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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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 3부작이라는데 작가가 그렇게 기획한게 맞나?  일단 작가의 특성상 속도감 대략 3시간 정도만에 일독했다. 

일반적으로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는 아니지만,  사실상 심리적 속박의 형태로 외부와는 소통이 어렵다.  그렇지만 그 탓에 긴박감은 전혀 없다.  중반정도 되면 대략적으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감이 와서 힘이 빠졌다. 


마지막에도 신파도 아닌 것이 등장인물만 울고 있으니 난감했다. 이게 끝인가?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나 갈릴레오 시리즈 등 성공적으로 안착된 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참으로 힘빠지는 작품을 내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나의 소감이다.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담류는 아주 지겨워진 상태고,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나 갈릴레오 시리즈로 나온 작품 말고는 거의 대부분 읽는 작품마다 실망스럽다.  


워낙에 가볍게 읽기 좋은 작가라서 신작이 나왔다 하면 궁금해서 들춰보곤 하는데,  국내 출판사에서 주는 저작권료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이제 작가에 대한 신뢰는 상당부분 낮아 졌고, 대부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높은 가격 탓에 이제 몇번은 고민 해보고 사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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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망국의 정복자 01 - 마왕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것 같습니다 망국의 정복자 1
후데오르카 / 시프트노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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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트노벨류에서 흔히 보이는 이세계 전이물이다. 이렇게 흔한 이세계 전이물에는 주인공이 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인지에 대한 작품 내에서의 타당한 논리를 내지는 않는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세계로 전생 된 후에 살펴본 세계는 현재의 지구에 있는 대륙들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 세계에서 통용된 과학법칙이 어느정도 이세계에도 통용되는 듯 하다. 전이된 이세계에서는 이전 세계에서 만큼 과학적 법칙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며, 이전 세계에서 30대였던 주인공이 그 지식을 활용하여 어느정도 득을 보는 상황이 그려진다. 그리고 가문의 당주직을 둘러싼 음모에서는 약간은 노련한 모습도 보이는데, 단순히 전 세계에서 주인공이 30대의 성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책략을 짜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거기다 인물과의 대화에서는 어색함이 내내 풍긴다.


세계관은 그렇게 탄탄한 느낌은 들지 않지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은 되는 듯하다. 그리고 일본작품에서 괴상할 정도로 발견되는 성의식의 표현방식이 불편하다. 또 불편한 점이라는 학부형이라는 역어다. 역자의 정보가 없어 나이를 모르겠으나, 학부형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건지 모르겠다. 난 상당히 어색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국민학교때 이후로는 그러한 단어를 듣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런저런 단점을 열거하였으나,  킬링용으로 즐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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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생각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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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다. 물론 주장하는 바는 기독교라는 종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최근 몇년 전부터는 모든 종교를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로 대별하여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안다.  대별하는 기준은 기복을 비는 행위로 믿거나,  해당 종교의 정경을 문자주의 적으로 믿으며 행동하는 것을 표층종교라 하였으며, 심층종교는 그런 문자주의적인 이해를 넘어 변화(transformation)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인 상식선에 맞지 않는 종교인들을 제외하고 그들의 교리를 상세히 보다 보면 결국에는 그너머에서 추구하는 상이 유사하다는 것에서는 동의 할 수 있다. 


처음 80여페이지까지는 기독교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난 기독교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책에서 짚은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러한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효도를 안한다고 벌을 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현실에서도 그러한 아버지가 있을 수 있으며 말한 효도가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벌을 내리는. 신을 나는 상정할 수 없다.  그렇게 편협한 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권역에서 일하는 상인들에게 보호를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저자는 이러한 점을 눈치 채고 어릴 적부터 문자주의적 이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데  저런 식의 믿음을 가지고 전도랍시고 시도를 하는 교인들은 어떤 이들이란 말인가.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적은 글들을 모아 낸 책이라 한다. 눈여겨볼만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종교라는 관심사에서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없는 점도 있으며, 공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은 만큼 신변잡기의 내용도 좀 있으며,  종교인(종교학자도 종교인이라 치는가?) 특유의 착한 헛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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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사행으로 본 동아시아 국제관계 동북아역사 자료총서 116
윤유숙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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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머리말에 “‘전통시대에 사행 혹은 사신은 특정 권력 혹은 국가 간의 관계설정을 물론 그 관계를 가시적으로 수행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사행은 충돌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교섭, 무역, 의례수행, 문화 교류와 전파, 사람의 이주등을 동반하는 행위이므로, 국제 사회에서 국가 간 혹은 국가와 지역 권련간 관계의 유형과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가 사행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라고 하며 책의 주요한 의의를 설명한다.  한명의 저자로 이루어 진 것인 저와 같은 의의로 7개의 논문이 구성되어 있다.   그때문에 완결성은 없으며, 편차가 좀 있다. 


책 중에서 흥미로운 논문은  첫번째 논문인 <고대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관계와 맹약 ‘조공-맹약‘체제의 가능성>이다. 시론격의 글이지만, 가장 흥미로웠다.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적 이론으로는 책봉체제론, 조공체제론이 있다.  이 둘은 어디까지나 중국 중심적이고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과 국가의 주체성이 그려지지 않는 다는 바핀이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주변국들 간의 관계는 그려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봉체제론과 조공체제론은 당대 동아시아내 역학 관계에 따라 실질과 형식에 많은 괴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 역시 바핀을 받고 있는 한 부분이다. 가령 책봉체제론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지역들(한국, 일본, 류큐, 베트남 등)은 상대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서북방의 지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책봉이라 하면 실질적으고 형싱적으로 할 것 없이 상하관계를 설정하는 것인데 서북강의 지역에는 거의 대등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당의 이세민은 중국의 황제로 오름과 동시에 유목민족의 맹주의 호칭이 ’천가한‘를 칭호를 받았다. 이는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한 책봉체제론 또는 조공체제론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하겠다. 

이런 점을 들어 저자는 조공-맹약체제론을 주장한다.  시론적인 성격의 글인 만큼 서북방의 유목민족과 중국의 관계,  한반도 내에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관계, 한반도와 일본 과의 관계등에서 조공-맹약의 예를 찾아 나열한다. 거기서 하나의 특징점을 도출하는데, 맹약의 경우 ’제도화된 관계를 맺지 않으나 양자의 화호를 도모하고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맹약은 서로간의 우위를 획정 짓고 복속의 형태인 조공이 있기도 하였다.  조공-맹약체제론이 완전히 책봉체제론/조공체제론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보완적인 형태로 설명이 가능 할 것 같다. 중국과 서북방 지역의 관계가 그러하며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시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두 번째 논문인 <청말 중국의 베트남 사태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마찬가지다. 간략하게 흥미롸웠던 지점이라 하면  그들의 조공관계에 있는 이들을 울타리라 칭하고 중국이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 선에서만 간섭을 했다는 점이다.  만약 프랑스가 하노이 남쪽만을 세력권으로 만들고 활동 했다면 청나라는 여전히 무심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목표가 단순히 베트남만이 아님을 알았을때 그들은 행동에 나섰다. 임진전쟁때의. 명일간의 강화시도 역시 그러한 사고방식이다. 

전역의 맹약을 다룬 세 번째 논문은 전연의 맹약에 대한 사건의 개요를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그것뿐이지 굳이 하나 글을 더 얹을 필요가 있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구명되지 않느 사실이 있었나? 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전연의 맹약에서 어떤 점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뚜렷하게 알수가 없었다.  주장의 대체는 끄덕일 수 있긴 한데 그래서 어떤식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는 다는 것인지?  그 지점에서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네 번째 논문인 <16세기 후반 조일관계와 대일사행>은 그냥 논문을 쓰기 위해 쓰여진 논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마지막 일곱번째 논문인 <18세기 후반 쓰시마 간사재판의 조선행 겅토>의 경우 내 관심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지엽적인 부분이 있어서 흥미가 다소 떨어졌다. 

다섯번째 논문, 여섯번째 논문의 조선대의 중국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다섯 번째 논문인 <조선 사신의 명 북경;관광‘,. 외교적 의미와 관광소회>가 제법 흥미로웠다.  중국의 사행을 관광의 측면에서 바라본 내용이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섯 번째 논문인 ㅡ<“중화는 소중화와 다르다” 황재의 연행록에 나타난 18세기 중반 중화인식의 단면>은 영조대에 사신으로 간 황재의 연행록을 통하여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화인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웠다.  뭐 흥미와 동시에 이 멍청한 미친놈들을 봤나 싶은 생각을 하며 이들과 현대인인 나와의 간극이 이만큼 큼을 느끼기도 하였고....  일이십년간에도 큰 간극을 느끼는데 하물며 기백년이면...

전반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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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 하늘 아래 세상, 하늘이 내린 왕조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단죠 히로시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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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대한민국을 비롯한 인접국에는 크게 좋은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서남공정, 서북공정등을 통해서 정치적 안정성을 얻고자 하여 인접국에 크게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는 실제적인 영토분쟁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몽’과 ‘일대일로’라는 거대한 그들의 꿈은 마치 전근대 시절 구가하던 중국의 영토내에 명멸해갔던 왕조들이 지녔던 위치를 되찾으려는 듯 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태도는 예전의 화이관/중화사상에서 기인한 바가 있다고 하여.  고대 주나라부터 생겨난 회이관/중화사상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 보고 있다.


 우선, 그 시작은 주나라 시절  분봉을 받은 제후국들 사이에서 언어와 습속이 비슷한 이들이 서로를 하나의 동류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이적으로 생각하는 분리의식이 생겨나면서이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분리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분리 의식은 상대방을 승냥이로 묘사하여 경멸하는 차별의식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차별하는 그들은 우월감에 가득차 있었다.  여기서 화와 이의 차이는 민족적,지역적 차이는 물론이고 문화적 차이를 포함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진/한이라는 최초의 중화제국이 탄생하면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게임의 룰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천하라는 세계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다스리며,  천자는 천명을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천자는 위로는 하늘을 받들며, 아래로는 만인을 다스린다.  천자에게 천명이 내려간 것은 오로지 그에게 덕이 있기 때문이며,  천자는 덕화에 힘써야 한다. 만약 그러한 덕이 사라진다면 하늘은 천명을 새로 내려 천자를 갈아치울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가탁한 여러 왕조의 개창자들이 주장했던 바이다. 


 이 게임의 룰이 얼마나 강고하였는지 ‘한’의 멸망 이후에 오호가 중원 지역이 들어와 왕조를 개창하였을때는 이런 화이관을 강하게 의식하여 스스로를 헌원씨의 후예라고 하거나,  비록 오랑캐의 지역에서 연원하나 천명이 주어지는 전제조건인 ‘덕화‘를 펴기 위한 정치를 하며, 중화의 문화를 체득하였으니  비로소 ’화‘가 되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것은 정복왕조인 요,금, 원,청의 지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강한 콤플렉스만이 아니라 한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정당화 작업이기도 했다.  


이런 화이관은 시대젹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였다.  대원에 이어 등장한  대명의 주원장은 ’그들(원)이 쫒겨난 것은 그들의 덕을 잃었기에‘그렇다는 주장을 하였다.  단순히 민족적/지역적 차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든 것이다.  당시 나라의 인적구성이 다민족이 잡거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화이관에 기초한  중화사상은 정치적 정당화에 중요한 핵심요소 였으며, 인접국가들의 지배층의 정치적 정당화에도 원용되었다.  중원에 있던 왕조의 천자에게 책봉을 받으면서 정치적 권위를 얻음과 동시에. 자신이 천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대내적으로 알리고자 하였다. 


그것의 방법으로는 주로 자신에게 내조해오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덕화를 증명했다. 가령 명나라의 자체의 정당성 확보는 물론이고 비상식적인 자신의 즉위의 정당화가 필요 했던 영락제 주체가 정화함대를 보내 수 많은 입공국을 만들었던 이유이며,  조선의 세조가 자신의 대에 이르러 대거 여진의 내조를 받은 것도(변경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함도 있었으나) 자신의 비상식적인 즉위가 천명에 따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저자는 중국몽이나 일대일로, 남중국해 등에서의 영토분쟁이  자신들의 천하관에서 정화 함대를 보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하였던 예전의 중화제국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예전과 달리 순탄할리는 없다. 일단 예전과 달리 게임의 룰이 달라졌으며,  경제적/군사적 우월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어떠한 문화적인 우월을 엿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적의 군주가 중원을 점령하면서 느겼던 열등감을 현재의 우리와 주변국들이 느낄리는 없다. 


 중국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사상의 역사적 궤적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는 이들을 하나의 용광로에 넣어 중화민족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그 때문에 작위적이고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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