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힘 설킴 부클래식 Boo Classics 69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박광자 옮김 / 부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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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년에 가난한 약사의 아들로 독일 노이루펜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군 입대를 하기도 했고 약 5년간 약사생활도 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전업작가로 나섰다. 서른여섯 살 때엔 정부 부속 통신사에서 특파원으로 3년간 영국에 살면서 스코틀랜드 등을 여행하고 훗날 스코틀랜드 여행기도 출간했다. 독일의 마르크 브란덴부르크를 여행한 다음에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여행기>도 출간했으니 문학도 했겠으나 주로 여행기, 전쟁기 같은 르포르타쥬에 힘을 기울였다. 첫 소설은 쉰아홉 살 때인 1878년에 <폭풍 이전>을 발표한 것으로 친다. 오늘 독후감을 쓰는 <얽힘 설킴>은 69세 때, 대표작 <에피 브리스트>는 76세 때 출간했고 78세에 눈을 감았다. 쉰아홉, 우리 나이로 예순에 데뷔해 세계문학전집에 나오는 사람도 있으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나이 탓하지 말고 도전해 보시든지.


  <에피 브리스트> 같은 경우엔 작 초반에 복선을 너무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의 결말이 어느 방향으로 날 지 거의 확실하게 짐작한 상태로 읽어가게 되는데, 더 허무한 건, 예상한 대로 작품이 풀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숙명여고 다니던 복선이라고 있었다. 걔가 <얽힘 설킴>에도 너무 자주 나온다. 청파동 살았었다. 언제 독일 마르크 브란덴부르크까지 이사갔댜? 거 참. 근데 <에피 브리스트>에선 결정적 복선이 나와 다른 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반면, <얽힘 설킴>의 복선이들은 그대로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사실 오래 전 소설들을 읽으며 독자가 즐길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구석에 숨어 있는 복선을 발견하는 일이다.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다가 결말까지 간 후에 아, 그래서 앞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구나, 하고 떠올리는 건 중하급의 수준이라고 지레짐작해 조금 까진 독자들은 악착같이 미리 복선을 알아차리고 싶어 눈알을 굴리면서 찾는 법이다. 그래봐야 나중에 잘난 척 한 번 더 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를 뭐 잘난 척하려고 찾는 인간만 봤니? 그것도 재미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실제로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얽힘 설킴>에선 정말로 딱 보면 복선인데(얘 복선아, 여기 숨었구나!) 나중에 보니 결말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많다. 나는 오히려 이런 발견 오류도 재미있었다. 초반에 복선이 심오해서 이거 (막 사람이 죽어 자빠지는) 너무 큰 비극으로 끝나는 거 아냐, 했다가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여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뭐 이럴 때도 있어야지.

  19세기 독일소설이면? 맞다 재미는 별로 없다. JTBC인가, TV에서 했던 토크쇼에서도 독일 패널이 발언하면 재미없다고 야유하던 출연자들 말마따나 이 프러시아, 독일 사람들은 하도 어려서부터 비슷한 교육을 받는 거 같다. 능률과 검약, 그리고 지긋지긋한 질서와 규율. 물론 이 가운데에서도 별종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작품의 주인공 보토 폰 리네커 남작이 그렇다. 아빠도 남작 출신, 엄마도 남작 집안의 따님. 체덴 성castle과 주위에 인접한 넓은 영지를 한 때 소유한 거부였지만 남작 아버님께서 유럽판 타짜한테 걸려 재산 거의 대부분을 통째로 날려 먹고 이제 전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험지만 조금 가지고 있는 데 불과하다. 더구나 채권자들이 점잖지만 양보하지 않을 태세로 채무 원금까지 갚을 것을 요구하고 이때마다 엄마는 득달같이 오빠, 즉 보토의 외삼촌에게 달려가, 오라버니 한 번 만 살려주시우, 사정사정을 하는 상태. 보토는 연 수입 9천의 근위 기병대에 근무하면서 연간 1만2천을 소비하는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 날이 갈수록 쪼들릴 수밖에.

  애초에, 그러니까 보토네 가정이 체덴 성을 중심으로 무지하게 잘 나가던 시절에 보토의 부모는 엄마의 언니 젤렌틴 가문의 갓 낳은 딸 케테와 약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케테는 20대 중반의 꽃보다 더 아름답지만 머리통은 텅 빈 아가씨가 되어 온갖 곳에서 청혼이 쇄도하는 가운데, 보토에게 하루빨리 결혼이든 파혼이든 결론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케테 아가씨와 결혼만 하면 젤렌틴 가문에서 현금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와 폰 리네커 남작 집안의 부채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보토는 케테와의 결혼은 생각해본 적도 없으며 사랑하지도 않는 상태라서 여전히 그저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고 있었다.

  1870년대의 어느 날 베를린 근교의 토론토 스트렐라우 강가에서 친구와 보트를 타고 뱃놀이를 하고 있다가 어여쁜 두 아가씨가 탔고 동생인 듯싶은 어린 남자 아이가 노를 젓는 배가 증기선하고 부딪혀 산산조각 나기 바로 전에 극적으로 그들을 구해주었다. 여기에 여주인공 막달레네 님프취 양이 타고 있어 젊은 남작이 한 눈에 반해버렸으니 비단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 아니라 막힘없고 거짓도 없고 밝은 기상과 맑은 정신과 똑바른 대화법을 익힌 소양 때문이기도 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들을 집까지 에스코트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레네 양은 머뭇거리지 않고 너무 멀어서 괜찮다고 대답했으며, 남작은 오히려 더 잘됐다고 맞장구를 쳐 레네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그날로 레네 양의 집을 방문해 나이 든 엄마, 사실은 입양한 의붓엄마인 님프취 부인과도 주인집 되르 부인과도 친목을 텄으니 진짜 읽어보시라, 남작이 상당한 수다꾼이었던 거다.

  이후 보토 폰 리네커 남작은 수시로 이 집을 들낙거리고, 레네 양과의 사랑 역시 그만큼 깊어져 딱 19세기 잘 교육받은 남녀한테 어울리는 속도로 친밀해지기 시작해 서로 만지고 키스하고, 드디어 1박2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19세기 작품이라 한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당연히 했네, 했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랑하는 커플이 깊은 밤을 함께 지내게 되면 더욱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라서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이다. 바로 이 행복의 정점에서 분위기 깨는 일이 벌어지니 남작의 군대 동료 세 명이 길거리 아가씨 세 명을 데리고 이들이 여행을 떠난 관광지에 들이닥쳐 완벽하게 분위기를 깨버린다.

  물론 이들이 아니어도 현명한 레네는 짐작도 하고 각오도 했었다. 가난한 평민의 입양한 딸이 남작과 결혼할 마음, 의도,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냥 잘 생기고 심성도 좋은 훌륭한 남자이자 남작 각하를 사랑해본 것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고 충분히 행복했던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게 각오했다는 것이지 정말로 그렇다는 말은 아닐 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사랑을 택해 집안이 망가지든지 말든지 레네 아가씨와 혼인을 해서 평민 님프취 양을 남작부인으로 만들어? 아니면 전통있고 명망 높은 남작 가문의 영애 케테 젤렌틴과 결혼해 가문의 위기탈출은 물론이고 자신의 영원무궁한 복지 유지를 꾀해?

  나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던 평민 레네 아가씨와 애초에 인연을 만들지 않겠다. 레네를 진정으로 사랑한 보토? 진정으로 사랑했으면 처음부터 정을 붙이지 말았어야지 짜샤!


  이것으로 작품은 대단원을 맞지 않는다. 결혼을 한 다음에도 3년 이상이 더 흘러간다. 그러니 19세기 독일 소설 작품이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 보실 사. 비스마르크와 함께 전쟁 나갔다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다고? 에이, 농담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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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4-02-02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구렛나루 느끼남이 거슬려요;;;

Falstaff 2024-02-02 13: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당시엔 그것도 멋이었을 거구먼요.
 
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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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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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도리스 레싱 깨나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한 구석이 찜찜한 것을 숨기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하필이면 처음 읽은 레싱이 <다섯째 아이>였다. 아이고, 세상에나. 내 독서생활에서 <다섯째 아이>만큼 읽으며 제발 해피엔드로 끝나라, 제발 해피엔드로 끝나라, 이렇게 굿을 했던 적도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라이브러리도 그만큼 두터워졌지만 레싱은 여전히 한 발자국 건너 ‘음산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풀잎은 노래한다> 《런던 스케치》, <황금 노트북> 등등.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시각으로 관찰하는 매운 눈매와 필체는 알겠는데 하여간 불편한 작가. 계속 그랬다, 나한테는. 중편 모음집 《그랜드마더스》를 읽기 전까지.

  《그랜드마더스》. 2003년 작품. 레싱의 나이 여든네 살 때였다.

  오매, 도리스 할매 작품 가운데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하나 같이 이렇게 예쁘고, 수다스럽고, 기발하고, 진보적이며 감탄스럽기까지 한 책을 썼을까? 그런데 번역본 내고 7년밖에 안 됐는데 왜 출판사 예담은 벌써 이 책을 절판시켰을까? 정답은, 예담이 2017년 12월 말로, 망한 거 같다. 출판 회사를 위해서, 도리스 레싱을 위해서, 독자를 위해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 역시 개가실에서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눈에 띄어 읽었다. 이것으로 도리스 레싱의 번역 단행본은 다 읽은 셈이다.

  내가 《그랜드마더스》를 입에 침이 튀도록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젊은 시절에, 지금보다 절반 밖에 나이 들지 않은 시절에 읽었더라도 지금처럼 공감하면서, 그것도 절절하게 재미있다고 할 수 있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여든이 넘은 작가가 딱 그만큼의 세월을 묵혀 쓴 작품을 읽기 위하여 손가락으로 찍은 장맛을 구별할 줄 아는 독자의 시간도 필요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네 편의 중편소설을 실은 책. 노년에 이른 두 할머니가 아직 중년에까지 미치지 못한 두 남성과 벌인 일종의 스와핑이자, 일종의 근친관계를 담은 표제작품 <그랜드마더스>, 계급의 벽과 삶/생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이주 흑인의 안간힘을 그린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 가家>, 권력과 지도자 선택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것의 이유> 그리고 가슴 속 먹줄로 남은 사랑과 실제로의 삶을 조망한 <러브 차일드>. 어느 한 작품 만만하거나 가볍거나 행복하지 않다. 앞에서 내가 아무리 이 책을 재미있다고 했어도 도리스 레싱은 도리스 레싱이다. 이이는 네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 진짜 삶, 우리가 지금 들들 볶고 있고, 살아내는 열기에 푹푹 찌고 있으며, 때론 지글지글 태워 버리기도 하는 불행의 가마솥이 어떠한 포기와 상실과 좌절을 지불하고 마련한 것인지 반 발짝 딱 떨어져 그려내고 있다.

  이 가운데 표제작 <그랜드마더스>.


  벡스터 만bay. 바다를 바라보고 양쪽으로 작은 곶을 혀처럼 내민 것도 모자라 정면 방향에는 군데군데 암초가 솟아 거의 언제나 바다가 얌전한 상태로 있는 낙원. 이곳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벡스터즈라는 옥호의 레스토랑이 있고 오늘도 언제나처럼 예순 즈음의 두 여자와 중년 이전 나이의 두 남자, 그리고 여자아이 둘이 산보를 겸해서 찾아온다. 여섯 명 다 금발인 걸 보면 가족이겠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게 맞다. 할머니-아버지-딸. 로잔느(로즈)-톰-앨리스 그리고 릴(릴리안)-이안-셜리.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테레사는 얼마 전에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마치고 진학을 한 해 미루었다. 대학은 잉글랜드에서 다니려고 마음먹었는데,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지, 그냥 고향인 이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은 건 아닌지 막하 고민중이다. 가여운 테레사는 애초에 톰을 (짝)사랑하다가 이안으로 바꾸었고, 지금 다시 톰을 (짝)사랑하고 있어서. 사실 톰과 이안은 벡스터 지역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들이다. 그러나 이 가족 뒤쪽 테이블에 앉아 이편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농부 청년 데렉. 이이는 테레사를 연모하고 있어 틈만 나면 레스토랑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바라보기만 한다. 테레사도 호감을 느끼지만 정말 원하는 건 이 가족들의 구성원이 되는 일. 그러나 결국 테레사는 농부와 결혼해 이곳에 머물기로 결심하게 될 것이다.

  이 가족의 며느리 가운데 한 명인 메리가 급한 걸음으로 한 손에 편지 뭉치를 들고 언덕을 올라온다. 편지를 남편 톰 앞에 내려놓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선 메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 후 메리는 두 아이의 손을 끌고 데리고 가면서 말한다. 목소리가 약간 크거나 떨렸을 수도 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당신들은 두 번 다시 아이들을 보지 못할 거예요.”

  메리가 뒤로 돌아서고 멀어지자 이안이 로즈에게 이야기한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당신 잘못이야.”

  당찬 성격의 로즈는 분노로 단단해진 웃음을 날리며 이렇게 받아친다.

  “내 잘못이라고? 그렇겠지. 나 말고 누구겠어?”

  이안의 아내 한나도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지만 차마 죄인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언덕을 올라오지 않았다. 메리와 함께 벌인 사업의 사무실에서 의구심과 초라함과 수치심이 차올라 부글거리고만 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사달일까? 중편 <그랜드마더스>는 바로 그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 반세기 전, 릴리안과 로잔느는 학교 다니면서 만났다. 잠깐의 탐색을 끝내고 서로 관계를 맺으면 누구도 자신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면서 곧장 절친이 된다. 이들은 오직 둘만 같이 행동하며, 공부하고, 말썽도 부리고, 운동도 해서 ‘친 자매 같다’, ‘쌍둥이 같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자주 듣는다. 우연히 금발머리와 푸른 눈까지 같아서. 릴은 모든 운동신경이 뛰어나 수영 챔피언으로 유럽과 해외까지 유명해졌고, 로즈는 학교 연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아 외향적이고 활달하며 생기넘치고 떠들썩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나란히 운동과 연극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일찍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라서 로즈는 학구파에 시인 기질의 헤럴드 스트루더스와, 릴은 스포츠용품과 의류매장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동네 재벌 테오 웨스턴과 짝이 되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합동 결혼식을 하고, 벡스터즈가 있는 바깥쪽 곶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는 이웃으로 정착했다.

  결혼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관계는 릴과 로즈 사이에 있다. 나머지 남편과 아들들은 보조원이거나 들러리이거나 깍두기였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문제가 되지 않고, 릴의 남편 테오는 체인점 관리와 구매처 방문으로 숱하게 출장을 다니며 외간 여자들과 염문을 만드느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시인 기질이 충만한 해리(해럴드)는 계속해서 내상을 입고 있었다. 아내는 몰랐지만. 그러다 해리가 메리에게 말한다. 멀리 있는 대학에서 자기한테 교수자리를 권한다고. 메리는 자연스럽게 주말부부를 언급하고, 해리는 함께 이사할 것을 바랐다. 부부는 해리가 그곳에서 치명적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때까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하자고 합의했고, 몇 년 후 정말로 해리에게 젊은 아가씨가 생겨 이혼을 했으며, 늘 출장과 바람피우기와 전속력 운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테오도 자동차 사고로 죽는 바람에 주체 못하는 현금을 릴에게 남겨 놓은 채 두 명 다 과부가 된다.

  아들들 역시 엄마들처럼 절친으로 자랐다. 톰은 어려서부터 의젓했고 이안은 섬세하고 예민하며 까다로운 아이로 컸다. 두 아이들은 자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죽어버려 상처를 입은 이안은 톰의 집에서 밤 늦은 시간에 울고 있었고, 메리가 이 시간에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이안을 발견했으며, 늘 그랬듯이 그의 머리통을 감싸며 위로해주었다. 해리의 방에 뉘고 그를 도닥이며 잠들었다.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러나 아침이 오자 이안의 눈 속에는 갈망과 고통과 허기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며칠 후, 이안은 다시 톰의 집에서 잤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을 잘 때쯤 톰의 집에 와서 해리의 방으로 들어갔으며 한밤중에 어둠을 더듬어 이안이로즈리의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로즈의 옆에 눕더니 폭풍우 속의 구명띠인 양 로즈에게 매달렸다. 이렇게 사랑은 시작했다. 비슷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톰과 릴의 사랑도 시작했다. 자연스럽지 않다고?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은 깊었고, 오래 갔고, 슬펐으나 나이 든 여성들의 지혜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그러나 고통스럽게 칼 같이 끝을 맺었다. 다만 세상엔 완벽한 건 없는 법. 결코 열지 않았던 서랍 속에 이안과 로즈 사이의 또는 톰과 릴 사이에 소통했던 편지 꾸러미가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혹은 알았지만 처분할 수 없는 미련이 남았든지.

  이들의 사랑을 엽기라고, 비행이라고, 추문이라고, 비윤리적이라고 흉을 보고 싶으면 흉을 보라.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일 뿐. 나는 이들의 사랑을, 적절한 시기에 큰 용기로 적절하게 맺어버린 사랑이 거슬리지 않았으니.

  도리스 레싱. 문장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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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의 편지 창비시선_다시봄
강은교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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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만에 강은교를 읽는다. 헌책 샀다. 이이의 《허무집》과 《풀잎》 이후 시집으로는 처음 읽는다. 그동안 잡지에 나오면 읽고 아니면 말고 그랬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지만 정말 그런 시만 쓰고 싶었을까,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나는 그것이 의심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1945년에 함경남도 흥원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 출생 이후 줄곧 서울 살다가 80년대 중반이 지나서 박사 받고 동아대학 국문과 교수하느라 부산에 살았으니 이 정도면 서울 사람이라고 해야지 뭐. 애초에 허무와 존재를 고민하던 시인이었으나 세월이 점점 험해지니 참여의 길로 한 발을 디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지만, 애초에 깔린 모던한 사색을 어찌 몽땅 털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하여간. 내가 아는, 이라기 보다, 내 기억 속 강은교와 가장 가까운 시는 이거였다.



  벽 속의 편지

      그날



  이 세상의 모든 눈물이

  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

  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


  그대, 아직

  길 위에서 길을 버리지 못하는 이여.   (전문)



 이 시를 70년대, 80년대에 읽었다면 “그날”에 관해서는 누구나 다 말도 한 마디 할 필요 없이 읽는 순간 팍, 이해를 하고, 아니면 시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해했다고 치고 “개벽”이라 말했을 거 같다. 그러나 시집이 나온 시기가 1992년. 시인의 나이 마흔일곱 시절.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왕년의 민주투사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을 하고(했나? 며칠 더 있어야 하나?), 여전히 자본 카르텔에 대한 저항은 저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목이 터질 망정, 하여간 그날을 이젠 꼭 다 같은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달인이 강은교, 라고 생각했다. 모던한 인텔리이지만 리얼리즘을 노래해야 했던 불운한 시기에 빌어먹을 전성기를 달린 시인. 예를 들어 <울음의 線 – 그 첫번째>의 첫 연을 읽어보면:


  나의 이름을

  골리앗 크레인

  ‘외로운 늑대’라고 불러다오

  별을 세고 있으면 문득 별이 사라진다

  새벽 2시

  어둠이 동지들 곁

  씨멘트 위에서 끓고 있다   (부분)


  강은교의 팬들에게 돌팔매를 맞아 죽을 말이겠지만 현직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노래치고는 공허하다. 난데없이 등장한 외로운 늑대는 또 뭐여?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 농성하는 사람, ‘동지’들이 외로운 늑대라고? 내가 단어를 잘못 알고 있는지 싶어 ‘외로운 늑대 lone wolf’ 검색해봤다. 하여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는 알겠으니까 그건 그냥 넘어간다 쳐도, 동지들은 새벽 두 시에 찬 씨멘트 위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것이 선생한테 그렇게도 사무치는지,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는 그들에게 한 다리 건너다. 오늘 도리스 레싱 작품에서 더 적절한 문구를 읽었지만 인용하지 않는 것은 나 역시 강선생의 오랜 독자라서임을 통촉하시옵소서.

  다음엔 이것 한 번 읽어보시라.



  새우



  꼬부라진 등을 메고

  비릿한 수염이 허공을 뻗어 있는

  희푸른

  그 새우를 아는가.


  허허벌판 접시 위에서

  모진 이들에게

  살껍데기를 다 벗기우고

  가끔씩 푸들푸들

  세상맛을 보는 듯 경련하는

  그 새우를 아는가.


  퍼덕이는 말과 말 사이로

  미사일들의

  숨죽인 굉음과 굉음 사이로

  가끔씩 푸드드득


  푸드드드득.   (전문)



  1992년 출간 시집이니 이 당시 산 채로 껍질을 벗겨도 아직 신경은 살아 있어 가끔 접시 위에서 푸드득 살을 떨던 새우는 요즘에 양식해서 자주 상에 오르는 대하가 아니다. 보리새우라고 부르고, 당시엔 ‘오도리’라 했던 남해 특산 어종이었다. 단맛이 일품이고 주문하면 종업원이 직접 껍질을 까주기도 했다. 술꾼들이 상 위에 껍질 벗긴 보리새우를 올려놓고 수다를 떠는 광경이다. 그러나 창비 진영의 작가, 시인, 독자가 이 시를 읽을 때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를 떠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술꾼들의 수다를 미사일 터지는 장면으로 변환할 수 있고. 이럴 때 시인은 시치미 뚝 떼고 뒷짐을 지고 있으면 된다. 해석은 당신들이 하라고. 그냥 껍질 벗긴 새우의 장면을 연상하면 더 좋은 시가 될 터인데, 끙. 내 의견대로 읽는다면 괜찮은 모더니즘 시일 수 있을 텐데.

  비슷한 수산물이 하나 더 있다. 강은교는 수산물엔 폭탄이 터지는 습관이 있다.



  아구



  오늘 아구 한 마리 사왔네

  멋진 아구찜, 아구탕의 꿈을 위하여


  쭉 찢어진 아가리가 몸뚱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네

  그 녀석의 뼈는 또 왜 그리 억세던지

  칼로 내려치는 나를 향해 연신 비아냥거리고 있었네

  그 녀석의 미끌거리는 잿빛 살껍질도

  날아가는 로켓탄 같은 아가리도


  ‘어둠이 질기면 얼마나 질기랴’

  그 녀석의 짓무른 눈

  젖어, 고함치고 있었네.   (전문)



  이 시도 마찬가지다. 기껏 통통하게 살 오른 아구 한 마리 사와서 칼로 치다가 작은 따옴표 쳐서 강조하기를 ‘어둠이 짙으면 얼마나 질기랴’ 한 마디를 해야 속이 풀린다. 아구탕 걸지게 한 국자 떠 마신 것처럼. 바로 앞 연의 마지막 행 “날아가는 로켓탄 같은 아가리” 역시 ‘어둠이 질기면 얼마나 질기랴’를 쓰기 위해 굳이 로켓탄까지 찬조출연한 거 같다. 아구찜, 아구탕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큼지막한 식칼로 아구의 몸을 우당당탕 치고 있다가 시인의 눈에 큼지막한 아구의 아가리가 로켓탄처럼 보였고, 하고 많은 중에서 하필이면 로켓탄처럼 보였고, 싱싱하지 않았나? 짓무른 눈도 지 까짓 것이 얼마나 질기겠어? 고함을 친단다. 그럼으로 해서 시인은 동류의 동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내 말이 뭐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명인이라니까. 매콤한 아구찜, 얼큰한 아구탕으로 시작했다가 어둠 규탄대회로 끝나는 거 말이지. 하긴 뭐. 시는 시고, 삶은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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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문지 스펙트럼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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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란 작품이다. 하나는 오에의 문장. 내가 여태 오에 겐자부로를 헛 읽은 거 같다. 아니면 이이가 조밀하게 직조하는 날실과 씨실의 얽힘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은 그냥 넘어간 것인지도.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보다 오에 겐자부로가 부사와 형용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한 작품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스토리 중심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작가인줄 알았는데 아오,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고 꾸밈도 많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쓰다니. 다른 하나는 새싹을 뽑는 것도 모자라 기어이 어린 짐승에게 총질을 하는 어른의 비정함을 노골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 일반에서 어린이는 현재 또는 미래의 희망을 은유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놀라움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의외였던 두 가지를 합쳐 말하자면, 집단 이기심에 의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유려하고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광상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심미적 문장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적재적소엔 바로 그 문장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칼로 벤 듯한 글도 읽힌다.


  “살인의 시대였다. 지루한 홍수처럼 전쟁이 집단적인 광기가 인간의 정념 구석구석에, 몸의 빈틈없는 구석구석에, 숲이며 도로, 하늘에 범람하고 있었다.” (14쪽)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 폭격기가 도심을 공격하기 시작해 피해자가 속출하자 급기야 일본 군부는 시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린다. 일본처럼 태평양 너머 저 멀리 있는 본토가 폭격당하고 있다면 당연히 이 전쟁은 지는 전쟁이다. 전황이 불리해질수록 군부는 더욱 악착 같이 집단 최면을 시도해 국민들 역시 더욱 교조적이 되는데, 일본처럼 전장과 후방이 극단적으로 먼 거리일수록 더 할 것임은 당연하다.

  나는 일반적인 일본 사람들의 성향을 알지 못한다. 다만 천 년 세월동안 무신정권 치하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센 자한테 약하고 약한 자한테 강하게 진화되어 왔다는 건 이해한다. 전쟁 말기의 극단적 애국주의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심리.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작품 속의 일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모든 행위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감화원 소년들이다. 도시에 소개령이 내려지자 감화원에서는 원생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각자 알아서 소개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다수 가족들은 결코 자신들의 못된 혈육을 맞으러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공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못살게 구는 선배를 찔러 감화원에 오게 되었는데, 아이를 데려가라는 편지를 받은 아버지가 군화 신고 징용일꾼모자를 쓰고 동생까지 데리고 나타나 ‘나’를 데려가기는커녕 동생마저 감화원의 집단 소개의 일원으로 붙여 놓고 가버렸다. 그래서 ‘나’의 아무 잘못 없는 어린 동생까지 합해 열다섯 명의 원생들이 변변치 않고 푸르죽죽한 제복을 입고 헝겊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채 1차 소개원의 신분으로 걸어서 멀고 먼 시골까지 걸어가고 있다.

  감화원.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가두어 두고 교정하는 시설이다. 다수를 가두어 두면 반드시 그곳을 이탈하려는 사람이 발생한다. 1차 소개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미나미(남쪽)이란 별호로 불리는 남창 출신 소년이 다른 어린 소년과 함께 적절한 밤시간을 틈타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미 시골지역으로 접어들어 인적이 드문 고장이거늘 이들은 시골 어른들한테 붙잡혀 무수하게 구타당하고 순경에게 넘겨 버렸다. 시골. 이곳은 외지에서 온 사람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내는 농민이란 또 하나의 바다였다. 감화원 아이들이 작은 집단을 이루어 간신히 표류하고 있는 섬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가는 곳마다 시골사람들은 이들을 에워싸고 현기증이 날 만큼 감탄하며 보고 있었는데, 원생들은 눈길에서 일상적인 굴욕과 어두운 분노를 함께 느껴야 했다. 그러나 원생들의 일상들은 몸과 마음에 극도로 상처를 입으면서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 연거푸 가로놓여 있어 그것들과 맞부딪혀가는 수밖에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탈주한 감화원 원생을 잡아 넘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직접 잡아서 두드려 팬 다음에 경찰을 불러 신병을 인수하는 건 조금 과하다 싶지만, 경찰에게 탈주한 원생이 어디에 숨어 있다는 것을 신고하는 정도야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지금은 일단 이렇게만 하고 넘어가자.

  하여간 감화원생들은 소개지로 출발한 다음부터 지칠 줄 모르고 탈주 시도를 반복했으나 매번 악의에 불타는 시골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혀 초주검이 되어 다시 끌려오기를 계속했다.


  감화원생은 마지막 소개지로 가는 도중에 해군 하사관학교 병사들이 길을 가득 메운 것을 목격한다. 이들 가운데 중년의 헌병도 끼어 있다. 하사관학교 병사 한 명이 탈영을 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벌써 “산사냥”을 사흘째 하고 있다. 산사냥이란 건 총기가 별로/거의 없는 농촌사람들이 대신 죽창이나 막대에 대검을 꽂은 무기를 들고 산을 샅샅이 훑으며 창질, 칼질을 해가는 것으로 멧돼지 사냥보다 더 끔찍하다고 한다. 산 사람을 사냥하는 것을 말하는지, 산 속에서 사냥하는 걸 말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변절자, 탈옥수 체포에 주민들이 동원되었던 것이 발전한 것 아닐까 싶다. 나중에 정말 산사냥의 결과를 읽을 수 있다. 이 탈영한 해군 하사관 학교 병사를 조선인 리(李)가 숨겨주고 있었는데 발각이 나서 산으로 도망갔다가 사냥을 당해 끌려올 때는, 죽창에 찔린 그의 왼쪽 배가 열려 내장이 밖으로 돌출되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건 나중 일이고, 하사관학교 병사들이 소득 없이 철수할 때 감화원생을 이끌고 가는 보호 교관이 헌병 하사관에게 접근해 말을 잘 했는지 그의 트럭에 태워 마지막 최종 목적지인 두메 산골 부근까지 그날 밤 안에 가게 되었다. 이 책이 열한 번째 오에 겐자부로. 감화원생이 내린 곳이 오에의 다른 작품 속에 자주 나오는 자신의 동네 부근인 거 같다. 매우 익숙하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지난번 홍수 때 길이 끊어져 이젠 벌목한 나무 운송용 궤도차를 타고 깊고 깊은 골짜기 건너 저 편 마을이었다. <만옌 원년의 풋볼>을 예로 든다면 그해 민란이 일어나던 경사진 산지역. 골짜기는 <익사>에서 ‘나’의 아버지가 마을을 빠져나가다가 물에 빠져 죽은 골짜기보다 훨씬 더 깊게 만들어 놓은 거 같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두메산골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간 곳의 경종(tocsin) 망루, 그 오른쪽에 있는 절이 이들의 숙소이다. 도착지에서는 친절하던 대장장이도 이곳에 오자마자 안면을 철회하고 냉정하며 거칠게 변한다. 이곳의 모든 주민들이 감화원생을 경원하는 것이 훤하다.

  마르고 키가 큰 늙은 촌장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소나무 산을 개간하는 것. 만일 도둑질, 방화, 폭력을 하는 녀석은 마을사람들이 죽도록 패줄 것이며, 규율을 어긴 자는 반장을 정해 기억해 두었다가 보고를 하란다. ‘나’는 엉겁결에 반장이 되어버린다. 밤에는 밖에서 문을 닫아 열쇠를 채워버린다. 밤새 불이나 전부 타서 죽거나 말거나.

  다음날 이들이 맡은 첫번째 작업은 동네에 널려 있는 죽은 짐승을 땅에 파묻는 일. 개와 고양이와 죽은 쥐를 들고 냇가로 가보니 그동안 죽은 짐승이 작은 둔덕처럼 쌓여 있다. 오전 내내 땅을 파 이것들을 묻고 나니 점심 때. 밥을 먹고 땅을 다지기로 하고 철수를 했지만 오후가 되도 아무도 이들을 찾아오지 않는다.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새벽이 되자 이들은 동네가 비어 있음을 알아챈다. 짐승들이 죽어나간 것이 전염병이 돌아서였으며, 역병이 사람에게도 옮아 흙집에 죽어가는 여인하고 딸이 있을 뿐, 밤 사이에 모두 피난을 간 거였다. ‘나’는 밤에 이상한 낌새를 느껴 그들이 도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들이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궤도를 따라 올라가는 것과 가파른 산을 넘어가는 것, 이렇게 두 가지이지만 괘도 저편엔 교묘하게 차단벽을 세워 벽을 오르려 매달렸다가는 벽과 함께 깊고 깊은 골짜기로 추락할 것이고, 산을 넘어가본들 역병지역에서 온 감화원생을 기다리는 건 또다른 폭력 뿐이었다. 이들은 소년 열다섯 명만 전염병이 나도는 마을에 남겨놓고 그렇게 간 거였다.

  나는 이런 장면은 진짜 처음 볼 뿐더러, 비슷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이 탈출을 했으면 신고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어린 아이들만 역병지역에 두고 자기들끼리 도망한다는 발상은 우리나라 옛 이야기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정말 오에가 살던 지역에서는 양식, 그냥 사는 방법, 환란에 처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단 안쪽에 이런 방법이 들어 있을까? 이들과 협력하고 앞에서 말한 탈영한 해군 하사관 학교 병사를 돌보는 유일한 사람은 조선인 리 말고는 없었다.


  역병의 한 가운데에 떨어진 감화원 원생들 열다섯 명. 이 가운데 미나미와 함께 탈주하다가 잡혀온 어린 소년 하나는 계속 호소하던 복통이 악화되어 일찍 숨을 거두고 남은 열네 명이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그러나 뜻밖에도 이들은 ‘어른’의 감시와 간섭이 없는 산골 외딴 곳에서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며칠 못 가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지만. 읽어보시라.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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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1-30 0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진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름다움… ㅜㅜ

유부만두 2024-01-30 14:21   좋아요 3 | URL
저도요. 진심입니다. 잠자냥님 팔스타프님과 공감하는 데에 더 기쁘고요.

Falstaff 2024-01-30 16:31   좋아요 3 | URL
윽. 지금 오후 네시 반. 취기 돌기 전에 얼른 댓글 달아야 한다는... ㅋㅋㅋ
근데 막상 댓글 달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좋은 작품이니까,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입죠.

잠자냥 2024-01-30 16:39   좋아요 3 | URL
이미 취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4-01-30 16:43   좋아요 2 | URL
ㅎㅎㅎ 리뷰에 건배!!!

stella.K 2024-01-30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면 무슨 원예에 관한 책인가 할 텐데 꽤 괜찮은가 봅니다. 저는 이 사람 책 두 권 가지고 있는데 에너벨리에 질려서 못 읽겠던데. 역시 노벨문학상은 영ᆢ하며. 근데 팔님 리뷰 읽으니 혹하네요.

Falstaff 2024-01-30 16:33   좋아요 2 | URL
저는 오에, 이 양반이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랍니다. 당연히 독자에 따라 호오가 있겠지만 다행스럽게 저하고는 딱! 거 뭐냐, 하여튼 뭔가가 맞았는 듯합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4-01-30 1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도 꼭 읽어야지 했던 책인데 잊고 있었습니다. 커피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4-01-30 16:33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ㅎㅎㅎ 틀림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저도 커피 주문해야 하는데.... ㅎㅎ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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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니아 쉬블리는 1974년에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태어난 범띠 여성이다. 이스트런던 대학에서 미디어 문화 연구로 박사를 받고 베를린 EUME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노팅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Virzeit 철학과에서 파트 타임 교수로 있다. 이이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에 팔레스타인에서 발표한 <사소한 일>이 2021년에 영어, 독일어 등 기타 언어로 번역 출판한 이후이며, 독일어 번역본이 2023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문학상을 받기로 확정되었다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해 원래 이스라엘/유대인한테 벌벌 기는 시늉을 하는 독일 관계자로부터 수상이 취소된 일이 국제적인 문젯거리로 확산되기도 했다. 나도 이 사건을 기억해 혹시나 해서 검색했고,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아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내가 작가에게 굳이 범띠 “여성”이라고 한 것은 2부작인 짧은 소설의 1부 주인공이 남성이고 그것도 군인인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게다가 군인이라니.


  1부는 1949년 8월 9일의 일이다. 쉬블리는 이런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루만 빼고는.”

  시작부터 내 신경을 확 끌어당긴다. 기막힌 서두였다.

  그러나 독자는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1949년이라면 그들의 내력을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1년 전인 1948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조금씩 모여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해 점령해버린 해이며, 이후 ‘알나크바’ 즉 대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 약7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해버린 악몽 같은 해였다. 5월에 영국의 위임통치기간이 끝나고 이스라엘 공화국임을 선포하자마자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피로감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지원 없이 재래식 무기로 아랍 여러나라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운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까지는 뭐라하기 힘든데, 이후 그들은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말끔하게 소탕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1949년 8월 9일에 건조한 네게브 사막에 도착한 이스라엘 육군 소대는 두 가지 임무를 받고 먼 남쪽까지 내려왔다. 이집트와의 남쪽 국경, 휴전선을 지켜서 아무도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 그리고 네게브 사막 남서쪽을 샅샅이 뒤져서 잔존 아랍인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일이다. 전쟁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인들은 아랍인은 물론이고 유목민인 베두인과도 대단히 바람직한 관계를 맺었다. 사막의 이스라엘인 개척지에 베두인들이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민트 차를 나누어 마실 정도였다니. 그러나 전쟁 중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이제는 엄연한 이스라엘인 자신들의 나라 땅 안에 있는 아랍인종들은 당연히 제5열이거나 정보원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모든 아랍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교 한 명, 부사관 몇 명과 사병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파견군은 이집트와의 휴전 선언이 이루어진 이래 이렇게 먼 남쪽까지 도달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소대로서 지역 안전 유지를 위한 모든 책임(이라는 명목하의 과하게 넘치는 권한)이 주어진 거였다. 즉, 소대는 국가라는 권력을 대신해 이 지역에서 집행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며, 언제나 권력은 주어진 순간부터 악으로 전환되기 십상인 법이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사막의 소대, 이 가운데 특히 최고 지도자이자 단 한 명의 장교인 ‘그’를 관찰자 시점으로, 가장 건조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남아 있던 것은 두 채의 오두막과 부분적으로 파손된 세번째 집 벽의 잔해 뿐이었다. 장교는 오두막 하나를 숙소로 쓰고 지휘소 천막 하나와 부대원의 취사용 천막을 세우게 했으며, 옆에 병사용 막사 세 동의 천막을 설치하라고 지시한다. 오두막에 들어간 장교는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셔 옷을 벗고 몸을 닦는다. 얼굴, 가슴과 복부, 손이 닿는 곳까지 등을 문지르고 이어 다리까지 꼼꼼하게 씻는다. 이후 사병들을 불러 군기를 확실하게 확립할 것과 특히 개인위생에 신경 쓸 것을 주문한다. 면도도 반드시 하루에 한 번 할 것까지. 이후 차를 타고 첫번째 순찰을 나가지만 극심한 더위 속 모래 언덕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날 밤, 더위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낸 다음이라 깊은 잠에 빠진 장교는 잠결에 자신의 허벅지에 뭔지 모를 물것 하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촉감으로 느끼면서 잠을 깬다. 어떻게 할까를 잠시 궁리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면서 물것을 손으로 쳐 떼 버리고 랜턴을 켜서 확인을 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이 잠깐 사이에 그것이 허벅지를 물었는지 허벅지에 아주 작은 빨간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 시작한다.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은 고통.

  이후 장교는 극심한 위통과 등에 경련이 나는 등 심하게 애를 먹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사병들 앞에서는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위생병의 도움 없이 자신이 따로 가지고 있는 소독약과 연고, 거즈와 붕대를 이용하여 치료하고자 한다. 이런 상처를 숨기고도 그는 자신의 임무에 조금의 소홀도 없이 매일 차를 타고 순찰을 돌며, 밤이 내려도 혼자 총을 메고 진지 주변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11일에는 물린 곳의 가운데엔 고름이 차고 둘레에는 붉은 원, 푸른 원, 그리고 검은 원이 두르고 있는 상태에 이른다. 그럼에도 밤엔 홀로 소총을 메고 사막으로 나갔다. 새벽에 되자 돌연한 발작을 시작했고 결렬한 오한과 가쁜 호흡, 기침과 트림에 이은 구토까지 경험해 12일 새벽에 진지로 돌아온다. 이제 시야에는 검은 점과 회색점이 날아다니는 비문현상도 일어난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12일 오전에 장교는 다시 차량 순찰을 나가서 계속 직진할 것을 주문한다. 모래 언덕을 몇 개 넘으니 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빈약한 풀줄기 사이에 얕은 샘이 있고, 그것을 끼고 한 무리의 아랍인과 여섯 마리의 낙타,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다. 그와 운전병은 그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해서 아랍인 남자 전부와 낙타 여섯 마리 모두를 쏴 죽여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흐느끼는 소녀 한 명과 개. 이들을 차 뒤편에 싣고 부대로 돌아오는 장교.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인들이 습격할 수도 있어서 특별 경계 명령을 내린 장교는 진지 주변에 추가로 병력을 투입하고 소녀는 주방에서 일을 시키도록 하겠다고 하며 일단 옆 오두막에 가둔다. 숙소에 돌아온 장교는 또 옷을 벗고 깨끗하게 몸을 씻고 잠깐 쪽잠을 잔다. 이 사이에 병사 몇 명이 벌써 소녀한테 손을 댄다. 소녀가 울면서 소리치는 걸 보고 단번에 상황을 짐작한 장교는 병사들을 불러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소녀를 진지 식당에서 일하게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녀를 가지고 놀든지.”

  우물쭈물하던 병사들은 모두 소녀를 겁간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지만 장교는 소총을 짚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모든 병사가 보는 앞에서 소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수조에 호스를 연결해 샤워를 시킨 후 휘발유로 머리를 마사지시켜 머릿니를 제거한다. 밤이 오자 장교는 자신의 오두막에 야전 침대를 하나 더 설치하게 하고 소녀를 들여 잠을 자다가 휘발유 냄새가 지독하지만 겁탈을 하고 만다. 거부하는 소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친 후에.

  다음 날, 1949년 8월 13일. 소녀를 다시 원래 오두막으로 보낸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두막으로 달려가 순서에 의해 겁탈을 하고, 장교의 허벅지 물린 곳은 하얀색과 분홍색과 누런 색의 고름이 한데 섞인 썩은 살의 작은 구덩이로 변해 그곳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정작 장교 자신의 악취는 베두인 소녀의 머리에서 나는 휘발유보다 훨씬 더 지독했던 거였다. 이날 오후, 장교는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소녀와 함께 다시 사막으로 간다. 휘발유가 아까워 진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해 가로 0.5미터, 세로 2미터의 구덩이를 파라고 지시하니 이 말은 들은 소녀는 울면서 장교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장교는 소녀의 머리통에 권총을 발사하고, 아직 채 숨이 넘어가지 않은 소녀에게 부사관이 여섯 발을 더 발사한 다음에 구덩이 속에 묻으면서 1부가 끝난다.


  2부는 이 살인이 있던 25년 후의 8월 13일에 태어난 여성 ‘나’가 등장한다. 인텔리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어느날 베두인 소녀 학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직장 동료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렌터카를 운전해 먼 길을 떠난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옛 팔레스타인 땅에 살기 위해서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경계선을 별 생각없이 곧장 달려가서 한 달음에 뛰어 넘거나 그냥 슬그머니 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조바심 없는 성격의 ‘나’.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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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1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범띠 여성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