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8 Oct 2026 02:56:36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1Q84에 헌정할, 또는 염병할 - [형사 톈우의 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8415</link><pubDate>Wed, 07 Oct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84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927&TPaperId=175584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497/37/coveroff/89673569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927&TPaperId=175584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형사 톈우의 수기</a><br/>솽쉐타오 지음, 박희선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2월<br/></td></tr></table><br/>.&nbsp; 솽쇄타오. 한자어를 우리말로 발음하면 쌍설도雙雪濤 선생. 1983년 랴오링성의 성도 심양에서 태어나 지린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지만 판검사, 변호사가 되지 않고, 중국개발은행에 취직해 근무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다가 2010년에 아파트 계약금이 부족해 ‘중국어 세계 영화 소설상’에 &lt;날개 달린 귀신翅鬼(시귀)&gt;를 급하게 써서 응모했다가 장원을 먹는 바람에 엉겁결에 등단한 작가. 이때의 조강지처는 얼마 가지 못해 이혼하고 지금은 작가인 둘째 아내 장위란張悅然과 산다. 아마 베이징에서 살 거 같다. 이이의 작품 상당수가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었으니 돈 좀 벌지 않았겠나. 아니면 말고.&nbsp; 한 번 터진 상복은 연달아 터져서 2012년에는 장편소설 &lt;녹아 사라지는 도시&gt;를 써서 타이페이 문학상 연금부문을 수상하는 세 명의 제안자로 선정되어 20만 타이완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세 명의 선정자들은 1년 동안 작품을 써서 세 작품 가운데 하나가 최종 문학상 수상자가 되어 다시 40만 타이완 달러를 추가 상금을 받는 제도이다. 책방이나 출판사 광고를 읽어보면 마치 솽쉐타오가 당선자인 것처럼 읽히게 작가 소개를 써 놓았는데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영광의 공동 은메달 수상자라는 말씀. 하여간 졸지에 적지 않은 상금을 챙긴 솽쉐타오는 마음을 다져 먹고 일찌감치 전업작가로 나선 존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례를 밟아 잘 다니던 중국개발은행에 사직서를 써 던지고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근데 이게 소위 신의 한 수. 이후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요, 곧바로 TV 드라마로 만들거나 영화로 해보자는 제안을 받기 시작했으니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생긴 것.&nbsp; 하여간 이때 20만 타이완 달러를 받게 해준 작품 &lt;녹아 사라지는 도시&gt;를 책으로 출간했을 때의 제목이 바로 &lt;형사 톈우의 수기&gt;이다.<br>&nbsp; 왜 위 문단에서 “존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썼느냐 하면, 쇤네가 무라카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어색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솽쉐타오가 무라카미 상さん을 흠모해 마지않았다고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도 무라카미가 쓴 &lt;1Q84&gt;에 헌정하는 마음으로 쓴 거 같다. 두 개의 달이 뜨는 평행 우주는 아니어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공간과, 중화인민공화국 S시와 타이완의 타이페이 시라는 장소의 공간이 평행하게 놓여 있으며, 결국 이 세 공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 리톈우가 &lt;1Q84&gt;에서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 푸른 콩靑豆, 아오마메와 비슷한 처지이다. 즉 디테일에서는 다르지만 전체 플롯을 감안하면 &lt;1Q84&gt; 없이 &lt;형사 톈우의 수기&gt;가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nbsp; 리톈우는 노동자 부모를 둔 서른 살 먹은 청년. 부모는 3층 높이는 될 정도의 큰 기계를 조립하는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근검절약하고 정부시책에 맞추어 아들 톈우 하나만 낳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끼면서 살다가, 아버지가 슬슬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아내와 아들을 두드려 패고, 집안의 돈이라면 그게 몇 푼이건 간에 무조건 들고 나가 술로 바꾸어 인생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어린 톈우는 다른 건 몰라도 성실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 나, 천재급은 아니지만 학업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반에서는 줄곧 1등, 학교 전체에서도 3등 안에 드는 우등생으로 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S시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2학년까지 마쳤다. 3학년 들어 학급에 (오래 전에는 ‘학습지진아’라고 했는데) 부진아 여학생 안거(安歌)가 들어와 톈우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일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이걸 다 설명하자면 끝도 없어서, 하여간 둘은 의지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 아니, 맹세를 하는데, 바로 다음날 안거가 실종되면서 톈우는 평생 안거를 찾는 데 전념하기로 결심한다.<br>&nbsp; 안거를 가장 효과적으로 찾기 위하여 톈우가 선택한 건 경찰. 안거 때문에 거의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 톈우는 실종사건 이후 곧바로 성적이 수직 상승해서 오히려 눈높이를 낮추어 경찰학교에 지원해 수석합격한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하여간 경찰학교 수료과목 거의 전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뛰어난 형사가 된다. 경찰학교를 수석합격에 최우등 졸업한 유능한 형사. 그래. 중국 형사들이 나오는 소설에선 항상 비슷하더라고. 수석 입학을 하던, 수석 졸업을 하던 간에 무조건 신출귀몰한 포도청 순사가 되는 거 말이지.&nbsp; 그런데 이 비범한 형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베테랑 형사가 있었으니 이름을 장부판張不凡이라고 했다. 장부판은 톈우처럼 청렴하지는 않지만 S시의 거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숨은 실력자이면서, 사법과 정의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근본은 사법질서의 수호자이니까 쉽게 부패 형사 정도로 매도하면 섭섭한 인물. 사실이 그렇다.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不凡. 평범하지 않음. 이이는 톈우에게 세 가지를 훈시한다.&nbsp; 첫째. 모든 사고는 전부 서둘러서 생기는 것. 둘째, 총알은 내가 장전한 만큼 있는 것이지 몇 개가 있어야 한다는 건 헛소리. 셋째, 경찰학교 학생 냄새를 빨리 빼 버려야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음. 그리고 기타 한 가지를 추가하기를, 좋은 경찰한테는 총알이 필요 없음. 그렇다고 아예 장전하지 말라는 건 아님. 멋있지? 소설에서 베테랑 형사들은 늘 그렇다.&nbsp; 그런데 사법과 범죄에 다 달통한 장부판에게는 당연히 적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땅 넓이만큼 다양한 악당들이 모인 중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흉악범을 덮치려 잠복해 있는 장부판과 그의 조수 톈우. 이때 누군가 차창을 똑똑 두드린다. 범죄자. 창을 내리자 하는 말이, 추운데 들어가서 기다리시지요? 오히려, 그리고 드디어 이들이 범죄자에 의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 순간이다.<br>&nbsp; 갑자기 눈을 뜨니 타이페이 거리. 허리에는 그의 권총이 채여 있다. 톈우는 권총을 자신이 체면을 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긴다. 물론 잠깐 그렇다는 뜻이다. 리톈우 앞에 나타난 18세에서 19세로 보이는 여자 아이. 샤오주小久라고 부르면 된단다. 그런데 톈우가 보기에 샤오주의 뺨 위에서 어렴풋이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nbsp; 여기서 의문.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문제인데, 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독자는 샤오주 자체를 허위, 범죄자, 거짓말장이 같이 보게 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샤오주는 조금도 허위와 거짓이 없는 소녀이다. 딱 하나. 정신과 적인 병도 아니고, 피부병도 아닌데, 자신이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조금 흐려져 있는 상태이다. 이 흐려지는 상태는 앞으로 더욱 심해져 불과 며칠 사이에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다. 마치 &lt;1Q84&gt;에서 아오마메가 고가도로 비상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면서 차원을 통과하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가 서서히 흐려지다가 사라질 예정이다.&nbsp; 게다가 놀랍게도 톈우가 특정 호텔의 409호에 묵고 있는데, 샤오주는 바로 옆방인 411호에 짐을 푼 상태. 그러니까 일종의 운명이랄까 인도자, 책 속에서는 ‘사장’이라고 일컫는 인물, 기독교의 하느님과 비견해 조금도 꿀리지 않을 막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미리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나중에 짐작하게 된다. 하여간 톈우와 샤오주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로 약속을 하는데, 샤오주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자기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사진첩에 남기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톈우는 사장한테 받은 지시, 타이페이에서 101 빌딩보다 더 높이 솟은 교회를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nbsp; 세상에나. 101 빌딩이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건 다들 아실 터. 꼭대기에서 번지 점프를 하면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덜 안 혀? 근데 그 빌딩보다 더 높이 솟은 교회가 있다고?<br>&nbsp; 하여간 나는 이렇게 세 가지의 우주를 설명해 놓았다. 이것들이 어떻게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찾는 일은 직접 해보시라. 시간 죽이는데 맞춤인 소설책. 더 이상은 크게 바라지만 않으면 충분하게 만족할 만하겠다. 아, 한 가지 더. 시간 죽이기 좋다는 말 듣고, 야한 장면 바라지 마시라. 안 나온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497/37/cover150/89673569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497378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대가의 사후출판물은 조심하시라 - [SF의 유령]</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6685</link><pubDate>Tue, 06 Oct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66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500&TPaperId=17556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96/31/coveroff/89329225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500&TPaperId=175566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SF의 유령</a><br/>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05월<br/></td></tr></table><br/>.&nbsp; 작품의 제일 뒤에 “블라네스 1984”라고 작품을 쓴 장소와 연도가 쓰여 있다. 그런데 책은 2016년에 나왔다. 볼라뇨는 2003년에 바르셀로나에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니 죽은 다음 14년 만이고 작품을 완성하고 부터는 무려 32년 만이다. 즉 사후 출간한 초기 작품이라는 뜻. 나는 이런 작품은 믿지 않는다. 볼라뇨가 &lt;SF의 유령&gt;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마음에 들었거나, 돈을 받고 독자에게 팔 수 있는 상품이라고 봤다면 죽기 전에 벌써 책방에 깔려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면 작가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더 수정해야 할 미완성 작품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겠지.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미완성인 채 남겨둔 작품. 몇 번 이야기한 거 같은데, 나는 대가들의 사후 출판물을 좋아하지 않는다.&nbsp; 근데 왜 읽었느냐고? 볼라뇨니까. 도서관에 책 있으니까 읽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볼라뇨의 시집 말고 소설책은 다 읽고 싶다. 품질을 떠나서 몽땅. 팬이라면 그럴 수 있는 거잖아?<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칠레인은 칠레인인데, (볼라뇨처럼)아옌데 대통령을 참살하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자마자 칠레를 떠서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두 명의 청년 한 슈레아와 레모. 한은 SF 소설을 습작하고 있고, 레모는 아방가르드 시를 쓰려 한다. 이들은 멕시코시티 외곽의 엘리베이터 없는 녹회색 8층 건물의 8층에 살며, 최고층 주민의 특권으로 당연히 옥상도 거의 소유한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레모의 친구들이 함빡 놀러 와 옥상에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짝을 이루어 화장실에 들어가 할 거 다 하고, 밤그늘이 제법 어두운 구석에 가서 서로를 실컷 더듬는 등 난장판을 벌이기도 한다.&nbsp; 레모는 176cm의 키에 청바지, 파란색 티셔츠 차림으로 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거리의 갓돌 위에서 햇살을 맞으며 서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그는 함께 칠레에서 도착한 룸 메이트 한에게 말한다.&nbsp; “나는 신문 문예란의 시평을 담당하는 스타 기자가 될 거야.”&nbsp; 반면에 한은 죽자사자 SF 소설에 관심을 두고, 전세계, 특히 미국에 몰려 있는 SF 소설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팬레터를 보낸다. 한은 삼시 세끼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정도 식료품점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레모에게 시 창작교실에 다녀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하여 출석하기 시작한 곳이 등단 시인 헤레미아스 모레노의 시 창작교실. 이곳에서 만난 멕시코 사내 호세 아르코. 기름에 찌든 청바지에 검은 가죽 부츠 차림의 낯선 사내. 그러나 헤레미아스가 비록 겉으로나마 예의를 차리는 될성부른 떡잎이었으며, 작품이 진행되면 레모와 함께 아방가르드 시 동인을 만들려 하는데, 이때 독자의 머리에 딱, 떠오르는 또다른 볼라뇨의 소설, 심지어 대표작,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 그 책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 1920년대 멕시코 아방가르드 시 창작 소 그룹.&nbsp; 이것을 눈치채는 순간 &lt;SF의 유령&gt;은 재미없어진다. 놀랍게도 한 순간에 그렇게 되더라.&nbsp; 이제 스물한 살이 된 레모와 한은 멕시코 젊은이들과 어울려 시를 궁리하고, SF 소설을 쓰면서 앞에서 말했듯이 한쪽으로는 여자와 섹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등장하는 여자들도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과 유사하다. 특히 나이든 노파 ‘에스트레이타’마저. 에스트레이타는 생활고에 허덕이는 늙은이면서도 젊은 아가씨 테레사, 앙헬리카 토렌테와 어울려 카페에 앉아 있다가 레모를 따라 나치의 군복 색깔과 똑 같은 녹회색 건물까지 동행해, 술 마시고 그냥 떨어져 자 버리기도 한다. 이 늙은이(와 비슷한 여성 인물)도 다른 볼라뇨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다.&nbsp; 그래서, 아니겠지만, 볼라뇨에게 &lt;SF의 유령&gt;은 훗날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을 쓰기 위한 스케치였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단 &lt;… 탐정들&gt;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에서 몇 차례 등장한 사람들이 모인 듯한 기분. 볼라뇨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독일인 아르침볼드가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니까, 말 다했지. 하여간 대가의 사후 출판 작품은 조심하는 게 좋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96/31/cover150/89329225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396317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SF의 외피를 입은   인생, 삶, 인간에 대한 탐색 - [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4923</link><pubDate>Mon, 05 Oct 2026 0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49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635392&TPaperId=17554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02/59/coveroff/k49263539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635392&TPaperId=175549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숨</a><br/>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05월<br/></td></tr></table><br/>.&nbsp; 테드 창. 단 두 권의 중단편집으로 세계만방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소설가. 《숨》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출간하고 17년만인 2019년에 낸 두 번째 소설집으로 모두 아홉 편의 중단편소설을 실었다. 책 두 권의 터울이 무려 17년. 그래서 두 권의 작품 속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 만일 누가 내게 어떤 책이 더 마음에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숨》이 더 흥미롭고 사색적이었다고 단박에 대답할 거 같다.&nbsp; 그러나 아쉽게도 책을 읽으며 단 한 줄의 메모도 하지 않아, 3일이 흐른 지금 독후감을 쓰려 하니 막막하다. 아홉 편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개별적으로 특정 작품마다 어떤 식으로 인상 깊었다고 짚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읽은 즉시 써야 하거늘 하필이면 그날 오후에 두부부침에 소주와 맥주를, 다음 날엔 생선구이에 소주를, 그 다음 날에는 또 불고기에 소주와 맥주를 퍼 마셔, 오늘 아침에야 겨우 랩탑을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알코올 의존증이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서 걱정이다. 나도 술 끊고 싶다고!<br>&nbsp; 아홉 편의 중단편 가운데 호오好惡… 호오? 좋고 나쁨? 그런 거 없다. 전부 다 좋다. 그래서 호오가 아니고 좋아하는 정도가 제일 컸던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내 주제에 결정해서 말하기 힘든 조건이지만, 표제작인 &lt;숨&gt;과 마지막 순서에 실린 &lt;불안은 자유의 현기증&gt;을 두고 한 두어 시간 책상 위에 손가락만 톡톡 두드리고 앉아 있을 거 같다.&nbsp; 하지만 책을 열자마자 처음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 &lt;상인과 연금술사의 문&gt;부터 쇼크는 시작한다. 이 짧은 단편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lt;아라비안 나이트&gt;. 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자마자 언월도의 칼날에 목이 댕거덩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칼리프한테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셰헤라자드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가 아니라, 푸와드 이븐 압바스라는 이름의 바그다드 상인이 연금술사 바샤라트를 만나 경험한 일을 아뢰는 내용인데, 그게 놀랍게도 시간여행, 타임머신, “백 투더 퓨처” 이야기다. 우리는 그동안 H.G. 웰스가 19세기 말에 &lt;타임머신&gt;을 발표한 이후 숱하게 다양한 버전의 시간 여행 이야기를 읽고, 보고, 관람해왔지만, 아마도 주된 이야기는 주인공의 불운한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과거의 행적을 수정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nbsp; 우리나라 작가 복거일이 쓴 &lt;역사 속의 나그네&gt;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 이언오는 26세기에서 5백년 전인 21세기로 날아온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데, 기계의 오류인지 또다시 5백년 전인 16세기 말 조선에 불시착하니, 임진왜란이 터지기 10년 전. 처음 16세기에 도착한 이언오는 자신의 행동과 소지품 때문에 시간에 흔적을 남겨 시간줄기가 변형, 기존의 역사가 바뀌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해서 그냥 곱게 죽기를 원하는 걸로 시작한다. 즉 시간 여행으로 과거 원인이 바뀌면 미래의 결과 역시 바뀐다는 것이 그동안의 타임머신 작품들의 공통점이었는데, 테드 창은 이런 개념에 반대한다.&nbsp; 테드 창, 강봉남姜峯楠 씨는 보다 나은 현재 또는 행복을 위하여 과거를 수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충분히 동의를 하지만, 백 번 과거를 바꾸어 보아도 결코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한 변곡점에 충격을 주어 시간 줄기를 흔들어봤자, 20년이라는 세월이 시간여행자가 원하는 대로 시간줄기가 흐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변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이 그렇게 비극적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알아? 더 비극적 처지로도 빠져버릴 수 있었는지.&nbsp; 그런데, 이런 면에서 읽으면, 과거가 어땠는지 인생은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갈 뿐이라는 운명론과 만날 수밖에 없다.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은 그냥 그대로 걷게 디자인되어 있는 걸까? 그것 참. 나는 모르겠다. 이젠 별로 관심도 없다. 슬슬 도가 트기 시작하는 거 같다.<br>&nbsp; 두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lt;숨&gt;이, 이 책에 실린 것들 가운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SF 아닌가 싶다.&nbsp; “공기 혹은 아르곤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생명의 원천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nbsp; 작품은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르곤? 원자번호 18번. 내가 배울 당시에는 원소 주기율표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불활성 기체”라고 배웠는데 요즘엔 “비활성 기체”라 하는 모양이다. 발음 상 조금 문제가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농담이다). 어쨌든 다른 원소와 거의 반응하지 않는 기체라서 높은 순도를 유지해야 하는 산업 기계에 많이 사용한다. 불활성 기체 가운데 공기 중에 가장 흔하다. 즉 가격이 저렴해 그나마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비활성 기체.&nbsp; 문제는 이런 아르곤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설정. 이쯤 되면, 즉 물이나 산소가 아니라 불활성 기체가 생명의 원천이라는 가정이라면, 이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유기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면 뭘까? 뭐긴 뭐야, 무기 생명체, 즉 인조인간 로보트? 또는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 아니면 스타니스와프 렘 식으로 기계가 스스로 진화해 발생한 기계 생명체. 어느 것이라도 무방하다. 이 생명체 역시 허파 호흡을 한다. 그러나 호흡의 방식은 유기 생명체와 다르다.&nbsp; “우리는 매일 공기를 가득 채운 두 개의 허파를 소비한다. 매일 가슴에서 빈 허파들을 꺼내 공기를 가득 채운 허파들로 교환하는 식으로 말이다.”&nbsp; 마치 잠수부가 등에 짊어지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산소통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게 가슴 속에 두 개가 있어서 매일 아르곤 가스가 만땅 채워진 허파로 교체해주어야 한다니 독자는 초장부터 “우리”가 기계 등의 무기 생명체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마땅하거늘. 강봉남 씨도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계속 “사람”이라 칭하는 바람에, 뭐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nbsp; &lt;숨&gt;의 핵심은 기계 인간의 생존 방식이 유기생명체인 진짜 인간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 그러니까 태드 창은 아르곤을 생명의 원천으로 하고, 몸체를 이루는 로드rod 사이에 어떤 윤활 물질도 필요하지 않은 기계를 통해 사람들의 생존과 소멸에 관해 사색한 결과물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자 화자 ‘나’인 무기 생명체, 스스로 진화한 기계 생명체, 또는 로봇일 수도 있는 해부학자 ‘나’는 발견한다.&nbsp; “내가 매일 새로운 허파 한 쌍으로부터 끌어내는 공기의 양은 내 팔다리 관절과 내 주위의 대기에 내가 더하는 공기의 양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략)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이 우주의 압력 평형화에 기여하고 있다. 생각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치명적인 평형상태의 도래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p.78)&nbsp; 운동/열 에너지를 말하고 있는 듯한데 자신의 운동과 생각을 포함한 에너지의 소비와 허파를 통한 보충이 서로 평형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의미. 근데 평형이란 건 뭘까? 정지. 그리하여 평형상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걸 발견한 ‘나’는 어떻게 했을까?&nbsp; “다른 상황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거리로 뛰쳐나갔겠지만…” (p.78)&nbsp; 생각나는 옛 사람 한 명 생각난다. 퍼뜩 진리를 깨닫자 욕탕에서 벌떡 일어나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며 이렇게 외쳤던 사람.&nbsp; “유레카!”<br>&nbsp; 테드 창은 SF 소설 작가로 이름을 높였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테드 창, 강봉남 씨를 SF 작가로 국한시킬 수 있을까, 국한시켜야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몰라도 이 책 《숨》은 비록 SF의 외피를 입었어도 삶과 인생과 인간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를 읽는 듯했기 때문이다.&nbsp; 독후감 초장에 얘기한 마지막 수록 작품 &lt;불안은 자유의 현기증&gt;이 대표적이다. 프리즘. 백색광을 투과하면서 빛이 분산해 여러가지 색으로 변하게 하는 삼각기둥처럼 생긴 거. 여기서 방점은 빛이 굴절하며 얼마나 굴절하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분산한다는 것인데, 테드 창은 이걸 ‘평행공간으로의 이주로 가게 할 수 있는 매개물 또는 장치’로 해석했다.&nbsp; 이 작품이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세상의 70억명 모두 개별적으로 다양한 평행우주 또는 평행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그냥 평행우주/평행공간이라 생각하는 것도 재미겠지만, 삶과 인간에 대해 생각할 거리로 여겨도 의미있는 생각할 거리가 될 수 있다.&nbsp; 이런 생각 거리가 이 책 《숨》에 가득하다. 편마다 숙고와 사색의 흔적이 들어 있으니 이 작가가 두 번째 책을 17년 만에 낸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을 터. 이이는 SF 작가라기 보다 과학 철학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02/59/cover150/k49263539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02599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말 많은 늙은이를 주책이라 하지 -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0062</link><pubDate>Fri, 02 Oct 2026 05: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0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550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off/89320450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550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a><br/>이문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문재. 1959년 김포생. 나는 서울 출생이지만 김포 사람이다. 시인과 성씨도 같다. 조부모, 부모도 김포 문중 납골당에서 사이좋게 한 방에서 명복을 누리시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이이의 시집을 읽었을 때부터 어어, 이거 혹시 우리 문중 사람 아녀? 이랬다는 거 아닌가. 근데 다행이다. 시집을 읽어보니 원래 평안도 웅진 사람인데 전쟁 때 부모가 형과 누나를 솔가하여 꽝꽝 얼어붙은 바다 위로 인천, 태안을 거쳐 저 남도 끝자락까지 피난을 해 먹고 살다가 김포로 옮긴 다음에 시인을 낳은 거란다.&nbsp; 이문재는 1990년대부터 읽었으니 세월이 꽤 됐고, 기중 좋아하는 시인으로 시집이 탁 보이면 척 골라 읽는 수준이었다. 근데 이젠 그짓도 그만 해야겠다. 내가 만일 이이의 동생이라면 다시는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할 거 같다.<br><br>&nbsp; 문자 메시지<br>&nbsp; 형, 백만 원 부쳤어.&nbsp;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nbsp; 나쁜 데 써도 돼.&nbsp;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문학동네, 《지금 여기가 맨 앞》, 2014)<br><br>&nbsp; 이문재는 문학동네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팍 늙어버렸다. 그래서 위에 소개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안 할 거 같다.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nbsp; 이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읽을 만했던 것은 다른 시인도 아니고 무려 나희덕이 쓴 발문 “생각을 생각하는 시, 꿈을 꾸게 하는 꿈”이었다. 같은 시인 그룹의 선배 시인이 자기 시집에 발문을 써 달라고 하니 아무리 나희덕이라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지. 나희덕도 국문학 박사님이니 그럴 듯한 발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리하여 한 마디 꽝, 하는 데:&nbsp; “시집 제목부터가 재귀적 표현이다. 수록된 시들의 제목을 일별해보아도 ‘고통이 말해주지 않는 고통’ ‘혼자의 혼자’ ‘혼자 혼잣말’ … 등 동어반복과 재귀적 허용이 잦은 편이다. 시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반복과 변주는 그야말로 ‘이문재식 문장법’이라고 부를 만하다. 1부만 해도 재귀적 문장이 수두룩하다.” (p.164)&nbsp; 정말 그렇다. 그래서 책의 뒷표지, 가끔 책 판매를 위한 카피 역할을 하는 뒷표지에 뭐라 적어 놓았느냐 하면,<br>&nbsp;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듯이&nbsp; 시를 쓰게 하는 시가 있다.&nbsp; 밥을 먹게 하는 밥이 있듯이&nbsp; 삶을 살게 하는 삶이 있다.&nbsp;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nbsp; 삶을 살도록 하는 죽음들이 있다.<br><br>&nbsp; 뭔 시집의 카피가, 말이 많았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시를 읽어보자. 다행히 짧은 시다.<br><br>&nbsp; 눈동자<br><br>&nbsp; 눈동자에게&nbsp; 필요한 것은 눈동자다<br>&nbsp; 눈동자는&nbsp; 다른 눈동자가 필요하다<br>&nbsp; 지금 가장 필요한 눈동자는&nbsp;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다 (전문.&nbsp; p.11)<br><br>&nbsp; 원래 시인들이 하는 말이 이렇지 뭐. 그냥 내 앞에서 나를 봐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한 거다. 사실은 나를 봐줄 필요까지도 없고 그냥 앞에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을 사람 하나.&nbsp; 그러나 시집의 저 뒤로 가면 이 눈동자에게 작지 않은 일이 생긴다.<br><br>&nbsp; 눈동자 2<br><br>&nbsp; 눈동자가 위기에 처했다&nbsp; 눈동자가 눈동자를 찾지 않는다<br>&nbsp; 눈동자를 바라본 적이&nbsp;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br>&nbsp; 다른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nbsp;&nbsp;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br>&nbsp; 눈짓으로 말한 적이 언제&nbsp; 서로 눈빛을 마주친 적이 언제였는지<br>&nbsp; 눈동자가 위험하다&nbsp; 눈동자가 눈동자를 잃어버렸다&nbsp; (전문. p.125)<br><br>&nbsp; 에그. 시인이 좀 외롭구먼. 늙으면 다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이지 뭐. 하긴 시인이니까 이리 엄살도 떨고 그러는 거겠지만. 근데, 그래서 당신 눈동자가 잃어버린 눈동자는 몇 알이나 되는 거야? 같은 단어 이리 줄을 이어서 이게 시입네, 하니까, 재귀적으로 눈동자 눈알을 주욱 나열하니까 성질 좀 풀리시나 보다.&nbsp; 초장부터 까탈을 부리는 건, 시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 확실하게 말하자. 지금 나는 이 시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했지, 조금도 시가 잘못된 것이란 의미는 담지 않았다. 틀림없이 시 읽는 수준이 별볼일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용기도 있을 거라 여기면 정확하게 맞는 생각이다. 무엇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br><br>&nbsp; 너도 봄날<br><br>&nbsp; 거울 속의 거울&nbsp; 마주 보는 거울은 떼어놓기&nbsp;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와 마주 보게 하기&nbsp; 눈동자 안에 다른 눈동자 빛나게 하기&nbsp; 반짝이는 눈동자에게&nbsp; 꿈을 꾸게 하는 꿈 말해주기&nbsp;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 (전문.&nbsp; p.12) * 원문은 모든 행이 한 연인데 그냥 붙여 인용했음.<br><br>&nbsp; 단어를 연속해 가져다 놓음으로 강조의 의미도 줄 수 있고,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고 하여간 여러 시적 표현이 가능한 연상작용을 의도했을 수 있겠지만, 앞에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몇 페이지 건너 다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저 뒤에서 또다시 눈깔이 툭 튀어나오면 이거 뭐 가자미 눈깔도 아니고, 동태 눈알도 아니고, 죽어도 못 잊는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누이동생의 눈동자도 아니지, 많고 많은 눈동자에 뭐가 그리 좋은 것이 많다고, 서로 눈알끼리 마주보게 해야 하느냐는 것. 낸 앞의 눈동자 모두 선하고, 아름답고, 눈길만 닿았다 하면 찌르르 아랫배가 찌릿하고, 다 그럴 거 같지? 그 많은 눈동자 속에서 몇 알, 몇 쌍은 당신의 눈동자를 읽으면서 저걸 어떻게 뒤통수를 칠까, 몇 대나 때려줄까, 지갑에 얼마나 들었을까, 애먼 생각을 하는 눈알도 수다하게 있을 수 있다. 시인도 다 알면서 저리 예쁜 눈동자만 골라 생각하라고 하는 거다. 그게 시니까. 좀 독하게 평하는 거 같은데, 나는 한 마디로, 나희덕이 말한 재귀적 표현을 지극하게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쁜 말이 안 나가지.&nbsp; 1959년생이니 이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자리에서는 은퇴를 했을 거 같고, 그럼 명예교수? 아, 그 참. 명예교수들이 문제라니까. 열라 시 쓰고, 공부하고, 발표하고, 제자들에게 만날 올림을 받으며 살다가 갑자기 툭. 여태 가오가 있었으니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황지우는 말했다는 거 아냐.&nbsp; “성님, 시는 이십대에나 쓰는 거 아뉴?”<br><br>&nbsp; 엄마 전화기<br><br>&nbsp; 엄마 전화기가&nbsp; 여전히 살아 있다&nbsp; 세상 떠난 지 1년이 넘었는데&nbsp;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nbsp; 전원을 켜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고&nbsp; 부재중 전화도 제법 있다 어쩌다&nbsp; 진동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nbsp;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가 또 죽을까 싶어&nbsp; 충전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nbsp; 죽은 엄마 전화기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nbsp; 살아 있는 나 때문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에도&nbsp; 너무 힘들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nbsp; 나도 거기로 가고 싶은데 엄마 나 가도 되나&nbsp; 답 문자 기다리는 대신 엄마 전화기 속으로&nbsp; 이니셜과 별명이 많은 엄마의 사생활 속으로&nbsp; 들어가곤 한다 수백 번 넘게 열어본 우리 엄마&nbsp; 그래서 그렇게 비상금이 필요했고 그래서&nbsp; 아빠와 매번 심하게 다퉜고 그래서 그래서&nbsp;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엄마한테 달려갔고&nbsp; 그래서 그날 새벽 차를 몰고 동쪽 바다로 향했고&nbsp; 그래서 엄마가 그래서 엄마는 그래서 나도&nbsp; 그날 이후 눈을 들지 못하고 살아왔는데&nbsp; 엄마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겨우 견뎌왔는데&nbsp; 이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 살 더 먹기 전에&nbsp; 죽은 엄마 두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nbsp; 전화기를 엄마한테 돌려줘야겠다&nbsp; 매번 다짐하곤 하는데 다짐하긴 하는데&nbsp; &nbsp;(전문. p.24~25)<br><br>&nbsp; 이번 이문재 시집을 읽으면서, 이 시집을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않기로 작정하게 만든 시. 이 시의 화자가 누굴까? 시인의 엄마? 시인의 아내? 아이쿠, 시인의 아내는 취소. 멀쩡히 살아 있는 분일 확률이 높은데 산 사람을 그리 말하는 건 사람 할 일이 아니다. 그럼 시인의 삶 속 특정한 여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늙은 시인의 어머니, 2년 전에 돌아가신 모친을 말하는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nbsp; 이 시를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재가 환갑이 넘어 돌아가신 것 같다.&nbsp; 그런데 이거 뭐 이렇게 궁상이야 싶다. 세상에 어머니 보낸 사람이 시인 한 명인가? 자실 만큼 자신 나이가 부끄러울 것도 같은데, 뭐 그렇다고 꼭 이렇게 내놓고 큰 울음을 울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지만, 아이고, 난 딱 싫다. “죽은 엄마”를 얼른 잘 보내드리는 것도 나이 든 자식이 할 일. 내 이야기를 해서 안 되기는 했지만, 난 죽은 엄마가 꿈에서도 잘 오시지 않는 게 그렇게 고맙더만. 생과부로 두 아들 키우느라 뼈빠지게 고생하다 간 엄만데도 돌아가시자마자 팍 보내드렸는데, 그것도 괜찮은 일이란 걸, 시인은 모르는 모양이다.&nbsp; 시집 안 읽어본 분은 모르시겠지. 이 시집의 가관은 2부 이후부터 나온다.&nbsp; 이미 55세도 아니고, 60세도 아니고, 65세 정년퇴직한 명예교수라는 분이, 뒷방으로 물러났으면 거기서 좀 고요히 여생을 즐기면 될 것을 세상살이 거의 모든 잡사에 끼어들어 한 마디를 하고 싶어한다. 그거 참.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세계정세 같은 거에 빠지지 않으려 하니, 나중에 시인의 엄마처럼 세상 등질 때 얼마나 아쉽겠느냐고. 제발 좀 그러지 마시라. 쓸데없이 말 많고 참견 많은 꼰대를 주책바가지라 하는 것도 아실 터인데. 오랜 팬이라서 이런 말도 올려주는 거란 것도 이해해줄 연치의 시인이라서 오랜만에 속 다 터놓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150/89320450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020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도대체 소설은 누가 쓴 거야 - [킵]</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8288</link><pubDate>Thu, 01 Oct 2026 0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82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607&TPaperId=175482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6/30/coveroff/895461660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607&TPaperId=175482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킵</a><br/>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br/></td></tr></table><br/>.&nbsp; 올해 집중해서 읽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제니퍼 이건. 퓰리처상을 받은 발랄한 &lt;깡패단의 방문&gt;에서 시작해 거의 데뷔작이라고 봐도 좋을 소설집 《에메랄드 시티》에 이어 2006년에 출간한 &lt;킵&gt;까지 왔다. 앞에 읽은 두 작품과 많이 다르다.&nbsp; 나는 작품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작가의 이름 하나만 가지고 선택해 읽었는데, 그래서 읽는 도중에 적어도 두 번 “이게 뭐야?” 크게 판을 뒤집는 광경을 제대로 감각할 수 있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대놓고 작품이 픽션이라 선언한다. 이런 건 읽을 때마다 메타 픽션인 걸 알면서도 꼭 깜짝 놀란다.<br>&nbsp; 대니 킹.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킹의 아버지는 여러 형제 가운데 한 명이었고, 형제들끼리 우의가 돈독하여 자주 가족 모임을 가졌는데, 대니는 사촌들 가운데 하위, 레이프에 관한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세 명이 “함께” 즐거웠다는 말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두 명의 사촌하고 친했다는 말이지. 둘 중에 특히 하위하고. 하위는 자기가 만든 아이들 게임 “터미널 제우스”에 대니를 끼워주어 어린이 시절에만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놀이를 즐기게 해 주었는다. 하위는 많고 많은 사촌들 가운데 딱 한 명, 킹 가문에서 입양한 사촌이라 삼촌들이나 고모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척했고, 사촌들은 은근히 왕따를 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집단 놀이를 해도 하위만 끼워주지 않거나 소위 ‘깍두기’ 역할만 하게 만드는 식으로. 그러니 성격이 좀 비뚤이지겠지? 그래도 놀이를 만들 만큼 머리가 좋았는데, 그게 사촌들 눈에는 괴짜에다가 루저로 보여 날이 갈수록 따돌림이 심해져, 끝내 대니 역시 하위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십대의 하위에게는 일종의 외상성 경험으로 작용을 해 하위가 가지고 있던 양순함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성마르고 노심초사하는 성격으로, 환상적으로 망가졌다는 소문이 킹 가문에 흘러 들어왔다.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었다고? 그런 애를 입양하다니 다 노엄 잘못이야. 유전자 잘못이라고. 우리 집안에 없는 유전자를 갖고 끼어 들어와서 말이지.&nbsp; 하지만 하위는 일찌감치 집을 나가 좋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주식 채권 딜러 일에 혁혁한 전공을 쌓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에 비견하는 업계의 월계관이란 월계관은 다 수집해버렸고, 재산 역시 무지막지하게 많은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돈벌이에서 은퇴해버리고 보다 그럴듯한 삶을 위하여 폴란드인지, 오스트리아인지, 체코인지, 독일인지 모를 곳에 있는 9백년 된 고성을 사서, 그걸 호텔로 리빌딩해 편안한 나머지 삶을 도모하고 있다. 앤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벤지와 젖먹이 딸이 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하위’라고 부르지 못한다. 대신 본명인 하워드를 갖다 바친다. 대니 조차도.<br>&nbsp; 대니는 어린 시절에 레이프와 한패가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세상에 없다고 믿으면서, 그러니까 대강 껄렁껄렁한 십대를 보낸 후에 집을 떠나 뉴욕에 정착해 사는 척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때 미식축구로 이름을 날려 대학은 졸업한 거 같다. 도무지 먹고 사는 일에 능숙하지 못해 친구의 소개로 별로 건전하지 않은 식당의 바지 사장으로 들어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나마 괜찮게 먹고 살았는데, 이런 업소의 바지 사장들이 항용 그러하듯 그럴 때가 되니까 업주 또는 물주, 그것도 아니면 보스의 눈 밖에 나, 아마도 한 바탕 제대로 두드려 맞고 쫓겨난 거 같다. 이 와중에 20대 초반까지 몸 바쳐서 투신했던 미식축구 선수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에 추가 상해를 입어 장애 수준에는 살짝 미치지 못할 만큼의 통증이 유발, 다리를 약간 절고 있다.&nbsp; 딱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처지에 떨어진 순간, 저 동유럽 모처에서 연락이 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폴란드인지 모를 곳의 오래된 성을 구입한 사촌 하위가 대니한테, 성의 개조를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돈과 편도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다. 도시에서 완전하게 탈출해 조용하고 여유롭게 유럽의 흑림에서 살고 싶어하는 하위와 달리 전형적인 도시인인 대니는, 그러나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어 ‘폰 아우스블링커’ 성에 가서 하위, 앞으로 하워드라고 불러야 하는 사촌의 따까리 또는 당번이나 보좌관, 아니면 다행스럽게 넘버 투 일을 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들기를, 워낙 심심산골이라 와이파이라는 건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인터넷도 터지지 않고, 당연히 폴더폰이었을 휴대폰도 그냥 플라스틱 뭉치 또는 휴대용 무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내복 몇 개, 스웨터 몇 장을 넣은 샘소나이트 트렁크와 함께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전파를 발송하고 접수할 수 있는 위성용 안테나까지 장만해 깊고 깊은 동유럽의 산악지역으로 떠나 폰 아우스블링커 성벽 앞에 섰다. 성문이 아니라 성벽 앞에. 무너져가는 성 앞. 이게 첫 장면이다.<br>&nbsp; 그리고 레이프. 레이프의 멋진 점은 그가 무엇을 하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대니가 살면서 제일 짜릿했던 경험이 레이프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었다니 10대, 하이틴 시절 이후에 별로 바람직하게 살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제니퍼 이건은 이 건에 대하여 끝내 모른 척한다. 그리하여 독자의 권한으로 넘겨 짚어 보건대, 레이프는 일찌감치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진출해 이러저러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쏜 권총 총알이 상대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린 것을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든 레이프는 그길로 스스로 경철서에 출두해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선처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이리 도망가고 저리 숨어 다니다가 끝내 체포되어 거의 무기수 비슷한 처지로 떨어져 교도소 2인실에서 살고 있다. 하필이면 같은 방에 사는 흑인 재소자가 푸시 업을 하루에 750회씩 하는 어마어마한 덩치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이 데이비스 덕분에 다른 방에 사는 더러운 호모 새끼들이 레이프의 엉덩이를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감히 더듬어 대지 못하는 덕도 본다. 그렇게 산다.&nbsp; 다시 말하건대 이건 전적으로 독자인 내가 다시 그려보는 사촌 세 명의 훗날 모습니다. 레이프가 작품에 나오는 수감자, 더 뒤로 가면 감히 21세기 또는 20세기 말에 저격병이 망루를 지키고 있는 미국 교도소의 이중 철조망을 뚫고 무사히 탈옥에 성공하는 ‘레이’와 동일인이라는 아무 증거도 없기는 하지만 뭐 독자가 그렇게 생각하겠다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레이프 말고 레이라고 쓴다.&nbsp; 레이는 처음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압박을 느끼는 데이비스를 잠깐이나마 피하기 위하여 교도소가 마련한 재소자 성격 개조 프로그램의 일환인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 강사는 딸 둘을 키우는 돌싱녀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홀리. 그러니까 아직 정식으로 강의를 맡을 자격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교도소에서 험한 재소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홀리한테까지 강사 자리가 밀려올 수 있었는데, 심지어 지원자가 없으니 재소자와의 대면이라는 위험수당까지 붙어 홀리 수준의 가방끈으로는 어떤 강사도 받지 못하는 급료를 받았다.&nbsp; 범죄자 레이가 원래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일. 다만 독서량이 모자라 처음부터 기막힌 글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하여튼 처음 적어낸 이야기는, 선생 또는 강사와 침대에서 한 탕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 일종의 패관문학이었겠지. 그러나 재질이 있는 레이의 두번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고 하면, 바로 저 동유럽,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모를 흑림 속 산악지역의 9백년 된 성과 성 안에 솟은 공략할 수 없는 탑, 이른바 아성牙城the Keep, 그리고 성이 팔렸음에도 결코 아성에서 퇴거하기를 거부하는 97세의 남작부인. 아성 지하에 미로처럼 뻗어 있는 지하 동굴과 심지어 9백년 묵은 포도주, 고문 도구, 현대인은 생각도 못할 옛 시절의 갖은 무기 종류.&nbsp; 여기가 하위와 대니가 얼굴을 맞대고 있을 폰 아우스블링커 성일까?&nbsp; 책을 읽는 도중에 여러 번, 적어도 몇 번은 머리 속이 헝클어지는 즐거움을 맛보실 수 있을 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6/30/cover150/89546166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6302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난 여름이 너무 더워서 - [솔 벨로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4944</link><pubDate>Wed, 30 Sep 2026 04: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49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494&TPaperId=175449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2/coveroff/k9721304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494&TPaperId=175449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솔 벨로 1</a><br/>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하필이면 재미난 책을 올해 가장 더울 때 읽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우라질 적정온도와 바람의 세기, 풍향 같은 것에 여간해 적응하지 못해 밤새 쪽잠을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쨌든 덥지 않게 잔 건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후텁지근하고, 얼음을 탔거나 말거나 하여간 찬물만 들이켜 뱃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서, 서늘한 도서관 열람실, 시민 혹서기 피난처이기도 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읽었다. 겨우 520쪽 분량의 책을 3일 반이나 걸려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는 것도 무리인 것이 예약 대기중인 이용자가 두 명이나 있어 대출기일 연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혹서기에 가끔 겪는 일인데, 이번엔 솔 벨로의 절묘한 소설집 《솔 벨로 1》이 걸려버렸다.&nbsp;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줄은 알겠는데, 이게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눈에 들어오면서 즉각 무릎을 쳐야 마땅하거늘 도무지 천근 같은 눈꺼풀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대뇌 전두엽이 졸음에 겨워 접수를 거부한다. 한여름만 아니었어도 즉각 집으로 후퇴해 낮잠 한 번 때린 다음에 다시 책 읽기를 이어가면 쉽게 해결되겠건만, 그 생각으로 가방 챙겨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 집엔 전기료 무서워 거실 큰 에어컨도 철수해버렸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습기와 온도를 버티면서 책을 읽는 건 포기. 그래서 여름 들면 읽는 양도 팍 준다. 지금이 그 시즌이다. 열흘 동안 네 권.<br>&nbsp; 《솔 벨로 1》 안에는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전부 솔 벨로처럼 유대인계 미국인이고, 예술 부분에 크게 한 자리하고 있거나 핏줄 속의 유전자 혜택을 받은 부르주아들이다. 딱 한 편만 빼고. 첫번째 작품 &lt;그린 씨를 찾아서&gt;는 유대인인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국인. 시절은 공황기. 서른다섯 살의 시카고 토박이 조지 그리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자.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공황 직전까지 성 올라프 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강사도 했고, 1926년부터 공황이 덮치기 전까지 2년 동안 문학 연구원에 다녔지만 당연히 해고당했다. 이후 스톱앤숍에서 육류 통조림 판매 일도 하고, 골드불래츠에서 창문 차양도 팔았고, 심지어 신발 판매원이기도 했다. 주로 특정일,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이었는데, 이는 될수록 많은 실업자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이었던가 보다.&nbsp; 지금은 프레리 애비뉴에 있는 지역 구호소에서 일한다. 이 일자리도 쉽게 구한 건 아니었다. 시 법률 고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학교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친한 친구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지 그리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구해준 자리였는데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어서 그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것쯤이야. 맡은 일은 사무실의 가장 말단. 심지어 사환이라 불러도 별로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nbsp; 조지에게 작업 명령을 내리는 직속 상사는 조지보다 어린 나이의 레이너. 레이너가 일을 주었다.&nbsp; 이곳 지역 구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창고 건물이었던 프레리 애비뉴의 구호소에 출두하여 서류에 서명하고 생활보조금을 수령해 가야 하지만,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했거나, 질환이나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들 한테는 임시직을 포함한 특정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정부발행 수표를 건네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의 젊은 수석 레이너가 조지 그리브가 바로 이 일을 시킨 거였다. 1940년대 말,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얼음바람이 건물 사이를 칼처럼 베며 횡행하던 한 겨울에.&nbsp; 그리하여 그리브는 프레리 애비뉴의 건물에서 외투와 모자 차림으로, 속주머니에는 수표책을 두툼하게 지닌 채로 길거리 포도에 발을 딛고 섰는데, 아뿔싸, 레어너의 사무실에 장갑을 벗어 그냥 두고 나온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솔직히 대학을 설렁설렁 나온 것도 아니고 유대인스럽게 열심히 열공, 닥공해서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와 문학 연구원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 생활도 하던 인텔리겐치아 출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약간 빗나갔거나, 아니면 신분상의 이유로 도피중일 지도 모르는 털리버 그린 씨를 찾아 시카고의 흑인 전용 주거구역의 음산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 3D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수 없었겠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그리브는 대공황의 손톱에 하도 할큄을 당해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하여 낡기는 했지만 실크 바지를 입은 복지사의 자격으로 흑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추운 날, 몸에 아무런 천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신으로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와 문을 열어준 50대의 뚱뚱한 흑인 여성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하루 일을 끝마치는 일.&nbsp; 이게 《솔 벨로 1》 제일 앞에 실은 1951년 작품 &lt;그린 씨를 찾아서&gt;이다.<br>&nbsp; 하지만 우리에게 &lt;오기 마치의 모험&gt;, &lt;허조그&gt;, &lt;비의 왕 핸더슨&gt;, &lt;오늘을 잡아라&gt;, &lt;험볼트의 선물&gt; 같이 장편소설로만 알려진 솔 벨로스러운 작품을 읽으려면 점점 더 책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lt;오기 마치의 모험&gt;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한데, 내 기억에 그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는 오리무중을 헤매는 당나라 군졸처럼 정처를 잃거나, 저 앞으로 책을 넘겨 안개가 덮치기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읽기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솔 벨로의,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사색이, 좋은 말로 하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고, 좀 비껴서 말하자면 잘난 척 하나는 정말 세계챔피언 급이기 때문이었다.&nbsp; 하지만 걱정 마시라. &lt;오기 마치의 모험&gt;은 두 권 분량의 길고 긴 로드무비였으나, 이 책 뒤편에 실린 두 작품, &lt;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gt;와 &lt;오늘은 어땠나요?&gt;는 길어봤자 1백쪽과 1백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맥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도 가뿐하게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유대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지막지한 과시와 지적 허풍과, 뭐니뭐니해도 세상 어떤 민족과도 비교 불가능한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nbsp; 내가 이 책을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채점했는데, 초두에 말했듯 하도 더워 컨디션이 망가진 내 탓이지, 이 책 《솔 벨로 1》 안에 든 작품들에 별 하나를 깔 만한 흠을 발견했거나, 하다못해 있기는 있지만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이라든가, 현대문학이 나한테 만원 꿔 갔는데 아직 안 갚고 떼먹어서도 아니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무리 독후감을 후지게 썼어도 이것 때문에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1도 없다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2/cover150/k9721304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22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고립된 사람들, 황량한 벌판 - [집으로의 긴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2693</link><pubDate>Tue, 29 Sep 2026 04: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2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0196&TPaperId=17542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7/coveroff/k692130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0196&TPaperId=17542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집으로의 긴 여행</a><br/>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유디트 헤르만, 신간이 나온 걸 알아챈 순간 곧바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 헤르만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장편소설일 듯하다. 이이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감각적인 문장이 가득한데, 비록 한여름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딘가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서늘함이 도사리는 글들.<br>&nbsp;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그러니까 30년은 채 되지 않은 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가 현재 마흔일곱 살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중소도시의 신축건물 원룸 꼭대기 층에 살며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나’는 담배공장 생산 라인에서 담배를 일정 길이로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공정에 서서 일한다. 자동장치라 알아서 처리를 하지만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을 경우 ‘나’가 제거하는데, 독자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내리치는 공정에서 맨 손으로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nbsp; 공장에서 유일하게 귀마개를 하고 일을 하는 직원. 함께 일하는 동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나’. ‘나’의 즐거움은 5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 여름엔 주유소에 달려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도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nbsp; 바로 이 작은 가게에서 일이 벌어진다.&nbsp;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문을 열고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167cm, 절대로 작지 않은 키의 ‘나’를 보더니 “적당히 작은 키군요. 딱 좋은 키네요.” 꿍꿍이가 없는 어투로 말한다. 적당히 작다는 건 자신의 트릭을 기준으로 충분히 작고 알맞다는 말이란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 자기 상자에 젊은 여자를 넣고 상자의 중간을 톱으로 썰어버리는 통 마술. 너무 자주 공연하여 이제는 조금 뻔한 마술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섬뜩하고 작은 비명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 오로라호를 타고 3개월간 싱가포르를 왕복할 예정이다. 오로라호 전담 마술사이며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통 마술에서 자신을 보조했던 여성이 그만 두어 ‘나’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나’에게 주소를 가르쳐 주고, ‘나’는 그가 아내와 사는 외딴 방갈로에 방문한다.&nbsp; 침대 외에는 거의 가구도 없고, 치장도 없어서 빈 집 같은 방갈로.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방랑자일 터이니 집을 꾸밀 필요가 없다. 집도 굳이 자기집일 이유가 없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는 보조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고 곧바로 통 마술을 연습해본다. ‘나’는 작은 통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전에 누군가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통 속이 답답하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그런데 이 순간,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두 토막 내려는 건 아닐까?&nbsp; 그건 아니었고, 연습이 끝나자 마술사는 일주일 후에 출발할 테니 월요일 낮 12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기차 타고 항구로 가서 같은 날 저녁에 떠나는 배 오로라호에 승선할 예정. ‘나’는 선실 하나, 즉 독방을 사용하게 되며, 선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의 주변을 다 정리하고, 즉 육지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에 바다 위의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몸이 잘려야 하는 여자가 된다.&nbsp; ‘나’는 담배공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짐을 정리하고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추려서, 비가 철철 오는 여름 대낮에 ‘나’의 집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고, 대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이 생겼다. 앤이 성장해 열네 살에 첫 문신을 하고, 열여덟이 되자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해 버렸으나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가끔 전화도 한다. 마술사는, 이렇게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영원히.&nbsp; 그러나 적어도 두 장면은 남는다. 5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주유소가 있는 도로 장면과 톱으로 썰기를 기다리는 통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톱질 당하는 여자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쯤 지난 후에야 그 여자가 기억이 나서, 작품 또는 최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br>&nbsp; 30년. 기억을 충분히 왜곡시킬 수 있는 시간.&nbsp; ‘나’는 거의 1년 동안 오빠가 살고 있는 동해안에서 살았다. 오빠 사샤는 젊은 시절에 활동적이었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젠 허풍 심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걸로 호가 났다. 주로 동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한 술집에서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을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비록 그 술집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의 여성 종업원과 새로이 연애를 시작한 50대 후반의 남자이기는 하지만.&nbsp; 스물한 살의 니케가 등장하면서 다시 통 이야기가 나온다. 니케는 어렸을 때부터 상자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니케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한 시간씩, 때로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상황에 따라, 어디에 가야 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자기 멋대로 가두어 두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니케는 울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위해 반항 비슷한 것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 가둠을 당하는 일은 제법 많은 나이까지 지속되었다. 아이였을 때부터 당한 일이라 10대가 되어도 쉽게 반항하거나 뛰쳐나올 수 없었을 지 모른다.&nbsp; ‘나’의 옆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 미미. 미미는 젊은 시절에 잠깐 동안 오빠의 연인이기도 했다. 미미의 집에서 미미의 어머니 암케가 침대까지 가져다 준 아침을 먹은 날부터 시작한 돼지 농장일을 사샤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던 일이 있다. 이후 미미는 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냈다.&nbsp; 미미. 동쪽 해변가 간척지에서 가릴 것이 없는 여자. 추운 초여름에 나신으로 수영을 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집 안에서는 전혀 거칠 것 없이 생활하는 이. 미미가 먼저 ‘나’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오빠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했으며, 함께 잔뜩 술을 마시기도 한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907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동생 아릴드의 집으로 쳐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나’를 아릴드의 침대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릴드 역시 ‘나’의 침대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모닝콜에 득달같이 일어나 돼지를 치러 가는 남자.&nbsp; ‘나’는 넓은 오빠네 집에서 살아도 되지만 해안 간척지에 있는 단독주택을 얻는다. 2층은 혹시 앤이라도 오면 지내라고 침대 하나를 놓았을 뿐 비어 있고, ‘나’의 생활은 전적으로 1층에만 국한한다. 이 동해안 간척지에서 집을 얻은 것이 1월 초. 매섭게 추운 날이 지속되었고, 2월이 되자 그때까지 몰랐던 동풍이 몰아쳐, 잠을 자는 새 분명히 닫은 현관이 열려 찬 기운이 방에까지 들이닥쳤으며, ‘누가 열었을까? 저절로 열렸을까?’ 무섭게 서늘한 생각이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 재크나이프, 전남편 오티스가 준 호신용 공포탄 권총 한 자루를 침대 밑에 두기 시작했다. 공포탄이라 해도 그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면 맞은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 줄도 모르니까 아릴드는 편하게 침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 궁금하지? 권총이 소설에 등장하면 언젠가는 발사할 수밖에 없다고? 안 알려드린다.&nbsp; 게다가 갑자기 천장 한 모퉁이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작은 짐승이 화다닥 달려가는 소리. 뭔가가 천장에 있다. ‘뭔가’가 무슨 동물인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나’가 도움을 요청한 돼지농장 주인이자 이혼남, 이라기보다 아내가 도망친 남자의 의견에 의하면 담비란다. 아릴드는 담비 덫을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성호르몬을 묻힌 돼지 비계를 달아 담비를 유혹하건만 색깔이 찬란한 고양이가 한 번, 검정색의 새 한 마리가 한 번 걸릴 뿐이다.&nbsp; 이렇게 거의 완전히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황량한 벌판과 물, 간척지, 바다가 널려있는 풍경. 쓸쓸하고 고립되었으며 무언가 불행한 일이 곧 생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의 연속. 이게 헤르만을 읽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이의 벌판은 단편 쪽에 있는 듯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7/cover150/k692130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9074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세상엔 통합도 화합도 없다 -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0661</link><pubDate>Mon, 28 Sep 2026 0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06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406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off/89320453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406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통역사 다니엘 슈타인</a><br/>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nbsp; 이번에 읽은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lt;커다란 초록 천막&gt;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nbsp;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nbsp;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br>&nbsp;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nbsp;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nbsp;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nbsp;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nbsp;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br>&nbsp;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nbsp;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nbsp;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nbsp;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br>&nbsp;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nbsp;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nbsp;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nbsp;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150/893204533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9243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에잇, 콱 버리고 말았다 -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link><pubDate>Sat, 26 Sep 2026 1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guid><description><![CDATA[.한가위 잘 쇠셨기 바란다.시간이 남는다. 여유로워 좋다. 오늘은 새로 버린 책 이야기해보자.​<br>  좋은 책 많다. 망설였던 것이 이기영의 &lt;민촌&gt;과 이기서의 &lt;강릉 선교장&gt;. 이기영은 뭐 말 할 필요 없는 작가의 명품 리얼리즘 작품. 강릉의 선교장은 나 어렸을 적에 직접 그 집에서 자본 적이 있어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연못 정자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 속 이주사, 정여사의 젊은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굳이 옛 앨범을 들춰보기는 싫다.  나쓰메 소세키의 &lt;도련님&gt;, 앨리 스미스의 &lt;호텔 월드&gt;, 르 클레지오가 쓴 &lt;허기의 간주곡&gt;, 그리고 우리말 제목을 워낙 후지게 달아서 오히려 진가를 가려버린 푸엔테스 작 &lt;미국은 섹스를 한다&gt; 외에도 홀링허스트, 사라마구, 셀린느, 매컬러스, 새라 워터스, 심지어 루슈디와 브레드버리, 요사, 드릴로, 커포티 등등 싹 버렸다. 마음이 편했을 수는 없었겠지?<br><br>  이번에는 조이스의 &lt;율리시즈&gt;를 버려? 남겨둬? 이거 하고 에코의 두 작품, 그리고 한 때 책 좀 읽는 사람들 입끝에 올랐던 장왕록 번역의 포크너 &lt;압살롬, 압살롬&gt;이 문제였다. 포크너는 당시에 나더러 책을 줄 수 없겠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싹 안 된다고 거절했던 거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 결국 버릴 책을 하잘것없는 욕심 때문에 여태 이고 지고 있다가 결국 이꼴이 뭐냐고.  독일까지 가 무질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딴 안병률 사장이 직접 번역한 &lt;특성없는 남자&gt;도 다시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던졌다. 돈이 아깝지만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애트우드는 &lt;도둑신부&gt;말고 &lt;고양이 눈&gt;을 남기기로 했다. 우엘벡도 버리고 존 파울즈도 버리고, 파울즈는 결국 &lt;마법사&gt; 한 작품만 남길 생각이지만 하여간, 쿤데라도 목록에 나왔다. 게다가 이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즉 현재 발간중인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도 눈에 들어왔다.<br><br>  이 목록에서는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하인리히 만이 쓴 &lt;앙리4세&gt;를 제일 고민했다.  백낙청의 기념비적 평론집 &lt;민족문학과 세계문학&gt;도 이제는 꼴 보기 싫어서 던져버렸다. 드디어 화이트헤드, 백대가리 선생의 &lt;관념의 모험&gt;, 한길사가 야심차게 펴낸 그레이트북 시리즈 1번에 빛나는 책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설명하느냐를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걸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볼라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 한 편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라고 여겨서 다른 작품은 싸그리 버렸거나 버릴 예정이다. 이거 딱 한 번 읽고 버리는 책들이라 당근에 내놔도 돈 좀 받을 수 있겠는데, 귀찮다. 걍 버렸다.  오정희는 나이를 먹으면서 확연히 총기가 떨어져갔다. 내가 이이의 책을 버리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르메트르의 삼부작도 남아나지 못했다. 재미 있는 건 확실하지만 오래 보관할 만하지 않잖아? 두 번 펴보지 않을 듯한 책들. 이런 면에서 아까운 작가가 모옌이다.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또 들춰볼 만하건만 사실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찾을 듯해서 아쉬워도 그냥 보냈다.  그리고 초판본 한강의 &lt;여수의 사랑&gt;. 아무리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도 안 맞는 걸 억지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lt;장한몽&gt;은 아깝고 아깝다. 근데 내가 읽지 않으면 가족 가운데 아무도 읽지 않을 듯. 예전에 나온 금속활자본이다.​<br>  제일 위에 쌓은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 198X년 처음 취직해서 봉급받아 처음으로 산 책. 학교 다닐 때 읽고 이런 전집은 꼭 한 질 갖고 싶어하다가 내 돈 벌어 산 책. 그래서 정이 남다르다. 웃긴 것이, 그렇게 갖고 싶었지만, 학창시절에 이미 다 읽은 책인데다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도 못 읽고 처분하게 됐다는 거. 40년이 지나서 말이지. 뭐 이게 다 사는 일이기는 하지만. 초봉이 25만원 할 시절이었으니 저 전집 사려고 죽을 똥을 쌌다는 건 짐작 하시겠지?  그리고 꼭 해야 할 말. 포드 메독스 포드의 네 권짜리 대표작 &lt;퍼레이즈 엔드&gt;와 조지 엘리엇의 네 권짜리 &lt;다니엘 데론다&gt;. 이 두 작품은 한국문화사라는 개떡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책값 할인도 전혀 안 해주는 배짱 좋은 회사인데 둘 다 교정 교열이 개판무인지경이다. 그래서 그걸 지적하면 댓글을 달아 생 지랄을 해 그게 드러워서 독후감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책들 말고 페터 바이스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얼마 남지 않은 독서생활 동안 절대로 피해야 할 출판사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절대로 동의하지도 마시고, 참고도 하지 마시라. 괜히 다 늙어 고소당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나, 포드 매독스 포드와 조지 엘리엇 만한 영어 소설가가 몇이나 있다고 그걸 그 지랄로 책을 만드냐는 말이지.  톨스토이의 &lt;전쟁과 평화&gt;도 피해가지 못했다. 앞으로 &lt;전쟁과 평화&gt;를 또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 표지가 하도 구려서. 뭐 내 마음이니까.  홍성원의 &lt;남과 북&gt;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쟁문학이라는 데는 백퍼 동의한다. 근데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비슷한 논조의 작품이 &lt;남과 북&gt;이후에 이미 많이 나왔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lt;라일라&gt;도 버리느냐고? 그렇다. &lt;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gt;은 감명깊게 읽었지만 &lt;라일라&gt;는 내 수준에 과하게 철학적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26/pimg_63926043131532399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교실, 가정이라는 정글 - [맨 끝줄 소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5874</link><pubDate>Fri, 25 Sep 2026 0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58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635836&TPaperId=175358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off/k9526358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635836&TPaperId=175358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맨 끝줄 소년</a><br/>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07월<br/></td></tr></table><br/>.&nbsp; 후안 마요르가는 5년 전에 두 편이 실린 희곡집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으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마 우리말로 인사했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미 정치적으로 웬만큼 민주화되고, 옛 시절의 악연마저 어느 정도 수습을 한 상태에서 등장한 스페인 86세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구나. 거 참 부럽네. 프랑코 개자식들로부터 그들의 파시즘을 전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지금 권력을 잡았을 스페인 86세대들은 마드리드에 있는 대통령 궁에서 여전히 죽창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라 목에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아니 부러운가.&nbsp; 마요르카는 이제 달랑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다. 이제 도서관에서 POD 책은 사 주지 않겠다고 하니, 악마같이 비싸게 책값을 책정하는 지만지드라마의 희곡을 사 읽을 수도 없고, 도서관에다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앞으로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세상에 아쉬운 일이 하도 쌔고 쌔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간디?<br>&nbsp; 책을 열면 제일 먼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nbsp; 자신은 한 번도 한국의 교실과 가정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전제가 한국의 교실과 가정이 아마도 스페인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리라,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추측한다. 근데 이거 조금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생활해본지 하도 오래라서 라떼와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 교실과 서유럽의 교실은 거의 딴 판으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근데 한 편으로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교실 역시 세계화되어 거기가 거기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스페인의 고등학교 교실 분위기가 오직 대학입시에 초점이 모이는 우리나라 교실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 아니면 말고.&nbsp;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국립연구원, 파리와 베를린의 뮌스턴 대학, 국립원격교육대학 등을 거쳐 긴 가방끈을 가졌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법 하는 바람에 당시 한 학생과의 작문에 얽힌 기억으로 &lt;맨 끝줄 아이&gt;를 썼다고 한다. 수학 교사였는데, 시험 볼 때, 한 학생이 답안지에 이렇게 썼다나?&nbsp; “선생님,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테니스를 아주 잘 쳐서 일요일에는 마르카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등등.”&nbsp; 이때 마요르카가 얻은 힌트. 학생이 시험시간의 시험지/답안지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교사한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br>&nbsp; &lt;맨 끝줄 소년&gt;은 말 그대로 학급의 제일 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을 말한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돋보이는 반면 철학과목에서는 비실비실하다. 같은 반에 라파라는 애칭의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얘는 또 철학 점수는 좋지만 수학은 거의 까막눈 신세다. 그래서 클라우디오는 라파는 서로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주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합의한다. 공부할 장소는 물론 훨씬 잘 사는 라파의 집이 되겠지.&nbsp; 이 두 아이를 가르치는 작문 또는 국어 교사가 헤르만. 헤르만은 요즘 학생들의 작문 실력에 거의 절망을 하고 있던 터. 주말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써보라는 콩트를 냈는데 거의 다 이런 식이다.&nbsp;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nbsp; 딱 두 문장. 30분 동안에 메꾼 답안지. 이런 답지도 있다.&nbsp;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nbsp; 교사라는 직장인으로 헤르만은 절망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밝아지는 답안지가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 가르시아가 쓴 작문이다.<br>&nbsp;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로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난 그집에 들어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후략)”&nbsp; 상당한 글솜씨의 고등학생. 헤르만은 속으로 ‘아주 만족!’을 외치고 있었을 터. 그는 진짜 오랜만에 기쁨이 터져 마침 옆에 앉아 있는 아내 후아나한테 답지를 건네고 읽어보라 권한다.&nbsp; 후아나는 불편하다. 남편한테 말한다.&nbsp; “나라면 이 글을 교장한테 가져가겠어.”&nbsp; 친구의 엄마를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 등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다면서. “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교실에서 큰 소리로 읽히고 라파가 그 친구 뺨을 한 대 갈기는지 보지 그래?”&nbsp; 이젠 더 열을 받았는지 작문 교사인 남편 헤르만까지 볶는다.&nbsp;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 아이 열일곱 살. 내가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열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애 열일곱이면 이게 말이 청소년이지 거의 완전한 성인이다. 백년 전만 해도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지원해 참전했다가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어 돌아올 아이들. 열일곱 살이면 친구의 엄마일지언정, 그녀에게 욕정만 품지 않는다면, 사실 나이 든 엄마뻘 여성에게 욕정을 품는 소년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지만, 하여간 그렇기만 하면 친구 엄마 가까이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 운운한 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nbsp; 게다가 클라우디오는 겁나게 가난한 집의 아이로, 집안에서는 식용유 찌든 냄새, 고기의 비계 냄새, 뭔가 희미한 부패 향기와, 빼놓을 수 없는 곰팡이 냄새에 익숙할 터, 새롭게 환한 비누와 세제와 분과 비싼 데오도란트 향기가 넘실거리면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발언을 통해 이이의 전작 가운데 한 편인 &lt;비평가&gt;가 저절로 떠오르더라니까.&nbsp; 그런데 후안 마요르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비평 또는 검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 알 수 있다. 헤르만은, 보통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아내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한테 비슷한 의견이 나오지 않을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게 되고, 아이 클라우디오는 이런 선생 헤르만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nbsp; 근데 여기까지는 후안 마요르카가 “한국의 독자에게”에서 밝힌 두 가지 공간 가운데 교사-학생의 관계만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정 속 이야기. 라파와 라파의 부모로 이루어진 공통체와 클라우디오의 갈등.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라파와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하여 절대 하면 안 될 부정한 짓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넷플릭스 TV 드라마 교권수호국인가 뭔가에서 나온다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커넥션,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대가 없는 커넥션도 등장한다.&nbsp; 내 경우에는 많은 문제 제기 가운데 헤르만이 아니라 교사 사모인 후아나가 벌이는 작문에 대한 검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어떤 이슈를 재미있게 읽을 지 모르겠다. 후안 마요르카, 이 65년 뱀띠 아저씨, 거 참 재미있게 쓰네 그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150/k9526358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88889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요크나파토파 없이 마콘도가 있었을까 - [내려가라, 모세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4333</link><pubDate>Thu, 24 Sep 2026 04: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43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5343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off/k172138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5343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려가라, 모세여</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 아마 포크너의 중단편 &lt;곰&gt;은 두세 번? 서너 번? 읽은 거 같다. 그럼에도 &lt;곰&gt;이 윌리엄 포크너 스스로 연작 장편이라고 주장하는 《내려가라 모세여》의 일곱 중단편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이제 새롭게 《내려가라 모세여》를 읽으니 &lt;곰&gt;이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해방 이전, 그러니까 아무리 늦어도 1862년 이전부터 20세기 1940년대까지 아우르는 한 일가의 대하 가운데 한 편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읽힌다.&nbsp; 작품의 중심지는 당연히 요크나파토파 지역과 제퍼슨 시.&nbsp; 이 연작 장편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다. 포크너가 없었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라는 가상의 지역 또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있었겠으며, 백년이 넘는 가계도를 이루는 &lt;백년의 고독&gt;을 생산해낼 수 있었을까? 있었겠지. 있었겠다고 믿기는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까지 백범 작이라고 알았는데 사실은 서산대사 휴정이라는 중이 지은(지었다고 하는) 오언절구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須作後人程“ 오늘 내 행적이 뒤에 올 사람의 발길이 되리라, 하듯,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와 제퍼슨 시가 없었더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를 만들기도, &lt;백년의 고독&gt;을 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여길 수밖에 없다.&nbsp; 아니, 어딜. 세상에 마르케스밖에 없나? 아마도 20세기 중후반부터 소설작업을 해 온 무수한 소설가 가운데 한 발짝 앞에 나서서, “나는 윌리엄 포크너의 그늘 덕을 조금도 받지 않았소!”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작가가 몇 퍼센트나 될까? 서양 작가만 국한해 묻는 것도 아니다. 동양, 더 쉽게 한, 일, 중 세 나라의 잘 나가는 작가들도 포함해서. 오에 겐자부로? 모옌? 당연히 뛰어나고,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이지만 이들 역시 포크너의 서늘한 그늘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걸 근거로 이렇게 얘기하는지 더 따지지 마시라. 방금 오에와 모옌한테 전화 걸고 이야기하는 중이니까.<br>&nbsp; 작지 않은 대하는 루시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이라는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제일 선대 사람. 그래서 ‘늙은 캐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살아있는 등장인물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이가 요크나파토파 소재 농장의 농장주. 생몰이 1772~1837. 평생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살았던 전형적인 백인 농장주이지만, 숱한 작품에서 늘 보던 악랄한 백인 지주와는 비슷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선한 인간형이랄 수 있는 농장주. 이이는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으니, 쌍둥이 형제 시어필러스(애칭 벅)과 애머디어스(애칭 버디),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딸이었다. 이 가운데 벅이 다 늙어 낳은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 애칭 ‘아이크 삼촌’이 연작 장편의 가장 중심적인 축을 만드는 인물.&nbsp; 늙은 캐스는 사랑 또한 넘치는 인물이라 아내 말고도 자기가 소유한 노예 여인 유니스 사이에 딸 토마시나를 만들었다. 토마시나 역시 당연히 노예였으며, 자기 딸인 줄 알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훗날 토마시나하고도 관계를 맺어 아들 터렐, 속칭 ‘토미네 털’을 두었다. 이 관계를 지금 21세기 시점으로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쇼킹이겠지만 미국 노예시대에 이런 일은 그저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불과했다. 물론 거꾸로, 즉 흑인 남자 노예와 백인 농장주의 부인과의 사이에 생식이 벌어졌으면 죽고 사는 참극이 수반되었겠지만 하여간 그때는 그랬다는 거.&nbsp; 그래서 늙은 캐스의 아들이기도 하고 손자이기도 한 노예 토미네 털이 첫 작품 &lt;옛 일&gt;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토미네 털은 쌍둥이 형제 벅과 버디 삼촌네 노예. 근데 족보로 보면 배 다른 형제이자 조카. 형제라고 하면 나이 차이가 무려 서른네 살. 늙은 캐스는 벌써 주님의 안식을 찾아 떠난 시절이고, 토미네 털은 바야흐로 청춘시기를 맞아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또다시 농장에서 탈출을 해버렸다. 근데 이게 습관적 탈출. 쉬운 얘기로 자유를 찾기 위한 도망이 아니라 DNA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짝을 찾아 이웃한 농장의 노예 아가씨 테니 비첨의 방향芳香, 일종의 페로몬을 찾아 가는 거였다. 벅과 버디 삼촌도 토미네 털이 어디로 간 줄 다 아니까 별로 서둘지도 않고 털을 찾아 나서는데 이번에는 연작 장편의 첫 작품이 되려니까 이 수순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갈 수는 없겠지? 그리하여 노예 아가씨 테니의 주인과 벅, 벅이 쫄리니까 나중엔 버디 삼촌까지 나서서 크게 한 판 도박을 벌이는데, 이게 영 재미있더라는 말이지.<br>&nbsp; 물론 재미로 치면 첫 작품 &lt;엣일&gt;보다 두번째 작품 &lt;불씨와 화덕&gt;이 한 수 윗길이다. 즉,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거 뭐 읽을수록 점입가경, 점점 더 흥미의 수준이 높아가니 그저 즐거울 수밖에.&nbsp; 제목이 &lt;불씨와 화덕&gt;인 것은, 흑인 노예들이 시집 장가가서 거의 관습적으로 해야 했던 것이 화덕에 불씨를 붙이면 죽음이 갈라놓아 둘의 혼인상태가 해체될 때까지 화덕에서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했던 것을 빗댄 거다. 뭐 굳이 미국의 흑인 노예들만 그랬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궁이의 불씨를 보존하는 거였다고 최명희의 미완성 명작 &lt;혼불&gt;에서 나온다. 나 어려서도 외숙모가 연탄불 꺼트리면 외갓집 특히 여성 구성원들의 뒷담화가 찬란무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그거고. 사실 그건 그게 아니라 결국 화덕에서 불씨를 꺼트리는 일까지 몽땅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nbsp; 앞의 작품 &lt;옛일&gt;에서 중요한 조연이었던 토미네 털이, 벅과 버디 삼촌의 맹활약 덕분에 테니 비첨을 아내로 얻고, 심지어 매캐슬린 농장의 노예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이 노예 부부 사이에 아들-딸-아들이 생겼으니 막둥이 루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 비첨이 &lt;불씨와 화덕&gt;에서 찬란한 주인공이자 설레발꾼이자 포복절도의 사기꾼, 아니, 똘똘이 스머프로 등장한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똘똘이 스머프.&nbsp; 루카스의 아내 이름은 몰리. 둘 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노예제도는 사라진 시절이었다. 어엿한 자유인. 그러나 흑백 차별의 유구한 전통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던 시절. 아다시피 루카스는 저 꼭대기 할아버지 캐러더스 매캐슬린, 캐스 노인과 노예 여성 사이에서 이룬 가계이다. 백인 아내로 이어진 가계 가운데 남자 항렬, 쉽게 말해 매캐슬린 가계는 벅과 버디 삼촌에 이어 벅의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에서 끊기고, 이름도 나오지 않은 딸 하나가 에드먼즈 가문으로 시집가 손자 재커리를 낳았는데 이이가 주인공 루카스와 동갑내기였다. 1898년에 재커리 애드먼즈가 아들을 얻었지만 난산 끝에 아내가 죽어, 루카스의 아내 몰리, 그리고 몰리가 낳은 루카스의 아들을 집에 데려와 젖어미 역할을 하면서 두번째 명품 익살극을 시작한다.<br>&nbsp; 루카스 입장에서 아무리 흑백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애먼 마누라가 백인 아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젊은 농장주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살고 있으니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루카스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매캐슬린 가문의 훈훈한 가풍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노예 해방과 동시에 선대 매캐슬린은 흑인 피가 흐르는 후손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겨 주어 제퍼슨 시내에 있는 은행에 만만하지 않은 현금을 보관중이건만 절대 있는 척을 하지 않는다. 아, 이건 나중 일이긴 하다.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할 거 같으니 그냥 그런 줄 아시면 되겠다.&nbsp; 루카스가 열을 받아 백인 조카(뻘)에게 달려가 아내 몰리를 데려왔는데, 이때 젖먹이 홀로 홀아비한테 맡겨 둘 수 없어 함께 데려왔으니, 얘 이름이 로스인데, 아이가 점점 커짐에 따라 이집 저 집을 다니며 함께 자기도 하고, 먹는 건 물론이고, 장난도 치고, 뭐 그렇게 컸겠지? 커가면서 사달이 없을 수 없었을 테니까 점점 흑인 아저씨, 사실은 할아버지 항렬 댁에는 점점 뜸해졌을 것이고, 아버지가 죽어 이제 자기가 후대 농장주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루카스하고는 좀 멀어지기는 했을 터.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몰리 할머니와의 정리 때문에 매사 야박할 수도 없었을 건 안 봐도 뻔하다.&nbsp; 루카스도 나이를 먹어 이제 벌써 육십대 중후반에 이르러, 막내딸 넷을 시집보내야 할 처지. 넷이 벌써 1923년생, 그간 세월도 무척 많이 갔다. 하지만 나이로는 자식 뻘, 족보로 보면 증손 또는 손자 뻘인 로스 에드먼즈가 여전히 루카스더러 ‘자네’라고 부를 정도의 시절임을 감안하자. 그렇다고 로스가 악당? 천만의 말씀. 당시 시선으로 (내가)보면 세상에 그런 백인도 별로 없었을 듯. 더군다나 KKK가 난무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넷이 다 커서 시집을 가야 할 거 아녀? 그리하여 조지 윌킨스라고 하는 흑인 남자를 골랐는데, 당연히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1930년대 금주령 시절. 조지가 완전히 질 낮은 옥수수 위스키를 만들어 팔려고 시도하는 것. 여태까지 루카스가 지역에서 독점하고 있던 사업인데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짜리를 혼내기 위하여 자기 증류기를 땅에 숨기고 신고를 하려 마음을 먹어, 캄캄한 밤에 진흙 땅을 파다가 뭔가가 손에 잡혀 이게 뭘꼬, 쳐다보니까 글쎄 금화였던 거다. 분명히 누군가가 이 근처에 금화가 잔뜩 든 자루 또는 궤짝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걸 찾아야 하고, 제일 빨리 파내기 위해서는 최첨단 금속 탐지기가 필요할 터.&nbsp; 3백 달러에 이르는 금속 탐지기를 손에 얻는 스토리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든지, 윌리엄 포크너가 이렇게 희극적으로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nbsp; 그런데 사실 이런 희극 또는 익살극은 이 두 편이 전부이고, 포크너 특유의 스토리 텔링은 새롭게 시작하니 특별히 당신이 인상깊게 읽었을 명작 &lt;곰&gt;을 기억하면서 연작 장편을 읽으면 첫 작품 &lt;옛일&gt;부터 전작을 관통하는 대하를 짐작하실 수 있을 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150/k17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179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화려한 블랙 유머의 난장판 - [폭풍 한가운데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2159</link><pubDate>Wed, 23 Sep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21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9340&TPaperId=175321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0/coveroff/k30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9340&TPaperId=175321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풍 한가운데 1</a><br/>패트릭 화이트 지음, 박유진 옮김 / 잔상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5년 전에 &lt;전차를 모는 기수들&gt;을 읽고 쓴 독후감을 보면 패트릭 화이트가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 의식의 흐름을 특징으로” 하는 작가라고 전에 어디서 주워들었던 모양이다. 당시 &lt;전차를…&gt;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는데, 작품에서 그의 특징이라고 하는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은 그리 자주 보이지 않았고, 의식의 흐름은 어느 구석에 있는 지 찾아낼 주제가 되지 못하여 화이트에 관한 세간의 평이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고 넘긴 적 있다. 이번에 독후감 쓰기 전에 다시 화이트를 검색해보니, &lt;전차를…&gt;이 1961년, &lt;폭풍 한가운데&gt;는 이이가 노벨문학상을 탄 1973년 발표작인데, 이번에 &lt;폭풍…&gt;을 읽어보니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을 이이의 특징으로 짚는 건 확실하게 이해하겠다. 내가 뭘 알건디? 그저 초창기 작품&lt;전차를…&gt;과 소설집 《불타버린 사람들》만 읽고 한 작가를 단정하려 했던 거겠지.&nbsp; 위키피디아를 보면, 화이트가 1969년부터 계속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론 은근히, 그리고 열렬히 바랐을 거 아녀? 1969, 70년 두 해를 기다렸다가 1971년 세 번째 해에 접어들어서도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상을 받게 되니까 못내 섭섭했던지 다시는 노벨상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되기 바란다는 코멘트를 날렸단다. 그러다 한 해 쉬고 다음다음 해인 1973년에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니까, 이거 상 받으러 가기 좀 쑥스럽지 않았겠어? 그래서 결국 화이트 본인은 건강이 안 좋다는 핑계 또는 이유로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 가지 않았단다.&nbsp; 그런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작가 가운데 몇 명은 노벨상이란 것이 자신의 질곡이 되어 이후 시답지 않은 작품만 몇 개 발표하고 그걸로 작가 생명을 마감한 이들이 제법 있다. 이이도 그랬을까? 61세에 상을 받았으니 이미 문학적으로도 전성기는 지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lt;폭풍…&gt; 이후에 그리 명성을 떨친 작품은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거 그냥 내 짐작이다. 인용하지 마시라. &lt;폭풍…&gt;이 노벨상을 탄 해 여름,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에서는 겨울에 출간했고, 수상자 발표는 11월에 해서 그랬는지 화이트 관련해서 뒤져보면 대개 이 &lt;폭풍…&gt;을 그의 대표작품으로 꼽는다. 나는 당연히 &lt;전차를…&gt;를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간다.<br>&nbsp; &lt;폭풍…&gt;은 확실히 곳곳에 BW, 즉 Black/White 유머가 매복해 있고, 등장인물 A의 입장에서 서술하다가 갑자기 B의 시각에 입각한 내레이션이 나오는 등 서술의 전환이 자유롭게 등장한다. 작품도 86세 먹은 호주 부르주아 노 부인의 죽음의 침상 몇 달이지만 당연히 주인공 엘리자베스 헌터 부인과 부인의 (출생 순서대로) 아들, 딸과 이미 죽은 남편, 부인이 유혹해 한 번 자빠뜨린 성실한 전담 변호사, 세 명의 간호사와 요리사, 가정부 등의 회상이 빼곡해서 95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즉 죽어야 끝나는 소설. 살면서 행했던 별의 별 에피소드를 망라하면서 결국 ①인생무상이나, ②그래도 사랑이 제일이야, 영탄하거나 ③누가 뭐라해도 일단 살아볼 일이라는 주제이기 십상인데 &lt;폭풍…&gt;은 어떤 결말로 치고 갈까?&nbsp; 엘리자베스 헌터의 결혼 전 이름은 엘리자베스 셀켈드. 이이는 몇 달 있으면 죽을 예정인데,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기를, “아무래도 난 속물이었던 모양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정교육도 문제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살한 것도.” (p.142)&nbsp; 그러니까 부모한테 물려받은 건 딱 하나. 지금이야 이 모양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시드니에 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몸을 지녔다는 것. 그려, 여자나 남자나 잘 생기면 일단 유리한 자리를 꿰 차는 거다. 엘리자베스 셀켈드 양은 이런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자신의 하드웨어를 이용하여 몇 단계 계급을 올려 버렸으니,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알프레드 헌터 씨와의 결혼에 성공해서, 부와 미모로 시드니 사교계를 단숨에 정복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속물이라고? 맞다, 속물. 그것도 대단한 속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해야 하며, 이들과의 사이에 누가 있어서 그걸 방해한다면 방해물이 친자식이 되었더라도 일단 없애 버려야 마땅하다. 정말? 그렇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좀 긴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끝도 한도 없다. 그냥 지나가자.<br>&nbsp; 근데 죽은 남편 알프레드는 진심으로 엘리자베스를 사랑했다. 부인이 생각해봐도 그렇다. 남편은 아내한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시드니에서 멀리 떨어진 가상 지역 고공 주의 가상 커뮤니티 쿠저리 소재 농장에서 머물고, 아내는 시드니 저택에서 살았다. 아들과 딸도 어린 시절을 쿠저리 농장에서 지내다가 아들은 영국으로 가 작위를 받은 연극배우 바질 경이 되었으나 이젠 연극계의 늙은 퇴물로 지방 순회공연을 전전하고 있으며, 딸은 프랑스의 나이든 라스카반 공작과 결혼해 프랑스 공작비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지만 라스카반 공작은 새로 생긴 애인과 살림을 차렸고, 가톨릭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해 그저 공작비라 불리는 것만 기쁨으로 알고 사는 중이다.&nbsp; 바질 경은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첫째 아내의 딸은, 바질의 딸인 줄 알았다가 더 알고 보니까 다른 남자의 아이였으며, 같이 연극 배우를 하던 둘째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끝냈다고 봐도 별 이상 없다. 라스카반 공작비는 집을 나서면서 라스카반 집안의 보석들만 잔뜩 얻어냈을 뿐 이젠 새로운 사치는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 둘 다 이름만 비까번쩍하고 속은 거의 거렁뱅이다. 이때 주의할 점. 살기를 부르주아로 나서 그렇게 크고,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생각하기에 거렁뱅이지, 우리가 아는 그런 진짜배기 거렁뱅이는 절대로 아니라는 점.&nbsp; 이 아들과 딸한테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 것.&nbsp; 아버지가 장인을 흉내내 스스로 목숨을 끝내면서, 자기 전 재산은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 소유로 있다가, 아내가 죽으면 아들과 딸한테 정확하게 반반씩 유증하겠다고 유언장에 박아 놓았다. 유언에 따라 그동안 엄마한테 죽기전에 재산 상속 좀 해달라고 입도 벙긋하지 못한 처지. 그나마 엄마하고는 정도 없다. 엄마 성격이 하도 자기만 아는 인간이라 어린 시절부터 엄마보다는 아빠하고 훨씬 가까웠으며 엄마와는 서로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이해는 간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동몽선습과 소학을 공부하지 않은 서양 것들이니, 나 어릴 때 그렇게 했지, 늙어서 보자, 앙심만 쌓였을 수도 있고. 그러나 알고 보면 자식들도 전부 엄마 닮았다. 바질과 도로시가 정말 오랜만에 한 5년 만에 편지를 해서, 엄마 요새도 건강하시고 연애도 잘 하시고, 하인들도 잘 갈구시지요? 안부를 물으면 이게 곧 용돈 좀 달라는 뜻이었고, 그걸 칼같이 알아들은 엘리자베스 헌터 여사는 그때마다 일정 금액의 수표를 보냈으니, 그래도 자식들이 엄마를 함부로 하지 못했던 건 당연했겠지.<br>&nbsp; 이런 상태에서 엄마가 죽어가니 새끼들 입장에서 말로는 못하지만 경사라도 난 거 같은 기분이다. 이걸 패트릭 화이트는 그의 주특기라고 알려진 유머와 화려한 문체로 써 놓았는데, 아뿔싸, 이 책이 나온 것이 1973년, 지금부터 무려 53년 전이다.&nbsp; 그러니 어떻겠어? 이미 꼰대가 된 내가 읽어도 세상에, 이런 아재 개그가 또 없다. 당시엔 화려한 문장이었어도 지금 읽어보면 그냥 밋밋한 수준의 문장들. 그래서 1권을 읽을 때는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는데, 2권 들어가 본격적으로 아들과 딸, 바질과 도로시, 이름도 참 후지지 바질과 도로시가 언제 적 이름이야?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 바질이나 도로시라고 이름 지으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하여간 남매가 본격적으로 유산쟁탈전의 진검승부를 겨루기 시작할 즈음이면, 그리하여 하루라도 엄마를 빨리 보내기 위하여, 그동안 경비를 줄이려는 속셈도 있고, 해서, 생전 존경하지 않았던 미운 엄마를 ‘쏘로굿 빌리지’라고 하는 부르주아 노인네들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촌극이 정점에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이고, 또 무척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nbsp; 독후감을 짧게 끝내기 위하여, 빼놓을 수 없는 출연진들, 간호사 세 명과 요리사, 가정부, 그리고 변호사부부를 소개하지 않아 유감스럽다.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실 사.<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0/cover150/k30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00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글만 좋으면 독자는 읽지 - [소녀는 따로 자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0200</link><pubDate>Tue, 22 Sep 2026 0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02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937174&TPaperId=175302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29/10/coveroff/k6629371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937174&TPaperId=175302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녀는 따로 자란다</a><br/>안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2월<br/></td></tr></table><br/>.&nbsp; 안담. 처음 듣는 이름. 책의 앞날개에 작가 소개가 있다.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출생. 이후 좀 헛갈리는데,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이 문장에서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돈” 사람이 안담은 아닐 것 같다.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고 말했고, 자랐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어른 또는 청소년 시절까지 성장했다는 말이니, 소녀 안담을 봉고 차에 태우고 전국을 떠돈 인물은 안담의 부모, 또는 부모 가운데 한 명, 아니면 안담을 키워주기로 한 후견인일 것 같다.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를 읽어보면 전국을 떠돌 때 안담을 데리고 다닌 사람 가운데 엄마는 있었을 듯하다.&nbsp; 대학에서는 미학을 전공했단다. 그러면 서울대, 홍익대, 영남대 가운데 한 학교의 졸업생. 대학 졸업하고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였다고. 직업 가운데 하나가 스탠딩 코미디언도 들어있다. ‘무늬 글방’이란 걸 열어서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단다. 책방인 것도 같지만 책방을 핑계로 모임 장소를 두어 하여간 문학 언저리의 것을 궁리하는 소모임의 두목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말고.&nbsp; 하여간 이렇게 문학을 포함한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으로 현재는 은평구에 사는 개 산책자. 마음에 드는 건,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품종의 강아지가 아니라 성질나면 사람도 간혹 깨물 것 같은 늠름한 사냥개 종류처럼 보이는 중형 개를 키운다는 점. 은평구에서 달리거나 걷다가 안담 만나면 까불지 마라. 여차하면 사냥 당하는 수가 있으리니.&nbsp; 안담은 특별히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가란다. 나름대로 문학판에 아는 사람도 있고, 빽도 있고, 돈도 좀 있는 거 아냐? 짐작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까 믿지도 말고 어디 가서 진짜인 척 얘기도 하지 말자. 정말로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 읽어 보시라. 글이 만만하지 않다. 나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안담이라는 이름을 알았는데,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검색해보니 이 작은 단편 하나 실은 책이 2023년에 꽤 주목을 받았다. 흠. 이 정도면 나도 안목이 있는 편이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nbsp; 책방 검색을 해보니까 소설은 위픽 시리즈의 단편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 이거 딱 한 권. 본문이 59페이지에서 끝나고, 다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겁나게 짧은 단편 하나. 등단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이 작품도 오래 전에 무슨 마감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한 번 써본 것이란다. 그러니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없는 ‘작가’가 되기 위해 머리 터지게 습작을 쓰고, 학생, 교수들의 얼토당토 않는 비평을 들으며 절망하면서 무슨 문학상 비슷한 것만 보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고를 하는 시절을 어쩌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글만 잘 쓰고, 그게 마음에 들기만 하면 독자는 읽으니까.<br>&nbsp;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 이야기.&nbsp; 내겐 완전하게 신세계. 나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나지 않는데 더구나 여자 아이의 어린 시절과 딱 그 때 감각과 생각과 느낌 같은 것은, 정말로 한 번도 궁금해본 적조차 없는 거 같다. 나도 남자형제 가운데 둘째고, 아이도 아들만 둘 있어서 더 그랬던 것이겠지. 발 한 번 딛지 않은 벌판의 언덕 위에서 처음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 이게 이 책, 50쪽짜리 읽고 ‘책’이라 말하기도 좀 어색하지만, 하여간 이 단편을 읽은 감상이다.&nbsp; 더구나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폼잡지 않고, 질질 짜지도 않으면서 그냥 슬슬 지나치듯 할 말 다 하는 아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꼬마도 아닌 사춘기 바로 전 단계.&nbsp; 잘 읽었다. 소설도 좀 더 자주 썼으면 좋겠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겠다. 무대 예술도 해야 하고, 돈을 좀 번다는 ‘무늬 글방’ 주인도 해야 하고, 개 산책도 시키면서 소설까지 쓰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29/10/cover150/k6629371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029106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작도 좋으면 더 좋았을 텐데 - [끝이 좋으면 다 좋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8461</link><pubDate>Mon, 21 Sep 2026 0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84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6920&TPaperId=175284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0/coveroff/k91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6920&TPaperId=175284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끝이 좋으면 다 좋아</a><br/>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극은 대개 비극 아니면 희극, 이렇게 나뉘는데,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는 거참, 애매모호하다. 확실히 비극은 아니다. 그렇다고 희극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엘리자베스1세 시절의 시대극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nbsp; 하여간 좋은 희극이 되기 위한 고전적 방법. 그건 비극의 등장인물 못지 않은 악당이 나와 나름대로 치밀한 계략을 펼치다가 극의 뒤로 가서 결정적으로 쌍코피를 흘리며 주인공 커플의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주어야 하는 법.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에서는 주인공인 루시용의 젊은 백작 버트럼이 바로 그 악당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나중에 대오각성해서 선한 인물이 되어야 하니 조연 가운데 한 명에서도 악당이 등장해야 하는 바, 허풍 가득하고 말과 달리 무척 겁이 많으며,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버트럼의 추종자 겸 껄떡쇠 겸, 사기꾼이라 결국 고전극의 천하 진리인 “악당은 지옥으로”를 이루어 줄 것처럼 보이는 늙은 건달 파롤.&nbsp; 아, 지금 내가 뭐라고 했지? 악당이 지옥으로 간다고 한 거 아니다. 고전 희극에 등장하는 악당들이 종종 지옥에 간다고 했을 뿐. 셰익스피어는 좀 다르지? 욕심장이 술꾼이자 사기 기질이 농후한 귀염둥이 악당 폴스타프가 곤욕을 치루기는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 악당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던 것처럼,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의 누더기 악당, 개전의 정이 안 보이는 파롤이 지옥으로 떨어질지, 아닐지는 직접 읽어보고 알아내시면 좋겠다.<br>&nbsp; 셰익스피어라면 고전 시대의 가장 훌륭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알려져, 정말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아도 대표작 몇 편의 스토리는 각종 영상 컨텐츠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작가의 책을 읽어보려 하지 않는 독자가 많은 편이다. &lt;로미오와 줄리엣&gt;, &lt;베니스의 상인&gt;을 정말로 책으로 읽어본 독자는 별로 없을 걸? 그러나 내용을 모르는 중졸 이상 우리나라 시민들도 별로 없을 걸? 이런 식이다. &lt;로미오…&gt;, &lt;베니스…&gt;에서 진보한 독자 군群도 마찬가지로 두 작품의 자리에 &lt;햄릿&gt;, &lt;리어왕&gt;, &lt;맥베스&gt;, &lt;오셀로&gt;를 가져다 놓으면 비슷할 것이고. 하물며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을 읽어본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서야 이 작품을 읽어보았다.&nbsp; 다만 다른 건, 사극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스토리조차 거의 알지 못했던 작품이라는 점. 그랬으니 책을 읽으며 종종 놀랄 수밖에.&nbsp; 뭐,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가끔 외설적인 장면이나 단어가 출몰하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는 왕립극장에서 엘리자베스1세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 처녀왕이 공연을 즐거이 보고 “잉글랜드의 셰익스피어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을까, 하는 게 의심스러웠을 만큼, 지금 시각으로는 껌이지만, 1603년에 여왕이 엇다 잘했다, 칭찬 한 마디 했을까? 뭐 그런 장면도 들어 있다는 것이지, 그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은 아니다.<br>&nbsp; 사랑 이야기.&nbsp; 루시용의 백작 가문에는 가히 화타華陀는 아닐지언정, 길평吉平 정도의 주치의가 있었는데, 아무리 높은 의술을 가지고 있어도 세월 이기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 나이가 들어 자기 갈 길 갔다. 이 의사한테 딸이 하나 있었으니, 누구냐 하면 이름이 헬레나. 무서운 이름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바로 그 여인은 아니고 그냥 같은 이름을 지녔다. 이 의사가 루시용 가문과 하도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죽어가면서 백작부인에게 자기 딸을 키워달라고 부탁했고, 부인이 아름다운 헬레나를 기꺼이 맡아, 정말로 자기 딸처럼 키우고 있었다.&nbsp; 죽은 백작의 아들 버트럼이 이제 젊은 백작이 되어 병이 깊은 왕을 알현하기 위하여 파리로 간다. 문제는 연극이니까, 헬레나는 당연히 주위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 버트럼을 연모하다가 속으로 진짜 사랑의 꿈을 꾸고 있었던 반면에, 버트럼은 그깟 의사의 딸, 당시만 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가끔 이발사를 겸하는 중인 계급이었을 뿐, 신분의 차이는 헬레나의 아름다움과 조신한 행동, 착한 마음씨 같은 것을 대폭 할인해서 보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버트럼 기준으로 헬레나를 보면 볼품없는 촌년 그 자체였다.&nbsp; 오히려 헬레나의 가치를 알아본 이는 백작 부인. 부인은 기꺼이 자기 아들 버트럼을 헬레나한테 장가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nbsp; 이런 와중에 버트럼이 파리를 향해 떠났고, 때를 맞추어 왕은 병이 깊어 아직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모든 궁정의사들이 냉정히 판단한 결과 그저 최선을 다해 고통 없는 죽음을 기다리시라, 하는 조언을 할 뿐이었다. 의사 한두 명이 그러는 게 아니고 모든 의사가 똑같이 말하니 환자인 프랑스 왕 역시 자기가 당연히 죽어야 할 처지에 당한 줄 알고 있었다. 증세가 중한 피부 궤양. 지금 같으면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 주사 몇 방이면 금세 치료할 수 있는 병변이었는데 그걸 하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터.&nbsp; 여기에 아름다운 헬레나가 뜬다. 아버지가 의사질을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몇 가지 특효약과 처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가운데 제일 확실하게 알려준 처방이 바로 지금 왕이 앓고 있는 병.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느냐고? 희극에 못 이루어지는 일이 뭐가 있는 데? 그리하여 헬레나는 백작부인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왕의 병을 고치려 버트럼이 간 파리의 왕궁으로 쫄랑쫄랑 따라가기에 이른다. 각기 다른 마차를 타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둔 채로.<br>&nbsp; 왕을 만난 젊은 루시용의 백작 버트럼은 무공을 올리기 위하여 피렌체 전투에 참전하려 한다. 바로 이때 헬레나가 소개장을 들고 왕을 만나니, 왕조차 네가 루시용 백작 가문의 전설적인 명의의 딸이라고? 하며 환대하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기꺼이 헬레나의 처방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왕은 완치되고, 헬레나한테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하나만 말해 보아라, 했겠다.&nbsp; 헬레나 역시 “기초 극작법 ABC” 3장 5절에 나오는 대로, “루시용 백작한테 시집가고 시포요.” 수줍게 소원을 말하니, 왕은 왕의 권한으로 자기가 직접 헬레나의 지참금을 보태 루시용 백작과 즉시 결혼을 명령한다. 결혼도 명령을 받아 하느냐고? 그럼. 원래 귀족들이 그렇다. 걔네들의 결혼은 거의 다 정략결혼. 절대 사랑을 매개로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주례는 가톨릭 붉은 제복을 입은 추기경쯤이 했겠지만 득달같이 식을 올려 그날로 당장 첫날밤을 지내야 했을 걸?&nbsp; 천만의 말씀. 평소 헬레나를 호환, 마마로 알고 있던 버트럼은 신방에 들기도 전에, 새신부한테 키스 한 번도 안 해주고 피렌체 전장으로 도망쳐 버리면서 아내 헬레나에게 편지만 한 쪼가리 남겼으니 이렇게 쓰여 있구나.&nbsp; “당신이 내 손가락의 이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당신 몸에서 내 아이를 낳아 내게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때 날 남편이라고 불러도 좋소. 하지만 그때는 결코 오지 않을 거요.”&nbsp; 그리고 노 백작부인한테도 편지 한 장을 남겼으니,&nbsp; “아내가 있는 한 프랑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nbsp; 여기까지가 5막 가운데 3막 전반부. 근데 주인공 버트럼은 물론이고 독자까지 모르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왕이 자기 목숨을 살려준 헬레나에게 보답을 하기 위하여, 헬레나의 지참금까지 두둑하게 주었다는 건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왕실이 소유하고, 바로 몇 초 전까지 왕이 직접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프랑스의 국보급 보석을 장인이 초절정의 세금기술로 세팅한 반지도 헬레나한테 주었다는 거. 그건 5막에 가서야 나올 터인데,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면, 바로 젊은 루시용 백작.&nbsp; 결론은, 희극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히 헬레나 입장에서 해피 엔드. 버트럼 입장에서는 그러면 비극? 아니다.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을 희극이라고 내가 말하는 건, 버트럼은 끝내 개과천선, 중인 계급의 딸년에 불과한 아름다운 헬레나의 진면목을 알아채지 못하게 한 선입견을 물리치고, 헬레나의 진가를 알아보아 정식 아내로 받아들여, 진짜로 그렇게 되었는지, 살다가 별의 별 지랄을 다 했는지는 몰라도, 한 평생 부부로 살기로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nbsp; 희극을 더 재미있게 하는 악당이 한 명 등장한다고 했지? 버트럼 백작의 수하로 백작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의 겁 많음과 거짓말과, 젊은 백작에게 끊임없이 아가씨들, 기왕이면 그것도 숫처녀 아가씨들만 조달해주는 크나큰 사명을 띠고 함께 전장에 나간 파롤. 심지어 헬레나한테도 껄떡대던 늙은이. 이 악당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독후감 끝내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0/cover150/k91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00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에잇, 콱 버리고 말았다 -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7050</link><pubDate>Sun, 20 Sep 2026 1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7050</guid><description><![CDATA[.<br>&nbsp; 두 주일 만에 또 버렸다.&nbsp;&nbsp; 명작도 꽤 들어 있다. 그러면 뭐해. 앞으로 안 읽을 거 같은 책, 미련두지 않았다. 제일 아래 사진의 오른쪽 제일 밑에 깔린 책, 패트릭 화이트가 쓴 &lt;인간의 나무&gt;는 사고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읽지도 않았으면서 버렸다. 활자가 너무 작아 읽기에 버겁다. 어느 새 나의 세월이 이렇게 됐다. 저 오래 전, 글자가 보이지 않아 책을 못 읽겠다는 정여사의 말씀이 그저 하는 얘긴 줄 알았는데, 웃기다. 사람 사는 일이지. 자기는 절대 그렇게 늙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랄까 확신으로 차 있던 시절.&nbsp;&nbsp; &lt;홍루몽&gt;도 &lt;봉신연의&gt;도 버렸다. 플라톤, 그르니예도 오늘 아침에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던져 넣었다. 어찌 마음이 좋을 수 있었겠나. 아깝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도 확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속 하나는 시원하다.&nbsp; 아직도 간행하고 있는 고전문학 시리즈의 책들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창비 세계문학전집이 제대로 걸렸다. 이 시리즈에서 몇 권이나 더 버려질 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제법 남았다. 절대로 안 버릴 창비 시리즈는 알베르 코엔의 &lt;주군의 여인&gt;, 헤르만 브로흐 &lt;현혹&gt;, 요제프 로트 &lt;라데츠키 행진곡&gt;, 토머스 핀천 &lt;바인랜드&gt;, 표도르 솔로구프 &lt;허접한 악마&gt; 등등.&nbsp;&nbsp;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사부작은 하다못해 당근에라도 내 놓으면 빵이라도 좀 사먹을 수 있을 터인데 귀찮아 그냥 던졌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lt;혹스무어&gt;와 &lt;플라톤의 반란&gt;만 남겨 놓았다. 차페크도 남아나지 않았는데 다른 작가들이야 말 해 뭐하겠는가.&nbsp;&nbsp; 살면서 욕심이 너무 과했다. 이럴 필요 없었건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20/pimg_63925508367317665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705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손으로 하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 [손을 찬양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3160</link><pubDate>Fri, 18 Sep 2026 05: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31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917X&TPaperId=175231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5/59/coveroff/893744917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917X&TPaperId=175231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손을 찬양하다</a><br/>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임도울 옮김 / 민음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헤수스 카라스코는 1972년 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 주의 가장 큰 도시 바다호스 시 아래 올리벤사에서 태어났다. 카라스코가 쓴 책에 의하면 올리벤사가 시골지역이어서 본인도 어린 시절에 닭한테 모이를 준다든지, 짚을 나르는 일 등의 농사일을 도운 기억이 남았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청년이 되어 체육교사, 포도 수확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2년에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최종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에 정착한 것 같다. 2005년에,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세비아로 이주하여 적어도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정보에는 이이의 세번째 책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lt;손을 찬양하다&gt;는 네번째 책으로 2024년 2월에 스페인의 유수 문학상이라는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상을 받았다고 책갈피에 쓰여 있다. 비블리오테카? 흠. 어감이, 비블리오 패혈증하고 비슷해서 어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책가게 알라딘이 하도 오랫동안 이 책이 나하고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거듭하는 바람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도서관 자체에서 구입 예정이 있다고 반려되었던 책이다. 근데 시내 다른 도서관에 먼저 들어와 상호대차 신청해서 먼저 읽고 반납하려니 동네 도서관 신간코너에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br>헤수스 카라스코<br><br>&nbsp; 독후감 본문을 쓰기 전에 미리 밝힐 것이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010년 경부터 거의 10년간 버려진 집을 그의 처남 후안루와 함께 수리, 보수하면서 일종의 별장 겸 셸터 비슷하게 사용한 기록이라는 점. 화자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누구나 헤수스 카라스코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아내 아나이스, 두 딸 마리와, 알투디투에서 베르타로 개명하는 둘째 딸의 이름 모두 가명이라. 아내와 아이들은 카라스코가 쓰는 소설 &lt;손을 찬양하다&gt;에 나오는 것은 동의했지만 진짜 이름을 밝히는 건 반대하여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손위 처남 후안루 역시 가명일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 출연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름을 밝혀야 하는 배역 모두 가명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초두에 밝힌다. 자기 기억에 의하여 쓴 작품이기는 하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어 변형되는 것이라서 50퍼센트 정도만 사실일 것이고 나머지 반은 사실 부근에 있거나 자기가 잘못 들은 내용일 수 있다는 거.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은 스토리에 적당하게 자신이 창작해 넣었다는 것도 고백했다.&nbsp; 소설 초입에 쓰인 여기까지 내용을 읽자마자 책을 탁, 덮었어야 마땅했는데, 이틀씩이나 소비해가며 꾸역꾸역 다 읽은 게 아까운 생각이 밀려든다.&nbsp; 작가는 무지하게 낡은 집, 거의 10년 이상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처남 후안루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감당하기 벅찬 수선이나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수선공, 베관공, 전기공 등 업자를 고용해 직접 자기들 손으로 살기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불편하지는 않게 살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자존감, 만족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nbsp; 직접 자기 손으로 못을 펴고 나무 판자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망치, 아마도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써온 망치를 두드려 나무와 나무, 나무와 벽을 고정시키는 일을 한다. 크고 무거운 용접기와 전압, 볼트가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용접기만큼 무거운 변압기까지 가져와야 하는 불편 속에서도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으로 철판에 구멍을 숭숭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햇빛 가리개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돌보는 이 없어 굵어지기만 하고 열매를 매달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직접 쳐준 다음 해부터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포도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가져와 책도 읽고, 노트북을 올려 자판 두드리는 일, 작업도 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줄 수도 있고, 음식도 만들 수 있게 했다.&nbsp; 허벅지까지 빽빽하던 잡초도 모두 손과 삽, 호미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다 제거한 후에 목적상 필요한 화초를 심어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보기 괜찮은 정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딸들에게 라틴어 학명을 가르쳐주고 학명을 외웠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지만 그런 일은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이고, 기억하는 시간도 극히 짧은 것 같다.&nbsp; 이렇게 지금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전업 작가가 되었어도 땅과 가축과 집이라는 흙, 나무, 철제,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가설체를 직접 손을 사용하여 계속 인간이 살 수 있는 안식처, 쉼터, 그것도 아니라면 자연의 공습을 막아낼 수 있는 피난처 정도로는 만들어가는 일, 그걸 찬양하는 이야기이다.<br>&nbsp; 2010년에 화자의 아내 아나이스의 오빠 후안루는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친구 이그나시오와 함께 말라가 해변 앞바다에서 세비야까지 항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도가 거칠어져 요트 주인 이그나시오가 항해 중단을 선언하고 인근 정박지로 배를 끌고 가 묶었던 모양. 거기서 차를 빌어 세비야로 가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오래 전에 투자목적으로 매입해둔 집이 있으니 불편하나마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새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깜깜한 밤에 처음 도착한 곳. 오래된 집과 인접한 36헥타아르 넓이의 초지. 이그나시오가 공격적 투자를 감행해 휴가용 아파트와 초지 안에 고급 방갈로를 몇 채 지으려 했다가, 두 해 전인 2008년에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계획을 무기 연기해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고. 후안루는 프로젝트가 중단된 동안만 자신이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집이란 것이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빠르게 폭삭 무너지는 것이라 이그나시오도 흔쾌하게 요구를 받아들였다.&nbsp; 그리하여 ‘우리’ 즉 화자와 아내 아나이스와, 마리와 처음엔 알투디투였다가 베르타가 될 두 딸도 꽤 오랜 세월 주말마다 부모를 따라 넓은 초지와 낡은 집에서 마치 시골 소녀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자는 곧바로 책을 한 권 구상한다. 주제는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책.”<br>&nbsp; 집이 있으면, 아무리 외딴 집이라 하더라도 이웃이 생긴다. 이 집이 길의 제일 끝까지 가야 바라보이는 막다른 집이고 곧바로 초지와 산으로 연결되는 외진 곳이지만 딱 이들끼리만 살 수는 없는 법. 첫 날에 한 남자가 고삐를 쥐고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별명이 우스바르나라고 하는데, 머리부터 목까지 죽 이어진 주름진 큰 상처가 흉하게 아문 모습 때문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lt;보물선&gt;에 출연하는 선장 빌리 본즈를 닮아 본즈라고 불릴 예정이다.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본즈는 주로 말과 나귀 같은 큰 동물 전문으로 코르크 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을 하다 전기톱 사고로 경정맥이 절단된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본즈의 아버지가 끝까지 훌륭하게 지혈을 해주어 목숨을 건진 사나이이다. 이이는 십년 후, 낡은 집이 결국 부동산 업자에 의하여 개발될 때까지 이 가족들과 긴 인연을 이어간다.&nbsp; 또 옆집에는 할머니 라파엘라, 할아버지 마누엘 부부가 살면서 온화하고 정 많고, 부드럽지만 서로의 자유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한 8년 정도 지나면 친절한 라파엘라 할머니는 세상을 뜰 예정이지만 화자의 가족들은 세월이 지나도 이 노부부와의 인연을 잊지 못할 듯. 이렇게 사는 이야기.<br>&nbsp; 작품의 주제가 엄연히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독자 내가 해본 세상 살면서 제일 아름답고, 중요하고, 조심스러우며 행복했던 손으로 하는 일은, “자는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이었다. 두번째가 웬수 같은 아내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일이었으며, 세번째 역시 아내의 몸을 만지는 일이었다. 이 세가지는 나 혼자 살면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할, 제일 중요한 작은 공동체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작고, 작고, 작지만 가장 행복한 일이었으리.&nbsp; 손과 도구와 널린 재료를 써서 가족의 피난처, 휴식처, 놀이터를 만들고, 이웃과 관계를 구축하며, 함께 살 다른 생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찌 손을 찬양하는 항목에 아이의 손톱을 잘라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는, 하다못해 샤워하는 배우자의 욕실에 들어가 등을 밀어주는 행위가 빠졌는지, 나는 많이 아쉬웠다. 물론 책을 일정분량 이상으로 뽑기 위하여 픽션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수다한 수다를 읽어주는 것도 예상 외로 지루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종의 지식, 경험을 이용해 경구를 만들려 애쓰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것도 여기저기에 자주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이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숱하게 의심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그래도 결국 화자가 둘이나 되는 딸아이의 손톱을 깎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하는 일이라서 그랬을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5/59/cover150/893744917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5590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여장 게이의 희생에 대한 송가 - [두려워요, 투우사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1181</link><pubDate>Thu, 17 Sep 2026 04: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11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187&TPaperId=175211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44/coveroff/89324761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187&TPaperId=175211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려워요, 투우사여</a><br/>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1952년 칠레 산티아고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제빵사 페드로 마르도네스와 비올레타 레메벨 사이의 아들로 난 페드로 세군도 마드로네스 레메벨은, 칠레의 작가, 연대기 작가, 행위예술가 또는 간단히 연기자, LGBTQ+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이이의 나이 30대 중후반의 한 시절, 아버지의 성인 마드로네스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 레메벨을 자기 이름으로 선택했으니, 이것은 자신이 남성이기는 하되 성정체성 상 여성성을 좇는 성향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즉 몸은 남성이되 여성, 이 책의 주인공 ‘로카’처럼 ‘앞집 미친년’처럼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nbsp; 대개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는 시기가 2차 성징이 발현되는 때라고 한다. 스페인어 판 위키피디아에는 나오지 않는데, 영어판 위키를 보면, 산티아고 산업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적성하고 무지하게 맞지 않는 금속가공을 일컫는 단조와 목공 가구를 배울 때 드러나기 시작한 성 정체성 때문에 작지 않은 고생을 했을 것 같다. 기능을 포기하고 정규 고등학교로 옮겨 하여튼 고교 졸업장은 땄다.&nbsp; 이후 1970년에 칠레대학교 부설 교육학연구소에 입학해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78년에 졸업, 79년부터 산티아고 외곽 두 개의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4년 동안 지나다가, 1980년대 초반 가톨릭 국가의 교육자들이 남자 동성애 가운데 충실한 바텀이었던 레메벨의 외모를 트집잡아 두 학교 모두에서 해고당하고 다시는 교육계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그리고는 문학 워크숍 등 예술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레메벨로 바꾸고. 울고 싶은데 학교가 대신 따귀 한 대 때려준 거겠지.&nbsp; 이때부터 레메벨은 본격적으로 문화 사업에 뛰어든다. 글도 쓰고, 공연도 하고, 글과 공연을 위한 집단에도 참여하며, 짙은 화장과 여장을 하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내 추측이다. 믿지는 마시라. 이이가 지지하는 좌파 집단 속에서도 “좌파 정치권 내 동성애를 혐오, 비판하는 세력”을 향한 선언문, “Manifest, I Speak for My Difference”를 이야기했다고 칠레판 위키에 나온다.&nbsp; 이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 당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정치가 말기를 향해 가던 시기로 레메벨 역시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확실히 공산주의자에 가깝지만,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분위기에서는 성소수자를 반기지 않았던지, 공산당에 가입은 하지 않은, 이른바 정치적 프리랜서. 이러저러한 여러 활동을 했음에도 이이의 첫 소설 작품이 나온 시점이, 이미 피노체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10년이 지나버린 2001년에 출간한 &lt;두려워요, 투우사여&gt;이다. 1986년 9월에 있었던 피오체트 암살 미수 사건을 앞뒤로 40대 여장 게이와 20대 남성 대학생 사이의 연애 혹은 사랑, 아니면 오해. 즉 40대 게이 ‘앞집 미친년’ 로카는 틀림없이 스무 살 잘 생긴 남자 대학생 카를로스를 사랑해서 무엇이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할 수 있지만, 카를로스가 정말로 로카를 사랑했는지, 그저 이용만 하려다가 인정에 끌려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과 가까운)좋은 감정까지 갔던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br>&nbsp; 무대는 산티아고의 보통 시민이 모여 사는 살림집, 1986년 봄. 남반구 칠레에서 봄이라고 함은 8월 말부터 9월을 건너 10월까지. 작품에서 콕 짚으면 9월초이다. 작중 주인공, 별호를 “앞집 미친년”이라 하는 마흔 언저리 늙은 게이 로카는 이 건물의 3층과 비둘기집 같은 다락방에 산다. 당연히 혼자 살기에 넉넉한 3층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살며, 다락방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난간 하나만 덜렁 달려 있다. 며칠 후부터 이 다락방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처음엔 전혀 몰랐다.&nbsp; 우리의 늙은 게이 로카. 아버지는 로카더러, 물론 진짜 이름은 로카가 아니었지만, 하여튼 엄마가 아버지를 벌주려고 남기고 간 게이 골칫덩이라고 했다. 여차하여 마음에 조금만 안 들어도 ‘사내답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두드려 팼고, 다른 아이들과 억지로 싸움을 붙였다. 학교에서도 로카한테 신경정신과 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아버지더러 좀 오라고 했지만, 그는 콧방퀴만 뀔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대만 가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입대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군대에 갔느냐고? 아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거길 어떻게 가. 그냥 집에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nbsp; 이후 산티아고로 흘러 들어왔다. 수도에서의 삶은 여느 다른 나라의 큰 도시에서 사는 외톨이 게이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주로 몸을 팔아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했는데, 정말로 운이 좋아 당시 벌써 나이가 많아 뒷방을 차지하고 앉은 흑인 게이 라나의 눈에 띄어 같은 집에 살았다. 여기서 라나한테 손수건, 식탁보, 침대보, 슬립, 리본 등에 자수를 넣은 법을 배우기 시작해 실력이 일취월장, 라나의 비싼 손님이 저절로 로카한테 주문을 넣게 되기에 이른다. 둘의 사이 역시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사달이 나 폭발했으며, 얻어 터지고 걷어 채이고, 발로 밟히는 폭행을 당한 로카는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사건 하나로 엄마나 다름없는 라나와 완전히 척이 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교통을 하면서도 예전 같은 사이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금 로카는 막강한 군부 실력자의 아내로부터 식탁보, 침대보 같이 비싸고, 화려한 자수를 주문 받아 적어도 전혀 팍팍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로카에게 남은 건 추억들. 지나간 연인들과,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하던 드래퀸 쇼, 노랗고 커다란 모자, 그리고 고양이 눈 같은 선글래스.<br>&nbsp; 전문 자수 디자이너. 앞집 미친년 로카의 직업이다. 대통령궁하고는 거래하지 않지만 대통령을 직접 초대하여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 수 있는 장군의 아내들이 수공 요금을 한 푼도 깎지 않고 비싼 가격으로 주문을 하는 침모. 침모針母? 아무리 보수적인 칠레공화국이라 해도1980년대에 침모?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장군의 아내들은 남편의 직급보다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안 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고 믿지만.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받아 마음은 넉넉하지만 식탁보나 침대보를 납품하러 갈 때는 정문으로 가지 못하고 부엌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으며, 미리 시간 약속을 하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만일 납품하러 간 시간에 손님이 와 있으면 몇 시간이 되든지 그 손님 갈 때까지는 하는 일 없어 부엌에서 말라빠진 빵 쪼가리를 얻어 씹으며 멍때려야 한다. 그러니 침모지 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여장 게이라면 그게 정말 사람으로 보이긴 했겠어?&nbsp;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장군의 아내도 알고 보면 외로울 거고, 현직 내부무장관도 외로울 거야. 10대 초중반에 집에서 뛰쳐나와 하늘 아래 찾을 피붙이 하나 없는 여장 게이는 이 중에서도 제일 외로운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을 듯.&nbsp; 그런데 하필이면 시절도 잘 못 만나, 86년 봄, 피노체트가 아옌데를 사살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1973년 9월의 쿠데타가 있는지 어언 13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칠레의 지리적 상황, 안데스 산맥을 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망명할 수 있는 길고 긴 국경선을 지닌 나라답게, 벌써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피노체트 암살과 내전 발발 등 폭력 행위를 위하여 정규군만큼은 아니지만 무장도 갖추기에 이르렀다. 도시는 날마다 시위와, 삐라와, 방화와 정전, 화염병, 최루탄, 물대포, 기타 등등 1980년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으로 더할 나위없이 흉흉했다.&nbsp; 이런 정치상황에 전혀 관계없이 지나간 옛노래를 즐기는, 사실상 무명씨들. 이 가운데 최고의 무명씨들 가운데 게이, 이중에도 짙게 화장하고 드레스와 하이힐을 하고 다니는 여장 게이가 있었다. 앞집 미친년 로카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식탁보에 화려한 수를 놓다가 해가 저물기 시작해 눈이 침침해지면 즐거이 동네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지방 토속주나 가벼운 칵테일 같은 걸 즐겼겠지. 늘 그렇듯이 이미 익숙한 바텐더와 동료들. 원래 앞집 미친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오랜 세월동안 그래도 정이 생겨 더 없이 친근해진 단골 사내들. 아무리 남자에 환장한 여장 게이일지언정, 이들의 몸을 탐해본 적 없는 로카. 그러니 더 친해질 여유가 있었을 터.&nbsp; 하지만 두 달 전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미남자. 카를로스. 로카와 카를로스는 급격하게 친해진다. 물론 카를로스는 안다. 로카가 게이임을. 그래도 로카에게 착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다. 그리하여 그녀 로카는 사랑에 빠져 버렸고,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사랑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nbsp; 이후부터 카를로스는 로카의 다락방에 자기 짐, 종이 상자. 판매금지 서적을 말한다는 정도는 로카도 알아듣는 금서들, 순문학 작품이지만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골치 아픈 책들을 담은 박스를 몇 개 가져다 두는데 동의한다. 로카는 상자 안에 무엇이, 어떤 책이 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라서. 그런데 박스가 나날이 늘어나, 어떻게 보관할까 궁리하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고 보를 씌워 협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박스와 박스 위에 널빤지를 대 선반으로 쓰기도 한다.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살림하나는 끝내준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이젠 통행금지 시간 넘어 학교 친구라는 젊은이들이 우그르르 다락방에 몰려 들어가 밤새도록 공부라는 것도 한다. 로카는 아예 누가 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관을 해달라고 가져온 것이 무섭게 생긴 원통형 금속 파이프. 굉장히 가치가 있는 수기 원고 두루마리란다. 뭐 그런가보지.<br>&nbsp; 드디어 다가온 1986년 9월 7일.&nbsp; 피노체트가 휴가지에서 어떤 코스를 택해 산티아고로 진입할 계획인지 미리 알아낸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의 도시 게릴라들은 좁은 도로를 막고 대통령 피노체트와 호송 차량들을 향해 총과 포격을 가한다. 선도차는 포탄을 맞아 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피노체트가 탄 메르세데스는 노련한 운전수의 기술 덕에 좁은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후진하다가 놀라운 솜씨로 360도 회전,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피노체트의 몸에 기스 하나 생기지 않게 만든다. 비록 바지 속에 똥을 싸질렀을지언정.&nbsp; 이제 사태는 심각해진다. 카를로스가 애초에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던 앞집 미친년 로카는, 뭔가가 들어 있던 종이박스를 9월 7일이 되기 며칠 전에 모두 가져 나갔으며, 금속제 원통도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전부 자기한테는 매우 위험해지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nbsp; 정말 그럴까? 그냥 카를로스를 사랑해 그가 안전하기만 하면 나는 그대로 앞집 미친년으로 나머지 인생을 조용하게 살 수 있을까?&nbsp;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곧바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nbsp;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1990년에 다가올 피노체트의 하야와 반정부 민주화 운동의 과정 때문이 아니라, 앞집 미친년 로카의 대사.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엽기발랄하면서, 쓸쓸하고, 체념적이면서도 희망도 얼핏 보이고, 무엇보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눈물겨운 마음 저림이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엿하게 심리 소설이며, 상실을 극복하려는 늙은 여장 게이의 독특한 희생에 대한 송가다.&nbsp; 잘 읽었다. 책 읽는 재미에 홀딱 빠지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책.<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44/cover150/89324761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8444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칠리아의 고민, 마피아 - [올빼미의 낮]</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9207</link><pubDate>Wed, 16 Sep 2026 0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92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53&TPaperId=175192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5/84/coveroff/89374648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53&TPaperId=175192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올빼미의 낮</a><br/>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1921년 시칠리아 라칼무토 출신의 시인, 소설가, 언론인,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 시칠리아의 대표적 시인, 극작가, 소설가라고 알려진 비탈리아노 브란카티를 사사하고 훗날 상원의 공산당 의원이 될 주제페 그라나타에게 프랑스 계몽주의와 미국 문학을 배웠단다. 후에 시집 딱 한 권과 몇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1975년에 공산당원이지만 무소속으로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공산당과 기독교민주당이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에 반대하여 자유주의적 좌파정당인 급진당으로 이적했고, 급진당 소속 시의원도 몇 번 해 자신 것처럼 보인다.&nbsp; 시칠리아 자치구역 안에서 살고, 정치활동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샤샤의 본질은 소설가. 1989년, 6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쉬지 않고 집필 활동을 해 온 소설가로, 오늘 독후감을 쓰는 &lt;올빼미의 낮&gt;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전직 가운데 하나가 언론인이라 이이의 작풍도 당연히 리얼리즘에 입각한 시칠리아의 현실 조명이었을 것이고, &lt;올빼미의 낮&gt; 역시 1950년대 말 시칠리아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였던 마피아 조직에 관한 작품이다.&nbsp; 말이 마피아지, 당시에 한갓 언론인이자 소설가 신분으로 시칠리아는 물론이고 로마를 위시한 이탈리아의 많은 지역과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 등에 막강한 조직을 갖춘 마피아에 관하여 함부로 작품을 썼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젊은 시절에 가르침을 준 주제페 그라나타의 원론적 공산주의와 순수 저널리즘의 가치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완전히 짐작이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니 아니더라도 좀 봐 주시라.<br>샤샤의 동상.보도 한 가운데 세워 놓았네?<br>&nbsp; 작품은 S.의(이후 편의상 S시라고 하자)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라는 이름의 건설협동조합장이 일주일에 한 번 팔레르모로 가는 06시 30분에 출발하는 아침 첫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 뛰어? 당연히 늦었으니까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벌써 버스는 S시에서 팔레르모 또는 더 큰 도시로 농사 지은 것이나 닭 또는 오리, 기타 등등 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을 든 채 적당한 냄새를 풍기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태우고 딱 출발한 때였다. 허겁지겁 버스를 쫓아 뛰어가는 콜라스베르나 선생. 나는 이이의 이름을 콜라스-베르나, 이렇게 읽었지만 조금 뒤에 보면 콜라-스베-르나, 이렇게 읽는 게 더 편하다고 친절한 출연자 가운데 한 명이 동아시아 독자에게 말해준다. 하여간 버스의 차장이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가 뛰어오는 걸 보고 급하게 운전수에게 차를 멈추라고 하는 순간,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광장의 한 구석에 놓인 어두운 짐이랄까, 무더기 사이에서 광장을 울리는 총소리가 꽝, 꽝 두 번 들렸고, 바로 즉시 콜라스베르나가 든 서류가방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이어 콜라스베르나 조합장의 머리가 서류가방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노련한 저격수가 쏜 총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 것. 이때 광경을 직접 목격한 S시 주민들은 두 손을 모아 이렇게 말했을까? 삼가 고인의 애도를 빕니다. 편히 쉬시기를.&nbsp; 왜 짓궂게 목격자들의 애도를 운운하느냐 하면, 사건 발생 즉시 현장에 도착한 군경찰이 일단 승객들을 죄다 버스에서 내리게 했지만 승객 외의 목격자들을 불러모으는 동안 모든 승객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시칠리아에서는 그래야 오래 산다는 걸 뭐. 봐도 본 게 없고, 들어도 들은 게 없으며, 할 말도 결코 목젖을 넘어 입술 밖으로 나오지 않는 놀라운 기술을 익혀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덜한 사람들.<br>&nbsp; 죽은 이가 속한 ‘산타 파라’ 작은 규모의 건설협동조합. 십여 년 전에 형제 둘과 벽돌공 네댓 명이 뜻을 모아 설립해 명목상 측량사가 현장책임자이지만 실제로는 콜라스베르나가 공사를 지휘하고 회계까지 도맡아 처리했던 알찬 조합이라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부실하지 않은 시공으로 이름값을 높였다. 도로를 깔면 무거운 짐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임에도 몇 년 지나도 여전히 금 하나 가지 않아 보수공사 한 번 하지 않은 공사.&nbsp;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경찰은 이탈리아 북부의 파르마 출신인 대위를 보낸다. 이외에 경위와 자잘한 업무를 하는 스포시토 군경관. 대위는 먼저 산타 파라의 조합원들을 소환한다. 대기실에 가 보니 불안한 표정의 조합원들과 신고를 하러 온 여성 한 명이 있다. 여성은 정원의 가지치기, 즉 전정사의 아내. 지참금과 남편의 성실성으로 비교적 잘 사는 축에 속하는 좋은 가정의 안 주인인데, 전정사가 그저께 일을 나라 돌아오지 않는다고, 행방불명 신고를 하러 왔다. 이 남자, 죽었다. 콜라스베르나를 살해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범인들과 함께 이동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암석 지대까지 끌려가 죽었고, 시신마저 깊숙하게 숨겨버린 거다. 물론 나중에 그렇게 밝혀진다.<br>&nbsp; 군경찰의 대위는 이곳 현지 수사관들, 예를 들어 경위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대위는 S,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관계자와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내 탐문을 해 보았지만 아무도 사건에 대해 본 것과 들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이상한 일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 익명으로 편지를 쓰려 하는 것 같았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벌써 다섯 통의 편지를 받은 것. 그중 하나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흔하고 널리 이해가 되는 살인 형식으로, 피살자는 질투 때문에 살해되었다며 질투에 눈이 먼 남자 이름까지 알려준 것도 있었다. 작품 속에서도 대표적 유형으로 마스카니의 &lt;카발레리아나 루스티카나&gt;를 언급한다. 하지만 대위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직업에 유념한다.&nbsp; ‘산타 파라’의 일 처리 방식. 그들도 다른 건축조합과 마찬가지로 경쟁업체가 있고, 경쟁업체들과 함께 사업 입찰에 참가하여야 하며, 자재와 장비를 적시에 조달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재와 장비는 공사가 진행하는 동안 계속 현장에 쌓아 두고 퇴근한다. 간혹 인부들이 현장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밤이 깊으면 이들도 잔다. 이럴 때, 절대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에게 현장과 시설, 장비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도난이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음을 나쁘게 쓴 경쟁업체가 밤새 불을 싸지르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만일 보호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음에도, 그걸 거절할 정도로 어리석었다면 어떤 일이든지 하나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것이다.&nbsp; 대위는 피살자의 친형 주제페 콜라스베르나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우리는 전혀 아는 게 없다.”라는 대답을 받았을 뿐이다. 이렇게 보호해주는 집단. 밤에 잠을 전혀 자지 않는 무리, 올빼미들이 산타 파라 건설협동조합이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하나가 아닐 터이다. 수의계약을 성사시켜줄 수도 있고, 공공사업 입찰에 참여시켜줄 수도 있으며, 공사가 끝난 후에도 준공검사를 통과할 때 그들의 로비로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험한 인부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수도 있다. 쉬운 말로 백골단을 동원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올빼미들이 관리하는 아홉 개의 업체가 일종의 컨소시엄을 형성했다면, 참여하지 않고 견디는 열번째 업체는 희생제물인 검은 양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존재 자체가 도전이고 나쁜 본보기일 뿐이니. 검은 양은 반드시 컨소시엄에 들어오게 하거나, 영구 퇴출시켜야 할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밤에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올빼미들의 집단이 낮에도 활동하기 시작해, 낮이 시작하는 아침 6시 30분, 첫차로 주도 팔레르모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를 따라 헐레벌떡 뛰어가던 검은 양의 실질적 관리자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를 향해 총열을 잘라낸 산탄총 루파리에서 발사한 총알 두 방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해버린 것이다.&nbsp; 대위는 이렇게 수사의 가닥을 잡았다. 남은 일은 낮에 활동을 하기 시작한 “밤에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자들” 즉 마피아의 최상부까지 헤집어 뿌리를 뽑고 싶은 것. 그러나 1950년대 말의 시칠리아 마피아는 시칠리아는 물론이고 로마의 정치권까지 이미 뿌리를 굳게 묻고 있었으니, 과연 한갓 군경찰의 대위에 불과한 수사관과 이이의 친구이기도 한 검사 한 명의 도움을 받아 낮에 나온 올빼미를 이겨낼 수 있을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5/84/cover150/89374648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5847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추천할 만한 -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7139</link><pubDate>Tue, 15 Sep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71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217&TPaperId=175171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74/coveroff/k1221392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217&TPaperId=175171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a><br/>브리기테 슈바이거 지음, 박광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작가 브리기테 슈바이거의 내력을 읽어보니 &lt;소금은 왜 바다에 있지&gt;와 딱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부분이 섞여 있다. 이 책이 슈바이거의 첫번째 작품이어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포함시켰겠지. 브리기테 슈바이거는 1949년에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슈타트에서 출생했다. 우리가 아는 오스트리아의 대도시 빈과 짤스부르크 사이에 있는데, 직선 코스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두 도시와 거의 비슷하게 떨어진 곳이다.&nbsp; 책의 내용과 비슷한 건, 아버지가 소도시의 유지였던 의사라는 것과,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독문학, 영문학 등을 공부했지만 다음 해인 1968년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때려 치웠고, 4년 만에 이혼했다는 거. &lt;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gt;는 주인공 화자인 ‘나’의 결혼 당시부터 이혼이 종결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nbsp; 실제의 슈바이거는 1968년부터 72년까지 스페인 출신의 남편을 따라 마요르카 섬과 마드리드에서 살다가 73년 이혼하자마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반면에, 작품 속의 ‘나’는 결혼 이후에 줄곧 린츠에서 살다 이혼한다. 린츠? 출신지인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주도이자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이며,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아 모차르트가 자신의 서른여섯 번째 교향곡의 표제를 붙인 도시.&nbsp; 나는 린츠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 린츠를 발음하면 어딘지 밝은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좀 산뜻한 작품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으나, 슈바이거는 생전에 책 속의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쪽으로 질병이 있어서 2010년, 61세의 나이에 빈의 도나우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단다. 투신 자살로 판정해 종결한 걸로 보인다. 책에서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 확실하고,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을 권유할 정도는 아닌 약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br>&nbsp; ‘나’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란 건 위에서 이야기했다. 첫 장면을 결혼식 날 아침에 시작한다.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나’. 이렇게 4인 가족. 의사이자 동네 유지인 아버지는 어제 이발소에 가서 이발도 하고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이 벌써 식장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지 한참이건만 엄마는 오래 시간을 끌면서 꽉 끼는 드레스의 지퍼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잠글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실리 화산에 관광을 다녀온 이후에 관절염이 심해져 이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비스듬히 발을 디뎌야 한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새신부인 ‘나’는 여전히 2층 ‘나’의 방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침대에 발랑 자빠져버렸다.&nbsp; 남편 롤프. 아버지는 롤프가 참하고 괜찮은 녀석이라 하고, 어머니는 폴프를 보면 자랑스럽다는데, 할머니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얌전한 혼인이라고 말한다. 근데, 할머니의 삶의 지표인 얌전함과, 이 ‘얌전한 혼인’은 얌전한 결혼식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얌전한 ‘결혼생활’을 말하는 걸까?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생각해보면 좀 헛갈린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나’는 확실하게 얌전한 결혼식에 임하려 한다. 놀랍게도 1960년대 후반에 벌써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남편이 될 롤프 외에는 성교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쪽 방면으로만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가 바라는 대로 얌전한 신부인 건 맞는 말이다.&nbsp; 하지만 이 결혼에서 독자가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나’가 결혼식 하는 날 출발할 시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은 상태에서 그냥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는 거. 결혼식장에 가기 싫다는 말이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대부분 인생에 많아야 서너 번 밖에 없을 결혼식날, 웨딩드레스가 혹시라도 구겨질까봐 애달캐달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혼례미사 때 신부神父한테 거짓말을 해버린다. 신부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또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뭐 이런 질문이었겠지, 대답을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예”라고 말해 버렸던 거다. 속마음은 “아니요”였음에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이 거짓말, 십계명을 어긴 거다.<br>&nbsp; 롤프와 ‘나’의 친구 가운데 두 명을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nbsp; 먼저 카를. ‘나’의 부모가 롤프에 대한 평가를 할 당시에 ‘나’가 전하는 부모의 의견을 말했더니 카를은 이렇게 말했다.&nbsp; “너네 부모님하고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결혼을 앞둔 너한테는) 노 코멘트.”&nbsp; 카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인권 관련해서 실제로 지역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예로 들었더니 아이고 이런, 그날 이후부터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있던 일까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직계가족이 생존해 있는 사람의 실명을 거론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다. 카를은 시인. 자주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그러지만 그걸로 끝인 나이 많은 친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있어도 집안 반대가 심해 부부가 되지 못하니 그건 전적으로 카를이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작품이 끝날 때쯤 자진해 알코올 치료 병동에 입원하고, 퇴원 후 2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 애인과 애인 가족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nbsp; 다른 한 명은 알베르트. 예전에 카를이 말하기를, 알베르트야말로 한 교실에 있는 게 창피하지 않은 유일한 친구, 라고 평가했다. ‘나’의 고종사촌, 고모의 딸 힐데와 연애를 했다. 힐데는 TV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그것도 딴따라라고 (1960년대니까) 집안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대신 크지 않은 집과 알베르트를 구입했다. 정말로 알베르트를 “구입했다”라고 슈바이거가 썼다.&nbsp; 그런데 문제는 ‘나’가 롤프보다 알베르트를 훨씬 전부터 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br>&nbsp; 왜 ‘나’가 롤프와 멀어졌을까? 롤프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롤프의 마음이 그런 거란 말은 아니다. 롤프는 꽉 짜인 인생을 사는 인간형이다. 규격이 있으면 규격에 맞춰 자신의 삶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 이것도 나쁜 삶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나’하고는 극적으로 맞지 않는 취향인 걸 너무 늦게 알았겠지.&nbsp; 롤프는 공대를 졸업했다. 1학기를 다니다가 자신이 의학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았지만 끝내 공과대학을 졸업한 걸로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며, 그것도 아쉬워 디플롬 엔지니어 Diplom-Ingenieur학위까지 얻어, 오스트리아의 국책 철강회사에 다닌다. 그러면서 몇 년 후에 어느 직급으로 승진하고, 또다시 몇 년 후에 임원, 중역이 되고 등등의 계획이 다 있다. 하지만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한 날 ‘나’는 괜히 썰렁한 기분이 들어 이제는 화요일 저녁엔 더 이상 그와 잘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니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일 수도.&nbsp; 결혼 전에 어느 날, 롤프의 팬티가 심히 거슬려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 마법이 풀린 순간이었다.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삶이 되고, 더 곰삭아서 정이 되는 거지. 원래 사랑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잖아? 사랑만 파먹고 살 수는 없어 다시 먹고 사는 삶이 이어지는 거고, 시간의 이끼가 부드럽게 껴서 “사랑보다 더 슬픈” 정이 돈독해져 평생 그걸로 사는 거지.&nbsp; 그러나 아직 19세, 너무 젊거나 어렸던 ‘나’는 몰랐다. 스무살이 되고, 스물한 살이 되고 더 나이를 먹어도 롤프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남자일 뿐. 반면에 ‘나’는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한 남자의 살림 도우미, 즉 식모이면서 벌어오는 돈을 사용하는 창녀. 근데 창녀한테는 포주가 있어야 하는 법. 좋다, 포주는 롤프, 네가 해라. ‘나’는 의사가 된 알베르트와 정신없이 외도를 시현하기에 이른다.&nbsp; 이 장면에서 ‘나’가 가사도우미와 창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롤프에게 따지고 드는 일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는 독자가 무척 많아 데뷔작임에도 출간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다는데, 그건 1970년대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까? 내가 읽기로는 그저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망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인 것 같다. 롤프 입장에서는 애초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해 결혼하고, 어쨌거나 돈을 벌어와 복지를 주면서 결혼 초부터 계속 삐걱거린 여자를 만나 이마에 뿔이 돋는 결과만 얻은 남자. 이를 전적으로 주인공 화자 ‘나’의 시각으로 보니까 원래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속 좁은 남자로 보이는 불운한 사람이다. 이이가 정말 불운한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차마 밝힐 수 없어 아쉽다.&nbsp; 작품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그런 소설, 별점을 잘 주어도 셋 정도로 여겼다가, 후반을 읽기 시작했는데, 확 느낄 수 있던 것은 건조하면서도 공감을 전해주는 문장이 매력적이라는 거. 신경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 등등, 명작은 아닐지언정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릴 말씀은, 한 번 읽어보시라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74/cover150/k1221392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69748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한 번 읽고 말 책도, 지금 읽은 것이 인생의 마지막도 아닐, 필생의 책, 책 중의 책 - [일리아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4905</link><pubDate>Mon, 14 Sep 2026 0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149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833575&TPaperId=175149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56/30/coveroff/k92283357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833575&TPaperId=175149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리아스</a><br/>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06월<br/></td></tr></table><br/>.&nbsp; 네 번째 읽는 &lt;일리아스&gt;일 듯하다. 중학생 때 처음 읽은 건 당시 수준으로는 꽤 두꺼운 책으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목동 파리스한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묻는 것부터 시작해 트로이 목마 사건에 이은 멸망까지 망라했으니 호메로스가 아니고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을 소년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물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밤을 꼴딱 세우지는 못해도 늦은 밤까지 책을 들고 앉았던 것이 기억날 정도이니 처음부터 나는 &lt;일리아스&gt;에 폭 빠졌던 것이 틀림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천병희와 유영의 번역서를 거쳐, 지금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방송통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준석의 번역으로 다시 읽었다.&nbsp; 하지만 최근에 읽은 &lt;일리아스&gt;라고 해도 족히 10년은 넘어, 이제 이 책의 스토리는 삼천만의 기본상식이 되었을지언정 사실 정작 읽으려고 하면 무수하게 등장하는 신과 사람과, 특히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지독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터인데, 다행스럽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그리스의 다른 고전, 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해 각종 버전의 트로이 전쟁 전후사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마련해 두어, 이번 이준석의 번역서를 읽으면서는 여간해서 각주를 읽지 않아도 무리가 별로 없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일 수밖에. 이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히려 장면, 단락,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게 되어, 24권 754쪽을 읽는데 사흘 반을 사용했다. 문장마다 이 문장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인물의 어떤 전사, 또는 후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음미할 수 있는 것, 이건 일종의 자잘한 기쁨이었을까?<br>&nbsp; 책을 읽자마자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을 기록한 건, 일개 하찮은 독자에 불과한 내가 서양 문학의 고전 가운데 고전인 위대한 호메로스의 작품을 별 하나라도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창작물, 그리하여 이후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작품의 영혼의 기원이 되어왔던 이야기라는 측면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쟁소설’ 또는 ‘전쟁 서사시’라면, 즉 호메로스라는 이름값을 빼고, 완전히 근현대인 입장에서 작품으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궁리했다는 뜻이다.&nbsp; 도저히 그럴 수는 없지만 &lt;일리아스&gt;에서 신화를 제거하고 오직 인간들이 만드는 피 터지는 전쟁으로 본다면, &lt;일리아스&gt;는 오직 힘세고, 빠르고, 칼과 활을 잘 쏘는 영웅들의 싸움으로 일관한다. 갈등의 가장 큰 축은 그리스 군과 트로이아 군 사이의 다툼에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작은 전투의 전리품이기도 했던 여자 포로를 빼앗아가고 뺏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사이에 있다. 10년을 끌어온 전쟁의 명분 역시 트로이아의 왕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한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다스리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꼬드겨 데려감으로써 그리스 연방에게 수치를 주었다는 거다. 즉 전쟁 발발부터 이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명분으로 시작한다.<br>&nbsp; 여기에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쪽에는 헤라, 포세이돈, 이 막강한 신들을 포함해 아테네와 헤파이스토스가 붙고, 막강한 헤라, 포세이돈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레스 등 A자로 시작하는 신들이 합세한다. 그리고 신들의 신 제우스. 이 양반은 겉으로 보면 트로이아를 슬쩍 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킬레우스의 엄마이자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인 테티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 은근히 그리스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nbsp; 왜 신들을 언급하느냐 하면, 작품 속에서 신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 트로이아 군을 함빡 이끌고 그리스 선단 바로 앞까지 진출해 끝이 휘어진 그리스 배를 향해 횃불을 던지며 화공을 도모하는 트로이아 최고의 영웅 헥토르. 그가 쏟아지는 화살과 창날 속에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선봉에 서서 숱한 그리스의 소영웅들을 도륙낼 수 있었던 건, 전쟁의 신 아레스가 활기를 부어 넣어주었기 때문이고, 부상을 입어 여차하면 마지막 치명적 일격을 당할 순간에는 아폴론이 짙은 안개를 부어 넣어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하는 식으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어가기에 가장 편한 장치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전매특허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하고 비슷하지?&nbsp; 작품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쟁에 나온 파트로클레스의 죽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부여잡고 슬피 울다가 천추의 원수가 된 헥토르를 죽이기 위하여 잠도 안 자고, 밥도 한 그릇 안 먹고, 물이나 포도주 한 잔도 안 마신 상태에서 엄마 테티스 여신이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한테 부탁해 가져온 투구와 갑옷을 떨쳐 입고 죽음을 모르는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 오른다. 근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잠도 안 잔 필멸의 인간이 이런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겠어? 이때 제우스가 등장한다. 모든 신의 아버지 제우스는 전령을 통해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 등의 즙을 짜 아킬레우스의 입에 흘려 넣는다. 그러니 아무리 끼니를 걸러도 사기 충천해 단칼에 트로이아의 영웅들을 도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br>&nbsp; 그런데 이번에 &lt;일리아스&gt;를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던 동아시아의 소설이 있었으니 호메로스보다는 1천8백년 이후 사람인 나관중이 쓴 &lt;삼국지연의&gt;. 월탄 박종화 번역의 &lt;삼국지&gt;를 읽은 것이 우연하게 첫 &lt;일리아스&gt;를 읽은 해 여름방학 때였다. 이후 &lt;삼국지&gt; 번역본도 꽤 읽었다. 최근 번역은 민음사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다가 지금은 판권계약이 해제된 이문열 평역. 번역과 평역은 많이 다르다. 월탄 번역에서는 황건적의 두령 장각이 환술, 요술 같은 것을 사용해 숱한 야수들을 불러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반면, 이문열 평역은 해당 부분을 적절하게 자신의 시각으로 바꾸어 원본과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nbsp; 아울러 월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장면도 속출한다. 도교? 맞다. 아니, 맞는 거 같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 장면이 &lt;일리아스&gt;에서 신들의 출현과 뭐가 다르냐,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lt;삼국지&gt;에서 환술, 요술과 도교적 상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조미료 수준이다. &lt;일리아스&gt;에서 신들이 하는 역할을 &lt;삼국지&gt;에서는 누가 할까?&nbsp; 놀랍게도 군사軍師라고 일컫는 전략가의 몫이다. 조조한테 탈출한 유비가 관우, 장비를 만나 유표한테 몸의 의탁하자, 유표는 작은 신야성을 맡겼는데 여기서 만난 거의 최초의 전략가가 서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조조군의 대군이 짓쳐오니 서서는 긴 장대에 낫 비슷한 것을 매달아 유비군을 갈대밭 속에 숨겨 놓았다가 조조군이 행군할 때 적군의 발목을, 발목만 끊어 놓는다. 이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죽지 않고 번히 살아 있으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전우를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그리하여 어쨌거나 승리 또는 조조군의 진격을 조금 멈춘 유비군은, 조조의 계략에 의하여 서서를 조조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조조의 땅에 사는 늙은 서서의 엄마가 아들한테 자신을 보살피러 오라고 당부하는 거짓 편지를 보낸 거다. 덕의 사나이라고 지칭하는 유비가 어찌 안 보낼 수 있느냐는 말이지. (서서의 모친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달려온 아들의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서서는 길을 떠나며, 죽어도 조조를 위하여 꾀를 내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 다음에 걸출한 전략가를 추천하니 그 사람이 바로 제갈량. 이후 &lt;삼국지&gt;는 유비, 조조, 손권 또는 유비, 관우, 장비의 무대에서 제갈량 1인 주인공의 극으로 완벽하게 전환한다. 진짜 제갈량의 독무대. 실제로 제갈량이 죽은 이후 &lt;삼국지&gt;는 무지 지루해진다. &lt;삼국지&gt;의 진짜 영웅은 힘세고, 칼과 창, 활에 능숙하며, 적장의 머리를 단칼에 베는 장수들이 아니라 전략가들이라는 점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거다.&nbsp; 하지만 &lt;일리아스&gt;에서는 전략가들의 지략 대결을 전혀 볼 수 없다. 조조 측에서는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유비 측의 제갈량, 방통, 마량. 손권 측의 주유, 노숙, 육손. 이런 인물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도, 불쌍한 프리아모스 왕의 수하에서도 딱 한 명씩 밖에 없다. 그리스 군의 네스토르와 트로이아 군의 플뤼다마스. 하지만 이들은 전력가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깝다. 그나마 그리스 군은 네스토르의 조언에 귀를 기울리건만, 트로이아는 현명한 예언자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호메로스는 이것이 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순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lt;일리아스&gt;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멸의 인간이 맞을 운명. 이건 신의 뜻도 아니다. 신조차 이 운명을 어길 도리가 없었으니, 이 그리스 신들의 전통은 수백년이 지나고 등장할 기독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걸?&nbsp; 하여간 전략이 없는 전쟁소설을 읽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직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과 깡통 머리통만 가진 영웅들의 난투극. 저 앞에서 말했듯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서 별 넷을 준 이유, 즉 별 하나를 제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전쟁에서의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매복도 없고, 화공도 없고, 협공도 없고, 동맹군 간의 이간도 없는 전쟁극.&nbsp;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을 이렇게 볼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lt;일리아스&gt; 역시 딱 한 번 읽고 내버려 둘 작품도 아니다. 이 책 한 권을, 특히 동양의 독자가 한 번 읽고 그걸 기념할 수 없을뿐더러, 만일 나처럼 소년을 위해 읽히기 편하게 편역한 책이 아니고, 천병희나 이준석의 원본 번역을 처음 접했다면, 7백쪽이 넘는 분량을 한 방에 읽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읽는 게 훨씬 좋다. 이후 독서량이 늘어감에 따라 저절로 트로이아 전쟁 앞뒤 이야기를 보탤 수 있게 될 것. 그럴 때 다시 읽으면 첫번째보다 훨씬 맛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nbsp; 말이 필요없는 명작.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지금 읽은 것이 인생의 마지막 &lt;일리아스&gt;도 아닐 필생의 책일 수도 있는, 책 중의 책.<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56/30/cover150/k92283357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56304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괜히 핑계를 대자면… - [무덤의 천사 - 이디스 워튼 기담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8640</link><pubDate>Fri, 11 Sep 2026 04: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86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78&TPaperId=175086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54/94/coveroff/89374313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78&TPaperId=175086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덤의 천사 - 이디스 워튼 기담집</a><br/>이디스 워튼 지음, 김지혜.정윤희 옮김 / 민음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nbsp; 19세기를 달리던 영미 여성 작가들 가운데 고딕 작품을 쓴 사람이 무척 많다. 이디스 워튼도 마찬가지. 전에도 워튼의 고딕 소설을 읽은 거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nbsp; 《무덤의 천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기담奇談이라기보다 고딕이 어울릴 정도의 작품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고, 이디스 워튼이 괜히 이디스 워튼이 아니라서 우리말로 읽는 문장도 물론 역자의 개입이 필연적이겠지만 썩 마음에 들었다.&nbsp; 하지만 독후감을 쓰려는 지금, 작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단편을 모은 소설집은 가끔 장편으로 읽는 도중에 곁다리로 읽는 수가 있다는 점. 특히 이번 책처럼 기담이나 장르 단편일 경우엔 여지없이 그렇다. 날은 갈수록 더워지고 집에서 메모까지 해가면서 책 읽다가 마나님한테 걸리면 “영차, 조금만 더해, 하바드 가야지!” 놀림이나 당할 거 같아, 장편은 도서관에서 읽고 집에서는 독후감을 쓰고 남는 시간에 (장르) 소설집을 읽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도 술 한 잔 마시는 날이면 독후감이고 소설집이고 간에 하루 이틀 미루어지는 게 또한 문제다.&nbsp; 《무덤의 천사》도 읽기 시작해 닷새 만에 마지막 작품을 다 읽었는데, 독후감을 쓰려니, 읽을 때는 분명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건만, 막상 감상을 쓰려고 하니 쓸 게 읎네, 읎어.&nbsp; 이거 마음먹고 오랜만에 읽은 이디스 워튼이건만 참 면목이 없다. 그렇더라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같은 걸 가져올 수는 없으니 차라리 애초에 이쯤에서 별점 4, 라고 간단히 말을 마치는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핑계지, 핑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54/94/cover150/89374313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54949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오르페오가 왜 하계로? -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6439</link><pubDate>Thu, 10 Sep 2026 0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6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6987&TPaperId=17506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96/27/coveroff/89546769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6987&TPaperId=17506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a><br/>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02월<br/></td></tr></table><br/>.&nbsp; 얇은 장편소설. 문학동네가 신공을 펼쳐 널럴하게 편집하고도 240여 쪽에 불과하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예전 독재체제 하의 알바니아에서 사는 일. 여기에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다시 한 번 우정 출연한다.&nbsp; 먼저 죽은 아내를 다시 살려내기 위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오 이야기. 둘이 깨를 볶으면서 살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너무 금슬이 좋아 저 올림푸스에 사는 신들 기분이 조금 언짢을 정도였나 보다. 질투의 신이 이를 배 아파해서 뱀 한 마리한테 주문을 걸어 에우리디케의 발뒤꿈치를 칵 깨물게 시킨다. 당연히 에우리디케는 30분도 넘기지 못하고 하데스의 나라로 떨어지고 말았지. 슬픔에 겨운 오르페오는 온 종일 수금만 켜고 세상을 돌아다니니 온갖 짐승과 신들도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바람에, 좋아, 한 번 기회를 주지, 오르페오로 하여금 땅 아래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수 있게 딱 한 번의 배려를 해준다.&nbsp; 오르페오가 그 깜깜한 지하세계로 어떻게 내려가? 그때 수금과 함께 가져간 것이 겨우살이. 겨우살이 가지 끝에서 빛이 반짝거렸다나, 뭐라나. 하여간 이때 오르페오의 전기를 읽은 서양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성탄절에 현관을 이 겨우살이로 장식을 하는 거란다. J.G 프레이저가 쓴 &lt;황금가지&gt;에 나오는 이야기.&nbsp; 하여간 지옥문까지 내려갔더니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짐승이 대가리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 헤라클레스가 아닌 이상 케르베로스 뒷다리에 된장을 바를 힘이 있는 인간은 없는지라, 오르페오는 현명하게도 자기 주특기를 살려 수금을 연주해 깊은 잠에 들게 해놓고 드디어 하데스를 만나 여차저차하니 에우리디케를 내 놓으슈, 단판을 지었다. 그랬더니 이제 전형적인 그리스 신화에서의 신들의 장난을 시작한다.&nbsp; 좋다. 데리고 땅 위로 올라가라.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천 개가 조금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너 오르페오는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를 쳐다보지 말아라. 만일 뒤돌아보면 네 아내는 다시 지하 세계로 거꾸로 떨어져 박힐 것이다.&nbsp; 여기까지는 다 아시지? 이제 결말. 계단 기어오르면서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오한테 “넌 나 안 보고 싶었니? 여기까지 쳐 내려와서 어떻게 네 마누라 얼굴 한 번을 바라보지 않는 거니?” 바가지 득득 긁는다. 아내의 바가지 반,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반. 그래서 기껏 다 올라가놓고 막바지에 이르러 오르페오가 고개를 휙, 돌리고,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목뼈, 경추가 비틀리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부로 똑 떨어진다는 얘기.&nbsp; 근데 내가 좋아하는 건 이탈리아의 소설가 체사레 파베세의 이야기.에우리디케가 바가지를 팍팍 긁으니, 이것 참,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바가지를 계속 긁히며 살아? 에우리디케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다시 생명을 얻는다 해도 어차피 또 죽어야 할 텐데 죽을 때의 고통을 한 번 더 겪으라는 말이심?&nbsp; 오르페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nbsp; “여기서 끝내자!”&nbsp; 하면서<br>&nbsp; &lt;떠나지 못하는 여자&gt;에 출연하는 에우리디케 정도의 여성은 작품의 부제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에서 이름을 밝힌 린다. 린다가 극작가이자 주인공인 루디안 스테파를 흠모하는 건 틀림없다. 처음에는 작가와 팬 수준 정도였다가, 점점 루디안의 여자가 되는데, 아니다. 작품의 스토리와 보조를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nbsp; 첫 장면. 주인공이자 화자 ‘나’ 루디안 스테파가 당 위원회의 소환 명령을 받아 출석하러 간다. 그가 생각하기를 아마도 공연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희곡 작품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또는 어린 연인 마제나와의 관계 때문 아닐까 싶다. 때는 1980년대, 40년이 넘게 통치한 알바니아의 독재자 앤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땅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일이라도 정부가 모르는 게 없던 시절. 그래서 연인 마제나와 싸운 것도 영 께름칙하다. 모든 커플이 그렇듯이 도무지 말로 따져 마제나를 이길 수는 없고, 가뜩이나 급한 성질에 뭐라 표현을 하긴 해야겠어서 그냥 한 방 콱 쥐어박았으면 좋겠는데 차마 그럴 수 없어 일단 머리채를 휘어잡았다가, 이봐, 정신차려, 손찌검은 절대 안 돼, 하는 정언명령이 들리는지라, “넌 정신분열증 환자야! 아니면 스파이든지!”라고 한 것이 언짢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마제나가 경찰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루디안이 나한테 스파이라고 했어요, 고발을 하면, 이거, 농담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큰일 날 수도 있는 거다.&nbsp; 게다가 진짜 연인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여자 의사하고 비혼으로 살고 있었는데, 여자가 오스트리아 학회에서 수면기술, 의학용어로 하자면 마취기술 개선을 위한 워크샵에 참석하러 떠나는 걸 루디안이 극구 반대했다면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이 의사가 다시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오스트리아나 서유럽의 한 나라로 망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nbsp; 이런 여자 관계 때문 말고도 공연을 기다리는 희곡 속에 유령이 등장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스럽다. 알바니아는 엄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행해지는 자유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심해질수록 인민들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는 진리를 세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나라, 알바니아. 근데 이런 자유의 나라에서 감히 극중에 유령이 등장해? 유물론의 나라에서 말이지? 그런 같은 맥락에서 루디안, 너 혹시 신도 믿는 거 아냐? 이렇게 따지면 루디안이 비록 완벽하게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변명할 마땅한 거리가 없을 수도 있다. 심문관이 우기면 말인데.&nbsp; 인민의 모든 행위를 알고 있는 정부가 불렀으니 분명 곱게 보내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잘 나가는 극작가거든.<br>&nbsp; 이러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당 위원회.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nbsp; 저 까마득한 시절, 지금부터 4~50년 전 알바니아가 군주제였던 때 옛 왕실 측근 집안 출신의 아가씨가 자살을 해버렸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라의 유서 깊은 가문 아가씨가. 이 집안 모든 가족들은 오랜 세월 지방도시에서 유배중이다. 유배? 좀 센 단어구나. 소련에서의 유배와는 달리 그냥 한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정시키는 상태. 군인들 위수구역 이탈금지 정도로 생각하면 딱이다. 근데 자살한 젊은 아가씨의 책, 최근에 공연을 마친 루디안 스테파의 희곡 작품을 실은 책에, 공연을 했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가지도 않았음에도 그 책에 작가 루디안의 자필 서명이 쓰여 있다.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쓴 헌사와 함께.&nbsp; 서명을 해 줄 수 있고 당연히 팬 미팅하면 습관적으로 해주는 헌사도 써줄 수 있건만, 문제는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는 글귀. 헌사를 읽어보면 누구나 루디안과 자살한 린다 B 사이에 공통의 “추억”이 개입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당 위원회, 일종의 정보국에서는 옛 군주제 정권의 핵심 가문의 일원과 인기 극작가와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봐야 마땅하다, 라고 당 위원회의 판사 등 당의 사람들은 주장한다.&nbsp; 어떻게 루디안의 책이 린다 B의 손에 들어갔을까? 린다가 루디안의 팬이라는 건 앞에 얘기했고, 그이 공연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은 린다는 고등학교 동창한테 연극도 보고, 책도 사서 사인까지 받아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한 거다. 이 와중에 그 염병한 친구년이 루디안한테 접근해 안다리후리기를 걸어 자빠뜨렸으니 친구가 누군고 하니 지금껏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침대에 오르는 어린 미제나.&nbsp; 그러니까 미제나는 린다가 보기에 자신과 루디안 사이의 매개인이다. 당장은 아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말하게 되었으니, 미제나와 루디안 사이의 몸 접촉 모두를 이야기한 건 아니고, 키스했다, 정도. 린다와 미제나 둘 모두 레즈비언 성향이 1도 없지만 루디안의 입술이 닿은 미제나의 입술에 린다는 입을 맞춘다. 루디안이 린다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고 하니까 린다도 미제나의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져보고, 자기 단추를 풀어 미제나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본다. 이런 방식으로 미제나를 통해 루디안과의 접촉을 상상해보는 거겠지.&nbsp; 린다는 미제나가 건강검진을 하러 갈 때 함께 따라가서 유방 촬영을 한다. 유방암이 걱정스러워서? 아니다. 유방암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으면 좋을 거 같아서. 그 정도 되어야 지방도시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루디안이 사는 수도 티라나로 갈 수 있으니까. 이런 린다 B가 죽었다. 자살해버렸다.&nbsp; 그러면 하데스가 통치하는 하계下界로 들어가버린 린다 B를 위하여 누군가가 수금을 켜면서 케르베도스를 잠재우며 땅 아래로 내려가야 하겠지? 이런 방식으로 지난 엔베르 호자 정권 시절의 알바니아를 비틀어버리는 이스마일 카다레. 근데 읽는 내내 의아했던 건, 카다레가 그리스 신화를 자주 가져다 쓰는 건 알겠는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는 조금 무리 아니었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96/27/cover150/89546769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96275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거미줄, 실핏줄 같은  섬세함과 사색의 푸가, 그게 전부 - [눈부신 안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4211</link><pubDate>Wed, 09 Sep 2026 04: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42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9375&TPaperId=175042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88/62/coveroff/895469937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9375&TPaperId=175042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부신 안부</a><br/>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05월<br/></td></tr></table><br/>.&nbsp; 40대에 접어든 이해미는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안드레 케르테스의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한달 전까지 만해도 제법 알려진 신문사의 기자로 재직하던 해미는 저널리즘이 정체가 어떤 모습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염증을 견디지 못하고 일단 다음 직업에 대한 준비 없이 무턱대고 신문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버린 것. 우연히 이 때 안드레 케르테스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걸 알고 거의 한 달째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근 도장 찍듯 전시관에 가서 폐관시간까지 똑 같은 사진을 관람하던 차였다.&nbsp; 이곳에서 우연히 우재를 닮은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 해미한테 케르테스의 사진을 처음 소개해준 대학 동기생. 해미는 사회학과를 다니고, 우재는 약학과를 다녔을 때 문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이십대 초반. 서로 들뜨고 갈급했던 시기. 그러나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우재는 2학년 겨울방학 때 입대했고, 연상의 연인에게 실연을 당했으며 제대해 복학할 당시 해미는 모든 학부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눈 앞에 둔 상태였다. 함께 캠퍼스에 있을 때에도 둘은 서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거나, 적어도 두 명 가운데 하나는 연애를 하고 있어서 그저 인연이 안 되는 괜찮은 애 정도로 여기고 말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게 벌써 근 20년 전이다.&nbsp; 오랜 세월 만나지 않았으면 사실 아는 척을 하더라도 짧은 인사 후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 서먹함이 뒤따르는 법. 미해도 우재도 벌써 이 정도는 이해할 나이. 미해는 전시장에서 나온다. 근 한 달 동안 매일 들른 전시관 현관 앞에서 오늘따라 전시회 포스터를 오래 바라보고 있던 이미해. 작품에는 안 나오지만 왜 하필이면 우재를 만난 오늘 늦은 오후에 그동한 숱하게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포스터를 유심히 보고 서 있었을까? 벌써 서먹서먹한 사이가 됐고, 연락도 거의 없었던 젊은 시절 조금 가까이 지낸 동아리 친구 우재와의 시간을 만들어볼 속셈이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하여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재가 전시관에서 나오고, 미해를 발견하고, 혹시 이해미? 아는 척에 이어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My Funny Valentine”을 들으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S의 결혼식이었나?”로 시작해서 “아, 너는 결혼했어? 소식을 들은 게 없어서 못 갔는데, 혹시 했다면 미안.”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둘 다 공히 마흔 살에 접어들도록 아직 미혼 상태인 것을 확인한다.&nbsp; 마흔살이 되면 고향에 가서 약국을 열겠다는 어릴 때부터 우재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곧 제주로 내려가 약국을 개업하겠다는 말은 이 모든 일상적 이야기의 뒤에야 할 수 있었겠지. 미해도 제주에 있는 우재의 집에 가 보았다. 기말시험이 끝난 학기 말에 동아리 선배들이 MT 겸해서, 매번 가던 대성리나 새터 같은 곳에 질렸다고 돌발적으로 제주에 있는 우재의 집으로 가보자고, 돌발적인 결정을 내렸고, 그 기회에 미해 역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 보았다. 그때 알았다. 제주의 이국적인 야자수 가로수들이 사실은 원산지가 제주가 아니고, 제주를 관광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저 민주공화당 시절의 정치인이 야자수 묘목을 도입해 제주에 심은 것이라는 것을.&nbsp; 독자는 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한다. 외국의 나무가 제주도에 입식되어 그곳에서 몇 십년 터를 잡고 제주의 한 모습으로 고착했으니 이제는 외래 야자수도 제주의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는 점을. 그저 마흔 살의 해미와 우재가 늦게나마 만나서 관계를 이루어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만 받을 정도로 프롤로그는 끝난다.&nbsp; 그럼 여태까지, 독후감의 반 정도를 프롤로그 이야기하느라 소비한 건가? 그렇다.<br>&nbsp; 해미의 가족은 이제 부모와 해미, 해미의 동생 해나, 이렇게 네 명 남았다.&nbsp; 해미가 열한 살이었을 적에 가족은 부천에서 서울로 이사했고, 아이들도 당연히 전학을 해야 했다. 이때는 해미한테도 언니 해리가 있었다. 해리는 해미한테 전학 왔다고 쫄지 말라고, 턱을 수평 이상으로 들고 다니라는 의미로 말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해미가 애들 사이의 기준이 될 거라면서. 정작 언니는 벌써 중학교에 다니지만. 언니 해리는 공부도 잘하는 범생이. 학교에 결석하면 안 된다는 엉뚱한 집념에 싸인 20세기형 모범생 언니한테 해미는 종종 “아파도 조퇴하겠다는 말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때가 아마 1994년 12월 7일이었고, 가족이 이사와 살던 곳이 아현동 근처였던 모양이다. 학교 수업 도중 교사에게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말한 모범생 해리한테 담임은 얼마나 아프면 모범생 해리가 조퇴를 신청할까, 안쓰럽게 생각해 곧장 이를 허락했고, 학교를 나온 해리가 오후 두시 50분경 도시가스 저장고 부근을 지나던 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저장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부근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50명 가운데 한 명이 돼 버리고 말았다.&nbsp;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곱고, 집안에서도 좋은 맏이였던 딸이 갑작스럽게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 후부터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균열이 발생했다. 이건 어떤 면에서 정상적인 결과인데,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고, 사고와 상실을 당한 가족들 사이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책임 전가가 부부 사이의 끊이지 않는 격렬한 싸움으로 변질된다는 뜻이다. 숱하게 많은 부부가 이 비슷한 일 때문에 갈라서고, 그보다 더 많은 가정이 오랜 시간의 고통 속에서 어찌어찌 지내다가 세월과 함께 기억이 흐려질 때까지 질긴 삶을 이어간다.&nbsp; 해미네 가족도 그랬다. 엄마와 아빠는 극렬하게 부부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둘 사이의 크레바스는 도무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부부는 헤어지기 직전에 이혼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청에 부임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고, 독어교육을 전공한 엄마는 신학 석사 학위 취득을 목표로 이제 둘 남은 딸들과 독일의 대학도시인 G시로 떠나 2년 동안 지내기로 했다. 물론 해미 친가에서는 말도 많았다. 죽은 맏딸의 보상금으로 엄마가 딸들 데리고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가족을 해체시키려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친척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아빠가 나쁜 남편은 아니라서 이런 말이 쑥 들어가게 만들었던 모양이다.<br>&nbsp; 엄마가 비록 대학도시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소도시 G시를 고른 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엄마의 큰언니 오행자 박사, 해미한테는 큰 이모가 G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형제는 나이 순서대로 이모, 쌍둥이 외삼촌 둘, 그리고 막내로 엄마가 있었다. 전라남도에서는 아쉽지 않게 먹고 살던 외갓집의 맏딸, 엄마는 언니가 한 명이라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될 텐데 꼭 큰언니라고 불러 해미 역시 큰이모라 하는 것이 입에 붙은 이모. 전남 지역에서는 손꼽히게 공부를 잘해 수재라고 불렸던 이모는 오래 전부터 독일에서 (독자가 보기에 아마도) 작은 내과 의원의 개업의인 듯했다.&nbsp; 그러나 시작은 미미했으니, 오행자 큰이모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갑자기 외할머니가 중병에 들어 전라남도 강진 부근의 넓고 넓은 들이, 외할머니의 병원비로 다 날아가버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집에 오래 가는 병자가 한 명 생겼다 하면 집구석 거덜나는 건 오직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우리 집구석도 이런 집 가운데 하나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렇게 망가진 집안은 아주 회복할 수 없거나, 비슷한 수준에 다시 오르기 위하여 적어도 두세 세대가 필요한 거 같다.&nbsp; 한 순간에 거덜난 집구석에서 맏이로 큰이모가 선택한 것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서독 파견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되어 비행기를 타는 일. 큰이모는 독일에서 거구의 독일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직무 관련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아 간호조무사에서 정식 간호사를 거쳐 계속 의학공부에 몰두, 드디어 내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nbsp; 그리하여 아마도 1995년, 미해가 열세살 겨울부터 열다섯 살 겨울이 될 때까지 미해는 독일 G시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절반 이상이 이 시절 독일 G시에서의 일이며, 특히 독일 파견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출신 여사님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로 꾸몄다.<br>&nbsp; 해미와 동생 해나는 독일에서 자연스럽게 마리아 이모의 딸이자 반half독반한 혼혈 레아, 한 살 위 한국계 독일인 한수와 친구가 되고, 해미와 해나도 독일어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지만, 스토리의 핵심은 뇌종양 전력이 있는 간호사 선자 이모의 첫 애인 KH를 찾는 일이다. 언제 뇌종양이 재발해 생을 마쳐야 할 지 모르는 말수 없는 억척어멈 선자이모의 아들 한수는,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떠난 파독 광부 출신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십대 시절 사랑했던 KH라는 이니셜의 연인을 찾아, 가능하다면 독일로 초청해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착한 아들 답게 간절히 바란다.&nbsp; 그리하여 한수와 레아, 그리고 미해가 일종의 탐정 놀이 비슷하게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은 해미가 열세 살이었던 1994년부터 시작해 마흔 살인 2020년 경까지 계속된다. 20여 년 동안 찾았다니까 결국 문제의 KH, 이미 고인이 된 선자이모의 첫사랑이자 벌써 노인이 된 KH를 찾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 독자는 이제 해미가 거동마저 불편한 KH를 만나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까지 모두 본 다음에, 프롤로그에 이어 다시 에필로그에서 각본대로 해미가 우제를 만나는 장면으로 책을 덮게 된다.&nbsp;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작품을 진전시키는데, 아오, 백수린의 거미줄 또는 실핏줄 같은 문장이라니. 그렇게 섬세하고 깔끔하고 사색적인 문장이 아주 제대로 감성을 폭발시켜, 독자는 간질간질한 섬세함과 사색과 고독 속에 질려서 까무러쳐 버리기를 몇 차례인지도 모른다. 질리고 질려서 책의 중간도 오지 않아, 무지하게 지루한 난관까지 만나는데, 애초 이런 작품들로 독서생활을 시작한 독자들은 연신 감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나, 꽃노래도 삼세번이건만 같은 또는 비슷한 귀절을 매끄럽지 않은 둔주법, 푸가로 연주해대고 있으니, 귀 밝지 않은 절대 음치더러 도무지 뭘 하라고 하는 말이고 문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감이 잡히시지? 하여간 아마추어가 읽기에 그랬다는 거니까, 백수린의 많은 팬들이 읽기에 기분 나쁜 독후감이라도, 세상에 같은 의견만 있어도 좋지 않은 법이라는 선에서 이해해주시기를 앙망할 뿐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88/62/cover150/895469937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88628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소설가 울프는 숭배할 만하지 - [미츠 - 블룸즈버리의 마모셋]</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1949</link><pubDate>Tue, 08 Sep 2026 0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19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123&TPaperId=175019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1/48/coveroff/k2321371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123&TPaperId=175019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츠 - 블룸즈버리의 마모셋</a><br/>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메이 옮김 / 코라초프레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어슬렁어슬렁 개가실을 걷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새 책이 신착도서 책상에 꽂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와 얼른 집어 들었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보고 작가 이름만 탁, 봤다는 건데, 왜냐하면, 누네즈 책 읽고, 와따 이거 대낄이네, 감탄해본 적은 없어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친 책 역시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망쳐도 평타. 얼마나 안정된 작가이냐는 말이지.<br>&nbsp; 책을 다 읽은 다음에 &lt;미츠&gt;를 검색해보니까, 출판사 코라초프레스가 처음 찍은 책이란다. 2026년 4월. 그래서 더 유감이다. 출판사가 처음 낸 책인데, 이왕이면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출판사도 좋아할 독후감을 쓰면 참 기분이 좋을 텐데 차마 그리할 수가 없다. 이건 누네즈 때문도 아니고, 출판사 때문도 아니고 더군다나 역자 메이 때문도 아니다. 불과 몇 주 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작품 &lt;디 아워스&gt;를 읽어서 그렇다.&nbsp; 가뜩이나 작품과 삶이 노출될 대로 노출된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3월 28일 아침에 외투 주머니 가득 무거운 돌을 잔뜩 집어넣고 3월 말이라 해도 여전히 차갑기만 한 우즈강 속으로 맨발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작품을, 불과 몇 주 전에 읽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던 거였다. 게다가 &lt;미츠&gt;에서도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랄 수 있는 언니 버네사의 젊은 맏아들이자 천하의 바람둥이인 ‘줄리언 벨’이, 1년 동안 중국 우한 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갔다 와서 또다시 스페인 내전에 자기 발로 갔다가 두 달만에 폭탄 파편에 맞아 죽을 것도 홍잉이 쓴 야~한 책 &lt;영국 연인&gt;을 통해 알고 있던 거고, 버지니아-레너드 부부, 언니 버네사-클라이브 벨 부부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혼인 중 버지니아와 비타 섹빌웨스트와의 동성애 등등 이미 거의 다 들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읽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nbsp; 무엇보다 이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할 때나 떠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이 더 이상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영국 귀족 끄트머리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힐 필요 없이 자란 버지니아 스티븐 양. 은수저를 입에 물고 머리 꼭대기에 허연 소기름을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최하 연 수입 5백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확보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자란 똑똑이 아가씨였다가, 유대인의 핏줄을 타고 났으니 귀족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주머니에 금화 떨어질 일 없는 부잣집 레너드 울프와 결혼해 자기 결정에 의하여 맨발로 우즈강으로 들어갈 때까지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삶을 누린 사람.&nbsp; 당연히 아무리 돈이 많고 신분이 높아도 행복하지 않다. 부르주아도 충분히 불행할 수 있고, 고독할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날마다 밤을 하얗게 새울 수도 있다. 아니다. “~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정말로 “~한다.” 그러나 &lt;미츠&gt;의 시대적 상황이 1934년부터 39년까지. 간전기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경에 쓰인 대로 어미 배 속에서 낙태되지 못한 것을 슬퍼할 정도로 살기 팍팍했던 시절에, 이 버지니아-레너드 울프 부부는 바버라-빅터 로스차일드 부부의 초청을 받아 케임브리지에 있는 로스차일드 저택으로 차를 몰아 행차한다. 여기서 남아메리카 원산인 암컷 유인원 한 마리를 처음 만나고, 원래 동물을 좋아했던 레너드의 눈에 들어왔다가, 몇 달 후에 로스차일드 부부의 해외여행 기간 동안에 암컷 유인원을 울프 부부가 맡아 키우기로 하는데, 이 유인원이 ‘미츠’라고 이름지은 마모셋이다.<br>마모셋<br>&nbsp; 잔디밭 건너편에서 발견한 잿빛의 조그만 생물. 얼마 전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런던의 중고품 가게를 지나다가 우연히 쇼 윈도우에서 발견해 아내 바버라의 생일선물로, 가게 주인이 사들인 가격의 열 배도 넘게 주고, 즉 달라는 대로 에누리 없이 다 주고 사온 생물체이다. 그러나 바버라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전혀 관리를 안 했다. 결과 마모셋은 뼈 발육에 장애가 발생하는 구루병도 있는 거 같고, 윤기가 나지 않는 털은 거칠고 건조해 보였으며, 군데군데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주로 쇠사슬을 걸었던 목 부근의 피부가 쓸려 있었고, 드문드문 털도 빠진 상태였다.이렇게 1934년 7월 19일 밤의 첫 장면에서는 그저 울프 부부가 로스차일드 저택에 놀러가 미츠를 한 번 본 것으로 끝난다. 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속에 앉은 버지니아. 이이는 생각한다.&nbsp; “그래도 로스차일드 부부에게는 부러워할 만한 것이 많았다. 부는 아니었다. 울프 부부는 부를 경멸했으니까. 그보다는 미래, 9월에 태어날 아기, 그들 앞에 펼쳐진 삶 전체였다. 한마디로, 젊음.”&nbsp; 빅터 로스차일드 3세 남작이 레너드 울프보다 딱 서른 살 젊다. 그리고 이때, 1934년에 첫번째 아내 바버라는 임신중이었으니 로스차일드의 부 보다는 임신중인 것이 더 부러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울프 부부는 결혼 때부터 딩크로 살기로 딱 합의를 했던 건데 그렇게 22년을 살아 이제 쉰두 살, 완경을 맞은 상태에 이제 와서 태어날 아기 타령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nbsp; 게다가 당대 세계 최고 부자였던 은행왕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를 부러워하지 않는 건 좋다 이거지. 근데 부를 경멸한다고? 유대인 족속이? 속으로는 아니겠지만 겉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우리처럼 없는 집구석에서 사는 인간들은 백 년을 살아도 이렇게 딱 부러지게 말 못한다. 지들 스스로도 부르주아의 일원이니까, 집에 가면 침모, 식모, 찬모, 마당쇠, 집사 등등 하인, 하녀가 수두룩하고, 부부 가운데 한 명이 하인, 하녀에게 관대하면 다른 한 명은 혹독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나 자기 마음대로 글자로 쓰는 거다. 폼도 나고 뭐 그렇지.<br>&nbsp; 버지니아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영토와 혈통, 수 세기에 걸쳐 배양된 교양과 전통을 가진 자기네 집안 같은 귀족이 지금껏 사회 정의나 공동선을 위해 어떤 식으로 힘이 되었는 지는 말할 수 없었단다. (p.60) 그러나 (앞 인용에 바로 연결해 쓴 것처럼) 버지니아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건, 푸른 피를 향한 찬미였다. 푸른 피?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흘러요.”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아니고, 각주에 쓰인 대로 옮기자면 “귀족의 고귀한 혈통을 말한다.”&nbsp; 귀족이 1930년대에 국가와 민족과 국민과 세계평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바지하는 지는 모르고, 아마도 이바지는커녕 도움되는 일도 하나 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버지니아는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고귀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은 포기하지 못했고, 오히려 찬미했다. 내 말이 아니라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것에 의하면.&nbsp; 레너드 울프는 몰라도 버지니아는 확실히 귀족 출신의 부르주아 말석에는 앉는 부류. 그래도 빅터 로스차일드나 동성애인이자 깊은 우정도 나누고 있는 비타 섹빌웨스트 앞에서는 절대 돈 좀 있다고 입도 벙긋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래서 시그리드 누네즈는 쓴다.&nbsp; “울프 부부에게는 로스차일드 부부를 비롯해 화려한 생활을 하는 지인이 많았다. 한번은 버지니아가 비타의 시싱허스트성城에 갔다가 돌아와 ‘내가 중산층 출신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nbsp; 이러면 앞에서 “울프 부부는 부를 경멸했다.”라고 쓴 건 백퍼 구라지? 글쎄 그렇다니까. 이 책이.<br>&nbsp; 시그리드 누네즈가 동물주의자인 건 아실 걸? &lt;친구&gt;에서 조금 냄새를 피우잖아. 이 책에서는 미츠라는 이름의 마모셋이 등장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약 4년간, 4년 조금 넘는 세월을 쓴 작품으로, 이 기간 동안 히틀러가 전쟁 위협을 하고, 영국은 히틀러를 달래기 위하여 협정을 맺어 체코 일부를 점령하게 내버려 둘 때까지인데 사실 나도 울프 부부가 정말 마모셋을 길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렀나 보지 뭐. 그냥 믿자. 돈 안 든다.&nbsp; 그래서 사실 미츠는 울프 부부의 애완동물일 뿐이고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네즈의 동물주의는 여전하다.&nbsp; 울프 부부가 미츠를 데려오기 전에 핑카라는 늙은 개를 키웠다. 근데 부부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오는 날을 맞춰 죽어버렸다. 잘 묻어주고 이제 13개월 된 스패니얼 암컷 강아지 셸리를 입양했는데, 100페이지에 이 강아지를 보고 버지니아 울프가 하시는 말씀이,&nbsp; “대단히 고상한 외모”지만 “과연 지성이 있을까?”&nbsp; 개한테 지성을 함양시키려면 ABC를 가르쳐야 하나, 미적분을 가르쳐야 하나? 성문기초영어 먼저? 아니면 공통수학의 정석이 먼저?&nbsp;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숭배할 만하지만, 나는 계급적 인간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별로 좋지 않아서 말이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1/48/cover150/k2321371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91486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에잇, 콱 버리고 말았다 -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0771</link><pubDate>Mon, 07 Sep 2026 17: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0771</guid><description><![CDATA[<br><br><br>&nbsp; 몇 권인 줄 모르겠는데, 위에 사진 찍은 거 말고, 딱 한 컷 분량의 책도 다 버렸다. 책 쌓아 놓는 거, 이거 욕심이다. 책 때문에 방에서 뭘 어쩌지 못하겠다. 그래서 버렸다. 아쉬울 거 같지? 속이 다 시원하다. 최근 5년 동안 읽은 책, 읽지는 않더라도 생각이 나 특정 부분을 찾아본 책, 서재에 인용한 적 있는 책 기타 등등, 이런 거 다 빼버리니까 90퍼센트는 그저 그냥 가지고 있는 책이더라. 그걸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nbsp;&nbsp; 그거 참 신기하지. 정말 책을 버리려고 하면 아내가 그러지 말란다. 버리는 거 말고 다른 방법도 있을 거라고. 있지, 알지. 근데 귀찮다. 이번에 버린 책 중에는 끝내주는 작품도 제법 있을 걸? 그래도 뭐, 내가 버리겠다는데.&nbsp;&nbsp; 다음 번에 날 잡아서 버릴 책 목록 중에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lt;2666&gt;도 끼어 있다. 오늘 다 해치우려 했는데 몇 번 힘쓰니까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져 영 힘이 없더라고. 달라고 하지 마시라. 택배 포장하고, 우체국 가서 보내고, 시간 잡아먹고, 모두 귀찮은 일이다.&nbsp;&nbsp; 이제 내게 남아 있는 황석영은 &lt;장길산&gt;하고 &lt;오래된 정원&gt; 두 개, 바르가스 요사는 &lt;천국은 다른 곳에&gt;, 볼라뇨는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 뿐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하니까 대강 책꽂이가 균형이 맞혀진다. 이럴 줄 진작 알았다. 그러면서 여태 하지 못했던 게 바보스럽다. 다 욕심이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7/pimg_6392439864789263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0077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강박이 어떻게 비인간을 만드는가 - [가스등]</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9481</link><pubDate>Mon, 07 Sep 2026 0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94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35&TPaperId=174994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94/97/coveroff/89374313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1335&TPaperId=174994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스등</a><br/>패트릭 해밀턴 지음, 민지현 옮김 / 민음사 / 2025년 05월<br/></td></tr></table><br/>.&nbsp;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패트릭 해밀턴은 작가이자 수습 변호사 아버지와 그의 두번째 아내, ‘올리비아 로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엘렌 아델 호클리와의 사이에서 1904년에 태어났다. 전형적인 중산층 속물계층인 부모. 아버지 월터 버나드는 자신이 위대한 작가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잘 봐줘도 평범한 작품을 몇 개 만들어냈으면서도 스코틀랜드 왕위의 적정 상속자라고 평생을 술 마시고 꼬장부리다가 갔다. 속물이기는 마찬가지였던 엄마도 콧대가 하늘을 찔러 하인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최상류사회의 일원으로 키우려 했으나,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 덕분에 가산을 좋은 술 마시는 데 탕진하여, 열다섯 살의 패트릭을 웨스트민스터에서 퇴학시키는 것으로 사실상 집구석은 문을 닫았다고 봐도 좋겠다.&nbsp; 패트릭 해밀턴은 이 시기, 열다섯 살 때부터 시와 산문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누이동생 랄라도 ‘다이애나 해밀턴’이라는 예명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고.&nbsp; 위키피디아는 이이의 작품 성향을 “전간기 런던의 거리문화를 디킨스적 방식으로 보고 있으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과 신랄한 블랙유머”를 그린다고 소개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두 편의 희곡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인 &lt;가스등&gt;과 &lt;로프&gt;와는 좀 먼 평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br>&nbsp; 패트릭 해밀턴은 작품 가운데 &lt;가스등&gt;이 영국과 미국에서 각기 다른 감독에 의하여 영화로 만들어 졌는데, 이 중에서 1944년에 미국의 조지 큐커 감독이 잉그리드 버그만과 샤를 부아이에를 캐스팅해 제작한 흑백영화가 널리 알려져 있고 나도 이 영화를 보았다.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여튼 허연 달덩이 같은 얼굴의 키와 덩치가 가히 발할의 브륀힐트 급인 잉그리드 버그만이, 그녀의 어깨 정도까지 올 정도로 그냥 보통 체격인 남자 샤를 보아이에의 가스라이팅에 하릴없이 곤경에 빠지는 장면이 좀 어색했던 게 기억나지만, 너무 오래됐다, 그동안 쌓인 두 명배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세월을 거치면서 왜곡되었는 지도 모른다. 샤를 부아이에가 보통 배우인가, &lt;가스등&gt; 말고도 &lt;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다&gt;와 &lt;애련&gt; 등에서도 명연을 보여준 옛 시절의 명배우.근데 샤를 부아이예와 함께 등장하는 파트너, 소심한 캐릭터를 소화하기엔 피지컬이 너무 좋은 잉그리드 버그만. 그래도 당시 영화 전문가들이 보기엔 이 커플이 괜찮은 조합으로 보였나 보다. 훗날 &lt;개선문&gt;에서도 라비크와 조앙 마두 역으로 다시 한 번 은막 위에 모습을 비치는 것을 보니까. 아휴, (배우로서의 자질을 말하는 ‘체급’이 아니라 신체적)체격이 덜 맞는 이유로, ‘안 맞는다’고 하면 눈이 삐었다고 할 분도 계실 것 같아서 그냥 내 생각일 뿐이라는 걸 꼭 밝혀야겠다.&nbsp; 하여간 버그만이 이 영화 찍고 10여 년 있다가 율 브리너의 파트너로 &lt;아나스타샤&gt;를 찍었을 때도 율 브리너의 박박 대가리가 어깨 근처에 오니까 열을 받은 브리너가 버그만한테 무참하게 댁댁거렸다는 건 유명하다. “난 절대 계단 위에 올라서 연기하지 않을 거요!”&nbsp; 사실 잉그리드 버그만이면 &lt;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gt;처럼 상대 배역이 적어도 게리 쿠퍼 정도 되어야 비로소 어울리는 커플이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거 말고 비주얼 상으로는.<br>&nbsp; 예전에 영화 한 편, 그것도 더빙한 “명화극장”을 보고 몇 십 년만에 원작인 희곡 &lt;가스등&gt;을 읽는다. 우리나라 서점에서 작가 패트릭 해밀턴을 검색하면 이 책 한 권만 뜨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 초역일 거 같은다(아닐 수도 있다). 읽어보니 이런 수준의 작품이건만 왜 이리 더디게 번역을 했을까? 잘 안 팔리는 희곡 장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말로만 가스등이지 사실 몇 년 전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영화 &lt;가스등&gt;도 새롭게 알려져 이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그저 이렇게 짐작해본다는 말이다.&nbsp; 이제 원작을 읽으니 과연 두 주인공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물론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게 궁금했던 것도 뭐 이해는 하시겠지?&nbsp; 남주 잭 매닝엄은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한 45세 정도의 남자. 잘 차려입고 지나치게 말끔하다. 살면서 아내 벨라를 쉼없이 가스라이팅 해왔으니까 당연히 무지하게 권위적이고, 자기보다 아래쪽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권위적이라기보다 위압적이라고 하는 편에 가깝다.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원래 출신이 범죄자. 그것도 희대의 보석, 19세기말 기준으로 1만5천 파운드 이상 나가는, 아홉개의 ‘발로 루비’로 장식한 브로치를 강탈하기 위하여 앨리스 발로라는 이름의 노부인 집에 잠입했다.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마부들의 곤궁한 삶을 지원하는 데 열심이었던 노부인을 초저녁에 칼로 찔러 무참하게 살해하고, 낭자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 넘어진 노부인을 무시한 채 밤새도록 집안을 뒤졌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발로 루비 아홉 개가 박힌 브로치를 찾지 못해 도망할 수 없었던 내력이 있다.&nbsp; 이것이 15년 전의 일. 이후 10년 이상,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면서 현지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자신의 과업, 아홉 개의 발로 루비가 박힌 브로치, 이걸 어쩌나. 어쩌면 콧대 높은 범죄자의 자존심인 줄도 모른다. 그걸 손에 넣기 위하여, 15년 전부터 아직도 궁리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집 어디에다 숨겼을까, 하는 것이었다. 벽과 벽 사이의 공간을 만든 작은 손 금고가 있을까? 방이나 허술한 창고의 바닥 한 부분을 뜯어내면? 많고 많은 가구 가운데 어느 허술하게 보이는 가구의 저 깊고 깊은 속에 장치한 비밀 서랍일까? 그의 고민은 깊어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더 커진다. 그리하여 그동안 번 돈을 몽땅 가지고 혼자 본명 시드니 파워를 ‘잭 매니엄’으로 바꾸고 영국에 잠입한 상태.&nbsp; 앨리스 발로 부인의 집을 사야 한다. 그래야 집을 홀랑 뒤져 보석을 찾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돈이 모자란다. 자기 돈으로는 발로 부인의 옆집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필요하다. 발로 부인 집을 사기 위하여 서른 두 살 먹은 과부인지 노처녀인지 하여간 돈 많고 미인인 벨라를 유혹해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 매닝엄은 벨라로 하여금 예전 앨리스 발로 부인의 집을 사게 하고, 신혼여행 이후 줄곧 그 집에서 거주하며, 아름다운 벨라한테 쉼없이 가스라이팅을 가해 이제 다 시들어버리게 만들어버렸다. 이 상태에서 막이 올라간다.<br>&nbsp; 예를 들어, 잭 매니엄이 벽에 걸려있기는 하나 관심있게 쳐다보는 사람 한 명 없는 초상화 한 점을 슬쩍 집어 내려, 아내 벨라가 물건을 자주 가져다 두는 특정한 장소에 슬쩍 두고, 벨라한테 묻는다.&nbsp; “어, 벽이 비었네. 당신이 초상화를 뗐군.”&nbsp; 벨라는 자기가 안 그랬으니, 안 그랬다고 해야 할 밖에. “아닌뎁쇼?”&nbsp; 그럼 매니엄은 집에 두 명 있는 하녀 하나하나 불러 네가 치웠니, 물어보고, 당연히 하녀들 역시, 아닌뎁쇼, 라는 대답이 나오면 성경에 키스를 함으로써 진실임을 담보하라고 압박한다. 뭐 꿇릴 것이 하나도 없는 하녀들이야 못할 일이 없다. 그래 성경의 양가죽 표지에 입술을 때고 쭉쭉 키스를 박는다.&nbsp; 이후에 벨라한테, 그래도 당신이 안 그랬다고?&nbsp; 벨라 역시 자기가 안 그런 것이 확실하니까 입술을 뾰죡하고 내밀고 자기도 하녀들의 침이 묻은 성경 양가죽 표지에 쭉쭉 키스를 할 밖에. 그러나, 여태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매니엄이 자기가 숨겨놓은 벨라의 장소에 가서 초상화를 가져오면, 벨라는 틀림없이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장소에서 초상화가 나왔으니, 자기가 잠깐 정신이 빠진 사이에 그런 짓을 했다고 믿게 된다. 물론 처음이었더라면 안 그랬겠지만, 이런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nbsp; 남편이 사준 결혼 반지, 예물 시계, 중고지만 어여쁜 브로치, 하다못해 어제 식료품 가게에서 가져온 영수증까지. 오늘도 영수증 좀 보자고 남편이 슬쩍 물어봤다. 분명히 책상 위에 던져 놓았는데 귀신이 곡을 하는지 그것도 없어져 버렸다. 그건 자기가 아니면 버릴 사람도 없는데, 점점 내가 미쳐가는 건 맞는 모양이다. 이런 것이 가스 라이팅. 전부 남편 매닝엄이 한 짓. 이렇게 아내를 미친 여자로 만들어 집에서 합법적으로 쫓아내 정신병원으로 보낸 다음이면 마음 놓고 집을 뒤져 문제의 보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nbsp; 근데 이게 정말로 될까?&nbsp;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15년 전 앨리스 발로 살인사건 당시 초짜 수사관으로 심증은 가지만 발언권이 별로 없어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못했던 형사가, 이제 경위 정도의 계급이 되어 다시 이 집을 방문한다. 그래도 사건의 해결이라는 관점보다, 어떻게 특정인을 계속적인 강박으로 인해 비인간이 되게 만드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nbsp; 재미있다.&nbsp; 앱 북적북적에 별 넷 반 주었다. 두번째 작품 &lt;로프&gt; 역시 재미있지만 조금 번잡해서 반 깎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94/97/cover150/89374313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94978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더할 나위없이 미국적인 - [맨해튼 비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3098</link><pubDate>Fri, 04 Sep 2026 04: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30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7435&TPaperId=174930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562/32/coveroff/89546574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7435&TPaperId=174930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맨해튼 비치</a><br/>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08월<br/></td></tr></table><br/>.&nbsp; 세 번째 읽는 제니퍼 이건으로 이렇게 단정하면 곤란하지만, 이이의 작품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진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범죄. 아주 대놓고 범죄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경우에 이건을 읽은 코스가 자잘하고도 상습적인 좀도둑질로 시작해, 각종 지능적인 사기를 거쳐 이번에는 합법적, 반쯤 합법적, 완전히 불법적 업소를 거느리는 폭력 조직까지 발전하면서 재미의 도를 높여갔다. 당연히 범죄가 스토리 라인은 아니지만 하여간 재미를 증폭시키는 인공조미료 역할을 단단히 한다.<br>&nbsp; 책에서 제일 먼저 소개할 인물은 에디 캐리건. 이름만 봐도 탁 아일랜드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에서 결혼해 딸 브리앤을 낳고, 브리앤의 엄마가 죽고나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 도착한 아버지는 외로운 곳에서 혼자 살 수 없어 여인을 만나 에디를 낳았다. 그리하여 브리앤과 에디는 이복 남매. 훗날 친남매보다 더욱 돈독한 정을 쌓고 살지만 어릴 때는 그럴 기회도 없었다. 에디의 엄마도 에디가 네 살이 되던 해에 티푸스에 걸려 생을 마감해버렸다. 아버지는 어린 두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브리앤을 뉴저지에 사는 외가에 보내고, 에디는 뉴욕 가톨릭 소년 보호소에 들여보냈다. 가슴이 천 길 나락으로 떨어졌겠지만 그때뿐, 에디의 인생에서 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nbsp; 소년 보호소에서의 에디. 가톨릭 집안의 아이들을 모은 보호소니까 주로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가정의 아이들일 터인데, 아일랜드 아이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이 모인 아동 보호소는 작은 정글. 이곳에서는 저절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할 수밖에 없다. 에디는 완력 보다는 사슬을 감은 문 틈새로 빠져나가는 능력, 원숭이처럼 가로등을 기어오르는 능력, 후디니 같은 탈출 묘기에 능했다.&nbsp; 보호소 아이들은 열 살이 넘으면 낮에 밖으로 나가 자잘한 일을 해 돈을 벌기도 했는데, 에디는 좀 먼 동네에 가서 우연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휠체어를 탄 노신사 드비어 씨를 만나 말동무도 해주고 카드 게임인 세븐카드 스터드도 배운다. 드비어 씨가 에디의 숨겨진 또다른 재주를 발견했는지 자신이 밑돈을 대주고 작은 포커게임판에 입성시켜 게임을 하게 하고, 매일 전날 한 게임을 복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드비어 씨는 신사. 그는 에디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1920년대니까 감안해 읽자.&nbsp; “절대 사기는 안 돼. 단 한 번이라도. 사기는 어린 여자의 처녀성 같은 거야. 한 번 했건 백 번 했건 차이가 없다고. 타락한 건 마찬가지야.”&nbsp; 이 시절에 에디는 보호소 동기 가운데 중요한 두 명이 이스트 강에 빠진 것을 건져 목숨을 구해준다. 존 더넬런과 바트 시헨. 둘은 성인이 되어 대공황 시절에 존은 부둣가의 작은 보스이자 도박판을 관리하는 하급 갱단 두목, 바트는 주검사 사무실 소속 검사. 에디는 이들과 달리 보호소에서 나온 후에 보드빌에 관심을 두어 그곳에 진출, 작은 쇼에 출연해 보호소에서 계발한 자기의 재주를 공연하면서, 아름다운 코러스 겸 백댄서 애그니스와 사랑에 빠져, 미네소타에 사는 처가 식구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맏딸이자 작품의 주인공 애너를 낳고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지만 자기 몸을 거의 운신도 하지 못하는 장애 아이 둘째 딸 리디아를 낳는다.&nbsp; 원래 성실한 성격의 에디는 극장주의 눈에 띄어 극장 하나를 관리하면서 주식에 관심을 두어 주식 중개인이 되고자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신용거래로 주식 매수와 매도에 뛰어들어 큰 부자는 아니지만 아일랜드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는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대공황. 한 방에 거덜이 난 캐리건 가족은 집도 작은 아파트의 6층으로 이사하고, 근사한 차도 팔고,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팔며 하루하루 지내게 되는데, 왕년에 목숨을 구해준 존 더넬런의 수하에 들어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며 푼돈을 벌다가 존의 한참 위 보스인 덱스터 스타일스에게 발탁되어 주로 돈 세탁에 관계된 일을 하며 다시 넉넉한 생활을 잠깐 누린다. 스타일스 씨와의 면담에서는 그의 철학대로 가족을 데리고 스타일스 씨 집을 방문했는데 이때 에디와 함께 간 가족이 에너 캐리건, 맏딸이었고, 스타일스 씨는 한 겨울에 추위를 무릅쓰고 맨발로 맨해튼 비치에 발을 담근 에너가 아마도 마음에 들어 에디를 고용한다.&nbsp; 에디는 열한 살 때 휠체어의 노신사 드비어 씨한테 어쨌든 사기 행각은 하지 말라는 교훈을 배웠던 터. 그간 스타일스 덕분에 잘 먹고 여유있게 살고, 무엇보다 둘째 딸 리디아를 위하여 전신 마비용 휠체어를 사 줄 수 있었지만 늘 자신의 일이 법 앞에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 찜찜했던 모양이다. 존 더넬런의 출연 목적은 에디와 딸 애너가 덱스터 스타일스와 관계를 맺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바트 시헨을 구해준 건 에디와 스타일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에디는 바트 시헨에게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이탈리아 갱단의 고위 세력가 덱스터 스타일스에게 터미네이션을 당한다. 에디 자신도 결국 그렇게 될 줄 알고 가족에게 쇼핑백에 가득 든 현금과 예금통장을 남기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후, 온몸을 철제 체인에 감겨 무척 깜깜한 3월의 맨해튼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을 당하는데, 보드빌 시절에 에디가 뭘 공연했다고? 후디니가 뭐?<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이제 열아홉 살이 된 에너 캐리건이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거대 군함에 쓰일 부품 규격을 재는 일을 하다가, 잠수해 선박을 수리하거나 조사하는 다이버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기어이 다이버가 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여태 소개한 내용은 에너가 아직 어린 시절에 국한한다.&nbsp; 애너가 하고 싶었던 다이버는 1940년대 초반의 미국에선 여성이 진입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제니퍼 이건은 앤드리아 모틀리 크랩트리라는 퇴역 육군 여성 심해 다이버를 발견하고 이이를 모델로 해서 어떻게 다이버가 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비롯해, 다이버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 당시 여성으로 과정을 감당하는 동안 가장 큰 장벽으로 여겨졌던 것을 충분히 취재했으리라. 여기에 독후감 초두에 썼듯이 인공조미료를 듬뿍 뿌려주기 위하여 이탈리아계 갱단의 최고 우두머리, 아마도 아흔 살은 넘은 듯 보이는 미스터 Q씨와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Q씨의 바로 아래 직급 정도로 보이는 덱스터 스타일스를 등장시킨다.&nbsp; 덱스터 스타일스 역시 맨해튼 비치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열었던 평범한 이탈리아 가정의 아들로 일찌감치 하이틴 시절에 Q씨 수하에 들어가 힘 깨나 쓰다가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여성 해리엇 베링어와 결혼한다. 덱스터도 훌륭한 갱 조직을 운영했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잘 나가게 된 건 처가집인 베링어 가문의 막강한 정치적, 경제적 끗발과, 베링어 가문과 Q씨의 묵언에 의한 이해관계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덱스터가 아무리 갱이지만 그래도 사나이답고, 자기 나름대로 의리 같은 것이 있더라도 미국 작가의 작품 속에 갱단 두목도 아니고 두세 번째 두목이라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곱게 살아있기 힘든 문학적 운명에 처해있기 십상인데 이 작품에서도 그럴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안 가르쳐드린다.&nbsp; 하여간 세월이 지나 자기가 처단한 에디 캐리건의 맏딸 애너, 일찍이 자기 집에 온 애너를 품평하기를, 용감하고 강한 아이라고, “얘들이 우리보다 더 강해요. 쟤들이 그걸 모르니 우리로선 다행이지요.”라고 했던 건 이미 잊었지만, 다이버가 되고 무엇보다 특별나게 아름답지는 않아도 충분히 성인이 된 다음에 덱스터 나이트클럽에 와서, 아무도 함부로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덱스터의 테이블에 턱 나타나서, 그의 뇌리에 에너를 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젊은 여성이 한 시절, 그렇게 믿고 일을 맡겼던 에디 캐리건의 맏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br>&nbsp;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다섯을 채우지 않은 것은, 예상했던 미국식 결말을 향해 착착 다가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반전이 혹시나 있을까 싶어 휙휙 날아가는 심정으로 후다닥 읽게 만드는 필력이라 할지라도,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소설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미국식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허탈해지는 심사를 숨기지 못하겠더라고.&nbsp; 작품 속에서 미국 상선이 독일 유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침몰하는 엘리자베스 시먼호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선원들은 여지없이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lt;메두사호의 뗏목&gt; 꼴이 났더라도, 독자는 정의로운 미국인이 결코 인육 섭취 같은 극단적인 생존을 거부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고, 중요한 등장인물은 결국 끝까지 생존해 평온한 삶을 유지하리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기대했던 긴장감은 아쉽게도 애초에 1도 없었단 거다.&nbsp; 씩씩하고 강인한 애너가 사랑이라기보다 한 순간의 욕정에 더 가까운 심정으로 살아생전 처음으로 맛본 엑스터시를 수반한 진짜 섹스를 통해 임신을 했을 때도, 다이버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임신중단을 결심하고, 공창에서 만나 친구가 된 넬을 통해 산과 의사를 찾아가 클로로포름 마취를 위해 마스크를 덮는 순간까지, 독자는 용감하고 강한 애너가 끝내 안 그럴 줄 알면서, 결국 출산을 선택할 줄 알면서도, 임신중단 수술을 받기 바랐지만, 제니퍼 이건은 단칼에 독자, 나의 바람을 거절해버렸다. 미국의 독자는 아직까지 속으로는 임신중단을 원하지 않거나, 적어도 임신중단 시행을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보수적인 나라가 미국이잖아.&nbsp; 만일 유럽의 여성작가였다면,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였다면 아마도 단칼에 처리해버리고 말았을 거 같다. 왜 애너는 여러 사람 힘들게 출산을 선택했을까? 미혼모이며, 고모 브리앤의 도움이 없으면 결국 다이버 일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태였음에도. 혹시 모르지. 제니퍼 이건도 그걸 바랐지만 애너 캐리건이 바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을지도. 내가 임신중단을 지지했던 건, 만일 당사자 애너가 내 딸이었다면, 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랬다는 뜻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562/32/cover150/89546574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562329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BL로 다진 솜씨, 인상깊은 - [창궐 -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0723</link><pubDate>Thu, 03 Sep 2026 04: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907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5167&TPaperId=174907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48/26/coveroff/k5021351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5167&TPaperId=174907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창궐 -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a><br/>이치호 미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치호 미치, 1978년에 오사카에서 출생한 일본 소설가. 여성이고 본명은 밝히지 않았다.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하고 잡지 같은 곳에 글을 쓰면서 데뷔, 주로 남성 청소년의 동성애를 그린 BL소설가로 활동했다. 여러 작품이 만화로 나와 있어서 아마존 검색하면 화면이 숱하게 넘어간다. 2020년엔 대표작이라는 &lt;예스 오어 노 오어 하프&gt;가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nbsp; 회사원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글을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회사에 다니는 지는 모르겠고, 하여튼 그때는 평일에 서너댓 시간 글을 쓰고 주말에는 쉬느라 외출도 삼가했다 한다. 이쯤 되면 슈퍼우먼 맞다.<br>&nbsp; 2021년, 이이가 마흔세 살 때 소설집 《스몰 월드》로 순문학 작가 데뷔를 해 주목을 받았고, 《창궐》로 2024년에 나오키 상을 수상해 내가 읽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다섯 권의 일본 작품 가운데 세 권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고 《창궐》을 포함해 두 권이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여러 번 말한 것 같은데, 일본 현대소설을 읽어보고 싶으나 아는 것이 없어서 일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문학상 수상작을 선택해 읽어보았다. 앞서 읽은 책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이 책을 끝으로 당분간 일본 현대소설하고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nbsp; 이치호 미치가 알려진 BL 작가. BL도 당연히 사랑인 건 마찬가지니까 사람의 섬세한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특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 실린 여섯 단편들이 섬세하면서도 극단적이지 않다. 등장인물도 청소년이거나 젊은 청년 세대가 많이 등장해, 읽는 중에 틀림없이 작가가 젊은 층일 것이라 여겼는데 1978년생이란 걸 알고 놀랐다. BL 작가 출신이라지만 《창궐》 작품 중에 동성애 장면은 안 나온다.<br>&nbsp; 《창궐》 속에 &lt;창궐&gt;이라는 표제 작품은 없다. 나오키 상을 받은 것이 2024년. 우리나라에서도 엔데믹을 선언한 시기. 그러니까 여섯 작품은 모두 펜데믹 시절에 쓴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니. 실제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실린 &lt;날개가 다른 새&gt;에서 가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이는 장면이 보이고 천천히 밤의 유흥가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마지막 작품 &lt;잔물결 드라이브&gt;에서는 이제 자기 얼굴을 보이기 싫은 경우에 가끔 마스크를 쓰는 정도. 마스크 쓰는 것이 펜데믹 시기에 익숙했던 터라 예전처럼 경원받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펜데믹이 지나갔거나 거의 막바지에 달했다는 뜻이겠지.&nbsp; 그러고보니 그렇구나.&nbsp; &lt;날개가 다른 새&gt;는 오사카 시절 중학생 시절 그저 알고 지냈던 동창 유토와 나기사. 유토는 원하지 않는 전공을 1년 하다가 때려 치우고 도쿄에 와서 주점 삐끼를 하며 살고 있던 차. 나기사는 파파카쓰,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면서 돈은 받는 아가씨, 우리말로 원조교제 비슷한 걸 해서 먹고 산다. 나기사가 유별난 것이 도쿄에 와서도 오사카 사투리를 구태여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 사실 특별한 건 아니다. 나중에 굳이 사투리를 쓰는 이유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만 소개하지는 않겠다.&nbsp; 근데 유토가 생각해보니 나기사는 오사카 고향에서 이미 죽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험하게. 안나 카레리나처럼 정거장에 도착하기 위해 천천히 속도를 줄여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 것도 아니고, 힘차게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건널목에서 뛰어들어 거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신체 훼손을 당해 죽은 것이 틀림없다. 근데 지금 도쿄에 와 있으니, 정말로 나기사인지, 아니면 나기사의 도플갱어인지 막 헛갈린다. 하여간 죽은 게 맞다. 그게 정말로 나기사였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br>&nbsp; 반면에 마지막 작품 &lt;잔물결 드라이브&gt;는 화창한 토요일에 한적한 교외 역에서 트윗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딱 보면 소위 번개? 번개 맞다. 그것도 첫 번개. 어쩌면 마지막 번개.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나이와 성별도 각양각색이다. 계정이름이 ‘오이 정말 싫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마리골드’, 중년 남자 ‘팥빙수’. 소녀 같은 분위기의 ‘케이트 모스’ 그리고 승합차를 가져와 이들의 이동을 책임질 나이 많은 남자 ‘동물원의 겨울’. 모두 다섯 명.&nbsp; 이들이 모인 이유는 집단 자살을 하기 위해서이다. 자살 방법은 번개탄. 진짜로 번개탄을 피우기 전에 독한 수면제를 몇 숟가락 퍼먹거나 산토리 위스키 같은 술을 왕창, 그러나 절대 토하지 않을 정도만 퍼 마시겠지. 어차피 번개탄의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토하긴 할 터이지만 그거야 죽기 바로 직전이니 알 바 없고. 그리하여 이들은 승합차에 올라 죽음의 장소로 이동하는데, 한 가지 작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이 가운데 케이트 모스가 불과 열두 살의 꼬마였던 것. 죽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그래, 사실 더 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문제의 실행 장소에 가 보니 이미 다른 차가 한 대 와 있고, 동물원의 겨울 님이 운전석에서 내려 짙은 선팅이 된 차에 다가가 들여다보니, 차에 탑승한, 아니지, 탑승했던 사람들 모두 이젠 불이 꺼진 번개탄의 일산화탄소를 충분히 넘칠만큼 흠향하고 벌써 저승행 특급을 탔던 거다. 이후에 어떻게 됐는 지는 당연히 안 알려드리고.<br>&nbsp; 그러니까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모두 죽음, 죽음 가운데서도 자살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 참, 시원하게 탁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스포일러라서 그럴 수도 없고, 밝히지 않으면 싱겁기 그지없는 독후감이 될 터. 그래도 결론을 말할 수는 없다.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 보시라고.&nbsp; 다른 작품도 괜찮다.&nbsp; 만일 당신이 여성이고, 우연히 정말 마음에 드는 외모의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가 하필이면 배민 배달원이라서 예컨대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주문하거나 아구찜 작은 것을 앱으로 주문하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가 음식을 가지고 올 확률이 있을 경우, 정말로 딱 내 마음에 드는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크게 먹고 싶지는 않지만 햄거버나 파스타를 주문해보고 싶을까, 아닐까? 나는 남성이라 여성 마음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안다. 그럴 수 있고,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 다만 &lt;로맨스&gt;의 주인공 유리처럼 도무지 절제가 되지 않고 남편이 집에 있는 휴일 빼고 하루에 두 번씩 주문을 해대면 그건 집착이라고 생각할 뿐.&nbsp; 근데 세상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몇이나 있지? 유미도 이래저래 헛물만 켠다. 오라는 남자는 안 오고 영 이상하게 생긴 남자만 줄창 올 뿐만 아니라 이 못생긴 배달원은 유미가 자기한테 반해서 주구장천 KFC에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을 오더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어째? 어쩌긴 뭐가 어째, 당연히 사고가 생기고 말지. 동네 소문이란 소문도 활랑 나 버리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그걸 이치호 미치가 참 귀신 같이, 재미있게 포착한다. BL로 다져진 솜씨가 거 참 녹록하지 않네. 이름을 기억해 둘 작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48/26/cover150/k5021351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48269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내가 아는 킨케이드의 아빠가 아닌 걸? - [애니 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88254</link><pubDate>Wed, 02 Sep 2026 04: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882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175X&TPaperId=174882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82/13/coveroff/89546417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175X&TPaperId=174882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애니 존</a><br/>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7월<br/></td></tr></table><br/>.&nbsp; 에세이가 아닌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은 2021년에 문학동네가 &lt;루시&gt;의 정소영 번역으로 출간해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어서 1년 후에 찍은 소설이 &lt;애니 존&gt;. 이 외에도 전에 읽은 킨케이드가 &lt;내 어머니의 자서전&gt;하고 &lt;미스터 포터&gt;. 그러니까 &lt;애니 존&gt;이 네 번째 읽는 킨케이드라는 말인데, 이이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분량은 사실 ‘장편’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구성으로 보면 장편인 건 맞는 듯.&nbsp; 그러나, 실제로 자기 주변, 부모와 자신을 포함한 경험담 비슷한 걸 쓰는 데 특화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짧지는 않은 장편을 미리 세 권 읽었으면, 앤티카 바부다 섬의 세인트존스 사람들과 부모 이야기는 다 읽은 셈이다. 2005년 현재 3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던 작은 도시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별난 혼인과 혼외자 같은 것까지 몽땅 알고 있는 처지에서 &lt;애니 존&gt;을 읽게 된 꼴이다.<br>&nbsp; &lt;애니 존&gt;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애니가 열 살 때 시작한다. 세인트존스 디킨스베이 스트리트 주택가에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의 지붕을 수리하는 동안, 때마침 여름방학이라서 한참 외곽 지역인 포트 로드에서 살았던 짧은 이야기부터.&nbsp; 왜 여기서 작품을 시작했을까? 어린 나. 이제 죽음에 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마당에서 보면 저기 공동묘지가 보인다. 열 살 먹은 애니는 무덤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언제 다시 애니 앞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 때로는 꿈에도 나타난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애니의 오빠를 포함해 아는 죽은 사람이 많다.&nbsp; 얼마 후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느 날 애니보다 어린 ‘날다’가 엄마 품안에서 죽는 일이 생긴다. 엄마 친구의 빼빼 마르고 고열에 시달리던 딸. 날다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엄마와 엄마 친구가 아이를 의사 베일리 선생한테 데려가던 중에 엄마 품에서 축 늘어져 그걸로 끝이었다. 날다의 엄마는 울기만 해서 엄마가 염을 비롯해 장례 일습을 맡았다. 애니는 보았다. 엄마가 손으로 죽은 날다의 얼굴을 쓰다듬고, 물로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그렇게 죽은 아이를 만진 것을. 그 손으로 애니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애니의 몸 속에 집어넣게 하는 것이 끔찍했던 기억.&nbsp; 이어서 죽은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nbsp; 애니보다 두 살 더 많지만 작은 체격의 지진아 소니아. 애니가 무척 좋아한 아이라서 소니아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괴롭혔던 아이. 임신중이던 소니아의 엄마도 갑자기 죽었다. 2년 동안 더 같은 반이었지만 이후로는 도무지 말을 걸 수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죽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다니, 너무 망신스러운 일 같았다.&nbsp; 날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 건너 이웃인 미스 샬럿이 엄마와 서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애니는 장례식을 쫓아다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숱하게 보았는데 그저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웃 학교에 다니던 곱추 여학생이 죽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묻히기 전에 곱사등을 한 번 만져보고 싶었단다.<br>&nbsp; 2장으로 넘어가면 이제 아빠가 등장한다. 엄마보다 서른 다섯 살이 더 많은 늙은 아빠. 집도 짓는 큰 목수. 집안의 자잘한 모든 불운은,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 아빠의 아이를 낳은 누군가가 엄마와 애니한테 저주를 걸어 해를 입히고자 하기 때문에 생긴 일로 친다.&nbsp;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실 저메이카 킨케이드 본인이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여자가 낳은 딸이라는 것을. 이미 아빠의 사랑이 식어 엄마 손을 잡고 찾아간 아빠는 엄마도, 친딸 킨케이드도 마치 소가 닭 보듯 했다는 것도. 이런 것들에 관해 킨케이드와 엄마도 별로 앙심을 품지 않고 살았다는 것도.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며, 그저 앤티카 바부다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nbsp; 그러니 &lt;애니 존&gt; 2장부터 등장하는 아빠가, 부모 가운데 특히 아빠가, 엄마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더 많아 무척 늙었을 아빠가 애니와 더 돈독한 정을 나누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아무래도 처음 쓰는 장편소설이라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기가 좀 뭐했던 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미혼모가 키우는 혼외자 가정이라는 게 그리 자랑은 아니잖아, 1949년생이라면.&nbsp; 이후 애니 존이 사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 다 한 번씩은 읽은 내용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했고, 열일곱 살이 되어 더 높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 기타 등등. 성숙해가면서 가랑이에 터럭이 돋고, 초경을 하고, 가슴은 그다지 커지지 않는 이야기까지. 딱 하나 이 책에 나오지 않는 건, 열일곱 살 때 영국이 아니라 미국 뉴욕주 한 가정에 ‘루시’라는 이름의 입주보모로 들어가 사는 이야기만 빼고.&nbsp; 그래서 이 책을 2022년에 읽지 않고, 다른 킨케이드의 작품을 제법 거친 다음에 읽으면, 별로 재미있지 않다. 139쪽에 본문이 끝나는 짧은 소설임에도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그저 자기 스토리에 자잘한 변주를 한 작품으로 읽힐 뿐. 한 작가의 소설은 역시 발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읽었으면 확실히 더 재미있었을 터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82/13/cover150/89546417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82136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당신의 여름은 견딜 만했기를 - [여름의 사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85627</link><pubDate>Tue, 01 Sep 2026 05: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856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815&TPaperId=174856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91/99/coveroff/89364248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815&TPaperId=174856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름의 사실</a><br/>전욱진 지음 / 창비 / 2022년 09월<br/></td></tr></table><br/>.&nbsp; 전욱진이 누군가 했더니 한때 수필집 《선능과 정릉》을 쓴 시인이구먼. 선능은 올해 명예교수가 될 응식이네 2층집이 있던 동네, 내가 졸업한 대일고등학교가 저 정릉동 산 꼭대기에 있어서, 선능과 정릉, 두 능 다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곳이라 읽어볼 생각도 안 했던 책이군. 하긴 에세이 모음집이면 애초에 읽을 엄두를 내지도 않았겠지만. 전욱진의 “선능과 정릉’은 아마 우리가 ‘선정릉’이라 부른 삼성동 거기를 말했던 듯하다. 아니면 말고.&nbsp; 별의 별 곳을 다 뒤져도 전욱진의 개인정보는 1993년 서울생이란 거밖에 안 나온다. 그럼 내 작은 아이하고 동갑일세. 왜 애꿎게 작은 아이 나이를 흘리는가 하면, 힘들여 시 쓴 시인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읽기는 어렵지 않게 읽히는데 정작 어떤 뜻을 전하려고 하는지 그게 매우 헛갈린다는 거다. 전田旭鎭 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 책방에서 이름을 낸 시인들의 시집 거개가 좀 그런 편이라서, 혹시 시 쓰고 읽는 일에도 세대 차이가 있는 거 아닐까, 이런 난감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를 전보다 확실히 드물게 읽는다. 가면 갈수록 시 읽기가 더 난감해진다. 그만큼 시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는 것 같아 나도 아쉽다.<br>&nbsp; 이 시집의 시들이 다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읽자마자 탁 이해가 가는 시도 있다.<br><br>&nbsp; 와사비<br><br>&nbsp; 물 맑은 냇가에서&nbsp; 서늘하게 자라&nbsp; 뿌리를 갈아 만들고&nbsp; 일본산이 유명하다나요<br>&nbsp; 특유의 매운 맛과 향이 있는데&nbsp; 혀가 아리고 콧등은 시큰하며&nbsp;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면서<br>&nbsp; 그러니 많은 양을 한꺼번에&nbsp; 입에 넣어선 안 됩니다.<br>&nbsp; 그러나 적당하면 알싸함 뒤에&nbsp; 은근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지요&nbsp; 흰 살 생선을 칼로 저미는&nbsp; 사람이 그랬습니다<br>&nbsp; 그때 나란히 앉아&nbsp; 그 얘기를 들으며&nbsp; 함께 기다리던 사람과는 이제&nbsp;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요<br>&nbsp; 그때는 동그란 눈을 같이 하고선&nbsp; 이게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고&nbsp; 과연 감칠맛은 살리는 거군요<br>&nbsp; 다시 와서 먹는데&nbsp; 맛있네요&nbsp; (전문. p.64~65)<br><br>&nbsp; 딱 그림이 그려진다. 일식집 바. 소위 ‘다찌’라고 부르는 곳. 좀 됐겠지, 전에 둘이 와서, 그게 옛 애인이 됐건, 그냥 친구가 됐건 하여간 둘이 와서 다찌에 앉아, 회를 떠주거나 초밥을 만들어 한 점씩 건네주던 요리사가, 이게 생와사빈데요, 하면서 이야기를 했겠지. 시집이 나온 게 시인이 스물아홉 살이니까 틀림없이 둘이서 일식집 다찌에 앉아 회 또는 초밥을 먹었던 것도 20대였을 거다. 그래 요리사가 설명해주는 걸 나름대로 재미있고, 새로운 지식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먹어 보니까 그럴 듯하게 맞는 말이기도 해서 딱 기억에 남았겠지. 그러나 그 사이에, 예전과 오늘 사이에 나 아닌 둘 가운데 하나가 내 곁을 떠났고, 오늘은 나 혼자 와서 회 또는 초밥을 먹었는데 외롭긴 했겠지만 맛은 그대로네. 하는 시. 이왕이면 전에 함께 온 사람이 옛 애인, 그냥 조금 사랑한 사람 말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죽고 살 만큼 사랑했던 이였으면 어땠을까? 뭘 어때, 그랬으면 아예 다시 와 볼 생각도 안 했겠지.&nbsp; 이 시, 쉽다. 다 이랬으면 좋겠다.&nbsp; 이런 시? 한 페이지만 넘기면 또 나온다.<br><br>&nbsp; 휴일<br><br>&nbsp; 거울 앞에 나 아니고 노동이 서 있을 때&nbsp; 누군가 날 부르는데 노동이 고개 들 때&nbsp; 곰살갑게 식탁 앞에 앉아 있을 때&nbsp; 일인용 침대 위에 포개어 누울 때&nbsp; 그게 나의 내부를 계속 궁금해할 때&nbsp; 그래 나도 펑하고 보여줄까 고민할 때쯤<br>&nbsp; 쉬는 날이 온다<br>&nbsp; 정오쯤 일어나서&nbsp; 햅쌀을 안치고<br>&nbsp; 거실 바닥 쓸고&nbsp; 화분에 물도 주고 하는 날<br>&nbsp; 쓸모없는 나절을 꼭 보낸 다음&nbsp; 사랑하는 소리를 듣고 내는 날<br>&nbsp; 노동한테 이겨먹기 위해&nbsp; 내가 제일 가엽다는 생각 하나로&nbsp; 누구 하나 미워할 필요 없이도<br>&nbsp; 간신히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날&nbsp; (전문. p.66~67)<br><br>&nbsp; 이 시도 즉각 접수된다. 휴일 전경. 혼자 사는 청년의 휴일 하루. 아주 바람직한 청년이군. “거울 앞에 나 아니고 노동이 서” 있으면 내가 곧 노동이라 휴일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노동자 신분이겠군. 하여간 다각도로 싱숭생숭할 때 휴일이 온다나? 착한 청년이라니까. 오정쯤에 일어나 대강 얼굴에 물 묻히고 나가서 삼각김밥에 라면 사 먹는 게 아니라 햅쌀 안치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이런 청년 있으면 당연히 사위감으로 눈 여겨봄 직하다. 그리고 곧장 청소도 하잖아. 장가들면 아내 고생은 안 시키겠네. 이렇게 자잘한 거 해주는 남편이 진짜 귀염 받는 거다.&nbsp; 그건 그런데, 다른 시들도 전부 이렇게 쉽고 편하지는 않다는 거.&nbsp; 좋건 싫건 간에 오늘이 9월 1일, 하여간 어쨌거나 오늘부터 가을이다. 드디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겁나게 덥지? 좋다. 이 시집의 제목도 “여름의 사실”이니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를 기억하며 전욱진의 여름 노래 하나 들어볼까?&nbsp; 여름은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면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리하여,<br><br>&nbsp; 몬순<br><br>&nbsp; 실바람에 거뜬히도 걷는 이가 많은&nbsp; 강변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nbsp; 그의 아들애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br>&nbsp; 손잡고 이어진 둘을 내가 지날 때&nbsp; 자주 강을 건너는 기관차도 지나고&nbsp; 어머니가 무슨 말을 들려주었는지&nbsp; 아들애가 말 따라 큰 소리 내더니<br>&nbsp; ‘따우 호아’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nbsp; 아이 어머니는 ‘기차’라고 일러준다&nbsp; 고향에서 쓰던 말인가보다<br>&nbsp; 그렇게 같은 말소리가 거듭&nbsp; 어린아이로부터 생겨나더니&nbsp; 강을 가로지르는 긴 빗소리&nbsp; 불어오는 물바람도 미지근히&nbsp; (전문. p.16)<br><br>&nbsp; 이 시도 수월하게 읽힌다. 난 어지러운 시는 이제 어려워서 별로 끌리지 않는다. 고르고 고른 시 역시 그래도 빨리 접수되는 시였구나. 이 대목에서 한 번 웃어야 하는데 시 읽는 소양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거 같아서 웃는 것도 좀 민망하다.&nbsp;&nbsp; 근데 나로하여금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2연 첫 행. “손잡고 이어진 둘을 내가 지날 때.”&nbsp; 손잡고 이어진 둘은 틀림없이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아들애로 보이는 사람이겠다. 그런데 내가 이런 둘을 지나가? 여기서 ‘내’가 ‘나의’ 즉 소유격 일인칭대명사? 아니면 강변이니까 강보다는 좀 작은 내川? 이건 좀 알아야 시를 그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모르겠다는 말이다. 다문화 모자가 등장하는 거야 뭐 제목을 “몬순”이라 해 놓았으니 제대로 된 몬순이 흔한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기구일 터이니 알아듣겠는데, 그래서 강을 가로지르는 길고 긴 비, 몬순이 올 것일진대, 저 “이어진 둘”이 뭐냐, 이거다. 처음엔 “이어진 돌”이라 읽어 징검다리 비슷한 돌다리로 알았지 뭐야. 이런 형광등 같으니라고. 혹시 이어진 둘이란 것이, 동남아에서 온 어머니와 다문화가정의 아들. 그러니 이것도 우리나라의 아열대화 비슷한 걸 떠올리게 쓴 것일까?&nbsp; 글쎄 이런 건 시인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준다니까?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이러고 말 걸?&nbsp; 하여간 장마, 이젠 기후변화로 장마를 극한 몬순이 끝나면 곧바로 들이닥치는 게 폭서다.<br><br>&nbsp; 폭서<br><br>&nbsp; 슬그머니 볕이 그늘로 들어온다&nbsp; 팔월 목전에는 볕도 버거운가보다&nbsp; 그늘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nbsp; 처지와 사정을 서로 묻고 답하며&nbsp; 처음 만난 사이에도 알록달록한데&nbsp; 지나가던 바람이 어디 길을 묻길래&nbsp; 책을 덮고 내가 먼저 가르쳐준다&nbsp; (전문. p.17)<br><br>&nbsp; 이 시도 재미있다. 더 좋은 건 짧기까지 하다는 거.&nbsp; 8월에는 볕도 버거워 그늘이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준다는 건, 그늘에 햇볕이 쳐들어와버렸다는 뜻이겠지. 덥겠다. 더워도 오지게 덥겠다. 8월 더위는 충분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축하합니다, 오후 세시 현재 습도 89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저 숨이 턱턱 막힐 터인데, 이상하게 시는 그리 덥지 않다. 그건 바람이 지나가면서 묻는 길을, 내가 책을 탁, 덮으며 갈 길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하여간 책을 덮으면서 길 가르쳐주는 일 하나는 시원하잖아.&nbsp; 당신의 여름도 그나마 견딜 만했기를 바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91/99/cover150/89364248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91993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