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4 Apr 2026 05:47: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좀 지난 스타일의 고딕 - [고장 난 영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5464</link><pubDate>Fri, 24 Apr 2026 0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54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2354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off/89920558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2354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장 난 영혼</a><br/>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독후감 쓰기 깝깝하네. 다른 이도 아니고 작가가 조지 엘리엇, 여성 가운데 (오정희 빼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거 알고는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는데, 푸시시… 김이 새 버린 거다. 책 표지부터 자잘한 글씨를 이용해 큰 해골바가지 하나를 그려 놓아 이 책이 저 바다건너 잉글랜드 대표작가인 조지 엘리엇이 쓴 고딕 소설이라는 걸 광고하고 있어,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읽은 다음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희망도서 신청할 때부터 이게 뭥미? 했었다. 그래도 거부감은 없었다. 이이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작가의 젠더를 불문하고 고딕 소설 쓰는 게 일종의 붐을 이루었으니 대표적인 작품이 메리 셸리의 &lt;프랑켄슈타인&gt;이잖아?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개스켈도 고딕 소설을 썼음에야! 이 전통은 20세기까지 흘러 미국의 국가대표 소설가 이디스 워튼 역시 한 고딕 했고.&nbsp; 또 하나 엘리엇의 특기라고 하면, 청춘 남녀, 간혹가다 청춘은 아니지만 하여간 남녀가 오진 고생 끝에 그들은 “결혼해서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 아니라, 굴곡을 겪으며 결혼에 도달한 커플이 결혼한 다음에 복닥복닥 부부끼리 갈등을 겪어가며 서로 미워하고 뒤를 밟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 수 있을까, 마치 세기의 원수들이 만나 살을 대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데 관한 한, 진짜 세계 챔피언 아닌가? 하여간 조지 엘리엇, 하면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는 게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지. 이제 더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읽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새롭게 그이의 단행본이 나왔으니 이 아니 기뻤겠느냐고? 아이쿠, 미끼였는 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던 거다.<br>&nbsp; &lt;벗겨진 베일&gt;과 &lt;제이컵 형&gt; 단편소설 두 편을 실은 소설집.&nbsp; &lt;벗겨진 베일&gt;의 클라이맥스는 죽은 자 가운데 삼일만에…, 아니고 죽은 자 가운데 삼십분 만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죽음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아니, 내가 뭐라고 부른다고? 그렇다. ㅆㄴㄹ. 이왕 심판하러 그 멀고 먼 길을 돌아왔으면 심판 당해 마땅한 인간 하나 정도는 목이라도 댕거덩 처 죽이고 다시 자빠지든지 뭘 하든지 했어야 좋을 텐데, 그리곤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ㅆㄴㄹ이 되도록 일이 꼬이는 게 만든 건(어떻게 꼬였는지는 안 알려드림) 조지 엘리엇의 특기가 십분 발휘되었다고 쳐도 아이고,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고, 괴기스럽기는 한데 촌스럽게 괴기스럽고, 그리고 이거야말로 이미 우리나라 모 종교에서 실용신안 특허를 낸 일종의 “피내림”이란 거 아니었을까?&nbsp; &lt;제이컵 형&gt;은 고딕 소설의 또다른 전형 가운데 하나인, 약간 기형적인 체구와 완력을 소지한 인물의 등장이 돋보인다. 이 인물이 주인공의 친형인 제이컵. 어깨에 쇠스랑을 짊어지고 다니는 막강한 완력의 소유자. 말 그대로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의 사나이. 기억하시지? 대서양 건너 미국 땅의 카슨 맥컬러스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딕 소녀. 엄청 키가 크잖아. 열 서너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 아가씨가. 근데 제이컵은 지체장애까지 있어서 천하장사의 몸에 열 살 수준도 되지 않은 지능밖에 없어 사탕 같은 단 것을 좋아하고, 형제 중에서도 제과 수업을 받은 데이비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아뿔싸, 데이비드로 말하자면 나중에 쫌스러운 사기꾼이 될 예정이다. 여기서 제이컵이 맡은 배역은 당연히 데이비드 포에서 에드워드 프릴리로 성공적으로 변신해 자그마한 출세가 눈 앞에 닥쳤을 때 다정하게 나타나 깽판을 치는 역할. 뭐 재미는 있지만 스타일이 좀, 조금 오래 전 스타일이라 별로 즐겁지도 않다.&nbsp; 뭐 그렇다는 거다. 여러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최고의 평점을 매겼으니 유독 이 책이 나하고 맞지 않을 뿐일 확률이 높다. 괜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분들한테 기회를 뺐을 수도 있는 쓸모없는 독후감이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2백쪽에 이르는, 각 1백쪽임에도 한 글자도 메모하지 않고 읽은 오랜만의 책이기는 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150/89920558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02781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차라리 의식화 교재 - [부재지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3461</link><pubDate>Thu, 23 Apr 2026 04: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34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606&TPaperId=172334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6/coveroff/k0220346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606&TPaperId=172334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재지주</a><br/>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황봉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고바야시의 전작 &lt;게 가공선&gt;을 흥미롭게 읽어서 주저하지 않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코피 난 책. 아무리 카프 문학이라 해도 적어도 책을 읽는 재미는 있어야 할 거 아냐?&nbsp; 이 책은 본문 앞에 있는 작가 소개와 고바야시의 메모, 이렇게 두 개만 읽으면 끝은 아니더라도 바쁜 사람을 위한 “읽은 척”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nbsp; 먼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가 고바야시 다키지”<br>&nbsp;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농민 소작 쟁의를 가까이서 취재했다. 소설을 쓴 것이 직접적인 사유가 되어, 다니던 은행에서 해고됐다. 이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해, 노동자들의 문화 단체 활동 지도 책임을 맡았다. 1933년 2월 접선 장소에서 체포되어 그날, 고문에 의해 살해됐다. 이 소설을 발표한 지 겨우 3년 남짓, 만 29세 4개월이었다.”<br>&nbsp; 그리고 작가 스스로 독자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적은 글:<br>&nbsp; “이 작품을 ‘신농민 교과서’로서 전국 방방곡곡의 소작인과 빈농에게 바친다. 아라키 마타에몬 이야기나 《나무토 비밀수첩(鳴門秘帖)》이라도 읽는 셈치고, 일하는 짬짬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읽었으면 한다.”<br>&nbsp; 아라키 마타에몬은 에도 시대 검객이라니까 사무라이 영화 보듯이 하라는 거고, &lt;나무토 비밀수첩&gt;은 대중문학을 개척한 전기傳記소설이란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으라는 건데, 독자는 소작인이거나 프롤레타리아 농민이어야 한다. 즉, 이 책은 소작인과 빈농을 위한 의식화 자료라는 뜻이다.&nbsp; 20세기 초반의 농민운동을 위한 의식화 자료를 21세기 초반의 독자가, 근 백년이 흘렀음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잖아? 막심 고리키의 &lt;어머니&gt;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유효기간 다 된 작품.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6/cover150/k0220346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06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직 AI 추천은  믿지 못하겠네 - [예수의 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1281</link><pubDate>Wed, 22 Apr 2026 0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1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231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off/k7620300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231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아들</a><br/>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09월<br/></td></tr></table><br/>.&nbsp; 이번 희망도서는 전반적으로 망쳤다. 작년에 신청했던 책이 예산 부족으로 올해 이월되어 한 방에 여러 권의 책을 받았는데, 어제 아침에 읽은 데니스 존슨, 어제 저녁 때 읽은 고바야시 다키지는 확실히 망했다. 오늘 쉬고 내일 읽을 조지 엘리엇도 기대 난망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괜히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 하겠어? 조금 기대를 해봄직 하지 않을까? 미치너가 뽑은 영국 최고 소설가 4인방 가운데 한 명이란 이름값을 믿어본다. 4인방이 누구냐고?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헨리 제임스. 이번 달에 엘리엇을 읽고 다음 달엔 콘래드를 읽을 예정. 그건 그렇고 누가 헨리 제임스의 &lt;황금잔&gt;을 다시 번역해주지 않으려나….&nbsp;&nbsp; 어째 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딴 말만 하고 앉았지? 그렇게 보이지?&nbsp; 맞다. 읽기는 읽었는데 뭐 도무지 할 얘기가 없네.&nbsp; 약쟁이들 이야기. 내가 약쟁이 소설을 경원하는 건 아닌데, 모르긴 해도 책방에서 특별히 나를 위한 목록이라고 권하는 리스트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 며칠 뜸을 들이다가 도서관에 사달라고 신청한 건 맞는데 책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펼친 순간, 어머, 이게 뭥미? 책이 왜 이래? 설마 로렌스 스턴처럼 등장인물의 사망을 조의하기 위하여 한 페이지를 통째로 검정색으로 도배해 놓은 것을 본받아 검정 무늬만 있는 페이지로 작가가 독자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약을 코로 들이마시거나, 복용하거나, 수액으로 정맥에 주입하거나 또는 알코올이라는 약한 C2H5OH 용액을 구강을 통해 벌컥벌컥 마신 후의 애매몽롱함 같은 느낌을 구현한 걸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출판사가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꼼수를 쓴 것뿐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설마 그럴 리가.&nbsp;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런 페이지 같은 하드웨어 이야기로 독후감을 질질 끌고 있는 것도 사실은 책을 읽기는 읽었건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nbsp; 알코올 남용자를 비롯한 약쟁이들의 비교적 순한 이야기들. 저 1940년대 잭 케루악이나 윌리엄 버로스 같은 선배 약쟁이들하고 비교하면 그동안 세월이 많이 독해졌음에도 그래도 순둥이 약쟁이들이 자기 발로 치료소에도 들어가고 뭐 개선해보려고 애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어떤 형태의 중독이라도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나 스스로 가운데 중과 약할 약자를 쓰는 중약급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 이런 종류의 소설은 읽기가 불편하다. 책 속에 담긴 작품들처럼 극단적으로 짧은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nbsp; 아, 몰라, 몰라. 하여간 다 읽었다. 반나절은커녕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거 같은데 무지하게 지루하게 읽었다. 독자를 위해 추천하는 AI를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군 그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150/k7620300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265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팔자 억센 사람들 참 많아 - [사랑의 한 페이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9299</link><pubDate>Tue, 21 Apr 2026 0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92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4983&TPaperId=172292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3/12/coveroff/k9520349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4983&TPaperId=172292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의 한 페이지</a><br/>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여덟번째 작품. 아델라이드 푸크가 마카르와의 혼인 외 관계로 얻은 1남 1녀, 앙투안 마카르와 위르실 마카르 가운데 딸, 위르실이 모자 제조공 무레와 결혼해 고향 마르세유에서 낳은 외동딸 엘렌을 둔다. 이 엘렌 무레 그랑장이 루공-마카르 총서 8번 &lt;사랑의 한 페이지&gt;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nbsp; 부유한 제당업자의 아들 샤를 그랑장은 불같이 엘렌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아버지 그랑장씨는 엘렌의 집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을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이들은 비밀결혼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르세유에서 숨어 근근하게 살다가, 고맙게도 친척 아저씨가 죽으면서 남편인 샤를에게 연 1만 프랑의 연금을 상속해주어 부부는 한 방에 팔자가 피었다. 연금이 생기고 제일 먼저 감행한 일은 부부가 외동딸 잔을 데리고 지긋지긋한 마르세유를 탈출, 파리 교외 언덕의 깨끗한 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nbsp; 이때 엘렌이 열일곱 살(오타 같음. 확인 후 수정 예정), 샤를은 스물세 살. 잔이 아홉 살쯤 됐으려나. 지금 살고 있는 트로카대로 언덕 위에 있는 4층 집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바르 호텔에 머물기로 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기쁜 마음으로 파리 구경을 하려 외출을 나갔다가 감자기 남편 샤를 그랑장이 병에 걸려 1주일 동안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숨을 거두어, 졸지에 과부와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막이 올라가면 모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br>&nbsp; 이 작품의 문제는 딸 잔. 아이의 엄마 엘렌은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키도 크고, 금빛 도는 밤색 머리가 마치 해라 여신을 연상시킬 만한 미인에 건강체질이지만, 잔은 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약한 체질과 격세유전으로 넘어왔는지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고 결국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닮아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엘렌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이 커서 자주 폭발하는 성격에다가 질투가 엄청나다. 아마 증조할머니 아델라이드 푸크가 중증 정신병으로 정신병원에 몇십년 간 강제 입원했던 형질도 잔을 피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nbsp; 첫 장면이 바로 이 잔이 언덕 위의 4층 과부 엘렌의 집에서 수면 중에 근육수축, 경련, 경직, 동공개방과 체온상승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음장 같은 2월 밤. 엘렌은 하녀 로잘리를 시켜 늙은 주치의 보댕의사를 데려오라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뛰어갔다 오는 편이 빠를 것 같다. 그래 지금 당장 입고 있는 실내복에 숄 하나만 걸치고 맨발에 실내화를 신은 채로 보댕박사 댁으로 뛰어갔으나, 박사는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기 위해 왕진을 가 새벽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넋이 빠진 엘렌은 그 밤에, 그것도 겨울 밤에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의사를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가 번쩍 든 생각이,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이자 바로 앞에 면한 집의 주인 드베를 씨가 의사라는 것이 생각났다. 엘렌은 서둘러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서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35세쯤 보이는 갸름한 얼굴과 잿빛 눈, 엷은 입술을 한 잘 생긴 의사 앙리 드베를이 나타난다.&nbsp; 앙리 드베를의 눈앞에 몸이 눈부시게 드러난 여성이 서 있다. 숄이 흘러내려 벌어진 실내복 사이로 가슴이 노출되고, 팔도 드러났지만 정숙하고 바른 몸가짐에서 품위가 배어나오는 모습. 보댕의사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앙리 드베를은 아버지 드베를로부터 150만의 재산과 상류고객을 물려받은 실력있는 의사라고 한다. 드베를의 세심한 치료와 처치로 잔은 정상을 찾아가고 그래도 불안한 엘렌은 드베를에게 밤새 환자의 곁을 자신과 함께 지켜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환자와 젊은 남녀, 이미 사랑과 정욕을 아는 남녀 둘이 아침이 밝아오도록 한 밀폐된 장소에서 있게 되는데, 첫날이라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가끔 볼이 따뜻해질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잔은 정상을 되찾아 다시 예의바른 아이가 됐고.<br>&nbsp; 의사가 치료를 해준 것도 모자라 바로 옆집에 사는 건물주. 감사 인사차 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검정드레스를 입은 모녀가 드베를가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사의 인도로 응접실에 들어가니 여주인 쥘리에트 데베를과 일곱 살 정도의 버릇없는 아들 뤼시앵, 쥘리에트의 여동생 폴린과 폴린의 아버지 르텔리애씨, 집안의 가난한 옛친구이자 노처녀인 오렐리양이 함께 있었다.&nbsp; 크림전쟁 전 프랑스에서 연수 1만 루블이 얼마정도의 수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렌과 잔 그랑장 집안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르주아 가정인 드베를 가문의 안주인 쥘리에트는 자유분방하고 호들갑스러우며 어떤 행사를 치루더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싶어하는 외향적 성격이다. 즉 이 동네 사교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인물. 20대, 많으면 30대 초반 정도로 당시 기준에 인생의 절정기에 도달해 있는 여성. 그리하여 유혹도 많겠지. 이 가운데 한 명이 드베를 가문과 친한 잘 생긴 청년이자 독설가 부르주아 말리뇽씨. 저 뒤로 가면 언젠가는 젊은 말리뇽과 하여튼 사고 한 번 치겠다는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쥘리에트 여사가 엘렌과 잔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자기 커뮤니티의 중요한 한 명으로 만들려는 듯. 그래서 이날부터 엘렌과 잔은 드베를 집안의 정원과 응접실을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권리, 자격을 갖게 되어 쥘리에트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동시에 합법적으로 남편 앙리 드베를 씨와 열정적인, 간혹은 불타는 정염의 눈길 살짝 나눌 수도 있었다.&nbsp; 소설에서 이런 사전 작업이 몇 페이지에 이르면 당연히 언젠가는 한 번 화르륵 불이 붙는 법이니 독자는 기대를 해도 좋다. 개봉박두.<br>&nbsp; 한편 엘렌의 집에서는 남편 그랑장이 죽을 때 미사를 집전한 주브 신부와 신부의 동생인 랑보 씨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뜻은 엘렌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하여라는데 목적은 아무래도 엘렌과 랑보 씨를 엮어주려 하는 것 같다. 랑보 씨가 비록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사람이 진중하고, 친절하고, 진지하며, 하여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상당한 신사로 어디 한 군데 까탈을 잡기 어려운 신의 있고 점잖은 사람 중에서도 점잖은 사람이다.&nbsp; 엘렌도 랑보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인이나 남편감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남자, 편한 남자, 속상한 거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정도로 생각해 그의 청혼에 대한 대답은 무기 연기 중이다. 랑보씨도 십년이 지날지라도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묵묵히 견디고 있다.&nbsp; 어때, 소설 읽은 짬밥으로 보면 결국 이 커플이 이루어지겠지? 물론 지지고 볶는 과정을 다 극복하고 나서. 안 알려준다.&nbsp; 근데 이번 주 화요일 식사 후에 주브 신부가 엉뚱한 말을 엘렌한테 한다.&nbsp; “가난한 교구민 페튀 할멈이 아주 아픈 모양입니다. 문안 한 번 가면 좋아할 거예요.”&nbsp; 그리하여 엘렌은 다음 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진흙길을 따라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에 들르는데, 정말 해골 같은 할멈이 얼굴만 퉁퉁 부은 모습으로 엘렌을 보자마자 궁상스런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때맞춰 드베를 의사까지 집에 들어온다. 아마도 드베를 의사가 아직 젊어서 정의로운의사협회 회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할멈이 보기에, 엘렌이 먼저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오고 이어서 곧바로 의사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척 보니 둘이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가 확실한데 좋은 쪽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로 보인다. 속으로 꿍얼거렸겠지.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척 보면 알지.” 그리하여 두 사람에게 외치다시피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nbsp; “아, 두 분은 잘 어울려요. 내가 그런다고 언짢아하지 마세요. 그게 사실이니까.”<br>&nbsp; 이 페튀할멈. 잉글랜드의 디킨스 소설에 나와서 극을 전격적으로 뒤집어 버리는 잠깐의 역할, 소위 트리거 역이다. 할멈의 활동영역이 (연인들이 한 달 정도 방을 빌려 러브호텔로 쓰기도 하는)자기집 부근, 성당과 공동묘지 인근이다. 이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발달시켜온 눈치 하나로 온갖 사람들한테 부정과 불륜과 기타 등등을 마치 관심 없는 척하며 지도 편달하는 데 도가 텄다. 그래 눈치 하나는 9단 정도. 이 할멈은 성당 계단 밑에 앉아서 벌써 쥘리에트와 말리뇽이 이제 익을대로 농익어 손만 대면 톡 터질 정도라는 것도, 엘렌과 앙리 드베를 역시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도 훤하다.&nbsp; 하지만 할멈도 몰랐겠지. 엘렌과 앙리 사이에는 절대의 장벽, 자신의 질병이 오히려 더 그들을 감시하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무기로 삼는 잔이 있다는 것을.&nbsp; 지나가면 다 한 시절, 한 페이지일 뿐이다. 삶도 한 페이지, 사랑도 한 페이지. 이제 석양이 물든 파리를 내려다보며 한 시절, 한 사랑이 다 간 것을 그저 내려다볼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은 진행한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3/12/cover150/k9520349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33128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튀링겐의 유로지비, 변신하다 - [헤르쉬트 07769 (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7312</link><pubDate>Mon, 20 Apr 2026 0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73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034407&TPaperId=172273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8/23/coveroff/k94203440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034407&TPaperId=172273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헤르쉬트 07769 (양장)</a><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A, B, C, D, E, F, G, H&nbsp; 알파벳 H는 여덟번째 나온다. 독일지역에서 머리통 박박 밀고 검은 가죽 자켓을 입었으며 몸 일부에 피어싱을 한 건장한 청년이 울뚝불뚝한 이두박근에 88을 문신했으면, 그건 우리나라처럼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HH, 하일 히틀러, Heil Hitler를 외치는 네오 나치의 일원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마찬가지로 18이라 새겼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욕설이 아닌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의미한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은 신발도 옆구리에 N자가 박힌 미제 운동화 뉴발란스 제품을 즐겨 신는단다. N이 ‘나치’의 첫 글자라서. 타이완 소설가 천쓰홍의 작품 &lt;귀신들의 땅&gt; 주인공 텐홍의 애인 T가 네오 나치의 일원으로 등장하면서 설명한 내용이다. 88은 &lt;헤르쉬트07769&gt;에 나온다.&nbsp; 보통의 독일인 또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동유럽 몇몇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이 네오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집단행동, 반유대주의, 난민유입 반대, 테러리즘 같은 것을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말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오스트리아의 키 작은 군인, 히틀러 상등병의 집단도 처음엔 한줌밖에 되지 않는 볼품없는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실제로 네오 나치를 자칭하는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군대 비슷한 조직을 구성해 폭력과 강도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아 시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한다니 생활의 큰 위협이긴 할 터이다.<br>&nbsp; 구 독일의 동독 출신 사람, ‘오시’라고 낮추어 부르는 말을 간혹 듣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서독 자유주의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자존감 결여, 상대적 빈곤감 등의 통일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지역 정서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lt;헤르쉬트07769&gt;의 무대를 바흐의 출생지 튀링겐 자치주 내 가상의 작은 마을 카나로 정했다.&nbsp; 이 카나가 인구도 별로 없고 크기도 작은 산골 마을이지만 그래도 카나 오케스트라와, 분데스리가는 아니더라도 하부 축구 리그도 운영하고, 꽤 오래된 성당도 있는 곳이다. 한 시절 도자기 공장을 건설해서 모자라는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형제의 나라인 공산주의 베트남 인들을 들여와 일을 시키기도 했지만 독일 통일 전에 사업이 번창하지 못해 지금은 거의 다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린 상태이다. 그들이 살던 8층짜리 좁은 아파트 “호흐 하우스”도 공장과 더불어 낡아버렸지만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별로 없어서 엘리베이터가 여간해 작동하지 않는다. 낡고, 생산품도 없는 산골마을. 자연경관도 그리 볼만하지 않아 간혹 관광객 몇 명이 와서 길어야 두세 밤만 자고 가는 곳. 이런 마을의 세계적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령층이 높다는 것. 그래서 이들 주민에게 네오 나치의 출현은 더욱 두려움과 반발의 대상이었다.&nbsp; 근데 젊은 청년이 이 호흐 하우스 꼭대기 8층에 산다. 이이의 이름이 바로 플로리안 헤르쉬트.<br>&nbsp; 카나에 있는 리히텐베르크 중등학교 건물에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교양 강좌인 시민대학이 개설되어 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늙은 쾰러 강사가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이란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다. 플로리안 헤르쉬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유로지비 비슷한 면이 있다. 거대한 덩치와 상상을 불허하는 완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여려 사나운 개와 모진 사람들을 무서워해 얼핏 보면 벌벌 떠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들이 힘든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어떤 일이 됐든 깔끔하게 마무리할 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끝내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 바른생활 청년으로 귀여움을 받는다. 물론 대가로 소소한 먹을 거리나 편의를 얻기도 한다. 책 좀 읽은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언젠가 한 번 거창하고 파괴적인 힘을 제대로 구사하겠구나, 생각하실 걸?&nbsp; 유로지비 비슷하다니까 머리가 좀 모자라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런 거 같다. 본인도 알고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쾰러 씨의 강좌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을 수강했으며 강의 중에 ‘소립자의 놀라운 세계’가 인상 깊었는데, 얼마만큼이었느냐 하면, 진짜로 놀라운 세계라서 한 학기를 더 수강했다. 쾰러 씨도 흡족했겠지?&nbsp; 플로리안이 배운 바에 따르면 빅뱅 이전인가 이후인가 하여튼 그날 아침이나 저녁 때, 진공상태에서 10억개의 물질입자와 반물질입자가 서로 막 부딪혀 결국 제로, 진공을 만들고 있었는데, 10억 한 개 째의 물질입자가 말썽이었다. 이것과 대응해 공空, 없음의 상태로 이끌 반물질이 생성되지 않은 거였다. 그리하여 평형이 깨지는 결과의 중대한 파급력으로 이 잉여 때문에 급기야 세상의 종말이 초래될 수 있다는 급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nbsp; 순진하고 성스러운 바보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이 문제가 하도 엄청나서 해결을 위하여 반드시, 적어도 UN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터인데, 독일 내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스스로 과학자이기도 했던 앙겔라 마르켈 총리 말고는 없었다. 그리하여 플로리안은 이런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앙겔라 마르켈 총리에게 길고 긴 편지를 부친다. 단 편지 봉투에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쓰지 않고 딱 이렇게 적어 놓았다.&nbsp; “헤르쉬트 07769”&nbsp; 07769는 카나 지역의 우편번호. 카나에서 헤르쉬트는 딱 한 명, 자기밖에 없으니 만일 총리가 답장을 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리한테 굳이 자기 이름까지는 밝힐 필요 없겠지 싶다.&nbsp; 플로리안이 유로지비의 일원임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가 보낸 편지는 틀림없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읽어볼 것이고, 여사 또한 과학자이니 사안의 심각성을 단박에 이해해 자기 의견을 받아들여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토의할 것을 제안했거나, 벌써 비밀리에 전지구를 위협하는 평형의 깨짐 상태를 해결할 모종의 연구나 대처가 진행중일 거라고 여긴다.<br>&nbsp; 플로리안은 작품을 시작할 당시엔 10대 후반으로 보인다. 카나에서 청소, 그냥 청소부가 아니라 특별 청소, 예를 들어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소위 그래피티 예술을 칭한 장난이나 시설에 어울리지 않는 바닥의 오염 같은 걸 전문으로 청소하는 업체의 사장 ‘보스’ 당연히 따로 이름이 있지만 그냥 보스라고 불리고 자기도 별명에 감정이 없어 그렇게 불리는 걸 받아들이는 보스가 예나의 고아원, 라니스 킨더하임에서 10대 중반의 건장하고 힘이 장사인 플로리안을 데려와 자기 조수로 삼았다. 당연히 변변치 않은 임금을 주고 잘 부려먹었지. 대신 호흐 하우스 8층에 작은 방을 얻어 주었는데 플로리안은 난생 처음 생긴 자기 방, 자기 집, 자기 영역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서 보스에게 충성을 다 한다.&nbsp; 다만 사리 판단에 문제가 있는 플로리안은 보스가 카나 지역의 대표적인 네오 나치, 이른바 군대의 대장 지위에 있는 줄은 모른다. 보스는 플로리안더러 자기 군대에 입대하라고 재촉하지만 그건 마땅하지 않다. 거기 가입하면 피어싱과 문신을 해야할 터, 플로리안은 특히 문신이라면 아주 질색이다. 겁이 난다. 거기 구성원들도 성격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정이 도무지 가지 않는데, 몸집 작은 여자 카리가 특히 그렇다. 눈치 챘어? 나중에 카리하고 뭔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거?&nbsp; 카나의 나이 든 주민들은 플로리안을 좋아하지만 플로리안이 모시고 있는 보스는 철저하게 경계하고, 경원하고, 의심한다. 그가 데리고 있는 부대원들도 마찬가지다.&nbsp; 근데 카나를 포함한 예나, 아이제나흐, 에어프루트, 고타, 줄 지역에서 감히 이곳 출신의 대 작곡가 악성 바흐와 관계된 건물에 스프레이로 “우리”라고 쓴 옆에 늑대 대가리를 그리고 도망가는 일이 속출한다. 보스가 바흐 추종자이다. 감히 튀링겐의 아버지이자 독일 정신의 창조자이며 (플로리안 생각엔) 우주적 파괴의 궁극적 해결인 바흐를 훼손하려는 행위를 참지 못해, 자기 군대를 동원해 스프레이어를 잡고자 하지만 실패한다.<br>&nbsp; 반면 주민들은 나치 아이들이 늘상 저지르는 테러의 일환으로 바흐와 성당에 낙서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연히 지시는 보스가 한 것으로. 바흐를 연주하기 위하여 카나 오케스트라를 만든 보스인데도. 그때 워낙 네오 나치에 의한 파괴행위가 극을 달했기 때문에 그랬겠지. 이렇게 오해가 다른 오해를 만들고, 튀링겐 지역에서는 이 오해에 겹쳐 팬데믹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카나의 산에서는 19세기 말에 멸종했으나 복원사업으로 개체가 생기기 시작한 늑대가 그곳까지 들어와 선량한 유대인 도서관 사서 링어 부인의 가슴과 목을 물어뜯었고, 아내를 보호하려던 링어 씨의 등짝까지 물어 부상을 입히는 일이 벌어진다. 엎친 데 덮친 꼴로 보스의 군대 가운데 제일 골통인 위르겐이라는 쓰레기는 보스와 플로리안의 단골 주유소, 휘발유보다는 커피가 맛있어 자주 들르는 아랄 주유소의 트란실바니아 출신 안주인 나디르를 겁탈했거나 하려다가 남편 로자리오가 휘두르는 쇠뭉치에 맞아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nbsp; 이게 작품의 모든 것이 크게 바뀌는 전환점이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은 갑자기 바뀌는데, 작품이 바뀐다는 건 당연히 주인공의 성격이 돌변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nbsp; 보스와 군대는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자기편 위르겐을 위무하기 위하여 아랄 주유소를 폭발시켜버리며 이 사건으로 플로리안과 친했던 나다르-로자리오 부부가 불타 죽는다. 카나는 이제 안으로는 보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한 테러, 밖으로는 팬데믹의 확산, 역사적으로는 사라진 늑대의 출현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것이 묵시록적인 종말론?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플로리안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답장을 받았다는 거야, 못 받았다는 거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8/23/cover150/k9420344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8238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땡그랑, 얼마나 아팠을꼬? - [타임퀘이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1804</link><pubDate>Fri, 17 Apr 2026 0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18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221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off/89546889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2218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임퀘이크</a><br/>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br/></td></tr></table><br/>.&nbsp; 커트 보니것 탄생 백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문학동네가 찍은 보니것의 마지막 소설책. 진짜 마지막은 아니고 이 책 찍은 다음에 보니것이 앞으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때가 1997년이니까 그의 나이 일흔 넷? 다섯? 하여간 그 근방. 70대 중반에 접어든 보니것이 소설을 써 보니 이젠 힘이 달려 은퇴를 선언했겠지. 잘 했다.&nbsp; 근데 돌려 생각해보면 보니것 자신이 썼지만 읽어보니까 이젠 더 이상 예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뭘 비교하느냐고? 뭐든지. 하여간. 그래서 딱 지금이 은퇴하기 좋은 시간이란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그만 쓰기로 했다면, 비록 작품은 장난기 그득한 촌철살인으로 메워져 있지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노인이란 물러날 때를 알아야 존경이고 뭣이고 간에 얻어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걸 놓치면 소위 노추老醜, 노망난 꼰대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다.<br>&nbsp; 수십억 년 전 텅 빈 공간에서 빅뱅, 꽈과광 폭발이 일어나 찬란하게 우주가 탄생했다. 그랬다는 거다. 정말 빅뱅이 있었는지 누가 봤어? 사진이라도 찍은 거 있냐고. 그냥 과학자들이 그렇게 추리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지. 아, 그렇다고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님이 만든 건 아닌 거 같다.&nbsp; 커트 보니것의 우주도 물리학자들의 우주 기원설에 입각해 빅뱅이 터진 다음에 한 순간도 빼지 않고, 순간도 순간 나름이라 지금 얘기하는 건 퀙토세컨드quectosecond 즉 10의 -30제곱 초의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 팽창했고, 지금도 열라 팽창 중이다. 근데 우주가 잠깐 경기가 났는지 고뿔이라도 걸렸는지 잠깐 딸꾹, 뒷걸음질, 즉 순간적으로 팽창 대신 아주 잠깐, 진짜 잠깐 수축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구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느냐 하면, 글쎄 시간이 10년 뒤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1991년 2월 17일부터 2001년 2월 13일, 1년에서 사흘 모자란 기간을 다시 한번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거다.&nbsp; 그리하여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10년 전에 이미 겪었던 것을 그대로 다시 한번 당해야 했는데, “(경마장에서)또다시 엉뚱한 말에 돈을 걸고, 또다시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고, 또다시 임질에 걸리고, 무슨 일이건 한번 더!”(p.14)<br>&nbsp; 우주가 잠깐, 퀙토세컨드 정도의 시간 살짝 팽창으로 포기하고 수축하는 순간 땅이 진동한 수준을 넘어 시간이 움찔, 경련을 일으켜 10년 세월 뒤로 물러서버렸으니, 죽었던 사람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화장로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고? 그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정말 짜증나게시리 죽을 때 고통을 다시 한번 또 겪어야 하는 팔자가 되어 버렸다. 오, 나 죽은 다음엔 결코 이런 일 생기지 않기를!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따라가면 혹시 백투더퓨처, 10년 전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올바르게 되돌릴 기회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기대는, 예전엔 이런 표현도 썼는데, “깨몽”, 꿈 깨시라. 사는 동안 행복한 법은 없으니 인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저 생로병사의 고달픔뿐일 걸?&nbsp; 소설이기는 하지만 화자는 틀림없이 작가 커트 보니것 본인일 터. 그가 말하고 있는 시점, 오늘은 1996년 11월 12일이다. 즉 타임퀘이크가 있고 5년 여가 흘렀을 때. 그의 나이 일흔네 살. 커트 보니것의 아빠도 이름이 커트인 건 아시지? 그래서 이이는 커트 보니것 주니어인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그냥 ‘주니어’라고만 부른다. 물론 보니것 면전에서 그냥 주니어라고 해버리는 간 큰 인간은 없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그렇게 부른다. 누가? 보니것의 장성한 여섯 자식들이. 이 가운데 셋은 암에 걸려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아이들로 동생이 죽은 다음에 입양한 조카들이고 나머지 셋은 진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문법으로 말하자면 “내 아내의 산도에 사정을 해 만든” 자식들.<br>&nbsp; 타임퀘이크가 발생한 내력과, 10년 전으로 돌아가 고스란히 과거의 경험을 똑같이 당해야 하는 걸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끝나면 당연히 본문이 나온다.&nbsp; 이제부터 독자는 그동안 커트 보니것이 책을 통해 주구장천 주장해왔던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들어야 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물리학자 고 안드레이 사하로프. 망상에 빠진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수소폭탄을 만들고 그 폭탄을 확실하게 작동하게 하고, 그 후 핵무기 실험 중단을 요구한 공로로 1975년애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 이에 소련 당국은 사하로프를 반체제 인사로 구분해 연방과학원에서 추방, 당연히 모스크바에서도 쫓아내 저 초라한 동토의 마을로 유배해버렸다. 세상의 눈이 있어 그러지 못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절이 스탈린 체제였다면, 얄짤없이 죽였을 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그랬잖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니까 한다는 말이, 동무, 가서 노벨상 받고 싶으면 받으시오. 다만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오. 알아서 기시오. 사하로프도 결국 오슬로에 가지 못하고 소아과 의사였던 아내 옐레나 본네르가 대신 가서 받았다.<br>&nbsp; 사하로프 동무는 실화. 근데 다음 건 어디서 읽어본 것 같기는 한데 실화인지 픽션인지 모르겠다.&nbsp;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이 조이 피터슨. 조종사는 자신의 애기에 페인트로 ‘조이스 프라이드’라 이름을 써 붙였다. 이 인간은 1945년 8월 어느 날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은 서류에 서명하는 일 빼놓고 거의 끝난 상태인데, 승전이라는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양키들을 위한 심심한 감사의 표시이자 이제는 쇼 비즈니스로 접어든 축제 삼아 무지하게 커서 도저히 폭탄 투하실에 싣지 못하는 대용량의 원자폭탄 ‘개쌍놈’을 폭격기 배 아래에 붙들어 매고 요코하마로 날아가던 중, 거의 다 가서, 즉 요코하마 상공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하늘에서 그대로 유턴, 출격했던 바날룰루 기지로 귀환해버렸다.&nbsp; 당연히 지시 불이행 또는 항명 또는 반역의 죄목으로 영창에 수감됐고, 이어 열린 바날룰루 군사법정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기 때문에” 유턴해 돌아왔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어 재판장이 형을 선고하려는 순간, 태평양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바날룰루 군사법정, 폭격기 조이스 프라이드, 사용하지 않은 원자폭탄 ‘개쌍놈’과 그밖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nbsp; 이 요코하마 원자폭탄 개쌍놈 이야기는 커트 보니것의 페르소나인 킬고어 트라우트, 일찍이 &lt;챔피언들의 아침식사&gt;에 등장해 117편의 장편소설과 5천편의 단편소설, 물론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야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막강한 필력을 과시하던 소설가가 쓴 &lt;타임퀘이커1&gt; 가운데 &lt;웃음거리 아님&gt;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br>&nbsp;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니것의 대표 서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사인 반전 메시지가 등장하고,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동반한 문화비평이 한 줄로 죽 늘어선 장편소설. 그리하여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파편의 연속으로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를 독자는 알아서 읽어야 한다. 그럼 뭐 같겠어? 그려, 단편소설을 주욱 나열한 연작.&nbsp; 웃기는 얘기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nbsp; “여러분이 부모님을 정말 괴롭히고 싶다면, 그럼에도 동성애자가 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술 분야로 진출하는 겁니다.”<br>&nbsp; 킬고어 트라우트가 즐겨 쓰는 말이 “땡그랑, 땡그랑”이다.&nbsp; 미국 대서양변 경치좋은 제너두에 미국문학예술협회가 건설한 창작을 위한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트라우트가 거기 헤밍웨이 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지냈을 당시, 2001년 조개구이 파티에서 들은 이야기.&nbsp; 한 도망자가 여자 사는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집이 마치 성당처럼 생겨서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게 지었는데 아뿔싸, 시간 맞춰 경찰들이 집집마다 도망자를 찾으러 검문을 하다 드디어 이 집에 도착했다. 도망자가 잽싸게 서까래 위에 숨었으나, 저걸 어째, 그의 초대형 불알이 서까래 아래로 축 늘어져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 경찰이 여자한테 수상한 사람 봤냐고 물어보니까, 여자는 능청맞게 못 봤단다.경찰 하나가 서까래 아래로 늘어진 불알을 보더니 저게 뭐냐고 물었는데, 집이 성당처럼 생겨서 여자가 중국 범종이라고 했다. 경찰은 여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평소 소원이 중국 범종을 한 번 쳐보는 거란다.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경찰이 경찰봉으로 불알을 세게 툭 쳤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살가죽에 부딪혀봤자 무슨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경찰이 더 세게, 다시 훨씬 더 세게, 또다시 몹시 세게 불알을 때렸더니 도망자가 이렇게 소리쳤다나?&nbsp; “땡그랑이다, 이 개자식아!”<br>&nbsp; 뭐 재미있는 장면만 소개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아쉬운 건, 예순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가 거의 이 비슷한 톤이라는 거.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재미있기보다 좀 지루해진다. 이 단계를 지나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면, 커트 보니것, 은퇴하는 거 잘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보니것의 영원한 팬인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그건 보니것을 위한 일종의 걱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150/89546889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67270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흑인이 고등 영장류였던 시절 -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9775</link><pubDate>Thu, 16 Apr 2026 04: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97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064&TPaperId=172197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60/89/coveroff/89546100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064&TPaperId=172197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a><br/>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3월<br/></td></tr></table><br/>.&nbsp; 미국이 수정헌법에 의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1865년에서 불과 6년 더 지난 18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제임스 웰든 존슨. 당시 잭슨빌은 부르주아들의 유명 여름 휴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세인트 제임스 호텔이 꽤 고급이었던 모양이다. 존슨의 아버지는 이때 그곳에서 수석 웨이터 일을 하고 있던 혼혈 흑인이었다. 엄마는 바하마 출신으로 서인도제도의 백인을 포함해 모든 유색인종의 유전인자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임스 존슨은 아프리칸 미국인 가운데 그나마 덜 검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던 존슨은 애틀랜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했다고 봐야 하는데, 졸업 후 음악, 특별히 작곡에 자질이 있는 동생 로자몬드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일을 했다. 플로리다 출신이라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 존슨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보좌진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던지 당선 후 7년간 베네수엘라와 파라과이의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nbsp; 시민권 운동도 하고,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흑인예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데 아쉬움이 없었다는데, 뭐 남의 나라 작은 역사 부스러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 기록에 의하면 딱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그게 바로 &lt;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gt;이다. 미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 가운데 한 명. 그의 이름을 딴 일련의 작업을 보더라도:<br>&nbsp; 2007년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제임스 웰던 존슨 인종과 차이 연구소&nbsp; 메릴랜드 볼티모어 고핀 주립대학 내 제임스 웰던 존슨 빌딩 건축&nbsp; 플로리다 존슨빌 그의 출생지에 제임스 웰던 존슨 중학교&nbsp;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제임스 웬던 존슨 커뮤니티 도서관&nbsp; 1988년 2월, 미국 우정국, 존슨 사진 우표 발행&nbsp; 2020년 플로리다 잭슨빌의 헤밍 공원 이름을 제임스 웰던 존슨 공원으로 개명&nbsp; 2021년 메인주. 6월 17일을 제임스 웰던 존슨 연례 기념일로 제정.<br>&nbsp; 핫따. 이 정도면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겨놨군.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존슨의 행적은 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이야기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리 연관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 없다. 근데 왜 이리 장황하게 소개를 했느냐 하면,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독후감 분량이 너무 적어질 것 같아서.<br>&nbsp;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라고 하니까 지금은 적어도 흑인이 아니라는 말씀. 흑인이 아니면 그새 백인이라도 된 거야? 아니다. 흑인에서 사람으로, 백인도 백인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처럼. 물론 이 책 나온 시점이 1912년 또는 1927년이라 아직도 버스에 백인 남자가 탔는데 흑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시기라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선언이겠지. 1920년대에는 아.마.도. 백인이 타는 버스, 흑인이 타는 버스가 따로 있어서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마땅한 결론을 내릴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이 늘 돌보고, 지도해주고, 귀여워해야 그나마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고등한 미개 영장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nbsp; 그러나 실제로는, 1865년 흑인 해방 이전에도 주로 합중국 북부에 산포해 있었을지언정 자유신분증을 품에 가지고 다니며 여러 사업을 벌여 돈 푼 깨나 벌어서, 좋은 집에 아이들 교육도 빵빵하게 잘 시킨 백인들 사교계에 말석이기는 하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중산계급 정도는 벌써 발생한 상태였다. 이들 바로 밑으로는 탁, 떠오르는 작가가 있지? &lt;패싱&gt;을 누가 썼더라? 맞아, 넬라 라슨. 라슨의 작품에서 본 적 있는 밝은 피부의 유색인. 그래서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던 주인공들의 안간힘이라니.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br>&nbsp; 주인공 화자 ‘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데 앞마당에 꽃밭이 있던 작은 집. 집 뒤켠 헛간에 큰 빨래통이 세 개 있었으니 이 빨래통은 평생에 걸친 혐오품목 1호에 오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겨 통이 집어넣고는 하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기면 아예 껍데기가 홀랑 까지는 것처럼 얼마나 아팠는지.&nbsp; 이 시절을 기억하면 어머니와 검은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키 큰 남자가 보인다. 2~3주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는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던 날에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10달러 금화에 구멍을 내고 줄로 꿰어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10달러 금화 목걸이는 이후 ‘나’의 인생에 절반을 넘어 매달리게 되고 아직도 작은 보석함에 보관하고 있다.&nbsp; 이 백인 남자. 독자가 척, 보니까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른바 생부다. 혼자 사는 확실한 흑인 여성, 그러나 피부가 까맣지는 않고 옅은 갈색으로 보이지만 누가 봐도 흑인이라고 할 정도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까지는 턱도 없이, 그저 마음에 들어 내연의 관계를 갖다 보니 아들이 하나 생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아주 막 나가는 인종이 아니라서 다른 보통의 흑인가족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었다. 여자도, 아이도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2층집에 살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면 말 다 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의 친동생 존 로자몬드 존슨처럼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 일반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부터 재즈, 래그타임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 당연히 이 피아노 솜씨와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나’가 배를 곯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게 된다.<br>&nbsp; 키 큰 백인이 ‘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준 날, 어머니와 ‘나’는 존슨빌을 떠났다. 마차로 서배나에 가서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뉴욕. 거기서 또 마차로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로 갔는데, 그곳이 이른바 소년시절의 고향이 된다. 거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거기가 고향이지.&nbsp;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 갖춰진 조그만 독립가옥.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아니지만 새 피아노도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옷도 잘 차려 입어 자부심도 빵빵해져 마치 완벽한 꼬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도 받았다. 글공부도 시작했는데, 음악이나 글이나 ‘나’는 전체를 한 덩어리의 그림으로 여겨 ‘나’가 생각하는 의미로 재구성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쉬운 얘기로, ‘나’가 대단히 똑똑하고 뭐든지 잘 배우는 신동이었다고 겁나게 잘난 척하는 중이다.&nbsp; 아홉 살 때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많이 검지는 않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도 있어서 ‘나’는 그를 “빛나”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가면서 진짜 이름을 잊었다. 훗날, 한 삼십 년가량 흐른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기회가 있었으니 그때도 ‘나’는 그를 “어이, 빛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할 예정이다.&nbsp; ‘나’는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품행성적이 좋지 못했다. 제일 특별한 학생은 당연히 빛나였지만, 피부색 때문인지 아무리 특출해도 좀 업신여김을 받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전부 나가고 유색인 학생만 남아 있어요, 라고 지시를 했다. ‘나’는 당연히 주섬주섬 ‘나’의 소지품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자한 담임선생이 ‘나’의 팔목을 잡더니, 너는 여기에 있어야겠다, 라고 하는 거였다. 아오, 이런 수치가.&nbsp;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곱슬곱슬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상앗빛 피부, 아름다운 입매에 크고 촉촉한 눈. 깊고 검실검실한 눈썹. 엄마한테 달려가 묻는다.&nbsp; “말해줘 엄마! 내가 깜둥이야?”&nbsp;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가 묻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nbsp; “아니, 엄마는 백인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분이셔. 네 몸 속에는 남부의 가장 훌륭한 피가 흐르고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주마.”<br>&nbsp; 백인 친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받았는지 정말로 코네티컷의 작고 화려한 집에 와서 자기가 아버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 정확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니지만 유전자 속에 흑인의 인자가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된다.&nbsp;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이 성공한 유색인이라 주인공인 ‘나’도 인생이 우리가 흔히 소설책에서 보는 대다수의 흑인처럼 짜부러들지 않는다. 교육도 마치고, 애틀랜타 대학에 입학하러 갔다가 입학금 전액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도 ‘나’한테는 피아노 연주 솜씨가 있으니. 하여간 그 재주 때문에 파리에도 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독일 구경도 하면서 여러나라의 언어도 습득한다. 파리의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아내와 딸을 동반해 관람석에 앉아 있던 친아빠도 만난다. 눈길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사랑도 하고, 어여쁜 백인 소프라노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nbsp; 그리하여 결론은? 저 앞에 써 놓았다.&nbsp; 스토리만 이렇게 써 놓아 재미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의 반은 에세이다. 에세이로 쓰면 재미가 적을 것 같아서 소설 형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논의를 21세기에 읽는 건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동양 사람들 눈꼬리나 옆으로 찢지 말았으면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60/89/cover150/89546100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089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오해, 우정, 그리고 사랑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7516</link><pubDate>Wed, 15 Apr 2026 0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75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4942&TPaperId=172175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08/74/coveroff/89546949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4942&TPaperId=172175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일 또 내일 또 내일</a><br/>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08월<br/></td></tr></table><br/>.&nbsp; 북동유럽 유대인 혈통의 이민 2세의 남자와, 아홉 살에 이민 온 한국 여성이 십여 년 후에 코네티컷의 고등학교에서 동창으로 만나 IBM에서 근무하는 동안 개브리앨 제빈을 낳았다. 1977년 뉴욕생.&nbsp; 자란 곳은 플로리다. 그곳에서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톤으로 올라가 하버드대에 입학해 영어와 미국문학을 전공했다. 공립고등학교에서 하버드라니 쉽지 않았을 텐데? 하긴 세계적으로 머리 좋은 거 하고 극성떠는 거에 관해 두번째가 서러울 유대인과 한국사람의 DNA가 만났으니 그 정도야.&nbsp; 하버드를 졸업한 후에 계속 맨해튼에서 살며 직장 없이 작가 생활을 한 거 같다. 하여간 위키피디아에서 다른 경력은 보이지 않으니까. 성인소설도 쓰고 청소년소설도 썼는데, &lt;내일 또 내일 또 내일&gt;이 제빈이 쓴 다섯 번째 성인을 위한 소설이라고. ‘성인용 소설’이라고 해서 군침 꿀꺽 삼킬 필요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인소설 같은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거나 아예 안 나온다.<br>&nbsp;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두 명의 진짜 주인공(해리와 헤르미온느 급)과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론 위즐리 급)이 등장한다. 이 귀여운 천재들을 먼저 소개하자.&nbsp; 샘슨 메이저Mazer. 원래 이름은 샘슨 매서Masur였는데 메이저로 이름을 바꾼 후에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창조전문가로 변신한 기분이 든단다. 작가는 샘의 정체성을 동유럽유대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이라는데 이건 작가의 정체성과 똑같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LA에서 연예 프로덕션 일을 하지만 샘 출생 당시 엄마와 결혼상태는 아니었고 출산에 관계하지 않았지만 샘이 태어나자 당시 화폐가치로는 거금이었던 만 달러를 모자에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는 조연급 배우였지만 여유있게 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잘 살아가다가 샘이 열 살 되는 해, 공연을 보고 엄마와 귀가하던 밤에 하필이면 엄마와 이름도 같은 ‘에미 리’라는 홈드레스를 입은 한국인 여성이 10미터쯤 앞에 떨어져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엄마는 샘을 끌고 샘의 외조부가 K타운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LA로 이사한다.&nbsp; 세이디 그린은 동유럽에서 온 이민 유대인 부르주아 가족. 구성은 할머니-부모-언니 앨리스-세이디. 나중에 언니는 UCLA 의사가 되고, 세이디는 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운다. 막이 오르면 언니 앨리스가 소아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부모의 거의 모든 관심이 앨리스에 쏠린다. 세이디는 앨리스의 (평소에는 심하지 않았던)심술 때문에 가끔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에잇, 그것쯤, 잘 견디고 있었다. 병실에서 쫓겨나 복도에서 빈둥거리다 마음 좋은 간호사가 닌텐도 게임기가 있는 휴게오락실에 가서 놀고 있으라 해서 달려가봤는데, 거기 환자복을 입은 또래 남자애가 &lt;슈퍼마리오 브라더스&gt;를 하고 있었다. 근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27군데의 다리뼈가 부러져 철심으로 얼기설기 해 놓은 환자. 이 아이가 샘슨, 샘이다. 둘은 게임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샘이 세이디에게 자리 차례이기는 하지만 이번 회전에는 세이디가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nbsp; 이걸 현명한 간호사가 눈여겨 본 모양이다. 그래서 세이디의 어머니한테 저 아이가 입을 연 것은 사고가 난 후 6개월만에 처음이다, 세이디를 매일은 못하겠지만 시간 나는 대로 병원에 보내 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에 대단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생각해보니, 내년에 12살이 되면 유대성년식인 바트 미츠바를 해야할 터, 이때 봉사활동 점수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그것 괜찮겠구나, 하고 흔쾌히 동의했다.&nbsp; 샘이나 세이디는 머리가 좋다. 좋아도 무지하게 좋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 이런 아이끼리 만났으니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하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는 도중에 치트키 라는 것이 있다며? 그런 것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으면서 매우 가까워졌는데, 세이디는 병원에 왔다 가면서 ‘봉사활동 증명서’에 꼭 사인을 받아 갔다. 세이디의 현명한 할머니이자 LA의 부동산 거물로 실무에서는 엄정하고 용의주도하며 양심적인 사업가라 중평이 나 있는데, 이 프리다 할머니가 샘과 세이디의 우정을 의심한다.&nbsp; “세이디, 우정은 우정이고 자선(봉사)은 자선(봉사)야. 만일 누가 너에게 자선을 베풀어주면, 너는 그 사람하고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단다.”&nbsp; 세이디는 14개월 동안 계속 샘을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906시간, LA 시나고그에서 가장 긴 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워 상까지 받으며 바트 미츠바를 치뤘는데, 이에 샘이 났는지 막 백혈병에서 완치되었지만 환자였을 때 심통부리던 습관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한 언니 앨리스가 이 사실을 샘에게 알려줌으로 해서, 샘은 그동안의 우정이 우정이 아니라 봉사, 자선이었구나, 누가 저더러 봉사나 자선 같은 걸 해달라고 했나, 잔뜩 오해하고, 원래 몸이 아픈 환자는 오해가 심한 법이라 이런 영향도 무지 받으면서, 세이디와의 우정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글쎄 노인네 말 들으면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br>&nbsp; 이후 샘슨 머서는 LA 동쪽의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니고, 세이디 그린은 LA 서쪽의 고급 사립학교를 다니며 캘리포니아와 LA 지역에서 있었던 많은 수학, 과학 경연에서 만나 진검승부 끝에 둘 중에 한 명이 최우수, 다른 한 명이 우수상을 번갈아 탄다. 세이디가 MIT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샘은 그러면 난 고려대상 가운데 하나였던 MIT 안 간다, 하버드 가겠다, 해서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입학했다. 세이디는 부잣집 딸이니까 걱정이 덜한데, 샘이 문제다. 교통사고를 당해 엉망이 된 왼쪽 발 부분 때문에 보행도 쉽지 않은데다가 조부모 이동현씨와 이봉자씨가 아무리 뒷바라지를 잘 해주려 해도 그저 공부에만 몰두하기가 쉽지 않을 터, 몸이라도 편해야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떻게 버텨볼 텐데.&nbsp; 하여간 서부 해안의 건조하고 따듯한 기후를 기준으로 옷을 준비해온 보스톤은 그러나 겁나게 추웠다. 근데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가 누군가 하면 마크스 와타나베. 사업을 경영하는 와타나베 씨와 대학에서 직물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의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외아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자제 답게 매사에 차분하고, 남의 말 잘 들어주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으로 원만하게 세상 일을 풀어갈 줄 아는 다감한 사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든 이의 연인이이도 했다. 사랑이 끝날 시점이 돼도 언제나 여자의 뜻으로 이별을 결정한 것으로 국면을 마무리했는데, 그래야 사랑은 사라질지라도 우정이 계속되는 법이란다. 그걸 20대 초반에 알고 있었으니 이쯤되면 신선이었지. 이 마크스 와타나베가 샘과 세이디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다시 우정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그걸 크게 키울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력을 위하여 이 커플의 사업과 성공에 도움을 주는 제3의 주연. 샘과 세이디가 해리-헤르미온느 급이라면 마크스는 여지없이 론 급이다.<br>&nbsp; 샘과 세이디는 3학년 때 만난다. 게임 론칭 행사로 엄청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세이디는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운 교수와 연애하던 시기였고, 샘은 하버드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수학에 대단한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하고 싶지는 않은 상태. 필즈 상을 노리고 있는 지도교수도 샘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리하여 샘이 세이디와 함께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불멸의 히트작이 될 &lt;이치고&gt;라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nbsp; 이들 세이디와 샘은 마크스의 추동에 의하여 하루 열여덟 시간 이상을 쓰며 개발을 하기 시작해 드디어 기한에 맞추어 &lt;이치고&gt;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제 이들은 3인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게임회사 &lt;언페어 게임&gt;을 만들어 젊은 부자의 대열에 올라섰으나 마크스만 빼고 샘과 세이디에게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현명한 마크스는 이들을 위하여 언페어게임사를 캘리포니아 LA로 옮기자고 제안하고, 샘은 세이디를 위하여, 세이디는 샘을 위하여 마크스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여기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올라선다.&nbsp; 이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으니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nbsp; 두 천재 샘과 세이디의 갈등. 최초의 갈등이 우정과 봉사(자선). 두번째 갈등은? 그것과 비슷한 오해겠지. 세번째 갈등은? 그건 안 알려드린다.<br>&nbsp; 내가 이 책을 잘 읽은 것은 40대 중반의 작가가 20대 초반의 등장인물을 보는 아련한 시선이었다. 1부의 마지막 장면에 샘과 세이디는 (우정-봉사 이야기)화해한다.<br>&nbsp; “’약속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더라도, 서로 말도 안 하고 6년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넌 나를 무조건 용서하는 거야. 나도 너를 무조건 용서하겠다고 약속할게.’ 이것은 물론, 생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쟁여놨는지 쥐뿔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함부로 맺는 서약의 일종이었다.” (p.103)<br>&nbsp; 이 문단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슬펐는지. 20대 두 아이들 앞에 어떤 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 남아 있는지 전혀 모르고 오직 하나, 젊었다는 것 때문에 쉽게 약속을 하는, 해버리는 두 아이들이 내 마음을 후벼파서 가슴이 아리고 아리더니 결국 눈까지 매캐해지다가 붉으레하게 만들어버렸던 거다. 저 뒤쪽에서 한 번 더 그렇게 되는데, 그건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샘의 할아버지 이동현 때문에’라는 힌트 정도야 뭐.<br><br>&nbsp; 의아했던 것도 말해보자.&nbsp; 좀 웃겼다. 개브리얼 제빈은 정확하고 완벽한 미국인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 유럽은 크게 동, 서, 남, 북유럽으로 달리, 자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개별 국가로 구별해야 하지만 아시아인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인구도 많은 대륙 어디서 왔건 간에 그냥 아시아인이다. 엄마가 아홉 살 이전엔 한국에 살던 한국인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이완, 파키스탄, 베트남, 레바논, 다 같은 그냥 "아시아 사람"들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08/74/cover150/8954694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08747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직도 낙원을 믿어? 순진하기는 - [잃어버린 낙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5449</link><pubDate>Tue, 14 Apr 2026 04: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54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633800&TPaperId=17215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17/62/coveroff/k2426338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633800&TPaperId=172154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잃어버린 낙원</a><br/>세스 노터봄 지음, 유정화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09월<br/></td></tr></table><br/>.&nbsp; 1933년생인 노터봄이 일흔한 살이던 2004년에 발표한 소설.&nbsp; 한 평생 신나게 산 작가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안다고 92세의 노인더러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는 걸로 충분하지. 나는 사는 게 지옥이었는데 노터봄은 낙원 속에서 살았을 리가 없잖은가.&nbsp;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이가 세상 천지에 안 가본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신나게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세상을 다닐 수 있나 어디? 농사 질 땅이 변변치 않아 뭐 해 먹을 게 없어서 예부터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해 먹고 산 네덜란드 사람이니까 몇 가지 외국어에 능통한 거야 뭐 그럴 수 있어도, 주머니가 좀 넉넉해야 비행기를 타던, 배를 타던, 기차를 타던 멀고 먼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객지를 돌아다닐 용기도 제법 갖추어야 할 터인데 그것마저 별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나마 행운의 별이 노터봄의 정수리 위에서 반짝이긴 했던 모양이다.<br>&nbsp; 이 소설도 ‘나’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국 국경에 위치한 보덴제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프리드리히샤펜(Friedrichshafen, 책에서는 “프리드리샤펜”)에서 베를린의 뎀펠호프 공항으로 비행하는 작고 아담한 비행기 대쉬Dash 8-300 비행기에 오르며 시작한다. 이게 본문은 아니다. 프롤로그.&nbsp; 작은 비행기라서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를 탑승객이 볼 수 있다. 아직 비행기의 엔진도 켜지 않은 상태.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나’의 옆 좌석이 비었다. 실내를 둘러봐도 빈 자리가 무척 많다. 이 노선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글쎄, 한 50대 후반 정도의 남자. 그런 것처럼 보인다. 좀 지루했는지 ‘나’는 의자 등판에 꽃아 놓은 기내지를 꺼낸다. 늘 보는 항공사 광고와 ‘나’가 탄 작은 항공사가 운행하는 베를린, 빈, 취리히에 대한 정보가 조금 실렸고, 이어서 자유기고 기사가 두 꼭지 있다.&nbsp; 기사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 선주민에 관한 것이다. 암각화와 화려하게 채색된 돛배 사진. 다른 하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관한 기사. 지평선을 따라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부자들의 고급 주택가가 있는 반면, 이에 못지 않는 그림 같은 초라한 판자촌, 도시 빈민가도 보인다. 물결 모양의 함석지붕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판잣집들, 거기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에 관한 장방형 프레임. 당연히 ‘나’는 프레임 밖의 것도 알고 있다.&nbsp; ‘나’는 이미 그곳을 다녀와본 적이 있으니까. ‘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진은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껏 떠났던 모든 여행을 여차하면 데자뷔 비슷한 비현실적 느낌이 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nbsp; 이때 미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여성이 비행기 기내로 들어왔다. ‘나’는 옆좌석이 비어 있어서 당연히 이 여성이 옆에 앉았으면 좋겠지만, 희망은 늘 배신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라 그이는 앞 좌석 창가에 앉는다. 카키색 바지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아래로 살며시 흔들리는 젖가슴을 바라보는 게 짜릿하다. 그녀는 진홍빛 포장지에 스카치테이프로 포장된 책을 꺼내 읽다가 잠시 후에 그냥 의자 위에 엎어 놓는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nbsp; 그러다가 여자도 기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상파울루를 달리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그림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nbsp; 한참을 더 써야겠지만 아직도 프롤로그이니 결론만 말하자. 이 여성 승객이 가지고 타서 읽어보려 포장을 뜯은 책은 지금 내가 읽으려고 하는 세스 노터봄의 &lt;잃어버린 낙원&gt;이다. 그러니 화자 ‘나’ 역시 세스 노터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기는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엄연하게 픽션이니까.&nbsp; 무엇보다, 이 프롤로그에서 독자가 책을 읽으며 보게 될 장소가 다 나와 있다는 것. 첫째가 브라질 상파울루요, 두번째가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대도시 퍼스와 황량한 호주 사막.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갔던 것처럼 보이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부근의 알펜호프라고 부르는 스파.<br>&nbsp; 만일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세스 노터봄이라고 한다면,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본 기내지 두 곳, 상파울루와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그리고 알펜호프 이야기는 기내지에서 기사를 보고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많다. 상파울루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젊은 여성 이야기만 해보자.&nbsp; 상파울루의 여름밤. 자르뎅이라는 부촌. 이곳 주민들은 밤외출을 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이 동네 집안에서 하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대중교통 차량을 타고 두 시간 동안 지친 몸을 버텨내야 도착하는 집에 가기 위하여 어둠 속 그림자로 거리를 메운다.&nbsp; 그러나 이날, 알마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엄마의 세컨드 카를 빌려타고 한밤중에 차고를 나섰다. 소형차는 상파울루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금지된 구역인 파라이소폴리스, ‘낙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파울루에서 가장 열악한 빈민가이자 언제라도 피가 튀는 범죄가 발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역으로 진입했다. 여름밤의 무드 때문에 충동적으로 밤 드라이브를 선택한 알마. 하늘은 알마에게 무드 대신 고난을 주기로 결심했는지, 엄마의 세컨드 카가 낙원의 도시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푸르륵, 작은 신음과 함께 엔진을 멈추고 말았다. 거의 완전한 어둠. 아무도 없는 공포.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마는 자기를 원처럼 둘러싼 검은 그림자들을 보았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림자들의 잊혀지지 않을 웃음소리. 그들 목소리에 한없이 깊숙하게 깔린 증오와 분노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삼켜버렸다. 몇 명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내버리고 가버린 그림자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차와 알마의 가방 속 모든 것이 없어진 것도,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들이 자신을 윤간한 것도 아니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가버린 것이었다.<br>&nbsp; 키가 크고 금발의 미인 알무트. 알마의 가장 친한 친구. 알무트가 경찰에 신고했고, 산부인과에도 함께 가주었다. 기골이 장대한 미인이라 브라질 남자들은 알무트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알무트는 자신을 보탄의 딸, 부륀힐트라고 불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nbsp; 알마와 알무트는 부르주아 딸들이 전공하면 가장 어울리는 과인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알무트는 윌링 드 쿠닝, 뒤비페 같은 현대미술, 알마는 라파엘, 보티첼리, 지오토 등의 르네상스 미술. 둘은 열다섯 살 시절부터 암스테르담, 드레스덴, 피렌체, 파리 같은 곳을 순례하며 실물 명화를 직접 보기도 했다. 보통 부자가 아니다.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이들 할아버지 둘 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독일에서 브라질로 건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들도 자기 아버지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일어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아하, 그렇구나.&nbsp; 두 미술사 전공 아가씨들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땅이었다. 시간과 기억 이전의 시대, 세상이 편평했고 텅 비어 있었으며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그리고 사람들. 그들도 없던 곳의 드림 타임.&nbsp; 상파울루에서의 사건 이후 집안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알마에게 알무트가 오스트레일리아 행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선주민이 인간 최초로 만들었던 예술품들. 벽화와 암각화, 그리고 지금의 선주민들의 회화. 시드니를 거쳐 선주민의 낙원인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것이다.&nbsp; 두 아가씨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물리치료사 과정 수료부터 완료한다. 그래야 식당이나 술집에서 접시닦이, 홀 서빙, 애 보기 같은 허드렛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물리치료사를 고집하는 것은 정작 물리치료 또는 마사지시술로 돈을 버는 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알펜호프이기 때문이다. 그럼 호주에선 뭘 해 돈을 버냐고? 천사가 나타난다. 정말이다. 천사.&nbsp; 2백쪽에 불과한 분량. 읽기 편하겠지? 아마도 아닐 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17/62/cover150/k2426338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1762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보통 문장이 아닌 SF의 아버지 - [멜랑콜리의 묘약]</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3440</link><pubDate>Mon, 13 Apr 2026 0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34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84253161&TPaperId=172134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1/30/coveroff/ek8425316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84253161&TPaperId=172134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멜랑콜리의 묘약</a><br/>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09월<br/></td></tr></table><br/>.&nbsp; 오랜만에 읽는 SF의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 1959년에 발표한 소설집. 벌써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이와 비슷한 연배에 유독 눈에 띄는 SF 작가들이 제법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스타니스와프 렘. 1920년 부근에 갑자기 태양 흑점 폭발이 심했었나?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을 지구에 쏟아부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거명한 사람들과 브래드버리를 구별하게 만드는 건, 브래드버리는 시를 쓰기도 해서 그럴 것 같은데, 번역문을 읽으면서도 문장이 여간 고급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유혹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SF, 즉 과학소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 또는 고딕과 (결코 귀신은 아니지만)귀신 비슷한 것도 출몰한다.&nbsp; 이 소설집 《멜랑콜리의 묘약》은 SF라기보다 고딕과 그로테스크 소설을 더 많이 실었다. 외계생명체와 우주여행을 주제로 하는 건 두세 작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이 두세 작품을 영향이 다른 비슷비슷한 고딕/그로테스크 작품에 비하면 훅, 하는 무게감이 상당하지만.<br>&nbsp; 모두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이 책을 고르면서 조금 캥겼던 것은 이이의 다른 (우리나라에서 유명한)단편집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과 겹치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 독자라면 당연히 의심하는 것일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읽으시라. 한 편도 안 겹친다.&nbsp; 이 책은 1959년판 《A Medicine for Melancholy and Other Stories》를 두 권으로 분책에 옮긴 첫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온 여름을 이 하루에》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그냥 한 권을 한 권으로 만들면 안 되었을까? 합하면 7백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라 책이 팔리지 않을 거 같아 그랬을까? 뭐 그냥 장삿속이었겠지. 출판사도 돈 벌어야 하는 기업이니 우리가 이해하자.&nbsp; 이 책, 어제 읽었다. 지금 목차를 보면 그래, 이거, 이거, 이것은 어떤 이야기였지. 재미있었어. 이렇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일 주일 있다가, 더 멀리, 이 독후감이 업로드 된 날에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을 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br>&nbsp;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제일 앞에 배치한 &lt;어느 잔잔한 날에&gt;.&nbsp; 미국인 부부 조지와 앨리스 스미스는 여름 한낮에 남서 프랑스 해변인 비아리츠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남편 조지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 그중에서도 회화를 좋아하고 파블로 피카소를 추앙하다시피 한다. 문제는 해변에서 조금,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어촌의 별장에 하필이면 때를 맞춰 피카소가 와 있다는 것. 조지는 괜히 기분이 들썩들썩. 카라바지오의 과일 정물, 맹인조차 이글거리는 화사한 해바라기 꽃을 그린 고흐도 좋지만 지브롤터 전역에 한여름의 소나기를 퍼부며 수평선 위로 우뚝 솟아오른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도 같은 &lt;거울 앞의 소녀&gt;와 &lt;게르니카&gt;의 창조자인 파블로 피카소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조지한테 얼마 머지않은 곳에 있다. 실물의 피카소가.&nbsp; 바다에 첨벙 몸을 담그고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멀리 힘을 다해 수영을 해봐도 그를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해변엔 저녁이 다가오고, 오래 수영을 해 진이 빠진 조지와 다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훌쩍 떨어진 저쪽에 조지 스미스보다 키가 작고 머리를 각지게 자른 한 남자가 홀로 고요한 대기 속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해안선 무대가 마련되었고 몇 분 후 두 남자는 마주칠 운명이었다.&nbsp; 낯선 남자는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자신이 혼자 있는 걸 확인하고 잠깐 몸을 돌려 모래 위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라임 맛 아이스크림을 꽂았던 가느다란 막대.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을 지금 모래 위에서 시작하는 거였다.&nbsp; 모래 위에서 태어나기 시작한 굉장한 형태들. 금세 자신의 작업에 완벽하게 심취하여 몽혼의 상태에 이른 짧은 머리의 남자. 두번째, 세번째 형체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사물의 모습.&nbsp; 해변을 따라 걷던 조지 스미스의 저 앞쪽에 남자의 숙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까맣게 그은 몸을 한 남자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예순다섯? 일흔? 어쩌자고 모래밭에 저토록 거친 그림을 마구 펼치고 있을까? 어떻게….&nbsp; 한 발자국 그림에 더 가까이 접근한 조지.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nbsp; 편편한 모래밭에는 그리스 사자와 지중해 염소, 금가루 모래로 살집을 만든 처녀, 손으로 깎은 뿔피리를 부는 사티로스, 바닷가를 따라 꽃을 뿌리고 춤을 추는 아이들, 하프와 리라를 연주하며 깡충깡충 뛰는 악사들, 젊은이와 유니콘. 님프와 나무 요정들이 이삼십 미터가 넘는 길이로 펼쳐지고 있었다.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 또한. 모래는 녹아내린 구리색이 되어 어느 시대, 어느 인간이 읽어도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는 영원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다.&nbsp; 그러다 허리를 펴고 눈길을 든 늙은 화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는 천진한 모습. 어깨를 으쓱하는데 마치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nbsp; “내가 한 짓을 보시오. 어린애 장난 같지 않소? 누구나 한 번은 바보가 되는 법이라오. 당신도 그럴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이 바보 같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시오. 아무렴. 아무렴.”&nbsp; 늙은 화가는 발길을 돌려 갈 길을 갔다. 조지 스미스는 넋을 잃은 채 황금 가루로 그린 바닷가의 대작, 칠 팔미터를 훌쩍 넘는 대작 중의 대작을 보느라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내리는 지도 몰랐다.&nbsp; 숙소로 돌아온 조지 스미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함께 식당 테이블에 앉은 부부. 조지가 메뉴를 집어들고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리고.&nbsp; “들어봐.”&nbsp; 아내는 귀를 기울였다.&nbsp;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nbsp; “안 들려?”&nbsp; “응. 무슨 소린데?”&nbsp; “그냥 파도 소리.” 그는 잠시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br>&nbsp; 아오, 정말 좋지 않나? 뭐 열일곱 편 가운데 하나를 좀 자세하게 소개했다고 줘어박지는 않겠지.<br>&nbsp; 이것 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다가 정말로 그 세계로 가버린다는 &lt;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gt;도 즐겁게 읽었고, 외계 생명체 이야기인 &lt;번데기가 된 사나이&gt;도 흥미진진했다. 사람이 번데기가 돼? 그럼 다음 단계는 성충이다. 사람이 변태하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까? 눈이 서너개 더 달릴 수도 있고, 몸의 피부가 뼈만큼 단단한 갑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혹시 모르지 가슴 근육이 완전 빵빵해지고 등 뒤로 날개가 달려 인간 드론으로 변할 지도. 더듬이까지 생길 수 있다. 빽빽하게 공중을 메우고 있는 모든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더듬이, 영어로 하면 안테나. 어떻게 변하는 지는 안 알려드리겠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1/30/cover150/ek8425316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51307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우왕좌왕, 좌충우돌 - [목욕탕]</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7637</link><pubDate>Fri, 10 Apr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76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022710&TPaperId=172076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30/92/coveroff/s292934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022710&TPaperId=172076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목욕탕</a><br/>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05월<br/></td></tr></table><br/>.&nbsp; 다와다 요코는 일본 출생이면서도 살기는 독일에서 산다. 독일어로도, 일본어로도 작품을 쓴다. 두 언어 모두 자주 번역해 다른 나라에서도 팔리는 국제어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런다.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걸 뭐라 할 수 없지.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시라.&nbsp; 근데 나는 특히 다와다의 독일 체류.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일본인이 독일에서 ‘작가로’ 살며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조금 야릇하다. “야릇하다”라는 형용사를 선택하기 위해 머리를 좀 굴렸다. 처음엔 ‘우습다’로 시작해서 ‘못마땅하다’를 거쳐 좀 더 순화된 표현이 없을까 고르다가 내 나름대로 애써서 쓴 단어가 ‘야릇하다’인 걸 고백한다. 물론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그것도 작은 고충이 아니겠지만 뭐 그 정도 가지고 유난을 떠는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시인, 작가들. 알제리에서 알제리 언어를 버리고 “적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아시아 제바르 같은 인물에 비하겠느냐는 말이다. 프랑스는 그래도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잔인한 정복행위와 통치와 독립전쟁에서의 학살을 비난했던 아시아 제바르를 프랑스 아카데미 종신회원으로 만들어주기라도 했지, 다와다 요코의 모국인 일본 정부가, 일본어로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비난한 글을 썼다면 비슷한 생각을 꿈에서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불령선인으로 몰아 감옥에서 죽여버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을.&nbsp; 다와다여, 내 말을 아니꼽게 여기지 말라.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후손이 당연히 따져볼 수 있는 문제이니.<br>&nbsp; &lt;목욕탕&gt;은 1989년에 발표한 독일어 작품. 상상 이상으로 널찍한 자간, 행간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간신히 100쪽을 넘긴 분량의 짧은 작품이라 2018년에는 같은 책에 독일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실린 새 판본으로도 출간했다고 역자 최윤영이 을유에서 ‘책읽는수요일’로 넘어가며 새로 고친 해설에 쓰여 있다. 다와다 요코가 세상이 다 알아주는 환경주의자, 반핵주의자인데 이 책 편집을 실물로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다와다의 문학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한 기념할 수 있는 책인데, 1989년까지 다와다는 아직 반핵운동가도 환경주의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 속에서 비슷한 내용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이의 다른 책에서는 한 권도 빼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임에도.&nbsp; 대신 소위 Hiruko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일본의 건국신화 속 거머리 공주처럼 일본의 옛 이야기가 등장한다.<br>&nbsp; 일본의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임신한 여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하도 배가 고파 마을사람들과 나눠먹지 않고 혼자서 그걸 날로 다 먹어버렸다. 아들을 낳고 나중에 보니 아들 말고 엄마의 몸에 비늘이 돋기 시작해 커다란 물고기가 되었다. 이제 산에 살 수 없어져 강으로 가서 혼자 외롭게 살았고, 아들은 마을의 외로운 할아버지가 키웠다. 동네 아이들이 다툴 때마다 아들더러 네 엄마는 비늘 짐승이라고 흉을 보아 할아버지한테 비늘이 뭐예요, 라고 물어 엄마에 대해 알게 된 아들. 어떻게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논이 없는 마을에 바위를 깨서 흙을 만들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마을이 잘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그러면 엄마를 다시 데려와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강에 찾아가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엄마는 그때부터 자신의 몸을 바위에 부딪혀 바위를 깨 흙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위에 몸을 부딪혔는지 정말로 산골 마을에 논이 생겼을 땐 엄마의 몸에서 비늘이 벗겨져 다시 사람이 되는 대신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버리고 말았다.<br>&nbsp; Hiruko 3부작의 거머리 공주 이야기는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7번, &lt;지구에 아로새겨진&gt;에 소개했으니 그걸 참고하시고, &lt;목욕탕&gt;에서는 주인공 화자 ‘나’의 얼굴에 비늘이 생기는 걸로 시작한다. 비늘은 얼굴에만 돋은 것이 아니라 잠옷의 단추를 열어보니 가슴과 팔에도 고등어 냄새가 나는 비늘이 자라 있다.&nbsp; 흠. 보이는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 혹시 그거 땟가루 아냐? 하도 때를 밀지 않으니까 각질이 두껍게 쌓였다가 겉 각질이 푸스스 부스러진 상태. 거 솔직하게 말한다고 누가 뭐라 하나? 어차피 픽션이라서 다와다 몸에 땟가루 앉았다고 흉볼 사람도 없는데.&nbsp; 그래서 &lt;목욕탕&gt;을 처음 읽어 나가며 이 책은 일본의 구전 전설이나 옛이야기를 현대 독일에 맞춰 다시 설계한 것이겠다, 이렇게 예상했었는데, 아니다. 이제부터 다와다 요코 특유의 정신없는 횡보를 시작한다. 다분히 포스트 포스트모던한 작품.&nbsp; 목욕을 끝내고 화장도 마친 ‘나’의 집에 독일인 애인 크산더Xander가 라이카 카메라 세 대를 들고 찾아온다. 여행사 광고 포스터에 삽입할 ‘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렇다고 크산더가 사진가는 아니란다. 독일어 강사.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준. 그러다 눈이 맞아 애인 사이가 되었다.&nbsp; ‘나’ 역시 여행사 광고 포스터의 모델로 크산더가 원하는 대로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렇다고 ‘나’가 모델인 건 아니다. 통역사. 독일어-일본어 통역. 이 날도 호텔 컨퍼런스 룸으로 일본, 독일 상사간 회의가 있어 통역을 하러 가야 하고, 정말로 간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비늘이 돋은 걸 발견했는데 점심식사로 커다란 생선이 통째로 한 마리 나온다. 대표 셰프가 큰 칼을 들고 여자의 허벅지처럼 생긴 생선살을 발라 참석자 열한 명의 분량으로 사이 좋게 나누어 준다. 비록 ‘나’는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생선을 먹다가 콱 막혀 화장실에 가서 까무러쳤지만.<br>&nbsp; 그럼 오후 회의는 어떻게 해? 이거 사람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통역사가 화장실에서 까무러쳤는데 지금 회의가 문제야? 그렇다. 회의가 문제다. 아무도 와보지 않는다. 대신 화장실 청소 담당하는 마흔살 전후의 청소부가 ‘나’를 구원해준다. 호텔의 잡역부 쉼터에서 쉬게 하다가 급기야 자기 집으로까지 데려다 준다. 여자는 몸의 반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는 생선 먹을 때부터 입이 콱 막혔다. 혀가 없어져버린 모양이다. ‘나’가 좋아하는 혀가자미 요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먹지도 않았는데 왜 혀가 없어졌을까?&nbsp; 정신없지? 나중에 알고 보면 이 화장실 전속 청소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 화재가 나서 불타 죽은 여자 아닌가 싶다. 어떠셔? 더 들어보실래? 관두자. 책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정신 사나운 이야기가 좌르륵 나열되어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언어 이야기, 언어를 발음할 수 없는 혀가 사라진 이야기 등등. 하여간 이 사람,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30/92/cover150/s292934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30927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 [유랑극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5685</link><pubDate>Thu, 09 Apr 2026 04: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56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6091&TPaperId=17205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4/24/coveroff/89582860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6091&TPaperId=172056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랑극단</a><br/>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05월<br/></td></tr></table><br/>.&nbsp; 오랜만에 렌츠의 소설을 읽었다. 그간 10년 세월이 훌떡 지나갔네. 민음사세계문학 40, 41번 &lt;독일어 시간&gt;. 오래 전에 읽었고, 그리 인상깊지도 않아 새까맣게 잊은 줄 알았더니 도서관 서가에서 렌츠, 이름을 보는 순간 팍 떠오르더군.&nbsp; 렌츠가 1926년에 나서 2014년까지 88년을 살다 갔는데 &lt;유랑극단&gt;은 2009년, 그의 나이 여든세 살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lt;독일어 시간&gt;과 &lt;유랑극단&gt; 사이에 42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노익장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lt;독일어 시간&gt;을 찾았더니, 아이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베란다에 따로 모아두었는데 &lt;독일어…&gt;도 거기 자빠져 있다. 손에 먼지 묻히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독후감 써 놓은 것도 없는 거 보니까 또 틀림없이 쐬주 한 잔 걸치고 지워버렸나 보다. 성질 하고는 참.<br>&nbsp; &lt;유랑극단&gt;은 제목하고 달리 함부르크 부근에 있는 걸로 보이는 가상의 “이젠뷔텔 교도소” 수감자들 이야기다. 부조리 소설로 봐야 마땅하다.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는 전직 교수 늙은이. 이름은 클레멘스. 수감자들은 ‘나’를 ‘교수양반’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쓰겠다. ‘나’를 타이핑할 때 작은 따옴표 붙이기가 귀찮다.&nbsp; 이 늙은이 교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2년을 복역해서 자기 형량의 절반가량을 채웠다. 이이가 왜 들어왔는지 재미있으니 주목.&nbsp; 교수 시절에 전공이 독일 문학, 이 가운데서도 “스트룸 운트 드랑 Strum und Drang” 우리 말로 “질풍노도”였다. 교수가 쓴 스트룸 운트 드랑 관련 저서는 독문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권위 또한 떠르르한 책으로 웬만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흔히들 그러하듯이 이 교수 양반도 자기 수업에 자기 책을 교재로 해 강의를 한 건 당연한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졸업시험에서 사달이 났다.&nbsp; 교수 양반이 필립 로스의 여러 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주커먼 교수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 몇 명과 잤다. 그리고는 작품 중에서는 두 명만 나오지만 하여간 이 학생들 한테 최고점을 주었다. 팔이 안쪽으로 굽으니까. 근데 공부 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에 불만이 있는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니까 이게 샘이 나거든. 진짜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1920년대생 작가가 보기에 샘이 난 거 같아서, 그걸 학교 당국에 고발해버렸다. 독일에서는 이게 형사범죄인지 그리하여, 교수 양반이 보기에 자신한테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사랑이 웬수지) 징역형을 받아 들어온 거다.&nbsp; 이건 이해가 가는데 도무지 왜 그랬을까 싶은 이 비슷한 사건도 있지? 조너선 프렌즌의 &lt;인생 수정&gt;에 등장하는 칩 램버트 교수. 멜리사라는 여학생이 교수를 꼬여 모텔에 가서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리포트를 좀 봐달라고, 써달라는 게 아니라 써 놓은 것을 한 번 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주었더니, A학점을 받고도 그걸 학교에 신고해서 교수를 해고당하게 만든 이야기. 거 참. 조심 좀 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혐의로 걸리면 평생 크게 쪽팔린데 말이야.<br>&nbsp; 어쨌든 교수 양반이 머물고 있는 감방이 2인실인 모양이다. 여기에 새로 하네스라는 수감자가 들어온다. 교도소 신참은 아니고, 이미 두 번의 탈옥 미수 경력이 있는 화려한 묵은지. 교도소 안에서 하네스의 정보망을 벗어나는 수감자, 간수, 간부들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nbsp; 하네스는 천진함이 묻어나는 신선한 얼굴을 한 전직 사기꾼. 뭐든 입에 가져다 붙이면 그 말을 듣고 솔깃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짐승뿐일 정도. 비가 오기만 하면 훔친 경찰복을 받쳐 입고 경찰 지시봉까지 챙겨 함부르크 외곽의 도로에서 과속이나 난폭운전 등의 교통단속을 전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 오는 날 단속에 나서는 경찰이 없어 사고의 위험이 배가 되는 것 같으니 하네스 말대로 지극한 희생정신에 입각해 한 일이다. 그저 작은 문제는 갓길에 위반 차량을 세워놓고 과태료를 물린 다음 직접 집행까지 했다는 사소한 일이었다. 운전자가 원하면 당연히 수첩을 북 찢어 영수증까지 써 주었는데도 세게 걸렸다. 하필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복 경찰의 차를 세운 게 재수가 없었지 뭐.<br>&nbsp; 이젠뷔텔 교도소에 유랑극단이 찾아왔다. 파란 칠을 한 버스를 타고 식당에다 조잡한 무대를 설치했다. 그저 박스와 궤짝을 가슴 높이로 올려 굽을 길을 묘사했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고. 식당에 모인 수감자 관객들 사이에, 어라, 무슨 신호가 왔다갔다 하는 걸 감지하는 교수 양반. 이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수상한 작업은 거의 대부분 총명한 사기꾼 하네스에 의하여 기획, 집행되는데, 이번에도 뭔가 음습한 공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검지와 약지를 써서 신호가 오고간다. 서로 경고하고, 약속을 상기시키고, 인내와 각오를 요구하는 듯한.&nbsp; 눈치 없는 교도소의 카를 타우버 소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한 마디 한다.&nbsp;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은 당신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을 통해 당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와 대면해 보십시오.”&nbsp; 소장의 연설을 들은 교수 양반은 씁쓸하다. 자기 책 &lt;스트룸 운트 드랑&gt;에 나오는 말이다. 염병할 놈. 연설하기 전에 나 한테 먼저 말해주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럼에도 자기 책에서 따온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젠 교수이기 전에 한낱 수감자 신세라서.&nbsp; 유랑극단의 프루겔 단장이 뒤를 이어 한 마디.&nbsp; “연극은 타인의 삶을 즐거운 방식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며 세계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오늘 공연은 &lt;미로&gt;라는 작품입니다. 여섯번째 동방여행에서 행방불명된 함부르크 출신의 작가 헨리 발터만의 작품입니다.”&nbsp; 무대위에 쌓인 박스와 궤짝 사이의 길. 그것이 미로이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저 안에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br>&nbsp;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는 나이든 여배우 두 명이 등장하고 이어 경찰 한 명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첫번째 실종자가 발생해 경찰이 찾아온 거다. 실종자는 정원사이며 네 아이의 아버지라나?&nbsp; 미로. 모든 사람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는 곳. 그게 지금 무대 위에 있을까, 없을까? 경찰이 직접 미로 속으로 들어가 사건을 파헤쳐 보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박스와 궤짝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자마자 관객석에서 교수 양반 한 명을 뺀 모든 수감자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외치는 것이, “잘 가, 안녕!”&nbsp; 두 여배우가 대사 한다.&nbsp; 봤지? 미로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nbsp; 언니, 우리 손에 아주 진귀한 물건(미로)이 들어왔어. 필요할 때나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우리한테, 아니 남들한테도 근심을 끼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거야.&nbsp; 듣고 있던 하네스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모양이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더니 때 맞추어 휴식시간 15분. 하네스가 교수 양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교수 양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슬쩍 따라 나간다. 하네스가 교수 양반더러 교도소 마당에 서 있는 버스에 타라고 한다. 맞다 파란색 페인트 칠한 유랑극단 버스. 그래서 어떻게 해? 당연히 탔지. 안 타면 소설이 안 되는 걸?&nbsp; 이제부터 하네스가 대장이다. 그가 말한다. 전원 대가리를 의자 아래로 처박아.&nbsp; 운전대는 거인 같은 덩치에 쾌활해 보이는 전직 축구 심판, 뭄페르트가 앉아 아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교도소 밖으로 버스를 몰아간다. 안단테, 안단테 소스테누토. 그러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르막길은 당연하고 내리막길이 나와도 끝까지 악셀러레이터를 밟아 조지는 뭄페르트. 이들이 어디에 도착했느냐 하면 그뤼나우 시. 패랭이 꽃이 유명하고 마침 지금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곳에. 교도소 수감자 옷을 입은 채? 그럼. 옷 갈아입을 새가 어디 있었나? 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민은 이들의 복장이 유랑극단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것으로 지레 짐작을 한다.<br>&nbsp; 근데 우리의 교수 양반은 형기의 절반을 채웠는데 꼭 나가야 했을까?&nbsp; 좀 견뎌 낼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견뎌 내야 하는 법.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가끔은 타인도 견뎌내야 할 터인데. 뒤 돌아보라. 결국 사는 일이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그렇게 견뎌내는 거 아니었나? 물론 쉽지 않지. 쉬우면 그게 사는 일이간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4/24/cover150/89582860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4242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유니오르, 또 만났네 - [드라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3533</link><pubDate>Wed, 08 Apr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3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192&TPaperId=17203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93/coveroff/89546111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192&TPaperId=17203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드라운</a><br/>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5월<br/></td></tr></table><br/>.&nbsp; 주노 디아스? &lt;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gt;을 쓴 유색 미국인? 이게 딱, 떠올랐다. &lt;오스카…&gt;가 21세기 100대 서적 안에 들었다고 읽었다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 실망한 책. 작품의 무게와 별개로 소설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젖은 요즘 미국 작가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실망이었지, 도미니카 현대사와 뉴욕으로 이민해온 이주민들의 각박한 삶은 분명히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딱 골라 읽었다.&nbsp;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 내 이름으로 세 권, 아내 이름으로 세 권, 아이 이름으로 세 권, 합이 아홉 권. 이게 도서관 예산 집행 관계로 한 방에 들어올 예정이란 걸 알고서 촉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빠지직…. 늙은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보이시지? 희망도서 한 방에 들어오면 그걸 보름 동안 다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아이쿠, 이번엔 기한 안에 설 연휴가 끼어 있다. 하여간 그런 부담 속에 고른 디아스의 소설집이 기특하게 가벼운 분량이기도 하네? 큼직한 글씨체로 280쪽. 서슴없이 골랐다.<br>&nbsp; 화자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낯익다. 유니오르. &lt;오스카…&gt;에서 얘기했듯, 유니오르Junior가 누구냐 하면, 작가 주노 디아스의 이름 주노Junot를 살짝, 아주 조금 바꾼 것. 주노 디아스는 1968년생으로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해 뉴저지에서 살았으니 그때가 여섯 살이었다. 그러니 굳이 《드라운》의 유니오르를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지만 작가가 브루클린 도미니카 이민들의 커뮤니티에서 듣고 본 동족 가운데 또래의 모습을 유니오르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건 뭐 말을 안 해도 삼천리다.&nbsp; 이 책은 놀랍게도, 하여간 나는 놀랐는데, 주노 디아스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가인 줄 몰랐기 때문이 첫번째요, 《드라운》이 이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두번째, &lt;오스카…&gt;처럼 지극한 말장난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세번째였다.&nbsp; 책은 어린 시절, 소년 시대까지 도미니카 시골에서의 삶.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는 유니오르의 유년기때 돈 벌러 맨손, 맨발로 미국에 가고, 미국 가서 돈을 벌기는커녕 다른 도미니카 출신 여자하고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이걸 알고 속을 썩여가며 아빠 미국 가는 차비 보태 준 외할아버지와 형, 이렇게 4인 가족의 헐벗은 생활을 그린다.&nbsp; 드디어 엄마와 형 그리고 유니오르가 미국에 도착해 보낸 청소년기. 보잘것없는 마약 판매로 돈을 긁어모은 청소년 유니오르의 사랑과 허망한 탕진도 나오고, 청년이 되어 부잣집 전용 가구점의 운송 및 설치 기사로 일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청소년, 청년기를 거친 유니오르가 비록 시간이 나면 같은 호 몇 권의 교양잡지 &lt;플레이보이&gt;를 훔쳐 읽기도 하지만 나중에 소설가가 되리라는 건 꿈꾸기 힘들 거 같은데, 하여간 &lt;오스카…&gt;의 유니오르와 달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nbsp; 이렇게 소년, 청소년, 청년기의 유니오르와 가족 이야기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나열되어 있는 소설집. 그래서 굳이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읽어도 괜찮고, 그냥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없는데, 진짜 문제는,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의외적일 정도의 찬사를 받았다 해도,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읽어주기에는, 아이고, 이걸 어쩌나, 도통 재미가 없더라는 것.&nbsp; 하긴 읽으면서도 아홉 권의 희망도서가 언제 들어오나, 탐색하느라 너무 열심히 더듬이만 더듬더듬 더듬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재미없다고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 지금 절판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93/cover150/89546111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1937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인한테 시라는 게 뭘까 -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1402</link><pubDate>Tue, 07 Apr 2026 04: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14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173&TPaperId=172014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80/4/coveroff/89364241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173&TPaperId=172014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a><br/>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br/></td></tr></table><br/>.&nbsp; 시인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나는 ‘장석남’을 1955년에 충청도 논산에서 난 ‘장석주’로 잘못 알고 시집을 골랐다. 그랬더니 1965년 인천 덕적도에서 나서, 서울예대와 인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하고 지금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를 하고 있는 장석남이었던 거다. 거 참 이름은 한끗 차이건만. 근데 좀 웃기네. 지금 뒤져보니 내가 이이인 줄 알았던 장석주는 약관 스무살 때 등단했구먼. 그러면 시인 노릇을 51년 했네?&nbsp; 장석남은 스물두 살에 신춘문예를 통과한 시 재주꾼으로, 서울예대 다닐 때부터 알아주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뭐 아나? 이번 시집이 처음 읽는 장석남일 정도인데.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과 동문수학한 거 같다. 그가 해설 초입에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다. 신형절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nbsp; “당시의 내게는 장석남의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발명품의 하나로 보였다.”&nbsp; 장석남은 떡잎 시절부터 돋보이는 자질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람 여러 분야에 있지? 탁월한 한 명. 2등이 아무리 기를 쓰고 쫓아가도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는 인간. 그래서 좀 재수없기는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그림도, 음악도, 농사, 분재, 화훼, 정원, 요리, 기계조립, 설계, 조명, 수리, 하다못해 내가 해보니 설거지도 그렇더라. 문제는 한 학교, 한 과에서 한 명이 있는데, 그 인간들을 다 모아 놓으면 그 속에서 또 특별한 한 명이 등장한다는 것이지. 뭐 사는 게 다 그래.&nbsp;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들은 시집에서 시 자체에 대한 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별로 없다. 장석남도 마찬가지다. 그것부터 읽어보자. 이 시인이 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제일 편하고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br><br>&nbsp; 불멸<br><br>&nbsp; 나는 긴 비문(碑文)을 쓰려 해, 읽으면&nbsp;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 해&nbsp;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비스듬하도록,&nbsp; 굶어 쓰러져 잠들도록,&nbsp; 긴 행장(行狀)을 남기려 해&nbsp; 사철 바람이 오가며 외울 거야&nbsp; 마침내는 전문을 모두 제 살에 옮겨 새기고 춤출 거야<br>&nbsp;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나는 매해 봄내 비문을 읽을 거야&nbsp; 미나리를 먹고 나와 읽을 거야<br>&nbsp; 나는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 해&nbsp;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해&nbsp; 이웃의 남는 웃음이나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해&nbsp; 나는 나를 그렇게 기릴 거야&nbsp;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nbsp; &nbsp;(전문. p.11)<br><br>&nbsp; 그러니까 장석남은 시인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시를 쓰겠다는 선언이다. 요즘엔 죽으면 거의 예외 없이 화장을 하지만 자신은 죽은 다음에 찬 땅에 몸을 뉘는 한이 있어도 꼭 묘비를 세우겠는데, 이때 비문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겠다는 거지. 자못 비장하다. 비장은 갈수록 도를 더한다. 사나운 눈보라조차 비문 읽느라 지쳐 비스듬해지게 만들겠다니. 사나운 눈보라? 세세년년 끊임없이 몰려올 매운 평론가, 독자의 시선으로 읽어도 괜찮을까? 뭐 괜찮으면 말고.&nbsp; 요즘 사람들 한자어 안 배워서 헛갈릴 지 몰라 한 수 훈수를 두자면 다섯번째 행에 나오는 행장行狀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이라고 나온다. 흔히 행장行裝, “여행할 때 쓰는 물건과 차림”으로 잘못 읽을까봐 알려드린다. 죽어 없어지는 것도 여행의 한 가지라서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시에서 ‘행장’은 1행의 “비문”과 같은 의미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유적지 가서 비석 뒷면을 보면 작은 글자로 뭔가 빼곡하게 적혀 있듯이, 자기도 자기 행장을 비문에 적어 두겠다는데 이이의 직업이 시인이니 당연히 시를 그렇게 쓰겠다는 거겠지. 그렇게 가장 단단한 돌에 새겨 내가 나를 기린단다. 거 참. 이 시집이 2017년에 냈으니 쉰두 살 때인데, 그렇게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을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 별 수 있간디?&nbsp;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노래하는 삶의 기록이니, 너희는 이 시집을 읽음으로 나를 기념하라. 아멘.<br>&nbsp; 아, 근데, 지금 이이의 시 작품이 별 볼일 없다는 말을 하는 거 아니다. 그냥 포부가 커서 좀 웃겼다는 것일 뿐. 돌을 쪼아서 쓴 시는 죽어도 안 지워지는 거 알지? 아무쪼록 잘 쓰다 가기 바란다.&nbsp; 평론가이자 동문수학한 것처럼 보이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아니, 내가) 생각하는 산뜻한 시가 있다. 읽어보자.<br><br>&nbsp; 소나기 오는 날<br><br>&nbsp; 날이 뜨겁던 이유를 서로 풀어놓으니&nbsp; 스물 안팎 친구에게 그런 이유란 없다 하고&nbsp; 노인은 비가 오려 그랬다 하네<br>&nbsp; 나비는 꽃을 부지런히 순회하던가?&nbsp; 꽃은 나비를 야단쳐서 보내던가?<br>&nbsp; 비는 여러가지 얘기를 한꺼번에 쏟다가&nbsp; 아무 귀담아들을 얘기는 없다고&nbsp; 웃고는 가네<br>&nbsp; 뉘우침 후처럼&nbsp; 맑고 서늘한 길가 바위&nbsp; 놓여 있네&nbsp; &nbsp;(전문. p.22)<br><br>&nbsp; 이 시의 결은 또 &lt;불멸&gt;하고 전혀 다르다. 뜨거운 스물의 청춘은 비가 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뜨거운 스물의 청춘을 보내 본 노인이 말한다. 결국 한 번 씩, 웃고 갈 소낙비가. 그러고 나서야 맑고 서늘한 시절이 놓여 있겠네. 그제서야 이제 정으로 쪼아 시 또는 비문을 쓸 길가의 바위가 놓여 있구나. 근데 살아보면 그게 그리 가까이 있지는 않을 걸?&nbsp; 이 시가 시집의 22쪽 왼쪽에 실려 있고, 오른편 23쪽엔 이런 시가 올라와 있다.<br><br>&nbsp; 꽃집에서<br><br>&nbsp; 나는 꽃이 되어서 꽃집으로 들어가 꽃들 속에 섞여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오가는 사람들로 시들어, 시들어<br>&nbsp; 나는 빛이 되어서 어둠으로 들어가 어둠속에 숨어서 오가는 숨결들을 비추고 오가는 숨결들로 시들어, 시들어<br>&nbsp; 나는 노래가 되어서 빛나는 입술로 들어가 가슴에 잠겨서 피어나는 꿈들을 적시다가 오가는 꿈들로 시들어, 시들어<br>&nbsp; 꽃집이여&nbsp; 꽃집이여&nbsp; 혀와 입술을 파는 집이여&nbsp; 마른 혀와 마른 입술을 파는 집이여&nbsp; 나의 육체를 사다오&nbsp; 나의 육체를 팔아다오&nbsp; &nbsp;(전문. p.23)<br><br>&nbsp; 1연과 2연은 참 괜찮은 대구. 대구? 대가리 큰 생선? 경상북도 도청 소재지였다가 지금은 직할시가 된 도시? 그거 말고 댓구. ‘댓구’라고 쓰니까 잘못된 글자라고 글씨 밑에 붉은 줄이 우글쭈글하게 그어진다. 그래서 ‘대구對句’라고 쓰니 괜찮네.&nbsp; 이런 대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할 것도 없이 저 당나라의 이백이 대빵이다. 근데 이 시의 대구도 괜찮은 정도를 살짝 넘어 삼삼하다. 3연은 여기에 붙인 시인의 수작. 수작? 수작질? 뭐 나쁜 뜻으로 굳이 읽겠다면 그것도 맞지만 나는 전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수작手作이라 한 거다. 수작? 시인이 시 쓰는 수작 말고 뭘 해야 좋겠어? 그러니 이 시의 ‘꽃집’은, 시인이 꽃집에 한 번 가서 숱한 꽃을 보고 지었을 수 있지만서도 꽃에 이어 빛과 노래, 즉 시가 나오는 걸로 보아 사람 사는 판 가운데 그래도 좀 사람처럼 보이는 터를 연상하는 것 같다. 이 가운데 핵심은 결국 노래. 빛과 어둠 속에서도 오가는 건 그저 숨결, 노래할 수 있는 숨결이다. 시들어, 시들어 은근한 비장?&nbsp; 시인이 시에 관해 노래하는 걸 뭐라 할 수 없다. 시가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서. 독자인 나도 그런데, 하물며 시를 쓰는 시인한테 아.마.도. 영원히 알지 못하고 나무 상자 속에 누워야 하는 것이, 도대체 시가 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lt;다섯켤레의 양말&gt; 3연에 재미있는 게 있다.<br>&nbsp; 그러나 오, 다섯켤레의 혀들&nbsp; 나는 내 혀가 지은 죄 때문에 내 혀를 끊을 용기는 없었다&nbsp; 내 혀는 나를 말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nbsp; 내 혀는 자주 나의 것이 아닌 것&nbsp; 내 손이 써나가는 문장을 차라리 내 혀라 말하고 싶지만&nbsp; 세상은 혀끝에서만 머문다&nbsp; &nbsp;(&lt;다섯켤레의 양말&gt; 3연. p.44)<br>&nbsp; 그래, 시인이라고 다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저 앞에 소개한 시 &lt;불멸&gt;에서는 대차게 자기 묘비문을 쓰는 마음으로, 돌을 쪼아 시를 쓰겠다고 하더니, 여기 와서는 자기가 시를 쓰기는 했지만 그게 허위, 거짓이었다는, 늘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거짓 시를 쓰기도 했다는 고백이잖아. 뭐 그럴 수 있지. 차라리 이렇게 고백을 해버리는 게 시인이나 독자의 정신건강에 더 좋을 지도 모르지. 사는 게 다 그런 거야.&nbsp; 좌우간, 아이고, 이 ‘좌우간’ 써 놓고 보니까 또 정여사, 그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생각나네. 정여사 살아생전 좌우간, 좌우지간, 코미디언은 TV 나와서 웃기려고 간혹 ‘좌우당간’ 이라고 했던 말이 나오면 키득키득 웃고는 하셨지. 좌우의 사이 좌우간左右間,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뭐가 있느냐는 말씀이셨다. 뭐가 있다고 꼭 말씀을 드릴까? 그거, 놀이동산.&nbsp; 덕분에 시집 잘 읽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80/4/cover150/89364241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80049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다양한 죽음, 그리고 남은 사람들 - [새의 시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9290</link><pubDate>Mon, 06 Apr 2026 04: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92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979&TPaperId=171992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659/39/coveroff/89320309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979&TPaperId=171992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새의 시선</a><br/>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05월<br/></td></tr></table><br/>.&nbsp; 2014년부터 2017년 봄까지 쓴 작품을 모은 소설집. 작년 초여름에도 이이의 소설집을 읽었다. 문학과지성 소설명작선 시리즈로 나온 《완전한 영혼》. 그때는 민주화투쟁 당시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구한 전통, 고문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작품들이 눈을 끌었다. 이번엔 그 이후, 1986년에 소위 “가투”를 벌이다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 자살한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진호 사건, 2009년 용산참사에 이어 드디어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모두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책을 쓸 당시에도 동아일보 기자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로 봐서 그럴 것 같지는 않아도, 우리나라 현대사의 장면 곳곳에 일반인들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자세한 정보에 근접할 수 있었을 터이다.<br>&nbsp; 김세진, 이진호의 분신과 용산참사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 표제 작품인 &lt;새의 시선&gt;이다. 새의 시선? 그렇다. 화자가 만일 새라면, 새가 되어 새의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한다는 뜻. 굳이 검색해 찾아내 소개하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비롯해서 고흐가 동료화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은 언덕 위에서 새가 바라보는 눈으로 풍경화를 그린다고 했단다. 정찬은 이 새의 이미지를 &lt;새의 시선&gt;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숱하게 새 이야기를 한다. 하나 더 있는데 고래의 눈. 순하고 빛이 닫지 않는 심해 깊이 잠수하는 고래의 눈. 70년을 사는 향유고래가 새끼 한 마리 한테 10년 동안이나 젖을 먹인다는 이야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향유고래가 어떻게 젖을 먹이는 줄 아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육지 동물처럼 쪽쪽 빨아먹을까? 아니다. 고래의 젖은 모든 포유류의 젖 가운데 제일 진한 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새끼가 유공乳空 아래 부분에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어미가 젖을 바다로 쏘아 보낸다. 그럼 짙은 농도의 고래 젖이 바다로 흩어지는 게 아니라, 물론 쏘아 보낸 젖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 새끼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특별한 모성 본능을 지닌 고래의 눈도 정찬의 관심 안에 있어서, 새와 더불어 고래의 이미지를 소설집에서 자주 발견한다. 내 경우엔, 또 새, 고래야? 볼멘 소리를 하고 싶었을 정도로. 아, 향유고래 젖 먹이는 것도 이 소설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냥 농도가 짙다는 정도로.<br>&nbsp; 새. 새가 연상시키는 것은? 노래, 자유, 희망, 평화, 홍수의 진정(노아가 보낸 비둘기), 그리고 사후세계의 매개금禽. 사후세계까지? 그렇다. 저 몽골과 티베트 지역에서의 장례 관습인 조장을 생각해보라. 조장은 티베트에서 ‘천장’이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이번에 처음 들었다. 소설도 읽으면 많이 배운다니까) 죽은 사람을 새가 먹을 수 있는 크기로 토막내는 사람을 ‘천장사 天葬士’라고 한다면, 천장사는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도를 닦은 큰 법사가 맡는단다. 이이의 칼질에 따라 망자가 새의 몸이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으니.&nbsp; 고래의 길고 긴 여행은 티베트 사람들의 카일라스 순례에 비교할 수 있다. 산 하나에 오르지 않고 산 둘레를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고행하는 사람들. 52킬로미터. 보통 사람들이 그냥 걷는다면 꼬박 3일이 걸리고, 만일 오체투지를 하며 걸으면 한 달 남짓이 필요하다는 길. 그걸 한 바퀴 돌면 자기 죄의 하나가 지워진다고.&nbsp; 이러니 새나 고래나 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매개물이기도 하다.&nbsp; 이번에 정찬은 소설집 속 일곱 작품에서 모두, 한 작품도 빼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펼 때부터 덮을 때까지 독자는 한 순간도 어긋남 없이 우울해진다. 이 책을 돈 주고 안 사서 다행이지, 정찬의 글이 좋다고 덥석 사서 읽었더라면 책값이 겁나게 아까웠을 법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역시 정찬의 글이 좋네, 마네 가비야운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시다시피 내가 우울한 거 싫어해서 그렇다. 그래도 글이 좋아 별점은 셋 반.<br>&nbsp; 첫 작품 &lt;양의 냄새&gt;의 화자는 종합병원의 심리학 박사. 병원의 협조 요청에 따라 카지노가 딸린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 무료(또는 무료 비슷하게) 장기 숙박하면서 카지노에 모인 도박꾼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다. 도박장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저번에도 말했듯이, 만일 인생을 도박의 반 만이라도 집중해서 산다면 실패하는 인간은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은 살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자의 그리고 타의에 의하여 훈련받으며 성장하는데, 속여야 하는 상대방이 있는 포커 게임 같은 것 말고, 카지노나 주사위 같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고, 표정 역시 마찬가지.&nbsp; 화자가 카지노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사람을 발견한다. 흥분도, 기대도, 절망도 아니고 슬픈 표정을 한 20대 후반의 잘 생긴 사나이. 에니스. 그는 자신의 칩 열세 개를 몽땅 홀수에 배팅해 스물여섯 개가 되었다. 스물여섯 개에서 하나를 빼고 스물다섯 개를 또 홀수에 걸어 쉰 개가 되고, 또 홀수에 걸어 아흔여덟 개가 되더니, 손에 잡고 만지작거리던 칩 두 개를 뺀 아흔여섯 개의 칩을 몽땅 숫자 8에 걸더니 화르륵,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nbsp; 그의 표정이 인상깊어 함께 바로 향해 맥주를 병째 마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말한다.&nbsp; “칩이 작은 물고기처럼 따뜻하더군요. 전 이 물고기를 룰렛 테이블에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놓고 싶은 곳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적시는 강물입니다. 어느 해 여름 그와 함께 지냈던,”&nbsp; 나는 즉각 애니 프로가 쓴 기막힌 책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정찬은 어쩌자고 이미 알려진 작품 속 등장인물을 출연시켰을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까? 궁금해졌다. 리얼리스트가 포스트모던 작품을 쓰겠다고 나선 셈이라서. 궁금했겠지? 말 하면 뭐해.&nbsp; 아니다. 정찬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lt;기사 윌리엄&gt;에서 윌리엄으로 나왔고, &lt;브로크백 마운틴&gt; 그리고 &lt;다크 나이트&gt;의 주인공을 연기한 영화배우 히스 레저를 자기 작품 속으로 불러왔던 거였다. 영화를 할 때마다 작중 자신이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두한 배우. 그리하여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주인공의 이미지에서 도무지 벗어나기 힘들어하던 배우.&nbsp; 조커 이야기가 나온 순간, &lt;양의 냄새&gt;는 결국 히스 레저의 죽음으로 끝장을 보겠구나,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화자 ‘나’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룰렛에서 히스 레저를 만난 날짜가 2008년 1월 20일 저녁이었으니 그의 실제 죽음을 겨우 이틀 남긴 날이었다.<br>&nbsp;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연달아 죽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은 별로 읽고 싶지도 않고, 다른 이한테 읽어보라 권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기자 출신 글 좋은 작가가 썼으며, 취향이란 것이 진짜 다양한 거니까 마음이 동하시면 굳이 멀리할 이유가 없다.&nbsp; 배역에 몰입하는 배우. 자기가 쓰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몰두하는 작가. 그리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화가 또는 사진가. 이런 사람들도 등장한다. 물론 비극적이다. 화가 가운데 클로드라는 이름도 있다. 누구냐 하면, 당신도 아는 제르베즈 아줌마의 첫째 아들. 자기가 그린 대작 앞에서 대롱대롱 혀를 빼물고 자살해버린 인간 말이지.&nbsp; 그거 말고도 병에 걸려 죽고, 자동차 사고로 죽고, 42층 건물에서 스스로 자유낙하해서 죽고, 배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다가 한꺼번에 침몰해 죽고, 동네 철거에 항의하다 불에 타 죽고, 마약은 아니지만 약물 과다 복용으로 히스 레저도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는다.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래서 이제 남은 사람의 슬픔은 어쩌라고. 나는 죽는 것보다 이 남은 사람의 비극을 더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책 더 안 읽고 싶은데, 그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이것 참.&nbsp; 엊그제, 또래 가운데 제일 어린 조카딸이 차사고로 죽었다. 이름을 내가 지어주었는데. 마음 아프다. 결혼 2년 반. 아이는 없이.<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659/39/cover150/89320309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659393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내가 너를 손바닥 안에 보호할 것이니 - [어메이징 브루클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3626</link><pubDate>Fri, 03 Apr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36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837187&TPaperId=171936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92/83/coveroff/k3228371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837187&TPaperId=171936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메이징 브루클린</a><br/>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04월<br/></td></tr></table><br/>.&nbsp; 제임스 맥브라이드. 1957년생 작가, 작곡가 겸 색소폰 연주자. 흑인(유색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유대인. 아빠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엄마가 유대계 폴란드 이민의 따님. 맥브라이가 쓴 &lt;하늘과 땅 식료품점&gt;이 뉴욕 타임스가 뽑은 21세기의 1/4세기, 그러니까 2001년부터 2025년까지 대표작(책) 100권으로 뽑는 바람에 이름도 처음 들은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lt;하늘 땅…&gt;이 뭐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서가에서 이이의 이름이 눈에 띄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른팔을 뻗었다. 웃겼어. 책이 500페이지. 이렇게 딱 떨어지기도 쉽지 않은데 그것 참.&nbsp; 독후감 시작하기 전에 미리 김을 좀 빼야겠다.<br>&nbsp; 매우 재미있다. 뉴욕 브루클린 유색인 지구 커즈웨이 빈민주택 단지. 파이브엔즈 교회가 있고 잡초만 넘실거리는 공휴지 건너 이탈리아 패밀리의 일원인 엘레판테 가족의 컨테이너 사무실. 그 너머 자유의 여신이 보이는 동네. 때는 1969년. 바야흐로 전통적인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한 밀수, 도박, 건축하청 같은 종목은 시대 저편으로 흘러가고 빈 자리를 급속하게 헤로인 같은 마약이 잠식하고 있던 시기. 약의 공급은 여전히 백인이 차지하고 유색인은 기껏해야 딜러밖에 하지 못하던 시절. 약이 비싸지는 않지만 그것도 살 돈이 없어 돈을 구하기 위하여 아무 한테나 폭력을 동반한 강도행위를 하기 시작했던 시기. 탁 보면 대단히 우울한 풍경이 그러지는데, 천만의 말씀, 이미 &lt;하늘 땅…&gt;에서 경험했다시피 작가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될 수 있는 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작품에 유머와 말장난을 섞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있는 것 같다.&nbsp; 그래서 어쨌느냐 하면, 소설을 읽는다기 보다 차라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니까 책의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제한속도를 훌쩍 넘어 팍팍 읽힌다. 쉴 새 없이 키득거리면서. 정말 웃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읽기 민망할 수준이다. 등장인물 역시 마약과 마약 조직에 의한 폭력에 시달리고, 커즈웨이 공동체 흑인들도 하이틴 시기만 되면 각종 범죄로 인해 교도소를 들락날락 하는 걸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임에도 이들은 한결같이 서로를 보호하고, 밝고, 사소한 다툼 속에서 질투 날만큼 질긴 애정으로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게 다 작가의 현란한 입심 때문에 그렇게 읽히는 건데, 내가 살아보니까 인정이란 것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 당장 내 배가 고픈데 과연 이 유색인들처럼 살 수 있을까, 이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즉, 맥브라이드가 과하게 대중 코드로 작품을 쓴 거 같다는 말이다. 그게 오히려 작품을 실감나지 않게 한다. 뭐든지 너무 과하면 안 좋은 건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 물론 내 허접한 수준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다.<br>&nbsp; 너무 김을 뺐나? 말이 그렇지 무지 재미있다. 1/4세기 동안 1백대 작품이라는 &lt;하늘 땅…&gt;보다 더 재미있으니 읽기를 머뭇거리지 마시라.&nbsp; 오래 전,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커즈웨이 주택단지는 원래 이탈리아에서 하역일을 하려고 몰려든 이민자들을 위하여 지은 거였다. 이탈리아 사람들 말고도 아일랜드,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 사람들도 빼곡하게 들어왔다가 어느새 이런 힘을 쓰는 일은 남쪽에서 소작을 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치고 올라온 유색인종들이 대신하기 시작했고, 일종의 터줏대감이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도 커즈웨이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nbsp; 이때도 커즈에 인접한 부두는 귀도 엘레판테가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근데 아뿔싸, 이 귀도는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렸다. 범죄에 연루된 건 맞지만 남의 범죄사실까지 덮어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짜 행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 12년 형을 받고 복역중에 뇌졸중이 발병, (이런 게 있다면 하는 말씀이지만) 의병석방 되었어도 아픈 몸을 끌고 여전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귀도 엘레판테가 이탈리아 출신이기는 했지만 패밀리의 최상단인 시칠리아-나폴리 라인이 아니고 북서부 제노아 출신이라 항상 신중하게 행동했다. 이게 쉽게 되는 거야? 천만의 말씀. 원래 사람 생겨 먹기가 진중한 성격이고, 말을 하기 보다 듣는 쪽이었으며, 남을 신뢰하는 사람만 신뢰하고, 약속을 하면 지키는, 쉬운 얘기로 의리의 사나이였기 때문이다.&nbsp; 40년대 말에 뉴욕 경찰이 누구로부터 제보를 받았는지 엘레판테의 컨테이너 사무실을 급습했다. 하지만 곳곳에 귀도의 정보원이 있어서 미리 경찰의 습격을 알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평소 같으면 접안을 했거나 정박한 배로부터 밀수품을 하역할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때 신참이었던 청렴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포트도 출동하였는데, 현장이 비어 철수 명령을 받고 복귀하려다 숨어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쫓기 시작했다. 거의 다 잡았을 무렵 그림자가 갑자기 뒤로 돌더니 권총을 겨누었다. 이제 포트는 죽은 목숨이지? 그런데 포트가 20여 년이 지나 중늙은이가 되면 &lt;어메이징 브루클린&gt;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라서, 바로 죽음 직전에 커다란 트럭이 냅다 시속 40마일로 달려오더니 그림자를 깔아버렸던 거다. 현장에서 즉사.&nbsp; 이렇게 포트 경찰을 살려준 인물이 누구냐 하면 귀도 엘레판테.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톰 엘레판테의 아버지.<br>&nbsp; 하지만 귀도 역시 경찰을 만났으니 얼른 도망가야 할 터. 앞에서 뭐라 했느냐 하면, 교도소에서 나오기 전에 벌써 뇌졸중이 발병한 상태. 한쪽 다리와 팔이 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형트럭의 운전대에서 뛰어내리다 한쪽 팔이 아마도 크게 삐거나 부러진 거 같았다. 이때가 새벽 세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 떨어진 귀도.&nbsp;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마침 백인 집에 하녀 비슷한 도우미로 일하던, 폴이라는 남자 이름을 쓰는 아프리카계 여성이 그날 집주인 집에서 크게 파티를 벌이는 바람에 늦게 걸어서 퇴근하던 차에 귀도를 발견했던 것. 귀도가 폴 자매, 왜 ‘자매’냐 하면 남편이 목사라서 하느님을 믿는 남자는 무조건 형제, 여자는 무조건 자매인데, 하여간 운전 면허증도 없는 폴 자매에게 자기 대신 트럭을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청을 했다. 폴 자매는 당연히 남의 험한 일에 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당시엔 정말로 거금이었던 사례금 백달러도 거절했지만, 저 밤하늘 구름 위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손바닥 안에 보호할 것이다.” 그래서 그를 부축했고, 그의 옆에 앉아 기어는 귀도가 넣고 페달은 폴 자매가 밟으며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nbsp; 이러니 의리의 사나이 귀도 엘레판테가 얼마나 폴 자매가 고마웠겠어? 사례비로 주겠다는 백달러도 끝까지 받지 않았으니 이 여성도 남을 신뢰하는 사람이고 그러니 자신도 폴 자매를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 그래서, 대신, 폴의 남편이자 목사가 교회 터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땅을 거의 거저 수준으로 팔고, 교회 건물도 무료 비슷하게 지어주었던 거다. 그것 참, 깡패 두목이긴 하지만 정말 의리의 사나이일세.&nbsp; 그런데 귀도가 교도소에 있을 때 알게 된 낭만적 아일랜드 범죄자가 있었다. 이 아일랜드 남자 거버너도 남을 신뢰하는 자라서 귀도 역시 신뢰했다는 걸 거버너도 알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 수천년 전에 조각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관해달라고 청했다. 나중에 보관료는 따로 계산하자며. 짧게 말하자. 그리하여 귀도 엘레판테는 교회를 건설하면서 폴 자매에게 이 보물을 숨긴 곳을 알려주는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로 말하자면, 이후 20년이 지난 1969년 현재가치로 1,500만 달러를 받고 유럽의 수집가에게 팔 수 있는 그야말로 국가 보물급 유물이었던 것.&nbsp;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귀도 엘레판테는 벌써 죽고, 이제 톰 엘레판테 역시 부두 일에 싫증을 느낄 무렵, 다 늙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버너가 귀도의 아들을 찾아와, 네 아빠가 보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잘 생각해보라 했거든. 근데 마흔살이 넘어도 모태 솔로였던 톰 눈에는 보물과 동시에 거버너의 나이든 딸 멜리사가 눈에 팍 꽃혀버렸다는 거 아냐.<br>&nbsp; 여태 말한 것들, &lt;어메이징 브루클린&gt;의 주요 이야기라고 하기 힘들다. 근데 왜 헛심 빠지게 이리 길게 썼느냐 하면, 주인공인 스포츠코트, 본명 쿠피 램킨의 길고 긴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귀도의 아들 톰 엘레판테와 “내가 너를 손바닥 안에 보호할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 좋은 우리가 이해하자.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목사의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초장에 스포츠코트가 1969년 9월의 흐린 오후에 그의 야구 제자이자 현 마약딜러인 19세 먹은 딤즈 클레멘스의 얼굴을 향해 구식 38구경 콜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이야기는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건 다른 이들이 쓴 독후감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으니까. 재미있겠지?&nbsp; 그래서 읽을래, 말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92/83/cover150/k3228371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92831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장방형 프레임 밖의 피사체에 관하여 - [인도 야상곡]</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1631</link><pubDate>Thu, 02 Apr 2026 03: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916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6756&TPaperId=171916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34/41/coveroff/89546367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6756&TPaperId=171916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도 야상곡</a><br/>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06월<br/></td></tr></table><br/>.&nbsp;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바로 앞 페이지에 “작가의 말”이 실려 있다. 그걸 먼저 읽어보자.<br>&nbsp; “이 책은 불면을 위한 책이면서 또한 여행의 책이다. 불면은 이 책을 쓴 사람의 것이고, 여행은 여행한 사람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행한 장소들을 나도 가본 적이 있기에, 이런저런 장소들을 간단하게 안내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지형 일람표 같은 것이 현실이 소유하는 힘과 합쳐져 ‘그림자’를 찾아나서는 이 ‘야상곡’에 어느 정도 빛을 비춰줄 수도 있다는 희망에서, 얼핏 그런 환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여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길잡이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추측에서 여행지의 일람표를 만들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br>&nbsp; “불면을 위한 책.” 이건 책을 쓴 안토니오 타부키의 것이다. “여행을 위한 책.” 이건 작품 속 인도에서 사라진 한 시절의 절친 사비에르 자나다 핀투를 찾아 인도 뭄바이, 옛 이름 봄베이에 도착한 화자 ‘나’ 별명 ‘호스’의 것이지만, 작가도 책에 나오는 장소들을 가본 적이 있다니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호스’는 나이팅게일의 포르투갈 말 “호시뇰”의 발음 앞 부분에서 가져온 별명이다. 서양인에게 이름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는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하자. 그리하여 타부키 자신이 호스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호스’는 인도에서 호스가 갔던 곳을 가본 적 있는 모든 세상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즉 호스는 타부키도 될 수 있고, 심지어 호스가 찾아 나선, 지금도 절친한 친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난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 사비에르도 될 수 있다. 더불어, 유럽이나 아메리카 사람으로 인도의 곳곳을 다녀본 미스터 나이팅게일일 수도 있고. 문제는 화자 ‘나’ 호스가 갔던 곳을 가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이 “여행을 위한 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그러니 세상(의 서양) 사람 가운데 이 책의 열두 장章의 무대가 되는 열두 장소 모두 가본 사람은 픽션의 등장인물을 포함해 호스와 안토니오 타부키와 사비에르 자나다 핀투를 뺀다면,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서양 사람으로 국한시키는 이유는 호스, 호시뇰, 나이팅게일, 타부키, 사비에르라는 이름 때문이다.<br>&nbsp; 화자 ‘나’는 처음부터 잠이 쏟아진다. 여덟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도 봄베이. 지금은 뭄바이라고 불리는 대도시이다. ‘나’ 그러니까 호스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봄베이의 수클라지 거리에 있는 카주라호 호텔과 그 인근의 어린 매춘부 ‘비말라 사르’로부터. 비말라 사르가 사비에르와 친하게 지냈는데, 사비에르가 병에 결려 이상하게 변했다고. 호스의 이름과 주소는 사비에르의 수첩에 적혀 있었고, 그가 가끔 제일 친한 친구로 호스 이야기를 해 편지를 보냈다는 거였다.&nbsp; 호스의 직업은 타부키와 마찬가지로 소설가. 전작 &lt;레퀴엠&gt;에서도 스스로 밝혔듯이 ‘소설가, 혹은 작가’는 그냥 직업일 뿐이고 태생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이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사람 호스는 지금 살고 있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젊은 시절의 친구 사비에르를 구출하기 위하여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봄베이로 날아올 수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피사가 아니라 리스본에서 사는 이유 역시 &lt;레퀴엠&gt;에 나온다. 그러니 암만해도 이 책을 읽기에 앞서 &lt;레퀴엠&gt;을 먼저 읽는 편이 좋을 듯싶다.<br>&nbsp; 봄베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호스.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밝힌다. “수클라지 거리 카주라호 호텔로 갑시다.” 이렇게 말했겠지. 터번을 쓰고 흰 리본으로 묶은 짧은 말총머리를 한 걸 보니 힌두교 시크교도인 걸로 보이는 운전수는 복잡한 공항 근방 도심에서 무지막지한 난폭운전을 하더니 정작 길이 말끔하게 닦인 해변도로에 접어들어서는 여유롭게 바다 구경도 해가며 이런 저런 말을 나누려 한다. 호스가 항의한다. 가지고 있는 안내책자에 의하면 해안도로가 나타날 이유가 없다. 운전수가 말한다.&nbsp; “카주라호 호텔은 아주 지저분한 동네에 있습니다. 점잖은 분께 어울리는 숙소로 모시고 있는 중입니다.”&nbsp; 열 받은 호스는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해안도로에서 그냥 내려달라고 해, 정말 내려버린다. 마침 해변에서 무슨 축제를 하는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부랑자, 잡동사니를 파는 아이, 거지들이 우글우글하다. 늘어선 인력거도 마찬가지. 그래서 모터가 달린 인력거를 타고 도착한 카주라호 호텔 인근 케이지 지구地區. 호스는 이곳을 유명 작가의 사진에서 본 적 있다. 그 덕에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케이지 지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nbsp; 사진에서 보고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했다고? 사진은 한 피사체를 장방형 프레임 안에 가둬둔 것이다. 딱 한 장면. 시각에 호소할 뿐. 그것도 이 장방형 프레임에서 단 1밀리미터 벗어나 “있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게다가 피사체에 들어 있다고 해도 피사체의 질감과 냄새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한다. 호스도 마찬가지였다. 인력거에서 내리기도 전에 닥쳐오는 너무도 지독한 냄새. 너무나 많은 냄새.&nbsp; 냄새? 냄새를 거론하는 건 위험하다. 냄새를 나게 하는 당사자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 송강호가 이선균을 죽일 수도 있고, 그 장면이 타당하다고 관객이 동감하며 편안한 의자에 앉아 감상할 수 있는 거다. 맹인 알 파치노가 가브리엘 앤워와 탱고를 추는 영화 제목이 &lt;여인의 향기&gt;이지 &lt;여인의 냄새&gt;가 아니잖아. 당신은 함부로 타인의 냄새를 거론하지 말라. 그러나 호스, 혹은 안토니오 타부키, 아니면 미스터 나이팅게일은 과감하게 냄새를 거론한다. 그것도 “너무 지독하다”고. 카주라호 호텔이 있는 케이지 지구가 어떤 곳인지 이것보다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어서.<br>&nbsp; 케이지 지구의 몇 안 되는 벽돌 건물인 호텔에 들어가니 ‘어두침침한 방’이라 쓴 카운터가 있고, 카운터 뒤에 그리 늙지 않은 여성이 서 있다. 방의 키를 주더니 호스에게 말한다.&nbsp; “열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는 3백루피, 열다섯 위로는 55루피예요.”&nbsp; 호스는 비말라 사르를 데려다 달라고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여기서 일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20달러 지폐 두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계단으로 향했다. 동네가 아무래도 너무 험한 거 같고, 자기가 돈 건네는 모습을 현관 근처 소파에 앉은 두 명의 나팔바지 청년이 본 것 같아 한 마디를 남긴다.&nbsp; “내 거처는 대사관에다 알려 두었습니다.”&nbsp; 여덟 시간의 비행. 공항에서 도심을 빠져나오는데 세 시간. 잠이 쏟아지는 호스. 비말라 사르가 왔다. 그 아이가 전해준 말에 따르면, 자기는 누군지 모르는 고아 지방 사람들하고 봄베이에 와서 장사를 했는데 무슨 장사인지도 모르겠다. 마드라스에서 온 편지에만 조금 관심이 있어서 몇 시간 동안이나 답장을 쓰고는 했다. 아마도 연구 단체였던 거 같은데 자세히 모르긴 해도 신지학神智學협회로 보낸 것이지 싶다. 좋은 사람이었다. 마음 씀씀이가 좋았지만 원래 팔자가 사나웠던 모양이다. 수많은 글을 썼으나 어느 날 이 호텔의 구리 그릇에 넣고 다 태워버렸다. 병에 걸렸거든요.&nbsp; 비말리 사르가 해준 말에 이 책의 다음 행선지가 전부 나왔다. 병에 걸렸다니까 봄베이의 브리치캔디 병원에 가보아야 하고, 후진 카주라호 호텔에서 묶었으니 다음날은 최고급인 타지마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자야겠으며, 마드라스로 가는 기차역 숙소와 마드라스의 호텔, 신지학협회,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 고아.&nbsp; 성姓이 ‘자나다 핀투’인 사비에르는 조상을 거슬러 오르면 먼 인도 핏줄도 하나 있는데, 이 조상이 인도의 고아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호스는 인도의 관청을 다니며 성姓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곳은 봄베이. 유럽식 분류법은 오만한 사치에 불과하니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충고만 듣는다. 그러면 고아에 가 보아야지.&nbsp; 그런데 고아에 가면 사비에르에 관한, 아니면 적어도 사비에르의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그에 관한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까? 저 장방형 프레임 밖의 또다른 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도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234/41/cover150/89546367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34414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 [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amp;lt;이방인&amp;gt;,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9749</link><pubDate>Wed, 01 Apr 2026 0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97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029X&TPaperId=171897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16/69/coveroff/893101029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029X&TPaperId=171897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lt;이방인&gt;,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a><br/>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01월<br/></td></tr></table><br/>.&nbsp; 3월 첫 독후감 &lt;후리&gt;를 쓴 작가 카멜 다우드. 그가 쓴 첫번째 장편소설 &lt;뫼르소, 살인 사건&gt;이 4월의 첫 독후감이 된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하나? 2015년에 공쿠르상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lt;후리&gt;로 2024년 공쿠르상을 받았으니 10년 전부터 싹수가 보였던 셈이라고 할까?&nbsp; 사람이 참 웃긴 것이, 전에는 아무리 개가실을 돌아다녀 봐도, 바로 눈 높이에 이 책이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카뮈의 &lt;이방인&gt;을 다른 시각으로 본 작품이겠거니, 그냥 그렇게 치부하고 지나쳤는데, 이번에 딱 보니까 책을 쓴 이가 카멜 다우드, 바로 &lt;후리&gt;의 작가였던 거다. &lt;후리&gt;를 재미나게 읽어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 그러면서 속으로 미셸 트루니에의 &lt;방드르디, 태평양의 끝&gt;과 진 리스의 &lt;광막한 사르가소 바다&gt;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들하고 비슷한 내용이겠거니.&nbsp; 근데 문제가 있다. 카뮈의 &lt;이방인&gt;을 읽은 것이 저 까마득한 옛 일이라서. 거의 반세기 전 고등학교 다닐 때 읽고 이후에 다시 읽어본 적 없으니 제대로 연결을 하기 어려울 것. 게다가 &lt;이방인&gt;과 나 사이에는 시절이 끼어 있다. 백기완 선생의 일갈. 식민국인 프랑스 청년이 아무 이유 없이 식민지 국민인 알제리 청년을 쏴 죽인 이야기에 왜 열광하느냐, 어찌 감동할 수 있느냐는 민족주의적 꾸짖음이 시절의 경종처럼 두개골 공간을 난타했다. 에세이집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에 나오는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나 역시 전혀 익지 않고 피만 끓을 때라, 그간 &lt;이방인&gt;과 뫼르소에 경도하던 청년으로 이게 대단히 부끄러웠다는 말이지. 그땐 그랬다. 오직 리얼리즘만 거리를 휩쓸고 모더니즘 작품을 읽으려면 집구석에 박혀 읽고는, 읽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염병할 시절.&nbsp; 핑계가 길다. 긴 핑계는 변명이다. 쉽게 얘기해, &lt;뫼르소, 살인 사건&gt;을 똑 부러지게 읽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다는 말이다.<br>&nbsp; 첫 문장부터 죽여준다.&nbsp;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nbsp; 카뮈, &lt;이방인&gt;의 가장 유명한 우리말 번역은 아마도 민음사 세계문학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일 듯한데, 그 책의 첫 문장이 이렇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lt;이방인&gt;에 진짜 열광하는 독자는 이 첫 문장이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다른 지 그 이야기만 해도 밥도 안 먹고 2박 3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 별로 관심 없다. 근데 카멜 다우드의 첫 문장은 확실히 죽여준다. “오늘”, 한 박자 쉬고, “엄마는 살아 있네.”&nbsp;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이:&nbsp;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지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걸세.”&nbsp; 초장부터 화끈하게 알려드린다. 이 작품은 일흔살이 넘은 알제리의 늙은 남자 하룬이 카뮈 또는 &lt;이방인&gt;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하여 일부러 하룬을 찾아온 프랑스 대학생과 바에 앉아 술잔을 홀짝이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2인칭 소설로도 읽힌다. 프랑스 대학생이 왜 하룬을 찾아왔느냐 하면, 하룬의 형이 1942년 여름에 프랑스 국적의 청년 뫼르소가 해변에서 쏴 죽인 “아랍인”이기 때문이다.&nbsp; &lt;이방인&gt;하고 다른 점은, 뫼르소가 살인죄가 아니라, 엄마가 죽었어도 제대로 상도 치루지 않고 애인 마리와 동침을 하고, 술도 마시고, 대낮에 돌아다니다가 햇볕을 너무 쫴 일사병인지 열사병인지 하여간 가볍게 어지럼증이 일어,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이 너무 심심해서, 아무 이유 없이 한 “아랍인”을 쏴 죽여 비윤리적이라는 죄목으로, 살인이 아니라 “비윤리”라는 죄의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은 되지 않아 몇 년 후에 감방에서 나와 당시의 일을 소설로 썼다. 그런데 책을 읽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언어 앞에서 살인자의 고독에 공감했다면 한껏 멋부린 언사로 위로를 보내”기에 바빴다고 주장한다. 즉 살인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무죄를 얻고 시작했으며, 세계인들조차 그의 살인이 아니라 고독에 공감을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nbsp; 뭐가?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언어, 즉 기막힌 문장이. 문장의 힘이 그렇게 무섭다니까? 저 어둠의 시절에 폭포처럼 쏟아지던 백기완 선생의 문장처럼. 웃기지? 뫼르소의 문장은 살인을 지워버렸고, 백기완의 문장은 뫼르소를 지워 버렸으니. 그럼 독자는? 그저 책을 읽으며 이쪽으로 흔들, 저쪽으로 흔들, 쇠부랄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기만 하면 된다. 정말? 뭐 아니면 말고.<br>&nbsp; 뫼르소가 죽인 건 알제리 청년이 아니라 “아랍인”이었다. 그런 뫼르소더러 유럽인이라고 하면 듣는 프랑스 인종들은 기분 좋겠어?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이슬람의 전통인 누구의 자식인지도 말하지 못했고,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 그냥 없어졌다. 그저 아랍인 하나가 없어진 일이다.&nbsp; 1942년의 일로 죽은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무식쟁이였다. 이름 하나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익명의 존재, 작품 속에서도 기껏해야 두 시간밖에 못 살고 불분명한 장례를 치루고 70년이 넘게 계속 죽은 상태로 있어야 했지만, 살인자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것도 아주 뛰어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 줄 알았기 때문에 자신 말고 다른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nbsp; 무싸와 하룬. 이 형제를 만든 아버지는 형제가 어렸을 때 처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이들의 이름에 부칭은 없다. 무싸빈OO. 하룬빈OO. 하이틴 때부터 집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던 무싸가 하루 아침에 죽고, 시신도 찾지 못한 어머니는 무싸를 바다에 빠져 죽은 것으로 해서 빈 관을 매장하고 알제를 떴다. 바다와 물은 꼴을 보기 싫어 내륙으로 가 프랑스 지주의 하녀로 일했다. 1962년까지. 독립전쟁에서 알제리가 승리해 독립을 쟁취하자 프랑스인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하녀로 일하던 집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후에 화자 ‘나’ 하룬은 공부를 시작했다. “객석이 비어가는 동안에도 무대 뒤의 침묵 속에 감춰진 내막을 떠벌리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라서 형의 흔적을 형 대신 프랑스, 적의 언어로 떠들기 위하여. 국유재산관리국의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무싸가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nbsp; 부조리. 그것을 등에 지거나 땅 속 깊숙이 품고 있는 건 무싸 형제들이지 결코 뫼르소와 그의 동조자일 수 없다는 주장. 하룬은 슬픔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형을 애도하는 것도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이라 하는데, 여기까지 읽으면 이제 다분히 반식민적 희생에 대한 소설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br>&nbsp; 하룬의 1962년. 프랑스가 패전해 물러갈 때. 알제리의 혁명군 병사들이 임의로 프랑스인 두 명을 살해한 죄목으로 총살당한 일이 있었을 때, 하룬은 프랑스인의 집이었다가 자기 집으로 바뀐 곳에 밤중에 숨어든 프랑스인에게 권총 두 방을 쏴 죽여버린다. 그냥 그가 밤중에 집에 들어와서. 자기 등 뒤에서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죽여, 죽여버려, 라고 했기 때문이었다.&nbsp; 당국에 의하여 체포당한 하룬. 그의 죄목은 당연히 살인이다. 알제리 독립투쟁 기간이었다면 살인은커녕 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받을 수도 있었으나, 독립하고 이틀 지난 후라서 살인은 그냥 살인이라는 범죄일 뿐이다. 세상은 하룬의 살인을 어떻게 판정할까? 정말 독립 전과 후의 살인은 다른 것일까?&nbsp; 뫼르소의 살인과 하룬의 살인의 차이. 이것이 결론일 것 같은데, 책은 &lt;후리&gt;처럼 잘 읽히지 않고 쉽지도 않다. 확실한 건 민족주의적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거. 하긴 카멜 다우드가 그럴 인간이 아니기도 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16/69/cover150/893101029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16690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비단은 비단인데 낡아 해진 - [묵동기담 / 스미다 강]</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5556</link><pubDate>Tue, 31 Mar 2026 05: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55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944X&TPaperId=171855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42/7/coveroff/893202944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944X&TPaperId=171855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묵동기담 / 스미다 강</a><br/>나가이 가후 지음, 강윤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01월<br/></td></tr></table><br/>.&nbsp; 제목 “묵동기담.” 나는 제목이 싫어서 그동안 읽기를 미루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인 대산문학총서 140번 작품이었지만. 전쟁 전 일본 작가들이 자주 쓰는 귀신 나오는 ㅆㄴㄹ 소설일 것 같아서. 일본 어느 지역에 묵동이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 수풀이나 음산한 절 또는 사당 같은 곳에 사는 3백살 넘은 노파나 중 혹은 귀신들이 창궐하는 이야기일까봐 그러니까 ‘묵동’이 문제가 아니라 뒤의 두 글자 ‘기담’이 문제였다. 기담奇譚. 이상하고 야릇한 이야기. 이런 거라면 그저께 읽은 정보라의 &lt;저주 토끼&gt;로 너무 충분했으니 새삼스레 또 읽을 필요가 없잖아? 근데 오직 대산세계문학총서라는 것 때문에 책을 꺼내 눈에 힘을 주고 (책등이 아니라) 표지를 봤더니 &lt;묵동기담濹東綺譚&gt;이라 쓰여 있더란 것. 기담의 ‘기綺’가 기괴하다 할 때의 기가 아니라, 비단, 문채, 고울 기. 그래서 더 알아봤더니, PC에서 프린트할 때 지원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묵濹 자는 네이버 사전에 뜻이 없고 발음 ‘묵’만 내주는 단어인데, 일본 도쿄를 흐르는 스미다 강변을 노래할 때 자주 쓴 한자란다. 그냥 스미다 강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그럼 됐다. 스미다 강변은 아니고 스미다 강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의 기담, 비단 이야기. 비단으로 지은 옷은 누가 입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지은 예쁜 소설 &lt;비단&gt;에서 치명적으로 어여쁜 일본의 아가씨가 비단옷을 입잖아? 그 젊은 아가씨가 늙은 비단 패밀리 보스의 정식 아내는 아니고. 맞다. 일본의 화류계 아가씨들이 입는다. 그러면 제목 ‘묵동기담’이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nbsp; 1879년에 도쿄에서 내무성 엘리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어린 시절 엄마한테 노래와 악기 연주 특히 샤미센에 재미를 붙였다. 위키피디아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데, 하이틴 시절에 병원에 입원해 몇 달을 보낸 후, 훗날 작가가 되는 친구와 함께 홍등가로 본격 진출한 모양이다. 이렇게 사는 바람에 당해년도에는 대학에 갈 수 없어서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에 갔다가 돌아와 도쿄 외국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작품을 쓴다. 이 정도만 알면 되리라.<br>&nbsp;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청소년이 홍등가를 드나들었으니 이게 공무원 집구석에서 가당한 일일 수가 없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가이는 그 시절의 즐거움이 나이가 들어도 그리웠던지 &lt;묵동기담&gt;에서 쉰여덟 살이 된 주인공 ‘나’ 오에 다다스로 하여금 스미다 강둑이 멀리 보이는 좁은 골목 속의 홍등가 여인을 찾아가게 만들었다.&nbsp; 작품은 주인공 ‘나’의 일인칭으로 쓰였지만 독후감은 오에 다다스, 3인칭으로 쓰겠다.&nbsp; 오에는 활동사진을 좋아하지 않아 1897년경 극장 간키칸에서 샌프란시스코 시가지 광경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관동지진이 있었던)1923년 이후에는 영화 말고 극장 간판을 유심히 보면 이미 영화의 스토리를 대강 다 알 거 같아서 간판 구경하는 것에 취미를 붙였는데,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도쿄 시내를 거닐다보니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유곽 진입로였다. 지진 전만 해도 유곽의 아가씨들과 삐끼들이 지나가는 행인의 모자를 빼앗아 손님을 거의 강제로 끌어오는 거친 행동도 했지만 이젠 순사 파출소에서 엄히 단속해 그런 경우는 없다. 그래도 삐끼는 여전하다. 이 동네에 유곽과 관련없는 유일한 곳이 헌책방. 오에의 단골집이기도 하다.&nbsp; 그곳에 들러 오래 묵은 잡지 한 권을 둘러보고 있던 차, 예순 살은 먹어 보이는 사내가 보따리를 하나 가지고 들어오더니 무늬가 자잘하게 들어간 홑겹 옷과 소매와 몸통 부분을 서로 다른 천으로 만든 나가주반(전통 부인복에 사용하는 질기고 고운 비단)을 꺼내 보인다. 자, 기綺, 비단 나왔다. 오에는 별 생각없이 헌잡지 몇 권과 충동적으로 나가주반을 샀다. 통속소설의 표지를 싸면 좋을 것 같아서.&nbsp; 헌책방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순사가 오에를 부르더니 파출소로 연행해간다. 불심검문. 군국주의 일본에서 순사의 취조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이를 위해 오에는 지갑 속에 인감증명과 호적초본을 가지고 다닌다. 이 두 개를 확인한 순사가 몇 시간에 걸친 취조를 마치고 방면하는데, 오에가 파출소를 나서며 하는 말이 “애초 헌 옷은 재수없는 물건이야.”<br>&nbsp; 오에가 순사들한테는 밝히지 않았지만 직업이 작가다. 쉰여덟 살. 메이지 12년 기묘생. &lt;실종&gt;이라고 제목을 붙인 소설을 구상했다. 다 쓰면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 되리라는 약간의 자신감이 든다.&nbsp; 극이라면 극중극이다. 소설이니까 작중작이라면 되겠다.&nbsp; 주요인물은 다네다 준페이. 쉰 살 정도. 사립중학교 영어교사. 아내 죽고 3~4년 후에 미쓰코라는 여인과 재혼했다. 미쓰코는 정치인의 집에서 안주인의 몸종으로 지내다가 주인에게 속아 아이를 임신했다. 다네다의 친구이기도 한 집사 엔도가 일을 처리하기로 해서, 만일 미쓰코가 아이를 낳는다면 20년간 양육비조로 월 50엔을 줄 것이며, 다른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면 상당한 수준의 지참금까지 주겠노라, 단, 아이는 절대 이 집의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홀아비 친구 다네다한테 찾아가 아이 하나 달린 어여쁜 여자하고 결혼만 했다 하면 팔자가 핀다고 꼬드긴다.&nbsp; 이렇게 혼인을 해 들어온 아들 다메토시에 이어 다네다의 딸 요시코, 아들 다메아키를 키우며 산다. 20년 후, 주인집에서 양육비를 딱 끊어버리자 이때부터 대학과 고등학교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의 학비며 생활비를 대기 위하여 다네다는 야간학교 두세 군데에 더 강의를 맡아야 할 지경이었다.&nbsp; 다메야키는 운동선수가 되어 나중에 서양으로 나가 살고, 요시코는 배우 중에서 그냥 배우가 아니라 은막의 스타가 된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하기 전에, 다네다가 피곤을 무릅쓰고 집에 들어가면, 그동안 일본 불교 특정 종파에 들어간 아내는 신도를 모아놓고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첫째 아이는 울퉁불퉁한 청년들을 모아 집이 들썩들썩하고, 요시코는 쭉쭉빵빵한 아이들을 데려와 날마다 파티를 여는지 도무지 시끄러워 살지 못할 정도였다.&nbsp; 그리하여 참다 못한 다네다는 쉰살이 되어 직장에서 퇴직하는 날 퇴직 보너스를 챙겨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잠적해버리고 만다. 전차에서 우연히 전에 자기집에서 하녀 일을 하던 현직 카페 접대원 스미코의 집에서.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되려는 건 아니었는데, 사정을 털어놓고 딱 하루만 신세를 짓자고 했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nbsp; 여기까지 구상했고, 이후 어떻게 이야기의 결말을 지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br>&nbsp; 작가 오에는 머리 속으로 별의별 구상을 해가며 초가을 저녁 산책에 나섰다. 근데 난데없이 소낙비가 우다다닥 내리친다. 일본의 초가을은 날씨가 사납다. 태풍도 겁나게 자주 오고, 소나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오에는 그래서 우산 없이 외출하는 법이 없다. 우산을 활짝 펴고 서 있는데, 이때 우산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전직 우츠노미아 게이샤 출신의 유녀 오유키. 오에는 시간도 많고, 어렸을 때부터 유녀 다루는 것도 익숙해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유키를 폭포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그이의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오유키가 사는 곳? 다다미 몇 장짜리 작은 방 두개와 부엌 등이 있는 2층집. 당연히 영업집이다. 유곽.&nbsp; 오에는 소낙비에 홀딱 젖었다. 미장원에서 방금 나온 오유키를 덜 젖게 하기 위해 우산을 그쪽으로 더 쓰게 했으니 완전 물에 빠진 꼴이었겠지. 오유키가 말한다. 옷을 좀 말려야 하겠으니 벗으시고 다른 걸로 갈아 입으세요. 오에? 당연히 유곽의 예법을 안다. 이 집에 있으면 있는 시간만큼 오유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오에는 오유키에게 돈을 건네며, 한 시간 정도로 치면 되겠지요?&nbsp; 이후 오에는 처음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이 집에 들러 밤이 될 때까지 쉰다. 말 그대로 쉬기만 했는지 쉰다는 핑계로 다른 것도 했는지, 전쟁 전의 소설이라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할 건 다 했다고 봐야겠다.&nbsp; 나중에는 오유키가, 주인한테 빚 다 갚으면 나를 데리고 살아줘요, 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로 친해진다. 그러나 선수 오에는 이런 여성들이 진짜로 집안에 들어와 위협에서 벗어나면 갑자기 삶이 자유로워져서, 세상의 게으름뱅이에 나태한 주부가 되는 걸 자주 봐, 애초 그럴 마음은 없다.&nbsp; 나이도 있고, 소설도 계속 써야겠고, 해서, 오에는 나중엔 3, 4일에 한 번 그러다가 한 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처럼.&nbsp; 오유키. 그저 낡은 비단, 나가주반이었던 것일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42/7/cover150/893202944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42073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좀 과하게 포장되지 않았을까? - [토볼트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3020</link><pubDate>Mon, 30 Mar 2026 0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83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19&TPaperId=17183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2/50/coveroff/89374313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19&TPaperId=17183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토볼트 이야기</a><br/>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03월<br/></td></tr></table><br/>.&nbsp; 로베르트 발저는 1910년대에 자신의 도플갱어라고도 볼 수 있는 작중 등장인물 토볼트를 발견했다. 물론 아무나 도플갱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베르트 발저 가족 가운데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한 뒤에 우울증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어머니는 정서적 문제로 장기 치료 후 사망, 남매들 가운데 첫째 카를은 화가, 둘째 에른스트는 정신병으로 갔고, 헤르만은 대학교수, 누이 리사가 학교 교사, 다른 누이 파니가 로베르트에게 권해서 로베르트도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가 추운 날 산책 나갔다가 죽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nbsp; 그러니까 기질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에 부모와 자식들은 그나마 조금의 지원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야 했는데 유독 로베르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음은 당연히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자기만의 방도 없는 주제에 지금이나 그때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써 언제 고료를 받을 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료만 바라보며 배를 곯고 있을 수도 없어서 스물일곱 살 먹었을 때 베를린에 가서 정말로 하인양성소에 들어가 하인 일을 배웠고, 진짜 하인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시기에 하인으로만 일했던 건 아니다. 출판사 두 군데에서 사무직도 하고, 배우가 되려고 극단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며, 스위스로 돌아가 다른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작품을 쓰는, 당시로는 드물게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 작가였다. 울프가 말했듯 문학은 돈 좀 있는 자재들이나 할 수 있는 리그였다는 뜻이다.&nbsp; 이런 작가들은 자기의 삶 가운데 직업이 중요한 소재가 되겠지. 발저의 경우엔 그리 길게 일 하지 않았지만 상실레지아의 담브라우 성에서 귀족의 하인으로 잠깐 일한 전력이 상당한 문학적 재산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게 독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나도 여지껏 로베르트 발저, 하면 그의 장편 &lt;벤야멘타 하인학교&gt;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은 하인 말고 여러 (당시 사람으로서는)괜찮은 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견디지 못해서, 아마도 집안 내력인 정신질환의 불규칙적 발현 때문일 수도 있었겠는데 하여간,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여러 경우를 참아내지 못해 회사에 들어갔다가 곧장 때려치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nbsp; 너무 오버해서 읽는 지도 모르겠으나, 발저가 자신의 도플갱어 비슷한 인간 토볼트를 만들어낸 것이 이런 정신적 특이성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걸 괜히 길게 써서 좀 보기 싫게 됐다.<br>&nbsp; 하여간 《토볼트 이야기》를 보면 1912년에 토볼트를 만난다.&nbsp; &lt;낯선 사내&gt;라는 아주 짧은 단편일 수도 있고 산문일 수도 있는 픽션 속에서 발저는 고백한다.&nbsp; 자신은 심각한 태만의 죄를 짓고 있고, 태만의 죄를 짓고 있어서 스스로가 자신한테 맞지 않는 엄청난 악당이란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한테 와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이지만 한 사람이 고대하고 고대할수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nbsp; 그런데 어제 저녁, 무엇인가를 찾는 듯 보이는 이상한 생면부지의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봐? 그렇다. ‘나’는 열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차갑게 떠나 보내고 말았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던 그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토볼트’라고. 짧은 산문은 이렇게 끝난다.&nbsp; “그는 이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nbsp;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고 뒤에 다시 출현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마땅하겠다. 정말 영영 사라진다면 이런 말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br>&nbsp; 이후 로베르트 발저의 분리된 의식은 ‘나’의 한 조각일 수 있는 악한, 버림받은 여인 혹은 지배자로 변용하여 토볼트와 지문 없는 희곡 형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당연히 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관념과 관념이 이끄는 정신상 현상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nbsp; 나는 이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책 세 권을 읽는데, 세 권 가운데 &lt;타너 가의 남매&gt;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어째 아직도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로베르트의 진가가 어떻든지 간에, 내 독서 생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로베르트 발저는 눈에 띄는 책이 있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가이다. 이번에도 도서관 책 치고는 거의 새 책이고, 본문도 76페이지에서 끝나지만 무려 다섯 소품이 들어있을 뿐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착각해 선택한 거다.&nbsp;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고, 부르주아의 파티 장면 같은 것도 색다르게 묘사해서 괜찮게 읽었는데, 이제 하루가 지나 독후감을 쓰려니 뭐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어제 앱 ‘북적북적’에다 왜 별점 4를 주었을까? 발저가 조금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작가 같고, 나도 포장 규모에 잠깐 현혹되었는지 모르지. 괜찮아, 괜찮아. 가끔 과대 포장된 사람도 있어야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2/50/cover150/89374313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42507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꿈자리 사납겠네 - [저주토끼 (10만 부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6423</link><pubDate>Fri, 27 Mar 2026 0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6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0188&TPaperId=17176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60/29/coveroff/k4420301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0188&TPaperId=17176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저주토끼 (10만 부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a><br/>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06월<br/></td></tr></table><br/>.&nbsp; 정보라, 하면 괜히 빚을 진 거 같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을 수 있게 해준 것만 가지고도 그렇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이가 쓴 《저주 토끼》가 몇 년 전에 부커-인터내셔널 최종심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로서의 정보라가 SF 소설을 쓴다고 오해하고 있었고, 그 분야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동안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걸 누군가 도서관 이용객이 희망도서 신청을 해 새 책이 들어와 읽어볼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오, 괜히 읽었다. 꿈자리 사납겠다.&nbsp; SF? 천만의 말씀. 누가 SF 작가라고 그랬어? 맞다. 그렇게 들은 적 없다. 내가 괜히 혼자 그렇게 짐작했을 뿐. 이런.&nbsp; 그동안 정보라, 하면 이이가 쓴 책이 《저주 토끼》인지 《엽기 토끼》인지 헛갈려 꼭 뭐였더라, 두 번 생각했다가 이번에 책 읽고 글 쓴 이에게는 안 된 말씀이지만 이젠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겠다. 꿈에 나올라…. 호러도 그냥 호러가 아니더라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특별하게 어린 아이 죽는 장면이 끔찍한데, 이이도 그런 모양이다. 독자한테 더 끔찍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그래서 어린 아이가 죽거나 초현상적인 이상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로 변신하는 장면이 다른 작가에 비해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끔찍한 상상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나처럼 선량한 마음씨로 평생 산 독자들로서는 이거 뭐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수준이라서, 거 참.&nbsp;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제일 앞에 실어 문패 역할을 한 &lt;저주 토끼&gt; 한 편만 그런 게 아니라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이다. &lt;머리&gt;, &lt;차가운 손가락&gt;, &lt;몸하다&gt; 등등. 도대체 이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이게 다 궁금하더라니까? 뭐 사는 거야 이이나 나나 별다른 게 있겠어? 하긴, 이러니까 사람의 곱창이 아스팔트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lt;브로츠와프의 쥐들&gt;을 그렇게 실감나게 번역했겠지만. 그것도 읽으면서 곱창으로 줄넘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야, 싶은 수준이었다.&nbsp; 정보라님. 앞으로 작품은 읽지 않더라도 폴란드나 러시아 사람이 쓴 숨어있는 좋은 작품 열심히 우리말로 바꿔주세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60/29/cover150/k4420301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60294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노년 만세! 외치기 좋은 작품 - [사라진 모든 열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4098</link><pubDate>Thu, 26 Mar 2026 04: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40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834095&TPaperId=171740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31/coveroff/k902834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834095&TPaperId=171740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진 모든 열정</a><br/>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07월<br/></td></tr></table><br/>.&nbsp; 1892년에 영국 켄트의 노울 하우스 Knole House에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방긋 웃으며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부르주아 귀족 따님. 아빠는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 색빌웨스트. 엄마는 외교관이었던 2대 색빌 남작이 스페인 무용수 페피타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서녀 빅토리아 색빌웨스트. 그러니까 적장자와 서녀 간의 결혼에서 출생한 무남독녀 외동따님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비타의 부모가 4촌 사이라 했는데 그냥 편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복남매 간의 근친결혼이다.&nbsp; 비타가 출생한 노울 하우스가 어떤 집인고 하면, 옛적에 대주교가 살던 궁전이다. 약 4백헥타아르 규모의 공원 속 5천평 규모의 건물이다. 전 잉글랜드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니까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었는지 감 잡히시지?<br>Knole House, Kent<br><br>&nbsp; 근데 딱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lt;오만과 편견&gt; 그리고 에밀리 브론테의 &lt;폭풍의 언덕&gt;.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한사상속.” 딸에게 상속을 금하는 가문의 법칙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원과 저택과 남작 작위를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이 자기 외동딸 비타한테 상속하지 못했으며, 색빌웨스트 가문 종친회가 모든 고정자산과 작위를 라이오넬의 동생 찰스가 이어받으라고 결정했다. 찰스 입장에서는 그려, 고기국물 떨어지기를 평생 기다렸는데, 당연히 넙죽 받아 자셔서 4대 색빌 남작 자리에 올랐다.&nbsp; 이이의 생애를 소개할까 싶었다. 그러나 워낙 화려무비해서 짧게 써도 원고지 2백장 짧은 중편소설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 안타깝게 직접 위키피디아라도 검색해보십사, 권하는 수준에서 끝낸다. 아휴, 정말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 딱 하나만 소개하자면 개방결혼을 했다는 것. 즉 혼인의 배우자 말고 서로 자유롭게 이성간, 동성간 연애를 배우자가 다 알게 비밀 없이 내놓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즐겼는데, 두 명의 아들은 과연 남편의 아이일까? 그것도 좀 궁금하다. 이이의 숱한 연인 가운데 역시 개방결혼 비슷한 결혼생활을 한 버지니아 울프도 들어 있다. 울프하고는 10년간 연인으로 지냈다고 한다.<br>&nbsp; 작품은 94세의 헨리 라이얼프 홀랜드 제1대 슬레인 백작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불멸의 존재로 인식할 만큼 오랜 세월 영국의 유력인사로 활약한 전설적 인물. 빛나는 대학시절, 매우 젊은 나이에 정부 내각에 참여해서 가터 작위와 바스 훈장, 인도의별 훈장, 인도제국훈장에 빛나는 쾌락주의자, 인문주의자, 운동 잘하는 사람, 철학자, 학자, 매력적이고 재치있는 인물, 진정 성숙한 정신의 보유자이며, 전직 인도 총독, 전진 총리를 역임했으며, 일체의 (알려진, 또는 발각난, 혹은 비밀스러운)스캔들도 없이 평생 사랑스런 아내와 금슬 좋은 사이를 유지하여, 순서대로 허버트(며느리 메이블), 캐리(사위 롤랜드), 찰스, 윌리엄(며느리 러비니어), 케이, 이디스, 여섯 남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주, 증손주를 든 다복한 인간. 다복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 가운데 왕만 빼고 안 해본 것이 하나도 없는 행운아. 진실한 귀족. 평생 검약해 그러나 가진 재산이라고는 런던의 저택과 약간의 현금과 은행 금고 안의 얼마 되지 않는 보석, 당시 귀족들이라면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정도의 가공되지 않은 원석 수준의 보석이 전부였다.&nbsp; 열여덟 살에 결혼해 여든여덟 살에 과부가 된 슬레인 백작부인이자 전 총독부인인 데러바 홀랜드는 남편과 전혀 달리 태생적으로 냉소와 거리가 멀었으나 백작과 70년을 살며 냉소의 얇은 막을 쓰는 법을 조금 배웠다. 여섯 자식이 보기에 부인은 자기 의견이라고는 없이 그저 남편이 이끄는대로 순종하며 남편의 지위, 세력에 따라 자신한테도 바쳐지는 자리에 지극히 어울리는 관례를 훌륭히 수행한 인물이다. 남편이 이제 죽었으니 부인이 얼마 남지는 않았겠지만 자기 생활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게 여섯 자식들의 공통된 의문이다. 68세의 장남 허버트, 66세 참견쟁이 딸 캐리, 65세 불만쟁이 전직 육군 장군 찰스, 64세 최강의 인색꾼 윌리엄은 혼자 남은 어머니의 앞날이라는 문제에 무겁게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적인 의지가 없는 어머니. 어떻게 할꼬?&nbsp; 저택은 세금 문제 때문에 틀림없이 처분해야 할 터. 작은 집에 혼자 사시게 하는 건 세상 사람들 보는 눈이 있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이들은 자식들이 순서대로 한 3개월 정도씩 모시는 걸로 하고, 모시지 않는 형제자매들은 월 2파운드 35실링을 추렴하자고 뜻을 모았다. 다섯째, 독신이자 천체天體,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전문가인 케이는 전혀 모실 마음이 없고, 역시 독신인 60세 이디스는 이제서야 자신 소유의 작은 아파트에서 하녀 한 명을 두고 벽난로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평생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이디스의 눈에는 여기 모인 친남매들이 시커멓고 늙은 까마귀처럼 보인다. 죽음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nbsp; 아이쿠, 독후감이 늘어진다. 빨리 가자.<br>&nbsp; 하여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에 남편 그리고 아버지인 헨리 홀랜드, 슬레인 백작을 묻고 저택으로 돌아온 가족들. 부인은 두 살 아래의 프랑스인 하녀 저누를 시켜 은행 금고에서 찾아온 보석을 가지고 오라 해놓고, 그걸 몽땅 2대 백작부인이 될 맏며느리 메이블에게 준다. 이걸 바라보는 맏딸 캐리하고 특별히 욕심이 많은 둘째 며느리 러비니어의 속이 어땠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부인은 얄짤없이 전부 다 맏며느리한테만 준다. 그게 가문의 전통이란다.&nbsp; 이어서 2대 슬레인 백작이자 맏아들인 허버트가 앞으로 어렇게저렇게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하고 설명하니까, 세상에 자기 주관대로 일을 만들거나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부인이 뭐라 하느냐면:&nbsp; “오, 잠깐만. 너무 앞서 나가는구나. 허버트, 내가 동의한 건 아니야. 난 혼자 살 생각이다. 햄프스테드에서. 봐 둔 집이 있단다. 30년 전에.”&nbsp; 자녀들이 걱정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 평판 같은 거. 그걸 걱정하는 게 웃긴 막내 이디스. 뭐 그렇다.<br>&nbsp; 이리하여 백작부인은 하녀 저누만 데리고 무척 먼 거리는 아니지만 런던에서 당시 교통수준으로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쉽지 않은 햄프스테드의 호젓한 작은 집으로 옮겨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평생 처음 여유로운 시간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집주인 벅트라우트씨, 건축사 고셰런씨, 그리고 예술품 수집가 피츠조지씨, 이렇게 세 명의 늙은 남자들과 유쾌한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1부와 3부.&nbsp; 2부에서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화가가 되지 못한 이야기. 다분히 버니지아 울프의 저작 &lt;자기만의 방&gt;과 흡사한 주장을 펼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나타난 헨리 홀랜드가, 자신이 헨리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가 선택해 결혼을 하게 된 것 같고, 여섯 아이들도 낳고, 사실 ‘키웠다’라고 주장하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하여간 지켜봤고, 남편을 따라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총독부인의 지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상한 헨리도 아내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신혼 시절에 말한 바 있고, 정말 그랬다.&nbsp; 이런 생각을 “감정이 지글지글 끓으며 주조 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절, 복잡하고 모순된 욕망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런 (젊은)시절”이 아니라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단색의 풍경뿐이라 다 똑 같은 모양에 색채도 바래 흐려지고, 말 대신 동작만 남았을 뿐”(p.101)인 노년에 다시 생각해본들 뭣하리오.&nbsp; 오히려 여든여덟, 그 나이를 먹도록 자신이 평생 남다른 은덕을 입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거 참. 처음에는 헨리가 나타나 데버러 리, 이 촌 젠트리의 딸을 총독 부인으로, 정치 명망가의 부인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노년에는 피츠조지가 등장해 금은보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물론 백작부인이 이런 걸 다 바라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건만, 유독 슬레인 백작부인에게만 이런 행운의 행성이 공전하는가 말이지.&nbsp; 70년을 함께 산 절친한 하녀 저누의 삶도 부인은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의 열두번째 아이로 태어나 헐벗은 농장에서 헛간에 짚을 깔고 자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매를 맞고, 자라면서 형제자매를 만날 수도 없었던 아이. 열여섯 살이 되자 갑자기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한 집안의 딸이 시집갈 때 몸종으로 따라가 평생을 모셔야 했던 여성.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슬레인 백작부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불만, 화가가 되지 못한 것만 한탄할 뿐, 자기 바로 옆에 있는 많고, 많고 엄청나게 많은 무산자들의 삶은 쳐다보지도 못한 생을 살았다. 부인이 어떻게 알아? 저누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런던 뒷골목에서 주머니칼을 쥐고 술 취한 자의 주머니를 터는 악동들 속에 마티스와 샤갈을 능가하는 예술혼을 가졌지만 자기들은 그런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는지?&nbsp; 비타 색빌웨스트가 노년을 바라보는 착 가라앉은 시각은 참 그럴 듯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자기만의 방? 그런 건 생각도 못해보는 당대의 다수, 21세기인 지금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심지어 내려다봐도 좋다!) 시각이 없는 건, 태생이 귀족 부르주아라서 그랬을 것이다. 슬레인 백작부인이 데버라 리였던 시절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뭐든지 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면, 그래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겠지. 있었겠지. 쉽지는 않았겠지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31/cover150/k902834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86319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초장의 골짜기를 인내하셔야 하리 - [나의 칼이 되어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1523</link><pubDate>Wed, 25 Mar 2026 03: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715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2574&TPaperId=171715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001/57/coveroff/89012225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2574&TPaperId=171715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칼이 되어줘</a><br/>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04월<br/></td></tr></table><br/>.&nbsp; &lt;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gt;가 참 재미있었다. 처음 읽은 다비드 그로스만이었는데, 공감하는 것이 많아 꼭 다른 작품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고른 책이 &lt;나의 칼이 되어줘&gt;. 무엇을 고를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개가실의 이스라엘 작품 서가에 꽂힌 그로스만 가운데 ‘아무거나’ 한 권 골라 들고 나온 거였다. 속으로는 전에 읽은 &lt;말 한 마리…&gt;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겠지.&nbsp; 열람실에 올라가 책을 펴니, 에그머니, 서간문이다.&nbsp; 제일 싫어하는 형식의 소설이 바로 서간문. 다음이 일기체.&nbsp; 서간문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공유하는 특별한 것, 나와 너, 1인칭과 2인칭 사이의 내밀한 공간을 옅보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일기체는 사실 더하다. 서간체나 일기체로 쓴 모든 것들, 소설은 물론이고 SNS까지ㅡ 그것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더러 보라고 쓰는 것일지언정, 마치 내가 관음증 환자라도 된 느낌이어서 거의 읽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읽더라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내 취향이 그런 걸 어쩌랴? 근데 이번에 제대로 걸렸다.<br>&nbsp; 문장 좋은 작가들이 형식만 서간체를 선택하고 편지 왕래가 계속될수록 작품의 스토리가 점점 무르익는 정상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도 읽기에 별로인데, 이 그로스만이 쓴 &lt;나의 칼이 되어줘&gt;는 470쪽 분량 가운데 적어도 100페이지 이상 넘기고 나서야 조금 읽을 만해지고, 약간 똘끼가 있는 주인공 야이르 아인호른이 자기 외아들 이도한테 볼거리가 옮아 (어디서 들었는지 성인이 볼거리에 걸리면 이후 발기부전 또는 불임에 걸린다는 확실한 믿음 때문에) 아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피신해서 ‘정신적인 연인’ 미리엄에게 보내는 길고, 길고, 길고, 긴 마지막 편지까지 와야 골을 파며 집중할 수 있다.&nbsp; 그러니까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기 위해서는 대략 150페이지 정도까지 정말로 이를 악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별점으로 이야기해볼까?&nbsp; 처음엔 &lt;말이 한 마리…&gt; 정도의 기대를 하고 시작했다가, 곧바로 야이르가 쓴 편지들만 읽으면서, 편지라는 것이 서로 왕래를 해야 몇 백 통의 서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야이르가 쓴 편지만 계속 읽게 되는 바람에, 편지를 받은 저쪽 미리암이 답신을 어떻게 했는 지 모른 상태에서 독자는 계속 야이르의 헛발질을 구경하게 된다. 도무지 오늘 쓴 것과 내일 쓴 것과, 일주일이 지나고 쓴 것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편지와 편지들이 엮여 하나나 둘 정도의 스토리를 꾸밀 생각도 하지 않으니 독자는 속으로 별점은커녕 책 읽는 걸 당장 집어치워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말이다. 그렇게 된다.&nbsp; 그래도 여태 책 읽은 내공이 있지, 여기서 말 수 없다. 이런 똥고집 하나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가도 결론은 버킹검. 이젠 질려버리기 시작한다. 별 둘을 줄까, 하나를 줄까? 심지어 다비드 그로스만 이 작자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것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편지를 받을 여성 미리엄과 하도 “자유스러운 소통”을 하는 바람에 독자는 당장 이 책 읽는 걸 때려 치우라는 뇌 속 속삭임을 듣지 않을 방법이 없다. 속삭임, 속삭임. 때려 치워, 때려 치워, 때려 치워. 그래도 좀 더 견뎌보자.<br>&nbsp; 그렇다. 뭐든지 그렇듯이 힘든 덤불을 헤쳐야 뭔가가 있다. 드런 세상 사는 것도 다 그렇잖아? 이제 거의 다 겪은 거 같아 나름대로 위안을 받고 싶어 책을 읽었더니, 하, 책 읽는 것조차 삐죽삐죽한 모서리와 가끔 숨은 지뢰가 펑펑 터지는 골짜기를 건너고 나서야 뭔가 알 것 같은데, 우라질, 사람 사는 게 다 이렇지?&nbsp; 견디다 못해 읽는 자리를 바꾸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 방으로. 아내가 만들어준 스탠딩 독서대에서 서서 읽는다. 아내도 눈치채고 옆에서 종알종알 말 시키며 방해하는 대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열라 유튜브만 본다. 나는 점점 집중한다. 조금 지나니 찌질이 야이르가 드디어 예루살렘을 떠나 텔아비브의 러브호텔, 한 시절 전에는 무게있고 근사한 호텔이었지만 주인이 바뀐 다음에 러브호텔로 변해버린 숙소에 들어 미리엄을 향한 마지막 편지이자 마지막 주접을 떠는 장면을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가 정말로 집중하게 되면서, 어라, 이게 무슨 일? 재미있어진다. 별 다섯 만점을 줄까? 하지만 앞부분에서의 만행을 감안하면 넷이 좋겠다.<br>&nbsp; 야이르 아인호른. 이름만 보면 동유럽에 살다가 전쟁 앞뒤로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유대인 가족처럼 보인다. 서유럽 쪽 유럽인이 쓴 소설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 동유럽이나 기타 지역의 유대인 집구석은 대단히 가부장적이다. 아인호른 집안도 그랬던 모양이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인호른 씨도, 지금은 요양원에 자기 발로 들어가 오직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젊은 시절에는 야이르가 사소한 잘못만 하더라도 얇은 허리띠를 휘리릭 풀어 마치 영웅 조로의 채찍처럼 휘두르기를 그리도 좋아했다고. 엄마는 아빠 하는 지랄이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선뜻 나서서 말리지도 못했고.&nbsp; 그래서 야이르의 성격이 좀 이상해지기도 한 모양이다. 전형적인 찌질이이기는 한데 진짜 전형적인 찌질이의 형태, 자기 역시 심지어 외아들이기도 한 다섯살짜리 이도(하필이면 세종대왕의 진짜 이름하고 발음이 같은 ‘이도’)가 유치원 갈 시간을 맞추지 않고 늑장을 부린다는 이유로 비 철철 오는 12월 아침 내내 집 현관 밖으로 내 쫓아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끝까지 이 잔인하기도 한 훈육을 아버지와 아들 간의 전쟁으로 인식한다니까? 아이가 폐렴에 걸리든 말든, 저체온으로 천천히 죽어가든 말든. 하여간 무지하게 꼴 사납다.&nbsp;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당한 폭행이 결국 야이르의 의식 속에 숨어 점점 자신을 망치고 있었던 것.&nbsp; 이게 47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서 말하는 것 전부는 아니다. 다른 것도 많고 많지만 그냥 말하기 편한 거 하나만 골랐을 뿐.<br>&nbsp; 4월 1일. 야이르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다. 동기동창회가 아니라 학교 동창회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야이르의 눈에는 오직 한 명만 눈에 들어왔다. 미리엄. 건장한 키와 당당한 태도를 가진 일곱살 연상의 부인. 야이르는 4월 3일에 미리엄에게 본명이 아니라 “야이르 윈드”라는 이름으로 첫 편지를 쓴다. 그러나 굳이 답장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러나 오직 자기 이야기와 미리엄의 이야기가 만나는 장을 만들고 싶단다.&nbsp; 야이르는 서적, 희귀 도서 전문업을 한다. 그냥 책방 수준이 아니라 열 명의 종업원을 두고 전세계를 돌며 웬만한 사람은 구경도 못해본 책을 구입해 무지막지한 수수료를 붙여 다시 판다. 그래서 젊은 나이, 서른세 살에 크지는 않지만 예루살렘의 부르주아 동네에 집을 짓고 산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사랑 비슷한 아내 마야와의 사이에 아들 이도 딱 하나만 키운다. 마야 역시 커리어 우먼이다. 육아와 가사를 공평하게 나누어서 하니 얼핏 보면 괜찮은 남편이자 아빠. 그런데 왜 미리엄과 편지 왕래를 시작했을까?&nbsp; 편지 왕래도 계속하면 정이 들고 급기야 사랑하게 될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야이르는 규칙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규칙이라기보다 편지왕래의 기한을 정하자고. 1년? 혹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워질 때까지. 말이 쉽지. 참을 수 없이 즐거울 때 그만둘 수 있겠어? 뇌에서는 주책없이 도파민이 쏟아질 텐데 그걸 멈춘다고? 그리하여 이들은 겨울이 되어 첫 비가 내릴 때까지의 기한을 정한다. 근데 나는 이 대목을 못 읽고 지나쳤다. 또는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이런 말이 나와, 그런가보다, 했다. 앞에서 비 내리는 집 현관문 앞의 부자지간 혈투를 소개했지? 그게 그 해에 내리는 첫 비였다. 괜히 그 장면을 소개한 게 아니지.<br>&nbsp; 앞에서 말했듯, 이왕 서간체면 이쪽과 저쪽의 편지를 다 볼 수 있어야 이야기 전개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로스만은 결코 미리엄의 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야이르의 자기중심적 호소랄지, 허튼소리랄지, 달밤의 체조만 구경하는 식이다.&nbsp;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은 엄연히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 다만 살갗과 살갗이 닿지 않고, 교통비와 음식값과 대실료가 들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는 서로를 무지하게 쓰다듬고, 주무르고, 액체를 교환하고, 엑스터시의 선을 넘는다. 이건 사랑 또는 불륜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nbsp; 당연히 야이르만 살면서 몸에 새긴 흉터가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미리엄도 마찬가지.&nbsp; 그래서 처음부터 편지 왕래의 기한을 정한 거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재겠지만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서로 편지라는 형식이라 가능해서 편지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피처럼 흘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정도는 알 나이다. 야이르가 서른세 살, 미리엄이 마흔이니까. 이들, 특히 야이르가 바라는 것도 진실을 피처럼 흘려 그걸 드러내고 누군가, 미리엄이 봐주는 일. 그래서 부탁한다.&nbsp; “나의 칼이 되어 주세요.”&nbsp; 아오, 너무 길게 썼다. 너무 장황해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시겠지? 미안하다.<br>&nbsp; 이 책을 읽는 일의 문제점은, 앞부분의 골짜기를 인내하고 건널 수 있느냐, 하는 것. 건너기만 하면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겠으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001/57/cover150/89012225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001572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당신 생각이 정답입니다 - [아내는 부재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9337</link><pubDate>Tue, 24 Mar 2026 0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93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456037&TPaperId=17169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50/coveroff/89894560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456037&TPaperId=171693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내는 부재중</a><br/>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07월<br/></td></tr></table><br/>.&nbsp; 안 읽은 몰리나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다는 건 벌써 알았는데, 급기야 오늘 읽었다. 혹시 아직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를 모르시는 분이 있으면 냅다 책방에 가서 &lt;폴란드 기병&gt;을 사 읽든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라. 책방에 ‘몰리나’를 검색하면 딱 세 작품이 뜬다. &lt;폴란드 기병&gt;, &lt;리스본의 겨울&gt; 그리고 &lt;아내는 부재중&gt;. 이제 나는 번역한 몰리나를 다 읽게 되는데, 그게 아쉬워, 뭐가? 몰리나를 다 읽어서 더 이상 이이의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워 여태 읽기를 머뭇거렸던 거다.&nbsp; &lt;아내는 부재중&gt;의 경우, 한 페이지에 열아홉 줄밖에 담지 않은 널럴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본문이 134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구성을 감안하면 요즘 우리나라 출판업계에서 즐겨 이야기하는 경장편 보다는 단편소설로 구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독후감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건데, 몰리나 치고 재미가 별로다. 이 책은 어쩌면 다행스럽게 절판이니 뭐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덜 미안하겠지. 정말? 설마. 박하게 이야기하면 속으로는 캥긴다. 어느 경우도 마찬가지.<br>&nbsp;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 하엔에 결혼 6년 된 부부가 살았으니 남자가 마리오, 여자가 블랑카. 때가 어느 땐데 여자 이름이 뒤에 가느냐고? 미안하게 됐다. 남자가 당연히 찐따라서 남자부터 먼저 소개하려고 그랬다. 좀 봐주라.&nbsp; 하엔도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닌데 하엔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서 만날 손으로 빵을 쥐고 수프를 찍어 먹으며 자란 마리오가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하엔에 와 터미널 부근의 식당에서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 두 개를 덮은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을 때 처음으로 양손으로 포크와 칼을 쥐어 봤을 정도로 촌놈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했는지 없는 집구석에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대주었을 턱이 없는데 하여간 하엔으로 유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역시 돈이 없어 가지 않았다. 원래는 요즘엔 ‘건축기술사’로 호칭이 바뀐 ‘건축감리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시험 치룰 자격이 있어서 대신 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nbsp;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거의 들어맞지 않는 혈액형 판단법으로 구분하자면 마리오야말로 전형적인 A형 인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연인 사이였던 자그마한 몸집의 줄리와 우리나라 유행가 제목처럼 “너무 오래 한 연인” 사이를 유지하다가 둘의 사이가 너무너무 덤덤하고 소가 닭 보듯 해 줄리가 질려서 “다른 남자가 생겨” 헤어지자고 일방적인 통보 끝에 갈라섰다. 마리오도 안다. 줄리가 진짜 다른 남자가 생긴 게 아니라 지긋지긋해서 도망간 거라는 거. 하여간 이렇게 다시 싱글이 된 마리오는 직장 상사 라기보다 선배의 총각파티 때 직원들과 몰려가 엄청 시끄러운 재즈 바에서 코카인에 취한 키 크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니 이 여자가 바로 훗날의 아내 블랑카.&nbsp; 모범적인 A형 인간.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서 오후 세시 십분 전에 칼퇴근 해 집에 도착하면 12분 걸리니까 보통 세시 2분. 근데 횡단보도 걸리는 날이 많아 대개 세시 5분에서 10분 사이에 집에 들어온다. 회사에서 일곱 시간, 자는 시간 일곱 시간을 뺀 나머지 열 시간 동안 세상 모든 여자를 무시하고 오직 아내 만을 원하고,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남자. 이이의 직업은? 하엔 시청 공무원이다.<br>&nbsp; 문제가 있다. 역시 비슷한 계급끼리 짝을 짓는 게 장땡이다. 블랑카는 하엔시 기준으로 엄청 부자집 따님. 가시 많은 생선은 물론 바나나도 오직 포크와 칼만 사용해 생선 가시를 바르고 바나나 껍데기를 벗긴다. 절대 손과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잔잔한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요리를 먹을 때 생선가시를 젓가락으로 말끔하게 발라낸다니까.&nbsp; 어릴 때부터 부잣집 따님으로 생색내는 분야에 빠삭한지라 음악, 미술, 건축 등에 상당한 조예가 있고, 정말로 깊은 조예가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기 필이 한 번 꽂히면 아무리 무명의 예술가라도 끝까지 뒷받침을 해주려 안달하는 성격을 지녔다. 그리하여 마리오를 만나기 전에 나중엔 ‘지미 앤’이라고 이름을 바꿀 ‘나랑호’라는 화가에게 돈도 주고, 자기 집을 작업실로 내주고, 당연히 마음과 몸도 다 주었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술과 담배와 코카인 중독을 받았다. 이 와중에 착하고 성실한 마리오를 만난 것.&nbsp; 웃긴 것이 블랑카가 제일 싫어하는 직업이 공무원. 이이에게 공무원이라고 하는 건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 상상력 없이 꽉 막힌 사람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도 살았다. 남편과 수프를 먹으면서 한 숟가락 뜰 때마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마리오가 수프를 먹을 때 작은 소리를 낼 때마다 눈(깔)을 치켜뜨고 째려보면서, 주요리인 고기 요리는 절대로 자기가 움직이지 않고 마리오더러 가져오라고 열라 눈치를 주면서. 키스를 하더라도 입술을 여는 법이 전혀 없이. 그래도 마리오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모든 일은 전위예술가 루이스 오네시오가 등장함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다. 루이스가 블랑카한테 자기 전시회의 시간제 큐레이터로 고용했고, 블랑카는 전에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프리다 칼로 전시회에 가자고 부탁했다가 마리오가 뺀찌 놓은 것 때문에 삐쳐 있다가, 사라졌다.&nbsp; 그래서 제목이 &lt;아내는 부재중&gt;.<br>&nbsp; 마리오가 상심에 젖어 있던 어느 날, 복도 끝에서 마리오를 향해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초록 실크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굽 낮은 신발을 신은 것이 블랑카하고 많이 닮았는데, 그래도 블랑카는 아니다. 마리오보다 키가 더 커서 몸을 약간 숙이며 키스를 했어도 역시 블랑카는 아니다. 블랑카와 나누었던 감미로운 첫 키스하고 입술의 감촉이나 체온은 같지만 하여간 블랑카가 아니다. 블랑카하고 다르게 이 여인은 키스하면서 입을 약간 벌려주었다.&nbsp; 그거야 뭐 부부간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정적으로 다른 건 흐트러진 자세로 소파에 반쯤 누워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고 있다는 것. 맨발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고 발에 가구에 부딪힌 상처도 없으며, 뒤꿈치 각질도 말끔하게 제거했다니, 틀림없이 블랑카는 아니다. 근데 닮기는 참 많이 닮았다.&nbsp; 이거 무슨 일?&nbsp; 역자 박지영의 말처럼 “외모만 같고 영혼은 다른 낯선 타인”일까, 아니면 “마리오가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nbsp; 그거야 뭐 읽는 사람 마음대로다. 작가 몰리나한테 물어봤자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nbsp; “당신 생각이 정답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50/cover150/89894560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6508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전형적인 어용문학 -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7174</link><pubDate>Mon, 23 Mar 2026 0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71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6X&TPaperId=171671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23/coveroff/893646406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06X&TPaperId=171671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a><br/>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br/></td></tr></table><br/>.&nbsp; 딩링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lt;소피의 일기&gt;와 비교하면 두 권 책의 다름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하긴, &lt;소피의 일기&gt;가 1928년.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에 실린 세번째 작품 &lt;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gt;가 1937년, 두번째 작 &lt;병원에서&gt;가 1938년, 첫번째 표제 작품 &lt;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gt;가 1940년이다. 이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당연히 전쟁. 국공 내전 말고 항일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1960년대에 초안을 쓴 것으로 보이는 1978년작 &lt;두완샹&gt; 과의 사이에는 또 반우파투쟁과 악명높은 문화혁명이 있었다.&nbsp; 1904년에 하필이면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딩링의 평생 팔자가 참 고단했을 거란 점은 명백한데, 애초 영화 &lt;마지막 황제&gt;의 주인공 푸이처럼 일찌감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재교육을 거쳐 평범한 정원사의 삶을 살았으면 기중 (마음이나마)편했겠지만 명백하게 부르주아 소설인 &lt;소피의 일기&gt;를 쓰고 불과 4년 만에 공산당 입당을 해 늘그막까지 그 고생을 하느냐고?&nbsp; 1932년에 일단 공산당에 입당을 해서, 34년엔 국민당에 체포당해 옥중에서 딸을 낳아야 했고, 당연히 여전히 속으로는 부르주아이면서도 다시는 &lt;소피의 일기&gt; 같은 소설은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젠 적극적인 체제 협조적,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거꾸로 말하자면 정권에 부합하는 어용소설만 죽자사자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해 그래서 나온 것이 &lt;발사되지 않은 총알&gt;이고 &lt;병원에서&gt;이며 이것들이 찬란하게 피어 눈부신 어용소설 &lt;두완샹&gt;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지.<br>&nbsp;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핑계를 대고 숱하게 저지른 혁명, 혁명도 아니고 혁명을 빙자한 장기집권과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숱한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이 벌인 전략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더 쉽게 말하자면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 등이 주장한 권력장악과 지속을 위한 숱한 재교육, 획일화, 숙청 등등 이런 종류의 단어가 너무도 싫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국토와 삶과 인민의 황폐화밖에 더 있었나?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버킹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가, 중국이, 북한에서 혁명 이후에 잽싸게 독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래, 역사와 사람과 삶을 망치는 건 결국 권력이다.&nbsp; 그걸 딩링이 증명해주고 있는 듯. &lt;소피의 일기&gt;가 찬란한 부르주아 소설도 아니면서, 그냥 찌질한 20년대 상하이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lt;소피의 일기&gt;를 쓴 작가가 &lt;발사되지 않은 총알&gt;이나 &lt;병원에서&gt; 그리고, 그리고 &lt;두완샹&gt;을 쓰느냐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체제를 위하여 딩링도 당에 가입을 하고, 나름대로 열성 당원으로 일하다가, 반우익운동에 걸려 죽을 고생도 하고, 감방에도 가서 5년 동안 옥고도 겪고, 하여튼 다양하게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저 북간도 멀리멀리 다싱안링 산맥 근처 베이다황까지 가서 노동을 했으니. 춥고 거친 일을 해서 안 됐다가 아니고,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가를 하지 못한 채 농사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각 인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그게 공산주의 국가지, 펜대 들 손과 머리로 밀 농사를 지으라 하면 어떻게 평등 세상이 작동되느냐는 질문에 어찌 대답을 할꼬?&nbsp; 딩링의 책, 창비세계문학 6번에 빛나는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채점하면, 작품 전체는 빵점. 그걸 작품이랍시고 번역한 김미란이 말끔한 우리말로 바꾼 실력과 노고를 위하여 두 개의 별을 준다. 거의 찾을 수 없는 오탈자 수준을 보여준 창비의 편집부 담당자의 수고도 포함하여. 내가 아무리 돌팔이 아마추어 허접한 독자일지언정,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문학에는 단 하나의 별도 주지 못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13/23/cover150/893646406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13231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인기극작가를 소개합니다 - [목란언니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1262</link><pubDate>Fri, 20 Mar 2026 0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612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136513&TPaperId=17161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8/65/coveroff/k1621365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136513&TPaperId=171612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목란언니 - 개정판</a><br/>김은성 지음 / 연극과인간 / 2015년 03월<br/></td></tr></table><br/>.&nbsp; 희곡집 《목란 언니》에는 표제작과 &lt;뻘&gt;, &lt;달나라연속극&gt; 이렇게 세 편이 실렸다.&nbsp; 이 가운데 &lt;뻘&gt;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안톤 체홉의 &lt;갈매기&gt;를 모티브로, 김은성이 1981년 전라남도 벌교를 무대로 재창작한 작품입니다.”라고 쓰여 있고,&nbsp; &lt;달나라연속극&gt;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lt;유리동물원&gt;을 모티브로, 김은성이 재창작한 작품입니다.”하고 쓰여 있다.<br>&nbsp; 먼저 &lt;목란 언니&gt;. ‘목란’은 놀라지 마시라, 북한의 김일성이 만든 단어다. 원래 우리말 이름은 “함박꽃나무”, 정말 탐스럽게 잘 생긴 흰 꽃인데, 하루는 김일성이 꽃을 보고 너무 좋아 이런 꽃의 이름을 조선말로 천하게 지어 놓아 유감이다. 앞으로 “목란木蘭”이라 부르라. 해서 목란이 됐고, 어이없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화로 지정되었다는 거다. “목란”을 열라 검색해봐도 요리사 이연복이 운영하는 짬뽕과 탕수육이 맛난 중국집만 나오고 함박꽃나무 이야기는 저 아래, 검색창의 거의 제일 아랫부분까지 스크롤해야 읽을 수 있는 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목란’ 말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목단’ 그리고 화투패에서 6월 모란꽃을 떠올렸지 뭐야.<br>함박꽃나무 (목란)<br>&nbsp; &lt;목란 언니&gt;에는 등장인물이 스물여섯 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들 전부에게 이름, 성별, 나이, 직업, 출생지, 거주지, 말씨를 특정해준다. 예를 들어 주인공 조목란. 여, 26세, 아코디어니스트, 평양生, 용인∙서울 거주, 평양말. 그리고 돈만 많은 과부 조대자 씨는 여, 55세, 룸살롱 주인, 부산生, 서울거주, 온갖말. 조대자 씨한테는 아들 삼남매가 있으니 첫째가 36세 먹은 한국사 박사이고 서울生, 서울말. 둘째가 33세의 철학박사로 대학 교수로 있지만 아뿔싸 대학의 학과 정리에 철학과가 포함되는 바람에 실직 위기에 처한 서울生, 서울말. 셋째가 외동딸로 이름이 허태양. 30세의 소설가, 조대자의 막내딸로 서울生, 서울말. 웃긴 건, 어떻게 삼남매 전부 먹고 살기 힘든 문∙사∙철을 시키느냐는 말이지. 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겠구먼.&nbsp;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딱 떠오르지? 조목란은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민. 젊고 수더분하지만 야물딱진 여성으로 걱정이 한 가득이다. 5천만원을 모아 브로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다시 북으로 가던지. 북에 남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리 데려오고 싶어서. 조대자 사장께서 탁 보니까 조목란이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한국사 박사지만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이자 히키코모리인 허태산과 인연이라도 될까 싶어 허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가르쳐주게 한다. 허태강은 앞서 얘기한대로 실직이 코 앞이라 이제 시간 강사자리나 지방대학 조교수 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고, 소설을 쓴 허태양은 소설은 써지지 않아 제법 돈을 받고 그럴 듯한 국회의원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을 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대개의 작품에서 그렇듯이 태양은 싫다고, 싫다고 자존심 상해하다가 결국 대필을 해야겠지? 아니라고? 글쎄 두고 보라니까.&nbsp; 허씨 삼남매를 이나마 키운 건 조대자 사장의 억척스런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그렇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노고를 속으로 고마워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자랑스레 내놓을 수 없으니 오랜 세월 룸살롱 사장을 겪으며 무슨 짓을 안 했겠느냐 하는 것이지. 요즘 조대자 사장의 레이더에 꽂힌 사람이 재미교포, 아니, 한국계 미국인 강국식. 남자, 66세, 사업가, 도쿄生, LA 거주, 영어+일본어+서울말 사용자. 66세와 55세. 11살 차이니까 뭐 연인 비슷할 수도 있다. 정도 정이지만 둘은 떼돈을 벌 수 있는 합작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아서라, 아서. 누가 “떼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 중의 아흔아홉이 사기다. 거덜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덥썩 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뒤로 가면 조대자 여사가 조목단에게 허태산하고 좋은 관계가 되면 주겠다는 5천도 주지 못하고 거덜이 난다. 거덜이 날 정도가 아니라 일단 몸을 피신해야 하는 처지까지. 집안이 폭탄 맞는 거지 뭐.<br>&nbsp; 이게 한 가지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민 커뮤니티.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북청청년단” 같은 반공단체를 만들어 남쪽에서 가장 강력한 우익활동을 한 것처럼, 탈북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모인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단호한 반공단체를 만든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북 삐라 보내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겠지.&nbsp; 바야흐로 유사이래 언제나 멈추지 않았던 한국사의 난장판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성은 이 난장판의 일부분이라도 한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한 무대에서 스물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올려 한꺼번에, 사실은 순서에 입각해 모데라토, 혹은 알레그로비바체로 각각의 난장을 동시상영하며 막을 올리니, 다음과 같다.&nbsp; 처음엔 서울의 한 강당에서 열린 [실향민 어버이 연합 큰잔치], 둘째가 대구의 교회 예배실과 북한 해주의 역전 광장, 셋째는 서울 룸살롱 [한류韓流] 당연히 조대자 사장, 다음엔 서울 허태산의 원룸, 서울의 국회의원실(허태양의 자서전 대필 의뢰 건), 북한 청진의 중학교 운동장, 인천 초등학교 교실, 원주 대학교 강의실(허태강의 철학과), 서울의 한 강당 [통일민주연합 청년대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제목이 “난장판 짬뽕.”&nbsp; 이 가운데 처음부터 등장해 있지만 끝날 때까지 관객석을 등진 채 김일성 초상만 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 조선호. 남, 55세, 화가, 조목란의 아버지, 평양生, 청진거주, 평양말. 그러니까 목란 언니 조목란이 어코디어니스트로 조대자의 집에 가서 조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교습하는 짬짬이 집안일도 도우며 돈을 벌고 있는 거다. 이 아버지를 데려오든지, 자신이 청진으로 돌아가든지 혹은 직접 가서 직접 데려오려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극은 남쪽의 천민자본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극성 우경화 같은 것을 모두 포함시킬 수밖에 없고, 판이 커져 드디어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nbsp; 근데 설마 인기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은성이 자기 작품을 이렇게 끝까지 정신 사납게 내버려 두겠어? 천만의 말씀이지. 난장으로 시작해 결말은 쓸쓸할지니, 기대하시라.<br>&nbsp; &lt;뻘&gt;은 김은성의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근처 벌교를 무대로 1막부터 3막까지는 1980년 봄에서 1981년 여름까지. 3막 후반부터 4막은 1991년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 1980년 봄의 전라남도라면 광주항쟁을 피할 수 없겠지? 맞다. 피할 수 없다. 그것, 항쟁과 관계없이 또는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새로운 대중예술을 하고 싶은 청년들과, 이곳 출신으로 잠깐 다니러 간 당대의 가수와 작곡가. 두 세대 간의 갈등도 있겠고, 화해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결론은 아마도 안 읽으셨겠지만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lt;방관자&gt;와 비슷하다. 뭔지 안 알려드린다.&nbsp; &lt;달나라연속극&gt;을 재미있게 읽었다. 옥탑 단칸방에 사는 엄마-아들-딸, 그리고 아래층의 대학생 사이의 관계극. 작품의 주제는 내가 자주 하는 말과 같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nbsp; 희곡집이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아 사서 읽어보시라는 말은 못 하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8/65/cover150/k162136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8659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매리 셸리라잖아, 그래서 읽었지 - [강변의 조문객]</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9077</link><pubDate>Thu, 19 Mar 2026 05: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90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8380&TPaperId=17159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7/20/coveroff/89374383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8380&TPaperId=171590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강변의 조문객</a><br/>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09월<br/></td></tr></table><br/>.&nbsp; 메리 셸리, 하면 당연히 &lt;프랑켄슈타인&gt;. 정말 다양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캐릭터라서 오히려 작품을 읽지 않게 되는 명작. 그러나 귀동냥으로 한 번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lt;프랑켄슈타인&gt;을 쓴 작가.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이 작가 또는 독자에게 난처한 허들로 작용할 수 있으니, 독자는 메리 셸리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도 당연히 &lt;프랑켄슈타인&gt;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도 마찬가지.<br>&nbsp; 《강변의 조문객》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실었다.&nbsp; 이 책뿐 만 아니라 메리 셸리를 읽기 전에 독자가 감안해야 했던 것은 이이가 18세기 말에 태어나 19세기 전반을 살다 간 작가였다는 점. 제인 오스틴의 딸 뻘이지만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의 이모 뻘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으면 작품이 어떨 것 같을까? 당연히 조금 촌스러울 수 있다. 지금부터 2백년 전에 쓴 소설이니 어쩌겠어?&nbsp;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랜 스타일이다. 2백년 전에 읽었더라면 재미 있었겠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21세기에는 아니다.&nbsp; 게다가 머리 속에 들어 앉아있는 &lt;프랑켄슈타인&gt;의 그늘.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7/20/cover150/89374383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797207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여기까지 왔으면 됐다 - [순수한 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7052</link><pubDate>Wed, 18 Mar 2026 0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70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42249&TPaperId=171570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3/15/coveroff/895274224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42249&TPaperId=171570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순수한 피</a><br/>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권미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br/></td></tr></table><br/>.&nbsp;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첫 작품인 &lt;루시퍼&gt;의 독후감에 내가 “레베르테의 대표적 작품” 운운했는데, 이제 그건 취소를 해야겠다. 출판사 책 소개에 당연히 들어가 있는 표현이라서 쓴 건 아니고, 일단 1편 &lt;루시퍼&gt;가 꽤 그럴 듯하게 시작을 해 시리즈가 가면서 스토리가 더 확장되면 꽤 근사하리라 여겨 출판사가 주장하는 작가의 “대표작”이란 표현을 옮긴 것이었다. 이제 두번째 작 &lt;순수한 피&gt;를 읽은 다음엔 설마 이 정도면 이름이 알려진 한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카페에서 연인을 기다리는데 무료한 참에 카페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어서 연인이 도착할 때까지 슬슬 넘길 정도의 책 수준을 조금 넘긴 정도. 목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책상에 정좌해 읽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신경정신병동으로 후송 당할 수 있는 책.&nbsp; 그리하여 1부 &lt;루시퍼&gt;에서 했던 말, “나는 “알라트리스테 대위” 연작을 나온 데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이건 지금 확실하게 취소한다. 두 권 읽었으면 됐다. 레베르테, 좀 지나서 딱 한 번만 더 보자. 아니면 말던가.<br>&nbsp; 1부에서 영국의 이교도 왕실과의 문제를 해결한 알라트리스테.&nbsp; 기억하실 턱이 없어서 요약을 해드리면, 대귀족과 왕실 비서 알케사르가 두 검객, 알라트리스테와 시칠리아에서 온 괄테리오 말라테스타한테 마드리드로 들어올 두 영국 귀족에 대한 특정한 조치를 의뢰한 후, 곧바로 같은 자리에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가 들어와 특정 조치 말고 아예 영국인들을 처단하라고 다시 의뢰한다. 두 검객, 말이 좋아 검객이지 쉬운 말로 청부업자는 돈을 더 주는 보카네그라의 의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나 싸움을 벌인다. 근데 알라트리스테가 자기 상대 영국인의 희생정신이 감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깊은 인상을 받아 그들을 살려주어, 결과적으로 스페인과 영국 왕실 사이의 관계가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nbsp; 하지만 알라트리스테의 덕분으로 스페인은 조금 더 명망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왕실비서 알케사르와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자신의 임무 수행을 방해한 말라데스타는 알라트리스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고, 2부 &lt;순수한 피&gt;에서 이를 갚아주려 음모를 짠다.&nbsp; 그러니 이 책은 1부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 물론 사건은 권 별로 개별적이라 볼 수 있지만 해당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왜 자유스러운 음모인지 알기 위하여 그렇다는 말이다.<br>&nbsp; 시작은 시대-추리물 답게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투우경기가 있는 날 새벽에, 산히네스 성당 앞에 한 인력거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부에서 알라트리스테가 궁중 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 순찰대장 마르틴 살다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먼저 등장한다. 인력거 안에 죽은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 심통이 대단하다. 사건 때문에 여차하면 투우 축제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시신은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노파. 사인은 목졸라 죽인 교살. 놀랍게도 시신의 손에 금화 50에스쿠도가 쪽지와 함께 쥐어 있다. 메모는 “미사를 올려서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라는 짧은 내용.&nbsp; 이 쉰 살의 노파가 누구인지 앞서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뭐 설마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어보실 것이며, 읽더라도 읽기 전에 내 독후감 먼저 참고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무책임하게 알려드리자면, 놀라지 마시라, 수녀원에서 포주 역할을 하는 여자이다.&nbsp; 시대는 1623년. 왕 필리페 4페는 그저 사람만 좋아 정무와 외무, 내무 같은 거엔 다른 비서관들에게 전권 위임하고, 사법은 거의 종교재판관들한테 넘겨주어, 남고 남는 시간에 프랑스에서 얻은 젊은, 아니, 어린 아내와 속닥거리기나 하고, 좋은 먹거리와 즐길거리만 파고 살았다. 그래서 당연히 궁정의 거의 모든 고귀족들은 왕을 장난감이나 유아기 소년으로 취급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부정부패, 매관매직, 기타 나라가 거덜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일까 골몰하기에 이른다. 날이 갈수록 망해가는 스페인. 이를 지켜보기 힘들어 올리바레스 백작이 현재 스페인 성직자와 귀족의 돈줄인 이탈리아 제노바 은행 대신 신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금을 모은 포르투갈 은행과 협력해서 스페인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탐관오리들에게 모함을 당해 불운한 말년을 보낼 예정이다. 이 책이 올리바레스 백작이 전성기 무렵이라 생각하면 된다.<br>&nbsp; 종교재판관으로 대변되는 기존 권력자들 입장에서 보면 올리바레스가 눈에 가시이다. 그리하여 멀리 보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짧게 보면 포르투갈 금의 국내 유입을 막아 제노바 금에 의한 스페인 지배를 유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는 게 있으니, 바로 얼마 전에 영국 왕실의 왕자 일행의 목숨을 살려준 알라트리스테를 제거하는 일. 이 일은 또 당시에 벌인 칼싸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시칠리아 검객 말라테스타의 협조를 헐한 값으로 얻을 수도 있다.&nbsp; 그리하여 꾸민 일. 아도라시온 베니타 수녀원에 들어가 있는 발렌시아 여인 엘비라 델라 크루스를 지목했다. 이 수녀원의 실제적 주인은 후안 코로아도 수사와 훌리안 가르소 수사이다. 후안은 성당 전속 사제로 수녀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훌리안은 고해 수사. 둘 다 젊고, 키 크고, 멋지게 생겼으며 귀족의 자제. 사실 이 즈음 귀족의 자제들이 수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하여 그랬다는 것이 작가 레베르테의 주장인데, 어려서부터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아 마음 속에 악마가 들었더라도 입으로는 천사의 말을 나불대는 재주가 있어서, 수녀원의 수녀들을 몽땅 최면에 걸거나, 최면에 빠지지 않는 일부 수녀와 견습수녀한테는 지독한 가스 라이팅을 해, 후안의 경우, 자신과 살을 맞대는 것 자체가 천국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으며, 고해수사 훌리안은 별것도 아닌 죄, 수녀원 안에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짓는다고 그걸 보속하기 위하여 자기 앞에서 홀랑 누워 있게 만드는데 선수였다.&nbsp; 발렌시아 귀족의 딸 엘비라 델라 크루스가 이 수녀원의 수녀. 정신이 좀 말짱했는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한테 말했고,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와 오빠, 동생이 칼을 벅벅 갈더니 마드리드로 쫓아와 먼저 궁정시인이자 한 시절 용감한 군인이었으며, 한 시절 칼과 단검과 권총 사용에 도가 튼 절름발이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를 찾아온다. 1부를 읽은 분은 아실 터. 알라트리스테와는 둘도 없는 전우 사이.&nbsp; 케베도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 이들을 알라트리스테와 연결시켜주고, 비록 많은 보수를 요구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베도의 부탁이라 성공하기가 매우, 매우 힘든 수녀원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알라트리스테도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자신한테 원한을 가진 말라데스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을.<br>&nbsp; 쉽게 말해, 말라데스테와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적인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신부는 벌써 이들이 수녀원의 담을 넘을 것을 알고 단단한 경비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당연히 알라트리스테, 케베도와 델라 크루스의 세 부자에 의한 수녀원 공격은 섬멸되고, 이 와중에 델라 크루스의 열여덟 살 먹은 막내 아들은 심한 상처를 입어 죽고 만다. 그리고 작품의 화자, 열세 살의 이니고 역시 말라데스타에게 포로로 잡혀 톨레도의 종교재판 형무소로 들어가니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형.&nbsp; 왜 하형인고 하면, 엘비라 델라 크루스 수녀의 조상이 개종 유대인. 게다가 포르투갈 은행의 중요한 핵심인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순정하지 못한 피, 즉 유대인, 아랍인들을 극도로 박해하던 시절이라 유대인이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었고, 종교재판관은 이를 당연히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 오염 의도로 해석해버렸다. 이니고를 잡아야 이니고를 미끼로 알라트리스테를 엮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몇 달 동안 톨리도 형무소에 잡아두고, 결국 화형대에 묶어 태워 죽이려 했던 것.&nbsp; 근데 시리즈에서 주인공 급 화자가 설마 도중에 불에 타 죽기야 하겠어?<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3/15/cover150/895274224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3156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바람과 놀게 해다오 - [악어를 조심하라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5089</link><pubDate>Tue, 17 Mar 2026 0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50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2797&TPaperId=171550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3/coveroff/89320027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2797&TPaperId=171550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악어를 조심하라고?</a><br/>황동규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01월<br/></td></tr></table><br/>.&nbsp; 책장 속 30여 년 전에 사 놓은 시집 가운데 한 권. 즉 두고두고 읽는 시집이라는 뜻이다. 황동규는 뭐 말이 필요 없는 시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1번에 빛나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부터 이 시인이 낸 시집의 오랜 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근데 사실 요즘에 이이를 잘 읽지 않는다. 해서, 새삼스레 옛 시집을 꺼내게 된 것.&nbsp; 지금은 같은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처지이자 황시인보다 3년 선배인 유종호가 쓴 해설의 제목이 “낭만적 우울의 변모와 성숙”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주된 서정은 시인의 우울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 평론가의 의견에 따르면 그 우울이 모습을 바꿔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는 시집인데, 우울 자체가 낭만적 우울에서 시작한다. 시집에서 낭만적 우울의 시작점은 2부에 실린 “풍장風葬” 열여섯 수에서 극점을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동규의 대표 시로 뽑는 연작인 &lt;풍장&gt;은 이렇게 시작한다. 길더라도 전문을 인용한다.<br><br>&nbsp; 풍장(風葬) 1<br><br>&nbsp;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nbsp; 섭섭하지 않게&nbsp;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nbsp; 손목에 달아놓고&nbsp; 아주 춥지는 않게&nbsp;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nbsp; 군산에 가서&nbsp; 검색이 심하면&nbsp; 곰소쯤에 가서&nbsp;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br>&nbsp;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nbsp;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nbsp;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nbsp;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nbsp; 잠시 정신을 잃고&nbsp;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nbsp;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nbsp;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nbsp; 손목시계 부서질 때&nbsp;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nbsp;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nbsp;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nbsp; 살을 말리게 해다오.&nbsp;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nbsp;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br>&nbsp;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nbsp;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nbsp;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nbsp;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nbsp; 바람과 놀게 해다오.&nbsp; (전문. p.43~44)<br><br>&nbsp; 풍장의 매력은 사실 황동규가 가고 싶어하는 서해의 한 작고 버려진 작은 섬이 아니다. 건조한 고원이나 사막지대에 놓여 햇빛과 바람과 달과 별의 광선에 의하여 육신이 바싹 말라 비틀어진 미라 상태로 있다가 결국 하얀 백골만 남기게 되는 장례. 백골마저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결국 풍화되어 모래로 돌아가는 길고 긴 과정이다. 사실 황시인이 바라는 것은 그가 평생동안 좋아하던 여행길을 나서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 달라는 것이다.&nbsp; 아니나 다를까, &lt;풍장&gt;의 우울은 이후 2, 3, 4… 계속 농도가 진해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함께 놀 바람에 실려 우리 국토의 방방곡곡을 떠다닌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lt;풍장 2&gt; 부분 p.45) 가면서 인왕산, 남산, 낙산 그리고 밀주를 파는 도시의 골목을 배회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 루카치를 만나면 루카칠 /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 놀부 만나면 흥부를…”(&lt;풍장 4&gt; 부분. P.48) 죽이기도 한다.&nbsp; 그러나, 그렇다고 이 시집이 다 우울한 건 아니다. 그러면 황동규가 아니지. 1부의 시작은 오히려 생기에 충만하다. 제일 앞에 배치한 시를 읽어보자.<br><br>&nbsp; 꽃<br><br>&nbsp; 나는 나무들이 꽃을 잔뜩 피워놓고&nbsp; 열매가 생기기를&nbsp;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br>&nbsp; 사방에서 벌이 잉잉거릴 때&nbsp; 꽃들은 먼발치서 달려오는 벌을 맞으러&nbsp; 하나씩 문을 열 것이다.&nbsp; 꽃송이 하나하나가&nbsp;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nbsp; 이 팽팽함!<br>&nbsp; 배나무나 벚나무 상공(上空)에서&nbsp; 새들은 땅 위에서 환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nbsp; 잠시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잊을 것이다.&nbsp; (전문. P.11)<br><br>&nbsp;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생기와 발랄함은 두번째, 세번째 시 &lt;삶에 취해&gt;, &lt;별&gt;에서도 계속된다. 그런데 이 시들은 1982년부터 85년까지 &lt;풍장&gt; 시리즈를 쓰고 난 다음인 1985년~86년에 지은 노래들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가장 폭력적이었던 5공화국 시절. &lt;풍장&gt;은 시가 갖고 있는 우울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이 시절에 &lt;꽃&gt;처럼 생명 가득하고 발랄한 시를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때이다. 참여와 저항과 외침의 노래 아니면 백안시 당하던 비극의 시기였으니. 세월이 한참 지나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황시인 같은 모더니스트가 그 당시에도 노래하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도 들게 된다. 이게 다 세월의 힘이겠지. 그걸 방에 틀어박혀 숨죽여 읽고 키득대며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었겠지. 내놓고 모더니즘 시를 읽는다는 말도 못하면서. 그러면서.&nbsp;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더 없는 서정시를 쓴 시인 가운데 한 명인 김종삼 시인이 죽었다. 1984년 겨울이다. 길음성당에서 있었던 장례미사에 황동규가 참석했다. 그날 하늘에서 점박이 눈이 내렸다.<br>&nbsp; 점박이 눈이 내렸다.&nbsp; 가늘게 검정테 두르고&nbsp; 가운데 흰 점 박힌 눈송이들&nbsp; 머리와 어깨에 쌓였다.&nbsp; 성당 정문에서 천상병(千祥炳)씨 부인과 인사 나눴을 뿐&nbsp; 문학판 사람들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nbsp; (“그들은 그때 어디 있었는가, 오버?”&nbsp; “프라이버시 침해하지 말라, 오버.”)&nbsp; 낯선 문학청년 하나가&nbsp; 눈 맞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nbsp; “사진에서 뵌 선생님이시죠?&nbsp; 저는 김종삼 시인을 사랑한 놈입니다.&nbsp; 발자국 따르다보니 예서 그만 끝이군요.&nbsp; 앞으로 무슨 맛에 살죠?”&nbsp; 내 장례식에 혹시&nbsp; 이런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 올까?&nbsp; (온다면 깊이 잠들기 힘들리.)&nbsp; (&lt;점박이 눈&gt; 부분. p27~28)<br>&nbsp; 84년 겨울. 제대하고 그동안 집구석은 한층 더 폭삭 망해버려 이부망천이라, 서울 사람이 이혼하면 부천가고, 쫄딱 망하면 가는 곳이라는 인천의 작고 작은 집으로 밀려간 시절이었구나. 그새 졸업해 병원 약사 일을 하던 사랑은 당연히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리고, 복학하려니 등록금 구하기가 죽을 맛이던 시절. 그래도 경애하는 김종삼 선생, 전화라도 한 통 하고 가시지. 나 졸업한 서라벌중학교, 대일고등학교에서 세느강만 건너면 바로 길음성당이었을 텐데. 혹시 알아? 잘 하면 내가 그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었을 지도?&nbsp; (정말 이것까지 생각하고 쓴 독후감 아닌데, 오늘이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린 사랑의 꽤 묵은 생일이구나. 좋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우리, 다시는 기억도 하지 말자.)<br>그건 그거고, 황시인은 이렇게 서정시인, 모더니스트들에게 편지도 보내고(김정웅, 유평근, 마종기) 애도하기도 한다(김현). 그러나 딱 한 명 예외가 있으니 니힐의 아나키스트 김수영(金洙暎). 표제시 &lt;악어를 조심하라고?&gt;의 3부 “종묘 앞 싸락눈”에서다. &lt;악어를 조심하라고?&gt;가 워낙 길어 딱 이 부분만 따와보자.<br><br>&nbsp; 《악어를 조심하라고?》<br>&nbsp; 3. 종묘 앞 싸락눈<br><br>&nbsp; 싸락눈 솔솔 뿌리는&nbsp; 종묘 앞 숯불돼지갈비집<br>&nbsp; 단성사서 영화 보고 싸락눈 맞으며 걸어가&nbsp; 잠긴 문틈으로 저 낮고 긴 지붕의 집 종묘가&nbsp; 곱게 눈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보고&nbsp; 동양의 파르테논 어쩌구 헛소리를 하며&nbsp; 겁먹은 듯 서 있는 조랑말들 사이를 지나&nbsp; 김수영(金洙暎)씨와 몇 번 들른 집&nbsp; 잘 모르는 소리 지껄이는 건&nbsp; 지금도 매양 마찬가지&nbsp; “탈[mask] 이론은?”&nbsp;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불한당 단테를 보라.)&nbsp; “객관 상관물이란?”&nbsp; (兩人對酌山花開 &lt;李白&gt;―둘이 서로 술 따르니 막 산꽃이 핀다,&nbsp; 혹은 OB잔 부딪칠 때 배호의 노랫소리)&nbsp; 모를 듯 알 듯 모를 순간&nbsp; 기도(氣道) 조이는 그 쾌감<br>&nbsp; 가만!&nbsp; 지금 내 정신 상태 제대로 보여줄 객관 상관물은?&nbsp; (아파트 계단을 도로 기어 내려가는 악어?)<br>&nbsp; 하긴 텔레비나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nbsp; 그래도 제일 길 안 드는 게 악어더군&nbsp; 성(聖)타잔도 길들일 수 없는……<br>&nbsp; “황형, 혼자 술 드는 폼&nbsp; 여직 생생하군요.”&nbsp; 귀익은 목소리에 얼핏 뒤돌아보니&nbsp; 민음사판 전집 사진 속에서처럼&nbsp; 티셔츠에 앙상한 몰골로&nbsp; 김수영이 앉아 있다,&nbsp; 양복 윗도리를 술상에 걸쳐놓고&nbsp; 3센티쯤 자란 머리카락에&nbsp; 입웃음을 웃으며.&nbsp; (하략)&nbsp; (&lt;악어를 조심하라고?&gt; “3. 종묘 앞 싸락눈”의 부분. p.22~24.&nbsp; 2연의"겁먹은 듯 서있는 조랑말들"은 당시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택시, 현대 포니 자동차를 말하고 있다.)<br><br>&nbsp; 이 시집 중에서도 긴 시들을 소개하는 바람에 독후감이 한없이 길어진다. 더 이상 쓰다가는 욕 먹겠다. 별로 한 말도 없이 이거 영 모양 안 나오는군.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은, 황동규, 이 양반을 괜히 대접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 어떻게 시편들이 길면서도 깔끔하고, 서늘하고, 공감이 가는지 말이지. 황동규 선생은 모르겠고, 나 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황선생의 부친, 황순원 선생의 산소라도 한 번 가볼까? 아냐, 아니다. 내 부모 산소에도 자주 가지 않으면서 남의 부모 산소까지 들먹이기는 좀 그렇지.&nbsp; 아참. 잊고 따오지 않은 시 한 수가 있다. 그거 소개하면서 긴 독후감 끝내자.<br><br>&nbsp; 풍장 9<br><br>&nbsp; 바람이 어디로나 제 갈 데로 불 듯&nbsp; 서산 마애불을 만나러 갔다.&nbsp; 마을마다 댓잎 가장자리는&nbsp; 늦겨울 가뭄에 백동(白銅)색으로 익고&nbsp; 얼었던 길은 처음으로 녹으며&nbsp; 춤추는 봄눈을 대숲으로 날려주었다.&nbsp; 마른 오징어와 함께 가서&nbsp;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nbsp; (전문. p.56)<br><br>&nbsp; 재미있지? 서산 마애불 기행도 인터넷 어느 한 곳에 쓴 적 있는데, 혹시 검색해보면 나올지 몰라? “그 미소 천년을 이어가시라”로 검색하니까 뜨네. 근데 그거보다 마지막 행,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 이 중에서도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가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소주를 왜 뿌려? 죽은 사람한테나 뿌리는 게 술이다. 그래서 ‘나’가 이미 죽은 ‘나’한테 대한 풍장이 완성되는 것. 으아. 이러니 내가 황동규, 황동규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물론 소주 이야기 나오니까 더 환장을 하긴 했지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53/cover150/89320027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536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독립과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 - [동조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3066</link><pubDate>Mon, 16 Mar 2026 0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1530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869&TPaperId=17153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1/81/coveroff/89374278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869&TPaperId=171530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동조자</a><br/>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05월<br/></td></tr></table><br/>.&nbsp; 북중부 해변마을 둑토 출신의 응우옌 부부는 1954년 남베트남, 1년 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베트남공화국’이라 불릴 반메투엣으로 이사해 한 명의 딸을 입양하고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적어도 둘’ 가운데 큰 아이 ‘퉁’은 훗날 하버드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의학박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대학 교육자로 이름을 알릴 것인데 이 둘째 비엣이 2015년에 쓴 소설 &lt;동조자&gt;가 2016년에 퓰리처상을 받는다. 놀랍게도 첫 장편소설이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상을 받은 거다.&nbsp; 1975년에 응우옌 가족은, 호치민이 건국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고 세운 일종의 괴뢰국가 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킬 때,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응우옌 가족이 당시 사이공에서 살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미국의 기관이나 유력자 또는 군대와 상당히 밀접하게 지내, 그들이 수송기 탑승을 허락한 극소수의 베트남인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을 재산을 가지고 도피할 정도의 재력을 보유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베트남 정∙재계의 주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이 가족이 베트남 마지막 응우옌 왕족의 일원 아니었을까? 짐작이다. 확실하지 않으니 오해 마시라.<br>&nbsp; 간략하게 베트남의 현대사를 살펴보자. 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아온 베트남은 또 오랜 세월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배까지 겪어야 했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또다시 일본군이 진주해 그들 치하에 있었다가 종전 후 드디어 1945년 9월, 호치민이 하노이에서 독립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불운하게도 승전국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들이 자신의 식민영토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어 초현대식 무기와 전폭기를 동원한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1954년에 결정적으로 얻어터져 쌍코피를 흘리며 철수했고, 드디어 베트남은 독립을 이루었다.&nbsp; 하지만 호치민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 당시 전지구적인 냉전 상태는 만일 베트남이 공산화된다면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역시 공산화 물결에 휩쓸릴 것이라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의 위협이 서구사회를 압박해 자기들 임의로 위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찌꺼기 하나를 왕으로 삼아 ‘베트남국’을 만들어준다. 시절이 어느 땐데 왕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 응오 딘 디엠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베트남공화국을 세우게 된다.&nbsp; 자기들이 죽어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그리하여 유명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본격적인 내란이 발발하니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이 기록한 최초의 패전. 한국전쟁이 최초의 무승부였고, 베트남전은 여지없이 패전 자체였다. 이때 앞에서 말한 베트남인 가운데 유력자들, 중요한 친미파들은 수송기를 타고 탈출해 미국의 수용소에 도착했고, 돈만 많고 미국과 ‘특별한 관계’까지는 이루지 못한 부자들은 아무 배나 타고 이웃한 나라로 건너간 이른바 ‘보트 피플’ 신분으로 베트남을 탈출했다. 새로이 건국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남았다가는 무시무시한 재교육을 받거나 죽을 지도 몰라서.<br>&nbsp; &lt;동조자&gt;는 사이공 함락을 불과 며칠 앞두고 시작한다. 화자는 ‘나’. 근데 올림말로 쓴다. 좀 이상하다. 계속 읽다 보면 ‘소장님’과 ‘정치위원’에게 쓰는 일종의 자술서이다. ‘나’가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과거, 즉 사이공 함락 직전부터 이 수용소에 수감될 당시까지의 모든 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쓴 자술서.&nbsp; 그럼 ‘나’는 누구일까?&nbsp; 북베트남, 훗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될 북베트남의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동시에 미국 CIA 비밀요원이자 남베트남 장군의 부관이며 정보부 위관장교. 대위였다. 이런 복잡한 일을 아무나 하나? 매우 총명해 1960년대에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옥시덴털 대학에서 6년간 미국사, 미국문학, 문법, 속어와 마리화나, 섹스까지 이른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모두 몸에 익혀가며 석사까지 공부하고 다시 베트남에 돌아왔다. 이런 특혜는 1954년 프랑스와의 전쟁통에 난민선을 타고 피난할 때 유심히 ‘나’를 발견하고 재능을 알아본 미국인 대사관 직원이자 CIA 요원이었던 클로드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몰랐지. ‘나’가 점점 커가며 고등학교 다닐 때 의형제를 맺은 ‘만’에 의하여 제대로 의식화교육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 분자인 것을. ‘나’는 만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클로드가 지원해주는 대로 미국으로 가 모든 것을 ‘작전상’ 흡수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의형제 가운데 다른 한 명 ‘본’은 북베트남군이 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처형해버린 이후에 극도의 반공주의자가 되어 버리고.&nbsp; 또 하나의 중요한 점. 엄마가 열네 살 때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신부. 맞다. 가톨릭 사제의 아들이자 서양 혼혈. 베트남 사람들이 ‘잡종새끼’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이런 정체성이 작품에서 상당한 의미를 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중간첩으로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이쪽이면서 저쪽이기도 한 인간이자 베트남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나이든 프랑스 가톨릭 사제와 베트남 소녀 사이의 아이, 동양과 서양이 낳은 혼외자, 사람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개체, 기타 등등.<br>&nbsp; ‘나’는 만과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숱한 접선을 통해 미군의 폭격 일정을 제공하여 베트콩 및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켜 희생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고, 유력인사의 동선을 알려 그들이 효과적으로 암살계획을 세우게 해주기도 했다. 이런 고급 정보를 보낼 수 있으려면 베트남군 내부에 상당한 신임을 받아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하여 ‘나’는 잡혀온 베트콩 간첩에 대한 고문 같은 것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방관하고 참관해야 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베트콩 측 간첩의 체포를 위하여 역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즉 양쪽 모두의 철저한 적이 되어야 하는 숙명이다.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nbsp; 정말? ‘나’의 경우는 아닐 확률이 많다. 독자는 그렇게 짐작한다.&nbsp; 만일 베트남이 승리한 후에 베트남 군대나 미국의 CIA에서 ‘나’가 베트콩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발각나면, 발각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무조건 처형당할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베트콩이 승리할 경우 그들의 중요한 수뇌부에 의형제 만이 있어서 그의 지령을 받아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전쟁 중에 작전상 행한 밀고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전쟁 중에 만이 죽지만 않는다면.&nbsp; 그럴 듯하지? 그럴 듯한데, 정말 그럴 듯한 과정만 밟아 진행하면 소설이 재미없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더 묻지 마시고.<br>&nbsp; 하여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드디어 함락되기 바로 직전에, ‘나’는 장군과 장군의 직계가족, 그리고 골수 반공주의자 의형제 본과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군 수송기 C-130 허큘리스를 타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 본의 아내와 아들은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베트콩일 수도 있고 탈출하지 못한 채 베트콩의 포로가 될 베트남 군이 쏜 총일 수도 있다. 이 일로 본은 미국에 도착해서 만성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살인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변모한다.&nbsp; 사이공을 탈출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캘리포니아. 이곳에서 장군은 잃어버린 나라, 베트남에서의 재혁명을 꿈꾼다. 의용군을 모집해 마치 호치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파르티잔 활동을 하고, 점점 규모를 키워 집권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베트남공화국을 재건한다는 꿈. 당연히 미국과 미국의회, 미국의 돈을 지원받아야 가능하다.&nbsp;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이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장군의 휘하에 ‘나’가 있음에. ‘나’가 프랑스 파리 13구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만의 당고모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 글의 행간에 투명잉크를 사용해 장군 주변의 정보를 낱낱이 보고하는 바에. 장군은 정말로 태국에 베트남 패잔병을 모아 캠프를 차렸고, 이들을 라오스를 통해 베트남에 잠입시키기도 했다. 마침 미국에서도 이 캠프로 인원을 보낼 예정인데, 여기에 ‘나’의 의형제 본이 다른 두 명의 전직 장교와 함께 지원을 했다. ‘나’도 지원하려 하지만 파리에서 만의 당고모로부터 편지가 온다.&nbsp; “너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nbsp; 안 될 말. 이미 ‘나’는 장군의 맏딸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이를 장군 부부가 알게 된 처지. 장군은 이를 끝까지 모른 척했다가 ‘나’가 비행기 트랙에 오르기 바로 전에, 너 같은 잡종새끼한테 그게 가당하기나 한 짓이냐고 말한다.<br>&nbsp; 자, 이제 ‘나’가 왜 진술서, 자술서를 쓰게 됐는지 아시겠지. ‘나’는 태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땅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포로로 잡힌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포로수용소. 포로만 있는 건 아니고 전에 베트남의 공화국 측에서 그들 시각으로 보아 악행을 저질렀던 분자들이 모인 곳이다.&nbsp; 그곳에서 이른바 ‘개조’가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에서 이 개조 과정을 익히 본 바 있다. 그리하여 책에서 상술하는 개조 과정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nbsp; 이 모든 것을 거쳐야 작가이자 미국의 중요한 교육자인 비엣 타인 응우옌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단하나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결코 진부해지지 않을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질문들.”에 대하여.<br>&nbsp;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는가?&nbsp; 혁명가는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무엇을 하는가?&nbsp;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는가? (p.647)<br>&nbsp; 이 물음이 나오기 바로 전에 정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나는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동감한 결론을.<br><br>&nbsp; * 680쪽이면 요즘 벽돌책이라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활자의 절대수가 많다. 벽돌이라도 같은 벽돌이 아니다. 그래도 머뭇거릴 필요 없다. 재미있어 술술 읽힌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1/81/cover150/89374278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71811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