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중국의 근대극에 관한 금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차오위의 <뇌우雷雨>를 공연한 것이 신호였다고 한다. 1994년엔 한국, 중국, 일본의 연극인들이 뜻을 맞추어 베세토연극제를 창설해 제1회 베세토연극제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이후 삼국이 돌아가며 주최를 해 오늘에 이른다고. 베세토는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영문표기에서 앞자리 알파벳 두 개를 따와 BeSeTo라고 지었단다. 이후 2018년에 한중연극교류협회가 출범하여 매년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올리면서 출판사 연극과인간을 통하여 “중국현대희곡총서”와 “중국전통희곡총서”를 간행하는데, 내 경우엔 중국현대희곡총서를 통해 중국 희곡의 현대성과 발전상을 보고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국의 현대희곡을 읽으며 든 생각이, 어찌 그동안 우리나라 현대 희곡은 찾아 읽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과 후회와 미안함이었다. 그래 우리나라 현대희곡도 검색해 읽기 시작한 바이며, 이왕 읽기 시작한 희곡이라 영미와 프랑스부터 시작해 독일, 스페인 등의 희곡에도 집중하게 된 내력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 즉시 희곡을 출간하려는 노력을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결과 기껏 찾아 읽어본 희곡집의 수준이, 연극인 및 극작가가 이 잡문을 읽으면 화를 내겠지만, 중국의 현대희곡만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그나마 희곡 작품집도 활발히 나오는 것 같아 (물량의 증가와 비례해) 좋은 작품도 자주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희곡을 자주 읽은 보람이 있어서 허지핑의 <천하제일루>를 읽어 내려가며 단박에 떠오른 건 중국 근현대문학을 거론할 때 전혀 뒤로 밀리지 않는 라오서의 희곡 <찻집>이었다. <찻집>은 1부가 청나라 말기, 2부는 아직 청이 망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군벌이 민중들을 피폐하게 만들던 시기, 3부는 국민당과 일제의 중일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찻집의 쇠락을 그리고 있었다.

  <천하제일루>는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전문점 “복취덕”이 어렵게 명맥을 잇다가 총지배인을 새로이 고용해 경영일습을 맡겨 발전을 꾀했으나 창업자의 무능한 아들들에 의하여 다시 큰 곤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시대는 쑨원의 신해혁명에 의하여 청나라가 문을 닫고, 위안스카이는 이 와중에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다 실패하고 곧 죽어버린 시절. 1910년대 후반이다. 중국은 이제 주인없는 무주공산이 되어 각지에서 군벌이 득세해 위세를 떨치고 있던 때, 장쉰(張勳)이란 작자가 나타나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다시 황위에 올려 놓는다. 청나라가 멸망한 줄 알았던 베이징 시민들은 얼른 시장에 나가 가발을 사 급하게 변발을 해 붙이고 다니고 옛 벼슬아치들이 잠깐 위세를 떨치던 시기가 1막 1장. 1837년에 산동성 사투리를 쓰는 당씨 젊은이가 도로 옆에 돌 두 개에 도마 하나 얹고 생닭과 오리를 파는 노점을 연 것으로 시작해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장사를 잘 했고, 한푼 두푼 모아 작은 가게를 하나 사서 백년 기업을 마련했다. 세월은 계속 흘러 어느덧 20세기에 접어들었고, 조상들의 성실과 정직을 물려받은 당덕원이 늙도록 가업을 번성시켜왔다.

  당덕원 사장이 똑소리 나게 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자식 농사. 맏아들 당무창은 가업 잇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경극하는 무리를 좇아다니며 가산을 아낌없이 뿌려가면서 자기도 극단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둘째 아들 당무성 역시 오리 식당이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하여 온갖 권법, 술법 단련에만 여념이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하고, 형/동생이 쓸어가는 돈보다 결코 적지 않게 자신도 낭비하고자 하는 욕심. 어떤 집안인지 딱 감이 잡히시지? 세상이 하 수상한데 아들들은 정신 못 차려 속이 상한 아버지 당덕원 사장은 궁리 끝에 현명해 보이는 옆 가게 점원 출신 노맹실을 스카우트해 지금 개념으로 전문경영인의 자리에 앉히고 가게 경영의 전권을 맡긴다. 그리고 나서 잔뜩 속이 상한 노인은 절명해버리는 1막 1장.

  이런 와중에 장쉰에 의한 복벽 기간이 끝나 잠깐 봄바람이 불었던 청 시대의 옛 고관들은 다시 영락해버린다. 세상은 혼돈 자체이며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 전문경영인 노맹실은 금, 은덩이를 자루에 넣어 보관할 정도로 가게를 성장시켰으며, 기세를 등에 업고 여러 금융업자의 돈을 빌어 복취덕을 확장해 크게 키웠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경영인으로 가게의 일 전반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기가 20세기 초반이라 월급쟁이 사장은 월급을 주는 가게의 진짜 주인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여전히 경극단을 쫓아다니는 맏아들은 극단원들을 비롯해 자신과 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리 요리 한 두 마리 정도 선심을 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노맹실에게 큰 돈을 요구한다. 이걸 알고 있는 둘째 당무성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얼른 쫓아와 자기도 돈이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하고, 세상이 답답하게 된 노맹실은 돈이 없다 버티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금은 덩어리를 자루에 담아 보관한다는 말을 들어 당장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아들들. 끝까지 돈 주기를 거부하자 완력으로 돈자루를 나꿔채지만 자루가 튿어지면서 자루 속에 든 금, 은이 아니라, 그 속에선 황토가 푸르륵 쏟아지고 만다. 노맹실은 이렇게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과시하며 저리로 많은 돈을 빌려 가게를 크게 확장하고, 씀씀이가 큰 고객들도 왕창 확보하여 나날이 크게 발전할 기틀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2막에 들면 복취덕은 확실하게 베이징의 최고 오리 요리점이다. 속칭 베이징덕의 대표 음식점. 이미 둘째 아들 당무성은 다른 도시에 분점을 차리고 영업 중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당무성은 여전히 가게 경영은 나몰라라 하고 권법에만 관심을 쏟아 장사가 시들해지고 있던 중이다. 당장 베이징으로 달려온 당무성은 형 당무창과 뜻을 함께 해서, 어떻게 일개 고용인인 노맹실이 고향에 큰 땅을 살 수 있었는지, 돈을 무슨 수로 그리 많이 모을 수 있었는지 가자미 눈을 하고 따진다. 벌써 몇 십 년을 총지배인으로 일했으니 그동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만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건만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의하면 도저히 땅을 사거나 돈을 모을 수 없었을 테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니 이제 사달이 나는 일만 남았다. 당연히 무슨 사달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극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세상은 다시 변해 이제 베이징엔 중국인 알기를 처마밭 애벌레 쯤으로 아는 백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낮에 중국인의 뺨을 갈길 수 있는 시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국일 것은 분명한데 어떤 식으로?


  중국인이 읽었더라면 내가 느낀 감상보다 훨씬 좋았을 듯하다. 특히 중국 근현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청말의 사회적 혼돈과 당시 세태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실제로 등장하는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은 실제로 있는 베이징덕 음식점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고, 오리구이를 하는 방식, 베이징의 시설물, 거리, 복장, 인물과 사건 등 읽으면서 쉼 없이 각주를 내려다봐야 했고, 각주의 양도 만만하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흥미로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오서의 <찻집>을 워낙 근사하게 읽어, <찻집>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각 장면마다 당씨 형제들과 총지배인의 갈등 대신 사회적 문제를 조금 더 부각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인터넷 책방 교땡문고, 너24에서는 팔지만 내 단골집 얼라땡에는 없다. 왜 없을까?


  올해 중국 희곡 낭독 공연은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 예술극장에서 열린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4-03-08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얼라땡에선 팔지 않는다니요. 으흠~ 찻집이 그렇게 좋군요.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낭독공연 본적이 없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베세토가 그런 뜻이었군요. 글치않아도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3-08 16:12   좋아요 2 | URL
예. 이 책 좋습니다. 라오서의 <찻집>은 동아시아의 ˝희곡˝ 고전이 아닐까... 싶네요.

얄라알라 2024-03-10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Falstaff님 이 글은 대학교 문학 강의의 구어 버전 같아요^^

한국에서 중국 문학에 대해 보수적이었다는 데도 놀랐고, 그게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었음은 더욱 놀라워요. 그나저나 ˝ BeSeTo˝ 이름 지으신 공무원(???)은 보너스 받으셨으려나요.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쏘옥 들어오게 좋네요.

일본의 백년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식에게 물려주기 여의치 않으면 ‘노맹실‘을 불러오듯 외부인사(?)를 집안으로 들여 가업을 잇는 전통 가졌나보네요. 이래저래 배워가는 게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falstaff님

Falstaff 2024-03-10 17:08   좋아요 1 | URL
그냥 잡문인 걸 이리 친절하게 읽어주시니 고맙고 즐겁기 짝이 없네요. ㅋㅋㅋㅋ
편한 주말 맞으셨기 바랍니다. 저도 여유있게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
 
비 오는 길 - 최명익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5
최명익 지음, 신형기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903년에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작가. 평양 보통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921년에 도쿄로 유학해 23년에 돌아왔다. 이 시기에 귀국한 도쿄 유학생들은 관동대지진에 이은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돌아온 인물이 대부분이다. 하여간 최명익은 이후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1928년부터 유방(柳坊)이란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몇 개의 동인지를 발간한다. 이후 1936년에 잡지 『조광朝光』에 <비 오는 길>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작품을 읽어보면 당시로서는 눈에 띄는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읽으면 낡은 설정이 눈에 확 나타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인 문학작품에서 식민지의 우울한 작가 입장에서 주인공 주변에 등장하는 무기력감과 우울증, 과도한 자의식 같은 것이 표출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독자는 할 말이 없다. 모두 여덟 개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가운데 하얼빈을 무대로 과거에 혁명가였던 지식인 청년과 화류계 여성의 아편중독을 그린 <심문>과 고향에 어린 시절 결혼한 처가 있는 지식인 청년 이야기 <무성격자>, 공장 직공이 직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사진관의 사진사와 친하게 지내다가 관계가 끊어지는 <비 오는 길>, 아니, 아니, 제일 마지막에 수록한 <맥령麥嶺> 빼고 일곱 작품이 다 좋았다.

  그런데도 이이의 이름이 낯선 건, 웬수 같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충돌 때문이었다. 도무지 좌익이나 공산주의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최명익은 1945년 해방이 되자, 고향 부근 평양에 머무르면서 평양예술문화협회의 회장을 지낸다. 나는 이게 작가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의하여 결정했다기 보다, 그저 자리가 있고, 하라고 하고, 만약 하지 않으면 신상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이니 맡지 않을 수 없어서 덜컥 받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이 같은 모더니스트가 공산주의자라니, 말도 안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이를 설명하기를, “1946년 김일성이 북한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점차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저 관운이 좋아 시키는 대로 넙죽넙죽 받은 거라고 본다. 안 하면 죽을 것도 같기도 했을 거고.

  이런 사람한테 공산주의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교과서의 공산주의면 혹시, 만의 하나 또 모르겠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스탈린 식 독재에 복무하기 위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다. 이 책에 증거가 있다. 1947년에 북한의 출판사 문화전선사에서 발표한 중단편집 《맥령》의 타이틀 작품 <맥령>. 일곱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아니 이런 작가도 있었어? 역시 우리나라는 단편소설의 나라가 맞아, 갑자기 등장하는 <맥령>이라니. 한 순간에 맥이 영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맥령. 한자어로 麥嶺, 보리 맥에 고개 령. 합하면 보릿고개. 때는 1945년 봄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를 맞아 패전이 거의 확실시 되는 일본은 마지막 발악을 하느라고 조선에서 말 그대로 발작적 공출과 젊은 남성에 대한 징병과 징용을 집행했다. 식민지 지역에서 언제나 제일 악독하게 피식민지 백성을 쥐어 짜는 것은 식민 모국에서 온 통치자가 아니라 현지 고용인이었다. 그리하여 작품의 무대인 면 지역에서도 면장이 면민들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고 있는 인간 착즙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이상진이라고 쓰고 최명익이라고 읽는 소설가가 소개, 혹시라도 평양에 공습이 있을까 싶어 시골로 하방해 있으라는 소개명령을 좇기 위해 낙향해 있었다. 당연히 이상진은 면에 거의 유일한 인텔리겐치아이며 아래 위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명사. 다만 면장과 기타 군역 일을 하는 공무원들의 눈에는 참으로 아니꼽게 보이는 것이 몸에 무슨 드러나지 않는 질병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진료증인가 뭔가를 제출해 병역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상진도 1945년 봄에 처음 이곳으로 소개해 내려왔고, 오자마자 동네의 건실한 젊은이들하고 배포가 맞아 친하게 지내게 됐다. 공산주의 아래에서 생산된 작품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젊은이들은 도무지 악할 줄 몰라서 이상진의 말을 예수님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하는 말인 것처럼 따른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굳은 신념 역시 만땅.

  석주, 인갑이, 동석이 들이 병역 신체검사에 갑종을 받아 이제 남의 전쟁터에 징병 나갈 일만 남았다. 근데 인갑이가 상진에게 엉뚱한 걸 물어본다.

  “선산님. ‘나는 왜놈이 아니구 조선사람이외다.’를 영어로 어떻게 합니까?”

  왜 그런 것을 묻느냐고 다시 물어보지 않고도 인갑이의 질문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아챈 상진. 인갑이는 이미 중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배워 놓았다고 한다. 만일 중국 전선으로 끌려가 중국 군인을 만나게 되면 써먹을 용처다. 같은 목적으로 또 태평양 전선으로 가게 되어 귀축이라고 하는 영국이나 미국 군인을 만나게 되면 써먹어야 하니까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

  작품이 한참 진행하여 드디어 얼마 있지 않아 인갑이네가 징병갈 때가 다가오자 이번에도 인갑이, 상진에게 묻는다.

  “데 김일성 부대는 상게두 백두산에서 왜놈하구 싸우갔디요?”

  이 다음부터 조금만 그대로 인용해보자.


  이런 인갑이의 말에 상진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김일성 부대!”

  인갑이의 말을 받아 외는 상진은 서슴없이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 이 젊은이는 날개가 있구나!’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막힌 진공관 속에서 김일성의 존재를 생각해내는 것만도 얼마나 씩씩한 비약이요, 찬란한 낭만일까.

  “물론 싸울 거요. 지금이야말로 그분이 더욱 힘 있게 싸울 때니까!”

  청구(靑丘) 조선의 산머리 우러러 선조의 웅대한 가지가지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백두산에서 동포의 의사를 대표하여 조국 해방의 봉화를 높이 들고 싸우는 한 영웅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며 상진은 대답하였다.


  1947년 작품이다. 미주엔 1941년에 발표했다고 쓰여 있지만 오식이다. 1941년의 평양에 청년 김일성의 이름이 그리 날리지 못했을 때라서 이런 표현은 쓰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1941년이면 최명익은 모더니즘의 최고 시절을 향유했을 텐데 뭐가 아쉬워 이런 글 같지도 않은 작품을 끼적이고 있었겠는가.

  아쉽다. 이 양반이야말로 남쪽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전쟁 후에도 남쪽에 남아 자신의 문학적 끼를 유감없이 휘날리고 그 다음에야 눈을 감아도 감았어야지, 세상에 <맥령>같은 작품이나 쓰면서, 나중엔 대하소설이라는 <사명대사>나 <이조망국사>같은 역사물이나 쓰다가 숙청당했으니 죽어서나마 눈이나 감았겠느냐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1972년에 숙청을 당했다가 1984년에 (사후)복권했다고 한다. 70년대 초반까지 살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단어에다가 한 가지 허들이 더 있다. 평안도 사투리. 구개음화가 생기지 않는 이북말 특유의 발음을 그대로 쓴 경우가 많아 고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읽기에 곤란을 겪을 수 있겠다. 난 재미있게 읽었지만.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4-03-07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제대로 쓴 구어체는 읽을 때 진짜 좋더라구요 ㅋㅋ근데 북쪽말은 잘 모르겠고…이번에 수능특강 문학 훑어보다 마지막에 이문구 장평리 찔레나무 실린 거 보고 삘 꽂혀서 막 따옴표 안 충청도 말 다 소리내서 읽고 앉았다니까요 ㅋㅋㅋ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는 좋아하는 게 확실… 수능에 이문구 나오면 좋겠다…최명익 소설도 문학 빈출이라 샛길로 샜네요 ㅋㅋㅋ 월북 작가 작품도 열심히 출제되는 세상… 그런데 짜투리만 봐도 이 작가는 크게 재미는 없었어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03-07 16:01   좋아요 1 | URL
윽. 빈출.... 빈번하게 출제한다, 라는 뜻인지, 貧出 아주 드물게 나온다는 뜻인지 막 헛갈렸다는 거 아닙니까. 자주 나온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정말로 오늘 날까지 이이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야만의 세월을 산 거 맞습니다.
근데 <맥동> 빼고는 괜찮은 걸로.....

잠자냥 2024-03-07 17:44   좋아요 1 | URL
헐 폴스타프 님이 최명익 모르셨다는 게 오늘 가장 충격입니다~!

Falstaff 2024-03-07 19: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때는 지구가 편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월북 작가들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고, 소위 서울의 봄이 온 후에도 대단한 성가가 있는 극소수의 작가들만 알 수 있었답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했고요. 지구가 둥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4-03-10 12:07   좋아요 2 | URL
ㅎㅎ 열반인님^^ 수능특강 문학을 공부하셨어요^^ ˝빈출˝ ˝최빈도˝ 이런 단어랑 멀어진지 오십년되었는데, 열반인님 덕분에 다시 환기 당했어요

놀러갈게요~~ 열반인님 서재

반유행열반인 2024-03-10 18:42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아직 공부는 안 하고 목차만 주루룩 봤어요 ㅋㅋㅋ드물게 빈출 아니고 이 작가 수능특강 모의고사 등등 제법 몇 번이에요. 나오는 작가만 계속 나와서 지루하기도 하고 이새끼들 출제범위 너무 일천하다 싶고 박상륭 나와라!!! 혼자 그러고 그런데 아마 안 나올 거 같고 ㅋㅋ 최근에 기형도 시인 시 출제되는 거 보고 으떤 강사는 이제 이상 시 나와도 놀랍지 않다 이러더라고요 ㅋㅋ
 
곰곰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1972년 태백생. 시집을 읽어보면 태백에서 낳고, 강원도 어디쯤에서 조금 살다가 서울로 와서 여상을 다닌 후 기업의 사무 보조원으로 들어가 가난하게 살면서 시를 썼다. 이이의 내력을 조금 들여다보면 여섯 살 정도 되어 아버지가 안현미를 새엄마한테 보내 함께 산 듯하다. 집이 여유롭지 않아 서울여상을 나와 기업에 다니다가 20대 후반에 서울산업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인이 됐다. 김경주, 김민정과 함께 “불편” 동인이란다. 《이별의 재구성》으로 2010년에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이크, 이 대목에서 깜짝. “이별의 재구성”이냐 “이 별의 재구성”이냐, 이런 말장난 잘 했던 시인이로구나. 읽어본 적 있다. 2017년 4월에. 《이별의 재구성》에 <post-아현동>이란 시가 있어 안현미는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은 아현동 산동네에 갔다 // 오래전 월세 들어 살던 방,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하던 방, 연탄불을 넣던 방, 이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울먹이던 방, 외롭던 방, 고맙던 방, 아주아주 춥던 방, (하략)


  161번 시내버스 타고 굴레방다리에서 내리면 북아현동. 길 건너 당시에 무슨 공업전문대학 있었는데 그쪽이 아현동. 거기서부터 저 대현동까지 좀 춥고 배고픈 사람들 많이 살던 동네다. 안현미가 졸업했다는 서울여상은 1972년생은 모르겠지만 “라떼는” 집 가난하고 머리 좋은 여자애들만 갈 수 있는 우수한 학교였다. 중학교 담임이 학부모 불러서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보내 좋은 대학 가라고 설득하다가, 돈이 없어서 가오도 없는 학부모의 완곡한 하소연에 어쩔 수 없이 원서 써주던 곳이 서울여상이었다. 거기서 주산, 부기 잘 하면 한국은행 무조건 들어갔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안현미 시절에는 그렇지는 않고 대기업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면서 20대 후반에야 대학에 진학했단다. 그러니 갓 스무 살 시절, 꿈 많고, 정 많고 사랑도 많던 시절에 아현동 언덕배기 사글세방에 혼자 산 것 같으니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짠하다. 그리하여 그때 쓴 시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 책 《곰곰》에서도 두 번째 실린 시가 아현동 시절이다. 읽어보자.



  거짓말을 제조하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쥐오줌 번진 책장을 더듬고 있다 불 꺼진 방 전기 장판은 얼음장 위에 신문지 같다 그녀의 더듬이는 의수(義手)를 닮았다 우우, 우, 우 비키니 옷장 속에는 아귀 같은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잠을 아귀처럼 먹어치우고 있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의수 같은 그녀의 더듬이를 부빈다 쥐오줌 번진 책장 속에선 벌레가 된 사내가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있다 그녀의 의수 같은 더듬이가 제조하는 현은 세상의 슬픔 따위에는 울지 않는다 우우, 우, 우 산동네의 겨울은 길다 차라리 신(神)은 봄 같은 건 제조하지 말았어야 한다! 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 네 울음은 불온하다, 고 누군가 그녀의 불면 속으로 걸어 들어와 딸깍, 그녀의 더듬이를 자른다 우우, 우, 우 봄을 제조한 신(神)은 위대하다, 위대하다! 불 꺼진 방에서 벌레처럼 납작 엎드린 그녀가 거짓말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더듬더듬, 시 같은 거짓말을!  (전문)



  가난한 하숙집에 빠질 수 없는 품목이 두 가지. 하나는 전기 장판이고 다른 하나는 비키니 옷장이다. 다 그렇게 살았는데 시인이라서 감수성이 예민해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정도의 극심한 가난은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안현미가 쉰 둘? 그렇게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고통스러운 환경, 천장에선 밤이면 밤마다 쥐들이 트랙 경기를 하고, 쥐오줌이 짙게 밴 천장은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고, 전등불을 켜면 갑자기 화르륵 달아나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들의 길고 긴 더듬이들, 촉수 낮은 전등 아래 비키니 옷장을 열면 무엇인가 흉측한 것이 안에서 확, 튀어 나오거나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우풍, 외풍, 웃풍, 황소바람.

  그런데 비슷한 시가 또 있다. 기세도 좋게 바로 다음 시로 같은 아현동의 자취방과 더듬이가 긴 곤충이란 동거생물들, 그리고 영탄이 출몰하는. 워낙 인상 깊었던 삶의 시절이었던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같은 주제로 몇 다발의 시를 쓰는 건 어쨌거나 내 생각으로는 거슬린다. 처음 인용한 <post-아현동>처럼 다음 시집 《이별의 재구성》에서도 또 나오면 말이다. 어떻게 비슷한지 한 번 볼까?



  거짓말을 타전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전문)



  그러니까 이이가 말하는 “거짓말”은 창작으로의 “시”를 쓰는 행위이다. 먼저 거짓말을 제조하더니 이제는 거짓말을 타전한다. 한 단계 도약해서 제조한 것을 세상에다 대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우, 우, 우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물론 그만큼 시인한테는 절망이었고, 좌절이었으며 전혀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우울의 산꼭대기였겠지. 더듬이가 긴 곤충인 바퀴벌레만 자신과 동거하고 있는 것 같은 고독과 단절. 목을 매거나 다리에서 뛰어내릴 자신은 없으니까 그저 연탄가스에라도 중독되어 죽고 싶었던 삶의 끝장까지 갔었고, 거기서 거짓말 같은 시를 쓰기 시작한 전경이 잘 보인다.

  근데 좀 장황하다. 당연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 그러나 읽는 독자도 좀 생각해주셔야지. 시인은 이래서 이렇게 시를 썼고, 그건 좋은데 반면에 시의 성취와 관계없이 시를 읽는 독자는 이래서 이렇게는 시를 읽기가 질려버리면 그거 되겠냐는 말이다. 아현동, 산동네, 사글세 방, 쥐오줌, 더듬이가 긴 곤충, 새파랗게 추운 밤. 비애와 비통과 고통이, 좋아, 좋아. 이제는 시인도 극복했겠지. 그랬겠지. 믿는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03-05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지 알것 같네요.
저도 그만 읽고 싶은 내용들이예요.
오히려 그 안에서 아주 잠시라도 행복했던 것들을 헤아리면, 슬픔이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우는 사람의 등을 두드려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슬픔과 상처의 깊이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겠죠? ㅠ
이 분이 작가이기에....독자로서 폴스타프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Falstaff 2024-03-05 16:35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우울도 과하면 보기 좋지 않더라고요. 세상 모든 고통을 혼자 당하는 듯한, 물론 자신한테는 가장 심각하겠지만, 그런 건 딱 몇 번 하고 말아야 궁상의 골짜기에 빠지지 않는 거 같습니다.
소설가 한창훈이 시인 지망생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제발 피 좀 토하지 말아라. 술병은 우산꽂이에 넣어두고 시를 써라. 그만 울고 화장실 가서 콧물 좀 닦아라. 피 토하면 시인 면허증 준다는 거 다 사기고 구라다.˝ ^^;;
 
9시 반의 당구 지만지 고전선집 478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하인리히 뵐의 소설은 대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병정들의 허무한 죽음과 전장에서의 생활,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한 도시의 폐허상태와 굶주림, 인간관계의 실종 및 소외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같은 옐로우 페이퍼에 대한 간접적이며 흥미로운 작품도 있지만 대개 전쟁과 폐허로 규정하는 것이 보통인 거 같다. <9시 반의 당구>는 이색적이다. 전쟁 전과 후를 다루고 있으나 뵐의 전작들에서 볼 수 있는 황폐와 폐허와 간난과 고통과 이별 같은 것은 없다.

  독일은 패전 후 나치 잔당을 싸그리 숙청하고 오랜 기간 독일과 나치가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는 진정성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런 장면은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가 1970년 12월에 폴란드 봉기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은 정치적 장면, 그리고 독일의 정보국이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 정보국에 의한 나치 전범의 추적을 사람들이 혼동한 때문이기도 하다. 전후에 나치에 부역한 사람들을 전부 숙청해버리면 가뜩이나 전쟁 그리고 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부족한 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권인 공권력을 채우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인리히 뵐 같은 골수 나치 청산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사회 곳곳에 과거 나치 집단의 일원이었던 자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일정부분 그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 그들의 생각과 행위에 동조하던 사람들은, 나치에 의하여 탄압받던 피해자들인 유대인, 유색인, 공산주의자, 반정부인사, 집시, 그리고 많은 수이었지만 내놓고 말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자들에 비해 월등한 사회적 권위와 폭력을 대동한 힘, 그리고 압도적 분위기를 지녔을 것이다. 거대 전쟁을 준비하던 독일의 경우라면 더욱. 하인리히 뵐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인들을 크게 양과 물소의 그룹으로 나눈다. 양은 말 그대로 죄도 없고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그럴 힘도 없는 존재. 목자가 있어 풀밭에 방목하고 늑대와 다른 야수만 막아주면 아무 탈 없이 젖과 털을 제공하는 인간형이다. 물소는 역시 생긴 것처럼 무게있고, 근엄하고, 점잖고, 예의바르고, 명예와 성실과 규율과 질서를 숭배하지만 반면에 어리석고 야만적인 힘을 거칠게 과시하는 측면이 있는 인간형이다. 당연히 물소형 인간은 1차 세계대전 당시엔 빌헬름 2세, 간전기엔 나치를 추종하던 인물로, 특히 간전기 내내 유대인,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반정부주의자로 구성하는 양의 집단을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린치를 가하거나, 세월이 더 심각해지자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이르렀다가, 패전 후엔 곧바로 변신하여 가장 정의롭고 명예로운 공직자의 모습으로 표변해버린다. 양의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동안 물소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맞으며 산 자들만 살아남았어도 전쟁이 끝나 극적 전환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양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 <9시 반의 당구>의 주인공 로베르트 페멜 박사 같은 사람의 역할은 양을 돌보는 목자이다. 이이는 젊은 시절이었을 때부터 크리켓을 선수 수준으로 잘 했다. 1935년 7월 14일은 토요일이었다. 교외의 풀밭에는 루트비히 고등학교와 오토 고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모여 체육교사 벤 바케스가 심판을 보는 결승전을 치루고 있었다. 크리켓 공은 야구공만큼 딱딱하다. 맞으면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시합 도중 슈렐라, 라고 하는 양이 있어서 상대방의 물소 네틀링거는 경기와 관계없이 슈렐라의 몸을 향해 강하게 공을 던져 얼굴에 멍이 들고 피가 나게 했으며 콩팥 부근에 심한 타박상을 입게 만들었다. 슈렐라가 더 이상 루(베이스)에 있으면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한 로베르트 페멜은 공은 저 멀리 풀밭 깊은 곳까지 쳐서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물소의 폭력은 이런 식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나치의 광기가 한계를 넘어가면 네틀링거는 철조망으로 만든 채찍으로 슈렐라의 등을 때려 등판엔 철조망의 가시에 박혀 촘촘하게 딱지가 앉아버렸고, 부르주아 건축가의 아들 로베르트 페멜도 이제는 더 이상 예외일 수 없었다.


  로베르트의 아버지 하인리히 페멜 박사는 건축가이다. 하인리히가 이 도시로 오게 된 것은 반백 년도 전에 도시의 동굴에 있던 무너진 수도원을 건설하기 위한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페멜 박사는 도착하자마자 카페 크로너에 가서 “고추치즈”를 주문했다. 고추치즈? 어떤 것을 말하는 지 몰라 웨이터가 묻자, 고추를 하나 잘게 썰어 치즈와 함께 구운 것이라 대답했고, 페멜 박사는 이후 한 번도 빼지 않고 매일 고추 치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주 나중에 알려지지만 사실 페멜 박사가 고추 치즈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의 하나였을 뿐. 페멜 박사는 결국 공모전에 당선을 해 사실상 건축가로 첫번째 건축을 하게 되는데, 이게 독일의 문화재 급 명소 가운데 하나로 인정을 받아 젊은 페멜은 한 순간에 명예와 명성을 떨치고, 귀족 출신 부르주아의 딸 요하나와 결혼까지 한다. 하인리히 페멜은 결코 물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도 아니었고. 그는 적당한 선에서 물소들과 타협한 채 세상일을 다음으로 하고 건축에 온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반면에 아내 요하나는 적극적인 목자 타입의 여성. 요하나의 적극적인 반 물소 행위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어처구니없게 요하나는 정신병원인 덴클링겐 요양소에 오래 갇혀 있다.

  아버지 하인리히는 건축가. 아들 로베르트 페멜은 정역학자. 정역학靜力學. 정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 어떻게 하면 에펠 탑이 태풍이 부는 데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삼풍백화점은 옥상에 과다한 무게의 수조가 있었다고 해도 왜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버렸을까? 이런 것을 연구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밀집한 도심의 낡은 건물을 주변 환경에 아주 작은 영향만 주면서 철거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변주할 수도 있다. 건축학하고 매우 비슷하면서도 반대이기도 하다. 하인리히는 세상을 살면서 1894년 누이 샤를로테를 묻고, 1909년 딸 (아내와 같은 이름의)요하나를 묻고, 1919년 아들(자신과 이름이 같은) 하인리히를 묻고, 1942년에는 아들 오토의 사망통지를 받는다. 오토 역시 대단한 물소였으나, 하여간 자신의 자식 셋이 물소의 제단에서 스러져갔다. 그러고 나서야 세상에서 물소의 존재를 인식한 하인리히. 반면 로베르트는 청소년 시절부터 반골인 엄마를 탁해서 그러했는지 적극적 양의 목자로 나섰다. 이제 1958년 9월 6일, 아버지 하인리히의 여든 번째 생일날까지 그는 오전에 사무실에 들러 딱 한 시간만 일하겠다는 원칙을 세워왔다. 한 시간이 넘게 필요한 주문이 들어오면 “안타깝지만 업무량 폭주로 귀하의 소중한 주문을 단념합니다.”라는 회신을 보낼 정도다. 이후 정리를 하고 프리츠 하인리히 호텔에 가서 9시 반부터 11시까지 당구를 친다. 당구실의 보이 후고는 페멜 박사가 준 붉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내 딸과 아들 그리고 슈렐라 씨와 연락이 언제나 가능함. 그 외에는 아무도 연결시키지 말 것.” 이제 고위 경찰로 근무하는 왕년의 큰 물소 네틀링거조차 이 시간에 로베르트를 만날 수는 없다. 이후 정오까지 카페 존스에서 차를 마시고, 12시부터 산책을 한 후 1시에 딸과 뢰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이후 집에 칩거한다.

  로베르트 페멜. 두 자녀가 있으며 아들 요제프는 스물두 살의 건축가로 독립해 산다. 1917~18년생. 그러면 2차 세계대전에 복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 역시 독일 공병대 장교로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 중에 공병대가 하는 건 주로 폭파임무였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1945년이 오고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러 로베르트는 장군과 함께 이 도시까지 후퇴하게 됐다. 이때 장군으로부터 놀라운 명령을 전해 듣는다. 아버지 하인리히 페멜 박사가 건축한 동굴 수도원을 폭파하라는 것. 장군은 망설인다. 문화유적을 폭파해도 어차피 지는 전쟁은 지는 전쟁일 뿐. 미군의 주요 진행 방향도 아닌데 굳이 수도원을 파괴할 이유가 있을까? 장군은 번민하다가 공병 대위이며 수도원을 건설한 페멜 박사의 아들이기도 한 로베르트를 불러 상의한다. “수도원을 폭파하면 안 되겠지?”

  로베르트 페멜, 그의 대답은 안 알려드리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이언 매큐언을 읽으면서 실망해본 적이 없다. 근데 어째 읽게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암스테르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다른 유명 작가하고 이이를 혼동했던 거였다. 재미는 있지만 뭔가 불편한 작가, J.M. 쿳시. 두 양반의 공집합이 사실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헷갈렸던 거다. 아직도 J.M 쿳시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는데 엉뚱하게도 이언 매큐언의 책을 검색하면서 이이는 참 이상한 방식으로 불편해,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것 참. 뭐 세상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제 보니까 이이의 작품이 꽤나 많이 번역해 나와 있다. 헷갈리고 있는 동안 도대체 몇 권이나 놓친 건가. 그래도, 그럴 수 있지 뭐.


  작품은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서로가 친한 친구 사이이면서 시기를 달리해서 고 몰리 레인의 연인이기도 했던 작곡가 클라이브 린리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 클라이브는 1968년 둘 다 대학생일 때 처음 몰리를 만났다. 베일 오브 헬스의 어수선한 하숙집에서 함께 기거했는데, 영국식 하숙집은 각자의 방이 있고,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 식이다. 당시는 젊은 시절이었으니까 뭐 아무것도 몰랐을 때였고, 나중에, 한 십년 정도 더 지난 후에 몰리와 다시 잠깐 연애를 할 때는 몰리로부터 침대 위 사랑의 다양한 방법과 기교와 자세 같은 것을 감명 깊게 물려받은 추억이 있다. 물론 더 나이를 먹어서 둘 사이엔 섹스를 매개로 하는 감정 같은 건 사라지고 진짜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정만 남아 몰리는 작곡실에 와서 자신만의 의자에 앉아 고즈넉한 눈길로 클라이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전환시켜주는 순기능을 기꺼이 담당했다. 물론 자신이 새로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누구와, 진도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같은 것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주었다고 오해도 하고.

  버넌 핼리데이는 1974년에 첫 직장인 로이터 통신 파리 특파원으로 나가 있을 때 몰리도 <보그>지에서 이러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하고 있어서 1년 간 동거를 한 적 있다. 헤어지고 영국에 와서도, 서양 사람들이 자주 그러듯이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고 좋은 친구로 늙도록 가까이, 당연히 섹스리스로 지내고 있었다.


  근데 몰리가 어떻게 죽었을까? 아, 걱정 마시라.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나중에 책에 나오듯이 독을 탄 샴페인을 마시거나 그렇게 비명에 가지 않았다. 요즘 느와르 소설을 몇 개 읽다 보니 아휴,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뜬다니까. 런던 시내의 도체스터 그릴 레스토랑에서 밥 잘 먹고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드는 순간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찌르르 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불과 몇 주 사이에 사물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정당, 화학, 프로펠러” 같은 단어는 잊을 수 있다고 쳐도 “침대, 크림, 거울” 같은 생필품을 지칭하는 단어가 왔다 갔다 하면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 몰리는 대규모를 신체 전부를 정밀 검사 했음에도 그냥 병실의 수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남편 조지 레인은 돈만 많은 출판업자이다. 까탈이 심하고 병적으로 소유욕이 강한 남자이며 한 시절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틀어 몰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해 마지 않았다. 몰리는 조지를 홀대하면서도 부자와 사는 편리함 때문이었는지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심지어 몰리가 노골적으로 외도를 하고 다녀도 조지는 속수무책,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몰리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남은 것은 요양원으로 갔다가 그 요양원 지하의 영안실로 가면 끝나는 거였는데, 놀랍게도 조지는 요양원으로 보내는 대신 자신의 저택에서 자기가 직접 아내를 돌보겠다고 선언했다. 조지는 몰리가 이제 다 죽어가는데도 방문객을 철저하게 가려 받았고, 과거에 연인 사이였던 클라이브와 버넌, 그리고 현직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는 병문안 할 생각을 말아야 했다. 병이 들고서야 아내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된 조지는 은근히 만족하는 모습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는? 이 양반이 참 골치 아프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이심전심으로 가머니 장관이야말로 자신들의 공통적인 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지능이 대단히 높아서 불리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키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발력을 지녔다. 그러나 안타깝게 고루한 시선에 입각해 보자면 아쉬운 취향이 있었으니 바로 드레스스왑(이라고 칭할) 트랜스베스티즘(Drag Queen, trap). 쉬운 얘기로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 화장을 짙게 하고, 마치 남성을 유혹하는 듯한 자세와 표정을 짓기 좋아하는 것. 명색이 장관이라 고상한 취미를 과시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던 차에, (거의) 모든 일에 쿨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던 몰리는 가머니의 취향을 존중했고, 그래서 가머니는 몰리와의 만남을 통해 혼외정사나 애정문제로 복잡하게 얽는 게 아니라 드레스스왑을 하고 몰리와 피카디리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하는 정도였으며, 자신이 생각해 특별하게 드레스 스왑을 멋있게 한 기념으로 비록 흑백이지만 사진으로 여러 장 박아 놓았다. 당연히 이게 실수지. 가머니가 사진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겠어? 그러니 남편을 한 손아귀에 쥐고 사는 몰리가 보관을 했다가 졸지에 오늘 내일 하는 처지에 떨어졌고, 급기야 숟가락 놨으니 그게 이제 저 밴댕이 창아리 속을 가지고 있는 조지한데 가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내용을 모르고 그저 자기 아내와 바람 피운 남자들 명단 가운데 중요한 한 명으로 치부하면서. 그러니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줄리언 가머니는 죽은 목숨이다, 죽은 목숨. 물론 정치적으로 말해서.


  줄리언 가머니는 국무위원으로 20세기를 끝내는 마당에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영국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두 명, 클라이브 린리와 폴 매카트니 가운데 클라이브 쪽으로 손을 들어 그에게 <새 천년 교향곡>을 의뢰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밉더라도 하여간 클라이브가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어서.

  아직 세기가 끝나려면 몇 년이 남았는데도 벌써 올해 초연의 타임 라인이 나왔다. 클라이브는 벌써 두 번의 데드라인을 넘긴 상태. 마지막 4악장의 끝부분이 남았을 뿐인데 도무지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 개의 상이한 박자, 그러니까 템포 루바토를 포함한 경과구가 적절한 장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떤 멜로디일까 자신도 궁금할 지경이다. 그는 1970년대 이후에 무조음악, 우연성 음악, 음렬, 일렉트로닉스, 음조해체 같은 모더니즘 적인 것 대신 여전히 멜로디를 중시해 초보수주의, 퇴행으로까지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전문화되고, 고립되고 메말라가서 그 오만함 때문에 청중과 격리된 음악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특기인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날이면 날마다 밤을 지새우는 등 오래 고민하다가 예전처럼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산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힘들여 능선에 올라 마음을 비우면 곧잘 멜로디가 떠오르고는 했던 예전의 일을 기억했던 거였다. 그리하여 갔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기 시작해 한참을 가니 저 앞에 여성 혼자 산행 복장을 하고 능선을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가 보다. 클라이브도 힘을 다해 드디어 첫번째 정상에 오른 순간 쏟아지는 햇살처럼 4악장에 쓰일 적당한 멜로디가 번쩍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 이거야. 집중, 또 집중해 수첩을 꺼내고 급하게 오선을 그었으며 쉼없이 콩나물 대가리를 그리고 있는데 바로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들. 앞에서 가던 여성과 허름한 차림의 남성. 남자가 여자의 손을 나꿔챈 거 같기도 하고, 배낭을 빼앗아 연못에 던져버린 건 확실했다. 저 사람들의 일에 참견을 하면 멜로디는 분명히 날아가버리고 말 터. 그는 자리를 옮겨 마치 테이블처럼 평퍼짐한 바위 위에서 멜로디를 끝까지 스케치하고 산을 내려와, 이제 등산의 목적은 말끔히 달성을 했으니, 밤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산 위에서 그들의 일은 그들이 알아서 했겠지.

  <저지>지의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는 요즘 판매부수 감소로 죽을 맛이다. 이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어서 은근히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죽은 몰리의 남편 조지가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만나서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이니, 자기 집에 들러달란다. 조지는 <저지>지의 지분을 1.5퍼센트 정도 가지고 있는 지분이 그리 많지 않은 대주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그래 밤에 조지의 집에 가서, 슬쩍 몰리의 방도 들여다보고, 진로인지 화사인지 쐬주도 한잔하는 와중에 조지가 슬쩍 서류봉투 하나를 건넨다. 벌써 뭔지 아시겠지? 그렇다. 줄리언 가머니의 드레스 스왑 사진. 버넌이 생각하기에 이걸 신문에 내기만 하면 판매부수는 말할 것도 없이 대박 가운데 대박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시라. 현직 외무장관의 드레스 스왑이라니. 갑자기 테스토스테론과 안드로메다, 아니, 아드레날린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버넌은 너무 기분이 좋다.

  좀 이상하지? 클라이브와 버넌은 확실히 진보적 인물이다. 근데 클라이브는 산 속에서 불량한 것이 확실한 남자가 홀로 산에 오른 여성을 거칠게 대하는 걸 모른 척하고 내려왔고, 버넌은 이 시대에는 트랜스베스티즘이 개인의 기호에 불과한 것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취향이 대중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하여 황금주의에 경배하려 한다. 이들 사이가 어떻게 될까? 클라이브의 행위를 버넌은 이해할 수 없고, 버넌이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클라이브는 용인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될까? 어떻기는 뭐, 절친 사이가 쫑나는 것이지. 내가 만일 몰리처럼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게 되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암스테르담의 의사한테 데려다 주겠어? 약속해? 좋아, 내가 그런 상태가 된다면 너도 그렇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알았어. 이런 사이면 절친 가운데 절친이다. 하여간 이쯤에서 뭔가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거 같은데, 내가 아무리 다른 결말을 생각을 해봐도 이언 매큐언이 소설 속에서 끝맺은 결론보다는 덜 획기적일 것이니 구라는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그냥 읽어 보시라. 2백쪽을 겨우 넘기는 짧은 장편이라 부담도 없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4-03-01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이언 매큐언과 존 쿳시 외모가 좀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서 헷갈리신 게 아닌지요?
저는 매큐언의 소설 네 권 -속죄, 칠드런 액트, 넛셸, 체실 비치에서- 읽어봤는데, 다양한 소재로 무거운 주제의 글을 참 잘 쓴다 생각했어요.
<암스테르담>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4-03-01 18:36   좋아요 1 | URL
하여간 좀 헷갈리는 건 맞나요? ㅎㅎㅎ 엄한 사람이 쓴 걸 읽지 않았으니 웃기잖습니까? ㅎㅎㅎㅎ

페넬로페 2024-03-01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스테르담, 읽다가 멈춘 상태인데 완독해야겠어요.
저는 아직 존 쿳시를 읽어보지 않았는데 불편한 지점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Falstaff 2024-03-01 18:38   좋아요 2 | URL
이 작품이 마지막 반전이 죽여주더라고요. 이 양반 머리 속이 궁금해지더라니까요. ^^

그레이스 2024-03-01 2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짧은 스토리 안에 아주 충격적인 질문을 임팩트있게 던지죠. 제 경우엔 그랬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좀 소름돋았습니다.
이언 매큐언 소설에는 항상 반전이 있는듯요.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강했습니다.

Falstaff 2024-03-02 05:42   좋아요 2 | URL
역시 결말 부분에 많은 분들이 허걱, 하셨군요. ㅎㅎㅎ 당연히 저도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