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갈매기 조나단, 비상이 꿈꾸는 낙하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모든, 낙하하는 것의 지향점은 비상이다. 모든 낙하하는 것의 도달점은 그것이 부딪친 곳이다. 바로, 그곳. 도달점과 지향점 사이에는 수천 개의 시선이 얽히고설키어 있다. 어떤 시선에 발목이 잡히고 또 어느 시선에 목이 조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수천 개의 시선에 길들여지고 수천 개의 시선이 길러낸 ‘나’가 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암전. ‘기억할 수 있는 동물’로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이 되어 버린 ‘나’가 이제와 묻는다. 다시 날기 위해서, 다시 부딪쳐야만 하느냐고.

  비상과 낙하를 오가는 갈매기가 말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바닷가, 먹이 찾기에 바쁜 갈매기들 틈에서 자꾸 머리를 처박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톤은 수많은 비행 기술을 연마한 끝에 시속 300km로 날게 된다. 스스로도 갈매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 순간이라 칭하던 그의 성공을 축하하는 갈매기는 아무도 없다. 갈매기들에게 날개란 먹이를 찾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조나단은 ‘무책임하게 무모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로서 갈매기 가족의 위엄과 전통을 헤치면서…’ 그렇기에 조나단은 버려질 운명이다. 그가 갈매기 사회의 습속화된 도덕에 따라 다시 약속하는 갈매기가 된다면, 그의 날개를 버리고 그의 부리로 먹이를 찾는 일에 더욱 집중한다면, 가족의 품으로 무리 속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어떤 형벌이든 반성과 항복의 제스쳐를 통해 소멸될 기회를 얻는다. 형벌은 길들임을 위한 것이니 다시 길들여지겠노라 약속만 한다면야 형벌의 목적은 충분히 이룬 셈이니까. 그렇게 늘 외면받던 조나단 갈매기, 용서하고 받아준다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겠는가. 조나단 갈매기는 약속의 의지로 눈을 내리까는 대신 이렇게 외친다.

  “삶의 의미를, 삶의 더욱 높은 목적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갈매기보다 누가 더 책임이 있단 말입니까? … 이제 우리는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이 아닙니까! 배우고, 발견해 내고, 자유로와지고 하는!.”

  추방. 그가 머물던 한 세계가 닫혔다.


  내 가족과 종족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추위와 고독과 두려움을 겪으며 조나단은 여전히 비행기술을 연마한다. 그는 이미 날기를 사랑하고 비행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수한 노력으로 비행기술을 터득하며 마침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초현실적 공간까지 날아오른다. 가고 싶어 하는 어느 장소나 어떤 시각에도 갈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소를 갈 수 있는 비행 기술. 그가 꿈꿨던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조나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추방한 갈매기 무리로 돌아갈 결심을 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 맴돈 것은 스승의 말,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라.”였다.

  조나단은 그가 배우고 깨달은 매우 간단한 것들에 대해, 갈매기가 나는 것은 당연하며 그들의 본질은 자유이며, 자유를 방해하는 건 어떤 형태의 의식, 미신, 제약이든 물리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자유로 이끌어 가는 법만이 참된 법이다. 그 밖에 다른 법은 없다.”

  그의 세상에서 자유는 끊임없는 날개짓, 끊임없는 비상이었을 것이다.


   뭐, 갈매기 얘기였지만 이들의 비행하는 삶 속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와 초인을 읽는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단순히 반복된 삶이 아니라 생성의 반복이고 그것은 또한 삶의 경이로움이자 그 자체로 삶의 구원이다. “영원히 회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서, 어떤 포만이나 권태, 피로도 모르는 생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축복하고 있는 것. 영원한 자기 창조와 영원한 자기 파괴의 디오니소스적 세계”

  나의 이해가 니체의 이러한 세계를 ‘사랑’으로 읽고 있다. 갈매기 조나단과 그의 스승들의 자기극복과 의지, 그들의 날개짓에 대한 무한한 경외와 사랑이 니체가 말하는 것과 닿아 있지 않는가. 어릴 적 조나단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저 그 모든 일상에 만족하고 물음없이 살아가는 생이 아니라 비상을 꿈꾸는 이의 삶으로 읽었는데, 오늘 다시 니체와 맞물려 자아실현 이외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만난다. 조나단과 그의 스승들의 창조력은 꿈을 실현했다는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하는 날개짓은 그들에게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며 자유이며 춤이었다. 그들의 날개짓은 삶에서 본질적인 물음으로 인도하며 또한 그 물음이 단지 물음으로 끝나도록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생을 사랑했고 그들의 생을 의지로 이겨냈다. 조나단은 추방당한 곳으로 되돌아와 자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리 속에서 외면받으며 비상하는 날개짓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계를 넘어서”기를 가르치며 자신을 신적 존재로 여기는 것을 부인하며 특별할 것 없는 새임을 강조한다. 

   머리를 처박기만 하던 어린 갈매기가 저렇듯 놀랍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조나단은 매우 특별한 갈매기였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왔다. 이미 선택되어 그 길고 가는 갈매기라고 생각했는데 조나단은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의 제자 플래처도 깊게 모셔두었던 조나단에 대한 ‘신적 존재’라는 이미지를 내려놓는다. 그저 스승에 대한, 스승의 제자들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깨달을 뿐이다.

  먹이를 위한 날개짓이 공격적이고 매섭다면 그저 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는 날개짓은 얼마나 힘차고 아름다울까. 비상을 꿈꾸는 자, 바닥에 처박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비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사랑스런 춤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리처드 바크의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성직자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 한다. 이 책의 첫 출판이 1970년이라는 것을 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때다. 성직자들은 “신성한 신의 영역에 인간이 도전한, 오만한 죄로 가득한” 책이라 했다. 출판 거절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금기와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는 조나단의 행동이 누군가의 눈에는 불쾌했던 모양이다. 길들여진 눈은 늘 그것만 본다. 갇힌 프레임 속에서 확장될 수 없는 니체가 바라본 약자들의 논리를 갈매기의 꿈을 바라보는 이들을 통해 발견한다. 나 또한 강자는 악한 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사람으로서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라는 개념의 전환을 새긴다. 이 사회에서 병든 자들을 기꺼이 불쌍히 여겨주는 강자가 되어, 아모르 파티를 외칠 수 있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지금, 조나단과 같은 무한한 비상의 날개짓을 위해 바닥에서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

 

달과 육펜스, 서머셋 몸


 

“찰즈 스트릭랜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위대함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위대함이란 출세한 정치가나 성공한 군인에게서 느끼는 그런 위대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같은 위대함은 인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위대함이라기보다는 단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가 위대하게 보일 뿐인 그런 위대함이 아닐까.…거기에 비할 때 찰즈 스트릭랜드의 위대함은 진짜였다.”


   이렇게, ‘달과 육펜스’의 처음은 시작한다. 마흔 살, 이제 삶의 안정을 취했다고 여겨지는 나이의 가장이 안정적인 가정과 직장이라는 삶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 바로 ‘달과 육펜스’다. 제목에 대한 끌림, 주인공에게 느껴지는 강렬함.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쓰여진 전혀 허구이지 않은 이야기. 주저없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달과 육펜스를 꼽을 수 있는 건, 찰즈 스트릭랜드에게 나를 이입시키기 때문이다.

   찰즈 스트릭랜드는 한 가장의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살아가던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주식 중개인으로서 성실히 일하던 평범한 가장이 직장과 가족을 버렸을 때는, 분명 다른 여자에게 열렬하게 빠졌을 거라는 많은 이들의 분노에 찬 생각과 달리, 그의 행동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괴팍한 예술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가난하고 고된 삶은 개의치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과 예술혼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의 괴팍스럽고 냉소적인 태도는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그림 또한 인정받지 못했다. 몇 년의 방랑을 거듭하며 찰즈 스트릭랜드는 마지막으로 타히티 섬에서 정착했다. 이곳에서 17세의 원주민 소녀 아타와 결혼하여 열대의 울창한 나무 숲, 그늘 속으로 구불한 오솔길을 따라서도 한참을 가는 산호초 섬, 에덴 동산 같은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 곳에서 스트릭랜드는 행복해 했다.

   스트릭랜드의 말년 생활을 전해준 의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나병이었고 마지막엔 눈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거나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고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에도 단 한번도 평온을 잃거나 흔들린 적이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묻고 난 후 집에 불을 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무 조각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그가 그린 벽화와 함께 찰즈 스트릭랜드도 한줌 재로 남았다.


   달과 육펜스는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 실화인 듯 허구인 듯 스트릭랜드가 고갱인 듯 이 화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또한 달과 육펜스라는 제목이 너무 좋았다. 이때부터 13살이란 나이에 만난 스트릭랜드는 내 인생을 표면적으로 지배하는 주인공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살아가고 있자. 하지만, 곧 나도 나의 열정을 불태우고 살자.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자. 그래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직 마흔이 안됐으니까, 그때가 되기 전까진 육펜스를 움켜쥐고 있는 나를 합리화한다. 그래서인지 스트릭랜드처럼 그림을 그리는 시기를, 자연스레 마흔 살을 데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늦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시체처럼 일을 하는 것이 오로지 안정적인 수입 때문이라는 자괴감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도 선뜻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건, 그 일에서 안정된 생활을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꿈만 꾸고 있다. 그것에 가는 것이 마냥 두렵기도 한 것 같다. 마치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꿈꾸는 삶을 동경하며 그렇게 사는 것에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늘 재능이 있다고 믿어 왔는데 그 길을 걷다 보니 아무런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꿈꾸는 삶에서 발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서머셋 몸은 찰즈 스트릭랜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영혼 속에는 원래부터 어떤 창조적 본능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으나, 주위의 환경 때문에 그것이 오랫동안 가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창조 본능은 마치 암세포가 살아 있는 조직 속에서 커 가듯이 맹렬하게 자라나다가, 끝내는 전신을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꼼짝없이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내 속에도 시작하기도 전에 구겨 넣은 창조적 본능이 아직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조금 늦었더라도 그것을 건드리면 맹렬하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어쨌든 달과 육펜스는 끊임없이 나를 일깨우는 책이다. 찰즈 스트릭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은 현실과 타협하고 있지만, 곧 달을 찾아 가야 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든 나라의 역사는 같다

응구기 와 시옹오, 민음사, 2015.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쓴 소설 제목인 피의 꽃잎들은 유독 붉은 빛을 띤 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벌레가 먹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피처럼 붉은 색을 띠고 있을 뿐이다. 소설 전편에 흐르는 비장미는 피처럼 붉은 색과 텅 빈 열매에서 연상되는 반향, 작가가 서두에 인용하고 있는 요한묵시록 6장과 월트 휘트먼의 시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인생이 더한 비장미도 빼놓을 순 없겠다. 작가인 응구기와 시옹오의 인생에선 소설 하나로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사 사형선고를 받고 망명자가 된 살만 루시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응구기 와 시옹오 역시도 살해위협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구했으며 오랜 세월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하게끔 하는데 이 책 피의 꽃잎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역 유명 인사들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인 네 사람이 차례로 소환되며 자신의 행적을 진술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밝혀 나간다. 범인을 밝히는 과정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얘기의 진행과정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의 역사라고나 할까. 여기에 아프리카, 케냐라는 명칭만 바꾼다면, 등장인물의 이름을 김씨, 이씨, 박씨…들로 바꾼다면 이것은 여지없이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아닌가.

  민중들의 삶은, 권력을 가진 이의 포악함은 어느 나라나 같은가. 식민지, 건국, 독립, 민중, 지식인, 배반, 분노, 투옥, 독재, 자본… 어찌 이 세상은 이다지도 다르지 않고 같을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지만 우습게도 역사에서 우리들 각자는 보는 곳이, 보고 싶은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또한번 신념과 믿음이 인간의 영혼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열심히 읽었던 오적(五賊). 소설 속의 인물이 한국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구절을 정말인가, 오타인가 하며 읽었건만 작가는 정말 김지하의 오적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다했다. 작가가 읽고 의지를 다졌던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 추이와 같은 걸 안다면. 강신주가 지적했듯이 “왕정-부르주아 프레임에서 부르주아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부르주아-민중 프레임이 설정되면 부르주아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 이렇게 딱 어울릴 수가 없다. 딱 추이와 김지하의 연상이 맞아 떨어지지만 적어도 작가가 이 소설을 썼을 당시인 1977년도의 김지하는 추이는 아니었다. 추이가 처음의 추이가 아니듯이.

 상당한 분량의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식민주의와 이후의 아프리카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 자본이 얽히고 민중들의 피폐한 삶과 그들을 짓밟는 권력과 자본가들이 등장할 수밖에. 그리고 늘 그렇듯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인한 갈등들이 지속되고 이러한 사회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는.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되는가? 미래를 꿈꾸는 것인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인지, 현재를 타개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는 그 모든 비극의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희망하고는 있다. 그 미래라는 것이, 낙관이라는 것이 소설의 마지막 소제목처럼 “투쟁은 계속된다”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또한 새로운 세대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린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네. 일방통행이지. 더 심한 가난과 불행으로 이어지지. 가난은 죄네. 그런데 생각해 보게. 가난이라는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일세. 그래서 그들은 그것 때문에 처벌을 받고 지옥으로 보내지네. 하! 하! 이 지옥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빛은 조지프였네. 이것이 내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라네. p555


제국주의, 자본주의, 지주, 지렁이, 기생 상태와 상호 포식을 사회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배가 불룩한 진드기들과 빈대들을 낳는 체제. 이 체제와 부당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들과 그것의 하수인들이 그의 어머니를 무덤으로 몰아갔다. 이 기생충들은 늘 노동자들에게 피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모든 땅을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겼던 소수의 인간들은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외로운 무덤을 향해 걸어갈 때조차, 민중의 피를 마시고 동일한 피부색과 국가주의에 대한 위선적인 기도를 읊조릴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이 체제와 그것들의 신들과 그것의 부하들에 맞서 의식적이고 지속적이고 단호하게 싸워야 했다!

  내일은 노동자들과 농부들이 투쟁을 이끌고 권력을 잡아, 피에 굶주린 신들과 그들의 하수인들로 구성된 체제를 무너뜨리고,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와 피를 마시고 인간의 살로 포식을 하는 시대를 끝장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어야만, 남자와 여자의 왕국이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고, 생산적인 노동 속에서 기뻐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p670~671


  이 소설을 통해서 아프리카, 케냐의 역사와 상황에 대해 좀더 알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은 결국 모든 식민국가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희망의 내용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거기에 안타까움이 있을 뿐. 더구나 소설이 씌어진 1977년의 시대에서 40년 즈음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의 상황을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소설 속 중심 인물인 무니라, 압둘라, 완자, 카렌자에게서는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식민시대의 전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여성 완자의 캐릭터였다. 그 시대에 우리는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가.

  ‘피의 꽃잎들’과 같은 책들이 나온다면 여전히 부르르 떨며 작가를 쫓아내거나 사형시키려는 나라가, 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체제와 개인의 의지, 신념, 그리고 희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카메론에 시비걸기 ■


1. 쏙쏙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요컨대 이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나쁜 자극을 주는 것은 피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읽으면 됩니다. 그 때문에 읽는 사람을 그르치지 않도록 이야기 첫머리에 모두 그 내용 전체의 줄거리가 짧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p798


  그러니까 보카치오는 100가지 이야기를 다 읽을 필요 없고 골라 읽으라 한다. 그렇다

면? 했지만 이미 나는 착실히 처음부터 읽은지라 골라 읽지 못했다. 그것은 보카치오가 맨 마지막 장에서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두에 저렇게 써 놓았다면 맘이 좀 달라져 골라 읽었을까? 아닐 것이다. 보카치오는 글을 다 쓰고 나서 어떤 심경인지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차례에서 이야기의 주제가 나오지 않은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들춰서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아주 세세한 제목까지 목차에 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첫째 날, 둘째 날 이런 형태로 차례가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각 날의 이야기의 ‘주제’를 목차로 내세웠으면 한다. 왜냐고? 저자의 의도대로 “골라 읽기 쉽게”


2. 성별 구분이 안 가는데?


  굳이 성별구분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야기 형태로 이루어진 소설들을 볼 때 켄터베리 이야기도 그렇고 변신이야기도 그러했지만 이야기하는 화자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데카메론의 100가지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이 이야기하고 있고 그들 각자는 나름 다른 성격들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러한 구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열 명의 화자는 오로지 한 인물로 느껴졌다. 바로 보카치오 자신의 목소리다. 주제에 따른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 문체, 톤 등을 좀 달리했으면 어땠을까.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것이다. 열 명의 화자가 등장하지만 이들의 역할이 과연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좀 더 생동감있는 이야기로 만들려면 열 명의 화자들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까? 전체적으로 흔들리지 않으면서 각각의 특징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어쩌면, 이것은 번역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완역판이라 소개하는 최근 번역본인 민음사는 “『데카메론』은 분량이 방대하고 거침없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전반적인 시대 상황이나 영향을 준 작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요구하는 까닭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내가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어로의 데카메론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보다 조금 더 ‘야한?’ 느낌이었을까. 


3. 페스트는 왜 등장하는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의 영향으로 씌어진 것이라 한다. 당시의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이탈리아에서도 절정이었고 그로 인한 참상을 직접 겪은 보카치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데카메론 이야기는 이러한 페스트가 창궐하던 도시, 보다 건강한 삶과 정신을 위하여 교외로 떠난 1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들이 페스트를 피해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느냐가 아니라 페스트를 피한 상황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마지막까지도 그래서 페스트는?이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들 열명이 나누게 된 이야기가 모두 페스트 때문이라 말하지만, 나는 좀더 페스트로 인한 참상이나 생각들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페스트는 하나의 도구이긴 했지만, 그 역할이 나는 왜 미미하게 느껴졌을까.


4. 아리송해


  데카메론이 금서인 적도 있다고 하고 오늘날은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 하기도 한다. 둘 다에 약간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카치오는 이랬나보다, 저랬다보다 생각하다 보니 자꾸만 아리송해진다. 그는 중세시대의 가치와 신념이 무너지고 인간의 삶과 욕망을 직시하여 데카메론을 서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위선적인 종교인의 행태를 묘사하고 특히 여성의 욕망에 관대한 입장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보면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했다가 또 다른 이야기를 보다 보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언뜻 드는 생각은, 온전히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받을 비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느냐, 어느 정도는 생각하면서 글을 썼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카이오가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듯이 얘기되는 평이 많은데 그에 대해 3초 동안 의문이 들었다. 진짜인가. 사실, 그 시대에 보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성적 쾌락을 충족시키는 이야기는 없었던 듯하고, 그러나 이야기가 없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 별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어디서 이야기를 모았다고 했으니 이미 그런 이야기들은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화자들이 논평하는 이야기 중 다소 여성의 욕구나 욕망, 여성 자체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듯한 발언도 있다는 사실이다.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라고 하지만, 사실 신들의 세계에서 신들도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았던 것을, 다시 신들의 세계로 돌아간 이야기 아닌가 얼핏 생각하기도 했다.

 다시 3초간 지나간 생각, 데카메론에 대해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과 위선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같은 맥락으로 여성에 대한 비판과 고발로도 읽을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머리말을 읽어 보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사랑에 대한 우울증을 위로하고자 썼다고 했다. 그가 사랑이 깨지고 나서 위로 받은 친구들에게 은혜받은 바를 돌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는 글을 보자, 나는 정말로 3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위로한 친구들에게 나는 이제 괜찮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여성에게 차였지만 이제 여성에 대한 감정을 다 정리했으니라며 담담하게 여성을 저렇듯 묘사한 것은 아닐까. 특히나 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를 대비하여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원체 데카메론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많으니 그것을 곧이 곧대로 수용하며 재밌네, 대단하네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진짜 그런 거야?라며 생각하다 보니 평론가들이 얘기한 것들을 찾아보고자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착되었던 듯도 하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어쨌든 긴 책을 쉽게 읽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헤라자드가 이 얘기를 했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조반니 보카치오, 한형곤 옮김, 동서문화사



  


  단테의 신곡과 견주어 인곡이라 칭할 정도로 데카메론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많은 작가들이 여러 작품에서 데카메론을 모방했고 그 모방작가 중에는 제프리 초서, 셰익스피어도 포함된다고 전한다. 또한 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문으로 된 최고의 문체를 구사한 소설이라 한다.

  데카메론은 Principe Galeotto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데카메론은 열흘 동안의 이야기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열 명의 사람들이 열흘 동안 나눈 이야기들을 모은 소설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눈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액자형태로 구성된 당시 떠돌던 많은 전설과 설화를 담고 보카치오 자신의 창작도 실려 있는 소설이다.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는 페스트가 성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는데 보카치오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작품을 창작했다. 페스트를 피해 어느 시골로 피난을 가게 된 7명의 여자와 3명의 남성이 2주 동안 하루에 나눈 열 편의 이야기를가 실려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 토요일에는 휴식하기로 하고 열흘간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마친 밤이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그리하여 총 100편의 이야기인 단편 소설과 10발라드인 10편의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밤 나누는 이야기는 개인이 이야기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에 이야기가 독립적이지만 실제로 매일 밤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가 정해져 있기에 하루마다 나열되는 열편씩의 이야기는 같은 주제를 담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데카메론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의 이야기라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주제가 어떤 상황에서 전략과 술수를 사용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다른 날들의 이야기에 비해 더욱 재미있게 여겨지지 않은가 싶다.

  내게 있어 기억나는 부분은 책을 덮고 나의 화를 돋우는 이야기들이다. 가장 마지막에 있었기에 책을 덮을 때까지도 남아 있던 이야기는 열흘째 마지막 이야기이다. 자신의 아내의 덕을 시험하고자 자신의 아들까지 죽였다고 하여 이른바 아내를 길들이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이 어이없는 인간 때문에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주 지리지리하게 긴 내용이었던 학자의 복수이야기도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여덟째날 일곱 번째 이야기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미망인에게 복수하는 학자의 모습이 정말, 학자스럽다는 느낌이 들며 학자가 하는 말은 옳은 면이 있는데도 통쾌하다는 느낌보다 참, 구질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들었다.

 여섯째날 일곱째 이야기는 필리파 부인이 나온다. 나는 이 여자, 말 잘하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여성의 욕망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 이야기하는데 그렇지라는 추임새가 나왔다.

 둘째 날 일곱 번째 이야기도 화가 나는 이야기다. 공주가 피치 못할 상황에 휘말려 4년 동안 여러 풍파를 거치고 여러 명의 남자들과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보카치오는 이 이야기를 여성이 자신이 가진 재주인 미모를 가지고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는 피치못할 상황에 빠진 불운한 공주의 처지와 상황에 기가 막힌데 어찌 이것이 공주의 자의로 행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자발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욕망을 발산하고 쟁취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첫째 날 첫 번째 이야기도 참 황당하고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는 어떡하든 그것의 진실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표면적인 신앙에 집착하는 모습들과 관련하여 생각되면서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데카메론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수도사나 수녀, 수도하는 이들의 탐욕스러운 행동들 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이야기들 말이다.

  만약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가 데카메론 속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었다면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세헤라자드는 살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확답하진 못하겠다. 천일야화 속 이야기의 부분 부분도 데카메론 속 이야기의 몇몇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이 시대엔 정말로 이러한 식의 이야기들에 열광했던 걸까. 그래서 요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보기에, 이 책이 뛰어나다는 이유를 찾지 못해 그 이전의 시선으로 보려 해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데카메론의 매력에 빠지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