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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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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제의 용도를 알고 있다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2019.


  장담컨대, 표백제가 피 냄새를 감춰 준다는 사실은 다들 몰랐을 거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표백제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의 범인들이 그렇게(그보다 더한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혀 놀랍지 않다. 놀라(야 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동생 아율라의 살인했다는 전화(동생이라고?)에 당연한 듯 달려가 범죄현장을 은닉하는 코레드다. 코레드는 꽤 익숙한 듯 문제를 ‘꼼꼼하게’ 처리한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이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정답. 코레드가 한 것처럼 시체를 처리하고 현장을 치운다. 신고는? 시체를 처리했다는 것이 신고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닌가. 동생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코레드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율라의 범행 동기는 무언가. 아율라에게서 살해된 남자들은 모두 애인이다. ‘모두’라는 말에 범행 전력이 단 한번이 아니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코레드가 한 말을 인용하면 되겠다. 셋부터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거야!

  코레드의 시선에서 서술되는 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후다닥 살인을 하고 빠르게 그 시신을 처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생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흔들리는 지점이 온다. 살인현장을 치우는 코레드의 행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살인을 저지른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춤을 추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켜왔던 그 마음이.

  아율라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작은 몸집, 긴 속눈썹, 도톰한 입술을 가진 인형”이다. 코레드도 아율라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생과는 달리 코레드는 몸이 크고 아름답지 않다. 간호사 코레드가 마음을 준 직장 동료 의사 타데는 다른 이들과 달리 코레드에 친절하고 자상하다. 코레드는 타데에 대한 연모로 가득하지만 타데는 아율라에게 반하고 만다. 코레드는 동생에 대한 질투와 타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아율라는 남자친구, 그녀의 애인이 조금만 성가시게 해도 그렇게 해버리고 마니까. 사람들은 아율라가 착하고 천사같고 여리다고 생각한다. 


“걔가 예뻐서 그래요. 그게 다예요. 남자들은 다른 건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 애한텐 모든 게 무사통과죠. 말이 되냐고요, 내가 동생을 지지하지 않는다니,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니…타데가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건 동생이에요. 동생이 그렇게 말했겠죠. 그 모든 일을 함께 겪고도….”


  이제 소설은 아율라의 아름다움과 코레드의 아름답지 않음을 대비하며 둘의 연대가 깨어질 것을 암시한다. 아율라와 코레드는 타데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다. 코레드는 이성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타데가 다른 남자들처럼 아율라의 미모에 무력해지는 것을 보기 힘들다. 살인자인 아율라는 그에 대한 걱정도 고민도 없이 일상을 즐기는데 코레드는 죄책감과 불안에 떨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코레드에겐 버겁고 불편하며 아율라에 대한 반감이 증가한다. 자, 이제 코레드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

  작가를 천재적 능력이라 칭하며 '현 시점을 대변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칭송을 받고 있다는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에 대한 찬사가 소설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킨다. 매력적인 외모의 싸이코 연쇄살인마에게 그렇게 열광적일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아율라의 살인을 묵인하는 코레드의 행동에 어떤 반전이 있어야 한다. 납득할 만한 서사가.  

  아율라가 너무도 당당해서인지 코레드에게 외치게 된다. 너 왜 그랬니? 이제 그만해. 아율라의 살인을 부추긴 것은 너라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신을 처리해 줄 것이 아니라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늘 문제해결사로 달려가 주니 아율라가 계속 살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이렇게 코레드를 몰아붙이면 이또한 아율라의 외모에 넘어간 반응인 걸까. 하지만 소설이라는 한계로(즉 아율라의 외모를 볼 수 없기에) 눈이 아득해지는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어찌해도 현실이란 생각을 하면 용서가 될 리 없다. 더구나 아율라를 코레드를 고유정으로 대치시키면 이야기가 갖는 느낌은 달라진다. 고유정은 살인의 이유를 성폭력이라 주장했다. 다만 고유정은 살인도 범죄현장 처리도 완벽히 홀로 처리했다. 전화를 해서 현장을 치워줄 코레드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외모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코레드의 분노가 아율라에게로 향하면 소설은 강력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의 질투를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유정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살인의 이유와 같이 두 자매가 연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함께 겪은 폭력의 경험이라면 자매의 연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지켜온 두 자매의 연대는 타데로 인해 흔들리는 시점, 코레드의 연대는 지켜질까, 아닐까. 두 자매의 비밀을 아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코레드는 이제 아율라의 살인현장을 처리하는 것에서 직접 살인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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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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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는 광기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마음산책, 2005.


  눈이 온다. 오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는 이미 전국적으로 눈이 온다며 들썩인다고 도배된다. 전국 날씨를 검색해보니 지도의 절반 이상에서 쨍쨍한 태양이 빛난다. 실시간 반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국의 절반이 눈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눈이 오는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에 비켜선 마을에선 눈을 상상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의미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은 눈에 대한 상상에서 떠올린 소설이다. 이런 책을 읽었지. 두꺼운 북유럽 소설. 북유럽 소설은 러시아 소설만큼이나 두껍다. 러시아는 너무 추운 곳이라 두꺼운 장편 소설이 발달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북유럽도 뒤지지 않는 추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읽는 북유럽소설마다 길다. 최근 경장편이라고 해서 짧게 나오는 한국소설과 비교해보면 대하 드라마급이다. 그러고보니 책에 유럽인에 관한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유럽인에게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언제나 모순적인 진실보다는 간단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건 스밀라라는 캐릭터와 함께 펼쳐지는 풍경이다. 가보지 못한 땅의 얼음과 눈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화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수학에 대한 이야기 역시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들이 담긴 듯하지만 쉬이 책장이 넘겨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느꼈던 생각이 고정되어 갔는데 역시, 수학은 차가운 얼음물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마음속 깊이, 사물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맹목성으로 이어지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은 타고난 잔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인식하려는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안다. 오로지 경험만이 민감하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약하면서도 잔인한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노력하고자 하는 시도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스밀라는 이누이트 출신으로 눈과 수학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가진다. 난 스밀라의 고향 이누이트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설화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흥미로웠다. 이 책은 스밀라가 이사야라는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는 스릴러 소설인데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사건을 형사처럼 풀이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모든 것은 소년이 죽은 장소의 눈에 담긴 흔적, 소년이 추락한 곳에 남겨진 눈 위의 발자국에서 느낀 감각, 스밀라의 직관에 의존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그린란드, 아버지의 고향인 덴마크를 오가며 펼치는 스밀라의 삶과 기억들, 추리과정 내내 펼쳐지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할 만한 글귀들이 눈과 얼음이란 배경과 맞물려 정서적으로 차분하게 만든다.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그래서인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더딘 속도로 읽게 되지만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긴장과 흥분만을 즐기는 것에서 끝나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 대해선 감각이 남아 있다. 스밀라가 새겨놓은 얼음과 눈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문명에 대한.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에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무리수는 ‘보편적인 이치에 맞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 또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시 한번 이 단어가 수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리수. 무리수가 횡행하는 어느 곳에선가는 눈이 오는 날이다. 눈이 내리고 나면 세상은 그 눈에 의해 깨끗해질까, 정화가 될까. 감춰지고 덮어져 순간은 깨끗해질지 모르나 어쩌면 더욱더 더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손과 발이 거쳐가면 말이다. 공기는 깨끗하려나. 뭔가 참 불순물이 끊기듯 끓어오르는데 차가운 공기가 식혀줄지는 모르겠다. 무리수는 광기…광기는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하는 거다. 멈추지 않는 광기가 휘몰아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심지어 증오조차도 자연적 목표물위로 풀려났을 때는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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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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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난 일이 아니잖아요.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2019.


  영화 시나리오는 영상을 위해 쓰인 글이라 머릿속에서 채워야 하는 이미지들이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대본 속에서는 많은 걸 차지하는 것은 대화지만 《벌새》의 대사는 적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길다는 걸 생각할 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렇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영화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영화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국내외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기에 궁금증이 생긴 것도 있지만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엔 영화 상영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자본이란 참 재밌다.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매우 익숙한 서사라는 느낌이었다. 1994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보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날의, 그해의 풍경들. 벌새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예상치 못한 그러나 익숙한 내용에 대본으로는 알아채지 못한 영화장르에 대한 나의 미흡함을 알게 된다. 내가 본 것은 글이기에 글로 벌새를 알아간다. 벌새 속, 그 모든 풍경과 상황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그러나 익숙함으로 인상적인 언어를 제외하고 참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진 말이 하나 있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은희를 쫓아다니던 후배 유리의 말이다. 은희에게 마음을 얻고파서 내내 선물을 주고 졸졸거리던 유리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남자애에게 빠져 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게 유리는 속칭 양다리 기질은 없는 모양이다. 유리의 끈질김에 마음을 열어가던 은희를 굳게 만든 유리의 말. 1994년에 그렇게 돌아서버릴 감정을 품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은희는 왜, 우리는 왜, 1994년의 일들을 기억에서 몰아내지 못할까. 그건 지난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도 잊지도 못한 채 살고 있는 걸까. 쉬이 감정을 돌릴 수 있었다면 은희의 마음도 평안했을까.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기다려요. 대들면 더 때려요.


  중학생 은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위태롭지만 견고하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은 은희에게 외로움과 고통을 차곡차곡 쌓아준다. 그 속에서 온전히 인간적인 온기를 기대하며 따스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은희의 몸짓은 새 장속에 갇힌 새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변화가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은희에게 놀라운 점은 그 상황 속에서 미움과 원망과 반항을 체득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애정에 더 기댄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지면서도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힘을 내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은희에게 와닿는 영지의 존재는 매우 상징적이다.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우리는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어렵게 여기며 혐오의 언어가 쉽고 빠르게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더더구나 그것은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도, 단위에서부터 발현되기도 한다. 여기, 은희의 일상을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파닥거리는 여성의 서사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로 오라버니로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이미 기존 가부장제에 눌려 피폐해진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가족이란 우울과 폭력의 정서가 가득하고 학교 역시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걸 억압하고 폭력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사회는 무너질 울타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더 멀리 떨어져서 이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의 서사를 가지기 마련이고, 그들 모두는 피해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피해자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혐오를 두고 사람 자체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은희의 이야기는 지난 학기의 일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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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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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장일까

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arte(아르테), 2017.


  『크루얼티』에서 보여주듯 국가를 위한 직업군의 삶은 위험이 가득하다. 액션과 스릴이 가득한 첩보 스타일의 이야기는 무수히 반복되어 왔고 이야기의 구조도 줄거리도 결국은 유사하기 그지없는데 지속적으로 양상된다. 이번에는 열일곱 고등학생, 그웬돌린이 외교관 아버지의 납치범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화되기로 했다는데 ‘영화관’이 좋아할 이야기구나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CIA 비밀요원이란 흥미진진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웬돌린은 CIA요원이 아닌 열일곱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여학생일 뿐이다. 그 어떤 비밀훈련을 받은 적 없는 그웬돌린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넘나들며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닥뜨리는 일과 같다. 그 일을 겪으며, 아니 아버지를 찾기 위해 범죄조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그웬돌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새삼 다른 의문이 들었다.

  우와, 그웬돌린, 정말 멋져!

  이런 반응은 들지 않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의 정점을 밀레니엄의 마라가 가지고 있기에 그웬돌린의 매력이 비교되었을 수도 있고 작가의 그웬돌린의 창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바비’와 ‘공주’로 국한되는 여성성에 반발해서 그웬돌린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여성성의 제거가 곧 남성성의 극대화인가, 바비 공주 캐릭터도 여전사 캐릭터도 지나치게 안이하고 소비주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찌감치 사라진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가 보여주었다. 그 시절의 어린 소년이 엄마를 찾아가던 여정과 최근의 소녀가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섭게 변화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그웬돌린은 더욱 더 무장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그웬돌린은 범죄와 폭력을 주요업무로 삼는 이들을 제압한다. 짧은 순간의 수련으로 오래도록 폭력을 쉬이 사용하던 남자들에게 신체적인 열세 없이 맞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가 아니라 오버다. 그웬돌린의 강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랄하다고 해야 할 범죄조직들, 인신매매단의 보스부터 말단 조직원의 숙련된 전문성은 사라져버린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당연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는데 다른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웬돌린은 아버지가 표면적으로는 외교관이었지만 CIA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알고서 아버지를 절대 선의 위치에 놓는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납치한 일당들은 모두 가 ‘나쁜’ 사람이 된다. 이 전제는 나쁜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된다’라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웬돌린이 만나게 되는 일당들은 마약거래, 인신매매, 무기 밀매를 일삼는 확실히 악한 이들이긴 하다. 범죄조직의 잔혹성에 맞추어 그웬돌린 또한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해진다. 더 악한 일들을 처단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고 더 큰 잔혹성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열여덟이 된 그웬돌린의 활약상은,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해진다. 이건 성장일까.

   

“생각해보면, 이 애들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들거든. 어쩌면 저 빨간 머리는 페테르부르크에 계속 살면서 학교 선생님이나 뭐 그러게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저 애를 창녀로만든 거잖아.“ 에밀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 앞으로 펼쳐진 길을 쳐다보았다. 생각에 잠긴 철학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거야.“


  5개 국어를 하는 그웬돌린 역시도 통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왕따로 기억되는 학교에서 만난 테렌스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다. 세상이 그웬돌린을 잔혹한 여전사로 만들어 버리다니. 그럼에도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고 있다니. 나도, 생각을 아예 안해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럴 리가 없어요. 클라디보는 괴물이잖아요, 아빠. 클라디보는 인신매매범이에요, 여자들, 어린 소녀들을…….”

하지만 아빠도 이미 알고 있겠지, 직접 겪어보았을 테니까.

“맞아, 하지만 CIA는 상관하지 않지.”

“하지만 클라디보가 CIA 요원이라면 어째서 아빠를 인질로 잡고 있었던 거예요?”

“돈 때문이야, 그웬. 언제나 돈 때문이지.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야. 클라디보의 보스였던 조릭은 거액의 계좌를 남기고 죽었어. 클라디보와 다른 CIA요원이 그 돈을 가로채려고 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거야.”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야. 오늘 밤에 네가 한 일이 바로 정의야. 정의의 얼굴은 추하고 비열하거든.


   세상은 가치와 신념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가장 잘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라는 이 씁쓸한 말, 모든 범죄의 이유는 돈이고  CIA 요원이라면 악인이 아닐 거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일 또한 잔인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며 달려왔던 그웬돌린의 아버지는, 믿을 수 있는 CIA 요원인 걸까. 미심쩍어하면서도 그웬돌린에게 처음부터 믿고 의지하는 이들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결단을 해야 했던 그웬돌린의 활약의 정점은 인신매매로 잡혀 있던 소녀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오로지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으니, 아버지를 찾고 난 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달려간 그웬돌린은 이제 이전의 그웬돌린으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범죄의 잔혹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그 세계를 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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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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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에 대한 반응

붉은 소파, 조영주 저, 해냄, 2016.05.24.


  가끔 생각한다. 싸이코, 연쇄살인, 실종, 미제 사건…이런 단어에 반응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까. 그 광기에 자극되기 때문일까. 정보가 신속하고 빠르게 전달되면서 전세계의 잔인한 살인사건을 자주 접한다. 뉴스를 통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참혹하고 끔찍스러워 하면서 굳이 이런 장르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즐겁지 않은 그 상황에 빠지는 것.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끝난 사건을 애도하면서 범인이 잡히고 살인의 이유가 드러나고 악인은 처벌받는 결말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온전히 범인을 쫓는 추리에 스릴을 느끼는 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연쇄살인범의 살해 이유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변함없는 클리셰를 보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탁월한 문체와 구성으로 휘어잡는 이야기가 있고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을 쫓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없거나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극’의 극대화에만 반응하며 내 몸속에서 잔혹하고 끔찍할수록 반응을 보이는 인자가 있나 섬뜩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 맞닥뜨린 연쇄살인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명망있는 스타 사진작가 정석주의 딸이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은 모두 붉은 소파 위에서 일어났기에 정석주는 붉은 소파를 알아볼 범인을 찾기 위해 붉은 소파를 놓고 기다린다. 붉은 쇼파 위에 앉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며 15년 동안 살인범을 쫓는 삶에 올인하던 중 사건현장 사체 촬영을 제안받게 된다. 현장 사진을 찍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사진과 카메라를 매개로 사건을 추리·해결해 나가며 15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간다.

  사진작가 정석주가 사건을 추리해가는 결정적인 단서는 붉은 소파가 아니라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사진을 찍는 과정, 촬영 사진 등 사진에 관계된 활동을 통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기억하고 싶은 추억과 마주하고 사건의 진실을 조합한다. 사진은 찰나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고 찰나의 순간이 지나간 순간에는 그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도 왜곡되기도 하고, 또한 선명해지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들.

  정석주에게는 사진이란 인생이다. 사진에 희노애락이 펼쳐진다. 정석주에게 사진은 외면이자 집착, 거짓이자 진실이 된다. 추억과 그리움, 아픔과 상처의 표상이지만 또한 치유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전문가’라는 말이 가지는 위엄을 느끼기도 한다.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것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란.

  등장인물은 몇 되지 않는데 모두 의뭉스러워 보였다.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의 느낌은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연쇄살인사건이었으니 범인은 역시 사이코일 것이라 짐작했고 사이코가 행한 살인의 이유는 놀랍지 않았다. 카메라는 어떤 물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도 하지만 잘 가리기도 한다. 렌즈를 통해 보게 되는 사물, 인물은 맨눈으로 볼 때에 비해 ‘다르게’ 보인다.

  어떻든 소설 속 연쇄살인범에 대해 덜 놀란 것이 그의 행위가 잔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정도에 무뎌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조금 식상해서다. 소설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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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3-2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고 있어요...

모시빛 2018-03-26 20:30   좋아요 0 | URL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추리,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더욱...저는 그렇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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