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생각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다. 물론 주장하는 바는 기독교라는 종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최근 몇년 전부터는 모든 종교를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로 대별하여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안다.  대별하는 기준은 기복을 비는 행위로 믿거나,  해당 종교의 정경을 문자주의 적으로 믿으며 행동하는 것을 표층종교라 하였으며, 심층종교는 그런 문자주의적인 이해를 넘어 변화(transformation)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인 상식선에 맞지 않는 종교인들을 제외하고 그들의 교리를 상세히 보다 보면 결국에는 그너머에서 추구하는 상이 유사하다는 것에서는 동의 할 수 있다. 


처음 80여페이지까지는 기독교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난 기독교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책에서 짚은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러한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효도를 안한다고 벌을 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현실에서도 그러한 아버지가 있을 수 있으며 말한 효도가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벌을 내리는. 신을 나는 상정할 수 없다.  그렇게 편협한 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권역에서 일하는 상인들에게 보호를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저자는 이러한 점을 눈치 채고 어릴 적부터 문자주의적 이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데  저런 식의 믿음을 가지고 전도랍시고 시도를 하는 교인들은 어떤 이들이란 말인가.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적은 글들을 모아 낸 책이라 한다. 눈여겨볼만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종교라는 관심사에서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없는 점도 있으며, 공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은 만큼 신변잡기의 내용도 좀 있으며,  종교인(종교학자도 종교인이라 치는가?) 특유의 착한 헛소리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통시대 사행으로 본 동아시아 국제관계 동북아역사 자료총서 116
윤유숙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머리말에 “‘전통시대에 사행 혹은 사신은 특정 권력 혹은 국가 간의 관계설정을 물론 그 관계를 가시적으로 수행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사행은 충돌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교섭, 무역, 의례수행, 문화 교류와 전파, 사람의 이주등을 동반하는 행위이므로, 국제 사회에서 국가 간 혹은 국가와 지역 권련간 관계의 유형과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가 사행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라고 하며 책의 주요한 의의를 설명한다.  한명의 저자로 이루어 진 것인 저와 같은 의의로 7개의 논문이 구성되어 있다.   그때문에 완결성은 없으며, 편차가 좀 있다. 


책 중에서 흥미로운 논문은  첫번째 논문인 <고대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관계와 맹약 ‘조공-맹약‘체제의 가능성>이다. 시론격의 글이지만, 가장 흥미로웠다.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적 이론으로는 책봉체제론, 조공체제론이 있다.  이 둘은 어디까지나 중국 중심적이고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과 국가의 주체성이 그려지지 않는 다는 바핀이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주변국들 간의 관계는 그려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봉체제론과 조공체제론은 당대 동아시아내 역학 관계에 따라 실질과 형식에 많은 괴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 역시 바핀을 받고 있는 한 부분이다. 가령 책봉체제론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지역들(한국, 일본, 류큐, 베트남 등)은 상대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서북방의 지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책봉이라 하면 실질적으고 형싱적으로 할 것 없이 상하관계를 설정하는 것인데 서북강의 지역에는 거의 대등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당의 이세민은 중국의 황제로 오름과 동시에 유목민족의 맹주의 호칭이 ’천가한‘를 칭호를 받았다. 이는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한 책봉체제론 또는 조공체제론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하겠다. 

이런 점을 들어 저자는 조공-맹약체제론을 주장한다.  시론적인 성격의 글인 만큼 서북방의 유목민족과 중국의 관계,  한반도 내에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관계, 한반도와 일본 과의 관계등에서 조공-맹약의 예를 찾아 나열한다. 거기서 하나의 특징점을 도출하는데, 맹약의 경우 ’제도화된 관계를 맺지 않으나 양자의 화호를 도모하고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맹약은 서로간의 우위를 획정 짓고 복속의 형태인 조공이 있기도 하였다.  조공-맹약체제론이 완전히 책봉체제론/조공체제론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보완적인 형태로 설명이 가능 할 것 같다. 중국과 서북방 지역의 관계가 그러하며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시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두 번째 논문인 <청말 중국의 베트남 사태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마찬가지다. 간략하게 흥미롸웠던 지점이라 하면  그들의 조공관계에 있는 이들을 울타리라 칭하고 중국이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 선에서만 간섭을 했다는 점이다.  만약 프랑스가 하노이 남쪽만을 세력권으로 만들고 활동 했다면 청나라는 여전히 무심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목표가 단순히 베트남만이 아님을 알았을때 그들은 행동에 나섰다. 임진전쟁때의. 명일간의 강화시도 역시 그러한 사고방식이다. 

전역의 맹약을 다룬 세 번째 논문은 전연의 맹약에 대한 사건의 개요를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그것뿐이지 굳이 하나 글을 더 얹을 필요가 있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구명되지 않느 사실이 있었나? 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전연의 맹약에서 어떤 점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뚜렷하게 알수가 없었다.  주장의 대체는 끄덕일 수 있긴 한데 그래서 어떤식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는 다는 것인지?  그 지점에서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네 번째 논문인 <16세기 후반 조일관계와 대일사행>은 그냥 논문을 쓰기 위해 쓰여진 논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마지막 일곱번째 논문인 <18세기 후반 쓰시마 간사재판의 조선행 겅토>의 경우 내 관심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지엽적인 부분이 있어서 흥미가 다소 떨어졌다. 

다섯번째 논문, 여섯번째 논문의 조선대의 중국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다섯 번째 논문인 <조선 사신의 명 북경;관광‘,. 외교적 의미와 관광소회>가 제법 흥미로웠다.  중국의 사행을 관광의 측면에서 바라본 내용이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섯 번째 논문인 ㅡ<“중화는 소중화와 다르다” 황재의 연행록에 나타난 18세기 중반 중화인식의 단면>은 영조대에 사신으로 간 황재의 연행록을 통하여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화인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웠다.  뭐 흥미와 동시에 이 멍청한 미친놈들을 봤나 싶은 생각을 하며 이들과 현대인인 나와의 간극이 이만큼 큼을 느끼기도 하였고....  일이십년간에도 큰 간극을 느끼는데 하물며 기백년이면...

전반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진 못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 하늘 아래 세상, 하늘이 내린 왕조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단죠 히로시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대한민국을 비롯한 인접국에는 크게 좋은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서남공정, 서북공정등을 통해서 정치적 안정성을 얻고자 하여 인접국에 크게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는 실제적인 영토분쟁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몽’과 ‘일대일로’라는 거대한 그들의 꿈은 마치 전근대 시절 구가하던 중국의 영토내에 명멸해갔던 왕조들이 지녔던 위치를 되찾으려는 듯 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태도는 예전의 화이관/중화사상에서 기인한 바가 있다고 하여.  고대 주나라부터 생겨난 회이관/중화사상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 보고 있다.


 우선, 그 시작은 주나라 시절  분봉을 받은 제후국들 사이에서 언어와 습속이 비슷한 이들이 서로를 하나의 동류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이적으로 생각하는 분리의식이 생겨나면서이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분리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분리 의식은 상대방을 승냥이로 묘사하여 경멸하는 차별의식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차별하는 그들은 우월감에 가득차 있었다.  여기서 화와 이의 차이는 민족적,지역적 차이는 물론이고 문화적 차이를 포함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진/한이라는 최초의 중화제국이 탄생하면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게임의 룰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천하라는 세계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다스리며,  천자는 천명을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천자는 위로는 하늘을 받들며, 아래로는 만인을 다스린다.  천자에게 천명이 내려간 것은 오로지 그에게 덕이 있기 때문이며,  천자는 덕화에 힘써야 한다. 만약 그러한 덕이 사라진다면 하늘은 천명을 새로 내려 천자를 갈아치울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가탁한 여러 왕조의 개창자들이 주장했던 바이다. 


 이 게임의 룰이 얼마나 강고하였는지 ‘한’의 멸망 이후에 오호가 중원 지역이 들어와 왕조를 개창하였을때는 이런 화이관을 강하게 의식하여 스스로를 헌원씨의 후예라고 하거나,  비록 오랑캐의 지역에서 연원하나 천명이 주어지는 전제조건인 ‘덕화‘를 펴기 위한 정치를 하며, 중화의 문화를 체득하였으니  비로소 ’화‘가 되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것은 정복왕조인 요,금, 원,청의 지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강한 콤플렉스만이 아니라 한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정당화 작업이기도 했다.  


이런 화이관은 시대젹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였다.  대원에 이어 등장한  대명의 주원장은 ’그들(원)이 쫒겨난 것은 그들의 덕을 잃었기에‘그렇다는 주장을 하였다.  단순히 민족적/지역적 차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든 것이다.  당시 나라의 인적구성이 다민족이 잡거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화이관에 기초한  중화사상은 정치적 정당화에 중요한 핵심요소 였으며, 인접국가들의 지배층의 정치적 정당화에도 원용되었다.  중원에 있던 왕조의 천자에게 책봉을 받으면서 정치적 권위를 얻음과 동시에. 자신이 천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대내적으로 알리고자 하였다. 


그것의 방법으로는 주로 자신에게 내조해오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덕화를 증명했다. 가령 명나라의 자체의 정당성 확보는 물론이고 비상식적인 자신의 즉위의 정당화가 필요 했던 영락제 주체가 정화함대를 보내 수 많은 입공국을 만들었던 이유이며,  조선의 세조가 자신의 대에 이르러 대거 여진의 내조를 받은 것도(변경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함도 있었으나) 자신의 비상식적인 즉위가 천명에 따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저자는 중국몽이나 일대일로, 남중국해 등에서의 영토분쟁이  자신들의 천하관에서 정화 함대를 보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하였던 예전의 중화제국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예전과 달리 순탄할리는 없다. 일단 예전과 달리 게임의 룰이 달라졌으며,  경제적/군사적 우월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어떠한 문화적인 우월을 엿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적의 군주가 중원을 점령하면서 느겼던 열등감을 현재의 우리와 주변국들이 느낄리는 없다. 


 중국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사상의 역사적 궤적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는 이들을 하나의 용광로에 넣어 중화민족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그 때문에 작위적이고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분 과학 -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꿀잼 과학 이야기
이재범 지음, 최준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4개의 주제를 웹툰으로 재미있게 풀어 내고 있다. 너무 단순화해서 설명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쉽게 전달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근래에 과학서적을 읽어서 그렇게 낯선 주제는 없지만, 이 책에서 정리하면서 도움을 받은 면은 좀 있다.  


 두번째로 다루고 있는 ‘운동’에서  멍게를 예로 드는데 유생일때는 헤엄쳐 다니다  어느정도 커니면 바위에 정착하여 살게 되는데, 이때는 멍게는 자신의 뇌를 먹어 버린다.  즉 움직일 필요가 없자 많은 운영하는데 많은 품이 드는 뇌를 먹어 치운 것이다. 그리고 코알라의 경우 두개골의 크기에 비해 뇌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60%가 뇌가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40%는 뇌척수액이 있다고 한다.)

 이 예가 말해주는 것은 뇌는 우리가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보다 직접적인 생존의 위기가 있었을 시절에는 어떤 지점에서 거대한 육식동물이 자주 다니는지 어디에서 딸기가 나는지  잘 살펴야 했다.  어떻게 움직여야 생존에 도움이 될지 살펴야 했고 그러기에 많은 품이 드는 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운동을 너무 과소평가(운동=다이어트)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여러 편리한 기기 탓에 움직이는 활동이 확연하게 줄어 들고 있는데,  최근 치매 인구 증가율이 11.7퍼센트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연과지으며 운동이 단순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를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렇듯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알고 있는 사실(멍게의 예 등)을 생각못하고 있던 사실과 연관지어 새로운 진실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재미가 있었다. 

인상 깊은 주제를 고르라면 위에 언급한 ’운동‘과 함께 우유, 야옹, 커피 등이다.  우유가 생각보단 위험할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어서  자주 마시는 라떼도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우유를 꾸준히 마셨을때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 피곤함을 덜 느끼는 이유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피곤함을 느끼게 하는 기제가 몸을 많이 움직일때 생기는 아데노신이 아데노신의 수용체와 결합되는 것이데, 커피의 카페인이 아데노신과 비슷하게 생겨 대신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하면서 피곤함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카페인으로 인해 갈 곳 없어진 아데노신을 수용하기 위해 아데노신 수용체가 더 많이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은 카페인이 필요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한 팁으로 여기선 커피냅(커피+낮잠) 이야기 한다.  카페인이 우리 몸에 들어 와서 효과가 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0분 가량인데, 일단 커피를 마시고 20분간 낮잠을 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피로를 해소하여 아데노신의 수치도 낮아진다. 그러는 사이에 낮잠 전에 마신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를 찾아간다. 그런식으로 몸을 속여 카페인을 늘리게 되는 악순환 대신에 피곤함을 해소 할 수 있느 팁도 알려 준다. 실현가능한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에 적용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사실이다. 

굳이... 구입할 필요는 있나 싶고 근처 도서관을 이용하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책을 읽고 리뷰를 써본다. 가면 갈 수록 시간은 없어진다. 실질적으로 마음을 독서에 쓸 수 있는 시간.  심지어 이런 장르소설을 읽는데도 쓸 힘이 없다.  


 이 작품의 작가는 나와는 영 타율이 안 맞는 작가였다. 처음에 <작자미상>이란 책으로 인상 깊게 접했으나 그 이후로 접한 이 작가의 작품은 나와는 영 안 맞았다. 기본적으로 호러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탓도 크긴 했다. 그러다가 간만에 만난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당대 지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자신의 조국이 말한 이상과 실제는 다르며,  여러가지 전쟁의 참상으로 방황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시대의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탄광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 탄광촌에서 탄광부로 일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부터 당대의 사회상이 담겨져 있다.  뒤에 참고문헌을 보니 많은 공부를 한듯 보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에 주인공이 개입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게 주된 뼈대긴 하지만 탄광촌에서 흔히 믿는 미신적 요소가 첨가되면서 호러적 분위기도 당연히 감돈다.   거기다 사건의 전개에는 당대 조선과 일본의 폭력적 관계에서 비롯된 사회적 요소들도 더해져 있다.  추리소설로서는 아쉽고 호러적인 측면은 내가 안 질리고 볼만한 수준.  일단 이야기라는 측면에선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일반 일본인이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다루거나 하면 찝찝한데    주인공이가 주인공 근처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이에 대해서 단순 동정적인 차원은 넘은 인식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다. 


후속작도 번역되어 나와 있어 구입은 해 뒀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