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일주일 남짓 남은 것 같다 주변도 한 해를 마무리 한다고 부산을 떤다. 거기다 문서를 정리하는 작업도 슬슬 시작하다보면 정말 한해가 지나가는 구나 실감을 하게 된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아야 할 시간이 된것 같다.  

  

  우선, 독서기록 면에서는 다소 부족했다. 최근 3년간 기록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즐길거리(그래보았자 게임, 드라마 시청 정도다)가 생겨서 독서에 소흘히 한 면이 있었다.  80여권 안되는 것 같다. 독서를 많이 못한다면, 왜 그런지 과제가 있는데 안한 느낌이 들어서 죄책감이 든다. 거기에는 책은 한 가득 구입하면서 읽기 속도를 그에 미치지 못한 다는 것도 포함 되어 있을 것 같다. 

 

2019년 초반에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세계의 미세세계로 내려가 보았다.  어렵지만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벌써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독서가 치열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초반에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이라면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다. 내년에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불교 서적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권 읽었다.  <장자>를 읽고자 하였지만 결국은 올해는 못 잡고 지나가게 되었다.  대신에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를 읽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조금 기여를 받았던 것 같다.  남들에게 이야기 하기에는 개똥철학이라 창피하나.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로 삶과,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 책들로 읽기 위해 탑을 쌓아놓았으나, 음....


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생물과 무생물사이>라는 책에서는 생명을 동적인 평형상태로 있는 흐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지금의 모습이 바뀌지 않은 것 같으나, 세포단위에서는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다.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나라는 존재도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하루하루 바뀌고자 한다. 물론 안되는 건 안된다고 인정하면서. 

 

굳이 안되는 걸 스트레스 받아할 일도 아니더라. 


갑자기 출간된 김용의 <소오강호>도 그냥저냥 읽었다. 생각보다는 재미없었다.  이후 <천룡팔부>와 <녹정기>를 출간할 계획이라 하여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연말에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도 나와서 구입했다. 조만간 읽을 것인데, 어떨지는 모르겠다.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올해에는 특정분야를 집중적으로는 읽지 못한 것 같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  


지금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을 읽고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중간까지 읽은 채 읽는 둥 마는 둥하고 있다. 동력이 안 생겨서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를 들고 읽으면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병자호란을 무조건적인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현실적 외교(이미 홍타이지는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완성 시키기 위하여 어찌하던 전쟁을 일으킬 것이었다.)를 도외시 한 것에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계획과 의지는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던 물적토대를 강조한 것은 유사하다.  인조와 그 외 지배층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분명히 명시하나 변호하는 형태다. 


 그러나 이미 홍타이지에게 외교적 빌미를 준 것 역시 실수이다.  광해군대에 이어 인조대 초반만 해도 적이 바로 서울로 직진해서 올라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방비는 보이지 않았단 점에서도 실수이다.


 당시 민을 개돼지로 보았던들 결국 그들이 있기에 조선이란 나라가 유지할 수 있었다.  전쟁이란 야만의 상태로 떨어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인데, 중화(명)냐 중화가 아니냐(청). 를 문명과 야만으로 이분하여 그(청태종)의 요구를 야만의 상태로 가는 것이라 생각한 조선의 양반들은 어떤 자들인가.  전쟁이야말로 사람 잡아 먹는 야만인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한다면(나라보다 중화가 우선), 난 문명을 버리겠다. 사람 잡아 먹는 문명은 필요 없다.


<7년전쟁>이란 역사소설에서 작가는  서두에 이런말을 적어 놓았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아무리 참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던 들 인조를 포함한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무능한 통치자다. 


내년도에는 올해 하반기에 읽었던  중국의 역사(청나라 부터)를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진화학, 인류학, 세계사를 다룬 책들도 여러 권 쌓여 있는데 집중적으로 읽으려고 하고.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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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조선과 중화>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이되는 것처럼 “여말선초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중화세계관이 그린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연구물이다.  옮고 그르고, 좋고 나쁨을 따지기 보다는 궤적을 그리는 것이 주 목적이라 한다.  현재 2부 1장까지 읽었다.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읽혀서 즐겁다.  예전에는 조선지식인들이 가지는 중화적 세계관에 혐오감마저 느꼈는데,  지금은 많이 그러한 경향을 벗어났다. 그렇게 형성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에 집중하는데 관심이 간다.

요즘 들어서 이러한 묵직한 연구물을 보면 심리적 안정감을 줘서 좋다.  송곳처럼 찌르는 것보다는 하나씩 쌓아 가며 묵직하게 한방을 날리는 책들.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알아 먹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중화세계관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역시 더 관심있는 것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세계질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국의 왕조를 중심으로 돌아간 세계질서를 설명하는 이론들에 관심. 혹은 그 안에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사실들.  뭐 그런...  몇권은 구입해두었다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정리했는데 절판.품절이 되어 버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기증을 한 뒤 나중에 다시 기증 한 곳에 가서 사서 읽어야 겠다... 라는 계획은 불미스러운 일로 망해버리고 말았다...). 중고로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지.   <중국과 주변>은 정말 구하기가 어렵다.  한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어느새 팔리고... 그 지역으로 사러 갈까 했는데.  부산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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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움베르트 에코 할아버지의 <제0호>를 읽고 있다. 막바지라 벌써 다음에 뭘 읽을까 하고 있다. 

그나저나 에코 할아버지의 소설은 <장미의 이름>때문에 계속 읽는것 같다.  재미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묘한 상황에서도 잘 읽게 되는 뭐 그런 이상한 경우랄까.  그런데 그것도 마지막이다.  <바우돌리노>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제0호의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생긴 아이디어로 쓴 작품이 <바우돌리노>라고. 

<제0호>는 소설적 재미는 크게 없지만,  언론에서 꼼수를 쓰는 것들이 나오니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어떤 주장에 대하여 방어를 하고자 할때, 그 주장의 내용의 신빙성을 따지기 보다는 그 주장을 발화 하는 발화자의 신뢰도를 떨어지게 하면 그만이니. 이런 수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음으로 <프라하의 묘지>를 읽을까 했는데 그 정도 까지는 탄력을 받지는 않아서,  이성시 교수의 <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를 읽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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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종의 기원> 역본이 나온다. 차이나는 클라스에 장대인 교수가 나왔길래 뭔가 나왔나 싶었더니만.  이전에 한길사판으로 나온 <종의 기원>을 읽긴 했는데, 새로 구입해서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인간의 유래도 나올까?... 인간의 유래 역시 한길사판으로 가지고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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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이전부터 읽고 싶어 구입해두었다가 근래에서야 읽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를 많이 인용하고 있지만, 저자는 교환양식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이 다르다.  교환양식을 A,B,C,D로 나누어 보고 있다.


 교환양식 A는 호수성, 증여등의 원리를 말한다. 이 부분에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많이 인용하는데, 포틀래치등의 의례가 계급분화를 사실상 막고 있는 상태다.  저자는 교환양식 네가지가 사회구성체의 주요 원리가 되어 가는 과정보다 밴드 사회에서 교환양식A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교환양식A가 주된 원리가 되더라도 다른 교환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신석기 혁명에 우선하여 정주혁명을 강조하는 것도 새로웠다. 산업혁명도 산언혁명의 주요한 아이디어가 국가와 세계시장의 선택을 받아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괘나 거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장이 주장을 낳는 느낌이 강하긴 해도 흥미롭긴 하다. 


교환양식 B의 경우 약탈과 재분배, 이 부분에서 강신주의 노자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 저자가 직접 이야기를 한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폄훼하기 위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분도 괘나 적이 많은 듯해서.  교환양식 B가 사회구성체의 주된 원리인 사회는 황제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전제국가를 말한다. B가 주된 원리가 된 계기는 정복 혹은 특정 공동체의 지속적인 바상사태로 온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공포'가 정복된 혹은 비상사태 내에 있는 구성원을 지배해서는 안되며, 그것을 잊게 만들어야 한다.  빼앗기 위하여 준다. 이 개념을 일종의 '복지국가'의 개념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다.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지만 개념상으로는. 이건 아마 저자의 독창적인 사고는 아니고 인용을 하였던 것 같다. 


교환양식 C는 우리가 익숙한 상품교환의 원리. 이 양식이 주된 원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제국이 없었던 자리에서 가능했다. 교환양식 D는 업그레이드 된 교환양식 A라고 하는데 보편종교를 예로 들고 있는 것 같다. 거기까지는 읽지 못하여 아직 모르겠다. 이사준비다 뭐다 해서 집중이 안되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 계속 읽어서 나중에 재독할 생각이다. 


<다윈 지능>은 어제 책 정리에서 잠시 잡았다가 읽게 되었다. ㅋ 2009년도에 다윈 200주년을 기념하여 이런저런 기획을 했던 과정에서 내용을 묶은 것이다. 몇 가지 생각해둘 점은 저자의 입장에서 진화의 요인을 돌연변이로만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돌연변이도 중요하지만 돌연변이를 일어나기에는, 더군다나 긍정적인 방향의 돌연변이는 일어나기는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보다는 유전자의 섞임이 중요하다가도 말한다.  금발의 아이를 만나고 싶다면 금발을 가진 백인 남성과 여성과 결혼하는게 답이란 것이다. 근데 그렇게 강조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유전적 부동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사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기억해 두고 찾아보면 될 것 같다. 


짤막한 내용으로 나뉘어져 있어 어렵지는 않다. 익숙한 내용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굴드를 싫어하는 것도 그의 글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굴드의 진화에 대한 견해 중 실수를 한게 있다고 하는 평을 많이 보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굴드가 진화론에 대한 견해 중 단속평형설을 말하는 것 같다. 굴드가 그에 대해 방어를 하면서 했던 말인 것 같은데, 그 발언을 예로 들어 저자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견해는 굴드와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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