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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비엔나

 

 

   이 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 인물 두 주인공은 기자 미카엘과 잡지 자료 조사자 리스베트이다. 미카엘이 기자로서 사건을 추리해나간다면 리스베트는 천재적인 해커 실력으로 숨겨진 정보를 발견해낸다.

   미카엘이 기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터뜨린 사회고발로 인해 고소를 당해 기자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미카엘이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문제’를 관여하게 되는 원인이다. 그러나 리스베트는 ‘문제’에 관여하지만 본인 자신이 ‘문제의 대상’이 되어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2부가 대표적으로 리스베트의 문제를 선포하고 있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바로 리스베트 자신이다. 1부에서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개성강한 리스베트의 모습에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순탄한 삶을 살진 않았으리라는 느낌에 맞게 그녀의 과거는 현재의 사건과 연결된다.

 

    1부에서 사건을 마감하고 새로운 기사거리를 찾던 미카엘에게 새로운 첩보가 접수된다. 성매매와 인신매매에 관한 것이었다.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엄청난 사건임을 알게 된 미카엘은 정보제공자인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과 연락하며 조사를 하던 중 그 둘은 총살된 채 발견된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선 총 하나만이 발견되는데, 지문은 리스베트의 것이었다. 이로 인해 헤어져 있던 미카엘이 리스베트를 찾는다. 살인자로 지목되어 수배된 리스베트를 미카엘은 도우려 하지만 그녀는 꺼린다. 자신의 과거가 언론에 공개된 리스베트는 자신이 잘 아는 방법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사건을 추적해가면서 금발의 거한과 살라가 이 사건에 연관되고 리스베트의 전 후견인 비우르만이 이들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사건 속에 리스베트와의 관련성도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성매매, 인신매매의 줄줄이 비엔나는 경찰, 법조계, 권력층이었다. 그 중에서도 비밀에 싸인 이름 ‘살라’.

 

   1부와 마찬가지로 2부에서도 사건의 대상은 여성이다. 희생자는, 범죄의 대상은 여성 한 개인이 아니라 ‘여성들’이다. 단순 폭력에 의해 살해당할 리가 없다. 살해를 위해 폭력당하기보다 성폭력 때문에 살해당한다. 어린 아이들일 때부터 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물건처럼 매매된다.

   리스베트에게도 이런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 갇히고 후견인에게도 성적학대를 당한 리스베트의 삶은 사회에선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분류되어 지속적인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이라 정의된다. 하지만 표면적인 것에 치중된 이 사회시스템에서 진정한 리스베트를 보아주는 이는 없다. 그녀의 마음속에 내재한 분노가 무엇에서 기인하는지를 알려 하기보다 ‘결과’에 그녀가 ‘드러낸’ 것에 치중하는 사이, 리스베트는 계속 폭력적인 살해용의자로 덧씌워진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얽히고 얽힌 이야기가 넘쳐나 그 추적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했다.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또한 추적 또한 동시다발적이다. 문제를 숨기려는 이들은 숨기기 위해 더더욱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더욱 얽힌 거미줄을 만들게 된다. 그러니까 더욱 사악한 이들이 줄줄이 얽힌 거미줄로. 또한 그만큼 많은 이들이 희생된 거미줄로. 거미줄 속에 꿰인 수많은 희생자와 수많은 가해자와 절대 악이 엮인 거미줄이다. 끊임없이 거미줄을 엮는 사회적 악의 존재는 누구인가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의 핵심이었다. 1부가 사건의 명쾌한 해결을 한 것에 비해 2부는 깔끔한 마무리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대신 3부로 이어진다.

  온갖 악들의 줄줄이에 지칠대로 지친, 익숙함에도 드는 마음들을 3부에서는 통쾌하게 날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리스베트의 당차고 정의가 담긴 분노에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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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셜리 잭슨, 힐하우스의 유령



   이 소설이 읽을 맛이 난다면 문장의 맛도 크다. 문장이 좋다. ‘고딕 미스터리’, ‘고딕 호러’의 대가라 불리는 작가 셜리 잭슨의 이 소설을 스티븐 킹은 지난 백 년간 등장한 초자연적 소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았고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스티븐 킹은 자신의 작품 <샤이닝>을 썼다.

   저자는 자신의 성격과 상황이 닮은 주인공을 만들었다.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내어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토록 작가 자신은 공포와 광기 속에 있었나 싶다. 소설을 소설로 읽고 작가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강렬했던 소설에 대한 느낌이 더욱 배가되었다. 작가 셜리 잭슨이 악마의 소리를 듣는다는, ‘마녀’라는 소문이 있었다니! 셜리 잭슨은 남편이 발령받아 간 노스 베닝턴이란 마을에서 주민들과 잦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힐즈데일 사람들이 상당히 불친절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작가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주인공 엘리너가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찾은 힐 하우스에서 겪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포’는 일반적인 공포 소설과 다르다. 그 점이 이 소설에 빠지게 되는, 비교불가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원동력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절대적 현실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면 광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종달새나 베짱이도 꿈을 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둠을 품은 채 언덕을 등지고 서 있는 힐 하우스는 광기에 물들어 있다. 지금까지 팔십 년간 자리를 지킨 이 건물은 앞으로도 팔십 년은 우뚝 버티리라. 벽은 똑바르고 벽돌은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바닥은 탄탄하고 문은 꼭 닫혀 있다. 힐 하우스를 이루고 있는 목재와 석재 위로는 항상 침묵이 내려앉는다. 무엇이든 저택 안을 걸어갈 때는 항상 혼자이다. p35


  광기에 물든 힐 하우스는 진짜일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엘리너는 11년 동안 간호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언니와 소유권이 반반인 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방황과 정체된 삶에 언니 부부와의 갈등이 한몫했고 또 하나는 힐 하우스의 심령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조수가 필요하다는 몬터규 박사의 편지 때문이다.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지난 생애에 대해 자책하지만 32살에 비로서 자신의 결정으로 힐 하우스를 찾아가는 엘리너의 마음은 경쾌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엘리너는 자신보다 더 젊고 매력적인 시어도라를 만나 더욱 열등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힐 하우스 상속자 루크 샌더스와 몬터규 박사 부부와 함께 힐 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이들이 겪는 기이한 현상들은 실제인 걸까.


힐 하우스의 선과 공간은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집의 정면에 악마적 분위기를 드리웠다. 그 원인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으나 광기 어린 배치와, 고약하게 비틀린 각도와, 하늘을 등진 지붕을 보노라면 절망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힐 하우스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p73


  이 어둡고 음산한 집이 주는 공포를 엘리너는 사람들에게서 위로받고 싶지만 엘리너는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12살에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겪은 엘리너는 자신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도 이 현상들에 몹시 두려워하고 공포의 강도도 거세진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러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이란 뜻이며 이유없이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집이 흔들리거나 물체가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기꺼이 버리는 짓이죠. 두려움에 굴복하거나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지, 그 중간을 택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p244


  엘리너는 벽에 피로 쓴 자신의 이름이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들을 들으며 더욱 공포와 광기에 휩쓸린다. 그러면서 힐 하우스가 가진 힘이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끝없는 자신의 불안이 이런 현상을 보게 하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두려울 때면 세상의 이성적이고 아름다우면서 두려움이 없는 면이 분명하게 보여요. 의자와 탁자와 창문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죠. 꼼짝하지 않아도 카펫의 섬세한 짜임새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받아요. 사물들은 두려워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우리는 자신을 아무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두려워하죠. p245


  엘리너가 힐 하우스에서 겪는 공포를 보며 오래전 한국영화 알포인트가 떠올려졌는데 점점 죄어오는 공포 속에 미쳐버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주는 공포, 그것도 가장 편안해야할 집이 주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줘야 할 가족이 주는 소외감, 손을 내밀고픈 이들에게서 받는 외면. 이 모든 것들이 심리적인 방황의 이유가 되어 한 인간을 더욱 더 폐쇄적이게 만든다. 인간이 광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힐 하우스가 가진 힘일까, 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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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수천년 습득된 증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선택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담은 사회인문학책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동명의 영화가 있는 건 알았는데도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을 매치시키지 못했다. 어쨌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비롯, 밀레니엄 시리즈를 다 읽고 든 생각은 왜, 스티그 라르손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났는가,였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완결하지 못한 채.......소설의 마지막을 알고 싶은 먼 나라의 독자가 작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흥미있고 가독성있는 이 소설은 스웨덴 소설이다. 어느 순간 스웨덴 작가들의 책들이 서점계를 휩쓸고 있는 듯하다. 창문을 넘으신 할아버지나 오베 할아버지 감옥에 가신 할머니들. 이 작품들이 유쾌함에 조금 더 다가가 있다면 밀레니엄 시리즈는 치밀하고 진중하다. 저녁 나절의 찬기 머금은 느낌의 북유럽이 느껴진다. 어둡고 음습하며 시린 느낌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이다. 일단 미카엘이 ‘정의’를 불태우는 기자라면 리스베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천재 해커다. 그나마 미카엘이 어느 정도 보아 온 캐릭터라면 리스베트는 특히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성격이나 외모나 재능이나 모든 면에서.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번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중심 사건은 유명한 기업가 방예르가의 손녀의 실종이며 두 사람이 이를 파헤치면서 전개된다. 실종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의 치밀한 추리는 흥미진진하고 거듭 밝혀지는 충격적인 실종의 이유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만 해도 1권고 2권으로 나눠져 있고 한권의 분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에 발목 잡히면 밤이라는 게 뭔지, 잠이라는 게 뭔지를 잊게 된다. 마치 나의 일 같아서, 내가 아는 이에게 벌어진 일 같아서 마음 졸이며 실종의 이유와 실종자의 생존을 걱정하게 된다.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은 적절한가. 거대 재벌 방예르가 손녀의 실종사건과 함께 많은 여자들이 연쇄 사망하는 일들을 함께 풀어 가는데 그 사건들에서 여성들의 죽음이 ‘증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증오’라는 이유로 살인의 이유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증오’에는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탓에 여기서 껄끄러움에 주춤하게 된다. 가해자에게서 살인의 동기로 ‘증오’라는 말을 듣는다면 돌아버릴 것 같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이에게 대해 가지는 ‘증오’, 단지 그대가 여자라서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잔혹하고 악랄한 범죄들.

  그 모든 비도덕적이고 부도덕한 악랄함이 인식과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진 기가막힌 사건들은 1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별적인 사건들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밀레니엄 시리즈의 전반에는 여성에게 ‘증오’라 이름붙이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악랄하고 추한 범죄들이 가해진다. 밀레니엄이 되었어도 수천년 동안 문명을 쌓고 지식과 지혜와 합리적인 이성들을 축적해 나갔다고 하는 인간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인이 박힌 여성들에 대한 인식. 작가가 밀레니엄이라 제목을 정한 것은 수천년간 이어져오고 이어져가는 여성들을 대하는 사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대대로 이어지는, 상습적이고 습득된 잔인함과 폭력이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한 개인의 잘못된 일탈, 악마적 행위가 개인을 벗어나서 가족을 벗어나 지역을 벗어나 사회로. 그리고 사회구조가 지역사회로 가족으로 개인으로 침투해나가는 상호적인 모습들을.

  작가는 어린 시절 반파시스트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된 외조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 또한 반파시스트였고 반전 활동을 꾸준히 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다. 파시스트의 이야기가 녹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이력이 이 소설이, 이 시리즈가 단순히 흥미를 겨냥한 추리소설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세계가 이 책에 열광한 이유는 흥미있는 이야기에 흡인력있게 빨려들어가면서도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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