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모시빛 서재 (모시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6 Apr 2026 01:37:17 +0900</lastBuildDate><image><title>모시빛</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모시빛</description></image><item><author>모시빛</author><category>에세이</category><title>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푼크툼] - [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073139</link><pubDate>Thu, 05 Feb 2026 1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yellowlight/170731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939440&TPaperId=170731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9/coveroff/k6129394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939440&TPaperId=170731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a><br/>김덕일 지음 / 상상창작소 봄 / 2024년 03월<br/></td></tr></table><br/>푼크툼  &nbsp;  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김덕일&nbsp;<br> &nbsp;&nbsp;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아득하다’. 위에서 무언가를 보는 일은 잦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벅찬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공간과 시각의 한계로 사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풍경에 넋을 잃으면서 너무 크고 넓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주 작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풍경을 보기 위해 왜 그토록 위로 오르고 싶은지를 알게 한다.&nbsp; 그럴진대, 사선이 아니라 정면으로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어떨까.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늘에 누워 아래를 바라볼 때 보이는 그 풍경. 비행기에서 창문으로 보는 것이나 높은 곳에서 내 눈 아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광경. &nbsp; 이 책은 그러한 풍경을 보여준다.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의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작가가 드론으로 찍은 숲의 풍경이 담긴 책이다. 작가는 '새의 눈(버드 아이 뷰)'라고 표현한다. 책을 펼치면 숲이 풍경보다 무덤이 더 도드라지게 보인다. 이쯤 재목이 ‘사라진 숲’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난 신문기사 속 무덤 사진을 보고 이 책을 찾았으니, 왜 제목이 무덤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더 했고 숲보다 많은, 숲이든 땅이든 어느 곳에든 자리한 무덤 사진을 열심히 쳐다보았다.&nbsp; 그렇다. 책에는 삶의 가까이에 있는 무덤 사진이 많은데 작가는 사진을 찍다보니 이곳이 숲이 있었을 장소인데 싶었고, 숲이 어디로 갔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경작지가 늘어가는 것 또한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만, 경작지에 있는 무덤은 숲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작지의 한 부부처럼 느껴진다. 경작지든 경작지에 있는 무덤이든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들이긴 할 거다.  &nbsp;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홀로 남겨진 시간을 맞이한다. 사라지는 숲과 어느새 잊힌 추모의 파편 사이에서 무심한 자연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흔적에 발을 딛고 있으면 평행선처럼 맞물릴 수 없는 감각의 표상이 머릿속에 맴돈다. 숲이 묘를 만들고, 묘는 더 이상 사람들이 파헤칠 수 없는 일정한 지대를 만든다. 그 구역을 따라 뻗어가는 사선들과 불규칙한 굴곡의 이끌림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 앞에 앉아, 또는 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며 맞닿을 수 없는 시간을 사색한다.  &nbsp;<br>&nbsp; 작가는 전북 고창의 풍경을 주로 담았다. 이 지역은 옛 삼한의 모로비리국이라나. 숲이나 들판의 고인돌뿐만 아니라 붉은 황토밭 사이에 자리한 무덤 사진. 붉은 황토밭, 아직 무언가를 심어놓기 전 갈린 붉은 황토밭 한켠에 자리한 묘를 보고 있으면 묘라기보다는 그냥 밭의 한부분으로만 생각된다. 무덤은 산 속에나 자리하는 것만 같았는데 옛 고인돌이나 무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황토밭, 경작지 속의 묘지는 묘하게 이질적이지 않다. 차라리 어느 산 속에서 마주한 웃고 있는, 스마일 스티커와 같이 보이는 무덤이 더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넓은 경작이 한켠, 묘의 풍경이 스마일 모양으로 여겨지는 건 작가가 ‘버드 아이 뷰’로 찍었기에 볼 수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심스럽고 무서움을 주는 ‘무덤’이 아니긴 한데, 붉은 황토밭 속의 무덤은 그 붉은 색깔 때문인지 더더욱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인지 숲에 있을 때보다 더더욱 ‘무덤’으로 인식된다고 할까. 숲속에 초록색과 익숙하거나 겨울의 메마른 숲 속에 희미하거 푸석한 모습이 익숙해서 몰랐던 너무나 또렷한 경계. 붉게 테두리쳐 놓은 듯한 저, 선.  &nbsp;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공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공간.   과거와 미래의 공간. 하늘과 땅의 공간. 선주민과 미래 주민의 공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공간. 가시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세계.   그래서 한쪽을 더 자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  &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사진집을 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nbsp;무덤 사진 외에 개간으로 황폐한 산의 모습 또한 담겨 있다.&nbsp;싱크홀처럼 초록색이 뭉텅 비어버린 산,&nbsp;숲의 모습.&nbsp;그러나 산은,&nbsp;숲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치유력으로 오랜 시간 동안 그 푸르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nbsp;이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파괴한 산의 모습을 통해 숲의,&nbsp;산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끔 하려는 것이다.&nbsp;작가는 미래 세대에 빌려온 자연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기록을 했다고 얘기한다.<br>&nbsp;  새의 눈으로 사람들의 숲을 본다. 숲이 사라지는 대신 경작지는 늘어만 간다. 늘어난 경작지만큼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곳도, 도시도, 경제적 경작지는 늘어만 가는데 그 빌딩 숲에서 신선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바람과 숲의 동무였는데…  &nbsp;<br>&nbsp; 이 책 속에서 명징하게 살아남은 말은 ‘푼크툼(punctum)’이다. 이 말은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진을 감상할 때,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마다 사진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나의 푼크툼은 처음 적은 그 느낌처럼 ‘아득하다’, 그리고 ‘슬프다’. 숲에 자리한 무덤, 경작지 그리고 또렷한 ‘무덤’의 경계, 그건 숲의 파괴인 걸까. 인간과 자연은 대립인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인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산의 숲의 무너짐과 회복을 보고 있는 저 무덤은 생명력이 있는 건가.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난다는 것은 다르구나.  &nbsp;  <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9/cover150/k6129394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12091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