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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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1973년 작품. 이이의 작품은 뇌 헤르니아를 갖고 태어난 아들 오에 히카리, 중국에서 붉은 가죽 가방을 가지고 귀국해 가족과 함께 살다가 익사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일본의 개화기에 오에 집안 주변에 있었던 민란, 전쟁 후 (대체로 우익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진) 반 정부 집단 행동 등 몇 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도쿄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천생 지식인이라서 아버지의 생애나 옛 시절의 민란 그리고 젊은이들의 반 정부 집단에 관해서는 늘 관찰자 역할에 충실히 머물렀다. 그렇게 알았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이하 “홍수는”>은 이런 믿음에서 벗어난다. <홍수는>에서 가명 “오키 이사나”를 사용하는 주인공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피자들의 그룹인 “자유 해양단”에 기꺼이 가입하여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한다. 여태 오에의 여덟 작품을 읽으면서 굳어진 그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산뜻한 경험이었다.


  나는 일본 작가 가운데 오에 겐자부로를 가장 좋아한다.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하나 빠짐없이 공고한 직조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여진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커다란 구조물을 짓고 있는 벽돌공이랄까, 완성된 건물에서 벽돌 하나, 고인 나무 하나를 빼더라도 모두가 와장창 무너질 것 같지만 정작 지어놓은 건물 자체가 벽돌이나 나무 하나를 빼지도 못하게 완강하게 조여진 듯한 작품. 이것이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기분이었으며, 읽을 때마다 나로 하여금 경탄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작년 말에 한 번에 오에의 장편소설 세 작품을 연달아 읽을 때는 무척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때 읽은 것이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그리고 <책이여, 안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멀미가 나는 거 같다. 그러니 오에의 작품은 적어도 몇 개월의 터울을 두고 읽는 게 좋을 듯. 실제로 오랜만에 읽으니까 문장이나 구절 하나하나 섣불리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이렇게 질리지 않았던 이유는 물론 원래 글이 훌륭해서 이겠지만, 나처럼 아마추어 독자들은 아무래도 심리묘사만 무난히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약간 울퉁불퉁한 서사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주는 것이 흥미를 끄는 법인데, 놀랍게도 전혀 오에 답지 않게 등장인물들 거의 모두가 극단적인 성격이랄까, 하여튼 비정상적인 과격성을 가지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도무지 대충 읽을 빌미를 주지 않았던 것이 컸다.

  주인공 오키 이사나는, 한 시절 일본 정계에서 꽤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의회 거물 의원의 최측근 비서였다. 의원이 정치적으로는 선량한 쾌남이었지만 흔히들 그렇듯이 알고 보면 괴물 가운데 괴물이라서 의원 근처의 모든 이들은 그를 괴물의 ‘괴怪’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심지어 전후 일본이 숭상했던 미국으로 유학해 거의 모든 몸가짐과 사고방식을 미국식으로 탈바꿈해 돌아올 것을 지시받아 그렇게 한 친 딸마저. 후에 괴는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을 오키의 아내로 보낸다.

  괴가 괴일 수 있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계 어디를 가나 현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자신의 침대 위에 대령시키라는 지시를 비서에게 하달하는 거였다. 이사나 역시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괴의 지시를 한치 어김도 없이 수행하였으나, 발칸 반도의 한 나라에서 그만 사고로 괴의 호텔방에서 소년 한 명이 죽어버리는 사고가 생긴다. 이사나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죽은 소년을 방 옆 건물 모서리로 안고 가서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위장하기 위하여 떨어뜨리려는 순간, 소년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알았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엉겁결에 손을 놓았으며, 소년은 순간적으로 이사나의 손목을 할퀴기까지 해버렸다. 괴와 이사나는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출국하여 완전한 범죄로 끝날 수 있었으나 사건과 죽은 소년이 남긴 이사나의 흉터는 물론 고스란히 지울 수 없었다.


  이후 이사나는 건축회사로 직장을 옮겨 흥미롭게도 핵 셸터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부의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핵 셸터”. 띄어쓰기 하지 않고 그냥 핵셸터라고 표시하는 이 건축물은, 20세기 말 한때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건축물로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발발해 닥칠 심판의 날을 대비한 피난처로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3미터 x 6미터 크기의 지하벙커다. 회사는 견본 핵셸터를 무사시노 대지 서쪽 끝자락에 만들었지만 세계적으로 핵전쟁의 위협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변함에 따라 기업화까지 진행하지 못했고, 견본 셸터는 일본 유일의 핵셸터로 남았다.

  이사나는 아들 진을 낳고, 낳자마자 뇌수술을 해야 했고, 태어난 순간부터 뇌수술을 해야 하는 동안 <개인적인 체험>에서 보듯 아내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미 사이가 멀어진 괴와는 상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정상적이지 못한 진이 아무 이유 없이 쓰러져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 이사나는, 나중에 보면 분명 유도의 낙법을 사용할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진처럼 그냥 맥없이 고꾸라져 코피가 터지고, 광대뼈가 무너지고, 심지어 생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울증에 진입한 이사나는 아내에게 진과 함께 버려진 핵셸터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부탁해 승낙을 얻는다. 부탁을 한 이유는 지하에만 건설을 한 핵셸터 위에 3층 건물을 증축해 (피난처가 아니라 살림용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아내나 장인의 돈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얼마 후 핵셸터를 포함한 좁은 면적의 3층 건물로 옮긴 부자. 아버지는 프리즘쌍안경을 통해 숲을 관찰하는 것으로 소일하면서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리인으로 자처한다. 얼마 후 이이는 자신의 이름마저 오키 이사나(大木勇魚: 큰 나무 용감한 물고기)로 개명해버린다. 물론 호적까지 바꾸지는 않지만. 또한 아들은 아버지가 녹음해준 새소리를 들으며 몇 십 종의 새소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 당연히 천재적인 음감을 가졌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오에 겐자브로는 일찍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핵 공격의 비극에 관해 깊게 이해한 바 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비핵 또는 반핵 운동의 선봉에서 활약한 평화주의자였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반핵주의자로 핵셸터에 집을 짓고 사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독자들의 생각이고, 일반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반핵과 전쟁에 관한 공포로 이상 심리상태가 된 “세상의 이모저모”에서 소개한 별난 외국인 몇 명을 제외한다면 유독 두드러진 사람이기도 하다. <홍수는>에 나오는 핵셸터의 주민들도 이사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이사나가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외톨이로 지내지만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이사나를 알고 있다. 독특하거나 별난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모난 사람”이라서.


  그러나 이사나에게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자유해양단.”

  이들은 만일 도쿄에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큰 지진이 나면 백 년 전에는 지진 피해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생긴 일이라고 호도하며 조선인을 학살했지만, 이제는 자신들 같은 권력이나 힘 없는 청년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크지 않은 선박을 (물론 제일 좋은 건 돈 주고 사는 것이긴 하다) 탈취하거나 얻어서 공해상으로 나가 국적을 포기한 후 세계인으로 살겠다는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대개 십대 미성년자로 구성되었으나 “오그라든 남자”로 불리는 전직 잡지사 프리랜서 카메라 기자 단원은 마흔이 넘었다.

  이들은 단원 가운데 한 명 있는 여자아이 이나코를 시켜 거구의 형사 한 명을 유혹해 아지트 근방으로 유인했고, 그로부터 권총을 약탈하는 데도 성공했지만, 와중에 형사가 가장 어린 단원 “보이”를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과 보이의 팔을 연결해 수갑을 채웠고, 보이는 칼로 형사의 손목이 아니라 자신의 손목을 잘라 도망하려 하자 형사는 할 수 없이 수갑을 풀고 혼자 도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깊게 자상과 창상을 입은 보이의 손목이 탈이 났다는 것. 보이는 열이 오르고 헛소리도 해대는 등 파상풍 비슷한 증세를 보여 그들도 바라지 않는 바이나 어쩔 수 없이 이사나의 셸터에 보이를 들이고 이나코로 하여금 간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이사나와 해양단 서로간의 기싸움도 있었고 음란하게 보이기도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그렇게 된 후 우연히도 이나코와 이사나의 아들 진이 유난한 친밀도를 유지하게 되고, 덕분에 이사나 역시 조금씩 자유해양단에 관해 호감이 생겨, 결국 자유해양단의 대변인, 작품 속에서는 “말”, 쉽게 말하는 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작품은 이사나와 진, 독특한 성격의 자유해양단 단원, 괴와 그의 딸 등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주축 정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드라마틱해지고, 아주 예외적으로 거친 대단원을 맞는다. 그러니 읽기에 따라 재미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 묘사보다 역시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진짜 묘미는 문장과 문단 자체가 갖고 있는 긴장과 견고한 맛을 음미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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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15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목요일,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금요일.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이 삽질을 계속 해야할지 몰라......

유부만두 2023-09-15 07:27   좋아요 2 | URL
계속 해주십쇼!

coolcat329 2023-09-15 07:50   좋아요 2 | URL
오렌지 리뷰 궁금합니다.
어떤 소설일지 궁금했거든요.

Falstaff 2023-09-15 16:42   좋아요 2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조금 더 계속해보겠습니다.
<오렌지...> 이거 참, 기대보다 훨 좋았습니다. 별 다섯을 주지 않겠지만 아주 제대로 마음에 들더라고요!

건수하 2023-09-15 20:44   좋아요 1 | URL
오렌지~ 저도 궁금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coolcat329 2023-09-15 0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 봤는데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군요. 어떤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개인적인 체험과 애너벨 리 가지고 있어요~^^

Falstaff 2023-09-15 07:38   좋아요 2 | URL
조금 거칠지만 <개인적인 체험>이 장편 데뷔작이니(맞나?) 그것부터 시작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후 곧바로 대표작 <만옌 원년의 풋볼>로 치고 들어가시는 것이... ㅎㅎ

coolcat329 2023-09-15 07:49   좋아요 2 | URL
훌륭한 작가이자 지식인이라 잘은 모르지만 존경심을 갖고 있네요.
골드문트님 감사합니다 😄

자목련 2023-09-15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예정 리뷰, 세 권 모두 기대가 됩니다^^

Falstaff 2023-09-15 16: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근데 읽어보시면 별 거 없는 걸로.... ^^;;;

수이 2023-09-15 0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을 떠나고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골드문트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Falstaff 2023-09-15 16:39   좋아요 2 | URL
아휴, 이런 황감한 말씀을요.
지금 쉬고 계신 것이지 떠나지는 않았잖아요. 세월이 무지하게 깁니다. 편하게 마음 잡수시기 바라요. ^^

그레이스 2023-10-0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이름을 바꾸셨네요^^
저도 이 책 들여놨습니다.

Falstaff 2023-10-02 06:13   좋아요 1 | URL
넵. 골드문트 하니까 추레하게 늙은 것이 젊은 티 내려고 발악하는 기분도 좀 들더라고요. ㅋㅋㅋㅋㅋ 그저 생긴 대로 살아야 좋은 법이라서요.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좀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왕왕 나옵니다. ^^
 
산의 거인족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장지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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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극 myth drama. 피란델로는 신화극 3부작을 썼으며 이는 정치 신화극 <신식민지>(1927), 종교 신화극 <라자로>(1928), 예술 신화극(1936)으로 되어 있다고 각주를 달아 놓았다.

  루이지 피란델로는 1867년 시칠리아의 유황 광산주의 아들로 태어나 홈 스쿨링을 하는 등 유복하게 성장했다. 문재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열두 살 때는 벌써 5막짜리 비극을 가족을 대상으로 공연했단다. 팔레르모와 로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의 본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는다. 이후 시, 소설, 극작가로 이름을 높였으며 193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최상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이란 것이 그리 쉽게 오는 법이 아니라서 그도 삶의 곡절을 피할 수 없었다. 피란델로는 아버지의 부유한 동업자의 딸과 결혼을 했지만1903년에 아버지와 아내가 투자한 광산이 홍수로 거덜이 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파산을 맞이하게 됐고, 동시에 이 충격으로 아내마저 정신착란, 조현병이 발현한다. 아내를 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1919년까지 15년 동안이나 집에서 아내의 정신병을 수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의 광기에 시달리는 동안, 아들마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포로로 잡혀 버렸다. 아내의 정신병적 광기, 포로 상태에 빠진 아들, 그리고 재정적 파탄에 시달리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아들은 풀려나 귀가했으며, 끊임없는 집필생활로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 예술가 앞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호전적인 파시즘이었다.

  이 극작품 <산의 거인족>을 더 재미있게 읽으려면 피란델로가 대본을 쓴 오페라 <바뀐 아들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비록 이것이 유럽에서는 곳곳에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민담으로 동아시아에서도 책 좀 읽는 사람들한테 줄거리를 말해주면 당장에 비슷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민담의 제목 <바뀐 아들 이야기>로 내용을 단박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체인즐링 스토리다. 가난한 부부가 금발의 아름다운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밤 마녀가 나타나 아기를 데려가고 대신 검은 머리의 못생긴 사내 아이를 남겨 놓았다, 아기는 북국의 왕자 신분이 되어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자라 청년이 되었을 때 남쪽으로 여행을 하다가 진짜 엄마를 만나고, 역시 청년이 된 힘센 검은 머리의 아들이 사정을 알게 되어 자기가 차지해야 할 왕좌를 빼앗기는 거 같아서 금발 청년을 죽이려 하지만 의붓어머니의 간절한 저지로 그냥 길을 떠나 북국의 왕좌에 올랐으며, 착한 진짜 아들은 깨끗하게 왕위를 포기하고 가난한 엄마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민담을 오페라로 작곡을 했단다. 근데, 초연을 감상하던 ‘일 두체’, 이탈리아의 두목 베니토 무솔리니는 1막이 끝나서는 열심히 박수를 치더니 2막에선 팍 기분이 상한 얼굴을 했고, 막이 내리자 욕설을 퍼붓는 청중에게 더한 소란을 유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폭력적인 검은 머리의 아들을 혹시 호전적인 파시스트의 대장인 자신을 빗댄 건 아닌지 매우 불쾌했던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무솔리니가 히틀러나 스탈린 보다는 좀 덜 독한 놈이 되어 관련자 모두의 코에다가 담배연기를 뿜어 사형에 처하지 않았고, 저 알프스 산맥 오지 탄광으로 유배를 보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 광경을 보고 대오각성한 루이지 피란델로는 예술행위에 있어서 질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작품, 대중과의 접촉성 등에 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 신화극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예술 신화극 <산의 거인족 I gigantic della montagna>를 집필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바뀐 아들 이야기>가 무솔리니 앞에서 거덜이 난 해가 1934년, 1936년에 삶을 던져버릴 그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총 3막 4부로 구성한 작품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대단원을 이루는 3막은 “숨을 거두기 전 아들 스테파노에게 3막 구상을 이야기했고 스테파노는 아버지가 전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전했다. 따라서 3막은 구체적 대사들은 없지만 피란델로가 구상했던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5쪽 각주) 즉 미완성 작품이며 마지막 막은 대사 없이 지문, 산문식 설명으로 되어 있다.


​  이 작품은 세 집단의 상호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먼저 백작부인의 극단.

  연극 배우로 활약하던 미모의 일제에게 홀딱 반한 백작이 일제에게 청혼을 했고, 이를 수락하여 일제는 단박에 백작부인으로 승격을 한다. 일제에게는 꼭 공연을 해보고 싶은 걸작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바뀐 아들 이야기>였다. 작품을 검토한 백작 역시 이런 걸작이면 자신의 운도 걸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어 공연을 지원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문제는 약 42명의 배우가 등장하고 무대와 의상, 조명 같은 것들도 뻑적지근, 워낙 대규모 공연이라서 한 두 푼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 그래도 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을 위한 희생정신이 투철한 백작은 기꺼운 마음으로 아내 이름의 극단을 만들어 <바뀐 아들 이야기>를 지원한다. 그러나 공연은 참패에 참패를 거듭해 쫄딱 망한 백작은 자신의 영지와 성도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으며 백작을 포함해 겨우 여덟 명의 배우만 남아 건초를 실은 수레에 백작부인 일제를 태우고 유랑공연을 해야 하는 처지에 떨어졌다.

  이들이 걸식을 하며 동가식서가숙 유랑을 하다 스칼로냐(Scalogna: 불행)이라는 이름의 빌라에 도착한다. 이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스칼로냐티(Scalognati: 불행한 자들)이라 일컫고 모두 일곱 명이 살고 있으며 마법사 코트로네가 사실상 스칼로냐티의 대장이다.

  스칼로냐는 마법사의 마술에 따라 각종 조명과 (이를 테면 번개, 오로라, 반딧불 같은)효과를 내면서 일반 민중들의 접근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작부인의 극단은 이런 마법에 마치 친근한 듯 빌라에 도착을 하는데, 왜냐하면 스칼로냐에 거주하는 집단과 마찬가지로 극단에 속한 이들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칼로냐 입주민들은 고급 예술을 할 능력과 결과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민중과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이들끼리의 왕국이랄까, 리그에 만족하고 있는 거다. 물론 20세기가 막바지에 이르면 미술, 음악, (일부)문학의 많은 장르가 스칼로냐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이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 전문가 집단들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 구역 안에서 존재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강 이해하기 쉽다. 나는 그렇게 했다.

  193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의 한 빌라 스칼로냐에서도 마찬가지라, 이들을 대표하는 코트로네는 백작부인 극단한테 잘 교육받은 탁월한 전문가들의 모임인 이곳에서 자기들과 함께 머물라고 강력하고 집요하게 권유하지만, 명목상 극단주인 백작부인 일제는 끝까지 대중 앞에서의 공연을 주장한다. 일제는 민중과 함께 하는 예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반드시 크게 망하고 말 것임을 확신하는 코트로네는 어쩔 수 없어 마침 거인족 커플 우마 디 도르니오와 로파르도 다르치파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에 위대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바뀐 아들 이야기>를 올리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식의 주인공인 커플을 비롯해 거인들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즉 작품에서는 한 번도 “산의 거인족”은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하인들이 관객석을 빼곡하게 모인 채 공연을 시작한다. 하지만 공연을 그저 재밋거리, 광대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은 걸작 <바뀐 아들 이야기> 내내 산만하게 공연을 망쳐버리고 이에 열받은 백작부인 일제가 무대에서 관객을 향하여 “에잇, 짐승 같은 것들!”이라 쏘아부쳤으며, 이 말을 들은 다중의 관객은 순식간에 흥분하여 무대 위의 일제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너무 잔인하다고? 신화극이라지 않는가, 신화극.


​  이 정도면 일제를 찢어 죽이는 대중이 어떤 집단을 비유하고 있는지 딱 눈치를 채시겠지? 재미있는 희곡 작품이다. 근데 나는 왜 루이지 피란델로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스페인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파시스트 역시 무솔리니가 아니라 프랑코 개자식인 줄 알았다. 괜히 피란델로한테 미안해지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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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5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에 이런 극작가가 있었군요.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을 추구했나보네요. 근데 백작부인을 찢어 죽이는 부분에서는 이런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는 거 같네요.
이런 작품도 소화해내시는 골드문트님 덕분에 오늘도 한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Falstaff 2023-09-15 16:41   좋아요 1 | URL
자기가 오페라 대본, 리브레토를 쓴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매우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정치는 예술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만 그게 늘 어려운 건가 봅니다.
하긴 뭔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김엘리사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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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해 두 살 때부터 10년 동안 뉴욕에서 생활하고, 열두 살 부터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성장한 인텔리.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비밀 자유투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칠레의 사회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때 도르프만의 나이가 스물여덟. 사회주의 국가의 대두는 라틴 아메리카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혹시라도 자국에 영향을 미칠까 싶은 미국을 자극해, 칠레의 주 산업이었던 구리copper의 국제 시장가격을 대폭 낮추어 칠레 경제는 아옌데 집권 이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시민들의 거의 모든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시작한다. 시민 불만이 고조되자 1973년 8월에 육군 총사령관 대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선 대통령 아옌데를 제거하고 군사평의회 의장 자리에 취임했으며, 이듬해인 1974년 12월에 대통령에 취임해서 1990년 3월까지 17년간 칠레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권력을 손아귀에 쥔 피노체트는 현대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극히 드물 정도의 폭압적인 시민탄압을 통해 집권을 유지했는데, 1980년 광주 시민항쟁 당시, 대통령이 같은 군인 출신, 같은 독재자라서,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칠레에서의 민중 학살이 주로 대학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나도 그때 칠레의 사정을 처음 알았다). 아리엘 도르프만이 서른한 살 때, 피노체트가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곧바로 피의 통치를 시작하는 걸 보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또는 불평불만자로 밀고할 수 있다는 것이 비단 도르프만 혼자가 아니고 당시 거의 모든 인텔리들의 공포이자 생각, 우려였다.

  딱 그때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장기 집권을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형식적이라고 할지라도 합법한(합법하게 보이는) 재판과정을 거친 후에 생명을 거두었던 반면, 박정희보다 10여 년 늦게 권력을 차지한 피노체트는 별 재판도 없이, 예를 들어 진짜로 산티아고 월드컵 경기장에 1만2천 명이 넘는 별의 별 정치범들을 모아놓고 체계적인 스케쥴에 의거하여 숱한 소설작품을 통해 널리 소개된 라틴 아메리카 식 고문을 시전하고, 그러다가 다수는 다시는 햇빛 구경을 하지 못하고, 나와도 거의 불구 상태로 기어 나오기도 했다. 나무위키를 얼핏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다.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과 피노체트 시기 칠레, 두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은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아리엘 도르프만도 당시에 해외로 도피한 무리 백만 명 가운데 한 명이다. 대부분의 해외도피자들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북쪽에 접한 사이 안 좋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멕시코까지 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도르프만은 몇 몇 나라를 거쳐 19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이 당시 칠레에서 3천6백 명이 넘는 여성들도 체포되어 이 가운데 3천2백 명이 강간을 당했다고 하지만, 수십 만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숱하게 많은 남자들은 아무 혐의 없이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특정 마을은 성인 남자가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이런 동네엔 당연히 과부들의 천지였을 것이다.

  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한 도르프만은 (똑부러지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제 칠레의 기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사회 경제적 안정을 찾은 피노체트 정권이 대 시민 유화정책을 펼친 시기를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었으며, 독한 칠레 정권은 현재 구금되어 불구가 될 정도로 고문을 받은 사람들도 차라리 안데스 산맥 위를 나는 비행기에서 내던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숨만 붙어있는 채로 고향 집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반면에 마을의 과부들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아 장사 지냄으로 한 인간의 종말을 뒤끝 없이 마칠 수 있게 해주든지, 사내들의 죽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죽음과 밀접한 누군가의 사과와 징계를 통해 해원을 해주든지, 하여튼 이런 깨끗한 결말을 바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그리하여 《죽음과 소녀》를 여는 첫 작품은 <과부들>이 된다..


​  <과부들>에는 비교적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 푸엔테스 가족만 해도 할머니와 두 며느리, 손녀와 손자, 고문 받아 나사가 빠진 채 나중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작은 아들이 필요하며, 다수의 동네 과부들, 이 마을 출신의 군인과 그와 눈이 맞은 젊은 과부, 로마 가톨릭 신부, 그리고 새로이 주둔한 군인들이 필요하다. 군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주민들을 회유해서 잘 지내려고 하지만 과부들의 계속되는 요구사항에 지쳐 점점 예전의 폭력적인 지배자로 변해가는 대위와, 원래 잔혹한 성격을 가진 중위를 포함한다. 중위의 천성이 잔혹했겠는가. 권력을 쥐어봤고, 어쩌다 보니 그걸 함부로 사용하는데도 누가 뭐라하기는커녕 잘한다고 격려를 받고, 이런 것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강압적으로 일을 밀어부치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신속하다는 진리를 터득해 그렇게 됐겠지. 반면에 대위는 자신도 그렇게 편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잘못, 그리고 계속 사용하다 보면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키기 쉬워 피가 더 많은 피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 동네 군조직의 수장은 비둘기파인 대위의 소관이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저 상류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이미 상당히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오면서 사달이 난다.

  푸엔테스 집안의 소피아 할머니가 부패해 머리통이 떨어져나간 시신을 잡고 자신의 아버지 유해라고 주장하면서, 푸엔테스 집안의 방식으로 매장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할머니는 하루도 빼지 않고 이 계곡에 나와 앉아 아버지, 남편, 아들 둘을 기다리고 있어서, 천지신명이 자신을 돌보아 먼저 아버지의 시신을 자신한테 보내주었다고 주장한다. 설마 시신이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의 친아버지가 맞겠는가? 그저 빈 묘지를 조성해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것보다는 진짜 사람의 시신을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인간의 깔끔한 종말, 그러니까 깨끗하게 정리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겠지. 피노체트 당시 죽거나 실종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라고 집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그저 계곡을 따라 떠내려온 머리 없는 시신이 자기 아버지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지. 그걸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가 몰라서 주장할 리는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다시 강을 따라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또 떠내려온다. 이번에도 시신을 건진 소피아 할머니.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이 동네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지을 목적으로 먼저 주민들을 안정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온 대위는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수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던 시신을 회수한 터에 다시 남편의 시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마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대위는 마을의 신부 가브리엘을 불러, 남편의 시신이 아님을 두 명 다 알고 있음에도 굳이 신부에게 누구의 시신인지 확인을 요구한다. 가브리엘 신부 역시 시신이 할머니의 남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소피아 할머니에게 가늠할 수 없는 지옥 대신 조그마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장례를 주관해주기로 한다. 평화의 이름으로. 소피아의 남편 미겔 푸엔테스의 안식을 위하여. 그러나 대위는 자기 부하가 연애하고 있는 젊은 과부의 남편 시신이라고 이미 거짓 확인을 한 상태. 일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가장 간단한 것은, 있다.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위와 중위가 숱하게 저질렀던 다반사. 가장 쉬운 해결방법. 대위는 시간이 갈수록 이 ‘방법’의 유혹을 감촉하기에 이르고, 마을의 숱한 과부들에게 최후 통첩을 하는 순간에도, 계곡의 강을 따라 또다른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온다.


​  이 책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표제작품이기도 한 <죽음과 소녀>를 들어야 할 터.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우리나라에 청소년 소설로 소개했으나 어른이 보더라도 충분한 단편집 《우리집에 불났어》를 시작으로 창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후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을 내고, 희곡선 《죽음과 소녀》까지 출간했다. 불과 세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죽음과 소녀》 가운데 <과부들>과 <죽음과 소녀>를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꼽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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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9-12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기억
아옌데부터 읽고싶은데 기억해뒀다가 같이 읽어야겠네요.

Falstaff 2023-09-12 07:41   좋아요 2 | URL
아옌데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누가 됐든 칠레의 징글징글한 현대사는 참... 이런 식으로 문학이 발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제목에 기함을 합니다. 뭔가하면 <시고니 위버의 진실> ㅎㅎㅎㅎ

coolcat329 2023-09-12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독재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유치원에 불과했다니 놀랍네요.
근데 칠레랑 네덜란드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멈출 때> 작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칠레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라틴아메리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또 읽고 싶어지네요.

Falstaff 2023-09-12 17:5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런 건(군사독재) 금메달 받는 게 좋지 않잖아요.
칠레-네덜란드는 별로 관계 없습니다 하다보니까 칠레 떠서 네덜란드에 정착했다는 것 뿐이지요.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유럽으로 간 라틴 아메리카 먹물들은 대개 언어가 통하는 스페인으로 간 걸로 알고 있거든요. ^^
 
원무,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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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는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의 서쪽에 솟은 작은 섬인 모리셔스 국적도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이다. 혈통적으로는 틀림없는 프랑스인이지만 아버지는 영국과 모리셔스 국적을, 어머니는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다. 조금 복잡한 내력을 지닌 작가인데, 이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주의 다툼과 모리셔스의 독립으로 인한 일종의 부작용이었다. 르 클레지오가 자신의 삶에 관하여 자전적인 소설을 써서 이걸 상세하게 밝힌 책도 있다. <아프리카인>. 그를 이해하고 싶으면 읽어보시는 것이 좋다. 프랑스인이라기보다 세계인, 이중에서도 비 유럽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누가 알까? 실제로 내가 읽은 여덟 권의 르 클레지오의 작품 모두가 아프리카나 아프리카와 매우 비슷한 환경이 무대이기도 하다.


  2년 만에, 그리고 처음 읽는 르 클레지오의 단편집이다. 《원무,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 그러니까 원무, 독일말로 <라이겐>, 프랑스말로 <La ronde>를 뜻하는 원형을 이루면서 추는 춤의 제목이 사건사고와 연결이 된다. 그럼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원무”가 무엇일까? 설마 르 클레지오의 책을 읽으면서 소규모 관현악 편성에 맞추어 연미복과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족들의 무도회를 연상하시는 건 아니겠지? 책에 나오는 원무는 아직 소녀 티를 못 벗은 빨강머리 티티와 한 달 만 더 있으면 열일곱 살이 되는 아가씨 마르틴이 만드는 일종의 질주다. 티티는 자신의 모터 사이클을 가지고, 마르틴은 티티의 오빠가 빌려준 이탈리아제 모터 사이클 육중한 모토구찌를 타고 질주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황금 물고기>의 주인공 라일라 또는 라이라가 어두운 지하 생활하는 장면이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마르틴은 천둥 같은 폭발음을 내며 도시를 누비면서 푸른 정장을 입은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을 오늘의 먹이로 꼽는다. 티티와 마르틴, 두 명의 소녀가 운전하는 모터 사이클의 원무는 리베르테로 거리에서 끝을 맺고 이제는 직진. 첫 번째 오토바이가 속력을 늦추지 않은 채 인도 위로 올라가 파란 옷의 여인에게 다가가고, 여인의 눈은 배수로 위를 폭주해 달려오는 마르틴의 시선과 약 백분의 일 초가량 머무르며, 이어서 텅 빈 거리에는 고통과 경악의 비명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는데, 검은 핸드백을 움켜쥔 마르틴의 손은 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이게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원무다. 원무, 하고 원무 다음에 오는 쉼표에 씌어질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가 이제는 이어지시지? 이렇게 원무는 벌어진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원무는 반드시 멈춰야 하는 법. 마르틴의 원무가 어떻게 멈추어지는 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두 번째 작품 <몰록>은 읽으면서 계속 긴장하게 되는 작품이다. 위키피디아에는 ‘몰록’을 “고대 근동의 신으로 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공양 제의가 행해”졌으며 신명기와 레위기에 언급되었단다. 주목할 것은 몰록이라는 신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베풀 선행의 대가로 어린아이의 생명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무대는 트레일러 주택이다. 리아나와 시몽이 살고 있었다. 전에 시몽이 나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이름을 그냥 무심하게 ‘닉’이라고 지어주었다. 강아지일 때는 그저 귀엽기만 하더니 점점 크고 용맹하게 자라 이젠 늑대개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리아나는 시몽의 아이를 임신해 어느덧 막달이 다 찼고, 시몽은 트레일러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모기가 들어올까봐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은 창문조차 열어놓지 못하는 리아나와 늑대개 닉은 트레일러의 철제 벽을 사정없이 내리 쬐는 태양볕 때문에 마치 그대로 증발할 것 같다. 그럼에도 리아나는 금테안경을 쓴 사회복지사가 제안하는 구제 사항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왜 거절할까? 무정한 시몽이 적어도 출산 전에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르 클레지오는 리아나가 버티는 이유를 설명해줄 정도의 친절하지는 않다. 밤이 되면 리아나는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닉을 내보내주고, 닉은 주변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닭이니, 토끼, 거위 등을 사냥해 포식한 채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다 드디어 리아나는 오직 혼자, 아니 닉과 둘이 있는 트레일러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태반을 꺼내고 탯줄을 끊고, 젖을 먹인다. 점점 햇빛이 강해지는 날 속에서.

  노란 눈의 늑대개는 리아나와 아기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출산과 출산 후의 탈진으로 리아나는 닉의 밤사냥을 위해 밤에 트레일러의 문을 열어주는 것을 며칠 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다. 트레일러의 모든 것은 스파크에 얻어맞아 마비된 것 같고, 늑대개는 동공이 오그라든 노란 눈으로 미동도 않고 앞만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닉이 맡는 갓난아기의 냄새는 아주 감미롭다. 트레일러 내부를 냄새가 가득 채운다. 늑대개는 그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해 힘줄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다가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허기는 아기 엄마 리아나에게도 찾아와서 리아나는 트레일러를 열고, 닉과 아기를 남겨놓은 채 절룩이면서 고속도로 옆의 편의점으로 걸어간다.

  으시시하시지?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라. 작가 르 클레지오가 설마 엽기 잔혹극을 쓰기야 했겠는가?


  르 클레지오가 늘 관심을 두는 것은 사회의 비주류, 이 가운데서도 청(소)년들, 젊은 계층의 불행과 방황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불행과 방황이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비행을 대단히 건조하고, 담백하고, 그래서 삭막하고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한다. 위에 예를 든 것 말고도, 감옥 혹은 군대에서 탈주하여 프랑스 국경을 넘어 도망했으나 거의 노예 수준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탈주자>, 거리를 배회하다가 여러 명의 불량배에게 윤간을 당하는 소녀 크리스틴 이야기인 <아리안>, 한 시절 너무도 아름다웠던 집을 개발이란 폭군 앞에서 지켜나가려 안타까운 안간힘을 쓰는 <오로르 빌라>의 늙은 여주인 등을 르 클레지오 특유의 건조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르 클레지오의 작품에 내가 매혹당하는 것은, 그의 시선이 거의 약자에게 가 있다는 것과, 약자들이 언제나 선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 그러나 그들이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착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주 악을 행할지언정 작가는 기본적으로 그들 편에 서 있고자 한다는 것 때문이다. 심지어 그저 한 번 그래 보는 것 같지도 않다. 데뷔작 <조서>부터 시작해 내가 읽은 작품 모두,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소외와 이탈 중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래도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독특한 글, 문법이 있었기에 꾸준하게 그를 찾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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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08 0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아리엘 도르프만 <죽음과 소녀>
목요일, 루이지 피란델로 <산의 거인족>
금요일, 오에 겐자부로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hnine 2023-09-08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난해하네요 ㅠㅠ
처음에 모리셔스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때 제가 말레이시아를 잘못 들었나 했었어요.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을때.
르 클레지오가 이곳 국적도 가지고 있었군요.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머물렀던 작가라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정작 작품은 한권도 읽은게 없네요.

Falstaff 2023-09-08 09:5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조서>나 <열병> 같이 난해하지 않습니다. 잘 읽힙니다. ^^
모리셔스가 영국령이었거든요. 그래서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영국, 모리셔스 세 나라 국적으로 다 가지고 있었다가, 아마 영국 국적은 포기했다나 그렇지요? 영어도 프랑스어 만큼 쓰는데, 영국의 식민지정책에 불만을 갖게 되어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8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클레지오도 풀네임에 귀스티브가 있군요 ㅋㅋㅋ저두 한 권도 안 본 작가인데 역시나 저희 엄마가 떠도는 별이랑 우연 읽고 갖춰두신 기억은 있구요 ㅋㅋㅋ몰록은 얼마 전에 다시 본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더라구요 간달프랑 싸워서 간달프가 이김! 골백작님 수염 간달프보다는 짧죠?!?!

Falstaff 2023-09-08 09:58   좋아요 1 | URL
옙. 몰록 쓰면서 반지제왕 얘기도 할까 했습죠.
제 수염은.... 지금 하나 뽑아 보니까, 앗 따거워, 약 1.8cm 정도입니다.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8 10:29   좋아요 1 | URL
20mm아니고 18mm라 하심은... 잘 알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yamoo 2023-09-0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클레이오...예전 직장 다닐 때 이 양반 전공한 친구가 있어서 몇 권을 추천 받았습니다. 첫 권이 아마 <홍수>였나 그랬을 겁니다. 대표작인 <황금물고기>를 읽으라고 했는데, 그냥 홍수가 재밌을 거 같아서 읽었습니다. 결과는 50페이지를 못 넘기고 덮었습니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조서>도 읽다 말았고...책은 7권인가 있는데, 못 읽겠더라구요. 이동진이 소설은 재밌어야 하는데 지루하면 왜 읽느냐고 말하더군요. 음..맞는 말 같아요. 재미가 없더라도 읽는 동인이 있어야 하는데 홍수와 조서는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그래서 르 클레니조는 제게서 멀어져만 갔어요..ㅎㅎ

Falstaff 2023-09-08 16:09   좋아요 0 | URL
<조서>는 저도 읽느라 아주 혼을 뺐습니다. ㅎㅎㅎ
<홍수> 읽은 거 같은데 읽었다는 자국이 없네요. 안 읽고 읽은 줄 아는 걸까 저도 궁금합니다. <황금 물고기>는 괜찮아요. 시도해보셔요! 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커다란 초록 천막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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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생. 스탈린 치하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스탈린이 죽었으나 극소수 소비에트 엘리트를 위하 전체주의는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이 성공적으로 계승해 울리츠카야가 마흔여섯 살이 되는 1989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작가의 젊은 시절은 세계적 냉전 기류 속 도청과 감시, 밀고, 불법 구금, 집단 수용과 유형 수준의 징역의 세상이었다. 물론 소비에트만 그랬던 건 아니다. 다 아다시피 미국에서도 메카시즘 광풍이 있었고, 로젠버그 부부를 전기의자에 올려놓은 일도 있었다. 당연히 미국 및 서유럽의 반공주의를 소비에트에서 행해진 공산주의(체제 유지를 핑계로 행해진) 파시즘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스탈린이 죽은 1953년 이전에 비하면 재판 없는 공개 총살 같은 야만적인 처형은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수준의 탄압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당하는, 즉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전체주의/파시즘/독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장 그 고통이 언제나 엄혹한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권에 의한 시민 통제에 반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어럽게 찾을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1970년대, 80년대 민주화라는 이름의 자유 회복 운동을 떠올리면 직방이다. 울리츠카야는 자기 나이 또래 반정부 활동을 했던 집단을 주인공으로 해서 스탈린 사후인 1953년부터 1996년 세월까지 이들의 성장과 운동가로의 변모, 이후의 고난 등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그렸으니 바로 <커다란 초록 천막>이다.

  제목 "커다란 초록 천막"이 무엇일까? 프롤로그를 포함해서 작품의 여덟 번째 챕터의 제목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천막'은 근본적으로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역자 승주연도 역자 해설에서 "작가도 '천막'이라는 주제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라고 내 의견을 지지해주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이 천막 또는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러시아 멸망 시기, 즉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어진 레닌과 스탈린 시대, 그리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등의 후계자 시대를 통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되었거나, 저항하다 죽음을 맞았거나, (크건 작건 간에) 고통에 찬 '나머지 삶'을 살다가 생을 접은 모든 사람들, 좁게는 등장인물들 주변의 사람들의 죽음을 말한다.

  울리츠카야의 작품은 단편집 <우리 짜르의 사람들> 한 권만 읽었다. 그 책이 많지 않은 분량에 서른 몇 편의 단편을 실은 작품집이라 그리 인상깊지는 않았는데, 울리츠카야가 메릴린 로빈슨에 이어 (세계적인 문학상이었으면 좋았을) 제2회 박경리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조금 관심이 생겼다가, 얼마 안 되어 잊혔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두 권, 본문만 천백 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읽으니, 내용이야 어려운 시절을 보낸 당대 소비에트, 특히 모스크바 시민들에 대한 헌사인 것은 맞지만, 에피소드들이 과하게 복잡하게 얽히고 등장인물도 너무 많아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 않으면 많이 헷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건, 흔히들 그러하듯이 각 단계/챕터를 단편소설 쓰듯 해서 그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는 구조라 그랬지 않을까 싶다만, 내가 뭘 알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읽혔다는 것 뿐이다..


​  세 명의 사내 아이들이 있다.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일리야 브랸스키, 미하 멜라미트, 그리고 사냐 스테클로프. 시절은 40년대 후반 또는 50년대 초반. 43년생 정도의 이들이 1학년에 입학한 시기다. 이들은 사막의 늑대들이 횡행하는 교실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다. 강하고 사나운 두 늑대 무리를 이끌고 있는 무리긴과 무튜킨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잠시의 평화시기를 누릴 때만 되면, 대장 늑대들과 그들의 추종자이자 꼬붕들이 조심하라는 경고로 쉬는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가볍게 취미삼아 두드려 팰 수 있는 타악기로 존재하기도 했다.

  일리야는 비쩍 마르고 키만 훌쩍 컸다. 엄마는 우울증이 있는 홀어멈이라 허름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남루한 차림이었다. 그러나 법석 떨면서 광대처럼 웃기기 좋아했고 가난한 자기 상황을 희화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눈에 번히 보여 더 슬픈 아이였다.

  미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아이다. 엄마는 열차 폭파 사고로 죽고, 아빠는 전사한 고아로 지난 주부터 새로운 후견인이 된 게냐 고모 댁에 얹혀 살고 있는 빨강머리에 주근깨투성이 얼굴, 지독한 근시를 가졌다. 전학을 와서 세 명의 집단에 늦게 가담했다.

  사냐는 지난 시절 거의 최고 귀족 가문의 후예로 피아노 연주에 러시아 식 천재를 가지고 있으나, 후에 장난으로 시작한 눈싸움 도중 늑대 대장 무리긴에 의해 오른손 손가락 세 개의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얼마 안 지나 무리긴도 미하가 선물받은 스케이트를 빼앗으려는 와중에 질주하는 전차에 치어 참혹한 모습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접어버리고 말지만.

  이들은 스스로 '트리아농'이라고 했다. 이 트리아농이 베르사유 궁정에 속한 빌라를 말하는 것인지, '트리'라고 했으니 삼총사 비슷한 것인지, 세 명이니까 삼총사에 더 가깝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는 바, 아직까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가 트로이카, 삼총사 쪽이 더 비슷하지 않을까? 하여간 이 '트리아농'은 20년 후에 사진에 관한 한 도사 수준이 된 일리야를 상대로 한 고위직 공무원이 국가 안보에 관한 위압적인 대화를 하면서 처음 언급한 이름이다. 이들은 어쩄거나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사막 속에서 생존에 성공하여 5학년에 진급을 했고, 위대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상이군인이자 담임 교사인 빅토르 율리예비치 선생으로부터 모스크바 골목골목, 광장 건물마다 그곳에 담긴 러시아 문학의 흔적을 좇는 "러문애", 러시아 문학 애호가들이란 서클이 탄생한다. 당연히 세 명의 트리아농 멤버들은 러문애 회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며, 빅토르 선생을 통해 또래에서 가장 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지니게 되는데, 이때 쌓은 소양은 훗날 이들의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좋은 교사 한 명 만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


​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들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일리야는 대학 진학을 자진해 포기하고 생물학적 아버지가 준 마지막 선물, 소련산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의 모방품인 FED-S 카메라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19세기 초부터 혁명가들의 숨은 사진을 추적하고, 당대 소련의 다양한 운동성과 생활상을 촬영하는데 전력을 다해 다양한 아카이브를 만들어 나간다.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소련 당국에 압수당하기는 하지만 일부는 서유럽으로 유출하여 그곳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리야는 특유의 활달함과 넓은 인간관계로 당대 가장 중요한 반정부 인사의 한 명이 되며, 두 명의 죽마고우들이 곤경에 빠질 때마다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방패막이가 되주기도 한다.

  미하는 어려서부터 시인이었다. 나중에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리 훌륭한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여간 시인은 시인이라서 마음이 여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려 하다가 곤경에 빠지고 만다. 소련 당국은 유대인 미하에게 이스라엘로 이민을 권하기도 하지만, 소련에서 낳고 자라고 러시아 말로 시를 쓰는 시인에게 러시아 땅에서 떠나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퇴양난이 되고 만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사냐는 끝내 여자친구 리자와의 애틋한 사랑을 6촌 남매라는 멍에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사냐는 세 손가락의 신경이 절단되어 연주를 포기하면서 진정으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연주자 대신 음악 이론가의 길을 선택해 성과를 이루지만 이 시기에 청춘의 강을 건넌 사람들 가운데 슬픔 없는 이가 없다. 세 친구를 모두 사랑했던 할머니 안나 알렉산드로브나가 숨을 거두자마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떠난 과부 엄마가 남자와 함께 돌아와 집을 차지하면서 사냐는 소련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다.


​  시절들. 비교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는 작품이 <커다란 초록 천막>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의사 지바고>. 지바고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기에 젊음을 소진한 세대를 향한 헌사였다고 하면, 울리츠카야가 자기와 동 시대를 보낸 세대에게 바친 헌사가 <커다란 초록 천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장한 장편소설을 읽은 후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챕터 별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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