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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계승범 교수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에 실린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누르하치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다룬 논문이였는데 아주 인상깊어서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있다가 몇권의 책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구입한 책이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그리고 방금 다 읽은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라는 책이다. 얼마전에는 <중종의 시대>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만큼 뭐랄까, 학자에게 이런 평가를 내려도 되는가 모르겠다. 좀 색다르고 화끈한 면이 있다.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도 그런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를 이용하는데 있어서[비록 정확한 평가는 할 주제가 못되지만서도] 신중하지 못해보인다거나, 내가 봐도 논리적으로 뭔가 이해가 안되는 면은 없었다. 하지만 본 도서는 좀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격하다. 학술서와 대중서의 차이를 두고 그런 건지 모르겠다.
여튼 그런 탓에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서도 재미있게 읽은건 분명하다. 우선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저자가 말한 세가지 평가 기준이다. 저자 말에 따르면 최소한 이 세가지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헛소리'는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가 어떤 인물이 살던 해당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어느정도 충실하였고, 보다 나은 가치 창출을 노력했냐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인물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어떠한 보편적이고 표본적인 의미를 가지냐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인물이 위치한 자리, 그 사람에게 주어진 임무를 얼마나 수행하였는지 그 책임감과 능력을 보는 것이다.
선비의 덕목과 그 덕목을 수행하여야 할 선비의 실상을 다루는 2장 역시나 아주 인상깊었다. 지조,의리,청빈 등등의 덕목은 선비라는 인물군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선비가 많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이 덕목 자체만을 가지고 선비를 칭송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덕목이 누구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하였던 것인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촉즉발의 남한산성에서 척화파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전파가 내세웠던 논리가 무엇이었던가? 구차하게 나라를 유지하니 끝까지 싸우다 죽으면 후세에 할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조선을, 조선국왕에 대한 지조와 의리가 아니라 중화문명의 담지자인 중국 명나라 천자에 대한 지조와 의리였다. 당대에 사회적 가치관에서는 보편적 의미를 가졌을지 모르나, 현재 우리에 있어서는 괴이한 일이며, 당시 그들이 위치하고 있던 자리의 기대임무를 수행하였다고 보기에도 힘들다. 이처럼 지조와 의리 등의 덕목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향하는 방향과 대상을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정당하다. 많이 배웠다. 그리고 3장 '검증된바 없는 유교이론'에서 다룬 내용은 그렇게도 이야기 해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게 하였다. 사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순서가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음을 물론이고, 왕도정치가 제대로 펴진 사례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것은 치치하고, 윗사람이 솔선수범을 하여 아랫사람을 교화시킨다라는 유교이론(???)은 소규모 친족집단에서나 가능할 일이지,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이루기 힘들다는 지적을 볼때 손뼉을 나도 모르게 치게 하였다. 나머지 장은 익히 접해온 내용이라 별 새롭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렇듯, 속으로 욕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조선의 남성양반들의 그 고상한 이면을 보면 욕지기가 나오게 된다.
물론 조선 500년, 그만큼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은 그 내재적 시스템의 힘이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내재적 시스템의 힘이라기 보다는 명-청이 존재했던 중화질서의 울타리에서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 의문은 조선에 대한 공부와 중화질서에 대한 공부(랄 것도 없지만)가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여하튼, 요즘에 들어서 선비에 대한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평가를 위해서는 한번 읽어 본느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저자의 말처럼 선비는 조선시대의 정치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한 원인이라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러한 선비'정신'을 받을 만한 것인지 개중에 받을만한 것이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어떻게 재해석을 해야할지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비를 조금 더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너무 과격한 면이 있어 적극 추천하기 저어하나]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