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8 Oct 2026 15:42: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모옌, 세상에 둘도 없는 입심 - [모옌 기담집 - 기기괴괴한 열한 가지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7329</link><pubDate>Wed, 28 Oct 2026 0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73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7913&TPaperId=175973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5/36/coveroff/k44213791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7913&TPaperId=175973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옌 기담집 - 기기괴괴한 열한 가지 이야기</a><br/>모옌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7년 만에 모옌을 책을 읽었다.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우치다 햣켄, 나쓰메 소세키에 이어 세번째로 출간한 기담집이 《모옌 기담집》이다. 아직 우치다 햣켄과 나쓰메 소세키의 기담집은 안 읽어봤다. 우치다는 모르겠고, 나쓰메 소세키는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모옌과 나쓰메, 시대는 다르지만 동양 문학의 두 거장의 기담집이라. 모옌은 그의 전작을 감안하면 기담,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옛 이야기를 스스로 지은 것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 모옌의 기담집을 읽으면서 떠오른 나쓰메 소세키가 쓴 기담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조밀조밀한 인간의 내면의 묘사를 주특기로 하는 나쓰메 선생이 엽기발랄하고 간혹 참혹, 잔인하기도 한 기담을 어떻게 썼을 지 궁금해졌다. 그만큼 모옌의 기담 적 입담 읽기가 즐거웠다는 뜻이다. 하긴 모옌의 입담을 따라갈 소설가가 세상에서 몇 명이나 있겠어?&nbsp; 모옌이 어린 시절, 배고픔과 외로움을 빼고 자신한테 제일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바로 두려움이었다고 서문 격으로 쓴 “두려움과 희망” 첫 머리에서 밝혔다. 모옌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산둥성 가오미시 둥베이향에서 나서 스물한 살까지 산 농촌 출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기는 산과병원에서 났지만 도시의 어둔 골목 안의 집에서 산 내 정서와 많이 닮았다. 희망은 모르겠고, 두려움이. 물과 산과 평야가 두루 펼쳐진 둥베이향과 오직 도로와 어둔 골목뿐인 서울의 고만고만한 동네라는 차이가 모옌에게는 희망이라는 깊은 인상을 갖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일 수 있고.&nbsp; 모옌과 내가 자란 (전쟁 끝나고 10년도 되지 않았던)시절, 특히 유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 건 책도, TV도 아닌 이야기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리하여 쟤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그걸 빌미로 네가 옳으니, 내가 맞느니 어린 마음에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모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주로 다른 생명체, 범, 곰, 여우, 늑대, 닭, 멧돼지, 지네 등 다양한 벌레, 거북이, 남생이, 자라, 잉어, 붕어를 비롯한 수생동물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어둠이 내려와 지평 위에 깔리면, 사람살이의 경계를 넘어 들어와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고, 심지어 악행을 벌여, 인간의 여성을 임신시켜 자신의 후손은 남기기도 하고, 몸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외연을 가지고 사는 일도 있고, 우습게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하는 등, 별의 별 내용이 다 있는데, 이게 또 아이의 귀를 통해 대뇌에 입력이 되면, 들은 아이들마다 다시 머리속에서 이야기가 재생산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이화, 다툼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야기의 핵심은 어둠과 다른 생명체의 인간으로의 갖가지 변용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이었다.<br>&nbsp; 농촌에서 스물한 살까지 산 모옌은 이런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도시에서 자란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던가, 이모의 손을 잡고 무심코 극장에서 본 우리나라 불멸의 고전 공포영화 &lt;월하의 공동묘지&gt;에서 병풍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도금봉 여사의 머리 위에서 길고 괴기스러워서 끔찍한 검정 손이 내려와 여사의 쪽진 머리를 왈칵 움켜잡는 장면이 얼마나 경악스러웠든지,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무서움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점점 더 자라면서 &lt;드라큘라(1958년작 “괴인 드라큐라”)&gt;. &lt;엑소시스트&gt;, &lt;오멘&gt; 같은 공포물도 마찬가지. 이런 영화를 보고 동무들과 영화관 옆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과 물만두에 빼갈 한 도꾸리씩 마시고 (그땐 중고딩들이 술 달라고 해도 한 번 째려볼 뿐 얼마든지 가져다주던 시절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도, 짙은 어둠만 깔린 외등 없는 골목에서 머리통이 180도 회전하는 악마의 변신이나, 악마의 현현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스러움에 등골에서부터 척추를 따고 오소소 소름이 돋던 기억이 있다. 아마 지금도 거리가 어둡고 골목에서 산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 늙은 지금도 말이다. 이런 것이 기억이고, 추억이고, 어린 시절의 각인이라서.&nbsp; 모옌도 이런 두려움을 서문에서 이야기하기에, 이 책은, 모옌이 어린 시절에 듣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중국 산둥성 지역의 기담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실었거나, 옛 기담에 자기가 가필을 조금 한 것이겠구나 싶었지만, 아니다. 1번으로 실린 &lt;보물지도&gt;와 2번 &lt;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gt;까지는 작가가 고른 옛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내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으나, 3번 이후로 넘어가면, 아이쿠, 아니구나, 이 책의 기담은 옛이야기 스타일로 모옌 스스로 새롭게 쓴 현대식 기담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린다. 그럼 모옌은 왜, 21세기에는 이미 그 효용을 TV나 SNS, 휴대폰, 게임에 넘겨준 옛 이야기 방식을 가져왔을까?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밥상 머리에 앉아 할머니한테 들은 요정과 귀신 이야기, 가장 대중적이며 효용이 크기도 한 즐기는 방법인 이야기가 더 이상 아래 세대로 전승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다가, 이제는 이야기의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자기 원래 이름 관모예管謨業를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莫言” 즉 글로만 말한다는 의미의 모옌으로 고친 사람답게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쓰기에 이른 거다.&nbsp; 모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지금 일흔한 살인데, 여전히 귀신 이야기와 동화 속 변용을 연상하면 두려움을 멈출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요정과 변신 이야기 속의 두려움은 어둠 속의 불빛처럼 앞길을 비추고, 두려움과 싸울 용기를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전해지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전승이 거의 끊긴 지금, 모옌은 자기나마 새로운 기담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싶다.<br>&nbsp; 설마 호랑이 고기 자셔본 분 안 계시지? &lt;보물 지도&gt;에는 다싱안링 산맥에서 백두산 수컷 호랑이를 잡아먹은 사람의 허풍이 나온다. 고기는 먹고 발라낸 수호랑이의 성기 길이가 1미터는 넘었는데, 말린 뒤에도 80센티미터나 됐고, 그걸 가지고 술을 담가 먹으면, 비아그라를 꽈배기라고 하면 그 창바이산(장백산, 백두산) 호랑이의 성기는 쇠몽둥이라면서 말이야, 호랑이고기 만두를 의지가 약한 남자가 먹으면 백이면 백 사고를 치게 돼 있어. 난 사고는 안 쳤지만 온몸이 증기기관처럼 달아올라 할 수 없이 친구가 하라는 대로 헤이룽 강의 1미터 두께 얼음을 깨고 그 속에 알몸으로 뛰어들었어. 강 위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서 운운. (p.23)&nbsp; 모옌의 입담은 경악 수준이다. 이게 두어 페이지 분량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인용한 것만 슬쩍 읽으면 진짜 입담의 맛을 알 수 없어 아쉽다. 두번째 작품 &lt;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gt;에서는 늑대 고기의 효용을 소개한다. 부위를 두루두루 소개하지만 여기선 내장 부분만 조금 옮겨본다.<br>&nbsp; “늑대 소장은 부추랑 같이 볶으면 오장육부를 싹 청소해주고요, 시멘트 공장 노동자들이 그걸 한 그릇 먹고 싼 똥은 바람만 쐬면 돌덩어리처럼 굳어서 망치로 쳐도 안 깨진다니까요. 그리고 늑대 항문은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황주에 타서 먹으면 치질에 끝장입니다. 밖에 난 치질이든 안에 난 치질이든 아주 뿌리까지 치료해서 절대 재발하지 않아요. 늑대 방광은 또 어떻고요? 거기에 연밥을 넣고 고아서 먹으면 아무리 고질적인 요실금이라도 단박에 낫는답니다.” (p.108~109)<br>&nbsp; 이것도 이렇게 짧게 인용하면 진짜배기 맛의 1할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바라노니, 만일 모옌의 끝판까지 가는 입심을 제대로 즐기시려면, 그냥 팍 읽어버리시라. 세상에 둘도 없는 입심일 터이니. 물론 1번과 2번 작품이 재미로 치면 제일이지만, 이후 작품이야말로 모옌이 시도한 현대식, 도시형 기담이라서 오히려 앞의 작품보다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만일 이런 기담이 모옌이 서문에서 주장한대로 아직도 효용이 있다면. 그건 더 생각해볼 일이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5/36/cover150/k44213791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35368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이 정도면 괜찮지? -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 국립극단 희곡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5237</link><pubDate>Tue, 27 Oct 2026 06: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52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6614&TPaperId=175952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60/9/coveroff/k6221366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6614&TPaperId=175952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 국립극단 희곡선</a><br/>이용훈.윤미현.김정윤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1957년부터 시작했다는데, 연도별로 수상작을 책으로 펴낸 것은 《2024 창작희곡공모 선정작》과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두 권인 것 같다. 이렇게 늦게나마 연도별 공모작 수상작을 책으로 남긴 일이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만시지탄도 감출 수 없다 2025년 희곡공모에는 모두 175편의 희곡이 응모하여 당선작 이용훈의 &lt;모노텔&gt;과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 윤미현의 &lt;옥수수밭 땡볕이지&gt;, 김정윤의 &lt;극동아시아 요리 연구&gt;를 선정해, 2026년에 국립극단에서 책으로 발간했다. 국립극단은 전에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젊은 극작가들을 발굴해 《희곡우체통 낭독 희곡집》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2019 펜데믹 때문에 2020년 낭독회 자체가 무산되어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한다. 그저 짐작이다.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매년 희곡공모가 이어지고 결과를 남기는 일은 의미가 깊다. 아무쪼록 끊기지 않고 계속 희곡공모와 희곡선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br>&nbsp; 당선작, 이용훈 작 &lt;모노텔&gt;.&nbsp; 모노텔은 경기도 서북쪽 국도에서 살짝 들어간 은밀한 곳에 있는 모텔이다. 20년 전에 전국적으로 시골 땅값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업종 가운데 하나가 모텔이었다. 그동안 팬션이나 자연휴양림, 기타 게스트하우스 등의 발달로 이제 모텔은 사양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희곡의 무대가 되는 모노텔도 이젠 도로보수 외국 노동자 등이 장기숙박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내국인 손님이 찾지만 전처럼 연인이나 불륜 커플은 드물고, 알코올 중독자가 몇 날 며칠 동안 아무 신경 안 쓰고 술을 퍼 마시거나,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를 맞거나, 정신 장애가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방’을 훼손시키려는 진상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nbsp; 한때 호텔 못지 않은 시설과 청결 등을 자랑한 모텔이 서서히 낡은 숙박시설로 변하는 도중에 모텔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평면 TV, 5G 와이파이 같은 장비도 들여놓고, 결제 역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세상에 지는 해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nbsp; 그런데 모텔 이름이 모노텔. 등장인물은 야간청소 노동자, 프런트 안내인, 주간 청소 노동자 부부, 알코올 중독자, 형사 두 명. 그리고 에필로그로 가면 다수의 군인과 유령이 등장하는데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내 의견으로는 에필로그, 완전히 뱀다리다.&nbsp; 모노텔. 다른 등장인물 중에 ‘당신’과 ‘나’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텔에 온 것이라기보다 혹시 이것들 동반자살하려고 온 거 아닌가 싶다.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린다. 하여간 이 두 명을 제외하고 작품은 거의 대부분 모노드라마 형식이다.&nbsp; 바로 앞에서 얘기한 커플 말고는 각 씬마다 한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몇 페이지에 이르는 독백을 한다.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지금의 모노텔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진상들과 종업원들 사이의 마찰이나 상호 불신감 등등.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별의 별 손님을 경험한 프런트 안내인과 청소 노동자들. 아무래도 모텔업이 전반적으로 사양 모드로 들어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띌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난장판과 우울. 재미있지만 밝게 재미있지는 않다. 당선작으로 뽑은 것에 불만 없다. 만일 에필로그가 없었더라면.&nbsp; 왜 에필로그?&nbsp; 이런 에필로그는 사족. 진짜 사족 중에서도 사족. 앞에 길게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br>&nbsp; 우수상 수상작인 윤미현 작 &lt;옥수수밭 땡볕이지&gt;도 비슷한 의견이다.&nbsp; 이 작품 속에는 1980년대 초반에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 출신 가족인 반쪽짜리 대문 집 어머니 가족과 당시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던 녹슨 대문 집 어머니 가족, 그리고 동년배이지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 대상으로 화장품 외판을 하던 빨간 대문 집 어머니 가족이 등장한다.&nbsp; 짧게 말해서, 40년 전에 구로공단에서 힘든 노동을 하던 부모,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노동자로 살며, 천안 부탄가스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아들, 수도꼭지 공장에서 오른 팔이 잘린 아들, 직장 내 상습적 성희롱으로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딸을 내세워, 가난의 세습, 힘든 노동이 대를 이어가는 절망의 현재를 그려낸다.&nbsp; 정말 가난은 절대로 세습되는 것일까? 세월이 조금 바뀌어 지금은 지도층 계급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 계급을 세습해주기 위하여 제도조차 자기들 입맛에 맞추려고 하고 있고, 이것이 가난의 세습보다 더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인데. 202X년에는 극빈의 상태에 처한 최하 계층을 제외하면 어떻게 해서든 상위계층에 진입할 “바늘 구멍 만한” 기회가 있기는 있다. 윤미현은 그 바늘 구멍 만한 기회에는 관심이 없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자기들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지도층 계급의 비겁함 정도는 함께 말을 해주었어야지. 증거가 있냐고? 있지만 그만 하자.<br>&nbsp; 다른 우수상 수상작, 김정윤의 &lt;극동아시아 요리 연구&gt;&nbsp; 연애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작품. 연애는 연애인데 남성 동성애. 연애 이야기는 결국 이별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nbsp; 주인공 심진원의 직업이 요리 연구가이다. 어떻게 연구를 하느냐 하면, 특정 요리에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전에 먹었던, 먹어봤던 음식의 재현을 의뢰하면 요구한대로 그 음식을 재현해주는 일이다. 쉽지 않을 일. 어쩌면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먼저 의뢰인이, 자신이 다시 맛보고 싶어하는 음식의 맛을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 몇 가지와, 그것의 강약 정도로 미각을 설명하고, 그 미각을 띄게 만드는 이름을 모르는 재료까지 설명해야 할 터인데, 이건 음악이나 회화를 문자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nbsp; 이것과 더불어 진원의 연인 승주의 관계. 승주는 게임 프로그래머. 그래서 작품 내내 게임과 관련한 묘사가 나오는데, 나는 게임 동네 언어는 거의 백치 상태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헤어진 연인 승주에 대한 기억 또는 추억, 그리고 애정을 빌미로 한 친절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간섭. 읽어볼 만하다.<br>&nbsp; 이 정도면 우리나라 희곡도 괜찮은 수준이다(아쭈? 지가 뭐라고.). 읽을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60/9/cover150/k6221366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60097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북해의 바닷가, 피오르의 성찬 - [바베트의 만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3277</link><pubDate>Mon, 26 Oct 2026 0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932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8867&TPaperId=175932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84/97/coveroff/89546988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8867&TPaperId=175932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베트의 만찬</a><br/>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03월<br/></td></tr></table><br/>.&nbsp;카렌 크리스텐체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은 영어권에서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타니아 블릭센 등 여러 필명을 썼다고 한다. 이이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롱스테들룬트에서 출생해서, 지금도 이이의 “카를 블릭센 박물관”이 룽스테들룬트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모양이다. 아버지는 부르주아 지주가문 출신의 작가, 군인,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선주船主 가문 출신으로 부르주아 유니테리언 상인의 딸이었다.&nbsp; 지적이고 보수적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위스콘신에서 치페와 원주만과 잠깐, 1년 반 정도 살기도 했다는데, 거기서 뭔 짓을 했는지 그 새에 딸을 하나 두었고, 귀국할 때는 맨손으로 올 수 없어서 몸 안 가득 매독균을 가져왔단다. 집에 와서는 하녀와의 사이에 혼외자 한 명을 낳아 세계 인구증가에 이바지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자신의 장모와 아내에 계속 충실하겠다고 다짐해서 충격을 주었다는데, 위키피디아에 영어로 쓰인 ‘mother-in-law’라고 썼으니,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 즉 이자크 디네센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하녀와 하녀의 엄마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한 내가 짱구였다. 나는 잠깐 헛갈렸지 뭐야? 하여튼 매독으로 인한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빠는 이자크, 즉 카렌이 아홉살이던 1895년에 쉰 살의 나이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숟가락 놨다.&nbsp;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아기 입에 은수저가 물려 있었던 이자크는 아빠가 죽은 후에 엄마하고 외갓집에 가서 확실한 유니테리언 정서 속에서 본격적인 부르주아 숙녀로 성장해가며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nbsp; 열세 살이던 1898년에는 스위스에서 1년 동안 프랑스말을 배웠고, 열일곱 살 때 코펜하겐에서 샬롯 소데 미술학교, 1903년부터 3년 동안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20대 중반에는 학문의 외연을 키우기 위하여 파리, 런던, 로마에서 공부했단다.&nbsp;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은 부계쪽으로 사촌의 가문이라고 나와있다. 유럽 종자들 족보는 좀 이상하다. 그러면 이자크 디네센도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튼 이자크가 사촌 한스를 좋아해 안달을 했지만, 한스가 눈길 한 번 안 주는 바람에 잔뜩 열을 받은 이자크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쌍둥이 형제 브로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한테 안다리 후리기, 진한 관계를 맺어 ‘닭 대신 꿩’을 낚았다.&nbsp; 워낙 큰 부르주아 가문이라서 이 집안의 재산은 세상 곳곳을 통해 나날이 불었는데, 한스 대신 브로드와 결혼한 게 조금 걸렸는지, 연인은 덴마크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며, 일단 가문에서 커피 사업에 투자한 케냐 몸바사로 가서 1914년에 결혼신고를 해 카렌은 본격적으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의 자리에 올라, 이혼을 거쳐 남편이 재혼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남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즐겼다. 그러면 뭐해? 결혼 1년 후인 1915년 남편 블릭센 남작이 장인을 본받아 덜컥 매독을 옮아와 부부는 이후 수은치료에 이어 비소 치료를 받았고, 이 영향 때문에 이자크는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야 했던 것을.&nbsp; 이후 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곤란한 개인사를 엮었더라도 당시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한 복지를 누렸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자. 하여튼 케냐에 살 때 경험한 건 우리나라에 이자크 디네센이 아니라 카렌 블릭센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lt;아웃 오브 아프리카&gt;로 써서 엮었다. 그렇게 한 세상 잘 살다 간 부르주아 소설가.<br>&nbsp; 《바베트의 만찬》은 중단편 다섯 작품이 실린 소설집.&nbsp; 이자크 디네센은 당시 유럽 문학계가 알아주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던가 보다. 읽어보니 그럴 만하겠다. 진짜 재미있게 구성으로 그걸 또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단, 20세기 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읽으면 어떠냐고? 물론 재미있다. 근데 작품들이 성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초년생 정도가 읽으면 아주 딱일 듯하다는 말씀.&nbsp; 이 이자크 디네센은 소설가로 나름대로 조금 불리한 입장이기도 했다는데,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몇 번인가 이이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던 “스칸디나비아 작가 우대” 또는 편향의 의심을 떨치기 위하여 최종 결정자를 뽑을 때는 디네센을 제외했다는 풍문이(겠)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몄다. 그러나 지금 읽어보면 중학생 수준으로.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걸 넘어서 화를 내는 분도 있을 터이지만 한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nbsp; 《바베트의 만찬》의 표제작 &lt;바베트의 만찬&gt;이 이자크 디네센의 대표작이라고 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나 이이가 죽고 34년이 지난 1996년이라 원작에 대한 저작권료는 누가 챙겼는지 몰라? 하여튼 그리하여 오늘 독후감은 중/단편 &lt;바베트의 만찬&gt;만 읽어보는 걸로 하겠다.<br>&nbsp; 작품의 무대는 노르웨이 작가들이라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숱하게 무대로 삼은 피오르 지형의 바닷가에 오종종한 집들이 원색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 이 동네를 ‘베를레보그’라고 하자. 이 가운데 노란색으로 단장한 제법 큰 집에 나이 많은 두 처녀 자매가 살았으니 둘 다 키 크고 늘씬한 몸매를 평생 회색과 검은색 드레스 속에 감추고 다녔다. 워낙 단정한 옷차림이어서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 이들 가운데 언니가 마르티네, 동생이 필리파. 적어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nbsp;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독실한 교파를 일군 목사이자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결혼해서 딸 둘을 두었더라도 두 딸은 남자한테 손목 한 번 잡혀보지 못할 삶을 살게 만든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했을 터. 그의 주장은,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해서 진정한 현실은 오직 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있다고 굳게 믿어, 세속의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 그럼 됐지, 뭐하러 늘그막에 결혼을 해 딸 둘을 두었느냐고? 이런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떴고, 숟가락 놓자마자 중심을 잃은 신도들은 서로 질시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고, 미워하고, 떼를 지어 무리끼리 대놓고 싸우면서 흐지부지 되었어도 그러나, 여전히 자매의 노란 집에 모여 계속 성경을 읽고 있기는 하다.&nbsp; 12년 전, 비오는 깜깜한 밤. 노란 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을 열어보니 비탄과 공포에 떨며 갈 곳 없이 헤매는 도망자 여인이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이를 집에 들여 몸을 추스리게 한 다음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여자의 이름이 바베트. 분명 작은 노란 집에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큰 체격의 프랑스 식 미녀. 바베트는 자신이 요리를 좀 할 줄 아니까 하녀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 만하면 된다고. 자매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저 잡안의 잡일만 해오던 나이 어린 동네 꼬마를 집에 보내고 대신 바베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nbsp; 이렇게 산 것이 12년 세월이니 이젠 서로 알 건 다 알겠지? 이 가운데 하나가 바베트한테는 자동 발행되는 로또 복권이 한 계좌 있다는 것. 자주 말하기를, 언젠가 이 복권이 맞기만 하면 1만프랑 이상의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란 집의 늙은 자매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소설 처음 보나? 저 뒤에 가면 정말로 복권이 맞아 작품이 뒤집어지겠는 걸? 이런 꿍꿍이를 하기 시작한다. 권총이 나오면 언젠가는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듯이, 이자크 디네센이 괜히 복권 이야기를 한 건 아니잖아?<br>&nbsp; 자매가 젊은 시절에는 둘 다 미스 스칸디나비아 진 수준의 미녀였다. 하도 아름다워서 피오르 지역에서는 자매를 채 갈 남자는 없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그냥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 살면서 한 번도 인연을 만나지 못하기도 쉽지 않다.&nbsp; 먼저 등장한 남자가 로렌스 로벤히엘름 중위. 바깥 세상에서 온 경기병 장교. 하도 골통짓을 해 빚더미에 올라 열받은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시집간 시골마을 포숭으로 보냈는데, 거기가 베르레보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것. 로벤히엘름 중위는 온갖 공을 들였지만 기어이 언니 마르티네한테 딱지를 맞고 정신을 바짝 차려, 군기도 바짝 오른 상태로 부대에 복귀한다. 이후 건실하고 용맹한 군인으로 변신해 줄기차게 승진을 거듭, 덴마크의 훌륭한 장군이었다가, 명예로운 퇴역장군으로 늙어간다.&nbsp; 두번째 방문자는 당시 마흔 살이던 파리의 유명 오페라 가수 아실 파팽. 그가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1주 공연을 마치고 주위 권유로 노르웨이 해안가에서 쉴 목적으로 온 곳이 베르레보그. 여기 교회에 갔다가 둘째 필리파가 놀라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뽑아내는 성가를 듣는 순간, 사랑을 느끼면서 목사에게 특별 성악 레슨을 제안해 받아들여진다.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와 야생화, 북유럽의 백야가 담긴 여인의 음성이라니 최고의 수식은 다 모인 거다(키르스텐 프라그슈타트?). 그러나 아실 파팽 역시 평생 숫처녀로 지낼 각오로 충만한 필리파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br>&nbsp; 이제 남은 건 뭐? 그렇지! 바베트의 복권 당첨. 드디어 터졌다. 이제 자매는 바베트가 큰 돈을 얻었으니 틀림없이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바베트는 파리로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 돈으로 직접 만찬을 열어 그동안 보살펴준 자매와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겠다고 뜻을 전해 받아들여졌다.&nbsp; 피오르 지역의 만찬이래봤자 대구 요리와 청양고추 넣고 끓인 대합탕 정도겠지. 이렇게 생각했을 터. 하지만 바베트는 전직이 파리에서도 최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부르주아 중에서도 최 상류 부르주아들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니 세상에나. 나폴레옹 3세 말기, 프랑스 코뮌 시절에 코뮌 그룹에 동조해 바리케이트에 올랐던 일 때문에 전국에 지명수배되어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까지 도망했지만 정작 직업은 정치적으로는 반대했던 부르주아의 혀를 위한 요리사였던 것. 이런 바베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뻑적지근한 만찬을 꾸몄어도, 노르웨이의 한적한 바닷가, 가옥이라고 백 채가 될까 말까 한 코딱지 만한 마을의 촌 사람들이, 바베트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든 고급 요리를 먹고 그게 좋은지 아닌지도 몰랐던 만찬.&nbsp;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날의 손님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포숭의 고모댁을 방문한 덴마크 장군이 있었으니, 누구나 존경해마지않는 로벤히헬름 장군이었던 것. 그는 식전주가 세상에서 제일 최고급이라는 것을, 수프 역시 파리에서도 쉽게 맛보기 어려운 바다거북으로 만든 것임을, 케비아가 덩어리 채 식탁에 놓였으면서도 색깔 때문인지 손님들의 포크가 여간해 닿지 않았다는 것 등등, 모든 음식을 이해하고, 먹어본 적이 있고, 심지어 파리의 어느 식당의 주방장 누가 만들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겸손한 어조로 고마움을 얹어 이야기한다. 마음 속에서 여전하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사랑하다가 죽을 첫사랑 마르티네에게.&nbsp; 그러면 바베트는? 이튿날 덴마크를 거쳐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랐을까? 오를 수 있었을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84/97/cover150/89546988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8497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인식의 경계선에 대하여 - [행복한 소설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7801</link><pubDate>Fri, 23 Oct 2026 0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78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87&TPaperId=175878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off/89364399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87&TPaperId=175878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행복한 소설가</a><br/>임현 지음 / 창비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1983년에 전남 순천에서 나서 전남대 국문과와 한예종 연극원을 다녔다. 2014년에 등단해 12년 동안 중편소설 1편과 단편소설집 세 권을 출간했고, 2017년에 문학동네가 주는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행복한 소설가》는 임현이 2021년부터 2026년 상순까지 쓴 단편을 모은 책.<br>&nbsp; 한예종 예술사(M.F.A.)를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이러네, 저러네 뭔 말이 많을 수 있을까? 오늘 독후감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쓰려 한다. 잘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nbsp; 전에는 임현처럼 쓰는 작가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영롱한 색의 거미줄처럼 섬세한 문장들이 대세를 이루어 이제는 단단하게 다진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글을 읽으면 반가울 정도다. 임현의 글도 그랬다. 반가웠다. 비록 글이 담은 서사가 예전 시절 같이 좀 큼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nbsp; 그러나 나는 이 독후감에서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어쨌든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표제작품인 &lt;행복한 소설가&gt;에서 말한다. 작가에게 시간이 나면 하는 일:<br>&nbsp;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목록을 확인하기도 하고, 몇해 전에 출간한 내 소설집에 혹시라도 새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나 찾아보며 실망하기도 했으며” (p.257)<br>&nbsp; 임현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낸 책의 독자 서평이나 댓글을 찾아보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작가들도 예외가 아닐 걸? 하지만 그걸 자기 스스로 찾아보고, 좋아하거나 실망한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솔직한 감상을 쓰지 않는다. 벌써 작가, 역자, 또 ‘엮은이’ 심지어 출판사 편집자나 직원한테 여러 차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괜히 피곤하게 신경쓰이는 피드백을 다시 받기 싫다.&nbsp; 거기다가 임현의 작품은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간혹 심각하게 우울하고, 작품마다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자살에 실패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기가 낸 책의 독자 리뷰 같은 걸 꼼꼼하게 읽는다고 하면, 아이고, 거기다 대고 쥐뿔도 아는 게 없는 독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nbsp; 자꾸 길어진다. 하여간 자기 글에 대한 평가를 찾아본다는 작가의 글에 대한 코멘트는 줄이는 게 상책이다.&nbsp; 작품들이 마음에 든 편이다. 그렇다고 팍, 와서 꽂힌 정도는 아니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br>&nbsp; 잘 생각한 거다. 임현은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반응한다.<br>&nbsp; “누군가는 나의 문장들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게 또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혹스럽거나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딘가 답답한 마음에 혼자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릴 때도 많았다. (p.264)<br>&nbsp; 임선생도 쪼잔하게, 작품을 한 번 썼으면 그만이지, 그걸 독자가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는다고 별 생각을 다 하시네. 모든 독자가 자기 의도대로 읽어줄 걸 바랐나? 그걸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커지면, 독자리뷰에 비밀댓글 달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다. 그러지 마시라. 책 팔았으면 다음엔 책을 샀거나 빌려 읽은 사람 거다. 이후엔 괜한 참견일 뿐이다. 쓸 때 좀 더 잘 쓰면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작가질 하기 힘든 것이지 뭐.<br>&nbsp; 하나만 더 쓸까? 임현은 사람 또는 사회의식의 선악, 그 절묘한 경계선을 관찰하는 게 장기인 것 같다. 작품 속에 소위 의식 테스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갑과 노트북을 공원 벤치에 올려두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누가 훔쳐가지 않는지 관찰하는 거. 또는 진상 고객으로 분장한 전문 배우가 역시 종업원으로 분장한 전문배우한테 호통치고 급기야 종업원이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면, 이들 주위의 손님이나 행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테스트.&nbsp; 나도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 이런 거 몇 번 봤다. 근데 볼 때마다 열이 뻗쳐 기분이 무척 상했다.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희들은 어떤 종자이기에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양심에 따라 행위하지 않은 피시험자가 있어서 그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건 어떻게 하고? 아니, 이런 건 전적으로 다음 문제이고, 도대체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나가는 자유인을 이리 욕보일 수 있느냐는 거다.&nbsp; 임선생도 이런 거에 한 번쯤은 시비할 만했건만 그건 또 그냥 지나가버리더군. 뭐 그럴 수도 있겠지.&nbsp; 잘 읽었다. 문장이 탄탄해서 좋았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을 관찰하는 시각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찾아 읽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건필 바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150/89364399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100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치유 받아야 하는 이들에 대한 작은 서사시 - [밤의 가장자리에서 - 2024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5828</link><pubDate>Thu, 22 Oct 2026 04: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58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8162&TPaperId=175858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69/coveroff/k2621381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8162&TPaperId=175858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의 가장자리에서 - 2024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a><br/>제인 앤 필립스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도시 버케넌에서 출생한 작가. 52년생이니까 벌써 일흔네 살이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몇몇 유명작가가 그러했듯이 아이오와 대학 내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 학위에 준하는 M.F.A. Master of Fine Arts를 받았다. 이 코스를 밟은 미국 작가들 가운데 유명 작가 몇 명만 꼽아보면, 존 치버, 필립 로스, 매릴린 로빈슨, 앤드루 포터, 마이클 커닝햄 등이다. 이 정도면 미국 문단의 한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수준.&nbsp; M.F.A.를 취득한 후 젊은 시절동안 다른 작가들이 겪는 몸살도 좀 앓다가, 작품, 주로 단편소설집을 출간해 두각을 나타냈고, 덕분에 여러 대학에 출강할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2005년부터 20년까지 15년 동안 러트거스대학 뉴어크 캠퍼스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고. 재직중에 러트거스 대학에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비슷한 M.F.A. 과정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했단다.&nbsp; 경력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지금 독후감을 쓰는 &lt;밤의 가장자리에서 Night Watch&gt;가 2024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이 돋보인다. 책의 출간은 2023년이니 이때가 일흔한 살. 가장 최근의 작품이고 이제는 고령이라, 어쩌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겠다.<br>&nbsp; 소소한 불만은 왜 우리말 제목을 “밤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했을까, 하는 것. 원문 그대로 “야경꾼”이라고 하면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출판사의 고심도 이해가 가지만 책을 다 읽어보면 역시 “야경꾼”이 제목으로 더 그럴 듯하다.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보자.&nbsp; 작품의 무대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전체가 애팔래치아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했고, 서쪽으로 조금 평원이 펼쳐 있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노랫말에도 들어 있는 동네라 올드팝 팬들한테는 익숙할 수도 있을 걸? 이곳 산악지형, 아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능선 바로 아래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사는 열두 살 소녀 코나리가 사실상 주인공이다.&nbsp; 시간적 배경은 1874년과 10년 전인 1864년. 1864년이라면 61년에 발발한 미국 내전이 가장 뜨겁게 불이 붙던 시기.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것 보다 코나리가 이곳 산골에서 출생하게 된 내력부터 알아보자.<br>&nbsp; 오래전, 더블라 할머니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 더블라 할머니 가족들은 아일랜드의 기근을 피해 진짜로 거지꼴을 하고 뉴욕항에서 내려 지친 발을 끌고 남부 농장지대에 도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당연히 폭력적이었지만 어린 딸 더블라는 예외였다. 조금 세월이 흐르자 두 오빠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버지 역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백인 지주들은 이 아일랜드 이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양을 관찰하던 흑인들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더블라는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민간약재나 민간의료 같은 것을 아주 잘 배웠는데, 이게 백인 지주가 보기에는 턱없이 사악한 주술 같았고, 검둥이 노예들 눈에는 자기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민간요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나름대로 더 친해졌던 모양이다. 더블라가 성장해 큰 노예농장의 유모로 들어갔는데, 집의 여자 주인이 몸이 약해서인지 낳은 아이들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이런 집이었다.&nbsp; 나이 지긋한 노예 여자가 하루는 갓난 아이를 데려왔다. 흰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한 잘 생긴 유아. 얼마 전에 죽은 늙은 농장주가 마지막 열과 힘을 다 해 마지막으로 여성 노예의 몸에 만들어 놓은 사내 아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건 아무도 모르고, 피부색이 하야니까 더블라의 사촌이 낳은 아들, 그러니까 더블라의 조카로 삼아 키우면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름도 없는 ‘그저 아이’는 농장주의 아이들이 더블라의 젖을 다 먹고 난 후에 남은 젖을 빨 수 있었고, 그게 모자라면 묽게 쑨 오트밀 같은 걸 먹였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키가 크고, 힘도 세고, 기골이 장대한 소년으로 자랐다.&nbsp; 줄줄이 사산을 하거나 낳은 아이들이 크지도 못하고 픽픽 죽어가던 농장주, (더블라한테 갑자기 생긴 조카와 사실상 배 다른 형뻘인 농장주)한테도 그래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조금 큰 아들이 하나 있었고, 이제 새롭게 딸을 엘리자를 얻었지만 만날 아프기만 했던 아내는 대신 세상을 떴다. 이 엘리자를 받은 사람도 더블라. 남자와 노예만 있는 집에서 엘리자를 키운 사람 역시 더블라. 엘리자는 더블라를 엄마처럼 따랐고, 무엇이든지 상의했다.<br>&nbsp; 세월이 흘러 완전한 청년이 된 더블라의 조카는 말 관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마구간지기의 도제로 들어갔고, 엘리자 역시 나날이 커서 어느덧 열여섯,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근데 이 두 십대 청춘들이 서로 좋아하는 거라. 그게 어른들의 눈에 안 보이고 배겨? 그걸 눈치챈 엘리자의 아버지는 천하디 천한 아일랜드 잡것들의 후손이 감히 자기 딸을 넘보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날을 잡아 청년을 붙잡아 매고, 농장 소유의 말 엉덩이에 하듯이 농장 소유임을 드러내는 낙인을 엉덩이가 아니라 가슴팍에 찍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피가 철철 흐르는 낙인 위에다 채찍질까지 해버렸다.&nbsp; 더블라 아주머니가 아일랜드의 민간요법으로 여러 약초와 동물성재료를 섞어 만든 고약을 바르기도 하고 약초를 태워 피운 연기로 훈증을 해 주어 일주일 만에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나았다. 청년 입장에서, 더 정확하게 말해 “청년들”입장에서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달도 없는 그믐밤, 더블라 아주머니와, 이이의 조카라고 알려진 청년과, 농장의 아가씨 엘리자는 마구간에서 말 세 필을 끌어내 조용히 암흑 속으로 사라져 북쪽으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북쪽 산골짜기로 떠나갔다.&nbsp; 이때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조카는 정상 상태가 아니었고, 평생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본 엘리자도 홀몸이 아니어서, 주로 키 크고 강단 넘치고, 힘도 세고, 신기도 좀 있는 더블라 아주머니가 이들을 데리고 애팔래치아 산맥, 보수적인 부자들이 빼곡하게 몰린 버지니아를 가르는 산맥의 서쪽, 앞으로는 웨스트버지니아로 불릴 지역에 정착한다. 엘리자는 첫 아이를 사산한 뒤, 비탈에서 밭을 개간하고, 사냥도 하고, 과일도 수확하며 고생스럽지만 행복한 나날을 지내다가 딸을 낳았으니 이름을 ‘코나리’라고 했다.<br>&nbsp; 코나리가 세상 구경을 하기도 전에 미국 내전이 터졌다. 정의감에 불타는 코나리의 아빠이자 더블라의 이름없는 조카는 단박에 북군에 가담하기로 결심해 집을 떠나, 앞으로 십여년 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예정. 엘리자는 남편도 없이, 자기를 받았고, 젖을 먹였으며, 엄마나 다름없이 키운 더블라 아주머니에 기대 딸을 낳았으니 코나리는 앞으로도 아버지 볼 날이 없을 팔자였겠구나.&nbsp;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시절에도 세월은 갔다. 그리하여 1874년이 왔고, 1861년 12월생이라 아직 열두살에 불과한 코나리는, 꼬맹이라고 부르는 남동생, 그리고 태어난지 불과 몇 주 안 되는 여자, 남자 쌍둥이가 생겼다. 자기를 키워준 더블라 할머니의 집은 능선 거의 꼭대기에 있어서 어릴 적에는 자주 올라가 할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파파와 마마, 그리고 터울이 많이 나는 세 동생과 산다. 근데 문제가 있다. 엄마는 모든 의욕을 놓은 상태. 이젠 말도 안 한다. 이른바 실어증.&nbsp; 파파라는 남자가 코나리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란 건 팍 이해가 가지? 게다가 남군 출신이다. 전쟁 중에 껄렁한 북군과 함께 코나리의 집에 쳐들어와, 먼저 엘리자를 겁탈하려다가 오히려 엘리자에게 죽임을 당한 북군을 묻어 버리고, 집안에 있는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 재산, 사람, 땅, 정신까지 몽땅 소유해버린 악당. 자신을 이름 대신 파파라고 부르라는 가스 라이팅 전문가이자, 나중에 밝혀지듯 정신이상자이면서 사이코패스. 그렇다고 연쇄 살인을 할 정도의 깊은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전문가가 봐도 그런 성향이 농후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집은 엉망이 됐고, 코나리의 세 동생 모두 파파가 마마 한테 만든 것인데도 전혀 관심조차 없다.&nbsp; 마마는 쌍둥이를 낳아 가슴에서 젖이 철철 흐르지만 젖을 먹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루 종일 모든 집안 일도 하고 꼬맹이, 큰 동생을 숄에 묶어 가슴에 안고 다니는 코나리가 쌍둥이들을 엄마 가슴에 가져가 직접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켜준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nbsp; 파파라는 작자는 집안 꼴이 이럼에도 철저하게 더블라 할머니와의 접촉을 금한다. 눈에 띄기만 해도 권총을 쏘며 접근하지 못하게 위협할 정도이지만, 더블라 할머니는 아일랜드 민속, 민간신앙에서 배운 통찰력의 눈으로 이 가족을 훤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파파도 죽을 지경이었겠지. 천성이 양아치인데 이 산골짜기에서 좁은 동네에 박혀 세월을 보내자니, 그것도 실성한 여자와 실성한 여자가 낳은 네 아이하고 함께 지내려니까. 그리하여, 나중에는 더블라 할머니의 현명한 설계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하루는 시내의 큰 부잣집 남자가 상처를 하여, 죽은 아내가 입던 고급 드레스, 셔츠, 내복, 신발 일습을 얻게 되었고, 그걸 마마한테 입혀보니, 불쑥, 좋은 생각이 드는 거였다.&nbsp; 이 지긋지긋한 것들을 다 묻어버릴 수도 없으니, 꼬맹이와 쌍둥이 가운데 남자 아이는 아이 없이 혼자 사는 과부한테 맡기고, 여자 아이는 불임가족한테 키워달라고 한 후에, 마마와 코나리를 마차에 태워 동네를 떠났다. 이제는 혼자 살고 싶은 것. 코나리한테도 아이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달거리를 시작하지 않아서, 아무리 악당이라도 초경도 하지 않은 아이하고는 관계하고 싶지 않아, 코나리를 마마와 함께 버리기로 결심한 거다.&nbsp; 원래 큰 농장의 고명딸 출신인 엘리자한테 비싼 비단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세상에 이런 규수가 없다. 그래서 파파는 코나리에게 앞으로 마마한테 꼭 “재닛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코나리는 재닛 아가씨를 돌보는 몸종 정도의 하녀로 지내고.&nbsp; 이렇게 도착한 으리으리한 곳이 마치 왕자와 공주가 사는 아름다운 궁전 같았는데, 시계탑과 첨탑까지 있는 그곳 대문의 황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nbsp; “트랜스 엘러게니 정신병원”<br>&nbsp;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코나리. 엄마는 당연히 귀한 집안에서 자란 재닛 아가씨, 코나리는 이름을 ‘엘리자 코널리’라고 즉석에서 고쳤다. 파파가 이들을 태우고 병원 앞 도로를 서성거릴 때, 창문 안쪽에서는 키 크고 건장한 북군 부상병 출신의 나이트 워치, 야경꾼이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마차가 떠나고 여자 두 명이 노크로 현관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안으로 맞아주니, ‘오셰이’였다.&nbsp; 폭탄 파편을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맞아 눈알이 빠지고 두개골 제거술을 받은, 완전한 기억 상실자.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 보기 힘든 부위의 환자라서 원장이 오셰이 씨에게 집중 치료를 해 생존하게 된 거한. 눈이 있던 자리에 원뿔 모양의 안대를 고정시켜 달고 다니는 오셰이 야경꾼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꼬마 아이 위드.&nbsp; 이들 모두 치유받아야 하는 환자들. 이들에 대한 작은 서사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69/cover150/k2621381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9697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산다는 것 - [뜨거운 태양 아래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3824</link><pubDate>Wed, 21 Oct 2026 03: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38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702&TPaperId=175838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5/32/coveroff/k4921307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702&TPaperId=175838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뜨거운 태양 아래서</a><br/>가산 카나파니 지음, 윤희환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가산 카나파니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쉽다.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 작가는 아모스 오즈와 다비드 그로스만 등 제법 알려진 반면, 유대인에 의하여 2천년 동안 살던 터전에서 맨손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이름난 작가는 별로 알지 못한다. 갈릴리 태생의 1974년생 아다니아 쉬블리 정도만 눈에 익다. 유대인. 유럽에서는 숱한 고난과 학살과 멸절의 위협을 고스란히 당한 민족이지만, 중동과 북아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당한 피해의식이 마치 특권인 양 현지인 종족들을 탄압해도 되는 것처럼 비타협 착취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 선한 신의 선한 뜻을 악하게 실천하는 종족이다.&nbsp; 물론 많은 유대인은 이런 정책에 반대하겠지. 이들과 달리 평화를 주장하는 다수의 선한 유대인은 불행하게도 논의에서 제외된다. 2차세계대전 전후 선량한 다수의 독일인들이 논의에서 제외되었듯이. 이 문제적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악행으로 인해 고스란히 삶의 모든 것과 생명 자체와 신체 일부를 상실당한 팔레스타인 원 거주인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이웃 바레인으로, 요르단,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쿠웨이트로 사막을 건너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nbsp; 1936년에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태어난 가산 카타파니와 가족들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에 의한 위임통치의 종결과 동시에, 사실은 아직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국 통치체제와 뒷방에서 뜻을 맞춘 유대인 군대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고, 이때 유대 군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구성한 시온주의 민병대에 의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신분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주한다. 이때가 1948년. 열두 살의 카나파니는 가족 가운데 남자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난민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돌이킬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무슬림 소년의 가슴에 박힌 수치심.&nbsp;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에서 성장해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교사로 일하며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전공하다가, 학내 정치문제, 아랍민족주의운동과 연계되어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거쳐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에 가담해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등을 편집하는 일을 했다. 인민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가깝지 않을 수 없었던 카나파니는 점점 범 아랍민족주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으로 전환하는데, 이 와중에 아랍권을 벗어나 많은 외국 언론과 스칸디나비아 반시온주의 유대인과도 접촉한 것이 문제였을까? 그는 1972년 7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정보특수작전연구소, 모사드가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열일곱 살 먹은 조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세상을 떴다.<br>&nbsp; 소설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중편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열림원에서 초판 출간되었다가 2006년에 절판, 20년이 지나 올해 다시 중판을 찍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인 영향도 있었을 듯하다.&nbsp; 카나파니의 대표작 &lt;뜨거운 태양 아래서&gt;는 조금 독특하다. 주요 등장인물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에 의해 쫓겨난 난민들. 이제 난민촌이거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팔레스타인 변두리에 머무는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중동 최대의 부국이라고 알려진 쿠웨이트로 밀입국하거나, 전문적으로 밀입국 브로커 짓을 하거나, 장군의 운젼병으로 물탱크 트럭을 몰고 쿠웨이트로 향하는 김에 용돈 좀 얻어볼까 싶어 약간의, 그러나 밀입국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돈을 받고 태워주는 역할을 한다.&nbsp; 밀입국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아부 카이스는 십년 전에 고향에서 쫓겨났다. 레바논의 난민촌에서도 몸을 뉘어 가슴을 땅에 대면 여전히 고향 대지의 박동과 땅의 냄새가 혈관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는 못하고 공부는 하고 싶어서 교실 창문 아래에서 옅듣던 우스타즈 셀림 선생의 가르침,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거대한 강물이 합류하면서 샤트알아랍이라는 강물을 형성하고…”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맘이 아니라 기도를 인도할 수는 없지만 적이 쳐들어온다면 꼭 필요한 명사수일 것이라던 셀림 선생은 유대인이 마을을 장악하기 전날 밤에 신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갔다.&nbsp; 그의 늙은 아내는 7개월 후에 또 출산을 할 것이고, 딸 호스나는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죽었으며, 아들 카이스도 아직 어리다. 쿠웨이트로 이민 가서 택시 운전을 해 부자가 된 친구 사아드가 말했다. 쿠웨이트에 가서 막일이라도 해. 거기서는 몇 푼 안 되지만 돌아오면 마음껏 쓸 수 있는 큰 돈이 될 거야. 당장 새로운 아기, 먹을 입이 생길 아부 카이스는 가지고 있는 돈과 여기저기서 꾸어 브로커 비용 15디나르를 마련해 난민촌을 떠났다.<br>&nbsp; 젊은 아사드는 아부 카이스와 접촉했던 브로커 뚱보 사내에게 15디나르를 지불하겠지만 쿠웨이트에 도착한 다음에 주겠다고 뻗댄다.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밀입국할 때 벌써 같은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더러운 브로커한테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내려주고는 길고, 길고 긴 H4 송유관 주위를 걸어서 가면 도로가 나오는데, 자기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햇볕 아래에서 얼마나 걸어야 하나? 죽을 때까지. 물론 산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을 지경에 아주 가까이까지 가야 할 걸? 그러니 젊고, 머리회전이 그나마 빠른 아사드는 15디나르를 동포인 뚱보 브로커에게 주긴 주겠는데,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주겠다는 거다.&nbsp; 여기에 소년 마완이 합류한다. 마완은 가진 돈이 15디나르가 되지 않는다. 10디나르도 빠듯하다. 그래서 브로커에게 말만 꺼냈을 뿐, 단 한 마디도 더 붙여보지 못했다.<br>&nbsp; 이렇게 세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앞에 등장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쿠웨이트 장군의 운전수 아불 카이주란. 곤경에 처한 장군을 우연히 만나 서둘러 차량을 고쳐주고 목적지에 시간에 맞게 데려다 주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장군의 전속 운전수가 되어, 군용 지프, 개인용 세단은 물론이고,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즐길 거리, 먹거리 같은 것을 잔뜩 싣고 파티나 야외행사나 사냥터까지 싣고 가는 일을 했다.&nbsp;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아불 카이주란 정도의 수입이면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가족은 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니 카이주란은 가욋돈이라도 얻고 싶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물탱크를 싣고 쿠웨이트 방향으로 갈 때, 팔레스타인 난민 밀입국자를 태워주고 대가를 받는 일. 그래서 아부 카이트, 아사드, 마완을 손님으로 받았다.&nbsp; 쿠웨이트에 가기 위하여는 군용트럭이라서 부대 두 곳에 들러 서류에 사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기지에 도착하기 전 약간, 일 처리하는 데 약간, 출발하고 약간의 시간 동안 불법입국자들은 뜨겁게 가열된 철제 물통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물통 안의 온도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자가 길어야 7분 정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안 될 것처럼 생각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한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벌어져 물탱크 안의 동포들 모두 사망해버렸다.&nbsp; 원래는 선한 마음으로, 뚱보 브로커가 받는 돈에서 삼분의 일 정도 저렴하게 이들을 편하게 밀입국시키려 했다가, 이제 시체가 된 세 명을, 운전수 아불 카이주런은 고민, 고뇌 끝에 쓰레기장에 가져다 던져 버리고 떠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해 한 백미터 정도 갔다가 돌아온 카이주런은 다시 트럭에서 내려,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뒤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손목시계와 기타 돈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이미 뻣뻣하게 경직된 시신에서 거두어 자기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5/32/cover150/k4921307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5324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네 명의 문제적 작가들이 쓴 희곡집 -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1928</link><pubDate>Tue, 20 Oct 2026 04: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819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8512X&TPaperId=175819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3/85/coveroff/89939851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8512X&TPaperId=175819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숭어 마스크 레플리카</a><br/>하일지.정영문.서준환.김경주 지음, 장정일.김경주 기획 / 이매진 / 2009년 10월<br/></td></tr></table><br/>.&nbsp; 장정일이 이름난 작가 네 명의 희곡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알고 보면 장정일 본인이 우리나라 연극 발전에 제일 공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동아일보사의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lt;실내극&gt;으로 당선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희곡집도 네 권이나 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안 팔리는 문학책이 희곡집이라 책이 나왔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장정일의 극작품을 발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장정일은 책을 편집해서 서문과 발문을 썼을 뿐, 각 작품의 창작에 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nbsp; 이 책에 실린 희곡을 쓴 네 명의 작가/시인은 하일지, 정영문, 서준환, 그리고 김경주이다. 이름만 대도 눈앞이 환해지는 작가들. 하여간 나는 그랬다. 이이들의 작품을 책 한 권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으니까.<br>&nbsp; 하일지. 1990년대 경마장 주변을 서성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동덕여대 문창과 명예교수. 나도 당연히 당시 &lt;경마장 가는 길&gt;에 열광해서 이이의 경마장 시리즈를 연달아 사 읽었고, 다른 애독자와 마찬가지로 연달아 실망하다가 몇 번의 경마장을 끝으로 이별을 고했던 작가. 한 팔 년 전에는 오랜만에 하일지 생각이 나서 그의 장편소설 &lt;손님&gt;을 사 읽었다가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는데 더 곤혹스러운 건, 독후감을 썼는데 독후감의 아주 일상적인 단어의 조합이 하필이면 야설 탐색꾼들의 레이더에 걸려 꽤 오랜 동안 반갑지 않은 방문을 받아야 했던 우스운 기억도 있다. 그래서 하일지에 대한 관심이 거의 꺼진 줄 알았다가, 이번에 또 하일지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피식, 웃음과 더불어 작지 않은 흥미가 돋던 것이다.&nbsp; 작품 제목이 &lt;파도를 타고&gt;.&nbsp; &lt;경마장 가는 길&gt;에서 이미 본 듯한 분위기. 남자는 15년 동안 중학교 교사를 했다. 그래도 자기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암담한 남한 땅. 학교에서도 좋은 꼴 못 봐,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늙은 부모도 봉양해야 해, 아들 딸 하나씩 있는 것들도 벌써 사춘기를 맞아 박박 기어오르기 시작하거나 귀엽기는 하지만 남들 하는 대로 학원 보내며 제대로 키우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 좌절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남자가 선택하고, 결심해서 실행해버린 것이, 전재산을 다 팔아 작은 배 한 척을 사서 무작정 남쪽 따뜻한 섬을 향해 한국 땅을 떠나는 이야기다.&nbsp; 이미 &lt;경마장 가는 길&gt;에서 파리에 유학했다가 돌아온 30대 주인공 R이 한국에서 다시 경험하는 답답함, 자유롭지 못함에 서서히 질식하는 과정을 읽은 적이 있어서, &lt;파도를 타고&gt;의 주인공인 40대 남자의 좌절이 새롭지 않다. 남자가 품은 가장 지독한 좌절은, 15년간 중등학교 교사를 했어도 한 칸짜리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nbsp; 미친 거 아냐? 전제가 “서울에서 집 한 칸”이다. 그렇게 될 줄 몰랐어? 이 남자, 마음먹고 서울을 떠서, 뜨기는 뜨지만 멀리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살기로 작정만 했다 하면 하일지 연배에 중등학교 15년 경력이면 근사한 아파트 한 채는 물론이고 남는 돈으로 적어도 소나타 한 대는 굴렸겠다.&nbsp; 장정일도, 이 책을 낼 때가 하일지도 근무하는 동덕여대 문창과 초빙교수를 할 때여서 그랬는지, 하일지를 두둔하며 하는 말이, 중학교 교사 15년에 내 집도 못 샀는데, 그까짓 독도가 누구 땅이면 어떻다는 말이냐는 거. 아주 시니컬하지만 꼭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곤고한 것이고, 내 손톱 밑에 잔가시 박인 것이 제일 아픈 법이니까. 근데 &lt;경마장…&gt;도 그렇고 &lt;파도를 타고&gt;도 그런데, 하여튼 파리 유학을 했건, 중학교 교사를 했건 간에 주인공인 R과 남자는 우리나라의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누려야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nbsp; 별볼일 없는 집의 맏아들이자 유부남인 R은 파리에서 사귀고 같이 잤던 부잣집 딸 J와 여전히 파리에서 맺었던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희곡의 남자는 죽어도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자기 집 하나 장만 못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하일지를 포함한 이들도 어떤 의미에서 연못 안 개구락지들일 수도 있다는 건 아마 본인들도 모를 걸? 재미없어, 재미없어.<br>&nbsp; 제일 기대했던 작가가 정영문.&nbsp; 책에 실린 네 편의 희곡 가운데 유일하게 정말로 공연 실적이 있는 작품이 정영문의 &lt;당나귀들&gt;이란다. 내가 읽어도 네 편 중에서 제일 좋다. 그러나 조심하실 것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정영문이라는 거. 아니나 다를까, &lt;당나귀들&gt;은 부조리극이다. 희곡을 별로 읽지 않은 분들이 읽으면, 스토리하고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는 장면들이 많이 낯설 수밖에 없다.&nbsp; 전쟁이 터져 전선에서 전령들이 막 도착해 전황을 보고하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다. 왕은 벌써 나라 밖으로 도망가버렸고, 왕의 동생이 자리를 얻은 장군은 지난 전쟁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군, 나라 최고 군 통수권자로 있는데, 이번 침공을 어떻게 막을지 무지막지 고민하고 있다.&nbsp;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말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애국자 장군? 뭐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전선을 어떻게 구축하고, 어느 지형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하다못해 진지가 다 뚫리면 퇴로를 어떤 식으로 확보하느냐 하는 건 장군의 머릿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숙고에 숙고를 멈추지 않는다. 단 한 가지도 결정하지 않으면서.&nbsp; 만조백관을 대표하여 등장하는 신하1과 신하2 역시 전령1이 전선에서 수도까지 뛰어오며 지나친 포도원에 포도가 잘 익었는지, 익었으면 몇 송이 따오지 그랬느냐는 등의 헛소리만 지껄이는데, 만일 부조리극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쯤에서 거품 물고 책을 집어 던질 지도 모른다.&nbsp; 이런 건 비단 &lt;당나귀들&gt;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정영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미리 주의를 하고 읽으면 좋겠다.<br>&nbsp; 표제작 &lt;숭어 마스크 레플리카&gt;를 실은 서준환.&nbsp; 서준환은 장편소설 &lt;로베스피에르의 죽음&gt;을 읽어 보았다. 그 책 읽으면서 내내 혁명기의 공포정치가 이루어지는 혁명재판소와 로베스피에로의 집에 국한한 장소의 폐쇄성 때문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서준환이 애초에 한예총 연극원에서 극작을 공부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lt;로베스피에르의 죽음&gt;을 읽을 때 느낀 폐쇄성,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으로 쓰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한 방에 싹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nbsp; &lt;숭어 마스크 레플리카&gt;는 성매매 업소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깊게 공부했던 서준환답게 각각 대립하는 층위의 뫼비우스 적 혼돈을 그리고 있다. 장소가 성매매업소라고 해서 괜히 야한 생각을 하거나 그런 장면을 기대할 필요 없다. 희망사항, 안 나온다.<br>&nbsp; 마지막으로 실은 &lt;블랙박스&gt;는 시인 김경주가 시처럼 쓴 희곡.&nbsp; 비행기 안에 탄 두 남자의 대화가 거의 전부. 이건 희곡일까, 시일까? 시면 어떻고 희곡이면 어떠랴.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근데 실제로 공연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좋다. 희곡이라고 다 공연을 전제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근데, 읽는 것도 쉽지 않던데? 처음부터 끝까지 둘의 대화에 아주 가끔 스튜어디스가 나타나 뭐라 하기는 한다. 근데 등장인물 소개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카파와 미하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마네킹과 목소리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nbsp; 2인극도 2인극 나름이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은 평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이리 뛰어갔다가 저리 뛰어가고, 뭐 그런데, &lt;블랙박스&gt;의 주인공 카파와 미하일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입으로만 조잘조잘. 그러니까 할 말이 뭐가 있겠어? 난기류와 비행기 창 밖의 광경과 내려다보이는 거, 그리도 구름 속 정도겠지. 아오, 또다시 밀폐성.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83/85/cover150/899398512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83859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개 끌고 산책하세요? - [지평]</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9935</link><pubDate>Mon, 19 Oct 2026 04: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99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6556&TPaperId=175799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95/26/coveroff/89546265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6556&TPaperId=175799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평</a><br/>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br/></td></tr></table><br/>.&nbsp; 파트릭 모디아노의 2010년 출간 작품. 4년 후에 모디아노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와, 째졌겠다.&nbsp; 모디아노가 1945년, 해방둥이, 을유생이니까 지금 81세. 노벨상 받았을 때는 69세. 이 책은 65세 때 찍었네? 65세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필명을 엔간히 날렸던 시기. 나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하고, &lt;지평&gt;을 번역한 권수연의 표현에 의하면 노벨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 &lt;어두운 상점들의 거리&gt;를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해서 유명하기는 하지만 나하고 별로 안 맞는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가, 이어서 읽은 &lt;도라 브루더&gt;와 &lt;까틀린 이야기&gt;도 하나 같이 재미를 못 봐 이후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어보니 또 괜찮아 지금껏 생각나면 한 권씩 읽는 소설가로 여기게 됐다. 하긴 뭐 내가 읽거나 말거나 모디아노가 신경이나 쓰겠어? 그냥 자뻑에 차서 하는 말이지.<br>&nbsp; 작품은 일흔 살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늙은 작가 보스망스가 지난 시절, 젊었을 적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한 시기, 그 시절 이후의 여타 시기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nbsp; 말 어렵게 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모디아노가 쓴 말을 요약한 거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려는 건 저 기원전부터 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전공과목인데, 20세기 들어와 이런 경향을 소설 쓰는 사람들까지 원용하기 시작해서 이런 문장이 등장하는 거다. 저걸 쉽게 얘기하면, 지난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오랜 세월동안 생까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당신하고 나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와 별로 다르지 않게.&nbsp; 근데 왜 이제 와서, 다 늙어 이런 “현재 속 유예된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할까? 왜긴 왜야, 소설 쓰려고 그러는 것이지. 소설 가운데 9할은 옛 생각하면서, 자기가 경험하거나 봤거나, 적어도 남이 사는 걸 듣고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늙은 작가 보스망스는 이제 스물한 살 시절의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 검정 몰스킨 수첩에 그 예전에 있었던 것들의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날짜, 특정 장소, 철자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이름 등. 그러면서 그, 보스망스는 생각한다:&nbsp; 나는 왜 다른 길이 아닌 바로 이 길을 걸어왔던가?&nbsp; 그 얼굴에 심상찮은 모피모자를 쓰고 개를 줄에 묶고 끌고 가던 실루엣이 미지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는가?<br>&nbsp; 보스망스의 생각 두 번째에 관하여.&nbsp; 첫 번째 생각을 조금 더 실물처럼 그린 것에 불과한데, 내가 시비를 걸고자 하는 건, 개하고 산책을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하고, 추천할 만하다. 산책을 하려면 개의 크기나 사납기 정도와 관계없이 목줄을 하고 걷는 것도 훌륭하다. 문제는 목줄을 한 개를 “끌고 가?”&nbsp; 이게 산책이냐?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개 주인이 있어서 개 목을 묶은 줄을 앞에서 영차영차 끌고 가는 형국을. 정상적인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면 개가 앞장, 주인이 뒤에 서서 여유롭게 걸어야 하는 거 아냐? 주인 성질이 얼마나 급하면 개 앞에 서서 이리 와, 이리 왓! 목줄을 콱 땡기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확 들어오지 않나? 잘 하면 발로 옆구리 차기도 하겠다.&nbsp;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요즘 이렇게 개 끌고 가다 걸리면 실형 받는 수가 있다. 참. 김건희 여사가 제청해 만든 개고기 취식 금지법은 이제 김여사 세월이 끝났으니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개 먹자고 개 식용을 권고하는 주장이 아니라 뭐든 금지 법안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정치하는 인간들이야 금지법 만드는 게 제일 쉬워서 좋기는 하겠지만. 뇌물 수수, 공금 횡령, 변호사법 위반 같은 거야 금지해야겠지. 허연 씨, 안 그려?<br>&nbsp; 그리하여 50년 전 기억 속의 테이프.&nbsp; 오페라 거리를 걷는 보스망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 메로베. 이름하고 얼굴이야 생각날 수 있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소리도 기억난다. 떨림과 음색까지. 퇴근하는 증권거래소 건물 사람들 틈에서 쏟아져 나온 메로베와 갈색머리의 불독 닮은 서른다섯 정도의 최고 연장자이며 ‘리슐리에 대행사’의 한 지소 소장, 그리고 색안경을 낀 금발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갓 스무 살의 여성 마르가레트 르 코즈.&nbsp; “저는 마르가레트 르 코즈예요. 르 띄고 코즈를 써요.”&nbsp; 프랑스 엄마가 베를린에서 낳은 프랑스 여자. 그러나 기한이 만료된 여권만 신분증으로 가지고 다니는 여성이며, 리슐리외 대행사의 한 지점에서 앞으로 두 주일 후에는 그만 둘 예정 또는 운명인 여자. 시위대의 거친 물결 속에서 시위와 관계없이 처음 만난 마르가레트와 보스망스. 인파에 밀려 눈 위가 찢어진 마르가레트를 보스망스가 약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으며, 며칠 후에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를 만난다. 마르가레트가 직접 세 명의 직원을 소개해서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메로베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가 기억나건만, 이들 세 남자는 보스망스에게 시내에 있는 체육관의 자기들 모임 ‘즐거운 도당’에 참여하기를 권한 기억, 이에 보스망스가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한 뒤로는 조직생활이 별로 내키지 않아서요.”라고 애매하게 헤어진 기억만 남기고 작품 &lt;지평&gt;에서 영원히 사라진다.&nbsp; 어쩌랴, 이게 기억의 한계인 걸. 게다가 보스망스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하느님도 모른다. 만일 그 ‘하느님’이라는 양반이 정말로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nbsp; 몇 년 후, 보스망스는, 이땐 이미 마르가레트 역시 보스망스의 곁을 떠난 다음이었을 텐데, 1월중에서도 맹렬하게 추운 새벽 두 시, 택시를 타고 차 앞쪽 인도 가장 자리에 맨발이 드러난 샌들을 신고 서 있던 남자가 메로베,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기억도 50년이 지난 다음에 검정 몰스킨 수첩에 적어 넣는다.<br>&nbsp; 이런 기억들.&nbsp; 하지만 기억은 보스망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마르가레트의 기억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마르가레트의 스위스 생활.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 부아야발. 정말 사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저 폼을 잡기 위한 소도구로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갈색머리의 삼십대 키 큰 남자. 하도 스토킹을 하는 바람에 부아야발의 요구, 극장에 함께 간 날, 밤이 되자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가 부아야발한테 귀싸대기를 오지게 한 대 얻어터진 마르가레트. 세상에 이런 일이. 설마 부아야발이 진짜 마르가레트를 사랑한 거야?&nbsp; 스위스에서 보모 일을 하던 당시였는데, 집 주인이자 바람둥이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내가 있는지 아니면 이혼당했는지 알 수 없는 바게리안은 자신의 비서, 아니면 노르웨이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는 날 기꺼이 마르가레트와 사랑을 나눈 모양이고, 훗날 마르가레트가 파리로 자리를 옮기자 묵을 호텔 비용과 생활비 부담을 제안하지만 마르가레트는 거절한다.&nbsp; 이렇게 그저 생각나는 기억 이야기. 결론은, 저 위에서 말한 적 있다.&nbsp; “과거의 한 시기, 후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nbsp; 다른 말로 간단하게 말하면, 버.킹.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95/26/cover150/89546265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9526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짜낸 베일 같이 은은한 북쪽 창의 빛 - [빛의 현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4649</link><pubDate>Fri, 16 Oct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46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633611&TPaperId=175746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54/79/coveroff/k7126336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633611&TPaperId=175746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빛의 현관</a><br/>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br/></td></tr></table><br/>.&nbsp; 요코야마 히데오는 1957년에 도쿄에서 출생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만화 작가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만화라고? 소설가 치고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있군, 싶어서 검색해보니, 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만화의 원작 대본을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다. 도쿄에 있는 국제상업대학, 현 도쿄국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군마현에 있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12년 동안 있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lt;루팡의 행방&gt;. 제목으로 보아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미스터리 물이 아닐까 싶다(믿지 마시라, 추측한 거다).&nbsp; 내가 읽은 책 &lt;빛의 현관&gt;에서는 행방불명 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형사나 탐정이 수사에 나서서 갖은 추리와 도주, 추격 끝에 체포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은 아니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 당할 때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건축사가 자신의 가족과 직장, 건축사로서 인생 최고의 작품인 집의 소유주, 일본에 망명했던 독일인 건축가 등등을 등장시킨, 일종의 추리극이기는 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지만, 잘 차려진 오첩반상 비슷한 대중소설이라고 할까 싶다.&nbsp; 그러니까, 추리소설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 쪽의 장르문학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상당한 부분을 순문학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장르의 경계 없이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겠다. 어제 읽은 정영문 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식 소설.” (재래식 소설, 진짜 웃겼다.)&nbsp; 근데, 적어도 소설의 핵심 사건이 되는 “실종 사건”이라면, ①겁나게 부잣집, 적어도 재벌급 가족의 일원, ②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 AI, 식량, 에너지) 기술을 가진 과학자, ③만 명 가운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나 남자,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④조직폭력단의 두목이거나 두목의 애인 혹은 딸 정도는 돼야 어울릴 터.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수입가구전문 판매점의 주인도 아니고 지배인 급의 키 작고 통통한 남자. 거기서도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당해서 이제 자기도 ‘인터넷 수입상품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하는 남자. 가구제작 장인의 아들이면서, 가구 제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가업을 잇지도 못한 자. 어째 좀 후져 보이지? 납치는 당했지만, 이런 외모와 재력, 학벌, 지능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다. 참 세상 야박하다. 소설도 그렇다.<br>&nbsp; 주인공을 소개합니다.&nbsp; 아오세 미노루. 지상 100m 댐 최상부에 붙어 몸을 구부리고 콘크리트 패널을 짜맞추는 작업에 관한 한 업계에서 알아주는 일인자의 2녀1남 가운데 막내. 댐 최상부에서 하는 작업이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댐 건설현장으로 가족 모두 이사해 새로운 댐의 꼭대기에 매달려야 해서, 가족들은 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사택에서 몇 년씩, 길어봐야 1~2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러니 두 누나들과 마찬가지로 아오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비록 사는 곳과 환경이 열악해도 작업의 위험도를 감안해 아버지가 받는 보수가 반 아이들 부모가 벌 수 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따돌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겠지? 어린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그래서 친구 없이 사는 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할 수 있었고, 대신 산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의 우는 소리를 구별할 줄도 알 정도로 새와 친했다. 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내가 소설 한 편을 써야 할 판이다. 그냥 넘어간다.&nbsp; 아오세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아버지는 건축은 말고 자기 일을 이어 돈 잘 버는 콘크리트 패널 전문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라서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해 도시로 나간 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건축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떡잎을 알아본 아카사카 씨가 집중 교육을 시켜, 굳이 비싼 돈 주고 졸업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관뒀다. 이때 함께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카지마 아키히코와 노세 다쿠미. 훗날 오카지마는 아오세의 은인이라면 은인이 되고, 노세는 연애부터 건축 실력까지, 그러니까 공적, 사적 양 방향으로 몽땅 아오세한테 판판이 깨지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지하게 성공하는 건축가가 된다.<br>&nbsp; 아오세는 키 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카리와 결혼한다. 이 짝짓기 경쟁에서 아오세가 꺾은 라이벌이 부잣집 아들이자, 대학 건축과 동기동창이자,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아오세의 경쟁 부서인 공건물 시공팀에서 일하던 노세 다쿠미. 연애와 결혼을 둔 1차 승부에서는 아오세가 간신히 이겼다. 이때 산새의 울음소리만 가지고 어떤 새인지 아는 아오세의 재주가 크게 가산점을 받았다.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의 2차 승부에선 노세의 완전한 승리. 때는 일본의 버블 붕괴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파국으로 아오세가 일하던 사적 건축은 거의 완전히 거덜이 난 반면, 공적 건축은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최소의 유지가 필요했던 것이 노세가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nbsp; 아오세는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자진해 먼저 사직서를 던졌고, 이를 알게 된 아내 유카리는 마음 속으로 대단한 불만이 싹텄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혼 후 버블 경제 시기에 아오세 부부는 조금 무리를 해서 도쿄 중심가에 괜찮은 맨션을 구입했는데, 아오세가 사직을 한 후에 가정을 위한 고정비만큼도 수입이 없음에도, 다른 해고자들처럼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오세는 그래도 건축 엔지니어 가오 문제가 있어서 그저 백수로 남아 있었던 것이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도쿄의 맨션에는 아내 유카리와 딸 히나코가 살고, 아오세는 허랑방탕한 알코올 의존자로 점점 빠져들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자기 건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이 또다른 건축과 동기동창 오카지마 아키히코다.<br>&nbsp; 아오세 미노루. 오카지마와 노세가 보기에도 자기들보다 능력이 월등한 천생 건축사. 하지만 아오세는 한 번 크게 인생을 실패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어디가서 말빨이 좀 달린다. 이게 성격상 결함으로 조금 나타나는 듯하다. 사회생활에서만 그랬으면 좀 나은데, 아내 유카리도 오카지마와 노세하고 업계에서 공적으로 친밀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오세가 빌빌거린다고 한 마디 하면, 아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기는 하겠지, 그래도 충동적으로 극도의 열을 받아 크게 소리지르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사랑하면서도.&nbsp; 만일 이 가족이 살 집을 짓는다면, 아오세는 아버지의 콘크리트 작업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건축 인생을 시시각각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외벽의 포장이 바뀌는 서양식 콘크리트 집을 짓는 걸 주요 테마로 생각한 반면, 유카리는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 오랜 농가 안채에 일본 전통가옥을 증축한 따듯한 목재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젠 콘크리트 집이나 목재 집이나 다 끝난 일이지만.&nbsp; 이들이 이혼하고 벌써 8년. 딸 히나코가 유치원 다닐 때 아오세가 도쿄의 맨션을 떠나 지금은 도쿄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도쿄의 카페에서 딸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과 차도 마실 뿐이다. 아이가 이젠 자기 삶을 알기 시작하는 열세 살,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품은 비가 오는 3월 아오세가 히나코를 만나러 도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br>&nbsp; 아오세는 작년 11월에 시나노오이와케에다 집을 한 채 지었다.&nbsp; 금슬이 좋으면 생긴 것도 닮는다고, 생김새도 비슷한 요시노 부부가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 찾아와 아오세가 지은 집을 본 적이 있다고, 자기들이 살 집을 꼭 직접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시나오오이와케의 땅 80평. 건축비 최대 3천만엔. 그리고:&nbsp;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nbsp; 그래서 아오세가 지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터부시되는 북향 창을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는 사방이 탁 트인 땅이라, 노스 라이트North Light를 채광의 구역으로 하고 다른 빛은 보조로 돌리는 은은한 빛의 전당을 만든 것. 침실의 북으로 난 창문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짜낸 베일 같은 노스 라이트. 그 너머 보이는 아사마 산의 장엄한 모습. 노스 라이트.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은 노스 라이트, 북쪽에서 스미는 빛이었다. 창문은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nbsp; 아오세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놀랍게도 목재 건물이었다.&nbsp; 그리고 몇 달 후, 집 주인 요시노 부부는 행방불명되고 만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54/79/cover150/k7126336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5479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의식의 흐름, 또는 마비, 아니면 착란 -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2851</link><pubDate>Thu, 15 Oct 2026 06: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28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534287&TPaperId=175728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19/29/coveroff/k9425342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534287&TPaperId=175728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a><br/>정영문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8년 10월<br/></td></tr></table><br/>.&nbsp; 정영문의 2018년 작품. 이이가 1996년에 장편소설 &lt;겨우 존재하는 인간&gt;으로 등단했으니 &lt;…사무라이&gt;를 출간했을 때는 벌써 22년의 짬이 쌓였을 때였다. 사실 내가 정영문의 소설을 읽고 이러니 저러니 할 계제가 안 되는 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정영문도 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주로 작가가 쓴 &lt;…사무라이&gt;에서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여기저기 조금씩 뽑아 소개할 뿐이란 점을 기억하시라.&nbsp; 정영문이 문단 밥을 22년 동안 먹고 나니 문득 소설이 특정 서사, 즉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진 등장인물의 행위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 나 원 참, 기가 막히네. 지금 내가 인용하려는 부분이 책의 뒤표지에 딱 CTRL+V가 되어 있다. 그가 뭐라 했느냐 하면:<br>&nbsp; “어쩌면 재래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언젠가 이후로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소설 속에 등장시킨 소설적 인물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 같았고, 그 인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nbsp; (p.59)<br>&nbsp; 작가가 스스로 만든 등장인물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으려면 최선의 방법이 등장인물을 없애는 것이고, 등장인물을 없애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려면,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먹고, 듣고, 비비적거린 실제 이야기, 물론 실제는 실제라 해도 적당한 과장이나 축소, 아니면 은근한 거짓말 정도야 허락이 되겠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할 터, 마침 정영문은 2010년 봄과 여름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한 적이 있어서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lt;어떤 작위의 세계&gt;로 쓴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이번 2017년에는 텍사스에 있는 미국인 친구 부부, 소설가 남편 D와 미술, 미술 가운데서도 특별히 조각으로 이름을 낸 N의, 댈러스에 있는 집에서 11월부터 얼마간 머물렀던 모양이다. 정영문은, 당연히 서울로 돌아와, 텍사스에서 초안 일부를 잡긴 했겠지만, 하여튼 서울에서 당시의 체험과 생각했던 것, 또는 생각했던 것을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br>&nbsp; 이렇게 새로운 소설을 쓰긴 쓰는데, 이번 소설에서 정영문이:<br>&nbsp;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말하는 것이 없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없는,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이런 이야기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할 수 있나 보는 것뿐이었고, 이 글 역시 그것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 단어와 어구의 반복적인 사용을 얼마나 할 수 있나 보는 것이기도 했다.).”&nbsp; (p.37)<br>&nbsp; 앞의 인용은 “재래식 소설”을 지양하게 된 내력을 말했다면, 이번 인용은 재래식이 아닌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설명하는 바, 밑도 끝도 없고, 만일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계속 옆으로 새는 이야기,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읽으나 마나 한 이야기이며, 그걸 묘사하는 것도 독자가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반복적인 어구를 계속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걸 조금만 뒤집어 생각하면 만일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견딜 수 있거나, 그 지경을 넘어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만 하다면, 이 짧은 분량의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즐길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겠다.&nbsp; 이 책을 안 읽어본 독자는, 그러면 모든 문장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문장들이 전부 반복하는 묘사로 가득할 것인가가 궁금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책을 읽어본 독자가 말해드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모든 묘사가 같거나 비슷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 구절을 계속 반복적으로 채운다는 걸 미리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복적인 묘사로 채우기만 했을 뿐, 작가가 염두에 둔 묘사의 기법, 염두에 두었지만 작가 정영문이 묘사의 기법을 구사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을 했는지 아닌지, 독자는 작가가 구사한 기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아서, 작가는 독자가 이해했는지, 독자는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진짜로 써먹었는지 써먹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아챌 방법이 없는 문제가 벌어지는 바, 작가가 자신이 써먹었다고 주장하는 묘사의 기법은, 자신이 2017년 11월부터 일정기간 머물렀던 미국 텍사스의:<br>&nbsp;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가설을 세우다 마는 것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의식의 마비 기법과 의식의 착란 기법이 뒤섞인 소설로 그것을 보면 지나가는 개도 웃고 갈 소설”&nbsp; (p.21)<br>&nbsp; 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설가 정영문, 이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자기가 쓴 소설이 개도 웃고 갈 소설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nbsp; 이 소설 &lt;…사무라이&gt;가 재래식 소설의 바운더리를 넘고자 했다면, 그러면 &lt;…사무라이&gt;에는 스토리가 전혀 없느냐, 하는 건 아니고, 있기는 있으되, 진짜 사건인 건 텍사스 대농장의 농장주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농장주인지 아니면 진짜 농장주라고 술김에 큰소리만 뻥뻥 치는 한 물 간 카우보이 나부랭이인지 헛갈리는 백인 남자를 술집에서 만난 일,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악명 높은 도시가 된 댈러스의 한 거리에 늑대 동상을 세우기로 한 친구 부부 N과의 대화 내용, 텍사스에 있는 농장을 전부 둘러보려면 말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커서 트럭을 타고 다녀야 했다거나, 근데 그건 새발의 피고, 정말로 큰 텍사스의 농장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는 물론이고 활주로까지 깔아 놓은 곳도 있다는 등의 것들이 진짜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영문의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생각한 것들에 관한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와,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를 암살한 잭 루비의 콜트 코브라 38구경 권총 같은 것들, 예컨대 텍사스의 명성을 가장 끔찍하게 만든 건 영화 &lt;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gt; 아니었겠느냐, 하는 거, 뭐 기타 등등 이런 거, 즉 위에서 정영문이 실토했듯이 진짜로 읽어보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설 거리들이라지만 그래도 그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절절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독일에서 관념철학을 공부한 정영문의 친구를 정영문이 관찰한 내용으로:<br>&nbsp;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는 말이 안 되는 말을 아주 난해하게 해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게 해 누가 더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일종의 내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역시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데 남다른 데가 있었다.”&nbsp; (p.34)<br>&nbsp; 는 것이었으니, 내가 평소에 주장한 바, “철학이라는 학문은 쉬운 얘기를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하느냐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과 매우 비슷해, 깜짝 놀랄 수도 있어, 내가 짧은 메모를 하나 써서, 이렇게 붙인 바 있다. “개공감!”&nbsp; 여태까지 두서없이 &lt;…사무라이&gt;에 관해 독후감입네, 써 보았지만,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이 영양가 없는 독후감에 조금의 관심을 두실 필요 없이 그냥 팍, 읽어버리고, 정영문이 주장한 바 대로, 밑도 끝도 없고, 계속 옆으로 새기만 하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같은 묘사를 반복하는 의식의 흐름 또는 의식의 마비, 아니면 의식의 착란을 견딜 수 있는지 기꺼이 시험에 들 각오를 한 연후에 읽는 편이 좋을 수도 있는데, 만일 개도 웃고 갈 이야기가 독자의 취향에 맞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이니, 제위께서는 주목하셔도 좋을 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19/29/cover150/k942534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19299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요괴는 속지주의야, 속인주의야? - [마신자 - 끌려간 거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0972</link><pubDate>Wed, 14 Oct 2026 06: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709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050&TPaperId=175709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90/44/coveroff/k8421370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050&TPaperId=175709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신자 - 끌려간 거인</a><br/>샤오샹선 지음, 김지민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샤오샹선瀟湘神. 가명이다. 본명은 Luo Chuanqiao羅傳樵. 1982년생 타이완 소설가. 그리고 요괴 연구가. 놀랐지? 요괴. 내가 읽은 모든 소설 가운데 요괴가 제일 많이 등장하는 건 명나라 소설가 오승은이 쓴 &lt;서유기&gt;. 그 요괴 연구가, 맞다. 동우東吳대학 중문학과와 국립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동양학부 석사과정에서 유교를 전공했단다. 인류학과 민속학에 관심이 지대해 타이완대학 원주민학 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샤오샹선의 족族이 궁금했다. 타이완의 여러 원주민 족을 비롯해 오키나와의 북, 중, 남쪽의 구성 족들에도 통달한 거 같아서. 하지만 &lt;마신자&gt;의 핵심 주제가 이 족별 구분, 분리를 지양하고 더 큰 세상을 만들자는 거라서 오히려 궁금해했던 것이 쪽팔리는 순간을 맞았다. 뭐 다 그런 거지.<br>&nbsp; 책은 본문이 24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인데, 그래도 만만하지 않다.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샤오샹선은 타이완의 작은 섬에 대한 내력과 그 섬에 내려오는 전설부터 시작해 타이완, 오키나와 등의 요괴, 그 사람들 말로 요마귀괴妖魔鬼傀를 뜻하는 마신자와 삿키의 과거 활약상 같은 것이 정신없이 출현한다. 샤오샹선이 요괴 연구가라잖아? 그러니 요마귀괴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다만 문제가 독자인 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라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뜻하는 ‘ㅆㄴㄹ 소설’을 지극히 안 좋아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됐다.&nbsp; 그러니 간단하게 작은 섬, 옛적에 ‘투만’이라고 불린 곳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알아보자.&nbsp; 아주 태고적에 이 작은 섬에 해초와 어란(물고기의 알)로 뒤덮인 거대한 짚신이 떠내려왔다. 얼마나 크냐 하면, 마을에서 제일 발이 큰 남자의 발보다 여덟에서 아홉 배 정도나 더 컸으니, 진짜 몸은 얼마나 큰 거인이겠는가 싶었다. 마을 촌장이 회의를 소집해서 말하기를, 이제 거인이 우리 마을로 쳐들어오면 거덜이 날 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냔 말이냐, 했더니 총명한 사람이 있어서, 거인이라도 자기보다 더 큰 거인을 보면 틀림없이 무서워할 것이니, 우리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짚신을 만들어 바다로 돌려보냅시다.&nbsp; 이렇게 거인이 쫓겨났다는 이야기. 이게 거인한테는 얼마나 슬프면서도 한스러운 일이었겠냐는 것인데 그거야 보지를 못했으니 알 턱이 있나?<br>&nbsp; 다음은 마신자. 처음에 ‘마신자’라고 해서 나는 술 같은 건강음료를 ‘마신 자’를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요마귀괴를 뜻하는 거였다. 귀괴는 귀괴이지만 타이완 섬에 사는 귀괴가 마신자이고, 오키나와에 터를 잡은 귀괴는 싯키. 즉 속지주의에 따라 타이완 귀괴가 마신자. 문제는 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해 괜히 멀쩡한 오키나와 사람들한테 자결을 강요한 일본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픽픽 죽어나간 섬 사람들 말고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배를 타고 피난을 와 있었던 것. 그러면, 타이완에 피난 온 사람들의 귀괴는 속인주의에 따라 싯키일까, 속지주의에 의하여 마신자일까?&nbsp; 이게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nbsp; 본문에 들어가면, 시대는 21세기. 타이완에서 이륙해 일본으로 향하는 여객기가 지상 3만5천 피트, 즉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기장 이름이 천신야오千鑫壵.&nbsp; 신야오가 말한다. 비행하기 싫다고. 기가 막히는 부기장. 부기장의 이름은 알 거 없다. 나오지도 않는다. 하여간 부기장은 벙쪄서 지상 1만미터 상공에서 기장이 비행하기 싫으면 어쩌냐는 거다. 신야오가 얼버무리기를, 조종사 일을 더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고. 그러다 부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천신야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상공 10km에서. 부기장은 화장실에 가서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기장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에 했던 말이,&nbsp; “어?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셔요?”&nbsp; 타이완어였다. 원주민의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천신야오의 정체성은 타이완 산족山族. 중화인민공화국에 밀려 중국 땅에서 해협을 건너온 중화민국 한족한테 밀려 산으로 쫓겨간 원주민의 후예라서 산족이라 불린다.<br>&nbsp; 이제 족보가 복잡해진다.&nbsp; 밀폐된 10km 상공의 조종실에서 실종된 기장 천신야오의 할머니 이름이 천황칭쯔. 이름이 칭쯔. 칭쯔의 엄마 이름이 나쓰코 오바. 오키나와 여성이다. 피난을 와 오빠 집에서 살다가 황씨 성을 가진 상인과 결혼해 딸 청쯔를 낳았다. 황청쯔가 천씨 성을 가진 남자하고 결혼해 천황칭쯔가 된 것. 그러니까 칭쯔는 반 오키나와 사람. 엄마와 마찬가지로 양 손등에 문어 먹물로 잔뜩 문신을 그려 넣었다. 오키나와 여인들의 징표라고 한다. 정확하게 오키나와 특정 족들의 징표.&nbsp; 그런데 청쯔의 엄마 나쓰코 오바상이 사라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틀림없이 마신자가 데려간 것이라고 말이 나왔다. 마신자가 데려가면 현장에서 1백이나 2백킬로미터 떨어진 곳, 흔히 산 속으로 뚝 떨어지는, 순간이동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마신자가 먹을 것 비슷한 것을 주어 생명이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사라진 사람들은 돼지나 닭고기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진흙이거나 동물의 분변이라나? 뭐 귀괴의 장난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납치해 평행우주로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복잡한데 나쓰코 오바가 이렇게 사라졌다.&nbsp; 세월은 흘러 이제 나쓰코 오바의 진증손, 청쯔의 손자 천신야오가 저 높은 비행체에서 또 사라져 버린 것. 엣다, 화끈하게 더 알려드린다. 3년 전에 천쯔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집에서. 그러니까, 진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손자가 사라졌거나 순간이동을 했거나,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졌거나, 산속 요괴의 간식거리로 먹혔거나 하여간 그렇게 됐다.&nbsp; 천신야오가 마지막으로 한 말, 부기장이 헤드셋으로 들은 말,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에서 Appa는 타이완어로 ‘할머니’를 뜻한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10km 상공의 밀폐된 비행기 조종실에 홀로 있던 손자 옆에 턱하니 나타나고, 즉각 비행기의 기장이 사라져 버린 것.<br>&nbsp; 그런데, 여태까지 말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주인공은 없다.&nbsp; 여객기 기장의 실종이 대단히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 타이완과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하여 각 매스컴마다 집중보도에 열을 냈는데, 이 가운데 신문사 한 곳에서 천신야오의 고향인 난팡샤오에 특별 취재 기자 한 명을 파견한다. 이이의 이름이 뤄쉐펀. 천신야오의 학교 동아리 2년 선배. 앞에서는 1년 선배였다가 뒤로 가면 2학번 위라고 하니까 뭐 대강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면 된다.&nbsp; 비슷한 나이라고 해서 딴 마음먹지 마시라. 최근에 만난 것도 10년 정도 됐다. 신야오는 약혼녀도 있다. 그래, 뤄쉐펀도 미혼 여성이다. 쉐펀이 난팡샤오에 와서 3년 전에 행방불명된 신야오의 할머니 댁을 탐방하고 나오는데, 물론 우여곡절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내용은 건너뛰고, 딱 방문에 나오는 순간 마주치는 여성이 바로 신야오의 약혼녀 중유어. 이 두 여성이 신야오와 할머니 칭쯔, 그리고 진도를 더 나가면 진증조할머니 나쓰코 오바, 타이완어로 위청샤쯔의 실종까지 거론하면서 신야오의 행방불명의 실체를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lt;마신자&gt;는 이제 추리소설 방면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 추리극을 주도하는 사람이 진짜 주인공 뤄쉐펀이다.&nbsp; 그래서 결국 요괴 연구가가 쓴 소설이 잘 꾸민 추리소설로 해결이 되느냐고? 에이, 내가 그걸 어떻게 맨입으로 이야기하나? 나는 체질에 맞지 않아서 별로였지만 이런 엽기, 괴기, 요괴가 출몰하는 기묘한 이야기 좋아하는 분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아니더라도 타이완과 오키나와 근방의 근현대사에 관심있는 분한테는 강추할 수 있을 작품. 그래서 좀 길게 썼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90/44/cover150/k8421370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90445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차라리 &amp;lt;X맨&amp;gt;의 돌연변이 가운데 한명 - [암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8937</link><pubDate>Tue, 13 Oct 2026 04: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89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866X&TPaperId=175689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173/16/coveroff/89329186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866X&TPaperId=175689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암퇘지</a><br/>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br/></td></tr></table><br/>.&nbsp; 프랑스 바욘에서 출생한 1969년생 작가. 바욘이 어디냐 하면, 스페인과 무지하게 붙어있는 대서양 인접 지역. 그곳의 농가 출신이다. 파리의 바칼로레아를 마친 후에 파리3대학, 파리7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 지금은 전설이 된 유대인 작가 조르주 페렉을 연구했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근데 이건 조금 과장. 7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비극적 아이러니와 오토픽션”이었고, 이를 위한 작가들의 실례 가운데 한 명이 조르주 페렉이었다고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나와 있다. 뭐 아무러면 어떤가, 우리는 &lt;암퇘지&gt;를 읽기만 하면 되지.&nbsp; &lt;암퇘지&gt;는 다리외세크가 스물일곱 살 때 발표한 작품으로 이이를 “단숨에 화제의 작가로 만든 이 작품은 55만 부 이상 팔렸고, 34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다”고 책 앞날개에 밝혔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은 “40개 언어로 1백만 부 이상” 팔렸다는데, 이것 역시 아무러면 어떤가, 우리는 &lt;암퇘지&gt;만 읽으면 되지.<br>&nbsp; 근데 문제는, 이 &lt;암퇘지&gt;를 마음 편하게 읽기가 쉽지 않다는 거.&nbsp; 지금 독후감을 쓰려고 이이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니, 아이쿠, &lt;가시내&gt;가 있다. 이이가 바로 &lt;가시내&gt;를 쓴 작가구먼. 미리 알았으면 생각 좀 해볼 것을. 나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lt;가시내&gt;가 나왔을 때 장안의 독자들이 말하기를, 지하철에서 읽기 곤란한 책, 그래서 읽으려면 책 껍데기를 하다못해 신문지로 싸서 읽어야 할 수준이라고 하는 조언을 받아들였던 거다. 10대 아이들, 특히 소녀들의 섹스에 관해 썼다고 해서, 내가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십대 아이들의 탐구생활에 관심을 둘쏘냐, 싶어 관뒀다. 그 책의 작가를 단번에 스타로 만들어준 책을 당시부터 15년의 세월이 더 흐른 후에 읽는다니, 내가 알았으면 정말 이 책을 읽었겠느냐고.&nbsp; 책은 도발적이다. 변신metamorphosen은 변신이건만, 외판원 그레고리 잠자가 한 마리 딱정벌레 과의 곤충으로 변한다면 문학 역사상 기념비적인 부조리 소설이 되겠건만, 향수 판매 체인 회사의 판매원이 점점 돼지로 변하는 건 이건 부조리도 아니고, 차라리 영화 &lt;엑스맨&gt;에 나오는 무수한 돌연변이 가운데 불쾌/불량한 쪽의 한 명을 빙자한 무차별 은유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도무지 정신을 잡도리할 방법이 없었다.&nbsp; 여성 육체의 과잉과 과장, 임신과 임신중단, 여성성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작품으로 보였다가, 천만의 말씀, 뭘 주장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페미니즘 작품은 아니고,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성 화자 ‘나’의 육체적 과잉과 그로 말미암은 소멸을 그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튼 뭔가 이야기하려는 거 같기는 한데 끝내 모르겠다. 그렇다고 부조리 소설도 아니고 말이지.<br>&nbsp;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때 ‘나’는 실직상태였으나, ‘나’의 몸은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다니까 아마 20대 초반이었을 듯. ‘나’가 스스로 하는 말이, 모든 남자에게 기가 막히게 탄력적인 여인으로 취급받기 시작할 때였다고.&nbsp; 이때 ‘나’가 인터뷰한 회사가 바로 향수 판매 체인회사. 입사 면접을 할 때부터 지배인의 한쪽 손은 ‘나’의 몸에, 다른 한 손은 이력서와 입사 계약서에 가 있었으며, 최종 합격을 했지만 최저임금 반을 받는 조건으로 한 파트타임 직원이었단다. 그래도 집의 월세와 치마 한두 벌을 사 입을 수 있어서 만족한 수준. 여기에 재고조사가 끝나면 화장품 장기 재고를 그냥 얻어갈 수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nbsp; 하지만 ‘나’의 진짜 직업을 말해보자. 이때 ‘나’에게는 ‘드 발자크’는 아니지만 오노레라는 이름의 중학교 교사 애인이 생겨서, 오노레가 ‘나’에게 옷을 한 벌 사주었을 때, 옷 갈아입는 박스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했듯이, ‘나’의 직장인 향수 가게에도 향수를 뿌려보는 방이 있었는데, ‘나’의 진짜 업무는 이 방 안에서 고객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향수도 뿌려주어 구매를 촉진하는 일이었다.&nbsp; 근데 ‘나’의 몸이 점점 포동포동해지며 ‘나’의 육체에 손님들이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특히 남자 손님들이 대거 밀려들어 여자 손님들은 오히려 질투에 휩싸였나 어쨌나 모르지만 점점 떨어져 나갔다. 남자 손님은 향수방에 들어와 마사지를 받고, 정신없이 향수 폭탄을 투하하면 거금이 들더라도 ‘나’가 권하는 향수를 다 구입했다나? 물론 맨입에 비싼 돈을 들여 향수를 사준 건 아니었다. 그들이 바란 건 특별 마사지. 대강 짐작하시겠지?&nbsp; 이 손님들은 당연히 ‘나’의 몸 상태에 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과, ‘나’는 갈수록 몸이 더 불면서 점점 더 배가 고파지고, 배도 불룩해지는 것이, 아차차, 생리가 끊긴 지 좀 된 거다. 손님 가운데 아주 단골손님이 하나 있어 다행히 양심이 좀 있는 편이라 중절수술 비용을 몽땅 지불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신한 것도 아닌데 괜히 돈을 쓴 거 같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더 있었고,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불임. 그런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원래 불임이었을 수도 있고, 수술 후에 불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거 함부로 써 놓으면 확실하게 욕을 먹을 수 있어서 유심히 읽어봤는데 마찬가지다. 다리외세크는 절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여간 불임이다.<br>&nbsp; 이후 ‘나’는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 살이 찌고, 유방도 두 가슴 위에 하나가 새로 생기고, 어어 하는 사이에 세 개가 더 생겨 모두 여섯 개의 유방과 열두 개의 젖꼭지를 달게 된다. 귀는 위로 뾰족하게 나오고, 코는 뭉툭하고 두툼해졌다. 근데 늘 돼지 상태로 있는 건 아니라서, 기분이나 몸의 상태가 이상한 단계가 되면 암퇘지로, 뭐하고 비교하는지는 몰라도, 정상 상태가 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데, 정말 영화 &lt;엑스맨&gt;의 돌연변이들 가운데 한 명 같다니까?&nbsp; 막판 가면 돌연변이들은 서로 만나듯이,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을 만나 둘이 서로 의지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딱 보니까 다리외세크의 작품에서 해피엔드를 바라면 짱구 같다. 즉 &lt;암퇘지&gt;도 비극으로 끝맺는데 당연히 종장은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이 책도 권하지 않을 터.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시라는 건데, 출판사 열린책들은 어쩌자고 이 책을 중쇄도 아니고 중판까지 찍었을까? 내가 읽은 책이 중판. 그리고 품절이라서 후진 독후감을 써도 그나마 좀 덜 미안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173/16/cover150/89329186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173166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기다림과 외로움. 그리고 시 -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7110</link><pubDate>Mon, 12 Oct 2026 0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71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32&TPaperId=175671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39/65/coveroff/89320387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32&TPaperId=175671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울려고 일어난 겁니다</a><br/>김경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07월<br/></td></tr></table><br/>.&nbsp; 1971년에 서울에서 나서 이대 독문과와 대학원 독어교육과를 거쳐 명지대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데, 내 가방끈이 짧아 이게 박사학위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98년, 스물일곱 살에 시인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 반성하자. 그런 시인의 시집을 왜 이제야 처음 읽는지. 이 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는 2021년, 시인이 쉰 살 부근에 냈는데 여전히 그립고,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고독하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시인이 펜을 놓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화두, 시란 무엇일까, 시인은 또 무엇일까, 하는 결코 풀리지 않는 매듭도 또다른 시의 주제로 놓여 있다.<br>&nbsp; 먼저 그리움 또는 뒤돌아봄에 관하여.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시는 제목 자체가 &lt;뒤&gt;이다.<br><br>&nbsp; 한밤의 택시 안, 어디쯤일까, 핸드폰을 본다, 우주정거장이 방금 내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이건 너무 큰 그림, 어디지, 거기가 바로 여기네, 이 말을 자주 하던 사람의 그림자 사진, 핸드폰을 본다, 이번엔 너무 지난 그림, 그는 그늘, 여기는, 신호 없음, 연결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빨간 신호마다 과속으로 지나친 여기, 어디지,<br>&nbsp; 해 질 녘마다,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나는 그의 그림자를 담요처럼 끌고 갔다, 끌려갔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기를 여기처럼, 그늘을 그림처럼, 저 멀리 그네처럼,<br>&nbsp; 우주정거장은 밤의 지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 그는 그늘, 다시, 우주정거장은 돌고, 어떤 사랑이 지구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고,<br>&nbsp; 한밤의 택시, 내린 후, 여기일까, 뒤돌아본다,&nbsp; &nbsp;(전문.&nbsp; p.9)<br><br>&nbsp; 나는 이 시가 생전 처음 읽는 김경후였다. 아후, 근사한 걸? 한밤중에 택시 타서 핸드폰을 보는데, 핸드폰이라는 게 위성으로 너와 내가 통신하는 거라서 내 머리 위를 지나는 우주정거장을 연상하는 거부터, 후,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이랬다. 휴대폰 속의 많은 사진과 통신 기록, 그리고 연결상태. 별의 별 정보,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무수하게 넘치는 정보. 이미 지나버린 것들, 그래서 휴대폰을 보는 시인은 결국 뒤돌아볼 수 밖에.&nbsp; 이런 느낌이 하나였고, 다음은 쉼표의 연속. 시인이 시 속에 쉼표를 썼으면, 독자는 쉼표가 마치 악보의 지시표인 듯, 쉼표가 나올 때마다 한 박자씩 한숨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고 좋다. 비단 시뿐 만 아니라 산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의 경우,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낭송하거나 속으로 암송하거나를 막론하고 탁탁 박자, 리듬감을 훨씬 더 얻을 수 있다. 김경후의 시에서 이런 쉼표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착한 독자. 시인이 쉬라고 콤마를 탁, 찍어줄 때마다 나는 헛, 꼬박꼬박 한 박자씩 쉬면서 읽었다. 이 정도면 착한 독자, 맞지?&nbsp; 이렇게 ‘뒤돌아봄’의 주제와 많은 쉼표를 사용하는 재미있는 시가 또 하나 있다. 물론 여러 수가 있지만 특히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다.<br><br>&nbsp; 넙치<br><br>&nbsp; 그래, 나 바닥이다, 울툭불툭, 넙치, 시장 바닥에 누워 있다, 뭘 보고 있나, 그것, 진창 바닥보다 넓적하게, 바닥의 바닥이 되면서, 대체 뭘 보고 있나, 가끔, 이게 아냐, 울컥, 찌끄레기를 게운다, 뒤척인다, 하지만 다시, 눌어붙어, 바닥이 되지, 바닥, 뭘 볼 수 있나, 게슴츠레, 흰 눈자위로, 울컥, 찢어진 노을, 키득대든 웃음, 흐르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소리친다, 그래, 나, 바닥이다, 그것, 더욱 맹렬히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 끌로도 끝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바닥, 더 바닥, 더, 더 바닥이 되기로, 울컥,<br>&nbsp; 지금 넙치가 나올 철인가, 뭐, 그렇지, 이 바닥이나, 저 바닥이나, 다 그렇지, 사내 둘, 바닥 끝 지나 골목 끝, 횟집 문을 연다,&nbsp; &nbsp;(전문.&nbsp; p.13)<br><br>&nbsp; 독후감의 초두에서 김경후의 시는 그리워 뒤돌아보거나, 여전히 고독하다고 했다. 이번엔 고독에 관하여 한 방 꽝. 고독. 우리말로 외로움. 먹고 사는데 가장 외로운 장소 가운데 하나가 어디? 화장실? 거기 말고. 비슷하지 않지만 화장실에 버금가게 고독한 곳. 나는 거기 살아본 적 없어서 사실 잘 모르지만, 원룸. 그것도 혼자 사는 원룸. 김경후는 &lt;원룸 전사&gt;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올렸다. 이 가운데 앞에 나온 &lt;원룸 전사&gt;. 원룸에 사는 전사warrior인지, 원룸에서 전쟁처럼 살다가 죽는 전사fall in battle인지 궁금하시지? 일행 시이긴 한데 읽어보자.<br><br>&nbsp; 밤마다 막차다, 아무도 없어도, 나는 몰고 돌아가는, 밤, 막차다, 배차 간격, 없음, 인센티브, 없음, 유급휴가, 없음, 직업, 없음, 내가 탈 차, 없음, 기다릴 차, 없음, 막차에서 막차 사이는, 폐터널이지, 밤마다, 막차다, 출가하지 않아도, 밤새 흐르는 수도, 물방울 독경 소리, 면벽으로, 먼 산 먼 숲 조망 가능, 이러다 심안으로 동쪽에 창을 낼, 내가, 막차다,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밤마다, 창 없이 창살 없이, 막차, 필요 없는 거, 없음, 둘 데 없음, 아무도, 울 수, 없는 밤마다, 나는, 막차다,&nbsp; (전문.&nbsp; p.18)<br><br>&nbsp; 쉼표가 휘날린다. 쉽표가 찍힌 곳마다 따박따박 쉬어 주기만 하면 훨씬 공감이 가는 시. 설마 밤마다 막차일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인센티브와 유급휴가가 없는 무직자. 설마 무직자겠어? 하다못해 시라도 (넙치처럼) “찌끄리겠지.” 창문이 있어 그나마 창문을 열면 다른 원룸 건물의 벽을 맞바라보는 면벽. 그것도 시인의 눈으로 보면 심안으로 동쪽으로 창을 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먼 산과 먼 숲을 조망할 수 있다니, 거 참, 시인이 아니라 신선이로세. 진짜로 신선이겠어, 그렇게 알고 지내는 것이겠지.&nbsp; 근데 왠지 그럴 듯해 보이지? 고독. 또는 외로움. 하지만 너무 감동받지 말 것.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 있으면 두 명만 이름 대봐. 자기 인생 다 저마다 외로운 거다. 다만 우리 같은 종자들은 시인처럼 나 외로운 걸 리듬 타면서 말할 수 없을 뿐. 뭐 그렇게 사는 거지.&nbsp; 외로움은 뭘 기다리게 만든다. 그걸 시인은 &lt;젓가락 행진곡&gt;이라는 유쾌할 뻔한 시에서 재미있게 노래했는데, 지면상 이 시집의 22~23쪽에 실렸다는 것만 알려드리고,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시 한 수 소개한다. 외롭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혼자 있을 때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 툭. 뭔가 허파 아래 옆으로 횡단하는 막이 하나 분질러지는 듯한 기분이 나는 소리, ‘툭’에 관하여.<br><br>&nbsp; 툭<br><br>&nbsp; 그건 젖은 나무 문이 주저앉을 때&nbsp; 그건 가슴뼈를 움츠릴 때&nbsp; 그건 할 말이 없을 때&nbsp; 나는 소리&nbsp; 툭&nbsp; 슬픔이 무릎을 건드릴 때&nbsp; 그래도 설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nbsp; 나는 소리&nbsp; 마음의 고무줄 삭아 끊어질 때&nbsp; 나는 소리&nbsp; 툭<br>&nbsp; 툭&nbsp; 밤의 송곳니가 부러지는 소리&nbsp; 그때 우리도 함께 부러지는 소리&nbsp; 말도 안 되는 소리&nbsp; 서로 돌아서는 소리&nbsp; 툭&nbsp; 홀로가 아니라 스스로 내가 되는 소리&nbsp; 툭&nbsp; 내가 나를 뚫어지게 보라고&nbsp; 진흙탕에 빗방울 떨어지는&nbsp; 소리&nbsp; 젖지 않은 나무 문은 내지 못할 소리&nbsp; 툭&nbsp; &nbsp;(전문.&nbsp; p.30~31)<br><br>&nbsp; 시인 또는 시는 무엇일까? 숱한 시인들이 고민했고, 고민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민할 거리. 괜히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할 수 없는 천형의 벌 또는 엄살. 김경후도 예외는 아니다. 쉰 살에도 아직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인한테 시는 무엇일까?<br><br>&nbsp; 말미고개<br><br>&nbsp; 말은 연탄 수레를 끌었다, 난 말을 배웠다, 말미고개, 그곳, 절뚝거리며, 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뭐가 되고 싶었을까 말은, 끙끙거렸다, 난 받아쓰기 시험, 말은, 연탄 배달, 컴컴했다, 절뚝, 절뚝거렸다, 눈가리개 하고 수레 끌던 말, 시험지 받은 날, 말미고개, 높고 좁은, 끝난 것 같지 않은, 말미, 끝의 끝, 말의 끝, 씩씩거렸다, 뜨겁게 콧김을 뿜던 말,<br>&nbsp; 시커멓게, 절뚝절뚝,<br>&nbsp; 말이 미쳤다고 했다, 난 말을 배울수록, 말을 믿지 않았다, 미친 말, 말미고개, 넘고 넘어, 연탄을 날랐다, 어떻게 하면, 끝나나, 가파른, 말미고개, 끝은 어떻게 시작될까, 엎드렸다, 말미고개 끝, 거품 물고, 그러나 말은, 일어나, 절뚝거렸다, 달렸다, 절뚝거리다, 다시, 엎드렸다, 다시, 쓰러졌다, 이제 나는, 술자리에서 말거품만 뱉는 오십대, 그러나 아직, 말미고개, 미치고 싶은, 말들,<br>&nbsp; 시커멓게, 절뚝거린다, 절뚝,&nbsp; &nbsp;(전문. p.61)<br><br>&nbsp; 이 시에서 연탄 끄는 말이 진짜 말, 영어로 horse라고 믿는 독자는 설마 없겠지. 말미고개가 진짜 지명에서 따왔는지는 몰라도 말미, 말의 꼬랑지일 수도 있고, 일로 말미암아 생긴 시간 틈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인한테 ‘말미’는 말, 문자 또는 언어의 틈바구니 정도로 감안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리하여 시에서 말은 연탄 끄는 견마가 아니라 가파른 고개를 말, 언어나 문자로 넘어가야 하는 시인 자신을 일컫는 것이겠지. 나이 오십을 먹어도 아직 오를 길이 어려워 절뚝거리고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아픔과 힘듦을 포르테, 너무 심하게 노래한다. 세상에 안 힘든 시인 있어? 아니지. 세상 살이 편하게 사는 사람, 있어? 편한 말미고개, 살림고개 넘는 팔자 좋은 사람, 혹시 있으면 거수 바람. 없지? 그래, 편하면 인생이 아닌 걸.&nbsp; 시인이 더 젊었을 때 이이의 시집을 안 읽어본 게 아쉽다. 이제는 기다림, 외로움을 조금 벗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시인의 영역이니 독자가 간여할 건 아니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39/65/cover150/89320387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539655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에잇, 콱 버리고 말겠다 -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3643</link><pubDate>Sat, 10 Oct 2026 06: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3643</guid><description><![CDATA[.이번 부터 현재 출간중인 세계문학전집을 주 대상으로 책 줄이기를 시작한다. 첫빠따로 펭귄 클래식과 을유 세계문학, 그리고 열린책들 세계문학이 걸려들었다.​먼저 펭귄과 을유.<br><br>혹시 남은 세월에 한 번이라도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욕심이 생기는 책, 내 아이들은 튼 거 같고, 손주들이 딱 한 번 읽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책갈피를 휘리릭 넘길 수 있을 거 같은 책들은 그냥 보관하고 있으니 위의 책들은 상대적으로 나하고 합이 맞지 않거나, 아쉽지만 허한 마음을 뒤로하고 보낼 결심을 한 책.​펭귄클래식은 레드클리프 홀 &lt;고독의 우물&gt;, 피츠제럴드 &lt;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gt;, 로르카 &lt;인상과 풍경&gt;이 조금 섭섭하다.을유는 블레스와프 프루스 &lt;인형&gt;이 기대가 컸었는데 그것보다 실망이 더 컸고, 아무리 안드리치라도 &lt;저주받은 안뜰&gt;은 내쳤다.특히 펭귄과 을유는, 책을 고르면서, 너무 함부로 책을 샀다는 걸 실감했다. 사실 책만큼 저렴한 문화충족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런 생각으로 사서 읽었는데, 사도 너무 많이 샀다.​​이번엔 Mr.Know 시리즈를 포함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와 저번에 못 버린 책 약간.<br><br>징글징글한 거 다 버린다.헤르만 브로흐 &lt;몽유병자들&gt;, 칼비노의 &lt;우주만화&gt;는 새 버젼으로 읽어서 좀 가뿐한 마음으로 내놓았고, 오닐 &lt;느릅나무 아래&gt;는 다시 서가로 올려 놓아야겠다. 미련이 너무 남는다.E.M.포스터는 &lt;전망 좋은 방&gt; 딱 한 권만 남을 거 같다. 나머지는 다 버릴 예정.다니자키 준이치 &lt;세설&gt;은 끝까지 고민하다 앞으로 안 읽을 거 같아서 탈락했다.버지니아 울프의 &lt;등대로&gt;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다. 다른 번역으로 한 번 더 읽으려 한다.에드몽 로스탕의 &lt;시라노&gt;는 아쉽고 아쉽다. 좋아하는 책인데, 지금이라도 살릴까? 아호...​어윈 쇼 &lt;젊은 사자들&gt;, 제임스 존스 &lt;지상에서 영원으로&gt;, 마거릿 미첼 &lt;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t;, 앙투안 갈랑판版 &lt;아라비안 나이트&gt;는 벌써 집어 던졌어야 마땅한 후진 책들. 이건 정말 쓰레기 처리 수준이었다.다른 한 권의 진짜 쓰레기는, 지금은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세상의 명작이기는 하나, 역자 홍땡땡과 출판사가 심혈을 기울여 개판 무인지경의 우리말 맞춤법으로 조져버린 &lt;서부전선 이상없다&gt;.​그리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책장에서 밀린 카렐 차페크의 &lt;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gt;와 &lt;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gt;가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아직 안 버렸다. 일요일과 월요일이 종이류 재활용품 처리하는 날이다. 이 책들과 지낸 시간이 소록소록... 잘 들 갔으면 좋겠다. 지지난 주처럼 누군가의 눈에 띄어 그나마 좋은 곳으로 갔으면 바랄 것이 없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0/pimg_63927210512560751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36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어차피 인생은 베리에이션 산행 - [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2161</link><pubDate>Fri, 09 Oct 2026 0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21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7479&TPaperId=175621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9/18/coveroff/k9220374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7479&TPaperId=175621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a><br/>마쓰나가 K 산조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02월<br/></td></tr></table><br/>.&nbsp; 마쓰나가 K 산조, 일본 사람이 자기 이름 가운데 알파벳으로 K를 삽입한 건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냥 궁금할 뿐 알고 싶은 건 아니다. 아, 일본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마쓰나가’는 필명으로 자기 친척의 성씨를 따온 것이고, K는 작가의 중간 이름이면서 친척들이 이 K 이니셜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냥 넣은 모양이다. 산조는 할아버지, 즉 직계 성이란다. 그러니까 이름만 가지고 이 작가의 생물학적 성을 확인할 수 없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읽으면 더욱 헛갈린다. “데뷔 당시 그녀는 회사 직원이었지만”이라는 정보와 “2025년 4월 1일 그녀는 고향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라는 말이 있어서 굳세게 여성인 줄 알았는데, “그의 필명 마츠나가는 운운” “그는 순수문학을 자유롭고 운운”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가, 위키피디아가 아니라 구글 사진을 찾아보면 턱 밑에 거뭇한 수염 자국이 있어서 변기 솔 비슷하게 생긴 턱수염을 짧게 기르고 다니는 남성이라고 짐작하게 된다.&nbsp; 하여간 1980년에 이바라키현 미토시에서 출생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세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2021년에 부조리 희극 소설을 써 군조 신문학상 우수상을 받아 데뷔해, 2024년에 &lt;베리 산행&gt; 즉 &lt;베리에이션 루트&gt;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 상장과 부상으로 회중시계와 현금 백만엔을 받아 작심을 해서 2025년 봄에 비장한 마음으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nbsp; 하여간 위키피디아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현재 마쓰나가 K 산조는 “독자들이 순수문학의 ‘재미’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순수문학을 홍보하는 운동으로 ’오모로이 순수문학 운동’을 옹호했다”고 한다. 문장의 서술어가 “옹호했다” 과거 시제니까 지금은 마음이 바뀌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별 관심은 없지만.&nbsp; 일본도 고민은 고민이겠다. 독자들이 순수문학의 재미를 알게 만들기 위해서 별의 별 운동, 활동을 해야 할 정도라면. 내가 지금 괜찮은 일본의 현대소설작가를 찾는 일이 무척 힘들 수도 있겠고.<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일인칭 화자 ‘나.’ 이름은 ‘하타.’ 작품은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으나 독후감은 편의를 위하여 삼인칭으로 쓰겠다.&nbsp; 하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단 작은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이후 곧 대형 리모델링회사에 입사해서 10년 근무하는 동안 남보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도 없을 정도라고 자평했다. 오히려 실적으로 보면 자기 또래 직원 가운데 우수한 편이었을 텐데, 3년 전에 회사가 조금 어려워지자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부서 과장이 점심시간에 하타에게 밥을 사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회사에서 사람을 고르는 것에는 업무실적보다 상하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사회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 하필 정리해고를 당한 시기가 갓 결혼해 아내가 임신 말기에 접어들었을 때라 회사의 조치가 더욱 서운했겠지.&nbsp; 하타는 아내에게 잘렸다고 얘기도 못하고, 미국에서 사는 사촌형에게 넉두리를 해, 마치 여전히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정식 월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비슷하게 몇 달 지원을 받으면서 대기업에 네 번 입사지원서류를 보내 네 번 연속으로 미역국을 먹은 다음, 지금 회사 ‘닛타 테크 건축도장’ 영업과에 입사했다.&nbsp; 직원이 50명 정도 있는 닛타 테크 건축도장은 옥상 방수공사, 외벽 도장 등 건물 외장 보수 전문회사라고 보면 된다. 작은 규모의 고객으로부터는 직접 주문을 받아 원청 일을 하고, 큰 규모의 고객한테는 주문을 딴 회사로부터 하청을 받아 일을 했다. 하타가 일하는 영업1과는 큰 공사의 수주와 관계되는 업무를 취급하고, 영업2과는 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해오던 작은 고객을 위한 업무를 맡았는데, 아무래도 큰 규모의 공사와 자금이 왔다갔다 하는 1과 직원들이 2과 직원들을 좀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nbsp; 회사 안에서는 우리가 직장에 다니면서 흔하게 부딪힐 수 있는 자잘한 파벌 같은 것이 있다. 초대 사장 시절부터 일을 해온 후자키 상무 쪽. 전임 사장과는 다르게 혁신적으로 사업을 재편해 보다 확실한 기업을 만들려는 조금 허황한 욕망이 가득한 초대 사장의 조카이자 2대 사장. 그가 영입한 간부들 진영. 대강 아시겠지? 이런 건 대기업보다 이 회사처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더 심한 법이다. 즉 보수파의 지도자 정도였던 후자키 상무가 회사를 퇴직하기 1년 정도 전에, 정년퇴직한 후에 촉탁 직원으로 근무하는 등산경력 20년 이상의 마쓰우라 씨가 꽃피는 봄을 맞아 사내 인트라넷에 “’등’골 빠지는 일상에 ‘산’행으로 힐링을”이라는 하이쿠 비슷한 2행시 메시지를 올려 “봄철 롯코산 등산”을 제안해 등산 이야기를 시작한다.<br>&nbsp; 전에 10년 다닌 회사에서 사회성 여부로 정리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하타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겨 회사의 거의 모든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작정을 한다. 작 후반에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다시 실직을 당할까봐 회사의 모든 파벌에 한다리를 걸치는 일도 서슴지 않을 예정이니 어찌 등산모임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참가하기로 신청하고, 첫 모임 장소에 가보니 자기 혼자 초심자 티를 팍팍 내고 말았다. 입고 온 복장부터 그러했다. 마쓰우라 씨 이하 하타를 뺀 모든 참가자는 보기에도 벌써 비까번쩍한 아웃도어 옷과 등산화와 장비 등 모든 구색을 갖추어 괜히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이후로 일반적으로 산행 도중과 산행 후, 정상 또는 능선에서 본 고베 인근 풍경과 몸의 적당한 피로와 개운함, 몇몇이 모여 들이켠 하산주,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나열된다.&nbsp; 그러다 정식 산악회가 회사 동아리로 자리잡고, 산악회 고문인 후자키 상무의 퇴임 기념 산행에서 처음으로 모임에 모습을 보인 전문적인 산꾼이자, 베리에이션 등산을 고수하는 영업2과의 40대 중반 메가 씨가 나타나 작가가 원했던 베리 산행, 정식 등산 코스가 아닌 개척 루트로 산을 탐험하는 일을 독자에게 소개하기에 이른다.&nbsp; 메가 씨는 특별한 자격증도 없이 공사과에서 다년간 방수 관련 일을 해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일 말고는 도무지 직원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직원간 삼겹살에 쇠주 한 잔은 물론이고 부서 회식에도 참석한 일이 한 번도 없을 정도이다. 직원 단합대회 형식의 행사에도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으니 말 다했을 정도. 올드 스타일로 회사 살림을 꾸려 나가던 후자키 상무의 퇴임 기념 산행이라 그간의 정을 봐서 함께 가기로 한 모양인데, 메가는 여기서도 별 말이 없다. 이후 상무는 일정에 맞춰 회사를 떠나고, 회사는 젊은 사장의 뜻에 맞추어 점점 불안한 환경으로 꼬나 박히거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nbsp;&nbsp; 닛타 테크 건축도장의 직원들 사이에서 정리해고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회사 분위기가 극도로 뒤숭숭해졌을 때, 하타는 메가 씨에게 함께 베리 산행을 하게 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해서 깨끗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며칠 후에 메가 씨가 직접 하타에게 산행을 권유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베리에이션 산행을 하면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오히려 메가와 회사에 대한 반감만 키우게 되는데, 물론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굳이 베리 산행과 사람 사는 문제가 적절하게 믹스되면서 작품을 마무리하겠지?&nbsp; 그렇다. 그렇게 된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르고 살지만 인생은 베리에이션 산행, 개척 루트를 통해 마지막까지 가는 거니까. 큰 재미는 없지만 자잘하게 사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소품.<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9/18/cover150/k9220374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49181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미국 내 유대 공동체의 지지고 볶는 이야기 - [솔 벨로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0125</link><pubDate>Thu, 08 Oct 2026 04: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601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494&TPaperId=17560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off/k0321304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494&TPaperId=175601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솔 벨로 2</a><br/>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다섯 편의 중단편이 실린 현대문학이 발간한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 43번째 책. 솔 벨로를 위하여 현대문학은 두 권의 단편집을 마련했다. 단편집 두 권 발행은 프랜스시 스콧 피츠제럴드하고 밸로, 딱 두 명의 미국인뿐이다. 벨로가 그만큼 미국 현대문학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작가라는 뜻일 수도 있다.&nbsp; 벨로는 작품 속에서 철학적인 주제를 선택해 독자들의 골을 뽀개는 수도 있고, &lt;비의 왕 핸더슨&gt;처럼 인류학 전공자답게 자기 전공을 십분 살린 경우도 있지만, 역시 나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을 그의 팬이 되게 만드는 건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영토 안에서 자기들 커뮤니티가 생존해나가는 것, 유대 공동체의 특성과 이의 해체 과정을 그린 것이 많다.<br>&nbsp; 그런데 문제가 있다. 최근에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쓴 750쪽짜리 장편소설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을 읽었고, 일 주일이 채 되지 않은 터울로 《솔 벨로 1》과 또다시 《솔 벨로 2》를 연달아 읽다보니 이젠 유대인 이야기가 지긋지긋해지더란 것. 또 있다. 패트릭 화이트의 두 권짜리 장편소설 &lt;폭풍 한가운데&gt;에도 멸절 수용소 이야기가 나온다. 아오, 진짜, 언제까지 이 거대 비극을 읽어야 하는지. 이 소설집 《솔 벨로 2》가 틀림없이 《솔 벨로 1》보다 읽기 좋았고, 재미있었으며 더욱 공감할 수 있었음에도, 머리 속에서는 자꾸 이스라엘의 테헤란 폭격과 이로 인한 하메네이 폭사로 시작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그리고 팔레스타인 학살의 가장 무거운 국제 범죄를 진 나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당연히 전 세계에 분포해 사는 유대인들 대부분은 선한 사람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이 선하다는 건, 1930년대 중반부터 40년대 중반까지의 독일인 대부분도 선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선한 대부분의 유대인과 독일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학살과 전쟁을 시작하고 전개할 수 있는 소수의 특별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있는 독일인과 유대인들. 그들 때문에 연달아 두 권이나 솔 벨로의 작품집을 읽는 동안, (소수의, 특정한,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유대인들이 범하고 있는 범죄를 별개로 하고 책을 읽을 수는 없는 일이다.&nbsp; 말이 나온 김에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그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난하는 의미에서 모스크바를 떠나 독일 땅에 체류하고 있다. 울리츠카야는 매해 일정 기간동안 머무르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폭격기가 테헤란을 폭격해 민간인까지 사망하게 만든 전쟁에는 어떤 의견을 피력했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 아모스 오즈는 이미 죽어 말을 할 수 없겠지만, 오즈와 함께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공생을 주장하던 다비드 그로스만은 2025년에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유대인에 의한 가자기구 집단학살에 관한 비판 소식까지 들었다. 즉 아직까지 나는 유대인이 저지른 대 이란 전쟁에 대한 유대인의 유감표현이나 비판이나 종전요구를 듣지 못한 상태에서 연달아 유대인 작가들의 자기들 사는 이야기, 그것도 보스턴과 뉴욕 중산층과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들의 사는 모습에 공감하면서 읽어주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nbsp; 특히 이번 단편집 《솔 벨로 2》는 좋은 작품으로 꾸민 괜찮은 책이라는 것을 시비할 이유가 1도 없으나, 행간에 스민 유대인들의 삶과 지난 날의 피학살 같은 피해의식에 이제는 그리 깊게 공감하지도 못하겠고, 공감하고 싶지도 않다는 거다.&nbsp;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선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들의 선함은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일과 전혀 관계가 없다. 특정의 특별하고, 권력을 잡은, 유대인이 결정하고 시작했으며 여전히 진행중인데다가, 오히려 더 전쟁을 확대하고 싶어하는 전쟁범죄. 그들은 독일의 나치 집단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미국 내 유대인 공동체 이야기가 도무지 귀에 차지 않았다. 과거에 경험한 대규모 피학살을, 그걸 전세계적, 전 역사적인 면죄부로 써먹는 족속. 그게 유대인인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150/k0321304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56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1Q84에 헌정할, 또는 염병할 - [형사 톈우의 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8415</link><pubDate>Wed, 07 Oct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84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927&TPaperId=175584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497/37/coveroff/89673569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927&TPaperId=175584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형사 톈우의 수기</a><br/>솽쉐타오 지음, 박희선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2월<br/></td></tr></table><br/>.&nbsp; 솽쇄타오. 한자어를 우리말로 발음하면 쌍설도雙雪濤 선생. 1983년 랴오링성의 성도 심양에서 태어나 지린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지만 판검사, 변호사가 되지 않고, 중국개발은행에 취직해 근무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다가 2010년에 아파트 계약금이 부족해 ‘중국어 세계 영화 소설상’에 &lt;날개 달린 귀신翅鬼(시귀)&gt;를 급하게 써서 응모했다가 장원을 먹는 바람에 엉겁결에 등단한 작가. 이때의 조강지처는 얼마 가지 못해 이혼하고 지금은 작가인 둘째 아내 장위란張悅然과 산다. 아마 베이징에서 살 거 같다. 이이의 작품 상당수가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었으니 돈 좀 벌지 않았겠나. 아니면 말고.&nbsp; 한 번 터진 상복은 연달아 터져서 2012년에는 장편소설 &lt;녹아 사라지는 도시&gt;를 써서 타이페이 문학상 연금부문을 수상하는 세 명의 제안자로 선정되어 20만 타이완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세 명의 선정자들은 1년 동안 작품을 써서 세 작품 가운데 하나가 최종 문학상 수상자가 되어 다시 40만 타이완 달러를 추가 상금을 받는 제도이다. 책방이나 출판사 광고를 읽어보면 마치 솽쉐타오가 당선자인 것처럼 읽히게 작가 소개를 써 놓았는데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영광의 공동 은메달 수상자라는 말씀. 하여간 졸지에 적지 않은 상금을 챙긴 솽쉐타오는 마음을 다져 먹고 일찌감치 전업작가로 나선 존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례를 밟아 잘 다니던 중국개발은행에 사직서를 써 던지고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근데 이게 소위 신의 한 수. 이후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요, 곧바로 TV 드라마로 만들거나 영화로 해보자는 제안을 받기 시작했으니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생긴 것.&nbsp; 하여간 이때 20만 타이완 달러를 받게 해준 작품 &lt;녹아 사라지는 도시&gt;를 책으로 출간했을 때의 제목이 바로 &lt;형사 톈우의 수기&gt;이다.<br>&nbsp; 왜 위 문단에서 “존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썼느냐 하면, 쇤네가 무라카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어색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솽쉐타오가 무라카미 상さん을 흠모해 마지않았다고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도 무라카미가 쓴 &lt;1Q84&gt;에 헌정하는 마음으로 쓴 거 같다. 두 개의 달이 뜨는 평행 우주는 아니어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공간과, 중화인민공화국 S시와 타이완의 타이페이 시라는 장소의 공간이 평행하게 놓여 있으며, 결국 이 세 공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 리톈우가 &lt;1Q84&gt;에서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 푸른 콩靑豆, 아오마메와 비슷한 처지이다. 즉 디테일에서는 다르지만 전체 플롯을 감안하면 &lt;1Q84&gt; 없이 &lt;형사 톈우의 수기&gt;가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nbsp; 리톈우는 노동자 부모를 둔 서른 살 먹은 청년. 부모는 3층 높이는 될 정도의 큰 기계를 조립하는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근검절약하고 정부시책에 맞추어 아들 톈우 하나만 낳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끼면서 살다가, 아버지가 슬슬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아내와 아들을 두드려 패고, 집안의 돈이라면 그게 몇 푼이건 간에 무조건 들고 나가 술로 바꾸어 인생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어린 톈우는 다른 건 몰라도 성실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 나, 천재급은 아니지만 학업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반에서는 줄곧 1등, 학교 전체에서도 3등 안에 드는 우등생으로 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S시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2학년까지 마쳤다. 3학년 들어 학급에 (오래 전에는 ‘학습지진아’라고 했는데) 부진아 여학생 안거(安歌)가 들어와 톈우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일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이걸 다 설명하자면 끝도 없어서, 하여간 둘은 의지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 아니, 맹세를 하는데, 바로 다음날 안거가 실종되면서 톈우는 평생 안거를 찾는 데 전념하기로 결심한다.<br>&nbsp; 안거를 가장 효과적으로 찾기 위하여 톈우가 선택한 건 경찰. 안거 때문에 거의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 톈우는 실종사건 이후 곧바로 성적이 수직 상승해서 오히려 눈높이를 낮추어 경찰학교에 지원해 수석합격한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하여간 경찰학교 수료과목 거의 전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뛰어난 형사가 된다. 경찰학교를 수석합격에 최우등 졸업한 유능한 형사. 그래. 중국 형사들이 나오는 소설에선 항상 비슷하더라고. 수석 입학을 하던, 수석 졸업을 하던 간에 무조건 신출귀몰한 포도청 순사가 되는 거 말이지.&nbsp; 그런데 이 비범한 형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베테랑 형사가 있었으니 이름을 장부판張不凡이라고 했다. 장부판은 톈우처럼 청렴하지는 않지만 S시의 거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숨은 실력자이면서, 사법과 정의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근본은 사법질서의 수호자이니까 쉽게 부패 형사 정도로 매도하면 섭섭한 인물. 사실이 그렇다.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不凡. 평범하지 않음. 이이는 톈우에게 세 가지를 훈시한다.&nbsp; 첫째. 모든 사고는 전부 서둘러서 생기는 것. 둘째, 총알은 내가 장전한 만큼 있는 것이지 몇 개가 있어야 한다는 건 헛소리. 셋째, 경찰학교 학생 냄새를 빨리 빼 버려야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음. 그리고 기타 한 가지를 추가하기를, 좋은 경찰한테는 총알이 필요 없음. 그렇다고 아예 장전하지 말라는 건 아님. 멋있지? 소설에서 베테랑 형사들은 늘 그렇다.&nbsp; 그런데 사법과 범죄에 다 달통한 장부판에게는 당연히 적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땅 넓이만큼 다양한 악당들이 모인 중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흉악범을 덮치려 잠복해 있는 장부판과 그의 조수 톈우. 이때 누군가 차창을 똑똑 두드린다. 범죄자. 창을 내리자 하는 말이, 추운데 들어가서 기다리시지요? 오히려, 그리고 드디어 이들이 범죄자에 의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 순간이다.<br>&nbsp; 갑자기 눈을 뜨니 타이페이 거리. 허리에는 그의 권총이 채여 있다. 톈우는 권총을 자신이 체면을 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긴다. 물론 잠깐 그렇다는 뜻이다. 리톈우 앞에 나타난 18세에서 19세로 보이는 여자 아이. 샤오주小久라고 부르면 된단다. 그런데 톈우가 보기에 샤오주의 뺨 위에서 어렴풋이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nbsp; 여기서 의문.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문제인데, 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독자는 샤오주 자체를 허위, 범죄자, 거짓말장이 같이 보게 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샤오주는 조금도 허위와 거짓이 없는 소녀이다. 딱 하나. 정신과 적인 병도 아니고, 피부병도 아닌데, 자신이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조금 흐려져 있는 상태이다. 이 흐려지는 상태는 앞으로 더욱 심해져 불과 며칠 사이에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다. 마치 &lt;1Q84&gt;에서 아오마메가 고가도로 비상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면서 차원을 통과하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가 서서히 흐려지다가 사라질 예정이다.&nbsp; 게다가 놀랍게도 톈우가 특정 호텔의 409호에 묵고 있는데, 샤오주는 바로 옆방인 411호에 짐을 푼 상태. 그러니까 일종의 운명이랄까 인도자, 책 속에서는 ‘사장’이라고 일컫는 인물, 기독교의 하느님과 비견해 조금도 꿀리지 않을 막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미리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나중에 짐작하게 된다. 하여간 톈우와 샤오주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로 약속을 하는데, 샤오주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자기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사진첩에 남기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톈우는 사장한테 받은 지시, 타이페이에서 101 빌딩보다 더 높이 솟은 교회를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nbsp; 세상에나. 101 빌딩이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건 다들 아실 터. 꼭대기에서 번지 점프를 하면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덜 안 혀? 근데 그 빌딩보다 더 높이 솟은 교회가 있다고?<br>&nbsp; 하여간 나는 이렇게 세 가지의 우주를 설명해 놓았다. 이것들이 어떻게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찾는 일은 직접 해보시라. 시간 죽이는데 맞춤인 소설책. 더 이상은 크게 바라지만 않으면 충분하게 만족할 만하겠다. 아, 한 가지 더. 시간 죽이기 좋다는 말 듣고, 야한 장면 바라지 마시라. 안 나온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497/37/cover150/89673569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497378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대가의 사후출판물은 조심하시라 - [SF의 유령]</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6685</link><pubDate>Tue, 06 Oct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66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500&TPaperId=17556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96/31/coveroff/89329225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500&TPaperId=175566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SF의 유령</a><br/>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05월<br/></td></tr></table><br/>.&nbsp; 작품의 제일 뒤에 “블라네스 1984”라고 작품을 쓴 장소와 연도가 쓰여 있다. 그런데 책은 2016년에 나왔다. 볼라뇨는 2003년에 바르셀로나에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니 죽은 다음 14년 만이고 작품을 완성하고 부터는 무려 32년 만이다. 즉 사후 출간한 초기 작품이라는 뜻. 나는 이런 작품은 믿지 않는다. 볼라뇨가 &lt;SF의 유령&gt;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마음에 들었거나, 돈을 받고 독자에게 팔 수 있는 상품이라고 봤다면 죽기 전에 벌써 책방에 깔려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면 작가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더 수정해야 할 미완성 작품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겠지.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미완성인 채 남겨둔 작품. 몇 번 이야기한 거 같은데, 나는 대가들의 사후 출판물을 좋아하지 않는다.&nbsp; 근데 왜 읽었느냐고? 볼라뇨니까. 도서관에 책 있으니까 읽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볼라뇨의 시집 말고 소설책은 다 읽고 싶다. 품질을 떠나서 몽땅. 팬이라면 그럴 수 있는 거잖아?<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칠레인은 칠레인인데, (볼라뇨처럼)아옌데 대통령을 참살하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자마자 칠레를 떠서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두 명의 청년 한 슈레아와 레모. 한은 SF 소설을 습작하고 있고, 레모는 아방가르드 시를 쓰려 한다. 이들은 멕시코시티 외곽의 엘리베이터 없는 녹회색 8층 건물의 8층에 살며, 최고층 주민의 특권으로 당연히 옥상도 거의 소유한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레모의 친구들이 함빡 놀러 와 옥상에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짝을 이루어 화장실에 들어가 할 거 다 하고, 밤그늘이 제법 어두운 구석에 가서 서로를 실컷 더듬는 등 난장판을 벌이기도 한다.&nbsp; 레모는 176cm의 키에 청바지, 파란색 티셔츠 차림으로 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거리의 갓돌 위에서 햇살을 맞으며 서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그는 함께 칠레에서 도착한 룸 메이트 한에게 말한다.&nbsp; “나는 신문 문예란의 시평을 담당하는 스타 기자가 될 거야.”&nbsp; 반면에 한은 죽자사자 SF 소설에 관심을 두고, 전세계, 특히 미국에 몰려 있는 SF 소설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팬레터를 보낸다. 한은 삼시 세끼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정도 식료품점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레모에게 시 창작교실에 다녀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하여 출석하기 시작한 곳이 등단 시인 헤레미아스 모레노의 시 창작교실. 이곳에서 만난 멕시코 사내 호세 아르코. 기름에 찌든 청바지에 검은 가죽 부츠 차림의 낯선 사내. 그러나 헤레미아스가 비록 겉으로나마 예의를 차리는 될성부른 떡잎이었으며, 작품이 진행되면 레모와 함께 아방가르드 시 동인을 만들려 하는데, 이때 독자의 머리에 딱, 떠오르는 또다른 볼라뇨의 소설, 심지어 대표작,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 그 책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 1920년대 멕시코 아방가르드 시 창작 소 그룹.&nbsp; 이것을 눈치채는 순간 &lt;SF의 유령&gt;은 재미없어진다. 놀랍게도 한 순간에 그렇게 되더라.&nbsp; 이제 스물한 살이 된 레모와 한은 멕시코 젊은이들과 어울려 시를 궁리하고, SF 소설을 쓰면서 앞에서 말했듯이 한쪽으로는 여자와 섹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등장하는 여자들도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과 유사하다. 특히 나이든 노파 ‘에스트레이타’마저. 에스트레이타는 생활고에 허덕이는 늙은이면서도 젊은 아가씨 테레사, 앙헬리카 토렌테와 어울려 카페에 앉아 있다가 레모를 따라 나치의 군복 색깔과 똑 같은 녹회색 건물까지 동행해, 술 마시고 그냥 떨어져 자 버리기도 한다. 이 늙은이(와 비슷한 여성 인물)도 다른 볼라뇨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다.&nbsp; 그래서, 아니겠지만, 볼라뇨에게 &lt;SF의 유령&gt;은 훗날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을 쓰기 위한 스케치였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단 &lt;… 탐정들&gt;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에서 몇 차례 등장한 사람들이 모인 듯한 기분. 볼라뇨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독일인 아르침볼드가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니까, 말 다했지. 하여간 대가의 사후 출판 작품은 조심하는 게 좋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96/31/cover150/89329225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396317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SF의 외피를 입은   인생, 삶, 인간에 대한 탐색 - [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4923</link><pubDate>Mon, 05 Oct 2026 0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49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635392&TPaperId=17554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02/59/coveroff/k49263539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635392&TPaperId=175549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숨</a><br/>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05월<br/></td></tr></table><br/>.&nbsp; 테드 창. 단 두 권의 중단편집으로 세계만방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소설가. 《숨》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출간하고 17년만인 2019년에 낸 두 번째 소설집으로 모두 아홉 편의 중단편소설을 실었다. 책 두 권의 터울이 무려 17년. 그래서 두 권의 작품 속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 만일 누가 내게 어떤 책이 더 마음에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숨》이 더 흥미롭고 사색적이었다고 단박에 대답할 거 같다.&nbsp; 그러나 아쉽게도 책을 읽으며 단 한 줄의 메모도 하지 않아, 3일이 흐른 지금 독후감을 쓰려 하니 막막하다. 아홉 편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개별적으로 특정 작품마다 어떤 식으로 인상 깊었다고 짚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읽은 즉시 써야 하거늘 하필이면 그날 오후에 두부부침에 소주와 맥주를, 다음 날엔 생선구이에 소주를, 그 다음 날에는 또 불고기에 소주와 맥주를 퍼 마셔, 오늘 아침에야 겨우 랩탑을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알코올 의존증이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서 걱정이다. 나도 술 끊고 싶다고!<br>&nbsp; 아홉 편의 중단편 가운데 호오好惡… 호오? 좋고 나쁨? 그런 거 없다. 전부 다 좋다. 그래서 호오가 아니고 좋아하는 정도가 제일 컸던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내 주제에 결정해서 말하기 힘든 조건이지만, 표제작인 &lt;숨&gt;과 마지막 순서에 실린 &lt;불안은 자유의 현기증&gt;을 두고 한 두어 시간 책상 위에 손가락만 톡톡 두드리고 앉아 있을 거 같다.&nbsp; 하지만 책을 열자마자 처음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 &lt;상인과 연금술사의 문&gt;부터 쇼크는 시작한다. 이 짧은 단편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lt;아라비안 나이트&gt;. 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자마자 언월도의 칼날에 목이 댕거덩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칼리프한테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셰헤라자드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가 아니라, 푸와드 이븐 압바스라는 이름의 바그다드 상인이 연금술사 바샤라트를 만나 경험한 일을 아뢰는 내용인데, 그게 놀랍게도 시간여행, 타임머신, “백 투더 퓨처” 이야기다. 우리는 그동안 H.G. 웰스가 19세기 말에 &lt;타임머신&gt;을 발표한 이후 숱하게 다양한 버전의 시간 여행 이야기를 읽고, 보고, 관람해왔지만, 아마도 주된 이야기는 주인공의 불운한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과거의 행적을 수정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nbsp; 우리나라 작가 복거일이 쓴 &lt;역사 속의 나그네&gt;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 이언오는 26세기에서 5백년 전인 21세기로 날아온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데, 기계의 오류인지 또다시 5백년 전인 16세기 말 조선에 불시착하니, 임진왜란이 터지기 10년 전. 처음 16세기에 도착한 이언오는 자신의 행동과 소지품 때문에 시간에 흔적을 남겨 시간줄기가 변형, 기존의 역사가 바뀌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해서 그냥 곱게 죽기를 원하는 걸로 시작한다. 즉 시간 여행으로 과거 원인이 바뀌면 미래의 결과 역시 바뀐다는 것이 그동안의 타임머신 작품들의 공통점이었는데, 테드 창은 이런 개념에 반대한다.&nbsp; 테드 창, 강봉남姜峯楠 씨는 보다 나은 현재 또는 행복을 위하여 과거를 수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충분히 동의를 하지만, 백 번 과거를 바꾸어 보아도 결코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한 변곡점에 충격을 주어 시간 줄기를 흔들어봤자, 20년이라는 세월이 시간여행자가 원하는 대로 시간줄기가 흐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변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이 그렇게 비극적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알아? 더 비극적 처지로도 빠져버릴 수 있었는지.&nbsp; 그런데, 이런 면에서 읽으면, 과거가 어땠는지 인생은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갈 뿐이라는 운명론과 만날 수밖에 없다.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은 그냥 그대로 걷게 디자인되어 있는 걸까? 그것 참. 나는 모르겠다. 이젠 별로 관심도 없다. 슬슬 도가 트기 시작하는 거 같다.<br>&nbsp; 두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lt;숨&gt;이, 이 책에 실린 것들 가운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SF 아닌가 싶다.&nbsp; “공기 혹은 아르곤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생명의 원천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nbsp; 작품은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르곤? 원자번호 18번. 내가 배울 당시에는 원소 주기율표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불활성 기체”라고 배웠는데 요즘엔 “비활성 기체”라 하는 모양이다. 발음 상 조금 문제가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농담이다). 어쨌든 다른 원소와 거의 반응하지 않는 기체라서 높은 순도를 유지해야 하는 산업 기계에 많이 사용한다. 불활성 기체 가운데 공기 중에 가장 흔하다. 즉 가격이 저렴해 그나마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비활성 기체.&nbsp; 문제는 이런 아르곤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설정. 이쯤 되면, 즉 물이나 산소가 아니라 불활성 기체가 생명의 원천이라는 가정이라면, 이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유기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면 뭘까? 뭐긴 뭐야, 무기 생명체, 즉 인조인간 로보트? 또는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 아니면 스타니스와프 렘 식으로 기계가 스스로 진화해 발생한 기계 생명체. 어느 것이라도 무방하다. 이 생명체 역시 허파 호흡을 한다. 그러나 호흡의 방식은 유기 생명체와 다르다.&nbsp; “우리는 매일 공기를 가득 채운 두 개의 허파를 소비한다. 매일 가슴에서 빈 허파들을 꺼내 공기를 가득 채운 허파들로 교환하는 식으로 말이다.”&nbsp; 마치 잠수부가 등에 짊어지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산소통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게 가슴 속에 두 개가 있어서 매일 아르곤 가스가 만땅 채워진 허파로 교체해주어야 한다니 독자는 초장부터 “우리”가 기계 등의 무기 생명체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마땅하거늘. 강봉남 씨도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계속 “사람”이라 칭하는 바람에, 뭐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nbsp; &lt;숨&gt;의 핵심은 기계 인간의 생존 방식이 유기생명체인 진짜 인간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 그러니까 태드 창은 아르곤을 생명의 원천으로 하고, 몸체를 이루는 로드rod 사이에 어떤 윤활 물질도 필요하지 않은 기계를 통해 사람들의 생존과 소멸에 관해 사색한 결과물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자 화자 ‘나’인 무기 생명체, 스스로 진화한 기계 생명체, 또는 로봇일 수도 있는 해부학자 ‘나’는 발견한다.&nbsp; “내가 매일 새로운 허파 한 쌍으로부터 끌어내는 공기의 양은 내 팔다리 관절과 내 주위의 대기에 내가 더하는 공기의 양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략)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이 우주의 압력 평형화에 기여하고 있다. 생각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치명적인 평형상태의 도래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p.78)&nbsp; 운동/열 에너지를 말하고 있는 듯한데 자신의 운동과 생각을 포함한 에너지의 소비와 허파를 통한 보충이 서로 평형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의미. 근데 평형이란 건 뭘까? 정지. 그리하여 평형상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걸 발견한 ‘나’는 어떻게 했을까?&nbsp; “다른 상황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거리로 뛰쳐나갔겠지만…” (p.78)&nbsp; 생각나는 옛 사람 한 명 생각난다. 퍼뜩 진리를 깨닫자 욕탕에서 벌떡 일어나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며 이렇게 외쳤던 사람.&nbsp; “유레카!”<br>&nbsp; 테드 창은 SF 소설 작가로 이름을 높였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테드 창, 강봉남 씨를 SF 작가로 국한시킬 수 있을까, 국한시켜야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몰라도 이 책 《숨》은 비록 SF의 외피를 입었어도 삶과 인생과 인간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를 읽는 듯했기 때문이다.&nbsp; 독후감 초장에 얘기한 마지막 수록 작품 &lt;불안은 자유의 현기증&gt;이 대표적이다. 프리즘. 백색광을 투과하면서 빛이 분산해 여러가지 색으로 변하게 하는 삼각기둥처럼 생긴 거. 여기서 방점은 빛이 굴절하며 얼마나 굴절하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분산한다는 것인데, 테드 창은 이걸 ‘평행공간으로의 이주로 가게 할 수 있는 매개물 또는 장치’로 해석했다.&nbsp; 이 작품이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세상의 70억명 모두 개별적으로 다양한 평행우주 또는 평행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그냥 평행우주/평행공간이라 생각하는 것도 재미겠지만, 삶과 인간에 대해 생각할 거리로 여겨도 의미있는 생각할 거리가 될 수 있다.&nbsp; 이런 생각 거리가 이 책 《숨》에 가득하다. 편마다 숙고와 사색의 흔적이 들어 있으니 이 작가가 두 번째 책을 17년 만에 낸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을 터. 이이는 SF 작가라기 보다 과학 철학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02/59/cover150/k49263539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02599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말 많은 늙은이를 주책이라 하지 -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0062</link><pubDate>Fri, 02 Oct 2026 05: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50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550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off/89320450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550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a><br/>이문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문재. 1959년 김포생. 나는 서울 출생이지만 김포 사람이다. 시인과 성씨도 같다. 조부모, 부모도 김포 문중 납골당에서 사이좋게 한 방에서 명복을 누리시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이이의 시집을 읽었을 때부터 어어, 이거 혹시 우리 문중 사람 아녀? 이랬다는 거 아닌가. 근데 다행이다. 시집을 읽어보니 원래 평안도 웅진 사람인데 전쟁 때 부모가 형과 누나를 솔가하여 꽝꽝 얼어붙은 바다 위로 인천, 태안을 거쳐 저 남도 끝자락까지 피난을 해 먹고 살다가 김포로 옮긴 다음에 시인을 낳은 거란다.&nbsp; 이문재는 1990년대부터 읽었으니 세월이 꽤 됐고, 기중 좋아하는 시인으로 시집이 탁 보이면 척 골라 읽는 수준이었다. 근데 이젠 그짓도 그만 해야겠다. 내가 만일 이이의 동생이라면 다시는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할 거 같다.<br><br>&nbsp; 문자 메시지<br>&nbsp; 형, 백만 원 부쳤어.&nbsp;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nbsp; 나쁜 데 써도 돼.&nbsp;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문학동네, 《지금 여기가 맨 앞》, 2014)<br><br>&nbsp; 이문재는 문학동네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팍 늙어버렸다. 그래서 위에 소개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안 할 거 같다.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nbsp; 이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읽을 만했던 것은 다른 시인도 아니고 무려 나희덕이 쓴 발문 “생각을 생각하는 시, 꿈을 꾸게 하는 꿈”이었다. 같은 시인 그룹의 선배 시인이 자기 시집에 발문을 써 달라고 하니 아무리 나희덕이라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지. 나희덕도 국문학 박사님이니 그럴 듯한 발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리하여 한 마디 꽝, 하는 데:&nbsp; “시집 제목부터가 재귀적 표현이다. 수록된 시들의 제목을 일별해보아도 ‘고통이 말해주지 않는 고통’ ‘혼자의 혼자’ ‘혼자 혼잣말’ … 등 동어반복과 재귀적 허용이 잦은 편이다. 시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반복과 변주는 그야말로 ‘이문재식 문장법’이라고 부를 만하다. 1부만 해도 재귀적 문장이 수두룩하다.” (p.164)&nbsp; 정말 그렇다. 그래서 책의 뒷표지, 가끔 책 판매를 위한 카피 역할을 하는 뒷표지에 뭐라 적어 놓았느냐 하면,<br>&nbsp;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듯이&nbsp; 시를 쓰게 하는 시가 있다.&nbsp; 밥을 먹게 하는 밥이 있듯이&nbsp; 삶을 살게 하는 삶이 있다.&nbsp;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nbsp; 삶을 살도록 하는 죽음들이 있다.<br><br>&nbsp; 뭔 시집의 카피가, 말이 많았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시를 읽어보자. 다행히 짧은 시다.<br><br>&nbsp; 눈동자<br><br>&nbsp; 눈동자에게&nbsp; 필요한 것은 눈동자다<br>&nbsp; 눈동자는&nbsp; 다른 눈동자가 필요하다<br>&nbsp; 지금 가장 필요한 눈동자는&nbsp;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다 (전문.&nbsp; p.11)<br><br>&nbsp; 원래 시인들이 하는 말이 이렇지 뭐. 그냥 내 앞에서 나를 봐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한 거다. 사실은 나를 봐줄 필요까지도 없고 그냥 앞에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을 사람 하나.&nbsp; 그러나 시집의 저 뒤로 가면 이 눈동자에게 작지 않은 일이 생긴다.<br><br>&nbsp; 눈동자 2<br><br>&nbsp; 눈동자가 위기에 처했다&nbsp; 눈동자가 눈동자를 찾지 않는다<br>&nbsp; 눈동자를 바라본 적이&nbsp;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br>&nbsp; 다른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nbsp;&nbsp;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br>&nbsp; 눈짓으로 말한 적이 언제&nbsp; 서로 눈빛을 마주친 적이 언제였는지<br>&nbsp; 눈동자가 위험하다&nbsp; 눈동자가 눈동자를 잃어버렸다&nbsp; (전문. p.125)<br><br>&nbsp; 에그. 시인이 좀 외롭구먼. 늙으면 다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이지 뭐. 하긴 시인이니까 이리 엄살도 떨고 그러는 거겠지만. 근데, 그래서 당신 눈동자가 잃어버린 눈동자는 몇 알이나 되는 거야? 같은 단어 이리 줄을 이어서 이게 시입네, 하니까, 재귀적으로 눈동자 눈알을 주욱 나열하니까 성질 좀 풀리시나 보다.&nbsp; 초장부터 까탈을 부리는 건, 시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 확실하게 말하자. 지금 나는 이 시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했지, 조금도 시가 잘못된 것이란 의미는 담지 않았다. 틀림없이 시 읽는 수준이 별볼일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용기도 있을 거라 여기면 정확하게 맞는 생각이다. 무엇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br><br>&nbsp; 너도 봄날<br><br>&nbsp; 거울 속의 거울&nbsp; 마주 보는 거울은 떼어놓기&nbsp;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와 마주 보게 하기&nbsp; 눈동자 안에 다른 눈동자 빛나게 하기&nbsp; 반짝이는 눈동자에게&nbsp; 꿈을 꾸게 하는 꿈 말해주기&nbsp;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 (전문.&nbsp; p.12) * 원문은 모든 행이 한 연인데 그냥 붙여 인용했음.<br><br>&nbsp; 단어를 연속해 가져다 놓음으로 강조의 의미도 줄 수 있고,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고 하여간 여러 시적 표현이 가능한 연상작용을 의도했을 수 있겠지만, 앞에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몇 페이지 건너 다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저 뒤에서 또다시 눈깔이 툭 튀어나오면 이거 뭐 가자미 눈깔도 아니고, 동태 눈알도 아니고, 죽어도 못 잊는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누이동생의 눈동자도 아니지, 많고 많은 눈동자에 뭐가 그리 좋은 것이 많다고, 서로 눈알끼리 마주보게 해야 하느냐는 것. 낸 앞의 눈동자 모두 선하고, 아름답고, 눈길만 닿았다 하면 찌르르 아랫배가 찌릿하고, 다 그럴 거 같지? 그 많은 눈동자 속에서 몇 알, 몇 쌍은 당신의 눈동자를 읽으면서 저걸 어떻게 뒤통수를 칠까, 몇 대나 때려줄까, 지갑에 얼마나 들었을까, 애먼 생각을 하는 눈알도 수다하게 있을 수 있다. 시인도 다 알면서 저리 예쁜 눈동자만 골라 생각하라고 하는 거다. 그게 시니까. 좀 독하게 평하는 거 같은데, 나는 한 마디로, 나희덕이 말한 재귀적 표현을 지극하게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쁜 말이 안 나가지.&nbsp; 1959년생이니 이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자리에서는 은퇴를 했을 거 같고, 그럼 명예교수? 아, 그 참. 명예교수들이 문제라니까. 열라 시 쓰고, 공부하고, 발표하고, 제자들에게 만날 올림을 받으며 살다가 갑자기 툭. 여태 가오가 있었으니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황지우는 말했다는 거 아냐.&nbsp; “성님, 시는 이십대에나 쓰는 거 아뉴?”<br><br>&nbsp; 엄마 전화기<br><br>&nbsp; 엄마 전화기가&nbsp; 여전히 살아 있다&nbsp; 세상 떠난 지 1년이 넘었는데&nbsp;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nbsp; 전원을 켜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고&nbsp; 부재중 전화도 제법 있다 어쩌다&nbsp; 진동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nbsp;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가 또 죽을까 싶어&nbsp; 충전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nbsp; 죽은 엄마 전화기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nbsp; 살아 있는 나 때문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에도&nbsp; 너무 힘들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nbsp; 나도 거기로 가고 싶은데 엄마 나 가도 되나&nbsp; 답 문자 기다리는 대신 엄마 전화기 속으로&nbsp; 이니셜과 별명이 많은 엄마의 사생활 속으로&nbsp; 들어가곤 한다 수백 번 넘게 열어본 우리 엄마&nbsp; 그래서 그렇게 비상금이 필요했고 그래서&nbsp; 아빠와 매번 심하게 다퉜고 그래서 그래서&nbsp;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엄마한테 달려갔고&nbsp; 그래서 그날 새벽 차를 몰고 동쪽 바다로 향했고&nbsp; 그래서 엄마가 그래서 엄마는 그래서 나도&nbsp; 그날 이후 눈을 들지 못하고 살아왔는데&nbsp; 엄마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겨우 견뎌왔는데&nbsp; 이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 살 더 먹기 전에&nbsp; 죽은 엄마 두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nbsp; 전화기를 엄마한테 돌려줘야겠다&nbsp; 매번 다짐하곤 하는데 다짐하긴 하는데&nbsp; &nbsp;(전문. p.24~25)<br><br>&nbsp; 이번 이문재 시집을 읽으면서, 이 시집을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않기로 작정하게 만든 시. 이 시의 화자가 누굴까? 시인의 엄마? 시인의 아내? 아이쿠, 시인의 아내는 취소. 멀쩡히 살아 있는 분일 확률이 높은데 산 사람을 그리 말하는 건 사람 할 일이 아니다. 그럼 시인의 삶 속 특정한 여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늙은 시인의 어머니, 2년 전에 돌아가신 모친을 말하는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nbsp; 이 시를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재가 환갑이 넘어 돌아가신 것 같다.&nbsp; 그런데 이거 뭐 이렇게 궁상이야 싶다. 세상에 어머니 보낸 사람이 시인 한 명인가? 자실 만큼 자신 나이가 부끄러울 것도 같은데, 뭐 그렇다고 꼭 이렇게 내놓고 큰 울음을 울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지만, 아이고, 난 딱 싫다. “죽은 엄마”를 얼른 잘 보내드리는 것도 나이 든 자식이 할 일. 내 이야기를 해서 안 되기는 했지만, 난 죽은 엄마가 꿈에서도 잘 오시지 않는 게 그렇게 고맙더만. 생과부로 두 아들 키우느라 뼈빠지게 고생하다 간 엄만데도 돌아가시자마자 팍 보내드렸는데, 그것도 괜찮은 일이란 걸, 시인은 모르는 모양이다.&nbsp; 시집 안 읽어본 분은 모르시겠지. 이 시집의 가관은 2부 이후부터 나온다.&nbsp; 이미 55세도 아니고, 60세도 아니고, 65세 정년퇴직한 명예교수라는 분이, 뒷방으로 물러났으면 거기서 좀 고요히 여생을 즐기면 될 것을 세상살이 거의 모든 잡사에 끼어들어 한 마디를 하고 싶어한다. 그거 참.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세계정세 같은 거에 빠지지 않으려 하니, 나중에 시인의 엄마처럼 세상 등질 때 얼마나 아쉽겠느냐고. 제발 좀 그러지 마시라. 쓸데없이 말 많고 참견 많은 꼰대를 주책바가지라 하는 것도 아실 터인데. 오랜 팬이라서 이런 말도 올려주는 거란 것도 이해해줄 연치의 시인이라서 오랜만에 속 다 터놓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150/89320450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020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도대체 소설은 누가 쓴 거야 - [킵]</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8288</link><pubDate>Thu, 01 Oct 2026 0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82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607&TPaperId=175482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6/30/coveroff/895461660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607&TPaperId=175482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킵</a><br/>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br/></td></tr></table><br/>.&nbsp; 올해 집중해서 읽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제니퍼 이건. 퓰리처상을 받은 발랄한 &lt;깡패단의 방문&gt;에서 시작해 거의 데뷔작이라고 봐도 좋을 소설집 《에메랄드 시티》에 이어 2006년에 출간한 &lt;킵&gt;까지 왔다. 앞에 읽은 두 작품과 많이 다르다.&nbsp; 나는 작품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작가의 이름 하나만 가지고 선택해 읽었는데, 그래서 읽는 도중에 적어도 두 번 “이게 뭐야?” 크게 판을 뒤집는 광경을 제대로 감각할 수 있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대놓고 작품이 픽션이라 선언한다. 이런 건 읽을 때마다 메타 픽션인 걸 알면서도 꼭 깜짝 놀란다.<br>&nbsp; 대니 킹.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킹의 아버지는 여러 형제 가운데 한 명이었고, 형제들끼리 우의가 돈독하여 자주 가족 모임을 가졌는데, 대니는 사촌들 가운데 하위, 레이프에 관한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세 명이 “함께” 즐거웠다는 말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두 명의 사촌하고 친했다는 말이지. 둘 중에 특히 하위하고. 하위는 자기가 만든 아이들 게임 “터미널 제우스”에 대니를 끼워주어 어린이 시절에만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놀이를 즐기게 해 주었는다. 하위는 많고 많은 사촌들 가운데 딱 한 명, 킹 가문에서 입양한 사촌이라 삼촌들이나 고모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척했고, 사촌들은 은근히 왕따를 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집단 놀이를 해도 하위만 끼워주지 않거나 소위 ‘깍두기’ 역할만 하게 만드는 식으로. 그러니 성격이 좀 비뚤이지겠지? 그래도 놀이를 만들 만큼 머리가 좋았는데, 그게 사촌들 눈에는 괴짜에다가 루저로 보여 날이 갈수록 따돌림이 심해져, 끝내 대니 역시 하위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십대의 하위에게는 일종의 외상성 경험으로 작용을 해 하위가 가지고 있던 양순함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성마르고 노심초사하는 성격으로, 환상적으로 망가졌다는 소문이 킹 가문에 흘러 들어왔다.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었다고? 그런 애를 입양하다니 다 노엄 잘못이야. 유전자 잘못이라고. 우리 집안에 없는 유전자를 갖고 끼어 들어와서 말이지.&nbsp; 하지만 하위는 일찌감치 집을 나가 좋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주식 채권 딜러 일에 혁혁한 전공을 쌓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에 비견하는 업계의 월계관이란 월계관은 다 수집해버렸고, 재산 역시 무지막지하게 많은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돈벌이에서 은퇴해버리고 보다 그럴듯한 삶을 위하여 폴란드인지, 오스트리아인지, 체코인지, 독일인지 모를 곳에 있는 9백년 된 고성을 사서, 그걸 호텔로 리빌딩해 편안한 나머지 삶을 도모하고 있다. 앤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벤지와 젖먹이 딸이 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하위’라고 부르지 못한다. 대신 본명인 하워드를 갖다 바친다. 대니 조차도.<br>&nbsp; 대니는 어린 시절에 레이프와 한패가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세상에 없다고 믿으면서, 그러니까 대강 껄렁껄렁한 십대를 보낸 후에 집을 떠나 뉴욕에 정착해 사는 척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때 미식축구로 이름을 날려 대학은 졸업한 거 같다. 도무지 먹고 사는 일에 능숙하지 못해 친구의 소개로 별로 건전하지 않은 식당의 바지 사장으로 들어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나마 괜찮게 먹고 살았는데, 이런 업소의 바지 사장들이 항용 그러하듯 그럴 때가 되니까 업주 또는 물주, 그것도 아니면 보스의 눈 밖에 나, 아마도 한 바탕 제대로 두드려 맞고 쫓겨난 거 같다. 이 와중에 20대 초반까지 몸 바쳐서 투신했던 미식축구 선수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에 추가 상해를 입어 장애 수준에는 살짝 미치지 못할 만큼의 통증이 유발, 다리를 약간 절고 있다.&nbsp; 딱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처지에 떨어진 순간, 저 동유럽 모처에서 연락이 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폴란드인지 모를 곳의 오래된 성을 구입한 사촌 하위가 대니한테, 성의 개조를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돈과 편도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다. 도시에서 완전하게 탈출해 조용하고 여유롭게 유럽의 흑림에서 살고 싶어하는 하위와 달리 전형적인 도시인인 대니는, 그러나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어 ‘폰 아우스블링커’ 성에 가서 하위, 앞으로 하워드라고 불러야 하는 사촌의 따까리 또는 당번이나 보좌관, 아니면 다행스럽게 넘버 투 일을 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들기를, 워낙 심심산골이라 와이파이라는 건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인터넷도 터지지 않고, 당연히 폴더폰이었을 휴대폰도 그냥 플라스틱 뭉치 또는 휴대용 무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내복 몇 개, 스웨터 몇 장을 넣은 샘소나이트 트렁크와 함께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전파를 발송하고 접수할 수 있는 위성용 안테나까지 장만해 깊고 깊은 동유럽의 산악지역으로 떠나 폰 아우스블링커 성벽 앞에 섰다. 성문이 아니라 성벽 앞에. 무너져가는 성 앞. 이게 첫 장면이다.<br>&nbsp; 그리고 레이프. 레이프의 멋진 점은 그가 무엇을 하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대니가 살면서 제일 짜릿했던 경험이 레이프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었다니 10대, 하이틴 시절 이후에 별로 바람직하게 살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제니퍼 이건은 이 건에 대하여 끝내 모른 척한다. 그리하여 독자의 권한으로 넘겨 짚어 보건대, 레이프는 일찌감치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진출해 이러저러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쏜 권총 총알이 상대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린 것을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든 레이프는 그길로 스스로 경철서에 출두해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선처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이리 도망가고 저리 숨어 다니다가 끝내 체포되어 거의 무기수 비슷한 처지로 떨어져 교도소 2인실에서 살고 있다. 하필이면 같은 방에 사는 흑인 재소자가 푸시 업을 하루에 750회씩 하는 어마어마한 덩치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이 데이비스 덕분에 다른 방에 사는 더러운 호모 새끼들이 레이프의 엉덩이를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감히 더듬어 대지 못하는 덕도 본다. 그렇게 산다.&nbsp; 다시 말하건대 이건 전적으로 독자인 내가 다시 그려보는 사촌 세 명의 훗날 모습니다. 레이프가 작품에 나오는 수감자, 더 뒤로 가면 감히 21세기 또는 20세기 말에 저격병이 망루를 지키고 있는 미국 교도소의 이중 철조망을 뚫고 무사히 탈옥에 성공하는 ‘레이’와 동일인이라는 아무 증거도 없기는 하지만 뭐 독자가 그렇게 생각하겠다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레이프 말고 레이라고 쓴다.&nbsp; 레이는 처음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압박을 느끼는 데이비스를 잠깐이나마 피하기 위하여 교도소가 마련한 재소자 성격 개조 프로그램의 일환인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 강사는 딸 둘을 키우는 돌싱녀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홀리. 그러니까 아직 정식으로 강의를 맡을 자격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교도소에서 험한 재소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홀리한테까지 강사 자리가 밀려올 수 있었는데, 심지어 지원자가 없으니 재소자와의 대면이라는 위험수당까지 붙어 홀리 수준의 가방끈으로는 어떤 강사도 받지 못하는 급료를 받았다.&nbsp; 범죄자 레이가 원래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일. 다만 독서량이 모자라 처음부터 기막힌 글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하여튼 처음 적어낸 이야기는, 선생 또는 강사와 침대에서 한 탕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 일종의 패관문학이었겠지. 그러나 재질이 있는 레이의 두번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고 하면, 바로 저 동유럽,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모를 흑림 속 산악지역의 9백년 된 성과 성 안에 솟은 공략할 수 없는 탑, 이른바 아성牙城the Keep, 그리고 성이 팔렸음에도 결코 아성에서 퇴거하기를 거부하는 97세의 남작부인. 아성 지하에 미로처럼 뻗어 있는 지하 동굴과 심지어 9백년 묵은 포도주, 고문 도구, 현대인은 생각도 못할 옛 시절의 갖은 무기 종류.&nbsp; 여기가 하위와 대니가 얼굴을 맞대고 있을 폰 아우스블링커 성일까?&nbsp; 책을 읽는 도중에 여러 번, 적어도 몇 번은 머리 속이 헝클어지는 즐거움을 맛보실 수 있을 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6/30/cover150/89546166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6302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난 여름이 너무 더워서 - [솔 벨로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4944</link><pubDate>Wed, 30 Sep 2026 04: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49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494&TPaperId=175449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2/coveroff/k9721304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494&TPaperId=175449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솔 벨로 1</a><br/>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하필이면 재미난 책을 올해 가장 더울 때 읽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우라질 적정온도와 바람의 세기, 풍향 같은 것에 여간해 적응하지 못해 밤새 쪽잠을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쨌든 덥지 않게 잔 건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후텁지근하고, 얼음을 탔거나 말거나 하여간 찬물만 들이켜 뱃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서, 서늘한 도서관 열람실, 시민 혹서기 피난처이기도 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읽었다. 겨우 520쪽 분량의 책을 3일 반이나 걸려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는 것도 무리인 것이 예약 대기중인 이용자가 두 명이나 있어 대출기일 연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혹서기에 가끔 겪는 일인데, 이번엔 솔 벨로의 절묘한 소설집 《솔 벨로 1》이 걸려버렸다.&nbsp;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줄은 알겠는데, 이게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눈에 들어오면서 즉각 무릎을 쳐야 마땅하거늘 도무지 천근 같은 눈꺼풀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대뇌 전두엽이 졸음에 겨워 접수를 거부한다. 한여름만 아니었어도 즉각 집으로 후퇴해 낮잠 한 번 때린 다음에 다시 책 읽기를 이어가면 쉽게 해결되겠건만, 그 생각으로 가방 챙겨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 집엔 전기료 무서워 거실 큰 에어컨도 철수해버렸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습기와 온도를 버티면서 책을 읽는 건 포기. 그래서 여름 들면 읽는 양도 팍 준다. 지금이 그 시즌이다. 열흘 동안 네 권.<br>&nbsp; 《솔 벨로 1》 안에는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전부 솔 벨로처럼 유대인계 미국인이고, 예술 부분에 크게 한 자리하고 있거나 핏줄 속의 유전자 혜택을 받은 부르주아들이다. 딱 한 편만 빼고. 첫번째 작품 &lt;그린 씨를 찾아서&gt;는 유대인인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국인. 시절은 공황기. 서른다섯 살의 시카고 토박이 조지 그리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자.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공황 직전까지 성 올라프 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강사도 했고, 1926년부터 공황이 덮치기 전까지 2년 동안 문학 연구원에 다녔지만 당연히 해고당했다. 이후 스톱앤숍에서 육류 통조림 판매 일도 하고, 골드불래츠에서 창문 차양도 팔았고, 심지어 신발 판매원이기도 했다. 주로 특정일,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이었는데, 이는 될수록 많은 실업자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이었던가 보다.&nbsp; 지금은 프레리 애비뉴에 있는 지역 구호소에서 일한다. 이 일자리도 쉽게 구한 건 아니었다. 시 법률 고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학교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친한 친구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지 그리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구해준 자리였는데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어서 그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것쯤이야. 맡은 일은 사무실의 가장 말단. 심지어 사환이라 불러도 별로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nbsp; 조지에게 작업 명령을 내리는 직속 상사는 조지보다 어린 나이의 레이너. 레이너가 일을 주었다.&nbsp; 이곳 지역 구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창고 건물이었던 프레리 애비뉴의 구호소에 출두하여 서류에 서명하고 생활보조금을 수령해 가야 하지만,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했거나, 질환이나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들 한테는 임시직을 포함한 특정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정부발행 수표를 건네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의 젊은 수석 레이너가 조지 그리브가 바로 이 일을 시킨 거였다. 1940년대 말,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얼음바람이 건물 사이를 칼처럼 베며 횡행하던 한 겨울에.&nbsp; 그리하여 그리브는 프레리 애비뉴의 건물에서 외투와 모자 차림으로, 속주머니에는 수표책을 두툼하게 지닌 채로 길거리 포도에 발을 딛고 섰는데, 아뿔싸, 레어너의 사무실에 장갑을 벗어 그냥 두고 나온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솔직히 대학을 설렁설렁 나온 것도 아니고 유대인스럽게 열심히 열공, 닥공해서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와 문학 연구원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 생활도 하던 인텔리겐치아 출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약간 빗나갔거나, 아니면 신분상의 이유로 도피중일 지도 모르는 털리버 그린 씨를 찾아 시카고의 흑인 전용 주거구역의 음산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 3D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수 없었겠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그리브는 대공황의 손톱에 하도 할큄을 당해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하여 낡기는 했지만 실크 바지를 입은 복지사의 자격으로 흑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추운 날, 몸에 아무런 천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신으로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와 문을 열어준 50대의 뚱뚱한 흑인 여성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하루 일을 끝마치는 일.&nbsp; 이게 《솔 벨로 1》 제일 앞에 실은 1951년 작품 &lt;그린 씨를 찾아서&gt;이다.<br>&nbsp; 하지만 우리에게 &lt;오기 마치의 모험&gt;, &lt;허조그&gt;, &lt;비의 왕 핸더슨&gt;, &lt;오늘을 잡아라&gt;, &lt;험볼트의 선물&gt; 같이 장편소설로만 알려진 솔 벨로스러운 작품을 읽으려면 점점 더 책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lt;오기 마치의 모험&gt;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한데, 내 기억에 그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는 오리무중을 헤매는 당나라 군졸처럼 정처를 잃거나, 저 앞으로 책을 넘겨 안개가 덮치기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읽기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솔 벨로의,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사색이, 좋은 말로 하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고, 좀 비껴서 말하자면 잘난 척 하나는 정말 세계챔피언 급이기 때문이었다.&nbsp; 하지만 걱정 마시라. &lt;오기 마치의 모험&gt;은 두 권 분량의 길고 긴 로드무비였으나, 이 책 뒤편에 실린 두 작품, &lt;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gt;와 &lt;오늘은 어땠나요?&gt;는 길어봤자 1백쪽과 1백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맥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도 가뿐하게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유대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지막지한 과시와 지적 허풍과, 뭐니뭐니해도 세상 어떤 민족과도 비교 불가능한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nbsp; 내가 이 책을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채점했는데, 초두에 말했듯 하도 더워 컨디션이 망가진 내 탓이지, 이 책 《솔 벨로 1》 안에 든 작품들에 별 하나를 깔 만한 흠을 발견했거나, 하다못해 있기는 있지만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이라든가, 현대문학이 나한테 만원 꿔 갔는데 아직 안 갚고 떼먹어서도 아니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무리 독후감을 후지게 썼어도 이것 때문에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1도 없다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2/cover150/k9721304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22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고립된 사람들, 황량한 벌판 - [집으로의 긴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2693</link><pubDate>Tue, 29 Sep 2026 04: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2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0196&TPaperId=17542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7/coveroff/k692130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0196&TPaperId=17542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집으로의 긴 여행</a><br/>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유디트 헤르만, 신간이 나온 걸 알아챈 순간 곧바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 헤르만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장편소설일 듯하다. 이이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감각적인 문장이 가득한데, 비록 한여름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딘가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서늘함이 도사리는 글들.<br>&nbsp;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그러니까 30년은 채 되지 않은 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가 현재 마흔일곱 살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중소도시의 신축건물 원룸 꼭대기 층에 살며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나’는 담배공장 생산 라인에서 담배를 일정 길이로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공정에 서서 일한다. 자동장치라 알아서 처리를 하지만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을 경우 ‘나’가 제거하는데, 독자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내리치는 공정에서 맨 손으로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nbsp; 공장에서 유일하게 귀마개를 하고 일을 하는 직원. 함께 일하는 동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나’. ‘나’의 즐거움은 5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 여름엔 주유소에 달려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도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nbsp; 바로 이 작은 가게에서 일이 벌어진다.&nbsp;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문을 열고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167cm, 절대로 작지 않은 키의 ‘나’를 보더니 “적당히 작은 키군요. 딱 좋은 키네요.” 꿍꿍이가 없는 어투로 말한다. 적당히 작다는 건 자신의 트릭을 기준으로 충분히 작고 알맞다는 말이란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 자기 상자에 젊은 여자를 넣고 상자의 중간을 톱으로 썰어버리는 통 마술. 너무 자주 공연하여 이제는 조금 뻔한 마술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섬뜩하고 작은 비명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 오로라호를 타고 3개월간 싱가포르를 왕복할 예정이다. 오로라호 전담 마술사이며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통 마술에서 자신을 보조했던 여성이 그만 두어 ‘나’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나’에게 주소를 가르쳐 주고, ‘나’는 그가 아내와 사는 외딴 방갈로에 방문한다.&nbsp; 침대 외에는 거의 가구도 없고, 치장도 없어서 빈 집 같은 방갈로.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방랑자일 터이니 집을 꾸밀 필요가 없다. 집도 굳이 자기집일 이유가 없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는 보조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고 곧바로 통 마술을 연습해본다. ‘나’는 작은 통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전에 누군가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통 속이 답답하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그런데 이 순간,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두 토막 내려는 건 아닐까?&nbsp; 그건 아니었고, 연습이 끝나자 마술사는 일주일 후에 출발할 테니 월요일 낮 12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기차 타고 항구로 가서 같은 날 저녁에 떠나는 배 오로라호에 승선할 예정. ‘나’는 선실 하나, 즉 독방을 사용하게 되며, 선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의 주변을 다 정리하고, 즉 육지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에 바다 위의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몸이 잘려야 하는 여자가 된다.&nbsp; ‘나’는 담배공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짐을 정리하고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추려서, 비가 철철 오는 여름 대낮에 ‘나’의 집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고, 대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이 생겼다. 앤이 성장해 열네 살에 첫 문신을 하고, 열여덟이 되자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해 버렸으나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가끔 전화도 한다. 마술사는, 이렇게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영원히.&nbsp; 그러나 적어도 두 장면은 남는다. 5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주유소가 있는 도로 장면과 톱으로 썰기를 기다리는 통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톱질 당하는 여자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쯤 지난 후에야 그 여자가 기억이 나서, 작품 또는 최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br>&nbsp; 30년. 기억을 충분히 왜곡시킬 수 있는 시간.&nbsp; ‘나’는 거의 1년 동안 오빠가 살고 있는 동해안에서 살았다. 오빠 사샤는 젊은 시절에 활동적이었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젠 허풍 심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걸로 호가 났다. 주로 동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한 술집에서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을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비록 그 술집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의 여성 종업원과 새로이 연애를 시작한 50대 후반의 남자이기는 하지만.&nbsp; 스물한 살의 니케가 등장하면서 다시 통 이야기가 나온다. 니케는 어렸을 때부터 상자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니케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한 시간씩, 때로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상황에 따라, 어디에 가야 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자기 멋대로 가두어 두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니케는 울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위해 반항 비슷한 것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 가둠을 당하는 일은 제법 많은 나이까지 지속되었다. 아이였을 때부터 당한 일이라 10대가 되어도 쉽게 반항하거나 뛰쳐나올 수 없었을 지 모른다.&nbsp; ‘나’의 옆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 미미. 미미는 젊은 시절에 잠깐 동안 오빠의 연인이기도 했다. 미미의 집에서 미미의 어머니 암케가 침대까지 가져다 준 아침을 먹은 날부터 시작한 돼지 농장일을 사샤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던 일이 있다. 이후 미미는 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냈다.&nbsp; 미미. 동쪽 해변가 간척지에서 가릴 것이 없는 여자. 추운 초여름에 나신으로 수영을 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집 안에서는 전혀 거칠 것 없이 생활하는 이. 미미가 먼저 ‘나’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오빠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했으며, 함께 잔뜩 술을 마시기도 한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907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동생 아릴드의 집으로 쳐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나’를 아릴드의 침대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릴드 역시 ‘나’의 침대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모닝콜에 득달같이 일어나 돼지를 치러 가는 남자.&nbsp; ‘나’는 넓은 오빠네 집에서 살아도 되지만 해안 간척지에 있는 단독주택을 얻는다. 2층은 혹시 앤이라도 오면 지내라고 침대 하나를 놓았을 뿐 비어 있고, ‘나’의 생활은 전적으로 1층에만 국한한다. 이 동해안 간척지에서 집을 얻은 것이 1월 초. 매섭게 추운 날이 지속되었고, 2월이 되자 그때까지 몰랐던 동풍이 몰아쳐, 잠을 자는 새 분명히 닫은 현관이 열려 찬 기운이 방에까지 들이닥쳤으며, ‘누가 열었을까? 저절로 열렸을까?’ 무섭게 서늘한 생각이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 재크나이프, 전남편 오티스가 준 호신용 공포탄 권총 한 자루를 침대 밑에 두기 시작했다. 공포탄이라 해도 그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면 맞은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 줄도 모르니까 아릴드는 편하게 침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 궁금하지? 권총이 소설에 등장하면 언젠가는 발사할 수밖에 없다고? 안 알려드린다.&nbsp; 게다가 갑자기 천장 한 모퉁이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작은 짐승이 화다닥 달려가는 소리. 뭔가가 천장에 있다. ‘뭔가’가 무슨 동물인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나’가 도움을 요청한 돼지농장 주인이자 이혼남, 이라기보다 아내가 도망친 남자의 의견에 의하면 담비란다. 아릴드는 담비 덫을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성호르몬을 묻힌 돼지 비계를 달아 담비를 유혹하건만 색깔이 찬란한 고양이가 한 번, 검정색의 새 한 마리가 한 번 걸릴 뿐이다.&nbsp; 이렇게 거의 완전히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황량한 벌판과 물, 간척지, 바다가 널려있는 풍경. 쓸쓸하고 고립되었으며 무언가 불행한 일이 곧 생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의 연속. 이게 헤르만을 읽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이의 벌판은 단편 쪽에 있는 듯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7/cover150/k692130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9074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세상엔 통합도 화합도 없다 -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0661</link><pubDate>Mon, 28 Sep 2026 0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406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406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off/89320453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33X&TPaperId=175406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통역사 다니엘 슈타인</a><br/>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nbsp; 이번에 읽은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lt;커다란 초록 천막&gt;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nbsp;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nbsp;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br>&nbsp;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nbsp;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nbsp;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nbsp;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nbsp;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br>&nbsp;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nbsp;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nbsp;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nbsp;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br>&nbsp;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nbsp;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nbsp;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nbsp;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24/cover150/893204533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9243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에잇, 콱 버리고 말았다 -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link><pubDate>Sat, 26 Sep 2026 1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guid><description><![CDATA[.한가위 잘 쇠셨기 바란다.시간이 남는다. 여유로워 좋다. 오늘은 새로 버린 책 이야기해보자.​<br>  좋은 책 많다. 망설였던 것이 이기영의 &lt;민촌&gt;과 이기서의 &lt;강릉 선교장&gt;. 이기영은 뭐 말 할 필요 없는 작가의 명품 리얼리즘 작품. 강릉의 선교장은 나 어렸을 적에 직접 그 집에서 자본 적이 있어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연못 정자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 속 이주사, 정여사의 젊은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굳이 옛 앨범을 들춰보기는 싫다.  나쓰메 소세키의 &lt;도련님&gt;, 앨리 스미스의 &lt;호텔 월드&gt;, 르 클레지오가 쓴 &lt;허기의 간주곡&gt;, 그리고 우리말 제목을 워낙 후지게 달아서 오히려 진가를 가려버린 푸엔테스 작 &lt;미국은 섹스를 한다&gt; 외에도 홀링허스트, 사라마구, 셀린느, 매컬러스, 새라 워터스, 심지어 루슈디와 브레드버리, 요사, 드릴로, 커포티 등등 싹 버렸다. 마음이 편했을 수는 없었겠지?<br><br>  이번에는 조이스의 &lt;율리시즈&gt;를 버려? 남겨둬? 이거 하고 에코의 두 작품, 그리고 한 때 책 좀 읽는 사람들 입끝에 올랐던 장왕록 번역의 포크너 &lt;압살롬, 압살롬&gt;이 문제였다. 포크너는 당시에 나더러 책을 줄 수 없겠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싹 안 된다고 거절했던 거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 결국 버릴 책을 하잘것없는 욕심 때문에 여태 이고 지고 있다가 결국 이꼴이 뭐냐고.  독일까지 가 무질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딴 안병률 사장이 직접 번역한 &lt;특성없는 남자&gt;도 다시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던졌다. 돈이 아깝지만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애트우드는 &lt;도둑신부&gt;말고 &lt;고양이 눈&gt;을 남기기로 했다. 우엘벡도 버리고 존 파울즈도 버리고, 파울즈는 결국 &lt;마법사&gt; 한 작품만 남길 생각이지만 하여간, 쿤데라도 목록에 나왔다. 게다가 이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즉 현재 발간중인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도 눈에 들어왔다.<br><br>  이 목록에서는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하인리히 만이 쓴 &lt;앙리4세&gt;를 제일 고민했다.  백낙청의 기념비적 평론집 &lt;민족문학과 세계문학&gt;도 이제는 꼴 보기 싫어서 던져버렸다. 드디어 화이트헤드, 백대가리 선생의 &lt;관념의 모험&gt;, 한길사가 야심차게 펴낸 그레이트북 시리즈 1번에 빛나는 책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설명하느냐를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걸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볼라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lt;야만스러운 탐정들&gt; 한 편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라고 여겨서 다른 작품은 싸그리 버렸거나 버릴 예정이다. 이거 딱 한 번 읽고 버리는 책들이라 당근에 내놔도 돈 좀 받을 수 있겠는데, 귀찮다. 걍 버렸다.  오정희는 나이를 먹으면서 확연히 총기가 떨어져갔다. 내가 이이의 책을 버리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르메트르의 삼부작도 남아나지 못했다. 재미 있는 건 확실하지만 오래 보관할 만하지 않잖아? 두 번 펴보지 않을 듯한 책들. 이런 면에서 아까운 작가가 모옌이다.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또 들춰볼 만하건만 사실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찾을 듯해서 아쉬워도 그냥 보냈다.  그리고 초판본 한강의 &lt;여수의 사랑&gt;. 아무리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도 안 맞는 걸 억지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lt;장한몽&gt;은 아깝고 아깝다. 근데 내가 읽지 않으면 가족 가운데 아무도 읽지 않을 듯. 예전에 나온 금속활자본이다.​<br>  제일 위에 쌓은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 198X년 처음 취직해서 봉급받아 처음으로 산 책. 학교 다닐 때 읽고 이런 전집은 꼭 한 질 갖고 싶어하다가 내 돈 벌어 산 책. 그래서 정이 남다르다. 웃긴 것이, 그렇게 갖고 싶었지만, 학창시절에 이미 다 읽은 책인데다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도 못 읽고 처분하게 됐다는 거. 40년이 지나서 말이지. 뭐 이게 다 사는 일이기는 하지만. 초봉이 25만원 할 시절이었으니 저 전집 사려고 죽을 똥을 쌌다는 건 짐작 하시겠지?  그리고 꼭 해야 할 말. 포드 메독스 포드의 네 권짜리 대표작 &lt;퍼레이즈 엔드&gt;와 조지 엘리엇의 네 권짜리 &lt;다니엘 데론다&gt;. 이 두 작품은 한국문화사라는 개떡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책값 할인도 전혀 안 해주는 배짱 좋은 회사인데 둘 다 교정 교열이 개판무인지경이다. 그래서 그걸 지적하면 댓글을 달아 생 지랄을 해 그게 드러워서 독후감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책들 말고 페터 바이스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얼마 남지 않은 독서생활 동안 절대로 피해야 할 출판사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절대로 동의하지도 마시고, 참고도 하지 마시라. 괜히 다 늙어 고소당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나, 포드 매독스 포드와 조지 엘리엇 만한 영어 소설가가 몇이나 있다고 그걸 그 지랄로 책을 만드냐는 말이지.  톨스토이의 &lt;전쟁과 평화&gt;도 피해가지 못했다. 앞으로 &lt;전쟁과 평화&gt;를 또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 표지가 하도 구려서. 뭐 내 마음이니까.  홍성원의 &lt;남과 북&gt;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쟁문학이라는 데는 백퍼 동의한다. 근데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비슷한 논조의 작품이 &lt;남과 북&gt;이후에 이미 많이 나왔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lt;라일라&gt;도 버리느냐고? 그렇다. &lt;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gt;은 감명깊게 읽었지만 &lt;라일라&gt;는 내 수준에 과하게 철학적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26/pimg_63926043131532399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792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교실, 가정이라는 정글 - [맨 끝줄 소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5874</link><pubDate>Fri, 25 Sep 2026 0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58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635836&TPaperId=175358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off/k9526358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635836&TPaperId=175358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맨 끝줄 소년</a><br/>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07월<br/></td></tr></table><br/>.&nbsp; 후안 마요르가는 5년 전에 두 편이 실린 희곡집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으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마 우리말로 인사했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미 정치적으로 웬만큼 민주화되고, 옛 시절의 악연마저 어느 정도 수습을 한 상태에서 등장한 스페인 86세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구나. 거 참 부럽네. 프랑코 개자식들로부터 그들의 파시즘을 전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지금 권력을 잡았을 스페인 86세대들은 마드리드에 있는 대통령 궁에서 여전히 죽창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라 목에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아니 부러운가.&nbsp; 마요르카는 이제 달랑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다. 이제 도서관에서 POD 책은 사 주지 않겠다고 하니, 악마같이 비싸게 책값을 책정하는 지만지드라마의 희곡을 사 읽을 수도 없고, 도서관에다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앞으로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세상에 아쉬운 일이 하도 쌔고 쌔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간디?<br>&nbsp; 책을 열면 제일 먼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nbsp; 자신은 한 번도 한국의 교실과 가정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전제가 한국의 교실과 가정이 아마도 스페인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리라,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추측한다. 근데 이거 조금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생활해본지 하도 오래라서 라떼와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 교실과 서유럽의 교실은 거의 딴 판으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근데 한 편으로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교실 역시 세계화되어 거기가 거기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스페인의 고등학교 교실 분위기가 오직 대학입시에 초점이 모이는 우리나라 교실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 아니면 말고.&nbsp;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국립연구원, 파리와 베를린의 뮌스턴 대학, 국립원격교육대학 등을 거쳐 긴 가방끈을 가졌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법 하는 바람에 당시 한 학생과의 작문에 얽힌 기억으로 &lt;맨 끝줄 아이&gt;를 썼다고 한다. 수학 교사였는데, 시험 볼 때, 한 학생이 답안지에 이렇게 썼다나?&nbsp; “선생님,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테니스를 아주 잘 쳐서 일요일에는 마르카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등등.”&nbsp; 이때 마요르카가 얻은 힌트. 학생이 시험시간의 시험지/답안지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교사한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br>&nbsp; &lt;맨 끝줄 소년&gt;은 말 그대로 학급의 제일 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을 말한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돋보이는 반면 철학과목에서는 비실비실하다. 같은 반에 라파라는 애칭의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얘는 또 철학 점수는 좋지만 수학은 거의 까막눈 신세다. 그래서 클라우디오는 라파는 서로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주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합의한다. 공부할 장소는 물론 훨씬 잘 사는 라파의 집이 되겠지.&nbsp; 이 두 아이를 가르치는 작문 또는 국어 교사가 헤르만. 헤르만은 요즘 학생들의 작문 실력에 거의 절망을 하고 있던 터. 주말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써보라는 콩트를 냈는데 거의 다 이런 식이다.&nbsp;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nbsp; 딱 두 문장. 30분 동안에 메꾼 답안지. 이런 답지도 있다.&nbsp;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nbsp; 교사라는 직장인으로 헤르만은 절망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밝아지는 답안지가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 가르시아가 쓴 작문이다.<br>&nbsp;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로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난 그집에 들어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후략)”&nbsp; 상당한 글솜씨의 고등학생. 헤르만은 속으로 ‘아주 만족!’을 외치고 있었을 터. 그는 진짜 오랜만에 기쁨이 터져 마침 옆에 앉아 있는 아내 후아나한테 답지를 건네고 읽어보라 권한다.&nbsp; 후아나는 불편하다. 남편한테 말한다.&nbsp; “나라면 이 글을 교장한테 가져가겠어.”&nbsp; 친구의 엄마를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 등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다면서. “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교실에서 큰 소리로 읽히고 라파가 그 친구 뺨을 한 대 갈기는지 보지 그래?”&nbsp; 이젠 더 열을 받았는지 작문 교사인 남편 헤르만까지 볶는다.&nbsp;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 아이 열일곱 살. 내가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열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애 열일곱이면 이게 말이 청소년이지 거의 완전한 성인이다. 백년 전만 해도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지원해 참전했다가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어 돌아올 아이들. 열일곱 살이면 친구의 엄마일지언정, 그녀에게 욕정만 품지 않는다면, 사실 나이 든 엄마뻘 여성에게 욕정을 품는 소년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지만, 하여간 그렇기만 하면 친구 엄마 가까이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 운운한 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nbsp; 게다가 클라우디오는 겁나게 가난한 집의 아이로, 집안에서는 식용유 찌든 냄새, 고기의 비계 냄새, 뭔가 희미한 부패 향기와, 빼놓을 수 없는 곰팡이 냄새에 익숙할 터, 새롭게 환한 비누와 세제와 분과 비싼 데오도란트 향기가 넘실거리면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발언을 통해 이이의 전작 가운데 한 편인 &lt;비평가&gt;가 저절로 떠오르더라니까.&nbsp; 그런데 후안 마요르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비평 또는 검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 알 수 있다. 헤르만은, 보통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아내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한테 비슷한 의견이 나오지 않을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게 되고, 아이 클라우디오는 이런 선생 헤르만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nbsp; 근데 여기까지는 후안 마요르카가 “한국의 독자에게”에서 밝힌 두 가지 공간 가운데 교사-학생의 관계만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정 속 이야기. 라파와 라파의 부모로 이루어진 공통체와 클라우디오의 갈등.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라파와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하여 절대 하면 안 될 부정한 짓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넷플릭스 TV 드라마 교권수호국인가 뭔가에서 나온다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커넥션,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대가 없는 커넥션도 등장한다.&nbsp; 내 경우에는 많은 문제 제기 가운데 헤르만이 아니라 교사 사모인 후아나가 벌이는 작문에 대한 검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어떤 이슈를 재미있게 읽을 지 모르겠다. 후안 마요르카, 이 65년 뱀띠 아저씨, 거 참 재미있게 쓰네 그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150/k9526358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88889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요크나파토파 없이 마콘도가 있었을까 - [내려가라, 모세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4333</link><pubDate>Thu, 24 Sep 2026 04: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43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5343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off/k172138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5343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려가라, 모세여</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 아마 포크너의 중단편 &lt;곰&gt;은 두세 번? 서너 번? 읽은 거 같다. 그럼에도 &lt;곰&gt;이 윌리엄 포크너 스스로 연작 장편이라고 주장하는 《내려가라 모세여》의 일곱 중단편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이제 새롭게 《내려가라 모세여》를 읽으니 &lt;곰&gt;이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해방 이전, 그러니까 아무리 늦어도 1862년 이전부터 20세기 1940년대까지 아우르는 한 일가의 대하 가운데 한 편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읽힌다.&nbsp; 작품의 중심지는 당연히 요크나파토파 지역과 제퍼슨 시.&nbsp; 이 연작 장편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다. 포크너가 없었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라는 가상의 지역 또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있었겠으며, 백년이 넘는 가계도를 이루는 &lt;백년의 고독&gt;을 생산해낼 수 있었을까? 있었겠지. 있었겠다고 믿기는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까지 백범 작이라고 알았는데 사실은 서산대사 휴정이라는 중이 지은(지었다고 하는) 오언절구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須作後人程“ 오늘 내 행적이 뒤에 올 사람의 발길이 되리라, 하듯,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와 제퍼슨 시가 없었더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를 만들기도, &lt;백년의 고독&gt;을 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여길 수밖에 없다.&nbsp; 아니, 어딜. 세상에 마르케스밖에 없나? 아마도 20세기 중후반부터 소설작업을 해 온 무수한 소설가 가운데 한 발짝 앞에 나서서, “나는 윌리엄 포크너의 그늘 덕을 조금도 받지 않았소!”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작가가 몇 퍼센트나 될까? 서양 작가만 국한해 묻는 것도 아니다. 동양, 더 쉽게 한, 일, 중 세 나라의 잘 나가는 작가들도 포함해서. 오에 겐자부로? 모옌? 당연히 뛰어나고,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이지만 이들 역시 포크너의 서늘한 그늘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걸 근거로 이렇게 얘기하는지 더 따지지 마시라. 방금 오에와 모옌한테 전화 걸고 이야기하는 중이니까.<br>&nbsp; 작지 않은 대하는 루시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이라는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제일 선대 사람. 그래서 ‘늙은 캐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살아있는 등장인물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이가 요크나파토파 소재 농장의 농장주. 생몰이 1772~1837. 평생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살았던 전형적인 백인 농장주이지만, 숱한 작품에서 늘 보던 악랄한 백인 지주와는 비슷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선한 인간형이랄 수 있는 농장주. 이이는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으니, 쌍둥이 형제 시어필러스(애칭 벅)과 애머디어스(애칭 버디),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딸이었다. 이 가운데 벅이 다 늙어 낳은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 애칭 ‘아이크 삼촌’이 연작 장편의 가장 중심적인 축을 만드는 인물.&nbsp; 늙은 캐스는 사랑 또한 넘치는 인물이라 아내 말고도 자기가 소유한 노예 여인 유니스 사이에 딸 토마시나를 만들었다. 토마시나 역시 당연히 노예였으며, 자기 딸인 줄 알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훗날 토마시나하고도 관계를 맺어 아들 터렐, 속칭 ‘토미네 털’을 두었다. 이 관계를 지금 21세기 시점으로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쇼킹이겠지만 미국 노예시대에 이런 일은 그저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불과했다. 물론 거꾸로, 즉 흑인 남자 노예와 백인 농장주의 부인과의 사이에 생식이 벌어졌으면 죽고 사는 참극이 수반되었겠지만 하여간 그때는 그랬다는 거.&nbsp; 그래서 늙은 캐스의 아들이기도 하고 손자이기도 한 노예 토미네 털이 첫 작품 &lt;옛 일&gt;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토미네 털은 쌍둥이 형제 벅과 버디 삼촌네 노예. 근데 족보로 보면 배 다른 형제이자 조카. 형제라고 하면 나이 차이가 무려 서른네 살. 늙은 캐스는 벌써 주님의 안식을 찾아 떠난 시절이고, 토미네 털은 바야흐로 청춘시기를 맞아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또다시 농장에서 탈출을 해버렸다. 근데 이게 습관적 탈출. 쉬운 얘기로 자유를 찾기 위한 도망이 아니라 DNA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짝을 찾아 이웃한 농장의 노예 아가씨 테니 비첨의 방향芳香, 일종의 페로몬을 찾아 가는 거였다. 벅과 버디 삼촌도 토미네 털이 어디로 간 줄 다 아니까 별로 서둘지도 않고 털을 찾아 나서는데 이번에는 연작 장편의 첫 작품이 되려니까 이 수순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갈 수는 없겠지? 그리하여 노예 아가씨 테니의 주인과 벅, 벅이 쫄리니까 나중엔 버디 삼촌까지 나서서 크게 한 판 도박을 벌이는데, 이게 영 재미있더라는 말이지.<br>&nbsp; 물론 재미로 치면 첫 작품 &lt;엣일&gt;보다 두번째 작품 &lt;불씨와 화덕&gt;이 한 수 윗길이다. 즉,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거 뭐 읽을수록 점입가경, 점점 더 흥미의 수준이 높아가니 그저 즐거울 수밖에.&nbsp; 제목이 &lt;불씨와 화덕&gt;인 것은, 흑인 노예들이 시집 장가가서 거의 관습적으로 해야 했던 것이 화덕에 불씨를 붙이면 죽음이 갈라놓아 둘의 혼인상태가 해체될 때까지 화덕에서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했던 것을 빗댄 거다. 뭐 굳이 미국의 흑인 노예들만 그랬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궁이의 불씨를 보존하는 거였다고 최명희의 미완성 명작 &lt;혼불&gt;에서 나온다. 나 어려서도 외숙모가 연탄불 꺼트리면 외갓집 특히 여성 구성원들의 뒷담화가 찬란무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그거고. 사실 그건 그게 아니라 결국 화덕에서 불씨를 꺼트리는 일까지 몽땅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nbsp; 앞의 작품 &lt;옛일&gt;에서 중요한 조연이었던 토미네 털이, 벅과 버디 삼촌의 맹활약 덕분에 테니 비첨을 아내로 얻고, 심지어 매캐슬린 농장의 노예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이 노예 부부 사이에 아들-딸-아들이 생겼으니 막둥이 루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 비첨이 &lt;불씨와 화덕&gt;에서 찬란한 주인공이자 설레발꾼이자 포복절도의 사기꾼, 아니, 똘똘이 스머프로 등장한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똘똘이 스머프.&nbsp; 루카스의 아내 이름은 몰리. 둘 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노예제도는 사라진 시절이었다. 어엿한 자유인. 그러나 흑백 차별의 유구한 전통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던 시절. 아다시피 루카스는 저 꼭대기 할아버지 캐러더스 매캐슬린, 캐스 노인과 노예 여성 사이에서 이룬 가계이다. 백인 아내로 이어진 가계 가운데 남자 항렬, 쉽게 말해 매캐슬린 가계는 벅과 버디 삼촌에 이어 벅의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에서 끊기고, 이름도 나오지 않은 딸 하나가 에드먼즈 가문으로 시집가 손자 재커리를 낳았는데 이이가 주인공 루카스와 동갑내기였다. 1898년에 재커리 애드먼즈가 아들을 얻었지만 난산 끝에 아내가 죽어, 루카스의 아내 몰리, 그리고 몰리가 낳은 루카스의 아들을 집에 데려와 젖어미 역할을 하면서 두번째 명품 익살극을 시작한다.<br>&nbsp; 루카스 입장에서 아무리 흑백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애먼 마누라가 백인 아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젊은 농장주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살고 있으니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루카스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매캐슬린 가문의 훈훈한 가풍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노예 해방과 동시에 선대 매캐슬린은 흑인 피가 흐르는 후손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겨 주어 제퍼슨 시내에 있는 은행에 만만하지 않은 현금을 보관중이건만 절대 있는 척을 하지 않는다. 아, 이건 나중 일이긴 하다.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할 거 같으니 그냥 그런 줄 아시면 되겠다.&nbsp; 루카스가 열을 받아 백인 조카(뻘)에게 달려가 아내 몰리를 데려왔는데, 이때 젖먹이 홀로 홀아비한테 맡겨 둘 수 없어 함께 데려왔으니, 얘 이름이 로스인데, 아이가 점점 커짐에 따라 이집 저 집을 다니며 함께 자기도 하고, 먹는 건 물론이고, 장난도 치고, 뭐 그렇게 컸겠지? 커가면서 사달이 없을 수 없었을 테니까 점점 흑인 아저씨, 사실은 할아버지 항렬 댁에는 점점 뜸해졌을 것이고, 아버지가 죽어 이제 자기가 후대 농장주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루카스하고는 좀 멀어지기는 했을 터.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몰리 할머니와의 정리 때문에 매사 야박할 수도 없었을 건 안 봐도 뻔하다.&nbsp; 루카스도 나이를 먹어 이제 벌써 육십대 중후반에 이르러, 막내딸 넷을 시집보내야 할 처지. 넷이 벌써 1923년생, 그간 세월도 무척 많이 갔다. 하지만 나이로는 자식 뻘, 족보로 보면 증손 또는 손자 뻘인 로스 에드먼즈가 여전히 루카스더러 ‘자네’라고 부를 정도의 시절임을 감안하자. 그렇다고 로스가 악당? 천만의 말씀. 당시 시선으로 (내가)보면 세상에 그런 백인도 별로 없었을 듯. 더군다나 KKK가 난무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넷이 다 커서 시집을 가야 할 거 아녀? 그리하여 조지 윌킨스라고 하는 흑인 남자를 골랐는데, 당연히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1930년대 금주령 시절. 조지가 완전히 질 낮은 옥수수 위스키를 만들어 팔려고 시도하는 것. 여태까지 루카스가 지역에서 독점하고 있던 사업인데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짜리를 혼내기 위하여 자기 증류기를 땅에 숨기고 신고를 하려 마음을 먹어, 캄캄한 밤에 진흙 땅을 파다가 뭔가가 손에 잡혀 이게 뭘꼬, 쳐다보니까 글쎄 금화였던 거다. 분명히 누군가가 이 근처에 금화가 잔뜩 든 자루 또는 궤짝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걸 찾아야 하고, 제일 빨리 파내기 위해서는 최첨단 금속 탐지기가 필요할 터.&nbsp; 3백 달러에 이르는 금속 탐지기를 손에 얻는 스토리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든지, 윌리엄 포크너가 이렇게 희극적으로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nbsp; 그런데 사실 이런 희극 또는 익살극은 이 두 편이 전부이고, 포크너 특유의 스토리 텔링은 새롭게 시작하니 특별히 당신이 인상깊게 읽었을 명작 &lt;곰&gt;을 기억하면서 연작 장편을 읽으면 첫 작품 &lt;옛일&gt;부터 전작을 관통하는 대하를 짐작하실 수 있을 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150/k17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179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화려한 블랙 유머의 난장판 - [폭풍 한가운데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2159</link><pubDate>Wed, 23 Sep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21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9340&TPaperId=175321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0/coveroff/k30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9340&TPaperId=175321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풍 한가운데 1</a><br/>패트릭 화이트 지음, 박유진 옮김 / 잔상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 5년 전에 &lt;전차를 모는 기수들&gt;을 읽고 쓴 독후감을 보면 패트릭 화이트가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 의식의 흐름을 특징으로” 하는 작가라고 전에 어디서 주워들었던 모양이다. 당시 &lt;전차를…&gt;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는데, 작품에서 그의 특징이라고 하는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은 그리 자주 보이지 않았고, 의식의 흐름은 어느 구석에 있는 지 찾아낼 주제가 되지 못하여 화이트에 관한 세간의 평이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고 넘긴 적 있다. 이번에 독후감 쓰기 전에 다시 화이트를 검색해보니, &lt;전차를…&gt;이 1961년, &lt;폭풍 한가운데&gt;는 이이가 노벨문학상을 탄 1973년 발표작인데, 이번에 &lt;폭풍…&gt;을 읽어보니 유머, 화려한 문체, 서술의 전환을 이이의 특징으로 짚는 건 확실하게 이해하겠다. 내가 뭘 알건디? 그저 초창기 작품&lt;전차를…&gt;과 소설집 《불타버린 사람들》만 읽고 한 작가를 단정하려 했던 거겠지.&nbsp; 위키피디아를 보면, 화이트가 1969년부터 계속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론 은근히, 그리고 열렬히 바랐을 거 아녀? 1969, 70년 두 해를 기다렸다가 1971년 세 번째 해에 접어들어서도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상을 받게 되니까 못내 섭섭했던지 다시는 노벨상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되기 바란다는 코멘트를 날렸단다. 그러다 한 해 쉬고 다음다음 해인 1973년에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니까, 이거 상 받으러 가기 좀 쑥스럽지 않았겠어? 그래서 결국 화이트 본인은 건강이 안 좋다는 핑계 또는 이유로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 가지 않았단다.&nbsp; 그런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작가 가운데 몇 명은 노벨상이란 것이 자신의 질곡이 되어 이후 시답지 않은 작품만 몇 개 발표하고 그걸로 작가 생명을 마감한 이들이 제법 있다. 이이도 그랬을까? 61세에 상을 받았으니 이미 문학적으로도 전성기는 지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lt;폭풍…&gt; 이후에 그리 명성을 떨친 작품은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거 그냥 내 짐작이다. 인용하지 마시라. &lt;폭풍…&gt;이 노벨상을 탄 해 여름,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에서는 겨울에 출간했고, 수상자 발표는 11월에 해서 그랬는지 화이트 관련해서 뒤져보면 대개 이 &lt;폭풍…&gt;을 그의 대표작품으로 꼽는다. 나는 당연히 &lt;전차를…&gt;를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간다.<br>&nbsp; &lt;폭풍…&gt;은 확실히 곳곳에 BW, 즉 Black/White 유머가 매복해 있고, 등장인물 A의 입장에서 서술하다가 갑자기 B의 시각에 입각한 내레이션이 나오는 등 서술의 전환이 자유롭게 등장한다. 작품도 86세 먹은 호주 부르주아 노 부인의 죽음의 침상 몇 달이지만 당연히 주인공 엘리자베스 헌터 부인과 부인의 (출생 순서대로) 아들, 딸과 이미 죽은 남편, 부인이 유혹해 한 번 자빠뜨린 성실한 전담 변호사, 세 명의 간호사와 요리사, 가정부 등의 회상이 빼곡해서 95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즉 죽어야 끝나는 소설. 살면서 행했던 별의 별 에피소드를 망라하면서 결국 ①인생무상이나, ②그래도 사랑이 제일이야, 영탄하거나 ③누가 뭐라해도 일단 살아볼 일이라는 주제이기 십상인데 &lt;폭풍…&gt;은 어떤 결말로 치고 갈까?&nbsp; 엘리자베스 헌터의 결혼 전 이름은 엘리자베스 셀켈드. 이이는 몇 달 있으면 죽을 예정인데,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기를, “아무래도 난 속물이었던 모양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정교육도 문제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살한 것도.” (p.142)&nbsp; 그러니까 부모한테 물려받은 건 딱 하나. 지금이야 이 모양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시드니에 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몸을 지녔다는 것. 그려, 여자나 남자나 잘 생기면 일단 유리한 자리를 꿰 차는 거다. 엘리자베스 셀켈드 양은 이런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자신의 하드웨어를 이용하여 몇 단계 계급을 올려 버렸으니,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알프레드 헌터 씨와의 결혼에 성공해서, 부와 미모로 시드니 사교계를 단숨에 정복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속물이라고? 맞다, 속물. 그것도 대단한 속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해야 하며, 이들과의 사이에 누가 있어서 그걸 방해한다면 방해물이 친자식이 되었더라도 일단 없애 버려야 마땅하다. 정말? 그렇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좀 긴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끝도 한도 없다. 그냥 지나가자.<br>&nbsp; 근데 죽은 남편 알프레드는 진심으로 엘리자베스를 사랑했다. 부인이 생각해봐도 그렇다. 남편은 아내한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시드니에서 멀리 떨어진 가상 지역 고공 주의 가상 커뮤니티 쿠저리 소재 농장에서 머물고, 아내는 시드니 저택에서 살았다. 아들과 딸도 어린 시절을 쿠저리 농장에서 지내다가 아들은 영국으로 가 작위를 받은 연극배우 바질 경이 되었으나 이젠 연극계의 늙은 퇴물로 지방 순회공연을 전전하고 있으며, 딸은 프랑스의 나이든 라스카반 공작과 결혼해 프랑스 공작비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지만 라스카반 공작은 새로 생긴 애인과 살림을 차렸고, 가톨릭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해 그저 공작비라 불리는 것만 기쁨으로 알고 사는 중이다.&nbsp; 바질 경은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첫째 아내의 딸은, 바질의 딸인 줄 알았다가 더 알고 보니까 다른 남자의 아이였으며, 같이 연극 배우를 하던 둘째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끝냈다고 봐도 별 이상 없다. 라스카반 공작비는 집을 나서면서 라스카반 집안의 보석들만 잔뜩 얻어냈을 뿐 이젠 새로운 사치는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 둘 다 이름만 비까번쩍하고 속은 거의 거렁뱅이다. 이때 주의할 점. 살기를 부르주아로 나서 그렇게 크고,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생각하기에 거렁뱅이지, 우리가 아는 그런 진짜배기 거렁뱅이는 절대로 아니라는 점.&nbsp; 이 아들과 딸한테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 것.&nbsp; 아버지가 장인을 흉내내 스스로 목숨을 끝내면서, 자기 전 재산은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 소유로 있다가, 아내가 죽으면 아들과 딸한테 정확하게 반반씩 유증하겠다고 유언장에 박아 놓았다. 유언에 따라 그동안 엄마한테 죽기전에 재산 상속 좀 해달라고 입도 벙긋하지 못한 처지. 그나마 엄마하고는 정도 없다. 엄마 성격이 하도 자기만 아는 인간이라 어린 시절부터 엄마보다는 아빠하고 훨씬 가까웠으며 엄마와는 서로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이해는 간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동몽선습과 소학을 공부하지 않은 서양 것들이니, 나 어릴 때 그렇게 했지, 늙어서 보자, 앙심만 쌓였을 수도 있고. 그러나 알고 보면 자식들도 전부 엄마 닮았다. 바질과 도로시가 정말 오랜만에 한 5년 만에 편지를 해서, 엄마 요새도 건강하시고 연애도 잘 하시고, 하인들도 잘 갈구시지요? 안부를 물으면 이게 곧 용돈 좀 달라는 뜻이었고, 그걸 칼같이 알아들은 엘리자베스 헌터 여사는 그때마다 일정 금액의 수표를 보냈으니, 그래도 자식들이 엄마를 함부로 하지 못했던 건 당연했겠지.<br>&nbsp; 이런 상태에서 엄마가 죽어가니 새끼들 입장에서 말로는 못하지만 경사라도 난 거 같은 기분이다. 이걸 패트릭 화이트는 그의 주특기라고 알려진 유머와 화려한 문체로 써 놓았는데, 아뿔싸, 이 책이 나온 것이 1973년, 지금부터 무려 53년 전이다.&nbsp; 그러니 어떻겠어? 이미 꼰대가 된 내가 읽어도 세상에, 이런 아재 개그가 또 없다. 당시엔 화려한 문장이었어도 지금 읽어보면 그냥 밋밋한 수준의 문장들. 그래서 1권을 읽을 때는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는데, 2권 들어가 본격적으로 아들과 딸, 바질과 도로시, 이름도 참 후지지 바질과 도로시가 언제 적 이름이야?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 바질이나 도로시라고 이름 지으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하여간 남매가 본격적으로 유산쟁탈전의 진검승부를 겨루기 시작할 즈음이면, 그리하여 하루라도 엄마를 빨리 보내기 위하여, 그동안 경비를 줄이려는 속셈도 있고, 해서, 생전 존경하지 않았던 미운 엄마를 ‘쏘로굿 빌리지’라고 하는 부르주아 노인네들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촌극이 정점에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이고, 또 무척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nbsp; 독후감을 짧게 끝내기 위하여, 빼놓을 수 없는 출연진들, 간호사 세 명과 요리사, 가정부, 그리고 변호사부부를 소개하지 않아 유감스럽다.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실 사.<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0/cover150/k30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00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글만 좋으면 독자는 읽지 - [소녀는 따로 자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0200</link><pubDate>Tue, 22 Sep 2026 0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302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937174&TPaperId=175302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29/10/coveroff/k6629371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937174&TPaperId=175302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녀는 따로 자란다</a><br/>안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2월<br/></td></tr></table><br/>.&nbsp; 안담. 처음 듣는 이름. 책의 앞날개에 작가 소개가 있다.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출생. 이후 좀 헛갈리는데,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이 문장에서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돈” 사람이 안담은 아닐 것 같다.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고 말했고, 자랐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어른 또는 청소년 시절까지 성장했다는 말이니, 소녀 안담을 봉고 차에 태우고 전국을 떠돈 인물은 안담의 부모, 또는 부모 가운데 한 명, 아니면 안담을 키워주기로 한 후견인일 것 같다.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를 읽어보면 전국을 떠돌 때 안담을 데리고 다닌 사람 가운데 엄마는 있었을 듯하다.&nbsp; 대학에서는 미학을 전공했단다. 그러면 서울대, 홍익대, 영남대 가운데 한 학교의 졸업생. 대학 졸업하고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였다고. 직업 가운데 하나가 스탠딩 코미디언도 들어있다. ‘무늬 글방’이란 걸 열어서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단다. 책방인 것도 같지만 책방을 핑계로 모임 장소를 두어 하여간 문학 언저리의 것을 궁리하는 소모임의 두목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말고.&nbsp; 하여간 이렇게 문학을 포함한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으로 현재는 은평구에 사는 개 산책자. 마음에 드는 건,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품종의 강아지가 아니라 성질나면 사람도 간혹 깨물 것 같은 늠름한 사냥개 종류처럼 보이는 중형 개를 키운다는 점. 은평구에서 달리거나 걷다가 안담 만나면 까불지 마라. 여차하면 사냥 당하는 수가 있으리니.&nbsp; 안담은 특별히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가란다. 나름대로 문학판에 아는 사람도 있고, 빽도 있고, 돈도 좀 있는 거 아냐? 짐작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까 믿지도 말고 어디 가서 진짜인 척 얘기도 하지 말자. 정말로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 읽어 보시라. 글이 만만하지 않다. 나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안담이라는 이름을 알았는데,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검색해보니 이 작은 단편 하나 실은 책이 2023년에 꽤 주목을 받았다. 흠. 이 정도면 나도 안목이 있는 편이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nbsp; 책방 검색을 해보니까 소설은 위픽 시리즈의 단편 &lt;소녀는 따로 자란다&gt; 이거 딱 한 권. 본문이 59페이지에서 끝나고, 다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겁나게 짧은 단편 하나. 등단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이 작품도 오래 전에 무슨 마감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한 번 써본 것이란다. 그러니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없는 ‘작가’가 되기 위해 머리 터지게 습작을 쓰고, 학생, 교수들의 얼토당토 않는 비평을 들으며 절망하면서 무슨 문학상 비슷한 것만 보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고를 하는 시절을 어쩌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글만 잘 쓰고, 그게 마음에 들기만 하면 독자는 읽으니까.<br>&nbsp;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 이야기.&nbsp; 내겐 완전하게 신세계. 나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나지 않는데 더구나 여자 아이의 어린 시절과 딱 그 때 감각과 생각과 느낌 같은 것은, 정말로 한 번도 궁금해본 적조차 없는 거 같다. 나도 남자형제 가운데 둘째고, 아이도 아들만 둘 있어서 더 그랬던 것이겠지. 발 한 번 딛지 않은 벌판의 언덕 위에서 처음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 이게 이 책, 50쪽짜리 읽고 ‘책’이라 말하기도 좀 어색하지만, 하여간 이 단편을 읽은 감상이다.&nbsp; 더구나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폼잡지 않고, 질질 짜지도 않으면서 그냥 슬슬 지나치듯 할 말 다 하는 아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꼬마도 아닌 사춘기 바로 전 단계.&nbsp; 잘 읽었다. 소설도 좀 더 자주 썼으면 좋겠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겠다. 무대 예술도 해야 하고, 돈을 좀 번다는 ‘무늬 글방’ 주인도 해야 하고, 개 산책도 시키면서 소설까지 쓰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29/10/cover150/k6629371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029106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작도 좋으면 더 좋았을 텐데 - [끝이 좋으면 다 좋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8461</link><pubDate>Mon, 21 Sep 2026 0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5284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6920&TPaperId=175284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0/coveroff/k91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6920&TPaperId=175284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끝이 좋으면 다 좋아</a><br/>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극은 대개 비극 아니면 희극, 이렇게 나뉘는데,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는 거참, 애매모호하다. 확실히 비극은 아니다. 그렇다고 희극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엘리자베스1세 시절의 시대극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nbsp; 하여간 좋은 희극이 되기 위한 고전적 방법. 그건 비극의 등장인물 못지 않은 악당이 나와 나름대로 치밀한 계략을 펼치다가 극의 뒤로 가서 결정적으로 쌍코피를 흘리며 주인공 커플의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주어야 하는 법.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에서는 주인공인 루시용의 젊은 백작 버트럼이 바로 그 악당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나중에 대오각성해서 선한 인물이 되어야 하니 조연 가운데 한 명에서도 악당이 등장해야 하는 바, 허풍 가득하고 말과 달리 무척 겁이 많으며,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버트럼의 추종자 겸 껄떡쇠 겸, 사기꾼이라 결국 고전극의 천하 진리인 “악당은 지옥으로”를 이루어 줄 것처럼 보이는 늙은 건달 파롤.&nbsp; 아, 지금 내가 뭐라고 했지? 악당이 지옥으로 간다고 한 거 아니다. 고전 희극에 등장하는 악당들이 종종 지옥에 간다고 했을 뿐. 셰익스피어는 좀 다르지? 욕심장이 술꾼이자 사기 기질이 농후한 귀염둥이 악당 폴스타프가 곤욕을 치루기는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 악당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던 것처럼,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의 누더기 악당, 개전의 정이 안 보이는 파롤이 지옥으로 떨어질지, 아닐지는 직접 읽어보고 알아내시면 좋겠다.<br>&nbsp; 셰익스피어라면 고전 시대의 가장 훌륭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알려져, 정말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아도 대표작 몇 편의 스토리는 각종 영상 컨텐츠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작가의 책을 읽어보려 하지 않는 독자가 많은 편이다. &lt;로미오와 줄리엣&gt;, &lt;베니스의 상인&gt;을 정말로 책으로 읽어본 독자는 별로 없을 걸? 그러나 내용을 모르는 중졸 이상 우리나라 시민들도 별로 없을 걸? 이런 식이다. &lt;로미오…&gt;, &lt;베니스…&gt;에서 진보한 독자 군群도 마찬가지로 두 작품의 자리에 &lt;햄릿&gt;, &lt;리어왕&gt;, &lt;맥베스&gt;, &lt;오셀로&gt;를 가져다 놓으면 비슷할 것이고. 하물며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을 읽어본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서야 이 작품을 읽어보았다.&nbsp; 다만 다른 건, 사극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스토리조차 거의 알지 못했던 작품이라는 점. 그랬으니 책을 읽으며 종종 놀랄 수밖에.&nbsp; 뭐,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가끔 외설적인 장면이나 단어가 출몰하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는 왕립극장에서 엘리자베스1세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 처녀왕이 공연을 즐거이 보고 “잉글랜드의 셰익스피어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을까, 하는 게 의심스러웠을 만큼, 지금 시각으로는 껌이지만, 1603년에 여왕이 엇다 잘했다, 칭찬 한 마디 했을까? 뭐 그런 장면도 들어 있다는 것이지, 그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은 아니다.<br>&nbsp; 사랑 이야기.&nbsp; 루시용의 백작 가문에는 가히 화타華陀는 아닐지언정, 길평吉平 정도의 주치의가 있었는데, 아무리 높은 의술을 가지고 있어도 세월 이기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 나이가 들어 자기 갈 길 갔다. 이 의사한테 딸이 하나 있었으니, 누구냐 하면 이름이 헬레나. 무서운 이름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바로 그 여인은 아니고 그냥 같은 이름을 지녔다. 이 의사가 루시용 가문과 하도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죽어가면서 백작부인에게 자기 딸을 키워달라고 부탁했고, 부인이 아름다운 헬레나를 기꺼이 맡아, 정말로 자기 딸처럼 키우고 있었다.&nbsp; 죽은 백작의 아들 버트럼이 이제 젊은 백작이 되어 병이 깊은 왕을 알현하기 위하여 파리로 간다. 문제는 연극이니까, 헬레나는 당연히 주위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 버트럼을 연모하다가 속으로 진짜 사랑의 꿈을 꾸고 있었던 반면에, 버트럼은 그깟 의사의 딸, 당시만 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가끔 이발사를 겸하는 중인 계급이었을 뿐, 신분의 차이는 헬레나의 아름다움과 조신한 행동, 착한 마음씨 같은 것을 대폭 할인해서 보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버트럼 기준으로 헬레나를 보면 볼품없는 촌년 그 자체였다.&nbsp; 오히려 헬레나의 가치를 알아본 이는 백작 부인. 부인은 기꺼이 자기 아들 버트럼을 헬레나한테 장가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nbsp; 이런 와중에 버트럼이 파리를 향해 떠났고, 때를 맞추어 왕은 병이 깊어 아직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모든 궁정의사들이 냉정히 판단한 결과 그저 최선을 다해 고통 없는 죽음을 기다리시라, 하는 조언을 할 뿐이었다. 의사 한두 명이 그러는 게 아니고 모든 의사가 똑같이 말하니 환자인 프랑스 왕 역시 자기가 당연히 죽어야 할 처지에 당한 줄 알고 있었다. 증세가 중한 피부 궤양. 지금 같으면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 주사 몇 방이면 금세 치료할 수 있는 병변이었는데 그걸 하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터.&nbsp; 여기에 아름다운 헬레나가 뜬다. 아버지가 의사질을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몇 가지 특효약과 처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가운데 제일 확실하게 알려준 처방이 바로 지금 왕이 앓고 있는 병.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느냐고? 희극에 못 이루어지는 일이 뭐가 있는 데? 그리하여 헬레나는 백작부인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왕의 병을 고치려 버트럼이 간 파리의 왕궁으로 쫄랑쫄랑 따라가기에 이른다. 각기 다른 마차를 타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둔 채로.<br>&nbsp; 왕을 만난 젊은 루시용의 백작 버트럼은 무공을 올리기 위하여 피렌체 전투에 참전하려 한다. 바로 이때 헬레나가 소개장을 들고 왕을 만나니, 왕조차 네가 루시용 백작 가문의 전설적인 명의의 딸이라고? 하며 환대하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기꺼이 헬레나의 처방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왕은 완치되고, 헬레나한테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하나만 말해 보아라, 했겠다.&nbsp; 헬레나 역시 “기초 극작법 ABC” 3장 5절에 나오는 대로, “루시용 백작한테 시집가고 시포요.” 수줍게 소원을 말하니, 왕은 왕의 권한으로 자기가 직접 헬레나의 지참금을 보태 루시용 백작과 즉시 결혼을 명령한다. 결혼도 명령을 받아 하느냐고? 그럼. 원래 귀족들이 그렇다. 걔네들의 결혼은 거의 다 정략결혼. 절대 사랑을 매개로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주례는 가톨릭 붉은 제복을 입은 추기경쯤이 했겠지만 득달같이 식을 올려 그날로 당장 첫날밤을 지내야 했을 걸?&nbsp; 천만의 말씀. 평소 헬레나를 호환, 마마로 알고 있던 버트럼은 신방에 들기도 전에, 새신부한테 키스 한 번도 안 해주고 피렌체 전장으로 도망쳐 버리면서 아내 헬레나에게 편지만 한 쪼가리 남겼으니 이렇게 쓰여 있구나.&nbsp; “당신이 내 손가락의 이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당신 몸에서 내 아이를 낳아 내게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때 날 남편이라고 불러도 좋소. 하지만 그때는 결코 오지 않을 거요.”&nbsp; 그리고 노 백작부인한테도 편지 한 장을 남겼으니,&nbsp; “아내가 있는 한 프랑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nbsp; 여기까지가 5막 가운데 3막 전반부. 근데 주인공 버트럼은 물론이고 독자까지 모르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왕이 자기 목숨을 살려준 헬레나에게 보답을 하기 위하여, 헬레나의 지참금까지 두둑하게 주었다는 건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왕실이 소유하고, 바로 몇 초 전까지 왕이 직접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프랑스의 국보급 보석을 장인이 초절정의 세금기술로 세팅한 반지도 헬레나한테 주었다는 거. 그건 5막에 가서야 나올 터인데,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면, 바로 젊은 루시용 백작.&nbsp; 결론은, 희극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히 헬레나 입장에서 해피 엔드. 버트럼 입장에서는 그러면 비극? 아니다. &lt;끝이 좋으면 다 좋아&gt;을 희극이라고 내가 말하는 건, 버트럼은 끝내 개과천선, 중인 계급의 딸년에 불과한 아름다운 헬레나의 진면목을 알아채지 못하게 한 선입견을 물리치고, 헬레나의 진가를 알아보아 정식 아내로 받아들여, 진짜로 그렇게 되었는지, 살다가 별의 별 지랄을 다 했는지는 몰라도, 한 평생 부부로 살기로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nbsp; 희극을 더 재미있게 하는 악당이 한 명 등장한다고 했지? 버트럼 백작의 수하로 백작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의 겁 많음과 거짓말과, 젊은 백작에게 끊임없이 아가씨들, 기왕이면 그것도 숫처녀 아가씨들만 조달해주는 크나큰 사명을 띠고 함께 전장에 나간 파롤. 심지어 헬레나한테도 껄떡대던 늙은이. 이 악당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독후감 끝내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0/cover150/k91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00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