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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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성장드라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작품. 책의 말미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물론 주인공들에게 소소한 변화가 있긴하지만... 아쉬운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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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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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부 시리즈>와 유사하다. 고전부에서는 주인공 호타로는 에너지 절약주의자이고, 소시민 시리즈에서 주인공인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소시민을 지향하는 늑대와 여우다. 작가가 보여주는 일상 미스터리의 재미는 여전하긴 한데,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지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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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
이경구 외 지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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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대한 인식은 개념으로 가능하다. 요즈음 들어서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되어서 나름 그 개념들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개념사 관련 책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는 6개의 개념어들로 한국의 근현대의 살피고 있다. 제목 그대로다. 일반적으로(??혹은 나만?) 기대하는 개념어에 대한 정의 용법, 그러한 것들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이유로 바뀌게 되었지는지에 대한 설명등의 형식으로 쓰여진 건 두 꼭지 정도다(<<이용후생>,<<철학>>) 나머지는 앞에 두 편의 글보다는 그 개념어가 당시의 조선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졌고 혹은 획득하려고 했는지 보여주는데에 주력한다.

 

 내가 뭘 기대했는지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몇 가지 조금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중 하나는3.1운동 이후로 복벽주의나 보황주의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 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다.

 

 <공화제>란 용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4년 1월 30일자의 <한성순보>였고, 그 외에 미발표 글인 유길준의 <세계대세론>에서도 소개 되었다고 한다. 이른 시기 부터 그러한 정체를 알고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입헌군주국에 당시 조선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입헌군주제도 당장 실현하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 갑오개혁을 통해서 비로소 군민공치를 실험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당시 고종은 강하게 반발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연이어 터지면서 개화파의 정권은 무너졌다. 이후 1898년에 군주권을 제한하고 국민주권론을 제기하던 독립협회의 회원들이 잠시나마 당시 중추원에 참여하게 되나, 망명중이던 박영효와 미국 국적의 서재필등을 각원으로 추천한 것을 두고 시비거리를 만들어 결국 강제 해산시켜버렸다. 1899년에는 전제군주제의 나라임을 선언하는 <대한국국제>를 반포하였다.

 

1905년~1910년 사이에는 헌정연구회에서는 입헌군주제를,  1907년에 안창호에 의해 결성된 <신민회>에 이르러서는 공화제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11년 중국에서의 신해혁명을 통해서는 공화제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더욱더 커진 것 같다.  그러다 세계대전 이후에 다시 입헌군주제로 물러선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세력이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여 세계대전의 정세가 크게 바뀌자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대동단결선언>이다. 

 

 이와 같은 <대동단결선언>은 '주권상속의 대의'('구한국의 최후의 날이 곧 시한국 최초의 날'이며, '제권의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 라는 이유로 '우리 한국은 처음부터 한인의 한국이였으므로, 한인만이 서로 주권을 수수할 수 있으며, 한인이 아닌자에 주권을 양여한 것은 무효이며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와 '대동단결의 원칙' 제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비록 이 선언은 국내외에 널리 송달은 되었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관망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언은 '복벽주의'와 '보황주의'를 청산하여 '국민주권론'을 확고히 하였다. 3.1운동 당시에도 정부수립이 필요함을 느끼고 다양한 정부안이 나왔지만, 모두 공화제를 지향하는 바였다.  국내외의 독립운동 진영이 <대동단결선언>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서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의견이 모아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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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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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왜 그런가?를 알려면 그것이 형성되어 온 과거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역사인식 또한 그러하다. 본책은 일본인 한국사 연구자인 미야지마 히로시의 논문집으로, 그러한 일본의 역사인식,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현재의 일본의 역사인식의 뿌리(?)를 근대 일본의 태동기,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하는 당시의 역사인식에서 찾는다. 하나는 일본의 봉건제론이고 또 하나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유교인식(이른바 유교망국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1부에서는 일본의 봉건제'론'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들을 정리한 것이고, 2부는 당시 일본의 유교인식에 대한 비판적 제기를 하고 있는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일본의 봉건제'론'은 이른바 탈아입구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아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유럽과의 유사성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건제는 유럽의 발전도상에서 생겨났던 제도로 역사발전 단계 중 하나로 설정되었다. 당시의 선진화된 서구, 낡고 정체된 동양라는 구도를 생각했을때 우리(일본)은 낡고 정체된 아시아와는 다르고 선진화된 유럽과는 유사한 봉건제가 있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주로 역사학자라들이 주장했다기 보다는 그 주변적인 경제사학자와 법제사학자가 주창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이런 봉건제론은 천황제(황국사관)와 더불어 국사 창출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점. 그리고 한국과 중국에는 이와 같은 봉건제 부재를 이류로 들어 '침략'의 이데올로기로 작용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이시모다 쇼의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라는 연구물을 통해서 통설로 굳어졌고, 봉건제'론'의 이데올로기성은 망각된 채 이에 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보수적/진보적 사학자를 막론하고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봉건제'론'을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보수/진보나 이러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유럽 중심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한일 양국의 역사교과서의 단원 제목을 통해서도 그러한 인식의 일환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발전단계일 뿐일 유럽의 봉건제가 단원의 제목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중국의 성립과 '발전'이라는 단원의 제목과는 대비가 된다. 중국의 발전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유럽의 봉건제라고 올라온 제목을 비교할때 발전의 정도가 달라보이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는 예전과 달리 유럽과 목표가 되던 시대가 아니다. 적어도 서구화가 민족과 나라를 살릴 유일한 절체절명의 방법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역사관을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무엇보다 현재의 실증 수준에서 보면 18세기 말까지 세계의 여러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서구를 능하거나, 적어도 동등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럽 봉건제를 기준으로 18세기까지의 동아시아사를 파악하려는 것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동아시아사에 봉건제 개념을 접근하지 못하게 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적인 구미중심의 세계체제가 근본적으로 재편을 요구받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역사상을 탐색하기 위해서 라도 19세기적인 세계관으로 이전을 파악하려는 '봉건제'론은 서둘러 근복되지 않으면 안된다."(p.98) 그리고,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 봉건제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던들, 그것이 서구의 봉건제가 본질적인 것인지, 동아시아의 봉건제가 본질적인 것인지 어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당시의 서구제국주의의 위력에 따른 것일뿐이다.

 

 유교인식의 비판을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당시 일본이 하려고 했던 근대화의 내용은 유교(주자학)을 국가와 사회의 작동원리로 했더는 한국,중국에서는 이미 선취된 것인데, 당시 후키치와 유키치와 같은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의 유교만을 생각하고 비판한 것란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자학에 대한 호감이라고 해야되나? 뭐 그런 것이 느껴지는데 그게 과연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일단 앞으로의 독서 과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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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까마귀 2024-04-20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말 메이지 유신 초기 인물들이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음 사대부적인 면모가 어느 정도 존재함
 
씩씩한 남자 만들기 -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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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살다보면 가끔식 들어보는-그래도 근래에는 좀 듣는 경우가 적어진 것 같지만 그건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할만한 사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일 것이다-소리가 군대를 다녀와야지 사람이 된다는 소리다.  개인적으로 면제가 된 경우이기도 해서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였다(그 이유 외에도 그냥 상당히 거슬렸다. 군대 다녀와서 이상한 걸 배워와서 사람이 요상하게 되는 경우는 봤어도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경우는 잘 못봤다).

 

 그냥 박정희 시절 이후에 형성된 병영국가의 일례를 보여주는 사례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본서를 읽으면서 그 연원은 알게 되었다. 1890년대 이전의 조선에서는 양반의 남성성과 상것들의 남성성이 존재했는데, 양반의 것은 유교적인 지향성을 가진 왕조의 지배층 답게 자제력이나 예의감각 그리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비분강개할 줄 아는 '강인한 정신'의 보유자로서의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행위를 해야될 필요는 없었다.  반면, 상놈의 남성성은 양반과는 다른 주먹다짐을 곧잘 할 정도로 거칠고 용맹스러움, 성적인 능력이 강조되는 등의 이미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상것들에게도 노련한 사회성과 신중함, 유교 도덕에 의해 자제는 필요한 것이었다.  일례로 김구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김구의 아버지는 거의 매달 한 번씩은 부정하고 오만한 이웃들을 반 죽을 반큼 주먹으로 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시에 정기적인 선물로 향리들의 비위를 잘 맞추기도 했다고 하며, 중대한 문제를 부딪쳤을때 대체로 유교적 덕목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 안중근은 전통적 한문교육보다는 사격, 사냥에 열정을 쏟았다고 하고 16세때 동학운동 진압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다.  이런 거친 남성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 기생들을 때리기도 하였다는데,  기생들과의 관계를 즐기면서도 그들에게 훌룡한 남자와 결혼하고 도덕의 길을 따르라고 자신의 유교적 체면을 유지하려 한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그만큼 상것의 남성성은 복잡했다.

 

 이렇게 두 가지의 남성성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열강의 위협[특히 일본]에 직면하면서 그 두 가지 지향은 새로운 남성성의 이미지로 수렴되었다.  그것은 군대와 운동장에서 단련되고 규율된, 애국적이고 튼튼한 신체를 가졌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헌신적 정신의 소유자로의 남성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남성성은 <독립신문>을 시작으로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황성신문>등의 매체를 통해서 운동장에서 경기를 통해서 규율화되었으며 튼튼한 체력을 가진 신체로 만드는 것을 강조하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있는 조선왕조, 대한제국의 신민 혹은 국민의 국난 극복을 위해서 였다.

 

 뭐 이렇게 본다면 군대를 간다는 것은 강인한 신체로 변모하기에 필요한 곳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런 이야기('남자는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것은  내가 비약해서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분고분한 인간(질서에 순응하는 규율화된 몸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와서는 일반적으로는 사라진 남성성이긴 하다.  지금 현재는 거친 남성성보다는 학력, 재력을 우선으로 본다. 그렇지만 기업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데, 신압 사원 연수로 해병대 캠프로 가는 경우등을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말대로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버티기 위한 체력단련의 의미일 수도 있고, 고분고분한 인간을 만들기(강조하기)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참 이해가 안가더라.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이 항상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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