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얼마나 기이한 존재인지를 내게 알려준 책은, 1993년에 처음 번역·소개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교양을 키우려는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가난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주식투자를 해보려고 했다. 우선 서점에 갔다. 처음에는 주식투자에 관한 실무적인 내용의 책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 지닌 나는 나도 모르게 투자에 관한 지혜나 철학이 담긴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바로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이라는 책이었다. 책의 저자는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인간과 세상을 보는 넓고 깊은 시각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토록 근본을 중요시 하다니! 저자는 내가 감동한 순간을 놓치치 않고 곧바로 과학, 인문학, 심리학, 문학 등의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책의 끝에 추천 도서 목록이 있었다. 그래서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 지닌 나는 권장 도서를 읽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를 읽었다.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음으로 골라 읽은 책이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당시 읽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안겨 준 책이었다.




지금은 너무 알려진 책이 되어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읽을 무렵에는, 뇌과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지도 않았고 신경학과 심리학을 연결한 이론은 (나 같은) 무외한에게 생소하기만 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음악적인 재능도 놀라운 어느 지식인 남자가 뇌의 이상으로 사람들의 얼굴과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올리버 색스와 상담을 마친 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를 진짜 “모자”로 착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모자를 쓰려고...(책 제목을 일종의 비유로 믿다가, 말 그대로 진짜 사람인 아내를 진짜 모자로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선 잠시 말을 잃었다.)


책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임상 기록, 다양한 병리학적인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영화 메멘토에서와 같이 기억을 상실한 환자, 신체의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 갑자기 색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 환자 등등 기이한 사례들을 읽으며, 우리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의문에 빠지기도 했다. 환자에 대한 임상 기록이라 하여 전문용어와 딱딱한 기록체 문장의 책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올리버 색스의 위대함은 문학인이 아니면서도 큰 감동을 주는 문장을 쓸 줄 안다는 점이다. 이 점 역시 당시의 내게는 충격이었다. (환자를 환자로만 관찰한 게 아니라 자신과 다름 없는 소중한 하나의 생명으로 대한다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나중에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바빠서) 뇌과학에 관한 책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0년 전 즈음 노먼 도이지의 <기적을 부르는 뇌>를 읽곤 다시 감동받았다. 뇌의 적응력을 의미하는 "뇌가소성"에 관한 여러 사례를 접하고, 다시 한번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요즘도 이 책을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읽는다. 뇌졸중과 자폐, 뇌성마비 등 불치의 뇌 질환을 스스로 치유하는 기적적인 사례들이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뇌 질환을 앓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나쁜 습관이나 여러 불필요한 중독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일상에서 활력을 잃고 매너리즘에 젖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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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교양 과학의 세계를 권장했던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은 분실했다. 누군가 빌려 간 것 같은데,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새롭게 다른 제목을 달고 재출간되었다. 주식투자는 여전히 못 하고 있다. 그 당시, 나 대신 아내가 투자를 했다. 책을-멀리-하자-철학의 대표주자인 아내는 어느날 과감하게 20~30만 원을 동원하여 어느 주식을 4주 매입했다. 그 뒤 세월이 흘렀다. 그때 그 주식이 크게 올라 얼마 전에 액면 분할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주식 4개가 지금 200주가 되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라던가 암튼 뭐라고 하던데…. 하하. 지혜와 성공의 길라잡이 같은 건 전혀 참조하지 않고도, 아내는 높은 수익률을 낸 셈이다.


나는? 나는 그 뒤로 암흑물질이나 양자 요동 같은 근원적이고 우주적인 고민에 빠져 지내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하다. 부자 아내와 사는 게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아내가 잔소리할 때, 아내가 '고공행진하는 주식'이라고 믿으며, 가능하면 이런 착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


검색해 보니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은 제목을 바꿔서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으로 재출간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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