, 범죄를 위한 미끼인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 서글프다. 『달걀의 온기』는 이런 마음을 모듬은 소설집이 아닐까.<br>  삶에서 사소한 정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는 생각을 그녀는 자주 했다._「빈티지 엽서」  &nbsp;  관심도 지나치면 병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세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_「관종들」  &nbsp;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그건 애실이 평생 노력했으나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현서로 인해 잠시 잊었던 일상이었다. …… “애실씨, 혹시 걔한테 돈 빌려줬어?” _「하루치의 말」  &nbsp;  &nbsp; 그러니까 타인의 호의에 반신반의하게 되고 선뜻 타인의 손을 잡기 힘든 불편한 기류들이 흐른다. 그래서 내가 행한 단순한 선의가 타인에게 불경한 것으로 치부되며 뒷담화의 소재로 사용될 때, 「빈티지 엽서」속 ‘나’는 자기변명과 자기합리화로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내 일상을 변화시키며 그 안으로 스며들어 좋은 기운을 전하는 이, 그래서 좀더 삶을 애착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행복할 수 있을 듯한 순간, 호의가 ‘목적’을 위한 것, 거짓임을 알았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 「하루치의 말」속 애실이 경험하는 감정이다. 아마, 다시는 사람에게 호의도  삶의 환희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nbsp; 하지만 이 소설집의 제목은 『달걀의 온기』다.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마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관종들」의 정해는 가까운 이들에게서도 모진 말을 듣지만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걸 거두지 않는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불안과 걱정을 나누는 데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일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니까. 작가는 이처럼 ‘최소한의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더 소망하는 듯하다.&nbsp; 닭이 갓 낳은 달걀은 따스하다. 그 달걀을 맛보려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온기를 느끼는 것 또한 조심스러울 일인데, 그 온기를 나누려면 따스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더 세심해야 할까. 「달걀의 온기」에서 선희가 청란 두 알의 따뜻함을 느끼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nbsp;  선희는 아이가 건넨 청란 두알을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그건 바깥의 열기와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였다. 아니, 바깥에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온기인지도 몰랐다.&nbsp;_「달걀의 온기」<br> &nbsp; 내부, 속으로만 흘러 들어가서는 깨닫지 못할 온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관계맺음 속에서 ‘나누는 온기’일 것이다. &nbsp;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살던 고향집을 처분하기 위해 내려와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마음이나 행동이 까끌까끌한 상태이다. 혼자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며 살아가는 소녀 ‘민지’를 보며 선희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이 얼마나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지, 그만큼 타인에 대한 원망을 하고 있는지를. &nbsp; 「푸른색 루비콘」속 ‘그’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고, 새로운 만남이 기대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부류가 아닌 ‘그’의 관심사는 늘 내부로 향했는데 교회에서 만나게 된 ‘남자’와 엮이며 차가 구덩이에 빠지는 일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그의 얼굴에 따뜻하게 와닿”는 것을 느끼고 ‘남자’가 준 꿀물 한잔은 ‘그’에게 “입안에 달콤한 내음이 감돌게 하고, 나른한 졸음을 주며 잠깐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nbsp; 하나의 세계는 필시 다른 세계와 엮일 수밖에 없다. 홀로, 내부로만 집중해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다 실망하고 문을 닫아버리기도 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선의를 줄 수도 있음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봄날의 햇살’처럼 무심히 행하는 보살핌과 애정을 받게 되면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게” 한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따스한 햇살의 온기처럼 조용히 퍼져나갈 온기를 잊지 않기를,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감각하기를 소설은 전하는 듯하다.  &nbsp;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nbsp;&nbsp;_「달걀의 온기」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전시장에 이력을 명시하듯[해파리 만개] - [해파리 만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381</link><pubDate>Wed, 19 Aug 2026 11: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593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74&TPaperId=174593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9/88/coveroff/896090987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74&TPaperId=174593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해파리 만개</a><br/>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04월<br/></td></tr></table><br/>전시장에 이력을 명시하듯<br>해파리 만개   &nbsp;김초엽, 박지숙 (그림), 마음산책, 2026-04-30.  &nbsp;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  &nbsp;  &nbsp; 짧은 소설집이라고 하나 그다지 짧은 소설은 아니다.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단편 분량이 넘는 소설도 있고 각각 제법 길이가 길다. 그런데 짧은 소설이라고 하고 있으니 “짧다”는 건 무언가 생각하게 된다. 읽고 나면 “짧다”라고 느껴지긴 한다.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단순하기에 얘기의 길이가 “짧다”. 그렇기에 캡쳐한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순간적이고 특정한 단어가 둥둥 떠다닌다.&nbsp; 김초엽 작가하면 광활한 우주를 떠올리는데 해파리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바다가 연상되었고, 서두에 쓰여진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라는 문구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쓸모라니, 이 단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압력을 대표하는 말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쓸모를 묻는 인간은 모든 것을 쓸모로 ‘판단하고’, 모든 존재를 그에 맞춰 생각하기에 ‘무용’을 업신여긴다. 그렇다고 ‘쓸모 쓸모’하면서 얼마나 쓸모 있게 생을 살아가는지는 모르겠다. 쓸모를 따져가며 외치는 ‘성과’ 따위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뜨악한 결과물을 ‘성과’로 포장하기도 하니까.&nbsp; 모든 생물들이 제 쓰임이 있을진대 그 쓰임의 기준을 ‘인간’으로, ‘나’로 하기에 ‘위기’니 ‘멸망’이니 하는 말들도 솟아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탈탈 털려 도구적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울 일인가.   &nbsp;  아까부터 너무 과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젤리는 무척 우울해 보인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기피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어떤 기분일까? 꼭 필요한 존재였다가,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던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_「젤리의 우울」 <br>&nbsp; 모래를 그러니까 우리가 모래하면 당연 떠올릴 그 모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누가 있을까. “네가 지닌 진짜 힘은 고정하는 힘이 아니라 바라보는 힘이야. 응시하는 힘이지. 너는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이 세계가 느린 숨을 쉬게 해.” &nbsp; “서로를 낯선 순간 속에 붙들어” 세상을 달리는 모래의 존재 때문에 이다지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숨을 쉬는 것일지 모른다. 모래를 찾아 바다로 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래에 대한 이 정의만으로도 이 책을 계속 읽어갈 이유가 된다. &nbsp; 하지만, 우주선에 불시착함으로써 끊임없이 눈물을 전파하고 있는 ‘젤리’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해파리들이 원하지 않을 만큼 계속 증식하고 있다면. 접촉하면 ‘말과 생각과 느낌을 주입하는 ’끈적이‘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미 쓸만큼 써서 버린 것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이 소설은 이러한 ‘존재’들을 새로이 인식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과하게 표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마치 ‘존재’에 대해 더 세심히 파악하여 특징을 찾아내 ‘재활용’ 방안을 찾아내는 것 같달까. 전시장에 전시하기 위해 이전의 이력을 명시하고 있는 과정 같달까. 이미 그것은 그들의 존재의 의미를 보였으므로, 충분히 다시보기 또는 재정의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nbsp;  천장 틈새로 보이는 도시의 골목이 해파리의 보랏빛으로 물든다. 해파리들은 기능이 없고, 쓸모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것이다._「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  &nbsp;  &nbsp; 앞으로도 세상엔 의도하든 의도치 않은 수많은 ‘존재’들이 탄생케 될 것이다. 잊히고 버려지는 그 존재가 ‘나’가 아니게 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존재’들을 마냥 외면하고 살아갈 수도 없다. 누군가에겐 무섭고 두렵고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힘있는 것들에 의해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란 또한 마냥 예측가능한 것만은 아니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무수한 ‘존재’들은 어떤 ‘쓸모’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9/88/cover150/8960909874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9887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주저없이, 막[정전] - [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43170</link><pubDate>Mon, 10 Aug 2026 19: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43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7268&TPaperId=17443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0/6/coveroff/k5921372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7268&TPaperId=17443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a><br/>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주저없이, 막<br>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함윤이, 문학동네, 2026-03-13.   &nbsp;<br>  &nbsp;&nbsp;함윤이 작가의 소설은 리얼리티 속에 환상을 흩뿌린 작품이 유독 많다. 아니다, 환상이 주고 리얼리티를 첨가한 건가? 이 소설 또한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어떤 부분을 ‘환상’으로 삼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듯한데, 작가의 단편소설 「강가/Ganga」에서의 모호하고 환상적인 부분은 좀 버려두고 ‘현실 사건’을 갈무리하여 최대한 현실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해결에 방점을 두자면 ‘환상’으로 회피하기보다 ‘환상적’으로 해결하고픈 노력이 보인다랄까.&nbsp; 어렸을 적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순간이동력이었다. 어느 곳이든 가고 싶었던 마음이 남긴 염원이다. 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아무튼 다른 사람은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활용할지, 쓰임새를 만들기 위해 애쓸 듯하다. 현실적이든 아니든. 그렇다면 ‘타인’이 나의 ‘능력’의 쓰임을 찾아 요구할 때, 주저없이 응할 수 있을까.   &nbsp;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불려지는 순간  &nbsp;『정전』을 이야기하자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다시 만난 세계’가 불리는 그 변화의 순간이 떠올려진다. 투쟁의 이유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의 유사성도 인식하지만 방법은 다른 형태. 현재 내가 가진 상황을 고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흐름. 논의나 논쟁보다는 즉각적인 실행력이 돋보이는 방식. 그리하여 좀더 발랄함이 가미되고 다소 엉성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울컥하게 되는 그런 투쟁 말이다. 『정전』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청년’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연령으로 누군가를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MZ세대가 경험한 ‘투쟁’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묵살당하던 시대의 투쟁과는 또다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최루탄과 쇠파이프 등을 휘두른 공권력에 맞서 돌멩이, 화염병으로 방어하던 시대에서 촛불로 LED등으로, 이제는 응원봉으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투쟁가도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하여 다양한 노래가 울려펴지는 ’문화 퍼포먼스‘의 형태로 변화했다. 일상에서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막상 ’이슈‘가 생기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 기저는 각자 다르겠지만.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_정전아 일어나라  &nbsp;&nbsp;‘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는 대표적인 투쟁구호다. ‘기계를 멈춰’, ‘물류를 멈춰’,‘공장을 멈춰’, ‘세상을 멈추자’라는 구호는 오래도록 이어온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노동자’는 필요하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자본’과 ‘노동’의 끝없는 대립에서 오히려 ‘자본’의 가치가 더 부상하는 느낌이랄까. AI시대, 노동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재정의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전통적인 ‘노동’이 ‘공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 또한 급격한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노동자’의 사고와 사망 소식은 주로 20대이거나, 이주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정확한 산재사고 현황은 알려주지 않고 나또한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지만. 더구나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이니까, 뉴스가 알려주는 대로 그렇게 받아들인다.&nbsp;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취재를 통해서랍시고 보도에 나온 기사를 보면, ‘막’처럼 ”이게 다가 아닌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사 속 A씨의 삶은 서글픈 결말을 향해 필연적으로 달려가는 양 묘사되어 있었다. 문장들을 핥으면 비리고 쓴 맛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얘는……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 사람이 아냐.“   &nbsp;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막은 파우더가 들어가지 않게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네 손가락은 내 손가락보다 훨씬 짙은 색깔이잖아. 밀크 파우더 안에서라면 더더욱 눈에 띌 거야.  &nbsp;    금방 찾을 수 있다던 ‘A’의 손가락을 찾을 수 없다면, 찾는 노력이 없다면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 것이 아닌 ”더 넓고 많은 애“를 알리기 위해 여전히 ‘기계를 멈춰’, ‘공장이 멈춰’가 유효한 세상이 된다. 『정전』속 화자 ‘막’은 그렇다.  &nbsp;  “내가 원하는 건 공장 전체가 정전되는 거야. 단 하루만이라도 말이야. 하룻밤만이라도 그 안의 일이 완전히 꼬여버리면 좋겠어.”    &nbsp;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  &nbsp;&nbsp;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건,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다. ‘은단’의 고백은 ‘막’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서로 어긋나는 마음, 교류는 그것으로 단절된다. ‘은단’이 아무리 눈 한번 깜빡임으로 눈앞의 전등을 꺼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대도 ‘막’에게는 와 닿지 않는 능력이며, 감정이다.&nbsp; 스무 살의 ‘막’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약회사에 들어간다. ‘잠깐 일을 하러 나왔을 뿐인 대학생’으로 일하고 있지만 공장생활을 하며 ‘수지’와 ‘영준’,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를 만나 친구가 된고 ‘라히루’에게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라히루’에게는 애인 ‘서영’이 있고, ‘라히루’는 기사 속 A가 된다. 공장에서 버려진 라히루를 위해 노조에 가입한 ‘막’은 노조활동이 어렵고 스스로 ‘노동자’의 정체성이 크지 않기에 노조 활동을 그만둔다. ‘라히루’에 대한 감정이 큰 ‘막’은 어떤 형태로든 ‘막’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nbsp; 여기서 기획자 ‘막’이 활용하는 것이 ‘은단의 능력’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만나지 않았던, ‘은단’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막’은 주저없이 ‘은단’에게 연락하고 ‘은단’이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한다. ‘은단’을 만날 때마다 원인도 모를 ‘신물이 치솟는다’는 ‘막’이 ‘은단’을 대하는 방식은, 솔직히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하다. ‘라히루’에 대해 애정으로 필요한 ‘은단’이기에 신물을 삼키며 참고 “은단이 막을 부를 용기를 내기 전에 서둘러 달아나”는 ‘막’의 이기적인 행태에 혹은 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놀라운 행태에 대해서. 오로지 ‘막’에 대한 애정으로 오케이를 외치는 ‘은단’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외면당하는 인물인 것 같아서도 그렇고 ‘공장에서 행한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그러했다. &nbsp;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든 아니든 ‘막’이 사람을 대하는 행태는 내게 영원한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길 것이다. 무턱댄 혐오와 자신을 좋아하는 이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것처럼 행하는 행태, 주저없이 막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크나큰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우정과 애정에서 시작한 ‘막’의 행동은 ‘은단’에게 행하는 방식 때문에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아니, 무섭게 느껴졌다. 거듭 생각해보는데,  내가 혐오하는 이에게 내 필요에 의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내겐 없을 것이다.&nbsp; ‘정전’은 공장의 정전, 노동소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거침없는 스무살의 이야기라라고도 볼 수 있겠다. 멈춤의 방식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막’처럼 홀로 돌진하는 형태가 되는 걸까. 스무살이 세상에 나와 겪게 되는 일과 사람에 대한 거침없는 감정의 펼침을 마주한다. 그러니, 이건 사람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와는 ‘교류’가 아니라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0/6/cover150/k5921372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0069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부유물이 되지 않으려[자개장의 용도] - [자개장의 용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43158</link><pubDate>Mon, 10 Aug 2026 19: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431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94&TPaperId=174431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2/coveroff/89320446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94&TPaperId=174431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개장의 용도</a><br/>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br/></td></tr></table><br/>부유물이 되지 않으려<br>자개장의 용도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11-11.  &nbsp;  <br>&nbsp; 자개장무늬 책표지를 덮으며 생각했다. 아이들 책처럼 표지가 팝업으로 되어 열리면 좋겠다고. 그 문을 열고 나도. &nbsp; 강가/Ganga로 가볼까. Ganga가 함께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면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가 친절히 강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음에도 그것은 작가가 설정한 세계일 것이라 여기며 Ganga를 사전으로 찾고, 그럼에도 ‘강의 언저리’롤 떠올렸다. “강까”라는 된소리 발음으로 자꾸 ‘강가/Ganga’를 읽어내는 탓이다.   &nbsp;  G a n g a.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이는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 자신보다 낮은 집안에 시집가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대개 왕족의 딸이 신하의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일을 의미한다. 새하얀 천을 얼굴 앞으로 늘어뜨린 여자들이 강둑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강가한 여자들, 왜 그랬지? 사랑 탓인가? 다들 행복한 삶을 꾸렸을까?동시에 강가는 신의 이름이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강가는 강의 신이다. 악어와 닮은 마카라를 타고 다니며 속죄와 정화를 담당한다. 여신은 수 해 동안 이어진 왕의 기도탓에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갠지스강으로 변했다. 갠지스 강은 인도 북부를 흐른다. 바라나시는 이름의 도시를 품에 안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nbsp;  &nbsp; 그리고 여기 하나의 의미를 더 추가한다. 강가, 그것은 ‘나’의 이름이다. 낯선 곳에서 ‘나’가 ‘나’가 아니고 싶을 때, 아니 ‘나’를 규정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새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모호한 경게 속의 ‘나’로, 속죄와 정화의 여신으로서의 ‘나’로 나를 정의한다. 아니, 그러한 이름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 이름은 의미를 나열하는 이 행위는 이미 함의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강가’로 불리고 싶은 마음. 하지만 막상 ‘그’가 ‘나’의 이름을 물어보자 ‘나’는 ‘강가’라 말하지 못한다.  &nbsp;  그는 떠나기 직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아는 어떤 이름도 대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이 도시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자 결심했는데, 막상 누군가 이름을 묻자 무엇도 답할 수가 없구나.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일 역시 불가능했다. 질문하는 일도, 답하는 일도, 두려울 뿐이다.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름 모를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어요.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한 거예요.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번역한다. 몸의 떨림이 멈추자 눈앞의 모든 색이 선명해진다.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nbsp;  &nbsp; 여러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강가/Ganga’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몽유병 환자가 겪는 일처럼 대체로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낯선 여정을 하는 이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가장 멀고 긴 여정의 이야기라는 것. 그러나 ‘파랑새’의 결말처럼 행복은 나의 곁에 있었다, 그렇게 떠올려지는 마침표 같은 이야기 같아서.&nbsp; ‘강가/Ganga’ 속 ‘나’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공장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나’가 산업재해를 당한 여공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은 이해된다. 함께, 연대를 주장하는 ‘쿠쿠’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도. 하지만 “너는 내몰린 게 아니야. 너는 선택한 거야. 우리 대신에, 너 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했어. 아냐. 부정하지 마. 화내지도 마. 비난하는 게 아니야. 네 선택을 이해해.”라고 말하는 ‘자자’의 말에 이른바 ‘긁혀서’, “남자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래, 역시나 남자가 필요하다. 내 모든 선택을 칭찬하며, 절대로 힐난하지 않는 남자”로 이어지는 생각과 실제 그 행동을 하는 것 말이다. &nbsp; ‘나’는 ‘쿠쿠’와 ‘자자’의 고향 ‘바라나시’에서 “남자를 사러 왔다”고 말하고 다닌다. ‘나’의 기준은 너무 높아 그런 남자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나’는 남자를 사야 한다. ‘나’가 ‘강가’한 여자가 되는 것은, 될 수 있는 것은 ‘돈’을 쥐고 있음이다. ‘자본’으로 계급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나’가 남자를 사려는 이 전개는 ‘강가’에 ‘降嫁’라는 의미가 있음에 그 내용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나’는 물에 빠지려나?&nbsp; ‘나’가 물에 빠져야 할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나’의 모든 선택을 칭찬할, 힐난하지 않을 남자를 사는 건, 결국 ‘나’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사실 강박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표현대로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다.&nbsp; 인도 여행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그건 갠지스강에 대한 반응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갠지스강을 인도인처럼 성스럽게 여긴다거나 깨달음에 무게를 두고서 감흥을 느낀 이도 있지만 갠지스강의 악취와 오염, 무질서로 인해 신성한 느낌은커녕 최악의 장소로 기억하기도 한다. ‘쿠쿠’에게는 “신처럼 이쁜 강”이지만 ‘나’에게 갠지스강, 강가강은 더럽고 너저분한 강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강에, ‘나’가 어쩔 수 없이 뛰어들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나’는 오롯이 잠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가 모두 죽을 상황이 된다고 ‘쿠쿠’와 ‘자자’를 떠올리며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돈으로 ‘구한‘ ’그’를 물에서 ‘구하게’ 되고…… 강가강에 빠진 ‘나’, 하염없이 떠도는 부유물이 될지 속죄하고 정화되었을지, ‘강가’, 그 의미처럼.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2/cover150/89320446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89426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참요, 적들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 [소설 보다 : 여름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35042</link><pubDate>Thu, 06 Aug 2026 0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350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58&TPaperId=174350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1/93/coveroff/89320440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58&TPaperId=174350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여름 2025</a><br/>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참요, 적들의 이름을 부른다<br>소설 보다 : 여름 2025,&nbsp;김지연, 이서아,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06-10.  &nbsp;  <br>&nbsp; 그래서 ‘적들’은 누구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부분이다. “난 저기서 계속 적을 기다렸어요.”라고 ‘선화’가 말할 때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긴 했지만, 대체로 사이비 종교집단이 먼저 연상되어읽는 내내 미간이 수평을 유지하지는 않았을 게다. 영화 &lt;미드 소마&gt;의 장소가 파스텔톤 속 ‘찡한’ 색감으로 각인되어 있다면 이 소설은 건조하며 폐허 속 섬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소설을 읽고 나서도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가 반복되어 머릿속을 흐르고 있었다.<br>  ”난 저기서 계속 적을 기다렸어요.“선화는 말했다. 때로는 그것이 어떤 가르침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고도 했다.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들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선화는 매일 찾아오는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산을 타고 올라와 그들의 이 고된 기다림을 끝내줄 사람을 기다렸다.“그래서 나는 우리가 만난 게 대단한 운명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nbsp;  &nbsp; 그래서, ‘적들’을 기다리는 이 무리는 도대체 뭘까. 작품의 주인공이 ‘노아’인지라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떠올렸다. 그렇기에 ‘노아’가 이들에게 구원의 존재가 되는가 생각했는데, 노아는 이들 무리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명을 사용한다. 어이없게도 그 가명이 무리의 리더 이름과 같다. ‘선화’라는 리더 이름을 듣자 ‘선화공주님은~’ 하며 ‘서동요’를 떠올리고 선화라는 이름이 담은 뜻은 무언가라는 생각으로 흘러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꽂혀버렸다. 노아는 왜 노아이며 선화는 왜 선화인가. 왜 상사의 이름은 녹원인가. 녹원은 인도에 있는 불교 유적인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녹원이야말로 대척점에 있는 이름 아닌가. ‘적’이라 할 만한.&nbsp; 구원을 위해 ‘적’을 기다리는 것. 마치 내가 잘났음을 타인을 깎아내리며 얻으려는 누군가처럼 여기 ‘천문대’를 점령한 사람들은 그렇다. 자신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라고 타인에게 끼치는 민폐를 당연시하는지 의문인데, 그들은 오히려 마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토록 철저한 현실반영이라니! 명확하지 않은, 막무가내로 ‘적’을 상정해 놓고서 부르는 노래, 그래서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참요같다. 아니, 주술이다. 명백한 세뇌 또는 가스라이팅.&nbsp; 왜 종교적 믿음은 항상 기이한 형상으로 표출되는지 모르겠다. 집단의 힘이란 그런 건가. 힘이라고 해야할 지 광기라고 해야할 지 모를 그 스산함이 계속 리더 선화 주위에 맴도는 듯하다. 항상 머무르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하는 그 무리가 드디어 떠날 때인가, 선화는 마지막으로 여는 행사에 노아를 초대한다. “즐거울 테고, 아주 아름다울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때라면 그냥 넘기고 말았겠지만, 좀더 생생한 때라면 그 버리지 못할 호기심 때문에 나도 노아처럼 가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천문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머릿속에서 봉화대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는 ‘관측대의 돔이 열리고’라는 글을 보자 멈칫하고 만다. 내내 상상하던 이미지와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검은 털옷을 입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태우고 다함께 춤을 추는 건 미드소마 같이 사이비 종교에서 주로 보게 되는 행태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이해하기 싫은 것인지 모를 그 무리의 행동은 언제나 낯설지 않다. 그래서 구원되었나. 노아는 그들이 즐겁고 아름답다고 느꼈던가,&nbsp; ‘적’들이 오고나서야 ‘구원’이 있었다, 그러니 ‘구원’받기 위해서는 ‘적’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 은연 중에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삶이 평안할까. 그러면 ‘구원’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구원과 적이 모호한 삶을 만든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모호한 적에 대해 생각한다. 모호한 구원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냥 그 모호하고 막연한 두려움 자체가 ‘적’이고 그렇기에 가시적인 ‘적’을 만들어내어야 오히려 평안한 마음이 될 것이라 할지 모르겠다. &nbsp; 참요. 어쩌면 삶에서 나를 위한 참요는 필요할지 모른다. 나를 구원하기 위한 스스로에 대한 응원. 그러나 나를 위해 타인에게 부적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 타인을 ‘적’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새삼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 또한 또다른 형태의 ‘적’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가시적’인.&nbsp; 선화는 독수리인가. 검은 옷을 두른 선화 무리들 위로 날아드는 독수리 떼가 그들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어디로 가려는지 모를 그들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가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깃드는 물음. 무리들 위로 날아드는 독수리들은 정처없이 날개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날개짓일 텐데. 그래서, 구원이 뭔데? 구원이 왜 필요했던 건데? 반대로 ‘적’을 만들기 위해 구원이 필요한 건가?<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1/93/cover150/89320440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71936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로데오[히데오] - [소설 보다 : 가을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35039</link><pubDate>Thu, 06 Aug 2026 04: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350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392&TPaperId=174350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10/39/coveroff/89320443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392&TPaperId=174350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가을 2025</a><br/>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로데오<br>소설 보다 : 가을 2025,&nbsp;서장원, 이유리,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5-09-11.  &nbsp;  &nbsp;  &nbsp;&nbsp;로데오. 발음의 유사성 때문인지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히데오’를 보면서 로데오를 되뇌고 있었다. 로데오는 카우보이들이 가출을 몰아 모으던 것에서 생겨난 스포츠로 길들이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탄 채 떨어지지 않고 오래 버티거나 길들이는 경기다. 우리나라에 로데오 거리가 제법 있는데 어릴 적부터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도 그 주변도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말을 탄 카우보이 조형물도 어색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히데오를 읽으며 로데오를 떠올렸던 건 발음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다. 로데오 거리에서 느꼈던 그 이질감과 어색함이 히데오에서 로데오를 떠올린 이유 아닐까.&nbsp; 로데오 거리가 미국 베버리 힐스(Beverly Hills)에 있는 패션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유래했다는 걸 먼저 각인했다면 달랐을까만. 어쨌든 ‘로데오 드라이브’도 스페인어 지명인 '엘 로데오 드 라 아쿠아(El Rodeo de las Aguas, 물이 모이는 장소)'에서 유래된 거니까(https://www.kado.net), 로데오는 카우보이 로데오와 무관하지는 않은 거다. 다른 나라에 제 이름을 단 지명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사성을 찾고 특이점을 찾고…….   &nbsp;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일본에서,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서 살았다. 히데오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차별을 경험한다. 일본에서 살았던 좀더 어렸던 시절, 또래들은 한국인 어머니를 모욕하며 히데오를 괴롭혔고 고교시절 역사나 국어 시간에는 특히 일본에 대한 혐오의 말들을 항상 들어야 했다. 히데오는 원어민 일본어 교사에게 쪽발이라고 하는 것이나 일본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이야기한다.&nbsp; 대학교 연극반에서 히데오를 알게 된 ‘나’는 히데오가 이와 같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을 자신에게 얘기할 때마다 친밀함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 나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필시 ‘나’에게 호감이 있음이라는 오해와 기대로 깃든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를 좋아했지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는 아니었”고 “그의 감정이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 같”은 히데오와 ‘나’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nbsp; ‘나’는 로데오 경기에 나선 승리한 카우보이가 되지 못했다. 히데오를 길들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한번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고 싶은 존재가 있다.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수줍고 자기 확신이 부족한 히데오에게 ‘나’는 제 비밀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지지받고 싶었을지 모르나 당시의 ‘나’는 히데오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다. 훗날에야 그때 히데오에게 ‘다르게’ 말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히데오에게 그런 말은 필요가 없다. 히데오는 그때 그 히데오가 아니기에.&nbsp; 사람은 태어나서 주위 환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으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삶의 여정이 아닌가 싶다. 히데오는 주류 사회의 시선에서 자신을 약한 자로 위치짓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우리가 내면화하는 어떤 시선은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기 전까지는 일방적이고 그렇기에 나를 단단히 여미기가 힘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nbsp; 오랜 시간 동안 히데오는 자신을 단단히 여미지 못한 상태였지만 ‘나’가 쓴 희곡 &lt;따귀 게임&gt;을 통해 달라진다. 마치 로데오 경기를 치르는 카우보이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을 잘 벼르고 길들일 줄 알게 된 것이다. 이 희곡이 뭐기에 히데오의 변화를, 성장을 이끌어 주었는가를 말하자니 일견 히데오에게 감춰진 폭력성을 폭발시키는 역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lt;따귀 게임&gt;은 ‘나’가 쓴 모범소년과 불량소년의 따귀를 맞는 거래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모범소년은 불량소년이 들려주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이야기에 값을 매겨 매일 따귀를 맞는 것이 주내용이다. 불량소년 역을 맡은 히데오는 폭력을 행하면서 ‘나’에게 비밀로 들려주었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하는 히데오는 자신에게 약점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nbsp;  이제 히데오는 그를 찾는 인터뷰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심각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고백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보낸 학창 시절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더는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를 히데오라고 부르곤 한다.  &nbsp;  &nbsp; 비밀이 드러나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 드는 당혹감, 이제 누군가의 비밀을 혼자만 공유하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씁쓸함을 느껴본 이라면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의 변화된 모습이 ‘나’가 바라던 대로였고 그것이 어쨌든 ‘나’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면 ‘나’는 히데오의 변화와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음에 위안과 만족감을 가지면 될까. 자신의 옛 연인 ‘영도’를 기준으로 연인에 대한 기준, 바라는 방식을 가졌던 ‘나’가 변화된 ‘히데오’와 홀로 이별한다. 새로운 비밀을 가지게 된 히데오, 이젠 비밀을 공유하는 대상조차 되지도 못한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 ‘나’의 히데오는 더 이상 ‘나’의 히데오가 아니며 앞으로도 ‘나’가 바라는 ‘나’의 히데오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주눅들지 않고 매번 로데오 경기를 잘 겨뤄 낼 히데오를.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10/39/cover150/89320443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103996</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기억하기[소설 보다 : 가을 2024] - [소설 보다 : 가을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24159</link><pubDate>Fri, 31 Jul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241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140&TPaperId=174241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29/51/coveroff/89320431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140&TPaperId=174241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가을 2024</a><br/>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09월<br/></td></tr></table><br/>기억하기<br>소설 보다 : 가을 2024&nbsp; &nbsp;권희진, 이미상,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4-09-09.&nbsp; &nbsp;<br>&nbsp;권희진, 「걷기의 활용」<br>&nbsp; ‘나’는 ‘걷기’를 시작했다. 대다수에게 알려진 것처럼 ‘걷기’는 육체의 건강에도 필요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 단순한 걷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구직자 신세인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다. 목적지가 있지 않은 걷기를 할 때마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꼬리물기하는데, 자주 떠오르는 인물이 ‘태수 형’에 관한 기억이다. ‘태수 형’과의 기억은 특별한 사건이 있다거나 강렬한 이미지는 아니다. 태수형과 태수형의 여자친구 K, 그리고 ‘나’가 기억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그러하듯 어떤 일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취업 문제며 여러 가지로 고되고 복잡한 나날 속 그저 걷기만 할 뿐인데 왜 ‘태수 형’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일까. 마치 태수형을 이야기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한 것처럼.   &nbsp;    “나는 형과 같이 늙어가고 싶었다.”&nbsp; 이 말이 걷기의 멈춤을 가져왔다가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 걷기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체성을 명료하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산책이 아니라 ‘걷기’였어야 한다. 산책은 ‘나’가 이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기에 조화롭지 않다. 목적지가 없을지라도 좀더 직선의 느낌을 주는 이 ‘걷기’가 감정을 모호하게 두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정리하는데 탁월하게 활용될 수 있다. 마치 미취업생, 백수인 청년 세대의 무력감을 쏟아낼 것 같았던 이 이야기는, 제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취업 문제도 연애 문제도 누구에게나 헤치고 나아가야 할 문제인데, ‘나’에게는 태수를 정의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것이 세상살이에 더 힘겨움으로 작용하는 요인이 되겠지만 어쨌든 그 자체가 ‘나’이기에.     &nbsp;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br>&nbsp; 여기서 옮겨붙어야 하는 건 ‘5억 원에 매수한 아파트가 10억 원이 된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소망이 현실이 되는 것…을 ‘아, 좋다’고 소망하는 건 나의 시선이고 작가는 다르다.  2억 빌라로 이사하고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얻은 n&amp;n's 부부는 ‘남은 시간 동안 한 반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하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한달에 300만 쓰면 70대까지 살 수 있을 테고, 돈 떨어질 때까지 살명 되므로.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뒤, 아내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n&amp;n's를 통해 앤틱 소품, 빈티지 주얼리를 구매하고 ‘나’가 물건 구매 도우미로 고용된다. ‘나’는 이들 부부의 삶을 궁금해하고 아내의 이 구매행위는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구매다. 노동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 또한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남아 있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에 대한 흔적을 기억하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애도이고 그들이 소망하던 방식의 삶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듯 아내 또한 무한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녀 또한 ‘시간’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남은 그녀의 주얼리들은, 남는다. n&amp;n's 아내는 이것을 클릭도우미 ‘나’에게 남긴다.<br>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의외로 구더기는 의욕이 바닥났을 때가 아니라 다시 막 샘솟을 때 나오기도 한다.그리고 때로 그것은 의욕을 품은 것에 대한, 새 삶을 꿈꾼 것에 대한 처벌처럼 느껴진다.  &nbsp;  &nbsp; 로또 당첨의 바람 속에도 이 부부처럼 ‘돈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런 소망을 갈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고픈 마음. 이들의 소망은 타인에게 ‘전이’되는 걸까, ‘전가’된 걸까.  &nbsp;  <br>정기현, 「슬픈 마음 있는 사람」<br>&nbsp; 이 소설은 거여동의 고가교 기둥에 적힌 낙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요즘은 담벼락이 많지 않아서 문자로 쓰여진 무언가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함부로 남의 건물에 낙서를 하면 검찰에게 끌려갈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인가받지 않은 게시물도 뜯어내면 재물손괴가 되는데, 남의 집 담벼락이며 공공건물에 어떻게 낙서를…… 그럼에도 그렇게 ‘어떤’ 할 말이 있기에 낙서를 하는 걸까. 이런 낙서들은 대부분 욕설이나 혐오, 비방문구다. 굳이 좋은 문구들은 쓰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씌어진 낙서도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해 욕설이 기본인데, ‘기은’과 ‘준영은 이런 낙서에 관심을 둔다. 조금 더 적극적인 건 ’기은‘이다. ’기은‘은 잠시 휴직하며 무력감을 겪던 중 가게 된 교회에서 ’준영‘을 만나 소소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가벼웁게 동네를 산책하며 오래된 낙서를 발견하고, ’한국오카리나박물관‘ 같은 기이한 장소를 찾거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기은‘의 일과가 되었다. 동에 곳곳에 새로 발견한 낙서를 볼 때면 ’기은‘은 ’준영‘을 떠올린다. 「걷기의 활용」속 ’나‘가 태수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은은 오늘 모험을 나선 목적이 김병철의 낙서를 밝혀내는 데 있지 않고 준영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자함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연달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nbsp;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마치 성경 문구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찬송가 제목이라서 그런가.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이렇게 시작한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며/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nbsp; ’기은‘에게 깃든 슬픈 마음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 이것을 찬송가로 성경으로 빗대어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어쩐지 슬프지 않은 것 같은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축복받은 슬픔인 것처럼 느끼는 ’기은‘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이것이 슬픔인가 생각했고 역시 슬프다가 아니라 ’슬픔 마음 있는‘이란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슬픔을 오롯이 느끼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nbsp;  “슬프지 않은 사람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슬픔 한가운데 선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 집으로 돌아갔다”  &nbsp;    「소설 보다 : 가을 2024」속 세 단편은 각각 ’기억하기‘다. 하염없는 걷기이든 동네를 탐색하는 산책이든 빈티지 물건을 구매하든 누군가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일, 또한 생생히 되살리고 정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새삼.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29/51/cover150/89320431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295197</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한결같은 친절함에 대해[뱀이 있는 곳] - [소설 보다 : 겨울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243</link><pubDate>Fri, 24 Jul 2026 2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2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37&TPaperId=174102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13/99/coveroff/89320449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37&TPaperId=174102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겨울 2025</a><br/>박민경.서장원.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한결같은 친절함에 대해<br>소설 보다 : 겨울 2025박민경, 서장원,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5-12-10.  &nbsp;  &nbsp;  &nbsp;&nbsp;경기도 어느 아파트 거실에서 뱀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봤던 날, ‘뱀이 있는 곳’을 생각했다. 편안히 자고 있다가 손을 뻗었는데 이불 대신 뱀이 스르륵 지나간다면 나는 얼마나 기겁하며 떨고 있을까. 아파트 거실의 뱀 출몰 뉴스에 제법 놀랐는데 개미같은 것에 물려 흉터가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라 더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애완동물로 뱀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쯤이야 듣고 본 바가 많지만 새삼 아파트가 ‘좁고, 연결된’ 곳임을 실감케 한다. 화장실 변기 주변에서 허물이 발견되었기에 변기나 배수관을 통해 이동했을 거라니, 변기에서 변기로 이동했을 뱀을 생각하면, 으,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뱀이 있는 곳’을 생각하다니. &nbsp; ‘뱀’은 소설이든 그림이든 딱히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뱀들 종은 억울하다 하겠으나 그 이미지는 성경에서부터 가스라이팅된 것 같으니, 탓하려거든 성경으로 몰려가기를. 성경에서부터라… 업보인가.   <br>&nbsp; 「뱀이 있는 곳」을 읽고 난 후 이불 속에서 발견된 ‘뱀’이 아직 더 남은 것처럼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놀랐다. 계속 찝찝한 마음을 가진 채로 무언가에 휩쓸리는 마음은 늘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무엇이었는가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김보화, 휴머니스트, 2023)이라고 얘기한다. 성폭력범들이 법정에서 ‘변호인’을 고용하여 ‘무죄’나 ‘감형’을 만들어내는 행태에 대한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호인들’, ‘대형로펌’에 의해 또 한번 철저한 피해자가 된 ‘하진’이 소설에 등장한다. &nbsp; ‘하진’은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당했지만 무고죄로 맞고소 당하고 대형로펌에 의뢰한 성추행범은 변호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무죄를 받는다. ‘진실’이나 ‘정의’ 따위보다 은혜로운 ‘의뢰인’이 주신 돈이 ‘정의’인 이들의 행태로 인해 퇴사하고 이전 직장 사람들과도 소원한 채 부모님이 계신 집에 머무르게 된 ‘하진’. 무력한 나날 속 부모님이 ‘비빌 언덕’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하진’을 보고 있자면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울화통이 터진다.&nbsp; 이런 상황, 그러니까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흔히 벗어날 수 없는 ‘우환’과 곧잘 이어지는 것은 ‘점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딱히 진지하게 믿어서가 아니더라도 점집에서 듣게 된 말은 은근히 찝찝하게 들러붙는다. 하진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을 거두어 태우고 굿을 벌이면 상황이 나아진다는데, 자꾸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집안에 그런 것이 있나, 없는데, 아니야 뭔가 있는데, 그래, 그거다, 그거’하며 반드시 무언가가 그에 맞는 것이라고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남긴 뱀술이라고 생각한 ‘하진’이 사촌 ‘정인’과 뱀술 처리-그리니까 뱀을 꺼내 묻고 명복을 빌어주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nbsp; ‘하진’의 최선의 방법이 ‘죽은 뱀들의 명복빌기’이기에 드는 무력감, 나아가 그것이라도 해야할 절박함이 전해져 씁쓸하다. ‘하진’은 “한결같이 친철”하며 하진의 “친절함에는 스스로를 못나고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것들이 있”는 사람임에도 ‘거대한 자본과 조직’, ‘악인’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더욱 더. 아니다. 점사에 따르면 그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업보다.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저주’가 함께 한 유산. 문제는 할아버지의 뱀술 컬렉션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뱀들의 명복을 빌며, 뱀들이 할아버지가 한 행동을 용서해주기를 기도하는 ‘하진’과 ‘정인’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br>정인은 망연한 얼굴로 서 있는 하진을 달랬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뱀들이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해주면 된다고. 하지만 정인은 스스로도 그 말들을 믿지 못했다. 정말 그뿐이라면 두 사람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nbsp;  &nbsp; 뱀을 하나하나 꺼내 묻는 장면을 상상하며 내가 그들인양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지만, 이왕 그렇게 하기로 한 것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며 ‘하진’의 ‘한결같은 친절함’이 뜬금 찝찝함으로 남았다. 그건 완전무결함의 다른 말처럼 여겨졌는데 강박같이 여겨져서, ‘하진’이 좀더 세상에 대해 불친절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굳이 친절할 필요는 없지 않나. 대형로펌과 같은 기득권 하에서 좀더 불친절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라게 된다. 족제비가 물고 간 뱀 한 마리처럼 저주는 불길한 기운을 두른 채 주위를 맴돌 것이다. 마냥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평안조차도 얻지 못한다. 세상엔 뱀이 가득하다.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13/99/cover150/89320449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13996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리틀 프라이드] - [소설 보다 : 여름 20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157</link><pubDate>Fri, 24 Jul 2026 2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1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829&TPaperId=174101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70/24/coveroff/89320428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829&TPaperId=174101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여름 2024</a><br/>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06월<br/></td></tr></table><br/>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br>소설 보다 : 여름 2024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4-06-07.  &nbsp;  &nbsp;&nbsp;토미, 오스틴……. 소설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외국인인가 싶지만 이들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기 위해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회사다. 실제 IT 스타트업종에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 이름을 부르거나 닉네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듯하다. 그런데,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왜 대체로 영어일까?<br>  &nbsp;&nbsp;토미는 회사의 ‘수평적 문화’ 방침이 ‘자신은 편견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사장의 허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 또한 채용될 수 있었다고. 토미는 회사에서 업무 능력도 인정받고 회사 생활에 만족하지만, 트렌스젠더 남성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니까 “농담을 받아치는” 일에 서툴고, “어떻게 해야 괜찮은 남자로 보일 수 있는지,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괜찮은 남성’으로 인정받고 싶은 토미의 이 욕구를 오스틴에게서 발견한다. 오스틴은 소셜마케팅 팀으로 자신이 기획･출연한 영상에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버다. 오스틴은 토미의 신장 164cm보다 작은 ‘극소수의 남자’이기에, 모델같은 비율을 가진 남자들을 찾아가서 인터뷰하며 그들의 외모를 띄우는 것이 업무이기에 오스틴에게 보다 더 동질감,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 오스틴을 ‘롤모델’처럼 생각한다. 토미는 오스틴과 교류하면서 트렌스젠더로서 갖게 된 자신의 낮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바라는 남성상을 형성해 갈 수 있을까?  &nbsp;  &nbsp; 토미에겐 여자친구 ‘혜령’이 있‘었’다. 둘의 관계가 ‘옛’으로 정리되고 마는 것, 이 둘 사이의 ‘이름 불리기’는 어떤 형태였을까.&nbsp; 토미가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혜령은 토미가 트렌스젠더임을 알고 있기에 이들 관계의 종결은 그것 때문은 아니다. 끊임없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토미에게 혜령이 들려준 ‘10달러 스트립쇼’ 얘기는 의미심장하다.&nbsp; 대만의 한 술집에는 참가비 10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스트립쇼가 있다. 이 스트립쇼에는 노년의 퀴어 커플, 온몸에 타투를 새긴 사람, 깡마른 뇌병변 장애인, 가슴 아래 탑 수술 흉터가 남아 있는 트랜스 남성 등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은 이들에 대해 야유･비난, 성적 타자화하지 않고 취약한 신체를 드러낸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이 스트립쇼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말한다.  &nbsp;  성을 상품화하지 않는, 보여지는 이를 타자화하지 않는 스트립쇼라니요. 그런데 며칠 디에 몇 가지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참가자들은 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연을 통해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을까? 자기 몸을 긍정한다는 것이 그런 다정한 경험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 일일까? 누구도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데, 오로지 다정함만으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까? 그 대안적인 스트립쇼는 프릭쇼와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가?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nbsp;  &nbsp; 토미가 동경하는 오스틴은 성추행 논란에 연루되며 퇴사한다. 오스틴은 페미니스트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데, 페미니스트에 대한 그의 몰이해와 편견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보여주는 말, “딱 봐도…… 페미같잖아요. 페미니까 차인 거죠.” “머리가 짧으니까요.” 오스틴의 이 편견과 혐오를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실제로 2023년 경남 진주에서 “머리카락이 짧으니까 페미”라며 편의점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남성이 있었다(https://www.yna.co.kr/view/AKR20231105030200057). 오스틴에게 좋은 여자란 ‘페미가 아닌’이다. 성추행에 연루되어 퇴사한 오스틴은 새출발하고 싶어하며, 그러한 이유로 사지연장술을 받는다. 이 위험한 수술을 감행한 오스틴이 토미에게 말한다. “우린 그러니까, 전우 같은 거잖아요.”&nbsp;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위험한 신체를 바꾸는 수술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토미와 오스틴은 전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토미는 이에 대해 확실히 선을 긋는다. “아니요…….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혀 달라요.”&nbsp; 자신이 바라는 남성상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오스틴의 열등감과 혐오를 알게 되면서 자신과는 다름, 자신의 동경과는 다름을 인식하는 토미가 자신에게 좀더 긍정적이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음을 기대해도 될까. 언젠가 혜령과 대만에 그 쇼를 보러 가기로 했지만, 혜령과는 헤어졌고 그 자신 홀로 그 쇼를 마주할 수 있을까. 수평적 회사 분위기를 조직하려는 대표에 대해 ‘편견 없음을 증명’하려 한다고 생각했듯 10달러 스트립 쇼를 이야기하는 혜령에게서 소수자에 대한 편견없음을 넘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픈 윤리적 강박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을 떠올리며 몹시 기분이 나빠졌던 토미. 그 쇼에 가게 된다면 토미는 무대에 오를까, 관객으로 있을까. 아니 그 쇼에 갈까?  &nbsp;  &nbsp; 이름.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을 보며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트렌스젠더로 법적 성별이 다른 토미에게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한 절차로 인우보증서가 필요하다. 개개인에게도 사회에서도 ‘토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 ‘허락’받아야 하는 존재다.    &nbsp;  혜령은 인우보증서를 받을 만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게 이름을 불러줬지만,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그 사람한테 커밍아웃할 수는 없다거나 이미 연락이 끊긴 지 너무 오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nbsp;  &nbsp; 사람들은 각각 다르다. 그 다름을 ‘고유한 특색’이라 얘기하고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적 진리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어디 세상은 그러한가. 나와 다름을 이유로 끌리기도 하고 그 이유로 벽을 치는 세상이다. 토미가 사람들의 내면에 대해 보다 민감하고 미세하게 반응하긴 하지만, 온전히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한다. 하지만 나또한 그 위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쉽지 않음을…….<br><br><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70/24/cover150/89320428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70241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후지다[서해에서] - [소설 보다 : 봄 20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140</link><pubDate>Fri, 24 Jul 2026 2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4101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43&TPaperId=17410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71/28/coveroff/89320451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43&TPaperId=174101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봄 2026</a><br/>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후지다<br>소설 보다 : 봄 2026  김채원, 위수정, 최예솔, 문학과지성사, 2026-03-10.  &nbsp;  <br>  &nbsp;&nbsp;「서해에서」는 ‘후지다’.&nbsp; &nbsp;‘후지고, 후져서, 후지니, 후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한다. 난 후진 쪽이라 ‘서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 동해, 남해, 서해를 연결짓고 바다를 떠올린다. 나아가 동해와 남해와는 달리 거의 가보지 못한 서해를 좀더 경직된 느낌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심어준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서해’가 후순위인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역시 후지다. &nbsp; ‘나’와 ‘서해’의 만남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둘의 관계가 재밌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와 친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어쩌면 ‘나’가 둘이 ‘헤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도 같지만, 그녀의 이름이 ’용서해’라서 가능했다고 농담 섞어 말하고프다. 게다가 ‘나’는 서해의 이름을 보자마자 ‘포기브 미’부터 생각했으니까.&nbsp; ‘나’는 계속 자신을 ‘후지다’고 말하고 있다. ‘허접한 놈’과의 헤어짐에도 자신이 후지다고 생각하고, 주욱 ‘후진’ 놈들만 만나 연애했고 짝사랑 남자에게는 고백 이후의 걱정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간호대를 휴학하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이 1년이 다 되도록 복학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복학을 하고 나면 졸업반으로서 국가고시를 보고 평생 간호사로 일해야 함을 생각하며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약국에 계속 있고 싶은 자신을 ‘후지다’라고 생각하는 ‘나’다. 이런 ‘나’의 후짐은 불안과 소심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 적절하게 ‘나’가 ‘후지다’를 정의하고 있다.<br> 말하자면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었지만 대체로 후지게 사는 상태.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그런 걸 서해는 이해했다.&nbsp; &nbsp;&nbsp;&nbsp;“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nbsp;&nbsp;이 장이 내게 꽂힌 건, ‘나’나 나나, 샘샘이라서. ‘후지다’라는 말이 여러 상황에서 쓰이지만 이만큼 ‘딱’ 꽂혀드는 ‘후짐’의 정의. ‘나’와 그 소소한 내용은 다르다 해도 내가 ‘후짐’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아, 정말 후지다!&nbsp; ‘나’에게 있어 ‘서해’는 ‘나’를 이해하고 늘 괜찮다 말해주는 존재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를 통해 ‘나’는 성장한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생을 통틀어 ‘나’는 무수한 ‘후진’ 상태에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지만 ‘후지다’를 말할 때 ‘남자’의 상대적인 형태로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 어쩌면 청년의 삶에는 ‘진로’와 ‘이성’이 가장 큰 문제이구나 싶고 이것이 요즈음 청년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귀엽게 한편으로는 ‘후지게’ 소설을 따라갔다.&nbsp; 소설에서 후진 ‘나’만큼 특이한 ‘용서해’는 이름 때문인지 참 재밌는 캐릭터인데 소소한 위로를 아주 잘 건네는 사람인데다 무한 긍정의 힘을 갖는 사람이다(장호랑 헤어지고 나서도 ‘장호항’을 찾는 ‘나’에게 ‘정말 후지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세상에 후진 사람은 많다는 것을 아는 ‘서해’는 “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을 ‘나’에게 보여준다거나 장호랑 장호항은 가지 못했어도 인천 송도를 구경시켜주며 서해랑 서해에 왔으니 된 거라고 얘기하며 ‘나’를 다독인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후짐 또한 좀더 버무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끝없이 ‘후지다, 후지다’ 말하고 있고 ‘서해’는 끝없이 ‘아니다, 괜찮다’ 말하는 이 관계를 보는 게 참 재밌다. ‘용서해’의 동생은 ‘감해’는 아니고 서해는 중국 청두로 떠나지만 ‘나’는 새롭게 ‘우진’을 만나 연애하며 첫 여행지로 ‘작은후진해변’을 찾는다. 이 해변은 강원도 삼척에 실제 있는 해변이다. 작은‘후진’해변이라니!&nbsp; ‘나’는 서해로 인해 ‘후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작은’후진 해변처럼 좀더 작고 작은 후짐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나’의 성장기. 가끔은 ‘팩트’라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냥, 그리고 마냥 ‘괜찮다’, ‘잘한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정말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 사람 봐 가며.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71/28/cover150/89320451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712899</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두루미 잠자리[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7106</link><pubDate>Sun, 12 Jul 2026 1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71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7928&TPaperId=173871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19/71/coveroff/k1520379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7928&TPaperId=173871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a><br/>전영재 지음 / 목수책방 / 2025년 03월<br/></td></tr></table><br/>두루미 잠자리<br>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nbsp;전영재, 목수책방, 2025-03-14.  &nbsp;  <br>&nbsp;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가 이 땅에 생긴 지 벌써 73년이 되었다.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이니 곧 73주기가 다가온다. 이 여름, DMZ는 어떤 풍경일까.&nbsp;&nbsp;&nbsp;DMZ는 서해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248킬로미터,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과 북 4킬로미터 양쪽으로 조성된 철책에 갇힌 땅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냥 이곳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암흑과 같은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마치 폐허가 들어차는 느낌이었는데, 오래 전 스치듯 DMZ에 관한 다큐를 보고 그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었고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각인도 되었던 곳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DMZ에 관광투어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고싶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 방법만이 제한적이라도 근처라도 가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nbsp; 이 책은 많은 DMZ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방송기자 전영재 작가가 그동안 취재했던 DMZ의 다양한 생태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DMZ는 전쟁의 모습을 담은 폐허의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동물이 모여들고 식물이 자라도록 스스로가 회복한 공간이었다. 인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공간이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사라지자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고 풍요로운 야생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자연 회복력,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살아고 있는 곳에서는 멸종이 되어가는 동식물이 이곳에서 제 이름을 드러내며 달리고,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곳, DMZ. 그리하여 저자는 이곳을 이제 ‘분단선’이 아닌 ‘생명선’이라 명하고 있다. &nbsp; 보지 않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그곳에 동식물이 모여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철새들이 날아오고 씨앗들이 자리잡으며 하나하나 희귀 동식물이 생명을 움트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롭게 이곳을 변화시키고 있다.&nbsp; 어쩌면 날개를 가진 ‘새’들이 먼저 이곳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텃새들과 겨울을 보내려고 온 수많은 철새들―“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가운데 가장 기품 있고 아름다운 새로 여겨지는” 두루미, “전 세계에 50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 기러기, “ ‘새들의 황제’라 불리지만 사실은 사냥 능력이 없어서 죽은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고 사는” 독수리, “목뼈가 14개나 있어서 몸체를 움직이지 않고도 머리만 270도 돌려 사방을 볼 수 있는” 수리부엉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던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 “1912년 함경북도에서 한 개체가, 1927년 서울에서 한 개체가 발견되었다”라는 아주 낡은 기록만 있는 호사비오리 같은 멸종위기종 등 맹금류와 다양한 새들이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nbsp; 강원도 철원은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겨울 철새들에게 젖줄이 되는 ‘샘통’ 지역은 한 번도 언 적이 없는 곳으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늘 영상 1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철새들에게 얼마나 낙원같은 곳이겠는가. 그리하여 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미꾸라지 등이 많아 두루미과 새들이 이곳을 찾아 겨울을 보내고 떠나는 모양이다.&nbsp; 책속에 “두루미 잠자리”라는 사진이 있다. 야생의 동식물 이야기가 나오니 ‘두루미’와 ‘잠자리’가 연상되었는데 곤충 ‘잠자리’가 아니라 두루미의 침대(?), 침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느 저자가 취재하여 찍은 다양한 휘귀종의 동식물,&nbsp;예쁜 색감을 가진 다양한 새와 꽃, 식물 사진도 나오지만 ‘두루미 잠자리’ 사진이 인상깊었다. 왜인지 비무장지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졌고 울컥했다. 책 속 사진과는 다르지만 저자가 촬영한 영상 속 이미지가 유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어 캡쳐했는데, 책 속에 사진을 보면 기분이 다를 것이다.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두루미떼가 비무장지대 그 어느 곳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 모습……. 평화롭고, 아득하고… <br>“두루미의 잠자리” https://v.daum.net/v/20160229211005154/MBC (www.imnews.com)<br> &nbsp; 새들 다음에는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물을 토대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등장한다. 역시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물범, “야생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증식도 어려워 복원이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 광릉요강꽃, 이 광릉요강꽃이 어떻게 군락지를 이루게 되었는지, ‘둠벙’이라 부르는 물웅덩이 근처에 사는 수서곤충이며 희귀종 물거미며, ‘불새’라고 불리는 호반새, 희망의 상징 희망새 등이 또 얼마나 기껍게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nbsp; 다음으로는 가슴떨리게도 지뢰밭에서 살아가는 희귀한 동식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불리는 솜다리꽃, 신비의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고라니와 멧돼지, 삵과 너구리, 족제비와 하늘다람쥐, 호랑이, 반달가슴곰, 산양 등…. 4000~4500살 정도되는 습지, ‘자연의 타임캡슐’, ‘자연사 박물관’, ‘자연의 고문서’라 불리는 이탄층 ‘용늪’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야생 생물들이 살아가는 이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역사, 문화, 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원이며 가치가 있는지를 알리고 이 땅이 계속 희망과 생명의 땅이 되도록 이곳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에 관해 독일이 동서독 국경 지역을 그뤼네스반트(Grunes Band)로 보전한 사례가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참조하여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북한에 있는 옛 역사적 유적지와 이 생명력 넘치는 야생의 생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기원하게 된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19/71/cover150/k1520379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197143</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우리는 계절마다] - [소설 보다 : 겨울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11</link><pubDate>Thu, 09 Jul 2026 17: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349&TPaperId=173828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7/63/coveroff/89320423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349&TPaperId=17382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겨울 2023</a><br/>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br/></td></tr></table><br/>&nbsp;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br>소설 보다 : 겨울 2023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12-07.  &nbsp;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nbsp;  &nbsp;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엔 그랬다. 웃음보다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논리를 따지고 정의를 따지면서도 운명이나 운, 감각적인 것들에도 쉬이 끌리던 시절이었다. 쉽게 감정의 파고가 출렁였던,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나. 어쩌면 계절마다가 아니라 날마다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였기에 삶이 다채로웠던 듯도 하다. 실제로 그러했다기보다 현실이나 상황은 늘 그렀듯 그저 덤덤하게 흘러갔대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소용돌이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떠한 ‘사건’보다도 그저 늘 그러했던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해야 할 일이 명백하게 주어져 뚜렷함에도 그저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우리는 계절마다」의 ‘희조’와 ‘미정’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무섭구나’.&nbsp; 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내게로만 뻗어나갔다면 요즘 아이들은 내향적이라고 하면서도 제 감각이나 감정의 파고를 외부로 표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 잠시 잠깐 학생들 무리를 스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욕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그들의 언행은 꺾이지 않고 전달된다. 의식하며 사용하는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건지 그것이 더 놀라운 청소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보이는 곳에서와는 다른 또 어떤 폭력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지.&nbsp; 경제적으로 풍족한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아이들의 ‘결핍’은 무엇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결핍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비슷할 듯한데, 어떤 점이 크게 다르고 어떤 조건이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크게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선 더더욱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지 않을 테니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익숙해 주위 사물을 게임 속 배경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래도록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자극적인 게임에 노출된 채 게임 속에 빠져 현실 속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세상이 사람들 대부분을 NPC로 인식한다는 게 머리로는 인식되면서도 가슴으로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런 인식에 어른이 책임이 있다면, 미정의 엄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할까. 더불어, “너네가 결코 걸레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를 붙인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nbsp;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nbsp;  &nbsp; 개학날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이미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한학기 내내 친구없이 생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아무래도 생활반경이 좁아서 잦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학교에서 맺게 되는 관계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터넷 속으로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하여 관계맺음,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게 된다. 너와 나만이 지닌 ‘비밀스러움’으로 형성되는 유대, 단순히 친구 관계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나’와 ‘미정’에게 시작되었다.   &nbsp;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nbsp; &nbsp;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웃기지도 않아. 은총이니 뭐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 널 겁주려고 그랬던 거야.”  &nbsp;  &nbsp; 왜 그 나이대는 수많은 긍정적인 단어 속에서도 죽음이나 허무와 같은 불온한 단어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선 그러한 단어 속에 빠진 나를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나’의 은총! ‘나’는 그것을 “우리가 가진 열띤 열망”이라 생각해왔다. &nbsp; 열망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시절이 청소년인 것은 아니다. 열망이란 특정한 세대의 소유물은 아니며 다만 그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어리숙하고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은총’의 마음으로 다소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변하는 시대, ‘비밀스러운 서사’를 공유하고픈 청소년들의 열망은 정말 그랬던 것이 의심스럽게도 표출되고 노골적이 되어 간다. 청소년의 불온한 열망이 “계절마다” 반복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면,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음침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르게’ 다루어야 할 때다. 그들은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은총’과는 다른 ‘은총’이 이들을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꼰대같은 염려의 마음이 든다.   &nbsp;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7/63/cover150/89320423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776348</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관계가 달라졌다면[반려빚] - [소설 보다 : 가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06</link><pubDate>Thu, 09 Jul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828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989&TPaperId=173828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80/94/coveroff/893204198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989&TPaperId=173828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가을 2023</a><br/>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9월<br/></td></tr></table><br/>관계가 달라졌다면<br>소설 보다 : 가을 2023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문학과지성사, 2023-09-07.  &nbsp;  &nbsp; &nbsp;반려빚?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사’였다. 그러니까, ‘빚’을 반사하는 것.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인지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은데도 전혀 그런 의미의 반려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생각이란 내가 익숙한 단어에, 상황에 맞추어 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문자로 ‘반려’라는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어찌나 ‘반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소설의 ‘반려’는 반려동물을 이야기할 때의 그 반려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로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nbsp; 이 소설은 ‘정현’ 인생의 반려인 1억 6천만원의 빚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친구 ‘서일’로 인해 생겼으나 서일이 떠난 뒤로도 정현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남은 빚. ‘빚’을 두고 뉴스에서나 벌어질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정현에게 어떤 형태로 ‘반려’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믹스커피를 생각하고, 장보기 품목이 달라지고 숨쉬는 순간마다 ‘빚’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데, 한마디로 빚이 ‘정현의 목줄’을 잡고있는 형태다.   &nbsp;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얼마나 더? 하도 오래돼서 요샌 빚이 내 반려자 같고 그래.”정현의 말에 서일은 정색을 했다.“넌 진짜 뭘 아껴본 적이 없구나. 어떻게 반려자랑 빚을 비교해? 그건 반려라는 단어한테 모욕이야.”   &nbsp;  &nbsp; 힘들고 죽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서술하지만 ‘반려빚’이라 칭하며 그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또한 없고 서일에 대한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빚’으로 자조하며 ‘빚’을 일상화하는 정현의 행동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서일의 말처럼 “진짜 뭘 아껴본 적 없는” 이의 방식은 이런가 싶었다. 한편으론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정현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불편한 것이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며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분명 전세사기를 비롯하여 팍팍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얘기인데,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님에도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다소 꿈처럼 여겨졌다. 정현이 늘 꿈속에서 맞닥뜨리는 반려빚의 에피소드들처럼, 아직 꿈인 듯 몽롱한 기분. 소설은 마지막까지 꿈,이었다. &nbsp; 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생각지 못한 다른 결로 나아가야 그것이 소설이겠지. 또한,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정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순응, 아니니 목줄에 잡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nbsp; 하지만, 저 빚이 이성애 관계에서 생긴 빚이라면 정현의 태도가 같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에서 내내 정현의 태도는 ‘빚’이 아니라 ‘서일과의 관계’, ‘서일에 대한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려’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 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첫 이미지에 맞게 정현에게 ‘반려빚’은 평생은 아니었다. 원인인 ‘서일’이 돈을 되돌려 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실제 ‘빚’의 주도자인 서일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던 정현은 어떻게 하려나.   &nbsp;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려빚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 와 현관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 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80/94/cover150/893204198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809472</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소설 보다 : 여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8</link><pubDate>Tue, 07 Jul 2026 1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571&TPaperId=173787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01/10/coveroff/89320415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571&TPaperId=173787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여름 2023</a><br/>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6월<br/></td></tr></table><br/>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br>소설 보다 : 여름 2023,&nbsp;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3-06-09.  &nbsp;  <br>&nbsp; 제법 되뇌던 말이다.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nbsp; 이 말을 소설 제목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차피’라는 말에 가득한 허무를 살짝 비켜내고 다른 이들은 어떤 순간에 저러한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어차피’란 말이 중간중간 간섭하며 ‘어차피 결론은 하나일 텐데’라고 하고 있었지만.  &nbsp;  희주는 자신을 저격하며 말하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대놓고 회원님은 뒤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강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nbsp;  &nbsp; 희주의 눈에 비친 것처럼 나 또한 주호가 답답했고 상황 자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수영 초급반에서 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 뒤로.” &nbsp;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쭈뼛쭈뼛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번 있고 나면 적당히 자리잡은 질서 속에 수업은 이어진다. 수영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고 초급반 수강생들은 줄줄이 일정한 흐름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막혀 버린다. 그건 선두에 선 주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주호는 매번 늘 앞에서 물살을 가른다. ‘잘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주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호’가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호로 인해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여러 날 겪었다면 왜 주호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호를 앞질러 나서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던가? 눈치없는 남자 주호에게 폭발하는 강사를 보며 생각했다. 왜 강사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늦게 자기 화를 못 누르고 주호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건가.&nbsp; 수영장의 주호를 보면 일상에서도 어벙벙하며 세상일에 무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호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호는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안전문제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어느 직장이든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공장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쉬이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는 주호의 마음을, 그 ‘난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nbsp; 희주 또한 주호와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큐를 본 후 ‘우리 모두 30년 후에는 다같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가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다. 희주의 이 말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누구도 희주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지구는 죽고 인간은 죽는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nbsp;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수영 강습반에서 만나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음을 배우고 서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소설에 담겼다. 언뜻 보면 ‘찐따’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연민하는 과정은 제목이 주는 체념이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고 한편으론 동화같기도 하다. 전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의지하며 상처받은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려는 모습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nbsp;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그럴 수가 있는 걸까요.˝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중동이나 갈망 없이도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nbsp;  &nbsp;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결국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졌는데, 어차피 멸망할 세상 남을 해하는데 애쓰기보다는 희주처럼 애틋한 마음을 주위로 돌려 오지랖 좀 부린들 어떠하랴 싶었다. 누군가는 허무를 누군가는 사랑을. 아직 버티고 나아가는 세상에서 후자가 더 필요할 듯 싶다.  &nbsp;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50년 뒤, 빠르면 30년 뒤에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생각했다.  &nbsp;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01/10/cover150/89320415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011040</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오늘 하루, 삶의 풍경[소설 보다 : 봄 2023] - [소설 보다 : 봄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4</link><pubDate>Tue, 07 Jul 2026 15: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787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334&TPaperId=173787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8/29/coveroff/89320413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1334&TPaperId=173787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봄 2023</a><br/>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3월<br/></td></tr></table><br/>오늘 하루, 삶의 풍경<br>소설 보다 : 봄 2023,&nbsp;강보라,&nbsp;김나현,&nbsp;예소연, 문학과지성사,&nbsp; 2023-03-14.  &nbsp;  <br>&nbsp;「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nbsp; 이런 제목은 주로 그림 제목에서 보게 된다. 정물화가 떠올려지는 그림, 뱀과 양배추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릴까를 상상하다가 이런 제목의 그림이 정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그림을 찾아보기부터 했다. 아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딱히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을 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림 또한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나름대로 이런 제목으로 어떻게 뱀과 양배추가 그려질지 구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이라면?  &nbsp;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은 그 시절 현오와 나 사이에 통용된 은밀한 놀이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사람인지, 시대의 흐름 덕에 과대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부자여서 모든 게 가능했던 경우는 아닌지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어떤 때는 일종의 반작용으로, 그저 교양 없고 몰취미한 사람들이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nbsp;  &nbsp; 소설을 읽자마자 특정한 이가 떠오르며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게 되었는데, 아주 우습게도 소설 속 문장마다 그 사람이 일치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만 남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 이건 이런 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전형성인가. 아니, 자신이 구별에 따라 남에게 함부로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는 것 없이도 타인을 함부로 규정짓고, 제 허영에 맞추어, 제 기분과 안위에 맞추어 남을 재단하는 사람이 이 땅에 많다는 건, 많더라도 그 사람을 마주하며 잠시라도 함께 일해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나와’ ‘현오’에겐 ‘놀이’라니…. 맞다. 숨쉬듯 당연하게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사람을 나도 안다.  소설 속 ‘나’는 여행을 떠나 그 속에서 배낭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수히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을 듯싶다. 아, ‘딱히 변화될 리 없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아는 모두가 얘기했지.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하느니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무용할지라도.&nbsp;&nbsp;「오늘 할 일」을 보며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오늘의 다짐으로 굳게 하면 어떨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nbsp;「오늘 할 일」의 두 사람처럼 나 또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 것을 해왔다. 물론 그건 일상보다는 ‘업무’를 수행할 때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해야 할 목록이 길어질 때면, 삶이 이다지도 바빠서야 되는가 정신없이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업무가 여유로울 때는 굳이 업무를 끄집어내어 미리 일 할 거리를 정리하느라 또한 바빴던. 결국 늘 바쁘고 바쁜 삶의 연속이 되어버리는 업무 목록 리스트 작성!  ‘나’와 ‘선일’은 다이어리에 할 일을 작성한다. 그건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참 다른 느낌인데, 실제 두 사람이 쓴 할 일 목록이란 ‘나’의 경우 “출근길에 책을 읽는 것,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것, 그리고 일을 맡아줄 업체를 찾는 것”, 직장을 그만두고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남편 ‘선일’의 경우 “원고지 30매 쓰기”다. 이들의 하루하루의 목록이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다. 또한, 해야 할 일 뒤로 집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걱정, 이사한 집의 소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불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에 산적한 일들 속에서 작은 일하나 게획대로 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럼에고 그들은 매일 '오늘 할 일'을 적는다. 신혼부부, 이 두 청년들이 불안을 안고서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힘껏 하루하루를 달려나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 또한 청년이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요즈음 청년들의 문제적인 행동들에 관한 뉴스를 주로 접해서인지 이런 모습의 주인공들이 귀엽게 느껴지고 흔하지 않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했다. 원체 삶이 팍팍하여 작은 일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려는 청년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생각 나 안쓰럽기도 하고.   &nbsp;  지금 식탁에는 환한 속을 펼쳐 보인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오직 감상될 목적으로 거기 있는 것처럼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가능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속에 두서없이 할 일을 욱여넣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백지로 남길 수도 있었다. 무거운 닻이라도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보며, 나 역시 두 발을 묵직히 디딘 채 멈춰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nbsp;  &nbsp; 「사랑과 결함」은 위 두 소설보다 감정적인 격동이 많이 느껴진 작품이다.&nbsp; 어린 나에게 고모 ‘순정’은 맹목적인 사랑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한 대상이다. ‘순정’은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소박당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드세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다. 어린 시절 고모가 제게 준 사랑으로 그리고 자신 또한 삶에서 겪은 많은 일들로 ‘고모’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 ‘성혜’는 고모가 가진 그 결함이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그럼에도’라는 것을 이해한다. 흔히 이야기하듯 사랑이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을 소설로 보여준다면 이러할까. 그 대상을 이성이 아니라 ‘가족’으로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니라 ‘고모’를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이성적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감정, ‘사랑하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고모’가 사랑을 쏟아주었던 기억과 감정을 성혜가 가지고 있기에 고모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마음없이 마냥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또한, 왜 ‘사랑’받았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느끼게 한다.   소설에선 이렇게 말한다.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그렇다. 어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얼마만큼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사랑은 존재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의 방식과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8/29/cover150/89320413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982931</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모던타임즈의 재생[카나트] -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8097</link><pubDate>Wed, 01 Jul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8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1825&TPaperId=17368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2/21/coveroff/k5120318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1825&TPaperId=17368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a><br/>고선우.이연파.최장욱 지음 / 허블 / 2025년 09월<br/></td></tr></table><br/>모던타임즈의 재생<br>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nbsp;고선우,이연파,최장욱, 허블, 2025-09-19.  &nbsp;  &nbsp;  &nbsp; 유럽 폭염이 심각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파리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지중해뿐만 아니라 독일,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번지고 있다고. 뉴스를 보면 폭염 지역 기온은 40도 이상이며 45도 이상을 기록한 곳도 있다. 고온에 트램, 신호등, 선로까지 녹아내려 기차가 멈추고 전력공급 차질 등 도시 인프라가 마비･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300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아 위험에 노출된 더 많은 사망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nbsp; 유럽 폭염 속 우리나라는 장마 소식이 들린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여름, 우리에게도 폭염이 닥칠 거라고 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려는지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어릴 적 미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저 우주를 유영하거나 로봇이 등장하고 세상은 더할나위 없이 각진, 그러니까 기계가 가득한 세계로 그려지곤 했다. 공상과학 글짓기나 그림에서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상과학의 세계엔 이토록 원시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제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자연’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자연을 극복해 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nbsp; 내가 어릴 적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상과학 글짓기 대회가 아닌 ‘한국과학문학상’ 속 세계는 어떠할까. 미래과학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놀라움, 경이, 찬탄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경각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인간의 삶이 늘, 그러한 것인지도.&nbsp; 한국과학문학상 여덟 번째 작품집 「카나트」는 이러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소설이었다. 아주 먹먹한 느낌이 드는. 순간, 과학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nbsp; 카나트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개발된 지하수로로 사막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여 유용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간 기술의 집합체다. 고선우의 소설 「카나트」의 세계 역시 여전히 카나트가 필요한 사회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사막화로 물이 비싼 도시, 거대한 수로 카나트에서 물을 공급받는다면 물을 가진 자가 아마도 상위의 권력자가 아닐까. 거대 기업 ‘오아시스’가 이 역할을 맡는다. 오아시스는 물의 공급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까지 제시한다.   &nbsp;  ‘오아시스’는 바이오 로봇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오랜 기간 연구 개발한 끝에, 인체의 장기와 팔다리의 일부분을 로봇화하는 하이브리드 생체 로봇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로 인체의 물 의존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가 곧바로 학계에도 발표되었다.  &nbsp;  &nbsp; 이건 폭염 문제 해결방안으로 인간이 폭염에 견딜 수 있도록 신체 일부를 로봇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인데, ‘로봇화’ 수술의 대상은 사회에서 부를 가진 자의 몫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고? 로봇화 수술 비용 문제를 생각하더라도 그건 가진 자나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봇 신체를 갖고자 가지지 못한 이들은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아, 이래서 내가 작가가 못되는 모양이다.  &nbsp;  학교에서 배운 ‘노동자 계층을 위한 역사’에서 선생님이 가장 강조했던 건 여러 세기에 걸쳐 반복되었던 혁명과 투쟁 뒤에도 결국 순응한 자들만이 살아남았다는 교훈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었다. 인류의 90퍼센트가 사라졌던 그날에도 살아남은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섰던 노동자, 그에 맞서지 않고 길들여진 사람들. 딱 할아버지의 삶이 그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마실 물이, 다른 손에는 먹을 음식이 있었다. 그 이상을 쥘 손이 없기에 더 많은 걸 꿈꾸지 않아야 했다.   &nbsp;  &nbsp; 소설은 시작부터 ‘노동자 계층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시작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시감은 소설의 결말이 예견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늘 그래 왔던 것을. 현재의 노동 시장은 점점 인간 대신 AI가 대체할 것이라 하고 있다. 나아가 피지컬 AI가 등장하며 인간의 노동력이 점점 필요없어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카냐트 속 세계에선 일반 로봇보다는 ‘인간의 몸을 기초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로봇’이 더 대접을 받는다. ‘오아시스’ 노동자들에게 효율성을 강조한다. 물부족 사회에서 인체의 물 의존율을 낮춘 노동자란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겠지. 그렇다면 아예 ‘하이브리드 로봇’보다 그냥 일반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욱 더 효율적이진 않을까? 굳이 라이더들에게 하이브리드 로봇화를 해주는 ‘오아시스’의 세계. 이 사회에선 인간화 지수 20%, 로봇화 지수 80%면 인간 등록이 말소된다.&nbsp; ‘오아시스’의 라이더 ‘아이작’은 업무 중에 잦은 실수를 하고 종종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할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날들, 몰래 우물에 들어가 물을 훔쳤던 날의 기억, 훔친 물맛이 주는 기쁨과 두려움. 그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이 떠올리는 옛기억처럼 그립고 먹먹하다. 기억은 부분부분 생각나지 않기도 하는데 뭔가 계속 희미하거나 파편화되고 지명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작의 신체는 건강하다.&nbsp; 아니, 아이작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필연적으로 재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라 한다면, 아이작은 하이브리드 로봇인 건가. 아이작은 재수술을 받고 배달 업무에서 물 저장소 감시자의 지위로 올라서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자부심을 느낀다”. ‘오아시스’는 효율적인 업무와 생존을 위해 노동자에게 '신체 기계화 수술'도 진행해주며 ‘하이브리드 로봇’ 지수가 높아질수록 더 좋은 업무를 제공하는 아주 착실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오아시스’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작’들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 아이작들은 꿈꾸지 않는, 꿈꿀 수 없는…….&nbsp; 소설을 읽고 나면 왜 먹먹한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은 아이작이 보여주는 파편화된 어린 날들의 얘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과거는 서정적으로 서술되어 있고 되돌아가지 못할 추억들은 언제나 그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생을 마감하는 자의 의식처럼 점점 흐릿한 기억이기에 더더욱. 생을 마감하는 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작은 이미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로봇화 수술의 부작용이 기억상실이라면 ‘아이작’은 점점 더 기억을 잃어버리고 건강한 신체만을 가진 채 업무 매뉴얼만 정확히 숙지하며 충실한 업무를 지속할 것이다. 1936년 영화 모던타임즈의 찰리처럼 ‘오아시스’가 만든 철저한 ‘하이브리드 노동자’로서 말이다. 이것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어지는 “노동자 계층의 역사”다. &nbsp;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2/21/cover150/k512031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22174</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한국문학</category><title>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눈과 돌멩이] - [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link><pubDate>Tue, 30 Jun 2026 1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64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off/k622135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364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a><br/>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br>눈과 돌멩이-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nbsp;&nbsp;위수정,김혜진,성혜령,이민진,정이현,함윤이, 다산책방, 2026-01-23.  &nbsp;  &nbsp;  &nbsp;&nbsp;대상작으로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 이민진 작가의 「겨울의 윤리」라고 한다. 대체로 수상작 모두 재밌게 읽었으나 나 또한 이 두 작품이 소설의 분위기나 문체 등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겨울 이미지다.&nbsp; 일본의 눈 덮인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눈과 돌멩이」를 읽으며 『설국』이 생각났다. 특히, 일본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자동적으로 설국이 생각나는데, 생각보다 『설국』의 세뇌가 강하구나 새삼 느꼈다.&nbsp; 눈을 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라 소리없이 펑펑 쏟아지며 쌓이는 ‘눈’을 보고픈 강렬한 욕구가 남아 있는지 소설을 보면서 눈내리는 산골짜기 어디쯤으로 가고 싶었다. 어쩜, 이런 기분에 나도 친구들에게 눈풍경 좋은 곳으로 여행가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여행장소를 정하고 여행 갈 날을 기다릴지도. 그러나 그 이후……. ‘수진’처럼 죽은 후 나의 유골을 여행하고자 한 그곳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암 투병 중 자살한 친구의 유골을 다른 나라에 가서 뿌리고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죽은 후 나의 친구들은 나의 유언대로 유골을 다른 나라에 뿌려 줄까, 난 어떤 친구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nbsp;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리울 수 있나?그리워? 그립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nbsp;  &nbsp; 수진의 친구 ‘유미’와 ‘재한’은 유골을 들고 일본으로 향한다. 암투병 중 자살한 수진은 자신의 유골을 일본 나고야 도가쿠시 신사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폭설까지 내리는 낯선 곳은 그들에게 매순간 불안과 위험을 준다. 그들의 기억 속 수진은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기도 하고, 이해못할 유언과 낯선 곳에서 폭설로 인해 고립될 상황에서 수진을 떠올리며 믿기지 않는 현실과 함께 다양한 감정에 빠져든다. 가까웠던 누군가가 떠나면 누구라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 무력함과 슬픔을. 이어서 뒤따르는, 대상이 모호한 분노도”   &nbsp;  소리와 풍경의 불일치가 오히려 재한의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것은 낙관이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먼 곳의 풍경은 천천히 멀어졌고,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타인의 기억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재한은 창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이쳤다. 뻐근한 눈알을 깜빡였다. 슬픔이 날아가도록. 저 흰 풍경 속으로 모두 다 사라지도록. 유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송이는 얼굴에 닿는 순간이 끝이었다. 바늘처럼 날카롭게 톡, 치고 소멸하는 차가운 감각.   &nbsp;  눈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무기력하게 만들고 결국 미치게 만든다. 자비를 모른다.  &nbsp;  &nbsp; 설경은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수많은 감정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고립되기 전 마주쳤던 ‘여장 남자’인 근처에 사는 일본인 ‘코요’. 코요에 대한 편견을 가득 안고 있지만 고립 상황에서 현지인의 도움은 매우 절실하다. 이런 상태에서 ‘코요’를 만난다는 건, 소설에서 ‘코요’가 이들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알게 한다. 재한은 ‘코요’에게 편견을 가지고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남성인 ‘재한’의 이러한 반응은 편견없는 ‘유미’와 대조되는데, 여행 내내 현실을 대하는 태도나 수진에 대한 기억과 감정 표출방식에서 두 사람은 차이가 나타난다.&nbsp; ‘코요’의 존재가 이들과 연결되는 지점, 그 역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는 점이다. 코요는 자신의 집 정원 한곳에서 그의 연인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코요’의 애도의 형태는 재한과 유미보다 더 적절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적절함’이란 내내 재한과 유미가 그들의 우정이 ‘지극히 느슨하고 끊임없이 수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계속 그들의 불안하고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수진의 유골을 뿌리기 위한 이 여행에서 표출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애초에 정말 이런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나 싶기도 하다. &nbsp; 그러나, ‘코요’의 연인은 죽은 것이 아니라 떠나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또다시 이미 ‘코요’의 그의 연인을 위한 애도 방식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주춤해진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그래, 사람에 대한 마음이란 그들에 대한 기억하는 방식도 잊기 위한 방식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온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식은 정해지지 않은 것일 텐데도, 과도하게 뭔가 그래야 하는 것이 있기라도 하는 양 그것에 매몰되었나 싶다.&nbsp; 수진과 재한, 유미. 그들이 처음 일본 여행을 계획한 것은 일본의 설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히쓰마부시란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장어요리로 나고야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라는데 재한은 코요와 대화를 나누며 ‘히쓰마부시’를 ‘히쓰으 마부시이’라고 잘못 발음하였음을 알게 된다. 재한은 장어덮밥을 이야기한 것인데 잘못된 발음으로 인해 재한은 ‘비통’, ‘눈부시다’라는 단어를 읊조린 것이다.&nbsp; 이제 고립도 끝나고 무기력하고 미치게 만드는, 자비를 모르는 눈도 그쳤다. 밤이 지나 ‘흩날리던 희뿌연 풍경 속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나무 사이로 내리던 눈송이들 속에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둔’ 그들은 무엇을 할까. ‘수진’을 ‘수진’에 대한 기억을 떨구어 내고팠던 그들의 아침은 어떤 모습이 되려나.<br>  숲에서 나오며 재한은 주머니 안의 돌멩이를 만져보았다. 코요의 눈빛과 그의 정원이 떠올랐다. 여기다 버리고 갈까, 잠깐 고민하다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돌멩이는 국외 반입 금지일 텐데. 재한은 앞서 걷는 유미를 불렀다. 유미가 뒤돌아 재한을 보았다. 하얀 풍경 때문인지 유미의 얼굴도 환했다. 돌멩이는 유미에게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히쓰으 마부시이 먹으러 가자. 재한은 일부러 끝을 길게 늘여 말했다. 재한은 주머니 속 돌멩이를 꼭 쥐었다. 그것은 단단했고 언제든 만질 수 있었다.   &nbsp;  &nbsp; 계속 이미지와 감각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말이 생각나는, 눈송이보다 돌멩이를 움켜쥐고픈 마음이 들었던 소설이다.  &nbsp;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150/k622135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1655</link></image></item><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역사·과학</category><title>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주인 노예 남편 아내] -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link><pubDate>Wed, 24 Jun 2026 1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3529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off/k0520320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032021&TPaperId=173529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a><br/>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br/></td></tr></table><br/>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br>주인 노예 남편 아내,&nbsp;우일연, 강동혁, 드롬, 2025-12-24.  &nbsp;  <br>  &nbsp;&nbsp;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의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보긴 하지만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이 이유도 크다. 보면서 계속 앞장과 마지막장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 말, “이거 소설이었나?” 이 책은 퓰리처상 보도 부문 수상작이다.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고 실제 이야기다. 책을 읽을수록 그 사실을 잊고 다시금 이 글이 주는 이야기에 놀란다.&nbsp;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것을 어느새 잊고 두 부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왜 그동안 이 두 부부에 대해서 몰랐을까. 난 엘렌 크레프트도 윌리엄 크래프트도 처음 알았다. 이들이 미국 남부를 탈출한 ‘노예’라는 것을. 더구나 여자인 엘렌이 백인 주인으로 남편인 윌리엄이 흑인 노예로 변장하여 탈출했다는 것을. 책 제목은 그것이었다. &nbsp; 막연하게 노예는 ‘흑인’일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가 엘렌이 백인이라고 하는 것에 놀란다. 엘렌은 혼혈로 피부색이 밝았기에 병약한 백인으로 분장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여정은 길고 위험하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노예들이 그들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경로가 아닌, 기차와 증기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담대한 방법으로 노예 부부가 탈출하는 그 긴 여정의 이야기다. &nbsp; 두 부부는 1848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에 살고 있던 노예였다. 이 책에선 ‘노예’를 ‘예속 피해인’, 노예를 부리는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 명명한다.  &nbsp;  이 시기에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nbsp;  &nbsp; 우리나라 또한 노비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다. 어떻게 이다지도 역사는 다를 게 없을까. 엘렌이 노예가 된 이유는 어머니가 노예이기 때문인데, 엘렌의 어머니 또한 혼혈이었다. 자기 자식을 노예로 만드는 아버지라니. ‘흑인’의 피에 그토록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흑 성적 대상으로는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순이라니.   &nbsp;  브레머는 엘렌에게 왜 예속 가해자들에게서 도망쳤느냐고 물었다. 브레머는 그들이 엘렌을 학대했는지 궁금해했다.엘렌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잘해줬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지는 않았죠.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nbsp;  &nbsp;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엘렌의 저 말이 엘렌이 기나긴 여정을 버티는 힘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엘렌은 ‘예속 가해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또한 자신의 이복 자매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백인’ 중심, ‘백인’ 우월인 시대, 엘렌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위장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순수한 혈통 중심의 사회, 왜 인종 간 차별이 계급이 생기게 된 것인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지금 시대에도 결국 여전한 차별과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 참담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이 떠나온 세계는 “흑인이 말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세계, 아무리 자유 흑인이라도 총을 들었다가는 등에 39대의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세계, 백인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사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인 세계”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음과 같은 세상이었다.  &nbsp;  별만 떠 있는 새벽이 오기 전인 이 시간에는 많은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나온 풍경에는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이곳에는 커튼과 붉은 깃발이 달린 노예 우리나 경매장이 없었다. 담장이 높고 가시 박힌 슈거 하우스도 없었다. 소금물 웅덩이나 후추 병, 소금자루가 갖추어진 채찍이나 쳇바퀴도 없었다. 부부나 부모나 아이가 판매되는 법원도 없었다.  &nbsp;  &nbsp; 두 부부가 ‘예속 피해자’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탈출의 긴 여정 속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도움을 준 이들 덕분이다―물론, 엘렌은 이들의 이 여정에 ‘신앙’의 힘이 있었음도 얘기한다.―그중에는 그들과 같은 ‘예속 피해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이들 부부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의 힘은 ‘예속 피해자’가 증가할수록 더욱 더 강해지고 견고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단지 현재 삶의 평안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단순함을 떠나 보편적인 문제 인식으로 확산되기까지, 또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다.&nbsp; 이 부부의 여정은 실화이기에 이들이 노예제도가 성행하는 남부를 탈출하여 자유의 땅으로 도착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시점에서도 이들의 탈출 여정이 놀라운데 당시에는 어떠했을까. 이들에 대한 비판과 찬탄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들로 인해 노예문제에 대한 논쟁 또한 가속화되었을 것이고 이들을 영웅화한다거나 무엇에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고 깎아 내리려는 이들도 있다.   &nbsp;  엘렌은 대단히 유능했고 큰 인기를 얻었으며 태도도 자신감 있게 변했다. 엠마 미첼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허영심을 갖거나 자기 분수를 잊을지도 모른다고 약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엘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을 여자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제가, 단지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우쭐해질 거라고 생각을 대체 어떻게 하실 수 있나요?”  &nbsp;  임신 마지막 3개월 동안, 엘렌은 남부에서 더 많은 나쁜 소식을 들었다. 신문에서는 엘렌이 자유롭게 살면서 너무 불행해진 나머지 남편을 버리고 미국 신사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며 예속 가해자들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애걸한다는 기사가 실렸다.마치 남부의 권위자들이 엘렌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녀의 몸을 되찾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력에 괴로워한 나머지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차지하려는 것만 같았다. 엘렌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이 없으며, 그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말이다. 그들은 엘렌을 아내가 될 능력도 없는 사람, 남편을 버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들은 가짜 뉴스를 통해 엘렌의 의지를, 욕망을 도용하려 했다.   &nbsp;  &nbsp; 이 책 전반에서 이들이 무사히 자유의 땅으로 탈출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면-우습게도 이 책이 그들이 무사히 탈출한 기록임을 알면서도-, 후반부에는 이들 부부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엘렌’에 대해 아니 ‘여자 노예’에 대해 가지는 사회의 압력은 편견은 ‘인간에 대한 억압 철폐’를 주장하며 ‘평등’을 외치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모순되게 이어지는지…….   &nbsp;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크래프트 부부가 받은 반응을 보면, 이들이 앞서 한 여행이 성공한 이유는 엘렌이 백인 행세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이 많고 장애가 있는 백인 남자 행세를 했기 때문임을 잘 알 수 있다. 크래프트 부부가 그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서로 친밀한 관계나 남편과 아내라는 점,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성적인 친족 관계’라는 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드러난 지금, 크래프트 부부는 조지아주를 떠나 이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편견에 마주하게 되었다. 남부를 벗어나고 미국을 벗어났는데도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인과 노예, 그건 아니라도 주인과 하인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졌는데도 말이다.  &nbsp;  &nbsp; 작가는 “엘렌의 성공은 그녀가 속한 세상의 위선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라고 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역사가 이미 알려주었지만 이 책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구조는 더더더 세월이 지나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아니, 어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해서 ‘꺼리’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들을 ‘예속 가해자’라고 부르면 되려나.&nbsp; 이처럼 여전히 ‘차별 꺼리’를 양상해내는 국가들 혹은 사람들이 있지만, 두 부부가 지나온 풍경이 변화였듯이 역사는 어쨌든 변화해왔다. “노예와 노예주라는 두 범주의 사람이 ’원래‘ 존재하지 않으며, 납치와 인신매매가 등 예속화(enslaving)”하는 것이 문제다.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냐와 더불어 속도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문제가 되는 제도를 ‘인식’하였음에도 그것을 철폐하지 않으려는 이들로 인해 계속 ‘예속 피해자‘가 생겨난다. 이 땅의 “예속 가해자”의 “예속”에 대한 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인식이 “속도를 갖춘 가능성”에 의해 빨리,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18/cover150/k0520320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181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