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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자연사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령 현상에 대하여
로저 클라크 지음, 김빛나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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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죽지 않는다


유령의 자연사, 로저 클라크, 글항아리, 2017-11-03.


  『유령의 자연사』를 자연스레 유령의 자연사(自然死)로 인식했기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손이 뻗었다. 유령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정말로 유령에게 죽음이란 있는 것인지 그 세계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등. 유령에 대한 관심은 죽음에 대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일 지도 모른다. 타인의, 타국에 대한 관심만큼의 다른 나라에 대해 가지는 관심처럼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며 뻗치는 유령의 세계.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존재하는 가운데 유령의 죽음을 알아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은… 自然史에 다소 멈칫했지만 막연하지만 단순하게 대상화했던 유령과 유령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힘’이 ‘필요’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유령의 죽음에 대한 물리적인 실체를 알고 싶었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유령이 영국에서 특히 많이 출몰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유령 출몰이 많은 것에 대한 과학적·객관적 입증은 없다고 말한다. 단지 목격자, 증언이 많을 뿐이다. 과학적인 입증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들였지만 유령 존재에 대한 과학적 입증을 할 방법은 결국 없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유령에 대한 믿음과 관심을 가진 저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령이 변화했다는 것을 확실히 간파할 수 있었고 유령은 더 이상 영혼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령의 죽음은 결국 소멸이다. 그것은 그 유령을 ‘보는’ 이가 더 이상 없다는, 그 유령은 ‘발견되지 않았다’가 되는 것이다. 유령이 언제 발견되고 발견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죽은 혼령이라는 맥락에서 유령은 한국귀신인데 생각해보면 귀신이나 유령이나 출몰하는 장소나 이유는 같다. ‘귀신을 보았다’에 대해 ‘심리적 요인’이라는 처방이 내려지거나 공동묘지나 사람이 죽거나 살해된 장소에 유령이 대부분 ‘발견’된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볼 때 유령 발견에 대한 역사에 심리적인 역사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심리를 좀 더 조직적으로 ‘이용·활용’하는데 어쩌면 기인 역사의 영국이 탁월했다는 점에서 유령들의 잦은 영국 출몰은 충분히 이해가 됨직하다. 앤 블린과 ‘몽스의 천사들’은 매우 유명한 유령들이며 문학속에도 수많은 유령들이 존재한다. 유령 문학이 많은 것은 유령을 목격한 이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관심에 비례하는 것이니까.


수 세기 동안 유령의 존재는 인식되어왔고, 언제나 목적이 있었다.


  한국의 곤지암에 위치한 정신병원이 CNN으로부터 ‘탁월하게’ 소름끼치는 장소로 선정된 후 단순 폐업하고 건물을 인수할 자가 없던 병원이 유령 출몰 장소로 유명세를 떨치는 과정은 저자가 말하는 바에 딱 들어맞는다. 오래도록 유령은 등장했고 한편으로는 ‘오락’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거대한 자본과 맞물려 ‘유령’이 콘텐츠화되면서 유령은 특정한 이가, 또는 미디어가 그려내는 대로 그 모습을 갖추어 특정 장소를 누비게 된다. 시대마다 유령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상업적인 이유 외에도 유령이 필요한 ‘목적’은 존재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종교, 미디어, 사회적 지위”로 들었다. 유령이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임을 인식하며, 유령의 존재를 조작·조장하며 국가도 종교도 그들의 체제를 강화하는데 활용했다. 전통적으로 인식되는 유령에서부터 엘리멘털, 폴터가이스트, 타임슬립 등 다양한 종류의 유령이 나타나는 것도 효율적인 유령 활용의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왕정복고 이후의 유령들은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 세우며 잃어버린 문서나 소중한 물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돌아왔다. 섭정 시대의 유령들은 고딕풍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령들은 강령회에서 질문에 답을 내리는 존재였고, 유령을 보는 것은 여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아들여졌으며, 유령을 목격하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연법칙의 현현이라고 여겨졌다. 1930년대에는 폴터가이스트가 발견되었다.


  존재에 대한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유령에 대한 관심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또한 과학의 발전에 따라 유령을 발견하는 상황들도 좀더 발전되어 왔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저자가 발견한 유령의 법칙을 살펴보면 유령 또한 소비재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의 목적에 맞게 변화·구현된 유령은 인간의 감정, 욕망의 정도에 따라 달리 인식되고 있다. 실체를 규명하려는 과학적인 시도와는 별개로 ‘유령’은 소멸되지 않은 채 일상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한스 홀처의 말처럼 결국 “유령은 어찌 됐든 인간 또는 인간의 일부이며, 따라서 정서적 자극의 영향을 받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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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들을 알아보는 법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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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로망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아마존 상공에서 여객기 공중 폭발에서 열일곱의 줄리안 케프케만이 폭발 직전 좌석이 분리되어 살아남았다. 홀로 정글에 추락한 케프케는 사고후 11일만에 원주민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해 줄리안이 한 일은 놀라웠다. 나무의 나이테를 파악해 북쪽 방향을 향했고 갑각류가 살고 있는 물과 식용 가능한 식물을 골라 먹었다. 밤에는 모닥불로 불을 피우기까지 했다하니 본능적인 생존의 기술인가 싶었지만 생태학자인 줄리안의 아버지는 평소 외딴곳에서 생존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잊지 않고 활용하며 그 고통의 날들을 견뎌낸 것이다. 더구나 허벅지 상처에 구더기가 생길 정도의 극심한 상태였는데 버려진 오두막에서 석유를 부어 응급처치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마을을 찾아 강가를 걷고 건다가 쓰려진 상황에서 원주민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다가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이 마비될 것 같은데 자연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는데도 오지탐험에 대한 갈망은 주기적으로 살아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오지탐험은 로망이다. 오지탐험이 일반적인 여행이나 관광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은 자연·원시적 생태에 대한 로망과 맞먹는 문명사회에 대한 회피 욕망이기도 할 것이다. 그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역시 고난과 환멸을 겪게 되겠지만 현실세계만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로망을 부추기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이 넘는 야외 탐험과 연구로 자연 탐험의 기술들을 터득하고 있다. 오지에서 저자의 생존력에 대한 부러움을 가득 안고서 가벼웁게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을 보면서 마냥 생존방법을 터득하는 책인양 보고 있다.

  이 책은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자연에서 특정한 신호와 단서를 알아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하늘의 별과 나무뿌리의 선을 통해 방향을 숙지하는 법, 구름과 무지개 식물 등을 통해 날씨를 읽어내는 법, 동식물을 통해 지대를 읽는 법 등등 재밌고 의미있는 관찰의 결과를 알려준다. 가벼운 산책을 더할 수 있는 흥미와 함께 길을 잃어버린 경우 유용함을 줄 수 있기도 한 방법들이다. 특히 저자는 인도네시아 고립된 지역에 살고 있는 다약족과 함께 자연의 단서로 살아가는 모습에 관해서도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다약족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든 오랜 삶의 경험으로 터득한 자연현상을 읽어내는 방법들이 노래형태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전해진다.


   참나무를 조심하라, 벼락을 끌어들인다.

   물푸레나무를 피하라, 번개를 유혹한다.

   산사나무 아래로 들어가라. 그러면 해가 없을 거다.


  전혀 생각지 못한 단서는 네잎클로버가 주는 단서다. 당연 네잎클로버 군락지를 보면 이런 더할나위없는 행운에 기뻐하겠건만 저자는 네잎클로버 여러 개가 한군데 모여 있다면 그것은 제초제를 뿌렸다는 징후라고 말한다. 제초제와 식물 비정상적으로 자라게 한다는 점, 그리고 네잎클로버가 비정상적이었기에 나폴레옹 역기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삼 네잎클로버가 클러버의 돌연변이 형태라는 사실을, 그리고 거기에 인간이 뿌린 농약이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네잎클로버가 한무더기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좋다고 달려가 마구 뜯거나 그 위에 드러누울 듯한데 그곳이 농약 한무더기 뿌려진 곳이라니.

  하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들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동네 산책을 나가며 이 단서들을 파악하고 확인하리라 하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알지 못하지만 마냥 눈여겨 관찰하기는 할 지도 모르겠다. 이건 왜 이렇지라는 생각으로 흘낏.

  저자는 하늘의 별과 달, 해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당장 오늘밤 35년여 만에 펼쳐지는 '슈퍼 블루문 개기월식'이다. 오늘이 지나면 19년 뒤에야 이 현상을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이 책의 지식으로 이 현상을 잘 관찰할 수 있을까. 북극성, 북두칠성을 찾던 어린시절에도 내가 찾은 것이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별을 바라봤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제대로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은 것인지. 산책을 가든 등산을 가든 정상에 오르는데만 급급하고 산책을 하면서는 세밀하기 보다는 꽃이 폈네, 바람이 부네, 사람이 많네, 이런 정도로만 바라보면서 오지탐험에 대한 열망을 꿈꿀 때마다 우스워지곤 한다. 정말 바라는 것이 오지를 향한 여성이 아니라 현실을 탈피하고픈 욕망이라면 그속에서인들 기꺼이 산책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는 있을런지 싶어서.

  한편으로 이 책이 산책의 욕구를 활활 타오르게 하기보다는 수그러지게 만들었다. 날이 추워서가 아니라 순간 ‘너무 머리가 아파서’. 자연학습 테스트처럼 이것을 다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들자 한숨부터 나왔던 까닭이다. 간사하고 모순에 가득찼다. 그러면서도 다약족과 함께 도보여행을,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면 고난이고 누군가에겐 짐이 될 테인데도 다약족의 도움을 얻어서, 내가 가진 지식이 없더라도 누군가의 지식과 경험을 얻어서 그곳을 살아보고픈 욕구. 나같은 사람이 많아서 오지탐험, 정글의 법칙같은 프로가 장수를 누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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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마고 - 이미지로 생각하는 인간
우성주 지음 / 한언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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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이미지


호모 이마고-이미지로 생각하는 인간, 우성주, 한언, 2013.


  세계 최대 ‘항손둥 동굴’(Hang Son Doong Cave)을 보다보니 역시 여행과 탐험에 대한, 베트남 여행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 동굴을 보기 위해서인데 제한적 허용이라고 하니 기분을 스르륵 가라앉히지만, 생각해보니 동굴 탐험에 대한 의지와 욕구는 항손동 동굴 이전에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의지도 가라앉혔으니 동굴탐험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졌다가 다시 피어올랐다가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굴에 대한 관심으로 읽은 책이 ‘호모 이마고’다.

  『호모 이마고Homo Imago』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인간’이란 부제를 가지고 동굴을 탐험하고 있다. 항손둥 동굴과 호모 이마고 속에서 다루는 동굴들은 느낌이 다르다. 항손동 동굴이 자연이 동굴 속에 있는 것이라면 호모 이마고속 알타미라 동굴, 라스코 동굴은 저자의 말대로 갤러리같다. 동굴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동굴탐험이라기보다는 동굴 속 이미지를 다룬다. 호모 이마고는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왜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있을까.


인간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본질 면면을 사유하고, 소유하며, 소통하는 존재이다. 이런 특징은 인류가 문화를 만들고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는 창조적 동력이며, 인간의 본질적인 독창성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인간은 내면에 오롯이 떠오르는 생각을 개인가 사회가 가진 문화와 예술적 코드가 내포된 이미지로 탄생시킨다. 따라서 이미지는 앞으로도 인류의 문명을 지속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저자는 문화원형을 탐색하기 위해 문화가 속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을 추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동일 시공간에서 인간이 만든 메시지를 ‘이미지 코드’로 추출·분석해서 ‘인류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원형을 탐색하기 위해 저자가 추출한 이미지코드는 문자, 그림 등등 다양하다. 이것을 신화와 종교,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적용해 분석한다. 저자가 대표적인 ‘이미지’ 분석으로 사용한 것이 ‘라스코 동굴벽화’다. 구석기인들이 쇼베 동굴, 알타미라 동굴, 라스코 동굴 등등에 그린 많은 벽화를 분석한다. 특히 저자는 라스코 동굴벽화는 다섯 개의 갤러리로 나누어 생생하게 라스코 동굴벽화를 현재 탐험하듯이 보여준다. 이러한 이미지 코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후기구석기인들이 남긴 동일한 동물 이미지를 통해, 지역은 달라도 그들이 가진 감성의 소산에 의해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라스코 동굴의 들소 그림은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실제로 그 부근에서 주로 서식했던 들소를 그린 것이다.


  후기구석기인들은 벽화를 ‘신성한 곳’ ‘신성한 구조’에 그리고 있다. 후기구석기를 대표하는 동굴의 구조가 여성의 자궁과 같은 구조이며 동굴은 여러 중요한 의식, 사냥꾼이 될 청년의 입문식의 장소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사냥꾼은 샤먼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로서 입문식과 같은 통과의례를 통해 샤먼이 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완수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인류가 문명으로 나아가는 시대, 그리스와 이집트 문명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비교하고 그 속에 나타난 건축과 의식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아내면서 동일성과 유사성을 발견한다.  


문화적 현상에 대한 동일한 이미지는 비단 제한된 특정 장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차별성을 초월하여 동일한 하고를 하였다는 점은 인간이 가진 사고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민족이든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고 가더라도 이 지구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결국 지구에 형성된 자연환경과 그 안에서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환경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미지를 통해서 구현해낸 생각의 결을 읽고 있으면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생각할 수 있고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한정적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창조라고는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동일하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한, 인간의 삶을 위해 추구하는 형태가 세밀화되어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 지금보다 더 머언 미래의 인류가 지금 현재의 인류가 남긴 이미지를 추출해내서 비교분석하면서 그들은 뭐라고 해석을 할지가 궁금해진다. 살기 위해서 이토록 무식하게 버둥거린 인류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려나. 외경심을 가지려나. 그 이전의 인류가 해온 행위들을 통해 살아갈 미래를 위한 방법을 학습한다고 할 때 어느쪽에 무게를 더 두게 될지,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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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그레이드 또는 리셋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7-05-15.


  그런 것도 같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되려 한다. 스스로 창조해낸 ‘신’이 되고자 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신이 만들어낸 세상의 규율을 쫓으며 ‘영원’히 살아갈 세상을 꿈꾸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 담고 있다.

   이야기를 창조하고 허구와 신화를 창조하며 협력한 호모 사피엔스가 과학기술로 기아, 역병, 전쟁까지 해결한 이후에는 이제 정복할 것은 신의 창조영역이다. 신은 창조되었는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인지, 무엇을 믿든 간에 불멸, 행복, 신성을 갖고자 하는 인간을 유발 하라리는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라 명명했다. 그리고 신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신성을 획득한다는 것이 비과학적인 말 또는 매우 엉뚱한 말로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신성의 의미를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성은 모호한 형이상학적 성질이 아니다. 그리고 전능함과 똑같은 말도 아니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한다고 말할 때 그 신은 성경에 나오는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보다는 그리스 신들 또는 힌두교의 천신들을 말한다. 우리의 후손들은 제우스와 인타라처럼 약점, 꼬인 구속, 한계를 가질 테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차원에서 사랑하고 증오하고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신과 그리스 신들 또는 힌두교의 신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인간성’이 아닐까. ‘신성’을 염원하면서 ‘인간성’ 가득한 신의 능력을 얻고자 한다는 말은 뭔가 어불성설인 듯하지만, 적어도 내게 이 두 신들의 차이를 말하라면 그렇다. 하긴 하나는 종교화되었고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차이이긴 하겠다. 종교혁명이 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은 얻은 것이라는 말은 의미있게 들리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종교적인 지배가 절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지배 때문에도 고통받는 존재들이 있다. 신의 사랑은, 그들에게는 가닿지 않는 모양이다. 인간이 신이 된다면 달라질까.

  유발 하라리의 글은 요즘의 트렌드에 맞게 감각적으로 기술된다. 비슷한 분야의 제레미 다이아몬드와는 또다른 느낌인데, 둘 다 술술 읽히긴 하는데 왜인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글에 더 재미를 느낀다. 아마도 문화인류학자로서 직접 경험한 사례를 펼쳐놓는 다이아몬드의 글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하라리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상상하기 싫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하라리의 글에 대한 집중도 약해진다. 힘있게 서술하던 처음과는 달리 그의 글 또한 뭔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도 같다. 그가 그리는 ‘될 것이다’의 세계는 부분 이뤄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점을 잡아야 할 인류의 미래는 무엇일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일 것이다. 어쩌면 정보가 너무 넘쳐나서, 어쩌면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우리는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때론 과학문명이 여기서 멈추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업그레이드 했다가 오류를 발견하면 다운그레이드 하건 리셋하는 것처럼 이 문명의 행운이 더 이상 운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말이다. 과학이 제시하는 미래가 암울한 것이 아니라 그 과학을 이용, 활용하는 이의 결정에 미래가 놓여 있다는 것이 암울한 것이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집단의 협력으로 종을 유지해 왔다. 절대적인 믿음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왔지만 각각의 다른 믿음들을 이끌어 온 존재가 있었다. 여전히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부여도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인간을 믿으면서도 믿지 못하게 된다.

  “가능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인간 개개인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과 행동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내 생각과 행동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급격히 심각해진다.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 신이 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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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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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뒷담화론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진정 탁월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MB부대들이 연이어 검찰 출두하는 모습을 본다. 새삼, ‘인간도 아닌’이라는 욕들이 무색해진다. 이렇게 MB를 호모 사피엔스로 등극하게 한(?) 이론을 펼친 유발 하라리는 얼마 전 TV 강연에도 등장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류가 동일종의 직선계보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람들의 이런 오류에 대해 지적한다. 적어도 여섯 종 이상의 인간 종이 존재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 종만이 살아남아 있는가. 저자는 이것은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움직여간 모든 곳에 ‘멸종’이 있었다. 그렇다. 호모 사피엔스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잘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MB가 벌인 행태와 유사하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이야기다. 허구를 만드는 능력. 상상력. 저자는 사피엔스가 가진 특별한 무언가가 바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동일하게 믿는 한 사람들은 그 관행과 규칙을 따르게 되고 설득당하기 쉽다. 이를 통해 유연한 협력을 함으로써 인류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나쁜 쪽으로 활용할 때 나쁜 것이 되고 좋은 것으로 사용한다면 좋은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 중 누군가는 이것을 좀더 나쁜 쪽으로 활용했고 그런 무리들이 되어 그들만의 사회를 유지시켰다. 이런 활용이 지속적인 세상의 지배자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가고 있는 중이고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좋은 상상력을 활용해나가고 있다. 인류 문명의 진화로 제시한 세 가지 혁명,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거쳐 과학혁명을 맞이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단계를 거치며 인간은 행복해지고 있는가.

  홀로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문명기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거의 모습들을 마치 직접 겪은듯 향수에 젖어 돌아보게도 되는데 수렵채집인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 마음이라니! 정착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인구, 노동시간, 전염병이 급격히 증가해 간다. 오늘날의 삶이 이 농업혁명기의 삶이 모태인듯 보이며 수렵채집인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진정 꿈꾸는 삶인 것마냥 느껴지는데 저자는 바로, 지적한다. 그 시대라고 풍요사회일 수만은 없노라고. 하지만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는 관점은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는 입장에선 참 자조적으로 들리는 말이기도 했다.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어디 그뿐인가. 미래도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 과학기술은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 수명을 연장하게끔 해왔지만 과연 이런 기술의 진보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내려앉을 것인가. 오랫동안 혁명의 혜택이란 항상 권력자들, 가진 자들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한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 발전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뿐. 또한 무한히 뻗어 나가는 유전공학의 세계는 경이롭기도 하지만 무서움을 준다. 역시나 그것 자체로는 어떤 선악을 판단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는, 이용할 수 있는 누군가의 ‘욕망’과 ‘의도’에 인류 전체의 행복 또한 달려 있을지 모른다. 뒷담화론과 이 과학기술혁명에 필수적으로 윤리가 요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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