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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1
박은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어쩌면 보통 사람들은 용납 못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재에 불편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금지된 사랑이란 소재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을 본다. 이루지 못할 사랑에 흔들리는 인간을 보고, 마음의 벽을 쌓아 가로막은 인간을 보고, 절망에 고통받으면서도 감추어버리는 인간을 본다.
무표정한 그녀.. 잘 웃지도 울지도 않던 그녀에게서 아픔을 본다.
여름날이 갔다. 한밤에도 잠 못 들던 여름이..
하지만 나는, 오늘도 잠들지 못해.
무얼까.. 불면의 밤에 나와 함꼐 있는 것은-
주인공 희진은 아빠의 재혼으로 피도 섞이지 않은 영호와 남매가 된다. 부모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 안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던 희진에게.. 자꾸만 영호의 그림자는 다가온다. 부인하고 또 부인하고.. 내치고 또 내쳤건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어떤 '틀'안에 있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그 속에 들어간건지, 아니면 내 스스로 들어간 건지는 잘 알수가 없다.
'틀'속은 안전했다.
'틀'은 외부의 자극으로보터 날 지켜줬다. 날 아프게 하는 모든 자극들로부터-
'틀'에게 나도 모르게 치루고 있던 대가는 얼어붙어가는 심장과, 유리보다 약한 인간관계들-
그 중에 유난히 파고들어왔던 넌 누구보다도 날 잘 이해하고 스스럼없이 대해줬지.
그리고 알아버렸어. '틀'속에 있는 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차라리 이젠 고통을 느끼는 편이 낫겠다.
희진과 영호가 연인사이로 발전하고, 새엄마가 그 사실을 알아버린건 언젠간 닥칠 일이었다. 강제로 영호와 떨어져 있게 되고, 불의의 사고로 영호가 죽게되는건 이 나라에서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말이리라...
희진은 다시 두터운 벽을 쌓고, '틀'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옛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울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금 그녀의 마음은 얼어버렸다.
아픔을 저 밑바닥에 감추어 놓고, 스스로는 이겨냈다고 혹은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영호가 얘기하던 마모되어 보석처럼 변한 사이다병을 발견하고 그녀는 목놓아 운다. 내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기억의 조각들은.. 아주 사소한 것을 계기로 불시에 찾아와- 무더기로 쏟아져 버린다.
그리고는 무방비상태에 있던 인간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듯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면 곧 괜찮아질것이다. 나는 아마도 또 벽을 만들어갈테니까.
저번것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한 벽을-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실컷 슬퍼해도 괜찮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깨진 유리조각처럼 예민했던 그 시절들의 나는,
언젠가 말끔하게 다듬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오랜시간 거친 파도에 마모된 바닷가의 유리돌처럼-
그래.. 어른이 되어 간다는건 그런 것이다.
아픔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엔 그 고통이 무디어져버리고, 감정 표현마저 자유롭지 못한 것..
어떤 자극에도 동요하지 않은 척, 내 마음을 가둬버리는 것.. 그런 것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스위티 젬>이나 <다정다감>은 나와 코드가 맞는 작품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연령대를 십대에 맞춘 좀 유치한 사랑이야기라 느꼈었다. 그래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느낌이 확연히 틀리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이 책 한 권 읽는다면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