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고리(Allegory)는 그리스어 ‘다른(allos)’과 ‘말하기(agoreuo)’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알레고리아(allegoria)’의 영어 식 표현이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수사법의 하나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이를 구체화할 만한 적합한 대상이나 상황을 대신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초기 교회 신학에서 이렇게 플라톤주의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이 접근법이 낳은 한 가지 분명한 결과는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진리가 역사 속에서 나타났다고 보았지만, 대다수 그리스 지성들은 진리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데아) 속에서 나타났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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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속분서續焚書』「성교소인聖敎小引」 : 이지李贄, 1527-1602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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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맨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불가피하게 쓰고 있는 페르소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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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가 가끔, 아니 때때로 있지.

이 전문가들을 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의 교수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각자 애지중지하는 이론이 하나씩 있었고, 그들은 그 이론에 들어맞도록 연구 결과를 왜곡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한층 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서 배울 것은 여전히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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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우상

손봉호가 교회의 타락으로 여기는 핵심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회의, 교회에 의한, 교회를 위한’ 기독교라고나 할까? 바로 여기에서 기독교가 변질되고 타락하기 시작한다는 게 손봉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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