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5 May 2026 02:58:05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방에 후르륵 - [에메랄드 시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5429</link><pubDate>Thu, 14 May 2026 05: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54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377&TPaperId=172754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3/28/coveroff/89546873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377&TPaperId=172754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메랄드 시티</a><br/>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6월<br/></td></tr></table><br/>.&nbsp; 영어 제목은 모르겠고, 우리말 제목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아 크게 밑진 장편소설이 한 편 있으니 제니퍼 이건의 2010년 작품 &lt;깡패단의 방문&gt;. 아직 안 읽어 보셨으면 얼른 쇼핑하시라. 470쪽짜리가 10퍼센트 깎아서 12,400원이다. 이건 여사가 스물일곱 살 때인 1989년에 쓴 소설집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에메랄드 시티》. 내 속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욕을 와장창 먹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확 말해버리자. 잘 쓰는, 이라기보다 잘 쓴다고 하는 우리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곧바로 이 책을 읽은 건 진짜 고의가 아니었는데, 아니다, 됐다. 이제 배짱이 확 쫄아들어 말할 기력 달린다. 그냥 짧게 별점으로 말하자면 똑 같은 별 넷. 어제는 자라나는 새싹한테 별 셋 주기 미안해서, 오늘은 차마 다섯, 만점까지 올리기엔 아주 조금 거시기해서.<br>&nbsp; 열한 편의 단편소설을 모았다.&nbsp; &lt;깡패단의 방문&gt; 독후감에서 얘기했듯이, 제니퍼 이건이 젊었을 때 다른 인간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와 (얼마나 진했는 지는 몰라도) 연애를 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에메랄드 시티》에는 부잣집 남자와 연애 또는 결혼한 여자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모델을 꿈꾸며 미국 중서부 시골이나 북유럽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사진사, 아니지, 포토그래퍼 혹은 프로듀서한테 잘 보이려 안달이 난 쭉쭉빵빵하고 비쩍 마른 아가씨들도 나오고, 두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는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한테 최고의 복지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횡령이나 사기를 친 남편/아빠 이야기도 나온다.&nbsp; 작품의 무대는 미국을 비롯해서 아프리카, 아시아, 스페인, 리비아, 멕시코 등등 대륙을 불문하고, 백만장자부터 노숙인까지 빈부를 망라한다.&nbsp; 영어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해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다. 물론 미국 작품답게 하나같이 개운한 결말, 적어도 우울하지 않고 폭망도 아닌 상태로 끝을 맺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릿한 맛을 은은하게 전하기도 하니, 제니퍼 이건, 거 참, 잘 쓰네.&nbsp; 내가 지금 여기서 아무리 변죽을 울려도 확실히 직접 읽는 것에 비하지 못하니, 웬만하면 이 정도에서 독후감 접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을 후르륵, 삼복에 냉콩국수 들이 마시듯 후르륵 읽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쓰는 단어가 부족해서. 우리 작가들도 이렇게 좀 써 주었으면 좋겠는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3/28/cover150/89546873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9328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딱 죽지 않을 만큼 슬퍼 죽겠다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3364</link><pubDate>Wed, 13 May 2026 05: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33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2733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off/89320440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2733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a><br/>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nbsp; 1987년이나 86년생 작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김수영∙신동엽∙김종삼의 시 연구로 박사까지 마친 소설가.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lt;녹&gt;이 당선해 등단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이이의 첫 소설집이라서 &lt;녹&gt;을 소설집의 첫번째 순서로 실었다. 이것 말고는 공개한 바이오그래피가 거의 없다.<br>&nbsp; ‘녹’이 rust를 말하는 줄 알았지만(오래 전 양귀자씨가 이 녹을 제목으로 하는 &lt;녹&gt;을 써서….) 결혼 이주 여성의 이름이다. ‘녹綠green.’ 화자 ‘나’는 전공을 밝히지 않은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몇 개 대학의 강사로 출강하는 워킹맘. 성이 ‘노’씨니까 ‘노 강사’라고 하겠다.&nbsp; 워킹맘 노 강사가 이혼한 다음에 가장 두려웠던 시기가 방학 시즌이었단다. 방학 기간 동안엔 수입이 없어서 생활비 조달 및 가계 유지가 힘들었다.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선배 언니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강좌를 알선해주어 3개월 동안 출강했을 때 수강생이었다.&nbsp; 이혼 후에 엑스가 당연히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물론 사소하지만 사람을 진짜 열 받게 만들면서. 매달 양육비를 2만원에서 5만원 적게 보내는 거다. 전화를 하면 자기 사정이 지금 워낙 좋지 않아 그랬다고, 다음에 한꺼번에 다 보내겠다고 핑계를 댄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술 한 번 안 마시면 될 것을. 담배만 끊어도. 하다못해 치킨 한 두 번만 배달 안 시켜도 충분하잖아. 노 강사가 전화통에다 대고 싫은 소리 하는 걸 녹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가 베이비시터를 하겠다고 졸랐다. 이주 여성의 시터 금액은 우리나라 사람의 반 정도란다. 이렇게 노 강사는 녹을 시터로 고용을 했다.&nbsp; 시터 녹은 아이 돌보는 일은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청소나 음식 같은 건 정말 훌륭한 수준이었다. 시터가 그런 일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해도 녹은 계속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했는데, 다만 노 강사 모르게 열살 먹은 자기 아들을 집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이게 불만이던 차, 강사의 어린 아들이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눈 주위를 여섯 바늘 꿰맨 작은 사고가 생긴다. 노 강사는 열이 잔뜩 받아 뭐라 한 바탕 지랄을 했고, 이후 녹의 아들도 출입을 자진해서 금지했는데, 착하디 착한 열살배기 아들은 비 오는 날이면 엄마 비 맞을까봐 우산을 갖고 강사님 아파트 현관까지 마중을 왔다.&nbsp; 그러다 어느 비 오는 어둔 저녁 시간에, 열살배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 죽었다.&nbsp; 방학이 끝나고 노 강사가 다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세상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 녹이 스케치북에 항의 글을 써서 들고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모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다음 학기부터 강사자리마저 떨려나게 된다.&nbsp; 스케치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nbsp; “노교수를 고발하는다&nbsp; 저가 아이을 잃었습니다&nbsp; 왜냐하면 노교수는 책임입니다”&nbsp; 이 문구를 본 노 강사는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마음 속으로는 녹의 문구를 교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직업병이었다고.&nbsp; “노교수를 고발하는다” → “노 강사를 고발합니다.”&nbsp; “저가 아이를 잃었습니다” → “저는 아이를 잃었습니다.”&nbsp; “왜냐하면 노교수는 책임입니다” → “노 강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는 “노 강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nbsp; 흠. 그렇군. 이게 직업병이군.&nbsp; 그런데 같은 작품 &lt;녹&gt;에서 공현진 박사님은 이런 표현을 쓰신다.&nbsp; “감사해요.” 13쪽. 어딘가 좀 어색하지 않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무 문제없이 흔하게 쓰는 표현이지만 내 세대가 듣기엔 영 이상하다. 대신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 또는 “고마워요.”는 익숙하다.&nbsp; 16쪽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nbsp; “교정 앞에 서 있는 녹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와 잎 들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nbsp; 조사 ‘로’는 (네이버 사전 참조)움직임의 방향, 경로,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위 문장에선 나뭇가지와 잎들의 “위치”니까 “녹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가 아니라 “녹의 머리 위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로 써야 맞는 거 같은데?&nbsp; 시비하는 거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직업병 말이 나온 김에.&nbsp; 단편소설집에서 특정 작품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좀 그래서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만 골라 이야기하다보니 쪼잔하게 이런 거 가지고 한 마디 하게 됐다.<br>&nbsp; 표제작 &lt;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gt;에는 채식주의자 남자 주인공 곽주호가 등장한다. 그가 전 애인하고 찢어지게 된 사연이 인상 깊은 것까지는 아니고 뭔가 좀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br>&nbsp; 그게 채식이야?&nbsp; 주호는 된장찌개에서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골라내고 있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주호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호가 평소처럼 고기를 골라 담은 접시를 여자친구 쪽으로 밀었는데 그녀는 평소와 달리 팔짱을 끼고 접시를 내려다보기만 했다.&nbsp; 질린다, 진짜.&nbsp; 갑자기 마음이 변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너는 정상이 아니야. 그녀는 식당에 주호를 두고 나가버렸다. 나도 안다고. 주호는 혼자 앉아서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p.55)<br>&nbsp; 주호의 전 여자친구는 이 씬에서 딱 한 번 출연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다. 이 귀절만 읽어보면 전 여친이 참 나쁜 여자같다. 저 소갈딱지하고는…. 그지? 이게 앞뒤 다 잘라버려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술이다. 주호 얘가 평소에 얼마나 찌질하게 전 여친을 대했으면 여태 잘 참다가 이제 와서 저 지랄을 하고 찢어지겠느냐고. 저 위 대목만 가지고 전 여친이 심했네, 너무했네, 판단하는 건 위험하지 않아? 마치 &lt;녹&gt;에서 노 강사 하는 얘기만 듣고 전 남편을 욕하게 되는 것처럼? 이 책 정말 읽어보신 분은, 흠, 흠, 웃지 마시라.&nbsp; 이런 게 다 소설의 힘이다. 그래서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눈에 힘을 빡, 주고 읽어야 한다.<br>&nbsp; 하나만 더 얘기해볼까? 여섯 번째 순서로 실린 &lt;권능&gt;.&nbsp; 주인공은 화자 ‘나’. 등장인물은 교회목사의 아내인 듯한 엄마와 엄마보다 열 살 많은 이모. 이모 딸 솔.&nbsp; 이모는 어려서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며 동생들을 다 서울로 데려와 뒷바라지했다. 그래서 엄마는 이모를 마치 엄마 비슷하게 대우한다. 여태 말도 높힌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이모는 결혼하고 10년이 훌쩍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다. 목사의 아내 엄마가 나를 낳으니 이모가 선물로 ‘나’ 한테 은목걸이를 사주었다. 혹시 잃어버리면 누구네 집 딸인지 알 수 있게 이름하고 (늘 바쁜 엄마는 전화를 받지 못할 일이 많으니까) 이모 전화번호를 새긴 목걸이.&nbsp; ‘나’가 조금 나이가 들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다른 아이 엄마들이 먼저 발견했다. 은목걸이에 작디작게 부적을 새겨 놓은 것을. 거기다 이모 전화번호를 박은 건, ‘나’ 덕에 자기도 아이 하나 회임해보려고. 난리가 났겠지? 목사 집에 웬 샤머니즘?&nbsp; 어쨌거나 ‘나’가 다섯 살 때 이모가 임신을 하고 이듬해 딸을 낳았으니 그 애가 바로 솔.&nbsp; 이모는 솔을 낳고 또 무꾸리 집에 가서 사주를 봤더니 명이 짧고, 남자 때문에 그렇고, 물 조심하란다. 그리하여 이 귀한 딸을 지키기 위해 별의 별 통제를 하고 ‘나’를 솔의 경비병 비슷하게 했던 모양이지. 솔은 아이가 착해, 혹은 물러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그저 어리숙하게 자라 대학에 들어간다. 진짜 바보스러울 정도로 엄마 말에 꼼짝도 못하는 솔. 하지만 2학년이 되자 봄 엠티에 가서 한밤중에 바닷물에 단체로 뛰어들었다가 솔만 빠져 죽고 만다.&nbsp; 솔이 대학 다닐 때, 살고 있는 빌라 옥상에서 대여섯 살 많은 ‘나’에게 솔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고민만 죽자고 하고 있는 솔이 어처구니없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nbsp; “너는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수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가 없어 보이는 솔이가 한심했다. 나조차 이모의 간섭이 견디기 힘들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데 그 모든 간섭에 항의하지 않는 솔이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게 고민이야?” (p.202)&nbsp; 문제는, &lt;권능&gt; 속에서 주인공 화자 ‘나’ 역시 독자가 읽기에 솔보다 하나도 나은 거 없이 수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 &lt;권능&gt;의 ‘나’만 그럴까? 아니, 아니. 우리 소설의 많고 많은 주인공들이 이런 성향을 흔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발적인 의지 없이 수동적이기만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이 그저 아프고 우울하다는 주장만 하는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거 같아 독자인 나도 슬프다. 슬퍼 죽겠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슬퍼 죽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150/89320440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3507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좀 있는 집 소년의 성장기 -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1483</link><pubDate>Tue, 12 May 2026 0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14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013&TPaperId=172714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3/37/coveroff/k2821350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013&TPaperId=172714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a><br/>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 책,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책 읽고 저자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봤더니 전부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먼저 이야기해둘 것은 자기 살아온 것을 소설로 쓴 작품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왜 그런가 하면 이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딱 이 경우인데, 집안 대대로 의사, 장군, 기업가 등을 지낸 빵빵한 집안에서 아버지 역시 의사, 의사라도 그냥 의사가 아니라 독일 역사상 최연소 주립병원 원장을 지낸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로, 가족 모두 함부르크와 덴마크 사이에 있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가장 큰 헤스터베르크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 구내의 원장 관사에 살며 하여간 남들 눈에 모자란 것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살면서 자기가 겪은 지난 삶에는 나름대로 다 회한이 있는 법이라 쓸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암만. 자신이 살아온 내력의 쓸쓸함, 애잔함을 내가 무시하는 건 전혀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겪은 것이 가장 절실한 법이니까.&nbsp;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이자 화자 ‘나’이며 작가이기도 한 요하임, 애칭 요세 마이어호프의 아빠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가 병원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에는 환자 수가 무려 1천5백 명이 넘었는데, 입원 환자 전부 정신병, 즉 조현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많은 수가 조현병 환자였지만 적지 않은 지독한 수준의 기형, 정신지체 같은 사유로 사실상 버려진 환자들도 또한 있었다고 한다. 즉 요하임 마이어호프보다 더 험한 세월을 사는 최소한 1천5백 편의 장편소설이 병원에 있었다는 얘기.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요하임보다 절절한 내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걸 생각하면 좀 그렇다는 거다. 입원 환자 가운데 누가 이 작품을 읽었으면 아마도 이렇게 한탄하지 않았을까?&nbsp; “나 같으면 앓느니 죽겠다!”&nbsp; 이런 의미에서 노골적으로 자전적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지 뭐 특별한 건 아니다.<br>&nbsp; 요하임 마이어호프는 1967년에 중서/남서부에 있는 홈부르크에서 아들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1972년부터 아버지따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헤스터베르크 정신병원의 원장 사택에서 자랐다. 자라도 오래 자랐다. 다 커서 훗날 연극배우가 될 때까지. 형제간 나이 차이는 각 3년. 당연히 다양한 놀이에 두 형들이 한 편을 먹고 어린 요하임은 다분히 따돌렸겠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으면 형들이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뭐 그랬겠지.&nbsp; 이대로 계속 쓰다가는 작품의 스토리를 다 실토할 거 같다. 시기를 훌쩍 넘어가자.&nbsp; 고등학생 시절 미국 와이오밍 주에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가 있었다. 이 시기에 세 형제 가운데 제일 공부 잘하는 작은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다시 귀국해 학교를 마친 다음에 요하임은 연극계에 투신해 지금은 독일에서 가장 바쁜 배우, 연출가, 영화 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단다.&nbsp;&nbsp; 연극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은 2011년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6부작 연극으로 만든 &lt;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gt;를 공연한 일로, 여기저기서 다양한 상도 받았다. 이후 6부작 가운데 (본문 이전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2부 &lt;언제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gt;를 우리말로 번역해 사계절에서 출간했다. 위키피디아에 6부까지 모두 소개한 걸 보면 이 책 말고도 다섯 권이 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 한 권이면 충분할 듯하다.&nbsp; 안타깝게 2017년에 뇌졸중이 발병해 그의 경력사항을 봐도 2017년 이후의 활동은 상 받은 거 하나 말고는 없다. 그때 겨우 쉰 살이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어떻게 하나. 사는 게 다 그런 걸.<br>&nbsp; 나는 이 책이 자전적 이야기인줄 모르고 읽었다. 알라딘이 내게 말하기를 AI가 나더러 이 책 읽으면 좋다고 권하다 해서 딱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거절당해 다른 동네 도서관에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해서 읽었다. 제목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라니까 삶과 죽음에 관한 좀 심각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뭐 사실 삶과 죽음에 관한 내용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그래도 첫 문장을 이렇게 써 놓으면 자전적 삶과 죽음, 둘째 형과 키우던 개와 아버지의 죽음은 아닌줄 안 게 당연할 수도 있지 않나?&nbsp;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은 이는 연금 수급자였다.”&nbsp; 사실 이 문장을 과하게 강렬하게 읽는 바람에 다음 문장을 놓친 내 잘못이기는 하다.&nbsp; “사랑하는 가족이 사고와 질병, 노환으로 떠나기 오래전의 일이었다.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까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기 오래전…”&nbsp;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말하고 싶어하는 또는 공연하고 싶은 죽음은 가족의 죽음인데, 초장에 저 연금수급자의 죽음을 과하게 진지하게 얘기한다. 일부러 그랬을까? 나 같은 독자 헛갈리라고? 게다가 아직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곱 살 먹은 주인공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단다. ‘나’가 작가 자신이며, 진짜로 정신병원 구내에 있는 원장 관사에서 살고 있으며, 거의 매일 밤마다 커다란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크고 높은 목소리로 울부짖는 비명을 들으면서 잠에 든다는 걸 전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화자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으니 이거 뭔가 중요한 사연이 있는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지.&nbsp; 아니, 이 색다른 구성은 뭐야. 이거 흥미진진한데…&nbsp; ‘나’는 엄마가 딱 정해준 큰 길로 등교를 하는 대신 일곱살 생일 일주일 후에 정신병원 시설 담장 밖의 주말농장 쪽에 혹시 다른 길이 있을까 싶어 그쪽으로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만다. 조금 헤맨 다음에 드디어 길을 찾았지만 주말농장 철문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넘었다. 넘고 보니 늙은 남자를 발견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모두 베이지색 옷. 퍽 고상해 보인다. 발과 종아리는 풀밭 위에 놓였고 나머지는 꽃 속에 파묻혔다. 괜히 주말농장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각이다. 생일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보니 그렇다. (또 잠깐 헛갈림. 정신병원에 사는 아이가 험한 곳에서 생일선물로 손목시계를 받았다는 말이지?) ‘나’는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실까지 달려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nbsp; 그래서 담임선생, 교장선생까지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하고 물으니까 ‘나’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가 의사예요.”&nbsp; 아직도 이게 실명 자전 소설이라는 걸 모르는 독자는 거 참, 복잡하게 됐다. 다시 생각해봐야겠군.<br>&nbsp; 이후부터 아버지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 어머니 마리아, 큰형 헤르만, 작은형 마르틴, 키우는 대형견 한 마리의 지지고 볶는, 지겹게 지지고 볶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귀엽게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시작한다.&nbsp; 예를 들어 식탁에서 가족들이 모여 퀴즈 시합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어린 요하임(요세)는 9시에 올라가 자라고 해서 주둥이가 댓발 나온다거나, 형들이 병원의 입원환자들한테 바보, 미치광이, 병신, 천치, 백치, 멍청이, 머저리, 사이코, 도라이 등등 마음대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거나, 아빠의 마흔번째 생일 선물로 감자요리 마흔개를 하려다가 엄마의 과잉친절에 기분이 상해 다 없애버렸다거나 뭐 이렇게 그냥 좀 있는 집 사는 이야기. 501호나 502호나 비슷한 이야기를 주절주절.&nbsp; 뭐 색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장소가 정신병원이니까 환자들과의 교류, 신병동에 주지사가 직접 방문해서 생긴 요절복통, 정말로 열람실에서 키득키득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든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것이 본문 483쪽 가운데 300쪽 가까이 차지한다. 이중에서 유별나게 특징적인 것은 주인공 요세,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전반성불안장애가 있다는 거. 즉 한 번 열을 독하게 받으면 거의 경련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증세가 있다. 발악 수준의 비명과 난장판, 그리고 경련, 실신까지. 이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작가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쉰 살의 나이에 뇌졸중이 발병한 것도 이런 사유 때문이 아닐까, 라고 위키피디아를 보면서 조금 생각해봤다.&nbsp; 그러다가 제일 앞 장chapter에 나오는 대로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 가운데 조부모 빼고 등장인물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일곱 살짜리 요세는 스물다섯 살 연극배우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결말을 맺기가 좀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지,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하면 딱이다.&nbsp; 청소년 문학작품 출간에 전력을 다하는 사계절이 찍었다는 것 때문에 혹시, 했다가 역시, 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3/37/cover150/k2821350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73373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기근의 시절에 먹고, 먹고 또 먹다 - [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9593</link><pubDate>Mon, 11 May 2026 0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95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033568&TPaperId=172695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30/coveroff/k2520335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033568&TPaperId=172695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a><br/>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br/></td></tr></table><br/>.&nbsp; 양쐉쯔楊双子. 양씨 성을 가진 쌍둥이라는 뜻의 이름. 1984년생 타이완 쌍둥이 여성 맞다. 자매 가운데 언니는 창작에, 동생은 번역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가, 동생이 2015년에 암으로 먼저 갔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 양쐉쯔는 언니 쌍둥이 양뤄츠다.&nbsp;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면 타이완 타이중에서 나서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정치적 운동을 하고 뭐 이런 복잡하지만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정보만 좍 쓰여 있다. &lt;1938 타이완 여행기&gt;를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그래도 좀 알고 싶으면, 양솽쯔가 어느 종족인지를 찾아야 하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다. 2020년에 타이완의 만다린어로 이 책을 써서 2021년에 상을 받았고, 일본말로 번역 출간해 2024년에 일본에서 최우수 번역상을 받았으며, 영어로 번역한 건 미국에서도 국가도서상을 받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좋겠다. 여기저기서 상 잔뜩 받아.&nbsp; 타이완에 가장 많은 인구는 한족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에 장제스와 함께 중국의 보물을 잔뜩 싣고 도망한 한족이 한 20퍼센트 되나? 그 전에도 주로 푸젠성 출신 한족이 대거 타이완 섬으로 이주해 처음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원주민들을 무지하게 차별하며 섬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원주민의 고달픈 삶은 탕푸루이가 쓴 &lt;바츠먼의 변호사&gt;에 잘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서 1938년이라면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아 내지內地, 그러니까 일본 섬사람들이 이주해 타이완의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당시. 소위 내지인들은 조선에서 그러했듯이 타이완 본섬 사람들, 혼도진本島人을 아래로 착 내려봤겠지. 그러면서 말로만 내지인과 혼도진, 그리고 조센징 모두 천황의 자식들이니 어쩌니 떠들어댄 건 안 보고도 비디오 아냐?&nbsp; 위키피디아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을 책을 읽고 짐작하건데 양솽쯔 역시 타이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푸젠성 출신의 한족 집안의 따님일 듯하다.&nbsp; 그런데 타이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조금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그렇게 많이 열 받지 않는다. 아 정말이라니까! 타이완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 사람들보다 더 싫어한다니까! 경제 수준이 우습게도 자기들 한참 아래였다가, 비슷했다가, 우리가 추월했다가, 다시 비슷해지는 것도 기분 나쁘고, 특별히 1991년에 우리나라하고 국교를 끊을 때 되게 기분 나쁜 방식으로 당했다고 여긴 듯하다. 사실 그때 좀 심하긴 했지.&nbsp; 여기에 타이완 섬이 사실상 수백년 이상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터라, 식민지라고 해봐야 그저 지배계급이 바뀌었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내 생각이니 믿지 마시라. 하여튼 식민 지배에 관해서 우리만큼 자만심 상해하지 않는 건 정말인 듯하다. 작품 속에 자꾸 타이완 식민지 사람들 이야기를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섞는 장면이 나오면 속이 편하지 않다.&nbsp; 양솽쯔도 일본에 우호적인 것처럼 보인다. 타이완 사람이면서 ‘솽쯔’의 한자어 표기를 대만 표준에 입각해 ‘雙子’ 대신 일본식 약자인 ‘双子’를 쓴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러하다.&nbsp; 위키피디아 되게 웃겨.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나오지 않고, 몰라도 전혀 상관없는 사생활 정보는 쓰여 있다.&nbsp; “Yang is married to her wife Lai Ting-ho.”&nbsp; 양솽쯔가 와이프 팅호와 결혼했다고? 그러면 양이 허즈번드, 남편이야? 아니다. 양도 와이프. 와이프만 둘 있는 결혼방식. 이건 독자가 굳이 알 필요 없잖아? 알건 모르건 상관은 없지만.<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화자 ‘나’, 1938년 5월에 25세인 엄청 키가 큰 일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 여행을 좋아해 사실상 일본이 아니었던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특히 오키나와에서 남국 특유의 정취에 반해 언젠가는 타이완에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다. 특히 올해가 적기다. 아오야마가 쓴 소설 &lt;청춘기&gt;를 영화로 만들면서 거금의 고료가 들어왔던 거다. 게다가 잡지사 한 군데에서 남양南洋을 배경으로 연재소설을 써주는 조건으로 여행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소설이 일본의 남진南進에 협조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아오야마 입장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제국을 선양하는 어용 작가가 될 수 없어 이를 싹 거절했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 치즈코.&nbsp; 아오야마 치즈코는 165cm로 키가 엄청 크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크다. 몸집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골격도 만만하지 않아 엄마가 치즈코를 낳다가 세상 떴다. 아빠도 일찌감치 갈 곳으로 갔다. 숙부집에서 살게 됐는데, 기쿠코 숙모가 친딸처럼 키워 정이 돈독하다. 그래서 숙모한테 돈을 좀 한 5백엔 달라고 했다가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여행은 무슨. 스물다섯? 우리 때는 그때까지 시집 못 가면 목 매달아 죽었다 이것아! 숙부가 선 자리 알아보고 있으니 하나 골라라. 사실 혼기를 놓쳐 이제 중매가 와도 중년 홀아비 밖에 안 들어온다. 치즈코는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니 이런 말이 지겨울 수밖에.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뭐.&nbsp;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좀 있다. 잠깐 작은 절집에서 혼자 등이 꺼지지 않게 지켜야 할 때가 있었다. 한 열흘에 한 번 말라 비틀어진 중이 등에 쓸 기름을 가지고 올 때 음식도 조금 들고 와 그걸 먹으며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버텨야 했던 기억. 뭔 일이 있었던지 하여간 그렇게 몇 달을 지냈는데, 그때 너무 배를 곯아 절에서 내려올 때 심각한 각기병에 걸린 적이 있다. 이후에 키 큰 아오야마 치즈코는 식탐 많은 먹보 밉상이 되고 말았다. 밉상은 하도 먹을 생각만 해서, 1938년이면 일본은 물론이고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 사람들 모두 굶주릴 때인데, 더군다나 1930년대 중반이라면 세계적인 기근이 휩쓸 당시인데도 그저 먹는 거만 밝힌다는 뜻이다. 책에서는 한 번도 밉상이라고 나오지 않는다. 반대다. 쾌활하고 화통한 장부의 모습이라고만 나온다. 내 눈에 그렇다는 거다.&nbsp; 그리하여 아오야마 치즈코는 등장할 때부터 일본 찹쌀떡인 모찌를 한 입에 두 개나 쑤셔넣고 우물우물. 아오, 정말 밉상이라니까.<br>&nbsp; 딱 이때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州廳에서 아오야마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영화로 만든 &lt;청춘기&gt;가 1년이 지나 타이중에 개봉됐고, 이를 본 현지의 부인단체 ‘닛산카이’ 여사님들이 감동감화 받은 바 너무 커서 작가를 초청해 타이완 각지를 돌며 순회 강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사례금은 물론이고 뱃삯을 비롯한 모든 교통비, 숙박비, 식비, 기타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아오야마가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엄마 같은 숙모가 마련한 맞선은 한 번도 안 보고 그 길로, 1938년 초여름에 규슈 북쪽 끝의 모지항에서 출발, 타이완 북쪽 끝 지룽항에 도착한다.&nbsp; 지룽항에서 타이베이로 가 일박을 하고, 기차로 타이중으로 향한다. 이때부터 아오야마는 먹는 타령이다.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 하도 많이, 자주 먹어서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들이민 것이 어린 시절 등불 꺼지지 않게 지키라고 꼬마 여자 아이 혼자 절에 몇 달 동안 틀어박혀 있게 만든 거다. 하여튼 지독하게, 지겹게 먹는 타령이다. 타이중과 부인회 닛산카이에서 준비한 거의 최상급 일본 요리에는 별 관심 없고, 로마에 갔으면 로마 음식 맛을 봐야 하는 것처럼, 타이완에 왔으니 혼도진, 본지 사람들이 먹는 걸 자기도 먹어야겠다는 이미 불이 붙은 신념만 굳세진다.&nbsp; 여기에 등장한 인물이 왕첸허王千鶴. 이름 첸허千鶴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우.연.히. 같다. 21세 여성. 아오야마를 위하여 닛산케이 부인회가 고용한 통역사다. 그런데 음식 장만도 하는 식모이기도 하고,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고, 비서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또 뭐 있어? 하여간 뭐든 다 하는, 말로만 친구, 사실상 하녀, 이 정도면 하녀 가운데도 몸종 아닌가? 전직 공학교 국어교사. 공학교?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소학교. 혼도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공학교. 따라서 공학교 여선생은 내지인 눈으로 보면 인간도 아니다. 당연히 내지 본토에서 온 아오야마 치즈코 눈에는 자기 자매처럼 친근하지만 식민지 땅에서 사는 일본 여자들한테는 그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짐작하시겠지? 전직 공학교 국어 교사. 국어 교사라면 일본어 교사라는 말. 일본말 잘 하고, 내지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잘하고, 타이완 내 각종 언어도 당연히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프랑스어도 소통 가능할 정도. 언어 귀신.&nbsp;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때려 치웠다. 학교 교사도 그만 뒀다. 왜? 결혼 준비. 인텔리 남편감은 일본에서 일하고 있단다. 타이중의 유수한 왕씨 가문 첩실이 낳은 딸. 똑똑하지 않았으면 학교도 보내지 않았을 터. 교사를 할 정도니까 거의 영재 수준이다. 음식도 잘하고, 음식에 관해 많이 안다. 더 이상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안다. 그래 본격적으로 지금부터 타이완 음식 기행이 펼쳐지는데….<br>&nbsp; 머리 속에서 팍 떠오르는 이름 하나. 일본 작가 무라이 겐사이. 그가 쓴 사부작 &lt;식도락&gt;.&nbsp; 양솽쯔가 일본에 친숙하니 틀림없이 무라이를 읽었을 터. &lt;식도락&gt;을 보고 타이완에도 일본과 비견할 만한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나도 한 번 써볼까? 더구나 무라이의 음식은 거의 다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일본식으로 다시 만든 것에 불과하니, 타이완의 유구한 세월을 버틴 음식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lt;식도락&gt;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셈량도 했을 수 있다. 여기에 시대가 다르니까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남진정책과 전쟁 등에 반대하고 양념처럼 페미니즘을 좀 뿌려주면 어떨까?&nbsp; 이런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했을까?&nbsp; 그런데 말입니다, 음악을 문자로 설명하기 쉽지 않듯이, 음식도 문자로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 독자가 알지도 못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글로만 읽어 감흥이 오겠느냐고? 양솽쯔도 무라이한테 배울 것이 하나는 있었다. 문자로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것을 짐작했다면, 무라이처럼 삽화라도 그려놓았어야지.&nbsp; 게다가 양선생의 글 자체가 가볍다. 좋은 말로 해서 그렇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30/cover150/k2520335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130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과한 베드씬과 서걱거리는 우리말 - [천년의 즐거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5825</link><pubDate>Sat, 09 May 2026 05: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58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29&TPaperId=172658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02/56/coveroff/8932044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29&TPaperId=172658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년의 즐거움</a><br/>나카가미 겐지 지음, 이정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br>&nbsp; 나카가미 겐지. 1946년에 일본 와카야마 현에 있는 피차별 주거지, 옛날 우리 말로 하자면 향, 소, 부곡 같은 곳, 카스트적 게토를 일컫는 ‘로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친부도 다른 지역의 카스트 게토, 부락 출신으로 주로 암시장에서 기생하는 깡패, 폭력배 비슷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카가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거야 뭐 우리가 알 필요 없지.&nbsp;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아이를 건설업자한테 데려가 양아들로 입적시켰는데, 이 양아버지가 부락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벌인 사업이 성공, 덕분에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락(위키피디아 용어), 즉 로지(부락의 부분 네트워크) 학생을 위해 중등교육 인센티브를 주었는데 이 인센티브를 제대로 활용한 첫번째 로지 아이였다고 한다.&nbsp; 와카야마 현의 부락에 자신의 이복형제가 많이 살고 있는 조상 대대로 천대를 받던 곳이라 그곳 소년들은 너무 일찍부터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이어서 외면받을 짓을 골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도 없고, 그래봤자 학생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받을 터이니 기껏해야 글을 읽고 쓰는 수준에 머물렀겠지. 작품을 읽어봐도 열다섯 살 정도가 되면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댐 건설 막일을 하거나 벌목공을 하거나, 도둑질 혹은 지역 깡패로 장사하는 소상공인으로부터 소위 보호비를 뜯어 술과 여성을 사고, 근근이 먹고 산다.<br>&nbsp; 소설집 《천년의 즐거움》의 ‘천년’은 당연히 정확하게 1,00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카스트적 게토인 피차별 지역 ‘부락’이 생긴 것이 천년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과 부곡이 삼국시대에, 소가 고려시대에 생겨 조선 초기까지 유지되었다. 향, 소, 부곡이 일본으로 넘어가 부락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아니라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nbsp; 주로 소가죽 무두질과 가죽 신발을 만들어 파는 (우리말로)갖바치, 그리고 고리버들 작업을 하는 (역시 우리말로)고리백정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부락은 메이지 유신 당시 차별을 법적으로 철폐하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메이지 일왕도 몰랐을 것이다. 차별 철폐에 열을 잔뜩 받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걸. 바로 보통의 농민들. 이들이 칼과 낫, 그리고 죽창을 들고 부락에 침입해 중인환시리에 부락 사람들의 배를 꿰어 죽이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질 것은. 부락 사람들은 그리하여 더 깊은 곳을 찾아 움막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이렇게 사건을 피해 작은 움막이 모은 골목을 ‘로지’라고 한 것 같다.&nbsp;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향, 소, 부곡이 조선시대 초기에 없어졌다지만, 아마도 임진왜란을 겪으며 사라진 것으로 추리하는 바, 그럼에도 짐승을 잡고 짐승의 머리와 발, 내장 등 부속물을 얻어 그것을 일반 농민들에게 팔아먹고 사는 백정, 백정에게 가죽을 얻어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 나무껍질로 광주리를 만들어 파는 고리백정들은 큰 마을의 변두리 지역에서 옹기종기 움막을 짓고 그들끼리 따로 살았으니 그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명희가 쓴 미완성 명작 &lt;혼불&gt;에 잘 나와 있다.<br>&nbsp; 이 로지에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부부가 있으니 레이조와 오류. 작품은 전부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때 부부는 벌써 늙을 만큼 늙은 상태이다. 아마도 메이지 유신 당시 농민들이 저지른 학살을 피해 이 로지로 피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1세대나 2세대의 후손 정도 되는 듯싶다. 남편 레이조가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로 먹고 살았다. 그러다 세 돌까지 키운 아들이 차에 쌀을 넣고 팔팔 끓인 죽粥, 자가유를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바람에 크게 화상을 입고 죽는 모습을 보고, 다음해 교토의 절로 중이 되기 위해 수행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스물세살의 오류는 동네의 유일한 산파를 하고 살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로지의 거의 모든 아이를 받았다.&nbsp; 로지에서는 생식 능력을 잃은 완숙한 여성을 ‘오바’라고 칭했지만, 유일하게 아이를 받는 오류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건만 탄생에 관계하는 일종의 삼신할매 역을 해서 그랬는지 오류에게도 오바의 칭호를 붙여 “오류노 오바”라 부르기 시작했다.&nbsp; 몇 년 후 쿄토에서 수행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 레이조는, 로지로 돌아와 게보즈, 정식 중은 아니지만 절과 중이 없는 지역에서 중을 대신해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제사를 바치는 대리 중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아내는 거의 모든 로지 사람들의 탄생에 직접 간여하고, 남편은 모든 로지 사람의 죽음에 관여하니, 원래부터 터줏대감 부부의 로지 내 신망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br>&nbsp; 이야기를 주로 오류노 오바를 중심으로 이 로지에서 가장 오랜 가문인 나카모토 집안 출신의 남자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로 전개한다.&nbsp; 나카모토 남자들은 원래부터 씨가 좀 남달랐다. 키가 크든지 몸이 단단하다. 피부가 맑다. 로지 출신만 아니라면, 그래서 더 잘 배웠더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는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오류노 오바는 생각한다. 그렇게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 고귀한 핏줄 속에 또한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고 있으니, 여자를 가리지 않고, 악한 일도 가리지 않는 것. 사실은 여자를 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살면서 주위를 보니까, 꽃이 아름다우면 벌과 나비가 꿰는 법인 것처럼, 벌 나비가 아름다우면 꽃도 꿰는 게 인생살이라서, 여성들이 잘 생긴 나카모토 남자만 보면 눈알이 커지고 콧구멍이 넓어지며 아랫배에서 찌르르르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거다. 하다못해 오류노 오바마저 자기가 직접 받은 다쓰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놈의 전류가 짜릿짜릿하게 흘러 직접 다쓰오를 자빠뜨린 적이 있었다는 거 아니냐. 동정인 줄 알았더니 오류 아줌마가 세번째 여자였다고 해서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nbsp; 고귀한 피와 엉겨 흐르는 더러운 피는, 먹고 사는 일에도 영향을 주어, 폭력과 살인, 도둑질, 주로 히로뽕인데 마약복용까지 망라한다. 오류노 오바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일을 하는 사람 답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이든 기형이든, 아니면 지체장애든, 범죄자가 될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야 좋은 것이고 씨를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카모토 집안의 남자들이 이런 일을 하고 다니니 제 명에 죽는 사람이 드물거나 없다. 그래 거의 전부 2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을 하는데, 그때마다 오류노 오바는 고귀하고 더러운 피가 스러졌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연작 단편들의 결말을 장식한다.<br>&nbsp; 부락과 로지라는 특수한 장소. 특수한 사람들이 특별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작업이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문제가 있다.&nbsp; 나카모토 남자들은 성적으로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아무래도 DNA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다. 손끝만 대도 여자들은 곧바로 엑스터시의 황홀경으로 빨려간다. 소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픽션이고 조금의 과장일 터이니 웬만하면 독자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도 나카가미 겐지의 성애 장면은 과하다. 나카모토 남자들의 방중 광경은, 표현의 노골성은 다음으로 하고 지독한 가학/피학이 넘쳐 변태 포르노의 혐의를 받아 마땅하다. 여성/남성을 끈으로 묶고 애무나 삽입을 하거나, 여성의 전신을 바늘 쌈지로 찔러 온몸에 흐르는 피를 탐하다가, 비록 여성이 그렇게 해달라고 피학적 성애를 원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면 같은 것, 시신을 자신이 어렸을 때 산속 정령을 목격한 소나무 밑에 땅을 파고 유기하며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환상문학 장면과 비슷하게 처리하려는 거, 이건 뭥미?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경계를 슬쩍 넘어버리고 시침 뚝 떼는 듯해서 눈살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 지고 말았다. 에로틱한 장면, 야한 묘사 좋아하는 나도 그럴 정도이니 점잖은 독자들이야 어땠겠느냐고.&nbsp; 다른 하나는, 우리말 문장이 좀 서걱거린다는 거. 역자 이정미는 2022년에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이 책을 번역했다. 이때 같이 선정된 작가들이 엘리자베스 캐스켈의 &lt;메리 바튼&gt;을 번역한 김정연, 그라치아 델레다의 &lt;바람에 흔들리는 갈대&gt;를 번역한 김효정이었다. 이 정도면 믿고 읽을 수 있는 역자라고 생각했건만, 놓친 것이 하나 있다. 이정미의 역서를 보니까 이 책을 포함해 모두 스물세 권인데, 《천년의 즐거움》이 유일한 문학 책이다. 즉 이정미는 《천년의 즐거움》으로 문학 번역 데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주식, 스포츠, 자기계발서 등등. 처음 번역하는 텍스트로 만연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길고 긴 문장의 작가를 고른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이를 지원대상자로 선정한 인천대 남상욱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라고 했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번역도 습작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독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순은 비슷하지만 같은 문장 속에 우리말 단어를 어떻게 배치할까, 하는 것을 조금 더 신경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자주 들었다. 단어 배치까지 일본어 순서를 따른 것처럼 읽힌다. 내가 뭘 아나, 그렇게 우리말 문장이 서걱거리니까 혹시 그런 거 아닐까 짐작해보는 것이지.&nbsp; 결론. 과한 베드씬 묘사와 서걱거리는 우리말 문장. 이것들 때문에 나름 독특한, 독특해도 많이 독특한 작품이 좀 바랬다. 그래도 외면할 필요 까지는 없는 작품.<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02/56/cover150/8932044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0256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나하고 맞지 않아서 아쉽지만 - [반가운 손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3993</link><pubDate>Fri, 08 May 2026 0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3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3567&TPaperId=17263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8/50/coveroff/k6920335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3567&TPaperId=17263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반가운 손님</a><br/>김지숙 지음 / 연극과인간 / 2025년 11월<br/></td></tr></table><br/>.<br>&nbsp; 김지숙이 좀 흔한 이름이라 혹시 헛갈릴 지 모른다. &lt;장수상회&gt;, &lt;바냐 아저씨&gt;, &lt;졸업&gt;을 공연한 유명 연극, 영화배우 1956년생 김지숙이 아니다. 아마 올해 나이 쉰여섯일 듯한 부산 출신 연극배우였던 이다. 단편영화를 하다가 마흔의 나이에 다시 부산으로 귀향해 연극 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딱 하나, 부산에 터를 잡고 가장 활발하게 연극판을 꾸리고 있단다. 원래 시, 소설 같은 것도 습작을 해, 부산 극작가 김문홍 문하에서 극작을 배우면서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희곡을 쓸 수 있었다고.&nbsp; 《반가운 손님》이 이이의 세번째 희곡집이다. 모두 다섯 편의 희곡을 실었다. 제일 앞에 “작가의 글”을 놓았다. 작가는 말한다.&nbsp; “이 책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nbsp; 이걸 읽자마자 곧장 책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더 읽는다고 아팠던 기억을 일컫는 문학적 ‘상처’를 파헤치겠는가 싶어서.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아픈 것도 싫고, 상처도 싫다. 거대한 비극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별로 기껍지 않다. 뒷방으로 찌그러졌으면 그저 세상 모른 척하며 조용히, 도서관에나 출근하면서 잔잔하게 숨쉬다가 그냥 그렇게 저물고 싶다.&nbsp;<br>&nbsp; 실린 작품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nbsp; &lt;매미가 운다&gt; ㅆㄴㄹ 드라마&nbsp; &lt;구워 먹을까요?&gt; 그로테스크 살인극&nbsp; &lt;반가운 손님&gt; ㅆㄴㄹ 드라마&nbsp; &lt;변신(變身), 변심(變心)&gt; 카프카 클리셰&nbsp; &lt;후두둑, 빗소리&gt; 그로테스크한 상처, 어쩌면 ㅆㄴㄹ<br>&nbsp;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 기호에 의해 말하자면, 즉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관계없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읽은 감상을 소개하면, 정말 안 맞는다.&nbsp; 표제 작품이며 소극장 이상의 무대를 전제로 쓴 것이 아마도 확실한 &lt;반가운 손님&gt;만 이야기해보자.<br>&nbsp; 1944년에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사치코. 화장을 해 분골을, 일본인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유골함에 담아 집에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80년의 세월이 지난 202X년 현재, 해방전에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달동네 산복마을의 노인 영숙의 집에 어쩐지 이 사치코의 하얀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일곱 살에서 한 살도 더 먹지 않은 어린 사치코가 연극의 첫 대사를 한다.&nbsp; “집 앞에 별이 한가득이다.”&nbsp; 달동네 산복마을. 하도 산비탈이라 영숙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항구에 정박했거나 예인을 기다리는 선박들의 불빛이 마치 별들처럼 빼곡하게 깜박거린다. 맞다. 사치코, 얘가 귀신이다. 그러니 첫 대사부터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nbsp; 산복마을도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황폐화하기 시작한 곳. 거주민들은 거의 영숙처럼 늙은이들이거나 싼 맛에 잠깐 머리 뉠 곳을 찾는 떠돌이 젊은이들뿐. 지금 산복마을에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들로 빈집을 개조하거나 비슷하게 변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인의 투자를 유치하려 해쓰고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사람이 담당 공무원인 주무관과 일본인 투자자 히로시.&nbsp; 히로시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할아버지가 식민지 조선에 와서 토지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다. 아버지 소년 시절에 아주 귀여워했던 동생, 그러니까 히로시한테는 고모뻘인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그만 일찍 죽어버렸다. 고모 죽은 다음 해에 일본이 패전을 해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됐다. 이때 아버지는 동생의 유골을 이 산복마을 어딘가에 두고 갔던 모양이다. 이후 일본에서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으나 결국 동생의 유골을 찾지 못했고, 죽어가면서 자기 아들 히로시한테 동생의 유골을 찾아 자기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해버렸다. 이런 몹쓸 늙은이같으니라고. 자기가 못했으면 말아야지 애먼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nbsp; 그래서 히로시가 아빠 죽어 장사 지내자마자 부산으로 날아와 옛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산복마을까지 기어올라와서 80년 전에 죽은 자기 고모의 유골을 찾으러 왔으니, 그 정성을 봐서라도 찾아주기는 해야겠지? 근데 등장인물이 바라는 걸 다 들어주면 현대 연극이 좀 덜 된 것 같기도 하고.&nbsp; 독자는 딱 안다. 어려서 죽은 히로시의 고모가 사치코인 것을.&nbsp; 사치코 귀신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영숙이나 기춘처럼 곧 죽을 늙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딱 한 명 등장하는 젊은 바리스타, 근데 웬 바리스타? 좀 난데없는 직업이기는 한데 뭐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하여간 한 방에 거금을 벌어 곧 늘 바라던 대로 산복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남게 되는 철우도 사치코 귀신이 눈에 보인다.&nbsp; 그저 그렇다. 모두 좋은 게 좋은 결말. 에필로그로 가면 귀신이 하나 더 늘어 둘이 된다. 누군지는 아시겠지? 강릉에서 왔지만 50년 동안 산복마을에서 살았으니 결국 부산 산복마을 토박이 귀신이 되는 영숙. 그리하여 마지막 씬은 감동이 이렇게 몸부림친다.&nbsp; “어둠 속에서 영숙(귀신)의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인다.”<br>&nbsp; 다시 말씀드리는 바이오니,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해 마구잡이로 쓴 독후감에 불과하다. 극작가 김지숙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쓴 것이니 절대 믿지 마시라.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고, 관람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라는 것이 세평이다. 이런 독후감밖에 남기지 못해 극작가에게 미안한 바도 크다. 김지숙은 앞서 이야기한 “작가의 말”을 이렇게 끝낸다.&nbsp; “저 역시 희곡을 쓰며 묵묵히 정진해 나아가겠습니다.”&nbsp; 나도 김지숙의 건필을 바라마지 않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8/50/cover150/k6920335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88501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수작이지만 추천하기 애매한 - [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1940</link><pubDate>Thu, 07 May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19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5289&TPaperId=172619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4/95/coveroff/k32213528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5289&TPaperId=172619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a><br/>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2025년 부커 인터내셔널을 받은 책. 대개 “수상작”이라 하지 “상 받은 책”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 책이 부커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최초의 소설집, 즉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nbsp; 1948년에 인도 남부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인텔리 여성. 지금 78세니까 이이가 젊었을 당시에 대개의 인도 또는 무슬림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즉각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라고 《하트 램프》에 여러 번 나온다. 간혹 결혼 대신 대학에 입학시키는 가정도 있었는데, 이 책의 작가 바뉴 무슈타크의 집안이 그러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행간에 무슈타크라고 대학 진학을 쉽게 한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집안 내에서 나름대로 다툼을 겪었으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을 거쳐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1970년대 후반 인도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한 저항문학 운동 ‘반다야 사히티야’에 참여했다. 반다야 사히티야는 인도의 하급 카스트, 여성, 노동 계급의 삶을 문학으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무슈타크가 비교적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정 출신이라 하지만 남아시아의 무슬림 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으로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터, 평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판이 제대로 깔린 것이었으리라.&nbsp; 48년생 작가는 당시 관습으로 보면 거의 할머니가 될 나이인 26세에 자유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다. 스물여덟 살에 아이를 낳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에 걸린 다음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편소설집 여섯 권, 장편소설 한 편,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을 냈다. 인도는 땅도 넓고 사람도 많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한데, 무슈타크는 작품을 칸나다 어로 써서 인도의 여러 지역 언어, 우르두어, 힌디어, 타밀어, 말라얄람어 등으로 알려졌다.&nbsp; 2020년대 들어와 무슈타크의 새까만 고향 후배 디파 바스티Deepa Bhasthi가 근 반세기에 걸친 무슈타크의 단편소설집 여섯 권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작품 열두 편을 골라 영어로 번역했고, 이것이 저 먼 잉글랜드의 책가게까지 알려져 2025년에 부커-인터내셔널을 먹게 된 거다.<br>&nbsp; 이 책이 다분히 페미니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무슈타크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입각해 작품을 썼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내가 읽기로 바누 무슈타크는 여성 소설가로서 같은 세대를 사는 여성들의 여러 모습을 소설로 그려냈다.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의 독자가 읽으니 사회와 종교, 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했는지가 드러나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nbsp; 작품들을 읽어보면 아마도 1970~80년대 남 인도, 그리고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독자마저 갑갑한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 촉감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목을 콱 조르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한 순간의 빛도 발견하지 못하는 질식 상태.&nbsp; 그러나 이런 것들만 들어 있지는 않다. 앞에서 말했듯 무슈타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 시절을 집중한 작품을 모은 것이 아니라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쓴 것 가운데 수작이라고 판정한 것들을 골라 실었으니. 그러니 여성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스토리가 다양하고 모두 나름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nbsp; 그런데 노작가의 평생 작업 가운데 좋은 것들만 골라 실은 소설집에 세계 유수의 상을 주는 건 반칙 아냐? 예를 들어, 아직 박완서 선생이 생존해 있다면, 그이의 작품 중 빼어난 것들만 골라 번역해 책을 만들면, 솔직히 우리끼리 얘긴데, 《하트 램프》는 게임도 안 될 거 같은데 말씀이지. 그렇다고 《하트 램프》가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재미도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수작秀作이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문화적, 지역적, 종교적 거리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읽어보시라 추천하기는 애매한 정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4/95/cover150/k32213528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4950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반스 선생.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9886</link><pubDate>Wed, 06 May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9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5794&TPaperId=17259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78/coveroff/k23213579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5794&TPaperId=17259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a><br/>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하이브리드라고 규정한다. 즉 그의 말에 의하면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자서전이 합쳐진 책이란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학의 하이브리드가 어떤 방식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 독자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될 일이다. 주로 나이 든 픽션 작가가, 결국 개(책에서는 루이라는 늙은 개)한테 주지 못한 버릇인 픽션을 조금 섞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책. 그래서 상당한 부분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 같고, 어떤 쪽에서는 자기 삶의 특정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br>&nbsp; 작중 화자 ‘니’는 작가 줄리언 반스이다. 대략 76세부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78세까지의 반스.&nbsp; 책의 초반을 끌고 나가는 주제는 불수의 자전적 기억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nbsp; 혈액암에 걸린 줄리언 반스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닥터 재키 한테 엉치뼈 위에 뻐근한 느낌이 들게 하는 마취 주사를 맞은 후, 작은 드릴로 척골에 구멍을 내고 골수를 채취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의사 재키가 하는 말에 따르면 예후가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암에서 나을 방법은 없고, 평생 암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암은 반스를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으며 반스가 죽어야 암도 사라질 것이라고. 즉,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혈액암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nbsp; 반스의 책을 몇 권 읽어 엽기적이고 극단적 관심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 닥터 재키가 &lt;브리티시 메디컬 센터&gt; 스크랩 글을 보내주었는데, 기사는 좌측 시상 후부 출혈성 뇌졸중을 겪은 45세의 남자 케이스가 나온다.&nbsp; 마르셀 프루스트가 침상에서 먹었던, 먹어도 참 변함없이 여러 번 먹었던 마들렌을 떠올리며, 이때도 마르셀이 한 번 마들렌을 연상하고 그것이 불수의자전적기억IAM에 의하여 기억 속에서 잠재하고 있던 거의 모든 마들렌 먹던 기억이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시 반스는 엽기적인 인간이니, 마들렌, 비스킷 또는 애플파이로 변화시키지 않고, 만일 사람이 소리 죽여 방귀를 뀌었는데 이 순간 IAM이 작동해 몸에서 새 나간 모든 방귀가 시간별로 상황별로, 냄새의 강약 별로 떠오른다면 어떻겠는가, 아니면 평생 먹은 베이컨 샌드위치가 날짜별로 휙휙 지나칠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진이 빠질지 상상해보란다. 이게 좌측시상후부에 출혈성 뇌졸중이 발병해서 생기는 일이라면.<br>&nbsp; 이 기사를 읽은 70대 중후반의 줄리언 반스는 혹시 자기 뇌에서도 이런 IAM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지금 출혈성 뇌줄중이 있는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노령의 초입에 들어선 독자 나도 마찬가지인데) 반스는 지금까지 먹은 모든 파이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한 순간들도 시간 순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고, 진심이든 아니든 “사랑해”라고 말했던 모든 순간, “사랑해”라고 말해야 했으나 말하지 못했던,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 저질렀던 모든 거짓말, 위선, 피할 수 있었던 또는 피할 수 없었던 잔혹, 매정한 망각, 시치미, 지키지 못한 약속, 언행불일치의 기록 같은 것들이 와장장창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nbsp; 반스는 이런 불수의자전적기억IAM을 스펠링을 조금 다르게 나열하여 I AM, 즉 자신의 현재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나는, 이게 나 한테만 일어나는 특수한 기억현상이 아니고 내가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표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고 조금, 아주 조금 안심했다. 왜냐하면 이런 IAM 현상은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을 위주로 연상을 시작하는데, 글에 관한 한 세계적 명성을 즐기고 있는 반스의 경우에는 글을 씀으로 해서 IAM을 다스릴 수 있지만, 나같은 범부는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과 자책과 죄의식 때문에 이게 뇌 속에서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육체적으로도 떨림 혹은 호흡의 아주 약한 불규칙, 어쩌면 혈류 속도의 경미한 이상 같은 현상도 생긴다.&nbsp; 누구나 가지고 있는 IAM,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머리글자. 이걸 수천년 동안 잘 써먹은 집단도 있다. 우리가 한 낱낱의 행동, 생각, 감정을 다,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죽은 뒤에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협박해 돈과 권력과 최고의 위세를 얻은 집단. 오랜 동안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죄의 기록, 목록은 성베드로의 외상장부에 새겨져 있지 않고 우리 자신의 뇌, 시상 후부에 담겨 있으며 그걸 열 수 있는 열쇠는 신경의학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안다.&nbsp; 새로운 궁금증. 그러면 이제 누가 하느님의 역할을 대신할까? 뇌수술 전문의? 신경분석학자? 천만의 말씀.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한테 역할을 맡기면 괜히 얻는 것 없고 돈만 깨진다.&nbsp; 여기서 마르셀 프루스트, (당연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그에 관한 반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나,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생략한다.<br>&nbsp; 대신 하이브리드라고 말했으니 반스는 실제 자기가 겪은 실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화이기는 하지만, ① 두 중심인물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② 이야기를 하려면 대부분 픽션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제공해야 했고, ③ 이야기의 시작과 끝만 실화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중간의 빠진 부분은 개략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20년 동안 금지, 타 대학 배경은 10년간 금지했으나 2004년 부터는 그걸 20년씩 더 연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옥스포드 출신인 줄리언 반스 입장에서,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적어도 40년 전에 시작한 사건/일화라는 뜻이겠다.&nbsp; 반스는 60년대 중반에 옥스포드에 입학했는데 당시 여학생은 16.1%. 성비가 5.26.대 1.&nbsp; 이때 반스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난다. 진과 스티븐.&nbsp; 스티븐은 반스처럼 중산계급 출신의 장학생이었지만 그는 장차 공무직 또는 경영 분야에서 일하려고 철학을 공부하며 뇌를 정리하고 있었고, 반스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더 진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철학과목을 듣고 있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아들들 답게 참을성 많고, 친절하고, 잘 파악되지 않는 명제나 이론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유분방함 같은 건 알지 못했다.&nbsp; 진은 처음에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두 남자 아이들과 달리 약간 더 화려하고 약간 더 불안정한 집안 출신이었다. 별거중인 부모 가운데 아버지는 애인이 있었고 집에서는 만날 말다툼이었다. 상황도 아슬아슬하고 이건 진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벌써 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로코에 가보았고 러시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스티븐과 반스 보다는 진취적이었다고나 할까?&nbsp; 셋 가운데 스티븐과 진이 드디어 사랑했던 모양이다. 반스는 다른 아가씨와 한 침대에 오르긴 했는데 하도 서툴러서 밤새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온 적 밖에 없었지만, 먼저 스티븐이 반스에게 와서 고백했다.&nbsp; “이제 결혼을 하든지 헤어져야 하겠어.”&nbsp; 진도 반스에게 와서 고민을 털어 놓았다.&nbsp; “이제 우리한테 남은 건 결혼하느냐, 아니면 헤어지느냐야.”&nbsp; 이들은 원만한 합의 하에 이별을 선택했고, 이후 몇 년간 전화, 우편 등으로 연락을 이어가더니 흐지부지 헤어졌다. 스티븐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 아내와 아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스티븐 혼자 잉글랜드에서 이것저것 하며 중산층 조금 윗길로 살아간다. 진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훼 회사를 차려 괜찮게 사는 평생 독신녀로 늙었다.&nbsp; 그러다가 반스를 찾아온 스티븐. 이제 반스에게 두 번째로 진과 만남을 주선하란다. 40여년 전에 그렇게 했으니 이제 한 번 더 못해줄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하지만 연락처가 없다. 전화번호 적어 놓은 건 벌써 번호가 바뀌었겠지.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인터넷 메일 주소를 찾았다. 반스가 힘을 보태 둘을 연결시켰고, 셋이 만나 적당한 시간에 반스가 자리를 피해주었으며, 이때부터 스티븐과 진은 로맨스 그레이, 늙은 연애를 꽃피우기 시작했는데, 아이고야, 마음은 20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나? 심지어 이미 70대 중반인 스티븐은 그때까지도 절륜한 전립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진 평생에 그런 밤은 또 처음 지내봤단다. 거 참 주책들이야.&nbsp; 하지만 쉽지 않다. 예전에 사랑을 쏟아주지 못한 스티븐은 늘 조금이라도 많은 사랑을 쏟아부으려 하고, 세상 살면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진은 그게 버겁다. 행복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한테만 골라 온다는 것을 이들은 몰랐고, 반스도 몰랐고, 나도 몰랐고, 세상 사람 거의 다 모른 채 그 자리를 오해 및/또는 착오에게 물려준다.<br>&nbsp; 이들의 결혼에 대표 증인으로 나섰던 반스는 이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 낯설지 않은 죽음. 그러나 자신의 작업을 중도에 죽음에게 뺏기기 싫어, 그럴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마음먹고 자신이 쓸 마지막 책 &lt;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gt;를 쓴다.&nbsp; 줄리언 반스답다. 팬으로 반스의 픽션은 거의 섭렵을 했으나 정작 더 이상의 픽션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들으니 섭섭한 마음을 피할 수 없다.&nbsp; 반스 선생.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안녕히<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78/cover150/k23213579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34784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결론, 우울하게 열린 - [아그네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8117</link><pubDate>Tue, 05 May 2026 05: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81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370&TPaperId=17258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7/72/coveroff/8954611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370&TPaperId=172581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그네스</a><br/>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5월<br/></td></tr></table><br/>.&nbsp; 빠른 63년생이라 토끼띠가 아니고 범띠인 스위스 남자.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3년간 견습회계사를 거쳐 정식 회계사로 5년 동안 일했다. 이 다음에야 나도 한 번 공부라는 걸 해볼까 싶어서 취리히 대학에 입학, 영어, 경영정보, 심리, 정신병리 등 다양한 학문을 접했다는데, 그러니까 뭐 하나 제대로 한 건 없었다는 뜻이다. 이게 바람직한 대학 학부처럼 보인다. 일단 다양하게 공부를 해보고 정말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보이는 학문을 골라 대학원에 진학해 열공모드로 한 5년 보내며 학위를 차근차근 따는 게 요즘 시대에 맞지 않나? 그렇게 한다면 학부 학생 전원의 90퍼센트가 법학이나 의학을 지망할 거 같은 음울한 상황을 예견할 수밖에 없어서 문제지만. 법과 의학을 뭐하러 공부하려는 지 모르겠어. 법 공부하면 도둑놈, 사기꾼, 살인자들과 만나야 하고, 의학공부 해 봤자 해골 같은 노인들이나 피, 고름, 똥밖에 더 보느냐고? 나는 내 새끼들한테 농부가 되라고 권했다. 현대의 농부. 네가 포함된 팀에서 개발한 것으로 국민들을 5년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자-농부가 되라고.&nbsp; 윽,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nbsp; 하여간 슈탐은 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뉴욕, 파리, 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잠깐 살다가 1990년에 스위스로 돌아와 프리랜서 기자와 작가를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스위스에서는 잘 나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제법 먹고 사는 모양이다. 2014년에 독일에서 무슨 문학상을 받은 것이 여태 이 양반의 가장 큰 자랑이고, 그 전해에 부커-인터내셔널 상 최종후보였다가 미역국 마신 걸로도 어깨에 힘주고 다닌다. 우리나라에는 이이의 우리말 단행본 네 권이 있는데 이 책을 포함한 세 권은 절판이고 문학과지성사에서 2023년에 낸 &lt;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gt;만 살아 남아 있다.&nbsp; 우리나라에서는 몇 달 전에 세상을 뜬 배우 윤석화가 워낙 강렬해서, 아그네스, 하면 그이가 주인공을 한 연극 &lt;신의 아그네스&gt;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긴 올드팬이나 그럴 지도 모른다. 윤씨가 공연했을 때를 알아보니까 1983년 실험극장에서이었다. 나는 못 봤지. 마빡에 작대기 두 개에서 세 개 달고 저 이동면 낭유리 늑대 우는 골에서 밤마다 빠따 맞으며 노예생활할 때였는 걸. 반면에 스위스 사람들한테 아그네스는 여성의 이름으로 굉장히 촌스럽거나 색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br>&nbsp; 짧은 장편소설. 본문이 203쪽에서 끝나고 해설도 붙어있지 않다. 좀 불친절한 느낌. 모두 36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새로 페이지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18페이지는 공란이다. 한 페이지가 겨우 열아홉 줄, 한 줄에 띄어쓰기 포함해 스물아홉 자 들어간다. 19행, 29자. 이 문둥이네 출판사는 19, 29. 소수를 편애하는 거 같다. 마음먹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어치운다. 팍팍 진도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거면 좋겠는데 뭐 그건 아니다.&nbsp; 지은이 슈탐처럼 주인공 ‘나’는 프리랜서 작가 겸 소설가로 보인다. 하여간 글 써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이름 좀 알려졌지만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알아보는 독자가 있을 정도는 아니다. 있기는 있겠지만 겨우 몇 명 정도. 스위스 사람이 시카고에 와 있는데 누가 알아보겠어? 여기서는 미국의 호화 여객열차 풀먼호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 갔다가 내 맞은편에 앉아 눈에 들어온 아가씨가 아그네스. 그게 작년 4월이었다. 여느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마르고, 키가 별로 크지도 않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갈색머리에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즉 매력있고 수수한 모습이란 뜻이다. 다음날에도 아그네스는 도서관 그 자리에 앉았다. 오래 책을 보다가 ‘나’와 함께 잠시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우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nbsp; 아그네스에게는 허버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연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 연극배우. 자기가 도와달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친구.&nbsp; 세번째 만난 날은 도서관 밖의 자판기 커피 말고 길 건너 ‘나’가 자주 가는 작고 초라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제서야 아그네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한다. 물리학 전공이며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란다. 논문은 “수정격자 대칭군의 대칭성”이라는 주제. ‘나’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25세이고, 시카고대학 수학연구소에서 시간제 조교로 일한다. 첼로를 연주하고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여성. 부모는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플로리다에서 연금생활자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시카고에 친구가 거의 없고 있다면 매일 만나 사중주를 연습하는 여자 세 명 정도.&nbsp;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말은 쑥스럽기도 해서 말하지 않았다. 아그네스의 무관심이 반갑기도 하고.<br>&nbsp;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 식당으로 가던 중에 인도 위에 한 여성이 누워 있었다. 아그네스 또래의 붉은 머리 아가씨. 창백하고 주근깨가 촘촘한데 ‘나’가 앉아서 들여다보니 무호흡이다.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가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요구해 알려주었다. 소방관이 도착해 여성은 이미 죽은 상태이며 아마도 자살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구급차에 실어 갔다.&nbsp; 식당에 들어가 만난 아그네스. 이이가 말한다.&nbsp; 나는 죽음이 두려워요. 언젠가는 죽겠지요. 누구나 그렇듯이.&nbsp; 죽어가는 과정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니까. 아직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 두려워요.&nbsp; ‘나’와 아그네스는 식당에서 나와 ‘나’가 사는 아파트 도럴 프라자 27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오랫동안 키스한다. 아파트에 들어와 처음 남자의 몸을 경험하는 아그네스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신발과 옷과 속옷을 벗는다. 아그네스는 며칠 후에 자기가 사는 작은 원룸에서 나와 이 아파트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아직 원룸의 기한이 남아 있어서 꼭 필요한 짐만 가져올 생각이다. 생전 처음 해본 섹스가 어떤 감각이었는지, 궁금해하지 마시라, 안 쓰여 있다.&nbsp; 사람이 함께 사는 일. 특히 성인이 된 후 계속 혼자 살다가 갑자기 함께 사는 일. 이거 생각보다 복잡하다. 아그네스는 ‘나’에게 자신과 사는 것을 소설로 쓰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쓴다.&nbsp; ‘나’는 아그네스를 사랑한다. 아그네스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자는 안다. 아그네스 역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그네스와 함께 스위스로 가서 살까? 미국 시민권이 없는 ‘나’는 시카고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언젠가는 가야 한다.&nbsp;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것이 4월이었는데 어느새 추수감사절과 할로윈이 오고, ‘나’와 아그네스는 한 지붕 아래서 사랑을 하고 몸을 나누며 생활을 소설로 써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와도 아그네스는 부모가 있는 집 대신 시카고에 머문다.&nbsp; 나이 좀 든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일이 생긴다. 아그네스가 피임약을 복용했지만 임신하고 만다. ‘나’는 당황한다. 아이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겨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린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그것을, 아그네스는 임신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랬는지, ‘나’가 진짜로 영원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 둘 다 자연스럽지만 서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커지고, ‘나’의 소설은 이제 ‘나’ 혼자 쓴다.&nbsp; 에잇! 어차피 절판이니 팍 말해버리겠다. 결론은 책의 첫 문장에 나온다. 괜히 모른 척 뜸들이지 않겠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nbsp; “아그네스는 죽었다. 한 편의 소설이 그녀를 죽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7/72/cover150/8954611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772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코로나, 결손가족, 외로움, 그리고 별 -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6326</link><pubDate>Mon, 04 May 2026 0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63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3477&TPaperId=172563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9/87/coveroff/k7928334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3477&TPaperId=172563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하늘에 별을 뿌리다</a><br/>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3년 04월<br/></td></tr></table><br/>.&nbsp;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작품의 분량을 7쪽에서 시작해 278쪽에서 끝내니 순분량은 270쪽. 평균으로 보면 한 작품이 대략 54쪽 정도. 자간과 행간이 널럴하고 활자도 커서 내 경우에 어제 오전 9시 15분경에 빌려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컵밥 먹고 좀 쉬어도 오후 1시50분 정도에 다 읽었다.&nbsp;다섯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 이들은 누구 하나없이 소위 결손가족이거나 결손가정에 가까운 처지이다. 이런 가정의 구성원이 마음 속에 잡다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흔히 사람들은 외로움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들의 특징이라고도 하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 역시 외롭고 우울한 성격도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처지에서 그것에 벗어나기 위해 작은 애를 쓰고 있다.<br>&nbsp; 첫 작품 &lt;한밤중의 아보카도&gt;는 일란성 쌍둥이 동생을 뇌출혈로 잃은 서른두 살의 여인 아야. 친한 쌍둥이 동생이 죽어서 갈팡질팡이다. 데이트앱에 접속헤 여러 남자를 만나봤는데 처음으로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아소라는 이름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만나 데이트 중이다. 앱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과 달리 만난 날로 곧바로 호텔에 가자는 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한테 일정한 거리감을 가진 친절을 유지하는 걸로 봐서 여자 경함이 미숙한 것도 마음에 든다. 애인은 아니지만 죽은 여동생 유미가 진지하게 사귀던 무라세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시간에 걸쳐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유미의 명복을 빈다. 유미가 죽은지 2년이 넘었는데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무라세는 자기 마음에서 유미를 보내주어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nbsp; &nbsp;프로그래밍을 하는 아소 씨는 COVID-19가 왔더라도 원래 하는 일이 자기 집이 사무실 겸 숙소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업무량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아진 듯. 그리하여 아소씨는 아야와 비해 훨씬 일을 많이 한다.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서 음식도 먹고 길을 걷고, 손과 팔뚝이 만지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는 약한 수준의 접촉도 힘든다. 그저 둘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기만 하면 삼십대의 사랑이 잘 유지하기 힘든 법. 이들도 그 정도는 알아 차를 타고 바닷가로 놀러 가기로 한다. 한밤에 공기 좋은 옥상에 앉아 하늘을 보며 이게 무슨 별자리의 어느 별, 견우별의 어떤 별, 저건 직녀별의 또 무슨 별. 이렇게 여름 또는 겨울밤의 대표적인 대 삼각형. 이런 것을 알아간다. 주로 아소 씨가 말한다. 도쿄로 돌아와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는 아소 씨.&nbsp; 아야는 아소씨와의 사이가 진전되지 않는 틈을 타, 이제 동생이 죽은 다음에도 아직 동생의 환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라세와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동안 자기의 머리 스타일이 동생과 비슷해진 것을 알고 원래 자기가 하던 짧은 머리로 깎고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동생을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된다. 그러나 동생이 떠난 자리에 언니는 들어가지 못하지만.&nbsp; 별자리를 가르쳐준 데이트 앱의 아소 씨는 소식이 없다. 자기와의 통신을 멀리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딱 이 때 도쿄 지하철에서 퇴근시간에 어린 아이가 지악스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인들한테는 이게 아주 질색이다. 에티켓에 크게 결례되는 일이다. 아야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쿠, 아소씨 옆에 아이가 앉아 있고, 아이의 다른 쪽에 젊은 여자가 또 앉아 있었다. 조카 또는 외조카일 수도 있지만 조카처럼 한 다리 건널 필요 없이 딱 아소씨와 많이 닮았다.&nbsp; 지하철이 멈춰 이들이 내리자 아야도 함께 내린다. 뒤를 쫓아가 아는 척을 한다. 여자한테 먼저. 일과 관련해서 저를 많이 도와주시는 상사분이예요. 아소씨, 올해에도 많은 지도 바랍니다.&nbsp; 이렇게 넘어갔지만 여간해 울지 않는 아야가 오랜만에 눈에서 소금물 좀 뽑았다. 그래서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도 두 병을 사서 조금 먹다가,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그만 동생을 놔주라고, 동생이 이제 하늘로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정 비슷하게 해댔다.&nbsp; 대답이 없던 무라세는 다음 날, 문자를 보내, 돌아오는 달에 한 번만 더, 늘 가는 작은 음식점에서 한 시간 동안 전에 늘 그랬듯이 동생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둘 다 그게 마지막 회동이 될 것임을 안다. 그래서 만나 음식을 먹고, 여전히 자잘한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아야가 밥값의 반 정도를 내고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무라세는 곧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빼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이고, 아야는 무라세가 보내준 흙으로 여태 수경으로 기르던 아보카도의 씨에서 난 떡잎 등을 분재할 생각이다.<br>&nbsp; 이런 거 말고도, 주로 이혼 가정. 영업사원과 통역원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바쁜 영업사원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시간이 많이 나는 오후 시간에 미국 남자를 만나 불륜을 갖게 되어 이혼한다. 전 아내는 딸과 함께 미국의 아이오와로 가버린 가정의 남자. 남자의 아파트 옆집에는 역시 이혼해서 딸 하나 키우는 싱글맘이 이사를 와 점점 친해지기도 하고, 후배의 소개로 괜찮은 학교 후배를 만나 좋은 관계도 유지하지만, 옆집의 싱글맘은 오랜 숙고 끝에 전남편과 다시 집을 합치는 것으로 정했으며, 그동안 학교 후배와는 싱글맘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라 자신이 연락을 멈춘 상태. 뭐 이런 이야기들.&nbsp; 지금 시절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나한테는 직접 와 닿는 점이 거의 없어서, 그냥 이런 시절을 보내는 세대도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감정밖에는 얻지 못했다.&nbsp; 이건 세대 차이이지 구보상의 글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 의견을 참고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공감하면서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볼 만도 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9/87/cover150/k7928334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4987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아하, 활엽수림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5628</link><pubDate>Sun, 03 May 2026 1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562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1871&TPaperId=172556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3/coveroff/893200187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nbsp; 그저 옛생각이 나서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들췄다. 책꽂이에 40년 꽂혀있던 묵고 묵은 시집. 생각나면, 혼술에 얼근해지면 한 번씩 들춰보려 했지만 사실은 여간해 다시 읽게 되지 않는 것이 책인지라, 그저 종이만 바싹 말라가던 시집.&nbsp; 이 가운데 &lt;활엽수림에서&gt;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nbsp; 여태 내가 즐겨 쓰고, 정말로 내 머리에서 만든 묘사인 줄 알았던 것들. 세상에나. 예컨대:<br>&nbsp; "비인칭 주어로 살다."&nbsp; "생을 탕진한 죄"&nbsp; "무작정 살다."<br>&nbsp; 이게 다 황지우가 쓴 시 &lt;활엽수림에서&gt; 딱 한 수에 몽땅 나오는 거였다. 고백하노니, 정말 내가 만들어 쓴 구절인 것으로 알았던 것. 그래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써먹던 구절이다. 웃기지? 앞으로 다시는 누구, 누구를 흉보지 못하리라.&nbsp; 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으니:<br>&nbsp; "새벽 기슭에 서서 부은 눈으로 눈 덮인 산을 멩하게, 바라보다."<br>&nbsp; '멩하게' 다음에 찍힌 쉼표 ","에 연필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은 스물네 살의 나.&nbsp; 옛 시집을 읽는 재미가 퍽 좋다. 아직도 외우고 있는 시 &lt;歸巢의 새. 2&gt;가 이 시집에 실린 거였구나. "지 울음이 들릴락말락한 까마득한 달팽이管 속으로 날아가부럿다."&nbsp; 시 쓰는 고단함을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br>&nbsp; &lt;같은 緯度 위에서&gt;의 11행에 "&lt;악으로&gt; 詩를 쓰는 것이 아니다."에는 또 연필로 의문문이 보태졌구나. "愕?, 惡? 또는 깡다구?"라고. 웃기고 재미있다.<br>&nbsp; 그래도 나 같은 잡것들한테는 아마도 이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lt;심인&gt;이었을 거다. 이거 한 번 올려보자.<br><br>&nbsp; 심 인<br><br>&nbsp;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nbsp;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nbsp;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nbsp; 829-1551<br>&nbsp;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nbsp; 돌아와서 이야기하자&nbsp; 어머니가 위독하시다<br>&nbsp; 조순혜 21세 아버지가&nbsp;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nbsp; 내가 잘못했다<br>&nbsp; 나는 쭈그리고 앉아&nbsp; 똥을 눈다&nbsp; (p.29 전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33/cover150/89320018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332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재미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 [맛]</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3238</link><pubDate>Sat, 02 May 2026 0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32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737699&TPaperId=17253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off/k0227376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737699&TPaperId=172532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맛</a><br/>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01월<br/></td></tr></table><br/>.&nbsp; 소설집 《맛》, 하면 팍 떠오르는 작가가 로알드 달 말고 뮈리엘 바르베리의 책 아니었나? 난 그랬는데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뭐. 나는 바르베리의 책을 읽고 왜 우리나라의 소위 맛 칼럼니스트라 일컫는 작자 황땡땡은 일천한 지식과 그렇게 하찮은 단어만 구사하면서 자칭 기고가寄稿家라고 떠들고 다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를 일컫는 지 아시겠지? 요즘엔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nbsp; 사실 소설집 《맛》이라면 바르베리 한 권으로 충분하다. 근데 왜 또 로알드 달의 작품집을 골랐지? 로알드 달이라면 재미있게 본 영화 &lt;찰리와 초콜릿 공장&gt;의 원작을 쓴 어린이 책 전문작가인 걸 번히 알면서 말이지. 다 이유가 있다.&nbsp; (이유? 나 중딩 1학년 때 골목길에서 친구하고 농담 따먹기 하고 있다가 걔가 뭐라고 헛소리를 하길래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대보라 했던 적 있다. 걔가 대답을 못하니까 내가 또 “아니, 처녀가 아이를 배도 이유가 있는 법인데 왜 말을 안 하느냐”고 했다. 이때 골목을 지나던 호호 할머니가 “처녀가 애를 배도” 운운하는 걸 우연히 듣고는 나더러 ‘배워 먹지 못한 것 같으니’ 어쩌고저쩌고 막 야단을 친 기억이 난다. 아이고, 그땐 그런 시절이었지.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독후감과 상관없이 한 번 지껄여봤다. 그 할머니는 벌써, 벌써 갔을 거다. 편히 쉬시기를.)&nbsp; 며칠 전에 읽은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lt;섬에 있는 서점&gt;에서 서점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A.J.가 특히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소설가 가운데 로알드 달을 여간 편애하는 게 아니었다. 로알드 달? 마흔 살이 넘은 인도계 미국인 A.J.가 좋아한다니 어린이 책 전문가 로알드 달이 아니라 틀림없이 단편소설가 로알드 달일 터. 당장 개가실 내려가서 고른 책 두 권 가운데 하나가 《맛》이었다. 다른 하나는 금요일에 업로드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집 《오블리비언》이고. 월리스가 에세이스트인 줄만 알았던 것처럼 달 역시 어린이 책 작가로만 알았으니 새삼스레 무식이 탄로난 순간이다.<br>&nbsp; 위키피디아에서 로알드 달을 검색하면 상당한 분량이 뜬다. 너무 길어서 인터넷 책방 알라딘에 실린 정보를 적당히 섞으면, 1916년에 돈 좀 있는, 아니다, 실수, 웨일스 카디프의 부유한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기숙학교인 랩턴 스쿨에서 지긋지긋한 시절을 보내고 아마도 (내 생각을 말하자면) 교육받는다는 것 자체가 지옥불에 타는 거하고 비슷한 느낌이 들어 더 이상의 공부는 작파하고 석유회사의 아프리카 지사에서 일했다. 랩턴 스쿨의 남학생 기숙사. 완전 정글이었겠지. 역시 영화로도 만든 달 원작의 &lt;마틸다&gt;가 이곳을 모델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nbsp;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달은 영국 왕립공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 비행 에이스Flying Ace의 명예를 얻었지만 크게 부상해 정보장교로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 후 중령으로 제대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나, 자기도 자신이 그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을 거다. 전세계에서 2억 권의 책을 팔았으니 인세로 한 권에 천원만 받았다 쳐도 2천억 원.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영화로 만들어 매출에 따른 배당까지 받았을 터, 그럴 줄 알았으면 중령 달기 전에 얼른 제대해 일찌감치 책이나 쓸 것을. 돈 버는 재주는 아빠를 닮은 게 확실하다.&nbsp; 책방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말한다.<br>&nbsp; “도박과 내기에 대한 집착, 속고 속이는 의뭉스러운 술수, 통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목표를 향해 놀라운 집념을 발휘하는 인물 등을 보여주면서 인간사의 미묘한 국면을 차근차근 밀도 높은 이야기로 조여붙이는 그의 솜씨는 결말에서 으스스한 반전과 다층적인 유머를 선사하면서 정점에 달한다.”<br>&nbsp; 책가게 소개글도 일종의 광고니까 위 인용문이 조금 과장은 되어 있지만 맞는 말이다. 다만 달이 1916년생이니 지금 독자들이 읽으면 달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느꼈을 반전과 다층적 유머를 좀 덜 진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소설집 《맛》에서도 달 특유의 것이 확실한 내기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발랑 까진 독자의 눈에 결론이 어떻게 날지 보인다는 것. 물론 훤히 보이지는 않지만 거의 예상대로 스토리가 진행된다.&nbsp;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롭지 못하다는 건 전혀 아니다. 무척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출판사 교유서가에서 달의 단편집 세 권을 냈는데, 올해 안에 나머지 두 권도 싹 읽을 결심을 하게 만들 만큼 재미있다.&nbsp; 재미를 가장 잘 보장해주는 건 역시 악당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아니면 적어도 원래 치려 하던 사기 행각이 실패하는 모습. 달이 내기 전문 작가이니만큼 선량한 내기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적인 내기라면 그게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소설 스토리가 될 수 없을 터. 책 속의 내기에는 빠짐없이 좀스러운 사기꾼이 등장한다. 아니면 달의 십대를 망쳐버린 랩턴 스쿨의 폭력적인 교장처럼, 영화 &lt;마틸다&gt;의 군복 입고, 위압적이고, 뚱뚱하고, 못생기고, 힘세고, 냄새나고, 고함치는 여자 교장처럼 잔혹한 남자이거나. 딱 한 번 잔혹한 악당이 승리하는 작품도 있지만 어떤 건지는 알려드릴 수 없다. 짧은 소설이라 제목이라도 노출하면 그대로 결말 자체가 드러나는 꼴이라서.<br>&nbsp; 예를 하나 들어보자. 첫 작품 &lt;목사의 기쁨&gt;에 나오는 주인공 시럴 워닝턴 보기스의 직업은 목사가 아니다. 목사 명함을 파서 뿌릴지언정 그냥 골동 가구 판매상이다.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차의 팬벨트가 끊어지는 바람에 들른 농가에서 첫 경험을 한다. 거, 야한 생각 하지 마시라.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거실에 대단히 훌륭한 고가구가 좋은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해서, 그게 명품인지 꿈에도 모르고 사는 여자한테 거의 헐값에 건네받아 무척 비싸게 팔아먹은 경험을 말하는 거니까. 빙고! 보기스가 속으로 이렇게 외쳤겠지. 그리하여 지도를 한 장 사서 이후 런던 인근의 시골지역을 정사각형으로 쪼개어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똑 같은 짓을 시작했다.&nbsp;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뭐 거의 비슷하게 시골 사람들이 보수적인 구석이 많다. 의심도 많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영국 국교회 목사 옷을 한 벌 지어 입고 자기가 목사인 척하는 거였다. 이 찌질한 보기스 사장의 철칙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철저하게 깎을 수 있을 때까지 깎아서 가장 싸게 가구를 구입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돈을 받고 파는 것. 그래서 시골 농가를 뒤지며 농부들한테도 마구, 마구, 또 한 번 마구 값을 후려친다. 그럴려면 농부의 집에 있는 가구가 아무리 명품 itself라고 하더라도 아주 하잘것없는 하품으로 말해야 한다.&nbsp; 그러다가 하루는 남자만 있는 농가에서 영국의 가구 장인, 마치 건축가 하면 크리스토퍼 렌을 떠올리듯,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가구 장인인 토머스 치펀데일이 자필로 써준 영수증이 첨부된 진짜배기 고가구 명품을 발견한다. 이 장면만 딱 써 놓으니 별 감정이 없겠지만 정말로 작품 전체를 읽어보면 이미 게임이 어떻게 끝날 지 눈에 훤히 보이는 걸 워쪄? 그래도 재미있는 건 또 어떻게 할 건데?&nbsp; &lt;목사의 기쁨&gt;에서는 한 찌질이의 사기행각만 이야기하는데, 역시 달의 진가는 사기를 포함한 내기에 있다. 미리 짜고 또는 알고 하는 내기도 있고, 상상이 힘든 내기도 있다. 아오, 정말 읽어보셔야 할 터인데. 오늘은 내가 약한 샘플만 소개하고 마는 거 같아서 이렇게라도 좀 더 보태야겠다.&nbsp; &lt;목사의 기쁨&gt;을 포함해 모두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다 재미있다. 물론 감동/동감하고는 다른 재미를 말한다.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래, 그지? 딱 재미만 생각하고 읽어도 좋은 건 좋은 거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150/k0227376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12420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제대로 골머리 썩이는 대박 - [오블리비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1745</link><pubDate>Fri, 01 May 2026 04: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17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636677&TPaperId=172517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81/3/coveroff/k4626366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636677&TPaperId=172517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블리비언</a><br/>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신지영 옮김 / 알마 / 2019년 10월<br/></td></tr></table><br/>.&nbsp;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알마 인코그니타 시리즈에서 나온 &lt;끈이론&gt;으로 처음 이름을 들은 후에 알마 보다 먼저 이이의 에세이집을 펴낸 바다출판사 표지로 얼굴을 익혔다. 면도를 하지 않아 고슴도치 털이 솟은 뺨과 턱, 그리고 이마를 넓은 스카프로 가린 안경 쓴 남자. 에세이스트인 줄 알고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갔다. 그러다가 새삼스레 이이의 작품을 뒤져 《오블리비언》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집이라는 걸 발견해 득달같이 읽은 것. 왜 이 시점에 월리스를 검색해보았느냐 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엄마를 둔 유대계 미국 작가 개브리얼 제빈이 쓴 재미있는 책 &lt;섬에 있는 서점&gt;에서 인도 출신 주인공이자 책 가게 주인인 A.J.가 한 출판사 영업사원 하비 로스가 죽기 전까지 하비와 더불어 책에 대한 깊은 대화를 많이 했는데 하비만큼 A.J.와 뜻이 같은 독자가 없었다는 거였다. 딱 한 명의 작품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쓴 &lt;끝없는 농담Infinite Jest&gt;만 빼고. A.J. 역시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건 하도 어렵고 길기까지 해서 일주일에 걸쳐 다 읽은 다음에 &lt;끝없는 농담&gt;이 후진 작품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일주일을 날려버렸다고 자백하는 꼴 밖에는 안 되는 셈이라 그렇단다. 반면에 하비 로스는 그냥 최고의 작품이라고 거품을 물었다나? 그래서 나도 &lt;끝없는 농담&gt;을 읽으려고 검색을 해봤더니, &lt;끈이론&gt;을 쓴 에세이스트 그 월리스가 이 월리스였다는 거 아냐?&nbsp; 책 읽는 것도 이렇게 꼬리를 문다.&nbsp; 어느 광고에서 &lt;내일 또 내일 또 내일&gt;이 21세기 좋은 책 100권 안에 든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읽다가 그게 재미있어서 개브리얼 제빈의 다른 책 &lt;섬에 있는 서점&gt;을 읽었는데, 이번엔 책 속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입에 침을 튀며 입씨름을 하는 작품을 검색해보고, 그 책이 없으니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을 꿩 대신 닭인 셈치고 골라 읽는 연쇄 책살인마?<br>&nbsp; 우리식으로 말하면 빠른 1962년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가운데 이름 포스터는 외갓집의 성씨를 가져온 거다. 나기는 뉴욕 북부에서 나고, 어린 시절은 엄마 아빠가 교수를 해서 먹고 사는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배너에서 자랐다. 거기가 어딘가 하면,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한 네댓 시간 운전하면 나올 듯싶다. 아빠가 일리노이 대학 샴페인-어배나 캠퍼스 철학교수, 엄마는 파크랜드 칼리지 영어교수. 괜찮은 집에서 자란 월리스는 청소년 시절에 지역 챔피언급 청소년 테니스 선수를 지낼 정도로 스포츠에 조예가 깊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이었던 듯. 대학에서는 영어와 철학을 전공해,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철학 교수들은 월리스가 철학자가 될 줄 알았고, 영어 교수들은 소설가가 될 줄 알았는데 결국 문학을 택한 우울증 환자. 공부 잘하면 뭐하니, 운동 잘 하면 뭐하고. 그냥 좀 찌질해도 우울증 같은 거 모르고 그저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마음으로 늘 웃고 사는 게 장땡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nbsp; 그리하여 이이는 평생 죽음, 특히 자살의 방법에 관해 뇌를 쓰다가 결국 2008년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바와 같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종결시켰다. 세상에 우울증 증세가 없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도 우울증 증세가 좀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딱 죽기를 결심하지 않을 수준 정도인 거 같다. 죽고는 싶은데 적극적으로 죽을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상태. 우울증이라고 다 죽어버리면 세상 인구 절반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여간 월리스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도 좀 오래 살면 좋았을 텐데.<br>&nbsp; 이 책은 그래서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제일 앞에 실린 &lt;미스터 스퀴시&gt;가 그렇다. 명색이 단편소설인데 순분량純分量이 104쪽에 이르고, 당신이 펴는 페이지에는 온통 한 가득 활자만 빽빽하게 들어차 여백 구경을 하기도 힘든다. 숱하게 쏟아지는 영어 알파벳 약자들의 파도에 한 번 휩쓸렸다 하면 하다못해 몸을 의지해 떠내려가고 싶은 판자때기도 한 조각 발견하기 쉽지 않은 진퇴양난.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하루 종일 이 책 껴안은 채 기껏 104쪽 읽고 퇴근했다. 그래, 그래. 중간에 CJ컵밥 철판김치볶음밥 하나 까먹었다. 이 책에 별점을 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 과실로 하나를 감할 수밖에 없다.&nbsp; &lt;미스터 스퀴시&gt;는 리즈마이어 셰넌 벨트 광고회사 19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리즈마이어 셰넌 벨트가 근 몇 년간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어온 최첨단 시장조사기관인 ‘팀Δy’의 포커스 그룹의 회의를 하는 이야기이다. 근데 아쉽게도 35년간 회사 사무실밥을 빌어먹었어도 이들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뇌 세포가 뒤틀리다가 나중에는 비틀리면서 머리 가죽과 두개골 사이의 막이 막 당기는 듯한, 말하자면 편두통 증세까지 생기는 것이었으니, 편두통을 참으며 중간에 세 번 오줌 누고, 물 마시고, CJ컵밥 철판김치볶음밥 한 번 먹었더라도 그것 빼고는 줄곧 딱딱하고 찬 의자에 앉아 혹시 치질 도지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까지 하면서 꾸역꾸역 읽었더니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한 시간에 스무 페이지도 읽지 못할 정도였으니 에휴, 젊어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지금 못해도… 주접을 떤다, 주접을.&nbsp; 소설집 《오블리비언》의 제일 앞에 이런 고난도 작품을 배열한 이유는 뭘까? 일종의 액땜? 이걸 견딜 수 있는 자들만 다음 작품을 읽기 시작하라는 경고? 아이고,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제일 재미있고 길지 않은 작품을 제일 앞에다 배열하고 &lt;미스터 스퀴시&gt;는 저 뒤에 가져다 놓겠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다가 팍 질리지 않아, 거 재미있군, 이러다가 끝판 가서 제대로 뒤통수 한 방 맞지. 그러면 다만 몇 권이라도 더 팔릴 거 아니냐고. 보아하니 책 또는 실린 작품들의 질에 비해 별로 팔리지 않는 것 같더구먼.<br>&nbsp; 나도 &lt;미스티 스퀴시&gt; 읽고 질려서 그날 쐬주 한 병 까고 말았는데, 쐬주 한 병이 발렌타인 세 잔을 보태게 만들어 다음날 숙취에 절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아니면 또다시 《오블리비언》을 읽을 생각으로 잔뜩 겁에 질려 그러했는지 떨리는 걸음으로 도서관 사물함에서 《오블리비언》을 꺼내 드디어 두번째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뭐야, 심지어 재미있잖아? 제목은 &lt;영혼은 대장간이 아니다&gt;.&nbsp; 고등학교 교실을 무대로 한 작품인데 이걸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트래저디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nbsp; 일찍이 ‘나’는 프랭크 캘드웰, 크리스 드매테이스, 맨디 블램과 함께 ‘무자각적 인질 4인방’이라 불리게 된 교실에서의 사건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화자 ‘나’는 나중에야 공부를 잘 해 대학 교수도 되고 철학자 비슷한 소설가도 되고, 인생이 무상하여 46세 되는 해에 자살해버릴 정도로 천재 비슷하지만, 당시엔 집중력 부족과 산만한 성격 때문에 교실에서도 창가에는 절대 앉히지 않는 문제 학생이었다고. 그런데 교사 한 명이 임신과 출산 때문에 휴직하고 대신 들어온 소위 기간제 교사가 ‘나’에 대해 잘 몰라 ‘나’를 창가에 앉히고 말았다. 학교가 아마추어 야구장과 멀지 않은 이유로 가끔 공이 날라오거나 길거리 애들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일이 많아 그걸 방지하느라 상대적으로 좀 덜 촘촘한 철망을 유리에 덧댔는데, 독자가 척 봐도 머리 좋아 앞으로 대학교수도 하고 철학자겸 소설가도 될 ‘나’는 철망의 작은 사각형 하나하나마다 무슨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nbsp; 짓궂게도 처음 창밖으로 본 장면이 큰 개와 작은 개가 교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진행과정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일이었지만, 점점 규모가 커져 카오스의 경지에 이른다. 왜 ‘무자각적 인질’이라 했느냐 하면, 기간제 교사께서 일종의 발작을 해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한꺼번에 교실을 탈출할 때, 좀 덩치가 작은 학생 몇 명이 넘어져 넘어진 학생을 마구 짓밟으면서 탈출해야 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리에서 광경을 멀거니 바라다만 보고 있던 네 명의 찌질이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상황을 보면 얘네들 역시 얼른 위험을 피해 달아나야 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br>&nbsp;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건 맞는데, 그래도 좀 아쉬운 게 있다. 나름대로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말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다시 한번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고 혹시 불면증이란 것이 생긴다면 불면의 밤을 하얗게 새우지 말고 이 책이나 읽으면서 키득거리는 것도 아주 훌륭한 방법이 될 듯하다. 늘 침대 탁자 서랍에 넣어두어도 좋을 책.&nbsp; 이렇게 말한다고 이 책이 사람을 침잠시키거나, 안정시키거나, 수면에 도움을 줄 정도로 지겨운 책이란 말은 아니다. 어차피 잠 못 자는 밤, 엣다 모르겠다, 그냥 제대로 골머리 한 번 썩여보자는 것이지.&nbsp; 그러면서 한 편으로 우울한 책. 조심해서 읽어야 할 독자도 분명히 있을 터. 그런 사람은, 접.근.금.지.&nbsp;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대박!<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81/3/cover150/k4626366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081035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한테도 냄새나는 줄 모르고 - [태초의 냄새]</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8071</link><pubDate>Thu, 30 Apr 2026 04: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80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936282&TPaperId=172480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3/85/coveroff/k5629362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936282&TPaperId=172480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태초의 냄새</a><br/>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br/></td></tr></table><br/>.&nbsp; &lt;새해연습&gt;을 재미있게 읽어 김지연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근데 이번에 또 이이를 고른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고, 작가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백땡땡하고 헛갈려서 고른 책이다. 즉 백땡땡을 읽으려 도서관에 갔다가 백땡땡인줄 알고 김지연의 &lt;태초의 냄새&gt;를 가져왔다는 것.<br>&nbsp; 냄새 이야기. 이 감각을 우리말 “냄새”라고 하면 보통 악취를 연상한다. 좋은 쪽으로 냄새는 “향기” 또는 “방향”이라 표현한다. 꽃냄새하고 꽃향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이번달에 쓴 독후감에 한 번 이야기했듯이 알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영화의 제목을 &lt;여인의 향기&gt; 대신 &lt;여인의 냄새&gt;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보통 ‘냄새’는 안 좋은 상태를 드러낼 때 쓰는 단어로 추락했다. 똥 냄새, 겨드랑이 냄새, 쓰레기 냄새, 땀냄새, 배꼽 때 냄새. 또 아랫도리에서 나는 오징어 꼬랑 냄새 등등.&nbsp; 김지연의 &lt;태초의 냄새&gt;도 이런 의미에서 제목부터 뭔가 더러운 감각을 포함하고 있다. 근데 앞의 단어 “태초”에 워낙 무게가 있어 독자가 잠깐 잊고 있게 만들 뿐.&nbsp; 냄새를 맡지 못해도 문제다. 비염이 극심해 후각을 상실한 사람도 있다. 나도 봤다. 그가 말하기를, 아주 독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가도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다.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지독한 암모니아 가스 때문에 눈이 지물거리기는 해도 냄새는 안 난다나? 염병할 거, 좋기도 하겠다. 근데 음식 맛은 또 기가 막히게 알던걸?<br>&nbsp; 최근 세계사 적으로 세계인들의 후각이 잠시나마 멈춘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발생해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진 COVID-19. 코로나 감염의 대표적인 후유증이 일시적인 후각 상실이었다. 심한 사람은 미각도 상실했다던데. 난 코로나 걸려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며. 김지연이 여기서 힌트를 받은 모양이다.&nbsp; K. 어린시절 집안이 쫄딱 망했는지, 부모가 점점 원수지간이 되어 그랬는지 K는 오랫동안 시골/산골의 외갓집에 맡겨졌다. 어릴 때부터 냄새에 민감했던 모양이다. 무당벌레처럼 반들반들한 겉껍데기를 가진 곤충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지그시 눌렀을 때, 곤충이 버둥대며 몸이 터지면서 체액이 비져나와 풍기는 냄새. 이 계집 아이는 그런 냄새에 익숙했다. 곤충만 보면 눌러 죽이고, 개울 속 도롱뇽 알을 보면 흙 위로 집어던져 바싹 말려 죽이던 K. K가 P와 함께 캠핑을 왔다. 캠핑을 간 게 아니라 “왔다”라고 했으니 작품은 현지에서 벌어진 일이다.&nbsp; 원래는 K하고 P는 태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제 비행기만 뜨면 되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비행기는 뜨지 않았고, 설상가상 P가 감염이 되어 자가격리를 거쳤으며, K는 P가 격리기간을 끝내자 뒤따라 감염됐다. 그것도 P는 재택근무 중에. 회사의 팀장은 뭐라 생각했을까? 병 걸리지 말라고 재택근무 시켰더니 덜컥 걸려? 그것 참. 하여간 그래서 P는 괜찮은데 K가 냄새 감각에 문제가 생겼다.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나면 또 무슨 조치/검사를 받아야 했던 모양이지?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즉 K가 코로나를 끝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P와 함께 비 오는 바닷가 캠핑장으로 1박2일 여행을 왔다.<br>&nbsp; 처음부터 냄새 타령이다. K와 P가 차의 트렁크에서 와인을 꺼내 캠핑용 스테인레스 와인 잔에 따라 마신다. P는 혹시 운전할 일이 있을 지 모르니까 K만 마신다. 와인에서 K한테 익숙한 죽어가는 곤충의 냄새가 난다. 차 안에서 마신다. 비 오고 바람부는 날. P의 선배한테 빌려온 텐트 속에서는 쉰내가 심하게 나서 아무래도 차에서 자야할 거 같다. 싸구려 와인 냄새, 곤충 몸 터지는 냄새, 텐트 속 쉰내. 냄새, 냄새, 냄새.&nbsp; K의 외할머니가 말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기 마련이라고.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nbsp; 냄새를 말하는 자. 좀 웃기다. 자기한테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처럼.&nbsp; 태초에 냄새가 있었다. 그게 어떤 냄새였을까? 기억 속 할머니가 말한다. 정말 고약한 냄새겠지.&nbsp; 김지연의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lt;새해연습&gt;에서 나오는 글 좋은 일기를 백권 넘게 남긴 할머니? 지독한 냄새를 피우며 태초가 생겼을 거라 생각하는 할머니? 다 합하면 사람 사는 일, 그게 일기이거나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거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다 간 할머니? 설마.<br>&nbsp; K와 P는 장거리 연애중이다. 태국에 가지 못했으니 짧게 여행이라도 해야 한다고 해서 아직 여행할 수 있는 법적 조건에 맞지는 않지만 P의 선배한테 텐트 빌리고, 오빠한테 차를 빌려 K가 사는 도시 근처 해변에 온 거다. K는 원래 S의 애인이었다. 셋이 친했는데 둘은 연인이었고 셋은 친구였다. 그러다가 S가 5년 전에 죽었다. 흠. 코로나는 2019년. 5년 전인 2014년에는 세월호인데. 또? 어제 읽은 &lt;섬에 있는 서점&gt;의 주인 AJ처럼 나도 “큰 규모의 심각한 비극에 관한 소설”은 마뜩찮건만….&nbsp; 근데 아니다. 그냥 죽었다. 그 후에 자연스레 P가 S의 자리를 대신했다. 아직 S의 기일이 오면 K는 P와 함께 그의 납골묘를 찾는다. 그건 그거다. 즉 S는 그냥 쓸데없이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진다.&nbsp; 잠깐 텐트에 가보니 텐트 안에 뱀이 한 마리 들어와 있다(웃긴 장면이다). 기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뱀은 여간해 나가려 하지 않는다. 김이 팍 샌 둘. 이들은 이미 컴컴해지기 시작한 해변에서 드라이브를 선택한다. 와인을 마시지 않은 P가 운전을 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조명이 하나도 없는 건물을 발견해 그쪽으로 향한다. 가서 보니 10층 아파트 건물. 공사를 하다 중간에 그만 둔 을씨년스러운 흉물. 지방도시에서 간혹 볼 수 있다.&nbsp; 건물 앞에 차를 세운 P가 건물 7층에 올라가보잖다. 미쳤다. 저녁이라 컴컴하면 건물 속은 깜깜할 테고, 아직 내장은 손도 대지 않았을 터이니 계단 손잡이도 설치되지 않아 발 한 번만 삐긋해도 그냥 아래로 떨어질 것인데 거기를 여자 둘이서 올라가보자고? 소설이니까 가능한 거라고? 그렇게 우기지 마시라.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까 이렇게 무리를 하는 거다. 그래야, 딱 7층까지 가야 거기서 비닐을 깔고 자는 남자 고등학생을 만날 수 있으니까. K나 P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 고등학생.&nbsp; 사건이 터질 거 같지? 걱정하지 마시라. 안 터진다.&nbsp; 대신 엉뚱하게 K가 고딩한테 묻는다. 배 안 고프니? 밥 먹을래? 이것도 좀 웃기지 않아? 당신 같아도 기꺼이 그렇게 할 거 같나? 나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nbsp; 한 번 더 겁나게 웃긴 게, 고딩이 배달하는 친구한테 주문해 득달같이, 7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것보다 빨리 건물 앞에 곱도리탕을 가져다주고, 그걸 들고 다시 해변으로 와서 먹는다. 그 새 텐트 안의 뱀이 사라졌고, 코로나로 자가격리 기간임에도 방이 하나라 집에 있을 수 없어 폐건물 7층에서 혼자 자던 고딩 아이가 잠깐 텐트 안에서 자다가 집에 간다.&nbsp; 그러다가 갑자기 악취 속에 빠져버리는 K. 작가 천희란은 작품해설에서 좋은 말을 좌르륵 해 놓았지만 나는 작품은 물론이고 작품 해설조차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먹지 못하겠다. 그래서 뭘 주장하는 거야? 어쨌거나 다음엔 꼭 백땡땡을 읽어봐야지. 다음번 책이 백땡땡이라는 게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3/85/cover150/k5629362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63856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책방 없는 곳은 사람 사는 데가 아니야 - [섬에 있는 서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5250</link><pubDate>Wed, 29 Apr 2026 05: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52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8304&TPaperId=172452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67/57/coveroff/895464830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8304&TPaperId=172452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섬에 있는 서점</a><br/>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br/></td></tr></table><br/>.&nbsp; 아쉬케나지 유대인 아빠와 한국인 이민자 엄마 사이의 77년생 외동딸. &lt;내일 또 내일 또 내일&gt;이 재미있어서 두 번째 제빈을 골랐다. &lt;내일 또 내일 또 내일&gt;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제빈처럼 유대인 아빠, 한국인 엄마 사이의 외아들이었는데, &lt;섬에 있는 서점&gt;의 남자 주인공은 인도계 미국인, 여자 주인공은 흔히들 백인이라 부르는 종족. 이들이 키우는 입양아는 흑백 혼혈. 역시 복잡하다.<br>&nbsp; 책은 여자 주인공 어밀리아 로먼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나이틀리 출판사의 영업사원. 전임자 하비 로스가 죽어 그의 후임으로 들어왔다. 신입인지 경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연봉 3만7천달러에 성과급 보너스 별도 조건으로 도장 찍었다. 문제는 성과급 받는 직원이 이 업종에서 나온 지 한참 됐다는 것이지만. 그리하여 올 겨울 출판 기획에 관한 팜플렛과 가제본 몇 권을 들고, 이걸 다 넣은 숄더백의 무게가 20kg을 가볍게 넘지만 워낙 건장한 에밀리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보스턴에서 기차를 타고 와 다시 페리로 갈아타 도착한 앨리스 섬의 유일한 서점인 “아일랜드 서점”에 도착한다.&nbsp; 아일랜드 서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연매출 35만달러 대부분이 피서객 몰리는 여름철에 집중되는 17평 정도의 2층 책가게다. 1층은 책방과 카운터, 사무실. 2층은 주인 AJ의 생활공간. 이름하여 주상복합? 근데 책방이 조그맣고 까다로운 서점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씩씩한 서른한 살의 긍정왕 어밀리아, 에밀리는 특별히 까칠한 주인에게 강점을 가졌다고 자평한다. 소설 속에서 에밀리의 휴대폰을 제일 먼저 울리게 한 남자는 보이드 플래너건. 온라인 소개팅 사이트에서 만나 잘 안 된 세번째 남자다. 그가 제안한다. 다시 만날래요? 보이드는 오래된 것, 골동품, 집, 개, 사람을 싫어한단다. 이것 빼고는 자기하고 맞는 거 하나도 없는 남자. 에밀리의 신념은 감수성과 관심사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과 살 바에는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인데 보이드가 딱 그런 사람이다. 이 말을 독자에게 하고 싶어 보이드를 출연시켰다. 당연히 독자는 이후 보이드의 꽁무니도 구경할 수 없다.<br>&nbsp; 아일랜드 서점의 주인 AJ 피크리. 인도 사람의 경우에 이름이 하도 복잡하고 길면서 발음하기도 어려워 그냥 A.J. 이렇게 쓰는 것이 훨씬 좋다. 나는 A.J.도 귀찮아서 점 안 찍고 그냥 AJ라고 하겠다.&nbsp; AJ. 39세 홀아비.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중에 대학원생 니콜을 만나 서로 사랑했다. 사랑이 지극했다. 하루는 니콜이 AJ에게 자기가 태어나 대학입학 전까지 자란 고향, 앨리스 섬에 들어가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뭐 해서 먹고 살려고? 섬에 책방이 한 군데도 없거든. 책방이 없는 곳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고. 영문학 박사 지망생이었던 AJ가 생각하기에 그럴 듯한 말이다. 이 말이 어느 책 속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lt;섬에 있는 서점&gt;에 쓰여 있다. 근데 잊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AJ가 서점 주인을 하면 평생 책을 읽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은 일단 결혼하고, 니콜이 부모에게 유증받은 돈도 보태 작은 책방을 열어 섬에 들어와 살게 된 것.&nbsp; 근데 니콜이 죽었다. 21개월 전에 작가의 날 행사를 하고 작가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오다가 마지막 페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과속을 했든지, 길가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사슴을 치지 않으려 핸들을 꺾었는지 그 추운 겨울날 차가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을 깨고 처박혀버렸던 거다. 임신 2개월이었던 니콜이 운전한 차가.&nbsp; 이제 홀아비가 된 AJ. 도무지 혼자 서점을 운영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 여고생 몰리 클럭을 들였다. 성실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전혀 물건을 훔쳐가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언정. 작가 초청 행사 같은 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니콜이 살았을 때처럼 독서클럽 운영 같은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성격은 더욱 까칠해지기만 했고 음식은 인도인이니까 주로 즉석 카레 같은 가공품이나 냉동식품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는 수준이었다. 대신 다량 복용, 섭취한 것이 신의 눈물, 술이었다. 주종 불문, 청탁淸濁 불문, 강약 불문. 그래서 척 보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br>&nbsp; 하필이면 첫 출장지로 고른 책방이 이런 곳이니 에밀리 팔자도 참.&nbsp; 에밀리가 명함을 내밀자마자 AJ가 대꾸하기를, 하비는 어디 갔소? 죽었는뎁쇼. 죽었다? 몰랐네. 어찌 전화 한 통 없었을까? 온라인에도 게시했고, 메일도 보냈을 겁니다.&nbsp; AJ는 메일 같은 건 아예 읽어보지도 않고 지워버린다. 니콜이 죽은 다음부터 늘 그렇다. 에밀리는 몰랐겠지. 하비 로스로 말할 거 같으면 6년 동안 그가 이 책방에 들를 때마다 몇 시간씩 함께 책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AJ와 완전히 취향을 공유했던 유일한 사람이 하비였는데 그가 죽었으니 심통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걸 어밀리아 로먼, 에밀리가 알 턱이 없다. AJ와 하비가 공유하지 못한 유일한 작품이 데이비드 토스터 윌리스의 &lt;한없는 웃음거리&gt;. 이 문단을 읽은 순간 나는 허겁지겁 나 사는 도시의 다른 도서관에 그의 작품집 《오블리비언》을 상호대차 신청해 지금 읽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에밀리는 영업을 시작하지만 AJ의 입에서는 거친 말만 쏟아진다.<br>&nbsp;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걸 말하면 어떨까요? 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종말물, 죽은 사람이 화자거나 마술적 리얼리즘을 싫어합니다. 딴에는 기발하답시고 쓴 실험적 기법, 이것저것 번잡하게 사용한 서체, 없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삽화 등 괜히 요란 떠는 짓에는 근본적으로 끌리지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나 뭐 그런 전 세계적 규모의 심각한 비극에 관한 소설은 다 마뜩찮더군―부탁인데 논픽션만 가져와요. 문학적 탐정소설이니 문학적 판타지니 하는 장르 잡탕도 싫습니다. 문학은 문학이고 장르는 장르지, 이종교배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는 경우는 드물어요. 어린이책, 특히 고아가 나오는 건 질색이고, 우리 서가를 청소년물로 어수선하게 채우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사백 쪽이 넘거나 백오십 쪽이 안 되는 책도 일단 싫어요.<br>&nbsp; 뒤로 더 이어지는데 다 인용했다가는 저게 지금 독후감 쓰기 싫어서 이 지랄이지, 이런 말 들을까봐 여기서 멈췄다. 근데 이어지는 것 중에서 중요한 게 하나 빠졌으니 “난 무엇보다 말이죠, 별볼일 없는 노인들이 별볼일 없는 자기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고 끼적거린 얄팍한 회상록은 도대체 참을 수가 없더군요.”라고 말한 것이 있다.&nbsp; 크. 정곡을 짚었다. 어밀리아가 아일랜드 서점에 오면서 적극 추천하려고 했던 책이 자기가 읽으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던 &lt;늦게 핀 꽃&gt;이란 건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일흔여덟의 나이에 결혼해, 2년 후에 암에 걸린 아내를 보낸 남자의 회고록이었던 거다.&nbsp; 어떻게 됐을 거 같은가? 당연히 거의 쫓겨났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뭔가가 있을 거 같은데 하도 오래 어밀리아가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아 역시 엑스트라였나? 싶은 즈음에 AJ가 어밀리아에게 앨리스 섬에서 두 번째로 근사한 해물전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대접하기에 이르니 바로 우연히, 정말 우연히 &lt;늦게 핀 꽃&gt;을 읽은 다음이었던 거다. 근데 그건 그거고.<br>&nbsp; AJ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보물이 하나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18세 때 처음으로 출간한 익명 시집 《태멀레인》 초판. 딱 50부만 찍어 이것처럼 표지가 멀쩡하면 적어도 4십만달러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걸 유리 금고에 보관해 지금처럼 잔뜩 취한 상태에서 가끔 꺼내 별로 잘 쓰지도 못한 시를 읽어보는 걸 낙으로 삼았다. 혼자 살아봐라. 자기가 싼 똥은 반드시 자기가 치워야 하고, 속상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nbsp; 이날도 어밀리아를 보내고 잔뜩 취해 곳곳에 구토를 하다가 시집을 꺼내 몇 수… 읽기나 했나, 그냥 쳐다보고 말았겠지, 금고를 닫지 않고 자빠져 자버렸다.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누군가 서점에 들어와 AJ 본인이 벽에다 집어던진 카레 먹던 거, 구토 토사물 같은 걸 깨끗하게 치워놓고 그 값으로 그랬는지 《태멀레인》을 훔쳐가버렸다. 곡소리 났겠지? 조만간에 그것도 팔고, 서점도 팔아 따뜻한 플로리다쯤에 가서 편안하게 죽으려 했건만.&nbsp; 대신 누군가 어린 갈색 천사를 책방에 두고 갔다.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시설로 보내려다가 아이가 너무 예뻐서 AJ가 직접 키우기로 했는데, 앨리스 섬의 착한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 책방에 오면 그냥 오나, 책도 한 두 권씩 사가기 시작했다. 이건 크고 작은 여러 도서모임 결성으로 이어지고, 당연히 독서회도 이 아일랜드 서점에서 열리게 되는데, &lt;늦게 핀 꽃&gt;으로 인연이 이어진 어밀리아 로먼, 그리고 나이틀리 출판사의 책들도 많아지면서, 일이 점점 커지게 된다. 당연히 사랑도 싹이 트다가 점점 커지고, 우리의 어린 갈색 천사, 이름을 마야 태멀레인 피크리로 지은 갈색 천사도 점점 성장해가며 아름다운 앨리스 섬, 아름다운 주민, 아름다운 서점, 아름다운 가족을 이룬다.&nbsp; 우리 독자들은 그냥 즐겁게 읽으면 된다. 세상에 이런 낙원은 절대로 없으니 이런 곳에서 살아볼까, 하는 꿈만 꾸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누구나 읽는 동화책 정도로 여겨도 마땅한 착한 책. 개브리얼 제빈도 될 수 있으면 재미난 묘사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67/57/cover150/895464830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67571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바다이야기 아니어도 재미있는 콘래드 - [결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2938</link><pubDate>Tue, 28 Apr 2026 04: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29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032018&TPaperId=172429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52/coveroff/k0120320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032018&TPaperId=172429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투</a><br/>조셉 콘래드 지음, 이은경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br/></td></tr></table><br/>.&nbsp; 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가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에 나폴레옹의 육군을 일컫는 대육군의 경기병에서 진짜 있었던 전설적인 결투 실화를 배경으로 중편소설 정도의 작품, 노벨라를 썼다. 흥미로운 건 조지프 콘래드의 나와바리인 바다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 역시 항해가 나오고, 바다도 나오고, 바다를 면한 사람들이 배 타고 해적질과 밀수질도 하면서 육지사람과 모종의 음험한 작업을 벌여야 조지프 콘래드를 읽은 것 같다면 그건 일종의 편견이랄까 일반화랄까?&nbsp;&nbsp; 소설가 미치너가 뽑은 영국의 최고 소설가 네 명을 그의 책 &lt;소설&gt;에 소개했다. 일단 영국 소설가라서 우리나라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자마자 줄창 배우는/배웠던 &lt;더블린사람들&gt;을 쓴 제임스 조이스는 나오지 않는다. 영어로 썼지만 아일랜드 사람이라서. 하여튼 네 명 가운데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은 여성이고, 두 남성 소설가는 영국 밖에서 나서 영국 여권을 가지고 산 사람들, 헨리 제임스와 조지프 콘래드. 조지프 콘래드는 처음 읽을 때 좀 뭔가 불친절한 기분이 들고는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단단한 모험담이랄까, 특유의 이국적 스케일이 재미있어졌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 없다. 내가 그의 팬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이이의 전작품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이이를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겨우 한 15년~20년? 이름도 낯설었다니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br>&nbsp; 결투는 통상 결투자들이 각각 입회자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데 이때 그들이 상대의 목숨을 거둘 목적은 아니라는 것. 서로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때, 결투를 벌이지 않으면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엉뚱한 인식이 박인 옛 사람들 고유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일 한 편이 완전한 승리, 예컨대 상대방의 무기를 완전히 상실하게 하고 완벽하게 제압했지만 승리자가 패배자를 죽이지 않을 경우, 앞으로 남은 구만리 같은 세월 동안 언제라도 패배자에게 이제 좀 죽여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뜻을 전할 경우 망설이지 않고, 명예를 위하여, 스스로 죽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이런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미하일 레르몬토프도, 알렉산드르 푸시킨도 결투를 벌이다 치명상을 입고 치료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 양반들이 결투만 안 했어도, 하긴 했는데 죽지만 않았어도 러시아 문학은 훨씬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너무 일찍 갔어!&nbsp; 이렇게 죽는 경우보다는 사실 부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여태 부상으로 끝나도 결투가 종료되는 걸로 알았는데, 콘래드의 &lt;결투&gt;를 보니까 아니다. 부상에서 회복하면 이를 복수하기 위하여, 전에 생긴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고 재 도전이 가능한가보다. 사실 결투라는 행위는 결투로 사건을 종결하려 벌이는 야만스러운 일이건만. 그리하여 내가 아는 장면을 보면 둘 다 죽지 않으면 입회인들이 양 당사자에게 화해할 것을 요구하고 거의 그렇게 한다. 뭐 그렇다고 진짜 이들이 지금부터 우리는 원수지간이 아니라 친구 먹기로 하는 거다, 이런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서로 눈길이 마주치면 겁나게 서먹한 사이, 그러나 그놈의 명예를 위하여 서로 째려보지는 않는 그런 관계 정도의 화해를 의미한다.<br>&nbsp; 프랑스 대육군 보병군단 내 경기병 연대의 두 장교. 이들을 소개하겠다.&nbsp; 아르망 뒤베르 중위.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부관으로 있으나 원대는 제4경기병대. 큰 키에 밝은 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지닌 잘 생긴 부르주아의 아들. 이따금 폭음을 할 줄 알지만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피카디리의 하늘 아래서 자란 북쪽지방 사람이다. 전쟁의 폭풍 속에서도 상황을 생각하는 냉철한 사고력을 지니고 있으며 품위를 중시하는 전형적으로 잘 교육받은 귀한 집 자재. 이런 집 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무기, 특히 검술에 관해서도 가문의 검술교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사격 솜씨는 좀 떨어진다.&nbsp; 가브리엘 플로리앙 페로 제7경기병대 중위. 혈관 속에 언제나 펄펄 끓는 피가 흐르는 체질. 작은 키이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거친 사나이. 전쟁도 집단 싸움으로만 여기는 인물로 대장간집 아들이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지만 와인이 무르익어가는 지방의 햇살 아래서 취한 채로 태어난 키 작은 가스코뉴 촌놈. 자신이 판단해 비슷한 계층의 사람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한다면 곧바로 결투를 신청해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나운 인간이다. 페로 중위는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장가도 들지 못한다.<br>&nbsp; 이들은 평생 다섯 번의 결투를 벌인다.&nbsp; 첫번째 결투. 뒤베르 승리.&nbsp; 두번째 결투. 페로 승리.&nbsp; 세번째 결투. 무승부&nbsp; 네번째 결투. 뒤베르 승리&nbsp; 최후, 다섯번째 결투. 안 알려줌.<br>&nbsp; 또 웃기는 게, 군인들끼리 결투할 경우에는 계급장의 차이가 있으면 안 된단다. 처음 1라운드에서 만났을 때는 둘 다 중위.&nbsp; 군부 고위층이 판단해도 교육을 잘 받은 뒤베르가 확실히 참모 능력이 있고, 작전 계획과 실행에도 탁월해 페로보다 진급이 빠르다. 이것 또한 페로가 불만을 품는 이유가 된다. 첫번째 결투를 시작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보태, 뒤베르의 이른 진급이 이를 더욱 증폭시켜 뒤베르가 분명 상관들에게 정직하지 않은 수단을 써서 진급한 것이라 주위 장교들에게 구라를 풀면서 페로 역시 본격적으로 진급을 위해 더 용맹하게 공을 세운다. 오직 하나. 뒤베르한테 얻어 터진 것을 갚아주기 위하여.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래서 두 번째 결투 당시에 둘의 계급은 대위. 페로가 성공했다. 뒤베르의 옆구리를 칼로 폭 쑤셔 몇 달 동안 침대 신세를 지게 만들었으니.&nbsp; 세번째 결투는 여러명이 입회한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칼을 써서 죽기살기로 칼부림을 해대는 거친 싸움이었다.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베었는지 두 사람의 군복도 전부 찢어지고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칠갑 한 귀신 꼴을 한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던 입회인들이 강제로 뜯어 말렸다. 무승부.&nbsp; 다음 결투 역시 페로가 자기 입회인을 보내 끝장을 보자고 신청해서 벌어졌다. 이번엔 정말 아예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한다는 의미로 경기병의 말을 타고 창 또는 검을 써서 와다다 달려가 붙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 일격에 뒤베르의 검이 페로의 이마를 깊게, 그러나 치명상은 아닐 정도로 베고, 얼굴 조직엔 신체 어디보다 혈관이 조밀하게 얽힌 관계로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너무 피가 많이 흘러 페로가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뭐가 보여야 더 싸우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뒤베르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별로 없이 승리. 네 번째 결투할 때 이들의 계급이 대령이었다.<br>&nbsp; 네번째 결투와 최종 다섯번째 결투 사이에 있던 것이 1812년 러시아에서의 회군. 숱하게 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엄동설한 속 후퇴 당시 이들은 임시로 재편한 병제 아래 같은 대대 속 전우가 된다. 러시아 전장에서 고생을 하며 맞닥뜨린 카자크 병사를 퇴치하기 위하여 둘은 평생 처음으로 함께 협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건 아니고.&nbsp; 프랑스로 돌아온 이들은 장군으로 승진한다. 전투에서 치명상을 당해 뒤베르가 누이의 집에서 요양을 하던 동안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돌아와 백일천하, 잠깐 동안의 권세를 쥐었다가 워털루에서 극적으로 역전패를 당해 세인트헬레나로 다시 유배를 가고, 친 황제파 군인 특히 장군들을 대상으로 살생부가 만들어진다. 이 살생부에 페로의 이름이 들었다는 걸 알게 된 뒤베르. 그는 경찰장관에게 찾아가 겨우 페로의 목숨을 구한다. 자기가 그를 두려워해 죽게 만들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nbsp; 그러나 저 중부지방,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곳에 유배 비슷한 처지에 떨어진 페로가 이런 소식을 알 턱이 없다. 세월만 죽이다가 관보에서 다시 뒤베르의 이름을 본 순간, 아차, 생전의 맞수 뒤베르를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페로는 즉각 주변에서 두 명의 입회인을 그에게 보낸다.&nbsp; 하필 이때 뒤베르는 마흔 살의 장군으로 누이의 장원에 칩거하며 누이가 소개한 어여쁜 스무살 아가씨와 혼인을 준비하고 있던 순간인데, 죽음의 입회인이 도착했으니, 그렇다고 결투에 응하지 않으면 자기 명예가 땅에 떨어질 터, 이제는 진짜로 죽기 살기의 단판 싸움을 피할 수 없어, 자기가 사격에 약한 것을, 아니지, 페로가 명사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각자 총 두 자루, 두 번의 사격이란 조건으로 마지막 전투장소인 결투지, 숲속으로 들어간다.&nbsp; 이야기가 짧고 재미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내가 첫빠따로 읽었다. 도서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기분좋다. 차마 5별을 주지 못했다. 4.5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52/cover150/k0120320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80529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1950년대 미국 중산 속물들 이야기 - [레볼루셔너리 로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0783</link><pubDate>Mon, 27 Apr 2026 04: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407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64&TPaperId=172407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04/45/coveroff/89374647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64&TPaperId=172407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볼루셔너리 로드</a><br/>리처드 예이츠 지음, 이삼출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리처드 예이츠. 1926년생 미국 남자. 뉴욕주 연커스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여러 후견인 아래에서 컸다. 작중 주인공 휠러 부부 가운데 아내 에이프릴처럼. 26년생이라 1945년경에는 당시 기준으로 전쟁하기 딱 좋은 열여덟~아홉 살이 되어 대 독일 마지막 춘계 대공세에 투입되고, 전쟁이 끝난 후 1년 더 유럽에 주둔했다가 1946년에 돌아왔다. 이건 또 작품 속 남편 프랭크 휠러의 경험과 같다.&nbsp; 예이츠는 영국 유명 배우의 딸 실라 브라이언트와 결혼해 잘 먹고 잘 살다가 딸 둘을 낳고 1959년에 이혼했다.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의 주인공 부부는 결혼해서 딸과 아들을 낳고 살다 컬럼비아 대학을 나온 프랭크는 뉴욕의 알아주는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아내 에이프릴과 사는 동안 가끔 격렬하게 싸움을 하다가 불행한 파국을 맞는다. 아마 이혼을 하고나서 아니면 이혼 즈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독자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주인공 부부의 갈등이 실감난다.&nbsp; 나는 하필이면, 그런 줄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때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쓴 &lt;말리나&gt;를 함께 읽기 시작했다. &lt;말리나&gt;는 한 20년 전에 사놓고 읽다가 포기, 한 번 더 읽다가 포기해서 지금 세번째 도전하는 중이다. 오직 읽기에 집중하느라 집에서 메모하지 않고 글자, 단어, 절, 문장 하나씩 해체해가며 읽고 있다. 근데 이 책/작가와 비교하면 세상에나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같은 1926년생인데.&nbsp; 예이츠는 승전국과 물산이 넘쳐나는 시절에 동물원 산보하듯 중산층 속물들의 사는 모습을 까발린 반면에 보르크는 패전국 오스트리아 빈 사람들의 우울한 사람 관계를 붓질하고 있었다. 그래서 &lt;레볼루셔너리 로드&gt;를 더 재미있게 읽은 것일 지도.<br>&nbsp; 당시, 그러니까 195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사회는, 남자는 밖에 나가 일을 해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는 형태였다. 이런 중산 계급이 몰려 사는 곳, 1955년의 코네티컷 주 서쪽에 있는 ‘로럴’이라는 동네. 이곳에 사람들이 뜻을 모아 아마추어 극단인 “로럴 극단”을 만들어 첫 공연으로 로버트 셔우드의 &lt;화석 숲&gt;을 올리기로 하고 주1회 연습에 돌입했다. 아마추어라도 대충 즐기려는 보통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아 정말 극 다운 극을 공연해보겠다는 의지로 뭉친 극단이어서 뉴욕에서 그래도 이름이 있는 연출자를 초빙했다. 암만해도 처음 해보는 연극이라 버벅거리던 배우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이게 이 극단, 첫 공연의 기본적인 문제점이었다.&nbsp; 하여 단원들은 주 1회였던 연습을 2회, 3회, 급기야 4회 이상으로 늘렸지만 상황은 여간해 좋아지지 않아 배우들은 자신들이 실패하리라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었다. 서로 미안해하는 서먹한 눈인사를 나누면서. 어쨌거나 드디어 공연 전날 드레스 리허설을 했다. 그런데 웬일? 공연 복장을 갖추어서 그런지 연극 자체의 흐름에 올라타 분위기가 제대로 유지되는 거였다. 마치 배우들이 영혼을 다 쏟아 부었달까 싶을 정도. 이 이상을 어찌 더 바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꽉 차올랐다. 리허설이 끝나고 연출이 말했다.&nbsp; “솔직히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밤 여기 무대 위에서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아주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내일 밤에도 이렇게 합시다. 그럼 우린 아주 기막힌 공연을 하게 될 것입니다.”&nbsp;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로버트 셔우드가 썼다는 &lt;화석 숲&gt;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희곡이 어떤 내용인 줄 알아야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데 셔우드의 희곡작품은 원서밖에 없었다. 이런.&nbsp; 그러나 다음날 밤. 공연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제일 중요한 건 남자 주인공을 할 배우가 급성 대장염에 걸려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다시 차 타고 집에 갔다는 거. 대역으로 누가 나왔나 하면, 나이들고, 배 나오고, 안경 끼고, 머리 벗겨진 연출가. 관객이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할 인물. 연출과 배우는 또 엄연히 다른 것이라 극을 처음부터 망쳐버렸던 것. 초보 배우들 역시 처음부터 계획이 무너지니 잘 하던 것들도 버벅거릴 수밖에.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에이프릴 휠러도 1막 앞부분에서는 상대역이 바뀌었을지라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역을 소화했지만 조연급을 비롯해 거의 모든 배우와 스탭들이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헛갈리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연극은, 망했다.&nbsp; 완전한 실패. 더 실패하려도 실패할 것이 없을 정도의 실패. 하지만 중산층 출신 배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극예술대학을 졸업한 에이프릴은 이들과 속내가 다르다. 다를 수밖에. 객석에서 에이프릴의 연기를 지켜보던 남편 프랭크는 무대가 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 대기실에 찾아간다. 서먹서먹. 그래도 남편이니 위로의 한 마디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둘 것을. “나는 괜찮으니 조금만 나 혼자 내버려둘래? 더 말하지 말고.” 그래도 남편은 좀 미진한 거 같다. 또 종알종알. 너는 잘했어. 다른 배우들이 문제였지. 아 씨, 입 좀 닥쳐주지 않으실래요? 이렇게 본격적인 부부싸움의 순서를 밟는다.<br>&nbsp; 이 문제 하나가 아니었겠지만 하여간 소설은 연극의 실패와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에이프릴의 자존감 상실에서 시작한다. 남편 프랭크는 아버지가 전에 다니던 녹스 사무기기, 아마도 제록스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인 거 같은데, 녹스 사무기기에 취직하여 당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최강의 미국 회사 답게 출근해 하루 종일 빈둥빈둥거린다. 그래도 3만5천 달러의 연봉을 받고, 뉴욕의 좁은 아파트에서 탈출해 코네티컷 서쪽의 신흥주택가 레볼루셔너리 힐 이스테이트 옆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다. 녹스 사무기기는 자기 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원해서 취직하고, 출산한 건 아니었다. 프랭크의 인생에서 그때 이후로 죽 일어난 모든 일은 실제로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느 다른 가장처럼 자신도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독하게 따분한 직장에 취직했고, 단정하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비싼 중산층 동네로 이사했으며, 첫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걸 주장하기 위하여 둘째 아이를 낳았다.&nbsp; 이 동네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일 걸? 내 말이 틀리면 세 명만 나와봐.&nbsp; 이게 프랭크가 하고 싶은 주장이었겠지.<br>&nbsp; 하여튼 연극은 엉망진창으로 끝나버렸고, 어린 시절을 여기저기 떠돌며 여러 어른들에게 후원을 받아 자란 에이프릴은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날도 부부싸움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뉴욕시로 출근하려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경사진 언덕 위 도로까지 몰고가는 남편 프랭크의 후줄근한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본 에이프릴은 생각한다.&nbsp; 불쌍한 사람. 저렇게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야 하는 남자. 가고 싶지 않은 직장에 아침마다 차를 몰고 역까지 가고 거기서 기차로 갈아타고, 또 지하철을 타서 출근해 하루 종일 빈둥거려야 하는 남자. 남편이 짠하다.&nbsp; 에이프릴은 한 가지를 생각해낸다. 만일 내가 돈을 벌면 어떨까? 남편은 그냥 쉬라고 하지 뭐. 내가 돈을 벌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말인데, 하라고 하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쉽지 않을 거야. 프랭크가 유럽이라면 환장하게 좋아하니까 이 기회에 영구히 유럽으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파리에 가서 살면?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미국의 외교관도 있고 문화관도 있으니 거기에는 하다못해 타자수나 속기사가 필요하겠지. 자격증이 있으니 내가 벌면 되지. 우리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유롭게 사는 거야!&nbsp; 이게 생각보다 대박이다.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박이다. 그리하여 직장 프론트 아가씨와 바람을 피우고 들어온 프랭크한테 프랑스 이민에 대해 설명하고, 그동안 회사가 재미없어 미칠 지경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엄살을 떨어온 처지라 에이프릴의 제안에 반대할 이유를 대지 못하는 프랭크. 그래서 부부는 이번 가을에는 반드시 파리로 이민을 가겠다고 뜻을 함께 한다. 프랭크는 속으로 미치겠지.&nbsp; 그러나 하늘은 이 부부와 아이들을 비행기에 태울 마음이 없다. 연극이 끝나고 부부싸움 열라 했지? 그 1차부부대전이 끝나고 화해의 밤을 맞아 이들은 기념으로 한 침대에 올랐는데 에이프릴의 페서리에 문제가 있어서 그만 셋째 아이가 탁! 착상을 해버렸던 거다. 아싸, 됐다! 프랭크가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까?&nbsp; 빼먹으면 아쉬운 등장인물이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옆의 작은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업자 기빙스 부인의 아들 존 기빙스. MIT를 졸업하고 서부 해안에서 수학을 강의하던 영재인데, 영재에게 자주 보이는 정신병변이 있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 상태가 좀 나아져 의사가 존에게 (부모집은 안 되고) 친한 친지나 이웃의 집에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이 휠스 부부의 집을 방문해 이들과 불과 몇 분 만에 사태를 파악, 정확하게 문제점까지 딱 말해버리는데, 그게 이 부부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롤러코스트로 작용한다.&nbsp; 재미있는 소설. 다만,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같은 나이의 부부임에도, 프랭크는 아내에게 말을 낮추고, 에이프릴은 남편에게 존칭, 가끔은 극존칭을 쓴다. 다른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세 살이 더 많은 친한 이웃 캠벨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게 눈에 거슬린다. 1955년에 미국인들이 그렇게 살았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04/45/cover150/89374647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04452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좀 지난 스타일의 고딕 - [고장 난 영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5464</link><pubDate>Fri, 24 Apr 2026 0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54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2354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off/89920558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2354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장 난 영혼</a><br/>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독후감 쓰기 깝깝하네. 다른 이도 아니고 작가가 조지 엘리엇, 여성 가운데 (오정희 빼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거 알고는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는데, 푸시시… 김이 새 버린 거다. 책 표지부터 자잘한 글씨를 이용해 큰 해골바가지 하나를 그려 놓아 이 책이 저 바다건너 잉글랜드 대표작가인 조지 엘리엇이 쓴 고딕 소설이라는 걸 광고하고 있어,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읽은 다음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희망도서 신청할 때부터 이게 뭥미? 했었다. 그래도 거부감은 없었다. 이이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작가의 젠더를 불문하고 고딕 소설 쓰는 게 일종의 붐을 이루었으니 대표적인 작품이 메리 셸리의 &lt;프랑켄슈타인&gt;이잖아?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개스켈도 고딕 소설을 썼음에야! 이 전통은 20세기까지 흘러 미국의 국가대표 소설가 이디스 워튼 역시 한 고딕 했고.&nbsp; 또 하나 엘리엇의 특기라고 하면, 청춘 남녀, 간혹가다 청춘은 아니지만 하여간 남녀가 오진 고생 끝에 그들은 “결혼해서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 아니라, 굴곡을 겪으며 결혼에 도달한 커플이 결혼한 다음에 복닥복닥 부부끼리 갈등을 겪어가며 서로 미워하고 뒤를 밟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 수 있을까, 마치 세기의 원수들이 만나 살을 대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데 관한 한, 진짜 세계 챔피언 아닌가? 하여간 조지 엘리엇, 하면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는 게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지. 이제 더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읽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새롭게 그이의 단행본이 나왔으니 이 아니 기뻤겠느냐고? 아이쿠, 미끼였는 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던 거다.<br>&nbsp; &lt;벗겨진 베일&gt;과 &lt;제이컵 형&gt; 단편소설 두 편을 실은 소설집.&nbsp; &lt;벗겨진 베일&gt;의 클라이맥스는 죽은 자 가운데 삼일만에…, 아니고 죽은 자 가운데 삼십분 만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죽음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아니, 내가 뭐라고 부른다고? 그렇다. ㅆㄴㄹ. 이왕 심판하러 그 멀고 먼 길을 돌아왔으면 심판 당해 마땅한 인간 하나 정도는 목이라도 댕거덩 처 죽이고 다시 자빠지든지 뭘 하든지 했어야 좋을 텐데, 그리곤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ㅆㄴㄹ이 되도록 일이 꼬이는 게 만든 건(어떻게 꼬였는지는 안 알려드림) 조지 엘리엇의 특기가 십분 발휘되었다고 쳐도 아이고,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고, 괴기스럽기는 한데 촌스럽게 괴기스럽고, 그리고 이거야말로 이미 우리나라 모 종교에서 실용신안 특허를 낸 일종의 “피내림”이란 거 아니었을까?&nbsp; &lt;제이컵 형&gt;은 고딕 소설의 또다른 전형 가운데 하나인, 약간 기형적인 체구와 완력을 소지한 인물의 등장이 돋보인다. 이 인물이 주인공의 친형인 제이컵. 어깨에 쇠스랑을 짊어지고 다니는 막강한 완력의 소유자. 말 그대로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의 사나이. 기억하시지? 대서양 건너 미국 땅의 카슨 맥컬러스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딕 소녀. 엄청 키가 크잖아. 열 서너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 아가씨가. 근데 제이컵은 지체장애까지 있어서 천하장사의 몸에 열 살 수준도 되지 않은 지능밖에 없어 사탕 같은 단 것을 좋아하고, 형제 중에서도 제과 수업을 받은 데이비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아뿔싸, 데이비드로 말하자면 나중에 쫌스러운 사기꾼이 될 예정이다. 여기서 제이컵이 맡은 배역은 당연히 데이비드 포에서 에드워드 프릴리로 성공적으로 변신해 자그마한 출세가 눈 앞에 닥쳤을 때 다정하게 나타나 깽판을 치는 역할. 뭐 재미는 있지만 스타일이 좀, 조금 오래 전 스타일이라 별로 즐겁지도 않다.&nbsp; 뭐 그렇다는 거다. 여러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최고의 평점을 매겼으니 유독 이 책이 나하고 맞지 않을 뿐일 확률이 높다. 괜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분들한테 기회를 뺐을 수도 있는 쓸모없는 독후감이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2백쪽에 이르는, 각 1백쪽임에도 한 글자도 메모하지 않고 읽은 오랜만의 책이기는 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150/89920558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02781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차라리 의식화 교재 - [부재지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3461</link><pubDate>Thu, 23 Apr 2026 04: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34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606&TPaperId=172334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6/coveroff/k0220346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606&TPaperId=172334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재지주</a><br/>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황봉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고바야시의 전작 &lt;게 가공선&gt;을 흥미롭게 읽어서 주저하지 않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코피 난 책. 아무리 카프 문학이라 해도 적어도 책을 읽는 재미는 있어야 할 거 아냐?&nbsp; 이 책은 본문 앞에 있는 작가 소개와 고바야시의 메모, 이렇게 두 개만 읽으면 끝은 아니더라도 바쁜 사람을 위한 “읽은 척”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nbsp; 먼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가 고바야시 다키지”<br>&nbsp;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농민 소작 쟁의를 가까이서 취재했다. 소설을 쓴 것이 직접적인 사유가 되어, 다니던 은행에서 해고됐다. 이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해, 노동자들의 문화 단체 활동 지도 책임을 맡았다. 1933년 2월 접선 장소에서 체포되어 그날, 고문에 의해 살해됐다. 이 소설을 발표한 지 겨우 3년 남짓, 만 29세 4개월이었다.”<br>&nbsp; 그리고 작가 스스로 독자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적은 글:<br>&nbsp; “이 작품을 ‘신농민 교과서’로서 전국 방방곡곡의 소작인과 빈농에게 바친다. 아라키 마타에몬 이야기나 《나무토 비밀수첩(鳴門秘帖)》이라도 읽는 셈치고, 일하는 짬짬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읽었으면 한다.”<br>&nbsp; 아라키 마타에몬은 에도 시대 검객이라니까 사무라이 영화 보듯이 하라는 거고, &lt;나무토 비밀수첩&gt;은 대중문학을 개척한 전기傳記소설이란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으라는 건데, 독자는 소작인이거나 프롤레타리아 농민이어야 한다. 즉, 이 책은 소작인과 빈농을 위한 의식화 자료라는 뜻이다.&nbsp; 20세기 초반의 농민운동을 위한 의식화 자료를 21세기 초반의 독자가, 근 백년이 흘렀음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잖아? 막심 고리키의 &lt;어머니&gt;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유효기간 다 된 작품.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6/cover150/k0220346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06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직 AI 추천은  믿지 못하겠네 - [예수의 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1281</link><pubDate>Wed, 22 Apr 2026 0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31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231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off/k7620300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032&TPaperId=17231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아들</a><br/>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09월<br/></td></tr></table><br/>.&nbsp; 이번 희망도서는 전반적으로 망쳤다. 작년에 신청했던 책이 예산 부족으로 올해 이월되어 한 방에 여러 권의 책을 받았는데, 어제 아침에 읽은 데니스 존슨, 어제 저녁 때 읽은 고바야시 다키지는 확실히 망했다. 오늘 쉬고 내일 읽을 조지 엘리엇도 기대 난망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괜히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 하겠어? 조금 기대를 해봄직 하지 않을까? 미치너가 뽑은 영국 최고 소설가 4인방 가운데 한 명이란 이름값을 믿어본다. 4인방이 누구냐고?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헨리 제임스. 이번 달에 엘리엇을 읽고 다음 달엔 콘래드를 읽을 예정. 그건 그렇고 누가 헨리 제임스의 &lt;황금잔&gt;을 다시 번역해주지 않으려나….&nbsp;&nbsp; 어째 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딴 말만 하고 앉았지? 그렇게 보이지?&nbsp; 맞다. 읽기는 읽었는데 뭐 도무지 할 얘기가 없네.&nbsp; 약쟁이들 이야기. 내가 약쟁이 소설을 경원하는 건 아닌데, 모르긴 해도 책방에서 특별히 나를 위한 목록이라고 권하는 리스트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 며칠 뜸을 들이다가 도서관에 사달라고 신청한 건 맞는데 책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펼친 순간, 어머, 이게 뭥미? 책이 왜 이래? 설마 로렌스 스턴처럼 등장인물의 사망을 조의하기 위하여 한 페이지를 통째로 검정색으로 도배해 놓은 것을 본받아 검정 무늬만 있는 페이지로 작가가 독자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약을 코로 들이마시거나, 복용하거나, 수액으로 정맥에 주입하거나 또는 알코올이라는 약한 C2H5OH 용액을 구강을 통해 벌컥벌컥 마신 후의 애매몽롱함 같은 느낌을 구현한 걸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출판사가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꼼수를 쓴 것뿐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설마 그럴 리가.&nbsp;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런 페이지 같은 하드웨어 이야기로 독후감을 질질 끌고 있는 것도 사실은 책을 읽기는 읽었건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nbsp; 알코올 남용자를 비롯한 약쟁이들의 비교적 순한 이야기들. 저 1940년대 잭 케루악이나 윌리엄 버로스 같은 선배 약쟁이들하고 비교하면 그동안 세월이 많이 독해졌음에도 그래도 순둥이 약쟁이들이 자기 발로 치료소에도 들어가고 뭐 개선해보려고 애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어떤 형태의 중독이라도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나 스스로 가운데 중과 약할 약자를 쓰는 중약급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 이런 종류의 소설은 읽기가 불편하다. 책 속에 담긴 작품들처럼 극단적으로 짧은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nbsp; 아, 몰라, 몰라. 하여간 다 읽었다. 반나절은커녕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거 같은데 무지하게 지루하게 읽었다. 독자를 위해 추천하는 AI를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군 그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2/65/cover150/k7620300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265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팔자 억센 사람들 참 많아 - [사랑의 한 페이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9299</link><pubDate>Tue, 21 Apr 2026 0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92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4983&TPaperId=172292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3/12/coveroff/k9520349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4983&TPaperId=172292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의 한 페이지</a><br/>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여덟번째 작품. 아델라이드 푸크가 마카르와의 혼인 외 관계로 얻은 1남 1녀, 앙투안 마카르와 위르실 마카르 가운데 딸, 위르실이 모자 제조공 무레와 결혼해 고향 마르세유에서 낳은 외동딸 엘렌을 둔다. 이 엘렌 무레 그랑장이 루공-마카르 총서 8번 &lt;사랑의 한 페이지&gt;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nbsp; 부유한 제당업자의 아들 샤를 그랑장은 불같이 엘렌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아버지 그랑장씨는 엘렌의 집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을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이들은 비밀결혼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르세유에서 숨어 근근하게 살다가, 고맙게도 친척 아저씨가 죽으면서 남편인 샤를에게 연 1만 프랑의 연금을 상속해주어 부부는 한 방에 팔자가 피었다. 연금이 생기고 제일 먼저 감행한 일은 부부가 외동딸 잔을 데리고 지긋지긋한 마르세유를 탈출, 파리 교외 언덕의 깨끗한 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nbsp; 이때 엘렌이 열일곱 살(오타 같음. 확인 후 수정 예정), 샤를은 스물세 살. 잔이 아홉 살쯤 됐으려나. 지금 살고 있는 트로카대로 언덕 위에 있는 4층 집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바르 호텔에 머물기로 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기쁜 마음으로 파리 구경을 하려 외출을 나갔다가 감자기 남편 샤를 그랑장이 병에 걸려 1주일 동안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숨을 거두어, 졸지에 과부와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막이 올라가면 모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br>&nbsp; 이 작품의 문제는 딸 잔. 아이의 엄마 엘렌은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키도 크고, 금빛 도는 밤색 머리가 마치 해라 여신을 연상시킬 만한 미인에 건강체질이지만, 잔은 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약한 체질과 격세유전으로 넘어왔는지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고 결국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닮아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엘렌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이 커서 자주 폭발하는 성격에다가 질투가 엄청나다. 아마 증조할머니 아델라이드 푸크가 중증 정신병으로 정신병원에 몇십년 간 강제 입원했던 형질도 잔을 피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nbsp; 첫 장면이 바로 이 잔이 언덕 위의 4층 과부 엘렌의 집에서 수면 중에 근육수축, 경련, 경직, 동공개방과 체온상승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음장 같은 2월 밤. 엘렌은 하녀 로잘리를 시켜 늙은 주치의 보댕의사를 데려오라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뛰어갔다 오는 편이 빠를 것 같다. 그래 지금 당장 입고 있는 실내복에 숄 하나만 걸치고 맨발에 실내화를 신은 채로 보댕박사 댁으로 뛰어갔으나, 박사는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기 위해 왕진을 가 새벽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넋이 빠진 엘렌은 그 밤에, 그것도 겨울 밤에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의사를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가 번쩍 든 생각이,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이자 바로 앞에 면한 집의 주인 드베를 씨가 의사라는 것이 생각났다. 엘렌은 서둘러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서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35세쯤 보이는 갸름한 얼굴과 잿빛 눈, 엷은 입술을 한 잘 생긴 의사 앙리 드베를이 나타난다.&nbsp; 앙리 드베를의 눈앞에 몸이 눈부시게 드러난 여성이 서 있다. 숄이 흘러내려 벌어진 실내복 사이로 가슴이 노출되고, 팔도 드러났지만 정숙하고 바른 몸가짐에서 품위가 배어나오는 모습. 보댕의사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앙리 드베를은 아버지 드베를로부터 150만의 재산과 상류고객을 물려받은 실력있는 의사라고 한다. 드베를의 세심한 치료와 처치로 잔은 정상을 찾아가고 그래도 불안한 엘렌은 드베를에게 밤새 환자의 곁을 자신과 함께 지켜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환자와 젊은 남녀, 이미 사랑과 정욕을 아는 남녀 둘이 아침이 밝아오도록 한 밀폐된 장소에서 있게 되는데, 첫날이라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가끔 볼이 따뜻해질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잔은 정상을 되찾아 다시 예의바른 아이가 됐고.<br>&nbsp; 의사가 치료를 해준 것도 모자라 바로 옆집에 사는 건물주. 감사 인사차 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검정드레스를 입은 모녀가 드베를가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사의 인도로 응접실에 들어가니 여주인 쥘리에트 데베를과 일곱 살 정도의 버릇없는 아들 뤼시앵, 쥘리에트의 여동생 폴린과 폴린의 아버지 르텔리애씨, 집안의 가난한 옛친구이자 노처녀인 오렐리양이 함께 있었다.&nbsp; 크림전쟁 전 프랑스에서 연수 1만 루블이 얼마정도의 수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렌과 잔 그랑장 집안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르주아 가정인 드베를 가문의 안주인 쥘리에트는 자유분방하고 호들갑스러우며 어떤 행사를 치루더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싶어하는 외향적 성격이다. 즉 이 동네 사교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인물. 20대, 많으면 30대 초반 정도로 당시 기준에 인생의 절정기에 도달해 있는 여성. 그리하여 유혹도 많겠지. 이 가운데 한 명이 드베를 가문과 친한 잘 생긴 청년이자 독설가 부르주아 말리뇽씨. 저 뒤로 가면 언젠가는 젊은 말리뇽과 하여튼 사고 한 번 치겠다는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쥘리에트 여사가 엘렌과 잔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자기 커뮤니티의 중요한 한 명으로 만들려는 듯. 그래서 이날부터 엘렌과 잔은 드베를 집안의 정원과 응접실을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권리, 자격을 갖게 되어 쥘리에트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동시에 합법적으로 남편 앙리 드베를 씨와 열정적인, 간혹은 불타는 정염의 눈길 살짝 나눌 수도 있었다.&nbsp; 소설에서 이런 사전 작업이 몇 페이지에 이르면 당연히 언젠가는 한 번 화르륵 불이 붙는 법이니 독자는 기대를 해도 좋다. 개봉박두.<br>&nbsp; 한편 엘렌의 집에서는 남편 그랑장이 죽을 때 미사를 집전한 주브 신부와 신부의 동생인 랑보 씨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뜻은 엘렌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하여라는데 목적은 아무래도 엘렌과 랑보 씨를 엮어주려 하는 것 같다. 랑보 씨가 비록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사람이 진중하고, 친절하고, 진지하며, 하여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상당한 신사로 어디 한 군데 까탈을 잡기 어려운 신의 있고 점잖은 사람 중에서도 점잖은 사람이다.&nbsp; 엘렌도 랑보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인이나 남편감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남자, 편한 남자, 속상한 거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정도로 생각해 그의 청혼에 대한 대답은 무기 연기 중이다. 랑보씨도 십년이 지날지라도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묵묵히 견디고 있다.&nbsp; 어때, 소설 읽은 짬밥으로 보면 결국 이 커플이 이루어지겠지? 물론 지지고 볶는 과정을 다 극복하고 나서. 안 알려준다.&nbsp; 근데 이번 주 화요일 식사 후에 주브 신부가 엉뚱한 말을 엘렌한테 한다.&nbsp; “가난한 교구민 페튀 할멈이 아주 아픈 모양입니다. 문안 한 번 가면 좋아할 거예요.”&nbsp; 그리하여 엘렌은 다음 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진흙길을 따라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에 들르는데, 정말 해골 같은 할멈이 얼굴만 퉁퉁 부은 모습으로 엘렌을 보자마자 궁상스런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때맞춰 드베를 의사까지 집에 들어온다. 아마도 드베를 의사가 아직 젊어서 정의로운의사협회 회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할멈이 보기에, 엘렌이 먼저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오고 이어서 곧바로 의사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척 보니 둘이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가 확실한데 좋은 쪽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로 보인다. 속으로 꿍얼거렸겠지.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척 보면 알지.” 그리하여 두 사람에게 외치다시피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nbsp; “아, 두 분은 잘 어울려요. 내가 그런다고 언짢아하지 마세요. 그게 사실이니까.”<br>&nbsp; 이 페튀할멈. 잉글랜드의 디킨스 소설에 나와서 극을 전격적으로 뒤집어 버리는 잠깐의 역할, 소위 트리거 역이다. 할멈의 활동영역이 (연인들이 한 달 정도 방을 빌려 러브호텔로 쓰기도 하는)자기집 부근, 성당과 공동묘지 인근이다. 이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발달시켜온 눈치 하나로 온갖 사람들한테 부정과 불륜과 기타 등등을 마치 관심 없는 척하며 지도 편달하는 데 도가 텄다. 그래 눈치 하나는 9단 정도. 이 할멈은 성당 계단 밑에 앉아서 벌써 쥘리에트와 말리뇽이 이제 익을대로 농익어 손만 대면 톡 터질 정도라는 것도, 엘렌과 앙리 드베를 역시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도 훤하다.&nbsp; 하지만 할멈도 몰랐겠지. 엘렌과 앙리 사이에는 절대의 장벽, 자신의 질병이 오히려 더 그들을 감시하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무기로 삼는 잔이 있다는 것을.&nbsp; 지나가면 다 한 시절, 한 페이지일 뿐이다. 삶도 한 페이지, 사랑도 한 페이지. 이제 석양이 물든 파리를 내려다보며 한 시절, 한 사랑이 다 간 것을 그저 내려다볼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은 진행한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33/12/cover150/k9520349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33128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튀링겐의 유로지비, 변신하다 - [헤르쉬트 07769 (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7312</link><pubDate>Mon, 20 Apr 2026 0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73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034407&TPaperId=172273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8/23/coveroff/k94203440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034407&TPaperId=172273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헤르쉬트 07769 (양장)</a><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A, B, C, D, E, F, G, H&nbsp; 알파벳 H는 여덟번째 나온다. 독일지역에서 머리통 박박 밀고 검은 가죽 자켓을 입었으며 몸 일부에 피어싱을 한 건장한 청년이 울뚝불뚝한 이두박근에 88을 문신했으면, 그건 우리나라처럼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HH, 하일 히틀러, Heil Hitler를 외치는 네오 나치의 일원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마찬가지로 18이라 새겼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욕설이 아닌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의미한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은 신발도 옆구리에 N자가 박힌 미제 운동화 뉴발란스 제품을 즐겨 신는단다. N이 ‘나치’의 첫 글자라서. 타이완 소설가 천쓰홍의 작품 &lt;귀신들의 땅&gt; 주인공 텐홍의 애인 T가 네오 나치의 일원으로 등장하면서 설명한 내용이다. 88은 &lt;헤르쉬트07769&gt;에 나온다.&nbsp; 보통의 독일인 또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동유럽 몇몇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이 네오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집단행동, 반유대주의, 난민유입 반대, 테러리즘 같은 것을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말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오스트리아의 키 작은 군인, 히틀러 상등병의 집단도 처음엔 한줌밖에 되지 않는 볼품없는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실제로 네오 나치를 자칭하는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군대 비슷한 조직을 구성해 폭력과 강도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아 시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한다니 생활의 큰 위협이긴 할 터이다.<br>&nbsp; 구 독일의 동독 출신 사람, ‘오시’라고 낮추어 부르는 말을 간혹 듣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서독 자유주의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자존감 결여, 상대적 빈곤감 등의 통일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지역 정서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lt;헤르쉬트07769&gt;의 무대를 바흐의 출생지 튀링겐 자치주 내 가상의 작은 마을 카나로 정했다.&nbsp; 이 카나가 인구도 별로 없고 크기도 작은 산골 마을이지만 그래도 카나 오케스트라와, 분데스리가는 아니더라도 하부 축구 리그도 운영하고, 꽤 오래된 성당도 있는 곳이다. 한 시절 도자기 공장을 건설해서 모자라는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형제의 나라인 공산주의 베트남 인들을 들여와 일을 시키기도 했지만 독일 통일 전에 사업이 번창하지 못해 지금은 거의 다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린 상태이다. 그들이 살던 8층짜리 좁은 아파트 “호흐 하우스”도 공장과 더불어 낡아버렸지만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별로 없어서 엘리베이터가 여간해 작동하지 않는다. 낡고, 생산품도 없는 산골마을. 자연경관도 그리 볼만하지 않아 간혹 관광객 몇 명이 와서 길어야 두세 밤만 자고 가는 곳. 이런 마을의 세계적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령층이 높다는 것. 그래서 이들 주민에게 네오 나치의 출현은 더욱 두려움과 반발의 대상이었다.&nbsp; 근데 젊은 청년이 이 호흐 하우스 꼭대기 8층에 산다. 이이의 이름이 바로 플로리안 헤르쉬트.<br>&nbsp; 카나에 있는 리히텐베르크 중등학교 건물에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교양 강좌인 시민대학이 개설되어 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늙은 쾰러 강사가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이란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다. 플로리안 헤르쉬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유로지비 비슷한 면이 있다. 거대한 덩치와 상상을 불허하는 완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여려 사나운 개와 모진 사람들을 무서워해 얼핏 보면 벌벌 떠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들이 힘든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어떤 일이 됐든 깔끔하게 마무리할 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끝내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 바른생활 청년으로 귀여움을 받는다. 물론 대가로 소소한 먹을 거리나 편의를 얻기도 한다. 책 좀 읽은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언젠가 한 번 거창하고 파괴적인 힘을 제대로 구사하겠구나, 생각하실 걸?&nbsp; 유로지비 비슷하다니까 머리가 좀 모자라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런 거 같다. 본인도 알고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쾰러 씨의 강좌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을 수강했으며 강의 중에 ‘소립자의 놀라운 세계’가 인상 깊었는데, 얼마만큼이었느냐 하면, 진짜로 놀라운 세계라서 한 학기를 더 수강했다. 쾰러 씨도 흡족했겠지?&nbsp; 플로리안이 배운 바에 따르면 빅뱅 이전인가 이후인가 하여튼 그날 아침이나 저녁 때, 진공상태에서 10억개의 물질입자와 반물질입자가 서로 막 부딪혀 결국 제로, 진공을 만들고 있었는데, 10억 한 개 째의 물질입자가 말썽이었다. 이것과 대응해 공空, 없음의 상태로 이끌 반물질이 생성되지 않은 거였다. 그리하여 평형이 깨지는 결과의 중대한 파급력으로 이 잉여 때문에 급기야 세상의 종말이 초래될 수 있다는 급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nbsp; 순진하고 성스러운 바보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이 문제가 하도 엄청나서 해결을 위하여 반드시, 적어도 UN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터인데, 독일 내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스스로 과학자이기도 했던 앙겔라 마르켈 총리 말고는 없었다. 그리하여 플로리안은 이런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앙겔라 마르켈 총리에게 길고 긴 편지를 부친다. 단 편지 봉투에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쓰지 않고 딱 이렇게 적어 놓았다.&nbsp; “헤르쉬트 07769”&nbsp; 07769는 카나 지역의 우편번호. 카나에서 헤르쉬트는 딱 한 명, 자기밖에 없으니 만일 총리가 답장을 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리한테 굳이 자기 이름까지는 밝힐 필요 없겠지 싶다.&nbsp; 플로리안이 유로지비의 일원임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가 보낸 편지는 틀림없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읽어볼 것이고, 여사 또한 과학자이니 사안의 심각성을 단박에 이해해 자기 의견을 받아들여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토의할 것을 제안했거나, 벌써 비밀리에 전지구를 위협하는 평형의 깨짐 상태를 해결할 모종의 연구나 대처가 진행중일 거라고 여긴다.<br>&nbsp; 플로리안은 작품을 시작할 당시엔 10대 후반으로 보인다. 카나에서 청소, 그냥 청소부가 아니라 특별 청소, 예를 들어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소위 그래피티 예술을 칭한 장난이나 시설에 어울리지 않는 바닥의 오염 같은 걸 전문으로 청소하는 업체의 사장 ‘보스’ 당연히 따로 이름이 있지만 그냥 보스라고 불리고 자기도 별명에 감정이 없어 그렇게 불리는 걸 받아들이는 보스가 예나의 고아원, 라니스 킨더하임에서 10대 중반의 건장하고 힘이 장사인 플로리안을 데려와 자기 조수로 삼았다. 당연히 변변치 않은 임금을 주고 잘 부려먹었지. 대신 호흐 하우스 8층에 작은 방을 얻어 주었는데 플로리안은 난생 처음 생긴 자기 방, 자기 집, 자기 영역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서 보스에게 충성을 다 한다.&nbsp; 다만 사리 판단에 문제가 있는 플로리안은 보스가 카나 지역의 대표적인 네오 나치, 이른바 군대의 대장 지위에 있는 줄은 모른다. 보스는 플로리안더러 자기 군대에 입대하라고 재촉하지만 그건 마땅하지 않다. 거기 가입하면 피어싱과 문신을 해야할 터, 플로리안은 특히 문신이라면 아주 질색이다. 겁이 난다. 거기 구성원들도 성격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정이 도무지 가지 않는데, 몸집 작은 여자 카리가 특히 그렇다. 눈치 챘어? 나중에 카리하고 뭔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거?&nbsp; 카나의 나이 든 주민들은 플로리안을 좋아하지만 플로리안이 모시고 있는 보스는 철저하게 경계하고, 경원하고, 의심한다. 그가 데리고 있는 부대원들도 마찬가지다.&nbsp; 근데 카나를 포함한 예나, 아이제나흐, 에어프루트, 고타, 줄 지역에서 감히 이곳 출신의 대 작곡가 악성 바흐와 관계된 건물에 스프레이로 “우리”라고 쓴 옆에 늑대 대가리를 그리고 도망가는 일이 속출한다. 보스가 바흐 추종자이다. 감히 튀링겐의 아버지이자 독일 정신의 창조자이며 (플로리안 생각엔) 우주적 파괴의 궁극적 해결인 바흐를 훼손하려는 행위를 참지 못해, 자기 군대를 동원해 스프레이어를 잡고자 하지만 실패한다.<br>&nbsp; 반면 주민들은 나치 아이들이 늘상 저지르는 테러의 일환으로 바흐와 성당에 낙서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연히 지시는 보스가 한 것으로. 바흐를 연주하기 위하여 카나 오케스트라를 만든 보스인데도. 그때 워낙 네오 나치에 의한 파괴행위가 극을 달했기 때문에 그랬겠지. 이렇게 오해가 다른 오해를 만들고, 튀링겐 지역에서는 이 오해에 겹쳐 팬데믹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카나의 산에서는 19세기 말에 멸종했으나 복원사업으로 개체가 생기기 시작한 늑대가 그곳까지 들어와 선량한 유대인 도서관 사서 링어 부인의 가슴과 목을 물어뜯었고, 아내를 보호하려던 링어 씨의 등짝까지 물어 부상을 입히는 일이 벌어진다. 엎친 데 덮친 꼴로 보스의 군대 가운데 제일 골통인 위르겐이라는 쓰레기는 보스와 플로리안의 단골 주유소, 휘발유보다는 커피가 맛있어 자주 들르는 아랄 주유소의 트란실바니아 출신 안주인 나디르를 겁탈했거나 하려다가 남편 로자리오가 휘두르는 쇠뭉치에 맞아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nbsp; 이게 작품의 모든 것이 크게 바뀌는 전환점이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은 갑자기 바뀌는데, 작품이 바뀐다는 건 당연히 주인공의 성격이 돌변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nbsp; 보스와 군대는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자기편 위르겐을 위무하기 위하여 아랄 주유소를 폭발시켜버리며 이 사건으로 플로리안과 친했던 나다르-로자리오 부부가 불타 죽는다. 카나는 이제 안으로는 보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한 테러, 밖으로는 팬데믹의 확산, 역사적으로는 사라진 늑대의 출현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것이 묵시록적인 종말론?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플로리안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답장을 받았다는 거야, 못 받았다는 거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8/23/cover150/k9420344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8238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땡그랑, 얼마나 아팠을꼬? - [타임퀘이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1804</link><pubDate>Fri, 17 Apr 2026 0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218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221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off/89546889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2218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임퀘이크</a><br/>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br/></td></tr></table><br/>.&nbsp; 커트 보니것 탄생 백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문학동네가 찍은 보니것의 마지막 소설책. 진짜 마지막은 아니고 이 책 찍은 다음에 보니것이 앞으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때가 1997년이니까 그의 나이 일흔 넷? 다섯? 하여간 그 근방. 70대 중반에 접어든 보니것이 소설을 써 보니 이젠 힘이 달려 은퇴를 선언했겠지. 잘 했다.&nbsp; 근데 돌려 생각해보면 보니것 자신이 썼지만 읽어보니까 이젠 더 이상 예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뭘 비교하느냐고? 뭐든지. 하여간. 그래서 딱 지금이 은퇴하기 좋은 시간이란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그만 쓰기로 했다면, 비록 작품은 장난기 그득한 촌철살인으로 메워져 있지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노인이란 물러날 때를 알아야 존경이고 뭣이고 간에 얻어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걸 놓치면 소위 노추老醜, 노망난 꼰대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다.<br>&nbsp; 수십억 년 전 텅 빈 공간에서 빅뱅, 꽈과광 폭발이 일어나 찬란하게 우주가 탄생했다. 그랬다는 거다. 정말 빅뱅이 있었는지 누가 봤어? 사진이라도 찍은 거 있냐고. 그냥 과학자들이 그렇게 추리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지. 아, 그렇다고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님이 만든 건 아닌 거 같다.&nbsp; 커트 보니것의 우주도 물리학자들의 우주 기원설에 입각해 빅뱅이 터진 다음에 한 순간도 빼지 않고, 순간도 순간 나름이라 지금 얘기하는 건 퀙토세컨드quectosecond 즉 10의 -30제곱 초의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 팽창했고, 지금도 열라 팽창 중이다. 근데 우주가 잠깐 경기가 났는지 고뿔이라도 걸렸는지 잠깐 딸꾹, 뒷걸음질, 즉 순간적으로 팽창 대신 아주 잠깐, 진짜 잠깐 수축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구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느냐 하면, 글쎄 시간이 10년 뒤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1991년 2월 17일부터 2001년 2월 13일, 1년에서 사흘 모자란 기간을 다시 한번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거다.&nbsp; 그리하여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10년 전에 이미 겪었던 것을 그대로 다시 한번 당해야 했는데, “(경마장에서)또다시 엉뚱한 말에 돈을 걸고, 또다시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고, 또다시 임질에 걸리고, 무슨 일이건 한번 더!”(p.14)<br>&nbsp; 우주가 잠깐, 퀙토세컨드 정도의 시간 살짝 팽창으로 포기하고 수축하는 순간 땅이 진동한 수준을 넘어 시간이 움찔, 경련을 일으켜 10년 세월 뒤로 물러서버렸으니, 죽었던 사람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화장로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고? 그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정말 짜증나게시리 죽을 때 고통을 다시 한번 또 겪어야 하는 팔자가 되어 버렸다. 오, 나 죽은 다음엔 결코 이런 일 생기지 않기를!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따라가면 혹시 백투더퓨처, 10년 전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올바르게 되돌릴 기회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기대는, 예전엔 이런 표현도 썼는데, “깨몽”, 꿈 깨시라. 사는 동안 행복한 법은 없으니 인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저 생로병사의 고달픔뿐일 걸?&nbsp; 소설이기는 하지만 화자는 틀림없이 작가 커트 보니것 본인일 터. 그가 말하고 있는 시점, 오늘은 1996년 11월 12일이다. 즉 타임퀘이크가 있고 5년 여가 흘렀을 때. 그의 나이 일흔네 살. 커트 보니것의 아빠도 이름이 커트인 건 아시지? 그래서 이이는 커트 보니것 주니어인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그냥 ‘주니어’라고만 부른다. 물론 보니것 면전에서 그냥 주니어라고 해버리는 간 큰 인간은 없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그렇게 부른다. 누가? 보니것의 장성한 여섯 자식들이. 이 가운데 셋은 암에 걸려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아이들로 동생이 죽은 다음에 입양한 조카들이고 나머지 셋은 진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문법으로 말하자면 “내 아내의 산도에 사정을 해 만든” 자식들.<br>&nbsp; 타임퀘이크가 발생한 내력과, 10년 전으로 돌아가 고스란히 과거의 경험을 똑같이 당해야 하는 걸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끝나면 당연히 본문이 나온다.&nbsp; 이제부터 독자는 그동안 커트 보니것이 책을 통해 주구장천 주장해왔던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들어야 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물리학자 고 안드레이 사하로프. 망상에 빠진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수소폭탄을 만들고 그 폭탄을 확실하게 작동하게 하고, 그 후 핵무기 실험 중단을 요구한 공로로 1975년애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 이에 소련 당국은 사하로프를 반체제 인사로 구분해 연방과학원에서 추방, 당연히 모스크바에서도 쫓아내 저 초라한 동토의 마을로 유배해버렸다. 세상의 눈이 있어 그러지 못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절이 스탈린 체제였다면, 얄짤없이 죽였을 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그랬잖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니까 한다는 말이, 동무, 가서 노벨상 받고 싶으면 받으시오. 다만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오. 알아서 기시오. 사하로프도 결국 오슬로에 가지 못하고 소아과 의사였던 아내 옐레나 본네르가 대신 가서 받았다.<br>&nbsp; 사하로프 동무는 실화. 근데 다음 건 어디서 읽어본 것 같기는 한데 실화인지 픽션인지 모르겠다.&nbsp;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이 조이 피터슨. 조종사는 자신의 애기에 페인트로 ‘조이스 프라이드’라 이름을 써 붙였다. 이 인간은 1945년 8월 어느 날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은 서류에 서명하는 일 빼놓고 거의 끝난 상태인데, 승전이라는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양키들을 위한 심심한 감사의 표시이자 이제는 쇼 비즈니스로 접어든 축제 삼아 무지하게 커서 도저히 폭탄 투하실에 싣지 못하는 대용량의 원자폭탄 ‘개쌍놈’을 폭격기 배 아래에 붙들어 매고 요코하마로 날아가던 중, 거의 다 가서, 즉 요코하마 상공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하늘에서 그대로 유턴, 출격했던 바날룰루 기지로 귀환해버렸다.&nbsp; 당연히 지시 불이행 또는 항명 또는 반역의 죄목으로 영창에 수감됐고, 이어 열린 바날룰루 군사법정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기 때문에” 유턴해 돌아왔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어 재판장이 형을 선고하려는 순간, 태평양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바날룰루 군사법정, 폭격기 조이스 프라이드, 사용하지 않은 원자폭탄 ‘개쌍놈’과 그밖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nbsp; 이 요코하마 원자폭탄 개쌍놈 이야기는 커트 보니것의 페르소나인 킬고어 트라우트, 일찍이 &lt;챔피언들의 아침식사&gt;에 등장해 117편의 장편소설과 5천편의 단편소설, 물론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야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막강한 필력을 과시하던 소설가가 쓴 &lt;타임퀘이커1&gt; 가운데 &lt;웃음거리 아님&gt;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br>&nbsp;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니것의 대표 서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사인 반전 메시지가 등장하고,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동반한 문화비평이 한 줄로 죽 늘어선 장편소설. 그리하여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파편의 연속으로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를 독자는 알아서 읽어야 한다. 그럼 뭐 같겠어? 그려, 단편소설을 주욱 나열한 연작.&nbsp; 웃기는 얘기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nbsp; “여러분이 부모님을 정말 괴롭히고 싶다면, 그럼에도 동성애자가 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술 분야로 진출하는 겁니다.”<br>&nbsp; 킬고어 트라우트가 즐겨 쓰는 말이 “땡그랑, 땡그랑”이다.&nbsp; 미국 대서양변 경치좋은 제너두에 미국문학예술협회가 건설한 창작을 위한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트라우트가 거기 헤밍웨이 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지냈을 당시, 2001년 조개구이 파티에서 들은 이야기.&nbsp; 한 도망자가 여자 사는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집이 마치 성당처럼 생겨서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게 지었는데 아뿔싸, 시간 맞춰 경찰들이 집집마다 도망자를 찾으러 검문을 하다 드디어 이 집에 도착했다. 도망자가 잽싸게 서까래 위에 숨었으나, 저걸 어째, 그의 초대형 불알이 서까래 아래로 축 늘어져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 경찰이 여자한테 수상한 사람 봤냐고 물어보니까, 여자는 능청맞게 못 봤단다.경찰 하나가 서까래 아래로 늘어진 불알을 보더니 저게 뭐냐고 물었는데, 집이 성당처럼 생겨서 여자가 중국 범종이라고 했다. 경찰은 여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평소 소원이 중국 범종을 한 번 쳐보는 거란다.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경찰이 경찰봉으로 불알을 세게 툭 쳤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살가죽에 부딪혀봤자 무슨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경찰이 더 세게, 다시 훨씬 더 세게, 또다시 몹시 세게 불알을 때렸더니 도망자가 이렇게 소리쳤다나?&nbsp; “땡그랑이다, 이 개자식아!”<br>&nbsp; 뭐 재미있는 장면만 소개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아쉬운 건, 예순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가 거의 이 비슷한 톤이라는 거.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재미있기보다 좀 지루해진다. 이 단계를 지나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면, 커트 보니것, 은퇴하는 거 잘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보니것의 영원한 팬인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그건 보니것을 위한 일종의 걱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150/89546889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67270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흑인이 고등 영장류였던 시절 -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9775</link><pubDate>Thu, 16 Apr 2026 04: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97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064&TPaperId=172197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60/89/coveroff/89546100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064&TPaperId=172197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a><br/>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3월<br/></td></tr></table><br/>.&nbsp; 미국이 수정헌법에 의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1865년에서 불과 6년 더 지난 18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제임스 웰든 존슨. 당시 잭슨빌은 부르주아들의 유명 여름 휴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세인트 제임스 호텔이 꽤 고급이었던 모양이다. 존슨의 아버지는 이때 그곳에서 수석 웨이터 일을 하고 있던 혼혈 흑인이었다. 엄마는 바하마 출신으로 서인도제도의 백인을 포함해 모든 유색인종의 유전인자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임스 존슨은 아프리칸 미국인 가운데 그나마 덜 검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던 존슨은 애틀랜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했다고 봐야 하는데, 졸업 후 음악, 특별히 작곡에 자질이 있는 동생 로자몬드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일을 했다. 플로리다 출신이라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 존슨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보좌진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던지 당선 후 7년간 베네수엘라와 파라과이의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nbsp; 시민권 운동도 하고,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흑인예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데 아쉬움이 없었다는데, 뭐 남의 나라 작은 역사 부스러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 기록에 의하면 딱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그게 바로 &lt;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gt;이다. 미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 가운데 한 명. 그의 이름을 딴 일련의 작업을 보더라도:<br>&nbsp; 2007년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제임스 웰던 존슨 인종과 차이 연구소&nbsp; 메릴랜드 볼티모어 고핀 주립대학 내 제임스 웰던 존슨 빌딩 건축&nbsp; 플로리다 존슨빌 그의 출생지에 제임스 웰던 존슨 중학교&nbsp;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제임스 웬던 존슨 커뮤니티 도서관&nbsp; 1988년 2월, 미국 우정국, 존슨 사진 우표 발행&nbsp; 2020년 플로리다 잭슨빌의 헤밍 공원 이름을 제임스 웰던 존슨 공원으로 개명&nbsp; 2021년 메인주. 6월 17일을 제임스 웰던 존슨 연례 기념일로 제정.<br>&nbsp; 핫따. 이 정도면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겨놨군.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존슨의 행적은 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이야기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리 연관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 없다. 근데 왜 이리 장황하게 소개를 했느냐 하면,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독후감 분량이 너무 적어질 것 같아서.<br>&nbsp;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라고 하니까 지금은 적어도 흑인이 아니라는 말씀. 흑인이 아니면 그새 백인이라도 된 거야? 아니다. 흑인에서 사람으로, 백인도 백인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처럼. 물론 이 책 나온 시점이 1912년 또는 1927년이라 아직도 버스에 백인 남자가 탔는데 흑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시기라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선언이겠지. 1920년대에는 아.마.도. 백인이 타는 버스, 흑인이 타는 버스가 따로 있어서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마땅한 결론을 내릴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이 늘 돌보고, 지도해주고, 귀여워해야 그나마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고등한 미개 영장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nbsp; 그러나 실제로는, 1865년 흑인 해방 이전에도 주로 합중국 북부에 산포해 있었을지언정 자유신분증을 품에 가지고 다니며 여러 사업을 벌여 돈 푼 깨나 벌어서, 좋은 집에 아이들 교육도 빵빵하게 잘 시킨 백인들 사교계에 말석이기는 하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중산계급 정도는 벌써 발생한 상태였다. 이들 바로 밑으로는 탁, 떠오르는 작가가 있지? &lt;패싱&gt;을 누가 썼더라? 맞아, 넬라 라슨. 라슨의 작품에서 본 적 있는 밝은 피부의 유색인. 그래서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던 주인공들의 안간힘이라니.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br>&nbsp; 주인공 화자 ‘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데 앞마당에 꽃밭이 있던 작은 집. 집 뒤켠 헛간에 큰 빨래통이 세 개 있었으니 이 빨래통은 평생에 걸친 혐오품목 1호에 오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겨 통이 집어넣고는 하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기면 아예 껍데기가 홀랑 까지는 것처럼 얼마나 아팠는지.&nbsp; 이 시절을 기억하면 어머니와 검은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키 큰 남자가 보인다. 2~3주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는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던 날에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10달러 금화에 구멍을 내고 줄로 꿰어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10달러 금화 목걸이는 이후 ‘나’의 인생에 절반을 넘어 매달리게 되고 아직도 작은 보석함에 보관하고 있다.&nbsp; 이 백인 남자. 독자가 척, 보니까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른바 생부다. 혼자 사는 확실한 흑인 여성, 그러나 피부가 까맣지는 않고 옅은 갈색으로 보이지만 누가 봐도 흑인이라고 할 정도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까지는 턱도 없이, 그저 마음에 들어 내연의 관계를 갖다 보니 아들이 하나 생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아주 막 나가는 인종이 아니라서 다른 보통의 흑인가족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었다. 여자도, 아이도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2층집에 살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면 말 다 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의 친동생 존 로자몬드 존슨처럼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 일반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부터 재즈, 래그타임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 당연히 이 피아노 솜씨와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나’가 배를 곯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게 된다.<br>&nbsp; 키 큰 백인이 ‘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준 날, 어머니와 ‘나’는 존슨빌을 떠났다. 마차로 서배나에 가서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뉴욕. 거기서 또 마차로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로 갔는데, 그곳이 이른바 소년시절의 고향이 된다. 거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거기가 고향이지.&nbsp;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 갖춰진 조그만 독립가옥.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아니지만 새 피아노도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옷도 잘 차려 입어 자부심도 빵빵해져 마치 완벽한 꼬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도 받았다. 글공부도 시작했는데, 음악이나 글이나 ‘나’는 전체를 한 덩어리의 그림으로 여겨 ‘나’가 생각하는 의미로 재구성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쉬운 얘기로, ‘나’가 대단히 똑똑하고 뭐든지 잘 배우는 신동이었다고 겁나게 잘난 척하는 중이다.&nbsp; 아홉 살 때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많이 검지는 않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도 있어서 ‘나’는 그를 “빛나”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가면서 진짜 이름을 잊었다. 훗날, 한 삼십 년가량 흐른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기회가 있었으니 그때도 ‘나’는 그를 “어이, 빛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할 예정이다.&nbsp; ‘나’는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품행성적이 좋지 못했다. 제일 특별한 학생은 당연히 빛나였지만, 피부색 때문인지 아무리 특출해도 좀 업신여김을 받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전부 나가고 유색인 학생만 남아 있어요, 라고 지시를 했다. ‘나’는 당연히 주섬주섬 ‘나’의 소지품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자한 담임선생이 ‘나’의 팔목을 잡더니, 너는 여기에 있어야겠다, 라고 하는 거였다. 아오, 이런 수치가.&nbsp;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곱슬곱슬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상앗빛 피부, 아름다운 입매에 크고 촉촉한 눈. 깊고 검실검실한 눈썹. 엄마한테 달려가 묻는다.&nbsp; “말해줘 엄마! 내가 깜둥이야?”&nbsp;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가 묻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nbsp; “아니, 엄마는 백인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분이셔. 네 몸 속에는 남부의 가장 훌륭한 피가 흐르고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주마.”<br>&nbsp; 백인 친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받았는지 정말로 코네티컷의 작고 화려한 집에 와서 자기가 아버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 정확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니지만 유전자 속에 흑인의 인자가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된다.&nbsp;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이 성공한 유색인이라 주인공인 ‘나’도 인생이 우리가 흔히 소설책에서 보는 대다수의 흑인처럼 짜부러들지 않는다. 교육도 마치고, 애틀랜타 대학에 입학하러 갔다가 입학금 전액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도 ‘나’한테는 피아노 연주 솜씨가 있으니. 하여간 그 재주 때문에 파리에도 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독일 구경도 하면서 여러나라의 언어도 습득한다. 파리의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아내와 딸을 동반해 관람석에 앉아 있던 친아빠도 만난다. 눈길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사랑도 하고, 어여쁜 백인 소프라노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nbsp; 그리하여 결론은? 저 앞에 써 놓았다.&nbsp; 스토리만 이렇게 써 놓아 재미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의 반은 에세이다. 에세이로 쓰면 재미가 적을 것 같아서 소설 형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논의를 21세기에 읽는 건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동양 사람들 눈꼬리나 옆으로 찢지 말았으면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60/89/cover150/89546100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089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오해, 우정, 그리고 사랑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7516</link><pubDate>Wed, 15 Apr 2026 0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75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4942&TPaperId=172175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08/74/coveroff/89546949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4942&TPaperId=172175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일 또 내일 또 내일</a><br/>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08월<br/></td></tr></table><br/>.&nbsp; 북동유럽 유대인 혈통의 이민 2세의 남자와, 아홉 살에 이민 온 한국 여성이 십여 년 후에 코네티컷의 고등학교에서 동창으로 만나 IBM에서 근무하는 동안 개브리앨 제빈을 낳았다. 1977년 뉴욕생.&nbsp; 자란 곳은 플로리다. 그곳에서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톤으로 올라가 하버드대에 입학해 영어와 미국문학을 전공했다. 공립고등학교에서 하버드라니 쉽지 않았을 텐데? 하긴 세계적으로 머리 좋은 거 하고 극성떠는 거에 관해 두번째가 서러울 유대인과 한국사람의 DNA가 만났으니 그 정도야.&nbsp; 하버드를 졸업한 후에 계속 맨해튼에서 살며 직장 없이 작가 생활을 한 거 같다. 하여간 위키피디아에서 다른 경력은 보이지 않으니까. 성인소설도 쓰고 청소년소설도 썼는데, &lt;내일 또 내일 또 내일&gt;이 제빈이 쓴 다섯 번째 성인을 위한 소설이라고. ‘성인용 소설’이라고 해서 군침 꿀꺽 삼킬 필요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인소설 같은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거나 아예 안 나온다.<br>&nbsp;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두 명의 진짜 주인공(해리와 헤르미온느 급)과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론 위즐리 급)이 등장한다. 이 귀여운 천재들을 먼저 소개하자.&nbsp; 샘슨 메이저Mazer. 원래 이름은 샘슨 매서Masur였는데 메이저로 이름을 바꾼 후에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창조전문가로 변신한 기분이 든단다. 작가는 샘의 정체성을 동유럽유대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이라는데 이건 작가의 정체성과 똑같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LA에서 연예 프로덕션 일을 하지만 샘 출생 당시 엄마와 결혼상태는 아니었고 출산에 관계하지 않았지만 샘이 태어나자 당시 화폐가치로는 거금이었던 만 달러를 모자에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는 조연급 배우였지만 여유있게 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잘 살아가다가 샘이 열 살 되는 해, 공연을 보고 엄마와 귀가하던 밤에 하필이면 엄마와 이름도 같은 ‘에미 리’라는 홈드레스를 입은 한국인 여성이 10미터쯤 앞에 떨어져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엄마는 샘을 끌고 샘의 외조부가 K타운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LA로 이사한다.&nbsp; 세이디 그린은 동유럽에서 온 이민 유대인 부르주아 가족. 구성은 할머니-부모-언니 앨리스-세이디. 나중에 언니는 UCLA 의사가 되고, 세이디는 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운다. 막이 오르면 언니 앨리스가 소아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부모의 거의 모든 관심이 앨리스에 쏠린다. 세이디는 앨리스의 (평소에는 심하지 않았던)심술 때문에 가끔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에잇, 그것쯤, 잘 견디고 있었다. 병실에서 쫓겨나 복도에서 빈둥거리다 마음 좋은 간호사가 닌텐도 게임기가 있는 휴게오락실에 가서 놀고 있으라 해서 달려가봤는데, 거기 환자복을 입은 또래 남자애가 &lt;슈퍼마리오 브라더스&gt;를 하고 있었다. 근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27군데의 다리뼈가 부러져 철심으로 얼기설기 해 놓은 환자. 이 아이가 샘슨, 샘이다. 둘은 게임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샘이 세이디에게 자리 차례이기는 하지만 이번 회전에는 세이디가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nbsp; 이걸 현명한 간호사가 눈여겨 본 모양이다. 그래서 세이디의 어머니한테 저 아이가 입을 연 것은 사고가 난 후 6개월만에 처음이다, 세이디를 매일은 못하겠지만 시간 나는 대로 병원에 보내 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에 대단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생각해보니, 내년에 12살이 되면 유대성년식인 바트 미츠바를 해야할 터, 이때 봉사활동 점수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그것 괜찮겠구나, 하고 흔쾌히 동의했다.&nbsp; 샘이나 세이디는 머리가 좋다. 좋아도 무지하게 좋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 이런 아이끼리 만났으니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하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는 도중에 치트키 라는 것이 있다며? 그런 것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으면서 매우 가까워졌는데, 세이디는 병원에 왔다 가면서 ‘봉사활동 증명서’에 꼭 사인을 받아 갔다. 세이디의 현명한 할머니이자 LA의 부동산 거물로 실무에서는 엄정하고 용의주도하며 양심적인 사업가라 중평이 나 있는데, 이 프리다 할머니가 샘과 세이디의 우정을 의심한다.&nbsp; “세이디, 우정은 우정이고 자선(봉사)은 자선(봉사)야. 만일 누가 너에게 자선을 베풀어주면, 너는 그 사람하고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단다.”&nbsp; 세이디는 14개월 동안 계속 샘을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906시간, LA 시나고그에서 가장 긴 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워 상까지 받으며 바트 미츠바를 치뤘는데, 이에 샘이 났는지 막 백혈병에서 완치되었지만 환자였을 때 심통부리던 습관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한 언니 앨리스가 이 사실을 샘에게 알려줌으로 해서, 샘은 그동안의 우정이 우정이 아니라 봉사, 자선이었구나, 누가 저더러 봉사나 자선 같은 걸 해달라고 했나, 잔뜩 오해하고, 원래 몸이 아픈 환자는 오해가 심한 법이라 이런 영향도 무지 받으면서, 세이디와의 우정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글쎄 노인네 말 들으면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br>&nbsp; 이후 샘슨 머서는 LA 동쪽의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니고, 세이디 그린은 LA 서쪽의 고급 사립학교를 다니며 캘리포니아와 LA 지역에서 있었던 많은 수학, 과학 경연에서 만나 진검승부 끝에 둘 중에 한 명이 최우수, 다른 한 명이 우수상을 번갈아 탄다. 세이디가 MIT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샘은 그러면 난 고려대상 가운데 하나였던 MIT 안 간다, 하버드 가겠다, 해서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입학했다. 세이디는 부잣집 딸이니까 걱정이 덜한데, 샘이 문제다. 교통사고를 당해 엉망이 된 왼쪽 발 부분 때문에 보행도 쉽지 않은데다가 조부모 이동현씨와 이봉자씨가 아무리 뒷바라지를 잘 해주려 해도 그저 공부에만 몰두하기가 쉽지 않을 터, 몸이라도 편해야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떻게 버텨볼 텐데.&nbsp; 하여간 서부 해안의 건조하고 따듯한 기후를 기준으로 옷을 준비해온 보스톤은 그러나 겁나게 추웠다. 근데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가 누군가 하면 마크스 와타나베. 사업을 경영하는 와타나베 씨와 대학에서 직물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의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외아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자제 답게 매사에 차분하고, 남의 말 잘 들어주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으로 원만하게 세상 일을 풀어갈 줄 아는 다감한 사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든 이의 연인이이도 했다. 사랑이 끝날 시점이 돼도 언제나 여자의 뜻으로 이별을 결정한 것으로 국면을 마무리했는데, 그래야 사랑은 사라질지라도 우정이 계속되는 법이란다. 그걸 20대 초반에 알고 있었으니 이쯤되면 신선이었지. 이 마크스 와타나베가 샘과 세이디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다시 우정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그걸 크게 키울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력을 위하여 이 커플의 사업과 성공에 도움을 주는 제3의 주연. 샘과 세이디가 해리-헤르미온느 급이라면 마크스는 여지없이 론 급이다.<br>&nbsp; 샘과 세이디는 3학년 때 만난다. 게임 론칭 행사로 엄청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세이디는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운 교수와 연애하던 시기였고, 샘은 하버드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수학에 대단한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하고 싶지는 않은 상태. 필즈 상을 노리고 있는 지도교수도 샘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리하여 샘이 세이디와 함께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불멸의 히트작이 될 &lt;이치고&gt;라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nbsp; 이들 세이디와 샘은 마크스의 추동에 의하여 하루 열여덟 시간 이상을 쓰며 개발을 하기 시작해 드디어 기한에 맞추어 &lt;이치고&gt;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제 이들은 3인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게임회사 &lt;언페어 게임&gt;을 만들어 젊은 부자의 대열에 올라섰으나 마크스만 빼고 샘과 세이디에게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현명한 마크스는 이들을 위하여 언페어게임사를 캘리포니아 LA로 옮기자고 제안하고, 샘은 세이디를 위하여, 세이디는 샘을 위하여 마크스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여기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올라선다.&nbsp; 이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으니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nbsp; 두 천재 샘과 세이디의 갈등. 최초의 갈등이 우정과 봉사(자선). 두번째 갈등은? 그것과 비슷한 오해겠지. 세번째 갈등은? 그건 안 알려드린다.<br>&nbsp; 내가 이 책을 잘 읽은 것은 40대 중반의 작가가 20대 초반의 등장인물을 보는 아련한 시선이었다. 1부의 마지막 장면에 샘과 세이디는 (우정-봉사 이야기)화해한다.<br>&nbsp; “’약속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더라도, 서로 말도 안 하고 6년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넌 나를 무조건 용서하는 거야. 나도 너를 무조건 용서하겠다고 약속할게.’ 이것은 물론, 생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쟁여놨는지 쥐뿔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함부로 맺는 서약의 일종이었다.” (p.103)<br>&nbsp; 이 문단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슬펐는지. 20대 두 아이들 앞에 어떤 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 남아 있는지 전혀 모르고 오직 하나, 젊었다는 것 때문에 쉽게 약속을 하는, 해버리는 두 아이들이 내 마음을 후벼파서 가슴이 아리고 아리더니 결국 눈까지 매캐해지다가 붉으레하게 만들어버렸던 거다. 저 뒤쪽에서 한 번 더 그렇게 되는데, 그건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샘의 할아버지 이동현 때문에’라는 힌트 정도야 뭐.<br><br>&nbsp; 의아했던 것도 말해보자.&nbsp; 좀 웃겼다. 개브리얼 제빈은 정확하고 완벽한 미국인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 유럽은 크게 동, 서, 남, 북유럽으로 달리, 자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개별 국가로 구별해야 하지만 아시아인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인구도 많은 대륙 어디서 왔건 간에 그냥 아시아인이다. 엄마가 아홉 살 이전엔 한국에 살던 한국인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이완, 파키스탄, 베트남, 레바논, 다 같은 그냥 "아시아 사람"들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08/74/cover150/8954694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08747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직도 낙원을 믿어? 순진하기는 - [잃어버린 낙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5449</link><pubDate>Tue, 14 Apr 2026 04: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54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633800&TPaperId=17215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17/62/coveroff/k2426338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633800&TPaperId=172154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잃어버린 낙원</a><br/>세스 노터봄 지음, 유정화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09월<br/></td></tr></table><br/>.&nbsp; 1933년생인 노터봄이 일흔한 살이던 2004년에 발표한 소설.&nbsp; 한 평생 신나게 산 작가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안다고 92세의 노인더러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는 걸로 충분하지. 나는 사는 게 지옥이었는데 노터봄은 낙원 속에서 살았을 리가 없잖은가.&nbsp;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이가 세상 천지에 안 가본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신나게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세상을 다닐 수 있나 어디? 농사 질 땅이 변변치 않아 뭐 해 먹을 게 없어서 예부터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해 먹고 산 네덜란드 사람이니까 몇 가지 외국어에 능통한 거야 뭐 그럴 수 있어도, 주머니가 좀 넉넉해야 비행기를 타던, 배를 타던, 기차를 타던 멀고 먼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객지를 돌아다닐 용기도 제법 갖추어야 할 터인데 그것마저 별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나마 행운의 별이 노터봄의 정수리 위에서 반짝이긴 했던 모양이다.<br>&nbsp; 이 소설도 ‘나’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국 국경에 위치한 보덴제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프리드리히샤펜(Friedrichshafen, 책에서는 “프리드리샤펜”)에서 베를린의 뎀펠호프 공항으로 비행하는 작고 아담한 비행기 대쉬Dash 8-300 비행기에 오르며 시작한다. 이게 본문은 아니다. 프롤로그.&nbsp; 작은 비행기라서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를 탑승객이 볼 수 있다. 아직 비행기의 엔진도 켜지 않은 상태.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나’의 옆 좌석이 비었다. 실내를 둘러봐도 빈 자리가 무척 많다. 이 노선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글쎄, 한 50대 후반 정도의 남자. 그런 것처럼 보인다. 좀 지루했는지 ‘나’는 의자 등판에 꽃아 놓은 기내지를 꺼낸다. 늘 보는 항공사 광고와 ‘나’가 탄 작은 항공사가 운행하는 베를린, 빈, 취리히에 대한 정보가 조금 실렸고, 이어서 자유기고 기사가 두 꼭지 있다.&nbsp; 기사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 선주민에 관한 것이다. 암각화와 화려하게 채색된 돛배 사진. 다른 하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관한 기사. 지평선을 따라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부자들의 고급 주택가가 있는 반면, 이에 못지 않는 그림 같은 초라한 판자촌, 도시 빈민가도 보인다. 물결 모양의 함석지붕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판잣집들, 거기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에 관한 장방형 프레임. 당연히 ‘나’는 프레임 밖의 것도 알고 있다.&nbsp; ‘나’는 이미 그곳을 다녀와본 적이 있으니까. ‘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진은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껏 떠났던 모든 여행을 여차하면 데자뷔 비슷한 비현실적 느낌이 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nbsp; 이때 미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여성이 비행기 기내로 들어왔다. ‘나’는 옆좌석이 비어 있어서 당연히 이 여성이 옆에 앉았으면 좋겠지만, 희망은 늘 배신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라 그이는 앞 좌석 창가에 앉는다. 카키색 바지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아래로 살며시 흔들리는 젖가슴을 바라보는 게 짜릿하다. 그녀는 진홍빛 포장지에 스카치테이프로 포장된 책을 꺼내 읽다가 잠시 후에 그냥 의자 위에 엎어 놓는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nbsp; 그러다가 여자도 기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상파울루를 달리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그림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nbsp; 한참을 더 써야겠지만 아직도 프롤로그이니 결론만 말하자. 이 여성 승객이 가지고 타서 읽어보려 포장을 뜯은 책은 지금 내가 읽으려고 하는 세스 노터봄의 &lt;잃어버린 낙원&gt;이다. 그러니 화자 ‘나’ 역시 세스 노터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기는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엄연하게 픽션이니까.&nbsp; 무엇보다, 이 프롤로그에서 독자가 책을 읽으며 보게 될 장소가 다 나와 있다는 것. 첫째가 브라질 상파울루요, 두번째가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대도시 퍼스와 황량한 호주 사막.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갔던 것처럼 보이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부근의 알펜호프라고 부르는 스파.<br>&nbsp; 만일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세스 노터봄이라고 한다면,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본 기내지 두 곳, 상파울루와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그리고 알펜호프 이야기는 기내지에서 기사를 보고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많다. 상파울루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젊은 여성 이야기만 해보자.&nbsp; 상파울루의 여름밤. 자르뎅이라는 부촌. 이곳 주민들은 밤외출을 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이 동네 집안에서 하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대중교통 차량을 타고 두 시간 동안 지친 몸을 버텨내야 도착하는 집에 가기 위하여 어둠 속 그림자로 거리를 메운다.&nbsp; 그러나 이날, 알마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엄마의 세컨드 카를 빌려타고 한밤중에 차고를 나섰다. 소형차는 상파울루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금지된 구역인 파라이소폴리스, ‘낙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파울루에서 가장 열악한 빈민가이자 언제라도 피가 튀는 범죄가 발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역으로 진입했다. 여름밤의 무드 때문에 충동적으로 밤 드라이브를 선택한 알마. 하늘은 알마에게 무드 대신 고난을 주기로 결심했는지, 엄마의 세컨드 카가 낙원의 도시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푸르륵, 작은 신음과 함께 엔진을 멈추고 말았다. 거의 완전한 어둠. 아무도 없는 공포.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마는 자기를 원처럼 둘러싼 검은 그림자들을 보았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림자들의 잊혀지지 않을 웃음소리. 그들 목소리에 한없이 깊숙하게 깔린 증오와 분노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삼켜버렸다. 몇 명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내버리고 가버린 그림자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차와 알마의 가방 속 모든 것이 없어진 것도,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들이 자신을 윤간한 것도 아니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가버린 것이었다.<br>&nbsp; 키가 크고 금발의 미인 알무트. 알마의 가장 친한 친구. 알무트가 경찰에 신고했고, 산부인과에도 함께 가주었다. 기골이 장대한 미인이라 브라질 남자들은 알무트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알무트는 자신을 보탄의 딸, 부륀힐트라고 불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nbsp; 알마와 알무트는 부르주아 딸들이 전공하면 가장 어울리는 과인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알무트는 윌링 드 쿠닝, 뒤비페 같은 현대미술, 알마는 라파엘, 보티첼리, 지오토 등의 르네상스 미술. 둘은 열다섯 살 시절부터 암스테르담, 드레스덴, 피렌체, 파리 같은 곳을 순례하며 실물 명화를 직접 보기도 했다. 보통 부자가 아니다.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이들 할아버지 둘 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독일에서 브라질로 건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들도 자기 아버지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일어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아하, 그렇구나.&nbsp; 두 미술사 전공 아가씨들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땅이었다. 시간과 기억 이전의 시대, 세상이 편평했고 텅 비어 있었으며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그리고 사람들. 그들도 없던 곳의 드림 타임.&nbsp; 상파울루에서의 사건 이후 집안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알마에게 알무트가 오스트레일리아 행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선주민이 인간 최초로 만들었던 예술품들. 벽화와 암각화, 그리고 지금의 선주민들의 회화. 시드니를 거쳐 선주민의 낙원인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것이다.&nbsp; 두 아가씨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물리치료사 과정 수료부터 완료한다. 그래야 식당이나 술집에서 접시닦이, 홀 서빙, 애 보기 같은 허드렛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물리치료사를 고집하는 것은 정작 물리치료 또는 마사지시술로 돈을 버는 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알펜호프이기 때문이다. 그럼 호주에선 뭘 해 돈을 버냐고? 천사가 나타난다. 정말이다. 천사.&nbsp; 2백쪽에 불과한 분량. 읽기 편하겠지? 아마도 아닐 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17/62/cover150/k2426338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1762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보통 문장이 아닌 SF의 아버지 - [멜랑콜리의 묘약]</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3440</link><pubDate>Mon, 13 Apr 2026 0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134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84253161&TPaperId=172134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1/30/coveroff/ek8425316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84253161&TPaperId=172134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멜랑콜리의 묘약</a><br/>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09월<br/></td></tr></table><br/>.&nbsp; 오랜만에 읽는 SF의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 1959년에 발표한 소설집. 벌써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이와 비슷한 연배에 유독 눈에 띄는 SF 작가들이 제법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스타니스와프 렘. 1920년 부근에 갑자기 태양 흑점 폭발이 심했었나?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을 지구에 쏟아부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거명한 사람들과 브래드버리를 구별하게 만드는 건, 브래드버리는 시를 쓰기도 해서 그럴 것 같은데, 번역문을 읽으면서도 문장이 여간 고급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유혹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SF, 즉 과학소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 또는 고딕과 (결코 귀신은 아니지만)귀신 비슷한 것도 출몰한다.&nbsp; 이 소설집 《멜랑콜리의 묘약》은 SF라기보다 고딕과 그로테스크 소설을 더 많이 실었다. 외계생명체와 우주여행을 주제로 하는 건 두세 작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이 두세 작품을 영향이 다른 비슷비슷한 고딕/그로테스크 작품에 비하면 훅, 하는 무게감이 상당하지만.<br>&nbsp; 모두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이 책을 고르면서 조금 캥겼던 것은 이이의 다른 (우리나라에서 유명한)단편집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과 겹치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 독자라면 당연히 의심하는 것일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읽으시라. 한 편도 안 겹친다.&nbsp; 이 책은 1959년판 《A Medicine for Melancholy and Other Stories》를 두 권으로 분책에 옮긴 첫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온 여름을 이 하루에》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그냥 한 권을 한 권으로 만들면 안 되었을까? 합하면 7백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라 책이 팔리지 않을 거 같아 그랬을까? 뭐 그냥 장삿속이었겠지. 출판사도 돈 벌어야 하는 기업이니 우리가 이해하자.&nbsp; 이 책, 어제 읽었다. 지금 목차를 보면 그래, 이거, 이거, 이것은 어떤 이야기였지. 재미있었어. 이렇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일 주일 있다가, 더 멀리, 이 독후감이 업로드 된 날에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을 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br>&nbsp;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제일 앞에 배치한 &lt;어느 잔잔한 날에&gt;.&nbsp; 미국인 부부 조지와 앨리스 스미스는 여름 한낮에 남서 프랑스 해변인 비아리츠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남편 조지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 그중에서도 회화를 좋아하고 파블로 피카소를 추앙하다시피 한다. 문제는 해변에서 조금,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어촌의 별장에 하필이면 때를 맞춰 피카소가 와 있다는 것. 조지는 괜히 기분이 들썩들썩. 카라바지오의 과일 정물, 맹인조차 이글거리는 화사한 해바라기 꽃을 그린 고흐도 좋지만 지브롤터 전역에 한여름의 소나기를 퍼부며 수평선 위로 우뚝 솟아오른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도 같은 &lt;거울 앞의 소녀&gt;와 &lt;게르니카&gt;의 창조자인 파블로 피카소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조지한테 얼마 머지않은 곳에 있다. 실물의 피카소가.&nbsp; 바다에 첨벙 몸을 담그고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멀리 힘을 다해 수영을 해봐도 그를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해변엔 저녁이 다가오고, 오래 수영을 해 진이 빠진 조지와 다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훌쩍 떨어진 저쪽에 조지 스미스보다 키가 작고 머리를 각지게 자른 한 남자가 홀로 고요한 대기 속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해안선 무대가 마련되었고 몇 분 후 두 남자는 마주칠 운명이었다.&nbsp; 낯선 남자는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자신이 혼자 있는 걸 확인하고 잠깐 몸을 돌려 모래 위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라임 맛 아이스크림을 꽂았던 가느다란 막대.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을 지금 모래 위에서 시작하는 거였다.&nbsp; 모래 위에서 태어나기 시작한 굉장한 형태들. 금세 자신의 작업에 완벽하게 심취하여 몽혼의 상태에 이른 짧은 머리의 남자. 두번째, 세번째 형체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사물의 모습.&nbsp; 해변을 따라 걷던 조지 스미스의 저 앞쪽에 남자의 숙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까맣게 그은 몸을 한 남자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예순다섯? 일흔? 어쩌자고 모래밭에 저토록 거친 그림을 마구 펼치고 있을까? 어떻게….&nbsp; 한 발자국 그림에 더 가까이 접근한 조지.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nbsp; 편편한 모래밭에는 그리스 사자와 지중해 염소, 금가루 모래로 살집을 만든 처녀, 손으로 깎은 뿔피리를 부는 사티로스, 바닷가를 따라 꽃을 뿌리고 춤을 추는 아이들, 하프와 리라를 연주하며 깡충깡충 뛰는 악사들, 젊은이와 유니콘. 님프와 나무 요정들이 이삼십 미터가 넘는 길이로 펼쳐지고 있었다.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 또한. 모래는 녹아내린 구리색이 되어 어느 시대, 어느 인간이 읽어도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는 영원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다.&nbsp; 그러다 허리를 펴고 눈길을 든 늙은 화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는 천진한 모습. 어깨를 으쓱하는데 마치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nbsp; “내가 한 짓을 보시오. 어린애 장난 같지 않소? 누구나 한 번은 바보가 되는 법이라오. 당신도 그럴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이 바보 같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시오. 아무렴. 아무렴.”&nbsp; 늙은 화가는 발길을 돌려 갈 길을 갔다. 조지 스미스는 넋을 잃은 채 황금 가루로 그린 바닷가의 대작, 칠 팔미터를 훌쩍 넘는 대작 중의 대작을 보느라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내리는 지도 몰랐다.&nbsp; 숙소로 돌아온 조지 스미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함께 식당 테이블에 앉은 부부. 조지가 메뉴를 집어들고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리고.&nbsp; “들어봐.”&nbsp; 아내는 귀를 기울였다.&nbsp;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nbsp; “안 들려?”&nbsp; “응. 무슨 소린데?”&nbsp; “그냥 파도 소리.” 그는 잠시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br>&nbsp; 아오, 정말 좋지 않나? 뭐 열일곱 편 가운데 하나를 좀 자세하게 소개했다고 줘어박지는 않겠지.<br>&nbsp; 이것 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다가 정말로 그 세계로 가버린다는 &lt;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gt;도 즐겁게 읽었고, 외계 생명체 이야기인 &lt;번데기가 된 사나이&gt;도 흥미진진했다. 사람이 번데기가 돼? 그럼 다음 단계는 성충이다. 사람이 변태하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까? 눈이 서너개 더 달릴 수도 있고, 몸의 피부가 뼈만큼 단단한 갑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혹시 모르지 가슴 근육이 완전 빵빵해지고 등 뒤로 날개가 달려 인간 드론으로 변할 지도. 더듬이까지 생길 수 있다. 빽빽하게 공중을 메우고 있는 모든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더듬이, 영어로 하면 안테나. 어떻게 변하는 지는 안 알려드리겠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1/30/cover150/ek8425316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51307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우왕좌왕, 좌충우돌 - [목욕탕]</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7637</link><pubDate>Fri, 10 Apr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76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022710&TPaperId=172076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30/92/coveroff/s292934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022710&TPaperId=172076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목욕탕</a><br/>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05월<br/></td></tr></table><br/>.&nbsp; 다와다 요코는 일본 출생이면서도 살기는 독일에서 산다. 독일어로도, 일본어로도 작품을 쓴다. 두 언어 모두 자주 번역해 다른 나라에서도 팔리는 국제어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런다.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걸 뭐라 할 수 없지.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시라.&nbsp; 근데 나는 특히 다와다의 독일 체류.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일본인이 독일에서 ‘작가로’ 살며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조금 야릇하다. “야릇하다”라는 형용사를 선택하기 위해 머리를 좀 굴렸다. 처음엔 ‘우습다’로 시작해서 ‘못마땅하다’를 거쳐 좀 더 순화된 표현이 없을까 고르다가 내 나름대로 애써서 쓴 단어가 ‘야릇하다’인 걸 고백한다. 물론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그것도 작은 고충이 아니겠지만 뭐 그 정도 가지고 유난을 떠는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시인, 작가들. 알제리에서 알제리 언어를 버리고 “적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아시아 제바르 같은 인물에 비하겠느냐는 말이다. 프랑스는 그래도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잔인한 정복행위와 통치와 독립전쟁에서의 학살을 비난했던 아시아 제바르를 프랑스 아카데미 종신회원으로 만들어주기라도 했지, 다와다 요코의 모국인 일본 정부가, 일본어로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비난한 글을 썼다면 비슷한 생각을 꿈에서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불령선인으로 몰아 감옥에서 죽여버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을.&nbsp; 다와다여, 내 말을 아니꼽게 여기지 말라.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후손이 당연히 따져볼 수 있는 문제이니.<br>&nbsp; &lt;목욕탕&gt;은 1989년에 발표한 독일어 작품. 상상 이상으로 널찍한 자간, 행간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간신히 100쪽을 넘긴 분량의 짧은 작품이라 2018년에는 같은 책에 독일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실린 새 판본으로도 출간했다고 역자 최윤영이 을유에서 ‘책읽는수요일’로 넘어가며 새로 고친 해설에 쓰여 있다. 다와다 요코가 세상이 다 알아주는 환경주의자, 반핵주의자인데 이 책 편집을 실물로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다와다의 문학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한 기념할 수 있는 책인데, 1989년까지 다와다는 아직 반핵운동가도 환경주의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 속에서 비슷한 내용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이의 다른 책에서는 한 권도 빼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임에도.&nbsp; 대신 소위 Hiruko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일본의 건국신화 속 거머리 공주처럼 일본의 옛 이야기가 등장한다.<br>&nbsp; 일본의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임신한 여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하도 배가 고파 마을사람들과 나눠먹지 않고 혼자서 그걸 날로 다 먹어버렸다. 아들을 낳고 나중에 보니 아들 말고 엄마의 몸에 비늘이 돋기 시작해 커다란 물고기가 되었다. 이제 산에 살 수 없어져 강으로 가서 혼자 외롭게 살았고, 아들은 마을의 외로운 할아버지가 키웠다. 동네 아이들이 다툴 때마다 아들더러 네 엄마는 비늘 짐승이라고 흉을 보아 할아버지한테 비늘이 뭐예요, 라고 물어 엄마에 대해 알게 된 아들. 어떻게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논이 없는 마을에 바위를 깨서 흙을 만들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마을이 잘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그러면 엄마를 다시 데려와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강에 찾아가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엄마는 그때부터 자신의 몸을 바위에 부딪혀 바위를 깨 흙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위에 몸을 부딪혔는지 정말로 산골 마을에 논이 생겼을 땐 엄마의 몸에서 비늘이 벗겨져 다시 사람이 되는 대신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버리고 말았다.<br>&nbsp; Hiruko 3부작의 거머리 공주 이야기는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7번, &lt;지구에 아로새겨진&gt;에 소개했으니 그걸 참고하시고, &lt;목욕탕&gt;에서는 주인공 화자 ‘나’의 얼굴에 비늘이 생기는 걸로 시작한다. 비늘은 얼굴에만 돋은 것이 아니라 잠옷의 단추를 열어보니 가슴과 팔에도 고등어 냄새가 나는 비늘이 자라 있다.&nbsp; 흠. 보이는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 혹시 그거 땟가루 아냐? 하도 때를 밀지 않으니까 각질이 두껍게 쌓였다가 겉 각질이 푸스스 부스러진 상태. 거 솔직하게 말한다고 누가 뭐라 하나? 어차피 픽션이라서 다와다 몸에 땟가루 앉았다고 흉볼 사람도 없는데.&nbsp; 그래서 &lt;목욕탕&gt;을 처음 읽어 나가며 이 책은 일본의 구전 전설이나 옛이야기를 현대 독일에 맞춰 다시 설계한 것이겠다, 이렇게 예상했었는데, 아니다. 이제부터 다와다 요코 특유의 정신없는 횡보를 시작한다. 다분히 포스트 포스트모던한 작품.&nbsp; 목욕을 끝내고 화장도 마친 ‘나’의 집에 독일인 애인 크산더Xander가 라이카 카메라 세 대를 들고 찾아온다. 여행사 광고 포스터에 삽입할 ‘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렇다고 크산더가 사진가는 아니란다. 독일어 강사.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준. 그러다 눈이 맞아 애인 사이가 되었다.&nbsp; ‘나’ 역시 여행사 광고 포스터의 모델로 크산더가 원하는 대로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렇다고 ‘나’가 모델인 건 아니다. 통역사. 독일어-일본어 통역. 이 날도 호텔 컨퍼런스 룸으로 일본, 독일 상사간 회의가 있어 통역을 하러 가야 하고, 정말로 간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비늘이 돋은 걸 발견했는데 점심식사로 커다란 생선이 통째로 한 마리 나온다. 대표 셰프가 큰 칼을 들고 여자의 허벅지처럼 생긴 생선살을 발라 참석자 열한 명의 분량으로 사이 좋게 나누어 준다. 비록 ‘나’는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생선을 먹다가 콱 막혀 화장실에 가서 까무러쳤지만.<br>&nbsp; 그럼 오후 회의는 어떻게 해? 이거 사람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통역사가 화장실에서 까무러쳤는데 지금 회의가 문제야? 그렇다. 회의가 문제다. 아무도 와보지 않는다. 대신 화장실 청소 담당하는 마흔살 전후의 청소부가 ‘나’를 구원해준다. 호텔의 잡역부 쉼터에서 쉬게 하다가 급기야 자기 집으로까지 데려다 준다. 여자는 몸의 반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는 생선 먹을 때부터 입이 콱 막혔다. 혀가 없어져버린 모양이다. ‘나’가 좋아하는 혀가자미 요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먹지도 않았는데 왜 혀가 없어졌을까?&nbsp; 정신없지? 나중에 알고 보면 이 화장실 전속 청소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 화재가 나서 불타 죽은 여자 아닌가 싶다. 어떠셔? 더 들어보실래? 관두자. 책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정신 사나운 이야기가 좌르륵 나열되어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언어 이야기, 언어를 발음할 수 없는 혀가 사라진 이야기 등등. 하여간 이 사람,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30/92/cover150/s292934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30927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 [유랑극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5685</link><pubDate>Thu, 09 Apr 2026 04: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56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6091&TPaperId=17205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4/24/coveroff/89582860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6091&TPaperId=172056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랑극단</a><br/>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05월<br/></td></tr></table><br/>.&nbsp; 오랜만에 렌츠의 소설을 읽었다. 그간 10년 세월이 훌떡 지나갔네. 민음사세계문학 40, 41번 &lt;독일어 시간&gt;. 오래 전에 읽었고, 그리 인상깊지도 않아 새까맣게 잊은 줄 알았더니 도서관 서가에서 렌츠, 이름을 보는 순간 팍 떠오르더군.&nbsp; 렌츠가 1926년에 나서 2014년까지 88년을 살다 갔는데 &lt;유랑극단&gt;은 2009년, 그의 나이 여든세 살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lt;독일어 시간&gt;과 &lt;유랑극단&gt; 사이에 42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노익장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lt;독일어 시간&gt;을 찾았더니, 아이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베란다에 따로 모아두었는데 &lt;독일어…&gt;도 거기 자빠져 있다. 손에 먼지 묻히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독후감 써 놓은 것도 없는 거 보니까 또 틀림없이 쐬주 한 잔 걸치고 지워버렸나 보다. 성질 하고는 참.<br>&nbsp; &lt;유랑극단&gt;은 제목하고 달리 함부르크 부근에 있는 걸로 보이는 가상의 “이젠뷔텔 교도소” 수감자들 이야기다. 부조리 소설로 봐야 마땅하다.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는 전직 교수 늙은이. 이름은 클레멘스. 수감자들은 ‘나’를 ‘교수양반’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쓰겠다. ‘나’를 타이핑할 때 작은 따옴표 붙이기가 귀찮다.&nbsp; 이 늙은이 교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2년을 복역해서 자기 형량의 절반가량을 채웠다. 이이가 왜 들어왔는지 재미있으니 주목.&nbsp; 교수 시절에 전공이 독일 문학, 이 가운데서도 “스트룸 운트 드랑 Strum und Drang” 우리 말로 “질풍노도”였다. 교수가 쓴 스트룸 운트 드랑 관련 저서는 독문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권위 또한 떠르르한 책으로 웬만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흔히들 그러하듯이 이 교수 양반도 자기 수업에 자기 책을 교재로 해 강의를 한 건 당연한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졸업시험에서 사달이 났다.&nbsp; 교수 양반이 필립 로스의 여러 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주커먼 교수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 몇 명과 잤다. 그리고는 작품 중에서는 두 명만 나오지만 하여간 이 학생들 한테 최고점을 주었다. 팔이 안쪽으로 굽으니까. 근데 공부 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에 불만이 있는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니까 이게 샘이 나거든. 진짜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1920년대생 작가가 보기에 샘이 난 거 같아서, 그걸 학교 당국에 고발해버렸다. 독일에서는 이게 형사범죄인지 그리하여, 교수 양반이 보기에 자신한테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사랑이 웬수지) 징역형을 받아 들어온 거다.&nbsp; 이건 이해가 가는데 도무지 왜 그랬을까 싶은 이 비슷한 사건도 있지? 조너선 프렌즌의 &lt;인생 수정&gt;에 등장하는 칩 램버트 교수. 멜리사라는 여학생이 교수를 꼬여 모텔에 가서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리포트를 좀 봐달라고, 써달라는 게 아니라 써 놓은 것을 한 번 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주었더니, A학점을 받고도 그걸 학교에 신고해서 교수를 해고당하게 만든 이야기. 거 참. 조심 좀 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혐의로 걸리면 평생 크게 쪽팔린데 말이야.<br>&nbsp; 어쨌든 교수 양반이 머물고 있는 감방이 2인실인 모양이다. 여기에 새로 하네스라는 수감자가 들어온다. 교도소 신참은 아니고, 이미 두 번의 탈옥 미수 경력이 있는 화려한 묵은지. 교도소 안에서 하네스의 정보망을 벗어나는 수감자, 간수, 간부들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nbsp; 하네스는 천진함이 묻어나는 신선한 얼굴을 한 전직 사기꾼. 뭐든 입에 가져다 붙이면 그 말을 듣고 솔깃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짐승뿐일 정도. 비가 오기만 하면 훔친 경찰복을 받쳐 입고 경찰 지시봉까지 챙겨 함부르크 외곽의 도로에서 과속이나 난폭운전 등의 교통단속을 전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 오는 날 단속에 나서는 경찰이 없어 사고의 위험이 배가 되는 것 같으니 하네스 말대로 지극한 희생정신에 입각해 한 일이다. 그저 작은 문제는 갓길에 위반 차량을 세워놓고 과태료를 물린 다음 직접 집행까지 했다는 사소한 일이었다. 운전자가 원하면 당연히 수첩을 북 찢어 영수증까지 써 주었는데도 세게 걸렸다. 하필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복 경찰의 차를 세운 게 재수가 없었지 뭐.<br>&nbsp; 이젠뷔텔 교도소에 유랑극단이 찾아왔다. 파란 칠을 한 버스를 타고 식당에다 조잡한 무대를 설치했다. 그저 박스와 궤짝을 가슴 높이로 올려 굽을 길을 묘사했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고. 식당에 모인 수감자 관객들 사이에, 어라, 무슨 신호가 왔다갔다 하는 걸 감지하는 교수 양반. 이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수상한 작업은 거의 대부분 총명한 사기꾼 하네스에 의하여 기획, 집행되는데, 이번에도 뭔가 음습한 공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검지와 약지를 써서 신호가 오고간다. 서로 경고하고, 약속을 상기시키고, 인내와 각오를 요구하는 듯한.&nbsp; 눈치 없는 교도소의 카를 타우버 소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한 마디 한다.&nbsp;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은 당신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을 통해 당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와 대면해 보십시오.”&nbsp; 소장의 연설을 들은 교수 양반은 씁쓸하다. 자기 책 &lt;스트룸 운트 드랑&gt;에 나오는 말이다. 염병할 놈. 연설하기 전에 나 한테 먼저 말해주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럼에도 자기 책에서 따온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젠 교수이기 전에 한낱 수감자 신세라서.&nbsp; 유랑극단의 프루겔 단장이 뒤를 이어 한 마디.&nbsp; “연극은 타인의 삶을 즐거운 방식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며 세계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오늘 공연은 &lt;미로&gt;라는 작품입니다. 여섯번째 동방여행에서 행방불명된 함부르크 출신의 작가 헨리 발터만의 작품입니다.”&nbsp; 무대위에 쌓인 박스와 궤짝 사이의 길. 그것이 미로이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저 안에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br>&nbsp;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는 나이든 여배우 두 명이 등장하고 이어 경찰 한 명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첫번째 실종자가 발생해 경찰이 찾아온 거다. 실종자는 정원사이며 네 아이의 아버지라나?&nbsp; 미로. 모든 사람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는 곳. 그게 지금 무대 위에 있을까, 없을까? 경찰이 직접 미로 속으로 들어가 사건을 파헤쳐 보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박스와 궤짝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자마자 관객석에서 교수 양반 한 명을 뺀 모든 수감자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외치는 것이, “잘 가, 안녕!”&nbsp; 두 여배우가 대사 한다.&nbsp; 봤지? 미로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nbsp; 언니, 우리 손에 아주 진귀한 물건(미로)이 들어왔어. 필요할 때나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우리한테, 아니 남들한테도 근심을 끼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거야.&nbsp; 듣고 있던 하네스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모양이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더니 때 맞추어 휴식시간 15분. 하네스가 교수 양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교수 양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슬쩍 따라 나간다. 하네스가 교수 양반더러 교도소 마당에 서 있는 버스에 타라고 한다. 맞다 파란색 페인트 칠한 유랑극단 버스. 그래서 어떻게 해? 당연히 탔지. 안 타면 소설이 안 되는 걸?&nbsp; 이제부터 하네스가 대장이다. 그가 말한다. 전원 대가리를 의자 아래로 처박아.&nbsp; 운전대는 거인 같은 덩치에 쾌활해 보이는 전직 축구 심판, 뭄페르트가 앉아 아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교도소 밖으로 버스를 몰아간다. 안단테, 안단테 소스테누토. 그러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르막길은 당연하고 내리막길이 나와도 끝까지 악셀러레이터를 밟아 조지는 뭄페르트. 이들이 어디에 도착했느냐 하면 그뤼나우 시. 패랭이 꽃이 유명하고 마침 지금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곳에. 교도소 수감자 옷을 입은 채? 그럼. 옷 갈아입을 새가 어디 있었나? 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민은 이들의 복장이 유랑극단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것으로 지레 짐작을 한다.<br>&nbsp; 근데 우리의 교수 양반은 형기의 절반을 채웠는데 꼭 나가야 했을까?&nbsp; 좀 견뎌 낼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견뎌 내야 하는 법.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가끔은 타인도 견뎌내야 할 터인데. 뒤 돌아보라. 결국 사는 일이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그렇게 견뎌내는 거 아니었나? 물론 쉽지 않지. 쉬우면 그게 사는 일이간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4/24/cover150/89582860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4242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유니오르, 또 만났네 - [드라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3533</link><pubDate>Wed, 08 Apr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03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192&TPaperId=17203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93/coveroff/89546111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192&TPaperId=17203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드라운</a><br/>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5월<br/></td></tr></table><br/>.&nbsp; 주노 디아스? &lt;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gt;을 쓴 유색 미국인? 이게 딱, 떠올랐다. &lt;오스카…&gt;가 21세기 100대 서적 안에 들었다고 읽었다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 실망한 책. 작품의 무게와 별개로 소설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젖은 요즘 미국 작가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실망이었지, 도미니카 현대사와 뉴욕으로 이민해온 이주민들의 각박한 삶은 분명히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딱 골라 읽었다.&nbsp;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 내 이름으로 세 권, 아내 이름으로 세 권, 아이 이름으로 세 권, 합이 아홉 권. 이게 도서관 예산 집행 관계로 한 방에 들어올 예정이란 걸 알고서 촉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빠지직…. 늙은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보이시지? 희망도서 한 방에 들어오면 그걸 보름 동안 다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아이쿠, 이번엔 기한 안에 설 연휴가 끼어 있다. 하여간 그런 부담 속에 고른 디아스의 소설집이 기특하게 가벼운 분량이기도 하네? 큼직한 글씨체로 280쪽. 서슴없이 골랐다.<br>&nbsp; 화자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낯익다. 유니오르. &lt;오스카…&gt;에서 얘기했듯, 유니오르Junior가 누구냐 하면, 작가 주노 디아스의 이름 주노Junot를 살짝, 아주 조금 바꾼 것. 주노 디아스는 1968년생으로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해 뉴저지에서 살았으니 그때가 여섯 살이었다. 그러니 굳이 《드라운》의 유니오르를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지만 작가가 브루클린 도미니카 이민들의 커뮤니티에서 듣고 본 동족 가운데 또래의 모습을 유니오르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건 뭐 말을 안 해도 삼천리다.&nbsp; 이 책은 놀랍게도, 하여간 나는 놀랐는데, 주노 디아스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가인 줄 몰랐기 때문이 첫번째요, 《드라운》이 이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두번째, &lt;오스카…&gt;처럼 지극한 말장난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세번째였다.&nbsp; 책은 어린 시절, 소년 시대까지 도미니카 시골에서의 삶.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는 유니오르의 유년기때 돈 벌러 맨손, 맨발로 미국에 가고, 미국 가서 돈을 벌기는커녕 다른 도미니카 출신 여자하고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이걸 알고 속을 썩여가며 아빠 미국 가는 차비 보태 준 외할아버지와 형, 이렇게 4인 가족의 헐벗은 생활을 그린다.&nbsp; 드디어 엄마와 형 그리고 유니오르가 미국에 도착해 보낸 청소년기. 보잘것없는 마약 판매로 돈을 긁어모은 청소년 유니오르의 사랑과 허망한 탕진도 나오고, 청년이 되어 부잣집 전용 가구점의 운송 및 설치 기사로 일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청소년, 청년기를 거친 유니오르가 비록 시간이 나면 같은 호 몇 권의 교양잡지 &lt;플레이보이&gt;를 훔쳐 읽기도 하지만 나중에 소설가가 되리라는 건 꿈꾸기 힘들 거 같은데, 하여간 &lt;오스카…&gt;의 유니오르와 달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nbsp; 이렇게 소년, 청소년, 청년기의 유니오르와 가족 이야기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나열되어 있는 소설집. 그래서 굳이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읽어도 괜찮고, 그냥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없는데, 진짜 문제는,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의외적일 정도의 찬사를 받았다 해도,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읽어주기에는, 아이고, 이걸 어쩌나, 도통 재미가 없더라는 것.&nbsp; 하긴 읽으면서도 아홉 권의 희망도서가 언제 들어오나, 탐색하느라 너무 열심히 더듬이만 더듬더듬 더듬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재미없다고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 지금 절판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93/cover150/89546111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1937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