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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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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지 않은 사계절처럼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위고, 2019.


  1972년 첫 내담자를 만나 3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한 메리 파이퍼가 젊은 심리치료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다. 좀더 이론서에 가까울까 했지만 이제 심리치료사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심리치료사로서의 기본 자세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적은 글이다. 편지형식으로 보내는 이 글은 무척 따뜻하고 정감있는 어조다. 또한 정갈하게 느껴진다.

  심리치료사는 상담과정에서 수많은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약물과 알콜 중독자, 학대당하는 여성, 분노 가득한 십대, 많은 사람을 돌보는 사람, 이러저러한 상황에 놓인 가족, ‘무관심한 배우자, 성질 못된 십대 자녀,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상사에 대해 하소연’ 하는 사람들…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에게 심리치료사는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맞는 방법을 행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랜 경험을 통해 심리치료를 체현한 심리치료사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게 구현해 내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좋은 심리치료사의 자세로서 인상적인 것은 ‘애매모호함’에 대한 것이다.


좋은 심리치료사들은 애매모호함을 잘 참습니다. 한 인간이 처한 상황은 다채롭고, 다면적이고, 특별합니다. 하나의 방식이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는 완고한 심리치료사들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흑백논리에 이런 자부심은 회색빛 세계에 살고 있는 내담자들을 미칠 지경으로 만듭니다.


  심리치료사들은 지치고 아프고 우울한, 최대한 많은 부정적인 언어를 끌어모은 상태의 내담자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어떡하든 그 심연을 이끌어 내고 싶어 안달복달하게 될 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를 빨리 보고파 하는 마음일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타인의 심연에 이르기가 쉬울까. 애매모호함을 잘 참는다는 말이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싶다. 바삐 흘러가는 세상에서 점점 뚜렷해지지 않는 사계절처럼 모호한 경계를 지나고 나면 좀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그 지점을 지나고 나서야 계절은 있었다는 것을.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애매모호함을 견뎌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끌어내고 생각의 방향을 전환시키려 애쓴 좋은 심리치료사를 보면 나도 그 상담실 문을 열고 싶어진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일방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신뢰를 형성하며 상호작용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에게서 심리치료사 또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좋은 심리치료사들은 예전의 상식을 유지하는 일과 새로운 생각을 고취하는 일 사이에 놓인 평균대 위를 균형을 잘 잡고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가 심오한지 혹은 우리의 조언이 적절한지 우리는 절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이 아닙니다. 그보다, 심리치료에는 체계적인 지식과 직관, 친절이 필요합니다. 심리치료에서 정말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진짜 사람과 진짜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막 심리치료사의 길을 들어섰다면 이 책을 읽으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심리치료사가 되고픈 열망에 들뜰 것 같다. 가슴 두근거리며 설렘과 신념을 다지는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아니 심리치료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물음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헤쳐 나갈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다만, 보헤미안 속담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긍정적인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 저절로 행해지는 삐딱해지는 마음. ‘신’이시여, 어찌 그런…. 나는 저런 기쁨은 사양한다, 절대로. 아,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엔 나는 심리치료사로서의 자질은 안되갔구나!


테드 쿠서의 『로컬 원더』는 오래된 보헤미안 속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은 가난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을 때, 먼저 그에게 당나귀를 잃게 한 다음 다시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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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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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교유서가, 2018-12-05.


  한파에 눈물이 떨어지지 않고 머물러서가 아니라 한해를 마감하는 날이라서가 아니라, 돌아보면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인 나날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저 인생사가 희로애락인지라… 흐르는 시간탓이라고 말할 밖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점점 이 세상과의 안녕과도 가까워짐을 자꾸 인식하며 그런 일들 또한 많아진다. 다친 마음과 몸이 한번에 돌아오는 날 또한 다반사이다. 새삼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닐진대 무어 이리 허우적거리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속에서 너무나도 닮은 아버지, 어머니를, 할머니를 만난다. 심지어 소까지도…. 짜장면이 싫다는 어머니는 이제 햄버거를 맛나게 드시는 광고가 등장하는 판인데 부모님은 여전히 ‘너희 먹어라, 나는 됐다’를 시전하신다. 까마득한 어느 때 손가락이 잘린 아버지는 붕대를 감아 시림을 막았다. 작가가 제 아비의 잘린 손가락을 보며 소설을 영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손가락을 보며 무엇을 했던가. 반복된 수술로 힘겨운 어머니가 내 끼니를 걱정할 때 나이든 딸의 끼니 걱정일랑 마시라며 서로 핑퐁처럼 걱정과 안부를 오가다 결국엔 무조건적인 ‘나는 괜찮다’는 말씀에 버럭으로 마감했던 날들을 떠올리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그런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너희가 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너희 좋은 것이면 다 좋다더니 어찌 그리 선거에서만은 끝끝내 좋고 싫음이 분명하신지 꽁한 얼굴로 노여움을 풀지 않던 할머니…가시던 날도 선거 무렵이었으니 오히려 결과를 보지 못하고 가신 것이 더 나았으려나. 이산가족 상봉은 취소되고 북으로 띄운 편지만이 되돌아왔으니 직접 그곳으로 가셨던 게 더 빨랐을지도.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이토록 진부하게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손가락을 잃은 뒤로 아버지가 어떻게 절망했는지,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는지를 쓰고 싶다.


  우습게도 절망하는 건 나다. 누군가로 인해 생의 피폐함에 있었을 때도 절망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왔던 그들의 삶 옆에서 젊은 나의 포효가 가장 높았고 지속되었다. 그들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저 ‘아짐찮다’를 온몸으로 내보이고 있을 뿐. 통곡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디에다 쏟고 있는 걸까. 

  이 책 작가인 아버지는 딸의 아픈 팔을 보며 아이가 자라 마음이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 많아질 것을 염려하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몸이 아픈 채 돌아온 어머니를, 아버지를 보며 훗날 내 마음이 다쳐 돌아갈 저녁을 염려한다. 아직 닿지도 않은 날을 당겨와 마음이 푹푹 꺼지는 감정을 경험하는 이것은 두려움일까. 정직하게 흘러가는 시간으로 그들을 ‘여읠까’ 싶은 마음에는 그들보다 나의 감정만이 우선하여 있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놀란다.

  이제는 몇 번을 확인하여 되묻고, 부연 설명을 곁들어야 그들, 내 부모님과의 이야기 한뼘이 지난다. 누군가를 말한대도 몇 번의 사람을 거치고, 몇 번의 사건들을 거쳐야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해진다. 단어는 또 말해 무엇하랴. ‘체험하는 순간에야 오롯이 내 말이 되기에’ 그들 세대의 단어와 지금의 나의 단어가 얼마나 먼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리하여 돌고 돌아서 말하는 사이 이제야 세월이 품은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간다. 살면서 직접 보지 않은 것들 이외에 알지 못했던 것. 진즉 묻지 않았던 그들의 삶, 이야기.


이야기는 실제 삶을 불안에서 건져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불안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만약 이게 최소의 원칙이라면 좋은 문학은 이 최소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존재든 그 존재의 의미는 그의 내부에 있지 않다. 의미는 그에게 허락된 것을 넘어서는 순간 태어난다. 우리가 서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난 세월 서로에게 무심했음을, 우리에게 사연이 없다면 우리가 헛되이 함께 살아오기만 했음을 말해준다. 이야기꽃은 남루한 삶 한가운데서 피어나 우리의 사연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꽃이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단어와 문장으로 써 내려간 작가의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그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가 작가에게 불안을 무사히 건너가는 기제가 되었을까. 작가가 쓴 소설들을 떠올리며 그리고 꿈을 꾸듯이 이 책의 문장속에서 허우적인다. 타인의 슬픔과 비극을 외면치 않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예의’를 배우며 작가가 세상을 담는 동안 이 위안과 후회를 머금게 해주는 시선에서 나도 오래 머물게 된다.

  그토록 말없이 품고 있던 그들 생의 이야기가 또 한해 마감되어 간다. 한편으론 작가는 소설가로서 그들의 삶을 이야기로 담아내었지만 한 사람으로서, 자식으로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이유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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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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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 2018-06-25.


  여기 묶인 글들은 2013년에서 2016년에 쓰인 것이 많았다. 그 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아는 까닭에 많은 글이 힘있는 비판의 어조인 것에 고개를 끄덕했다. 그렇지만 씁쓸하게도 느껴졌다. 문득 불문과 전공 교수들의 글이 유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글의 내용은 달랐겠지, 다른 글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겹쳐 왔다.

  유독 올해 많은 작가들의 부고를 들었다. 세상의 한부분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어린 왕자 번역본에 관한 글이 있어 책장을 뒤져 어린왕자를 꺼내놓고 선생이 지적한 부분을 찾아본다. 수정되어야 할 일본판을 참고한 번역본임을 알고 빛바랜 책에 소혹성 3251에서 1을 지우고 마흔 세 번이 아니라 마흔 네 번의 해가 지는 걸 구경하며 마흔 네 번의 쓸쓸함을 느끼는 것으로 고치고 나서 그만큼의 쓸쓸함에 물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문학으로, 프랑스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뇌한 작가의 글에 먹먹한 오후 노을이 유독 짙어 보인다.


흉악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기에 우리의 패배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흉악범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는 것처럼 그 때에 벌어진 모든 것들이 우리에겐 일상이었다. 그 일상을 견뎌내고 또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무뎌지고 그랬는데 새삼 그 시절의 뚜렷이 드러나는 글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글들을 억압하고 몰아내고 흉악 범죄만을 일으키던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때가 더더욱 억울해진다. 그러하기에 이런 글들에 푸욱, 위로를 받게 되는 모양이다.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와 먹먹함이 있는 내게 말이다. ‘사소한 부탁’을 해야 할만큼 사소한 것들도 지켜지지 않았던 그때. 그때의 분노와 아픔이 없었다면 작가의 병은 없었을까.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삶을 선취하여 이 세상에서 벌써 미래의 토인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미래의 삶에 대한 확신과 미래 세계의 건설 동력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그의 존재는 이 불행한 세상에 점처럼 찍혀 있는 행복의 해방구와 같다.


  진보주의는 좌빨이라는 목소리가 너무 크고 시끄럽게 세상을 도배하기에 그 단어에 열내고 반박하는데 급급했지 새삼 내 언어로 정의내리는 일엔 소홀했다 싶었는데 황현산 선생님의 진보주의의 정의가 콕 박힌다. 그래, 그것은 정치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삶의 방식으로서 얘기되는 것이었다.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 이 글은 책에서 한번 더 반복된다. 사소한 것들을 지켜낸다면 사소한 것들을 지키고 산다면 소소한 행복들은 지켜질 것이겠지만 그 사소한 것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말해야 하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일 터이니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선생이 써내려간 글에서 그의 분노를 비판을, 부탁을 눈여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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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이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흔, 2018-06-20.


  제목이 주는 놀라운 힘, 이 책 또한 그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개인의 치료기록, 나는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우울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라는 병명을 보고는 세상에 우울증이 아닌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증상으로 전문가를 찾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고 그들의 그 적극성, 의지에 놀랐다. 심한 우울증에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축적된 이야기였기에 통계는 언제쯤부터 바뀌었을까, 상황을 기민하게 보는 기사는 없던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책 제목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들렸을 때 나 역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제목에 공감했지만 굳세게 나를 끌어당기진 않았기에 만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이 회자되는 것만큼이나 팔리는 만큼이나 반향은 생각과는 달라서 책을 읽진 않았다. 그럼에도 강하게 남는 이 제목. 역시 판매의 힘은 제목이 반이다라는 생각을 거듭 했다. 다시 한번 이 책을 떠올린 건 얼마 전 기사 때문이다.

  

벽도, 책장도 있는데 왜 책은 안 읽는가. 솔직히 우린 답을 이미 안다. 다른 이유는 핑계일 뿐, 간단하게 말해 필요 없어서다. 책 읽기를 그토록 권하는 건 공감의 힘을 높이고 시야를 넓히고 논리를 밝혀 줘서다. 우리 사회에서 공감, 시야, 논리란 쓸데 없는 짓이다. 바깥 세상을 이렇게 접어 버리고 나면 남는 건 자기에 대한 몰입이다. 아무리 ‘책에도 귀천은 없다’지만 그저 ‘불쌍한 나’를 쓰다듬는 나르시시즘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 [한국일보, 책 안 읽는 이유, 2018.10.19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0191513342440?did=da]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독서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퇴폐시켜 버린 그 누군가의 그토록 순수한 교육적 열의가 먼저 떠오른다만 그것을 제쳐둔다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는 것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책을 읽는 이유가 된다. 지금 책을 읽는 이유가, 이 책을 읽는 이유가 기자가 지적한 대로의 이유라 할지라도 말이다.

  기자의 글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이 이 책이라서 책을 들춰보고 우울해졌다. 아,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 바쁜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을 소비하고 난 뒤의 허탈감에 그리고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에 온 신경이 쏠리며 오로지 나라는 존재가 소멸된 느낌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추워진 날씨가 달갑게 느껴진다. 지금 기분부전장애상태인 건가.

  세상에 자기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저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거기에 마케팅에 어울리는 글이 있고 아닌가가 있을 뿐. 어쨌든, 작가는 이 우울을 좋은 결과물로 만든 사람이고 나는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근처럼 넘쳐나는 조현병 환자, 우울증 환자들의 끔찍한 범죄 기사들을 접하다보니 거듭 저자의 우울에 경의를! 그리고 이 책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고 팔렸다. 그렇게 만들어 준 힘에도 경의를!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어쨌든 누군가를 탓하고 누군가를 해하는 대신에 자신의 내밀한 기록들을 출간한 저자의 우울증을 다시금 보게 된다. 책을 쓴 건 저자일지라도 세상은 상업자본의 힘이라, 출간한 이들의 승인없인 이루어지지 못할 터이니 저자가 출판사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는 그 놀라운 우연에 놀라움이 사그라든다. 뭔가, 잘 짜여진 판에서 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글에 대한 응원이 아니라 우울을 앓고 있는 저자 개인에 대해 응원하고 싶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그 마무리를 할 수가 없다. 저자가 다시 2권을 들고 돌아오기까지는.

  그것을 더 부추기는데 내 어릴 적 친구들이 동원되는데 떡볶이쯤이야. 미키도 미니도 도날드 덕도 구피도 플루토도 앨리스도 곰돌이 푸도 어릴 적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나와 다시금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느낌을 전한다. 나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라는 듯 시크릿, 시크릿을 외친다. 죽고 싶은 일이 있을지언정 그런 생각이 들지언정 떡볶이를 먹다 보면 멋진 인생이 다시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는 분명 친구들 모여 한탄하듯 위로하듯 나누는 이야기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조금만 무엇을 찾아보면 자신을 위로할 이야기들을 만나고 보다 전문가의 견해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 뻔하디 뻔하게 흘러 온 말들에 지금, 이 시점에 열광하게 되는 건 정말로 “책 안 읽는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그런 책들이 무수히 진열되어 있기 때문인 걸까.

  어떤 책들에선 감정의 격랑으로 피곤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주는 맛을 잊지 못하기에 다시금 슬금슬금 책을 찾게 된다. 믿고 찾는 출판사도 있겄건만. 하지만 이쯤되면 나는 내 취향으로 인해서, 내 성질로 인해서, 정말로 점점 책을 읽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 독서의 계절이 이르게 온 추위만큼 완전히 사라지는 이 막연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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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 데이즈 - 바다가 사랑한 서퍼 이야기
윌리엄 피네건 지음, 박현주 옮김, 김대원 용어감수 / 알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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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또는 허풍

바바리안 데이즈-바다가 사랑한 서퍼 이야기, 윌리엄 피네건, 2018.


  태풍 소식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친다. 산 이름이라는 태풍 콩레이가 바다에 거대한 파도를 남긴다. 제주도에 몰아치는 파도 사진을 보다가 이 위험상황에 안전을 대비해야 함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갑자기 가슴 떨림을 느낀다. 이런 기분은 어쩌면 파도를 타는 서퍼의 이야기, 『바바라인 데이즈』때문이 아닌가 싶다. 파도를, 물을 무서워하는 내 마음에 파도에 대한 환상과 도전의식을 함께 심어준.

[태풍 콩레이가 몰고 온 파도/ https://news.v.daum.net/v/20181005111056827]


  이런 마음으로 바다에 나간다거나 황홀경에 잠겨있다면 나도 자르징 노파에게서 저주를 들을지도 모른다.


“당신들 서퍼는 부모님에 대한 존경도 없고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존중심도 없어. 저런 바다에 나가서 목숨을 걸어? 뭐를 위해서? 이 마을에 대한 존경심도 없는 거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 세대에 걸쳐 바다에 목숨을 걸어온 어부들을 존중하지 않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이 바다에서 자기 목숨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어. 당신들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고!”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인 곳, 그렇기에 위험에 맞서는 곳에서 목숨을 건 유희를 벌이는 서퍼들이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대단하게도 보이지 않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파도를 타는 일이 살아가는 힘이고 존재를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책의 저자와 그와 함께 한 서핑 동료들이 그렇다.

  2016 퓰리처상 수상작인데다가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책’이란 수식을 받는 이 책은 저널리스트인 작가의 서핑과 함께 한 삶의 이야기다. 수영장에서도 허우적이는 내게 파도를 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파도를 타는 것 자체보다 수려한 이국의 해변풍경,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페루 등 작가가 간 모든 장소에 때한 끌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거침없이 파도를 탈 때의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한동안은 이 파도타기를 앓을 듯하다.


커다란 파도 속으로 나아가는 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공포와 황홀이 사물의 가장자리 주위를 돌면서 밀려갔다가 밀려오며 각기 꿈꾸는 사람을 덮치겠다고 위협했다. 지상의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이, 움직이는 물과 잠재된 폭력, 지나치게 진짜 같은 폭발, 그리고 하늘이 들어선 거대한 경기장으로 스며들었다. 장면은 펼쳐질 때도 신화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늘 광포한 양가성을 느꼈다. 나는 다른 곳 어디에도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곳 어디든 있고 싶었다.


  일찌감치 이 세계에 빠진 작가는 세계에서 유명한 서핑 장소로 꼽히는 10곳을 선정한 시기에 벌써 아홉 곳에서 파도를 탔을 만큼 서핑에 중독되었다. 그에게 서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하울리로서 이방인으로 낙인찍힌 순간부터 그는 서핑의 세계를 즐기며 자유에 대한 탐닉을 모험의 강렬함에 빠졌다. 서핑의 세계에만 빠져 오로지 세계를 돌아다니고 파도만 탔을 듯하지만 사랑도 우정도 일도 한다. 정치사회에 무관심하지 않고 학위를 땄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있다.

  저자가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서핑을 하면서 깨달아가는 삶과 죽음과 인생에 관한 생각 덕분이다. 저자의 인생의 스승은 서핑을 통해서 얻어지는 생생한 감각과 관조로 가능하다. 파도에 쓰러져 부상을 입기도 하고 겨우 살아남은 일도 수두룩하지만 강렬한 태양 아래 푸른 파도의 소리는 심장을 벌떡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모양이다. 서핑은 저자에게 마리화나와 약물보다 더 중독되어 그를 이끄는 것이었다. 종군 기자로 활동을 할 때에도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났어도 딸과 함께 파도를 타는 그가 노년에 이르러 점점 거친 파도를 타는 것에 힘들어 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파도를 타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심장이었다. 자기탐색의 과정이었다.


남태평양을 전전하는 동안, 내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일어났다. 브라이언의 관점으로 보면 수염보다도 더 곤란한 것이었다. 나는 자기 변혁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우리가 옮겨 가며 함께 살아온 섬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괌에 가기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폰페이에서 사람들이 사카우 잔을 둘러싸고 느긋하게 살아가며, 산호돌이 가득한 소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부터였다. 나는 여기에 배우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저 멀리 떨어진 장소와 사람들에 관한 몇몇 가지를 배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존재의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바뀌고 싶었고, 존재적으로 덜 고립된 느낌을 받고 싶었으며, 뼛속까지, 사람들 말대로 이 세계에서 편안해지고 싶었다.


  서핑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어간다는 점도 있지만 서핑을 하기 위해 찾은 곳곳에서 매번 느끼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탐색 또한 저자를 성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많은 나라를 돌면서 파도에 몸을 맡기는 그의 서핑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실제 파도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저자의 희열과 공포와 두려움을 내가 느끼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파도가 환영처럼 느껴지게 된다. 서핑을 하는 그들에게 전해오는 두 개의 상반된 말이 있다.

 

“큰 파도는 높이가 아니라 공포의 정도로 재는 것이다.”

“큰 파도는 높이로 재는 것이 아니라 허풍의 정도로 재는 것이다.”


  이 역설의 말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파도타기를 나는 해보지는 못할 것이다. 강렬한 끌림을 느끼지만 실행력이 떨어지느니만큼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어 단지 동경으로만 간직하고 말지 모른다. 대신 인생의 파도에서는 이 두 가지 역설을 재볼 수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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