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5 Jul 2026 17:03:22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이 작가를 놓치면 섭하지 - [러브크래프트 걸작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2478</link><pubDate>Wed, 15 Jul 2026 0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24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5379&TPaperId=173924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0/41/coveroff/893240537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5379&TPaperId=173924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브크래프트 걸작선</a><br/>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br/></td></tr></table><br/>.&nbsp; 6년 전에 현대문학사에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읽었다. 이번에는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13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모두 다섯 개의 중∙단편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세 편이 현대문학사 책과 겹친다.&nbsp; 목차를 보자.<br>&nbsp; 1. 외부자&nbsp; 2. 벽속의 쥐들&nbsp; 3. 크툴루의 부름&nbsp; 4.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nbsp; 5. 우주로부터의 색<br>&nbsp; 이 가운데 2, 3, 5번이 겹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6년 전에 읽은 소설집이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면서도 엽기발랄한 것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싹 잊어버려 아예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게다가 3, 4, 5번은 “크툴루”라는 생명체, 아마도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로 신비롭고 악마 같은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이다. 5번에서는 크툴루와 그의 동족이 해왕성 너머 태양의 아홉 번째 행성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때 인류는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 해왕성인 줄 알았거나, 막 명왕성의 존재를 발견한 시점이다.&nbsp; 하워드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생몰이 1890~1937.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던 반유대주의의 편을 들었으며, 이이의 반유대주의는 우월형질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히틀러를 지지하기도 했다. 즉 그때는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인.&nbsp; 미국인 보수주의자라면 외계인은 당연히 지구 점령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울 상대. 그런데 조금 다르다. 러브크래프트의 외계인은 어쩌면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와 있으면서 지구인에게 정체만 밝혀지지 않으면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대신 자기들이 필요한 물질을 채취/채광해간다.&nbsp;&nbsp; 이런 것이 소설이 되려면, 어쩌다 인간의 눈에 외계인이 띄는 아주 드문 경우. 그런 일이 있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원주민의 토속 종교 속에서 외계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부두교 예식에서도 그렇다.&nbsp; 이들은 비단 육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다 속에서도 있다.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 섬과 함께 있었고, 섬과 함께 바다로 내려가 그곳에서 터를 잡기도 했다.&nbsp; 육지에 있건, 바다에 있건 크툴루는 자신의 흔적을 인류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대개 행방불명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거나, 자살해버린다. 어쩌면 그들이 죽였을 지도. 간혹 그들과 관계를 맺어 가까워지면, 크툴루에게 설득당해 놀라운 의과학으로 신체에서 뇌만 절묘하게 빼내, 신체는 그들이 싱싱하게 보관하고, 뇌는 시각, 청각, 말하는 장치 등을 연결한 후 금속함에 담아 크툴루의 별까지 여행하기도 한다. 정말 거기까지 갔다 온 사람은 나오지 않고, 뇌만 살아 생각하고, 주인공을 설득해 뇌를 뽑아 함께 제9 행성에 가자고 하기도 한다.&nbsp; 그러니 어쨌건 외계인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애초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그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않는 것. 지구에서 특정한 물질을 채취해 간다 하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했어도 지구인이 사는 데 불편함이나 모자람은 여태 없었으니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다.&nbsp;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그저 그렇구나, 이런 생각 하지시? 하지만 읽어보시라. 곳곳에서 섬뜩한 장면이 등장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으로 읽어본 전력이 있더라도 어떤 작품에 무슨 장면이 나오는 지는 다 잊었어도, 결코 밤 늦게 나 홀로 있는 방에서 읽지는 않겠다고 작심해, 딱 해 있을 때 다 읽었다.&nbsp; 독후감을 쓰기 위해 러브크래프트를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나무위키에 가 보았더니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다.&nbsp;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이자, 현대 호러 문학과 서브컬처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작가.”&nbsp; 러브크래프트 한테 크툴루가 이만큼 중요한 (아씨, 이걸 뭐라 해야 하는 거야? 등장인물도 아니고, 소재라고 하면 빵점이고, 장치는 말도 안 되고) 하여간 그런 거다. 그러니 을유문화사 책이 “걸작선”일 수는 있겠다.<br>&nbsp; 첫번째 순서로 실린 &lt;외부자&gt;는 괴물 이야기. 성에 사는 ‘나’. 나는 성의 까마득한 탑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또 더 위로 갈 수 있는 듯한 입구가 있다. 테드 창의 데뷔 단편 &lt;바빌론의 탑&gt;하고 비슷하지? 탑 위에 더 위로 향하는 뚜껑. 두 작품의 주인공 다 어렵게 뚜껑을 열어젖힌다.&nbsp; &lt;외부자&gt;의 ‘나’가 그곳으로 기어 올라가니 완전한 어둠. 앞이 보이지 않지만 편평한 것이 큰 방 같기도 하다. 그래 더듬더듬 짚어가며 더 깊숙이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펼쳐지는 광경. 무도회. 온갖 선남선녀가 즐겁게 춤을 추고 있어 ‘나’도 한 자리 끼려고 냅다 달려가니, 그곳의 신사 숙녀들이 화들짝 놀라, 숙녀들의 혼절하기도 하고, 신사들도 아이구 깜짝이야, 혼비백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치는 말이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나’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할 괴상망측하고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nbsp; 이 작품 속에 괴물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그건 독자가 생각하는 거, 그게 맞다. 독자 자신일 수도 있고, 누구나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크툴루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나를 차버리고 떠난 마음 속의 악마인 그새끼 또는 그년일 수도 있겠지. 이런 거 아니더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것이라도 괴물이 될 수 있으니 그건 알아서 하시고.<br>&nbsp; 두번째 실린 &lt;벽속의 쥐들&gt;은 현대문학 책에도 나오는 작품이다. 쥐들의 습격. 영화에서도 쥐가 습격해 사람들을 쪼아먹어 죽이는 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이없게도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 즉 마에스트라를 그린 영화 &lt;더 컨덕터&gt;에서 마에스트라의 이름이 Tar. 거꾸로 하면 Rat, 바로 “쥐”다. 이것도 뭔가 있겠지?&nbsp; 종과 관련없이 우생학 적으로 센 놈이 이기는 거. 지하 묘지에서 이번에 바닥 뚜껑을 열고 더 지하로 들어가면 그동안 교회의 벽에서 찍찍거리는 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난다. 무시무시한 숫자의 쥐들.&nbsp; 아휴, 내 취향 아니다. 큰 아이 어렸을 때 둘이 손잡고 &lt;주라기 공원 II&gt; 보러 갔다가, 음산한 음악이 깔리면서 쥐만큼 작은 공룡이 앉아 쉬는 인간 앞에 나타나, 곧 작은 공룡들이 무수하게 몰려들어 그 뚱뚱한 인간을 마구 쪼아 먹을 거 같아서, 아이한테, 갈래? 했더니 걔도 응, 그래서 부자가 손잡고 영화 보다가 나왔다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이런 작품이 마음에 들겠어?<br>&nbsp; 아직 러브크래프트를 읽지 않은 독자들한테는 권할 만하다. 책을 읽으며 이이를 놓친다면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더구나 이 책은 서울대 영문과에서 SF문학을 강의하는 이동신 교수가 번역하고, 특히 오랜만에 괜찮은 역자 해설이 들어있어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기이한 소설, 즉 “위어드 픽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nbsp; 내돈내산 하실 독자는 이 책 말고 현대문학을 사셔도 나쁘지 않겠다. 12년 전에 나온 책이라 13편의 단편소설에 역자해설 및 연표 포함 380쪽이 10퍼센트 할인가 14,400원. 을유는 같은 조건으로 5편에 292쪽, 같은 가격이라 가성비가 좋다. 해설 및 번역의 품질 대비에 관해서는 노코멘트. 어떤 책을 고르든지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0/41/cover150/893240537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90411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파열의 피날레, 기요틴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0553</link><pubDate>Tue, 14 Jul 2026 0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05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78&TPaperId=173905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2/43/coveroff/89320451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78&TPaperId=173905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르멜 수녀들의 대화</a><br/>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이 작품은 전적으로 프랑시스 뿔랑이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원작이라는 이유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다. 베르나노스가 소설가인 줄 알았는데 희곡도 썼구나. 어째 오페라를 들으면서 원작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 참. 하긴 그거 가장 최근에 들은 게 못해도 15년은 됐겠다.&nbsp; 작품을 읽어보면 이건 연극 공연을 위한 희곡이 아니라, 희곡은 희곡인데 희곡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대본 비슷하게 쓴 거 같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라고 보기 힘든 중간 정도.&nbsp;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읽기 위해 내게는 진입장벽이 있으니 바로 종교의 벽. 내가 읽은 두 권의 베르나노스가 &lt;사탄의 태양 아래&gt;와 &lt;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gt; 두 권. 제목부터 척 보면 독실한 천주교인이 쓴 작품이다. 유물론자인 나는 읽기가 그리 즐겁지 않다. 성서를 읽으면서도 성서는 오직 신자, 교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 종자라서 여간해 베르나노스하고 친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읽는 것은 뭐 작품이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br>&nbsp; &lt;가르멜 수녀들의 대화&gt;도 영상이나 극, 딱 그것만 보고 읽으면 감동, 감화 가득한 작품이다.&nbsp; 사실상 프랑스 혁명이 시작하는 1789년 4월 27일과 28일,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란 기치를 든 과격 시민들이 직공들의 임금을 대책 없이 깎아버린 벽지 공장 사장 장-밥티스트 레베용과 초석공장 소유주 사장 앙리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에 처하고 그들과 다른 악덕기업의 사장 집을 차례로 약탈하기 바로 직전인 4월 26일에 이 드라마는 시작한다. 혁명 시작이 7월 14일이라고? 그건 시민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깨버린 상징적인 날짜이고 사실상 상퀴로트들의 폭발은 레베용과 앙리오를 비롯해 최고의 부자 동네 폴리 티통으로 쳐들어가 부잣집을 싸그리 약탈한 것으로 시작한다.&nbsp; 1789년으로 말하자면 가뭄이 극심해 시민들은 밀가루 구경도 못할 처지,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먹고 살자고 파리로 몰려들어 인구가 갑자기 많아지니까, 제조업 사장들이 임금을 후려쳐 대부분의 시민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하루에 수제비 한 그릇 구경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다가 그래도 멍청했던 루이 16세가 모른 척하자 약탈을 시작했고, 그제서야 출동한 기마병들이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해 본격적으로 뇌관을 터뜨려 버린다. 그게 1789년 4월 27일과 28일. 근데 솔직히 정확하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지금 역사책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고, 전에 썼던 프랑스 혁명 시기의 소설책 &lt;7월 14일&gt; 독후감 보고 쓰는 중이라서. 앗, 독후감 업로드 하는 오늘이 혹시 7월 14일 아녀? 이거 백퍼 우연이다. 그것 참.<br>&nbsp; 시작은 비록 “부자들에게 죽음을!”로 했건만, 부르주아만 부자가 아니고, 귀족들도 당연히 부자인 동시에 대지주였다. 농업 부르주아인 귀족에서 천천히 상공업 부르주아인 신계급으로 사실상의 권력이 이동하던 시기. 상퀼로트들은 귀족 집안 역시 그간의 호의호식한 대가를 물어야 했다.&nbsp; 그리하여 첫 무대는 이런 정황을 밝히기 위해 들라포르스 후작의 저택에서 후작과 그의 아들이자 기사이자 주인공 블랑슈의 오빠가 어지러운 파리의 치안, 그리고 예민하고 겁이 많은 블랑슈가 하필 오늘 마차를 타고 나간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자는 지금의 동요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들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귀족, 부르주아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nbsp; 조금 지나 블랑슈가 외출에서 돌아와 함께 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자신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들어간다. 무대극은 원래 쓸데없이 이야기를 길게 끌지 않는다.<br>&nbsp; 처음이니까 견습수녀. 쉬운 얘기로 하면 새끼수녀. 다른 수녀들은 검은 캡을 쓰지만 견습은 흰 캡을 쓴다든가 하여간 그렇다. 수녀원에서도 귀족, 평민의 계급은 존재한다. 물론 천주의 관할 아래 평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알게 모르게 다 그런 거지. 블랑슈는 후작 아빠가 특별하게 부탁해 일찌감치, 그걸 뭐라 그러나? 일종의 수계 같은 거,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수녀 수계를 받을 수 있게 조정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원장 수녀가 오늘 내일 한다. 그러다가 진짜로 죽는다. 죽으면서 사실상 수녀원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마리아 수녀에게 블랑슈 들라포르스를 공적公的으로 의탁한다. 이게 수녀원에서는 무서운 건가 보다. 한 번 의탁하고, 그러겠다고 했으면 정말로 돌봐야 하는 모양이다. 저 뒤로 가면 하여간 이 일 때문에 마리아 수녀가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nbsp; 목숨? 수녀들의 죽음이 프랑스 혁명하고 관련이 없을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 날짜가 조금 더 지나 혁명이 성공하는 쪽으로 접어들자, 주변 국가들이 왕실을 지켜주기 위하여 군대를 파병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걸 눈치챈 시민군들, 그들 입장에서, 우두머리가 부르봉 왕가와 친밀해도 너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로마 교황청. 그리고 교황청의 졸개인 신부, 수녀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시민들이 그간 교회한테 고난을 받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좀 무식한 시민군들은 교회가 그간 잘 먹고 잘 산 걸 무겁지 않게 징벌하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간혹 겉으로 왕따 당하기 싫으니 비슷하게 교회에 대고 지랄은 했지만 속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도 있었으니, 이런 자가 교회나 수도원에 밀려들어온 시민군에 속했으면 그나마 팔이 안으로 굽었겠지? 말하면 뭐해. 당연하지. 사는 일이 다 그래.<br>&nbsp; 가르멜 수녀원을 보면, 원장이 죽고 새 원장으로 당연히 마리아 신부가 될 줄 알았는데, 이 와중에 귀족의 딸인 마리아 수녀가 원장을 하는 것보다 마리아는 마리아지만 시민의 딸인 성 아우수스티노의 마리아가 원장 자리에 오른다. 새 원장이 자신도, 자기가 시민 출신이라 아무래도 많이 배운 귀족의 딸, 강생의 마리아가 원장이 되어야 했다는 걸 새 이해하고 안다. 그래서 극을 진행하며 생기는 많은 일을 마리아 수녀와 상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가끔가다 새 원장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마리아 수녀 역시 기꺼이 순종의 의무를 따른다.&nbsp; 당연히 블랑슈가 제일 어린 수녀. 바로 위에 콩스탕스 수녀. 덩치 좋고, 발랄하고, 늘 즐겁고, 낙천적인 성경이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앞으로 블랑슈 앞에 닥치는 많고 많은 겁나는 일, 우유부단, 어려움으로부터의 회피 같은 것을 하려할 때마다 자주 도와준다. 자주, 언제나. 물론 콩스탕스의 뜻대로 블랑슈가 늘 따르는 건 아니지만.&nbsp; 그리고 수녀들. 이 가운데 호호 할머니 수녀도 있다. 세상 경험이 많고 이제 곧 이미 죽은 원장 수녀를 따라가야 하는 이. 어린 수녀들을 포용하는 그릇이 크다. 이이를 뺀 기타 수녀들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이런 수녀도 있고, 저런 수녀도 있다.&nbsp; 이들이 혁명기의 곤란을 겪으면서, 결국 기요틴 아래에서 목이 떨어지는 스토리.<br>&nbsp; 따라서 수녀원이 배경으로 깔리는 순간, 천주의 뜻, 원장에 대한 순명, 순교에 관한 “대화”가 무진장 쏟아진다. 무식한 독자인 내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은, 수녀들의 아버지인 천주께서 시민, 상퀼로트들로 하여금 수녀원을 약탈할지언정 수녀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판결을 하게 하면 될 것을, 왜 수녀들로 하여금 순교를 하게 만들었을까?&nbsp; 그게 우습더라니까? 구약성서를 보면, 기껏 자기 아들 딸을 만들어 놓고, 틈만 나면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해서 자식 가운데 제일 큰 아들을 칼로 후벼 죽여 자신한테 바치라고 하지 않나, 애굽의 모든 장자를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키고 애굽을 떠난 모세 무리를 광야에서 몇 십 년 헤매게 하지를 않나.&nbsp; 근데 이게 나 같은 집 나간 불쌍한 검은 양의 생각이지 독실한 가톨릭 환자인 막내 외삼촌네 식구들은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하니 뭐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그건 이해하더군. 신자가 아닌 사람이 성서를 읽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흠. 난 당연한 사람이야. 뭘 이해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성서는 이해해서 읽는 게 아니라며? 그냥 무조건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며?<br>&nbsp; 이 책을 읽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뿔랑의 오페라였다는 건 제일 앞에 썼다.&nbsp; 오페라 전부 다 감명 깊다, 이렇게 말하면 이건 생 구라고, 지루함을 참고 참으면 드디어 반가운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 열여섯 명이 ‘성모 찬양 Salve Regina’를 부르며 기요틴 아래 대기하고 있다가 한 명씩 처형대를 향해 걷어 무대에서 사라지고 잠깐 후, 써~억, 하는 살 떨리는 소리가 날 때의 섬뜩함. 그럼 소름이 쫙 끼치는데, 그걸 듣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스피커 앞에 앉아 있는 거다. 제일 처음에 DVD로 당시 유행하던 홈 씨어터라는 장치로 봤는데 써~억, 하는 기요틴 도끼날이 자유낙하 하는 음향이, 아이구, 죽여줬다니까. 그래 곧바로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버진 클래식 레이블 CD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nbsp; 듣다, 듣다 그렇게 소름끼치는 피날레는 처음 들어봐서. 당신도 한 번 경험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 한 장면 가져왔다.<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2/43/cover150/89320451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2438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한 대학원생의 논문을 기다리며 - [크라카티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8752</link><pubDate>Mon, 13 Jul 2026 0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87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3887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off/k9626314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3887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크라카티트</a><br/>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20년 07월<br/></td></tr></table><br/>.&nbsp; 이 책이 2020년 7월에 나왔다. 몰랐다. 다른 작가도 아니고 차페크가 쓴 우리나라 초역 작품이 나왔다는 걸 알았으면 내가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사서 읽지 않았겠나? 전혀 몰랐다. 우연히 알라딘에서 차페크를 검색해보니까 처음 보는 책 표지가 떠서, 일단 잽싸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희망도서는 5년 이상 묵은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대고 정중하게 부탁했지. 읽고 싶은데 이 도시의 다른 도서관에도 한 권도 없다, 2차세계대전 이전 동유럽 대표선수가 쓴 책이 도시의 모든 도서관에 한 권도 없다는 게 섭섭해서, 나야 내가 사서 읽으면 되지만, 그래도 도서관에 한 권 정도는 구비해야 하는 것 같아 신청하니, 삼가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하루 지나 담당자한테 전화가 와 사주겠다고 해서, 읽었다. 혹시 속으로 욕했을까? 아니겠지. 목소리가 상냥한 걸로 봐서. 나 다니는 도서관 사서들은 다 친절하다.<br>&nbsp; 이렇게 조금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읽은 &lt;크라카티트&gt;. 출판사 “행복한책읽기”가 체코공화국 외무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명예교수 김규진에게 번역을 부탁해 찍은 책이다. 읽은 지 오래 되어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규진이 번역해 같은 출판사에서 낸 &lt;압솔루트노&gt;도 이 정도의 번역은 아닌 걸로 짐작하는데, 이번엔 해도 너무 했다.&nbsp; 먼저 우리말 문장이 후지다. 지극히 한정된 단어만 사용해서, 체코어를 우리말로 완전히 직역해 써 놓은 듯하다. 두번째로 정말 욕 나올 정도로 교정/교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체코공화국 외무부장관이 다행히 우리말을 읽지 못해 망정이지, 이 책을 우리말로 읽었으면 당장 서울에서 체코공화국 대사관을 철수시켰을 수도 있겠다. 기껏 번역료를 보태주었건만 이 따위로 책을 내? 이러면서.&nbsp; 책 읽다 보면, 한 페이지에, 좀 과장해자면, 열 번 정도 오자가 나오지 않으면 섭섭해지더라니까. 참 다양하게 오탈자가 출몰하는데, 이게 심하면, 아마 다들 같은 경험이 있겠지만, 몰입해 읽는 데 짜증, 왕짜증이 난다. 근데 이 책은 그 경지를 넘어 독자가 해탈 부근까지 걷게 만든다.&nbsp; 물론 아니겠지만, 당연히 의심하는 건 아닌데, 김교수가 진짜로 번역을 했나? 아니면 애먼 대학원생들에게 용돈 좀 주고 너는 여기서 여기까지, 또 너는 여기서 여기까지,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이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 혹시 다른 역자도 초역은 이 정도 수준으로 해서 가져다주는지 그것도 궁금했다. 이러고도 번역료를…, 아이고, 이 말은 취소, 취소.&nbsp;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은 오탈자가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읽으면 딱 좋을 수준이다. 박사 말고 석사학위 취득용이 적당하겠다.&nbsp; 내가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아시겠지? 아득바득 우겨서 희망도서로 시내 20개 크고 작은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비치하게 만든 책인데, 쓰, 힘들게 책 들여놓은 내 꼴이 뭐가 되느냐고!<br>&nbsp; 트라카티트. 20세기 전반부에 발명한 최고의 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이 진짜로 출현하기 전인 1924년에 동명의 제목으로 차페크가 만든 원자폭탄의 명칭이다. 정확하게는 원자 폭발물. 최초라니까 그러면 원자폭탄의 아버지도 있을 것. 그의 이름은 프로코프. 대장장이 아버지 아래 태어나 체코 최고의 명문 프라하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학사 출신의 폭탄 엔지니어.&nbsp; 프로코프는 무슨 록히드 마틴이나 한국화약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연구실에서 소소한 폭발물을 만들어 주로 광산하는 사람들의 암반 폭파 목적으로 공급해 돈을 벌었다. 작품 내내 돈을 활수하게 쓰는 것을 보니 제법 많이 번 모양이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천재급 두뇌를 보유했고, 자기 전공분야에 관한 한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의 자세로 백두산석마도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암만. 천재라는 수식은 70퍼센트의 노력을 동반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니까.&nbsp; 그러던 어느 날, 점심밥도 미루며 열심히 실험을 하다 새로운 폭발물을 조금 만들었다. 이 가운데 15센티그램, 즉 0.15그램을 도자기 항아리에 보관해 자기 품 안 속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가루 조금은 답배갑에 담은 다음, 그래도 남은 부스러기는 그냥 책상 위 아연 접시에 남겨 놓았다. 그런데 이 미량의 가루가 아무런 폭발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만 갑자기 무지무지한 폭발을 해버려 프로코프도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채, 당연히 불도 났으니까 겁도 나서, 허겁지겁 체코 시내로 도망해버렸다.<br>&nbsp; 이 폭발물 트라카티트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모든 물질을 재료로 만들 수 있다. 물질 속 에너지, 즉 원자가 결합한 상태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하다. 근데 이 원자의 내부가 느슨해지기만 하면 물질 에너지가 꽝! 폭발을 해버리는 것. 1920년대에는 우라늄이니 플루토늄이니 하는 걸 잘 몰라서 모든 원소의 원자로 폭발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거나, 소설 즉 픽션이라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프로코프는 원자의 폭발성을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셈이고, 나름대로 결론을 낸 바, 이건 열화학이 아니라 파괴적인 화학, 파괴화학이었던 거다. 뭐 이 폭발 현상에 대해 좌르륵 써 있지만 그걸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이렇다는 말이다.&nbsp; 프로코프가 프라하 변두리에 도착했을 때는 폭발로 인한 후유증과 오른손에 제법 큰 상처가 나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그러면서 폭발을 확인하기 위하여 경찰이 출동했을 것이 틀림없으니 일단 경찰권의 눈에 띄면 곤란해지겠다. 잔뜩 쫄아서 고개를 잔뜩 웅크리고 간신히 보도를 걷다가, 앞깃을 올려 최대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는 남자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서로 비껴 지나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도 자신을 보고 있다. 좀 더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까 또 그 남자도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뚜벅뚜벅 프로코프한테 다가와 말하기를,&nbsp;&nbsp; “어이, 프로코프! 나 몰라보겠어? 나 토메시야, 이르지(애칭 이르카) 토메시. 우리 같은 공과대학에 다녔잖아.”&nbsp; 시골 티나체에서 개업의사를 하는 아버지의 1남1녀 가운데 맏이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난봉꾼인데 그런 기미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프로코프가 부상당했고, 지칠대로 지친 걸 알고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자기 아파트로 환자를 데려간다.&nbsp; 침대에 널부러진 프로코프는 겨우 미음에 잘게 썬 백김치 정도만 먹을 수 있었고,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환각도 보고, 원래 좀 미친놈이긴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구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토메시한테 비몽사몽 다 읊어준다. 열이 펄펄 끓는 처지에도 실눈을 떠 보니 토메시가 자기가 한 말, 화학 구조식, 트라카티트 제조방법을 전부 종이에 받아 적고 있는 기미가 보였다.&nbsp; 아하, 내가 뭔가를 누설했구나.&nbsp; 누설했다. 토메시는 트라카티트를 만드는 공장을 너하고 나하고 합작해서 만들자는 제안을 하더니, 지금 당장 자기는 돈이 없어 티나체에 가서 아버지한테 돈을 뜯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지금 당장 떠나겠다더니 정말 가버렸다.&nbsp; “내일 아침에 가정부가 와서 너를 병원으로 데려갈 거야. 몸조리 잘 하고 있어라.”<br>&nbsp; 돈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떠난 토메시.&nbsp; 지금 당장은 몰랐지. 그 새끼가 프로코프 품 안에 있는 도자기 항아리, 15센티그램, 즉 0.15그램의 크라카티트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을. 토메시는 트라카티트와 프로코프가 비몽사몽간에 얘기한 방정식을 갖고 어디로 갔느냐? 체코와 그리 멀지 않은 공국, 리히텐슈타인? 정확한 국명은 나오지 않지만 전체주의 국가로 가서 전대미문의 폭탄 트라카티트를 데모 시연하고 돈을 왕창 벌었다. 이에 흥분한 공국의 연구소장 카슨한테 프로코프에 관해, 그의 연구와 대량 생산의 가능성에 대하여 설레발을 왕창 풀었음을 물론이다.&nbsp; 그런데 아뿔싸, 실험에 참가한 연구원 한 명이 나머지 100그램이 든 도자기 항아리와 제조법 사본을 들고 튀었다. 누구한테 튀었나 하면 공국의 연구소가 있는 성에서 또다른 전체주의 국가의 도시 크루투프에 있는 연구소로. 하지만 프로코프가 짱구냐? 아무리 제조방법과 방정식 같은 걸 다 적어갔다고 하더라도 핵심 공정을 건너 뛰어, 토메시는 진짜 크라카티트를 만들기는 만들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그리고 만든 순간 토메시는 폭망해버린다. 그건 아주 뒷장면.<br>&nbsp; 이후 프로코프는 토메시를 찾기 위하여 베일을 쓴 토메시 애인의 말과 부탁을 듣고 그의 고향집이 있는 티나체로, 다시 프라하 인근 자기 연구소를 거쳐 공국의 성에 있는 연구소, 크라카티트에 관한 정보를 죄다 들은 공국의 귀족이지만 아나키스트인 타타르족 친척 다이몬한테 갔다가, 마지막으로 진짜 토메시가 일하는 크루투프로 찾아간다. 베일을 쓴 여인의 부탁을 완료하기 위하여.&nbsp; 이 과정에 프로코프는 베일을 쓴 여자, 티나체에 살고 있는 토메시의 여동생 안둘라(애명 안치), 공국의 성에 사는 공주를 사랑하고, 안치와 공주도 그를 사랑하는데, 이거 너무 장황해 별 재미없다. 야하기나 했으면 읽는 재미라도 있지.&nbsp;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해 대규모로 인류를 살상할 수 있는 토메시와 크라카티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 근데 차페크가 이걸 코미디로 쓴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 차페크가 오른쪽 주머니, 왼쪽 주머니 같은 농담 시리즈도 써서 더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곳곳에 코믹 장면을 배치한 것이, 아무래도 인류 멸망 가능성을 가진 원자폭탄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읽었다.&nbsp; 다른 역자가 다시 번역하면 또 읽어볼까? 그래도 관두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150/k9626314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681457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대산세계문학총서, 200권 발간을 축하합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link><pubDate>Fri, 10 Jul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047&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32/61/coveroff/893204204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058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40/34/coveroff/89320405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16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96/4/coveroff/89320381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7787&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2/50/coveroff/89320377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606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225/94/coveroff/893203606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nbsp;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입니다. 문학과지성사의 자존심으로 엮은 전집. 작가가 아무리 이름이 높더라도 그 작가의 결실 가운데 딱 한 작품만 골랐으니 작품의 품질이야 저절로 좋을 수밖에 없을 터. 한 작가 당 딱 한 작품. 20세기 중반까지는 이런 출판 기획도 드물지 않았지만 신자본주의의 절정기인 지금 시대에 고집을 꺾지 않기는 틀림없이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따라서 시리즈 2백 권 모두 엄정한 편집부의 고심 끝에 결정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정한 결과물이겠지만 그래도 독자가 읽기에 정말 좋았더라,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열 편을 고르려 합니다.&nbsp; 제가 이 시리즈에서 나온 시를 제외한 모든 장르는 거의 다 읽은 거 같습니다. 이 가운데 번역 시하고는 아예 인연이 없어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자랑인 다양한 고전 시 빼고, 나머지 목록 가운데 이 시리즈 출판물로 가장 감명 깊게, 재미있게, 또는 의미 있게 읽은 책을 리스트 업 했습니다. 그랬더니 열아홉. 더하기 1차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아쉬운 책과 다른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읽어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책도 또 열아홉. 이 가운데 딱 열 편을 소개합니다.&nbsp;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2백번 작품, 울리츠카야의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지금 희망도서 신청 중이라 읽지 못했습니다만 이것도 혹시 기념할 만한 책 목록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 책은 다음으로 하자는 뜻입니다.<br><br>&nbsp; 작품 소개는 시리즈 번호 순으로 하겠습니다.<br><br>1.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lt;페리키요 사르니엔토&gt; <br>&nbsp; 라틴 아메리카의 세르반테스라고 상찬하는 모양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쓴 진짜 고전 가운데 한 편이 바로 &lt;페르키오 사르니엔토&gt;이다. 페르키오 사르니엔토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옴쟁이 앵무새 새끼.’ 1810년대에 쓴 오래 묵은 작품이라고 곰팡내 날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인종과 계급 차별의 찬란한 반어법도 있고 뭐 그런데 다른 말 길게 할 거 없이 무척 재미있지만, 두 권 1천 페이지가 넘도록 비슷한 필체를 읽는 난관은 감안하셔야 할 것.<br><br>2.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lt;오블로모프&gt; <br>&nbsp; 이이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재미진 작가인 줄 알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문학과지성사 덕분이다. 소위 LDT, 레르몬토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내가 주장하는 러시아 3인방의 위명에 눌려 자꾸 순서가 뒤로 밀렸다가 정작 읽어보니 이게 웬일? 오블로모프의 게으름은 틀림없이 ‘천재성이 없는’ 조아키노 로시니의 도플갱어일 듯하다. 나도 나머지 삶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을매나 좋을꼬? 이 책 역시 두 권의 빵빵한 분량, 감안하고 선택하시라.<br><br>3. 이보 안드리치, &lt;드리나 강의 다리&gt; <br>&nbsp; 이 책, 내 최애 리스트 가운데 한 권인데 독자에 따라 호오가 있을 듯. 10년 전, 2016년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선정했을 만큼 대단한 임팩트를 준 작품이건만 역시 소설은 독자의 결정이 최종 심판이다. 16세기 초반에 만든 돌다리. 다리를 만들 당시 보스니아 지역에서 튀르키예 소년병으로 편입한 시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파란만장했던 다리와 주변 사람들이 겪어온 신난고난. 사람들이 당했던 착취와 죽음, 오해와 반목,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언제나 건강했던 사람들의 초상.<br><br>4. 모옌, &lt;홍까오량 가족&gt; 또는 &lt;붉은 수수밭&gt;<br>&nbsp;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의 전형. 예전에 있었던 창피하고 불행하고 참혹했던 과거에 관한 솔직한 기록. 1920년대부터 40년대 초반까지 강태공의 제나라 지역에서 있었던 항일, 국공, 토비의 난과 이 속에 끼어 죽을똥 살똥했던 인민들의 적나라한 모습. 그리고 남녀상열지사! 이 책 읽고나서 공리 나오는 영화가 이 책의 1`부에 그쳤다는 걸 알게 됐지 뭐야. 모옌 읽으려면 단연 이 책부터 들추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저절로 생길 것.<br><br>5.&nbsp;엘리자베스 개스켈, &lt;남과 북&gt; <br>&nbsp; 요즘 문학동네 세계문학에서 &lt;북과 남&gt;이란 제목으로 새 번역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첫 정. 이 책으로 하여금 나는 단박에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팬을 자처하게 됐다. 19세기 초반의 목사 부인께서 어떻게 이리 노동자들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진보적 시각을 갖추게 되었는지 말 그대로 깜놀, 했다는 거 아닌가. 스토리 하나 가지고 굳세게 작품을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주고, 결혼이 삶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도 은근히 눈치를 주는, 솔직히 이 정도면 명작 아냐?<br><br>6.&nbsp;페터 바이스, &lt;저항의 미학&gt; <br>&nbsp; 아오, 이거 리스트에 올렸다가 욕만 한 태배기 먹는 거 아닌가 싶다. 세 권에 무지막지 건조한 문장으로 꽉 채워진 어마무시한 분량의 책. 문장 부호라고는 쉼표와 마침표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지옥의 순례길. 그러나 인내하시라. 생각도 못한 미학 강의와,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어찌하여 히틀러의 독일이 군비증강을 허용했는지 설명하는 명 강의를 들을 수 있을 터이니.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미학적 시선이라 바이스, 이 엄하게 생긴 독일 양반한테 혹, 넘어가버렸다는 거 아닌가.<br><br>7.&nbsp;리온 포이히트방거, &lt;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gt; <br>&nbsp; 말로만 듣던 포이히트방어. 난 “~방거”가 아니라 “~방어”라고 배워서. 그건 그거고, 이 책은 작가 포이히트방거에 대한 나의 경외심을 심어주어 이후 &lt;톨레도의 유대여인&gt;과 &lt;유대인 쥐스&gt;를 사서 읽게 했으며 앞으로도, 장담하노니, 어떤 책이 나와도 끝내 찾아 읽을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이미 세상의 태양이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대서양 북쪽의 섬나라와 이웃한 프랑스로 넘어갔음에도 세상 무능한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고야. 그의 타협하지 않는 삐딱한 세계관과 왕족을 희화화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시절. 하여튼 이 책은 대산셰계문학총서 가운데 틀림없이 추천작이다.<br><br>8. 마거릿 드레블, &lt;찬란한 길&gt; <br>&nbsp; 조선의 혜경궁 홍씨를 모델로 쓴 소설 &lt;붉은 왕세자빈&gt;의 작가 드레블의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 이 책이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왔으면 모두 출판했을 거 같다. 1979년 12월 31일의 신년 파티가 작품의 시작이니 위에 소개한 작품과 비교하면 제일 현대물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고 다음 해인 1980년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등극해 천박한 신자본주의의 전성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송구영신의 장이 1979년 12월 31일이겠지. 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신개념의 고전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읽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후속작품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br><br>9.&nbsp;윌리엄 매이크피스 새커리, &lt;신사 베리 린든의 회고록&gt; <br>&nbsp; 정말 우습게 알았던 새커리. 오래 전에 &lt;허영의 시장&gt;을 별로 인상깊게 읽지 않아 조금 실망하던 차에 제임스 미치너가 &lt;소설&gt;에서 반드시 평가절하해야 할 영국 작가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바람에 우습게 알았던 작가. 그러다가 이 책 읽고 쌍코피 철철. 아오, 새커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가였구나! 대오각성해서 이 책 좀 읽어보라고 세계만방에 고했거늘 아직도 즐겨 찾아 읽는 독자가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 신사 베리 린든은 말 그대로 신사 그 자체. 라고 주장하는 엽색 사기꾼. 이의 천방지축 설레발을 찾아 읽는 일이 이리 즐거울 수 있을 거란 걸 미쳐 몰랐던 인종이 나 말고도 무척 많을 걸?<br><br>10.&nbsp;패트릭 화이트, &lt;전차를 모든 기수들&gt; <br>&nbsp; 호주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패트릭 화이트. 나도 아무 기대 없이 그냥 대산세계문학총서 라는 타이틀 딱 하나 보고 사서 읽었는데, 세상에 이게 웬 일? 한 방에 껌뻑 넘어가서 이이의 단종된 단편집 &lt;불타버린 사람들&gt;을 헌책방에서 사서 읽었고, 지금 새로 번역해 나온 두 권짜리 장편 &lt;폭풍 한 가운데&gt;를 희망도서 신청해서 기다리는 중이다. 말이 필요 없다. 아직 화이트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리하여 고조선 때인가, 당나라 때인가 을유문화사가 찍은 두 권짜리 &lt;인간의 나무&gt; 헌책도 사 읽어보려 했다가 활자가 너무 작아 이미 찌든 시력이 받쳐주지 못해 그냥 보관 중이다. 조여청사모성설. 눈물이 앞을 가린다.<br><br>&nbsp; 열 권을 다 마쳤다. 그러면 뒷 번호에 배치한 작품들은 어쩌냐! 맞다 그래서 열 권에 딱 두 권만 더 보태자. 괜찮지?<br><br>11. 레일라 슬리마니, &lt;타인들의 나라&gt; <br>&nbsp; 2018년에 &lt;타인들의 나라&gt;라는 별 볼 일 없는 작품으로 공쿠르상을 받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대박을 친 작품. 작가 슬리마니 가계를 모델로 쓴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이 책 읽어보면 2부와 3부가 왜 아직도 번역 출판되지 않았는지 한숨을 멈추지 못하리라. 알자스-로렌 지역이라 하면 예전 교과서에 나온 알퐁스 도데의 &lt;마지막 수업&gt;의 무대인데, 여기 출신 어린 아가씨 마틸드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에서 징병당해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 아민과 결혼해 모로코에 가서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 당연히 이슬람 문화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되는데 이게 무척 재미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슬리마니를 다시 봤을 정도이니 한 번 읽어 보고 싶으시지?<br><br>12.&nbsp;쥴퓌 리바넬리, &lt;세레나데&gt; <br>&nbsp; 이 책을 얘기하지 않고 대산세계문학 200을 마치기는 정말 아쉽다. 인종, 종교, 피부색, 젠더, 핸디캡, 지위, 국적에 관한 모든 차별을 반대하는(것처럼 읽히는) 정서 안에서, 유대인 여성을 사랑하는 아리안족 노 교수의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독자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부르주아 출신의 좌파이고 진보적 성향의 작가는 이 막시밀리언 바그너 교수와 나디아의 사랑 이야기에 보태 진정한 문학에 관한 논의도 보태고 있으니,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나처럼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명저 &lt;미메시스&gt;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냉혹한 한파가 몰아치는 보스포루스 해변에서 미친 듯이 한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노 신사. 그 잔영이 쉽게 가시지 않을 듯.<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6/cover150/8932012504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6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실제와 비슷한 사춘기 좌충우돌 - [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3739</link><pubDate>Fri, 10 Jul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37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4392&TPaperId=173837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84/40/coveroff/k5129343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4392&TPaperId=173837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a><br/>펑탕 지음, 문현선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br/></td></tr></table><br/>.&nbsp; 1971년에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 아버지와 몽골족 어머니 사이에서 난 소설가, 시인, 부인과 의학박사이자 사모펀드 투자수석전무인 동시에 방송인, 서예가, 수필가까지 겸한다니 이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열아홉에 베이징연합의과대학에 입학해 8년만에 임상의학과 부인종양학 박사를 따고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에모리대학에서 MBA를 따고, 의사를 할까 경영을 할까, 고민 한 번 없이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맥켄지에 들어가 글로벌 매니징 파트너까지 승진했단다. 2014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1년간 자원voluntary의료를 떠났다가 다시 도미, 위에서 얘기한 사모펀트 투자수석전무를 하고 있다는데, 위키피디아 정보를 마지막 업데이트한 게 작년 크리스마스였으니 지금도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는 전무님으로 있을 것 같다.<br>FengTang, 2022<br>&nbsp; 이 책 &lt;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gt;는 애초에 2005년(으로 짐작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lt;주상&gt;이라는 중편소설을 써서 인터넷 주관 문학작품 공모대전에 네 명 수상하는 3등 상을 받은 것을 2010년에 장편소설로 발전시킨 책이다. 원래 무대가 되는 80년대 후반 베이징에 개발을 위한 철거 붐이 있어서 제목을 “철거” 어쩌고저쩌고 라고 지을 예정이었지만 출판사 언니 오빠들이 너무 평범한 제목이라고 해서,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았으나 행간을 보면, 그 언니 오빠들이 지어준 제목인 듯하다.&nbsp; 그런데 몰랐지? 중국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일단 제목이 심히 구려 책방 독자서평 하나 없는 비인기 책으로 등극, 2024년 10월 말일에 출간된 책이 2026년 5월 9일 현재 세일즈포인트가 123점에 불과하다. 즉 돈 내고 책 사 읽은 독자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봐도 독후감은 두 편만 뜰 뿐이다.&nbsp; 하지만 이 책, 괜찮다. 아, 미리 말할까? 나, 출판사 글항아리 사장하고 인맥, 지연, 학맥 기타 등등 관련 있는 거 하나 없고 하다못해 만원도 꿔준 거 없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다. 물론 인생 살면서 리비도가 가장 왕성한 시절, 성호르몬 과다분비로 교실에서 책상 모서리에 슬쩍 닿기만 해도 불뚝 발기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일종의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색다르다.<br>&nbsp; 이 독후감을 읽는 여성분들은 사춘기를 지나는 남자 청소년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는 줄 모를 것 같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열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를 시간적 공간으로 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는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데, 만일 그런 준비가 완비되신 분은 이 독후감과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 상 좋다. 실제로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풋풋한 남자 중고딩, 특히 중딩들은 아주 미칠 지경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우라질 사춘기를 또 겪기 싫어서라는 건 몇 번 이야기한 것 같다.&nbsp; (한 단락 통째로 검열, 삭제 판정)&nbsp; 남자들 인생 살면서 딱 그때는, 그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발휘되지 않는 투시력이 생겨 지나가는 모든 가임 여성을 한 번 척 보기만 해도 그냥 알몸이 훤히 보인다(이순원 작 &lt;19세&gt; 독후감 참조). 정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것도 모르고 청소년 소설에 여자애와 남자애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대개 아련하고 풋풋하고 상큼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추억이니 뭐니 하는데, 천만의 말씀. 이런 의미에서 펑탕의 제목이 드러운 소설 &lt;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gt;는 청소년 남자애들의 실제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br>&nbsp; 화자 ‘나’이자 주인공 추수이. 베이징판 8학군 가운데서도 으뜸인 중학교에 다니다가, 시험을 봐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을 바로 앞둔 시기까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제일 좋은 중학교가 경기중. 졸업하고 대부분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남는 인원을 다른 중학교 출신들이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입학하는 거였는데 딱 그거 생각하시면 된다. 추수이하고 친한 친구들도 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공한다. 걔네들 이름이 훗날의 성공한 영화감독 장궈둥, 크게 사업을 벌여 신흥 갑부의 반열에 올랐으나 자기 소유의 호텔에서 일찌감치 칼 맞아 세상 뜨는 류징웨이, 그냥 아버지 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여유롭게, 그래도 부자로 사는 덜 중요한 조연 쌍바오장.&nbsp; 여학생이 빠지면 섭섭하겠지? 추수이가 사는 동네에서 과거 100년간, 지역 10리 안팎을 통틀어 가장 예뻤던 엄마를 둔 주상. 5년 전에 상 받은 작품 &lt;주상&gt;의 주상이 바로 이 주상이다. 추수이가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막 헛갈려하는 애. 근데 시절을 지낸 내가 보기에 그건 사랑이야. 이 주상을 연모하는 애가 또 있으니 원래 주상의 옆자리에 앉았던 쌍바오장과 장궈둥 추수이는 자기가 주상 옆에 앉고 싶어 쌍바오장에게 동서양의 포르노잡지 두 권을 주고 기어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쌍바오장은 그 잡지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기는 부업에 나섰다가 훗날 학교에서 크게 벌점을 먹고, 잡지의 원천지인 추수이 역시 빠른 전학을 전제로 제적을 면하는 벼락을 맞는다. 그리고 장궈둥. 얘는 추수이가 주상을 좋아하는지 뻔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자기가 주상을 좋아하니 네가 걜 좋아하지 않으면 나하고 좀 엮어달라고 청탁한다. 그러니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추수이가 어찌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 하지만 주상은 장궈둥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추수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의 낮은 건물에 엄마하고 사는데, 추수이는 바람에 휘날리는 흰 바탕에 분홍 꽃무늬가 프린트된 주상의 팬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한다. 근데 그게 재미야? 아닐 걸? 그것도 일종의 애가 타는 그리움일 걸?&nbsp; 외모로 보면 주상보다 더 예쁘고 쭉쭉빵빵한 취얼. 추수이도 취얼을 좋아하지만, 그건 주상이 추수이의 사랑의 신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취얼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숙한 남자를 선호해서 중학교 다닐 때는 고딩 남학생과,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생과 사귀더니 훗날 무지하게 부자이며 늙어 꼬부라졌지만 뇌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있는 미국인과 결혼해, 계산대로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 큰 부자가 된다. 이후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의 왕자와 결혼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데 그건 당연히 이 작품이 끝나고 10년이 더 흘러야 한다. 일찌감치 몸과 마음의 사랑에 달통한지라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정기적으로 추수이의 방을 찾아와 몸의 갈증을 해소한다. 주상을 향한 추수이의 마음을 놀려 먹으면서. 그만큼 취얼도 추수이를 좋아한다는 의미겠지. 평생을 함께 할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br>&nbsp; 추수이가 중학교 다닐 무렵, 얘한테 최고의 인생 스승이 있었으니 쿵젠궈라는 이름의 늙은 건달. 말인 즉, 남자라면 일생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온 힘을 사라지게 하는데 그이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찾았으면 가서 해버려야 하는 거라고, 그게 패기이고 상남자라고 가르친다. 스승의 말씀을 결코 놓치지 않는 추수이는 결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상과 일생을 보내기로. 빵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우유부터 벌컥벌컥 들이켜는 거다. 늙은 건달 쿵젠궈야말로 추수이의 빠싹 말라붙은 삶의 한줄기 빛인 듯 섬겼단다.&nbsp; 쿵젠궈는 정말 건달 짓을 하고 살다가 이제 나이 들어 백수 상태이고 단칸방에서 형과 형수, 이렇게 세 명이 살다가 형수가 못 살아, 못 살아, 하는 바람에 무허가로 방을 하나 덧대 주었더니, 이게 웬일? 동네 중딩들이 모여 밤이 깜깜해질 때까지 존경하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는 거 아닌가.&nbsp; 이 아이들은 당연히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인다. 서로 마주치면 무조건 쪽수 많은 쪽이 이기는 건데, 지는 편은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복수혈전을 준비한다. 고딩 시절의 추수이, 그가 보는 앞에서 자가용에서 내린 대학생 남자 둘이 주상을 차에 태워 놀러 가려 하고, 주상은 싫다고 할 때, 추수이는 사이다병을 자기 이마빡에 퍽 부딪혀 깨버리고, 다른 사이다병으로 대학생 한 몀의 머리통을 으깨버린다. 뭐 이런 식이다. 시절이 80년대 중후반이었을 테니 이 정도의 폭력 행사는 중국에서, 비록 마오쩌둥의 큼지막한 사진이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더라도 그저 큰 일 없이 지나가버리던 무협시대. 그 시절을 견뎌낸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좌충우돌.&nbsp; 후진 제목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 없다.&nbsp; 내가 읽기로는 세계사나 곰 출판사에서 찍었지만 지금은 절판된 이순원의 &lt;19세&gt;가 훨씬 재미났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84/40/cover150/k5129343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84409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내기, 사기 대신 엽기 그로테스크 - [클로드의 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1813</link><pubDate>Thu, 09 Jul 2026 04: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18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737698&TPaperId=173818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28/coveroff/k7727376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737698&TPaperId=173818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로드의 개</a><br/>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제 교유서가에서 펴낸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선” 세 권을 다 읽었다. 취향에 맞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 있는 작가. 나처럼 취향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기, 도박, 사기, 엽기 이야기들.&nbsp; 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역자 가운데 한 명인 정영목이,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제자 박종윤, 손명희, 이혜정, 정해영, 최희영, 이렇게 다섯 명한테 작업을 시켰다는 점. 정영목 자신도 역자 제일 위에 이름을 박았으니 뭔가 작업을 하긴 했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 가지고 시비냐고? 지금 시비하는 거 아니다. 오해 말라. 눈에 띈다고 했을 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근데 스승과 제자 다섯 명의 문장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 참 잘 배웠네. 다만 좋은 스승한테 배웠으면 청출어람의 미덕을 보여야 하건만 마치 한 명의 글을 읽는 것 같아 좀 그랬다는 거다. 책 뒤에 습관적으로 싣는 “역자해설” 또는 “역자의 말” 같은 것을 달고, 그 속에서 어느 작품을 누가 번역했다는 표시를 왜 하지 않았을까? 아예 “역자해설” “역자의 말”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이거 큰 건 아니지만 조그만 반칙 아냐? 네 명의 제자들도 섭섭하겠네. 기껏 작업해 놓았더니 내가 무슨 작품을 번역했는지 표시도 안 해주고. 당연히 받았겠지만, 번역비는 두둑하게 챙기셨지, 들?<br>&nbsp; 《클로드의 개》는 로알드 달의 전매특허인 크고 작은 내기, 도박, 사기는 별로 없고 대신 그로테스크한 엽기 소설이 많다.&nbsp;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보면, 크게 《클로드의 개》라는 타이틀 속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있고, 따로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이 1953년 발표작이니 당시 출판 관행으로 보면 《클로드의 개》 다섯 편의 단편으로 책 한 권을 찍었을리 없지만, 그래도 요즘 독자는 혹시 그러했고, 여기다가 일곱 편의 작품을 보태 우리나라에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신경쓰지 마시라.<br>&nbsp; 《클로드의 개》는 주인공 가운데 좀 덜 주인공인 화자 고든과, 고든이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고용인이자 진짜 주인공인 클로드, 두 명이 자기들이 살고 이는 그레이트 미센든 주변에서 벌이는 일종의 도둑질, 사기도 있고, 동네 사람들이 저지르는 엽기도 있다. 끽 해야 달의 소설집 두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처음 읽은 달인 《맛》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워낙 감명깊어 달, 하면 기발한 내기와 도박 이야기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nbsp; 《클로드의 개》의 첫번째 작품 &lt;세계 챔피언&gt;은 도둑질. 달스럽다. 두번째 &lt;피지 씨&gt; 딱 이런 걸 기대했는데 사기fraud 그리고 사기 위에 또 사기. 역시 달스럽다. 그런데 세번째 &lt;쥐잡이 사내&gt;는 돈 걸고 내기해서 겁나게 큰 쥐를 깨물어 죽이는 사내. 이렇게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를 시작한다. &lt;러민스&gt;는 지미 씨가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이름이 났지만 술꾼인 러민스 씨를 건초 작업 중에 살해해버리고 건초 속에 숨겼다가, 날이 흘러 건초를 해체하는 작업 중 지미의 아들 버트가 건초 절단용 전기톱으로 이미 죽은 러민스 씨를 토막내는 이야기 역시 엽기. 아, 장소는 영국이다. 전기톱 나왔다고 B급 영화 &lt;텍사스 전기톱&gt; 연상하지 마시라. 마지막 &lt;호디 씨&gt;는 주인공 클로드가 애인 클라리스 호디의 아버지 집에서 결혼 승낙을 받는 촌극. 클라리스한테 장가만 들면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자기가 구상중인 혁신적인 아이템의 사업 이야기를 하는데, 그 빌어먹을 혁신 아이템이 낚시꾼들에게 미끼용 구더기를 길러 판매한다는 것.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나? 그저 뚜껑 절단한 드럼통 두 개와 썩은 고기 몇 덩이, 양머리 하나만 있으면 똥파리들이 알아서 알을 까고 토실토실한 구더기가 몽글몽글 기어다닐 거란다. 이건 코믹 그로테스크 맞지?<br>&nbsp; 그리고 《클로드의 개》 아래 붙인 일곱 단편도 거의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 작품이다.&nbsp; 갖난 딸이 분유를 통 먹지 않아 배배 마르기 시작하자 양봉업자 아빠가 로열 젤리를 먹여 아이가 가슴에 솜털이 돋는 등 점점 꿀벌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도 있고, 하여간 여러가진데, &lt;윌리엄과 메리&gt;가 제일 엽기였다.&nbsp; 외모에 자신이 없는 옥스포드 교수 윌리엄은 두뇌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다가 덜컥 암에 걸렸다. 길어야 몇 달 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친구인 랜디가 방문한다. 그리고 곧 고인이 될 환자를 살살 꼬드긴다.&nbsp; 죽으면 뇌에 인공심장을 달아 피와 산소를 공급해 보관하자고. 그러면 길면 4백년 정도 아무 삶의 고통 없이 당신의 지적 사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니 허락을 해달란다. 뇌에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 즉 볼 수만 있고, 말, 청각, 촉각 즉 신체적 고통, 감각 즉 정신적 고통 없이 유일하게 뇌에 연결되어 있는 눈을 통해 몇 백 년 동안 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한다.&nbsp; 윌리엄이 1950년대 보수적인 옥스포드 교수였던 만큼 아내 메리한테 완벽한 가부장적 독재를 펼쳤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기타 등등. 그래 자기 사후 처리에 관해 메리한테 서신을 통해 죽고 일곱째 날에 알게 해, 메리는 윌리엄이 지시한대로 의사 랜디에게 전화해 죽은 자기 남편 윌리엄의 뇌가 아크릴 세수대야에 담겨 동동 떠 있으며 눈알 하나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현장에 가서 직접 목격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겠어? 징글징글하니 정이 똑 떨어지겠지?&nbsp; 메리는 어땠을까? 안 알려드린다.&nbsp; 읽기로 했던 달의 세 권을 다 읽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더 읽는 일이 생길까? 있을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28/cover150/k7727376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12282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재미있지만 더 발칙했으면 좋겠다 - [우리의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9893</link><pubDate>Wed, 08 Jul 2026 04: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98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379&TPaperId=173798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6/coveroff/89364383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379&TPaperId=173798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사람들</a><br/>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02월<br/></td></tr></table><br/>.&nbsp; 박솔뫼. 데뷔 17년. 짧은 장편 &lt;을&gt;로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타 등단. 우와, 벌써 마흔한 살. 세월 빠르다. 또래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눈 여겨 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 &lt;을&gt;과 《사랑하는 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박솔뫼니까 이 정도면 팬을 자처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당신한테 추천하는 건 아니다. 독자마다 호오의 차이가 심할 것 같아서. 다행히 나는 딱 맞아, 특히 《사랑하는 개》가 내 취향이라 이이에게 좀 집중하게 됐다.<br>&nbsp; 《우리의 사람들》 표제작 &lt;우리의 사람들&gt;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 읽었다. 이 작품에 집중해보자. 첫 대목에 나오는 문장.<br>&nbsp; “사진작가가 주카이숲에 간다고 하여 모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일정은 새벽 두시에서 오후 여섯시까지였고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고 출발할 수 있을까 그 상태로 여섯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다들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냥 안 가기로 하였고…” (p.9)<br>&nbsp; 주카이숲에 따라가기로 했다가 그냥 안 가기로 한 사람은 화자 ‘나’의 친구들.&nbsp; 이어서 같은 문단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가 등장한다.<br>&nbsp; “나는 나대로 혼자 방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숲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를 마시다 커피를 마시다 쏟아지는 햇빛을 보다 그러나 친구들이 숲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p.9~10)<br>&nbsp; 이어서 ‘나’는 친구들이 들어갔다가 여차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깊은 숲인 주카이숲을 간 친구들을 연상 또는 상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만일 ‘나’가 부산 중구에 산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그랬다면 결혼을 일찍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애도 두 명”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nbsp; 다음 문단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을 온양관광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좋았다.”로 시작한다. 부산은 박솔뫼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장소. 온양도 서울, 부산 다음으로 박솔뫼가 애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부산 골목골목 거의 다 아는 것이 부산의 매력에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소설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산과 부산 지리, 부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nbsp; 《사랑하는 개》에 실린 &lt;여름의 끝으로&gt;에서도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는데, 만일 사람이 동면冬眠한다면, 하는 가정. 《우리의 사람들》에서는 두 번 나온다. 인간의 저 먼 조상들이 동면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추운 걸 견디기 힘들고 더운 여름을 좋아해서. 그럼에도 부산, 온양, 동면은 연이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 특별한 거치적거림을 주지는 않는다.<br>&nbsp; 화자 ‘나’가 친구들이 사진작가와 더불어 주카이숲으로 가는 상상을 하는 분량, 그러니까 ‘나’의 상상이 만만치 않다. H와 사진작가가 번갈아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카이숲을 향해 가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차를 멈추고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붉은 털을 가진 짐승을 발견한다. 늑대라는 말도 있고 들개, 여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지만 절대로 곰은 아닐 거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nbsp; 드디어 주카이숲에 도착해 깊은 숲 속으로 떠난다. 이때 친구 가운데 하나인 ‘하나’의 눈에 자꾸 붉은 털의 여우가 들어온다. 이게 정말 붉은 여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생각, 상상, 아니면 환각인지는 끝까지 모른다.<br>&nbsp; 그러니까 박솔뫼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을, 그 반대로 되었다면이라는 가정 또는 상상을 해서 마치 그게 진실인 양 스토리를 만들었다.&nbsp; 자신이 만일 부산에 살기로 결정하고, 정말 부산에 살았다면, 이라는 가정/상상도 재미있다.&nbsp;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를 아산에 있는 온양관광호텔에서 묵으며 아산시장에 들러 칼국수를 먹고(이 집 진짜로 유명한 집이다. 나는 안 가봤지만), 시장 안의 헌책방에 가서 책 구경한 다음에, 떡볶이, 튀김을 사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 일정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연극연출가 사쿠라이 다이조와 그의 극단인 “야전의 달” 멤버를 만나기 위해 일본 후지노에 갔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카이숲에 가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nbsp; 이렇게 막 헝클어진 구성의 작품을 읽다가 만일 독자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순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척 헷갈리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이게 진짜 박솔뫼의 매력이다.<br>&nbsp; 일본 후지노에 가면서 ‘나’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간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쓴 &lt;티보가의 사람들 1&gt;. 이 작품의 1권을 우리는 흔히 &lt;회색 노트&gt;라고 하고, 이 1권만 번역해 단행본으로 나온 것도 상당히 많다. 뒤 가르의 모든 작품이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어 번역물이 많다. 그러나 만일 &lt;티보가의 사람들&gt;을 읽으려면 1부만 읽고 치우지 말고 5권까지 다 독파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nbsp; 그런데 이 작품 &lt;우리의 사람들&gt;에서 &lt;티보가의 사람들 1&gt;이 어떤 스토리와 연결이 되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가져가서 다 읽지 못했으며, 작중 주인공 자크의 형 앙투안느(전편을 읽으면 당연히 자크 못지 않은 주인공이다. &lt;회색 노트&gt;에 국한하면 “주인공의 형”이 맞다)이 티보의 친구 다니엘의 어머니 테레즈 혹은 퐁타넹 부인에게 호감을 갖는 장면을 특히 강조한다.&nbsp; &lt;화색 노트&gt;를 읽는 독자들은 흔히 자크의 청소년기/사춘기의 열정과 방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여간 박솔뫼가 특이하기는 하다. 이 &lt;티보가의 사람들 1&gt;은 뒤에 붙은 다른 단편에서 &lt;회색 노트&gt;로 다시 등장한다.&nbsp; 내가 &lt;티보가의 사람들&gt;을 좋아해서 길게 썼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박솔뫼는 유난히 다른 작품과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그것과 연결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탐색하고 자기 주장을 한다. 이건 내가 전에 읽은 책에 국한해 말해 《겨울의 눈빛》의 한 단편에서 고리 원자로 사건에 관한 부산주민들의 불안을 묘사하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확실히 이런 모습은 내가 좋아했던 박솔뫼의 다분히 포스트모던한 초기 작품과 다르다. 즉 박솔뫼의 작품이 변하고 있다는 뜻. 그런데, 그런 작품은 다른 작가도 쓸 수 있고, 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이의 &lt;을&gt;과 《사랑하는 개》, 특히 《사랑하는 개》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기다리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6/cover150/89364383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60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거꾸로 선 대하소설 - [일광유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8013</link><pubDate>Tue, 07 Jul 2026 0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8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7457&TPaperId=17378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10/30/coveroff/89544474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7457&TPaperId=17378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광유년</a><br/>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08월<br/></td></tr></table><br/>.&nbsp; 열두 번째 옌롄커. 이제 물리기 시작한다.&nbsp; &lt;일광유년&gt;의 무대는 옌롄커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바러우 산맥의 깊숙한 산골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옌선생의 소설 속 시간과 장소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라기보다 무대가 되는 마을의 촌민들도 어째 비슷하다.&nbsp; &lt;레닌의 키스&gt;는 촌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 장애인. &lt;딩씨 마을의 꿈&gt; 마을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주사바늘을 사용해 매혈을 하는 바람에 거진 에이즈 환자, &lt;해가 죽던 날&gt;에서는 집단 몽유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lt;일광유년&gt;은? 주민들이 오랜 세월 물속 불소함량이 규정보다 17배 이상 높은 물을 마셔서 40세 생일 이전에 목구멍 막힘 현상이 발생해 조기 사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도 근대 중국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을 옌롄커가 바러우 산맥 속 가상 마을 산싱촌에 적용했던 거 같다.&nbsp; &lt;레닌의 키스&gt;, &lt;직렬지&gt;, &lt;사서&gt;는 1950년대의 극심한 한발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lt;일광유년&gt;에서 산골마을 산싱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시작한 전대미문의 한발을 극복하는 일과 주민들의 수명을 마흔 이상, 쉰, 예순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다.&nbsp; 작품의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lt;물처럼 단단하게&gt;의 가오아이쥔, &lt;작렬지&gt; 밍량, &lt;사서&gt;의 주인공 아이, &lt;레닌의 키스&gt;는 류잉췌. 이들 모두 출세 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이라면 눈이 뒤집힌다. &lt;일광유년&gt;의 쓰마란(司馬藍)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司馬小小)를 필두로 역대 산싱촌의 촌장들은 자신이 촌장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쇼를 다 한다. 쓰마란은 이럴 적부터 사랑해마지않던 연인 란쓰스 대신 현직 촌장의 비쩍 마르고 못생긴 딸 두주추이와 혼인한다.&nbsp; 그러니까 옌롄커의 바러우 산맥 속 작은 산골마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의 특징이 &lt;일광유년&gt;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인데, 옌렌커 소설 읽기에 열심이었던 독자는 바로 그것 때문에 &lt;일광유년&gt;이 중국 근현대사의 궁상스러움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읽혔다는 말씀.&nbsp; 또 있다. 옌롄커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작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거의 대부분, 예컨대 찬쉐 같은 골 아픈 포스트모더니스트와 츠쯔젠처럼 서정적 여성 작가들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소재와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한지, 내가 지금 옌롄커를 읽고 있는지, 류전윈인지, 또는 거페이나 위화, 쑤퉁인지 막 헷갈리는 거였다. 당연히 건국 이후 기근과 문화혁명을 소년기에 거친 영향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국 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인기있는 작품 좀 읽었다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제 물린다. 그리하여 젊은 중국 작가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관과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며, 옌롄커 시절의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필력을 보이고 있어 나름 부러웠다.&nbsp; &lt;일광유년&gt;은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1년, 1년이 뭐야, 한 2~3년 담고 있다가, 그래도 옌 선생인데 싶어 읽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옌롄커 소설의 종합선물세트인 줄은 몰랐고, 960쪽에 달하는 속칭 벽돌책이라 어느 날인지 모르게 보름에 한 번 희망도서가 쏟아져 틈새 독서로는 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후감 써 놓은 것도 많아 이 책을 비롯해 벽돌 또는 두 권짜리 장편도 읽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문제는 술이다. 술을 덜 마시니까 시간이 남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책만 파게 된다. 아무래도 꾸준하게 알코올을 들이켜야 책 읽는 것도 적당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nbsp; 이거 뭐야, 아직 작품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서론이 이렇게 길었다고? 좋은 얘기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시작해보자.<br>&nbsp; 역시 바러우산맥 속 깊숙하게 자리한 인구 2백명가량의 작은 마을 산싱촌. 우리말로 하면 삼성촌(三姓村)이다. 란, 두, 쓰마(藍, 杜, 司馬) 이렇게 세 성씨로 구성된 씨족마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촌장이 두과이즈. 이후 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로 이어진다. 즉, 두, 쓰마, 란 씨 집안에서 돌아가며 촌장을 맡았는데, 란바이수이 다음 촌장이 책의 주인공 쓰마란이다. 두씨 집안은 쓰마란의 윗대 두옌이 별 볼일 없지만 촌에서 기중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 촌의 상급 단위인 현의 주방장으로 진출해 이른바 공직에 오른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현과 산싱촌 사이의 통신원 역할도 하게 되어 촌 사람 입장에서는 촌장에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권세를 틀어쥐기 시작해, 그의 아들 두바이에게 통신원 자리를 물려주어 굳이 촌장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nbsp; 앞에서 말했듯이 상신촌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는 기근 탈출과 주민들을 마흔 살 너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nbsp; 최초의 처방은 두과이즈 촌장 시절에 쓰마샤오샤오가 얻어온다. 지나가는 길에 명 짧은 산싱촌에 거쳐 간 꼬부랑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그렇게 늙게까지 산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옛이야기로만 듣던 흰 수염의 산신령을 닮은 쪼글쪼글한 노인을 처음 보는 거라 몽땅 몰려나가 구경을 하고, 한 아이 쓰마란이 동네로 뛰어가 아버지한테 이를 전했다. 쓰마샤오샤오가 곧바로 노인을 쫓아가서 묻기를, “노인장은 어떻게 이리 오래 사십니까?” 흰 수염의 노인이 답하기를 “잘은 모르지만 집안 대대로 유채꽃을 키워 유채 나물, 잎, 유채기름을 늘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오.”&nbsp; 쓰마샤오샤오가 이 말을 촌장 두과이즈한테 전해, 유채꽃 심기를 권유했지만 두존장의 나이 벌써 서른여덟, 얼마 가지 않아 꼴딱, 죽어버린다.<br>&nbsp;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도 촌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과이즈의 딸과 혼인한 쓰마샤오샤오는 촌장이 되자마자 유채 심기를 독려했다. 음식이 약이고 독이다. 유채 열매와 기름을 먹기만 하면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은 물론이고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들판 가득 유채를 심게 했다.&nbsp; 그러나 몇 년 후, 거대하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바러우 산맥 일대는 물론이고 산둥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주식인 옥수수는 물론이고 유채까지 몽땅 거덜이 났다.&nbsp; 이때가 두옌의 말에 의하면 갑자년이라는데(p.762) 좀 이상하다. 20세기의 갑자년은 1924년하고 1984년이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허구같다. 중국의 메뚜기 습격으로 시작한 기근이 펄 벅의 &lt;대지&gt; 1부에서 보듯이 1920년대에 확실히 있었지만 &lt;일광유년&gt;의 시대적 배경하고는 맞지 않는다.&nbsp; 하여간 그리하여 유채로 만수무강은 다음으로 하고 당장 생존하는 것이 크고 큰 위협이라, 읽기 참혹한 장면이 마구 등장한다. 어린 아이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이 아이들이 굶어 죽어 까마귀 밥이 되고, 어른들이 까마귀를 잡아 포식을 해 크게 배탈이 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현의 화상병원으로 가 돈 많은 환자에게, 장가든 남자 어른의 허벅지 피부를 도려 파는 것 등등. 질린다.&nbsp; 쓰마샤오샤오는 결국 기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 죽음의 그림자가 덥쳐 서른 후반의 나이로 죽는다.<br>&nbsp; 이어서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는 촌민들의 조기 사망 원인을 땅의 악한 기운으로 자란 곡식으로 보고 400무畝(약 400마지기, 약 8만평)의 계단식 전답을 개간하려 한다. 근데 기근에 살아남은 촌민이 다 합해 백명 조금 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쓰마란의 꾀를 빌어 현의 루주임에게 별의 별 아부와 성접대를 통해 현 주민들을 대거 투입해 2백무 정도의 계단식 전답을 만들기는 한다.&nbsp; 그러나 개간한 땅에 심은 곡식을 먹어도 주민들은 여전히 마흔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 란 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감한다.<br>&nbsp; 마지막 촌장이 주인공 쓰마란.&nbsp; 쓰마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곡식이 아니면 물이다. 물을 갈아 마시면 마흔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믿었다.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쓰마란 촌장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럴듯하다.&nbsp;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쓰마 촌장은 산싱촌 남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자들을 모아 허벅지 피부를 팔게 했더니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도시 구경을 한 남자들은 촌의 수로 공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해 촌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 셋짜리 기와집을 올려버린다.&nbsp; 이에 낙담해 세월을 죽이다가, 서른아홉 살이 되어 곧 죽을 처지에 달했을 때, 다시 주민들을 소집해 인정사정없이 수로 공사를 재개한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첫사랑 란쓰스에게 땅에 고개를 박으며 부탁한다. 도시에 가서 인육장사를 해달라고. 인육장사? 매춘을 말한다. 이 장면도 옌롄커 세대의 인기있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해 질리는 건 마찬가지. 하여간 쓰스는 도시로 진출,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어 맹렬하게 몸을 팔고, 에초 자기와 약혼했던 촌장에게 돈을 보내 소규모 운하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폭탄 같은 것을 살 수 있게 한다.&nbsp; 가진 고생과 역경과 주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촌장 쓰마란의 나이 서른아홉살도 막바지에 이른 날, 드디어 수로 공사를 완공, 링인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떻게 됐을까? 안 알려드립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10/30/cover150/89544474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710309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비극도 청명하고 경쾌하게 파박거려 - [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6175</link><pubDate>Mon, 06 Jul 2026 05: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6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376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376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a><br/>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지도로 보면 파리 중심가에서 오른쪽 마른 주의 르페뢰쉬르마른에서 1972년에 태어난 편집자 겸 소설가. 2000년에 데뷔했다니 연륜이 짧지 않다. 문학상도 숱하게 받았고 특히 《한낮의 불운》으로 2024년 공쿠르 단편소설상을 받아 상금 10유로를 챙겼다.&nbsp; 단편소설 여덟 개를 실은 책. 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쿠르-단편소설상을 받을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치하고 치밀한 문장이나 특정한 주제를 던지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로 비극인데 그리 큰 비극도 아니고, 비극마저 경쾌하다.<br>&nbsp;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lt;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gt;을 보자. 원래 이름은 오귀스트 팔랑캥.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장거리 항해하는 선장, 스스로 자기를 선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장기 노선 파일럿이라 한 걸로 봐서, 그리고 오귀스트야말로 훗날 장거리 노선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다고 한 걸로 봐서, 선장은 아니고 그나마 중요한 뱃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한 번 항해를 나갔다하면 몇 달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느라 집을 비웠고, 이런 남편을 견디고 사는 여자도 그리 많지 않은 법이라서,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나라 잠비아로 날라버렸다. 그러면서 오귀스트를 데려갔느냐? 아니다. 그래 오귀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세계만방의 많은 도시에 있는 숱한 학교를 1년 이상 머문 적 없이 하여간 뭉개고 다녔다. 그래서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고착되어 오직 하나 큰 관심을 둔 건, 사물의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늘 작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별의 별 것을 다 녹음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nbsp; 장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오귀스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단편소설이라 그게 어떤 식인지는 말해드리지 않는다. 하여간 그랬고, 성인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장사 지냈으며, 이제, 여태 잠비아에서 산파학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아들 오귀스트가 열여덟 살, 성인이 된 만큼, 다시는 잠비아에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돈을 좀 보내주긴 했다. 조금이 아니라 적지 않은 현금을.&nbsp; 아버지가 가히 우화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음향기사 국가고시를 쳤다. 근데 떨어졌다. 우연히 오귀스트 팔랑캥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어 사실은 우리의 주인공이 합격했건만 합격처리가 이름 같은 작자한테 넘어가 이를 올바르게 돌려놓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그렇게 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우울증 비슷한 것이 도져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 등산객들과 술집에서 한 잔 하다, 불운의 여신은 결코 오귀스트를 배신하지 않아서, 잔뜩 술이 취해 오줌을 누기 위해 밖에 나가 묘지의 비석에다 몸을 기댄 순간, 묘석이 넘어지면서 오귀스트의 발가락을 짜부라뜨려 이 가운데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하여간 가지가지로 잘 안 되는 인간이다.&nbsp; 아버지 역시 주식과 채권을 약간 남겨주었다. 근데 아버지가 게을러 팔지 않았던 것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지금은 결코 작지 않은 돈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 돈과 어머니가 보내준 아프리카 돈을 합해 자신의 음향 스튜디오를 하나 꾸미려 마음먹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동산업체에서 가장 양심적인 중개인인 에바 코파. 딸과 살고 있는 돌아온 싱글이며 오귀스트보다 한 예닐곱 살 정도 많다. 에바가 오귀스트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한 섬 같은, 그럴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소개했다. 에바는 별로 돈이 많지 않다. 딸도 키워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적 부족으로 늘 쫑코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를 탁 보니까 에바 눈에 짠하게 보인다. 오귀스트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집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왜 에바 코파가 계약서 내밀기를 머뭇거릴까, 좀 의아할 정도.&nbsp; 에바가 마침내 표준 계약서를 내밀고 내일 만나서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한다.&nbsp; 우리의 오귀스트는 결국 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자기가 집을 본 날이 하필이면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음을, 원래대로라면 2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가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소음에 진저리를 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nbsp; 그러나 세상이 늘 그런 거라고 여기지 말자.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nbsp; “에바와 오귀스트도 장차 이 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몇 년 후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꽃가지 무늬가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br>&nbsp; 웬일로 단편소설의 결말을 다 알려주느냐고? 이유가 있지. 다음 순서의 단편 &lt;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gt;의 주인공이 이번에 에바 코파다. 운전면허 없이 사는 파리 여성. 그래 지하철 파업의 와중에, 지하철 파업인 줄 알았더니 이게 총파업이라서 버스 운전수들도 파업을 하는 바람에 극히 적은 인력의 대체근무자들이 평소에 비하면 아주, 아주 드문 운행 간격으로 운행하는 만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타고 집에 가는 에바 코파. 아직 앞에 실린 단편의 결말부처럼 꽃가지 무늬의 거실 소파에 앉아 오귀스트와 손을 잡고 무드까지 잡을 시절은 아니라서,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다른 승객의 가슴팍에 코를 문대야 한다.&nbsp; 어릴 적에는 포뮬러 원 경기장에서 깃발을 흔드는 레이싱 걸이나 풍선에 바람을 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결코 무대에 올리지 못할 희곡을 쓰는 덜 떨어진 극작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그와 헤어진 다음에 한 푼도 딸의 양육비도 못 받아 부동산 중개일을 해야 하는 처지. 원래는 술을 마시지 않던 에바는 남자를 따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낮에도 한 잔씩 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오전에도 마셨다. 신의 가호가 있어 남자와 헤어진 다음에 에바는 그 순간부터 술을 딱, 끊었다. 장하다, 에바.&nbsp; 이렇게 시작해, 더 어린 과거에 고사리를 연구하던 아버지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이 나오다가 드디어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척, 알겠지? 다음 순서에 실릴 작품의 주인공이 에바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하여튼 딸이 공부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는 것을 이미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알아챘다. 그래도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딸이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딸 스스로 자기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기만 하면 온갖 잡다하기만 했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 제법 맛있다는 걸 알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요리 특성화 학교, 그것도 파리에서 제일 좋으니까 세계에서도 굴지의 요리학교라고 알려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nbsp; 딸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자기는 마르그리트가 싫다고 ‘보브’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싫지 않거나 관심 없는 눈치다. 하다못해 아이의 빌어먹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리트건 보브건 간에 딸이 실습실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상급 남학생이 성추행 같은 쪽이 아니라, 도무지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 버릇을 고친다는 핑계로 동선, 즉 보브의 길을 막기도 하고 뭐 그랬는데, 이 보브가 참다 못해 귀싸대기를 날려, 그만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nbsp; 허, 참. 오귀스트도 그렇고 에바도 그렇고 어떻게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대신 뇌진탕이냐는 말이지.&nbsp;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책. 크게 바라지 않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주목할 것은 이야기 속 삶의 우중충함이 신록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 햇살처럼 파박거린다는 점. 다 제쳐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150/k2021378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4921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영국인은 언제나 정의로워 - [디미트리오스의 가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1068</link><pubDate>Fri, 03 Jul 2026 04: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10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483&TPaperId=173710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16/43/coveroff/89329124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483&TPaperId=173710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디미트리오스의 가면</a><br/>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03월<br/></td></tr></table><br/>.&nbsp; 1939년은 세계사가 한 번 휘까닥 뒤집힌 해이다. 원조 스파이물 작가 에릭 앰블러한테도 아직 전쟁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자기 인생에 획기적 일이 연달아 터졌으니 그중 하나가 이 작품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출간한 것이고, 둘째가 앞으로 19년을 부부로 살 여인과 첫번째 결혼을 했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가 몇 주 전에 독후감을 쓴 &lt;공포로의 여행&gt;을 탈고했다는 거였다. 왜 첫째가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이냐 하면, 이 제목은 영국에서 출간한 책의 제목이고, 미국에서는 &lt;디미트리오스의 관coffin&gt;인데, 이게 5년 후, 앰블러의 작품 가운데 세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해 앰블러는 남은 세월동안 적어도 먹고사니즘에 관한 한은 걱정 1도 없이 그저 열나 스파이 소설만 쓰기만 하면 되게 해주었다는 거였다.&nbsp; 우리나라에 앰블러의 작품 단행본이 네 권 나왔는데 &lt;공포로의 여행&gt;을 재미있게 읽어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읽은 지금, 이 정도면 앰블러는 그만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마침 내가 사는 도시의 모든 도서관에도 이 두 권 말고 다른 앰블러의 책이 없다.&nbsp; 전에 읽은 &lt;공포로의 여행&gt;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1939년 작품이니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집필한 작품. 아직 독일이 그렇게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를 악마 같은 체제인 줄 모르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전쟁이 터지면 틀림없이 그 동네에서 먼저 화약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리라는 건 거의 확실하게 예상했을 터. 그래 &lt;공포로의 여행&gt;에선 독일에서 파견한 악당이 독일의 스파이였으나,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의 주인공 디미트리오스는 스파이라기 보다 한 시절 스파이에 고용되어 동유럽(유고슬라비아) 고급 정치가에 대한 테러 같은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냥 악당이라고 봐야겠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1939년에 출간했으면 작품은 1938년 정도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이 책은 스파이 소설이라기보다 그냥 추리 소설이다.<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찰스 래티머. 영국의 작은 대학 정치경제학과 조교수이며 35세에 세 권의 전공 책을 출간한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쌓던 중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추리소설을 한 번 써볼까 싶어 &lt;피에 젖은 삽&gt;을 탈고해 출판사에 보냈더니, 에그머니, 이게 대박, 이어서 쓴 세 권의 책이 연달아 히트를 치는 바람에, 아하, 이게 돈이 되네, 싶어 그길로 교수 및 학자의 길을 때려치우고 다섯 번째 책의 탈고를 위하여 아테네로 가 다음해에 탈고했다. 아테네의 물이 맞지 않았는지, 글을 쓰느라 과로를 해서 그랬는지, 무엇보다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 분명하게 좀 아팠던 몸을 회복하기 위하여 증기선을 타고 더 남쪽에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로 갔다.&nbsp; 이렇게 작품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한다.&nbsp; 작품 속에는 무수하게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독자는 이 많고 많은 출연진에 과연 누가 끝까지 작품 속에 등장할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아쉽게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읽는 게 좀 피곤하다. 옛 왕족의 작은 궁전을 사 거기서 살며 시도때도 없이 파티를 즐기는 차베스 부인의 2박3일 파티에 초청받아 간 래티머. 그가 여기서 절대 정체를 알 수 없는 터키의 베후실력자이며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인 하키 대령을 만난다. 하키 대령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후속작 &lt;공포로의 여행&gt;에도 출연해 주인공이자 대포 엔지니어 그레이엄에게 정보를 주고 지원도 해주는 인물이어서 눈에 익다. &lt;… 여행&gt;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령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심지어 직접 플롯을 짜둔 노트도 있어서 그걸 인기 추리소설가가 좀 봐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래티머를 데리고 자기 사무실에 갔다가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희대의 악당으로 ① 터키의 무화과 포장 인부로 일하던 중 살인강도, ②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스탐볼리스키 총리 암살미수, ③ 터키 아드리아노플(현 에디르네)에서 케말 암살 시도, ④ 파리에서 마약 판매조직 결성 및 운영, 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크로티아인 살해 등의 화려한 전력을 갖춘 자다.&nbsp; 그런데, 날도 참 잘 맟추지. 이날을 딱 골라서 문제의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시신이 보스포루스 바다에 떠 있는 것을 지나던 어선이 발견해 신고했던 거다. 그러면 이미 디미트리오스의 상황은 끝난 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죽으면 그에 대한 모든 혐의와 수배와 기소 같은 건 종치는 법이니까. 하지만 하키 대령은 희대의 악당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처지. 자기가 그를 담당하는 경찰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파일을 보관하던 막후 실력자로 그의 시신을 직접 한 번 봐야 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려? 여기서 래티머가 하키 대령을 따라 디미트리오스의 시체 구경을 하지 않으면 소설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아는 래티머는 바득바득 대령을 좇아 시체공시소로 가 죽은 사람을 구경한다.&nbsp; 누구도 시신의 눈을 감겨주지도 않았고, 입도 조금 벌리고 있는 시신은 두툼한 입술과 주름진 처진 뺨을 지녔으며 외관만 가지고는 얼굴 뒤의 영혼을 판단할 수 없었다. 칼로 옆구리를 심각하게 찔려 죽었으며 후줄근한 그리스제 양복 속에 디미트리오스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nbsp; 훗. 슬쩍 흘러나오는 웃음.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하키 대령이 양복 속에서 그의 신분증이 나왔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 이 시체가 디미트리오스라고 단정하는 게 우습다. 대령이 래티머한테 보여준 파일에는 굉장히 흐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사진 한 장만 들어 있을 뿐인데 신분증이라는 종이 한 장 보고 모든 사건을 종결한다고? 하긴 뭐 90여 년 전에 쓴 추리소설이니까.&nbsp;&nbsp; 그럼 문제의 디미트리오스는 언제 나오느냐고? 이 책이 모두 15장으로 되어 있는데 13장의 마지막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당연히 전혀 다른 외모, 무화과 포장 인부하고는 완벽하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손에 모자를 들고, 세련된 검은색 프랑스 옷을 입고, 윤기 흐르는 흰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으로 꼿꼿이 서 있는 고결한 인간의 모습”(p.344)으로.<br>&nbsp;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럼 작가 찰스 래티머는 왜 이미 죽은, 죽었다고 완전하게 인식한 디미트리오스의 지나간 흔적을 찾게 되었을까? 그의 직업은 추리소설 작가. 하지만 소설은 완벽하게 작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 실제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흉악범죄와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걸 번히 아는 래티머는 이번에 자신이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탐정이 되어, 이미 죽었으니까 위험이 별로 없는 악당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볼 생각을 한다.&nbsp; 근데 이것도 좀 어이가 없는 것이, 래티머는 다섯번째 추리소설을 탈고하기 바로 직전, 이걸 가까운 시간 안에 완성하여 런던의 출판사로 보내야 한다. 유명 작가라도 웬만하면 출판사가 원한 마감 시한은 맞춰주어야 하는 법이라서. 다음으로,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이라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스미르나, 소피아, 아드리아노플 등을 증기선을 타고 다니려면, 그것도 1등실만 써야 가오가 올라가는 위대한 영국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해야 할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래티머가 가고 싶은 곳에는 자신이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따라서 첫번째 방문지인 스미르나에 무턱대고 도착한 래티머는 현지에서 &lt;공포로의 여행&gt;처럼 러시아혁명 때문에 터키로 집단 망명한 백군 러시아인 코페이킨과 마찬가지로 백계 러시아인 출신 통역사 표도르 미시킨에 거의 완전히 의존한다. 다음 행선지인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는 프랑스 신문사 소속인 그리스 사람 마루카키스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추천장 한 장.&nbsp; 여기에 한 명 추가. 스미르나에서 소피아까지 가는 야간 침대열차에서 만난, 아마도 폴란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적불명인 50대 볼품없는 늙은이 피터스. 이이가 등장하자 나는 조금 긴장했다. 혹시 이 사람이 디미트리오스가 아닐까? 정답은 그의 모습과 연락처를 알고 있는 예전 디미트리오스의 수하. 디미트리오스가 파리에서 크게 마약 장사를 하고 있을 때, 터키에서 대량의 마약을 관에 실어 들여온 인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이 &lt;디미트리오스의 관&gt;이 된 것.&nbsp; 이제 할 말을 거의 다 했다. 조금 더 하면 틀림없이 스포일러가 될 것.&nbsp; 등장인물이 많다. 그리고 숱하게 가명을 쓴다. 인물마다 하여간 무진장 스토리가 많다. 작품 전개에 별로 관계가 없을 듯해도 할 말은 다 하고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읽다가 막 신경질날 때가 많다. 그걸 참고 읽을 만하지도 않다. 왜 이 책이 영미 독자한테 인기를 끌었을까? 이게 다 의심스러울 정도.&nbsp; 독자서평에 좋은 평가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읽기에 그랬다는 말이니 허접한 독후감 하나 달랑 읽고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1도 없으리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16/43/cover150/89329124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616435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름다운 아가씨 벨라 돈나 - [아트로파 벨라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9242</link><pubDate>Thu, 02 Jul 2026 04: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92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82X&TPaperId=173692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4/coveroff/895759082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82X&TPaperId=173692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트로파 벨라돈나</a><br/>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박민수.김은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09월<br/></td></tr></table><br/>.&nbsp; 에르펜베크는 서늘하다. 한겨울 산길을 혼자 차를 운전해 간다. 이리저리 굽이길이 많아 속도를 내는 건 자살행위와 비슷하다. 짧은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연속되더니 이번에는 한참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했더니 그 자리가 곧바로 내리막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달이 훤했던 것 같지만 숲이 깊어 달빛이 닿지 않아 상향등을 켜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갑작스러운 회전 길. 그나마 완만한 우회전이라 그저 가던 대로 간다. 그러다 도로 오른쪽에 허연 물체가, 흰 옷을 입은 여성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사납게 와락 달려들 것 같다. 얼른 속도를 내 지나치며 슬쩍 보니까, 비닐 하우스에서 찢어져 나온 비닐의 제법 큰 조각이었다. 급하게 물체를, 흰 옷 입은 여성(처럼 보였던 것)을 피하려다 하마터면 작지 않은 사고를 낼 뻔했다.&nbsp; 이런 경험은 한 번씩 해봤을 터. 이 책을 읽은 감상하고 비슷하다. 그렇게 서늘하다.<br>&nbsp; 열 개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짧은 해설까지 150쪽의 부담없는 분량이지만 절판이다. 도서관에도 없다. 지난 달에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lt;모든 저녁이 저물 때&gt;를 하도 인상 깊게 읽어 그날로 헌책방 뒤져 2년 만에 내돈내산했다.&nbsp; 이이의 이름 Jenny Erpenbeck를 우리말로 “제니 에르펜베크”라고 썼으면 지금 절판된 구간이고, 신간은 “예니 에르펜베크”라 쓴다. 안 그러겠지만 혹시 헛갈릴까봐 짚고 간다.&nbsp; 이 책으로 이제 예니 에르펜베크의 우리말 번역 단행본은 다 읽는다. 나머지 작품들도 빨리 번역해 나왔으면 좋겠다.<br>&nbsp; 표제작 &lt;아트로파 벨라돈나&gt;는 식물의 학명이다.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 벨라돈나belladonna라고 부른다. 가지과 식물이라 가지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왜 “아름다운 여인”이냐 하면 열매에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독소가 있어서 열매를 먹으면 공동이 확장되어 눈이 크게 보여서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느낀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더 많이 먹으면 위험하고, 그래도 더 많이, 더 많이 꾸역꾸역 먹으면 다른 모든 음식물처럼 배 터져 죽는다.&nbsp; 나는 오빠가 좋다. 오빠?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아줌마의 아들이다. 이른바 엄친아. 생일이 조금 빨라 편의상 오빠라 한다. 그냥 ‘형제’ 개념이다. Bruder. 어려서부터 서로 알고 살았다. 온갖 스토리가 다 있다. 한 싱크대에서 한 엄마(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두 아이를 목욕시킨 것부터 시작해 늘 같이 놀고, 밥 먹고,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아주, 아주 가끔 다투었고,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다. 그러면서 오빠가 진짜 형제Bruder 같은 순간도 있었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남매사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야릇한 페로몬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모르는.&nbsp; 아이들이 점점 커져 이제 하이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캠핑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와 엄마의 친구 아줌마는 나와 오빠, 단 둘이서 국경 넘어 캠핑 가는 것을 허락했다. 이제는 성접촉의 권리를 인정한 모양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국경 역에서 만나기로 한 둘. 가보니 오빠는 벌써 나와 있다. 둘은 국경을 넘었다. 캠핑장에 도착했고, 텐트를 치고, 숲에 밤이 와 잠을 잔다는 명목으로 텐트 안에 들어와 각자 자기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nbsp; 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반 아이들의 경험담을 충분하게 들어서 구체적인 순서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두 사람이 그런 절차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건 직접 해봐야 아는 걸까? 하여간 명목상 둘은 잠을 자는 상태를 시작했다. 결코 잠들지 않은 잠자는 상황. 시간이 갈수록 잠은 오히려 저 바깥 쪽으로 물러가기만 한다. 그러나 오빠와 나 사이의 아주 좁은 공간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꺼운 장벽이 쌓이는 것 같다. 오빠 역시 숨소리만 간간히 낼 뿐 깨어 있다는 조금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빠도 내가 말짱한 정신으로 깨 있다고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nbsp; 그렇게 날이 밝았다. 흔히들 말하는대로 손만 잡고 잔 것도 아니고, 손도 안 잡고 그냥 잤다. 그런데 오빠가 이상하다. 탁, 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우리한테는 휴대전화도 없다. 그래 다른 캠프에 가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구조요청을 했고, 엄마의 친구 아줌마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잘 하면 딱지를 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나는 여전히 오빠를 사랑한다.&nbsp; 몇 주가 지나고, 엄마는 도무지 언짢은 소식을 들려준다. 오빠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거다. 말도 안 돼. 근데 말이 되는 것 같다. 들은 말로 찢어진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건만 그렇게도 예쁘단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속살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모르긴해도 포스가 남다른가 보다. 엄마 심부름으로 엄마 친구 아줌마 집에 갔을 때, 오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빠 방에는 오빠 말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오빠의 애인도 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을 때는 속상했다.&nbsp; 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입구에 엄마 친구 아줌마와 오빠, 오빠의 애인이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오빠의 애인이 참 예뻤다. 나도 못난 축은 아니지만 오빠의 애인하고는 비교하기 민망하다. 엄마는 오빠네 가족을 집으로 불러 저녁 한 끼를 먹기로 했다. 당연히 오빠의 애인도 오겠지.&nbsp; 그녀도 왔다. 우리집은 숲에 면했고, 일정 구간은 우리 땅이다.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기 전에 숲으로 들어갔다. 야생 블랙베리와 사과를 따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잘 먹는다. 살구도 따 주었더니 역시 잘 먹고 씨앗만 툭 뱉는다. 나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벨라돈나를 하나 따 주고 먹어보라 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먹었다. 분명히 먹었다. 나는 벨라돈나를 따고, 따고, 또 따서 치마 가득 건네준다. 다 먹으라고. 다 처먹고 죽어버리라고.<br>&nbsp; &lt;아트로파 벨라돈나&gt;가 제일 재미있지는 않다. 독일 여성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참 매력적으로 쓴다. 일찍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유디트 헤르만도 있다. 예니 에르펜베크도 헤르만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전혀 다른 내용의 단편을 쓴다.&nbsp; 근데 아쉬운 건, 이 책의 역자가 두 명이라는 거. 박민수와 김은정.&nbsp; 누가 감히 이들의 독일어 실력을 입에 올리랴.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작품이 다 균일하게, 즉 비슷한 품질로 읽히지 않는다. &lt;A&gt;는 원래 작가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의 번역문, 즉 우리말이 그런지 여간해 읽히지 않아 나로 하여금 버벅거리게 만든다. &lt;B&gt;는 그렇지 않고 매끄럽다. 분명히 에르펜베크 또는 두 명의 역자, 아니면 독자, 이렇게 네 명 가운데 한 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까? 어쨌거나 참 맵씨있는 작품 모두를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쉽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내 탓이겠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4/cover150/895759082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842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죽음과 변비의 소년기 - [그날 저녁의 불편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7392</link><pubDate>Wed, 01 Jul 2026 0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73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9992&TPaperId=173673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72/64/coveroff/89349799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9992&TPaperId=17367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날 저녁의 불편함</a><br/>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br/></td></tr></table><br/>.&nbsp; 1991년생 네덜란드 작가의 데뷔작. 이이는 데뷔작으로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남부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독실한(것처럼 보이는) 개혁파 개신교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네덜란드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 했다가 시,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해 중도에 때려 치웠다고 위키피디아-영어판에 나온다. 소년 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져 논바이너리를 선언했단다.&nbsp; 그날 저녁의 불편함? 나는 이 책을 읽는 게 불편했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이 좀 우울하다.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는 화가 고흐의 초기작품에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게 많은데 &lt;감자를 먹는 사람들&gt; 같이 좀 음울한 분위기의 색상과 피사체, 그게 사람이 됐든 물체가 됐든 간에 하여간 우울하다. 이 책은 화자인 주인공 ‘나’ 야스 뮐데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바로 전 시기까지의 소년기의 한 시절, 2~3년 간을 시간적 공간으로 하고 있으나, 야스가 처절하게 앓고 있는 변비처럼 답답하고, 뭔가 마음에 걸려 묵지근하고, 간혹 콱콱 얹힌다. 그러니 데뷔작이면서 다른 문학상도 아니고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덥석 미끼 물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라. 아하, 그러고보니 부커-인터내셔널은 이것처럼 좀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좋아하나비여? 고기 안 먹겠다는 딸 입을 억지로 벌리고 탕수육 한 조각을 쑤셔 넣는 아빠 같은 거.<br>&nbsp; 이야기의 시작은 화자 야스가 열 살 때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벌어진다. 야스는 좀 더딘 아이였다. 학교 담임도 이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린 듯했다. 하긴, 시계보는 법을 익히는 데만 1년이 걸렸으니 사실 야스 본인도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숫자만 나왔다 하면 정신 헷갈리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nbsp; 이 뮐데르가家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 레이네펠트네 가족보다 훨씬 더 진지한 개혁파 개신교 집안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가 권장하는 책은 딱 한 권, 성경 가운데서도 특정 파 판 성경이 유일했다. 당연히 일요일이면 가족 모두 잘 차려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했고, 거의 모든 일상에 성경”말씀”은 인용했다. 이건 가족 모두 마찬가지다.&nbsp; 부모는 순서대로 아들-아들-딸-딸을 두었는데 각각 맛히스, 오버, 야스, 하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큰오빠 맛히스. 맛히스? 거 참 재미난 이름일세. 이렇게 휙 넘어갔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마티스”를 굳이 “맛히스”라고 우리말로 쓴 거 같다. 역자 ‘아밀’이 좀 재미난 사람이긴 하다. 맛히스. 맛히스. 그것 참.&nbsp; 하여간 맛히스 오빠가 야스를 잘 돌보았던 모양이다. 야스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 구성원이 맛히스 오빠였으니. 큰 키에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농사와 목축을 업으로 하는 집에서 벌써부터 제 몫을 단단히, 단단한 수준을 너머 대단히 단단하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언필칭 집안의 기둥감. 공부도 제법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스케이트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이번에도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시합에 나갈 예정이다. 호수에서 벌어지는 20마일짜리 경주가 출전 종목.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올해 연도인 ‘2000’이 박인 금도금 메달을 준다.&nbsp; 맛히스가 야스한테 말한다. “오늘은 호수 건너편으로 갈 거야. 쉿, 이건 비밀이다.” 하고는 야스만 보면 늘 짓는 다정한 미소.&nbsp; “나도 가고 싶어.”&nbsp; 맛히스가 말한다. “네가 더 크면 데려가줄게.”&nbsp; 이 대화를 읽는 순간, 독자는 짐작한다. 뭔가 큼지막한 게 있겠군. 호수에서. 특히 호수 건너편 쪽에서. 어쨌든 오빠는 야스한테 손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호수로 가고, 이날 손인사의 기억은 두고두고 되풀이해 떠올릴 것이란다. 그것 봐, 내 뭐랬어.<br>&nbsp; 여기서 하나 더.&nbsp; 야스는 토끼를 키운다. 이름도 있는데 뭐 소개할 정도는 아니고, 하여간 자기를 두고 혼자 스케이트를 타러 간 오빠가 좀 밉다. 나한테 허용되는 스케이트 얼음은 축사 뒤편의 좁은 두엄 배수로뿐. 열살 나이가 애매해서 그렇다. 호수로 가기엔 어리고, 두엄 배수로 가기엔 쪽팔리고.&nbsp; 야스의 토끼가 클 만큼 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식탁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대신 올릴 칠면조도 없으니 야스는 불안하다. 내 토끼, 내 토끼. 그래서 하느님한테 기도한다.&nbsp; “하느님, 내 토끼 대신 맛히스 오빠를 데려가시면 안 될깝쇼?”&nbsp; 그래, 소설에서 불길한 소원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법. 맛히스 오빠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압도적인 속도로 추격집단과 까마득한 차이가 날 정도로 선두를 질주했으면, 평소 화물선이 다녀 빙질이 무른 호수 건너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야스의 소원대로 된 거지만 야스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맛히스 오빠는 다음날 찬 시신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옆집 린 아주머니에게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를 좀 없애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했고, 대가로 시장에서 산 바삭바삭한 크리스마스 비스킷 전부와 라이스 푸딩, 아빠가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 그걸 묶은 80미터짜리 실뭉치까지 모두 옆집에 주어버렸다.&nbsp; 야스는 말한다. 이때부터 공허가 시작되었다고. 맛히스 오빠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냄비와 텅 빈 샐러드 통 속에 담긴 채 떠나가버린 이틀 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nbsp; 오크 관에 담긴 오빠를 보며 동생 하나가 속으로 말한다.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다.&nbsp; “자, 이만하면 됐어. 장난 그만 쳐, 오빠.”&nbsp; 청바지와 평소에 제일 좋아했던 스웨터를 입은 채 오크 관 속에 담긴 오빠는 그렇게 묻혔다.<br>&nbsp; 가족의 상실은 남은 자에게 당연히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이 집도 그랬다. 특히 부모에게. 보통 자식을 잃은 부부는 자주 거칠게 싸우고 많은 부부는 이혼을 선택한다. 자식 상실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려 손톱을 세우다가, 갑자기 자기 잘못인 것 같은 진짜 고통의 시간을 서로가 위안해줄 여유가 없어서.&nbsp; 이 가정에는 남은 삼남매가 있어 부모가 갈라서진 못해도 이후 야스-하나가 보기에 일체의 피부 접촉도 없고 부모간 “짝짓기”도 없다.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처럼 보여 날이 갈수록 여위기만 한다. 그리고 주인공 야스와 남은 오빠, 맛히스 오빠하고 비교하면 체격과 힘은 보잘것없지만 성격이 거친 오버 오빠의 주변에 자잘한 죽음이 생긴다. 야스가 열살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nbsp; 오빠가 키우던 기니피그도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여서 냄새가 나기 전까지 오빠 방에 숨겼다가 묻었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간 많은 동물이 죽는다. 이 죽음들에 오버 오빠와 야스가 개입되어 있다.&nbsp; 야스는 지독한 변비로 고생한다. 아빠가 야스를 엎드린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라 하고, 야스의 항문에 초록색 비누 조각을 굵은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네덜란드의 민간요법인 모양이다. 그래도 여간해 똥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여기까지만 하자.&nbsp; 죽음과 배변, 사춘기를 앞둔 시기에 맞게 짝짓기와 2차 성징의 발현 등에 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맛히스 오빠를 상실한 가족을 덮치는데, 어쩌면 이보다 더 엄청난 시련까지 몰려온다.&nbsp; 구제역.&nbsp; 집에서 신경 써야 하는 가장 우선순위. 수백 두에 이르는 소들을 일시에 집단 살처분해야 하는 참담을 당해야 한다. 그렇게 당했다. 오버 오빠는 항의의 표시로 송아지 한 마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버렸다. 그러나 방역원들은 모른 척 소의 머리에 충격총을 쏘고 죽었거나 덜 죽었거나를 가리지 않고 트럭에 싣고 떠났다.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았겠지.&nbsp; 죽음, 죽음,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르고, 또다른 죽음은 대규모 살상을 불렀다.&nbsp; 과하게 우울하다. 죽음과 변비라니.&nbsp; 흠. 이렇게 써야 부커상을 받는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72/64/cover150/89349799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72649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올해 상반기 읽은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link><pubDate>Tue, 30 Jun 2026 05: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guid><description><![CDATA[.<br><br><br>&nbsp; 올해 상반기엔 몸이 한 번 훅 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술을 좀 줄였습니다. 술을 줄였더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요. 덕분에 책을 더 읽게 되더군요.&nbsp;&nbsp; 틀림없이 권여선의 책은 오늘 다 읽을 것이니까, 올해 상반기 까지 모두 142권, 4만8천7백 페이지를 읽게 됩니다. 읽다보니 연초에 마음먹은 대로 두꺼운 책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nbsp;&nbsp; 부러워하지 마세요. 생업이 있잖습니까. 위 표는 생업이 끝나 이제 가진 거라고는 여유밖에 없는 사람의 취미생활 내력일 뿐입니다. 오늘은 또 반 년을 지운 기념으로 술 한 잔 해야겠네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30/pimg_63918394613881046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가족이라는 구체적인 지옥 - [겨우 존재하는 인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693</link><pubDate>Tue, 30 Jun 2026 0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363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off/89984548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363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겨우 존재하는 인간</a><br/>정영문 지음 / &(앤드) / 2024년 07월<br/></td></tr></table><br/>.&nbsp; 정영문은 &lt;어떤 작위의 세계&gt;로 처음 읽었고, 책을 놓자마자 이이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작가. 그래서 2년 후에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을 사 읽었다. 이후 늘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어찌 더 찾지 않았던 이. 1996년에 장편 &lt;겨우 존재하는 인간&gt;으로 등단했다면, 데뷔 때부터 나하고는 인연이 그리 가깝지 않았을 사람이다. 1996년이면 국제통화기금발 외환위기 바로 전, 나라 전체가 국제화, 세계화 광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던 때지만 정작 회사원들은 쥐꼬리 만한 추가근무수당 받으며, 때로는 그것도 없이 간혹 회식 한 번으로 만족한 척하면서, 밤 열 시까지 하는 일도 없으면서 사무실에서 퇴근도 하지 못하고 빌빌거릴 때였는데, 그렇다고 구석에 짱박혀 책을 읽을 수도 없었으니 정영문이라는 앞으로 대단할 작가가 데뷔를 했는지 어땠는지 알 게 뭐람, 하던 시절.&nbsp; 하여간 &lt;어떤 작위의 세계&gt;와 《검은 이야기 사슬》을 읽었으면 운 좋게도 (아직 절판되지 않은) 정영문의 최고 유명작,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상문학상을 받았으면 그냥 유명작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하여간 찾아 읽을 수 있는 유명작은 다 읽은 셈이어서 그랬을까?<br>&nbsp; 이제 이이가 혈기방장하던 스물여덟 살 때 발표한 데뷔작, 장편소설 &lt;겨우 존재하는 인간&gt;을 읽었다. 여태 절판상태로 있다가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은 책인데, 나도 참, 2024년 7월에 출간한 걸 여태 몰랐다.&nbsp; 작품의 화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니’.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의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으니 주인공 ‘나’는 스물여섯에서 일곱 정도의 젊은 사내로 봐도 좋겠다. 남자의 경우 스물여섯에서 일곱이면 대학을 막 졸업해 어디 취직을 했거나, 쉬고 있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갔다 와서 2~3년차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일 터. 그러니 아직 삶에 익숙하다고 보기는 힘들 때였을 것이다.&nbsp; ‘나’의 아버지는 20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 법원에서 (판사가 아니라 법정 서기 신분으로) 평생 일하다 정년퇴직 후 뇌졸중과 치매를 앓고 있고, 어머니는 당시의 어머니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전업주부였고, 지금(1995~96년)은 병자 남편을 수발하는 요양보호사 겸 가정주부이다. 내가 굳이 괄호를 치고 1995년~96년을 강조한 건, 책을 읽는 시각을 지금 기준이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읽어도 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나’의 전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뜻한 바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게 염증이 나고 권태스러워서 학교를 때려치운 후, 그동안 번 돈으로 다세대주택 하나를 전세로 얻었든지, 어차피 오늘 내일 하는 아버지의 돈을 엄마가 뒤로 빼 주어 샀든지, 작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 먹고사니즘은 전적으로 엄마가 보내주는 후원금에 의지한다.&nbsp; 후원금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어머니들처럼 한달에 한두 번 정도 아들 사는 연립주택에 찾아와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 더러운 아들 집구석을 깔끔하게 대청소해주고, 이젠 먹지 않아 안 해오지만 전에는 온갖 반찬거리도 바리바리 싸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아주고는 했다. 당연히 여간해 갈아입지 않아 뻣뻣하게 풀먹인 듯한 팬티 등 속옷 일습도 깨끗하게 빨아 빨래걸이에 널기까지 해주었다.<br>&nbsp; 자식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 부모한테 원인이 있다. ‘나’는 어릴 때 학교 성적이 조금 좋았던 듯하다. 그래서 판사가 아닌 법원서기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법원서기가 아니라 판사 신분의 법원 공무원으로 평생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이면 날마다 김칫국물을 벌컥벌컥 마셨겠지. 하지만 ‘나’는 공부보다 예능쪽, 이를테면 피아노 연주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재능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이 미국의 저 유명한 문필가 커트 보니것의 경구:&nbsp; “부모를 미치게 하고 싶은데 게이가 될 용기가 없다면 예술계로 진출하라!”&nbsp; 이 말 대로 예술을 하기로 결심하려는 것 같아 피아노 레슨을 단칼에 중단시켰으며, 그래서 ‘나’는 이후 살면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게 되었으니, 세상에 남은 건 그저 따분한 일과 지루한 일과, 뭐 둘 다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권태뿐이었다.&nbsp; 그리하여 ‘나’의 비행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을까?&nbsp; ‘나’가 세상에 나온 기념으로 아버지가 직접 심은 등나무 줄기도 제법 튼실해진 ‘나’의 나이 열네 살 때, 아버지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등나무의 밑둥을 잘라버리고 그 위에다 휘발유를 들이부어 등나무를 기어이 말려 죽인 일이 있다. 막 극성의 사춘기를 달리고 있던 ‘나’는 이 의식을 행함으로 사실상 부모와의 끈, 저 예전 탯줄로 이어지기 시작한 지긋지긋한 끈을 딱 잘라버렸을 지도 모른다.<br>&nbsp; 하여간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하고, 평론가 김경수가 쓴 해설에 의하면 잠깐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때려치운 이후에 ‘나’는 도심에 새로 조성된 시립공원의 한쪽 구석의 벤치에 앉아 있다. 6월의 아침.&nbsp;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자의 삶과 권태. 그러나 노숙인으로 대표하는 다른 무위자들과 다른 것은 언제나 엄마가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 크지 않은 연립주택에서 나쁘지 않은 먹을 거리로 배를 채우며, 꾀죄죄하지 않은 의복을 걸치고 산다. 다만 하는 게 없을 뿐. 이때 “하는 게 없다”는 건 다분히 독자 같은 보통의 사람이 보는 시각이요, 겨우 존재하는 사색과 권태와 우울과 절망의 대가인 ‘나’의 눈에는 참 여러가지 현상이 눈에 보인다. ‘나’ 자신부터 그렇지. 여름 아침에 무료하게 따사로운 기분과 평화를 느끼는 기분. 이게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순수한 은총인가 말이지. 근데 한편으로, 굳이 ‘나’한테까지 은총의 빛을 이렇게 아낌없이 쏟아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하는 마음도 든다.&nbsp; 사물은, ‘나’말고 보통의 인간은 찬란하다.&nbsp; 일요일 아침이었던 모양이지? ‘나’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두 여자 아이. 틀림없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존재한다. 가까운 곳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는 비둘기들이 후두염 환자들이 내는 목소리 같은 방자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두렵게 한다. 비둘기는 ‘나’를 두렵게 하는 얼마 안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나’는 지나가는 사람과, 공원에 오기 전에 본 아스팔트 도로 중앙선 근처에서 메마른 피와 엉겨붙은 털뭉치로 존재하는 한 시절 살았던 포유동물에 관해 생각하고, 줄을 맞춰 뭔가를 잔뜩 지고 바쁘게 이동하는 개미떼를 관찰한다. 절반이 잘렸지만 그래도 살겠다고 흙을 향해 기어가 기어이 굴을 파고 들어가는 모습과 파인 굴의 흔적을 오래도록 관찰한다.&nbsp; 이 가운데 제일 지면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거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지는 아닐 것 같은, 거지는 아니겠지만 거지일 수 있을 것 같은, 원숭이를 닮은 남자. 이들의 대화랄까, 관계랄까, 하여간 약하디 약한 연대는 하지 즈음부터 시작해 겨울이 공원을 할퀼 때까지 이어진다.&nbsp; ‘나’는 며칠 전에 본 아스팔트의 털뭉치처럼, 거리로 달려나가 아스팔트 위로 몸을 던져 기어코 몸이 짓물러터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살지만, 자신도 결코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안다.&nbsp; 틱. 방아쇠 당긴 소리. 한 번 이렇게 말했으니 ‘나’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죽이고 싶은 작가의 마음.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니.<br>&nbsp; 어느새 밤이 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료품점에 뭔가 먹거리를 사들고 집에 간다. 옥상. ‘나’는 한번도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갖지 않았다. 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 아니었다. 날아봤자 언젠가는 날개를 접고 다시 하강해야 하는데,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막강한 권태일 것이 분명하니. 그러나 날리고 싶은 건 있다.&nbsp; 엄마가 왔다. 이번에도 먼지가 잔뜩 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그동안 벗어놓기만 했지 한 번도 빨래하지 않은 천 뭉치들을 주워 세탁기에 돌린 다음에 펴 걸고, 베란다에서 유일하게 만났던 C로부터 선물받은 나팔꽃에 물을 준다.&nbsp; ‘나’는 엄마를 뒤에서 꽉 껴안으려 엄마한테 간다.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꽉 껴안아서, 힘껏, 비실비실한 ‘나’가 얼마나 세게 껴안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가능한대로 제일 세게 껴안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번쩍 들어 3층 연립주택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멘트 포장길에 내던지고 싶은 충동.&nbsp; 당신들 때문이다. 당신들이 외아들 하나를 향해 저질렀던 구질구질한 사랑, 상한 음식 같은 사랑, 넝마 같은 사랑. ‘나’를 짓누르며 혐오감에 북받치게 하면서도 어쨌든 참아내게 했던 것. ‘나’의 넋을 빼놓는 질긴 음모와 견딜 수 없는 포만감을 강요하던 것들.&nbsp; 초인종이 울린다. 이 연립주택 3층 꼭대기 집에 찾아올 사람은 단 한 명이다. ‘나’는 문을 열고 말한다.&nbsp; “누구셔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150/89984548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2946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꿈과 꿈꾸는 행위, 그리고 - [노스탈지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1447</link><pubDate>Mon, 29 Jun 2026 0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14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02&TPaperId=17361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96/coveroff/89374648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02&TPaperId=173614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스탈지아</a><br/>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 지음, 한성숙 옮김 / 민음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커르터레스쿠의 소설집 《멜랑콜리아》가 2019년 작품이다. 그걸 먼저 읽고 흥미롭기는 한데 소년/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의 수사가, 그러니까 (청)소년이 쓰는 단어/문장치고 수식이 너무 과해 조금 얹혔었다. 그럼에도 이이의 주인공들이 사물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작가의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기억하기를 잘했지.&nbsp;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480번으로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의 1989년 작품, 작가가 서른세 살 때 &lt;꿈&gt;이라는 제목으로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은 작품이 책방에 나왔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다른 독자들 한테도 《멜랑콜리아》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여러 도서관을 통틀어 내 책상에 놓인 &lt;노스탈지아&gt;. 딱 한 권이다.<br>&nbsp; 아, 이이가 젊은 시절에는 이랬구나.&nbsp; 이게 책을 읽은 첫번째 소감이다. 《멜랑콜리아》도 서로 약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단편을 모은 책이다. &lt;노스탈지아&gt;도 마찬가지. 다섯 편의 개별적인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퉁쳐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멜랑콜리아》와 마찬가지로 소설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그냥 소설책이어서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책. &lt;노스탈지아&gt;도 《멜랑콜리아》처럼 한 권으로 묶어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1989년에 《잠》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발표하여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았는데 잔인한 장면묘사와 아슬아슬한 성적 표현 때문에 검열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가, 1993년에 &lt;노스탈지아&gt;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재출간했다고 작가 연보에 나온다. 그러니까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굳이 분명하기 바란다면 &lt;노스탈지아&gt; 역시 소설집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br>&nbsp; 이 책의 원래 제목이 &lt;잠&gt;. 그래서 다섯 작품 모두 꿈이 나온다. 희망사항을 일컫는 꿈이 아니라, 자면서 뇌활동의 결과로 뭔가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이루어진 유성sound 영상. 그래서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긴 분량인 &lt;REM&gt;의 “REM”이 가리키는 것이 잠잘 때 뇌의 활동이 활발해져 눈알이 빠르게 운동하며 Rapid Eye Movement 꿈을 꾸는 단계를 뜻한다.&nbsp; 현대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가장 기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꿈 이야기하는 것. 그럼에도 커르터레스쿠가 꿈꾸는 행위와 꿈 이야기를 갖고 나타났을 때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꿈도 꿈 꾼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니, 나 같은 범부들이야 수염 허연 조상님이 나와 숫자 여섯 개를 불러주어 혹시 로또라도 맞을까 김칫국물 벌컥벌컥 들이켠 이야기나 하겠지만, 현대 루마니아 문학계의 큰 별이라 일컫는 커르터레스쿠 같은 장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하면 이거야말로 독자가 꿈 해몽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수준의 그 무엇이냐, 그래, 초현실주의적的이고, 보르헤스적이며, 오비디우스적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략난감이며 오리무중이다.&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책 좀 읽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려 하니, 루마니아 검열당국이 지적한 아슬아슬한 성적 묘사가 깜찍하게 재미있어서는 아니고, 도무지 끝간 데 없는 장황한 묘사가 간혹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 놓기는 하지만, 일관된 긴 어둠의 통로와 이어지는 지하의 제법 큰 공간에서 펼치는 큰 구라, 동유럽 작가들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거대한 묵시록적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nbsp; 동유럽, 나아가 전 유럽에 지하 땅굴로만 이어진 특별한 통로가 있어서 저 마드리드부터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베이징까지 도무지 못 가는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없던 건 아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 99번, 두샨 코바체비치가 쓴 &lt;옛날 옛적에 한 나라가 있었지&gt;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그러나 코바체비치의 지하 땅굴은 광범위한 지하망과 생존을 위한 땅굴이었던 반면, 커르터레스쿠는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과거의 죽음과 밀접하니, 지난 금요일에 업로드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 &lt;슬픔의 물리학&gt;에 등장하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의 거처와 비슷하다. 흠. 코바체비치(구 유고슬라비아), 커드러레스쿠(루마니아), 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전부 동유럽 작가. 우연은 아닐 거 같다.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옛 독재시절의 길고 괴로웠던 시간의 터널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다는 내 의견이 조금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긴 하지만.<br>&nbsp; 독후감에서는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앞에 배치해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lt;룰렛 승부사&gt;만 소개하겠다. 분량도 제일 짧다.&nbsp; 룰렛. 도박장에서 스테인레스 금속 구슬이 뱅뱅 뚜르르르 굴러가다가 작은 박스에 쏙 들어가면 번호나 색깔에 돈을 건 숱한 사람들의 탄성과 비명이 터지는 룰렛. 그거 아니다. &lt;룰렛 승부사&gt;의 룰렛은 영화 &lt;디어헌터&gt;, 크리스토퍼 월켄이 베트콩의 포로수용소에서 자기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 그것을 말한다.&nbsp; 화자는 약 60년간 글 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노인. 룰렛 승부사는 그의 친구다. 실존했던 사람이라는데 당연히 허구. 하여간 그 친구 아드리안은 곤충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리고, 지저귀는 새들을 돌로 쳐 죽이는 거친 아이였다가, 발작적 분노의 순간을 겪으며 성적 욕망이 왕성한 청소년을 거쳐, 강간과 강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인 죄수로 악당의 3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전형적인 범죄자였다. 화자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이 아드리안이 점차 악마화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그걸 글, 일종의 보고서로 쓴 것이 &lt;룰렛 승부사&gt;이다. 거친 아드리안은 힘 없는 찌질이 제레누스를 한 번도 때리지 않고 오히려 그런 위기에서 구해주어 특별한 관계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소설가와 범죄자가 제대로는 어울리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nbsp; 제레누스가 쓴 책이 제법 많이 팔려, 팔려도 너무 많이 팔려 이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시절이 왔고, 그래서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어여	쁜 아내 자랑도 할 겸 시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들렀더니, 그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차려놓고 세 명의 사업가와 함께, 의자에 거의 누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멋대로 앉아 있는, 잘 차려 입은 아드리안을 만나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제레누스는 알아차렸다. 내 술고래 범죄자 친구 아드리안과 룰렛 승부사는 동시에 태어난 검은 쌍둥이라는 것을. 독자가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모른다. 검은 쌍둥이. 쌍둥이 자리, 6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 또 나온다는 걸. 이 장면부터 아드리안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승부사라고만 할 예정이라는 것도.<br>&nbsp; 사업가들과 승부사는 ‘나’ 제레누스의 눈이 안 보이게 검은 천으로 가리고 어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간다. 길고 어둡고 지저분한 좁은 통로를 거쳐 나중에 옛 코냑 공장의 작업장이라는 것이 알려질 제법 넓은 지하에는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그저 술통 비슷한 것과 열에서 열다섯 정도의 잘 차려 입은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nbsp; 시간이 좀 흐르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으로 갈아입은 술고래 친구가 등장하고, 이미 관중 또는 돈을 걸 신사 숙녀들한테 검증을 받은 리볼버 권총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총알 하나를 보여준 후견인이 총과 총알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곧바로 탄창에 총알을 넣고 한 바퀴 차르르르 돌린 후에 권총을 승부사에게 건네면, 벌써 통 위에 올라선 승부사는 극도의 공포에 질린 얼굴표정을 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채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꽉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nbsp; “딸깍.”&nbsp;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피와 살점과 뇌수의 흔적이 잔뜩 묻은 회벽에 한 번 더 피와 살점과 뇌수와 뼈조각을 보태면 돈을 건 관중들이 따는 거고, 아니면 승부사와 후견인이 돈을 번다. 생존할 확률은 5/6. 그러면 아무도 여섯 번을 생존할 수 없다. 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아니다. 살 확률은 5/6. 여섯 번 내리 살 확률은 (5/6)^6. 내가 계산해드리지. 33.490%. 여섯 번 방아쇠를 당겨도 살 확률은 1/3이 넘는다. 책에서는 네 번 이상 생존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nbsp; 연이어 생존에 성공해 큰 돈을 번 승부사는 하도 많이 죽음과 직면해 더 이상 실제로 살 마음이 없는지, 이제 스스로 후견인을 겸하면서 마음대로 도박 룰을 정한다. 그리하여 권총 탄창에 실탄 두 발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고, 세 발, 네 발, 다섯 발을 넣고 쏴도, 안 죽는다.&nbsp; 결국 여섯 발을 다 넣을 테니 돈을 걸라고 하는 승부사.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안 죽겠지? 그렇다.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시고 과거 어느때보다 큰 돈을 건 부쿠레슈티의 도박사들.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리볼버를 머리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아이쿠, 부루레슈티에, 그만 다른 곳도 아니고 부쿠레슈티에 큰 지진이 나서 승부사가 딛고 선 통이 흔들, 총이 머리통 위를 살짝 지나가버린다.&nbsp; 왜 안 죽었을까? 세번째 실린 작품 &lt;쌍둥이 자리&gt;에서 (p.269)쌍둥이자리 사람들은 스스로 몰입하고 만족한다는데 이거하고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96/cover150/89374648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496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버림받은, 갇힌, 어둠의 공감각과 시간 - [슬픔의 물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5877</link><pubDate>Fri, 26 Jun 2026 05: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5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355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off/k852137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355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픔의 물리학</a><br/>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br>&nbsp; 나는 1913년 8월 끝자락생. 남성. 수두, 홍역 등 유년기 모든 질병과 함께 전쟁도 통과함.&nbsp; 나는 해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남. 오늘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죽을 것.&nbsp; 나는 1968년 1월 1일생. 남성. 68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기억함. 지금 사는 올해는 기억 못 함. 몇 년도인 지도 모름.&nbsp; 나는 언제나 태어나 있음. 빙하기의 시작과 냉전의 끝을 기억함. 죽어가는 공룡을 보는 것은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었음.&nbsp;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음. 마이너스 7개월. 올리브 열매 만하고 무게는 1.5그램. 성별 모르고 꼬리가 없어지고 있음.&nbsp; 나는 1944년 9월 6일생. 남성. 일주일 뒤 아버지는 전방으로 떠남. 어머니 젖이 말라 와인에 적신 빵으로 나를 달래줌.&nbsp; 나는 기억함. 장미 덤불로, 자고새로, 은행나무로, 민달팽이로, 6월의 구름으로, 가을의 보라색 크로커스로, 체리꽃으로, 눈으로.<br>&nbsp; 프롤로그를 정리하면 이렇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2011년에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 &lt;슬픔의 물리학&gt;을 출간해 불가리아 국가문학상을 받고 특히 독일에서 필명을 떨치게 되는 ‘나’는 1968년 1월 1일생에 제일 가깝다. 직업이 작가이고, 책이 무지하게 팔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 인터뷰 따위는 가뿐하게 사절하고 그저 책 읽고, 글 쓰고, 세계로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 그걸 글감으로 작품을 쓰는 사람. 반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자신을 투영한 허구의 인물이다.&nbsp; 그럼 다른 ‘나’는 누구일까?&nbsp; 1913년 8월 끝자락에 딸 일곱이 있는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사실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1944년 9월에 아들을 낳고 일주일 만에 큰 전쟁터였던 헝가리 방면으로 떠난다. 1944년생 ‘나’는 자라 변호사 여성과 결혼해 1968년생 아들을 낳는데, T시에서 아파트를 배정받기 위하여 곳곳을 다니며 그리 크지 않은 지하방에서 생활한다.&nbsp; 그런데 이들 전부 ‘나’이다. 심지어 초파리, 민달팽이, 6월의 구름 같은 것도 모두 ‘나’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nbsp; ‘나’, 작가가 자신,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공감하여 들으면서 스스로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놀라운 공감각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와의 공감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이야기의 예를 들어보자.<br>&nbsp; 어린시절 ‘나’는 어린이용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게 기억에 콱 박혔다. 신화 가운데 파시파에가 아름다운 흰 소와 관계하여 낳은 황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 이야기가 제일 심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니까 자기가 도와 왕이 된 미노스가 다스리는 크레타 섬에 아름다운 황소가 한 마리 있어서 그걸 희생해 바치라고 요구했다. 욕심 많은 미노스가 정말 바치려고 보니 이게 아까웠다. 그래 다른 소를 희생했다. 명색이 포세이돈인데 그걸 몰라? 그래 주문을 걸어 미노스의 정숙한 아내 파시파에가 흰 소에 반하게 만들었다.&nbsp; 이제 신의 심술 때문에 암소와 비슷하게 발정을 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재주꾼 다이달로스에게 나무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해 그 안으로 들어간다. 흰소가 발정한 나무 암소에 다가와 다른 암소들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교접을 하니, 파시파에는 그 일 때문에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nbsp; 미노타우로스가 사람의 몸을 하되 얼굴은 뿔이 달린 황소의 모습이라 이를 불길하게 여긴 미노스는 다시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라 해서 그 한 가운데로, 어린 미노타우로스, 여전히 엄마 파시파에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는 아기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nbsp; 미노타우로스는 자라면서 괴물이 되어 1년에 아테네의 처녀 일곱 명, 총각 일곱 명을 일용할 양식으로 잡아먹는다. 훗날 아테네에 영웅이 나왔으니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괴물을 소탕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크레타 섬에 와서 미노스의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여버린다.&nbsp; 이때 미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자기 동생을 살해한 뒤에 어떻게 미궁에서 빠져나오겠느냐고 하면서 테세우스에게 실의 한 끝을 계속 잡으며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일을 끝낸 테세우스는 실을 따라 밖으로 나왔고, 나라에 죄를 짓게 된 아리아드네를 옆구리에 차고 그길로 크레타를 떠나 낙소스 섬에 도착한다. 거기서 아리아드네한테 야매로 장가를 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에 그냥 두고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섬에 홀로 남은 아리아드네, 한탄만 하고 있는데 다른 배가 도착하니 선주가 누군고 하면 바로, 바쿠스. 주신이다. 그래 그의 여인이 되어 낙소스 섬을 떠난다는 이야기.<br>&nbsp; ‘나’가 이야기를 보는 관점은 어린 아이가 갇힌 상황. 버림을 받은 일. 그러면 아이는 얼마나 공포에 떨겠는가 하는 것이다. 막강한 영웅, 헤라클레스와 맞장을 떠도 전혀 꿀릴 것 없으며, 어쩌면 헤라클레스의 다른 버전인 것처럼 거의 비슷한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가운데 영웅 테세우스가 어찌하여 크레타 섬에 들어와 비록 이상한 모습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의 가슴에 양날 검을 박을 수 있겠느냐, 이런 걸 따지지는 않는다. 대신 버림받은 아이의 상태에 깊게 공감한다.&nbsp; 1925년, 열두 살의 ‘나’. 내 안의 할아버지. 즉 실체는 할아버지이되 2011년이 되어 그 상황을 공감각을 이용해 느끼는 것은 작가인 ‘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나’에서 작은 따옴표 ‘…’는 사라질 수 있다. 나는 불가리아 돈 5레바를 들고 장터로 달려간다. 구경을 할 수 있고, 소소한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고, 달고 맛있는 군것질도 할 수 있다.&nbsp; 시장 속에 작지 않은 천막이 쳐 있고, 입구에는 어른 한 명이 큰 소리로 미노타우로스를 구경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열두 살의 어린 미노타우로스란다. 나는 어린 시절 충격적으로 읽은 그리스 신화의 장면이 떠올라 도무지 충동을 감출 수 없다. 그래 딱 하나 있는 5레바 동전을 내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무대가 있었고 무대 가장 안쪽에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객석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드디어 쇼를 시작한다. 이제 객석으로 돌아앉은 소년은 집에 있는 책에서 흑백 삽화로 본 괴물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 무섭기는커녕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다. 얼굴이 크고 털이 많이 났으며 좀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몸은 그냥 보통의 소년이다.&nbsp; 집에서 버림받아 순회 서커스 또는 쇼단에 팔려 장터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여주는 대가로 음식과 허름한 옷을 얻는 소년.<br>&nbsp; 1913년생 나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새에 엄마와 일곱 누나들과 어떻게 하든 먹고 살아야 한다. 없는 살림에 수탉이 그려진 마차가 딱 하나 그나마 재산이라고 있는데 그걸 타고 제분소로 간다. 엄마와 나와 누나 세 명이 함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훗날, 꼴에 이것도 마차라고, 마차를 가지고 있었다고 부르주아 신분을 가진 반동분자 가정으로 몰리는데 그건 나중의 일이고, 하여간 제분소에 가서, 엄마와 누나들이 일을 하는 사이에 어린 나는 제분소 창고의 빈 밀가루포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nbsp; 잠에서 깨 보니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두려움의 첫 발자국이었다.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할 만큼의 두려움. 너무 시끄럽고 부산한 제분소. 하얀 거인 두 명과 흰 안개 같은 밀가루가 날려 거미줄마저 희다. 절박함은 더욱 거세게 밀려오고 그때서야 나는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 크게, 크게 외친다. 절망과 분노, 당혹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눈물이 유일한 위안이다. 바는 버려졌다.&nbsp; 누나와 엄마는 나를 버리고 수탉이 그려진 마차를 타고 갔다. 얼마나 갔을까? 큰누나가 엄마한테 말한다. 막내가 안 탔어요. 엄마가 대답한다. 그래서?&nbsp; 전쟁 중에 자신이 맡아 키워야 하는 아이가 여덟 명. 이 가운데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그리 크게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세 딸은 말이 없다. 잠시. 어쨌든 마차는 멈췄다.&nbsp; “내가 갔다 올 게요.”&nbsp; 마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제분소로 원피스 치마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큰누나. 나, 하마터면 미노타우로스 꼴 날 뻔했다. 이게 1913년생 ‘나’.<br>&nbsp; 이렇게 ‘나’는 할아버지의 유소년 시절뿐 만 아니라 청년 시절, 2차세계대전 중 헝가리에서 부상당해 여성 혼자 사는 집의 지하실에 숨어 몇 개월을 살던 시기의 정황까지 공감한다. 죽음의 침상에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준 편지 한 장. 해독할 수 없는 헝가리어로 쓰인 편지 위에 연필로 외곽선을 따라 그린 한 아이의 작디작은 손바닥 그림. 그리고 주소.&nbsp; 이미 성공한 작가가 된 ‘나’는 정말로 헝가리의 주소지를 찾아가고, 늙은 여성을 만나고, 늙은 여성이 낳은 ‘나’보다 나이를 좀 덜 먹은 것처럼 보이는 건장한 사내를 만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nbsp; 이렇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훗날 &lt;타임 셸터&gt;를 위하여 20세기, 그리고 지구 탄생의 시점부터 시간을 구분하여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lt;타임 셸터&gt;의 중요한 등장인물 가우스틴과 함께.&nbsp; ‘나’의 공감능력에 가우스틴의 엽기적 발상을 합하면 독자는 슬픔의 양자 물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명색이 “양자” 물리학이니, 아니, 물리학이니, 그리 만만하지 않겠지만. 양자물리학 쪽으로 일천한 독자는 정말 드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는 생각과 함께 재미나게 읽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 그래서 별점 하나 깠다는 것도 안 비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150/k852137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8614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2백년 전 로맨티시즘을 즐기시라 - [전날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3985</link><pubDate>Thu, 25 Jun 2026 0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39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055&TPaperId=173539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coveroff/89324760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055&TPaperId=173539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날 밤</a><br/>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작품은 1853년 모스크바 외곽의 밀림 속에 있는 휴양지 쿤체보에서 시작한다. 있는 집 도련님들이 커다란 피나무 아래 누워있거나(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베르세네프), 엎드려 있다(파벨 야코블레비치 슈빈). 베르세네프는 대학을 3등으로 졸업하고 잠시 쉬고 있다. 역사와 철학 중에 하나를 더 공부하여 장래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목표를 위하여 5년 후에는 독일의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통과시킬 예정이지만 아직은 그저 꿈만 꾼다. 슈빈은 나이가 어느 정도 차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죽으면서 사촌 동생인 안나 바실리예브나 스타호바에게 슈빈을 잘 돌봐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 스타호프 집에서 대학을 다녔다. 원래는 의학을 공부했지만 1년 만에 자기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중도작파, 모스크바 미술계에서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젊은 조각가 신분이다. 작품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는 어린이와 산양山羊 부조작업을 하다가 노대가들과 고대 미술품을 보고 낙담해 깨 버렸다. 자신의 예술 외에 여자의 아름다움만 사랑하는 예술가. 최근이지만 이중에서 처녀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있다. 보이나봐? 척 보고도 처녀인지 아닌지. 2백년 전 예술가답게 어딘가 한 군데 좀 삐딱하고 괴짜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조연급답게 귀여운 골통 비슷하다.&nbsp; 반면 베르세네프는 학교 다니며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이제 당분간 무위, 안일한 생활, 맑은 공기, 목표달성(우등졸업) 이후 허탈감을 달래는 휴식, 친구와의 가벼운 대화 등을 위하여 최근 쿤체보 숲 속의 다차를 하나 얻었다. 다차는 러시아에서 유행한 휴양지 건물. 부르주아들은 자기 다차가 있는 게 보통이었고 그 정도가 안 되면 베르세네프처럼 한 채 임대하면 된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들 특히 &lt;백치&gt;에서 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다차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br>&nbsp; 남자만 두 명 소개했다. 그러면 이제 여자가 나와야겠지? 이 둘을 갈등의 국면으로 치닫게 만드는구나, 독자한테 이런 생각, 오해, 짐작이 들게 만드는. 그렇다. 나온다. 옐레나 니콜라예브나 스타호바.&nbsp; 먼저 결혼 전 이름이 슈빈이었던 옐레나의 엄마 안나 바실리예브나에 관해 조금 언질을 드린다면, 슈빈의 5촌 이모 정도의 족보 자격으로 그를 키웠다 할 만한 은인. 일찍이 슈빈에게 예술 공부 또는 견식을 넓히기 위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권하며 큰 돈을 준 적 있지만 슈빈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좇아 소아시아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에 가서 돈을 탕진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슈빈은 진심으로 안나 바실리예브나를 존경하고, 은인으로 생각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아서 속으로는 그냥 암탉으로 여길 뿐이다. 진도가 나갈수록 선한 19세기 부르주아 여인의 전형을 연기한다. 결혼해 딸 안나 하나만 낳고 단산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긴 했다.&nbsp; 아빠 니콜라이 아르툐미예비치 스타호프는 저 위대한 1812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퇴역 대위의 아들이다. 귀족의 혈통이 흐르지만 끈 떨어진 갓 신세. 아시다시피 러시아에는 이런 빌어먹는 귀족들이 무척 많다. 이 가운데 한 가문의 아들로 성장한 퇴역 중위. 이이에게는 큰 꿈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유리한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안나 바실리예브나가 일곱 살 때 고아가 되었지만 꽤 많은 영지와 저택, 귀금속 및 보석, 그리고 상당 수준의 현금을 상속받은 아름다운 아가씨였을 때 큰 파티장에서 뒷다리 제치기에 성공해 꿈 하나를 이루었다. 딸 옐레나 이후 후사가 없자 그걸 핑계로 독일 태생 과부와 긴 연애를 하고 있다. 그 과부가 자기 친지에게 쓴 편지에 그를 “나의 멍청이”라고 비웃는 건 5년 후 호호 할배가 되어 걷어 차일 때까지 알지 못했다. 왜 비중이 별로 없는 아빠를 들먹였느냐 하면, 투르게네프하고 가족 구성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작품 속 누군가 작가를 닮을 수 있는데 그게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또는 니콜라이 아르툐미예비치 둘 가운데 한 명인 거 같아서였다.<br>&nbsp; 일단 안드레이 베르세네프와 파벨 슈빈 둘 다 옐레나를 연모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파벨은 감정이 안드레이보다 월등하게 분방하여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불쾌함이나 역겨움을 주기도 한다. 바로 어제 그런 장면을 하필이면 옐레나 앞에서 저지르고 말았다. 집에 옐레나 말고 다른 젊은 아가씨가 한 명 더 있었으니 독일 아가씨 조야 니키티시나 뮬러. 러시아계 독일 처녀이다. 스타호바네 다차에서 옐레나의 말동무나 하라고 데려왔는데 정작 안나 바실리예브나가 불러 자기 옆에만 앉혀 놓는다. 밤이 시작되는 훈훈한 저녁 무렵, 분방한, 책이 끝날 때까지 결코 난봉꾼 수준까지 치닫지 않는 그저 분방한 파벨 슈빈이 집 복도 어두컴컴한 곳에서 조야의 두 손을 붙잡고 손등에다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을 옐레나한테 들켜버린 거다.&nbsp; 근본적으로 옐레나는 예술 방면으로 자질이 있는 편이 아니다. 예술보다는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은 학문이 훨씬 맞는다. 그러면 당연히 역사 또는 철학을 더 공부할 안드레이가 더 어울린다. 어제의 실수가 아니더라도 평소 파벨 생각도 그랬다.&nbsp; 농촌에 기반한 부르주아 가운데 한 명인 이반 투르게네프답게 여기까지 모든 장면이 자연, 학식, 예술, 이탈리아, 프록코트, 드레스, 피아노 연주 같이 벨벳 같은 부드러운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스타호프네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베르세네프가 자기 다차로 돌아간다. 그의 뒤를 헐레벌떡 좇아오는 파벨. 그러더니 베르세네프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는 고백을 한다.&nbsp; “안드레이, 나는 옐레나를 사랑한다네. 그러나 옐레나는 자네를 사랑하지.”&nbsp; 안드레이는 조금 놀란다. 자기가 옐레나를 사랑해? 맞다. 그것 때문에 여태까지 속으로 일종의 과호흡증을 앓았다. 그런데 옐레나도 나를 사랑한다고? 아, 이렇게 행복할 수가.&nbsp; 하지만 파벨이 그녀를 사랑한다니. 파벨은 나 역시 옐레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사랑을 파벨에게 양보해야 하나?&nbsp; 파벨 역시 진실한 친구. 자신이 옐레나에게 맞지 않는 점을 이야기한다. 자신은 옐레나가 보기에 너무 경박한 젊은이라고. 그녀는 진지한 사람, 양심적인 과학 신봉자의 대표자라면서. 또 앞에서 말한 조야의 손에 키스한 장면. 그것보다 바로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파벨이 조야에게 험담을 해버렸던 모양이다. 분방한 성격이니 그럴 수 있지만 옐레나가 보기엔 역겨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nbsp; 여기까지 말한 슈빈은 그만, 안드레이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하니 정작 안드레이가 민망해지기 시작한다.<br>&nbsp; 이렇게 작품이 중간 정도까지 진행되었을 때, 안드레이가 모스크바에 들를 일이 생기고, 거기까지 간 김에 유일한 학교 절친 드미트리 니카노로비치 인사로프를 만난다. 불가리아 사람. 오스만 제국의 압제에 허덕이며 사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하여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는 학문을 하고 싶어 모스크바에 왔지만 조국의 부름이 자신의 공부보다 먼저라고 생각해 귀국했고, 혁명을 준비하다 상당한 수준의 고초를 겪어 목 주변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일단 불가리아에서 탈출해 모스크바로 돌아와 러시아 내 불가리아 동포를 집결하고 국내 혁명전선 동지들에게 여러 지령을 내리는 중추 가운데 중추로 활약하는 인물이다.&nbsp; 당연히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작은 방 하나를 얻어 궁상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 짠해서 안드레이는 자기가 지내고 있는 다차에서 여름을 날 것을 제안하고, 인사로프는 자기가 쓸 방값을 자신이 내는 것을 전제로, 즉 친구의 호의를 무상으로 받기를 거절하는 조건으로 다차에 들어온다. 그리고 옆집, 스타호프 다차에 가서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고, 대화를 하고, 대화는 대화인데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답게 세상 누구보다 진중하고 설득력 있는 논조로 깊은 대화를 전개해 나간다.&nbsp;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딱 눈치 채시겠지? 우리의 안드레이와 파벨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처음에야 옐레나를 포함한 스타호프 사람들이 보기에 인사로프는 배운 것만 많지 저 변방 중의 변방, 심지어 안나 바실리예브나의 머리속에서는 시베리아 옆에 있는 줄 아는 불가리아 촌놈이고, 생긴 것도 잘 생기지도 않았고, 얼핏 보기엔 그저 그런 보통 체격에, 조금 있으면 불가리안지 뭔지 하여간 다시 돌아갈 청년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가, 집안에서 딱 한 명, 옐레나는 그의 진중함과 정의로움에 빠져버리기 시작한다. 퐁당.&nbsp; 철의 사나이 인사로프. 그도 사람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옐레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사로프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옐레나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할 일, 그냥 할 일이 아니라 조국의 해방시키는 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과업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인사로프는, 중간에 분방한 파벨이 다리 역할을 해서 어느덧 둘의 사랑을 둘 다 알게 된 상태가 되자마자, 다차가 있는 쿤체보 숲을 떠나 모스크바로 돌아간다.&nbsp;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쿤체보와 모스크바. 백 베르스타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가 둘의 사랑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까? 하여간 이들의 앞에는 러시아가 영국-프랑스-오스만 연합에 코가 깨질 예정인 크림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cover150/89324760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7301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한 다리만 건너 - [니들의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2652</link><pubDate>Wed, 24 Jun 2026 1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26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947&TPaperId=173526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03/0/coveroff/89364249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4947&TPaperId=173526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니들의 시간</a><br/>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br/></td></tr></table><br/>.&nbsp; 김해자는 신안 출신, 목포에서 초등과 중등학교를 마치고 한 해 재수? 하여간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4학년이던 1984년에 광주학살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학내시위를 주도하다 제적당해 훗날 복학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터뷰 기사 말미에 학력을 고려대 국문과 졸업이라고 해놓았으니까.&nbsp; 이후 인천의 공단으로 가서 “잿빛 같은 15년”을 보냈단다. 국제작가축제의 참가자 소개를 보면 “2, 30대 시절 전자 공장과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하는 자신과 동료들의 삶을 받아 적다 시인이” 됐고, “4, 50대부터는 학생, 어른, 치매 병동, 알코올 병동, 홈리스, 기초수급자 가리지 않고 찾아가 강연과 강의를 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천안시 인근)시골에서 농사지며 이웃의 삶의 이야기를 가끔 시로 쓰고, 관계가 끊어지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약자들이 죽음으로 몰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현대 문명의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nbsp; 그러니까 스무 살에 받아들인 80년대 운동권의 감각을 65세인 지금까지 45년 이상 저 들의 푸르른 솔잎처럼 변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는 시인이다.&nbsp;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 재학/졸업자가 인천 공단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을 위조하여 들어가 노동조합에 개입한 듯한데 뭐 지난 이야기 길게 하면 좋을 거 없다. 하여간 상당한 정도로 왼쪽 멀리 가 있는 건 확실하다. 시를 읽어봐도 그렇다.<br>&nbsp;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초판 발행이 2023년인데 상당한 시들이 예전 투쟁시기에 머물고 있다. 직접 그것을 바로 그 현장에서 경험한 시인으로 시절의 고통과 투쟁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질곡이겠지만 말이지. 예컨대 &lt;이름 없는 조직&gt;이란 시의 2연을 읽어보자.<br>&nbsp; “순간, 가좌동 쪽에서 본드 냄새가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온종일 신발 바닥에 본드칠하다 우우 몰려가 발바닥 닳도록 춤추던 송림동 카바레, 어디선가 단무지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같았어요 철야 끝난 일요일 잠시 눈 붙이고 달려간 신포시장, 볼이 미어져라 먹던 왕만두 냄새, 미싱에 앉으면 만주에서 말 타고 달리는 듯하던 열여덟살 현옥이와 장덕이가 대한서림에서 책장을 넘기고, 바로 옆인 듯 애관극장에서 파업전야 같은 필름이 돌아가는데 (p.26~27, &lt;이름 없는 조직&gt; 부분)<br>&nbsp; 지금도 가좌동에 신발 공장이 있나? 만일 여전히 있다면 신발 바닥에 본드칠을 사람이 할까, 기계가 할까? 사람이 한다고 치더라도 우리나라 노동자가 할까 외국인 노동자가 할까?&nbsp; 아무래도 안 되겠다. 더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만 두자. 시인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딱 한 다리만 건너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관두자. 이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옛 사람들.&nbsp; 다만 벌써 40년이 훌쩍 넘은 오랜 이야기이다. 그때 타도해야 했던 건 많이 사라졌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지경으로. 그럼에도 시인은 여전히 80년대, 심지어 서울의 봄 광경도 시로 읊고, 1951년 전쟁당시 국방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노래한다. 누군가는 노래해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전쟁이나 학살, 집단 희생 같은 큰 규모의 심각한 비극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삶의 뒷방에서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조근조근 책만 읽으며 살고 싶다. 이것도 잘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nbsp; 이이의 시집 가운데 드물게 등장하는 서정시 한 수 올리고 독후감 접겠다.<br><br>&nbsp; 꽃잎 세탁소<br><br>&nbsp; 꽃양귀비 붉은 꽃잎 위에 청개구리가 엎드려 있어서 나도 납작 엎드려 뭐 하나 들여다봤더니, 제 목울대로 꽃의 주름을 펴는 게 아닌가, 그 호박씨만 한 것이 앞발 뒷발로 붉은 천 꽉 부여잡고 꽈리 풍선 불어가며 다림질하는 동안 내 마음도 꽃수건처럼 퍼지고 있었다<br>&nbsp; 개망초 하얀 꽃잎 위에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있어서 나도 땅두릅 그늘 아래서 욜려다봤더니, 계란 노른자 같은 꽃술을 빨아대는 게 아닌가, 그 상추씨만 한 입으로 꽃잎을 빠는 동안 하얀 베갯잇 같은 구름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하늘이 갓 세수한 듯 말개지고 있었다&nbsp; (전문. p.78)<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03/0/cover150/89364249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03006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인간극의 결집판 또는 대단원 -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0221</link><pubDate>Tue, 23 Jun 2026 06: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02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96&TPaperId=173502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73/coveroff/89374648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96&TPaperId=173502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a><br/>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민음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오노레 드 발자크의 1847년 작품. 말년의 “인간극” 시리즈인 만큼 독자는 처음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하는 편이 좋다. 먼저 읽어본 자로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리면, 발자크의 인간극 시리즈를 상당한 정도 읽어본 연후에, 적어도 &lt;고리오 영감&gt;과 &lt;잃어버린 환상&gt;은 읽은 상태에서 첫 장을 들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이다. 안 그러면? 수다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대다수가 전작에서 맺은 선연, 악연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어 매듭을 풀기는커녕 양쪽 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또는 무수한 각주를 동시에 읽느라고 그만 정처를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 한 명 곱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간이 없다.&nbsp; 주인공 급 등장인물을 꼽자면 인간극 중에서 단편으로 꼽는 &lt;곱세크&gt;, 유대인 고리대금 업자 곱세크씨의 조카딸로 이 책에서는 나중에 7백만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의 상속인이 되지만 이 가운데 한 푼도 손에 쥐기도 전에 삶을 등지는 전직 어린 창부, 현직 은행가 프레데릭 드 뉘싱겐 남작의 정부인 에스테르.&nbsp; 이미 &lt;잃어버린 환상&gt;에서도 철딱서니 없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주인공 역을 맡은 바 있는 뤼시앵 샤르동. 전편에서 파리에 공부하러 갔다가 갖은 사치와 연애 행각을 벌이다 폭삭 망해 고향 앙굴렘으로 와서 다 죽어가던 찰나 선량한 사람들 덕에 기사회생한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시 파리로 와 &lt;잃어버린 환상&gt;에서 한 때 연애했다가 헤어진 귀족부인들하고 원수지간이면서 새로운 귀부인과 염문을 뿌리고 있다.&nbsp; 아마도 진정한 주인공은 &lt;고리오 영감&gt;에서 인간극의 터줏대감 라스티냐크와 질긴 인연을 만든 극악무도한 악당 보트랭일 것인데, 여기서는 뤼시앵을 물심양면으로 돌보는 스페인 출신 사제이자 스페인과 프랑스 국왕 사이의 밀사라고 주장하는 카를로스 에레라 신부 참칭자僭稱者로 등장한다.&nbsp; 이 외에 조연급들도 서로 조밀하게 전작들과 연결되어 있어 발자크의 전작을 건너뛰고 읽자면 곤란을 면하지 못할 터이니 감안하시면 좋겠다. 특히 &lt;잃어버린 환상&gt;을 읽은 즉시 이 책을 시작하면 더 좋고. 마침 민음사세계문학 시리즈에서 이 작품 바로 앞에 배치한 책이 &lt;잃어버린 환상&gt;이니 이어서 다섯 권 내리 독파하는 게 장땡이다.<br>&nbsp; 두 번째로 &lt;사교계의 영광과 비참&gt;을 읽으면서 주의할 것 또는 미리 감안할 것은, 이 작품이 인간극 가운데서도 소위 “풍속연구”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프랑스 고등학생들도 배우지 않을 것 같은 19세기 초의 프랑스 특히 파리의 구역과 특정 건물, 거리 같은 곳의 상세 설명에 학을 뗄 수 있다는 점. 영국에서는 몇 십 년이 지나야 등장할 헨리 제임스가 있지만 프랑스엔 19세기 초부터 발자크와 그의 후배들이 있어서 이 상세묘사에 관해서는 말 그대로 독보를 과시하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웬만한 독서력이 없으면 콱 질려버리고 말 걸? 겁주는 게 아니라 미리 각오하시란 뜻이다. 나는 이 책이 독후감을 쓴 열다섯 번째 발자크의 작품인데 솔직히 말해 아직도 이이의 소설책을 읽을 때마다 뒷골이 뒤숭숭하다. 이거 이러다 뇌일혈 생기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어서.&nbsp; 유라시아 대륙의 제일 오른쪽 끝에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도대체 파리의 19세기 초에 있었던 건물과 거리, 1820년대 말에 벌써 사라진/개축한 건물의 옛 구조를 왜 알아야 하며, 거리 이름이 뭣이 중헌디?&nbsp; 그런데 여태 이야기한 두 가지 허들을 바꾸어 생각하자. 딱 이것들 두 개만 극복하면 독자는 소위 발자크 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현란한 솜씨에 넋을 잃을 권리가 생긴다. 도무지 더 이상 스토리를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절묘하게 또다른 이야기를 벌써 시작하고 있는 거다. 이 재미 때문에 읽을 때마다 골머리를 썩이면서까지 내 눈에 띄기만 하면 발자크를 읽어 버리곤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그러니까 당신도 이를 악물고 한 번 견뎌 보시기 바란다. 읽다가, 읽다가 도저히 못 견디면 그건 당신 팔자 소관이니 내 탓하지 마시고.<br>&nbsp; 시작은 1824년. 오페라극장의 무도회. 각주에 의하면 1824년 2월 말일의 오페라 무도회에서는 가면을 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유명인이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맨 얼굴이었다고. 이 무도회에 세상물정 1도 모르는 무뇌아 수준이지만 세상천지 둘도 없는 미남 청년 뤼시앵이 유대 혈통이 가미된 절세 미녀 에스테르와 함께 등장해 사람들의 넋을 빼놓는다. 뤼시앵은 그와 지속 기간에 관계없이 연인 관계였거나 연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더라도 그냥 품에 한 번 안겨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여성들의 눈길을 받았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에스테르는 아주 뛰어난 아름다움의 소지자라서 오페라 극장의 모든 남성들로 하여금 혀를 쑥 빼물게 해 놓았다.&nbsp; 그런데 발자크가 쓴 작품에서 빼놓지 않고 문제를 들춰내는 데 특화되어 있는 인물 라스티냐크가 에스테르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해서 에스테르의 정체를 작지 않은 목소리로 주위의 친구들에게 떠들기 시작한 거다. 뤼시앵이 데리고 온 에스테르가 여기 오신 만장하신 신사분들의 7할 정도를 상대한 경력이 있는 매춘부라는 것을. 이러니 어떻게 되겠나? 뤼시앵과 에스테르는 죽을 맛이겠지. 그런데 아무리 노류장화라지만 열일곱 살 순정을 품고 있는 에스테르가 더 독하게 상처를 받았겠지? 이때 여태 뤼시앵의 뒤를 좇던 건장한 체격의 자객 가면, 멕시코 정의의 사자 조로가 쓴 가면을 걸친 남자가 재빨리 에스테르 뒤에 근접해 속삭인다.&nbsp; “뤼시앵은 당신을 사랑합니다.”&nbsp; 조금이라도 에스테르의 기운을 차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에스테르는 이날 파리의 2월이면 아직 한겨울인데 파리에서도 가장 흉물스러운 구역인 랑글리드가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기도해버렸다. 극장에서 비지우라는 이름의 찌질이가 만인이 보고 있는데 자기를 향하여 “어이, 에스테르!”하고 외친 일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이것이 에스테르가 처음 시도한 자살이라 번개탄의 수가 모자랐고, 가뜩이나 외풍이 있는 방에 문도 조금 열려 있어서 죽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아까 자객 가면을 쓴 사내, 스페인 국왕의 프랑스 밀사이지만 와 있는 도중에 정권이 바뀌어 그대로 머물고 있는 카를로스 에레라 신부가 발견해 목숨을 건져낸다.<br>&nbsp; 이 카를로스 에레라 신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앞에서 말한 바대로 일찍이 &lt;고리오 영감&gt;에서 부르주아 타유페르의 아들을 결투를 빙자해 살해하고, 라스티냐크에게 타유페르의 집 나간 딸과 결혼해 상속을 받은 후 가로채려 했다가 라스티냐크가 망설여 본전도 건지지 못한 악당 ‘보트랭’ 역으로 조연 출연한 인물로, 본명이 ‘자크 콜랭’이라고 한다.&nbsp; 카를로스 에레라 신부가 에스테르를 어엿비녀겨 살려준 것이 아니다. 그가 바란 것은 어떤 남자도 호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에스테르의 몸. 근데 글자도 읽지 못하는 게 흠이라, 카를로스 신부는 그길로 에스테르를 수녀원에 집어넣고 1년 반 동안 글자, 숙녀로의 몸가짐, 옷 입는 법 등등에 익숙하게 교육시킨다. 비용은 전부 신부가 대고. 근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훗날 카를로스 신부는 에스테르를 프랑스 최고 중의 최고 은행가인 뉘싱겐 남작에게 넘겨 수백만 프랑을 울궈내려 하고 있다.&nbsp; 전직 흉악범죄 미수자이며 현직 국왕의 비밀 사절 참칭자인 자크 콜랭은 사실상 도형수의 신분이다. 도형장에서 탈출해 세상의 음지에서 사는 어둠의 사나이.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발자크가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뤼시앵을 아마도 동성애적으로 사랑했던 모양이다. 사랑을 넘어선 숭배의 단계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카를로스 신부는 에스테르를 뉘싱겐 남작에게 접근시켜 뜯어낸 돈으로 뤼시앵을 그랑뤼에 공작의 영애 클로틸드에게 장가들여 후작으로 만든 다음, 궁정 귀족이 되게 해주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적이다. 그 이후에 뤼시앵이 여전히 에스테르를 향한 애정이 남아 있으면 그냥 라 파보리타la favorita, 정부 또는 정부 가운데 한 명으로 삼으면 그만이고.&nbsp; 그런데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라도 있간디? 밥은 다 지어가는데 그만 어쩌다 훌쩍 하는 바람에 콧물이 밥솥에 빠져버리고 만다. 만사 파투가 나버리고 이야기는 어느덧 카를로스 에레라 신부이자, 악당 보트랭이자 탈옥한 도형수 자크 콜랭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nbsp; 발자크를 읽다보면 이이가 워낙 많은 작품을 쓰는 바람에 앞 뒤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간혹 눈에 띈다. 이걸 다 까탈을 잡으면 발자크 읽기 쉽지 않다. 그런 건 그냥 패스하는 게 좋다. 일일이 시비하기엔 발자크의 이야기 솜씨가 너무 끝내줘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73/cover150/89374648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4739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누구나 자기 눈으로만 본다 - [견딜 수 없는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8271</link><pubDate>Mon, 22 Jun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82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832988&TPaperId=173482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17/26/coveroff/k7728329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832988&TPaperId=173482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견딜 수 없는 사랑</a><br/>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03월<br/></td></tr></table><br/>.&nbsp; 매큐언을 읽은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이이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놀라는 건, 이이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다고 여기고 지내건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이름만 눈과 입에 익어 늘 친숙한 반면 정작 작품을 들이대면 별로 안 읽은, 글 좋은 작가가 이언 매큐언이다. 내 경우에 그렇다. 뭐 어쩌겠어? 팔자 또는 이이의 나의 인연이지.<br>&nbsp; 최근에 읽은 매큐언이 &lt;나 같은 기계&gt;인데, 한정판 가정용 로봇 사용기라고 생각하면 되는 조금 SF 소설이다. 그거 읽으면서, 매큐언이 이런 장르의 작품도 쓰는구나, 과학 분야로도 상당한 조예가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어제 읽은 &lt;견딜 수 없는 사랑&gt;도 주인공이 양자물리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더 공부를 하려다가 자기한테 여차하면 세계적으로 대박을 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있어 몇 해 몰두한 일이 있었다. 세상의 컴퓨터 환경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해 동료와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세계 특허를 신청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네덜란드에서 한 업체가 주인공 조지프, 조 로즈의 개발품을 포함하는 더 큰 방식에 대하여 가까운 과거에 이미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사업을 접으니 이미 스물아홉 살. 조 로즈는 이십대 중반에 물리학 박사를 취득한 영재 수준이었지만, 영국의 탑 클래스 영재들만 빼곡하게 모인 물리학계에서 중도 이탈 경력이 있는 스물아홉 살의 연구자에게 남는 자리는 없었다. 어디에서도 하다못해 강사 자리를 제안하는 곳도 없었다. 그냥 놀고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 조는 이후 과학컬럼니스트 프리랜서를 시작했는데, 글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라 각종 잡지와 신문, 방송에서 연일 초대하고, 책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해 이제 런던에 집도 장만하고, 월세집이 아니라 자기 아파트도 한 채 사고, 비싼 자동차도 타고, 프랑스 와인도 집에 박스로 쟁여 놓고 마실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대학에서 하던 연구를 계속하면서 후학들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고, 잠재적으로 깔려 있다.<br>&nbsp; 조 로즈의 정확한 나이는 밝히지 않는다. 마흔 후반부터 쉰 초반 정도. 지금은 대학에서 존 키츠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 클래리사 맬론과 비혼, 미 출산 동거를 하고 있다. 클래리사는 안식년을 맞아 키츠 연구에 박차를 가해 6주간 보스톤에 가서 자료를 더 파보고 돌아왔거나 아직 착륙하지 않았다. 이 6주는 조가 클래리사를 만나고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가장 오랜 시간이었으며, 그리 길지 않았던 기간이었음에도 로즈 박사는 클래리사가 보고싶어 안달을 했었다. 그리하여 히스로 공항에서 클래리사를 싣고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칠턴스 언덕으로 소풍을 가기로 약속했다.&nbsp; 조는 소풍을 위하여 코벤트가든의 카를루치오 레스토랑에서 소풍 가서 먹을 이탈리아 요리를 테이크아웃 구입하고, 유명한 버트럼로타 서점에 들러 미리 주문한 존 키츠의 초판본 시집을, 조가 살면서 무엇을 사 본 가운데 아파트, 차에 이어 세번째로 비싼 값을 주고 클래리사 생일 선물로 구입했다. 오늘이 클래리사 생일은 아니다. 아직 몇 달 남았다. 그럼 소설이니까 이 커플이 몇 달 남은 클래리사 생일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는 정상이다. 소설 속에서 시간에 정신 제대로 박힌 상태로 흘러가는 법이란 없다. 소설작법 8장 5절인가 9절에 나온다. 오늘은 알려드리지. 클래리사 생일날, 클래리사의 대부와 조, 이렇게 세 명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 책을 선물한다. 뭐 신문에 날 정도의 작지 않은 사건이 하나 생기기는 하지만, 말했듯이 소설이잖아?<br>&nbsp; 하여간 조는 히스로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도착한 클래리사를 만나 가볍게 키스를 하고 곧바로 칠턴스 언덕으로 향했다. 날은 좋은데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이런 날에 40만평방미터가 넘는 넓은 벌판 위로 누군가가 기구를 띄웠다. 기구가 떠 있는 150미터 상공의 바람은 또 지표하고 다를 것이 분명한데 좀 내려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조와 클래리사가 했을 지는 모르겠다. 자기들도 일단 심하게 부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떡갈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야 했으니.&nbsp; 바람이란 게 계속 심하게 불지는 않아 어느정도 잠잠해져 둘은 큰 떡갈나무 아래 매트를 깔고 이탈리아 음식과 1987년산 도마스 가삭의 마개를 따려고 했다. 클래리사가 병을 잡고 있고, 조가 한 손에 따개를 들고 다른 한 손이 병 입구를 포장한 검고 얇은 포일에 닿는 순간, 이 소설을 복잡하게 만들 사건이 벌어진다.&nbsp; 2백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고함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는 와인 오프너를 떨어뜨리고 벌떡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다음 동작을 결정하고, 즉, 떡갈나무 아래에서 이른 봄날의 풀밭과 아름다운 연인이 주는 행복을 잠깐 보류한 채 벌판에 거의 내려왔지만 강하게 불어닥친 바람에 기울어진 기구를 지탱하기 위하여 지지 말뚝의 밧줄 고리에 발을 감고, 기구 바구니와 연결된 밧줄을 잡은 채 버티고 있는 조종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기구는 자꾸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고, 기구 바구니에서는, 조가 그쪽으로 달려가면서 들으니, 기껏해야 열 살 정도 되는 아이가 히스테리 상태가 되어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nbsp; 벌판의 외곽엔 초고압 송전탑과 전기줄이 지나가고 있어 기구 조종을 하지 못하는 거대한 풍선이 송전탑이나 전선에 걸릴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이 조종할 수 없는 기구가 바구니 안의 아이를 어느 곳까지 데려갈 지도 모르고, 헬륨가스로 충만한 풍선이 그대로 상승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터져버릴 것이고, 그 이전에 아이는 얼어 죽거나,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죽을 것이 분명하다.<br>&nbsp; 그리하여 달려가기 시작한 조. 조의 눈에는 농장 경계에서 울타리 작업을 하던 두 명의 일꾼도 조가 가는 방향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고, 조와 반대편 언덕 위에 문을 활짝 연 승용차에서도 한 명의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으며, 다른 젊은 남자도 한 명 보였다. 여기에 기구 조종사까지 합한 여섯 명의 남자들은 각자 기구와 기구 바구니에 연결된 줄을 잡고 기구를 날아가지 못하게 힘껏 당기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여섯 명을 통제하는 리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nbsp; 여섯 명은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모두 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했는데, 문제는 각자의 주장이 죄다 서로 달랐다는 점. 기구 고정 말뚝에 밧줄을 붙잡아 매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일단 기구가 날지 못하게 한 쪽으로 당겨야 한다는 주장은 두어 명이 했던 것 같았고, 다른 두어 명은 무엇보다 바구니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부터 꺼내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세게 불어 닥치는 바람의 소리가 강해 모두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야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그것도 여섯 명 모두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분비되고 있던 와중이라 자신의 생각을 부르짖을 뿐이지 다른 목소리를 듣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그 방식대로 따라할 여유는 찾지 못했다.&nbsp; 이 사건만 묘사하려고 해도 무척 많은 분량이 필요하다. 중간은 다 생략해야겠다.&nbsp; 갑자기 돌풍이 불어닥쳤다. 나중에 방송을 들으니 시속 110km 이상의 풍속이었다고. 그래서 여섯 명의 구조자 모두 바구니와 연결된 밧줄을 잡고 버티고 있었는데, 기구가 바람에 떠오르기 시작했던 거다. (나는 여기서 밧줄 말뚝과 다리를 연결한 조종사이자 바구니 속 아이의 할아버지의 다리가 찢어질 줄 알았는데) 여섯 명 모두 밧줄을 잡은 채 기구와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nbsp; 어떻게 할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섯 명 모두 이 생각을 했겠지. 과학컬럼니스트 조 로즈는 어느 순간 힘이 빠졌는지, 벌써 지상에서 3~4미터 떠올라 겁이 덜컥 나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옆에서 밧줄을 쥐고 매달려 있던 58세의 농장 잡역부 토비 그린이 밧줄을 놓고 땅 위로 떨어지는 걸 보고 덩달아 힘이 빠져 자신도 줄을 놓쳐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투두둑. 모두 떨어졌다. 단 한 사람. 옥스퍼드에 사는 42세의 일반 개업의이며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카운티 대회에 나갈 수준의 테니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웨스트 하이랜드 산악구조대 출신의 존 로건. 그만 끝까지 기구의 줄에 매달린 채, 기구, 바구니, 바구니 속의 아이와 함께 까마득하게 치솟고 있었다.&nbsp; 그리고, 눈으로 봐서 한 백미터 정도 높이까지 올라간 순간, 작은 작대기 모양의 존 로건은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진공상태라면 1초에 9.8미터. H = g(t^2) 2초면 39미터, 3초에 88미터. 닥터 로건은 3초가 조금 지나 양떼가 풀을 뜯는 칠턴스 언덕 부근의 넓은 벌판에 거의 선 자세로 떨어져 즉사해버렸다.<br>&nbsp; 아이는? 공황상태에 빠져 바구니에 엎드려 울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아이는, 사실 여러 명의 어른들이 고함을 치고 사나운 얼굴을 하는 바람에 문제해결능력과 생존본능이 완전히 사라지는 “학습된 무기력상태”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그러다 기구가 상승하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차츰 정신을 차려 할아버지한테 배운 비상시 조치방법이 떠올라 바구니 안에 달린 밸브를 조종해 기구 속 헬륨을 배출해서 약 2km 떨어진 벌판에 무사하게 착륙했다. 로건 씨 외에 농장 잡역부 그린씨만 4미터 위에서 떨어지며 다리가 부러졌을 뿐 나머지는 무사했다.&nbsp; 그러나, 마음 속 상처는? 이 사건 때문에 새롭게 발병한 소위 드클레랑보 증후군은? 정말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면 말이지만. 이렇게 시작한다. 이런 배경으로 사람과 사람 사는 일이 얽히기 시작한다. 즉, 서론이 이만큼 길었다는 뜻이다.&nbsp; 생선으로 치면 이언 매큐언 정도면 준치급. 썩어도 준치다. 이름만 믿고 아무거나 읽어도 재미와 입심은 보장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17/26/cover150/k7728329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17261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영업은 독자가 한다 - [월영시장 - 설재인 연작소설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3045</link><pubDate>Fri, 19 Jun 2026 05: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30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67&TPaperId=173430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59/32/coveroff/89320426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667&TPaperId=173430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월영시장 - 설재인 연작소설집</a><br/>설재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03월<br/></td></tr></table><br/>.&nbsp; 1989년생. 자랑은 아니지만 어려서는 머리가 커서 걸음마를 늦게 뗐다고. 뇌 용량이 크니까 공부를 제법 해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특목고에서 수학교사를 몇 년 했다. 그런데 특목고 수학교사라는 직업이란 자라나는 청소년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라 염증을 느껴 아무 대책 없이 사표를 내고 말았단다. 그 후겠지? 20대 중반까지는 “운동이란 ㅇ”도 몰랐던 설재인은 어쩌다 보니 복싱을 시작해 지금은 복싱을 한 세월이 수학교육을 한 시간보다 더 길다고. 즉 지금은 뛰고 때리고 막고 피하는 소설가라는 말씀.&nbsp; 책가게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nbsp; “말을 최대한 줄인 채 사람을 염탐하는 몹시 음침한 사람.”&nbsp; 젊은 작가? 아휴, 아니다. 37세가 무슨 젊은 작가. 이미 완숙해서 전성기를 구가할 시기. 이 책을 냈을 때는 서른다섯. 소설쓰기 딱 좋은 시절일세.&nbsp; 《월영시장》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이 또래의 작가군群이 쓴 소설책 가운데 오랜만에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책 읽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저 오래전, 이 책보다 22년 전, 지금부터 24년 전 가상의 월영시장이 아니라 진짜로 영등포시장의 한 밥집 삼오식당의 “딸램” 이명랑이 쓴 명랑한 소설책 《삼오식당》이 딱 생각났다. 사는 모양이야 진짜 밥집 딸이었던 이명랑이 더 생명력이 있지만(삼오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뭐 하실까? 늘 건강하시기 바란다), 설재인은 또 다른 모양새로 통통 튀는 매력이 가득했다. 이런 소설을 좀 더 많은 작가들이 쓸 수 없나? 만날 우거지 궁상 떠는 모습만 보다가 없는 사람들의 따듯하니 눙치는 은근한 궁상을 읽으니 그것 참 괜찮네.<br>&nbsp; 월영시장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서울의 가장 서쪽, 김포공항과 담벼락을 마주한 서울 S동의 시장을 모델로 해서 썼다고 한다. 설재인이 2023년 초에 “청년머시기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아마도 무척 기뻐서 그랬겠지?) 직접 찾아가 본 S동, 머리 위로 비행기가 1분에 몇 대씩 낮게 날기 시작하는 곳에 S시장이 있었고, 그때까지 국밥이 6천원, 소주 한 병에 4천원 하던 식당이 있었는데, 오후 한시였나 하긴 오전 열한시면 어떻고 아침 다섯시면 어떻겠느냐만, 벌써 나이 좀 자신 아저씨들이 소주 또는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있는 모습이 좋았던 모양이다.&nbsp; 그리하여 소설집의 제일 앞에 배치한 작품 &lt;딸램들&gt;의 주인공이 “40년 된 건물에 들어선 20년 된 자근포차”의 2년제 유아교육과를 다니는 “자근딸램” 동지. 동지. 사람 이름이다. 안동지. 즉 동지가 아니라는 뜻? 그건 아니고 그냥 동지. 나이 지긋한 거대한 몸에 커다랗게 외양으로 위압하지만 순하디 순한 사냥개를 끌고 산보를 다니는 가발의 사나이 김제혁 씨 같은 사람들이 이 몸집 작은 아이한테 “동지”라고 부르기 머시기하니까 그냥 “자근딸램!”하던 것이 모든 시장 사람들의 입에 붙어버린 거다.&nbsp; 이제 20대 초반의 동지가 가게 자근포차에 들어서는 걸 딱 엄마가 보더니 하시는 말씀이:&nbsp; “너 어디서 처자고 지금 기어 들어와, 기어 들어오길.”&nbsp; 동지가 냅다 내쏜다.&nbsp; “문자 보냈거든? 무려 어젯밤 9시에?”&nbsp; 흠. 문득 궁금하다. 동지가 어젯밤 9시를 “어젯밤 아홉시에?”라고 했을까, “어젯밤 구시에?”라고 했을까? 어떤 경우라도 하여간 동지, 이 기지배가 외박하고 온 건 맞지? 그러나 기대하지 마시라. 진짜로 친구 집에서 공부하고 왔다. 시험이 낼 모레다. 비록 엉망으로 망칠 예정이지만.&nbsp; 이 자근포차는 월영시장에서 아주 유명하다. 매일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서 다음 날 새벽 3시에 문을 닫는다. 설재인은 “아침 열 시에 문을 열어서”라고 할까 “아침 십 시에 문을 열어서”라고 할까? 아니면 자기는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서”라고 쓰지만 독자는 “아침 열 시에 문을 열어서”라고 읽어 주거나, “아침 열 시에 문을 열어서” 또는 “아침 십 시에 문을 열어서”라고 읽거나 마음대로 하라고 신경쓰지 않거나, 어떤 경우일까? 아마 자기 소개에 “사람을 염탐하는 몹시 음침한 사람”이라고 한 걸 보니까 신경 안 쓰는 거 같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nbsp; 이 자근딸램도 불만이 많다. 20여 년을 불만 가득한 생으로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애정부족. 자신이 스스로 진단한 병명이다. 동지가 어려서부터 부부는 아이 돌보는 건 다음으로 하고 아침 십 시부터 새벽 삼 시까지 문을 열기 위하여, 그것도 조리된 가공음식이 아니라 물론 햄 소시지 같은 반찬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을 직접 조리해 장만한 음식을 내놓는 장사에 말 그대로 매진해왔기 때문이다. 만일 동지 자신이 다른 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부모의 지극한 관심 아래 성장했다면 자기가 이 모양 이 꼴로 컸겠느냐, 하는 게 불만 가운데 상 불만.&nbsp; 근데 동지한테는 완전 골통 삼촌이 한 개 있다. 맞다 한 개. 멍멍이와 유사한 수준의 인간을 칭한다. 어떻게 딸 하나를 만들어 이름을 동윤이라고 하는데 지금 열 살. 학교도 보내지 않아 글씨도 쓸 줄 모른다. 때를 맞춰 마누라가 날랐는지 아이를 데려와 그냥 자근포차에 넘겨주고 가버렸다. 생각해보니 자기도 자기지만 동윤이한테 비교할 바가 아니다. 동윤이는 동지하고 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는 이 작품의 결말이 동지하고 동윤이가 화해하는 장면이 되겠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까?<br>&nbsp; 이렇게 주로 빈민들로 구성한 월영동. 공항과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수준이라 고도제한이 있어 고층 건물도 없고, 높은 아파트도 없는 동네. 1분에 비행기가 몇 대나 저공비행하는 통에 무지 높은 데시벨의 항공 소음과 함께 “언제나 비행기가 성교하는 인간처럼 배를 보이며 지나”가는 동네이니만큼 빈민으로 구성된 곳에 유일하게 사람들이 비비대는 곳인 월영시장. 당연히 땀냄새, 개 오줌냄새, 음식냄새, 건강원 개소주, 고양이소주, 염소소주, 장어소주의 배릿한 냄새, 요즘말로 빈티지, 옛말로 구제 옷에서 나는 곰팡이내 같은 것도 나겠지만, 역시 돋보이는 건 비행기 소음 아래에서 단련된 사람들의 지극히 우렁차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악쓰는 소리겠다.&nbsp; 삶의 악다구니. 그러나 건강하기도 하다. 남을 돌볼 줄 알고, 오지랖 넓다는 지청구를 들을지언정 남의 사정 좀 알아야겠고, 당연히 참견질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오래 전에는 흔히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술 한 잔도 나눌 수 있고, 가끔은 멱살을 쥐어 틀고 쌈박질도 할 수 있지만 딱 그만큼 화해술도 한 잔씩 하던 사람들. 그들을 볼 수 있는 21세기 우리나라에 몇 안 남은 동네. 월영시장이다.&nbsp; 한 배에서 나온 씨 다른 자매 형제 같은 작품들만 읽다가 설재인을 읽으니 그거 참 괜찮다.&nbsp; 눈에 힘을 줘서 다른 설재인도 또 읽어봐야겠다. 이제 전성기를 시작했으니 더 좋은 작품,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다. 글만 쓰면 된다. 영업은 독자가 한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59/32/cover150/89320426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59327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1939년 세상의 시계가 멈출 무렵 지중해 - [공포로의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1176</link><pubDate>Thu, 18 Jun 2026 0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411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70X&TPaperId=173411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35/20/coveroff/89329127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70X&TPaperId=173411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포로의 여행</a><br/>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02월<br/></td></tr></table><br/>.&nbsp; 에릭 앰블러, 재미있는 사람이다.&nbsp; 1909년 런던 근교에서 인형극을 하는 뮤직홀 아티스트 부부의 아들로 나서 런던 소재 공과대학에 들어가 배우다가 중도 작파하고 전기회사의 엔지니어 연수생으로 잠깐 일했다. 그러다가 애초에 부모한테 물려받은 예술인의 유전자가 힘을 발휘했는지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어 점차 소설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nbsp; 20대에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그것도 때려치우고 파리에 가, 미국에서 온 패션 특파원 여성을 만나 1939년에 결혼해 19년을 살고 이혼했다. 1939년? 이해 8월에 나치 독일과 소련, 즉 히틀러와 스탈린이 서로 불가침 협약을 맺었는데, 평소 강한 반파시스트였던 에릭 앰블러는 파시즘의 확장을 가장 강력하게 저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소련인 줄 알았다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게다가 독-소 조약을 맺고 보름도 지나지 않은 9월 1일에 세상의 시계가 멈춘 일이 벌어진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 2차 세계대전이 터져버린 거였다. 물론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은 한 2년 전부터 전쟁의 기미를 알아채 너나할 것 없이 군비확장을 해오긴 했지만 정말로 전쟁이 이렇게 쉽게 터질 줄은 몰랐을 걸?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아직 프랑스를 향해 전차의 포구를 돌리지 않았을 무렵. 이때가 앰블러의 장편소설 &lt;공포로의 여행&gt;의 시간적 배경이다.&nbsp;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에릭 앰블러는 1940년에 이 소설 &lt;공포로의 여행&gt;을 쓰고, 1941년에 왕립 포병대의 말단 사병으로 지원 입대하니 그의 나이 32세. 이후 사진 부대를 거쳐 전쟁이 끝나고는 육군 영화 및 사진 부대장 중령 신분으로 제대했다.&nbsp; 이러니 소련에 대해 감정이 좋을 수 없을 터. 기껏 믿었다가 발등을 찍힌 경우니까 그냥 반공주의자보다 더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앰블러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1951년부터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지금은 모르겠고 당시엔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고.&nbsp; 이이의 다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한 책으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 248번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이 있다. 여태 읽은 줄 알고 그냥 지나친 책인데, 안 읽었다. 다음에 읽어야지.<br>&nbsp; &lt;공포로의 여행&gt; 역시 스파이 소설. 독일과 튀르키예, 소설 속에서는 “터키”의 스파이들이 출연하지만 주인공은 스파이가 아니고 앰블러처럼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마흔 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성, 그레이엄이다. 그런데도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이의 직장이 “카터 앤드 블리스 컴퍼니” 영국의 거대 무기 제조회사이며, 무기 가운데 대포 관련 분야의 꽤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각종 대포를 다 연구한다. 소설 속에서는 한때 전쟁을 벌였지만 지금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해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터키 해군의 함포 성능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다. 회사의 핵심 멤버답게 높은 연봉을 받고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의 아름다운 집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어여쁜 아내 스테퍼니와의 사이에 토끼 같은 아이들을 두고 있다.&nbsp; 1939년 9월이 왔다. 이건 그레이엄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만 더 많은 업무를 해야 한다는 뜻만 있었을 뿐. 그래 영국-터키 조약 3주 후에 앞에서 말한 프로젝트 건으로 터키로 출장을 가게 된 것. 목적은 터키 해군의 함포와 어뢰를 재무장하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소련은 터키의 해군 무장 강화를 좋아하지 않았겠지?&nbsp; 하여간 그렇게 그레이엄은 터키에 갔고, 업무를 다 마쳤으며, 이제 다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귀국을 해야 했는데, 때를 맞춰 터키에 큰 지진이 나 1주 전에 터키 갈리폴리까지 갔다가 이스탄불로 되돌아온 터였다.<br>&nbsp; 억지로 잠깐 이스탄불에 머물러야 하는 그레이엄은 왕짜증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집에 돌아가서 스테퍼니와 함께 1월 1일, 신년을 맞아야 하겠기에. 그러려면 내일 당장 기차를 타고 다시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이제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nbsp; 이스탄불 현지에 무기회사 “카터 앤드 블리스 컴퍼니”와 터키 정부의 중개인이 있다. 코페이킨. 1924년에 러시아인들 6만5천 명과 함께 이주해온 백군 출신으로 보인다. 카드놀이 사기꾼, 매춘굴 공동운영, 군복 공급 계약자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온, 약삭빠르고 잔꾀에 능한 인물이다. 코페이킨은 그레이엄의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을 자신이 접대해야 한다고 고집이다. 저녁은 물론이고, 내일 새벽까지 이미 르 조케 카바레의 제일 좋은 좌석을 예약했다고 알렸다. 내일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레이엄은 일찍 호텔로 가서 자고 싶지만 이를 물리치기 어렵다.&nbsp; 레스토랑과 카바레. 당연히 사건은 카바레에서 시작한다.&nbsp; 카바레의 한 구석에는 파트너 없이 온 남자 손님 접대를 위한 여성들이 앉아 있다. 코페이킨이 보기에 그레이엄이 이런 방면으로는 잼병이라 자신이 여성들한테 먼저 접근해 알렉산드리아의 매춘부 출신이지만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마리아를 데려온다. 그레이엄이 술도 한잔 하고, 시간이 좀 지나 마리아와 함께 춤을 추게 되었을 때, 마리아가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바에 앉은 구겨진 양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남자가 계속 그레이엄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전혀 감이 없는 그레이엄은 이를 무시한다. 춤을 추며 바로 접근해 그 남자를 관찰해보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저 코딱지 만한 놈이? 마리아가 다시 말한다.&nbsp; “당신이 더 강하겠지만 등에 칼이 꽂히면 그걸로 몽땅 끝나는 거랍니다.”&nbsp; 194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건 틀림없이 복선이겠지? 맞다. 구겨진 양복의 남자의 이름은 페토레 바나트. 전문 킬러. 소피아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알려진 독일 스파이 뮐러에게 고용되어 1주일 전에 갈리폴리에서 그레이엄을 칼로 살해하려다 아주 약간의 시간 차이 때문에 실패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확 구겨져버린 프로페셔널 청부 살인자이다.<br>&nbsp; 하여간 그건 나중 일이고, 카바레 르 조케에서 그레이엄은 또 한 명의 여성을 만나니, 이 밤의 쇼 가운데 하이라이트인 커플 댄스의 주인공 조제트. 호세와 계약상 혼인 관계에 있고, 여기서 말한 계약은 비즈니스 상 계약이라는데 소설이 끝날 쯤에 알게 되는 바, 포주-매춘부의 비즈니스와 유사하다.&nbsp; 문제는 조제트가 겁나게 아름답다는 것이지.&nbsp; 하여간 카바레에서는 새벽이 될 때까지 즐겁게 놀기만 한다. 눈매가 맵고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마리아가 2차 가자고 하는 걸 좀 많은 팁과 함께 기분 나쁘지 않은 말로 거절한 그레이엄은 코페이킨의 차에 타고 자기가 묵는 페기 가street 애들러 팰리스 호텔로 들어간다. 1939년 터키 호텔에서는 아무리 유명호텔이라 하더라도 늦은 밤에는 엘리베이터가 가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어두운 계단을 올라 3층 자기 방에 도착해 열쇠를 돌려 열고 방에 들어가 오른손으로 조명 스위치를 더듬는 순간 방 저편 어둠속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벽의 회 조각이 파박, 떨어졌으며, 두번째 총성이 들렸을 때는 하얗게 달군 쇠막대가 그레이엄의 손등을 지지는 느낌이 났다. 이어서 다시 한번 섬광에 이어 총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3층 창문을 통해 방에서 탈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군지는 당연히 모른다.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nbsp; 그레이엄은 곧바로 호텔 부지배인을 호출하고, 의사가 도착했으며, 주인공이니만큼 초장이니까 총알이 손등에 가볍게 스치기만 해 응급처치와 붕대를 감는 것으로 끝났다. 이어 도착한 지배인이 모든 편의와 비용을 대겠으니 호텔의 명성을 위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뭐 당연하지.&nbsp;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코페이킨. 그가 그레이엄을 싣고 다시 모처로 데리고 갔다. 터키 소속의 일종의 정보부대. 대장이 하키 대령. 하키 대령은 내일 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면 그레이엄, 당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앞에서 내가 열라 이야기한 그레이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대신 하키 대령이 마련한 귀국행은 허름한 증기선. 화물 운송을 전업으로 하되 승객 몇 명에 한해 저렴한 비용으로 실어다 주는 배 세스트리 레반테호였다. 모든 스토리를 알게 된 그레이엄이 세스트리 레반테 호에 올라, 선실 담당 승무원이, 코페이킨이 그레이엄에게 준 리볼버 권총이 들어있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승객용 문으로 들어서고, 그레이엄이 뒤따라 들어가 작은 선실 5호실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 스파이 극은 시작한다. 리볼버 권총? 코페이킨이 주었다고? 소설에 나와 있으니 언젠가는 한 번이라도 쏘겠네? 글쎄. 살다보면 혹시 안 그런 날도 하루쯤 있지 않겠어? 확인은 당신이 하시라. 비록 품절을 넘어 절판 상태이긴 하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35/20/cover150/89329127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35200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노터봄의 과제, 죽음과 길 떠남 - [여우들은 밤에 찾아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9319</link><pubDate>Wed, 17 Jun 2026 05: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93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7576&TPaperId=173393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82/65/coveroff/89546775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7576&TPaperId=173393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우들은 밤에 찾아온다</a><br/>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03월<br/></td></tr></table><br/>.&nbsp; 여덟 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2009년에 출간한 책이니 노터봄의 나이 76세 때. 계유생이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지금 92세네.&nbsp; 나이 일흔여섯이면 이제 죽음이 보이려나?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근데 가끔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는 한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겠구나. 뭐 이런 생각. 가끔은 얼른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nbsp; 나는 전혀 들춰보지 않는데 노터봄은 가끔 앨범을 넘기는 모양이다.&nbsp; 어떻게 영정사진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젊은 시절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는 의견이 꽤 많다. 더 보기 좋으니까. 몇 살 때 찍은 거? 너무 젊으면 또 그러니까 한 마흔에서 쉰 사이가 좋을 듯하단다. 난 싫다. 지금쯤 찍은 게 더 좋다. 마흔에서 쉰 넘어까지 예순에도 너무 뚱뚱했다. 지금 살이 쏙 빠지니까 보기 좋다. 쪼글쪼글해도 마음에 든다. 뚱보들이여, 무지 힘든 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살 좀 빼 봐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입던 옷 다 버리고 새 옷 사야 해서 돈이 좀 든다. 살 빼는 게 무지 힘들어서, 그래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진짜로 20kg 뺀 걸 자랑하고 싶다. 괜찮지? 귀엽게 봐줘.<br>&nbsp; 노터봄, 하면 여행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고향 네덜란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세계를 다니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마주치고, 어울리고, 사진찍고, 기억하고, 기념한다.<br>&nbsp; 제일 앞에 실린 &lt;곤돌라&gt;. 곤돌라니까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야기일 터.&nbsp; 막이 올라가면 암스테르담 출신 예술담당 프리랜서 기자가 베네치아에서, 캘리포니아 밀스밸리에서 온 1960년대 플라워파워 시대의 여자 아이와, 그리스 해안에서 만났다. 기자는 일종의 이혼 기념 여행이었다. 이혼한 것을 딱하게 여긴 친구들이 그리스 어느 섬에 있는 한 친구 소유의 집을 소개해주어 떠난 길이었다. 그 섬에서 만났다.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미국인. 열여섯? 열여덟? 뒤에 정확한 나이가 나오는데 열일곱이었다. 손과 팔에 12궁 별자리를 문신한 자칭 마법사 소녀. 마녀는 그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같이 자되 잠자리는 하지 않는 조건으로.&nbsp; 프리랜서 기자는 이혼남. 이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욕망이 끓었단다. 기자 입장에선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도 찜찜했겠다. 마녀의 머리를 잡고 키스를 했고, 입술을 떼자마자 마녀는 손으로 그를 밀어내고 마법의 힘인 것처럼 곧 잠에 빠져들었다.&nbsp; 그리스의 섬에서 며칠 지낸 기자와 마녀는 기차를 타고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 가서 하루 묵는다. 맥주집에서 슬로보비치라는 술도 마시고 빈 잔을 어깨 넘어 깨뜨려 우정을 쌓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기차에 올라 베네치아로 갔다. 어느 호텔에 묵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녀의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는 안다. 원양어선도 묶어둘 수 있는 선박 계류용 말뚝. 그 위에 올라 앉은 열일곱 살짜리 작은 아가씨. 여러 사진 가운데 한 장.&nbsp; 그러나 이것이 40년 전 이야기이다.&nbsp; 세월은 흐른다. 그간 암스테르담에서 청탁을 받아 글을 하나 썼다. 많은 글을 썼는데 하필이면 이 글을 미국에 사는 예전의 그리스-유고슬라비아-베네치아 마녀가 보고 읽었다. 네덜란드 화가,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그래픽 아티스트인 야코바 판 헤임스케르크에 대해 그가 기고한 평론을. 옛 아가씨도 간혹 기자를 생각해왔는데 마침 글과 이름을 만나니 반가웠겠지. 그래서 기자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속에는 사진도 두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마녀는 결혼을 했다가 이혼했으며 아들이 둘 있고, 야코바 판 헤임스케르크 같은 그림을 그리며 산다면서. 마녀의 얼굴은 명상 센터의 벽면에 걸릴 법한 얼굴의 여인. 집 인근의 수도원에서 큰 위안을 찾았으며 불교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왔다.&nbsp; 기자는 옛 시절의 마녀를 만나러 갔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드디어 만났다. 한순간 서로를 평가하는 번개같이 빠른 눈빛을 교환했으며, 극도의 날카로움이 담긴 내적 사진, 눈가 주름,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칼, 갑작스런 연민과 다정함을 부르는 세월의 흔적 또는 할퀸 자국을 확인했다. 그녀는 편지를 써야 한다는 암시를 받아 그렇게 했을 뿐 그가 정말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왔다. 와 버렸다.<br>&nbsp; 마녀를 만나고 시간이 더 지났다. 20년. 그동안 마녀는 죽었다. 기자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 베네치아에 왔다. 사진을 찍은 곳. 베네치아의 석호 계단. 마녀의 사진들 가운데 한 장을. 기자는 편지를 읽지 않은 채 석호에다 슬쩍 버렸다. 뒤에서 누군가 그걸 보고 말했다.&nbsp; “석호가 편지를 버리는 쓰레기통이로군.”&nbsp; 석호에다 편지를 버린 남자가 기자 한 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상 누구라도 비슷한 추억이 있었던 것이겠지.<br>&nbsp; 이렇게 죽음을 주제로 하는 작품 여덟 편. 그런데 “여우들은 밤에 찾아온다”고?&nbsp; 그렇다. 예전에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어둠 속의 두려움. 어둠 속에서만 찾아오는 당신에 대한 두려움. 이미 죽은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등장, 당신의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 모두 그냥 여우라고 해 두자. 죽음과 죽은 다음에 관한 책. 그리하여 여우는 밤에만 찾아온다고 할머니가 저 옛날 화롯가에서 말씀하셨지. 얘야, 여우는 밤에 찾아온단다. 그러니 얼른 자거라.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 자장….<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82/65/cover150/89546775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682656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탁월했던 미치광이 부르주아 남작님 - [비트겐슈타인의 조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7408</link><pubDate>Tue, 16 Jun 2026 05: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74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830272&TPaperId=173374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40/46/coveroff/k4428302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830272&TPaperId=173374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트겐슈타인의 조카</a><br/>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br/></td></tr></table><br/>.&nbsp;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두 권을 읽었는데 모두 10년을 훌쩍 지나버렸다. 두 권 가운데 &lt;소멸&gt;은 책을 붙들고 금요일 밤 꼬박 새워 읽었다는 것 말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lt;몰락하는 자&gt;는 하필이면 글렌 굴드와 동문수학하게 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천재 굴드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 정도로만 남아 있다. 둘 가운데 한 명이 아마 목매달아 죽어버리지? 이 수준이다. &lt;소멸&gt;은 독후감 쓰기 시작한 초기에 읽어서 작품의 정보도 제대로 써놓지 않았다. 당시에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조국인 오스트리아와 대판 쌈박질 한 번 하고 정나미가 뚝 떨어져 자기가 쓴 무슨 책을 오스트리아에서 출판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다. 그게 시간이 지나니까 아 씨, 나 죽기 전에 조국 오스트리아 땅을 밟지 않을 거야, 이렇게 희뿌연 기억이 자가발전을 해 여태 오해하고 있었고.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믿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록을 해 놓아야 하는 법이다. 일기를 써라. 일기 속엔 거짓이 없다고 할 수 없어도 제일 작은 거짓을 적었을 터이니 가장 정확한 기억일 터.<br>&nbsp;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국가대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5촌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 작가 본인. 이렇게 두 명이 주인공이고, 이 둘의 우정 주변에 있던 인물 몇 명이 조연으로 우정출연한다. 알다시피 베른하르트는 결핵을 품고 살았다. 하필이면 폐 근처에 있는 심장까지 좋지 않아 평생 고생한 거 같은데, 결국 1989년에 58세의 나이로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갔다.&nbsp; 죽기전에 병 때문에 황천길 제일 가까운 곳까지 갔다가 다시 온 경험이 있다. 빈Wien 서쪽에 드넓게 펼쳐진 빌헬미네 산지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하나는 베른하르트가 입원한 폐병 환자들을 위한 작은 구역인 ‘바움가르트너회에’이고, 넓은 구역은 ‘암 슈타인호프’라고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이곳 병동은 전부 남자 이름을 붙인 건물이어서 베른하르트가 길어야 한 두 달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판정을 받아 일생일대 큰 수술을 받은 곳이 헤르만 병동이었고, 하필이연 같은 시기에 약 5백미터 떨어진 암 슈타인호프의 루트비히 병동에 ‘수감’되어 악명높은 전기치료 같은 걸 감내하고 있던 이가 파울 비트겐슈타인이었다.<br>&nbsp; 파울이 베른하르트(이하 “토마스”)와 친하게 지내게 된 건 음악 때문이었다. 빈의 블루멘슈톡가세, 여기서 ‘가세Gasse’는 큰 길 말고 좁은 거리나 골목 같은 걸 칭하는 말로, 하여간 그곳에 음악에 대단한 관심, 아마도 프로페셔널한 비평을 할 수준의 소양이 있는 여성 이리나의 집이 있어서 토마스가 불쑥 찾아 갔더니 마침 카를 슈리히트가 지휘한 런던 필하모닉의 하프너 교향곡에 관해 이리나와 파울이 열라 재미있게 토론을 하고 있었나 보다.&nbsp; 책에는 슈리히트라고 성姓만 부르는데, 이이는 19세기에 출생해 20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구가한 지휘자이다. 나치가 집권하고 전쟁에 돌입하자 스위스로 몸을 피했다가 종전 후 주로 독일에서 연주한 걸로. 우리나라 클래식 골수팬들 가운데 이이가 연주한 베토벤을 제일 좋아한다고 떠드는 사람도 많다. 음악 포털 “고전은 가라”에 가보시면 꽤 모여 있을 듯.&nbsp; 이 슈리히트가 언제 죽었느냐 하면 1967년 1월. 그러니까 토마스는 폐병 병동에, 파울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죽은 사람이다. 하여간 토마스가 몇 년 전에 이리나의 집에서 자기도 무척 좋아하는 하프너 교향곡, 모차르트 K.385 공연을 직접 관람한 바로 그 공연에 대해 침을 튀었으니 방에 모인 세 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슈리히트와 모차르트와 K.385 찬양에 날밤을 새웠다는 거 아니냐.&nbsp; 흠. 나는 모차르트 교향곡 중에서는 딱 두 개밖에 없는 단조, 그것도 우연히 둘 다 사단조 교향곡인 25번과 40번이 좋던데 말이지. 특히 40번 3악장의 미뉴에트, 경쾌한 발랄함이라니!<br>&nbsp; 그런데 토마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하면, 뭐 독자야 작가가 하는 말을 웬만큼 믿을 수밖에 없지만, 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으로 말씀드리자면, 당대 최고 수준의 음악과 문학과 철학과 미술과 수학과 기타 등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뇌활동에 관한 한 거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인물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한 자”의 수준에 완벽하게 도달한 인물이다. 그리고 겸양의 말씀이겠지만 자신,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조금,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약간 덜 탁월한 자이고.&nbsp; 게다가 파울은 무기 제작 회사를 가업으로 하는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직접 상속자로 어마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백만장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젊음을 소진한 중년이었다가 나중에는 노년이 되고 결국 그렇게 죽는 인간으로, 살면서 노동이란, 그 많던 재산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들한테 다 나누어 주거나 사기도 당하면서 완벽하게 거덜이 난 상태에서 이때는 벌써 낼 모래 환갑상 받을 때인데 처음 보험회사 사무직으로 ‘취직 당해’ 근무해본 것이 유일하다.&nbsp; 음악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해 모든 오페라하우스의 시즌을 다 경험해보기 위하여 세계일주를 감행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쓴 &lt;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gt;에서 체르비네타 역과 모차르트의 &lt;마술피리&gt;에서 밤의 여왕을 노래한 미국 소프라노를 애인으로 두기도 했다. 자기가 언제나 묵을 수 있는 호수가 딸린 대지가 있는데, 호수 위에 수상 무대를 짓고 그 무대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R. 슈트라우스의 &lt;그림자 없는 여인&gt;을 공연하는 걸 결국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는 사람. 말러와 브루크너와 바그너 같은 대규모 편성을 좋아하다가 나중에, 내가 보기에는 너무 늦게 실내악으로 되돌아가 줄리아드 사중주단과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을 즐겨 듣게 되었을 때는 이 백만장자 거부가 방 하나에 부엌, 화장실과 작은 욕실이 달린, 언제나 고장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의 꼭대기에 씻지 않은 접시가 쌓인 산더미와, 빨래하지 않은 천들이 널부러져 무더기 지어 있는 욕실에서, 부자 친척이 입다 버린 고급 비단 옷을 입고 남의 눈에 띌 새라 장 본 것을 비닐 봉지에 담아 비척거리며 계단을 올라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 이때가 1979년.<br>&nbsp; 3년이 더 흘러 1982년.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자신이 말하기를 거의 유일한 친구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했던 1967년부터 1979년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이제 내가 읽었다. 2026년에. 그리하여 이들과 나 사이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배타적인 매개체, 시간이 놓여 있다.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감안은 하겠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다.&nbsp;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내 스타일을 버렸다. 메모하지 않았다. 대신 책갈피를 몇 장 꽂았다. 첫 번째 책갈피가 42쪽에 꽂혀있다.<br>&nbsp; “그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참으로 파울의 머리가 그리웠다. 그동안 수백 개의 다른 머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유감스럽게도 오직 앙상하고 황폐하기만 한 그 머리들 때문에 질식할 만큼 괴로웠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흔하게 마주치는 머리들을 상대하는 것은 다 자란 감자 알갱이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지루할 뿐이다.”<br>&nbsp; 그러니까 월등한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자기보다 눈썹만큼 더 월등한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한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아마도 지식계층) 사람들의 지능수준이 그저 다 자란 감자 알갱이 수준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이렇게 오만하게 살아도 된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정작 그렇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만약 진짜 있다면, 그 오만해도 되는 사람이 정말로 오만하게 살았을까? 오직 덜 떨어진, 좀 아는 새끼들, 혹은 아는 척하는 새끼들이나 이런 마음을 갖는 거 아냐? 여태 베른하르트 선생을 이렇게 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거 참 진정한 개 호로새낄세.&nbsp; 그런 토마스가 경애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젊은 시절을 되살려보는 토마스.<br>&nbsp; “그가 한때 전 유럽, 구 유럽뿐 아니라 신 유럽의 모든 최고급 호텔까지도 최고 신사의 신분으로 들락거렸던 사람이라는 것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한 수십 년 동안 빈 오페라 극장에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휘파람을 불어댐으로써 오페라 공연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던, 바로 그 당사자라는 것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중략) 자신이 몇 번이나 파리에 갔는지, 몇 번이나 런던과 로마에 갔는지, 샴페인을 몇 천 병이나 비웠는지, 여자들을 몇 명이나 유혹했는지, 읽은 책은 도합 몇 권이나 되는지를 헤아려보곤 했다.” (p.84)<br>&nbsp; 노동하지 않고 즐기기만 한 파울 남작 비트겐슈타인. 유럽의 귀족 자재이자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난 부르주아 꼭대기에서 자진해 비렁뱅이로 추락해 쓸쓸하게 죽은 자.&nbsp; 이 책의 목적은 117쪽에 직접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밝혔다.&nbsp; “내 친구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내 인상을 종이에 옮기는 것이 전부.”&nbsp; 스스로 자기 둘이 대도시 스타일의 우월한 자, 탁월한 자. 그래서 일반 대중을 다 자란 감자 알갱이, 감자 덩어리도 아니고 거기에서 부스러져 나온 감자 알갱이로 알고 평생 산 두 인간의 관계 이야기를, 우리 가운데 누구는 돈 주고 사서 읽었고, 누구는 빌려 읽었다.&nbsp; 내 스마트폰에 깔린 앱 북적북적에 별 셋 반을 올렸다. 탁월한 자 가운데 한 마리인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한 문단짜리 글이 몰입감 있게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에만 준 별점이다. 내용에 관해서는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토마스와 파울, 너희들 만의 샹그릴라. 그 속에서 행복하라. 나, 감자 알갱이 하나는 개똥을 밟아도 땅 위에 좀 더 있을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40/46/cover150/k4428302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440468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 [남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5571</link><pubDate>Mon, 15 Jun 2026 0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55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3355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off/k7520340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4089&TPaperId=173355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극</a><br/>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키건의 데뷔 소설집을 세번째 키건으로 읽는다. 이이가 이렇게 시작했구나.&nbsp; 이 책을 출간한 것이 서른한 살 때. 키건은 열일곱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건너가 로욜라 대학에서 공부했다. 젊은 시절에 6~7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첫 소설집 《남극》에 실린 작품의 절반 정도는 아일랜드, 절반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1960년대생 아일랜드 여성의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즉 거의 모든 남성은 찌질하거나 폭력적이고, 세상의 여자들은 그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해 분노하지만 견딘다. 아일랜드, 바람이 많이 불고 유사이래 기근이 많이 들어 늘 궁핍했던 섬나라.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잉글랜드 옆에 있어 늘 침략당하고 땅을 빼앗기며 굶주림에 허덕였던 곳.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폭력도 혀용 또는 묵인해야 했을 터이고, 이런 땅에서 여성은 늘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 굶주림과 전쟁이 있는 곳에서 여성은 없다. 폭력 때문이다. 폭력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까. 클레어 키건의 아일랜드는 21세기, 세계 1위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가장 부유한 나라 아일랜드가 아니라 여전히 척박한 토양 위에서 궁상에 전, 삭아버린 땅이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아일랜드. 그리하여 날씨에도 딱 맞게 키건의 소설들은 그로테스크하다. 간결하면서도 서늘한 문장이라서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br>&nbsp; 클레어 키건, 하면 나는 제일 먼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연상한다. 앞에서 말했듯 1960년대생 아일랜드 여성이라면 정말로 그런 아버지를 겪었을 수 있다. 비록 키건의 다른 책에서 나오는 개썅노무 아버지처럼 친 딸을 성폭행하는 개자식들부터 시작해 동네의 온갖 똥개새끼들 같은 아저씨들, 심지어 상습적으로 동네 소녀들을 성폭행하는 가톨릭 사제 새끼까지 밀림의 왕국이나 세렝게티-마사이마라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거기에 속수무책 당하고 마는 여성들.&nbsp; 키건을 읽으며 불편했던 것은, 폭력/완력 빼고 형편없는 남성들의 등장이 그랬듯이,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그냥 감당하고 마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수동성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남극》의 &lt;자매&gt;에 등장하는 둘째 딸 루이자처럼 십대 후반, 적어도 이십대 초반 정도라면 더블린에서 잉글랜드행 배를 타고 떠나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지.&nbsp; 떠나지 않더라도 왜 기어오르지 못했을까? 가부장적 아버지/남편 그리고 폭력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반란을 꾸미지 않으면 언제나, 영원히 그 올가미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걸?<br>&nbsp; &lt;남자와 여자&gt;에서는 기어오른다. 아내가 남편한테. 그것도 절대 남성우월주의자이자 더 할 나위 없는 가부장적인 남편임에도.&nbsp; 아빠는 여간해 움직이지 않는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집의 여자들, 그러니까 아내와 딸 한테는 운전도 하지 못하게 한다. 어딜 여자가 차를 운전해? 그냥 옆에 타고 있다가 차가 나갈 때 집 문을 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내/딸이 무도회용 드레스를 입었건 청바지를 입었건 간에, 문을 열고, 차가 나간 다음 다시 문을 닫고, 다녀와서는, 역순으로, 다시 문을 열고 차가 들어온 다음에 다시 닫아야 마땅하다. 대문과 집까지 거리가 있으니 다시 남편의 옆자리에 타, 남편이 운전하는,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 와야 한다.&nbsp; 오빠도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차 안에 흘린 염소똥과 양똥도 치워야 하고, 외양간의 허드레 일도 해야 하는데 공부 잘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생 구라인 오빠는 자기 방에서 숙제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딴 짓만 하고 있다. 저녁밥을 차려놓고, “오빠한테 나와서 밥 먹으라고 해라” 엄마가 말하면 여동생이 가서 “내려가서 먹어. 이 망할 게으름뱅이 새끼야.” 하고 말한다.&nbsp; 이 가족이 송년 춤파티에 갔다. 아버지는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를 안고 신나게 뺑뺑이를 돌지만 엄마는 한 구석에서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게다가 마지막 순서인 경품 뽑기에서 실수도 해 이웃들한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nbsp; 집에 올 때 차 안에서 아빠가 엄마한테 이 말을 하며 비웃기도 하고 약 올리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자기도 덩달아 창피를 당한 거 같아 열받은 게 틀림없다. 집에 왔다. 엄마더러 내려서 대문을 열라고 한다. 엄마는 차에서 안 내린다. 그냥 버티고 앉아있다. 뒤에 남매가 쳐다보고 있으니 아빠도 답답하겠지. 분명 잔뜩 화가 나서 자기가 궂은 날씨에 내려 직접 문을 여는 순간, 재빨리 운전석으로 넘어간 엄마가 차를 운전해 집까지 부웅, 아빠더러 비오는 진흙탕 길을 걸어오라는 듯이 출발해버렸다. 엄마는 TV에서 유심히 운전 교습하는 방송을 보아왔던 거였다.<br>&nbsp; 겨우 이것 가지고 가정 속 반란이야? 라고 하지 말라. 태풍도 찻잔 속의 작은 흔들림으로 시작하는 거다. 한 편 더 있다. 어떤 작품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nbsp; 책 뒤표지에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라는 카피가 쓰여 있다. 위안? 아일랜드 남자들은 여자한테 위안 받기를 원했던 모양이지? 그리고 여성들은 그런 찌질하고도 후지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남자들한테 기꺼이 위안을 주었던 모양이고. 이게 168페이지 &lt;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gt;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카피 가운데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가 빠져 있다. 이 문장의 전제는 남자 또는 아일랜드 또는 키건이 바라보는 세계의 남성들이 모두 자신을 아이처럼 보살펴달라고 요구했다는 거다. 안 그랬는데도 여자가 자진해서 보살펴주었으면 스스로 자초한 일일 것이다. 세상의 남자들이 정말 나 좀 보살펴줘, 이렇게 졸랐을까?&nbsp; 지금 읽고 있는 발자크의 &lt;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gt; 79쪽에도 비슷한 광경이 나온다. 주인공 쥘리앵을 사랑하는 (글자를 쓸 줄도 모르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에스테르 앞에 스페인 사제가 나타나 쥘리앵과 떨어져 수녀원으로 가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으라고 한다. 그랬더니 에스테르가 신부한테 말하기를,&nbsp; “그러면 누가 그를 위로해주나요?”&nbsp; 신부가 대답하기를, “그가 어떻다고 당신이 그를 위로해야 하지?”&nbsp; 남자가 여자한테 위안/위로 받기를 원한다고? 좀 웃기다. 합의한 섹스를 원하기는 하지. 물론 “모든” 남자가 아닌 “대부분의 남자”를 일컫는 거다.<br>&nbsp; 그런데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앞의 단편 &lt;남자와 여자&gt;에 주인공 화자 ‘나’가 이렇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br>&nbsp; “나는 다른 집 아빠들이 아내의 외투를 들어주고, 문을 잡아주고, 가게에서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필요 없다고 해도 초콜릿과 잘 익은 배를 사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br>&nbsp; 그렇군. 하필이면 우리집 아빠 새끼만 저 지랄이고 다른 집 아빠 님들은 안 그렇단다. 주인공이 하는 얘기니까 당연히 맞는 말일 듯. 키건의 소설을 읽고 개썅노무 아빠 두어 새끼들을 아일랜드 또는 세상 전체 아빠로 생각하면 오산이겠군. 당연하지. 아주 선량하거나 악마 같아야 소설의 주인공 자격이 있을 터이니. 그러니 사실 별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에서 이왕이면 주인공이 천사보다 악마인 것이 훨씬 잘 팔리겠지. 그러면 같은 값이면 악마를 캐스팅하지 뭐. 그건 좋은데 가끔 순진한 독자들은 그걸 일반화시킨다는 말이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반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당신 의견이 옳다. 다수의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은 사실 주인공으로 고려할 만하지 않다고 주장했을 뿐이다.&nbsp; 차라리 눈비오는 진흙길에 아빠를 놔두고 떠난 엄마처럼 반란을 획책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괜히 표제작 &lt;남극&gt;의 첫 문장처럼 허튼 짓 해서 코 깨지지 말고.&nbsp;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nbsp;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대단한 거 있어? 여자나 남자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79/65/cover150/k752034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79650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사랑의 이중창 Top 5</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3449</link><pubDate>Sun, 14 Jun 2026 0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344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402738601&TPaperId=17333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10/52/coveroff/894783043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692737542&TPaperId=17333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60/coveroff/28124361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102736804&TPaperId=17333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8/49/coveroff/205243675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232738623&TPaperId=17333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1/coveroff/230243663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622737307&TPaperId=17333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6/coveroff/2882436080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3449'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제 노트에 약 140편의 오페라 작품에 나오는 사랑의 듀엣에 관한 메모가 있습니다. 이번 세기 초에 쓴 거니까 벌써 20년도 넘은 잡글들이군요. 오늘은 일요일 아침을 맞아, 제가 좋아하는 사랑의 이중창 가운데 다섯 곡을 골라 소개해볼까 합니다.<br><br>5. 푸치니, &lt;나비 부인&gt;<br><br>푸치니한테는 진짜 오페라스러운 무엇인가가 있다. 가슴이 저릿저릿, 등뼈부터 소름이 쪼옥 끼치는 감칠맛. 사르비아 꽃을 따 쪽쪽 빨아먹을 때의 그러한 미각을 푸치니에게서 느낄 수 있지 아니한가.<br>일본 소녀 쵸쵸상. 15세 아가씨니까 소녀라고 불러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거다.그녀가 미국인 핑커톤한테 시집가는 날. 쵸쵸상은 자기가 가진 거의 모두를 포기하고 기꺼이 미세스 핑커톤이 되기로 한다. 근데 가문에 본조라고 하는 이름의 아저씨가 있다. 일본은 잡신의 나라. 그만큼 미신이 창궐하는 동네도 드물다. 때때로 본조를 불교의 승려로 연출하는 오페라도 있는 듯한데, 그거 정말 무식한 짓이다. 하여간 본조 아저씨가 보니, 조카딸 쵸쵸가 자기가 믿는 잡신을 버리고 기독교 나라의 서양놈한테 시집을 가니, 이건 분명히 배교 행위라, 결혼식장에서 쵸쵸상~ 쵸쵸상~ 조카딸을 불러 호통을 치며 깽판을 부린다.핑서방이 그 경황을 당한다. 이것들, 깝데기 노란 야만스런 놈들이 시방 무슨 짓거리들이야.999년 동안 임대를 한 집에서, 백인의 아내로 맞아준다면 엎드려 칭송은 못할 망정 깽판을 쳐? 에라 이 무식한 것들아, 당장 내 집에서 꺼지지 못하겠느냐! 입에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뛴다.집 주인이 가라는데 어떻게 해. 가야지.근데, 쫓겨나는 사람들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턱이 없다. 본조 뿐만 아니라 친척들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쵸쵸상, 우릴 버린 년, 네년의 뱀같은 영혼은 끝내 정처없이 떠돌고 말리라!악담을 하는데, 아.... 오페라에서 악담과 저주는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다는 거. 이거 이제는 다들 아시는 바, 비극을 예언했구나.<br>그리하여 쵸쵸상 친구들과 친척들이 몽땅 무대에서 쫓겨나가자 핑서방과 쵸쵸상만 무대에 남아, 정말 달착지근하게 노래하는 이중창.으아.... 난 &lt;나비 부인&gt; 가운데 이 장면이 제일 좋다.좋아?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지.이제 바야흐로 시작하는 첫날 밤의 행사.둘은 더할 수 없이 감미로운 세속의 사랑노래를 하며 신방으로 드는데, 아이구... 짠한 것.열 다섯 살의 어린 동양 애가, 털복숭이 건장한 서양인한테, 아이구.... 을매나 아팠을꼬...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br>3번은 발췌반 말고 전곡반으로...<br><br><br><br><br>4. 베르디, &lt;오텔로&gt;<br><br>사랑.... 어렵다.그게 두 명이 하는 게임인데다가, 남자는 여자를 죽어도 모르고, 여자 역시 남자는 까무라쳐도 알지를 못한다. 게다가 속 마음이란 것이 곱창 뒤집어 헹구듯 홀딱 까놓고 보여줄 수 없는 거라서 복장 터지는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 여기 까지는 보통의 선남선녀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당연지사이자 사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숙명인데, 둘 중 하나가 또한 치유할 수 없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젠 정말 뒤집어지는 일만 남았다.<br>한 쪽이 심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쌍.... 물론 그 컴플렉스를 극복해서 잘 살고 있는 많은 커플을 제외한 나머지 지극히 일부의 경우엔....이해는 신뢰를 낳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을 낳고, 사랑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눈물을 낳고, 눈물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파멸을 낳으니, (무슨 성경 구절 같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사랑의 잘못된 진화는 질투와 눈물과 파멸?<br>그걸 셰익스피어는 &lt;오셀로&gt;에서 진짜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사랑의 편지가 잘못 배달된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가 자신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그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의식의 혼돈을.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지독한 중독 증세를 보여준다. 사랑 자체가 사실은 중독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그 중독 증세로 인해 오해의 골은 깊어가고, 사랑 또한 유클리트 물리학이 적용되는지라, 뉴톤의 제 3법칙에 따라 오해가 깊어질수록 반작용으로 사랑 또한 깊어지니 이 아니 아이러니일소냐.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일 수밖에 없는 건, 일찌기 최무룡과 김지미의 말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불멸의 잠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니,죽음 만큼 확실하게 헤어지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br>우리가 &lt;오셀로&gt;에서 배우는 교훈은?1. 편지 심부름은 똘똘한 놈한테 시키자.2. 손수건 함부로 버리거나 내돌리지 말자.3.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 얘기할 때 눈치 보자.4.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는 죽어도 하지 말자.5. 열 받을수록 한 번 더 솔직히 얘기해보자.... 뭐 이런 건가?<br>어쨌거나, 베르디의 &lt;오텔로&gt; 가운데 1막 마지막 장면을 올리면 좋은데, 그건 그동안 너무 많이 붙인 거라 식상해서, 오늘은 로시니의 &lt;오텔로&gt; 마지막 씬, 바야흐로 데스데모나 혼자 자는 방에 오텔로가 몰래 들어와, 와따 그 년, 죽이려고 보니까 뒤집어지게 이쁘기도 하네... 아리아 한 방 때린 다음, 데스데모나가 잠에서 깨 죽을 때 까지의 이중창, 그야말로 목숨 건 사랑의 장면을 올리려다가 그냥 베르디로 가자. 내 맘이니까.<br>1번 토스카니니, 2번 카라얀 판은 평생 듣는 인생반. 3번은 젊은 시절 황금의 델 모나코가 어땠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만든 판.<br><br><br><br>3. 모차르트, &lt;돈 지오반니&gt;<br><br><br>&lt;돈 지오반니&gt;의 사랑스런 이중창이다. 너무 사랑스러워 후세 폴란드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도 이 주제를 사용하여 초기에 관현악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쇼팽의 경우엔, 작곡가 신출내기로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뒷소문이 횡행하기도 하지만.바로 돈 지오반니와 촌년 체를리나의 이중창 "내 손을 잡아요."<br>입술과 혓바닥에 참기름을 좌악 바른 돈 지오반니. 결혼식 예비 잔치에서 눈에 확 들어온 신부 체를리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자빠뜨려 보려고 꿀꺼덕, 침을 삼킨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휘황찬란한 성을 가리키며, 저게 내 집이여. 나하고 살지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넌 저 멋있는 성의 안주인이 되는 거야. 평생 호강하면서 사는 건 두 번 얘기하면 잔소리지.무지랭이 체를리나가 보기에도 이거 잘 하면 팔자가 확 필 찬스다. 근데 신랑으로 예비된 마제토 보기가 조금 거시기하고, 귀족 놈들이 자기 같은 농민 계급의 아가씨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겨 딱 한 번 맛을 보신 다음에 나 몰라라 하고 뻥 차버려, 시집도 안 간 아가씨 배가 남산 처럼 부풀어 오른 것을 여러번 본 바라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다.이 참에 팔자를 한 번 고쳐봐? 더군다나 이렇게 잘 생기고 매너도 죽여주는 귀족 아저씨가 결혼을 하자니 이거 참....갈팡질팡. 그러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지오반니 나리의 달콤한 속삭임이라니. 으이그....<br>1번 푸르트뱅글러는 음질을 견딜 수 있는 분들만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br><br><br><br><br><br>2. 핸델, &lt;롱고바르디의 왕비 로델린다&gt;<br><br>예전 롬바르디아 왕국에는 참으로 한심한 남자, 베르타리도가 왕을 먹고 있었다. 아무리 한심하더라도 역시 오페라의 주인공답게 재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여자 고르는 솜씨. 베르타리도는 롬바르디아 전 국토를 뒤져 자기 영토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숙한 여자를 뽑더니, 다른 나라의 왕자들하고는 달리 온갖 정성을 바쳐 소위 연애를 했다. 왕자가 연애를 해? 당시엔 필요없는 절차였다. 하지만 여자 고르는 재주 딱 하나밖에 없는 베르타리도는 자기 전공과목을 십분 살려 석삼년 동안 그 처녀, 로델린다한테 공을 들였다.왜냐하면, 로델린다가 당대가 요구했던 여인의 덕목들을 정말로 잘 지킬 수 있는여자인지 관찰하기도 하고, 한 눈에 반했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심성이 자기한테 찰떡처럼 들어맞아 소위 성격차이로 인한 불화가 생기지 않을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진 다음, 이 여자 로델린다야말로 일국의 국모로서도 손색이 없고, 한 남자의 지어미로도 까탈을 잡을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었던 거다. 그러니 전공이 여자 고르기였다는 건 베르타리도가 사실은 무척 소심한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기도 하는 것.<br>베르타리도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마누라 고르기를 무사히 마친 다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자기 전공과목이 세상을 무사히 살다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데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냥 태평세월이겠거니, 맨날 하는 일이라곤 예쁜 마누라 궁둥이만 슬슬 쓰다듬는 것 뿐이었으니 나라 꼬라지가 잘 될 턱이 없었다. 설사 태평성대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언제나 긴장하게 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황룡이 쇠하는 기운이 뻗친다는 철칙을 무시한 군주의 죄를 물을 수밖에 없으리.<br>근데 반역을 일으킨 그리모알도 백작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 처음부터 그는 제대로 된 반역도 되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리모알도가 왜 반역을 일으켰느냐 하면, 억눌리고 핍박받고 무거운 세금을 짊어진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능하지만 그렇다고 나라에 망조가 들 만큼은 망가지지 않은 롬바르디아의 재건을 위해 힘줄을 돋워 자신 한 몸을 바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나라가 호시타탐 롬바르디아를 넘보고 있어 이대로 있다가는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 총각 때부터 늘상 군침을 흘리던 로델린다의 속고쟁이를 어떻게 한 번 벗겨볼 수 있을까 하는 정념 하나 때문이었다. 원래 꿩 대신 닭이라고 로델린다가 왕한테 시집을 가버리자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모 하나는 빠지지 않는 에두이제로 만족하고 맘잡아 살아보려 했던 그리모알도. 이제 꼭지가 돌아 베르타리도건 에두이제건 간에 모두 제거해버리고 그저 애 하나 딸린 로델린다 만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켜버렸던 거다.반역이 어떻게 됐느냐고?반역의 마지막 삼각지 전투에서 최정예인 친위대를 전멸시켰는데 시체들 틈에 찬란한 갑옷을 입은 베르타리도 왕도 누워 있었다 전한다. “전한다”는 무슨 뜻인가. 베르타리도를 죽여 그 시체를 가져온 병사에게 후한 상급을 내리겠다는 모사 그리발도의 명령을 좇다보니 이미 죽은 베르타리도 시체 주변의 반역군들이 너도 나도 베르타리도의 시신을 차지하기 위해 난도질을 쳐, 왕의 갑옷은 확실하지만 갑옷을 입었던 것이 과연 베르타리도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였다.하여간 왕의 갑옷이 시체더미에서 발견되었으니 국상은 치뤄야 하는 법. 로델린다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의 갑옷과 살점 몇 개를 수습해 왕릉도 아니고, 예전에 롬바르디아를 침략했다가 죽은 훈족의 왕 무덤 옆에다가 조그만 봉분을 세우고 망해버린 왕조 앞에서 스스로 혓바닥을 콱 깨물어 죽어버리려 했다가… 참았다.이 상황에서 오페라는 시작한다.근데 사실은 베르타리도가 죽지 않았다. 충성스런 신하가 왕의 옷을 입고 대신 죽어준 것. 그리하여 궁궐 근처 자기 묘지 부근에 등장한 베르타리도는 마침 산소를 찾은 마누라 로델린다와 상봉을 하는데, 왕이란 것이 그저 아내가 정절을 지켰는지 그것에만 관심이 있다. 나라야 말아 먹었건 말건.<br> 알란 커티스 아니었으면 핸델의 오페라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br><br><br><br>1. 베를리오즈, &lt;트로이 사람들&gt;<br><br>세상에나... 이런 슬픔이 있을까.이별을 앞에 두고, 거역할 수 없는 이별의 명령을 받고도 인간의 눈엔 사랑의 화염이 활활 타올랐으니, 애초부터 이들의 사랑은 하염없는 비탄의 불씨에서 비롯했다. 디돈과 에네.<br>혹은 길고 긴 절망의 항해에 지친 에네. 디돈을 처음부터 한 시절의 놀이로 생각하고 벌인 엽색?아, 이런 속된 생각은 말자. 만일 그러했다면 수십 세대가 흐른 다음 어느 작곡가가 있어서 이렇도록 아름다운 이중창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디돈.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트로이에서 온 불멸의 영웅 에네에게 기대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어느덧 사랑으로 번지고, 에네, 새로운 땅으로의 항해 가운데 그녀를 만나 디돈의 탄식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사랑이 될 줄이야.아직 그들은 고통을 짐작만 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아픔이 될 것인지 모른 채.이들의 사랑은, 이미 중년의 연배가 되어버렸으나 아직도 가슴 속에선 사춘기 시절의 애뜻함이 온전하여 이미 이 아름다운 밤의 희열 속에서조차 슬픔이 뚝뚝 묻어 떨어지니, 이별의 순간이 온들 어찌 둘의 사랑마저 식겠는가.그러나 식지 않은 사랑이 오히려 더 쓰라린 법. 아름다움 속에는 슬픔이 들어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이들의 이중창은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리하여 더욱 하염없이 아름다울 뿐이다.<br>콜린 데이비스 음반 강추. 굳이 비교하자면... 비교는 뭐하러 하나? 그냥 듣자.<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99/cover150/20224366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998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천재는 아니라도 내가 우월하다고? - [불필요한 여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0019</link><pubDate>Fri, 12 Jun 2026 0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300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5031&TPaperId=173300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95/coveroff/k1821350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5031&TPaperId=173300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필요한 여자</a><br/>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라비 알라메딘은 1959년 요르단 암만에서 민족종교인 “레바논 드루즈” 교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드루즈”는 무슬림이 아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천지창조와 에덴 추방 같은 것을 믿기는 하지만 라마단, 성지순례 등을 공유하지 않는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신비주의적 일신교로 전세계에서 백만명 미만의 신도를 보유한 소수종교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라비 알라메딘은 쿠웨이트와 레바논에서 성장했고, 영국을 거쳐 미국 UCLA에서 공학사,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취득해 전공과목으로 먹고 살다가, 뜻한 바 있어 화가와 작가로 살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라고.&nbsp; 굳이 이이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 알리야 살레는 72세의 노인 여성이며, 이이 주변의 주요 등장인물 역시, 절친 한나를 비롯해 어머니와 한 아파트 지붕 밑에서 사는 세 마녀, 파다야, 주마나, 마리-테레즈 등 주로 여성으로, 그냥 읽다 보면 작가 역시 당연히 여성이겠거니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br>&nbsp; 알리야. 화자 ‘나’의 이름. 1937년에 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높은 데 있는 사람, 하늘이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이 이름을 아꼈고, 알리야를 그보다 더 아꼈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정작 알리야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이가 두 돌도 되지 않아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아버지는 병들어 죽었다. 이때 아버지가 겨우 스물한 살. 어머니는 16세에 알리야를 낳고 18세에 과부가 됐다.&nbsp; 1930년대 말에도 이 나라 레바논은 여전히 14세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도 낳지 못한 과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알리야를 안고 다시 친정집으로 들어가고, 친정 부모에게 들들 볶이다가 남편의 동생과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됐다. 알리야는 이후에 세 명의 이부 동생이 생겼으며 새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냥 알리야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었을 뿐.&nbsp;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아주 잘했던 알리야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음에도 열여섯 살이 되자 한 찌질이한테 시집가야 했고, 먼 훗날, 72세가 되도록 평생을 살게 될 아파트에 집을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할 때는 행복한 줄 알았다. 작품에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알리야가 4년 후에 이혼당할 때까지 틀림없이 숫처녀는 아니지만 숫처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았던 거 같다. 이슬람 여성답게 남편이 요구하면 거절할 수 없었을 테니 “당시” 10대 소녀들이 종종 그랬듯 성적으로 기피나 혐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찌질한 남편이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알리야는 살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남편의 물건을 보지 못했단다. 그래 하루는 밤중에 완전히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슬쩍 일어나 성냥불을 켠 후 이불을 들춰 남편의 아랫도리를 확인했더니, 세상에나, 공룡이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글쎄 지렁이가 달려 있었다. 이후에도 몇 번 다시 확인해봐도 여전히 지렁이였다고. 아마도 성기 왜소증이나 조루증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할례를 하다가 껍데기가 아니라 작대기를 잘라 버렸을까?&nbsp; 나도 &lt;한밤의 아이들&gt;을 읽고 알았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자가 이혼을 원하면 여편 앞에서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라고 세 번(네 번?)만 외치면 이혼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 지렁이 달린 찌질이도 “아는 당신과 이혼한다.”라고 외쳤을 때 알리야의 나이 스무 살. 천만 다행이었던 것이 남편이 이 말을 던지고, 알리야를 친정으로 쫓아 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집에서 나가버렸다는 거. 속이 다 시원했겠지? 그러나 이후에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집을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요구, 강제, 지랄을 했지만 어린 알리야는 감히 버텼다. 여성이 동산이건 부동산이건 소유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nbsp; 첫번째 의문이 여기서 생겼다. 둘이 살기에 넓기는 하지만 어차피 월세집. 시집이고 친정집이고 간에 왜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겠다는 거지? 다른 아파트 구해 들어가면 되잖아. 특히 친정 어머니와 의붓 큰동생이 협박을 해가면서 집을 내놓으라고 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게 이해가 힘들었다. 거액의 보증금을 전남편이 따로 낸 거였나? 그것 참. 이게 다행인 이유를 모르겠던 것.<br>&nbsp; 찌질한 남편이 50년대 말에 이혼하면서 위자료를 주었을 턱이 없고, 그렇다고 이혼 후 생활비를 보내주었을 리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이때 등장한 인물이 한나. 찌질한 남편의 친형과 사랑했던 사이. “사랑했던.” 과거형이니까 지금은? 여전히 숫처녀. 어떻게 그집 집구석 남자들하고 관계만 되면 숫처녀나 숫처녀 비슷하냐고? 한나는 장교, 정확하게 중위와 사랑해서 결혼하자고 굳게 맹세했다. 그런데 남자가 죽어버렸다. 이후에 한나는 결혼 약속을 굳게 마음에 새겨 마치 그 집안의 며느리인양 평생 그렇게 살았다. 한나보다 열다섯 살 더 많지만 알리야와 친밀했던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일흔두 해를 산 알리야가 아꼈던 유일한 사람으로.&nbsp; 물론 친절했다. 남자 없는 이혼녀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유일한 사람. 그리고 먹보.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그저 통통한 수준을 유지할 뿐 절대로 비만 체형이 되지 않는 행운을 누리던 여자. 역시 가장 큰 친절은 먹고사니즘과 관련이 있어서, 한나의 육촌 형제 가운데 지적 과시욕에 들떠 시내 골목에서 작은 책방을 연 사람이 있어서, 알리야를 이 책방에 취직시켜주었다. 이 책방에 반백년, 오십년을 다닌다. 책방이 결코 이익을 만들지 않는 사업이라 월급을 받아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알리야는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 비슷하게 살았다. 키만 크고 몸에 근육은 별로 없는 꺽다리.&nbsp; 책방이라니. 물 만난 물고기. 앞에서 이야기했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무척 잘했다고. 알리야는 손님이 별로 없는, 별로가 아니라 거의 없는 책방에서 이 책, 저 책 쉬지 않고 읽는다. 곡식과 풀만 먹고도 힘이 남아 열심히 읽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문을 넣는다. 두 권. 어떤 때는 세 권. 레바논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두 권 가운데 한 권 팔리면 나머지 한 권은 남는다. 일정 기간 동안 팔리지 않으면, 알리야가 그냥 집으로 가져간다. 풀만 먹고 살아도 책 살 돈이 없다. 이해해달란다. 뭐 좋다. 어차피 사장도 돈 벌려고 책방 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한 번 책 훔쳐가는 게 힘들지 이력이 나면 그까짓 거야 뭐. 그래도 도둑년인 건 확실하지만.&nbsp; 원래 공부를 잘하고, 레바논 역사를 보면 영어와 프랑스어하고 친할 수밖에 없어서 두 언어에 능숙한 알리야는 원문이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책을 중역하기 시작한다. 스물두 살부터 일흔두 살, 이제 2002년이 저물고 며칠 지나면 2003년이 되는 겨울에 제발트의 &lt;아우스터리츠&gt;를 아랍어로 중역할 때까지 모두 37편. 1년에 한 편을 원칙으로 하되 때로는 분량 많은 책들도 있어서 1년이 넘어 걸린 책도 꽤 있다. 알리야는 자기가 번역한 원고를 출판하고자 하지 않는다. 중번역이 끝나면 원고를 종이 박스에 넣고 그걸 하녀방과 하녀화장실에 쌓아 놓았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나중에 뒤져 보기야 한다.그래서 이 책 속에는 다른 시인, 작가들이 쓴 시, 소설, 에세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가의 경우 다행스럽게 많은 작품을 읽어보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데 별로 문제가 없었다. 시로 말하자면, 나는 외국시를 읽지 않아 좀 곤혹스럽기는 했다. 근데 알리야가 고전음악도 많이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br>&nbsp; 음반도 많다. 주로 LP. 두번째 의문. 알리야가 월급 받아 월세 내면 돈이 거의 없어 풀만 먹고 산다는 얘기는 했고, 책도 사지 않고 주로 자기 직장에서 훔쳐 가져왔다는 것도 썼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이 와중에 한 달에 LP 두 장을 샀을까? 해적판도 아니고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 말로 노랑딱지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을? 좋다. 그럴 수 있다 치자. 알리야가 50년 동안 돈을 벌었으니 50년 곱하기 12개월 곱하기 LP 두 장은 LP 1,200장. 그런데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LP 1,200장 소유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LP 1,200장이면 CD 기준으로 한 7백장 수준. 알리야가 주장하는 레바논의 문화수준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자기가 들은 LP, 그리고 가능했다면(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랬다고 치면) 판 가게 주인남자와 나눌 수 있었던 음악 이야기, 그리고 딱 1회성인 라디오 음악방송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감상 환경일 텐데, 쇼팽의 피아노 곡부터 시작해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거쳐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쇤베르크, 메시앙, 리게티까지 도무지 막힘이 없다. 음악 강의 한 번 안 듣고 12음 기법 이후의 현대음악을 이해했다면, 알리야는 정말 천재다. 인정 안 할 도리가 없다.&nbsp; 그리고 늙은 알리야는 이제 기력이 달리지만 주로 걸어서 이동하고, 좀 먼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책방이 문을 닫을 때는 아무리 헐값을 주고 샀다 해도, 집안이 거의 책으로 메워질 만큼 많은 책을 한 방에 사들였다. 1970년대 말부터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공습과 내전으로 허덕이고 또 허덕였는데, 책방도 연 날보다 문 닫은 날이 더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여유로운 노년을 맞을 수 있었을까? 합당한 설명이 없다.&nbsp;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말이 자꾸 왔다갔다 해서 문제다. 177쪽에는 또 “나는 수시로 책을 사서 읽을 책더미에 올려 놓는다.”라고 헛소리를 한다. 이건 알리야 문제가 아니라 작가 라비 알라메딘이 문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nbsp; 알리야는 음악, 미술, 문학, 어학에 도가 텄다. 어려서부터 잘 교육받은 라비 알라메딘이 그러하듯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수준이다. 알리야는 자기도 모르게 고백한다.<br>&nbsp; “내가 남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도 평생 신경 쓰였다. 수년 동안은 내가 특별하다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선택했다고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사실상 나는 내가 우월하다고 믿고 싶었다. 예술가는 아니라도, 마티스 같은 천재는 아니라도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p.280)<br>&nbsp;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자만심을 용서해줄 마음이 1도 없다. 내가 음악, 미술, 문학, 다 합해 예술과 어학을 너보다 훨씬 잘 이해하기 때문에, 너보다 낫다, 우월하다는 마음이 차별을 낳고, 차별이 혐오를 낳고, 혐오가 또 무엇을 낳고, 무엇이 아브라함을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최종적으로 나치를 낳는다. 알리야 살레도 일흔두 살. 이제 곧 죽을 늙은이라 다행이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어중이떠중이 가운데 한 명이 말씀드립건대, 히틀러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레바논 근현대를 살면서 그리 많은 이스라엘의 폭격을 맞아도 유대인 천재 작가, 시인, 철학자, 작곡가, 화가, 그리고 홀로코스트만 이야기할 뿐 이스라엘의 대 레바논 공격을 비난하지 않는다. 라비 알라메딘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반유대주의자로 찍힐 거 같거든. 하긴.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똑똑이가 그걸 몰라요. 우월하다고? 사실은 위험한 거야, 대단히.&nbsp;라비 알라메딘, 그리고 알리야. 너넨 정말 속물이야, 이것들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95/cover150/k1821350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0953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소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 [모든 저녁이 저물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8184</link><pubDate>Thu, 11 Jun 2026 04: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81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588&TPaperId=173281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5440/54/coveroff/89356705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588&TPaperId=173281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저녁이 저물 때</a><br/>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07월<br/></td></tr></table><br/>.&nbsp; 작년에만 에르펜베크의 책을 세 권 읽었다. &lt;카이로스&gt;가 2024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을 두었는데 정작 인상깊게 읽은 책은 &lt;그곳에 집이 있었을까&gt;였다.&nbsp; 딱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읽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그러니까 중부와 동유럽 지역의 현대사를 지낸 한 아기, 소녀,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 시대는 프란츠 요제프 1세 시절, 1902년 봄과 여름 사이에 태어난 여자 아이.&nbsp; 아이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시아에서 열여덟 살의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 교도 즉 유럽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서 맏이로 난다. 유대 어머니가 갓 태어났을 때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했다. 유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1902년에 난 아이의 어머니.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그녀와 남편이 거실에 있고 아이는 보모가 아이방에서 돌보고 있을 무렵 어수선한 기척이 나 창 밖을 내다보니 집 밖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순간 덧문도 닫지 않은 1층 창문에 첫번째 돌이 날아 들어왔다. 남편이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까 그곳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안드레이가 있어 그를 불렀더니 안드레이는 못 본 척해버렸다. 두번째 돌이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 남편이 부모한테 졸업선물로 받은 괴테 전집 9권 책등에 맞았다. 그래서 조금 상처를 입은 괴테 전집 9권은 &lt;모든 저녁이 저물 때&gt;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nbsp; 이어 안드레이와 청년들이 집 현관문 앞에 들이닥쳐 도끼질을 하기 시작한다. 부부는 피신할 수밖에 없다. 2층 아기방을 두드렸다. 보모는 문을 걸어 닫은 채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건네주는 것도, 아기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거부했다. 긴박한 순간에 부부는 할 수 없이 2층과 지붕 사이의 다락방으로 피신했고, 그 순간 도끼질에 산산조각이 난 현관문을 박차고 청년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사정없이 박살내기 시작했다.&nbsp; 다락방에 숨었다 해도 발각나 폭행을 당할 것이 틀림없어 부부는 맨손으로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 구멍을 낸 사이에 다락방까지 다가온 청년들이 문짝을 도끼질했다. 겨우 뜯어낸 지붕으로 먼저 아내를 올려보낸 남편이 점프를 했고, 순간 다락방의 방문이 도끼질 두어번에 조각이 나버렸으며 뛰어오른 남편의 팔을 붙잡은 그녀가 힘을 주어 끌어올리는 바로 그때, 안드레이와 함께 들이닥친 청년이 남편을 향해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러 그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녀가 죽을 힘을 다해 남편의 팔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쑥, 남편의 팔만 아내가 있는 지붕 위로 불쑥 솟아오르고 그냥 고기 덩어리가 된 나머지 부분은 2층 창문에서 거리로 내던져졌고, 지나가던 행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에 유대인 과부가 된 여인은, 아이에게, 훗날 1902년에 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마도 미국으로 갔을 거라고, 미국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다.<br>&nbsp; 이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사실 미국에도,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가지 않고 유대인 거주지역 안에 있는 집에서 안드레이를 비롯한 폴란드 청년들에게 난도질을 당한 채 죽어버린 다음 어머니가 남편의 상점을 이어 운영했는데, 아이가 점점 자라 당연한 듯 상점에서 일을 도왔을 것이다.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었을 때, 갈리시아 지방 칼 루드비히 철도의 35km 구간을 책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하위 그러니까 11등급 철도 공무원 청년이 상점에서 유대인 여주인의 딸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청년은 매우 가난했으며 그럼에도 살기 위하여 이곳저곳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결혼하면 유대인 여인이 내줄 혼인 지참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작 오직 법률적으로만 결혼하는 날, 청년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없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어도, 주변에 침묵이 퍼지는 걸 확인하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그건 보편적으로 종말과 관련한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nbsp; 그의 아버지는 법률혼 때도, 아기 그러니까 아버지의 손녀가 출생했을 때도 오지 않았다. 길이 너무 멀고 돈이 많이 든다고만 했다. 아내, 그러니까 아버지가 미국이나 아니면 파리,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있던 아이가 커서 혼인을 한 여자의 외할아버지도 오지 않았다. 손녀가 이교도와 결혼하는 날. 그는 길을 떠나 손녀를 축복하는 대신,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신부를 위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례인 시바를 치루고 있었다. 조상의 신이 보자면 그녀 또한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br>&nbsp; 이 젊은 부부가 법률적으로 혼인을 하고, 아홉달이 지나 딸을 낳고 나서, 이제 아빠가 된 청년은 자기 주변에 침묵만 깔린 것을 확실히 알아챌 즈음해서,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으로 자기 빚을 다 갚을 수도 없고, 최하위인 11등급 공무원에서 10등급으로 승진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nbsp; 그럼에도 아이는 점점 자라 벌써 세상에 나와 여덟 달이 되고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고, 그리고, 죽었다. 자다가 담요가 두꺼웠나, 똑바로 누워 재웠는데 사레가 들었나, 아팠는데 그것을 몰랐나. 그렇게 죽었다. 유아돌연사. 그건 지금도 잦은 빈도로 일어난다.&nbsp; 아이의 엄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간 줄 알며 산,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산 엄마는 그냥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등에 책가방을 메고 집은 나설 어린 여자 아이, 열살 먹어 쉬지 않고 조잘대는 꼬맹이, 청년들의 눈길을 한 없이 즐기는 처녀애, 그리고 늙은 여자가 될 자기 딸이 흙 세 줌과 함께 땅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을 부은 거였다. 그렇게 땅 속에 죽은 아이를 묻고 돌아온 젊은 엄마는 유대인 관습에 따라 현관문 앞에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녀의 할머니한테 유일하게 물려받고 싶어했던 발 받침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앉곤 하던 발 받침대를 옆에 두고 꼬박 일곱 날을 기대 앉아 있을 것이었다.&nbsp; 아이가 죽었나, 싶었을 때, 그녀는 집안의 물이란 물은 모두 바깥으로 쏟아버렸다. 죽음의 검은 천사가 검을 물에 담아 씻을 테니까. 담요로 거울을 덮고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다. 아기의 영혼이 되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기는 가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젖이 돌아 가슴이 뭉쳤다. 땅 속에 묻혀버린 아이를 위한 젖.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젖 때문에 그녀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상들의 신과 거래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녀의 몸에서 태어난 생명을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신은 그녀가 건넨 것을 결코 받으려 하지 않았다.<br>&nbsp; 그러나, 소설은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막간극이 벌어진다.&nbsp; 만약 예를 들어, 아이가 죽어가던 순간 그날 밤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바깥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줌 퍼다가 아기의 옷 속으로 밀어 넣었더라면, 그 순간에 창을 열고 은은하게 빛나는 눈을 바라보거나, 추위에 오그라든 창틀이 삐걱대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런 영감이 떠올랐을 수 있었을 텐데, 만일 정말로 창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한 줌이라도 퍼다가 아기의 가슴 그러니까 심장 부위에 밀어 넣어 자극을 했더라면 아마도 아기는 불현듯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소리를 지르며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둘 가운데 뭐가 됐든 아기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아기의 피부는 온기를 회복하면서 눈은 아기의 가슴에서 녹아버렸을 것이다.&nbsp; 다만, 만약이다. 만약 그러했더라면.&nbsp; 작가는 결심한다. 창작자의 권한으로 만약이었던 것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결심해버린다. 그리하여 때는 1918년. 아이는 16년 전인 1902년에서 190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죽은 것이 아니라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의 겨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전 국민이 곤궁의 골짜기로 떨어졌을 무렵, 이제 극도로 좁아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전근해 온 아버지를 따라 여전히 고도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조금의 식량을 얻기 위하여 밤새도록 배급소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nbsp; 그러나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 나이가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했던 시기. 그렇다고 아이에게 당연히 연인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패전해 곤궁에 떨어진 왕년의 제국 도시 빈에는 스페인 독감이 돌아 아이의 절친한 친구도 죽어버리고, 도시에서 넘쳐나는 빈에서 운구용으로 쓰이던 전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죽은 친구의 애인, 전장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돌아온 남자를 연모하던 아이는, 남자에게 온몸을 던졌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 주일을 견딘 후에, 1919년 1월 26일, 23시 17분경, 알저 거리 4번지, 북위 48.21497도, 동경 16.35231도, 빈 종합병원 앞에 멈춘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의대 3학기에 재학 중인 페르디난트 G. 씨로 하여금 서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아이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갖다 대고, 정확히 그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짖는 소리에 화답하듯,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게 해서, 죽었다.<br>&nbsp; 이렇게 아기는, 소녀는, 젊은 여성은, 중년 부인은, 노인은 다섯 번의 삶을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프라하, 모스크바, 동베를린을 거쳐 역사를 관통한다.&nbsp; 무엇보다 문장, 글이 매혹적이다. 배수아의 가필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전에 인상깊게 읽은 &lt;그곳에 집이 있었을까&gt;를 떠올리게 만드는 빼어난 글과 20세기, 한 문장도 허투루 읽지 못하게, 그렇게 몰입하게 되는 작품. 이런 걸 뭐라 해야 하나? 아름답다고? 비슷한 느낌이다.&nbsp; 에르펜베크, 이제 이이의 단행본은 한 권 남았다. 아쉽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5440/54/cover150/89356705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440540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놀러 갈 때 갖고 가기 딱 좋은 책 - [헨리 슈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6397</link><pubDate>Wed, 10 Jun 2026 0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6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737699&TPaperId=17326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off/k1727376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737699&TPaperId=17326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헨리 슈거</a><br/>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01월<br/></td></tr></table><br/>.&nbsp;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nbsp; 로알드 달이 &lt;찰리의 초콜릿 공장&gt;을 쓴 어린이 소설 작가인 줄 알면서도 읽기 시작한 건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lt;섬에 있는 서점&gt;에서 특별한 단편소설 작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 “교유서가”의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1번 《맛》을 읽어보니까 흥미가 돋았다. 재미있고 특색있는 대중소설가가 쓴 단편들. 특히 도박이나 내기 같은 장면은 달만큼 인상적으로 묘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그래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세 권을 올해 안에 모두 읽어 보기로 작정을 했고, 순서가 헷갈리는 바람에 2번을 건너뛰고 3번 《헨리 슈거》를 먼저 읽었다.<br>&nbsp; 한 번에 탁, 말해 버리면, 전작만 못하다. 시리즈에 번호 1을 괜히 주는 게 아니었나비여?&nbsp; 《맛》은 이야기했듯이 내기와 도박 장면이 참 근사했다. 물론 《헨리 슈거》에도 표제작 &lt;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gt;에서 도박장, 카지노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 헨리 슈거가 무려 3년에 걸친 요가 수행으로 투시력을 확보해서 기껏 한다는 일이, 누가 로알드 달 아니랄까봐, 카드 뒷장만 본 채 어떤 카드인지 알아 맞히는 거라서 평생 카지노에 들락날락하며 1억 파운드가 넘는 돈을 버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아홉 단편의 맥은 조금 허황된 이야기들, &lt;찰리의 초콜릿 공장&gt;을 어른 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nbsp; 어른 판이라고? 그렇다. 어른 판이라면 당연히 허리 아래 이야기를 피할 수 없지? 그리하여 맨 앞에 실은 &lt;로제트 부인&gt; 속 로제트 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포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다. 스태그, 스터피, 윌리엄. 이렇게 세 명의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공군과 격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휴가를 받아 이집트 카이로로 놀러가서 카이로의 이름난 포주 로제트 부인을 찾아가 벌이는 활극. 활극도 시거를 입에 문 채 총 쏘고 말 달리는 활극이 아니고, 로제트 부인의 유곽으로 쳐들어가 세계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열네 명의 아가씨를 해방시키는 이야기. 해방이라 해서 정말로 해방, 즉 매춘업 업종을 바꾼다는 게 아니라 그저 로제트 부인의 무지막지한 폭리로부터 해방일 뿐이기는 하다. 뭐 스토리 전개는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하다. 그걸로 끝이라서 문제지만.<br>&nbsp; 또다른 허리 아래 이야기로 &lt;대역전&gt;이 있다. 크게 개구멍이 나 있는 산울타리 덤불을 사이에 이웃한 두 가정. 제리-사만다 부부와 화자 ‘나’인 빅-메리 부부.&nbsp; 사건은 제리-사만다 부부가 파티를 여는 날 밤에 시작한다. 빅이 보기에 사만다가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다. 관상을 보니 사만다 역시 남자를 무척 밝히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절대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유혹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사만다의 남편인 제리와도 절친 사이다. 그러니 친구의 아내와 한 침대에 오르는 건 정말 안 될 일이다.&nbsp; 하지만 세상에 안 될 일이 또 뭐가 있을꼬?&nbsp; 빅, 이 개 아들 놈은 발상 전환 모드에 들어간다.&nbsp; 통박을 굴려보니까 절친 제리가 빅의 어여쁜 아내 메리한테 매우 높은 수준으로 끌리고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자기와 같은 이유로 함부로 껄떡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 앗따, 바로 이거다.&nbsp; 빅이 제안한다. 마치 자기 직장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실제로 저지른 일을 들은 것처럼. 바로 스와핑.&nbsp; 스와핑은 스와핑인데 두 부부, 즉 네 명의 합의하에 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벽 한 시에 옆집 남자 둘이 서로 침대를 바꾸어 들어가 한 시간 동안 한 번씩 하고 두 시에 다시 원위치하는 것. 이 과정에 돌입하고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이는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그걸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여간 제리와 빅은 그렇게 한다. 화자가 빅이니까 책에는 빅과 사만다의 침대 장면만 살짝 나온다. 아참,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제리의 물건이 빅보다 훨씬 크고, 빅이 아래로 휘어져 있는 반면 제리는 위로 휘어졌으며(이건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나?), 지속 시간도 비교하자면 무척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미리 이야기를 주고받아,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으로 빅은 제리의, 제리는 빅의 침대 루틴을 지키기로 했음에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새 자기 루틴으로 방사를 치루었는데, 처음엔 뻣뻣하던 사만다의 몸이 나중에 배배 꼬이면서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이렇게 ‘좋아’를 네 번 외친 다음에, 아이구 미국인들이란, 뒷처리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아, 드러. 아니, 드러운 건 아니지만, 거 좀 척척하니 찝찝하지 않아?&nbsp;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식탁에서 벌어진다. 화자 빅과 메리의 대화. 흠. 이건 알려드릴 수 없지.&nbsp; 박완서의 단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놀랍지?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의 두 남자. 하루는 어울려서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고 아뿔싸, 의도치 않게 오직 헷갈려서 서로 상대방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다. 이미 밤은 깊어 두 집의 여사님들은 벌써 잠에 떨어진 상태. 그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섬주섬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파고 들어 아내(인줄 아는 옆집 여자)의 몸을 더듬다가 위로 올라가 일을 치룬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지. 두 남자가 비슷한 수준의 상투적 전희에 이어 거의 비슷한 속도와 유지 시간,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같은 방식의 뒷처리 후에 잠에 빠지더라는 거. 박완서 시절이니까 천민자본주의의 절정기에 물화, 정형화된 가정의 단면을 비튼 소설이다.&nbsp; 반면에 미국 가정을 무대로 하는 영국인 소설가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 사회성이 쏙 빠진 흥미 본위의 절반 대중소설. 그래서 재미로 치면 조금, 아주 조금 윗길이기는 하지만 기대하지 마시라. 절대 결말을 일러드리지는 않을 터이니.<br>&nbsp; 그런데도 이 책을 &lt;찰리의 초콜릿 공장&gt; 류라고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이랄까, 하여튼 그 비슷한 묘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게 소년시절을 지나고 있는 시절이라면 재미있고, 놀랍고, 빨려들면서 읽을 수 있겠지만, 대가리 다 커서 이제 인생에서 유별날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성인이라면, 이게 무슨 허황되고 헛된 이야기야, 타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nbsp; 하여간 나는 그랬다.&nbsp; 그럼에도 시간 죽이는 데는 끝내줄 거 같다. 여행길이라면 즐겁게 가방에 넣고 가라고 추천. 당신의 정서함양을 위한 교양도서는 아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150/k1727376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12429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탈mask 또는 그렇게 보임 - [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4598</link><pubDate>Tue, 09 Jun 2026 05: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245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137264&TPaperId=173245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19/coveroff/k8121372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137264&TPaperId=173245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a><br/>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음. 이 두 편은 유진 오닐이 쓴 작품에 국한하자면 망작일세. 다른 극작가가 썼으면 훌륭한 작품이겠지만 천하의 오닐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아, 오해하지 말기. 내가 최근에 본 연극이 몇 십 년 전 일이다. 이런 문외한이 하는 말이니 1도 믿지 않아야 마땅하다.&nbsp; &lt;위대한 신 브라운&gt;에서는 노골적으로 탈, 마스크가 나오고, &lt;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gt;에서도 조현병이 심각한 여자 주인공 엘라는 콩고 탈을 보고 경끼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엘라의 진짜 탈은 그깟 콩고 탈이 아니라 흑인, 백인으로 세상을 가르는 인종의 문제, 그 문제에 함몰하여 빠져나올 줄 모르는 엘라 본인이 쓴 탈이다. 라고 나는 주장한다.<br>&nbsp; &lt;위대한 신 브라운&gt;에는 두 명의 탈 쓴 이가 나온다. 주인공 윌리엄 브라운. 애칭 빌리. 그리고 디온 앤서니. 두 명 다 출중한 젊은이들.&nbsp; 디온의 아버지 앤서니 씨는 큰 건축회사 사주. 몽상가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디온은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하여 매사 냉소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가면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빌리는 자기 아버지 브라운 씨가 앤서니 씨의 도급업자로 시작해 동업자의 말석에 끼워주어서 그런지 디온에 대하여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사실 실력도 디온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빌리는 자신감 넘치는 야심찬 모습의 탈을 지니고 있다.&nbsp; 두 등장인물은 늘 가슴에 달고 다니는 탈을 썼다 벗었다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벌써 인물들을 열거하니 누가 더 우위에 있게 될 줄 딱 드러난다. 당연히 빌리. 속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자신만만해서 신뢰감을 주는 빌리가 자연스레 성공해 앤서니 씨의 회사를 인수하고 사명을 “브라운 앤드 선”으로 고쳐버렸다. 이 동안 솜씨 좋고 머리도 좋은 디온은 빌리도 사랑해마지않는 마거릿과 결혼해 날이면 날마다 술과 도박에 미쳐 자기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어 버렸다.&nbsp; 착한 마거릿이 디온에게 좋은 말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바가지를 살짝 긁는다. 디온은 진짜 싫었지만 빌리에게 가서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마거릿이 빌리에게 가 자리를 부탁하고, 디온의 실력이면 속으로는 모셔오고 싶어할 정도라, 빌리는 버선발로 달려가 디온을 모셔온다. 디온의 직업? 건축사.&nbsp;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빌리는 마거릿의 그림자만 봤다 하면 선 자리에서 꼿꼿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짝사랑했다. 그게 지금도 그렇다.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마거릿이 예술가 기질이 넘치면서 어딘가 우울하게 보이는 디온한테 반해 디온과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다. 빌리는? 탈을 쓴 빌리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디온의 탈을 빌리가 쓴다면? 당연히 마거릿은 빌리를 디온으로 알고 남편이니까 뭐든지 다 해준다.&nbsp;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일이 생기겠지? 맞다. 생긴다. 살인? 흠. 너무 나갔다. 그건 아니고 빌리의 집, 빌리의 응접실에서 세상 살 기력이 모두 빠진 디온이 팍 고꾸라져 죽었다. 심근경색이나 뭐 비슷한 거겠지. 여태 디온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그의 탈. 그걸 빌리가 낚아챈다. 빌리는 디온의 시신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지. 빌리가 디온의 탈을 쓰면 마거릿, 십대 시절부터 자신의 몸뚱이와 다른 한 부분을 꼿꼿하게 만들었던 마거릿이 자신을 남편 디온으로 알아본다고. 그래서 디온의 탈을 쓰고 마거릿의 집으로 찾아가고 뭐 그렇다.<br>&nbsp; 탈(mask) 이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주장한 건데, “마스크는 시인의 분기된 자아”로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비밀스러운 자아와 구분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 예이츠 저널, 2019)&nbsp; 그러니 이 작품의 탈은 예이츠의 주장하고는 별개로 차라리 척 러셀이 감독하고 천재적인 코미디언 짐 캐리가 주인공을 한 영화 &lt;마스크&gt;의 스탠리 입키스와 더욱 유사하다. 탈을 쓰면 자신의 속마음, 실체와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행위하고, 타인들도 자신을 완전히 타인으로 봐주는 것.&nbsp; 세상 사람 다 탈을 쓰고 살지만 아무래도 좀 과하다.<br>&nbsp; &lt;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gt;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 이야기이다.&nbsp; 백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흑남백녀 간의 혼인. 반대로, 즉 백남흑녀는 그나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준단다. 물론 지금 시절이 아니고 20세기 때 이야기다. 1967년에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특급 배우들인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 시드니 포이티어가 출연한 명작 &lt;초대받지 않은 손님&gt;이 나왔을 당시에도 흑남백녀의 혼인을 두고 난리가 벌어졌다고 들었다. 작품 속에서도 백인 아가씨의 부모,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이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부부지만 열네 살이나 더 많은 흑인 홀아비 박사님을 사위감으로 데려왔을 때 처음엔 당황하고 이어서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nbsp; 하물며 이 희곡을 발표한 것이 &lt;초대받지 않은 손님&gt;이 나오기 42년 전인 1925년이었으니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nbsp; 주인공은 흑인 청년 짐 해리스와 백인 여성 엘라 다우니. 장소는 뉴욕.&nbsp; 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무대의 막이 올라간다. 어려서 아직 사춘기도 맞지 않은 짐과 엘라는 나름대로 첫사랑을 한다. 동네의 흑백 아이들도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고, 찬하다기보다 허물없이 지낸다. 아이들은 짐과 엘라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 맞게 놀려대고, 엘라는 애들한테 바락 화를 내니, 구석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던 어떤 할애비가 이랬다지?&nbsp;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nbsp;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엘라 눈에는 도무지 짐이 차지 않았다. 예쁜 백인 여자애가 집에 돈 많고 똑똑해서 장래 변호사를 지망할지라도 흑인 남자애를 좋아하기는커녕 말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겠냐고. 이미 사춘기를 훌쩍 지난 무렵인데. 엘라 역시 보통의 백인 여자애와 다를 바 없어 이미 백인 권투선수 쇼티한테 몸과 마음, 줄 건 다 준 눈치다. 당시에 가장 인기있던 스포츠가 복싱. 복싱의 인기는 이후 60년이 넘게 간다. 쇼티도 동네 여자애들은 다 건드린 모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엘라였을 뿐.&nbsp; 세월이 더 가면 엘라가 낳은 쇼티의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자마자 쇼티는 엘라를 모른 척해버렸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쇼티는 다른 아가씨를 찾아가고, 절망하는 엘라 앞에 나타난 남자가 바로 더러운 흑인 짐. 짐 크로 해리스. 왜 하필이면 짐의 두번째 이름으로 ‘크로’를 붙였는지 거 참.&nbsp; 짐은 고등학교 시절에 유급을 한 번 먹은 것처럼 연달아 변호사 시험에 낙방중이다. 분명히 다 아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서 답안을 쓰려면 머리 속에서 정답이 서로 막 헝클어져 조리있는 답안을 작성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매번 그랬다. 뭐 그럴 수 있지. 이럴 때 엘라를 만났고, 엄마와 누이동생 해티가 반대하는대도 불구하고 결혼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프랑스로 이민을 떠난다. 둘은 결혼 전에 미국 안에서는 흑남백녀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거 같아 그런 건 하나도 허물이 되지 않는 나라로 떠나 살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nbsp; 그러면 잘 살 것 같지? 파리에도 미국인은 득실거렸고, 거기서도 흑남백녀는 완전히 왕따를 당했으며, 따라서 엘라는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홀로 극한의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파리를 떠나 시골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방안에 틀어벅혀버린 엘라. 이러다 사람 하나 잡을 거 같아서 이민 2년 만에 다시 귀국길에 오른다.&nbsp;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난 엘라. 이제 유진 오닐은 자기 전공분야를 만났다. 약간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그것도 혼인한 여성을 오닐만큼 잘 묘사하는 작가는 세상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건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애초 오닐을 읽으면서 해피 엔드는 기대 난망이겠지만.&nbsp; 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 사랑을 못 이루게 하는 인종 문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심리적 궤멸을 향해 오랜 시간을 치닫는 불행한 여성의 궤적,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주변 인물, 즉 오닐과 오닐의 어머니가 용해된 플라스크 속 액체인 듯했다. 뭐 그랬다는 거다. 믿을 필요 없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19/cover150/k8121372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3199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