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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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1953년 발표 작품. 30대 후반에 쓴 장편소설. 아직 누보로망으로 선회하기 전이라 책은 수월하게 읽힌다. 여기서 “수월하게”라는 건 뒤라스의 작품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평온한 삶>이나 <태평양을 막는 제방> 같은 초기작품이 아니라서 이미 스토리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경우엔 딱 적당할 정도의 건조함이 있어서 좋았다. 완전한 심리소설.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 얼핏 보기엔 변덕일 수도 있고, 질투, 신경질, 히스테리일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 삶의 저층을 이루어 삶을 지탱해 나가게 만드는 장치인 인내와 배려에 더 가까워 보이는 감정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지를 보여준다. 얼핏 읽으면 <모데라토 칸타빌레>와 비슷한 느낌이다. 대서양-겨울과 지중해-여름의 차이는 있으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모데라토…>보다는 덜 버석거린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정강이뼈 부근 바닷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 한결 같은 무더위가 대기를 지배하는 이곳은 밤조차 누구에게도 휴식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며 힘들게 잠에 빠져 있건만 함께 온 젊은 가정부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라는 주인의 말을 결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라와 자크가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으로 휴가를 와 보니, 여름 휴가지로 자크는 아주 싫지는 않다고 하고, 사라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 해변가로 온 이유는 사라와 오랜 우정을 맺은 남자 루디의 추천 때문이었다. 루디 역시 아내 지나와 함께 조금 떨어진 숙소를 빌려 지내고 있는데, 이 커플은 12년 전부터 이곳에서 휴가를 나고 있으며 12년전 보다 이전에 이곳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 이 두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다이아나는 호텔에 숙박하고 있어서, 아이까지 합해 여섯 명이 일행을 이룬다. 이상 기후 때문에 파리와 베를린은 섭씨 42도를 넘어서고 로마는 45도까지 치솟는 여름이다.

  이들이 도착한 휴가지는 산에 둘러싸이고 바다에 면해 거의 완전히 고립된 지형으로 산에서 바다로 사라 부부가 묵는 별장 몇 미터 앞에 너르게 은빛 강물이 흐른다. 이 강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사라는 생각한다. 고립된 바닷가라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무덥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대전에 휩쓸리는 등 역사의 풍파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고립 지형이 전력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으니까. 이레 반이라니까 한 열흘 전쯤 루디의 별장 뒷산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하던 청년이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폭사해서,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산에 도착해 아들 시신의 파편을 찾고 있었다. 이제 작업은 끝났지만 갑자기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아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 나이든 어머니는 청년의 사망확인서에 서명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동네의 식료품점 주인은 이 노부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늘 산에 올라 함께 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은근히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기 바라는 것 같다. 이 사건 때문에 여름휴가지인 이곳에선 모든 무도회가 취소되었으며 마을 전체가 상중으로 변한 기분이어서 많은 휴가객은 죽은 청년의 부모가 빨리 떠나주기 바란다.

  산기슭의 강을 따라 모여 있는 삼십여 채의 집. 이들과 나머지 세상을 잇는 건 오직 바다로 가로막힌 7킬로미터 남짓한 흙길 뿐이라서, 삼십여 채에 세든 세계 각지의 휴가객들은 서로가 어떻게 휴가를 지내고 있는지 훤히 눈치를 채고 있다. 모든 휴가객은 사라와 자크 커플, 그리고 루디와 지나 커플이 왜 그런 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로 격렬하게, 자주 싸움을 하는 지는 알고 있다. 원래 이런 곳에서 여가, 수영, 보트, 낚시 다음으로 재미있는 건 같은 곳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라서.


  실제로 두 커플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고, 결혼한 대다수의 커플은 늘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는 거 아닌가? 극소수는 커플 중 한 명이 그냥 죽어 지내는 거고. 위에서 말한 동네 식료품점 주인이 그런 경우이다. 어찌어찌 결혼을 했는데 도무지 아내는 자신을 사랑하는 거 같지 않다. 자신은 아내를 정말 사랑하건만 아내는 오직 가게를 운영하고 확장하는 것에만 모든 정열을 쏟는다. 식료품점 주인은 아내가 하필이면 나 같은 남자를 만나서 사랑이 없는 삶을 사는 거라고 짐작해서, 아내를 위해 남자들과 가깝게 지낼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한테도 관심이 없고 남편의 이런 노력에 격하게 화를 낸다. 오직 가게 확장과 돈벌기에 몰두하던 아내는 결국 카운터에서 장부를 검토하다가 그 자세를 그대로 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신은 그만두고 아내가 하다못해 다른 사람을 사랑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 뭐 그렇다는 거다. 그게 진실인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눈 등장인물, 그리고 독자들도 알 방법이 없다.

  루디와 이곳 출신인 것 같은 아내 지나도 비슷하다. 루디는 지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으나 지나는 루디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사람들은 안다. 역시 독자도 안다. 지나 역시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의 생각과 다르게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지나는 매사에 남편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화를 폭발시키며, 그 강도가 가볍지 않아서 이곳의 휴양객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지나 역시 식료품점 주인과 함께 매일 산에 머물고 있는 지뢰 폭발로 죽은 청년의 부모를 만나러 가며 그들의 점심식사를 챙겨준다. 남편 루디는 점심을 먹든지 말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으면서.

  산에서 청년이 지뢰폭발로 죽은 다음 날, 이곳 해변에 멋있고, 빠르고, 어떻게 봐도 비싸게 보이는 보트를 몰고 한 남자가 등장한다. 장Jean. 약간 차갑지만 호감 가는 스타일의 남자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30대가량으로 보이는 싱글이지만 집에 아내가 있다고 나중에 말한다. 멋진 배를 아직은 얻어 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그룹 가운데 두 명이 남자의 보트를 타고 싶어한다. 루디와 (사라의)아이. 이틀 전 사라가 호텔에 가서 친구 다이아나를 부를 때 남자와 처음 대면한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떨떨하게 인식했고, 사라는 그가 그렇게 인식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런 건 원래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니까. 이후 이들은 이틀 연속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만나 대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말한다. “원하시면 제 배로 해안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이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역시 남편 자크는 본능적으로,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 늘 하던 대로 호텔의 캐노피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쇠공 놀이를 하는 시간에 사라가 남자와 슬쩍 자리에서 사라져도 알고만 있을 뿐 뭐라하지 않는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말릴 필요가 없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자크가 다이아나와 깊은 사이가 되는 것을 사라가 눈치를 챘으면서도 남편한테, 다이아나한테 말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만일 그것에 대해 말을 한다면 자신들 사이의 사랑이 한 순간에 증발할 것 같아서.


  자크가 짧은 여행을 제안한다. 지금 처한 상황을 바꿀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이지만 사라는 별로 관심이 없다. 처음엔 그랬다. 옛 로마 사람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의 후예, 고대 에트투리아인들의 공동묘지를 보러가자고. 그곳에 가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도 볼 수 있다면서. 사는 게 다 그렇다. 위기를 맞고, 전환을 하고, 그래서 다시 조금 더 살고. 그게 인생이지.

  흥미롭게 읽었다. 어떻게 이리 세심하게 그것도 건조한 문장으로 사람의 심상을 그려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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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23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채영주, <크레파스>
회요일. 조엘 해링톤,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
수요일. 이스마엘 카다레, <잘못된 만찬>
목요일. 정지돈,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
금요일. 이언 매큐언, <암스테르담>

반유행열반인 2024-02-23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ㅋㅋㅋ팔백작님 일목요연 한바닥 정리 보니까 소설 읽은게 다시 살아나는 것 같네요. 사람들이 독후감만 읽고 책 안 읽게 되면 어쩝니까? ㅋㅋㅋ 저는 뒤라스 소설에 비교적 젊은 애들이 유럽 여기저기 휴양 다니고 권태 느끼고 하는 거 보면 부럽다 못해 배아프더라구요. 야 그렇게 무료하면 책 읽어 책, 헛짓거리 말고… 난 이놈들처럼 지겨워 죽을라고 안 하고 잘 놀 자신 있는데…보내줘 지중해ㅋㅋㅋ

Falstaff 2024-02-23 16:39   좋아요 0 | URL
앗, 독후감이 그리 상세합니까? 에구... 조심해야겠네요. ㅜㅜ
ㅎㅎㅎ 휴가 다니는 거 저는 별로 부럽지 않던데요. 걔네들도 결국은 인구의 1~5% 인간들한테만 허용되는 거더라고요. (수치는 믿지 마시고요. ㅋㅋ)

blanca 2024-02-2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최근 <모데라토 칸타빌레> 읽었는데 스토리가 사라졌네요. 대체 어디까지가 서사고 어디까지고 상상인지 구분이 잘 안 가더라고요. ^^ Falstaff님 리뷰 보고 <태평양 옆 제방> 읽었는데 저의 최애 작품이 되었답니다. 진짜 잘 쓰는 작가인 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4-02-23 09:57   좋아요 0 | URL
<태평양 옆 제방> 저도요! *덥석!* 사람들이<연인>보다 이걸 읽어야 하는데....

Falstaff 2024-02-23 16:42   좋아요 0 | URL
아휴,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저는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좀 더 좋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뭐 중요한 건 아닙니다. 뒤라스가 매혹적인 작가니까요. 저도 아래 잠자냥 님 댓글처럼 <연인> 또는 <애인>이 뒤라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것이 싫은 인간입니다. ㅎㅎ

잠자냥 2024-02-2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폴스타프 님이 5별 줄줄은 몰랐어요. ㅎㅎ

Falstaff 2024-02-23 16:43   좋아요 1 | URL
세련된 심리묘사가 있잖아요. 그것만 가지고도 별5 안 되겠습니까? ㅎㅎㅎ

moonnight 2024-02-23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 구판으로 읽었는데 어렴풋이 줄거리가 떠오르네요^^ 예쁜 책으로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Falstaff님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2-23 16:4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진짜 별 거 없는 독후감인데... ^^;;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시선 478
신동호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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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강원도 화천 출생에다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데뷔했으면, 아무리 지방신문이라도 만 열여덟 살 때니까, 이거 신동 아냐, 신동? 경복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입석부근> 한 번 내봤다가 덜컥 당선한 황석영 이후에 아주, 아주 가끔 등장하는 영재 말이지. 대개 강원도에서 공부 잘하면 춘천으로 유학해 춘천고등학교 다니고 다시 서울로 가서 명문대학 졸업하는 게 코스인데, 시집 읽어보면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고향에서 역시 대처인 춘천 나와 춘천고등학교 가려고 했는데 때를 잘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평준화 시대를 맞아 춘천고등학교 대신 강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재수 한 번 하고(그럼 재수하면서 신춘문예 먹은 거야?) 서울로 가서 왕십리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대학, 한대 졸업했다. 전형적인 86세대답게 대학 다니며 민주화운동 하다가 남산, 당시 이름으로 안기부 수사실에 끌려 가 매도 좀 맞았고, 마흔여덟 시간동안 잠도 못 자고 그랬던 모양이다. (겸양의 말씀이겠지만) 거물은 아니고 수사관들 말에 의하면 피라미였단다. 대학 졸업하고 뭐 해서 먹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가 들어 아이들 낳고 왕십리, 답십리, 미아사거리에서 창문여고 쪽으로 쭉 들어간 장위동 등 주로 강북지역에서 가난한 살림 지지고 볶으면서도 중대 예술대학에서 석사, 모교인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위는 안 땄지만 박사과정 수료한 것이 2001년. 시집도 내고 산문집도 내고,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시절은 고단했으리라. 가난한 시인이라는 건 이렇게 글로 써 놓아야 멋도 있고 폼도 나고, 가오도 잡고 그런 것이지, 정말로 가난한 시인, 그것도 시인 부부라면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있다가 출판사에서 전화해 오늘 조촐하게 누구 출판기념 겸해서 회식합니다, 하면 부리나케 버스 타고 가서 허리띠 끌러놓고 내일 먹을 거까지 와구와구 퍼먹는 형편을 뜻한다. 이 궁상맞은 시절도 세월이 가면 다 추억이 되는 법. 시인은 왕십리 시절, 답십리 시절, 장위동, 상계동 시절 모두 아련하게 그때는 그랬지, 이젠 이런 단계까지 왔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7년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하고 빈 자리를 후보 문재인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해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그러자마자 신동호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스카우트, 임기가 끝날 때까지 꼬박 5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 쓰는 일을 했다. 지금은 한신대학 초빙 특강 교수를 한다는데 요즘 대학엔 “초빙 특강 교수”라는 것도 있나?


  나는 정치적으로 이쪽, 저쪽을 따지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방면은 시를 읽는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걸 먼저 밝히고 시작하자. 우울한 대한민국은 이짝과 저짝이 워낙, 모세가 건넌 홍해바다처럼 짝 갈라져서 이런 인물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여차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애초에 외밭에서 짚신 갈아 신지 않겠으니, 허접한 독후감 읽는 분께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라. 그래도 오해하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알아서 하시고.

  이 시집은 몇 달 전, 어쩌면 일년 전 쯤에 읽다가 던져둔 거다. 시집 열어보니까 전에 읽으면서 책갈피 꽂아둔 것이 몇 개 보여서 알았다. 그때 이이가 19대 청와대 인사란 것도 몰랐다. 그땐 왜 읽다가 말았을까? 시집은 절대 분량이 적어 읽다가 만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어차피 시인 신동호의 약사를 잠깐 짚었으니 그 순서대로 시를 읽어보겠다. 먼저 시인의 아버지. 우습게도 아버지는 <금강전도金剛全圖>에 생몰을 소개한다. “아버지는 여수에서 나셨고 / 춘천에서 숟가락을 놓으셨다” 라고. 그러면 전남이 원적지인가? 그냥 출생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먼저 돌아간 큰아버지가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 파로호 어촌계 소속의 민물 어부로 일하다가 먼저 숟가락 놓으신 후에 지금 작은형이 뒤를 이어 배를 탄다고 하니. 이이가 금강산이니 북한 사람이니, 이 속에 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아마 문 전 대통령을 따라 북한을 방문했고, 금강산 구경도 했으며, 북한 작가들과 저작권 논의도 해서 그랬을 것이다. 북한강도 그래 빠지지 않고 금강산 발원이란 말을 보탤 수밖에. 맑고 넓고 추운 북한강의 명물 <황쏘가리>에 얽힌 큰아버지 생각. 



  송사리만 할 때 송사리를 잡으러 강에 나갔다가 수면 가까이 올라온 황쏘가리를 보고 숨이 턱 막혔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는 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강의 내밀한 비밀을 알게 된 듯, 나는 어렵게 송사리를 놓아주었다.


  큰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화천 가는 길, 헤드라이트 불 앞에 장수하늘소가 나타났다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멀어져갔다. 메뚜기나 물방개에서 느끼지 못한 위엄, 모든 생물에게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걸 남겨주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1, 2연)



  황쏘가리와 장수하늘소.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 변두리에 가면 사슴벌레하고 하늘소는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 장수하늘소는 못 봤다. 그게 어른 손바닥 만하다는데 화천에는 아직도 아주 드물게 있는 거 같다. 얼마 전에 화천에서 죽은 소설가 이외수도 장수하늘소 이야기를 한 적 있는 걸로 안다. 뭍에 장수하늘소가 있으면 물에 있는 것이 황쏘가리. 황쏘가리도 못 봤다. 팔뚝 만하다고 한다. 쏘가리는 요즘엔 양식을 해서 매운탕으로도 먹고, 안심하고 회로도 먹지만 여전히 오지게 비싸다. 하여간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정말로 본 적 있는 고향 화천과 큰아버지가 운전한 오토바이의 추억. 시집을 읽으면 과장해서 한 열번은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가 나오고 다섯 번은 큰아버지와 작은형이 등장한다. 시인한테 고향이라니.


  화천 사람이 객지인 춘천과 서울에서 하숙을 했으니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했을꼬? 이 가운데 가장 궁상스러운 것이 먹고 사는 문제다.



  라면 한꺼번에 많이 끓이기, 그 실패와 성공의 역사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은 사춘기 소년들에게 제격이다.

  휘청이는 삶은 그때 몸에 밴 것이다.


  정환네 엄마는 도청의 꽤 높은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종종 정환이 돈으로 라면을 사서 끓여 먹었다. 성질 급하고 배고팠던 우리는 매번 물이 끓기도 전에 라면을 모조리 넣어 버렸다. 퉁퉁 불은 그 맛없는 라면 앞에서 툴툴대면서도 서로 먼저 먹겠다고 직진했다. 나는 세상이 끓기도 전에 몸을 던져 번번이 쓰러졌다.


  왕십리, 무학예식장 뒤편 자취방은 재래식 화장실 옆에 있었다. 다섯 식구의 옆방은 가난으로 부산스러웠고, 똥을 참는 버릇은 그때 생긴 것이리라.


  조그만 아이들 셋을 불러 앉혀놓고 라면 두개로 넷이 배불리 먹는 요리를 했다. 잘게 부숴 불리면 엄지만큼 굵어진 라면이 배를 채웠다. 어느 날 말도 않고 삽십만원 보증금에 삼만원 월세방을 떴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세상이 끓을 때까지 아이들이 기다려줄까 생각한다. 그럴 거 같다. 아직도 똥이 잘 안 나오는 건 나뿐일 것이다.


  지금도 가끔 춘천시 교동 언덕 위 우리의 아지트,

  정환네 집으로 간다.   (전문)



  그림 그려지시지? 이런 궁상이라니. 그런데 나는 넷째 연, 아이들 셋을 불러서 라면 두 개를 끓여 먹는 장면에, 이 아이들이 누굴까, 궁금했다. 자기 아이들? 조금 크면 집에서 키우는 개 푸들의 털을 깎다가 바리캉 기름이 없어서 도중에 그만 둔 일 때문에 아빠를 들들 볶는 사춘기 소녀가 되는? 거참 모르겠는 걸. 시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 셋을 두었다면 빨라도 90년대 중후반일 거 같은데 서울에서 어떤 방이 보증금 삼십만원에 월세 삼만원일까? 혹시 고등학교 시절 춘천에서 동네 꼬마들 불러서 끓여준 거 아냐? 시간 배열이 거 좀 수상하다.

  하여튼 왕십리 똥파리 무학예식장 뒤편의 자취방에서 심한 변비로 시달리고 있을 때, 시인은 속칭 ‘달려갔다.’ 혁명을 믿고 혁명을 위해 복무했다는 대가로. <경장更張>, 갑오경장 할 때 경장이란 시에서 노래하기를:



  경장更張



  ‘경장’의 재발견. 마음속에서 잘 떠나질 않는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고쳐 맨다는 뜻.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용맹정진하기엔 미련이 많은, 의지박약형 인간인 내가 혁명을 꿈꾼 건 오직 스무살 뜨거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온 ‘광주’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피 냄새는 늘 두려웠다. 늦었지만 고백한다.


  ‘경장’에 담긴 두가지 의미가 맘에 든다. 거문고를 부숴버리지 않고 줄만 고쳐 맨다는 것, 그 결과가 조화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  (전문)



  원래 그런 거 아냐? 두렵기 때문에 더 용감해지는 거. 잃을 것이 없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거. 하긴 워낙 깡다구가 좋은 인간들도 있더라. 정보과 형사가 두다다다닥 두드려 패자 죽자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 몰라요, 몰라, 씨발, 하던 선배. 뭐야, 씨발? 아, 아니예요. 아파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취소, 취소. 이러던 양반은 나중에 정당 언저리에 왔다갔다 하더니 공천 한 번 못 받고 찌그러져 살더라.

  근데 내가 이 시집을 읽다가 경천동지할 만큼 놀란 건, 시인이라서 그런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고 발랄한 통일관이었다. 신동호가 경애해 마지않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가 여전히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통일 한국, 스페인어로 “깔마 꼬레아”를 여행할 때 필요한 가이드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시의 제목은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



  깔마 꼬레아에서 가볼 곳은 세곳이다.

  평화협정 서명한 판문점,

  New Triangle Age를 공표한 금강산,

  바다 위 어디, 하나의 꼬레아 기념탐.

  칼로는 제주도 유채꽃을 추천했지만

  나는 개마고원에서 들쭉을 볼 작정이다.


  입국은 평양 순안공항으로 정한다.

  평부선을 타고 봉동역에 가서

  판문점까지는 자전거를 타면 된다.

  안내서는 인천공항을 추천한다.


  전쟁과 정전, 종전과 평화.

  과거는 팜파스의 소들처럼 느긋하다.

  협정서에 남겨진 서명은 아직 힘차다.

  강대국 사이에서 이뤄낸 반전은

  두고두고 세계의 교과서에 남을 것이다.  (부분)



  이 시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에 필적할 유일한 시집을 고르라면 딱 떠오르는 거 읎으셔? 나는 우리나라 19대 대통령을 역임한 문재인, 그냥 이렇게 호칭하고 싶은데 그러긴 뒤가 좀 캥기고, 마땅하게 붙일 건 습관적으로 “각하” 정도가 어울릴 것도 같지만 그건 전임 대통령이 싫다고 길길이 뛰실 거 같아서, 하여간 그 양반한테 외람되지만,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썼다고 추정되는 <용비어천가>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 스스로가 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앞으로 5년 안에 통일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휴전선이 열리는 날, 드디어 그날이 오면, 나는 집을 팔고 회사도 때려치워 퇴직금 들고 묘향산 초입으로 달려가 토종닭 집을 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던 종자다. 나는 닭 모가지 비틀고, 마누라는 카운터 보고, 주방과 홀은 현지 고용할 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었던 인간으로, 신동호의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순진한 통일관을 훔쳐보자 혀가 쑥 나와버렸다. 아무리 문정부의 비서를 했다고 하더라도 50대 중반이 이렇게 순진하면, 아이고, 정말로 해먹을 거라고는 시인밖에 없는 사람…… 맞지? 아무리 시인이라도 너무 순진한 중장년은요, 꼴이 우스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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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제안들 31
에두아르 르베 지음, 한국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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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워크룸 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를 주목하고 있다. <탐욕>, <저 아래>, <아이는 왜 플랜타 속에서 끓는가>, <이아생트> 같이 한 방에 훅 읽어 치우기 버거운 작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는데, 물론 아닌 건 아니겠지만 진도 나가기 막막하더라도 진중하게 날 잡아 정독할 만한 작품이 많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확 사서 읽기엔 조심스럽다. 르베의 <자살>은 도서관 개가실에 꽂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와 보는 즉시 대출해서 읽었다. 별점을 주면 네 개는 좀 박하고, 그렇다고 다섯 개는 많은 거 같고, 뭐 이런 수준.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에두아르 르베는 1965년 1월 1일에 태어나, 나이 계산하기 쉬운 한 생애를 살았는데, 88년에 부모의 말씀을 잘 듣는 아들이라 고등경제상업학교에서 수학하다가 1991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① “고등경제상업학교”는 경영대학원ESSEC이며, ②그림을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거다. 개인전도 하고 그러다가 1995년에 인도 여행을 한 다음부터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어 사진과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7년에 출판사 편집자에게 <자살> 원고를 송부한 며칠 후 진짜로 자살해버리고 만다. 이 책 <자살>이 바로 그 원고이며 2008년에 출간되었다. 겨우 마흔두 해를 살다 갔으면서도 참 바쁜 일생을 살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까? 죽기 전에 <자살>이란 원고를 보내고 곧바로 정말로 죽어버리면, 처음 이 글을 작가가 죽기 전에 읽어본 사람은 세상에서 딱 한 명, 출판사 편집자밖에 없다. 그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P.O.L 출판사인데 애초에 르베가 자신의 원고를 이 출판사에 맡긴 이유가 조르주 페렉의 작품을 출판한 곳이라서였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3월에 한 번 더 할 생각). 그러고 보니 르베의 글이 페렉하고 결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만일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진짜라면, 세상에서 가장 진한 농담 한 번 하고 간 작가가 이 에두아르 르베 아닌가? 이런 사람 있으면 그냥 아는 사람 수준을 유지해야지, 깊게 친교를 나누고 싶으면 진심을 다해 지지해줄 마음을 가져야 할 거 같다.


  일은 8월의 어느 토요일에 벌어진다. 2인칭 소설이라서 ‘너’는 하얀 테니스 복을 멋있게 차려 입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테니스 코트가 나온다.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 달린 코트였으나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또는 있기는 있는데 그리 중요한 관리항목이 아니어서 클레이 코트 표면이 울퉁불퉁, 작업이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어떤 때는 풀이 이곳저곳에 나 있다. 평소엔 동네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말타기도 하는 곳이다. 당연히 네트가 늘어져 가운데 부분이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나 동네의 심심한 아마추어는 이거라도 감지덕지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렇게 알고 사는 게 만수무강에도 좋다. 정원을 지나다가 ‘너’는 아름다운 아내에게, “아참 라켓을 두고 왔네. 이런 정신하고는. 잠깐만 기다려. 내가 얼른 갖고 올게.” 말하고 몸을 홱 돌려서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누구든지 테니스 라켓은 현관 입구 수납장에 두는 것이 보통이라서 이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너’는 현관을 그대로 지나 지하실 방향으로 가더니 정말 지하 창고로 내려간다. 아내는 여름 오전의 기분좋은 더위를 즐기면서 아, 날씨가 좋기도 지랄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마로니에 교정 잔디밭에 자빠진 이명준 흉내를 잠깐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크지 않게 총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동시에 불길한 생각이 번쩍 들어 서둘러 집으로 달려들어가, 아이고 여보 어디 있소, ‘너’의 이름을 불렀지만 테니스 라켓을 두는 현관에도 없고, 침실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고, 물이라도 마시러 갔나, 부엌에도 없어서 정신을 좀 차리고 두리번거렸더니 지하창고 가는 계단실 문이 열려 있는 거였다. 그 안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화약 냄새. 아내는 사실 그게 화약 냄새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거였다.  아내가 바들바들 떨리는 걸음으로, 벌써 얼굴을 창백하게 변한 채로 한 발 한 발 내려가봤더니, 에그머니, ‘너’를 발견하고 말았다.

  탁자엔 만화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 ‘네’가 지상에서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만화이며, 해당 페이지겠지만, 세상의 어느 아내가 남편이 스스로 총을 쏴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와중에 탁자 위에 펼쳐진 만화책을 들여다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너는 권총을 쏴서 죽지 않았다. 사냥용 소총을 입에 넣고 이로 단단히 고정한 다음에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헤밍웨이 식 자살을 감행해버렸다. 소총으로 자살을 할 때 섣불리 심장이나 관자놀이 같은 곳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가는 발사할 때의 충격 또는 진동에 의하여 빗맞아 자살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아는 너는 그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로 단단히 물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 자살에 실패하는 것보다 얼굴의 한 쪽이 날아가거나 심장을 멀쩡한데 왼쪽 폐 한 쪽이 거덜이 나서 평생 쌕쌕거리고 숨을 쉬어야 하는 팔자가 될까봐 더 걱정스러웠는 지도 모른다. 총구를 턱에 대고 발사했다가 실패를 하면 턱과, 혀와, 코와, 시신경이 총알 한 방에 몽땅 날아가서 씹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냄새도 못 맡고, 보지도 못한 채 평생 괴물의 모습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걸 알아서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하여간 ‘너’는 자살 하나만큼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렇다고 축하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내는 네 몸 위로 쏟아져 큰 소리로 울었다. ‘너’는 들을 수 없었겠지만, ‘너’의 아내는 크게 울면서 ‘너’에게 몸을 던지고, 애정과 분노로 가득한 너의 가슴을 내려친다. 그렇다고 CPR은 아니었다. 피칠감을 한 ‘너’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또는 “개새끼야, 일어나” 부르짖다가 다시 울다가 네 위로 쓰러진다. 15분 동안 ‘너’의 아내는 똑 같은 일을 반복한다. 울다가, 부르짓다가. 15분이 지나 위층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너’의 부부와 함께 테니스를 치기로 약속했던 커플이다. 아내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상대방은 말한다.

  “안녕하세요. 안 나오셔서요. 무슨 일이 있나요?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가 대답한다. “그가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이렇게 화자는 사건을 먼저 보여준다. 이후 ‘너’의 열일곱 살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죽은 이후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애초에 ‘너’는 여든다섯 살에 죽기로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미리 묘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생몰연도를 새긴 비석도 구상을 해 놓았다. 여든다섯이 되는 해까지 서양의 공동묘지에 자주 등장하는 나그네는 ‘너’의 묘비명을 보고 어처구니없는 사망연도, 죽음예언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도 있고, 무슨 경거망동인가 하면서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 해가 오면 아제는 ‘너’의 묘비명을 보고, 네가 죽었건, 여전히 살아 있건 간에 이미 죽어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아무도 놀라운 눈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죽음, 특히 자살에 이르는 가장 능숙한 인도자는 우울증이라는 것을.

  날로 심각해지는 ‘너’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하여 ‘너’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안타깝게도 ‘너’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의사를 바꾸어 다시 처방을 받아도 마찬가지였고, 또다른 의사가 바꾸어준 처방약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너’는 견디지 못해서 진료와 처방약 복용을 끊어 버리기로 결심을 했고, 정말로 약을 끊었으며, 급기야 ‘너’의 목숨까지 끊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이다. 실생활에서 르베는 우울증과 관련없이 자신의 죽음을 퍼포먼스의 하나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냥 내 추측이다. 제일 큰 의심은 당연히 중증 우울증이겠지만 간혹 만날 수 있는 극단의 예술가들이 아주 간혹 저지르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퍼포먼스도 있으니. 아쉬운 일이다. 죽음보다 아쉬운 일은 세상에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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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2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왜 그랬을까요?!
이유야 말해줘야 알겠지만, 작품도 쉽게 다가가기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거였을까요
암튼 이 제안들 시리즈 눈여겨 보게되는 아우라가 있는듯요.

Falstaff 2024-02-21 18:28   좋아요 1 | URL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책 읽고 벌써 한 달 이상 지나서 딱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퍼포먼스도 있었겠지만 우울증 증세가 훨씬 더 심각해지는 걸로...
제안들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 세계문학 시리즈보다 많이 어려운 건 사실이더라고요. 그러나 독파하면 그만큼 더 좋다는 생각이 드는.. 쉽지 않은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4-02-22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작가도 소설도 엄청나네요. 뭔가에 홀린듯이 읽었네요.
제안들 시리즈 몰랐는데 한 번 둘러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4-02-22 17:23   좋아요 0 | URL
아무쪼록 도서관 이용하심이.... ^^;;;
 
예술과 거짓말
지넷 윈터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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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와 <프랭키스슈타인>을 재미있게 읽어서 짧은 소설 <무게> 속에서 펼친 묵직한 담론을 잊었다. 윈터슨이 무작정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작가인 것으로 여겼다가 짱구됐다.


  기원전 3백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40만 권의 영광스러운 책을 보관했다. 40만 권, 하니까 에게, 우리나라 작은 대학 도서관보다 많지도 않네, 하지 마시라. 40만 권 전부 양피지 필사본이다. 내구성이 짧은 새끼 양의 가죽에 쓴 글이어서 수 백명에 달하는 필경사들이 쉬지 않고 필사를 해야 했으며, 책의 여백엔 역시 수십 수백 명의 화백이 총천연색으로 놀랄만큼 아름다운 삽화를 그려 넣어, 사치의 극에 달한 화려한 책들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작중 등장인물인 돌 스니어피스는 말한다.

  “어차피 나한테 책은 변기에서 일어나면서 뒤 닦을 때 쓰는 깔끔한 손수건 상자에 불과하니까.”

  돌 스니어피스, 이 이름은 한글로 백 번 쓰는 것 보다 영문으로 써야 좋다. Doll Sneerpiece. ‘돌’은 이름이면서 ‘인형’으로 각주엔 나오지 않았지만 다분히 허리하학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Sneer비웃음, 경멸. piece조각, 비웃음, 경멸을 받을 만큼 작은, 큼큼, 뭔지 아시겠지? 이래서 돌 스니어피스의 직업은 말을 미리 해주지 않아도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

  세계 역사상 거의 최초로 등장하는 인간 여성이 기원전 6백년 경의 시인 사포다. 당대에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고 하지만 지넷 윈터슨의 주장에 의하면 르네상스 시기에 한 심통맞은 부르주아가 여자가 무슨 시를 쓰냐 하면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포의 저작을 싸그리 없애 버렸다고 한다. 이제 사포는 사피스트saphist, 레즈비언lesbian 등 이름과 지명에서 여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로만 남았다. 자신의 시 모두가 무참하게 학살당한 시인. 사포는 지혜의 뮤즈인 소피아와 동성애에 빠졌다고 하는데, 사실 사포가 정말로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누구 확실한 증거나 기록을 아시는 분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람. 아마 없을 걸? 확실한 것은 기원전 6백년경에 사포라는 여성 시인이 있었으나, 한 편의 시도 남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현재의 사포는 섹슈얼리스트로만 남았다. 빼도박도 못할 죄인 비슷한 처지의. 우울한 사포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남아있는 자신의 원고를 앞에 놓았다고 치자. 이제 몸이 거의 투명한 지경에 이른 사포가 조금도 표정이 바뀌지 않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자필 원고의 양피지를 넘기는 순간, 막 닿은 손가락에 그만 양피지는 바스슥 날아가버릴 것이다. <라셀라스>를 쓴 그 새뮤얼 존슨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새뮤얼 존슨 박사가 단언했다시피 “여자는 시인이 될 수 없다”니까 이제 인류에게 존재하는 사포는 기만자, 여자들을 유혹하는 악명 높은 유혹자, 독toxin, 열 번째 뮤즈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독자가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인 지넷 윈터슨이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에서 밝혔듯이 동성애자라는 것. <예술과 거짓말> 그리고 <프랭키스슈타인>을 읽어보면 이젠 동성애자에 가까운, 무성이나 팬섹슈얼 또는 굳이 젠더의 개념이 없는 그냥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그리스 시대엔 에이섹슈얼이나 팬섹슈얼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존재하더라도 주장할 수 없었으니 사포와 소피아를 동성 커플로 정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엔 사포와 소피아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돌 스니어피스를 내세워 사포와 없어진 그의 시를 상당한, 쉽게 따라가기 벅찬 메타포로 그림을 그려내는데, 아이고, 난 손 들었다. 글/주장을 이해하기는커녕 따라가기도 벅찼다. 사변이 확장되면서 어느 선을 넘어가면 이런 주제가 아니더라도 손을 들고 백기투항할 밖에.


  원래 이름은 프레데릭이지만 집안에서 가까이 지내는 늙어 꼬부라진 추기경이 프레데릭을 ‘헨델’이라 부르면서 이름이 ‘헨델’로 굳어진 남자. 어려서부터 금욕적인 취향과 사색적 천성으로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신학교의 의학도 출신으로 현재는 암 전문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에 권위를 지닌 의사다. 요즘에는 암 수술도 하지만 암과 관계없이 유방절제술을 받기 원하는 여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세월이 변해 결혼은 이제 원초적 미스터리 또는 유전적인 인식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헨델은 사랑이나 육욕의 감정을 느끼고자 간절히 원하지만 애초에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다. 동료들은 헨델이 냉정하게 거리를 둔다고 평할 뿐이다. 거의 매주 삶과 죽음이 자신의 손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진중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착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는 의사이고, 가톨릭이며, 여성을 숭배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동정남이자 사상가이며 바보다. 이제 도시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지만 쉽지는 않다. 가톨릭이라는 인생의 든든한 징검다리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져 집게 하나로 수면에서 버티고 있던 헨델은 신앙이 삶의 안전벨트가 아님을 깨닫고 만다. 결국 집게를 놓고 미지의 조류 속으로, 낯선 바다로 떠나려 하는 헨델.

  그러면 역사 속의 큰 음악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영화 <카스트라토> 속에서 우리가 본 헨델.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가장 좋아했지만 실생활에서 거세당한 카스트라토를 천시했던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마흔 개가 넘는 오페라 속에는 한 편도 빠짐없이 원래 카스트라토 배역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극고음의 소프라노 음역대는 아니고, 여성 드라마틱보다 강한 음성, 표현하기 힘든데, 쇳소리처럼 날카롭다는 뜻이 아니라 목소리 속에 힘이 든 목소리를 좋아했다. 작품 속에 실제 녹음한 <장미의 기사> 마지막 삼중창을 예로 들어 원수부인을 카스트라토가 노래한다.

  일찍이 20세기 초반에 명성을 누려 극도로 부유하게 살던 카스트라토가, 당시 젊은 사제, 훗날의 추기경과 동성연애 관계에 있다. 세월이 흘러 젊은 사제는 다 늙어 기름이 빠진 추기경이 되었으나 젊은 남자를 찾는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적인 만족보다는 젊은 시절에 감탄해 마지않던 카스트라토 목소리를 갈구하는 음악적 취향이 훨씬 더 강하다. 하지만 거세당한 어린 아이를 어디서 구하나? 유럽에서는 돼지를 놔서 키우는 일이 잦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거세 남아의 생식기는 거의 돼지들이 뜯어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내시 집안에서는 거의 대부분 집에서 키우던 개들이 뜯어먹었다. 지난 세기에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읽었다, 구라 아니다. 여기에 유럽과 우리나라 공통으로 가난한 부모가 아들만이라도 굶지 않고 살라고 고의로 거세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지만. 유럽은 칼로 자른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머리카락으로 단단히 묶어 놓으면 몇 달 후에 같은 DNA를 가지고 있어서 부작용 없이 잘라졌다고 한다. 이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의 교양. 문제는 고환이다. 음경의 존속 여부와 관계없이 고환이 없으면 갈증도 없다. 고환을 내버려두고 음경만 잘라버리면,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보나, 터질 것 같이 욕망은 넘쳐나는데 해소할 기재가 없게 된다.

  여기까지 달렸으니 헨델의 끝을 보고 싶다. 그러나 참겠다. 독자를 놀라게 할 장면은 안 알려드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여성이다. 피카소의 아버지 잭 경은 수년에 걸쳐 55점의 그림을 주문 제작한 미술애호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55점 전부 자신의 초상화다. 경의 생각으로 하면, 그림 그리는 여자는 우는 남자하고 같다. 둘 다 제대로 하지 못 한다나? 그래서 딸의 미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미술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면서 18세 생일날 베이지색 고무장갑과 긴 에이프런을 선물하며 겨자 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라고 한다. 피카소는 정말로 겨자 공장에 들어가 노란 색으로 그림 연습을 하더니 숨어있던 재능과 그걸 응용하는 재주로 로열 아카데미에 들어가 과정을 끝마쳤다. 하지만 왕립 아카데미를 끝내고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천재성이 필요한데 스스로 보기에 더 이상은 아쉬운 일이었다. 오직 순미술만 염두에 두는 피카소에게 앞날을 위한 선택은 딱 두 가지뿐이다. 화가가 되거나 아니거나. 아버지는 여전히 그림은 테스토스테론 과잉의 표시라서 딸은 균형잡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체 또는 시체상태의 인간이 되라는 것.

  아버지 잭 경은 자수성가한 부자이다. 비록 아내가 거액의 지참금을 가지고 와서 그걸 부동산 투자에 쓰는 바람에 땅 짚고 헤엄친 것이긴 하지만 아내가 내 소유니까 아내의 돈 역시 내 것이라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이상한 곳/것에 인색한 점이다. 피카소의 부모 역시 예외가 아니라 집도 넓고 방도 여러 개이건만 아이들 방을 배정하지 않고 피카소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남매를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게 했다. 아빠는 그렇다 치고, 엄마는? 간단하다. 이 집에서 아빠가 시체이듯이 엄마도 시체, 오빠도 시체였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 뇌 속에서는 아무런 화학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요구하고 떼쓰고 뺵빽 우는 건 피카소 하나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다섯 먹을 때까지 오빠하고 한 방에서? 그렇다. 부모가 미친 연놈이지 뭐. 오빠가 어렸을 때는 괜찮았는데 다리 사이에 칫솔처럼 털이 돋을 때부터 일상적인 폭행이 일어났다. 세월이 감에 따라 오빠는 체격도 건장해지고 완력도 대단해졌다. 오빠가 요구하면 피카소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냥 눈 감고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나갔다. 턱뼈가 부러졌고, 팔목과 발목도 부러져봤으며 팔꿈치 뼈도 깨진 적이 있다. 엄마한테 말을 해보지 그랬느냐고? 어째 신부님하고 똑 같은 말을 하실까? 심지어 고백성사를 핑계로 해결을 바랐지만 고해신부도 집안 일이니 엄마한테 이야기하라고 했을 뿐이다. 엄마는 아냐고? 안다. 피카소가 예민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떠든단다. 오빠가 그랬을 턱이 없단다. 진짜로 그렇게 믿는 게 아닌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백일하에 드러내기는 더 싫다.

  그리하여 피카소 역시 집을 나와 열차에 올라, 이제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한 헨델을 만나면서 모든 이야기가 한 곳으로 집중하게 된다. 나는 소양이 부족해 사포에 관련한 담론을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뭐. 수양이 부족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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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모사의 눈부심 - 문학세상 외국소설선 1
쥴퓨 리반엘리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세상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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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쥴퓌 리바넬리의 소설이라고 해서 관심 폭발했다가 폭삭 망했다. 리바넬리는 <살모사의 눈부심>을 발표해 1997년에 발칸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발칸 문학상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냥 튀르키예 국내에서 주는 게 아니고 문학상 본부는 불가리아 소피아에 있으며 발칸 반도 뿐 아니라 발칸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의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꽤 크고 중요한 문학상이라고 이 책을 번역한 이난아가 설명한다. 이난아는 튀르키예 유학 막바지에 읽고 “동화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감싸인 문체”에 매료되었다고 적었다.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이 제일 아쉬운 점이 바로 이런 거다. 원어로 읽으면 해당 언어의 특유한 울림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반면, 번역서는 아무래도 스토리 위주로 감상하는 게 주 목적이 되니까. 그래서 미리 말하고 넘어간다. 오늘의 독후감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작품의 스토리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 리바넬리의 작품으로 세 번째 읽는 것이지만 대단히 재미있게 읽은 <세레나데>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문장의 공감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의 정치 관습 가운데 하나가 술탄에 새롭게 즉위한 황제는 자신의 동복, 이복 형제들을 싹 죽여 없애는 것이다. 물론 오스만 제국 만의 유일한 것은 아니다. 동로마제국에서도 덜 떨어진 황제가 즉위할 경우에 형제들을 몽땅 죽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여간 발칸 지역에서는 용납이 되던 관습이었던 모양이다. 오스만이라고 해서 모든 술탄이 자기 형제들을 몰살했던 건 아니다. <살모사의 눈부심>에 등장하는 술탄, 17세기에 어머니에 의한 쿠데타로 실각한 이브라힘 1세라고 읽지만 결코 실명으로 등장하지 않는 술탄 역시 맏아들이 아니었다. 생각해보시라. 젊은 술탄이 즉위해 동생을 몽땅 죽였다가 보름 후에 새 술탄이 밥 잘 먹고 무슨 탈이 났는지 밤새 토사곽란 하다가 새벽에 숟가락 놓으면, 왕조가 하루 아침에 무너져버리게? 선대 술탄인 아버지 역시 삼촌들을 몽땅 죽였을 테니까 조카들도 남아 나지 않아 완벽하게 대가 끊어져 버렸을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말이 그렇지 사실은 핀치 런너 한두 명은 내버려 두었다. 의심스러우면 이브라힘 1세를 검색해보시라. 술탄 했던 이복형, 동복형도 있고, 삼촌도 있고 하여간 있을 건 다 있었다.

  바로 전대 술탄이 친형인 무라드 4세. 당시엔 일상다반사였던 전쟁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암만해도 후방에서 쿠데타가 벌어지면 진퇴양난이라, 출정하기 전에 동생들을 싹 죽이려 들었다. 작품 중에는 워낙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미친 왕 비슷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 순에 입각해 동생들을 비단끈을 목에 묶어 매달았다. 두 명. 세번째로 나중에 이브라힘 1세가 될 동생의 목에 비단끈을 턱, 걸었을 때, 아이코, 베네치아 출신으로 하렘의 꽃이었다가 술탄의 눈에 들어 황후가 된 무라드 4세의 어머니인 황태후가 등장하더니 술탄을 꾸짖기 시작했다. 황제는 아예 씨를 말리려 하는 거요? 그러다 사직이 문을 닫으면 지하의 선조들을 어떻게 뵈려고 하시오. 우리나라 사극에서 나오는 인수대비가 연산군 꾸짖듯이 한 마디 하는 바람에 이브라힘 1세는 목숨을 건진다. 대신 하렘에서 유폐생활을 해야 했단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그렇게 쓰여 있다. 책에서는 목에 비단끈이 걸렸을 때의 공포 때문에, 지식백과에서는 하렘에서의 오랜 유폐생활 때문에 이브라힘 1세의 정신건강에 심한 스크래치가 갔다고 나왔다. 어느 걸 믿든지 그건 독자 마음이다.

  분명한 건 형이 (여자 말고 남자를 좋아하는 바람에)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 버려서 이제 동생한테 술탄의 자리에 오르라고 하렘에서 나오라 하니까, 동생은 드디어 형이 내 목숨을 거두어 가려는구나, 엉엉 울면서 발버둥을 쳤다는 거다. 그래서 양 옆에 병사들이 붙어 겨드랑이를 끼고 끌고 나가 톱카프 왕궁의 마당에 놓인 술탄의 의자에 앉혔다. 그랬더니 다뉴브 강에서 나일강까지 점령하고 있는 오스만 군대의 정예병이 도열한 가운데 흰 수염의 대신들, 대율법사, 학자, 장군들이 차례로 경배하러 몰려들어 새로운 술탄의 발치에 이마를 대는 걸 보고, 그제서야 그의 웃음소리가 톱카프 왕궁의 복도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목에 비단끈이 둘리던 때 이후 줄곧 옥죄었던 독성이 강한 앙금이 휘발되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걸 느끼면서, 좌중에 늘어선 만장한 사람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술탄의 즉위 첫 말씀 한 마디를 이렇게 했다는 거다.

  “자, 누구부터 죽일까?”


  이 작품의 화자는 ‘나’.

  콘스탄티노플, 즉 이스탄불의 톱카프 왕궁의 하렘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궁의 하렘은 금박장식, 희귀한 도자기, 보석이 박힌 관모, 축면사 용포, 자개장식 가구, 에메랄드와 루비로 치장한 장식품, 검은 담비 털에 둘러싸인 호화로운 후궁들의 처소를 관장하고 있어서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터키어와 라틴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페르시아어로 현학적이고 수사적인 대화를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쿠란 일체를 암송하고 있다. 왕궁에서 받은 교육과정의 전 과목 1등급에 빛나는 일세의 수재라고 자임한다. 그리하여 지식의 창고이며 완벽한 경지에 이른 학자이며, 자비롭다가도 때론 매정하게 행동할 줄 아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검은 얼굴과 납작한 코, 터번에 짓눌린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한 곱슬머리에 검은 눈동자, 나이 먹을수록 정확한 비율을 자랑하는 근육이 우람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당년 67세의 아비시니아 환관장 슐레이만이다. 물론 나중에 구라 또는 과장인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힘은 강하건만 견강부회하는 해바라기이기도 하다.

  슐레이만은 오직 한 사람, 완벽하게 창조된 유일한 주인인 오스만 제국의 황제 술탄 한 명을 위해 존재한다. 열두 살 때 아비시니아 사막에서 사냥꾼한테 잡혀 어딘지도 모르는 부둣가에 도착해 거세를 당한다. 매운 고춧가루 물을 가랑이에다 쏟아부어 대충 소독을 한 후에 마취도 없이 둥글게 휘어진 아라비아 단도로 단 번에 내용물을 휙 도려내 버렸다. 죽는 놈은 죽고 산 놈만 다시 배에 태워 이스탄불에 도착해 톱카프 왕궁의 노예로 팔려온 것. 이후 말했다시피 적절한 교육을 받아 하렘의 총 관리자까지 올랐다. 이젠 얼굴을 꼿꼿이 쳐든 아프리카인의 당당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며 오직 한 사람에게만 머리를 조아린다. ‘나’에게는 그가 내리는 칭찬이 곧 영광이다. 그는 ‘나’에게 신과 같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황제가 황태후를 우습게 보는 바람에 앙심을 먹고, 역사적 사실은 담비 털을 과하게 낭비하는 등 사치에 절어 있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성장한 유럽 정복민 소년들의 군대인) 예니체리와 관료, 종교인들의 반발로 쿠데타가 발생한다. ‘나’ 슐레이만이 기둥 뒤에서 훔쳐보는지도 모르고 병사들이 술탄의 두 팔을 잡고 질질 끌어 타일로 장식된 작은 방, 좁은 화장실과 부엌만 달랑 달린 방에 집어넣고 벽돌과 회벽으로 창문까지 발라버렸다. ‘나’는 이런 징조를 알고 있었다. 온전한 몸을 가지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어서 내것 대신에 한 어린 아이에게서 자른 물건을 병에 넣어 목에 걸고 다녔으나 이스탄불에 큰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그것이 깨져버리고 말았던 것이 하나요, 저 시바스의 투르할 마을 처녀가 낳은 새끼 코끼리를 담은 상자를 궁에 가져온 것이 다음이었다.

  아,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확실하다. 엣다 모르겠다. 품절도 아니고 절판인 책이다. 그냥 간다.

  술탄을 폐위시키고 일곱 살 먹은 아들 마흐메드가 즉위한다. 여기서 고민끝에 역 쿠데타를 준비하는 환관장 ‘나’ 슐레이만. ‘나’는 유폐된 ‘나’의 유일한 황제에게 권유하기를, 황제의 모든 아들을 죽여버리면 술탄의 위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아들은 또 낳으시면 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황위를 보존하옵소서.


  쥴퓌 리바넬리는, 설마 정말로 이렇게 제안하는 신하도 없었겠지만, 유폐된 술탄이 자기 자식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환관장의 제안을 깨끗하게 말 한 마디로 거절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는 이유로 그를 찬양한다. 물론 내가 튀르키예 역사를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숱한 사람을, 심지어 그저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가볍게 목숨을 거두어간 폭군이 자기 자식들을 구하려는 거 하나 가지고 정당화 되느냐고. 죽어나간 왕족, 대신, 측근, 정적은 물론이고 군사, 백성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법령을 정해놓고 어긴다는 이유로 군대를 풀어 습관적으로 시민을 죽이게 했던 책임은 어쩌고 말이지. 하렘의 풍경 같은 흥미로운 장면을 재미있게 읽다가, 결론에 와서 그만 빡치고 말았다. 술탄이 술탄 다우려면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절대왕정 시대의 임금의 책임과 자격을 먼저 봐야할 것 아닌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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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9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이어서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술탄, 하렘, 이스탄불...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네요.
가끔은 그런 술탄도 있지 않았을까요?^^

Falstaff 2024-02-19 08:31   좋아요 1 | URL
하렘을 총괄하는 환관장 이야기라서 흥미롭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오스만 제국의 재미난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며 읽어나갔다가 결말에 가 푸르륵, 김이 새버리고 말았답니다. ㅎㅎㅎ 그 동네 역사에 무식해서 그랬겠지요.
그런 술탄도 있고 중국 황제도 있고 우리나라 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정을 하면 안 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북조선이 심하게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