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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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 맨: A Single Man>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전작 <베를린이여 안녕>을 읽어본 기억이 있어 인터넷 쇼핑 중에 그냥 이름만 보고 딱 고른 책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내 취향에 입각해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던 <베를린이여 안녕>보다 훨씬 괜찮다. 이럴 때 요즘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말이 바로 이거다. 대박!
 대박은 대박이지만 조심하시라. 얘기했다시피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해 대박이라는 것이지 당신 입맛에도 그러할지 아니할 지는 장담하지 않겠다. 이 책을 쓴 1962년,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같은 사람을 서양인들은 ‘퀴어’라고 불렀고, 10년쯤 뒤에는 ‘게이’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쿠바에서 날아온 소련제 원자폭탄을 탑재한 미사일에 대한 공포로 인해 좀 산다하는 집에선 개인 방공호를 파고 응급식량을 사재기해 쌓아 놓는 일이 유행은 아니더라도 드물지 않았으며,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포감은 완전히 혐오와 기피를 동반했고, 일반적이지 않은 ‘퀴어’들은 성도착자로 규정하여 사회에서 격리시키자는 주장을 번히 주요 신문과 매스컴에서 외쳐대고 있었다. 즉, 퀴어는, 역자 조동섭의 해설에 의하면, 요새 말로 ‘호모새끼’ 정도의 욕설과 유사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이미 <베를린이여 안녕>에서 알고 있던 사실이라 하나도 놀랄 것이 없는데, 자신의 대리인인 소설의 주인공 조지가 완전한 남성 동성애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다니엘 페나크의 흥미로운 소설 <몸의 일기>를 보면, 주인공이자 이미 늙어죽은 ‘나’의 아들을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그가 말하기를,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변하기는 쉬워도 거꾸로는 거의 불가능한데, 이유는 이미 천국을 맛봤기 때문이란다. 물론 나는 ‘천국의 맛’이 궁금하지 않다. 천국의 맛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한 사람들을 이제는 성 소수자라고 하지 욕설을 퍼부을 대상으로는 생각하거나 지목하지 않는다. 이러기 위해 수백 년이 걸렸다.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는 남성보다 시기가 조금 빨랐는데, 이셔우드와 같은 영국 태생의 레드클리프 홀이 <고독의 우물>에서 거의 커밍아웃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고독의 우물>이 간행된 것이 1928년. 그러니 대강 32년 정도 빨랐다고 해도 될 듯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실제로는 남성 동성애자가 여성 동성애자보다 더 많은지 아닌지는 별개로 하고,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성적 선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다른 수컷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 동성애보다 남성 동성애를 더욱 불쾌하게 여겨온 것은 아닐까. 결국 이것도 남성에 의한 성 권력 때문이란 얘기. 이성애자인 내가 동성애자의 성적 감각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성애자들 몇 명이 모여 이야기해본 것 가운데 제일 그럴 듯한 건, 최고의 성적 쾌락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동성애인이 이성애인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냈을 때였다. 그러나 <싱글 맨> 같은 책을 읽어보면 동성애인들 역시 “당연히”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섹스의 쾌락만을 위해 동성의 애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성애자들은 도무지 ‘아직도’ 쉽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눈을 띄우는 것 가운데 제일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거다. 그들도 이성애자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사랑을 한다. 이성애자들이여, 그들의 섹스의 방식에 집착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모욕하지 말라.
 <싱글 맨> 조지는 영국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교수와 비교하면)나이 많은 교수다. 시 외곽의 좋은 동네에서 약간 호젓한 곳에서 미국인 남자 애인 짐과 오래 살았다. 짐이 어느 여자와 눈이 맞아 대판 싸움도 하고 그러다가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짐이 자기 본가 오하이오에 들르러 가는 도중에 마주 오는 대형 트럭과 정확하고 단호하고 더할 수 없이 강하게 부딪혀 고통 없이 즉사하는 바람에 (사는 게 다 그렇다니까) 지금은 혼자 사는 남자, 싱글 맨이다. 이 조지가 아침에 일어나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깰 때까지 만 하루를 그린 소설.
 혼자 사는 동성애자 늙은 남성의 하루. 거리와 장소 곳곳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도 젊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배회하고, 그러나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고 싶지만 내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웃들도 있고, 제자들과 거리감 없이 지내고 싶어 하지만 너무 가까운 관계가 되기에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진짜 친구, 남녀관계가 아닌 외로운 진짜 여자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어야 하고, 물론 술도 같이 마셔야 하며 가끔가다간 입술에 키스도 당해줘야 하고, 다 쓰러져가는 퀴어들의 집합장소인 술집에 가서 떡이 되도록 위스키를 들이켜야 하는 싱글 맨.
 이게 다다.
 너무 일상적이고 단순하다고?
 그게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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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0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설의 싱글맨이 창비에서 다시 나왔더라구요.
역자도 같고 해서 신간 대신 좀처럼 쉽게 구할 수
없던 구간을 중고서점에서 구해다가 읽었던 기억
이 나네요.

저자와 성적 취향이 같은 감독이 연출을 한 영화
버전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킹스맨이 주인공이었습니다.

Falstaff 2018-03-06 14:29   좋아요 0 | URL
ㅎㅎ 영화에선 넘 잘 생긴 남자들만 나와서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ㅋㅋㅋ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마농의 샘 1 펭귄클래식 143
마르셀 파뇰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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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그림, 척 보기만 해도 유명한 삽화가, 장 자크 샹뻬다.

 


 

 이 소설의 탄생이 재미있다. 작가 파뇰의 아름다운 아내 자클린 부비에가 영화배우였던 모양이다. 남프랑스 마르세유 근방의 촌놈으로 태어나고 자란 파뇰은, 늙은 화가 세잔이 자신의 노혼(老魂)을 바친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아내에게 주인공 ‘마농’ 배역을 주었으니 이 때가 1952년. 영화는 당시 작품으로는 아주 예외적인 네 시간 가량의 길고 긴 런닝 타임을 갖고 있었으며 화면 가득 남프랑스의 매력적인 풍광이 넘쳐흘렀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고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63년,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본 마르셀 파뇰은 이것을 다시 소설화하기에 이르고, 조은경은 이 소설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초역은 정성호, ‘주변인의 길’ 1992)로 번역해 웅진<뿔]에서 냈다가, (완전 내 짐작으로 말하자면)저작권 계약변경 등의 이유로 다시 펭귄 클래식 코리아를 통해 웅진<뿔]과 같은 표지의 번역본을 (재)출간했으며, 2018년 1월의 겁나게 춥던 어느 날 밤, 알라딘 중고책 서점에서 내 가방 속에 들어오게 된다. 영화는 1980년대에 이브 몽탕, 제라르 드 파르디유 등이 출연하는 리메이크 작품으로 다시 나왔고, 1부는 <장 드 플로레트>, 2부는 <샘의 마농>, 각 런 타임은 두 시간 가량으로 만들었다. 내 검색실력 가지고는 아마존에서도 파뇰의 아내 자클린 부비에가 등장하는 1952년 필름을 찾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품은 남 프랑스 에투알 산맥의 끝자락, 그것도 매우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나타나는 주민 150명가량의 작고 작은 산골마을 레 바스티드 블랑슈, 우리말로 ‘하얀 요새’라는 뜻의 촌 동네에서 한 발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남자들은 주로 한 세기 전에 있었던 보불전쟁 또는 이번 세기의 제1차 세계대전, 아프리카 등에 산재한 프랑스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레 바스티드를 떠났다가 상처를 입고 다시 돌아와 동네의 이장 필록센 씨처럼 연금수여자 생활을 즐기거나, 아주 공부를 잘해 세관원 같은 사무 공무원이 되어 동네를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자들은 물론 결혼을 통해 자연스레 다른 지방으로 이주가 가능했지만 그때에도 주변에 있는 비슷비슷한 폐쇄된 이웃동네로 결혼 이주하는 경우에는 시선이 아주 곱지 않았던 것은, 특히 여자 형제를 결혼시킬 때 남자 형제가 느끼는 독특한 상실감 같은 걸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주민 150명 정도가 복닥복닥 살고 있는 폐쇄공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물론 우리나라의 비슷한 장소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이주해올 경우 오히려 더욱 폐쇄성이 강화된다는 것이고 흔히들 이런 성향을 ‘텃세’라고 칭한다. 지금은 농촌의 노령화로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우리의 경우도 이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서, 이주민이 농사를 새로 배우며 지어야 하는 경우에 현지민이 적극적으로 다가가 이들을 교육시키거나 협조하려 하는 대신,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개인적인 성향이 동양보다 훨씬 강한,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많이 섞인 갈리아인의 후예들은 작품의 주인공 가족인 꼽추 장 카도레와 오페라 <베르테르>, <내가 왕이었다면>, <마농>에서 노래했던 붉은 머리카락의 소프라노 출신의 아내 에메, 그리고 어여쁜 금발 소녀 아가씨 마농, 이 세 가족이 새로이 농사를 ‘책’을 통해 배우며 완전한 실패를 향해 조금씩 걸음을 내딛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가장인 꼽추 장 카도레가 또한 장 드 플로레트, 즉 이 동네 출신인 아름다운 아가씨 플로레트가 사이 나쁜 이웃동네 레 종브레로 결혼 이주해 낳은 아들이란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수베랑 가문의 생존자인 파페, 이름은 세자르 수베랑이지만 나이가 들어 ‘파페’ 라고 불리는 늙은이와 이이의 유일한 상속자인 조카 위골랭은, 한때 마르지 않는 샘이 흘렀지만 천하의 게으름뱅이 피크부피그가 오랜 세월 관리를 하지 않아 수원이 막혀 이젠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숨겨진 옥토, 위골랭의 숙원사업인 카네이션 화훼농장을 위한 천혜의 장소에 장 드 플로레트가 입주하는 순간, 이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완전한 실패를 확약하는 계략을 모의하고 실행한다. 바로 샘의 수원을 콘크리트로 막아버리는 것. 물이 없는 남 프랑스에서는 두 주일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이집트 콩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농사도 성공할 수 없으나, 장 드 플로레트가 꿈꾸는 것은 토끼 농장이며, 토끼의 사료를 위해 아시아 박을 재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많은 물이 필요한 상황. 세무 공무원이었던 장이 거친 산골에서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진 고생, 스스로를 격심한 위기상태로 몰고가야할 만큼 격렬한 노동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자기 땅의 올리브 나무 바로 아래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장이 믿는 것은 통계적 수치. 수십 년간 축적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월별 비 오는 날 수와 강우량으로 아시아 박을 얼마든지 가꾸어나갈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에, ‘책’에서 얻은 그의 계산은 현실과 달리 처음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자신에게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연의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엄혹한 법인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파페, 즉 세자르 수베랑이 유독 장의 몰락을 기원한 것은 이제 수베랑 가문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속인이자 조카 위골랭을 통해 가문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반半 본능적 욕구가, 위골랭의 성공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 그건 아니다. 세자르가 평생 독신으로 사는 이유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름다운 아가씨 플로레트였으며, 자신이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는 새를 참지 못하고 원수 같은 이웃 레 종브레의 대장장이에게 시집간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장 드 플로레트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추하는 건 독자의 권리이고 나는 바로 그 권리를 사용하여 세자르, 즉 파페가 유독 장의 가족에게 혹독했던 건 바로 사랑, 그것도 지독한 외고집 사랑의 반대급부로의 미움 때문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내용은 여기까지. 영화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서 상당히 재미나다. 영화라는 장르 특유성으로 인해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치명적 반전을 독후감에 써버린다면 독후감으로는 좋겠지만 이 책을 정말 읽어볼 분들께는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알고 보니 유령이었대!”라고 얘기해주는 것하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스토리 소개는 여기서 끝.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유럽 사람들이 심술부리는 것은 우리 눈엔 정말 살벌하다는 것. 자기가 놓은 덧에 걸린 산짐승을 훔쳐갔다고 총으로 쏴 죽이는 등 하여간 수틀리면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해 결과가 죽음에 이르더라도 별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 살 떨리고 소름끼친다.
 지금부터 진짜 하고 싶은 얘기.
 진실을 감춘 세자르와 위골랭. 자신의 농장에 항상 넘쳐흐를 수 있는 샘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 그러면 나머지 주민들은? 물론 샘이 농장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농장의 집에서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즉 진짜 있는 위치까지 알면서도, 단 한 사람만이 돌 위에 화살표를 그려 암시하는 수준으로 힌트를 준 것을 빼면 아무도 항상 넘쳐흐르는 샘에 대하여 농장의 주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꼽추이며 전직이 세무 공무원인 서생출신이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해 맨발로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 속에서 일사병에 걸릴 때까지 산꼭대기 샘으로 쉼 없이 왕복하는 것을 번히 바라보면서도.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수베랑들에 의한 일종의 폭력 또는 기만을 주민 150명이,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침묵을 고수함으로써 그들의 폭력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난 이 장면을 읽으며 2018년 한 ‘여자’ 검사에 의하여 촉발되고 ‘여류’ 시인의 폭로로 번지기 시작한 한국의 Me too 운동, 오랜 세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으로 방치하거나 동조해온 성희롱, 추행, 폭행의 관례가 떠올랐을까. 직접 샘을 시멘트로 막은 수베랑 사람들만이 죄인이 아니라,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라 바스티드 주민 전부 다가 죄인이며, 그리하여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마르셀 파뇰은 이미 60여 년 전에 웅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서 오랜 세월 입 닫고 산 모두가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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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18-03-0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웅진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인지라 책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Falstaff 2018-03-05 13:0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이래서 짐작은 함부로 하면 안 되고, 했다하면 반드시 ‘짐작‘이라고 써놔야 합니다. ㅋㅋㅋ)
 
크노소스 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9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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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잔차키스. <그리스 사람 조르바>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 사실 나도 <....조르바> 말고는 <성 프란치스코> 하나밖에 더 읽어보지 못했다. <성 프란치스코>를 읽으면서 알았는데, 카잔차키스의 작품 세계는 거칠게 ① 일반 그리스 사람 이야기, ② 기독교 성인들 이야기, 그리고 ③ 희랍 신화에 대한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①과 ②는 읽어봤고, 나머지 ③을 위해 고른 책이 <크노소스 궁전>이다. 며칠 전 알라딘에 들러 중고책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하나 더 사왔다. 이건 몇 달 뒤에나 읽을 듯.
 이 책을 선택할 때, 거의 언제나 출판사 책 소개를 별로 읽지 않는 관계로, 설마 카잔차키스가 그리스 신화를 다시 썼겠어? 그것도 숱한 드라마 등의 예술작품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노타우로스,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이야기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신화에 빗댄 19세기말, 20세기 초를 무대로 그리스와 크레테 섬을 그렸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서기 수 세기 전, 정말로 아테나이의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 잠입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여름 정오였다. 크노소스 위에 걸려 있는 태양은 그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에 빛을 내리비추었다. 청동 양날 도끼, 거대한 정원, 화려하게 채색된 지붕이 이글거리는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거렸다.” (7쪽)


 첫 문단. 이 책 가운데 가장 힘들게 읽었다. 역시 <그리스 사람 조르바>의 영향이 상당히 커서, 생각(또는 기대)을 20세기 초 그리스와 크레타 섬에서 근 3,000년 뒤로 넘겨 기원 수 세기 전 미노타우로스 신화의 무대로 갑자기 바꿔야 하는, 당혹감을 피할 수 없었다. 우습게도 아주 평범한 위의 글을 서너 번 읽어야 했다는 건 사실이다. 큰 덩치와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미남자 테세우스가 크노소스 궁전에 잠입해 여기저기를 염탐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낮잠 시간에 잠이 오지 않아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보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운명적인 눈길에 테세우스가 포착되고, 이어 테세우스를 미행하고 있는 근위대장 말리스가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아리아드네는 이미 테세우스가 염탐하는 장면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으나 아직 본인 스스로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는 미노타우로스의 탄생 설화, 즉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은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대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준 나무 암소 속에 들어가 황소와 교접해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는 얘긴 나오지 않는다. 전설이나 설화는 대개 특정 사실을 암시한 것이 일반적이라서, 나는 파시파에가 정말로 황소와 교접을 해 괴물을 낳은 것이 아니고, 불륜을 통해 덩치가 크고 사나운 ‘가문의 골치덩이’를 생산해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미노스 왕이 특별 감옥인 미궁에 그를 가두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누구나 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에선 미노타우로스를 사람의 몸과 황소의 머리를 갖춘 흉물이자 괴물이고 정말로 1년에 아테나이에서 온 미청년 일곱 명, 미소녀 일곱 명을 산 채로 잡아먹어야 하며,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혀 있고, 미노타우로스가 죽으면 곧이어 크레타 섬이 멸망할 것이란 신탁이 내려오고 있다고, 신화에 아주 유사한 전제를 깔고 있다. 읽기에 따라서 아주 오래 전부터 크레타 섬에 있었던 괴물인데 미노스 시대에 와서 미궁에 갇히게 됐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또 하나 내가 알고 있던 신화와 다른 것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별 장면. 신화에서는 낙소스 섬에 도착한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커플이 이미 할 거 다 해놓고, 아리아드네가 곤히 잠든 사이 이젠 그녀에게 싫증이 난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공주 혼자만 남겨 두고 토껴버렸지만, 카잔차키스는 아량을 베풀어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도착해서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충하는 동안 아리아드네가 산보를 나갔다가 배를 한 척 발견했는데, 온통 포도덩굴로 치장을 한 배 위에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옆에 앉은 표범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에 홀랑 반해 그 길로 디오니소스라고 짐작되는 인물을 따라 영원한 항해를 떠났다고 해놓았다.
 결정적인 장면은, 역시 굉장히 궁금해 했던 일종의 수수께끼였던 것으로, 크레타의 식민지 비슷한 처지에 불과해 미노스 왕의 명령을 좇느라고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의 외아들 테세우스마저 7명의 남자 희생물 가운데 포함시켜야 했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다음 어찌하여 그리 빠른 시기에 크레타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를테면 아테나이는 초승달, 크레타는 보름달, 뭐 이런 비유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카잔차키스는 최신식 무기의 등장을 생각해냈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그것마저 일러드리면 이미 숱하게 알려진 신화를 소설로 만든 문학작품을 찾아 읽겠는가 말이지. 여태까지 소개한 내용도 이미 스포일러가 과한 감이 듦에야.
 문제를 푸는 중요한 인물의 이름이 누군가하면, 아리스티데스다. 그런데,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나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영웅 아리스티데스가 아니라 소설의 가상인물이다. 그러니까, 막강한 최신 무기에 대해서는 힌트는 하나도 드리지 않겠다는 얘기. 이걸 우리는 먼저 읽은 자의 특권이라고 부른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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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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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연달아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른쪽……>을 다 읽은 지금 다시 말하자면, 괜한 걱정을 했다. 꽁뜨보다는 길고 단편소설보다는 짧은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 <왼쪽……>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듯 성인들을 위한 우화, 손바닥 장掌 자를 쓴 장편소설. 스물네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빠짐없이 다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선과 악, 그 미묘한 경계이다. (솔직히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만)굳이 가져다 붙이면 이이의 <마크로풀로스 사건>에 나오는 에밀리아 마르티, 300년을 살아 인간의 선과 악에 달통을 해서 여간한 것으로는 전혀 감동하지 못하는 불운한 인간이 작가 자신, 즉 카렐 차페크의 시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할 수 있다. 다만 희곡의 주인공으로 이제 다시 300년을 더 살 것인가 그냥 죽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 에밀리아 마르티, 혹은 엘레나 마크로풀로스와는 달리 48년 밖에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카렐 차페크는 비록 자신이 흉악범, 살인범을 묘사하고 있을지언정 그들 속의 다른 면모,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률”이 있어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으며, 거짓말로 하지 않”는 선한 일면이 있음을 누차 강조한다. (따옴표 속은 56쪽에서 인용)
 고집쟁이에다 노랑이 장인을 도끼로 머리통을 세 번 내리쳐 죽인 사위에게 배심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판사는 법대로 사형 대신 “유혈 참사가 하늘에까지 미치니, 신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판결하노라. 피고 본드라체크는 그 두 밭에 사리풀(유럽산의 독초)과 가시덤불의 씨를 끝도 없이 뿌려야 하리라. 그리하여 죽음이 그대를 찾아오는 순간까지 이 증오의 밭을 끝없이 일구고 또 일구리라……”라고 신의 이름으로 선고를 하고 싶어 한다. (따옴표 속은 245쪽에서 인용)
 사실 스물네 개에 달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절한 코멘트라고 생각하는 건, 선인과 악인의 이면, 그 경계의 눈썹만한 차이에 의하여 인간의 생이 결정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따라서 차페크의 <왼쪽……>과 <오른쪽……>, 다 합해 마흔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보편적 인간형이 모두 출현한다고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읽는 도중엔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독후감을 쓰면서 이이의 장편소설 <호르두발>, 그 쓸쓸한 보헤미아 이야기가 떠오른다. 뼈골이 빠지게 아메리카까지 건너가 번 돈을 보헤미아의 아내에게 보낸 호르두발 집안을 둘러싼 악당과 주민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 그러고 보니 <호르두발>에서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바람이 나고, 딸을 혼인시키려 하고, 죽어가고 했던 것이다. 그저 삶의 이야기. 언제나 곤고하며 즐거움이란 숨이 넘어가기 바로 전에야 드문드문 한 번씩 던져두는 삶. 그걸 살아내기 위해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범죄자와 살인자를 체포하여 징역형과 사형에 처하기도 하는 것. 열정 바로 옆에 죄악이 있을 수 있고, 사랑은 어김없이 무서운 질투를 동반하며, 행운이 살짝 눈초리를 비틀면 불행이 땅거미처럼 세상을 덮는 인간살이. 평생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적 없이 살아온 한 인간이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도 모르게 숱하게 저질렀던 남의 가슴에 못 박았던 행위. 나나 당신이나 다 그런 철길 위를 지나왔던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책을 읽으며 내가 밟아온 자리를 떠올릴 기회, 그 섬뜩한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는 점.


 * 을유세계문학전집 87번째 작품,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란 제목으로도 출간했다.

 

다만 을유세계문학전집엔 <오른쪽……>만 실려 있고, <왼쪽……>은 아직 번역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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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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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260쪽인데 무려 스물네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 번째 <늙은 죄수의 이야기>가 9쪽부터 시작하니까 사실 252쪽. 평균 하나의 이야기가 열 쪽 반의 분량으로 되어 있으니 이걸 뭐라 해야 하나.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짧다. 심지어 순 본문 252쪽 가운데도 12쪽은 삽화가 실려 있으니 소설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이야기 묶음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한때 손바닥 장掌 자를 써서 장편소설掌篇小說입네, 하고 책을 만든 기억이 새록하니 나는데, 정말로 손바닥 소설이란 장르가 있다면 딱 이런 작품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겠다.
 눈에 들어온 차페크의 작품에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다. 일단 두 권 다 사고, 어느 것부터 읽을까, 하다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왼쪽……>부터 골라잡았다. 다 읽고 붉은 색으로 씌어있는 영어 제목을 보니까 <Tales from the Other Pocket>. 아, <오른쪽……>부터 읽었어야 했구나, 알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대수랴. 올해 초에 차페크가 쓴 동화책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을 읽으면서 이이가 짧은 글도 많이 썼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왼쪽……>와 <오른쪽……> 둘 다 성인成人(왜 여기서 난데없이 성인聖人으로 읽힐 수 있을까를 걱정했지?)을 위한 짧은 이야기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궁리하지 못했다. 책 읽기 전에 정보를 소홀히 한 탓이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짧은 이야기는? 맞다. <이솝 우화집>. 차페크의 <왼쪽……> 역시 우화적인 측면이 강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볼까? 첫 번째 이야기에 ‘얀데라’라는 이름의 작가가 등장한다. 이이가 전에 작품을 한 편 썼는데 프린터로 출력해 읽어보니(1929년 출간한 책이니 프린터 출력이란 인쇄 초고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는 아주 언짢은 생각이 드는 거다. 다시 읽어보면 오히려 더 그러해서 자기도 모르게 분명히 누군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을 하다가, 오랜 친구를 만나 사정을 얘기하기에 이른다.
 “여봐, 이거 좀 읽어봐. 최근 작품인데 어째 남의 것을 베꼈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그랬더니 친구 왈, “한 눈에 알아봤는데 뭐. 체호프 작품을 베낀 거구만.”
 작가 얀데라가 아주 깨끗한 사람이라 이런 지적을 받자 마음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 또 비슷한 얘기를 하기에 이른다.
 “믿지 못하겠지만 때로 작가는 표절을 하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 예를 들어 내가 쓴 최근 작품도 남의 것을 베꼈다는 걸 알아챘어.”
 이 말을 듣자마자 이 친구는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였다.
 “알고 있어. 분명히 모파상에게서 훔친 거지.”
 어? 그리하여 얀데라는 자기하고 가까운 모든 친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기에 이르고, 그래서 자기가 쓴 작품이 고트프리트 켈러, 찰스 디킨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천일야화>, 샤를르 루이 필립, 크누트 함순, 테오도르 슈토름, 토머스 하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마테오 반델로, 페터 로제거,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등을 표절했다는 다양한 의견을 접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작가 얀데라를 가장한 차페크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한 사람이 사악한 길로 얼마나 깊숙이 빠져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글을 쓰는 일이라나? 뒷통수 한 방 쾅!
 이건 그냥 첫 번째 이야기 가운데서도 초반에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는 대목일 뿐이다. 짧은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읽기에 이 책에는 다양한 새옹지마 스토리가 들어 있다고 하고 싶다. 새옹지마는 새옹지마인데, 차페크 주변에 프라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친구나 친척이 있었는지 아주 다양한 범죄자들과 경찰, 판사를 비롯한 사법기관 종사원, 배심원들이 등장하고, 흥미롭게도 스파이와 유사(흉내뿐인) 스파이, 암호해독 전문가 등,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국제적인 간첩활동도 다양하게 소재로 삼는다.
 19세기 적 신사 숙녀 이야기를 연속해서 읽다가 별 부담 없는 우화적 이야기책을 읽는 재미도 괜찮은데, 문제는 아직 읽지 않은 <오른쪽……>도 마저 읽어야 한다는 것. 재미있는 책도 연속해 읽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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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2-24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른쪽부터 읽고 연달아 읽기는 뭐해서 왼쪽은 말씀하신 첫 번째 작품까지만 읽고 아직 안 읽었어요. 연달아 읽지 않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ㅎㅎ

Falstaff 2018-02-24 14:29   좋아요 0 | URL
연달아 읽어도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