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반의 당구 지만지 고전선집 478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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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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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뵐의 소설은 대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병정들의 허무한 죽음과 전장에서의 생활,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한 도시의 폐허상태와 굶주림, 인간관계의 실종 및 소외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같은 옐로우 페이퍼에 대한 간접적이며 흥미로운 작품도 있지만 대개 전쟁과 폐허로 규정하는 것이 보통인 거 같다. <9시 반의 당구>는 이색적이다. 전쟁 전과 후를 다루고 있으나 뵐의 전작들에서 볼 수 있는 황폐와 폐허와 간난과 고통과 이별 같은 것은 없다.

  독일은 패전 후 나치 잔당을 싸그리 숙청하고 오랜 기간 독일과 나치가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는 진정성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런 장면은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가 1970년 12월에 폴란드 봉기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은 정치적 장면, 그리고 독일의 정보국이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 정보국에 의한 나치 전범의 추적을 사람들이 혼동한 때문이기도 하다. 전후에 나치에 부역한 사람들을 전부 숙청해버리면 가뜩이나 전쟁 그리고 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부족한 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권인 공권력을 채우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인리히 뵐 같은 골수 나치 청산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사회 곳곳에 과거 나치 집단의 일원이었던 자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일정부분 그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 그들의 생각과 행위에 동조하던 사람들은, 나치에 의하여 탄압받던 피해자들인 유대인, 유색인, 공산주의자, 반정부인사, 집시, 그리고 많은 수이었지만 내놓고 말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자들에 비해 월등한 사회적 권위와 폭력을 대동한 힘, 그리고 압도적 분위기를 지녔을 것이다. 거대 전쟁을 준비하던 독일의 경우라면 더욱. 하인리히 뵐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인들을 크게 양과 물소의 그룹으로 나눈다. 양은 말 그대로 죄도 없고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그럴 힘도 없는 존재. 목자가 있어 풀밭에 방목하고 늑대와 다른 야수만 막아주면 아무 탈 없이 젖과 털을 제공하는 인간형이다. 물소는 역시 생긴 것처럼 무게있고, 근엄하고, 점잖고, 예의바르고, 명예와 성실과 규율과 질서를 숭배하지만 반면에 어리석고 야만적인 힘을 거칠게 과시하는 측면이 있는 인간형이다. 당연히 물소형 인간은 1차 세계대전 당시엔 빌헬름 2세, 간전기엔 나치를 추종하던 인물로, 특히 간전기 내내 유대인,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반정부주의자로 구성하는 양의 집단을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린치를 가하거나, 세월이 더 심각해지자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이르렀다가, 패전 후엔 곧바로 변신하여 가장 정의롭고 명예로운 공직자의 모습으로 표변해버린다. 양의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동안 물소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맞으며 산 자들만 살아남았어도 전쟁이 끝나 극적 전환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양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 <9시 반의 당구>의 주인공 로베르트 페멜 박사 같은 사람의 역할은 양을 돌보는 목자이다. 이이는 젊은 시절이었을 때부터 크리켓을 선수 수준으로 잘 했다. 1935년 7월 14일은 토요일이었다. 교외의 풀밭에는 루트비히 고등학교와 오토 고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모여 체육교사 벤 바케스가 심판을 보는 결승전을 치루고 있었다. 크리켓 공은 야구공만큼 딱딱하다. 맞으면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시합 도중 슈렐라, 라고 하는 양이 있어서 상대방의 물소 네틀링거는 경기와 관계없이 슈렐라의 몸을 향해 강하게 공을 던져 얼굴에 멍이 들고 피가 나게 했으며 콩팥 부근에 심한 타박상을 입게 만들었다. 슈렐라가 더 이상 루(베이스)에 있으면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한 로베르트 페멜은 공은 저 멀리 풀밭 깊은 곳까지 쳐서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물소의 폭력은 이런 식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나치의 광기가 한계를 넘어가면 네틀링거는 철조망으로 만든 채찍으로 슈렐라의 등을 때려 등판엔 철조망의 가시에 박혀 촘촘하게 딱지가 앉아버렸고, 부르주아 건축가의 아들 로베르트 페멜도 이제는 더 이상 예외일 수 없었다.


  로베르트의 아버지 하인리히 페멜 박사는 건축가이다. 하인리히가 이 도시로 오게 된 것은 반백 년도 전에 도시의 동굴에 있던 무너진 수도원을 건설하기 위한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페멜 박사는 도착하자마자 카페 크로너에 가서 “고추치즈”를 주문했다. 고추치즈? 어떤 것을 말하는 지 몰라 웨이터가 묻자, 고추를 하나 잘게 썰어 치즈와 함께 구운 것이라 대답했고, 페멜 박사는 이후 한 번도 빼지 않고 매일 고추 치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주 나중에 알려지지만 사실 페멜 박사가 고추 치즈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의 하나였을 뿐. 페멜 박사는 결국 공모전에 당선을 해 사실상 건축가로 첫번째 건축을 하게 되는데, 이게 독일의 문화재 급 명소 가운데 하나로 인정을 받아 젊은 페멜은 한 순간에 명예와 명성을 떨치고, 귀족 출신 부르주아의 딸 요하나와 결혼까지 한다. 하인리히 페멜은 결코 물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도 아니었고. 그는 적당한 선에서 물소들과 타협한 채 세상일을 다음으로 하고 건축에 온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반면에 아내 요하나는 적극적인 목자 타입의 여성. 요하나의 적극적인 반 물소 행위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어처구니없게 요하나는 정신병원인 덴클링겐 요양소에 오래 갇혀 있다.

  아버지 하인리히는 건축가. 아들 로베르트 페멜은 정역학자. 정역학靜力學. 정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 어떻게 하면 에펠 탑이 태풍이 부는 데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삼풍백화점은 옥상에 과다한 무게의 수조가 있었다고 해도 왜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버렸을까? 이런 것을 연구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밀집한 도심의 낡은 건물을 주변 환경에 아주 작은 영향만 주면서 철거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변주할 수도 있다. 건축학하고 매우 비슷하면서도 반대이기도 하다. 하인리히는 세상을 살면서 1894년 누이 샤를로테를 묻고, 1909년 딸 (아내와 같은 이름의)요하나를 묻고, 1919년 아들(자신과 이름이 같은) 하인리히를 묻고, 1942년에는 아들 오토의 사망통지를 받는다. 오토 역시 대단한 물소였으나, 하여간 자신의 자식 셋이 물소의 제단에서 스러져갔다. 그러고 나서야 세상에서 물소의 존재를 인식한 하인리히. 반면 로베르트는 청소년 시절부터 반골인 엄마를 탁해서 그러했는지 적극적 양의 목자로 나섰다. 이제 1958년 9월 6일, 아버지 하인리히의 여든 번째 생일날까지 그는 오전에 사무실에 들러 딱 한 시간만 일하겠다는 원칙을 세워왔다. 한 시간이 넘게 필요한 주문이 들어오면 “안타깝지만 업무량 폭주로 귀하의 소중한 주문을 단념합니다.”라는 회신을 보낼 정도다. 이후 정리를 하고 프리츠 하인리히 호텔에 가서 9시 반부터 11시까지 당구를 친다. 당구실의 보이 후고는 페멜 박사가 준 붉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내 딸과 아들 그리고 슈렐라 씨와 연락이 언제나 가능함. 그 외에는 아무도 연결시키지 말 것.” 이제 고위 경찰로 근무하는 왕년의 큰 물소 네틀링거조차 이 시간에 로베르트를 만날 수는 없다. 이후 정오까지 카페 존스에서 차를 마시고, 12시부터 산책을 한 후 1시에 딸과 뢰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이후 집에 칩거한다.

  로베르트 페멜. 두 자녀가 있으며 아들 요제프는 스물두 살의 건축가로 독립해 산다. 1917~18년생. 그러면 2차 세계대전에 복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 역시 독일 공병대 장교로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 중에 공병대가 하는 건 주로 폭파임무였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1945년이 오고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러 로베르트는 장군과 함께 이 도시까지 후퇴하게 됐다. 이때 장군으로부터 놀라운 명령을 전해 듣는다. 아버지 하인리히 페멜 박사가 건축한 동굴 수도원을 폭파하라는 것. 장군은 망설인다. 문화유적을 폭파해도 어차피 지는 전쟁은 지는 전쟁일 뿐. 미군의 주요 진행 방향도 아닌데 굳이 수도원을 파괴할 이유가 있을까? 장군은 번민하다가 공병 대위이며 수도원을 건설한 페멜 박사의 아들이기도 한 로베르트를 불러 상의한다. “수도원을 폭파하면 안 되겠지?”

  로베르트 페멜, 그의 대답은 안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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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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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언 매큐언을 읽으면서 실망해본 적이 없다. 근데 어째 읽게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암스테르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다른 유명 작가하고 이이를 혼동했던 거였다. 재미는 있지만 뭔가 불편한 작가, J.M. 쿳시. 두 양반의 공집합이 사실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헷갈렸던 거다. 아직도 J.M 쿳시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는데 엉뚱하게도 이언 매큐언의 책을 검색하면서 이이는 참 이상한 방식으로 불편해,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것 참. 뭐 세상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제 보니까 이이의 작품이 꽤나 많이 번역해 나와 있다. 헷갈리고 있는 동안 도대체 몇 권이나 놓친 건가. 그래도, 그럴 수 있지 뭐.


  작품은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서로가 친한 친구 사이이면서 시기를 달리해서 고 몰리 레인의 연인이기도 했던 작곡가 클라이브 린리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 클라이브는 1968년 둘 다 대학생일 때 처음 몰리를 만났다. 베일 오브 헬스의 어수선한 하숙집에서 함께 기거했는데, 영국식 하숙집은 각자의 방이 있고,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 식이다. 당시는 젊은 시절이었으니까 뭐 아무것도 몰랐을 때였고, 나중에, 한 십년 정도 더 지난 후에 몰리와 다시 잠깐 연애를 할 때는 몰리로부터 침대 위 사랑의 다양한 방법과 기교와 자세 같은 것을 감명 깊게 물려받은 추억이 있다. 물론 더 나이를 먹어서 둘 사이엔 섹스를 매개로 하는 감정 같은 건 사라지고 진짜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정만 남아 몰리는 작곡실에 와서 자신만의 의자에 앉아 고즈넉한 눈길로 클라이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전환시켜주는 순기능을 기꺼이 담당했다. 물론 자신이 새로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누구와, 진도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같은 것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주었다고 오해도 하고.

  버넌 핼리데이는 1974년에 첫 직장인 로이터 통신 파리 특파원으로 나가 있을 때 몰리도 <보그>지에서 이러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하고 있어서 1년 간 동거를 한 적 있다. 헤어지고 영국에 와서도, 서양 사람들이 자주 그러듯이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고 좋은 친구로 늙도록 가까이, 당연히 섹스리스로 지내고 있었다.


  근데 몰리가 어떻게 죽었을까? 아, 걱정 마시라.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나중에 책에 나오듯이 독을 탄 샴페인을 마시거나 그렇게 비명에 가지 않았다. 요즘 느와르 소설을 몇 개 읽다 보니 아휴,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뜬다니까. 런던 시내의 도체스터 그릴 레스토랑에서 밥 잘 먹고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드는 순간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찌르르 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불과 몇 주 사이에 사물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정당, 화학, 프로펠러” 같은 단어는 잊을 수 있다고 쳐도 “침대, 크림, 거울” 같은 생필품을 지칭하는 단어가 왔다 갔다 하면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 몰리는 대규모를 신체 전부를 정밀 검사 했음에도 그냥 병실의 수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남편 조지 레인은 돈만 많은 출판업자이다. 까탈이 심하고 병적으로 소유욕이 강한 남자이며 한 시절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틀어 몰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해 마지 않았다. 몰리는 조지를 홀대하면서도 부자와 사는 편리함 때문이었는지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심지어 몰리가 노골적으로 외도를 하고 다녀도 조지는 속수무책,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몰리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남은 것은 요양원으로 갔다가 그 요양원 지하의 영안실로 가면 끝나는 거였는데, 놀랍게도 조지는 요양원으로 보내는 대신 자신의 저택에서 자기가 직접 아내를 돌보겠다고 선언했다. 조지는 몰리가 이제 다 죽어가는데도 방문객을 철저하게 가려 받았고, 과거에 연인 사이였던 클라이브와 버넌, 그리고 현직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는 병문안 할 생각을 말아야 했다. 병이 들고서야 아내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된 조지는 은근히 만족하는 모습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는? 이 양반이 참 골치 아프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이심전심으로 가머니 장관이야말로 자신들의 공통적인 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지능이 대단히 높아서 불리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키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발력을 지녔다. 그러나 안타깝게 고루한 시선에 입각해 보자면 아쉬운 취향이 있었으니 바로 드레스스왑(이라고 칭할) 트랜스베스티즘(Drag Queen, trap). 쉬운 얘기로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 화장을 짙게 하고, 마치 남성을 유혹하는 듯한 자세와 표정을 짓기 좋아하는 것. 명색이 장관이라 고상한 취미를 과시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던 차에, (거의) 모든 일에 쿨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던 몰리는 가머니의 취향을 존중했고, 그래서 가머니는 몰리와의 만남을 통해 혼외정사나 애정문제로 복잡하게 얽는 게 아니라 드레스스왑을 하고 몰리와 피카디리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하는 정도였으며, 자신이 생각해 특별하게 드레스 스왑을 멋있게 한 기념으로 비록 흑백이지만 사진으로 여러 장 박아 놓았다. 당연히 이게 실수지. 가머니가 사진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겠어? 그러니 남편을 한 손아귀에 쥐고 사는 몰리가 보관을 했다가 졸지에 오늘 내일 하는 처지에 떨어졌고, 급기야 숟가락 놨으니 그게 이제 저 밴댕이 창아리 속을 가지고 있는 조지한데 가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내용을 모르고 그저 자기 아내와 바람 피운 남자들 명단 가운데 중요한 한 명으로 치부하면서. 그러니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줄리언 가머니는 죽은 목숨이다, 죽은 목숨. 물론 정치적으로 말해서.


  줄리언 가머니는 국무위원으로 20세기를 끝내는 마당에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영국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두 명, 클라이브 린리와 폴 매카트니 가운데 클라이브 쪽으로 손을 들어 그에게 <새 천년 교향곡>을 의뢰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밉더라도 하여간 클라이브가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어서.

  아직 세기가 끝나려면 몇 년이 남았는데도 벌써 올해 초연의 타임 라인이 나왔다. 클라이브는 벌써 두 번의 데드라인을 넘긴 상태. 마지막 4악장의 끝부분이 남았을 뿐인데 도무지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 개의 상이한 박자, 그러니까 템포 루바토를 포함한 경과구가 적절한 장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떤 멜로디일까 자신도 궁금할 지경이다. 그는 1970년대 이후에 무조음악, 우연성 음악, 음렬, 일렉트로닉스, 음조해체 같은 모더니즘 적인 것 대신 여전히 멜로디를 중시해 초보수주의, 퇴행으로까지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전문화되고, 고립되고 메말라가서 그 오만함 때문에 청중과 격리된 음악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특기인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날이면 날마다 밤을 지새우는 등 오래 고민하다가 예전처럼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산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힘들여 능선에 올라 마음을 비우면 곧잘 멜로디가 떠오르고는 했던 예전의 일을 기억했던 거였다. 그리하여 갔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기 시작해 한참을 가니 저 앞에 여성 혼자 산행 복장을 하고 능선을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가 보다. 클라이브도 힘을 다해 드디어 첫번째 정상에 오른 순간 쏟아지는 햇살처럼 4악장에 쓰일 적당한 멜로디가 번쩍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 이거야. 집중, 또 집중해 수첩을 꺼내고 급하게 오선을 그었으며 쉼없이 콩나물 대가리를 그리고 있는데 바로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들. 앞에서 가던 여성과 허름한 차림의 남성. 남자가 여자의 손을 나꿔챈 거 같기도 하고, 배낭을 빼앗아 연못에 던져버린 건 확실했다. 저 사람들의 일에 참견을 하면 멜로디는 분명히 날아가버리고 말 터. 그는 자리를 옮겨 마치 테이블처럼 평퍼짐한 바위 위에서 멜로디를 끝까지 스케치하고 산을 내려와, 이제 등산의 목적은 말끔히 달성을 했으니, 밤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산 위에서 그들의 일은 그들이 알아서 했겠지.

  <저지>지의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는 요즘 판매부수 감소로 죽을 맛이다. 이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어서 은근히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죽은 몰리의 남편 조지가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만나서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이니, 자기 집에 들러달란다. 조지는 <저지>지의 지분을 1.5퍼센트 정도 가지고 있는 지분이 그리 많지 않은 대주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그래 밤에 조지의 집에 가서, 슬쩍 몰리의 방도 들여다보고, 진로인지 화사인지 쐬주도 한잔하는 와중에 조지가 슬쩍 서류봉투 하나를 건넨다. 벌써 뭔지 아시겠지? 그렇다. 줄리언 가머니의 드레스 스왑 사진. 버넌이 생각하기에 이걸 신문에 내기만 하면 판매부수는 말할 것도 없이 대박 가운데 대박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시라. 현직 외무장관의 드레스 스왑이라니. 갑자기 테스토스테론과 안드로메다, 아니, 아드레날린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버넌은 너무 기분이 좋다.

  좀 이상하지? 클라이브와 버넌은 확실히 진보적 인물이다. 근데 클라이브는 산 속에서 불량한 것이 확실한 남자가 홀로 산에 오른 여성을 거칠게 대하는 걸 모른 척하고 내려왔고, 버넌은 이 시대에는 트랜스베스티즘이 개인의 기호에 불과한 것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취향이 대중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하여 황금주의에 경배하려 한다. 이들 사이가 어떻게 될까? 클라이브의 행위를 버넌은 이해할 수 없고, 버넌이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클라이브는 용인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될까? 어떻기는 뭐, 절친 사이가 쫑나는 것이지. 내가 만일 몰리처럼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게 되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암스테르담의 의사한테 데려다 주겠어? 약속해? 좋아, 내가 그런 상태가 된다면 너도 그렇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알았어. 이런 사이면 절친 가운데 절친이다. 하여간 이쯤에서 뭔가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거 같은데, 내가 아무리 다른 결말을 생각을 해봐도 이언 매큐언이 소설 속에서 끝맺은 결론보다는 덜 획기적일 것이니 구라는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그냥 읽어 보시라. 2백쪽을 겨우 넘기는 짧은 장편이라 부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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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3-01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이언 매큐언과 존 쿳시 외모가 좀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서 헷갈리신 게 아닌지요?
저는 매큐언의 소설 네 권 -속죄, 칠드런 액트, 넛셸, 체실 비치에서- 읽어봤는데, 다양한 소재로 무거운 주제의 글을 참 잘 쓴다 생각했어요.
<암스테르담>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4-03-01 18:36   좋아요 1 | URL
하여간 좀 헷갈리는 건 맞나요? ㅎㅎㅎ 엄한 사람이 쓴 걸 읽지 않았으니 웃기잖습니까? ㅎㅎㅎㅎ

페넬로페 2024-03-01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스테르담, 읽다가 멈춘 상태인데 완독해야겠어요.
저는 아직 존 쿳시를 읽어보지 않았는데 불편한 지점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Falstaff 2024-03-01 18:38   좋아요 2 | URL
이 작품이 마지막 반전이 죽여주더라고요. 이 양반 머리 속이 궁금해지더라니까요. ^^

그레이스 2024-03-01 2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짧은 스토리 안에 아주 충격적인 질문을 임팩트있게 던지죠. 제 경우엔 그랬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좀 소름돋았습니다.
이언 매큐언 소설에는 항상 반전이 있는듯요.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강했습니다.

Falstaff 2024-03-02 05:42   좋아요 2 | URL
역시 결말 부분에 많은 분들이 허걱, 하셨군요. ㅎㅎㅎ 당연히 저도 그랬습니다.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 위픽
정지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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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정지돈은 <모든 것은 영원했다> 책 한 권만 딱 읽었다. 이런 독자는 다음 작품을 고를 때 마음 속으로 전작과 비슷하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선택을 하기 십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개가실 신간 코너에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내 돈 내고는 절대 사 읽지 않을 위픽 시리즈에 정지돈 이름이 떠 있길래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얼른 골랐다. 설마 이 책도 어느 독자가 희망도서 신청해서 산 건 아니겠지? 본문이 3쪽에서 시작해 56쪽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다 합해 54페이지. 저번에도 위픽 시리즈 이야기할 때 말한 거 같은데 한 번 더 읊어보자면, 페이지도 같은 페이지가 아니라서 한 페이지에 열일곱 줄, 한 줄에 원고지로 치면 스물 다섯 칸 안쪽으로 널널하게, 몸집 작은 인간들은 글자들 사이에서 축구는 아니더라도 하프 코트 농구는 할 수 있을 정도의 편집이다. 판형이 작기도 해서. 이렇게 단편소설 딱 한 편 실어 정가 1만3천원, 10퍼센트 할인가 11,700원. 책 사서 읽는 분들 치질 생기겠다.

  말했다시피 나는 <모든 것은 영원했다> 스타일의 진지한 가상역사, 가상 인물 같은 걸 기대했다가 난데없이 또다시 느와르 장르를 읽게 된 거다. <크레파스> 읽고 데고 불과 며칠도 안 지나서 또다시 느와르를 읽어주려니까, 아이고, 이게 짧은 단편이라서 다행이지 진짜 골로 갈 뻔했다. 고 채영주의 <크레파스>는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정말로 발생 가능한 한국인과 흑인 커뮤니티 사이의 오해와 폭력, 두 집단의 사이를 이간시키는 백인의 협잡 같은 것이 뭐 그럴 듯도 했건만, 훨씬 더 짧은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은 그냥 만화, B급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디스토피아 itself이다. 주 무대 D시city는 누가 읽더라도 영화 <배트 맨> 시리즈의 무대 고담 시를 연상할 듯. 그러니까 밥먹듯이 강도, 살인, 납치, 사체유기 같은 흉악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D시 출신이 입사 면접이라도 보려고 하면 면접관들이 눈깔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 즉 면접관이 저 위진魏晉시대 때 죽림칠현의 한 명인 완적이 했던 백안시로 내리 보더란 거다. D시 출신이니 개차반일 거다, 라는 선입견에 입각해서 말이지.


  굳이 주인공을 한 명 꼽자면 “김지미”라는 이름의 젊지 않은 여성이다.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었다. 벌써 시대를 앞질러 가는 양반이라 물론 왕년의 은막스타 김지미를 염두에 두고 이름은 지었지만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그냥 “지미”라고 해라, 해서 김지미 역시 스스로를 “지미”입니다, 해버렸단다. 근데 이 이름도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이름 뒤에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접미사 “랄” 혹은 “럴”을 붙여보면 거참, 발음도 이쁘지, 지미랄, 지미럴. 게다가 바람직하지 못한 욕설 한 마디를 붙여도 입에 착착 달라붙으니, “지미 씨발”. 아, 취소, 취소. 점잖은 독후감에 이게 무슨. 그냥 이 정도로 하자. “지미 염병할.”

  지미는 스물한 살 때 원래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미용실의 도제 시스템이 영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감삼동의 빵집 아들과 연애를 시작했고, 이왕 연애하는 김에 빵집 2층에서 그집 아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원래는 빵을 먹기만 좋아했었으나 진짜로 만들어보니까 재미가 들렸다. 사내가 양 볼에 밀가루를 하얗게 뭍인 게 보기에도 예쁘고. 며칠이 지나 헤어숍 동기들이 모인다 해서 가서 수다를 떨다가, 오후 세시에 밤 페스트리가 나오는 시간을 맞춰 먼저 자리를 떴다. 그만큼 시댁인지 빵집인지, 아니면 남친 가게인지에서 만드는 밤 페스트리가 맛있었나보다. 그래서 허겁지겁 빵집으로 달려가보니 빵집 앞에는 단골 아저씨가 쓰러져 있고, 피가 흥건히 고여있는 카운터 뒤에는 사내의 엄마가 쓰러져 있었으며, 아버지는 주방 입구에 엎어져 있었다. 근데 사내가 없는 거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사내는 글쎄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총을 맞고 넘어져 있다. 다락엔 매그넘 권총이 있었거든.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창문 밖에는 범인들이 낄낄거리면서 짐을 챙겨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지미는 다락방에 올라가 얼른 매그넘 총알 여섯 발을 탄창에 재우고 계단을 뛰어내려가 두 명과 한 명으로 나뉜 강도들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어이”하고 불렀고, 놈이 이건 뭐야, 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냥 간단하게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남은 두 명을 잡기 위하여 거리로 돌아가보니 없다. 그래서 둘레둘레 쳐다보니 노란색 택시가 한 대 있고, 강도 두 명 가운데 하나가 택시 운전석에, 다른 한 명은 조수석에 앉아 아직 출발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릎엔 돈다발과 패물을 올려놓고 손에는 페이스트리와 크루아상을 씹어 먹고 있는 거였다. 지미가 터덜터덜 걸어가니 창문이 스르륵 내려졌고, 조수석 강도가 “뭔대?”하고 묻는 순간 지미는 곧바로 총을 꺼내 역시 망설이지 않고,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두 강도들에게 난사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봐야 이제 총알은 다섯 발 남았지만. 지미는 곧바로 돌아와서 이 와중에, 업장과 다락 입구엔 남친과 남친의 부모의 시체가 놓여 있는 그대로 먼저 샤워부터 하고 총과 피 묻은 옷을 숨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밤 페이스트리를 먹고 있는데 도착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경찰이 지미에게 묻는다. “거기 앉아서 뭘 했죠?” 대답을 하길, “밤 페이스트리를 먹었지. 3시에 빵이 나오거든.”


  이건 지미가 스물한 살 때 이야기고, 따라서 책의 제일 앞부분에 소개하는 에피소드이다. 이제 시간이 흘렀든지, 아니면 또다른 지미가 있든지, 그것도 아니면 사설 경호업체의 나이든 여성 사장의 이름을 그냥 편의상 지미라고 했든지, 그건 뭐 중요하지 않고, 하여간 의뢰비가 무지하게 비싼 경호업체, 그러나 사실은 사적 복수를 전담해주는 일로 명성을 쌓아가는 “네이버후드 워치”의 대표는 중년사내의 방문, 그리고 스물네 살 먹은 딸을 찾아달라는, 이미 죽었으면 복수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스물한 살의 지미하고, 네이버후드 워치의 사장 지미 사이엔 작가 ‘융’이라는 남자가 한 명 등장하는데, 마른 호수를 메우고 위에 건물을 지으려 할 때 호수 표면에서 무수하게 많은 유골이 발견되었고, 이 가운데 융의 어머니 유골이 있어서, 여태까지는 엄마가 아빠와 자신을 버린 채 도망한 줄 알았었지만 이제 새삼스레 엄마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걸 소설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도 생긴다.

  어떠셔? 배트 맨의 고담시에서 벌어지는 일들하고 매우 비슷하지 않나?

  나는 이런 정지돈을 기대하지 않았었거든. 또 이렇게 얇은 책과 비싼 단가의 책을 사고 싶은 마음도 없고. 다행이지 뭐야. 작품이라도 마음에 들었으면 마음 한 구석에 이걸 사야했었나, 괜히 쓸데없이 뇌활동 할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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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9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1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6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4-02-29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4쪽에….13,000원이요?! 아무리 종잇값이 올랐어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양심없네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2-29 15:48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를 직접 사서 읽을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너무 심했어요.

stella.K 2024-02-29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유, 지미랄 책값 오지게 비쌉니다. ㅎㅎ
그렇죠. 이름은 무조건 잘 짓고 봐야합니다. ㅋ
옛날 갱지같은 삼중당문고도 좋으니 책값이나 싸면 좋겠습니다.
저도 정지돈은 별론데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더라구요.

Falstaff 2024-02-29 15:49   좋아요 1 | URL
아이고, 삼중당 문고는 학창 시절에 보석 같았지요. 말 함 뭐합니까. ㅎㅎㅎ
 
잘못된 만찬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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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만찬>을 이해하기 위하여 알바니아 역사를 대강 훑어볼 필요가 있다. 알바니아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이탈리아-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알바니아, 3국왕정시대라고 일컫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시기와 겹친다. 알바니아 청년들은 이탈리아 군의 일원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1943년에 이탈리아가 항복하는 순간, 같은 파시즘 국가라도 형님 뻘인 독일은 한때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 병사들을 탈영병으로 간주해 즉결처분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알바니아도 엉겁결에 독일과 동맹국이었다가 이제 적대국으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1943년 9월, 이미 그리스 지역까지 내려갔던 독일군은 북상하는 길에 저절로 알바니아에 입성하면서 알바니아에 괴뢰정부를 수립하지만 겨우 1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작품의 무대는 알바니아의 두번째 도시이자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지로카스트라 시.

  독일군은 지로카스트라에 들어오기 전에 비행기를 날려 다량의 삐라를 살포한다. 독일어와 알바니아어로 쓰인 삐라에는 요약해서 “독일은 알바니아에 적대감이 없고 이탈리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주려는 것뿐이다, 코소보와 차머리아까지의 영토를 포함해 독립을 보장한다. 또한 알바니아가 독일군의 진행방향에 있어서 그냥 길을 빌릴 뿐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지로카스트라 시민들은 독일군을 환영하는 무리(코소보하고 차머리아까지 보장한다잖아?)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무리로 나뉘었다. 전자는 민족주의자와 왕정주의자이고 후자는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해 지로카스트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지로카스트라는 도시와 꽤 냉랭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드넓은 광야에 둘러싸인, 일종의 적대적 고립상태에 놓였다. 남쪽의 그리스 소수민족 부락과의 사이에 있는 라자라트 마을은 앙심과 고집스러움을 가진 사람들이 지로카스트라에 대한 원망과 원한에 싸여 살고 있었다. 또 룬저리아 촌락은 작은 양초로 가득한 교회와 유난히 상냥한 여자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지만 여자들이 차츰차츰 실종되고, 실종된 여자들은 지로카스트라의 집에서 날마다 죽어간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아니면 행복한 귀부인이 됐을까, 하는 의문들이.

  이런 시절의 지로카스트라에는 두 명의 훌륭한 외과의사가 있었는데 우연히 이름이 두 명 다 구라메토 박사였다. 그래서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대大구라메토, 젊은 사람은 소小구라메토라고 불렸다. 이 가운데 대구라메토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카다레 선생이 노름빚으로 빼앗긴 저택을 병원으로 개조하여 그곳에서 외과와 산부인과 전공의를 하고 있다. 대구라메토는 1만5천회, 소구라메토는 9천회 정도의 수술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당연히 적지 않은 환자가 수술 도중에, 수술 후에 죽기도 했다.

  독일에 의한 알바니아 정부 수립은 1943년 9월 8일. 지로카스트라에 오토바이를 탄 독일군 척후병/전위대가 등장한 건 1943년 9월 16일. 이들이 도시에 처음 들어온 순간, 도심의 한 건물에서 총알이 날아들어 척후병 한 명의 고개가 뒤로 휙 꺾어지고 만다. 즉사해버린 것. 독일군 입장에서는 입성 전에 미리 삐라를 통해 의도를 알렸고, 척후병 역시 별다른 보호대책 없는 무방비 상태로 진입했음에도 시민들의 총에 맞아 한 명이 죽은,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시민들 역시 이것은 분명히 단순한 복병이 저지른 우발적 사고에 불과하지만 배신행위임이 틀림없다는 걸 인식하고 전부 집안으로 잠적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독일군이 보복을 시작했다. 폭파. 거대한 석조 저택들, 귀부인들의 거처. 그들의 집, 집문서, 수없이 많은 드레스와 꽃신 같은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고 알바니아 인들이 용기를 잃지는 않았지만 무참한 폭격을 당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수치심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이 직접 당해보니, 이 불행은 여자들만의 징벌을 닮았다는 점에서 본질이 전혀 달라 보였다. 독일의 무력은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리아를 덮치고, 쑤셔넣고, 순결을 빼았고, 밑을 찢어버렸다. 모든 게 여자들에게만 적용되어 왔던 것을 그토록 사내답게 산다고 자부하던 이 도시가 고스란히 당한 거였다. 그러다가 누군가 지붕 위에서 하얀 천을 휘날렸고, 포격을 일시에 중단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은 궁금했으며 단순화시켰고, 자기들 편한대로 합리화했다. 누가 항복했나? 아니다. 아무도 아니다. 그저 열린 창문에 흰 커튼이 바람에 날려 그것이 독일군 눈에 띄었을 뿐이다.

  드디어 독일 탱크를 앞세워 그들의 진주가 시작됐다.  이 틈에 끼어 장갑차에서 내린 독일군 지휘관. 철십자훈장을 단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 곧바로 그는 자신의 대학동창, 제일 친한 친구, 형제보다 나은 친구인 그라메토 그라스, 바로시가街 22, 지로카스트라, 알바니아에 사는 대그라메토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슈바베 대령은 대구라메토에게 독일의 맥주집에서 열광적으로 이야기하던 알바니아의 두카지니 관습법과 ‘베사(신의)’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대구라메토는 즉각 대령과 장교 일부를 자신의 집에, 오늘 저녁 만찬에 초대하고, 대령은 이를 수락한다. 이윽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자 대령은 샴페인 한 상자와 함께 대구라메토 집을 방문했고, 구라메토 박사는 베사의 관습대로 창문을 다 열어놓은 채 브람스의 <릴리 마릴린>을 큰 볼륨으로 틀어놓는다.

  독일이 손님으로 온다고 미리 알렸어. 알바니아는 총을 쐈지. 알바니아는 베사를 베풀지 않았어. 열 집 가운데 한 명씩, 모두 스물네 명의 남자를 인질로 잡아 놓았어.

  정말로 인질들은 처형을 위하여 테펠레나 골짜기에서 몰아치는 매운 바람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지로카스트리 시민들의 눈에는 활짝 불이 켜진 대구라메토 박사의 응접실 창문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큰 소리의 축음기 음악소리가 들린다. 시민들은 대구라메토 박사를 배신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죽음을 기다리는데 음악과 만찬이라니.

  구라메토 박사는 오늘의 만찬 때문에 온 도시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도 배신자로 여기고 배신자로 기억될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만찬이 계속되던 한 순간, 구라메토 박사는 슈바베 대령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인질들을 풀어줘, 프리츠!” “리베라 온시데스!”

  대경실색을 하는 대령. “네가 감히 내게 명령을 해? 그걸 감히 라틴어로 반복해? 구라메토, 너 정말 미쳤구나! 네가 황폐해진 유럽의 친구만 아니었어도 아 자리의 사람들은 모조리 끝장났을 거야.”

  슈바베 대령은 그러나 일곱 명의 인질은 내주겠다고 한다. 현장에서 일곱 명의 인질이 풀려나는 걸 본 시민들. 그들은 또다시 궁금해진다. “독일군들은 이 인질 석방의 대가로 무엇을 받았을까?”

  대령은 무엇을 받기 원했다. 암살범들. 이름을 대라고 요구한다. 박사는 모른다고, 이곳에선 별명으로만 부르는데 그것도 모른다고 뻗댄다. 범인들의 별명만 알 수 있다고 한 대구라메토의 행위는 배신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천년간 토론을 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구라메토 지지자들은 열광적이다. 대구라메토는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인질해방자이다. 이렇게 쉽게 인질을 풀어주는 걸 보면 만찬장에서 구라메토 박사를 총독에 임명한다는 소식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면서. 그러나 문제는 인질 속에 끼어 있던 유대인 야코엘. 알바니아에서도 유대인 문제만큼은 민족주의자, 왕정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의 의견이 일치된다. 당연히 돌볼 이유가 없는 민족이라고. 그러나 박사는 슈바베 대령에게 유대인은 이 도시의 손님으로 온 자이니 두카지니 관습법과 베사에 의거해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게 가능한가? 나치 군대의 총책임자 대령이라고 하더라도 만찬 자리에 게슈타포 장교가 있는 곳에서? 새벽 닭 울음이 들리는 시간, 프란츠 폰 슈바베 대령은 인질을 전원 석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유대인을 포함해.

  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구라메토 박사의 아름다운 딸이 음료를 들고 나타나 걸어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한 잔씩 권하다. 대령에게, 게슈타포 장교에게,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그리고 남편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에게. 그들이 거침없이 한 잔 쭉 들이키는 걸 본 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잠에 빠져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어 만찬장에 나와 보니까. 회식자들 모두 쓰러져 있었다. 딸은 혼자 살아남아 독살의 범인으로 몰릴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졌고.


  이게 다냐고? 천만의 말씀을. 잘못된 만찬을 벌인 비극적 결과는 안타깝게도 11년 후인 1954년에 벌어지고 만다. 이때가 대구라메토 선생이 수술 1만5천회, 소구라메토 선생이 9천회의 시점이다.

  무지 재미있다. 이스마일 카다레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썼는지 처음 알았다. 언제나 은근히 무게를 잡는 작가인 줄 알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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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28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된 작품이 꽤 있네요.
뭔가 집에 있을것 같은데,,, 찾아봐야겠어요 ^^

Falstaff 2024-02-28 16:44   좋아요 1 | URL
옙.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이... <죽은 군대의 장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아가멤논의 딸>고요, 틀림없이 그레이스 님 댁에 몇 권 있을 듯하네요 ^^

그레이스 2024-02-28 16:45   좋아요 1 | URL
일단 부서진 사월이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얄라알라 2024-02-2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도부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삭매냐님 폴스타프님 서재 올 때마다 그 생각 자주해요 ㅎ(역사 꽝, 지리꽝인 저)
줄거리를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셔도 알바니아, 이탈리아, 독일, 지도로 그림도 안 그려져요. 알바니어는 어떤 언어를 쓰나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구라메토˝는 일본이름처럼 들리기도 해서요. 과연 그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 폴스타프님께서 독자를 끌어가시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

Falstaff 2024-03-01 06: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바니아는 자기들 고유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라서 저도 카다레 말고는 비제의 오페라 <이반 4세>에 주인공 마리에를 노래한 소프라노 인바 물라 밖에 모른답니다.
독일의 알바니아 점령이 곧 끝나거든요. 구라메토 선생이 인질 석방을 위해 어떤 일을 했건 간에 독일 대령에게 만찬을 베푼 건 사실이고.... 대령도 유대인을 석방하라 명령했을 때 옆에 게슈타포 장교가 배석했던 것도 사실이고.... 뭐 그렇습니다. ^^;;

얄라알라 2024-03-0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알바니아어!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ChatGPT님께 물어보니 세르비아어, 이태리어 등을 유창히 구사하는 국민도 많다네요^^ 감사합니다 폴스타프님^^ 행복한 3/1절 되세요. 제가 앉아있는 카페 맞은편으로 태극기 2개가 휘날립니다
 
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 16세기의 격동하는 삶과 죽음, 명예와 수치
조엘 해링톤 지음, 이지안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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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조엘 해링톤은 미국 출신 사학자로 1700년 이전 독일의 사회적, 법적, 종교적 주제에 대하여 연구하며 1989년부터 밴더빌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해링턴은 30년 전쟁 이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수)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뉘른베르크에 주목했을 것이며, 연구를 하던 중 프란츠 슈미트라고 하는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 일기 기록을 열람할 기회를 가져 당연히 대단한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뉘른베르크는 수공업 길드 이외에도 법과 질서의 요새라고 칭송받는 자유제국도시여서 다른 도시에 비하여 활발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형집행인. 흔히 망나니라고 불리는 직업의 사나이를 작가는 마이스터 프란츠, 마이스터 슈미트 등으로 칭하면서 엄연히 긴 도제생활을 거친 사형집행의 장인으로 깍듯하게 올려 불렀지만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름 높은 뉘른베르크의 수공업 길드가 사형집행을 길드로 편입시키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집행인들도 피집행자들에게 실수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고통을 극소화 하는 것이 일종의 직업윤리였더라도 극도의 혐오직업인 사형집행인을 길드는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아는 상식과 달리 뉘른베르크의 길드는 피혁, 무두장이, 신기료, 도살업 같은 직업도 길드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해링톤은 두어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와 노래로 한 시절을 풍미한 뉘른베르크 길드의 우두머리 한스 작스가 직업이 신기료인 것에 대해서는 슬쩍 모른 척해버린다. 나는 한스 작스는 바그너가 작곡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주인공으로 독일 이야기책에 나오거나 바그너가 창작한 인물인 줄로만 알았다가, 이번에 책을 통해서 실존 인물이며, 가장 유명한 뉘른베르크 길드 조합의 대표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럼 베크메서 씨도 실존인물이었을까?

  프란츠 슈미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하인리히 슈미트 씨를 따라다니면서 사형집행과 고문, 사체의 처리 같은 일을 오래 배운 후에 비교적 젊은 나이로 정식 사형집행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 하인리히 슈미트 씨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1553년 가을. 하인리히 슈미트 씨는 지금 지도상 체코 국경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에른 주 남서쪽에 있는 호프 시의 나무꾼이자 새사냥꾼으로 평화롭고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호프 시는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의 영토였다. 변경백邊境伯이란 국경지역의 방어를 위한 지역으로 봉건영주의 권한이 일반 영주보다 폭넓은 군사력과 행정권을 가지고 있었다(p.49 각주). 이곳의 젊은 제후가 알브레히트 알키비아데스 2세라는 독일인치고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였는데, 종교분쟁 당시 자기 이권에 따라 여기저기 막 붙어먹었던 모양이다. 책에서는 점잖게 합종연횡을 계속했다고 썼다. 영토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욕심이 스스로를 일종의 전쟁광으로 만든 모양이기도 했다. 알키비아데스 변경백에게는 호프 시를 위하여 한 명의 사형집행인을 종신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이미 재정이 황폐화된 마당에 다른 직종보다 적지 않은 연봉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중 반역죄로 마을의 총포공 세 명을 체포하여 사형 판결을 내놓고, 공개처형을 구경하기 위하여 새카맣게 모인 구경꾼들에게, 옛 관습을 들먹이는 연설을 하면서, 처형의 관객 가운데 한 명을 지목해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선언하고는 곧바로 하인리히 슈미트 씨를 꼽아버린 거였다.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그러나 알키비아데스 변경백은 슈미트 씨에게 만일 세 번 거절하면 같은 반역죄로 죄인들 옆에 세우겠다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급기야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을 얻게 됐다. 애초 알키비아데스와 슈미트 집안 사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란다.

  호프 시에서 사형집행인이 된 하인리히는 밤베르크로 가서 정식으로 시청에 등록된 공인 사형집행인이 된다. 그런데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직조공 또는 재단사 가문이었으며 자신은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나무꾼과 새잡이였음에도 어떻게 사형집행인의 일을 받아들였을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알브레히트 알키비아데스의 폭정이 종막을 내리고 자리를 승계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즉시 호프 시의 재건에 착수하여 인구가 늘고 재정이 충분한 상태로 만들었다. 한편 형법을 정비해 사법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처형건수와 처형의 강도가 각각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인리히 슈미트는 제후가 바뀌고 1년 동안 8건의 사형을 집행했으며, 이때 받은 대가는 다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해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원이었다. 이제 하인리히에게는 프란츠를 비롯한 여러 아이가 태어나 고정적인 수입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빵이 중하니까.

  하인리히는 보다 나은 수입을 위하여 밤베르크 주교후의 공식 사형집행인 자리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을 도전해 지위를 얻게 된다. 공식 사형집행인이 되기 위해 하인리히 슈미트는 갑작스레 고통스러운 직군으로 떨어져 20년 동안 굴욕의 시간을 지내고 난 다음이었다. 일반 시민의 경우에 비록 같은 시민계급의 사람들조차 악수는커녕 눈길 마주치는 것도 피하는 신분이어서 심지어 성 안에 들어와 사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아 공개처형장 옆의 부속건물에서 살아야 했지만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직업으로써 사형집행인은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만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를 알게 된 하인리히는 자신의 아들인 프란츠는 어린 시절부터 사형집행의 조기교육을 시켜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집행인을 만들고 싶어하고 정말로 그렇게 된다.

  사형집행인은 일단 연봉이 높다.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직종이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좋은 직업은 아니기 때문에 사형집행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 헌신하려는 사람 역시 극히 드물기도 하다. 하지만 뉘른베르크나 아우크스부르크, 밤베르크 시에서조차 정식 집행인이 되면 높은 보수에, 일이 없을 때는 영주의 허락을 받아 이웃한 도시나 마을에 출장 집행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또한 당시 사법 시스템에는 지금 시각으로는 지극히 원시적인 법의학 수준만 가지고 있어서 용의자의 자백이라는 증거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별수사, 즉 고문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이 고문을 통해 사형집행인은 괜찮은 가외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집행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해체하고, 수거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저절로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이용하여 당시 수준에서는 꽤 어려운 난이도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정식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만큼은 아니지만 의사를 찾아갈 형편이 안 되는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치료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전통적으로 의료업을 겸하던 이발사와 함께. 그러나 이발사보다는 더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집행인이 나이가 들어 원숙해지면 의료행위로 인한 수입이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오히려 더 중요한 직업일 수 있었다.


  스스로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던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는 견습생 시절부터 자신이 집행한 거의 모든 사형에 관하여 일기 형식으로 메모를 해 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짧은 보고 식으로 시작했다가 세월이 가면서 죽은 이와 그가 저지른 범행, 사형의 방법, 심지어 집행인의 감정까지 보태게 된다.

  사형의 방식은 화형, 수레바퀴형, 교수형, 참수형으로 나뉜다. 다른 방식의 사형도 있었겠지만 법정에서는 이 네 가지 방식으로 선고를 내리고, 집행인이 집행하기 전, 집행하면서 방식을 좀 더 개선할 수도 있었다.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의 예를 든다면, 아무래도 정말 산 사람을 불에 태우면 고통이 지독할 수밖에 없으니 불을 붙이기 전에 슬쩍 목을 조르거나 하여간 다른 방법으로 죽인 다음 형태만 불에 태우는 식이다. 당시만 해도 미신의 시대니까 화형은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마술사, 마녀에게 집중했고, 잔인한 범죄에 대해서는 수레바퀴형을 집행했다. 형을 집행하기 전에 판사는 불에 달군 인두로 몇 번 지지는 형벌을 내릴 것도 선고했는데, 정말 빨간 인두형을 하면 피부와 근육이 인두에 들러붙어 인두를 떼는 순간 살덩이가 뚝 떨어져 나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린다고 한다. 집행대에 올라 바퀴 위에 눕혀 놓고 쇠로 만든 바퀴살에 다리와 팔을 걸어 돌리면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심하면 잘라진다는데 뭐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교수형도 교수목과 사람의 목이 매달인 간격이 너무 짧아 말 그대로 질식사를 시키는 것이라 고통이 심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죽은 후에도 그냥 내버려둬 몇 주가 지나 시체가 썩으면 저절로 교수대 아래 구덩이로 툭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교수형, 수레바퀴형, 화형을 선고 받았다가 탄원을 해 참수형으로 “감형”도 많이 해주었다고.

  주인공이랄 수 있는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는 다른 집행인들과 다르게 매번 작업을 심도있게 연구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늘 기록을 남겨 뉘른베르크의 법관과 공무원 사이에 신임이 대단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과의 혼인도 불가능하고, 항상 모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불명예 속에서 살아, 자신은 모르겠더라도 자식대에서는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게 해주기 위하여 독일의 황제에게 직접 신원복고의 탄원서를 제출한다. 물론 황제가 직접 읽어보고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나이 일흔 살이 넘어 기어코 명예로운 신분으로 돌아와 제국도시 뉘른베르크의 시민권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늙은 프란츠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병과 전쟁, 기근 등으로 프란츠 슈미트의 후손은 자식 대에서 끊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이 책은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까지 활동했던 모범적인 사형집행인의 삶을 그렸다고 해야지, 이것을 작가가 주장하는 대로 시대의 혁신 비슷한 인물, 시대상을 대변 같은 수사를, 안타깝지만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역사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프란츠 슈미트에 과한 후광을 그려준 느낌이다. 책은 재미있다. 재미로만 읽어도 왠만한 소설만큼은 된다. 그러나 역사책으로는, 조금 오버? 한겨례신문 서평을 보고 고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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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7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 가을에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둔 책인데...
빌리긴 했으나 미처 펴 보지도 못
하고 반납을 -

<행맨‘s 다이어리>라는 책으로
마이스터 프란츠 슈미트 아재
의 기록이 소개된 모양이네요.

사형 집행인의 당대 기록이 후대
의 연구가에 의해 부활하는 서사
가 흥미롭네요.

오늘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려
고 합니다.

Falstaff 2024-02-27 17:47   좋아요 1 | URL
작가의 오버가 넘 심해서 말입지요, 뭐 사가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부분을 과하게 객관화시켜서 마치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ㅎㅎㅎ 그랬습니다. 별 셋을 줄까, 넷을 줄까 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넷 주는 선에서 마감했답니다.

coolcat329 2024-02-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책이 있군요. 프란츠 슈미츠가 사형집행인으로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일기를 썼을까요?
우리나라 망나니는 돈 많이 못 벌었겠죠? 그래도 독일은 돈이라도 많이 줬네요. 참 돈이 뭔지 이런 일도 해야하고... 무서운데 또 읽고는 싶네요.

Falstaff 2024-02-27 17:50   좋아요 1 | URL
아이구.... 굳이 뭐 직접 읽으실 필요까지는.... ㅋㅋㅋ
정말 읽어보셔도 제 독후감이 거의 다일 텐데, 재미는 있으나, 굳이 내돈내산은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