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구입했던 책인데, 어제 저녁에 <대한민국 독서사>를 다 읽고 다른 책을 읽으려나 눈에 띄어 먼저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이런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세계사적으로 말이라는 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에 서점에 마실 나갔다 구입했다. 


 아직 책 내용이 좋고 나쁨을 따질 정도는 아닌게 겨우 몇 페이지 넘겼을 뿐인데.... 거의 한,두페이지에 걸쳐서 어색한 문장에 눈에 보인다. 역자가 옮긴 다른 책의 리뷰를 보니 그런 점을 지적하는 글이 보였다. 


 그런 탓에 재미가 좀... 없네. -.-... 그냥 넘어가면서 읽을 수 있는 수준인지는 조금 더 읽어봐야 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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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9-06-0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팔았다.
 

  














  어제부터 <팩트풀니스>를 읽고 있다.  역자는 사실충실성이라 번역하는 모양이다. 부제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책과 저자가 개진하는 기본 취지는 생각보다 세상은 아름다워다. '...그런데 이 무지몽매한 것들은 그런 사실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야? 그럼 내가 더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소개해주지.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란다.'


아직 1장만 읽고 있는 중이지만 짜증이 너무 난다. 위와 같은 저자의 태도에. 


저자는 순수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세상이 진보했음을 그 긍정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지 모른다. 그런데 그 통계란게 정말 '진실'을 담보하고 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뒤에는 추천인들이 있는데 스티븐 핑커도 보인다. 그도 최근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최근에 폭력이 감소하고 있음을 들어 우리 세상은 생각보다 좋아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데 알라디너 곰곰님이 그 책의 리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통계 이면에는 또 다른 사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이 아름다워졌으니 뭐? 이제 좀 놓아두어도 좋지 않을까?...  보통은 이렇게 더 많이 흘러 갈 것 같다. 


추천인 중 빌 게이츠가 보인다. 정몽규 회장이 신입사원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이쯤 되면 의심스럽지 않나? 음모론자라고 하여도 더 할말은 없다


 사실대로 보아도 진실은 바로 눈에 잡히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도 그 통계적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읽으려는데... 휴... 저자의 이런 태도가 자꾸 눈에 거슬리니 어쩐담.-.-;;; 그냥 그런 우월감에 가득찬 저자의 서술은 빼버리고 더 담백하게 소개한다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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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에 <백제정치사연구>를 읽고 소장하고 싶어서 중고로 이리저리 알아 보던 중에 작년에서야 겨우 구했는데 얼마전에 그의 개정판이 거의 30년만에 <백제정치사>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몇년 전에 정년퇴임을 한 직후라 새로 개정판이 나올 것은 짐작을 못했는데 기쁜 마음이면서도 작년에 구판을 구하려고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책은 구판의 출간이후  연구결과를 반영하여 대폭 개정이 된 것 같다.  어제 구입을 해서 오늘 쯤에는 도착할 것으로 알았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못 받을 듯. 받자마자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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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에 의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세계이든 세계의 실상은 공-가-중이므로 이 같이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다. '공'을 떠나 '가'와 '중'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와 '중' 또한 그러하다. 앞서 말하였듯이 3제는 하나의 실상을 세가지 마음에 이미 세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차별의 현실은 본질적으로 공으로서 무차별[不二, 즉 中]이지만, 이 삼자는 혼연의 일체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완정한 이상적 형태로 여긴다. 이 때 일심동체란 어떠한 경지의 세계를 말함인가?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는 각기 독린된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갖는 것인가?..... 즉 남편과 아내가 본질적으로 둘이 아님[空]은 영원한 진실이지만 그것은 현실의 차별[假]을 떠나 수립되는 진실이 아니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함은 아마도 둘이 아니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둘이 아닌 상태[中]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말을 능숙하게 타는 이를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는 어떤 자인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은 말을 부리는 자이며, 말은 이에 따라 달리는 동물이라는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空觀]. 그렇다고 이것이 말타기를 그만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고 말과 하나가 되었을 때 바야흐로 기수와 말은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말은 바르게 달리고기 수는 교모하게 몬다[假觀]. 이때 주객분별을 버렸으므로 말과 기수는 둘이 아니지만 각기 서로의 활동을 다하기 때문에 둘이다[空假相卽의 中觀] (p.360)



 아비달마논사들의 입장은 자아는 없으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구성요소[法]는 실재한다는 아공법유를, 대승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다만 가설적 상태일뿐이라는 아공법공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차이를 종합하려는 것이  천태 지의대사였다. 위의 인용한 것은 지금 읽고 있는 11장 천태의 내용이다.


 누군가는 대승이 부파불교(아비달마)가 오염시킨 불교를 다시 근본불교로 되둘렸다고 판단하며 초기경전으로 대승경전을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보겠지만 언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아비달마가 그냥 설명만 듣는 것으로도 너무 복잡하다는 건 알지만 대승의 중관과 유식도 그에 못지 않다. 양극단을 배제하는 것이[不二] 곧 중[中]라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 또한 극단이 아닌가 싶기도. 


무아,윤희,업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했던 초기불교의 소박함이 더 좋으며, 대승이 내놓은 이야기 보다는 아비달마가 전반적으로 맞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견해가 생겼다.  단순히 입문서를 보고 생긴 견해이므로 언제라도 수정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지만. 


쉬는 주말이라 어제까지 '2부 인도불교'편까지만 읽고 챙겨둔 다른 소설책을 잠사 읽으려고 했는데 계속 잡힌다. 11장만 마무리 하고 보고 싶은 소설을 집었다가 다음주에 이 책은 일독을 마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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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도 빠르게 읽는 편도 아니고(그렇다고 곱씹어 읽는 스타일도 아니다.) 책 자체도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 거의 책의 1/2정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비달마를 다루는 장까지 다 읽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부파불교'를 소승이라 폄하 하던)대승의 입장에서 아비달마를 보게 되어 아무래도 크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였다. 


책의 저자가 아비달마불교를 연구하기도 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쓰여 졌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토록 그들의 이론이 번잡한 듯 해버렸는지에 대한 배경은 이해가 되었다. 성문승인 그들은 스승의 부재로 인하여 그동안 스승이 설하였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설법이라 하여 그동안 스승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교설을 다르게 남겼으니 스승이

살아계실 적에는 부동의 표준이 되어 물어볼수나 있었지만 열반이 든 이후로는 그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야 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스승도 오로지 법과 자신에 의지하라 하지 않았던가. 


근데 좀 복잡하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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