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5 Aug 2026 00:42: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드러나는 부르주아의 속물성 - [비둘기의 날개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31230</link><pubDate>Tue, 04 Aug 2026 04: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312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94&TPaperId=174312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4/35/coveroff/89320451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94&TPaperId=174312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둘기의 날개 1</a><br/>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딱 2년 만에 다시 헨리 제임스를 읽었다. 제임스를 읽을 때마다 늘 그렇듯이 그의 장황한 상세묘사에 아예 넋이 나가버렸다. 1권, 2권, 서문과 해설을 합해서 꼴랑 860페이지를 읽느라 무려 일주일을 다 소비했다. 상세묘사도 상세묘사 나름. 이번에는 인물이나 주요 장소인 베네치아의 명소 등 외관에 관한 상세묘사 대신 사람의 심리를 샅샅이 해부했다. 심리적 실핏줄까지 전부 언어로 써 놓았으니 그의 노고가 “정말로” 대단하지만, 그걸 읽는 독자는 콱 질려버린다. 누군가 말했지. 진짜 잘 쓴 소설은 전부 심리소설이라고. 여태 그 말에 동의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젠 그만. 심리 소설도 심리 소설 나름.&nbsp; 영국 젠트리 계급의 속물성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nbsp; 초간이 1902년이니까 헨리 제임스가 미국인으로 살 때이다. 하지만 무대는 런던. 벨 에포크 시대가 절정을 달하던 때.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귀족, 부르주아 종족들은 사치와 계급 유지와 일 하지 않는 미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나는 이런 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던 헨리 제임스가 애초 영국 젠트리와 미국 부르주아의 속물성을 까발리기 위하여 작품을 썼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유치한 사람들이 펼치는 사랑 놀음과 나름대로의 진정한 사랑을 읊느라고 읊은 것을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시각으로 읽으니 눈꼴 신 속물성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길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br>&nbsp; 스물다섯 살 먹은 케이트 크로이 양. 위로 두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오빠 둘은 죽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로 말하자면 한 시절에 가히 영국 최고의 미남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훤하게 잘 생겼던 남자. 생긴 꼴을 하느라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안 살림을 망쳐 놓는데 전력을 다했음에도 아직 완전히 망자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독자가 보기엔 망가진 인물이고 망가진 집안이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방을 얻어 아버지 혼자 산다. 인간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지만 완벽한 외모와 몸에 박힌 신사의 품행을 가진 빈틈없는 영국 신사. 속 마음과 달리 악의를 찾을 수 없는 상냥한 눈과 또렷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기꾼.&nbsp; 언니 메리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교회 목사한테 시집 가더니 결국 아이 넷 달린 과부 신세가 됐다. 아빠를 닮아 수려한 외모를 가졌으나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여인. 죽은 남편의 누이 두 명과 여태 친분을 쌓고 있다. 일찍 죽은 어머니가 메리언과 케이트, 두 딸한테 각각 2백 파운드의 연금을 남겼으나,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착하고 정의로운 케이트가 네 아이를 키우는 언니한테 1백 파운드를 양보했다. 그게 아버지의 불만이다. 젊은 메리언한테 줘 봤자 시누이들 비스킷 값으로 다 넘어갈 테니 차라리 자기한테 쓰라고 하면 오죽 좋았겠느냐는 거겠지.&nbsp; 하여간 메리언 언니에 대하여 헨리 제임스는 조금도 좋은 방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주인공이자 정의로운 사랑꾼인 동생 케이트보다 훨씬 진정한 인물이다. 적어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게 산다.&nbsp; 케이트는 이모 모드 러더 부인 집에서 이모와 함께 산다. 다만 조건이 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와 어떤 이유라도 왕래하지 말 것.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아버지한테 찾아가 함께 살자고 제안했지만 깨끗하게 거절당했다. 라이어널이 미쳤니? 자기 한 입 먹고 살기도 힘든데 노동하지 않을 것이 뻔한 막내딸을 들이게?&nbsp; 모드 러더 부인은 전형적인 영국의 부르주아. 랭커스터게이트의 부촌에 저택을 짓고 산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인물. 조카들을 가끔 찾았지만 극도의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름대로 돌보느라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런 이모가 케이트와 함께 살고 있으니 조카의 거의 모든 일 역시 이모의 관심 속에, 관리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애정 문제도 마찬가지.<br>&nbsp; 케이트의 연인이 머튼 덴셔. 아쉽게도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할 정도로 돈이 없는 청년이다. 모드 러더 부인 눈에 찰 턱이 없다. 아무리 잘 생기고 몸가짐 바르고 성격도 좋지만 돈 없으면 꽝이다. 케이트 역시 이를 알아 덴셔가 자기 애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던셔도 마찬가지. 이모가 꼽는 케이트의 신랑감 가운데 한 명이 마크 경. 경卿. 영어로 Sir. 마크한테 시집을 보내면 잘 하면 공작부인이 될 지 그걸 누가 알아? 많지는 않지만 돈도 꽤 있는 양반인데. 하지만 틀렸다. 돈은 이모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신 나이가 많다. 벌써 머리가 훌렁 벗겨진 늙은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이 많은 남자가 그리 큰 흉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그냥 밀어붙이고 싶다. 케이트야 질색을 하건 말건.&nbsp; 머튼 덴셔가 일을 꽤 잘한 모양이다. 이 시절 영국의 목면 사업의 최대 파트너는 미국. 이 가운데서도 뉴욕. 그리로 몇 달간 출장을 가게 됐다. 그래서 잠깐 무대가 미국으로 바뀐다. 뉴욕에서 만나 사랑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 좋은 감정을 나눈 아가씨가 밀리 실. 덴셔를 출장보낸 회사의 파트너 기업 최대 주주. 아버지가 일찌감치 죽으면서 졸지에 젊고 아름답고, 예절 바르기도 하고, 생각하는 것도 건전한 아가씨 손에 무지막지한 돈벼락이 떨어졌다. 자상한 헨리 제임스가 밀리 아가씨를 이런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하여 친척 나부랭이들이 한 명도 없고, 형제 자매도 하나 없는 완벽하게 외로운 젊은 여성으로 설정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nbsp; 밀리 실 양이 가진 부는 영국 섬나라의 부르주아 모드 로더 부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헨리 제임스가 설정한 여러 미국인들은 대개 무지무지하게 부자인 것과 마찬가지. 밀리가 알프스에 쉬러 갔다. 부잣집 아가씨가 여행을 혼자 떠나지는 않았겠지? 샤프롱 자격으로 함께 길을 나선 이가 수전 셰퍼드 스트링엄 부인. 보스턴 사람 스트링엄 부인이 젊은 시절에 어찌저찌 해서 모드 매닝엄을 알게 되어 아직 주소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밀리와 스트링엄 부인이 다음 행선지로 이탈리아가 아닌 런던을 택하게 된 것.&nbsp; 여기서 주목할 가장 중요한 반전 상황.&nbsp; 밀리 실 양의 런던 행에는 사실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수술 집도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루크 스트랫 박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던 점.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린다. 밀리 양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1권 256페이지에 스트링엄 여사를 향한 밀리의 대사가 나온다.<br>&nbsp; “겉보기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보장해주는 즐거움조차 훌륭한 묘비에 적힐 정도가 못 되는 그날 내가 그럴 테지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죽은 것처럼 살았으니까, 틀림없이 죽을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을 거예요. 그게 아마 아줌마가 바라는 모습일 테고요.”<br>&nbsp; “복선?” 나는 위 문장을 읽고 이렇게 메모해 놓았다.&nbsp; 런던에서 자연스럽게 밀리 양은 모드 러더 부인과 일당들인 케이트, 마크 경을 만나 알게 되고, 케이트와는 우정까지 돈독하게 또는 겉으로만 돈독하고 속으로는 던셔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일 수도 있게 되겠지? 뉴욕에서부터 던셔를 만나 속으로 평한 밀리의 생각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여서, 훗날 알게 되는 사실, “개인적인 재산이라고는 없고, 생길 가능성도 없”는 건 밀리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던셔가 가난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정말 가난한 무산 계급 사람이 들으면 완전 허파 뒤집어질 이야기다. 몇 달씩 휴가 내고 베네치아에 갈 수 있는 청년이 개인적 재산이 “없다”고? 욕 나오겠지? 내 입에선 욕 나왔다. 더러운 속물 젠트리들.<br>&nbsp; 밀리는 무지막지한 부자. 그러나 곧 죽을 수도 있다. 1권에서 보면. 이때 내 머리 속에서 번쩍 떠오른 미쿡 사람 한 명. &lt;한 여인의 초상&gt;에서 주인공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 이사벨이 문병을 와 이모부한테 얼른 쾌차하셔야지요? 라고 의례적으로 묻자, “싫다. 나중에 죽으려면 또 이만큼 아파야할 거 아니겠니?”라고 대답해 나를 감격시켰던 인물. 이이가 진짜로 죽으면서 현금 7만 달러, 2017년 현재가치로 251억원을 상속해주었다.&nbsp; 혹시 밀리 역시 죽으면서 이 불행한 연인, 현 상황이라면 절대 결혼에 성공할 수 없는 케이트와 덴셔에게 당연히 전 재산은 아니지만 거액을 물려주는 거 아냐?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 다시는 헨리 제임스를 읽지 않겠다.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한테 했다.&nbsp; 어떻게 되느냐고? 안 알려드린다.&nbsp; 이건 말할 수 있겠지. 벨 에포크 시절 귀족 부르주아 사회의 속물성, 지저분한 사고방식, 위선이 온갖 말빨과 수사와 눈치에 섞여 있다는 거. 등장인물 가운데 자기 생각을 드러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불쌍한 네 아이의 엄마이자 과부인 가난한 메리언 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사람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자기 본심은 꽁꽁 숨긴 채, 뜻대로 되지 않으면 꼭 그걸 꺼내 비틀어버리는 인간들. 이런 사람들 구경 한 번 제대로 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4/35/cover150/89320451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4350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포크너라는 전설 - [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9429</link><pubDate>Mon, 03 Aug 2026 04: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94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4294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4294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독후감 쓰려 워드 열어 놓고 몇 십 분 멍 때리고 있다. 도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nbsp; 이 책은 &lt;야생 종려나무&gt;와 &lt;노인&gt; 두 작품을 교체로 번갈아 실었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결국 어느 한 점에서 만나는 결말을 늘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는 알려드리지 않겠다.<br>&nbsp; 먼저 &lt;야생 종려나무&gt;.&nbsp; 책을 열면 바닷가 이층 오두막집과 그 옆집. 집 주인은 48세의 통통한 의사. 이곳에서 사는 건 아니고 여기에서 6km 떨어진 시내에 전기가 들어오는 회반죽으로 벽을 바른 집에서 살면서 이곳을 별장 비슷하게 여긴다. 의사는 주립대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인턴생활 2년을 제외하고 나면서부터 줄곧 한적한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는 20세기 초반의 잘 큰 시골 범생이답게 의사 면허를 따 고향에 돌아온 다음 해 아버지가 골라준 배필과 결혼해서 아직까지 아이 없이 살고 있다. 아내가 이재에 밝아 결혼 10년 후에 바닷가에 이층 오두막과 옆집을 사서 휴가객에게 주 단위로 이른바 팬션업을 하는데 이게 의외로 쏠쏠하다.&nbsp; 이 두 오두막 집 옆에 종려나무가 서 있다. 바닷가라서 바람이 불면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는 것이 인상 깊다. 제목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 야생 종려나무가 야생 종려나무이려면 반드시 조금은 거센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래야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가 날 터이니.&nbsp; 독자는 처음부터 헛갈릴 수도 있다. 포크너가 의사 부부, 특히 의사에 대해 조금 과하게 정보를 주어, 중년의 의사가 작품의 주인공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아니다. 나흘 전에 남녀 한 쌍이 별장 옆 건물에 두 주일 일정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진짜 주인공들.&nbsp; 여자는 어딘가 두려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노란 눈동자를 하고, 자크가 옆구리에 달린 여성용 바지가 아니라 격식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다리에 달라붙는 남성용 바지를 입은 여자는 쾡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의사가 척 보니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척한 모습이다. 분명히 병든 모습. 1기 아니면 2기. 어쩌면 3기일 수도 있지만 심장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직 독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이이의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돌팔이 비슷한 지는 모를 단계라서.&nbsp; 작가 포크너가 묘사하기를, 여자의 증오에 찬 시선은 인류 전체를 향한 증오, 인류 전체가 아니라 남자들을 향한 혐오로 보인다. 의사 부부는 이미 알고 있거나 적어도 눈치채고 있었다. 이들이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라는 것을. 숱한 사람들을 겪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틀림없다고 귀띔을 해준 상태. 그러나 부부는 이 사실이 매우 불쾌하지만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만일 말이 나왔다 하면, 그 순간에 의사가 이들을 내보낼 것이란 걸 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2주치 집세를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서. 그리고 따져 보니 그들, 숙박객의 전 재산이 20달러뿐이고 그것도 3일 전 이야기이며 여자 상태가 좋지 않아 인정상 내보내기가 껄끄러워서.&nbsp;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남자 해리 윌본이 의사가 머무는 2층 오두막집의 현관을 두드린다. 강한 바닷바람이 예의 종려나무 잎사귀에서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한 밤중, 윌본은 집주인에게 급하게 의사의 왕진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야 하겠다고 하고, 그는 자신이 의사라고 밝힌다. 해리 윌본과 함께 묵고 있는 여자 샬럿 리튼마이어가 피를 흘리고 있단다. 의사는 생각한다. 아하, 폐의 문제였구나. 심한 각혈을 하고 있다니.<br>&nbsp; 해리 윌본. 나이 많은 의사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막내 아들. 두 살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아들의 의대 수업료와 재학중 생활비로 사용하라고 2천 달러를 상속했다. 자신이 어렵게 돈을 벌어가며 의사가 됐던 시절에 필요했던 2백달러의 열 배에 달하는 돈이니 충분하리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19세기 말의 관점이었을 뿐이라서 해리는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1년 인턴 생활하는 동안 지독하게 근면해야 했기 때문에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딱지도 떼지 못했다.&nbsp; 그러던 하루, 절친이 강압하다시피 파티에 함께 가자고 재촉해 그의 정장을 빌려 입고 참석한 파티에서 필생의 여인을 만난다. 이이가 바로 샬럿 리튼마이어. 천생 신사이자 부르주아인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 둘은 만나자마자 확 불이 붙는다. 물론 한 번도 사랑은커냥 딱지도 때지 않은 윌본은 그게 사랑의 불인 줄 그때는 몰랐다. 샬럿은 윌본을 자기 집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또 초대하고, 밖에서 만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화염에 휩쓸려버린다. 불 같은 여성. 사랑에 관한 한 절제도, 한계도,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화염 그 자체. 샬럿은 남편에게 애인이 생겼으며, 그의 이름이 해리 윌본인데 이제 둘이 떠나야겠다고 통보한다. 가톨릭 신자인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서 혼인의 청산은 바라지 않는다며.&nbsp; 쥐, 랫Rat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편 프랜시스는 해리 윌본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3백달러 수표를 건네며, 해리가 샬럿을 책임질 수 없는 때가 오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샬럿을 다시 돌려보내라고 한다. 만일 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반드시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임을 통보하면서. 독자가 주인공 입장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야말로 내가 보기에 신사 중의 신사, 부처님 가운데 토막 중에서도 가운데 토막의 사나이. 그러나 구습에 얽매인 조금 막힌 사내라서 자유분방하고 사랑 하나에 목숨 거는 샬럿한테는 맞지 않는 불운의 사나이다.&nbsp; 이래서 집 나가는 샬럿과 의대 졸업하고 2년을 채워야 하는 인턴 기간을 절반 밖에 수료하지 않은 해리 윌본. 일찍이 우리나라 탤런트 변우민이 말한 바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사랑은 좋지만 이들 앞에 닥친 것은 대공황과 아무 쓸모없는 의대 졸업장. 그리하여 우물 밖의 정글 속에 이들은 세월의 사나운 발톱질을 견디다, 견디다 무너져야 할 일만 남았으리.<br>&nbsp; 다음은 &lt;노인&gt;.&nbsp; 때는 1927년 5월. 미시시피주에 대홍수가 있던 시절. 두 죄수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nbsp; 한 명은 25세 정도. 키가 크고 마른 몸매에 그을린 얼굴. 분노로 들끓는 눈매를 가지고 있다. 이 분노는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막은 사람들을 향한 분노라 아니라 작가들을 향한 분노이며, 싸구려 소설에 등장하는 무형의 이름의 주인공들, 다이아몬드 딕이나 제시 제임스 같은 부류를 향한 분노였다. 특히 작가들이야말로 그를 현재의 곤경에 빠뜨린 주범이라 할 만했다.&nbsp; 이 키 큰 죄수가 범죄를 저지른 건 18세 때. 싸구려 소설에서 하도 많이 다이아몬드 딕과 제시 제임스 같은 서부의 무법자를 많이 읽어 그들을 흉내 냈다. 그리하여 다이아몬드가 했던 그대로 복면을 하고 (발포되지도 않는 고물 또는 가짜) 권총을 들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소설에 의하면)금고가 실린 칸에 들어가 총을 뽑기도 전에 경비원들에게 두드려 맞고 현장에서 붙잡힌 강도 미수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러니 싸구려 소설과 주인공들과, 무엇보다 형편없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큰 분노를 갖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nbsp; 두번째 죄수는 키가 작고 통통한 몸집에 매우 흰 피부, 그리고 알 대머리의 남자. 아무도 이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 지 모른다. 다만 형기가 199년에 이른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범죄이길래? 그래서 독자는 이이의 범죄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짐작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이는 1927년에 미시시피강 홍수 때 키 큰 죄수와 함께 고립된 두 사람을 구하러 조각배를 타고 나섰다가 홀로 구조되는 인물일 뿐이다. 엑스트라와 조연 사이 정도의 무게감.&nbsp; 하여간 두 죄수는 미시시피 강이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져 큰 난리가 나, 나무 꼭대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여성과 건물 옥상에 고립된 남성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고 떠난다. 키 작은 죄수는 심지어 노를 저을 줄도 모르지만 하여간 키 큰 죄수를 따라 나섰다. 거대한 강에서 홍수가 나면 물길이 하나로 일관되게 흐르는 게 아니어서 애초에 나룻배 수준의 작은 배를 노 저어 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 그리하여 소용돌이에 갇히는 일이 생겼고, 이때 헤엄도 치지 못하는 키 작은 죄수가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큰 나무 아래라서 꼭대기에 올라 겨우 구조될 수 있었다. 이이가 나무에 올라 사방을 보니 이미 조각배와 다른 죄수는 시야에서 사라져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 교도소장과 부소장에게 그렇게 보고하여 키 큰 죄수는 법적으로 익사 처리됐다.&nbsp; 그러나 키 큰 죄수는 하잘것없는 조각배를 기어이 노 저어 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여성을 구해냈고, 그 여성이 만삭이 임산부였는데 하여간 그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예정일이 남았지만 무사하게 출산하게 해주었으며 몇 주 동안 배를 곯지 않게 돌보았다. 독자는 이 죄수가 하는 행동을 읽으며 저절로 &lt;야생 종려나무&gt;의 주인공 해리 윌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는 짓이 비슷하다. 생각하는 것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리하여 죄수가 어설픈 열차 강도 미수범이란 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민망해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두 작품을 책 한 권에 교차 편집한 것도 나 같은 독자를 위해 그리 했으리라.&nbsp; 플롯은 두 작품 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도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이라니. 별로 길지 않은 책을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었다. 이런 “책 읽는 즐거움”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즐기는 일. 참 근사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150/89374649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08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언제나 그때이자 지금 - [지금, 그리고 그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3061</link><pubDate>Fri, 31 Jul 2026 04: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30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8860&TPaperId=17423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49/18/coveroff/k9021388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8860&TPaperId=174230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금, 그리고 그때</a><br/>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 새삼스레 킨케이드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까 재미있는 가족사가 나온다.<br>&nbsp; “킨케이드는 1979년에 작곡가이자 베닝턴 컬리지 교수인 앨런 숀과 결혼했는데, 그는 (킨케이드가 1976년부터 전속작가로 일하고 있던) 뉴요커의 오랜 편집자 윌리엄 숀의 아들이며, 극작가 월리스 숀과 형제이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어쩌구저쩌구… 킨케이드와 숀은 2002년에 갈라섰다.”<br>&nbsp;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lt;루시&gt;에서 뉴욕 근처에 입주 보모, 오페어로 들어간 이야기를 한 바 있고, &lt;미스터 포터&gt;는 생물학적 아버지, &lt;내 어머니의 자서전&gt;은 좀 냉정한 어머니에 대하여 말했다. 이제 &lt;지금, 그리고 그때&gt;를 쓰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2013년에 나오면서 앞에 인용한 위키피디아 내용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조금 구설에 올랐던 모양이다. 작중 부부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가 누가 보더라도 앨런 숀하고 너무 닮았기 때문에.&nbsp; 앨런 숀이 작곡가이자 컬리지 교수. 미스터 스위트는 집에 부속한 차고 위에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를 둔 작업실에서 음악에 전념하는 작곡가. 뉴욕주의 주도 올버니에서 관객 스물 댓 명을 모시고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도 연주하는 모양이다. 듀크 앨링턴의 재즈와 현대 음악, 주로 안톤 베베른, 아널드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류의 음악을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장르를 불문해 교향곡, 성악, 현악, 피아노곡 등을 망라하지만, 현대음악이 거의 다 그렇듯 대중의 호응이 거의 없는 불운한 작곡가. 무대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로 보이는데 집안이 뻑적지근하고,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와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는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끝내고 저지 맨해튼 건물의 옥상에서 자유낙하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물론 이 불행한 죽음은 앨런 숀의 경우와 다르리라 믿는다. 하여간 이런 맥락으로 보아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는 백인 인텔리겐치아일 것이다.<br>&nbsp; 처음엔 미시즈 &amp; 미스터 스위트도 좋아서 죽고 못 살았겠지. 하는 짓마다 예뻐 보이고, 잘나 보였을 테지. 그렇게 살다가, 사실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가 투신자살 해버렸으니 사랑과 행복의 시기가 지극히 짧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맏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낳을 때까지는 다른 부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다음에 어린 헤라클레스를 낳았을 때, 미스터 스위트는 벌써 아내를 몹시 미워하는 상태였고, 미움을 넘어 그녀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가 허다했다. 아내가 미우면 아내가 낳은 아들도 미울까? 미스터 스위트가 갓난 헤라클레스의 탯줄을 끊자마자 품 안에 안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헤라클레스를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도끼다시”한 시멘트 바닥에 거꾸로 떨어져 두개골이 박살이 나 죽어버리는 광경을 머리 속에서 그리기도 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이혼한지 10년이 넘은 전 남편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렇게까지 악담을 서슴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전작에 비해 유달리 입이 험하다.&nbsp; “신생아인 아들을 바라보았는데 아기를 품에 꼭 안기가 두려웠다. 품에서 놓쳐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더없이 강렬한 열망이, 몸은 멀쩡하지만 머리가 깨져, (중략) 분만실 바닥 사방에 아이의 뇌가 흩뿌려지는 걸 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p.77)&nbsp; 미스터 스위트가 본 미시즈 스위트는 출신부터 바나나보트를 타고 미국에 들어온 유민. 바나나보트? 칼립소의 황제이자 내 우상이기도 한 해리 벨라폰테의 노래 중에 &lt;Banana Boat Song&gt;이 있는데 이 바나나보트가 아니다. 미스터 스위트가 말하는 건, 서인도제도에서 거렁뱅이들이 사람이 타는 여객선이 아니라 바나나 수송용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한 불법 행위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자기는 마누라하고 씨가 다르다는 건데, 이런 혼인은 시한폭탄 하나를 품에 안고 시작하는 꼴이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폭탄.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nbsp; 그러면 미스터 스위트는 여태 왜 살았느냐고? 킨케이드 가라사대, “미움은 사랑의 정반대이고 그래서 사랑과 가장 유사한 형태”란다. 그러니 미움을 사랑이라 오해하면서 살 수 있었다는 뜻이겠지.&nbsp; 웃기네. 웃기지?&nbsp; 처음엔 자기와 다른 피부색도 좋아 보였고, 계급이 다른 것도 오히려 그래서 매력적이고, 부모가 특히 엄마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이것 저것 다 합해 남들 앞에서 후까시 잡기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살면서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가 너무나 많이 서로 다르니까 처음에 싫다가 결국 미워졌겠지. 이러다 보면 결국 사고 친다. 그리하여 저 뒤로 가면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와 어린 헤라클레스를 앞에 두고 미스터 스위트가 고백을 해버린다. 자기한테 진정한 사랑이 찾아 왔노라고. 꼴값하는 거지 뭐.<br>&nbsp; 그래서 결국 미시즈 &amp; 미스터 스위트는 혼인의 불행한 종말을 맞는데, 이게 주된 내용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은 이런 문장이다.&nbsp; “현재는 그때이자 지금이고, 과거도 그때이자 지금이며, 미래도 그때이자 지금이 될 것.”&nbsp; 쉬운 이야기로 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지금 벌어지는 모든 것도 영원히 남을 거란 뜻이다.&nbsp; 이 정도면 미시즈 스위트도 깔끔하게 자기 이름에서 “스위트”를 싹 지워버리고 당연히 위자료 넉넉하게 챙겨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살면 될 것을, 서인도제도 사람들의 정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지난 이야기, 심지어 자기 모국 엔티카 바부다의 인정머리 없는 어머니와 얼굴만 아는 아버지 생각까지, 그것만 딱 끄집어 내기 뭐하니까, 괜히 지구가 탄생한 40억년 전부터 무슨 대, 무슨 기, 무슨 세 등을 망라하면서 독자들 해골 흔들리게 만드느라 열심이다.&nbsp; 이 작품 속 최근 미시즈 스위트의 나이가 52세. 만일 미시즈 스위트가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분신이라면 이혼 과정이 완료되기 1년 전이다. 사는 곳은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셜리 잭슨 하우스. 즉 이혼 소송을 하면서 위자료 명분으로 집은 미시즈 스위트 혹은 킨케이드 소유로 한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그거면 됐지 무슨 감정이 남아서. 어차피 처음부터 시한폭탄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이었으니 말이지.<br><br>4별은 좀 과한 기분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49/18/cover150/k9021388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49180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생명 포기의 권리는 불법이어야 하는가 - [처형인의 노래 1 - 서부의 목소리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0853</link><pubDate>Thu, 30 Jul 2026 0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208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72&TPaperId=174208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00/60/coveroff/89374647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72&TPaperId=174208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처형인의 노래 1 - 서부의 목소리들</a><br/>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노먼 메일러. 소설가인 건 확실한데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게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저널리즘 기사인지 헛갈린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세 번째 메일러의 작품인데, 다른 것들의 소감도 마찬가지였다. 1923년생인 메일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기에 딱 좋은 나이였다. 하버드를 우등졸업해 애초 장교 임관이 가능했으나, 전쟁에 관한 실화 같은 소설을 쓰기 위하여 스스로 사병 입대를 지원해 태평양 전쟁에 참전, 수십 차례 작전에 투입된 바 있고, 승전 후 일정 기간 동안 일본에 주둔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이이의 초기 대표작 &lt;나자裸者 와 사자死者&gt; 즉 &lt;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gt;. 이때 메일러의 나이 스물다섯. 이 책이 뉴욕의 종잇값을 치솟게 만들 정도로 히트를 치는 바람에 젊은 메일러는 일찌감치 돈벼락을 맞아 버렸다. 그래서 평생 여섯 번 장가드는 게 가능했을까?&nbsp; 1968년, 마흔다섯 살 때에는 1967년에 있었던 반 베트남전 시위, 펜타곤까지 행진을 다룬 책을 써서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79년 쉰여섯 살에 오늘 독후감을 쓰는 &lt;처형인의 노래&gt;로 두번째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게 내가 읽은 메일러의 전작인데, 이것 말고도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와장창 있지만, 이 세 편을 읽을 소감으로 말씀드리자면, 소위 저널리즘 픽션 또는 논픽션 소설이란 장르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제 메일러는 그만 읽기로 결정했다. 다큐멘터리면 다큐멘터리고, 소설이면 소설이지, 논픽션 소설이 뭐 말라빠진 장르야? 대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nbsp; 근데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한 의견일 뿐, 당신 입맛에 맞으면 메일러 만큼 현장 취재를 실감나게 소설 형식으로 쓰는 작가도 별로 없으니 그냥 꾸준히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메일러가 “게이 탈레즈, 트루먼 카포티, 헌터 S. 톰슨, 조안 디디언, 톰 울프와 함께 사실 저널리즘에서 문학 소설의 스타일과 장치를 사용하는 장르인 '창작 논픽션' 또는 '신저널리즘'의 혁신가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다른 작가들은 별개로 하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은 ‘톰 울프’를 예의 주시하시압.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소설은 &lt;허영의 불꽃&gt; 한 편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절판. 하지만 아휴, 진짜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재미있는 B급 대중소설이니 우연히 눈에 띄면 주저하지 마시라.<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개리 마틴 길모어. 역시 실재 인물이었다. 포틀랜드에서 출생해 유타 주 프로보 시에 살았다. 길게 말고 짧게. 개리는 어디에서도 길게 살아본 적이 없다. 한 군데 빼고. 교도소. 열세 살 때, 이땐 엄마 베시 길모어와 함께 포틀랜드에 있을 때였는데, 처음 소년원에 들어가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은 이후 그의 주민등록초본은 주 소년원에서 오리건 주립 교도소와 일리노이 메리언 교도소 주소로 진화, 발전하기에 이르렀다.&nbsp; 그의 사촌 여동생 브렌다. 브렌다가 여섯 살 때 사과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때 나무 아래에서 일곱 살 게리 오빠가 떨어지는 브렌다를 붙잡아 무사한 적이 있어 가까이 지냈다. 브렌다가 매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대는 성격이었던 반면, 게리는 조용하고, 정중했고 이후에도 사촌 누이가 곤경에 처하면 기꺼이 도와주었다는데 어떤 일로 어떻게 도와주었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게리가 오리건 교도소에 있을 때 브렌다가 편지를 썼다. 답장에서 게리가 말하기를, 자기 때문에 가족이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며, 출소하면 조직 폭력배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자기 꿈이라고 했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이지만 교도소 안에서 상당한 독서를 한 듯 어려운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편지지 여백에 작은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다. 사실 게리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지만 아빠도 교도소를 이웃집 다니듯 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의 소질을 계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br>&nbsp; 그러던 어느 날, 게리한테 편지가 왔다. 이번에 가석방이 있을 예정인데 브렌다하고 다른 한 명이 연대보증을 서 주면 자기도 가석방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게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온 브렌다는 자기 친동생 토니도 설득해 연대보증을 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인감도장을 찍어준 후에야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30년 가까이 만난 적 없는 남자의 보증인이 되었다는 것.&nbsp; 그러나 때는 늦었다. 게리는 악명높은 일리노어의 메리언 교도소에서 나와, 예정대로라면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솔트레이크를 거쳐 프로보로 와야 하건만, 그간의 오랜 교도소 생활을 벌충이라도 하듯 비싼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술을 약간 마신 상태로.&nbsp; 일단 교도소라는 우물 안에서 나왔으니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다. 김선우의 “폴짝인” 운운하는 시에서 내가 말한 적 있다. 개구락지가 우물에서 뛰쳐나와 넓은 세상을 보고 “빌어먹을, 하늘이 저렇게 커다랬어?” 놀라면서 세상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을 때, 황새, 너구리, 뱀 같은 포식동물이 그걸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지 몰랐느냐고. 머리통이 커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바람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아주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하거늘,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게리 역시 일일이 《공통수학의 정석》 첫 장부터 열어볼 생각도 없다.&nbsp; 하여간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기껍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흔쾌하게 손을 내민 사람이 제화점을 하는 큰이모부 벅. 구개파열 수술 자국이 남아 있는 강골의 사나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서 오히려 늘 온화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구개 수술 흉터를 놀리는 아이하고는 무한 싸움을 불사했다. 벅이 게리한테 자기 제화점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일단 자신의 집에서 아내이자 게리의 큰이모인 아이다와 함께 셋이서 살자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nbsp; 게리의 교도소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상적이 아니고, 일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한 절제와 조심 같은 것이 전혀 몸에 익숙하지 않다. 주급을 받으면 거의 전부 맥주 마시는 데 사용하고, 벅 이모부한테 따로 돈을 요구하여 냉장고에 맥주를 쟁여 놓고 상습적으로 들이켠다. 벅의 제화점이 말이 제화점이지 구두수선을 주업으로 하는 작은 점포에 불과하여 게리의 식대와 용돈을 대기가 힘든다. 게다가 술이라는 것이 비록 크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로를 치게 만든다. 절제를 모르는 게리가 치는 사고는 좀 더 크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기초공통수학의 정석부터 풀 수밖에.<br>&nbsp; 게리에게 애인이 생겼다. 아이 둘이 있는 이혼녀 니콜. 어린 시절에 아빠 친구한테 성폭행 당한 상처가 있어 그게 살면서 마음의 흉터로 남은 것처럼 보이는 스무 살 미인. 게리는 서른 다섯. 둘은 서로에게 빠진다. 빠져도 심각하게 빠진다. 게리가 숙소를 번의 집에서 니콜의 집으로 옮긴다. 화르륵 타버리는 사랑. 니콜이 견디지 못하고 엄마 집으로 간 사이, 여러가지로 갈등에 싸인 게리는 정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니콜의 여동생 에이프릴과 함께 무리를 해서 산 소형 중고 트럭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주유소에 가서, 별 생각 없이 총을 들고 사무실에 진입해 현금 수납기를 털고, 당번 중인 20대 건실한 유부남을 화장실로 끌고 가 엎드리게 한 다음, 뒤통수에 대고 두 발을 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nbsp; 신발과 바지에 피를 묻힌 상태로 차를 몰고 에이프릴과 함께 모텔로 가서, 다시 모텔을 지키고 있던 또다른 20대 건실한 유부남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다. 현장을 빠져나오다 권총을 풀숲에 던져 버렸는데, 워낙 예민한 자동권총이라 관목에 걸렸는지 격발이 되어 게리 역시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총을 맞는다. 이 살인강도 행위의 직접적 원인은 중고 소형트럭의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방법 말고는 게리의 생각으로 돈이 생길 구멍이 없으니까. 트럭을 사지 않으면 되는데 그것 역시 생각이 닿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nbsp; 근데 직원 두 명은 왜 죽였을까? 돈만 가져 나오고 그들을 꽁꽁 묶어 두면 안 됐을까? 그냥 죽인 거다. 정말로 이렇게 진술한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다른 사람, 죽은 자와 죽은 자의 가족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닿지 않으니까 별 생각 없이 죽일 수 있었겠지.&nbsp; 게리는 당연히 체포당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여기까지가 1부. “서부의 목소리들.”<br>&nbsp; 나는 2부 “동부의 목소리들”에서는 다른 사건이 등장해서 서로 먼 연결고리가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2부로 접어들면 이제 미국내 사형제도와 사형집행을 둘러싼 법정 다툼과 10년 만에 재현하는 사형집행을 두고 저널리즘 사이의 추한 비즈니스 다툼, 사법부 내의 복잡한 의사결정 같은 것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상세해도 너무 상세하게. 그래서 읽는 독자는 숨 넘어갈 정도로 지루하게 만든다. 두 권 합해서 1,760쪽이 넘어가는 길고 긴 장편 소설. 노먼 메일러는 그의 주특기 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별의 별 등장인물을, 거의 전부 실명이라고 하는데 그건 뭐 알 거 없고, 다 등장시켜 인터뷰하고, 녹음한 거 타이프하고,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 사람을 콱 질리게 한다.&nbsp;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 읽다가 지루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과하게 상세하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고 써 놓았으면 아예 읽을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을. 다큐면 다큐고 픽션이면 픽션이지 이게 뭐람.&nbsp; 이 책에 관해 할 말이 많다. 아직 반도 안 했다. 사형 집행 반대의 대의를 외치다 보니, 사이코패스가 틀림없는 게리 길모어를 어쩌면 당연히 과하게 분식시킨 것, 피해 가족이 순식간에 작품에서 실종되는 일 등등.&nbsp; 그리고 생명권.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자기 목숨. 맞지? 게리 길모어는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항소를 포기하고 법적으로 명시한 시일 내에 사형이 집행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형 반대 집단은 집행을 멈추기 위하여 갖은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방해한다. 법적으로 사형을 받은 사형수가 법적 하자 없이 죽겠다는데 왜 그걸 말려? 목숨보다 온전히 사적인 것이 어디 있다고? 사형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별적 사람을 뜻하는 자유인들의 생명 포기권, 즉 자살한 권리는 왜 정당하게 취급받지 못하는지 나는 조금 의아하다. 임신중단이 당연히 임신한 사람의 권리이듯, 자기 생명의 포기 권리도 인간의 천부 권리 아닌가 싶다.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마감할 수 있도록... 그만 하자. 조금 더 하면 정말 오지게 얻어 터질 거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00/60/cover150/89374647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00608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극한 유형지 생존기 - [콜리마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8461</link><pubDate>Wed, 29 Jul 2026 0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84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585&TPaperId=174184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91/70/coveroff/893240458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585&TPaperId=174184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콜리마 이야기</a><br/>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06월<br/></td></tr></table><br/>.&nbsp; 바를람 티호노비치 샬라모프는 1907년에 러시아 블로그다에서 러시아정교 세습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에 나름대로 유명한 도시 야로슬라브가 있다. 거기서 정북 방향으로 모스크바에서 온 만큼 더 가면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도시가 블로그다. 이곳에서 세습 사제를 했다니까 팔자 좋은 집안이었다고 생각하지? 조금은 맞는다. 하지만 1907년생 샬라모프가 열 살이 되자마자 러시아 혁명이 터져, 채 3년이 지나기도 전에 볼셰비키들이 모스크바에 있던 대성당을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을 만큼 인민의 적인 종교를 거덜내기 시작했으니 이이의 팔자는 일찌감치 찌그러졌을 수밖에.&nbsp; 1920년이면 샬라모프의 나이 열세 살 때. 그는 과감하게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정교 사제인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을 거 같지? 그러지 않았단다. 이 사제님도 직업이 사제일 뿐 속마음은 왼쪽으로 팍 치우쳐 심지어 10월 혁명도 지지했다니까 말 다 한 거다.&nbsp; 그러나 혁명으로 집권한 소비에트는 이제 전세계 공산주의의 어머니로 우뚝 서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세상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권력투쟁에 돌입, 70년 후, 실패한 건 공산주의요, 성공한 건 1인 독재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열세 살에 무신론자를 주장한 샬라모프는 아빠가 교회 사제라서 국가로부터 교육지원을 받지 못해 모스크바 근교의 가죽공장에서 2년 동안 무두장이 일을 배우기도 했고, 이후 드디어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 법학을 공부했다. 이 와중에 틈 나는 대로 시도 쓰고 러시아와 유럽, 미국 등의 문학작품도 탐독했다.&nbsp; 좀 자세하게 말하는 이유는, 《콜리마 이야기》에서 작중 주인공급 등장인물이 콜리마의 산악지역에 있는 금광에서 채굴 작업자로 강제노동을 하는 먹물 출신 법학도 정치범이며, 굳이 법을 공부했다고 고백해 차별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을 지경을 만났을 때 하필이면 둘러대는 전 직업으로 무두장이를 선택한 일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걸?<br>&nbsp; 그런데 샬라모프가 기껏 고른 정파가 하필이면 트로츠키파. 이러니 뭐 되는 게 있겠어? 급기야 소련혁명 10주년 기념 연설회에서 “스탈린 타도”를 외치다 잡혀 3년형을 받았는데, 스무 살의 젊디젊은 청년 샬라모프는 끝내 판사의 판결문을 인정한다고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에 석방되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콜리마에 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았을 때, 배포 좋게 호송인들에게 강제로 호위를 받지 않는 한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입이 방정이지, 그래 결국 1937년 자기가 말한 대로 그대로 됐다.&nbsp; 1937년이면 1년여에 걸친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 기간. 여기에 용코 없이 걸려들었다. 하물며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조차 거의 언제나 한밤중에 체포하는 관행이 자신한테 닥쳤을 때 잠옷바람으로 달려가는 걸 바라지 않아 늘 외투 차림으로 침대에 들었을 때, 샬라모프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죄목은 당연하게도 반혁명 트로츠키주의자. 그나마 사실상 처형을 의미하는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10년 유배형”이 아닌 5년 유형이었지만, 아뿔싸, 호송인들에 의하여 콜리마에 끌려가 금광에 투입되었던 것.&nbsp; 그런데 《콜리마 이야기》를 읽어보면 모든 단편이 그의 두번째 투옥 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 아직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은 상태에서 1943년에 소련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을 “위대한 러시아의 작가”라고 했다가 스탈린 정부에 의해 다시 한 번 10년 교화형을 받아 다시 금광의 채굴꾼으로 끌려가 죽기 일보직전, 염라대왕 전에 들렀다 온 것까지를 망라한다. 영양실조와 발진티푸스가 겹쳐 샬라모프 본인은 깨어날 때까지 자기가 쓰러진 줄도 몰랐다고 하니 그것 참, 세상에 그런 일도.<br>&nbsp; 콜리마가 러시아의 어느 동네인가 하면, 일단 극동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 캄차카 반도보다 더 높은 위도에서 시작해 북극해까지 잇는 콜리마 강과 콜리마 산맥 지역을 통틀어 말하는데, 이 지역은 몇 개의 코뮌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을 만큼 넓다. 게다가 강제노동을 한 산악 지역은 평야 지대보다 섭씨 몇 십 도 정도 낮은 기온을 기록, 1년에 아홉 달이 겨울인데, 보통 영하 40도, 호흡하기 좀 거시기하면 영하 45도, 침 뱉으면 땅에 닿기도 전에 얼음으로 변했다 하면 영하 50도, 현지 사람들은 온도계가 없어도 거의 정확하게 현재 기온을 맞춘다고 한다.&nbsp; 이런 곳에서 가장 조심할 것은? 졸면 죽는다. 근데 추우면 잠의 침략은 더욱 매섭다.&nbsp; 열량 확보를 위하여 잘 먹어야 하지만, 기본으로 제공하는 부식이 워낙 하찮을뿐더러, 죄수 입에 들어가야 하는 정량의 대부분을 이놈이 떼 먹고, 저놈이 떼먹고, 다른 놈이 훔쳐가 거의 대부분은 아사 일보직전이다. 죽은 사람의 고기도 먹고, 덜 자란 병아리도 산 채로 뜯어먹는다. 그런 것이 다 용인되는 사회. 수감자들끼리 별 다툼도 없이 그냥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집단. 하물며 호송원이나 관리병들은 그러지 않기 망정이지 여차하면 살인을 취미생활로 할 수도 있는 곳.&nbsp; 하지만 제일 중요한 수용자 살해는 수용자들 집단에서 자동적으로 지배 계급으로 떠오른 깡패 수감자들. 샬라모프의 유배지는 도스토옙스키 시대의 유배지가 아니다. 표도르 D. 선생이나, 네흘류도프가 졸졸 따라간 카추샤의 유배처와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 우두머리 깡패 집단은 숙소에서 카드 도박을 하며, 최상위의 두목 깡패는 곧 숱한 무지렁이 수용자들의 생사여탈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도착한 소포 등의 소유권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둘째 손가락으로 지목하기만 하면 지목당한 죄수가 누구든지 간에 얼른 달려와 발뒤꿈치 각질을 살살 긁어주면서 감언이설을 속삭여야 한다. 소리 한 마당 해보라 하면 또 거절하지 못하고 쑥~대머리, 한 곡조 뽑아야 명을 보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br>&nbsp; 이런 모든 광경이 적나라하게, 그러나 이런 비인간의 벌판에서 그곳에 떨어진 한 지식인의 감정은 모두 배제한 채 그냥 그런 광경을 드라이하게 묘사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또 같은 세대인 유형자의 아버지 솔제니친과도 다르다.&nbsp; 혹시 이런 이야기에 흥미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실 만하지만, 이제 지난 시절의 큰 슬픔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이 그리 탐탁하지 않다. 동상과 괴혈병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고름, 솔기마다 득실거리는 이, 닫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동안 문이 열리기 전에 죽지도 않은 어린 닭을 산채로 뜯어먹는 배고픈 죄수 이야기 같은 건, 거대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드는 솔직한 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191/70/cover150/893240458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91709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단편과 꽁트 사이 - [짧은 이야기 긴 사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6210</link><pubDate>Tue, 28 Jul 2026 04: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62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345X&TPaperId=174162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7/20/coveroff/895462345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345X&TPaperId=174162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짧은 이야기 긴 사연</a><br/>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br/></td></tr></table><br/>.&nbsp; 3.1 독립만세사건이 있던 1919년에 프랑스 지중해 연안 칸 말고, 파리에서 서북서 쪽에 있는 캉에서 태어난 작가, 저널리스트, 라디오 애니메이터. 19년생이면 2차 세계대전이 터진 1939년에는 전쟁하기 딱 좋은 나이였던 스무살. 소설집 《짧은 이야기 긴 사연》에도 전쟁 발발 직후 곧바로 징병 대기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이 터진 다음해, 난공불락의 마지노 방어선을 우회 돌파한 독일군에 의하여 1940년 6월에 파리가 함락되는 치욕을 겪고, 같은 달 22일에 페텡이 항복을 선언, 어쨌든 그르니에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전쟁을 통과한다. 물론 나중에 좀 험한 꼴은 당했다지. 44년에 프랑스 저항군 활동도 하고 뭐 그랬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쟁 중에 소르본에서 가스통 바슐라르한테 배웠다 하니 전쟁 중에 20대 젊은 남성이 그 정도면 호강했다고 봐도 되지 뭐. 애먼 미국 젊은이들이 프랑스 땅에 들어와 픽픽 죽어간 걸 생각하면 말이지.&nbsp; 열세 편의 단편소설을 실으면서 편집도 자간, 행간 널럴하게 해 쉽게 읽힌다. 본문이 194쪽에서 끝나 분량도 많지 않다. 그래서 단편소설과 꽁트의 중간 정도, 분량이나 장르 양쪽을 감안해서 중간 정도의 작품도 제법 있다. 즉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집.<br>&nbsp; 이 책을 출간한 2012년에 이이는 벌써 아흔 두셋. 한 해에 열세 편의 소설을 화르륵 불 태우듯 썼다고 보기 힘들지만, 어쨌든 80대 후반과 90대 초반에 쓴 작품을 모은 책이라 봐야겠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노 작가들이 쓴 작품은 대개 노인들의 기억 속 자잘한 삶의 흔적을 픽션 또는 반half픽션-반half다큐멘터리 형식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그렇지 않은가, 실제 경험한 또는 기억한 과거의 것들 것에 픽션을 가미해, 줄리언 반스의 표현대로, 하이브리드 픽션으로 쓴 건 아닌가 싶었다.&nbsp; 근데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 웃기게도,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김화영. 이상하게 김화영 선생이 번역한 책을 읽고 좋은 독후감感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는 거. 이번에도 “옮긴이의 말”이 웃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프로방스 학파의 일원이면서, 자기 자랑을 화려하게 펼치는 데 빈틈이 없다. 또다른 프로방스 학파 최현무, 필명 최윤이 &lt;부영사&gt; 해설을 통해 독자를 ‘오독을 마다하지 않는’ 집단으로 단칼에 선을 그어 버린 것처럼 악마 같이 거만한 '소위' 프로방스 학파 선생들. 다행히 이젠 전부 다 꼰대 가운데 꼰대가 되어 버렸다. 세월 만세!&nbsp; 분명히 말하자. 나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다. 그가 번역한 책 가운데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다. “옮긴이의 말”도 워낙 인상깊게 웃겼던 것도 많고. 어느 작품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역자 후기 타이틀에 왜 자기가 페테르부르크 역전 시계탑 앞에 앉아 급하게 역자 후기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하냐고? 솔직히 나는 김화영이 좀 밉다.<br>&nbsp; 여든 후반, 아흔 초반에 쓴 짧은 픽션. 애초에 큰 걸 바라지 않았다. 기대가 크지 않았고, 딱 생각했던 것만큼의 차분한 픽션들 모음집.<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7/20/cover150/895462345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7207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일본 현대소설을 찾아 나서보니... - [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4101</link><pubDate>Mon, 27 Jul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141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6284&TPaperId=174141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5/54/coveroff/k44293628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6284&TPaperId=174141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a><br/>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br/></td></tr></table><br/>.&nbsp; 1979년에 일본 도쿄 남쪽, 가나가와현에서 나서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선천성 근병증으로 인한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는데, 이게 하도 심각해 뼈 혹은 근육이 호흡기관을 압박하는 모양이다. 정확한 거 아니다. 소설과 위키피디아 내용을 읽고 짐작하는 것뿐이다. 코를 통한 호흡이 힘들어져 결국 목의 인후에 구멍을 내 카테터와 부속 장비를 삽입해 그곳으로 호흡을 한다. 이건 근(육)병증 뿐만 아니라 중환자들 대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 어릴 적 동네에 한국전쟁 참전한 노병 한 분이 평생 이런 상태로 살았다. 근병일 경우에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외부 오염 공기가 곧바로 호흡기 점막과 접촉해 담, 즉 가래가 많이 낀다. 와병중인 환자는 석션 장치로 얇은 고무관을 기관지와 폐 입구까지 밀어 넣어 제거하지만, 아치카와는 기침 같은 것을 통해 스스로 가래 배출을 했던 것 같다. 이 장면이 소설에 몇 번 등장한다.&nbsp; 33세 때인 2012년에 가나가와의 요코하마에 있는 야스 학원 대학에 특수학생으로 입학해서 2019년에 와세다 대학 e-스쿨 인문 및 환경과학과에 편입,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졸압했다. 2023년에 단숨에 써내려간 소설 &lt;헌치백&gt;이 “문학계”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그걸로 모자라 그해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br>&nbsp; 내가 왜 이 책을 읽었는가 하면, 현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일본에서도 유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면 그래도 방귀 한 번 제대로 뀌었다고 볼 수 있으니, 그거 한 번 찾아보자, 싶어서 골랐다. 이것 말고 또 골라 놓은 아쿠타가와 수상작품이,&nbsp; 구단 리에, &lt;도쿄도 동정탑&gt;&nbsp; 아사히나 아키, &lt;도롱뇽의 49재&gt;&nbsp; 마쓰나가 K. 산조, &lt;베리에이션 루트&gt;&nbsp; 다카야마 하네코, &lt;슈리의 말&gt;&nbsp; 이 정도인데, 지금 &lt;헌치백&gt;을 읽고 정말 이것들을 읽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키가와가 그동안 SF, 판타지 등 장르문학과 라이트 노벨을 쓰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처음 집필한 순문학이 &lt;헌치백&gt;이라는데, 그건 알겠고, 하지만 내 기준에는 맞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암만해도 골라 놓은 네 권의 책 가운데 딱 한 권만 더 읽어봐야 하겠다.&nbsp; 일본도 대단한 문화 강국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작가들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현대소설 작가 찾기가 이리도 힘들다. 비단 위에 나열한 작가/작품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가나 작품 있으면 귀띔해주시면 좋겠다.<br>&nbsp; &lt;헌치백&gt;의 주인공 이자와 샤카도 책을 쓴 작가 이치카와 샤오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부모가 별세하면서 재산 전부를 이자와 샤카가 물려 받았다. 엄마는 죽기 전에 원룸 맨션 한 동을 통째로 개조한 장애인 시설 그룹홈 &lt;잉글사이드&gt;를 만들어 샤카한테 증여했다. 각각의 원룸은 다섯 평짜리 방, 주방, 화장실, 욕실로 되어 있고, 샤카 말고 당연히 다른 환자도 입주해 지내고 있다. 이 가운데 몇 명은 원룸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중증. 아마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듯하다.&nbsp; 샤카도 자기 발을 딱딱한 바닥에 딛고 몸을 움직여 본지 30년은 되는 거 같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근육병증 때문에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아 왼편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특별한 장애가 없는 독자 나는 이해하기 힘든, 특정한 장치로 종이책을 읽고, 글도 쓴다.&nbsp; 작품의 첫 장면은 포르노 바로 직전까지 수위를 올린 일본의 성 해방구역 “해프닝바” 잠입 수기로 시작한다. 3층에 있는 룸으로 두 명이 아니고, 세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들어가 두 쌍이 성 또는 유사 성행위를 벌인다. 나머지 한 명은 기록자. 웬만하면 조금 인용해볼까, 했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nbsp; 이 장면은 그냥 한 시절 이런 글을 청탁 받아 써서 잔돈 푼이나 만졌으며, 원래 부잣집 딸로 태어나 못해도 수십억엔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 잠입수기로 번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같은 장애인이라도 저 유럽,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티네 라반트하고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br>&nbsp; 이치가와 샤오가 주인공 이자와 샤카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여성으로 임신했다가 임신중단을 해보고 싶은 마음.&nbsp; 앞의 것은 종이책에 과하게 집중되어 있어서 근병증인 샤카는 읽기가 매우 곤란하는 것이고, 헌치백이며 호흡을 기관지를 뚫어 카테터를 이용해 해야 하지만 남들과 같이 섹스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은, 출산은, 출산은 차마 바라지 못하겠지만, 그렇다면 대신 중절수술이나마 받아보고 싶다는 거.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창녀가 되고 싶을 정도라는 것.&nbsp; 작가의 마음이 이럴진대 어찌 독자가 책을 읽으며 가벼울 수 있을까.&nbsp; 그러나 표현이 과하다. 경쾌하면 조금 언짢았을까? 예를 들면 천쓰안처럼. 이이가 쓴 &lt;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gt; 같이.&nbsp; 장애의 정도는 훨씬 덜 하지만 샤카와 마찬가지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국 여성 청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키 큰 젊은 여성이 청즈를 내려다보더니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한다.&nbsp; “다리가 참 가느시네요….”&nbsp; 청즈, 대답하기를,&nbsp; “네. 다 열심히 운동한 결과랍니다.”&nbsp; 그러면 여자가 갑자기 알아차리고 입을 막으며 놀란 눈을 하는 거다. 어때, 이렇게 가볍게 치고 나가는 거 하고, 젊은 중증환자 돌보미 남자에게 1억5천5백만 엔을 줘 임신 한 번 해보려 하는 것하고?&nbsp; 그냥 해본 말이다. 나는 이제 비장한 게 별로 좋지 않아서, 그래서 천쓰안이 더 좋아지게 된 지도 모른다. 다들 자기 취향대로 가는 거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5/54/cover150/k44293628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655416</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오랜 장마, 습기, 우울, 답답, 맺힘의 랩소디 - [수림 -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8607</link><pubDate>Fri, 24 Jul 2026 04: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86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5488&TPaperId=174086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05/81/coveroff/89591354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5488&TPaperId=174086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림 -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a><br/>백민석 지음 / 예담 / 2017년 08월<br/></td></tr></table><br/>.&nbsp; 세월 정말 빠르다. 가장 최근에 읽은 백민석이 벌써 8년 전 이야기. 도서관 서가를 거닐면서도 백민석의 책을 보면,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분이 들어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왔건만, 지금 독후감을 쓰려고 보니, &lt;공포의 세기&gt; 독후감을 쓴 것이 벌써 두세 달 모자라는 8년 전, 2018년이다.&nbsp; 사실 그래봐야 백민석의 책은 꼴랑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다. 제일 처음에 읽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 하도 머리에 남아서 그저 늘 본 거 같은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도 10년 전 이야기라 스토리는 거의 날아갔고 작중 aw라는 이름의 도련님만 딱 남았다. 여기서 aw가 뭔지 모르시지? 난 안다. 근데 말 못한다. 옛 인터넷 동무님께서 비밀댓글로 알려주신 것을 밝힐 수 없다.<br>&nbsp; 《수림愁霖》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모은 소설집이라고 읽어도 좋고, 서로 인연이 닿는 사람을 좇아가는 연작 장편으로 읽어도 좋다. 연작인 건 확실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을 때는 제일 앞에 실린 것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야 하지, 사정 때문에 중간에 실린 것부터 팍 읽어버리면, 뭐 큰일이야 있겠느냐만 그래도 덜 좋을 것 같다.&nbsp; 소설집의 첫 작품 제목이 표제작 &lt;수림愁霖&gt;.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수림을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라고 설명했고, 예담 출판사도 이 해석을 책 표지에 박아놨다. 그냥 단어 그대로 “수심에 찬 긴 장마”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수愁’에 어두침침하다는 뜻은 없잖아?<br>&nbsp; 한자어 수愁는 근심, 시름을 말한다. 네이버는 뜻 풀이에서 이 愁가 가을 秋 아레 마음 심心을 붙였는데, 왜 가을이 되면 시름이 깊어질까?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①가을걷이가 끝나면 관청에서 세금을 걷으러 오니까 ②곧 닥칠 겨울 날 생각해서. 그래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수심의 계절이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주장하는 바, ③곡식을 거두어 함포고복 한 번 하려할 때를 딱 맞춰서 오랑캐와 향토 비적들이 쳐들어오니까, 이게 빠졌다. 그래 겨울에 쳐들어온 오랑캐한테 절세 미녀를 바치고 억지로 고비사막 밑으로 끌려간 왕소군은 봄이 되자 춘래불사춘春來不似春 노래를 했겠지. 근데 愁는 문자가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는 다음으로 하고, 참 아련하게 쓸쓸한 말 아닌가 싶다. 앞에다 슬플 애哀 자 하나 붙이면 뭐 앙가슴이 찢어지지. 애수.&nbsp; 서론이 길다. 소설집 읽고 독후감 쓰면 대개 분량이 짧더라고. 그래서 지나가는 말을 좀 붙였다.<br>&nbsp; 《수림愁霖》이 책의 제목이며 제일 앞에 배열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작 소설.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이 단편 &lt;수림&gt;에서 시작한다.&nbsp; &lt;수림&gt;의 주인공은 확실하게 그렇다, 라고는 나오지 않지만 한 시절에 바바리맨(책에서는 판초맨) 경력이 있는 것 같은 성추행범 전과자. 정확하게 설명하면 밀폐 또는 공개 장소에서 한 여성에게, 또는 밀폐나 공개 장소건 간에 여러 여성에게 자기 생식기를 훌렁 내놓고 성적 요구를 했다는 죄목으로 빵에 다녀오셨다.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당연하게 이혼당했고, 아내는 아이가 성추행범 아버지를 두었다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남자의 접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소송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만나고 있으면 주변 20미터 안에 전 아내, 아이의 엄마가 자기가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기척을 낸다.&nbsp; 다시 취직한 회사에서 과장급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사람이 좀 굼뜨지만 일처리나 인간관계에 모자람은 없이 둥글둥글하니 잘 살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 커뮤니티에 가입을 해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모임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를 만나, 여자가 수시로 연락을 해 그나마 친하게 지내지만 결코 딱 그어버린 선을 넘지는 않는다. 자기도 자신이 성적 이상심리가 있으며 그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언제 갑자기 폭발할 지 모른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신경정신과 개업의를 방문하여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nbsp;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이의 나날과 정서와 실제의 날씨는 언제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br>&nbsp; 두번째 작품 &lt;비와 사무라이&gt;의 주인공은 &lt;수림&gt;에서 남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 젊은 유부녀. 서른은 넘은 것 같다. 우울증이 심해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남편이 좀 더 환경이 좋은 한강변 아파트로 무지하게 무리해서 이사했다. 부부는 서로 상의하고 합의하여 아이는 조금 더 있다 가지기로 해, 단둘이서 산다.&nbsp; 시작하자마자 여자는 1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창문을 활짝 열고 베란다 난간에 손을 얹고, 배를 대고, 허리를 굽힌다. 난간을 바르쥐고 점점 더 길게 허리를 펴니, 이제 베란다 바닥에 붙어 있는 여자의 신체는 오른쪽 발가락 두 개밖에 없다. 둔치로 내려가는 공원을 보려 한다. 정확하게는 공원에 노숙인들이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하여. 또는 개나리나 목련이 피어 있는지 보려고. 개나리와 목련 가운데 어느 꽃이 먼저 피더라? 궁리하면서.&nbsp; 남편은 정확한 사람이다. 아침에 시간되면 일어나 정확하게 출근해서, 칼퇴근 후에 집에 들어오면 오후 7시에서 7시 20분 사이. 야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잔업이라는 것도 없다. 부서 회식 같은 특별한 일이 있어도 1차에서 밥만 딱 먹고 빠져나온다. 7시 10분. 평균 귀가시간. 앞뒤 오차 10분. 귀가 시간은 정규분포. 남편은 겁난다. 갑자기 아내를 잃을까봐. 그래서 봉사도 하고, 건전한 단체이니 남자를 포함한 건전한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해보라 권한다.&nbsp; 하지만 독자 눈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가식 같기도 하다. 봉사단체에서 같이 일한 남자와 함께 셋이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지만 속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겠지.<br>&nbsp; 세번째 작품 &lt;검은 눈&gt;. 시작하자마자 서산의 갈숲에 SM5를 끌고 들어가 수면제를 왕창 먹고 잠들기 전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이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앞 &lt;비와 사무라이&gt;에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여자의 전 애인. 죽은 사람은 지금 이혼 숙려기간이다. 딸 둘과 함께 서산에 왔다가 딸들은 부두에서 놀라 하고 자기는 차를 끌고 들어가 죽어버렸다. 원래는 함께 죽으려다 자기 혼자 죽었는지, 처음부터 자기 혼자 죽기로 하고 죽기 전에 딸들과 마지막 소풍을 간 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도 우울증 여자하고 문자 연락을 가끔 했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nbsp; 현 직업은 소설가.&nbsp; 부모를 가장 크게 엿먹이는 방법은 게이가 되는 거라고 보니것은 말했다. 게이가 될 깡다구가 없으면 예술에 종사하겠다고 작정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대안이란다. 이런 진실을 지금 소설을 쓰는 이 남자의 애인은 안다. 애인은 시를 쓰는 시인. 일찌감치 시인으로 등단해서 한 시절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강사 자리도 하나 얻지 못했다. (책의 뒤편으로 가면 문창과 2학년 시 강사는 한다.) 하지만 소설가 남자한테는 그것도 부모 속을 썩일 방법이 아니다. 직장을 얻기는커녕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부르주아의 자제. 커다란 오피스텔에 혼자 독신을 유지하며 사는 건 틀림없이 이 오피스텔에 들어와 기꺼이 자기 침대를 덥혀줄 여자들한테 과시할 목적이다.&nbsp; 하지만 이런 도련님들도 지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결코 사랑하지 말 것. 그러나 소설가 남자는 불행하게도 시인 여자를 사랑했으며, 시인 여자는 매우, 매우 야물딱지게 소설가 남자를 걷어 찼다. 걷어 찬 이유는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직접 확인하시기를.<br>&nbsp; 다음 작품은 시인 여자가 강사가 되고, ‘나른 보이’라는 별명을 갖는 남자 제자를 만난다. 그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나른 보이의 조현병이 가볍지 않은 어머니, 또 그 다음엔 나른 보이의 어머니와 아마도 &lt;수림&gt;의 남자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는 신경정신과 전문의.&nbsp; 다시 그 다음엔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원조교제를 하는 별명 ‘링고’ 여고생. 또 다음엔 링고네 학교와 옆 학교에 출몰하는 판초맨. 그리고 다시 장맛비. 장마, 긴 장마. 습한 날씨와 구름과 심지어 바다의 용오름까지. 글을 습기차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뭔가 맺혀있고, 비장하다. 워낙 입 거칠기로 호가 난 백민석 답게 묘사 역시 적나라하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적나라하다.&nbsp; 잘 읽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05/81/cover150/89591354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705817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그리고 에코 - [프랑스 유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6908</link><pubDate>Thu, 23 Jul 2026 04: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69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535639&TPaperId=174069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27/15/coveroff/k56253563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535639&TPaperId=174069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랑스 유언</a><br/>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br/></td></tr></table><br/>.&nbsp; 내리 이틀 동안 마킨의 책 두 권을 읽는다. &lt;어느 삶의 음악&gt;을 읽으며 이야기를 연결하고 분위기를 잡는 방식이 그럴 듯하고, 좀 잦은 듯한 부사의 사용도 읽기 좋을 수 있다는 발견, 그리하여 읽다가 도중에 개가실에 내려가 이 책 &lt;프랑스 유언&gt;을 집어왔다.&nbsp; 그러나 &lt;어느 삶의 음악&gt; 보다 어렵게 읽힌다.&nbsp; 본문이 371쪽에서 끝나는 보통의 분량이건만 다 읽기 위하여 꼬박 이틀을 썼다. 안드레이 마킨은 말한다.<br>&nbsp; “나는 어떤 사람들의 간질을, 또 다른 사람들의 천식과 코르크 붙인 방을, 또 어떤 사람들의 지하묘소보다 더 깊은 유배를 인용했다.” (p.336)<br>&nbsp; 지하묘소보다 깊은 유해는 모르겠는데, 도스토옙스키와 프루스트의 문장과 분위기를 가져왔다, 적어도 지표로 삼았다, 라는 고백이다. 나는 여기에 한 명을 덧붙이고 싶다. 움베르토 에코. 그가 쓴 &lt;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gt;.&nbsp; &lt;로아나 여왕…&gt;에서 고서적상 주인인 주인공 얌보는 1차 뇌졸중에 걸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린 시절을 보낸 솔라라의 시골집으로 간다. 그곳에는 1930년대와 40년대, 얌보의 유년과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가 수집해 놓은 온갖 책, 잡지, 신문, 우표, 과자깡통 같은 것을 발견한다. 이 잡동사니 속에 얌보의 눈에 띄는 것이 만화책 &lt;로아나 여왕…&gt; 등을 비롯한 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 잡지, 장난감. 뇌졸중 발병 후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 아이도 못 알아보던 얌보는 새삼스레 이것들을 읽어보며 조금씩 옛 시절을 회상한다.<br>&nbsp; &lt;프랑스 유언&gt;의 스토리를 엮어가는 주인공 화자는 학교 친구들이 ‘프란추즈’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30대 작가. 당연히 책을 쓴 안드레이 마킨과 적지 않은 부분이 비슷할 것이다. 마킨의 외할머니가 프랑스 여성이었던 것과 같이 프란추즈의 외할머니도 20세기 초에 노르베르 가문과 알베르틴 르모나 가문의 결합을 통해 프랑스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다. 샤를로트 르모니에.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1910년 정도에 태어나 의사 아빠를 따라 러시아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엄마 알베르틴과 함께 파리에서 10대 시절을 지낼 때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해 소비에트 시대가 개막했다.&nbsp; 엄마 알베르틴은 딸 샤를로트를 파리에 남겨 놓고 자기 혼자 남편이 있는 러시아 동쪽 타이가 근처로 떠났다. 파리에 홀로 남은 샤를로트 역시 별로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어린 시절을 보낸 동시베리아를 향해 엄마를 찾아간다. 소련 영내로 들어오자마자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많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 밀도의 열차를 타고, 그나마 제때 도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하염없이 걸어서, 절반, 아니 삼분의 일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멀고 먼 동시베리아, 그곳에 도착해 엄마를 만났다. 그리하여 책의 서두 부분에, 외할머니는 “러시아의 눈 내리는 광활한 평원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프랑스 여인”이라고 썼다. 그가 파리에서 시베리아까지 가는 동안 두 발로 걸은 거리가 아무리 못해도 할머니 주소지인 볼가강 동쪽에서 파리까지 거리만큼 될 거란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어렵게 만난 엄마 알베르틴은 딸에게 말했다.&nbsp; “내가 이곳에서 매일 기도했던 것은, 네가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거였단다.”<br>&nbsp; ‘나’, “프랑스 놈”의 소련식 비칭인 프란추즈가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 샤를로트가 볼가강 동쪽에 있는 깡촌 중의 깡촌 ‘사란짜’ 마을에 살면서부터. 프란추즈는 누나와 함께 여름이 되면 사란쨔의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이때가 열 살 정도.&nbsp; 할머니 집에는 아이 눈으로 보기에 보물창고가 있다. 어린 이탈리아 소년 얌보의 옛집에 다락방이란 보물창고가 있었듯이. 할머니와 프랑스에서부터 근 5천km를 함께한 트렁크와 퐁네프 가방.&nbsp; 작은 퐁네프 가방부터 이야기하자. 그 속에는 몇 개의 기름종이에 싼 봉투가 있었다. 프란추즈와 누나는 할머니의 주의가 소홀한 틈을 타, 어린이들 특유의 호기심으로 ‘페캉’ ‘라로셀’ ‘비욘’ ‘베르됭’이라 겉면에 쓰여 있는 봉투를 풀어본다. 독자는 쓰인 글씨만 보고도 그것들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흙과 자갈, 돌멩이라는 걸 즉각 알지만, 아이들은 이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왜 다른 곳도 아니고 보물상자인 퐁네프 가방에 들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함부로 꺼내 가지고 놀다가 (조금 후에 알게 될)제일 중요한 베르됭의 조약돌을 화단 풀숲으로 던져버렸다. 몇 천km 서쪽으로 가고 또 가야 도착할 샤를로트의 고향 프랑스에서 가져온 돌. 작품 중후반에 알게 되지만, 소련에서 만난 소련인 남편 피오드르 할어버지보다 먼저 만나 사랑한 프랑스인 연인이 건넨 베르됭 기념품.&nbsp; 큰 여행가방에는 지나간 시절의 신문과 신문 스크랩, 사진첩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nbsp; 오래 묵어 인화지 색깔도 변한 사진 속 인물들. 그 중의 하나.&nbsp; 연미복 남자들과 야회복 여자들 사이에서 두툼한 털모자와 큼지막하고 칙칙한 솜저고리 차림으로 양털 담요에 싸인 아기를 가슴에 안고 선 여자. 처음 보는 사람이다. 프란치즈가 할머니한테, 이 여자가 누구예요, 묻지만, 할머니는 때마침 방안으로 들어온 두 겹의 박각시나방으로 화제를 돌려 프란추즈는 답을 듣지 못한다. 어린아이 답게 금방 호기심이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그 여자의 정체는 결말 부분에 밝혀진다.&nbsp; 이어서 신문 기사들.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의 화제들. 이 가운데 초점 하나.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초청 방불. 펠릭스 포르 프랑스 대통령과 황제가 나란히 찍은 사진. 2년 조금 지나 강력한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다른 곳도 아닌 엘리제 궁에서 정부 마르가르트 스타네이의 품 속에서 사망한 일 등등.&nbsp; 중요한 건 가족들 사진과 1910년 파리 대홍수로 파리가 물에 잠긴 사건이었다. 시내에서 이동을 하기 위하여 작은 보트를 타야 했던 시절. 그리하여 파리는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고, 저 소련의 끝도 없는 벌판이 시작되는 시베리아 초입 할머니 집에 간 아이한테는 파리가 잠긴 도시 아틀란티스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 뇌이-쉬르-센이 고향인 샤를로트 할머니한테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의미한다.&nbsp; 할머지 집에서 자잘한 것들을 찾아내 외가 가문의 흔적을 연상하는 것. 이게 움베르토 에코의 &lt;로아나 여왕의…&gt;를 연상시켰다는 거다.<br>&nbsp; 2부는 프란추즈가 조금 더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nbsp; 이때부터 읽기가 쉽지 않다. 건초열에 시달리는 유달리 예민한 청년 마르셀의 사색처럼 길고 긴 문장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내용, 전쟁이 끝나고 홀로 시베리아로 떠난 엄마 알베르틴을 쫓아 그 험한 길을 10대 후반의 젊은 샤를로트가 열차도 타고, 지나가는 마차도 얻어 타고, 더 먼 길을 걸어서 도착하는 장면. 알베르틴의 남편이자 샤를로트의 아버지의 불행한 마지막. 하긴 당시를 살던 남자들 가운데 험한 죽음을 맞지 못한 사람이 워낙 흔했지만, 단지 프랑스인, 적국에서 소련으로 침입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씌우지 않으면 안 됐던 시절. 결국 내게 기억에 남는 것은 프루스트처럼 사색의 확장이 아니라 샤를로트의 생애 스토리였던 거다.&nbsp; 3부는 본격적인 사춘기 속을 헤매는 프란추즈가 핵심이다. 물론 샤를로트의 지난 시절은 여전히 도저하게 흐르지만. 프란추즈는 볼가강변에 정박한 폐선 선창을 통해 생전 처음 사람의 교접 장면을 목격하고, 댄스 파티에서 만난 여자 아이를 만나 동정을 상실한다. 그리고 할머니 댁. 아마도 샤를로트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프란추즈. 그는 4부에서 1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소련에서 벗어나 프랑스에 정치망명자로 남는다. 아틀란티스에 온 것. 이제는 여든 살이 넘었을 할머니, 여전히 프랑스를 그리워할 것이 틀림없는. 그러나 프란추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소련의 큰 도시도 아니고 사막의 끝자락이자 키르기스탄을 거쳐 몽골까지 펼쳐진 초원이 시작되는, 오직 적막만 흐르는 외로운 곳에서 결코 떠나고 싶어하지 않은 할머니 마음을.<br>&nbsp; 이렇게 작품은 쓸쓸한 초원과 사막의 접경지대에서 시작했다가 끝을 맺는다. 프랑스 여인이 굳이 소련의 변방으로 와서 한 평생, 그것도 더 이상 파란만장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야기. 이것이 어떻게 읽으면 화려한 문장으로, 달리 보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쓰여 있다.&nbsp; 읽고 나서 보니, &lt;프랑스 유언&gt;이 공쿠르 상과 메디치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27/15/cover150/k56253563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27150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린 피아니스트 - [어느 삶의 음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5097</link><pubDate>Wed, 22 Jul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5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5761&TPaperId=17405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3/99/coveroff/k7620357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5761&TPaperId=17405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삶의 음악</a><br/>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4년 12월<br/></td></tr></table><br/>.&nbsp; 1957년생 닭띠 아저씨, 안드레이 야로슬라보비치 마킨. 이름 보면 딱 안다. 57년생이니까 소비에트 연방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다. 몽골 위, 훨씬 높은 위도. 예전 같으면 유배형 받아 가는 곳이다. 열 명 가면 여덟 명 죽고 두 명도 유배형이 끝나봤자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이동권이 제한된 주민으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안톤 체호프가 자연 경관에 홀딱 반한 도시. 지도 보니까 눈대중해보니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4천km 이상 떨어져 있다.&nbsp; 그래도 자란 곳은 모스크바 기준 남동쪽으로 7백km 이상 떨어진 펜자 시. 이이의 외할머니가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작품 &lt;프랑스 유언&gt;에 나오는 것과 같이) 프랑스 태생이어서 프랑스어도 러시아어만큼은 아니겠지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마킨의 능숙한 프랑스어가 문제였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사 교환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슬쩍 프랑스로 넘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그곳에서 눌러 산다. 도착하자마자 열나게 소설을 발표, 네번째 작품인 &lt;프랑스 유언&gt;을 발표해, 프랑스 문학사상 처음으로 1995년 한 해에 공쿠르상과 메디시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nbsp; 검색을 하다가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안드레이 마킨이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아시아 제바르의 자리를 물려 받았다는 거였다. 아니, 제바르가 갔어? 2015년 78세의 나이로 영면했단다. 팬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그곳에서 안식하기를.<br>&nbsp; &lt;어느 삶의 음악&gt;. 시작은 화자 ‘나’의 조국, ‘나’가 태어난 인구 2억4천만의 나라에 대한 신조어에 관해. 이 신조어新造語는 뮈헨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지노비예프가 만든 말,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일컫는다. 이 용어야말로 러시아 사람과 러시아의 문제를 푸는 진정한 열쇠라고.&nbsp; ‘나’는 저 극동 지역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랄의 한 도시에 들렀다. 이제 집이 있는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려면 모스크바애서 환승을 해야 할 터. ‘나’는 열차 정거장의 대합실에 앉아 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차가 여섯 시간 연착할 거라는 방송이 나온다. 여섯 시간.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시민이라면 어떻게 여섯 시간 연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랄 지역 사람들한테는 여섯 시간은커녕 여섯 날, 6주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합실의 후줄근한 사람들은 오직 ‘나’ 빼고 아무 불만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게 전형적인 호모 소비에티쿠스.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총 맞아 죽고, 여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도 전쟁이 터진 거니까 그런가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밤중에 잠자리에서 끌려가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즉결처분 당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 그렇게 만든 유구한 역사. 세계사의 바깥에 자리한 나라. 비잔틴 제국의 뿌리 깊은 유산이며, 두 세기 동안 짊어진 타르타르의 멍에이고, 5세기에 걸친 노예상태와 혁명에 이은 스탈린 치하를 겪으며 저절로 습득하게 된 무념무상의 상태.<br>&nbsp; 기차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새벽 세시 반. 역사驛舍에 흘러드는 건반 소리에 ‘나’는 설핏 든 잠에서 깬다. 그 소리의 무심함에 이라니. 철학적 분노를 철저히 무용화 하는 소리. 그저 하나의 경계선일 뿐인 것. ‘나’는 그것을 따라 역사에 이어진 복도를 걸어 한 홀hall의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다.&nbsp;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 의자 옆에 모서리를 니켈 도금한 짐 가방. 그는 건반을 누르지 않고 그 위를 손가락이 오가기만 한다. 아주 미세하게 손톱이 건반에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nbsp; “군데군데 사이를 두다가 활기를 띠더니 조용한 흐름에 박차를 가하며 종내 열띤 분노의 달음박질을” 펼치는 광음의 열정. 소리 없는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고, 노인의 손가락 뼈가 그렇게 투박한 것에 또 놀란다.&nbsp;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관자놀이까지 세월이 표백한 깊은 흉터와 그의 눈물을 확인한다. 정말 눈물이 늙은 눈에서 방울졌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 같다.&nbsp; ‘나’는 피아노에 앉았던 노인에게 그가 한 타건 없는 피아노 연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br>&nbsp; 나는 여기까지 읽고, 우랄의 한 도시에서 썰렁하기 그지없으며 난방조차 변변하지 않는 강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모스크바 집으로 가는 늙은 남자 피아니스트 한 명이 떠올랐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아, 이 책이 리히터에 관한 것이구나. 그가 종종 그러했으니까. 러시아의 시골 변방을 다니면서 공연장이 크거나 작거나, 관객의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관계없이 기꺼이 연주회를 하고 조용히 열차를 타고 돌아온 외로운 노인. 나도 그 시절에 녹음한 음질이 열악한 바흐 음반을 한 장 가지고 있다. 리히터가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이제 음악 이야기가 쏟아질 거야. 이렇게 기대했다.&nbsp;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대합실에서 여섯 시간 기다렸던 인파와 함께 승강장으로 뛰어갔지만 승객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객석은 발 하나 꽂을 곳이 없다. 그래도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객차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나’도 덩달아 어깨로 힘껏 밀어보지만 곧이어 객차 담당이 와서 이제 더 이상 못 탄다고, 내일 열차를 타라고 악을 쓴다.&nbsp; 이때 피아노 노인이 그를 소리쳐 부른다. 오랜 연착 후에는 아주 오래되어 거의 고물이기는 하지만 종종 객차 끝에 스페어 객차를 다는 법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것일 뿐이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노인과 구닥다리 삼등칸에 여유있게 앉아 모스크바까지 편안히 여행한다.&nbsp; 그리고 이어서 노인의 삶을 잔잔하게 흘러나온다.&nbsp; “그 당시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오.”<br>&nbsp; 1920년생의 노인. 아, 리히터 이야기가 아니구나. 여기서 알았다.&nbsp; 극작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의 외동 아들. 어머니를 탁했는지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질을 보여 학교와 음악원을 동시에 다녔다. 스무살이던 1941년, 이이는 5월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을 무릅쓰고 관청 앞의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보고 있었다. 벽보에 자기 이름, ‘알렉세이 베르그’가 들어 있는 것을 머리 속에 사진으로 찍어 놓았을 정도로 골똘하게. 1주일 후에 볼베어링 공장 문화원에서 첫번째 연주회를 연다는 알림.&nbsp; 그러나 1920년생 소련 사람이 1940년까지 오는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알렉세이도 마찬가지. 극작가지만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한 대 숙청 기간에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라는 혐의를 받을 것이 두려워 집안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바이올린을 부엌 화덕에 집어넣어 불살라 버렸다. 가족의 친구이자 훌륭한 바이올린 협연자인 투카체프스키 사령관이 처형당해 부모는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었던 시기.&nbsp; 대숙청이 1937~38년까지를 말하지만 이후에는 숙청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다가 군 사령관의 친구이니 언제나 불안했을 터. 1940년 5월이 왔다. 알렉세이가 음악원에서 연주회를 위하여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를 불렀다.&nbsp;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네. 어디 멀리 떠나.”&nbsp; 이렇게 알렉세이 베르그의 앞에도 길고 긴 험한 여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었을까? 들어가기는 쉽지만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이 소비에트 연방이었는데. 그를 살린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독일군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그는 역사의 폭풍에 자진해서, 고문과 유형을 피해, 살기 위하여 이미 죽은 소련군의 군복과 군화를 신고, 다른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며 휩쓸리기 시작한다.&nbsp; 이렇게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될 뻔한 노인 알렉세이 베르그의 한 평생을 담은 짧은 소설.&nbsp;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단 한 곡의 특정한 음악 이야기도 없었다. 제목 &lt;어느 삶의 음악&gt;은 알렉세이 베르그한테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를 의미한다. 그걸 차마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93/99/cover150/k7620357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93996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알바니아 산악 공동체의 관습법, 피의 복수 - [부서진 사월]</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3170</link><pubDate>Tue, 21 Jul 2026 0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3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89X&TPaperId=17403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7/23/coveroff/89546878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89X&TPaperId=17403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서진 사월</a><br/>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8월<br/></td></tr></table><br/>.&nbsp; 튀르케예의 이스탄불을 유럽의 동남쪽 끝자락으로 본다면, 알바니아는 그리스의 북서쪽에 위치해 내가 알기로 세계사에 단 한 번도 주역으로 등장한 적 없는 변방 가운데서도 변방 국가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변방국가. 늘 다른 나라한테 침략을 당했고, 다른 나라들의 싸움터가 되었던 나라. 그리하여 알바니아 어느 땅을 파도 주변 열강 군사들의 뼈가 나올 수 있다고 농담하고는 한단다. 이런즉슨, 필연적으로 다민족, 다종교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니 별의 별 문화가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다.&nbsp;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북쪽 산간지역에 독특한 관습법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공동체를 무대로 삼았다. 관습법이라면 흔히 불문법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 산악 공동체의 관습법은 “카눈”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삶의 거의 모든 양식을 일일이 지정해 놓았다. 카다레는 이런 관습법 가운데 특별히 복수 관습에 주목했다. 가족의 일원이 살해당했으면 다른 가족이나 친척이, 원래는 가해자이지만 세월이 가면서 가해 가족의 남자 구성원 한 명을 살해할 수 있다는 관습이다.<br>&nbsp; 주인공은 베르사가家의 그조르그. 갈등 관계에 있는 가문은 크리예키크가家.&nbsp; 이 가문이 서로 죽고 죽이는 원한 관계를 먼저 이야기해보자.&nbsp; 아주 오래 전, 아마도 70년 정도의 세월을 거꾸로 돌리면, 산골 속에 묻힌 브레즈프토호트 마을에 한 나그네가 걸어 들어왔다. 뭔가 불안한 듯 보이는 손님이 문을 두드리고 자신을 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그래서 그조르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정도 되는 양반이 기꺼이 손님으로 받았고, 역시 관습법에 의하여 차릴 수 있는 최선의 식사와 잠자리와 기타 모든 수발을 다 들었다. 뒤에 설명하기를 한 번 손님으로 특정 집안에 받아들여졌으면 그 순간부터 손님은 집안의 반half신의 위치 정도가 된다고.&nbsp; 베르사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길을 떠날 때, 관습으로 집안의 소년 하나가 그를 마을 끝까지 배웅을 했는데, 이 손님이 뭔가 나쁜 짓을 했는지, 그리예키크가 사람한테 총을 맞아 그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바로 마을 경계를 한 발 정도 앞두고. 경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때부터 방문 가족의 손님 신분을 벗어나지만, 경계 안에 있으면 손님 역시 가문의 일원으로 여겨야 하면, 가족의 일원이니 당연히 베르사 가문은 손님을 죽인 그리예키크 가문의 당사자에게 복수, 즉 소총을 이용해 죽여야 했다.&nbsp; 이때부터 두 가문의 서로 죽고 죽이는 불행한 고리가 만들어져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고 있던 상태. 어이없어 보이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다 납득하고, 당연히 피의 보복을 해야 하는 관습법.&nbsp; 그렇다고 손님을 가려 받기도 뭐하다. 이슬람 문명도 그렇거니와 북동부 유럽 지역에서도 손님이 찾아오면 일단 최선을 다해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까 베르사 가문도 그를 문밖에서 안으로 들이지 않고 내칠 수는 없었을 테니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br>&nbsp; 피의 복수를 당한 가문은 죽을 때 피가 묻은 셔츠를 굴뚝 꼭대기에 걸어 놓고, 셔츠가 짙은 갈색이 되기 이전에 복수를 해야지 안 그러면 불명예라고 여겼다. 그리예키크 집안의 제프가 그로즈그의 친형을 죽였을 때도 어머니가 굴뚝에 걸어 놓은 셔츠를 가족 모두 하루에 몇 번씩 올려다보며 복수의 마음을 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많이는 아니고 조금 오해. 그로즈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의하여 경사지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제프가 지나갈 때 한 번 저격을 했으나, 목에 작은 상처를 냈을 뿐이었다.&nbsp; 이것도 불행 가운데 하나. 죽이지 못하고 부상만 입히면 총알이 지나간 부위에 따라서 목 위는 죽음의 값의 절반, 허리 위는 얼마, 아래는 얼마 하는 식으로 배상금을 피해 가족에게 주어야 했다. 이때 가족이 일년 내내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원수 그리예키크 집에 가져다 준 적이 있어서, 아버지의 두번째 명령을 어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nbsp; 그리하여 &lt;부서진 사월&gt;의 막이 오르면, 그로즈그가 덤불이 무성한 경사지 뒤쪽에 매복해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해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버티고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침내 인기척이 나고 아버지가 말 대로 제프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살인에 성공한다.&nbsp; 복수 살인에 관한 관습법. 첫째 반드시 소총으로 살해해야 하며, 둘째로 총을 발사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사전 경고를 해야한다. 세번째로 정말 죽었으면 시신을 똑바로 누이고 손도 가지런히 모양을 잡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소총을 시신의 얼굴에 기대 놓아야 한다.&nbsp; 그래서 그렇게 했다. 아직도 관습법은 남아 있다. 살인자가 피해자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매장까지 다 보아야 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례식 후 장례식사에 참여해 차려준 음식을 다 먹어야 하는 것까지.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예상도 못하게, 피해 가족이 그로즈그를 보는 눈이 그리 살벌하지 않다. 그 집에서도 알기 때문에. 죽여야 해서 죽였고, 자기들도 그로즈그를 죽여야 되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가문의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지니까.<br>&nbsp; 이 관습법 카눈의 조항도 문제.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마을의 연장자로 구성한 원로들이 회의를 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원로들이라 하더라도 이 가운데 늘 솔로몬 왕이 끼어있지는 않아, 결정이 애매하고 힘들 때는 공동체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름 높은 카눈 해석자 알리 비낙 한테 해결을 의뢰한다.&nbsp; 알리 비낙은 피의 복수뿐만 아니라 마을 간의 경계선 같은 갖가지 소송을 맡기 때문에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의사와 측량사를 대동하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책에서는 지혜로운 알리 비낙이 어떤 공식적인 지위에 있는지,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nbsp; 산악지대의 모든 공동체는 오로시탑塔, 오로시궁에 사는 대공을 마치 작은 군주로 여긴다. 최고 지도자이며 공동체 결속의 중심지이자 지배자. 대공의 밑에 사촌 마르크 우카시에르가 피의 복수를 담당하는 ‘피 관리인’을 맡고 있다. 복수를 위해 피살자의 피를 보았으면 살해 당사자가 직접 큰 돈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대공은 이것 말고도 농사, 과수원, 기타 소공예품 등으로도 수입을 올리는데, 여태까지 가장 큰 소득은 피의 세금이 맡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정말로 피의 복수를 행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세수입도 쪼그라들어 마르크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br>&nbsp; 그런데 이 산악 공동체에 예상하지 않은 인물이 방문한다.&nbsp; 수도 티라나에서 사는 소설가 베시안 보릅시. 이이가 결혼을 해 신혼여행으로 아내 디안과 함께 이 산악지대로 왔다. 이슬람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신혼이지만 결코 한 침대에서 잘 수 없는 곳. 산악지대 출신이 아닌 베시안은 이 산악지대의 관습법을 많이 알고, 이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 책을 낼 때마다 제법 판매부수를 올리는 부르주아, 적어도 쁘띠부르주아 계급이다. 이이의 소설을 읽어봤는지, 아니면 신문에 난 서평 같은 것을 슬쩍 보았는지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작가가 기특해 대공이 직접, 아무 때나, 아무 시간에나 방문을 해달라고 청해 신혼여행 삼아 과하게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를 대절해 한 달 예정으로 이곳에 온 거다.&nbsp; 그래서 첫날 묵을 집에 전보를 치고, 전보가 도착했는지 아닌지도 모른채 일단 쳐들어가 하룻밤 제대로 대접을 받았지만 신혼부부가 다른 방에서 자야 하는 불상사를 당했고, 이튿날 드디어 대공을 만나러 오로시탑으로 향했다. 가다가 도중에 주막집에 들러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 찰나, 아내 디안의 눈에 그조르그의 잿빛 얼굴이 들어온다. 그조르그도 다른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오로스탑에 가서 피의 세금을 바치고 오는 길이었다. 마치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 이제 다음 번에 죽을 사람이 자신이니까 벌써 다 산 거 같았겠지. 그의 표정과 모습이 디안의 마음에 콱 박혀버린다. 연모하고는 다른 독특한 인상. 저지대 사람이 조금 미치광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 와서 약간 휙 돌아버린 듯하게 조금씩 변해버리는 디안.<br>&nbsp; 이렇게 작품은 산악지대의 피의 복수와, 관습법을 소설의 소재로 했을 뿐 진정한 관심 없이 그저 작품을 위해 관찰 목적으로 방문한 작가 부부가 소설의 두 축을 이룬다.&nbsp; 아다시피 이스마일 카다레는 오랜 세월 동안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있다가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작가.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의 많은 작가들이 그가 노벨상을 끝내 받지 못하고 죽은 것을 아쉬워할 정도였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럴 듯하다고 생각이 들긴 한다.&nbsp; 이런 작가가 2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군, 독일군, 산악지대 사람들로 구성한 자신의 다양한 작품과 달리 관습법으로 대표하는 산골 종족의 문화로 비극을 쓴 것이 색달랐고, 특히 첫 무대, 관습법에 의한 피의 복수와 이어지는 관례가 독특하게 재미있다. 설마 아직도 피의 보복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7/23/cover150/89546878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47231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차티스트, 노동쟁의 그리고 예수말씀 - [메리 바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1292</link><pubDate>Mon, 20 Jul 2026 0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4012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8965&TPaperId=174012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72/coveroff/k19203896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8965&TPaperId=174012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메리 바턴</a><br/>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최이현 옮김 / 잔상 / 2025년 03월<br/></td></tr></table><br/>.&nbsp; 1810년생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184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nbsp; 1848년.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이 한 번 크게 변곡점을 그은 시기. 차티스트 운동은 배운 지 하도 오래라 뭔 운동인 줄 몰랐는데 책 읽어보니 선거법에 관한 거였다. 재산이 일정액 이상 있는 남자 한테만 참정권을 주었단다. 이 구절 읽으니 어렴풋이 생각났다. 신대륙 발견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부르주아들이 이젠 귀족들을 말아먹을 수준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부르주아, 귀족 눈에는 상것들한테도 참정권을 주었는데, 아니지, 줄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까지 부르주아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서 재산 하한을 설정했던가 보다. 차티스트 운동도 결국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뭘 알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앞뒤를 재보니 그럴 거 같다는 말이다.&nbsp; 이때 프로레타리아들은 노동문제도 함께 거론한 것처럼 보인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대표작인 문학과지성사의 &lt;남과 북&gt;, 문학동네 &lt;북과 남&gt;에서도 주인공이자 제조공장의 사장 사모님인 마거릿 헤일이 프롤레타리아로 구성된 노동조합원에게 동정적인 것과 비슷하게 &lt;메리 바턴&gt;에서도 개스켈의 시각은 무산자 쪽에 더 많이 가 있다.<br>&nbsp; 첫 장면은 바턴 가족과 윌슨 가족의 소풍.&nbsp; 존 바턴은 맨체스터 남자다. 없는 사람들이 맨체스터에서 다 그렇듯이 공장 노동자 가정에서 나서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 자신도 공장 노동자가 된 전형적인 맨체스터 사람. 어릴 적부터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보내 보통 이하의 다소 왜소한 체구를 가졌지만 무엇이든지 단호하고 결연한 열정을 품은 공산주의자.&nbsp; 이들이 말하는 가난은 그저 현대의 도시빈민과 비교하지 못한다. 사회적 복지라는 개념이 없어서 공장 노동자들은 최소 임금을 받아야 했고, 더 빈곤한 시골에서 유입되어 오는 새로운 노동자들 때문에 그나마 일자리 하나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없으면 굶어야 한다. 바턴 씨 부부도 첫 아이 톰을 잃었다. 못 먹어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성홍열에 걸려 죽었다. 뒤에서는 굶어죽었다는 표현도 쓴다. 아이가 그렇게 죽어갈 때 돈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이후 고용주에 대한 미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nbsp; 언제나 최소 임금. 경기가 좋으면 그나마 숨은 쉬고 살아가겠지만, 불경기가 닥칠 경우, 고용주들은 오직 손실을 줄이기 위하여 가동을 축소하고 남는 인력을 잘라버린다. 이때부터 해당 가족은 굶주림을 견뎌야 한다. 먹을 수 있기만 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별스럽지 않은 질병에라도 걸리면, 이젠 면역체계가 부실해진 환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바턴 씨는 어린 시절부터 밥 굶는 법을 몸소 체험으로 익혀서 하루 이틀 굶는 건 그저 견딜 수 있다. 사흘 굶으면 남의 담장을 넘어가겠지만, 그러기보다 고용주의 대문을 깨부수고 쳐들어가는 걸 바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분노를 품고 산다. 노동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죽기까지 하는데 고용주들은 공장을 닫은 시기가 특별 휴가라도 되는 듯 몇 달씩 해변이나 겨울 스포츠를 즐기러 떠난다. 더 심한 불경기가 닥쳐 많은 무산자 가족이 죽어나가도 고용주 가족은 공연 구경 한 번 안/덜 가는 걸로 그친다. 그것도 남의 눈이 있어서 그런 거다.&nbsp; 이이의 두번째 아이가 주인공 메리 바턴. 오빠가 어려서 죽어 지금은 맏딸, 열세 살짜리 아주 예쁜 소녀다. 엄마 이름도 메리라서 아빠는 딸을 작은 메리로 부른다. 하지만 지금 만삭인 아내는 소풍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몇 주 후 출산하다 죽고 만다.&nbsp; 바턴 씨는 메리의 죽음을 처제 에스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딸처럼 키워서 공장 여공으로 보냈다가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진 장교가 쉬운 얘기로 혼인빙자간음을 하고 아일랜드로 파견된 다음에 인생 망가진 내력을 가질 예정이다. 에스더는 자기가 망가진 후에 몰래 맨체스터로 돌아와 바턴 씨 가족을 살피다가, 이제 성인이 된 메리 바턴이 맨체스터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의 사장 아들 해리 카슨하고 서로 사랑하는 걸 알게 된다. 동시에 해리는 절대로 메리와 혼인할 생각이 없으며 오직 한 번의 엔조이를 바랄 뿐인 것도 알아채 드라마의 진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br>&nbsp; 함께 소풍을 간 윌슨 씨네는 아내와 개구진 외동아들 제임스, 젬 윌슨, 이렇게 세 가족. 윌슨의 친동생 앨리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산다. 앨리스는 처녀. 그러나 큰언니가 낳은 아들 윌을 자신이 입양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다. 양아들 윌은 초반에 나오지 않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외항선원으로 중요한 배역 가운데 한 명인 마거릿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nbsp; 개구쟁이 아들 젬은 머리통이 굵어지자 듬직하고 분별력 있는 청년으로 성장해 젊은 나이에 주물 공장의 주임으로 승진한다. 덕택에 급여가 여유로워 엄마와 고모를 넉넉하게 부양한다.&nbsp; 윌슨 씨? 아쉽게 급사한다. 아마도 심근경색 아닐까 싶다. 이후 젬이 가장 노릇을 단단히 하는 효자이며 동시에 메리 바턴을 맹렬하게 짝사랑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서 무엇이든 메리를 위하여 결심하고 행동한다. 작중 가장 영웅적인 인물. 부잣집 아들 해리 카슨이 메리를 농락하고 버릴 생각인 것을 알게 되어 해리한테 경고하다가 그의 채찍에 얼굴을 한 대 얻어 맞는다. 열받은 젬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때려 눕히지만 경찰들이 두 사람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는 건 몰랐다. 그리하여 해리가 같은 장소에서 권총에 맞아 피살되었을 때, 하필이면 권총이 젬 윌슨의 것이라 재판에 넘겨지는 곤욕을 치룬다.<br>&nbsp; 앨리스 윌슨은 간호사와 세탁부, 두 가지 일을 하는 아주 음전한 사람. 보살 비슷하다. 이이가 메리한테 좁 레그 영감의 착한 손녀 마거릿을 연결해주어 둘은 절친 사이로 발전한다. 좁 레그는 직공 계급에 드물게 있는 몇 몇 가운데 한 명으로, 박물학, 곤충이나 파충류, 거미류, 꽃을 비롯한 식물 같은 것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아울러 사회 전반에 관해 발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도 가지고 있는 현명한 노인.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늙은이 치고 헛소리를 하는 법 없이 똑부러지기 이를 데 없다.&nbsp; 마가렛은 재봉사였다가 점점 눈이 먼다. 그러나 하나가 나쁘면 (이 당시엔 운이 좋아서) 하나가 좋은 법.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 솜씨가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지만 여기 저기서 공연을 해 메리가 어려울 때마다 금전적 지원과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nbsp; 윌 윌슨은 작품 중간에 원거리 항해에서 돌아와 지내다가 훗날 작품이 좋은 쪽으로 크게 변할 모멘트 역할.&nbsp; 여기까지는 무산자였고, 부르주아로 카슨 씨가 등장한다. 자신도 직공 출신이지만 자기 직원들처럼 극심한 가난으로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작은 사업을 벌여 성공한 성실한 사람.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공장을 확장하고, 생산에 박차를 가하다가도 불황이 오기만 하면 그저 생각없이 직원들을 정리해고 한다. 그게 설마 굶주림, 굶어 죽을 정도의 빈곤을 가져올 줄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은 지닌 인물이다. 바람둥이 미남이자 노동조합의 파업 기도에 초강력 대처를 주장하다 총 맞아 죽는 금발의 미남자 해리 카슨 때문에 하루 사이에 백발이 될 정도로 상심한다.<br>&nbsp; 개스켈은 작품 속에 다분히 계급 갈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굶주림에 허덕이던 1840년대의 노동자 쪽에 선 듯하다. 나는 메리 바턴과 해리 카슨의 연애가 처음 나올 무렵에, 둘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훗날 &lt;남과 북&gt;에서 공장 사장 부부처럼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기대는 초장에 깨졌다. 19세기 중반에 약한 빙하기가 있었다고 하던가? 전 세계적인 기근이 들고, 이를 좇아 당연히 불황이 덮쳐 디킨스의 작품에서 보듯 빈곤한 약자들의 삶이 정말 비참했던 모양이다. 맨체스터라는 거대 공업도시가 그럴 정도였으니 북쪽 시골을 말도 못했겠지. &lt;남과 북&gt;을 읽을 때부터 개스켈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심정적으로는 동조하지 않았나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nbsp; 하지마 개스켈의 치명적 약점도 있다. 이이가 목사님 사모님이라는 것. 그리하여 작품 속에 성경 말씀이 말도 못하게 많이 나온다.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결론이 정말 예수님 말씀이다. 완전히 기독교 오리지네이트된 결말. 재미있게 읽다가 끝장에 가서 김 샜다. 철저하게 스팀 아웃.&nbsp; 하긴 19세기 초 작품이다. 180년 전 작품이라 현대 소설을 읽는 것 같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작품. 읽으며 종교 측면만 빼면 상당히 진보적이라 이색적이다. 여태 읽은 19세기 영국 작가와 완전히 구별되는 개스켈 만의 특정적 관점을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도 경험하시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lt;남과 북&gt; 또는 &lt;북과 남&gt;이라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72/cover150/k19203896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99721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불, 테러리스트, 무당이라 불린 시인 - [희망이 외롭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6414</link><pubDate>Fri, 17 Jul 2026 0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64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9738&TPaperId=173964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3/1/coveroff/89546197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9738&TPaperId=173964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희망이 외롭다</a><br/>김승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br/></td></tr></table><br/>.&nbsp; 1952년에 광주에서 나서 서강대 영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마친 문학박사. 이 책이 나온 2012년에는 국문과 교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nbsp; 근데 우리나라 위키피디아에 재미있는 게 나오네. 이이의 별호가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그리고 “초현실주의 무당”이란다. 오. 김승희의 한자 이름이 勝熙, 여자 아이에게 잘 붙이지 않는 이름이다. 이길 승, 밝을 희. 두 자 다 마찬가지. 그래서 그런가?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 어째 좀 으시시하네.&nbsp; 두 달 있으면 만 스물한 살이 될 스무 살 시절 1973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장원을 해 등단했으니 벌써 57년차 시인이다. 게다가 시작부터 시 영재 수준을 넘었다. 스무 살 등단이 말이 그렇지 어디 쉽게 되는 게 아니다. 하여간 진짜로 김승희를 만났다 하면, 드센 사람일 거 같아서, 아나키스트라니까, 무당이라니까, 나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끼겠다. 이유가 있지. 오늘 독후감이 그리 친절하지 않을 예정이거든. 2012년 당시 이순耳順에 현직 명문 서강대학 국문과 교수님이 쓴 시를 하잘것없는 아마추어 풀때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그건 백에 아흔 여덟의 경우, 독자가 찐따라서 그런 거다. 그러니 아니겠지만 혹시 시인께서 이 어줍짢은 독후감을 보시더라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나이다.<br>&nbsp; 시집의 제목이 “희망이 외롭다”니까 제일 앞에도 희망에 관한 시가 있다. 희망 속에 무엇이 들었나? 그러니까 희망이란 것의 구조식은 어땠을까, 하는 질문일 터. 시인은 제목에서 다 알려준다.<br><br>&nbsp;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br><br>&nbsp; 꽃들이 반짝반짝했는데&nbsp; 그 자리에 가을이 앉아 있다<br>&nbsp; 꽃이 피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nbsp; 검붉은 씨가 눈망울처럼 맺혀 있다<br>&nbsp; 희망이라고……&nbsp; 희망은 직진하진 않지만&nbsp;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nbsp; &nbsp;(전문. p.14)<br><br>&nbsp; ‘신의 물방울’이 희망의 한 부분집합이라는 말인데, 이 신 님이 하도 변덕이 심한 분이라서 ‘신의 물방울’이 뭔지 모르겠다. 신의 눈물? 이게 제일 무난하지? 좋아도 눈물나게 좋고, 슬프면 당연히 눈물 나는 거고. 나머지 물은 별로 재미없다. ‘용수’라는 이름의 선배가 있었는데, 더 윗 선배가 이 용수 씨를 꼭 “야, 용오줌!” 하고 불렀다. 용한테 나올 물이 오줌밖에 더 있느냐면서. 그렇다고 희망이 신의 오줌이라고 하긴 좀 뭐하잖아? 아무래도 눈물이 좋은데, “수만 광년 먼먼 별에서 이제 막 너의 눈에 닿은 눈물”이 희망일까? 김승희와 같은 나이의 시인 이성복이 쓴 시 &lt;눈물&gt;에 나오듯이. 아니면 진로 소주?&nbsp; 하지만 눈물에 집착하지 말 것. 정작 희망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1연과 2연에 쓰여 있다. 반짝반짝 했던 꽃들이 가을이라 다 지었는데, 반짝반짝 빛날 때는 못 보았던 검붉은 씨, 내년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겠다는 집념이 바로 희망이라는 거다. 그걸 신의 물방울이라 했을 뿐. 에이, 쐬주방울이 아니었네.&nbsp; 좋아. 첫번째 시는 마음에 들었다. 기대가 점점 커졌다.&nbsp;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시.<br><br>&nbsp; 반투명한 불투명<br><br>&nbsp; 그런 건가? 보이지 않는 건가?&nbsp; 그런 건가? 들이지 않는 건가?&nbsp; 그런 건가? 알지 못하는 건가?&nbsp; 그런 건가? 다 소용없는 건가?&nbsp; 그런 건가? 해가 또 지는 건가?&nbsp; 그런 건가? 이렇게 살다 가라는 건가?&nbsp; 그런 건가? 하루하루 오늘은 괴로움의 나열인데&nbsp; 그런 건가? 띄어쓰기도 없이 범람하며 밀려오는 나날&nbsp; 그런 건가? 내일도 오늘과 같다는 건가?&nbsp; &nbsp;(전문. p.15)<br><br>&nbsp; 나 이런 시 안 좋아한다. 앞 대가리에 “그런 건가?” 열라 썼다가 뒷대가리는 결국 오늘도 내일도 뭐 하나 변하지 않는 일상 또는 권태 아니면 기타 등등. 그래서 뭐 어쨌다고. 내용보다 앞에 같은 멜로디가 연속되는 것이 싫다. 이게 음악이라고 가정하면 이런 음악을 누가 들어? 하지만 이 시 이후에도 비슷한 반복으로 구성한 시가 무지 많다.<br>&nbsp; 말은 울고 있다&nbsp; 제 무능을 울고 있다&nbsp; 말은 모든 것이지만&nbsp;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nbsp; 말은 울고 있다&nbsp; 소리 없이 울고 있다&nbsp; 소리 소리 소리 소리뿐이다&nbsp; 소리 소리 소리분일까?&nbsp; (&lt;말은 울고 있다&gt; 부분. p.22)<br>&nbsp; 물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물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물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물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한 줄 띄고)&nbsp; 바람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바람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바람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바람 묻힌 붓으로 바위에 글씨를 쓴다&nbsp; (&lt;시시포스의 말뚝&gt; p.25)<br><br>&nbsp; &lt;시시포스의 말뚝&gt;은 한 문장이 전부 한 연이다. 그럼 분량이 너무 많아져 그냥 연과 연을 붙여 썼다. 남의 시를 이리 왜곡해 인용하는 건 나쁜 일이다. 시인한테 미안하다.&nbsp; 하여간 어떤 게 나하고 맞지 않는 줄은 아시겠지? 김승희 명예교수는 절대로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이런 거 읽을 때마다, 시는 안 되고, 쓰긴 써야겠고, 하는 경우에 시도하기 딱 좋은 시창작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인의 고향 광주말로, 영 거시기하다. 사실 이런 건 이상의 &lt;오감도&gt;에서 이미 끝난 거 아니었나 싶기도.<br>&nbsp; 이 시집의 특색 가운데 하나. ‘하물며’ ‘부디’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 ‘저기요’ ‘아~’ 라는 말들에 관한 시들. 이 가운데 하나만 읽어 보실려우?<br><br>&nbsp; ‘하물며’라는 말<br><br>&nbsp; 하물며라는 말이여, 참으로 아름답도다,&nbsp; 그 말에는&nbsp;&nbsp; 슬픔으로 가득한 서광의 눈동자가 들어 있고&nbsp;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nbsp; 다시 한번 돌아보는 사랑이 들어 있다,&nbsp; 비천한 것들에 대한 굉장한 비탄이 들어 있다<br>&nbsp;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는&nbsp; 하물며가 없다,&nbsp; 마음이 마음이 아닐 때 들려오는 말이여,&nbsp; 하물며라는 증오를 거부하는 말이여,&nbsp; 아무것도 아닌 네가 아무것도 아닌 나를&nbsp; 한 번 더 은은히 돌아보는 눈길 같은 말이여&nbsp; 한없는 바닥에서 굉장히 쟁쟁한 말이여&nbsp; (전문. p.29)<br><br>&nbsp; 시인이니까 당연히 단어에 상당한 관심이 있을 터. 나 같은 범부하고는 차원이 달라 기껏 ‘하물며’ 하나 속에도 온갖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그래 처음엔 그런 가보다 했는데, 이게 연달아 ‘부디’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 ‘저기요’ ‘아~’까지 나오니 ‘어쨌든’에서 벌써 콱 질려버렸다. 차라리 “서울의 우울” 시리즈처럼 서울 곳곳에서, 서울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우울을 발견하면 조금 나은 데.&nbsp; 열심히 쓴 시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참 나쁜 일이다. 지금 내가 시인의 시가 별로라는 건 아니다. 다만 나하고 맞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을 뿐.&nbsp; 위에서 말했듯, 같거나 비슷한 시어가 줄창 출현하는 것도 맞지 않고, 마치 독자가 자기 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많은 시 속에서 딱 단정해 말하는 어법도 마음에 안 든다. 하긴 학생들 월사금이나 책값하고 비슷하다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br>&nbsp; 표제 시 &lt;희망이 외롭다&gt;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서 다른 시 하나 꽝. 그걸로 독후감 마침.<br><br>서울의 우울 13— 위층 사람<br><br>&nbsp; 당신은 지금 나의 하늘을 밟고 서 계십니다.&nbsp;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지 마시고&nbsp; 천상천하 유타공존 하십시오.<br>&nbsp; 당신의 하늘을 밟고 서 계시나&nbsp; 소리 내지 않는 구분을 상기하십시오.<br>&nbsp; 당신의 머리통 위의 발바닥을&nbsp; 당신의 발바닥 아래의 머리통을&nbsp; 그렇게 그윽이 생각하면서&nbsp; 함께 물망초 꽃으로 피어나자는 것입니다……<br>&nbsp; 아니요&nbsp; 아니요&nbsp; 물망초 꽃이 아니라 아예 나를 잊으라는 망초꽃으로&nbsp; 조용한 망초꽃으로&nbsp; 너영나영 아늑히 피어나자는 것입니다.&nbsp; (전문. p.69)<br><br>&nbsp; 층간 소음? 이 시도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서울의 우울 시리즈에서 제일 짧아 옮겼다.&nbsp; 근데 정말 몰라서 묻는데, “너영나영”이 무슨 뜻이여? ‘너하고 나하고’, 공동체를 말하는 것 같은데 사전에 나오지 않아 모르겠다. 사투리?&nbsp; 유아독존唯我獨尊은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유타공존(유他共存)의 유는 唯일까, 有일까? 오직 유唯라면 오직 너와 나만 함께 살자는 뜻이고, 있을 유有면 다른 사람도 있어서 함께 살자는 말인데, 唯 같기도 하고 有 같기도 해서 헛갈리는 건 내가 시를 쥐뿔도 몰라서 그런 것. 혹시 아무 생각없이 유아독존과 비슷하게 그냥 우리말로 유타공존이라 쓴 거 아니심?&nbsp; 오늘 이 양반 욘세이가 일흔다섯 개. 이제는 더 이상 “불의 여인”이나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는 아니겠지? 늘 건강하시기 바란다. 건강한 게 대빵이다. 그깟 시보다 훨씬 중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3/1/cover150/89546197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3015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영롱하게 화려하고 부드러운 - [가벼운 마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4468</link><pubDate>Thu, 16 Jul 2026 04: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4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039673&TPaperId=17394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87/27/coveroff/k8320396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039673&TPaperId=17394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벼운 마음</a><br/>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5년 05월<br/></td></tr></table><br/>.&nbsp; 브루고뉴-프랑슈콩테에서 1951년애 태어나 71년간 그곳에서 살다가 간 시인, 에세이스트, 기독교 작가 그리고 가끔 단편소설가. 제일 중요한 장르는 시와 에세이. 그래서 그런지 소설도 문장이 뭐라 그럴까, 거미줄 같이 아롱져 더욱 화려하다. 섬세함과 화려함. 이게 양극단인 것처럼 들리지만, 햇살이 파르르 떨리는 은빛 새벽 거미줄의 아롱거림도 얼마든지 화려할 수 있다. 그것을 직조하여 화면을 만들 수 있다면. 아무나 이렇게 쓰는 것은 아니겠지? 그걸 할 수 있는 작가도 꽤 있다. 우리나라에선 많고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쓰려고 애쓰는 게 짠하기도 하지만. 보뱅의 문장에는 칼날이 없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섬세하고, 화려하고, 부드럽다.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이 문장이 그렇다는 말이다. 소설이라는 게 문장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장르이니 이 또한 얼마나 막강한 무기랴.<br>&nbsp; 주인공인 화자 ‘나’는 하도 여러 개의 가명을 써서 독자가 진짜 이름이 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이를 프랑스 말로 ‘나’ 즉 ‘moi’라고 하자.&nbsp; 나는 작품의 첫 문장부터 깜짝 놀랐다.&nbsp;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nbsp;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 거 참 취향도 별나네.&nbsp;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왜 “이빨”이라고 할까? “이”라고 하는 훨씬 듣기 좋을 우리말이 있는데. 치과에 가도 이젠 ‘이’라고 하지 않는다. 꼭 ‘치아’라고 한다. ‘이’라고 쓸 경우엔 꼭 앞에 뭐가 붙는다. 누렁니, 뻐드렁니 등등. 아름답지 아니한 것.<br>&nbsp; moi가 사는 곳은 서커스단 트레일러. 공연단의 모든 설비관리를 하는 아버지와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 엄마를 따라 프랑스 전국을 정해진 코스로 일주하는 삶. 그리하여 moi는 인류를 유랑민, 정착민, 그리고 아이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눈다. 두 살 때부터 사랑을 했으니 이 정도쯤이야 뭐.&nbsp;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첫사랑이 등장한다. 늑대. 진짜 늑대다. 그러니까 ‘누런 이빨’이라 번역한 거다. 폴란드 중남부의 크라쿠프 지역에서 살다가 사람들한테 생포되어 서커스 단장이 비싼 돈을 들여 직수입한 늑대. 늑대는 길들지 않는다. 그래서 코끼리, 사자, 범, 말 같은 짐승들이 전부 쇼를 할 때, 늑대는 여전히 우리에 갇혀 서커스 천막 매표소 앞에 전시되어 지나가던 꼬맹이들과 동네 양아치들한테 돌을 얻어맞기 십상이다.&nbsp; 어느 한밤. 전립선이 뒤숭숭한 아빠가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 보니 글쎄 moi가 없다. 아빠는 갑자기 잠이 확 깨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moi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트레일러 여기저기서 전부 등불을 켜고 어릿광대, 곡마사, 곡예사, 여자들, 아이들이 몽땅 잠옷 바람으로 나와 moi를 찾아 일대를 싹싹 뒤진다. 영낙없이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알았겠지. 결국 고모가 moi를 찾았다. 늑대 우리, 말이 ‘우리’지 어떻게 열었는지 철창을 열고 들어가 털이 부얼부얼하고 그만큼 따뜻한 늑대의 배에 작은 머리를 대고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랬다는 거다. 픽션이니까 가능하지. 절대 길들지 않는 늑대의 배를 베고 자는 거. 늑대는 moi가 여덟 살 때 죽는다. 서커스단이 다음 공연장 아를에 도착하기 직전에.&nbsp; 아를에 천막을 친 날 밤. 또 moi는 사라졌다. 잠옷을 입은 채 늑대 묻은 곳을 찾아. 아를에서 8~15km 떨어졌다고 썼는데 여덟 살 아이가 깜깜한 밤에 밤새도록 걸어가면 도착할까 말까 할 거리. 결국 도저히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근처 작은 마을에서 멈췄다. 여기서 만난 뚱뚱하고 선한 사마리아 여인. moi는 자기 이름이 프륀 아망동이라 거짓말한다. 프륀, 자두. 사마리아 여인은 moi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이곳에서 moi는 평생 즐기게 될 음악을 처음 만난다. 슈베르트. 여인은 간호사. 동네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주사를 놔주고 돈을 얻어 바그너, 라벨, 슈베르트의 음반을 산다. 하루 종일 제법 크게 틀어놓고 음의 물결 속에서 거니는 걸 좋아한다. 음악은 방에서 자고 있는 은퇴한 남편 파티시예 때문에 듣기 시작했다.&nbsp; 이후 moi도 음악을 듣는다. 알파와 오메가는 역시 바흐. 바흐의 사진을 보면 뚱뚱하다. 그래서 moi는 바흐를 ‘뚱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제일 마지막도 뚱보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악보로 끝낼 정도로. 알파와 오메가.<br>&nbsp; 이후, 그러니까 늑대가 죽은 다음부터 moi는 거의 상습적으로 가출을 시도한다. 이건 부모 생각이고 자기가 가출로 치는 건 훨씬 이전 부터다. 단지 그들 눈에 띄지 않았을 뿐.&nbsp; moi를 안도하게 할 수 있는 남자를 구하고 있다. 바로 늑대. 늑대 같은 남자. 할머니가 해준 1940~45년에 폴란드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다. 유대인, 동성애자, 공산주의자, 그리고 moi 같은 집시에게 늑대라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저지른 것이 바로 인간. 할머니는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푸른 수염이 있는 거라고. 여기서 ‘푸른 수염’은 어여쁜 유디트의 새신랑, 푸른 수염의 영주, 사이코 패스이자 괴물을 말한다. 근데 그렇다는 거다. 푸른 수염을 던지긴 했는데 끝날 때까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nbsp; 유랑민인 아빠는 moi를 기숙학교에 보낸다.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moi는 라틴어, 국어, 작문에는 따라올 아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받아내지만 수학, 과학은 젬병이다. 국어와 작문? 그러면 훗날 책을 쓰겠지? 맞다. 그러나 자기 글을 쓰기 전에는 언제나 문청인 남편 로망을 만난다. 이 때가 열일곱 살. 이제 케르보크 여사가 된 moi는 십년이 넘도록 함께 사는 데 성공한다.&nbsp; moi의 최고 가치는 자유. 결혼이라는 약한 고리는 moi로 하여금 진정으로 사랑하기에는 과도하게 타인을 모방하는 삶을 살게 한다. 자유는 책임을 담보로 하는 것. moi는 그럼에도 거침이 없다. 부모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moi와 결혼한 로망은 시간이 갈수록 감당하기 힘든다. 작품도 안 되고, moi는 제멋대로이고, 돈은 쪼들리고, 부모한테 손 벌리기는 죽어도 싫고, 싫지만 어쩔 수 없어서 훗날, 바로 옆집에 사는 오케스트라 수석인지 부수석 첼리스트와 밤이면 밤마다 자고 새벽에 기어들어오는 moi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갈라설 때까지. moi는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절대 가치는 자유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프랑스 소설이다.&nbsp; 건조하게 독후감을 스토리 위주로 썼지만, 이 작품은 결코 스토리를 읽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일 앞에서 이야기했듯, 문장, 문장, 오직 문장을, 영롱한 화려함, 그리고 부드러움을 감각하기 위해 읽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87/27/cover150/k8320396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387272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이 작가를 놓치면 섭하지 - [러브크래프트 걸작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2478</link><pubDate>Wed, 15 Jul 2026 0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24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5379&TPaperId=173924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0/41/coveroff/893240537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5379&TPaperId=173924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브크래프트 걸작선</a><br/>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br/></td></tr></table><br/>.&nbsp; 6년 전에 현대문학사에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읽었다. 이번에는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13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모두 다섯 개의 중∙단편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세 편이 현대문학사 책과 겹친다.&nbsp; 목차를 보자.<br>&nbsp; 1. 외부자&nbsp; 2. 벽속의 쥐들&nbsp; 3. 크툴루의 부름&nbsp; 4.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nbsp; 5. 우주로부터의 색<br>&nbsp; 이 가운데 2, 3, 5번이 겹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6년 전에 읽은 소설집이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면서도 엽기발랄한 것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싹 잊어버려 아예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게다가 3, 4, 5번은 “크툴루”라는 생명체, 아마도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로 신비롭고 악마 같은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이다. 5번에서는 크툴루와 그의 동족이 해왕성 너머 태양의 아홉 번째 행성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때 인류는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 해왕성인 줄 알았거나, 막 명왕성의 존재를 발견한 시점이다.&nbsp; 하워드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생몰이 1890~1937.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던 반유대주의의 편을 들었으며, 이이의 반유대주의는 우월형질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히틀러를 지지하기도 했다. 즉 그때는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인.&nbsp; 미국인 보수주의자라면 외계인은 당연히 지구 점령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울 상대. 그런데 조금 다르다. 러브크래프트의 외계인은 어쩌면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와 있으면서 지구인에게 정체만 밝혀지지 않으면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대신 자기들이 필요한 물질을 채취/채광해간다.&nbsp;&nbsp; 이런 것이 소설이 되려면, 어쩌다 인간의 눈에 외계인이 띄는 아주 드문 경우. 그런 일이 있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원주민의 토속 종교 속에서 외계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부두교 예식에서도 그렇다.&nbsp; 이들은 비단 육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다 속에서도 있다.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 섬과 함께 있었고, 섬과 함께 바다로 내려가 그곳에서 터를 잡기도 했다.&nbsp; 육지에 있건, 바다에 있건 크툴루는 자신의 흔적을 인류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대개 행방불명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거나, 자살해버린다. 어쩌면 그들이 죽였을 지도. 간혹 그들과 관계를 맺어 가까워지면, 크툴루에게 설득당해 놀라운 의과학으로 신체에서 뇌만 절묘하게 빼내, 신체는 그들이 싱싱하게 보관하고, 뇌는 시각, 청각, 말하는 장치 등을 연결한 후 금속함에 담아 크툴루의 별까지 여행하기도 한다. 정말 거기까지 갔다 온 사람은 나오지 않고, 뇌만 살아 생각하고, 주인공을 설득해 뇌를 뽑아 함께 제9 행성에 가자고 하기도 한다.&nbsp; 그러니 어쨌건 외계인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애초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그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않는 것. 지구에서 특정한 물질을 채취해 간다 하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했어도 지구인이 사는 데 불편함이나 모자람은 여태 없었으니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다.&nbsp;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그저 그렇구나, 이런 생각 하지시? 하지만 읽어보시라. 곳곳에서 섬뜩한 장면이 등장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으로 읽어본 전력이 있더라도 어떤 작품에 무슨 장면이 나오는 지는 다 잊었어도, 결코 밤 늦게 나 홀로 있는 방에서 읽지는 않겠다고 작심해, 딱 해 있을 때 다 읽었다.&nbsp; 독후감을 쓰기 위해 러브크래프트를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나무위키에 가 보았더니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다.&nbsp;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이자, 현대 호러 문학과 서브컬처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작가.”&nbsp; 러브크래프트 한테 크툴루가 이만큼 중요한 (아씨, 이걸 뭐라 해야 하는 거야? 등장인물도 아니고, 소재라고 하면 빵점이고, 장치는 말도 안 되고) 하여간 그런 거다. 그러니 을유문화사 책이 “걸작선”일 수는 있겠다.<br>&nbsp; 첫번째 순서로 실린 &lt;외부자&gt;는 괴물 이야기. 성에 사는 ‘나’. 나는 성의 까마득한 탑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또 더 위로 갈 수 있는 듯한 입구가 있다. 테드 창의 데뷔 단편 &lt;바빌론의 탑&gt;하고 비슷하지? 탑 위에 더 위로 향하는 뚜껑. 두 작품의 주인공 다 어렵게 뚜껑을 열어젖힌다.&nbsp; &lt;외부자&gt;의 ‘나’가 그곳으로 기어 올라가니 완전한 어둠. 앞이 보이지 않지만 편평한 것이 큰 방 같기도 하다. 그래 더듬더듬 짚어가며 더 깊숙이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펼쳐지는 광경. 무도회. 온갖 선남선녀가 즐겁게 춤을 추고 있어 ‘나’도 한 자리 끼려고 냅다 달려가니, 그곳의 신사 숙녀들이 화들짝 놀라, 숙녀들의 혼절하기도 하고, 신사들도 아이구 깜짝이야, 혼비백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치는 말이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나’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할 괴상망측하고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nbsp; 이 작품 속에 괴물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그건 독자가 생각하는 거, 그게 맞다. 독자 자신일 수도 있고, 누구나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크툴루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나를 차버리고 떠난 마음 속의 악마인 그새끼 또는 그년일 수도 있겠지. 이런 거 아니더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것이라도 괴물이 될 수 있으니 그건 알아서 하시고.<br>&nbsp; 두번째 실린 &lt;벽속의 쥐들&gt;은 현대문학 책에도 나오는 작품이다. 쥐들의 습격. 영화에서도 쥐가 습격해 사람들을 쪼아먹어 죽이는 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이없게도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 즉 마에스트라를 그린 영화 &lt;더 컨덕터&gt;에서 마에스트라의 이름이 Tar. 거꾸로 하면 Rat, 바로 “쥐”다. 이것도 뭔가 있겠지?&nbsp; 종과 관련없이 우생학 적으로 센 놈이 이기는 거. 지하 묘지에서 이번에 바닥 뚜껑을 열고 더 지하로 들어가면 그동안 교회의 벽에서 찍찍거리는 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난다. 무시무시한 숫자의 쥐들.&nbsp; 아휴, 내 취향 아니다. 큰 아이 어렸을 때 둘이 손잡고 &lt;주라기 공원 II&gt; 보러 갔다가, 음산한 음악이 깔리면서 쥐만큼 작은 공룡이 앉아 쉬는 인간 앞에 나타나, 곧 작은 공룡들이 무수하게 몰려들어 그 뚱뚱한 인간을 마구 쪼아 먹을 거 같아서, 아이한테, 갈래? 했더니 걔도 응, 그래서 부자가 손잡고 영화 보다가 나왔다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이런 작품이 마음에 들겠어?<br>&nbsp; 아직 러브크래프트를 읽지 않은 독자들한테는 권할 만하다. 책을 읽으며 이이를 놓친다면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더구나 이 책은 서울대 영문과에서 SF문학을 강의하는 이동신 교수가 번역하고, 특히 오랜만에 괜찮은 역자 해설이 들어있어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기이한 소설, 즉 “위어드 픽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nbsp; 내돈내산 하실 독자는 이 책 말고 현대문학을 사셔도 나쁘지 않겠다. 12년 전에 나온 책이라 13편의 단편소설에 역자해설 및 연표 포함 380쪽이 10퍼센트 할인가 14,400원. 을유는 같은 조건으로 5편에 292쪽, 같은 가격이라 가성비가 좋다. 해설 및 번역의 품질 대비에 관해서는 노코멘트. 어떤 책을 고르든지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90/41/cover150/893240537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90411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파열의 피날레, 기요틴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0553</link><pubDate>Tue, 14 Jul 2026 0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905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78&TPaperId=173905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2/43/coveroff/89320451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178&TPaperId=173905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르멜 수녀들의 대화</a><br/>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이 작품은 전적으로 프랑시스 뿔랑이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원작이라는 이유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다. 베르나노스가 소설가인 줄 알았는데 희곡도 썼구나. 어째 오페라를 들으면서 원작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 참. 하긴 그거 가장 최근에 들은 게 못해도 15년은 됐겠다.&nbsp; 작품을 읽어보면 이건 연극 공연을 위한 희곡이 아니라, 희곡은 희곡인데 희곡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대본 비슷하게 쓴 거 같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라고 보기 힘든 중간 정도.&nbsp;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읽기 위해 내게는 진입장벽이 있으니 바로 종교의 벽. 내가 읽은 두 권의 베르나노스가 &lt;사탄의 태양 아래&gt;와 &lt;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gt; 두 권. 제목부터 척 보면 독실한 천주교인이 쓴 작품이다. 유물론자인 나는 읽기가 그리 즐겁지 않다. 성서를 읽으면서도 성서는 오직 신자, 교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 종자라서 여간해 베르나노스하고 친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읽는 것은 뭐 작품이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br>&nbsp; &lt;가르멜 수녀들의 대화&gt;도 영상이나 극, 딱 그것만 보고 읽으면 감동, 감화 가득한 작품이다.&nbsp; 사실상 프랑스 혁명이 시작하는 1789년 4월 27일과 28일,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란 기치를 든 과격 시민들이 직공들의 임금을 대책 없이 깎아버린 벽지 공장 사장 장-밥티스트 레베용과 초석공장 소유주 사장 앙리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에 처하고 그들과 다른 악덕기업의 사장 집을 차례로 약탈하기 바로 직전인 4월 26일에 이 드라마는 시작한다. 혁명 시작이 7월 14일이라고? 그건 시민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깨버린 상징적인 날짜이고 사실상 상퀴로트들의 폭발은 레베용과 앙리오를 비롯해 최고의 부자 동네 폴리 티통으로 쳐들어가 부잣집을 싸그리 약탈한 것으로 시작한다.&nbsp; 1789년으로 말하자면 가뭄이 극심해 시민들은 밀가루 구경도 못할 처지,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먹고 살자고 파리로 몰려들어 인구가 갑자기 많아지니까, 제조업 사장들이 임금을 후려쳐 대부분의 시민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하루에 수제비 한 그릇 구경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다가 그래도 멍청했던 루이 16세가 모른 척하자 약탈을 시작했고, 그제서야 출동한 기마병들이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해 본격적으로 뇌관을 터뜨려 버린다. 그게 1789년 4월 27일과 28일. 근데 솔직히 정확하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지금 역사책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고, 전에 썼던 프랑스 혁명 시기의 소설책 &lt;7월 14일&gt; 독후감 보고 쓰는 중이라서. 앗, 독후감 업로드 하는 오늘이 혹시 7월 14일 아녀? 이거 백퍼 우연이다. 그것 참.<br>&nbsp; 시작은 비록 “부자들에게 죽음을!”로 했건만, 부르주아만 부자가 아니고, 귀족들도 당연히 부자인 동시에 대지주였다. 농업 부르주아인 귀족에서 천천히 상공업 부르주아인 신계급으로 사실상의 권력이 이동하던 시기. 상퀼로트들은 귀족 집안 역시 그간의 호의호식한 대가를 물어야 했다.&nbsp; 그리하여 첫 무대는 이런 정황을 밝히기 위해 들라포르스 후작의 저택에서 후작과 그의 아들이자 기사이자 주인공 블랑슈의 오빠가 어지러운 파리의 치안, 그리고 예민하고 겁이 많은 블랑슈가 하필 오늘 마차를 타고 나간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자는 지금의 동요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들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귀족, 부르주아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nbsp; 조금 지나 블랑슈가 외출에서 돌아와 함께 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자신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들어간다. 무대극은 원래 쓸데없이 이야기를 길게 끌지 않는다.<br>&nbsp; 처음이니까 견습수녀. 쉬운 얘기로 하면 새끼수녀. 다른 수녀들은 검은 캡을 쓰지만 견습은 흰 캡을 쓴다든가 하여간 그렇다. 수녀원에서도 귀족, 평민의 계급은 존재한다. 물론 천주의 관할 아래 평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알게 모르게 다 그런 거지. 블랑슈는 후작 아빠가 특별하게 부탁해 일찌감치, 그걸 뭐라 그러나? 일종의 수계 같은 거,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수녀 수계를 받을 수 있게 조정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원장 수녀가 오늘 내일 한다. 그러다가 진짜로 죽는다. 죽으면서 사실상 수녀원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마리아 수녀에게 블랑슈 들라포르스를 공적公的으로 의탁한다. 이게 수녀원에서는 무서운 건가 보다. 한 번 의탁하고, 그러겠다고 했으면 정말로 돌봐야 하는 모양이다. 저 뒤로 가면 하여간 이 일 때문에 마리아 수녀가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nbsp; 목숨? 수녀들의 죽음이 프랑스 혁명하고 관련이 없을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 날짜가 조금 더 지나 혁명이 성공하는 쪽으로 접어들자, 주변 국가들이 왕실을 지켜주기 위하여 군대를 파병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걸 눈치챈 시민군들, 그들 입장에서, 우두머리가 부르봉 왕가와 친밀해도 너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로마 교황청. 그리고 교황청의 졸개인 신부, 수녀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시민들이 그간 교회한테 고난을 받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좀 무식한 시민군들은 교회가 그간 잘 먹고 잘 산 걸 무겁지 않게 징벌하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간혹 겉으로 왕따 당하기 싫으니 비슷하게 교회에 대고 지랄은 했지만 속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도 있었으니, 이런 자가 교회나 수도원에 밀려들어온 시민군에 속했으면 그나마 팔이 안으로 굽었겠지? 말하면 뭐해. 당연하지. 사는 일이 다 그래.<br>&nbsp; 가르멜 수녀원을 보면, 원장이 죽고 새 원장으로 당연히 마리아 신부가 될 줄 알았는데, 이 와중에 귀족의 딸인 마리아 수녀가 원장을 하는 것보다 마리아는 마리아지만 시민의 딸인 성 아우수스티노의 마리아가 원장 자리에 오른다. 새 원장이 자신도, 자기가 시민 출신이라 아무래도 많이 배운 귀족의 딸, 강생의 마리아가 원장이 되어야 했다는 걸 새 이해하고 안다. 그래서 극을 진행하며 생기는 많은 일을 마리아 수녀와 상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가끔가다 새 원장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마리아 수녀 역시 기꺼이 순종의 의무를 따른다.&nbsp; 당연히 블랑슈가 제일 어린 수녀. 바로 위에 콩스탕스 수녀. 덩치 좋고, 발랄하고, 늘 즐겁고, 낙천적인 성경이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앞으로 블랑슈 앞에 닥치는 많고 많은 겁나는 일, 우유부단, 어려움으로부터의 회피 같은 것을 하려할 때마다 자주 도와준다. 자주, 언제나. 물론 콩스탕스의 뜻대로 블랑슈가 늘 따르는 건 아니지만.&nbsp; 그리고 수녀들. 이 가운데 호호 할머니 수녀도 있다. 세상 경험이 많고 이제 곧 이미 죽은 원장 수녀를 따라가야 하는 이. 어린 수녀들을 포용하는 그릇이 크다. 이이를 뺀 기타 수녀들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이런 수녀도 있고, 저런 수녀도 있다.&nbsp; 이들이 혁명기의 곤란을 겪으면서, 결국 기요틴 아래에서 목이 떨어지는 스토리.<br>&nbsp; 따라서 수녀원이 배경으로 깔리는 순간, 천주의 뜻, 원장에 대한 순명, 순교에 관한 “대화”가 무진장 쏟아진다. 무식한 독자인 내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은, 수녀들의 아버지인 천주께서 시민, 상퀼로트들로 하여금 수녀원을 약탈할지언정 수녀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판결을 하게 하면 될 것을, 왜 수녀들로 하여금 순교를 하게 만들었을까?&nbsp; 그게 우습더라니까? 구약성서를 보면, 기껏 자기 아들 딸을 만들어 놓고, 틈만 나면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해서 자식 가운데 제일 큰 아들을 칼로 후벼 죽여 자신한테 바치라고 하지 않나, 애굽의 모든 장자를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키고 애굽을 떠난 모세 무리를 광야에서 몇 십 년 헤매게 하지를 않나.&nbsp; 근데 이게 나 같은 집 나간 불쌍한 검은 양의 생각이지 독실한 가톨릭 환자인 막내 외삼촌네 식구들은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하니 뭐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그건 이해하더군. 신자가 아닌 사람이 성서를 읽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흠. 난 당연한 사람이야. 뭘 이해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성서는 이해해서 읽는 게 아니라며? 그냥 무조건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며?<br>&nbsp; 이 책을 읽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뿔랑의 오페라였다는 건 제일 앞에 썼다.&nbsp; 오페라 전부 다 감명 깊다, 이렇게 말하면 이건 생 구라고, 지루함을 참고 참으면 드디어 반가운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 열여섯 명이 ‘성모 찬양 Salve Regina’를 부르며 기요틴 아래 대기하고 있다가 한 명씩 처형대를 향해 걷어 무대에서 사라지고 잠깐 후, 써~억, 하는 살 떨리는 소리가 날 때의 섬뜩함. 그럼 소름이 쫙 끼치는데, 그걸 듣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스피커 앞에 앉아 있는 거다. 제일 처음에 DVD로 당시 유행하던 홈 씨어터라는 장치로 봤는데 써~억, 하는 기요틴 도끼날이 자유낙하 하는 음향이, 아이구, 죽여줬다니까. 그래 곧바로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버진 클래식 레이블 CD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nbsp; 듣다, 듣다 그렇게 소름끼치는 피날레는 처음 들어봐서. 당신도 한 번 경험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 한 장면 가져왔다.<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2/43/cover150/89320451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2438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한 대학원생의 논문을 기다리며 - [크라카티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8752</link><pubDate>Mon, 13 Jul 2026 0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87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3887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off/k9626314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3887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크라카티트</a><br/>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20년 07월<br/></td></tr></table><br/>.&nbsp; 이 책이 2020년 7월에 나왔다. 몰랐다. 다른 작가도 아니고 차페크가 쓴 우리나라 초역 작품이 나왔다는 걸 알았으면 내가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사서 읽지 않았겠나? 전혀 몰랐다. 우연히 알라딘에서 차페크를 검색해보니까 처음 보는 책 표지가 떠서, 일단 잽싸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희망도서는 5년 이상 묵은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대고 정중하게 부탁했지. 읽고 싶은데 이 도시의 다른 도서관에도 한 권도 없다, 2차세계대전 이전 동유럽 대표선수가 쓴 책이 도시의 모든 도서관에 한 권도 없다는 게 섭섭해서, 나야 내가 사서 읽으면 되지만, 그래도 도서관에 한 권 정도는 구비해야 하는 것 같아 신청하니, 삼가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하루 지나 담당자한테 전화가 와 사주겠다고 해서, 읽었다. 혹시 속으로 욕했을까? 아니겠지. 목소리가 상냥한 걸로 봐서. 나 다니는 도서관 사서들은 다 친절하다.<br>&nbsp; 이렇게 조금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읽은 &lt;크라카티트&gt;. 출판사 “행복한책읽기”가 체코공화국 외무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명예교수 김규진에게 번역을 부탁해 찍은 책이다. 읽은 지 오래 되어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규진이 번역해 같은 출판사에서 낸 &lt;압솔루트노&gt;도 이 정도의 번역은 아닌 걸로 짐작하는데, 이번엔 해도 너무 했다.&nbsp; 먼저 우리말 문장이 후지다. 지극히 한정된 단어만 사용해서, 체코어를 우리말로 완전히 직역해 써 놓은 듯하다. 두번째로 정말 욕 나올 정도로 교정/교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체코공화국 외무부장관이 다행히 우리말을 읽지 못해 망정이지, 이 책을 우리말로 읽었으면 당장 서울에서 체코공화국 대사관을 철수시켰을 수도 있겠다. 기껏 번역료를 보태주었건만 이 따위로 책을 내? 이러면서.&nbsp; 책 읽다 보면, 한 페이지에, 좀 과장해자면, 열 번 정도 오자가 나오지 않으면 섭섭해지더라니까. 참 다양하게 오탈자가 출몰하는데, 이게 심하면, 아마 다들 같은 경험이 있겠지만, 몰입해 읽는 데 짜증, 왕짜증이 난다. 근데 이 책은 그 경지를 넘어 독자가 해탈 부근까지 걷게 만든다.&nbsp; 물론 아니겠지만, 당연히 의심하는 건 아닌데, 김교수가 진짜로 번역을 했나? 아니면 애먼 대학원생들에게 용돈 좀 주고 너는 여기서 여기까지, 또 너는 여기서 여기까지,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이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 혹시 다른 역자도 초역은 이 정도 수준으로 해서 가져다주는지 그것도 궁금했다. 이러고도 번역료를…, 아이고, 이 말은 취소, 취소.&nbsp;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은 오탈자가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읽으면 딱 좋을 수준이다. 박사 말고 석사학위 취득용이 적당하겠다.&nbsp; 내가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아시겠지? 아득바득 우겨서 희망도서로 시내 20개 크고 작은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비치하게 만든 책인데, 쓰, 힘들게 책 들여놓은 내 꼴이 뭐가 되느냐고!<br>&nbsp; 트라카티트. 20세기 전반부에 발명한 최고의 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이 진짜로 출현하기 전인 1924년에 동명의 제목으로 차페크가 만든 원자폭탄의 명칭이다. 정확하게는 원자 폭발물. 최초라니까 그러면 원자폭탄의 아버지도 있을 것. 그의 이름은 프로코프. 대장장이 아버지 아래 태어나 체코 최고의 명문 프라하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학사 출신의 폭탄 엔지니어.&nbsp; 프로코프는 무슨 록히드 마틴이나 한국화약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연구실에서 소소한 폭발물을 만들어 주로 광산하는 사람들의 암반 폭파 목적으로 공급해 돈을 벌었다. 작품 내내 돈을 활수하게 쓰는 것을 보니 제법 많이 번 모양이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천재급 두뇌를 보유했고, 자기 전공분야에 관한 한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의 자세로 백두산석마도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암만. 천재라는 수식은 70퍼센트의 노력을 동반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니까.&nbsp; 그러던 어느 날, 점심밥도 미루며 열심히 실험을 하다 새로운 폭발물을 조금 만들었다. 이 가운데 15센티그램, 즉 0.15그램을 도자기 항아리에 보관해 자기 품 안 속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가루 조금은 답배갑에 담은 다음, 그래도 남은 부스러기는 그냥 책상 위 아연 접시에 남겨 놓았다. 그런데 이 미량의 가루가 아무런 폭발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만 갑자기 무지무지한 폭발을 해버려 프로코프도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채, 당연히 불도 났으니까 겁도 나서, 허겁지겁 체코 시내로 도망해버렸다.<br>&nbsp; 이 폭발물 트라카티트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모든 물질을 재료로 만들 수 있다. 물질 속 에너지, 즉 원자가 결합한 상태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하다. 근데 이 원자의 내부가 느슨해지기만 하면 물질 에너지가 꽝! 폭발을 해버리는 것. 1920년대에는 우라늄이니 플루토늄이니 하는 걸 잘 몰라서 모든 원소의 원자로 폭발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거나, 소설 즉 픽션이라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프로코프는 원자의 폭발성을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셈이고, 나름대로 결론을 낸 바, 이건 열화학이 아니라 파괴적인 화학, 파괴화학이었던 거다. 뭐 이 폭발 현상에 대해 좌르륵 써 있지만 그걸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이렇다는 말이다.&nbsp; 프로코프가 프라하 변두리에 도착했을 때는 폭발로 인한 후유증과 오른손에 제법 큰 상처가 나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그러면서 폭발을 확인하기 위하여 경찰이 출동했을 것이 틀림없으니 일단 경찰권의 눈에 띄면 곤란해지겠다. 잔뜩 쫄아서 고개를 잔뜩 웅크리고 간신히 보도를 걷다가, 앞깃을 올려 최대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는 남자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서로 비껴 지나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도 자신을 보고 있다. 좀 더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까 또 그 남자도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뚜벅뚜벅 프로코프한테 다가와 말하기를,&nbsp;&nbsp; “어이, 프로코프! 나 몰라보겠어? 나 토메시야, 이르지(애칭 이르카) 토메시. 우리 같은 공과대학에 다녔잖아.”&nbsp; 시골 티나체에서 개업의사를 하는 아버지의 1남1녀 가운데 맏이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난봉꾼인데 그런 기미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프로코프가 부상당했고, 지칠대로 지친 걸 알고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자기 아파트로 환자를 데려간다.&nbsp; 침대에 널부러진 프로코프는 겨우 미음에 잘게 썬 백김치 정도만 먹을 수 있었고,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환각도 보고, 원래 좀 미친놈이긴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구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토메시한테 비몽사몽 다 읊어준다. 열이 펄펄 끓는 처지에도 실눈을 떠 보니 토메시가 자기가 한 말, 화학 구조식, 트라카티트 제조방법을 전부 종이에 받아 적고 있는 기미가 보였다.&nbsp; 아하, 내가 뭔가를 누설했구나.&nbsp; 누설했다. 토메시는 트라카티트를 만드는 공장을 너하고 나하고 합작해서 만들자는 제안을 하더니, 지금 당장 자기는 돈이 없어 티나체에 가서 아버지한테 돈을 뜯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지금 당장 떠나겠다더니 정말 가버렸다.&nbsp; “내일 아침에 가정부가 와서 너를 병원으로 데려갈 거야. 몸조리 잘 하고 있어라.”<br>&nbsp; 돈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떠난 토메시.&nbsp; 지금 당장은 몰랐지. 그 새끼가 프로코프 품 안에 있는 도자기 항아리, 15센티그램, 즉 0.15그램의 크라카티트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을. 토메시는 트라카티트와 프로코프가 비몽사몽간에 얘기한 방정식을 갖고 어디로 갔느냐? 체코와 그리 멀지 않은 공국, 리히텐슈타인? 정확한 국명은 나오지 않지만 전체주의 국가로 가서 전대미문의 폭탄 트라카티트를 데모 시연하고 돈을 왕창 벌었다. 이에 흥분한 공국의 연구소장 카슨한테 프로코프에 관해, 그의 연구와 대량 생산의 가능성에 대하여 설레발을 왕창 풀었음을 물론이다.&nbsp; 그런데 아뿔싸, 실험에 참가한 연구원 한 명이 나머지 100그램이 든 도자기 항아리와 제조법 사본을 들고 튀었다. 누구한테 튀었나 하면 공국의 연구소가 있는 성에서 또다른 전체주의 국가의 도시 크루투프에 있는 연구소로. 하지만 프로코프가 짱구냐? 아무리 제조방법과 방정식 같은 걸 다 적어갔다고 하더라도 핵심 공정을 건너 뛰어, 토메시는 진짜 크라카티트를 만들기는 만들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그리고 만든 순간 토메시는 폭망해버린다. 그건 아주 뒷장면.<br>&nbsp; 이후 프로코프는 토메시를 찾기 위하여 베일을 쓴 토메시 애인의 말과 부탁을 듣고 그의 고향집이 있는 티나체로, 다시 프라하 인근 자기 연구소를 거쳐 공국의 성에 있는 연구소, 크라카티트에 관한 정보를 죄다 들은 공국의 귀족이지만 아나키스트인 타타르족 친척 다이몬한테 갔다가, 마지막으로 진짜 토메시가 일하는 크루투프로 찾아간다. 베일을 쓴 여인의 부탁을 완료하기 위하여.&nbsp; 이 과정에 프로코프는 베일을 쓴 여자, 티나체에 살고 있는 토메시의 여동생 안둘라(애명 안치), 공국의 성에 사는 공주를 사랑하고, 안치와 공주도 그를 사랑하는데, 이거 너무 장황해 별 재미없다. 야하기나 했으면 읽는 재미라도 있지.&nbsp;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해 대규모로 인류를 살상할 수 있는 토메시와 크라카티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 근데 차페크가 이걸 코미디로 쓴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 차페크가 오른쪽 주머니, 왼쪽 주머니 같은 농담 시리즈도 써서 더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곳곳에 코믹 장면을 배치한 것이, 아무래도 인류 멸망 가능성을 가진 원자폭탄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읽었다.&nbsp; 다른 역자가 다시 번역하면 또 읽어볼까? 그래도 관두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150/k9626314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681457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대산세계문학총서, 200권 발간을 축하합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link><pubDate>Fri, 10 Jul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047&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32/61/coveroff/893204204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058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440/34/coveroff/89320405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16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96/4/coveroff/89320381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7787&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2/50/coveroff/89320377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6063&TPaperId=173847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225/94/coveroff/893203606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470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nbsp;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입니다. 문학과지성사의 자존심으로 엮은 전집. 작가가 아무리 이름이 높더라도 그 작가의 결실 가운데 딱 한 작품만 골랐으니 작품의 품질이야 저절로 좋을 수밖에 없을 터. 한 작가 당 딱 한 작품. 20세기 중반까지는 이런 출판 기획도 드물지 않았지만 신자본주의의 절정기인 지금 시대에 고집을 꺾지 않기는 틀림없이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따라서 시리즈 2백 권 모두 엄정한 편집부의 고심 끝에 결정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정한 결과물이겠지만 그래도 독자가 읽기에 정말 좋았더라,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열 편을 고르려 합니다.&nbsp; 제가 이 시리즈에서 나온 시를 제외한 모든 장르는 거의 다 읽은 거 같습니다. 이 가운데 번역 시하고는 아예 인연이 없어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자랑인 다양한 고전 시 빼고, 나머지 목록 가운데 이 시리즈 출판물로 가장 감명 깊게, 재미있게, 또는 의미 있게 읽은 책을 리스트 업 했습니다. 그랬더니 열아홉. 더하기 1차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아쉬운 책과 다른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읽어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책도 또 열아홉. 이 가운데 딱 열 편을 소개합니다.&nbsp;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2백번 작품, 울리츠카야의 &lt;통역사 다니엘 슈타인&gt;은 지금 희망도서 신청 중이라 읽지 못했습니다만 이것도 혹시 기념할 만한 책 목록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 책은 다음으로 하자는 뜻입니다.<br><br>&nbsp; 작품 소개는 시리즈 번호 순으로 하겠습니다.<br><br>1.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lt;페리키요 사르니엔토&gt; <br>&nbsp; 라틴 아메리카의 세르반테스라고 상찬하는 모양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쓴 진짜 고전 가운데 한 편이 바로 &lt;페르키오 사르니엔토&gt;이다. 페르키오 사르니엔토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옴쟁이 앵무새 새끼.’ 1810년대에 쓴 오래 묵은 작품이라고 곰팡내 날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인종과 계급 차별의 찬란한 반어법도 있고 뭐 그런데 다른 말 길게 할 거 없이 무척 재미있지만, 두 권 1천 페이지가 넘도록 비슷한 필체를 읽는 난관은 감안하셔야 할 것.<br><br>2.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lt;오블로모프&gt; <br>&nbsp; 이이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재미진 작가인 줄 알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문학과지성사 덕분이다. 소위 LDT, 레르몬토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내가 주장하는 러시아 3인방의 위명에 눌려 자꾸 순서가 뒤로 밀렸다가 정작 읽어보니 이게 웬일? 오블로모프의 게으름은 틀림없이 ‘천재성이 없는’ 조아키노 로시니의 도플갱어일 듯하다. 나도 나머지 삶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을매나 좋을꼬? 이 책 역시 두 권의 빵빵한 분량, 감안하고 선택하시라.<br><br>3. 이보 안드리치, &lt;드리나 강의 다리&gt; <br>&nbsp; 이 책, 내 최애 리스트 가운데 한 권인데 독자에 따라 호오가 있을 듯. 10년 전, 2016년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선정했을 만큼 대단한 임팩트를 준 작품이건만 역시 소설은 독자의 결정이 최종 심판이다. 16세기 초반에 만든 돌다리. 다리를 만들 당시 보스니아 지역에서 튀르키예 소년병으로 편입한 시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파란만장했던 다리와 주변 사람들이 겪어온 신난고난. 사람들이 당했던 착취와 죽음, 오해와 반목,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언제나 건강했던 사람들의 초상.<br><br>4. 모옌, &lt;홍까오량 가족&gt; 또는 &lt;붉은 수수밭&gt;<br>&nbsp;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의 전형. 예전에 있었던 창피하고 불행하고 참혹했던 과거에 관한 솔직한 기록. 1920년대부터 40년대 초반까지 강태공의 제나라 지역에서 있었던 항일, 국공, 토비의 난과 이 속에 끼어 죽을똥 살똥했던 인민들의 적나라한 모습. 그리고 남녀상열지사! 이 책 읽고나서 공리 나오는 영화가 이 책의 1`부에 그쳤다는 걸 알게 됐지 뭐야. 모옌 읽으려면 단연 이 책부터 들추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저절로 생길 것.<br><br>5.&nbsp;엘리자베스 개스켈, &lt;남과 북&gt; <br>&nbsp; 요즘 문학동네 세계문학에서 &lt;북과 남&gt;이란 제목으로 새 번역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첫 정. 이 책으로 하여금 나는 단박에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팬을 자처하게 됐다. 19세기 초반의 목사 부인께서 어떻게 이리 노동자들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진보적 시각을 갖추게 되었는지 말 그대로 깜놀, 했다는 거 아닌가. 스토리 하나 가지고 굳세게 작품을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주고, 결혼이 삶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도 은근히 눈치를 주는, 솔직히 이 정도면 명작 아냐?<br><br>6.&nbsp;페터 바이스, &lt;저항의 미학&gt; <br>&nbsp; 아오, 이거 리스트에 올렸다가 욕만 한 태배기 먹는 거 아닌가 싶다. 세 권에 무지막지 건조한 문장으로 꽉 채워진 어마무시한 분량의 책. 문장 부호라고는 쉼표와 마침표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지옥의 순례길. 그러나 인내하시라. 생각도 못한 미학 강의와,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어찌하여 히틀러의 독일이 군비증강을 허용했는지 설명하는 명 강의를 들을 수 있을 터이니.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미학적 시선이라 바이스, 이 엄하게 생긴 독일 양반한테 혹, 넘어가버렸다는 거 아닌가.<br><br>7.&nbsp;리온 포이히트방거, &lt;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gt; <br>&nbsp; 말로만 듣던 포이히트방어. 난 “~방거”가 아니라 “~방어”라고 배워서. 그건 그거고, 이 책은 작가 포이히트방거에 대한 나의 경외심을 심어주어 이후 &lt;톨레도의 유대여인&gt;과 &lt;유대인 쥐스&gt;를 사서 읽게 했으며 앞으로도, 장담하노니, 어떤 책이 나와도 끝내 찾아 읽을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이미 세상의 태양이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대서양 북쪽의 섬나라와 이웃한 프랑스로 넘어갔음에도 세상 무능한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고야. 그의 타협하지 않는 삐딱한 세계관과 왕족을 희화화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시절. 하여튼 이 책은 대산셰계문학총서 가운데 틀림없이 추천작이다.<br><br>8. 마거릿 드레블, &lt;찬란한 길&gt; <br>&nbsp; 조선의 혜경궁 홍씨를 모델로 쓴 소설 &lt;붉은 왕세자빈&gt;의 작가 드레블의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 이 책이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왔으면 모두 출판했을 거 같다. 1979년 12월 31일의 신년 파티가 작품의 시작이니 위에 소개한 작품과 비교하면 제일 현대물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고 다음 해인 1980년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등극해 천박한 신자본주의의 전성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송구영신의 장이 1979년 12월 31일이겠지. 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신개념의 고전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읽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후속작품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br><br>9.&nbsp;윌리엄 매이크피스 새커리, &lt;신사 베리 린든의 회고록&gt; <br>&nbsp; 정말 우습게 알았던 새커리. 오래 전에 &lt;허영의 시장&gt;을 별로 인상깊게 읽지 않아 조금 실망하던 차에 제임스 미치너가 &lt;소설&gt;에서 반드시 평가절하해야 할 영국 작가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바람에 우습게 알았던 작가. 그러다가 이 책 읽고 쌍코피 철철. 아오, 새커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가였구나! 대오각성해서 이 책 좀 읽어보라고 세계만방에 고했거늘 아직도 즐겨 찾아 읽는 독자가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 신사 베리 린든은 말 그대로 신사 그 자체. 라고 주장하는 엽색 사기꾼. 이의 천방지축 설레발을 찾아 읽는 일이 이리 즐거울 수 있을 거란 걸 미쳐 몰랐던 인종이 나 말고도 무척 많을 걸?<br><br>10.&nbsp;패트릭 화이트, &lt;전차를 모든 기수들&gt; <br>&nbsp; 호주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패트릭 화이트. 나도 아무 기대 없이 그냥 대산세계문학총서 라는 타이틀 딱 하나 보고 사서 읽었는데, 세상에 이게 웬 일? 한 방에 껌뻑 넘어가서 이이의 단종된 단편집 &lt;불타버린 사람들&gt;을 헌책방에서 사서 읽었고, 지금 새로 번역해 나온 두 권짜리 장편 &lt;폭풍 한 가운데&gt;를 희망도서 신청해서 기다리는 중이다. 말이 필요 없다. 아직 화이트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리하여 고조선 때인가, 당나라 때인가 을유문화사가 찍은 두 권짜리 &lt;인간의 나무&gt; 헌책도 사 읽어보려 했다가 활자가 너무 작아 이미 찌든 시력이 받쳐주지 못해 그냥 보관 중이다. 조여청사모성설. 눈물이 앞을 가린다.<br><br>&nbsp; 열 권을 다 마쳤다. 그러면 뒷 번호에 배치한 작품들은 어쩌냐! 맞다 그래서 열 권에 딱 두 권만 더 보태자. 괜찮지?<br><br>11. 레일라 슬리마니, &lt;타인들의 나라&gt; <br>&nbsp; 2018년에 &lt;타인들의 나라&gt;라는 별 볼 일 없는 작품으로 공쿠르상을 받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대박을 친 작품. 작가 슬리마니 가계를 모델로 쓴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이 책 읽어보면 2부와 3부가 왜 아직도 번역 출판되지 않았는지 한숨을 멈추지 못하리라. 알자스-로렌 지역이라 하면 예전 교과서에 나온 알퐁스 도데의 &lt;마지막 수업&gt;의 무대인데, 여기 출신 어린 아가씨 마틸드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에서 징병당해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 아민과 결혼해 모로코에 가서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 당연히 이슬람 문화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되는데 이게 무척 재미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슬리마니를 다시 봤을 정도이니 한 번 읽어 보고 싶으시지?<br><br>12.&nbsp;쥴퓌 리바넬리, &lt;세레나데&gt; <br>&nbsp; 이 책을 얘기하지 않고 대산세계문학 200을 마치기는 정말 아쉽다. 인종, 종교, 피부색, 젠더, 핸디캡, 지위, 국적에 관한 모든 차별을 반대하는(것처럼 읽히는) 정서 안에서, 유대인 여성을 사랑하는 아리안족 노 교수의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독자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부르주아 출신의 좌파이고 진보적 성향의 작가는 이 막시밀리언 바그너 교수와 나디아의 사랑 이야기에 보태 진정한 문학에 관한 논의도 보태고 있으니,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나처럼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명저 &lt;미메시스&gt;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냉혹한 한파가 몰아치는 보스포루스 해변에서 미친 듯이 한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노 신사. 그 잔영이 쉽게 가시지 않을 듯.<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6/cover150/8932012504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65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실제와 비슷한 사춘기 좌충우돌 - [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3739</link><pubDate>Fri, 10 Jul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37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4392&TPaperId=173837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84/40/coveroff/k5129343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4392&TPaperId=173837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a><br/>펑탕 지음, 문현선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br/></td></tr></table><br/>.&nbsp; 1971년에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 아버지와 몽골족 어머니 사이에서 난 소설가, 시인, 부인과 의학박사이자 사모펀드 투자수석전무인 동시에 방송인, 서예가, 수필가까지 겸한다니 이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열아홉에 베이징연합의과대학에 입학해 8년만에 임상의학과 부인종양학 박사를 따고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에모리대학에서 MBA를 따고, 의사를 할까 경영을 할까, 고민 한 번 없이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맥켄지에 들어가 글로벌 매니징 파트너까지 승진했단다. 2014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1년간 자원voluntary의료를 떠났다가 다시 도미, 위에서 얘기한 사모펀트 투자수석전무를 하고 있다는데, 위키피디아 정보를 마지막 업데이트한 게 작년 크리스마스였으니 지금도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는 전무님으로 있을 것 같다.<br>FengTang, 2022<br>&nbsp; 이 책 &lt;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gt;는 애초에 2005년(으로 짐작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lt;주상&gt;이라는 중편소설을 써서 인터넷 주관 문학작품 공모대전에 네 명 수상하는 3등 상을 받은 것을 2010년에 장편소설로 발전시킨 책이다. 원래 무대가 되는 80년대 후반 베이징에 개발을 위한 철거 붐이 있어서 제목을 “철거” 어쩌고저쩌고 라고 지을 예정이었지만 출판사 언니 오빠들이 너무 평범한 제목이라고 해서,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았으나 행간을 보면, 그 언니 오빠들이 지어준 제목인 듯하다.&nbsp; 그런데 몰랐지? 중국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일단 제목이 심히 구려 책방 독자서평 하나 없는 비인기 책으로 등극, 2024년 10월 말일에 출간된 책이 2026년 5월 9일 현재 세일즈포인트가 123점에 불과하다. 즉 돈 내고 책 사 읽은 독자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봐도 독후감은 두 편만 뜰 뿐이다.&nbsp; 하지만 이 책, 괜찮다. 아, 미리 말할까? 나, 출판사 글항아리 사장하고 인맥, 지연, 학맥 기타 등등 관련 있는 거 하나 없고 하다못해 만원도 꿔준 거 없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다. 물론 인생 살면서 리비도가 가장 왕성한 시절, 성호르몬 과다분비로 교실에서 책상 모서리에 슬쩍 닿기만 해도 불뚝 발기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일종의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색다르다.<br>&nbsp; 이 독후감을 읽는 여성분들은 사춘기를 지나는 남자 청소년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는 줄 모를 것 같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열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를 시간적 공간으로 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는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데, 만일 그런 준비가 완비되신 분은 이 독후감과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 상 좋다. 실제로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풋풋한 남자 중고딩, 특히 중딩들은 아주 미칠 지경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우라질 사춘기를 또 겪기 싫어서라는 건 몇 번 이야기한 것 같다.&nbsp; (한 단락 통째로 검열, 삭제 판정)&nbsp; 남자들 인생 살면서 딱 그때는, 그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발휘되지 않는 투시력이 생겨 지나가는 모든 가임 여성을 한 번 척 보기만 해도 그냥 알몸이 훤히 보인다(이순원 작 &lt;19세&gt; 독후감 참조). 정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것도 모르고 청소년 소설에 여자애와 남자애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대개 아련하고 풋풋하고 상큼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추억이니 뭐니 하는데, 천만의 말씀. 이런 의미에서 펑탕의 제목이 드러운 소설 &lt;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gt;는 청소년 남자애들의 실제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br>&nbsp; 화자 ‘나’이자 주인공 추수이. 베이징판 8학군 가운데서도 으뜸인 중학교에 다니다가, 시험을 봐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을 바로 앞둔 시기까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제일 좋은 중학교가 경기중. 졸업하고 대부분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남는 인원을 다른 중학교 출신들이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입학하는 거였는데 딱 그거 생각하시면 된다. 추수이하고 친한 친구들도 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공한다. 걔네들 이름이 훗날의 성공한 영화감독 장궈둥, 크게 사업을 벌여 신흥 갑부의 반열에 올랐으나 자기 소유의 호텔에서 일찌감치 칼 맞아 세상 뜨는 류징웨이, 그냥 아버지 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여유롭게, 그래도 부자로 사는 덜 중요한 조연 쌍바오장.&nbsp; 여학생이 빠지면 섭섭하겠지? 추수이가 사는 동네에서 과거 100년간, 지역 10리 안팎을 통틀어 가장 예뻤던 엄마를 둔 주상. 5년 전에 상 받은 작품 &lt;주상&gt;의 주상이 바로 이 주상이다. 추수이가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막 헛갈려하는 애. 근데 시절을 지낸 내가 보기에 그건 사랑이야. 이 주상을 연모하는 애가 또 있으니 원래 주상의 옆자리에 앉았던 쌍바오장과 장궈둥 추수이는 자기가 주상 옆에 앉고 싶어 쌍바오장에게 동서양의 포르노잡지 두 권을 주고 기어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쌍바오장은 그 잡지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기는 부업에 나섰다가 훗날 학교에서 크게 벌점을 먹고, 잡지의 원천지인 추수이 역시 빠른 전학을 전제로 제적을 면하는 벼락을 맞는다. 그리고 장궈둥. 얘는 추수이가 주상을 좋아하는지 뻔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자기가 주상을 좋아하니 네가 걜 좋아하지 않으면 나하고 좀 엮어달라고 청탁한다. 그러니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추수이가 어찌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 하지만 주상은 장궈둥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추수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의 낮은 건물에 엄마하고 사는데, 추수이는 바람에 휘날리는 흰 바탕에 분홍 꽃무늬가 프린트된 주상의 팬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한다. 근데 그게 재미야? 아닐 걸? 그것도 일종의 애가 타는 그리움일 걸?&nbsp; 외모로 보면 주상보다 더 예쁘고 쭉쭉빵빵한 취얼. 추수이도 취얼을 좋아하지만, 그건 주상이 추수이의 사랑의 신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취얼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숙한 남자를 선호해서 중학교 다닐 때는 고딩 남학생과,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생과 사귀더니 훗날 무지하게 부자이며 늙어 꼬부라졌지만 뇌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있는 미국인과 결혼해, 계산대로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 큰 부자가 된다. 이후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의 왕자와 결혼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데 그건 당연히 이 작품이 끝나고 10년이 더 흘러야 한다. 일찌감치 몸과 마음의 사랑에 달통한지라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정기적으로 추수이의 방을 찾아와 몸의 갈증을 해소한다. 주상을 향한 추수이의 마음을 놀려 먹으면서. 그만큼 취얼도 추수이를 좋아한다는 의미겠지. 평생을 함께 할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br>&nbsp; 추수이가 중학교 다닐 무렵, 얘한테 최고의 인생 스승이 있었으니 쿵젠궈라는 이름의 늙은 건달. 말인 즉, 남자라면 일생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온 힘을 사라지게 하는데 그이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찾았으면 가서 해버려야 하는 거라고, 그게 패기이고 상남자라고 가르친다. 스승의 말씀을 결코 놓치지 않는 추수이는 결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상과 일생을 보내기로. 빵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우유부터 벌컥벌컥 들이켜는 거다. 늙은 건달 쿵젠궈야말로 추수이의 빠싹 말라붙은 삶의 한줄기 빛인 듯 섬겼단다.&nbsp; 쿵젠궈는 정말 건달 짓을 하고 살다가 이제 나이 들어 백수 상태이고 단칸방에서 형과 형수, 이렇게 세 명이 살다가 형수가 못 살아, 못 살아, 하는 바람에 무허가로 방을 하나 덧대 주었더니, 이게 웬일? 동네 중딩들이 모여 밤이 깜깜해질 때까지 존경하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는 거 아닌가.&nbsp; 이 아이들은 당연히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인다. 서로 마주치면 무조건 쪽수 많은 쪽이 이기는 건데, 지는 편은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복수혈전을 준비한다. 고딩 시절의 추수이, 그가 보는 앞에서 자가용에서 내린 대학생 남자 둘이 주상을 차에 태워 놀러 가려 하고, 주상은 싫다고 할 때, 추수이는 사이다병을 자기 이마빡에 퍽 부딪혀 깨버리고, 다른 사이다병으로 대학생 한 몀의 머리통을 으깨버린다. 뭐 이런 식이다. 시절이 80년대 중후반이었을 테니 이 정도의 폭력 행사는 중국에서, 비록 마오쩌둥의 큼지막한 사진이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더라도 그저 큰 일 없이 지나가버리던 무협시대. 그 시절을 견뎌낸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좌충우돌.&nbsp; 후진 제목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 없다.&nbsp; 내가 읽기로는 세계사나 곰 출판사에서 찍었지만 지금은 절판된 이순원의 &lt;19세&gt;가 훨씬 재미났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84/40/cover150/k5129343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84409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내기, 사기 대신 엽기 그로테스크 - [클로드의 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1813</link><pubDate>Thu, 09 Jul 2026 04: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818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737698&TPaperId=173818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28/coveroff/k7727376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737698&TPaperId=173818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로드의 개</a><br/>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제 교유서가에서 펴낸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선” 세 권을 다 읽었다. 취향에 맞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 있는 작가. 나처럼 취향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기, 도박, 사기, 엽기 이야기들.&nbsp; 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역자 가운데 한 명인 정영목이,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제자 박종윤, 손명희, 이혜정, 정해영, 최희영, 이렇게 다섯 명한테 작업을 시켰다는 점. 정영목 자신도 역자 제일 위에 이름을 박았으니 뭔가 작업을 하긴 했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 가지고 시비냐고? 지금 시비하는 거 아니다. 오해 말라. 눈에 띈다고 했을 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근데 스승과 제자 다섯 명의 문장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 참 잘 배웠네. 다만 좋은 스승한테 배웠으면 청출어람의 미덕을 보여야 하건만 마치 한 명의 글을 읽는 것 같아 좀 그랬다는 거다. 책 뒤에 습관적으로 싣는 “역자해설” 또는 “역자의 말” 같은 것을 달고, 그 속에서 어느 작품을 누가 번역했다는 표시를 왜 하지 않았을까? 아예 “역자해설” “역자의 말”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이거 큰 건 아니지만 조그만 반칙 아냐? 네 명의 제자들도 섭섭하겠네. 기껏 작업해 놓았더니 내가 무슨 작품을 번역했는지 표시도 안 해주고. 당연히 받았겠지만, 번역비는 두둑하게 챙기셨지, 들?<br>&nbsp; 《클로드의 개》는 로알드 달의 전매특허인 크고 작은 내기, 도박, 사기는 별로 없고 대신 그로테스크한 엽기 소설이 많다.&nbsp;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보면, 크게 《클로드의 개》라는 타이틀 속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있고, 따로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이 1953년 발표작이니 당시 출판 관행으로 보면 《클로드의 개》 다섯 편의 단편으로 책 한 권을 찍었을리 없지만, 그래도 요즘 독자는 혹시 그러했고, 여기다가 일곱 편의 작품을 보태 우리나라에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신경쓰지 마시라.<br>&nbsp; 《클로드의 개》는 주인공 가운데 좀 덜 주인공인 화자 고든과, 고든이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고용인이자 진짜 주인공인 클로드, 두 명이 자기들이 살고 이는 그레이트 미센든 주변에서 벌이는 일종의 도둑질, 사기도 있고, 동네 사람들이 저지르는 엽기도 있다. 끽 해야 달의 소설집 두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처음 읽은 달인 《맛》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워낙 감명깊어 달, 하면 기발한 내기와 도박 이야기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nbsp; 《클로드의 개》의 첫번째 작품 &lt;세계 챔피언&gt;은 도둑질. 달스럽다. 두번째 &lt;피지 씨&gt; 딱 이런 걸 기대했는데 사기fraud 그리고 사기 위에 또 사기. 역시 달스럽다. 그런데 세번째 &lt;쥐잡이 사내&gt;는 돈 걸고 내기해서 겁나게 큰 쥐를 깨물어 죽이는 사내. 이렇게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를 시작한다. &lt;러민스&gt;는 지미 씨가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이름이 났지만 술꾼인 러민스 씨를 건초 작업 중에 살해해버리고 건초 속에 숨겼다가, 날이 흘러 건초를 해체하는 작업 중 지미의 아들 버트가 건초 절단용 전기톱으로 이미 죽은 러민스 씨를 토막내는 이야기 역시 엽기. 아, 장소는 영국이다. 전기톱 나왔다고 B급 영화 &lt;텍사스 전기톱&gt; 연상하지 마시라. 마지막 &lt;호디 씨&gt;는 주인공 클로드가 애인 클라리스 호디의 아버지 집에서 결혼 승낙을 받는 촌극. 클라리스한테 장가만 들면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자기가 구상중인 혁신적인 아이템의 사업 이야기를 하는데, 그 빌어먹을 혁신 아이템이 낚시꾼들에게 미끼용 구더기를 길러 판매한다는 것.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나? 그저 뚜껑 절단한 드럼통 두 개와 썩은 고기 몇 덩이, 양머리 하나만 있으면 똥파리들이 알아서 알을 까고 토실토실한 구더기가 몽글몽글 기어다닐 거란다. 이건 코믹 그로테스크 맞지?<br>&nbsp; 그리고 《클로드의 개》 아래 붙인 일곱 단편도 거의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 작품이다.&nbsp; 갖난 딸이 분유를 통 먹지 않아 배배 마르기 시작하자 양봉업자 아빠가 로열 젤리를 먹여 아이가 가슴에 솜털이 돋는 등 점점 꿀벌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도 있고, 하여간 여러가진데, &lt;윌리엄과 메리&gt;가 제일 엽기였다.&nbsp; 외모에 자신이 없는 옥스포드 교수 윌리엄은 두뇌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다가 덜컥 암에 걸렸다. 길어야 몇 달 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친구인 랜디가 방문한다. 그리고 곧 고인이 될 환자를 살살 꼬드긴다.&nbsp; 죽으면 뇌에 인공심장을 달아 피와 산소를 공급해 보관하자고. 그러면 길면 4백년 정도 아무 삶의 고통 없이 당신의 지적 사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니 허락을 해달란다. 뇌에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 즉 볼 수만 있고, 말, 청각, 촉각 즉 신체적 고통, 감각 즉 정신적 고통 없이 유일하게 뇌에 연결되어 있는 눈을 통해 몇 백 년 동안 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한다.&nbsp; 윌리엄이 1950년대 보수적인 옥스포드 교수였던 만큼 아내 메리한테 완벽한 가부장적 독재를 펼쳤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기타 등등. 그래 자기 사후 처리에 관해 메리한테 서신을 통해 죽고 일곱째 날에 알게 해, 메리는 윌리엄이 지시한대로 의사 랜디에게 전화해 죽은 자기 남편 윌리엄의 뇌가 아크릴 세수대야에 담겨 동동 떠 있으며 눈알 하나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현장에 가서 직접 목격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겠어? 징글징글하니 정이 똑 떨어지겠지?&nbsp; 메리는 어땠을까? 안 알려드린다.&nbsp; 읽기로 했던 달의 세 권을 다 읽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더 읽는 일이 생길까? 있을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28/cover150/k7727376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12282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재미있지만 더 발칙했으면 좋겠다 - [우리의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9893</link><pubDate>Wed, 08 Jul 2026 04: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98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379&TPaperId=173798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6/coveroff/89364383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379&TPaperId=173798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사람들</a><br/>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02월<br/></td></tr></table><br/>.&nbsp; 박솔뫼. 데뷔 17년. 짧은 장편 &lt;을&gt;로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타 등단. 우와, 벌써 마흔한 살. 세월 빠르다. 또래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눈 여겨 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 &lt;을&gt;과 《사랑하는 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박솔뫼니까 이 정도면 팬을 자처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당신한테 추천하는 건 아니다. 독자마다 호오의 차이가 심할 것 같아서. 다행히 나는 딱 맞아, 특히 《사랑하는 개》가 내 취향이라 이이에게 좀 집중하게 됐다.<br>&nbsp; 《우리의 사람들》 표제작 &lt;우리의 사람들&gt;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 읽었다. 이 작품에 집중해보자. 첫 대목에 나오는 문장.<br>&nbsp; “사진작가가 주카이숲에 간다고 하여 모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일정은 새벽 두시에서 오후 여섯시까지였고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고 출발할 수 있을까 그 상태로 여섯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다들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냥 안 가기로 하였고…” (p.9)<br>&nbsp; 주카이숲에 따라가기로 했다가 그냥 안 가기로 한 사람은 화자 ‘나’의 친구들.&nbsp; 이어서 같은 문단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가 등장한다.<br>&nbsp; “나는 나대로 혼자 방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숲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를 마시다 커피를 마시다 쏟아지는 햇빛을 보다 그러나 친구들이 숲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p.9~10)<br>&nbsp; 이어서 ‘나’는 친구들이 들어갔다가 여차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깊은 숲인 주카이숲을 간 친구들을 연상 또는 상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만일 ‘나’가 부산 중구에 산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그랬다면 결혼을 일찍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애도 두 명”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nbsp; 다음 문단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을 온양관광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좋았다.”로 시작한다. 부산은 박솔뫼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장소. 온양도 서울, 부산 다음으로 박솔뫼가 애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부산 골목골목 거의 다 아는 것이 부산의 매력에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소설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산과 부산 지리, 부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nbsp; 《사랑하는 개》에 실린 &lt;여름의 끝으로&gt;에서도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는데, 만일 사람이 동면冬眠한다면, 하는 가정. 《우리의 사람들》에서는 두 번 나온다. 인간의 저 먼 조상들이 동면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추운 걸 견디기 힘들고 더운 여름을 좋아해서. 그럼에도 부산, 온양, 동면은 연이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 특별한 거치적거림을 주지는 않는다.<br>&nbsp; 화자 ‘나’가 친구들이 사진작가와 더불어 주카이숲으로 가는 상상을 하는 분량, 그러니까 ‘나’의 상상이 만만치 않다. H와 사진작가가 번갈아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카이숲을 향해 가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차를 멈추고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붉은 털을 가진 짐승을 발견한다. 늑대라는 말도 있고 들개, 여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지만 절대로 곰은 아닐 거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nbsp; 드디어 주카이숲에 도착해 깊은 숲 속으로 떠난다. 이때 친구 가운데 하나인 ‘하나’의 눈에 자꾸 붉은 털의 여우가 들어온다. 이게 정말 붉은 여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생각, 상상, 아니면 환각인지는 끝까지 모른다.<br>&nbsp; 그러니까 박솔뫼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을, 그 반대로 되었다면이라는 가정 또는 상상을 해서 마치 그게 진실인 양 스토리를 만들었다.&nbsp; 자신이 만일 부산에 살기로 결정하고, 정말 부산에 살았다면, 이라는 가정/상상도 재미있다.&nbsp;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를 아산에 있는 온양관광호텔에서 묵으며 아산시장에 들러 칼국수를 먹고(이 집 진짜로 유명한 집이다. 나는 안 가봤지만), 시장 안의 헌책방에 가서 책 구경한 다음에, 떡볶이, 튀김을 사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 일정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연극연출가 사쿠라이 다이조와 그의 극단인 “야전의 달” 멤버를 만나기 위해 일본 후지노에 갔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카이숲에 가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nbsp; 이렇게 막 헝클어진 구성의 작품을 읽다가 만일 독자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순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척 헷갈리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이게 진짜 박솔뫼의 매력이다.<br>&nbsp; 일본 후지노에 가면서 ‘나’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간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쓴 &lt;티보가의 사람들 1&gt;. 이 작품의 1권을 우리는 흔히 &lt;회색 노트&gt;라고 하고, 이 1권만 번역해 단행본으로 나온 것도 상당히 많다. 뒤 가르의 모든 작품이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어 번역물이 많다. 그러나 만일 &lt;티보가의 사람들&gt;을 읽으려면 1부만 읽고 치우지 말고 5권까지 다 독파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nbsp; 그런데 이 작품 &lt;우리의 사람들&gt;에서 &lt;티보가의 사람들 1&gt;이 어떤 스토리와 연결이 되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가져가서 다 읽지 못했으며, 작중 주인공 자크의 형 앙투안느(전편을 읽으면 당연히 자크 못지 않은 주인공이다. &lt;회색 노트&gt;에 국한하면 “주인공의 형”이 맞다)이 티보의 친구 다니엘의 어머니 테레즈 혹은 퐁타넹 부인에게 호감을 갖는 장면을 특히 강조한다.&nbsp; &lt;화색 노트&gt;를 읽는 독자들은 흔히 자크의 청소년기/사춘기의 열정과 방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여간 박솔뫼가 특이하기는 하다. 이 &lt;티보가의 사람들 1&gt;은 뒤에 붙은 다른 단편에서 &lt;회색 노트&gt;로 다시 등장한다.&nbsp; 내가 &lt;티보가의 사람들&gt;을 좋아해서 길게 썼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박솔뫼는 유난히 다른 작품과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그것과 연결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탐색하고 자기 주장을 한다. 이건 내가 전에 읽은 책에 국한해 말해 《겨울의 눈빛》의 한 단편에서 고리 원자로 사건에 관한 부산주민들의 불안을 묘사하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확실히 이런 모습은 내가 좋아했던 박솔뫼의 다분히 포스트모던한 초기 작품과 다르다. 즉 박솔뫼의 작품이 변하고 있다는 뜻. 그런데, 그런 작품은 다른 작가도 쓸 수 있고, 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이의 &lt;을&gt;과 《사랑하는 개》, 특히 《사랑하는 개》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기다리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6/cover150/89364383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60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거꾸로 선 대하소설 - [일광유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8013</link><pubDate>Tue, 07 Jul 2026 0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8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7457&TPaperId=17378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10/30/coveroff/89544474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7457&TPaperId=17378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광유년</a><br/>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08월<br/></td></tr></table><br/>.&nbsp; 열두 번째 옌롄커. 이제 물리기 시작한다.&nbsp; &lt;일광유년&gt;의 무대는 옌롄커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바러우 산맥의 깊숙한 산골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옌선생의 소설 속 시간과 장소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라기보다 무대가 되는 마을의 촌민들도 어째 비슷하다.&nbsp; &lt;레닌의 키스&gt;는 촌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 장애인. &lt;딩씨 마을의 꿈&gt; 마을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주사바늘을 사용해 매혈을 하는 바람에 거진 에이즈 환자, &lt;해가 죽던 날&gt;에서는 집단 몽유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lt;일광유년&gt;은? 주민들이 오랜 세월 물속 불소함량이 규정보다 17배 이상 높은 물을 마셔서 40세 생일 이전에 목구멍 막힘 현상이 발생해 조기 사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도 근대 중국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을 옌롄커가 바러우 산맥 속 가상 마을 산싱촌에 적용했던 거 같다.&nbsp; &lt;레닌의 키스&gt;, &lt;직렬지&gt;, &lt;사서&gt;는 1950년대의 극심한 한발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lt;일광유년&gt;에서 산골마을 산싱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시작한 전대미문의 한발을 극복하는 일과 주민들의 수명을 마흔 이상, 쉰, 예순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다.&nbsp; 작품의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lt;물처럼 단단하게&gt;의 가오아이쥔, &lt;작렬지&gt; 밍량, &lt;사서&gt;의 주인공 아이, &lt;레닌의 키스&gt;는 류잉췌. 이들 모두 출세 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이라면 눈이 뒤집힌다. &lt;일광유년&gt;의 쓰마란(司馬藍)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司馬小小)를 필두로 역대 산싱촌의 촌장들은 자신이 촌장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쇼를 다 한다. 쓰마란은 이럴 적부터 사랑해마지않던 연인 란쓰스 대신 현직 촌장의 비쩍 마르고 못생긴 딸 두주추이와 혼인한다.&nbsp; 그러니까 옌롄커의 바러우 산맥 속 작은 산골마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의 특징이 &lt;일광유년&gt;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인데, 옌렌커 소설 읽기에 열심이었던 독자는 바로 그것 때문에 &lt;일광유년&gt;이 중국 근현대사의 궁상스러움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읽혔다는 말씀.&nbsp; 또 있다. 옌롄커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작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거의 대부분, 예컨대 찬쉐 같은 골 아픈 포스트모더니스트와 츠쯔젠처럼 서정적 여성 작가들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소재와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한지, 내가 지금 옌롄커를 읽고 있는지, 류전윈인지, 또는 거페이나 위화, 쑤퉁인지 막 헷갈리는 거였다. 당연히 건국 이후 기근과 문화혁명을 소년기에 거친 영향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국 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인기있는 작품 좀 읽었다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제 물린다. 그리하여 젊은 중국 작가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관과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며, 옌롄커 시절의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필력을 보이고 있어 나름 부러웠다.&nbsp; &lt;일광유년&gt;은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1년, 1년이 뭐야, 한 2~3년 담고 있다가, 그래도 옌 선생인데 싶어 읽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옌롄커 소설의 종합선물세트인 줄은 몰랐고, 960쪽에 달하는 속칭 벽돌책이라 어느 날인지 모르게 보름에 한 번 희망도서가 쏟아져 틈새 독서로는 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후감 써 놓은 것도 많아 이 책을 비롯해 벽돌 또는 두 권짜리 장편도 읽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문제는 술이다. 술을 덜 마시니까 시간이 남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책만 파게 된다. 아무래도 꾸준하게 알코올을 들이켜야 책 읽는 것도 적당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nbsp; 이거 뭐야, 아직 작품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서론이 이렇게 길었다고? 좋은 얘기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시작해보자.<br>&nbsp; 역시 바러우산맥 속 깊숙하게 자리한 인구 2백명가량의 작은 마을 산싱촌. 우리말로 하면 삼성촌(三姓村)이다. 란, 두, 쓰마(藍, 杜, 司馬) 이렇게 세 성씨로 구성된 씨족마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촌장이 두과이즈. 이후 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로 이어진다. 즉, 두, 쓰마, 란 씨 집안에서 돌아가며 촌장을 맡았는데, 란바이수이 다음 촌장이 책의 주인공 쓰마란이다. 두씨 집안은 쓰마란의 윗대 두옌이 별 볼일 없지만 촌에서 기중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 촌의 상급 단위인 현의 주방장으로 진출해 이른바 공직에 오른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현과 산싱촌 사이의 통신원 역할도 하게 되어 촌 사람 입장에서는 촌장에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권세를 틀어쥐기 시작해, 그의 아들 두바이에게 통신원 자리를 물려주어 굳이 촌장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nbsp; 앞에서 말했듯이 상신촌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는 기근 탈출과 주민들을 마흔 살 너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nbsp; 최초의 처방은 두과이즈 촌장 시절에 쓰마샤오샤오가 얻어온다. 지나가는 길에 명 짧은 산싱촌에 거쳐 간 꼬부랑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그렇게 늙게까지 산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옛이야기로만 듣던 흰 수염의 산신령을 닮은 쪼글쪼글한 노인을 처음 보는 거라 몽땅 몰려나가 구경을 하고, 한 아이 쓰마란이 동네로 뛰어가 아버지한테 이를 전했다. 쓰마샤오샤오가 곧바로 노인을 쫓아가서 묻기를, “노인장은 어떻게 이리 오래 사십니까?” 흰 수염의 노인이 답하기를 “잘은 모르지만 집안 대대로 유채꽃을 키워 유채 나물, 잎, 유채기름을 늘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오.”&nbsp; 쓰마샤오샤오가 이 말을 촌장 두과이즈한테 전해, 유채꽃 심기를 권유했지만 두존장의 나이 벌써 서른여덟, 얼마 가지 않아 꼴딱, 죽어버린다.<br>&nbsp;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도 촌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과이즈의 딸과 혼인한 쓰마샤오샤오는 촌장이 되자마자 유채 심기를 독려했다. 음식이 약이고 독이다. 유채 열매와 기름을 먹기만 하면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은 물론이고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들판 가득 유채를 심게 했다.&nbsp; 그러나 몇 년 후, 거대하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바러우 산맥 일대는 물론이고 산둥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주식인 옥수수는 물론이고 유채까지 몽땅 거덜이 났다.&nbsp; 이때가 두옌의 말에 의하면 갑자년이라는데(p.762) 좀 이상하다. 20세기의 갑자년은 1924년하고 1984년이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허구같다. 중국의 메뚜기 습격으로 시작한 기근이 펄 벅의 &lt;대지&gt; 1부에서 보듯이 1920년대에 확실히 있었지만 &lt;일광유년&gt;의 시대적 배경하고는 맞지 않는다.&nbsp; 하여간 그리하여 유채로 만수무강은 다음으로 하고 당장 생존하는 것이 크고 큰 위협이라, 읽기 참혹한 장면이 마구 등장한다. 어린 아이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이 아이들이 굶어 죽어 까마귀 밥이 되고, 어른들이 까마귀를 잡아 포식을 해 크게 배탈이 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현의 화상병원으로 가 돈 많은 환자에게, 장가든 남자 어른의 허벅지 피부를 도려 파는 것 등등. 질린다.&nbsp; 쓰마샤오샤오는 결국 기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 죽음의 그림자가 덥쳐 서른 후반의 나이로 죽는다.<br>&nbsp; 이어서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는 촌민들의 조기 사망 원인을 땅의 악한 기운으로 자란 곡식으로 보고 400무畝(약 400마지기, 약 8만평)의 계단식 전답을 개간하려 한다. 근데 기근에 살아남은 촌민이 다 합해 백명 조금 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쓰마란의 꾀를 빌어 현의 루주임에게 별의 별 아부와 성접대를 통해 현 주민들을 대거 투입해 2백무 정도의 계단식 전답을 만들기는 한다.&nbsp; 그러나 개간한 땅에 심은 곡식을 먹어도 주민들은 여전히 마흔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 란 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감한다.<br>&nbsp; 마지막 촌장이 주인공 쓰마란.&nbsp; 쓰마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곡식이 아니면 물이다. 물을 갈아 마시면 마흔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믿었다.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쓰마란 촌장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럴듯하다.&nbsp;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쓰마 촌장은 산싱촌 남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자들을 모아 허벅지 피부를 팔게 했더니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도시 구경을 한 남자들은 촌의 수로 공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해 촌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 셋짜리 기와집을 올려버린다.&nbsp; 이에 낙담해 세월을 죽이다가, 서른아홉 살이 되어 곧 죽을 처지에 달했을 때, 다시 주민들을 소집해 인정사정없이 수로 공사를 재개한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첫사랑 란쓰스에게 땅에 고개를 박으며 부탁한다. 도시에 가서 인육장사를 해달라고. 인육장사? 매춘을 말한다. 이 장면도 옌롄커 세대의 인기있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해 질리는 건 마찬가지. 하여간 쓰스는 도시로 진출,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어 맹렬하게 몸을 팔고, 에초 자기와 약혼했던 촌장에게 돈을 보내 소규모 운하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폭탄 같은 것을 살 수 있게 한다.&nbsp; 가진 고생과 역경과 주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촌장 쓰마란의 나이 서른아홉살도 막바지에 이른 날, 드디어 수로 공사를 완공, 링인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떻게 됐을까? 안 알려드립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10/30/cover150/89544474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710309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비극도 청명하고 경쾌하게 파박거려 - [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6175</link><pubDate>Mon, 06 Jul 2026 05: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6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376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376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a><br/>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지도로 보면 파리 중심가에서 오른쪽 마른 주의 르페뢰쉬르마른에서 1972년에 태어난 편집자 겸 소설가. 2000년에 데뷔했다니 연륜이 짧지 않다. 문학상도 숱하게 받았고 특히 《한낮의 불운》으로 2024년 공쿠르 단편소설상을 받아 상금 10유로를 챙겼다.&nbsp; 단편소설 여덟 개를 실은 책. 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쿠르-단편소설상을 받을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치하고 치밀한 문장이나 특정한 주제를 던지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로 비극인데 그리 큰 비극도 아니고, 비극마저 경쾌하다.<br>&nbsp;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lt;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gt;을 보자. 원래 이름은 오귀스트 팔랑캥.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장거리 항해하는 선장, 스스로 자기를 선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장기 노선 파일럿이라 한 걸로 봐서, 그리고 오귀스트야말로 훗날 장거리 노선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다고 한 걸로 봐서, 선장은 아니고 그나마 중요한 뱃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한 번 항해를 나갔다하면 몇 달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느라 집을 비웠고, 이런 남편을 견디고 사는 여자도 그리 많지 않은 법이라서,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나라 잠비아로 날라버렸다. 그러면서 오귀스트를 데려갔느냐? 아니다. 그래 오귀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세계만방의 많은 도시에 있는 숱한 학교를 1년 이상 머문 적 없이 하여간 뭉개고 다녔다. 그래서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고착되어 오직 하나 큰 관심을 둔 건, 사물의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늘 작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별의 별 것을 다 녹음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nbsp; 장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오귀스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단편소설이라 그게 어떤 식인지는 말해드리지 않는다. 하여간 그랬고, 성인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장사 지냈으며, 이제, 여태 잠비아에서 산파학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아들 오귀스트가 열여덟 살, 성인이 된 만큼, 다시는 잠비아에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돈을 좀 보내주긴 했다. 조금이 아니라 적지 않은 현금을.&nbsp; 아버지가 가히 우화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음향기사 국가고시를 쳤다. 근데 떨어졌다. 우연히 오귀스트 팔랑캥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어 사실은 우리의 주인공이 합격했건만 합격처리가 이름 같은 작자한테 넘어가 이를 올바르게 돌려놓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그렇게 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우울증 비슷한 것이 도져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 등산객들과 술집에서 한 잔 하다, 불운의 여신은 결코 오귀스트를 배신하지 않아서, 잔뜩 술이 취해 오줌을 누기 위해 밖에 나가 묘지의 비석에다 몸을 기댄 순간, 묘석이 넘어지면서 오귀스트의 발가락을 짜부라뜨려 이 가운데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하여간 가지가지로 잘 안 되는 인간이다.&nbsp; 아버지 역시 주식과 채권을 약간 남겨주었다. 근데 아버지가 게을러 팔지 않았던 것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지금은 결코 작지 않은 돈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 돈과 어머니가 보내준 아프리카 돈을 합해 자신의 음향 스튜디오를 하나 꾸미려 마음먹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동산업체에서 가장 양심적인 중개인인 에바 코파. 딸과 살고 있는 돌아온 싱글이며 오귀스트보다 한 예닐곱 살 정도 많다. 에바가 오귀스트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한 섬 같은, 그럴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소개했다. 에바는 별로 돈이 많지 않다. 딸도 키워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적 부족으로 늘 쫑코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를 탁 보니까 에바 눈에 짠하게 보인다. 오귀스트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집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왜 에바 코파가 계약서 내밀기를 머뭇거릴까, 좀 의아할 정도.&nbsp; 에바가 마침내 표준 계약서를 내밀고 내일 만나서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한다.&nbsp; 우리의 오귀스트는 결국 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자기가 집을 본 날이 하필이면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음을, 원래대로라면 2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가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소음에 진저리를 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nbsp; 그러나 세상이 늘 그런 거라고 여기지 말자.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nbsp; “에바와 오귀스트도 장차 이 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몇 년 후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꽃가지 무늬가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br>&nbsp; 웬일로 단편소설의 결말을 다 알려주느냐고? 이유가 있지. 다음 순서의 단편 &lt;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gt;의 주인공이 이번에 에바 코파다. 운전면허 없이 사는 파리 여성. 그래 지하철 파업의 와중에, 지하철 파업인 줄 알았더니 이게 총파업이라서 버스 운전수들도 파업을 하는 바람에 극히 적은 인력의 대체근무자들이 평소에 비하면 아주, 아주 드문 운행 간격으로 운행하는 만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타고 집에 가는 에바 코파. 아직 앞에 실린 단편의 결말부처럼 꽃가지 무늬의 거실 소파에 앉아 오귀스트와 손을 잡고 무드까지 잡을 시절은 아니라서,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다른 승객의 가슴팍에 코를 문대야 한다.&nbsp; 어릴 적에는 포뮬러 원 경기장에서 깃발을 흔드는 레이싱 걸이나 풍선에 바람을 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결코 무대에 올리지 못할 희곡을 쓰는 덜 떨어진 극작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그와 헤어진 다음에 한 푼도 딸의 양육비도 못 받아 부동산 중개일을 해야 하는 처지. 원래는 술을 마시지 않던 에바는 남자를 따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낮에도 한 잔씩 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오전에도 마셨다. 신의 가호가 있어 남자와 헤어진 다음에 에바는 그 순간부터 술을 딱, 끊었다. 장하다, 에바.&nbsp; 이렇게 시작해, 더 어린 과거에 고사리를 연구하던 아버지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이 나오다가 드디어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척, 알겠지? 다음 순서에 실릴 작품의 주인공이 에바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하여튼 딸이 공부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는 것을 이미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알아챘다. 그래도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딸이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딸 스스로 자기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기만 하면 온갖 잡다하기만 했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 제법 맛있다는 걸 알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요리 특성화 학교, 그것도 파리에서 제일 좋으니까 세계에서도 굴지의 요리학교라고 알려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nbsp; 딸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자기는 마르그리트가 싫다고 ‘보브’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싫지 않거나 관심 없는 눈치다. 하다못해 아이의 빌어먹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리트건 보브건 간에 딸이 실습실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상급 남학생이 성추행 같은 쪽이 아니라, 도무지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 버릇을 고친다는 핑계로 동선, 즉 보브의 길을 막기도 하고 뭐 그랬는데, 이 보브가 참다 못해 귀싸대기를 날려, 그만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nbsp; 허, 참. 오귀스트도 그렇고 에바도 그렇고 어떻게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대신 뇌진탕이냐는 말이지.&nbsp;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책. 크게 바라지 않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주목할 것은 이야기 속 삶의 우중충함이 신록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 햇살처럼 파박거린다는 점. 다 제쳐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150/k2021378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4921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영국인은 언제나 정의로워 - [디미트리오스의 가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1068</link><pubDate>Fri, 03 Jul 2026 04: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710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483&TPaperId=173710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16/43/coveroff/89329124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483&TPaperId=173710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디미트리오스의 가면</a><br/>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03월<br/></td></tr></table><br/>.&nbsp; 1939년은 세계사가 한 번 휘까닥 뒤집힌 해이다. 원조 스파이물 작가 에릭 앰블러한테도 아직 전쟁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자기 인생에 획기적 일이 연달아 터졌으니 그중 하나가 이 작품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출간한 것이고, 둘째가 앞으로 19년을 부부로 살 여인과 첫번째 결혼을 했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가 몇 주 전에 독후감을 쓴 &lt;공포로의 여행&gt;을 탈고했다는 거였다. 왜 첫째가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이냐 하면, 이 제목은 영국에서 출간한 책의 제목이고, 미국에서는 &lt;디미트리오스의 관coffin&gt;인데, 이게 5년 후, 앰블러의 작품 가운데 세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해 앰블러는 남은 세월동안 적어도 먹고사니즘에 관한 한은 걱정 1도 없이 그저 열나 스파이 소설만 쓰기만 하면 되게 해주었다는 거였다.&nbsp; 우리나라에 앰블러의 작품 단행본이 네 권 나왔는데 &lt;공포로의 여행&gt;을 재미있게 읽어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읽은 지금, 이 정도면 앰블러는 그만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마침 내가 사는 도시의 모든 도서관에도 이 두 권 말고 다른 앰블러의 책이 없다.&nbsp; 전에 읽은 &lt;공포로의 여행&gt;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1939년 작품이니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집필한 작품. 아직 독일이 그렇게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를 악마 같은 체제인 줄 모르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전쟁이 터지면 틀림없이 그 동네에서 먼저 화약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리라는 건 거의 확실하게 예상했을 터. 그래 &lt;공포로의 여행&gt;에선 독일에서 파견한 악당이 독일의 스파이였으나,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의 주인공 디미트리오스는 스파이라기 보다 한 시절 스파이에 고용되어 동유럽(유고슬라비아) 고급 정치가에 대한 테러 같은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냥 악당이라고 봐야겠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1939년에 출간했으면 작품은 1938년 정도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이 책은 스파이 소설이라기보다 그냥 추리 소설이다.<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찰스 래티머. 영국의 작은 대학 정치경제학과 조교수이며 35세에 세 권의 전공 책을 출간한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쌓던 중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추리소설을 한 번 써볼까 싶어 &lt;피에 젖은 삽&gt;을 탈고해 출판사에 보냈더니, 에그머니, 이게 대박, 이어서 쓴 세 권의 책이 연달아 히트를 치는 바람에, 아하, 이게 돈이 되네, 싶어 그길로 교수 및 학자의 길을 때려치우고 다섯 번째 책의 탈고를 위하여 아테네로 가 다음해에 탈고했다. 아테네의 물이 맞지 않았는지, 글을 쓰느라 과로를 해서 그랬는지, 무엇보다 &lt;디미트리오스의 가면&gt;을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 분명하게 좀 아팠던 몸을 회복하기 위하여 증기선을 타고 더 남쪽에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로 갔다.&nbsp; 이렇게 작품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한다.&nbsp; 작품 속에는 무수하게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독자는 이 많고 많은 출연진에 과연 누가 끝까지 작품 속에 등장할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아쉽게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읽는 게 좀 피곤하다. 옛 왕족의 작은 궁전을 사 거기서 살며 시도때도 없이 파티를 즐기는 차베스 부인의 2박3일 파티에 초청받아 간 래티머. 그가 여기서 절대 정체를 알 수 없는 터키의 베후실력자이며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인 하키 대령을 만난다. 하키 대령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후속작 &lt;공포로의 여행&gt;에도 출연해 주인공이자 대포 엔지니어 그레이엄에게 정보를 주고 지원도 해주는 인물이어서 눈에 익다. &lt;… 여행&gt;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령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심지어 직접 플롯을 짜둔 노트도 있어서 그걸 인기 추리소설가가 좀 봐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래티머를 데리고 자기 사무실에 갔다가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희대의 악당으로 ① 터키의 무화과 포장 인부로 일하던 중 살인강도, ②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스탐볼리스키 총리 암살미수, ③ 터키 아드리아노플(현 에디르네)에서 케말 암살 시도, ④ 파리에서 마약 판매조직 결성 및 운영, 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크로티아인 살해 등의 화려한 전력을 갖춘 자다.&nbsp; 그런데, 날도 참 잘 맟추지. 이날을 딱 골라서 문제의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의 시신이 보스포루스 바다에 떠 있는 것을 지나던 어선이 발견해 신고했던 거다. 그러면 이미 디미트리오스의 상황은 끝난 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죽으면 그에 대한 모든 혐의와 수배와 기소 같은 건 종치는 법이니까. 하지만 하키 대령은 희대의 악당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처지. 자기가 그를 담당하는 경찰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파일을 보관하던 막후 실력자로 그의 시신을 직접 한 번 봐야 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려? 여기서 래티머가 하키 대령을 따라 디미트리오스의 시체 구경을 하지 않으면 소설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아는 래티머는 바득바득 대령을 좇아 시체공시소로 가 죽은 사람을 구경한다.&nbsp; 누구도 시신의 눈을 감겨주지도 않았고, 입도 조금 벌리고 있는 시신은 두툼한 입술과 주름진 처진 뺨을 지녔으며 외관만 가지고는 얼굴 뒤의 영혼을 판단할 수 없었다. 칼로 옆구리를 심각하게 찔려 죽었으며 후줄근한 그리스제 양복 속에 디미트리오스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nbsp; 훗. 슬쩍 흘러나오는 웃음.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하키 대령이 양복 속에서 그의 신분증이 나왔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 이 시체가 디미트리오스라고 단정하는 게 우습다. 대령이 래티머한테 보여준 파일에는 굉장히 흐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사진 한 장만 들어 있을 뿐인데 신분증이라는 종이 한 장 보고 모든 사건을 종결한다고? 하긴 뭐 90여 년 전에 쓴 추리소설이니까.&nbsp;&nbsp; 그럼 문제의 디미트리오스는 언제 나오느냐고? 이 책이 모두 15장으로 되어 있는데 13장의 마지막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당연히 전혀 다른 외모, 무화과 포장 인부하고는 완벽하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손에 모자를 들고, 세련된 검은색 프랑스 옷을 입고, 윤기 흐르는 흰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으로 꼿꼿이 서 있는 고결한 인간의 모습”(p.344)으로.<br>&nbsp;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럼 작가 찰스 래티머는 왜 이미 죽은, 죽었다고 완전하게 인식한 디미트리오스의 지나간 흔적을 찾게 되었을까? 그의 직업은 추리소설 작가. 하지만 소설은 완벽하게 작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 실제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흉악범죄와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걸 번히 아는 래티머는 이번에 자신이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탐정이 되어, 이미 죽었으니까 위험이 별로 없는 악당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볼 생각을 한다.&nbsp; 근데 이것도 좀 어이가 없는 것이, 래티머는 다섯번째 추리소설을 탈고하기 바로 직전, 이걸 가까운 시간 안에 완성하여 런던의 출판사로 보내야 한다. 유명 작가라도 웬만하면 출판사가 원한 마감 시한은 맞춰주어야 하는 법이라서. 다음으로,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이라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스미르나, 소피아, 아드리아노플 등을 증기선을 타고 다니려면, 그것도 1등실만 써야 가오가 올라가는 위대한 영국의 작가가 과연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해야 할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래티머가 가고 싶은 곳에는 자신이 직접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따라서 첫번째 방문지인 스미르나에 무턱대고 도착한 래티머는 현지에서 &lt;공포로의 여행&gt;처럼 러시아혁명 때문에 터키로 집단 망명한 백군 러시아인 코페이킨과 마찬가지로 백계 러시아인 출신 통역사 표도르 미시킨에 거의 완전히 의존한다. 다음 행선지인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는 프랑스 신문사 소속인 그리스 사람 마루카키스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추천장 한 장.&nbsp; 여기에 한 명 추가. 스미르나에서 소피아까지 가는 야간 침대열차에서 만난, 아마도 폴란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적불명인 50대 볼품없는 늙은이 피터스. 이이가 등장하자 나는 조금 긴장했다. 혹시 이 사람이 디미트리오스가 아닐까? 정답은 그의 모습과 연락처를 알고 있는 예전 디미트리오스의 수하. 디미트리오스가 파리에서 크게 마약 장사를 하고 있을 때, 터키에서 대량의 마약을 관에 실어 들여온 인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이 &lt;디미트리오스의 관&gt;이 된 것.&nbsp; 이제 할 말을 거의 다 했다. 조금 더 하면 틀림없이 스포일러가 될 것.&nbsp; 등장인물이 많다. 그리고 숱하게 가명을 쓴다. 인물마다 하여간 무진장 스토리가 많다. 작품 전개에 별로 관계가 없을 듯해도 할 말은 다 하고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읽다가 막 신경질날 때가 많다. 그걸 참고 읽을 만하지도 않다. 왜 이 책이 영미 독자한테 인기를 끌었을까? 이게 다 의심스러울 정도.&nbsp; 독자서평에 좋은 평가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읽기에 그랬다는 말이니 허접한 독후감 하나 달랑 읽고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1도 없으리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16/43/cover150/89329124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616435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아름다운 아가씨 벨라 돈나 - [아트로파 벨라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9242</link><pubDate>Thu, 02 Jul 2026 04: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92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82X&TPaperId=173692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4/coveroff/895759082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82X&TPaperId=173692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트로파 벨라돈나</a><br/>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박민수.김은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09월<br/></td></tr></table><br/>.&nbsp; 에르펜베크는 서늘하다. 한겨울 산길을 혼자 차를 운전해 간다. 이리저리 굽이길이 많아 속도를 내는 건 자살행위와 비슷하다. 짧은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연속되더니 이번에는 한참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했더니 그 자리가 곧바로 내리막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달이 훤했던 것 같지만 숲이 깊어 달빛이 닿지 않아 상향등을 켜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갑작스러운 회전 길. 그나마 완만한 우회전이라 그저 가던 대로 간다. 그러다 도로 오른쪽에 허연 물체가, 흰 옷을 입은 여성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사납게 와락 달려들 것 같다. 얼른 속도를 내 지나치며 슬쩍 보니까, 비닐 하우스에서 찢어져 나온 비닐의 제법 큰 조각이었다. 급하게 물체를, 흰 옷 입은 여성(처럼 보였던 것)을 피하려다 하마터면 작지 않은 사고를 낼 뻔했다.&nbsp; 이런 경험은 한 번씩 해봤을 터. 이 책을 읽은 감상하고 비슷하다. 그렇게 서늘하다.<br>&nbsp; 열 개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짧은 해설까지 150쪽의 부담없는 분량이지만 절판이다. 도서관에도 없다. 지난 달에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lt;모든 저녁이 저물 때&gt;를 하도 인상 깊게 읽어 그날로 헌책방 뒤져 2년 만에 내돈내산했다.&nbsp; 이이의 이름 Jenny Erpenbeck를 우리말로 “제니 에르펜베크”라고 썼으면 지금 절판된 구간이고, 신간은 “예니 에르펜베크”라 쓴다. 안 그러겠지만 혹시 헛갈릴까봐 짚고 간다.&nbsp; 이 책으로 이제 예니 에르펜베크의 우리말 번역 단행본은 다 읽는다. 나머지 작품들도 빨리 번역해 나왔으면 좋겠다.<br>&nbsp; 표제작 &lt;아트로파 벨라돈나&gt;는 식물의 학명이다.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 벨라돈나belladonna라고 부른다. 가지과 식물이라 가지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왜 “아름다운 여인”이냐 하면 열매에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독소가 있어서 열매를 먹으면 공동이 확장되어 눈이 크게 보여서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느낀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더 많이 먹으면 위험하고, 그래도 더 많이, 더 많이 꾸역꾸역 먹으면 다른 모든 음식물처럼 배 터져 죽는다.&nbsp; 나는 오빠가 좋다. 오빠?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아줌마의 아들이다. 이른바 엄친아. 생일이 조금 빨라 편의상 오빠라 한다. 그냥 ‘형제’ 개념이다. Bruder. 어려서부터 서로 알고 살았다. 온갖 스토리가 다 있다. 한 싱크대에서 한 엄마(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두 아이를 목욕시킨 것부터 시작해 늘 같이 놀고, 밥 먹고,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아주, 아주 가끔 다투었고,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다. 그러면서 오빠가 진짜 형제Bruder 같은 순간도 있었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남매사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야릇한 페로몬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모르는.&nbsp; 아이들이 점점 커져 이제 하이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캠핑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와 엄마의 친구 아줌마는 나와 오빠, 단 둘이서 국경 넘어 캠핑 가는 것을 허락했다. 이제는 성접촉의 권리를 인정한 모양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국경 역에서 만나기로 한 둘. 가보니 오빠는 벌써 나와 있다. 둘은 국경을 넘었다. 캠핑장에 도착했고, 텐트를 치고, 숲에 밤이 와 잠을 잔다는 명목으로 텐트 안에 들어와 각자 자기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nbsp; 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반 아이들의 경험담을 충분하게 들어서 구체적인 순서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두 사람이 그런 절차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건 직접 해봐야 아는 걸까? 하여간 명목상 둘은 잠을 자는 상태를 시작했다. 결코 잠들지 않은 잠자는 상황. 시간이 갈수록 잠은 오히려 저 바깥 쪽으로 물러가기만 한다. 그러나 오빠와 나 사이의 아주 좁은 공간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꺼운 장벽이 쌓이는 것 같다. 오빠 역시 숨소리만 간간히 낼 뿐 깨어 있다는 조금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빠도 내가 말짱한 정신으로 깨 있다고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nbsp; 그렇게 날이 밝았다. 흔히들 말하는대로 손만 잡고 잔 것도 아니고, 손도 안 잡고 그냥 잤다. 그런데 오빠가 이상하다. 탁, 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우리한테는 휴대전화도 없다. 그래 다른 캠프에 가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구조요청을 했고, 엄마의 친구 아줌마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잘 하면 딱지를 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나는 여전히 오빠를 사랑한다.&nbsp; 몇 주가 지나고, 엄마는 도무지 언짢은 소식을 들려준다. 오빠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거다. 말도 안 돼. 근데 말이 되는 것 같다. 들은 말로 찢어진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건만 그렇게도 예쁘단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속살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모르긴해도 포스가 남다른가 보다. 엄마 심부름으로 엄마 친구 아줌마 집에 갔을 때, 오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빠 방에는 오빠 말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오빠의 애인도 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을 때는 속상했다.&nbsp; 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입구에 엄마 친구 아줌마와 오빠, 오빠의 애인이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오빠의 애인이 참 예뻤다. 나도 못난 축은 아니지만 오빠의 애인하고는 비교하기 민망하다. 엄마는 오빠네 가족을 집으로 불러 저녁 한 끼를 먹기로 했다. 당연히 오빠의 애인도 오겠지.&nbsp; 그녀도 왔다. 우리집은 숲에 면했고, 일정 구간은 우리 땅이다.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기 전에 숲으로 들어갔다. 야생 블랙베리와 사과를 따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잘 먹는다. 살구도 따 주었더니 역시 잘 먹고 씨앗만 툭 뱉는다. 나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벨라돈나를 하나 따 주고 먹어보라 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먹었다. 분명히 먹었다. 나는 벨라돈나를 따고, 따고, 또 따서 치마 가득 건네준다. 다 먹으라고. 다 처먹고 죽어버리라고.<br>&nbsp; &lt;아트로파 벨라돈나&gt;가 제일 재미있지는 않다. 독일 여성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참 매력적으로 쓴다. 일찍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유디트 헤르만도 있다. 예니 에르펜베크도 헤르만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전혀 다른 내용의 단편을 쓴다.&nbsp; 근데 아쉬운 건, 이 책의 역자가 두 명이라는 거. 박민수와 김은정.&nbsp; 누가 감히 이들의 독일어 실력을 입에 올리랴.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작품이 다 균일하게, 즉 비슷한 품질로 읽히지 않는다. &lt;A&gt;는 원래 작가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의 번역문, 즉 우리말이 그런지 여간해 읽히지 않아 나로 하여금 버벅거리게 만든다. &lt;B&gt;는 그렇지 않고 매끄럽다. 분명히 에르펜베크 또는 두 명의 역자, 아니면 독자, 이렇게 네 명 가운데 한 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까? 어쨌거나 참 맵씨있는 작품 모두를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쉽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내 탓이겠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4/cover150/895759082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842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죽음과 변비의 소년기 - [그날 저녁의 불편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7392</link><pubDate>Wed, 01 Jul 2026 0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73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9992&TPaperId=173673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72/64/coveroff/89349799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9992&TPaperId=17367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날 저녁의 불편함</a><br/>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br/></td></tr></table><br/>.&nbsp; 1991년생 네덜란드 작가의 데뷔작. 이이는 데뷔작으로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남부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독실한(것처럼 보이는) 개혁파 개신교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네덜란드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 했다가 시,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해 중도에 때려 치웠다고 위키피디아-영어판에 나온다. 소년 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져 논바이너리를 선언했단다.&nbsp; 그날 저녁의 불편함? 나는 이 책을 읽는 게 불편했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이 좀 우울하다.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는 화가 고흐의 초기작품에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게 많은데 &lt;감자를 먹는 사람들&gt; 같이 좀 음울한 분위기의 색상과 피사체, 그게 사람이 됐든 물체가 됐든 간에 하여간 우울하다. 이 책은 화자인 주인공 ‘나’ 야스 뮐데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바로 전 시기까지의 소년기의 한 시절, 2~3년 간을 시간적 공간으로 하고 있으나, 야스가 처절하게 앓고 있는 변비처럼 답답하고, 뭔가 마음에 걸려 묵지근하고, 간혹 콱콱 얹힌다. 그러니 데뷔작이면서 다른 문학상도 아니고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덥석 미끼 물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라. 아하, 그러고보니 부커-인터내셔널은 이것처럼 좀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좋아하나비여? 고기 안 먹겠다는 딸 입을 억지로 벌리고 탕수육 한 조각을 쑤셔 넣는 아빠 같은 거.<br>&nbsp; 이야기의 시작은 화자 야스가 열 살 때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벌어진다. 야스는 좀 더딘 아이였다. 학교 담임도 이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린 듯했다. 하긴, 시계보는 법을 익히는 데만 1년이 걸렸으니 사실 야스 본인도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숫자만 나왔다 하면 정신 헷갈리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nbsp; 이 뮐데르가家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 레이네펠트네 가족보다 훨씬 더 진지한 개혁파 개신교 집안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가 권장하는 책은 딱 한 권, 성경 가운데서도 특정 파 판 성경이 유일했다. 당연히 일요일이면 가족 모두 잘 차려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했고, 거의 모든 일상에 성경”말씀”은 인용했다. 이건 가족 모두 마찬가지다.&nbsp; 부모는 순서대로 아들-아들-딸-딸을 두었는데 각각 맛히스, 오버, 야스, 하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큰오빠 맛히스. 맛히스? 거 참 재미난 이름일세. 이렇게 휙 넘어갔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마티스”를 굳이 “맛히스”라고 우리말로 쓴 거 같다. 역자 ‘아밀’이 좀 재미난 사람이긴 하다. 맛히스. 맛히스. 그것 참.&nbsp; 하여간 맛히스 오빠가 야스를 잘 돌보았던 모양이다. 야스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 구성원이 맛히스 오빠였으니. 큰 키에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농사와 목축을 업으로 하는 집에서 벌써부터 제 몫을 단단히, 단단한 수준을 너머 대단히 단단하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언필칭 집안의 기둥감. 공부도 제법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스케이트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이번에도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시합에 나갈 예정이다. 호수에서 벌어지는 20마일짜리 경주가 출전 종목.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올해 연도인 ‘2000’이 박인 금도금 메달을 준다.&nbsp; 맛히스가 야스한테 말한다. “오늘은 호수 건너편으로 갈 거야. 쉿, 이건 비밀이다.” 하고는 야스만 보면 늘 짓는 다정한 미소.&nbsp; “나도 가고 싶어.”&nbsp; 맛히스가 말한다. “네가 더 크면 데려가줄게.”&nbsp; 이 대화를 읽는 순간, 독자는 짐작한다. 뭔가 큼지막한 게 있겠군. 호수에서. 특히 호수 건너편 쪽에서. 어쨌든 오빠는 야스한테 손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호수로 가고, 이날 손인사의 기억은 두고두고 되풀이해 떠올릴 것이란다. 그것 봐, 내 뭐랬어.<br>&nbsp; 여기서 하나 더.&nbsp; 야스는 토끼를 키운다. 이름도 있는데 뭐 소개할 정도는 아니고, 하여간 자기를 두고 혼자 스케이트를 타러 간 오빠가 좀 밉다. 나한테 허용되는 스케이트 얼음은 축사 뒤편의 좁은 두엄 배수로뿐. 열살 나이가 애매해서 그렇다. 호수로 가기엔 어리고, 두엄 배수로 가기엔 쪽팔리고.&nbsp; 야스의 토끼가 클 만큼 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식탁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대신 올릴 칠면조도 없으니 야스는 불안하다. 내 토끼, 내 토끼. 그래서 하느님한테 기도한다.&nbsp; “하느님, 내 토끼 대신 맛히스 오빠를 데려가시면 안 될깝쇼?”&nbsp; 그래, 소설에서 불길한 소원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법. 맛히스 오빠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압도적인 속도로 추격집단과 까마득한 차이가 날 정도로 선두를 질주했으면, 평소 화물선이 다녀 빙질이 무른 호수 건너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야스의 소원대로 된 거지만 야스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맛히스 오빠는 다음날 찬 시신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옆집 린 아주머니에게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를 좀 없애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했고, 대가로 시장에서 산 바삭바삭한 크리스마스 비스킷 전부와 라이스 푸딩, 아빠가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 그걸 묶은 80미터짜리 실뭉치까지 모두 옆집에 주어버렸다.&nbsp; 야스는 말한다. 이때부터 공허가 시작되었다고. 맛히스 오빠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냄비와 텅 빈 샐러드 통 속에 담긴 채 떠나가버린 이틀 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nbsp; 오크 관에 담긴 오빠를 보며 동생 하나가 속으로 말한다.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다.&nbsp; “자, 이만하면 됐어. 장난 그만 쳐, 오빠.”&nbsp; 청바지와 평소에 제일 좋아했던 스웨터를 입은 채 오크 관 속에 담긴 오빠는 그렇게 묻혔다.<br>&nbsp; 가족의 상실은 남은 자에게 당연히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이 집도 그랬다. 특히 부모에게. 보통 자식을 잃은 부부는 자주 거칠게 싸우고 많은 부부는 이혼을 선택한다. 자식 상실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려 손톱을 세우다가, 갑자기 자기 잘못인 것 같은 진짜 고통의 시간을 서로가 위안해줄 여유가 없어서.&nbsp; 이 가정에는 남은 삼남매가 있어 부모가 갈라서진 못해도 이후 야스-하나가 보기에 일체의 피부 접촉도 없고 부모간 “짝짓기”도 없다.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처럼 보여 날이 갈수록 여위기만 한다. 그리고 주인공 야스와 남은 오빠, 맛히스 오빠하고 비교하면 체격과 힘은 보잘것없지만 성격이 거친 오버 오빠의 주변에 자잘한 죽음이 생긴다. 야스가 열살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nbsp; 오빠가 키우던 기니피그도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여서 냄새가 나기 전까지 오빠 방에 숨겼다가 묻었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간 많은 동물이 죽는다. 이 죽음들에 오버 오빠와 야스가 개입되어 있다.&nbsp; 야스는 지독한 변비로 고생한다. 아빠가 야스를 엎드린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라 하고, 야스의 항문에 초록색 비누 조각을 굵은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네덜란드의 민간요법인 모양이다. 그래도 여간해 똥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여기까지만 하자.&nbsp; 죽음과 배변, 사춘기를 앞둔 시기에 맞게 짝짓기와 2차 성징의 발현 등에 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맛히스 오빠를 상실한 가족을 덮치는데, 어쩌면 이보다 더 엄청난 시련까지 몰려온다.&nbsp; 구제역.&nbsp; 집에서 신경 써야 하는 가장 우선순위. 수백 두에 이르는 소들을 일시에 집단 살처분해야 하는 참담을 당해야 한다. 그렇게 당했다. 오버 오빠는 항의의 표시로 송아지 한 마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버렸다. 그러나 방역원들은 모른 척 소의 머리에 충격총을 쏘고 죽었거나 덜 죽었거나를 가리지 않고 트럭에 싣고 떠났다.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았겠지.&nbsp; 죽음, 죽음,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르고, 또다른 죽음은 대규모 살상을 불렀다.&nbsp; 과하게 우울하다. 죽음과 변비라니.&nbsp; 흠. 이렇게 써야 부커상을 받는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72/64/cover150/89349799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72649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올해 상반기 읽은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link><pubDate>Tue, 30 Jun 2026 05: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guid><description><![CDATA[.<br><br><br>&nbsp; 올해 상반기엔 몸이 한 번 훅 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술을 좀 줄였습니다. 술을 줄였더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요. 덕분에 책을 더 읽게 되더군요.&nbsp;&nbsp; 틀림없이 권여선의 책은 오늘 다 읽을 것이니까, 올해 상반기 까지 모두 142권, 4만8천7백 페이지를 읽게 됩니다. 읽다보니 연초에 마음먹은 대로 두꺼운 책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nbsp;&nbsp; 부러워하지 마세요. 생업이 있잖습니까. 위 표는 생업이 끝나 이제 가진 거라고는 여유밖에 없는 사람의 취미생활 내력일 뿐입니다. 오늘은 또 반 년을 지운 기념으로 술 한 잔 해야겠네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30/pimg_63918394613881046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72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가족이라는 구체적인 지옥 - [겨우 존재하는 인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693</link><pubDate>Tue, 30 Jun 2026 0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3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363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off/89984548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54866&TPaperId=17363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겨우 존재하는 인간</a><br/>정영문 지음 / &(앤드) / 2024년 07월<br/></td></tr></table><br/>.&nbsp; 정영문은 &lt;어떤 작위의 세계&gt;로 처음 읽었고, 책을 놓자마자 이이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작가. 그래서 2년 후에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을 사 읽었다. 이후 늘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어찌 더 찾지 않았던 이. 1996년에 장편 &lt;겨우 존재하는 인간&gt;으로 등단했다면, 데뷔 때부터 나하고는 인연이 그리 가깝지 않았을 사람이다. 1996년이면 국제통화기금발 외환위기 바로 전, 나라 전체가 국제화, 세계화 광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던 때지만 정작 회사원들은 쥐꼬리 만한 추가근무수당 받으며, 때로는 그것도 없이 간혹 회식 한 번으로 만족한 척하면서, 밤 열 시까지 하는 일도 없으면서 사무실에서 퇴근도 하지 못하고 빌빌거릴 때였는데, 그렇다고 구석에 짱박혀 책을 읽을 수도 없었으니 정영문이라는 앞으로 대단할 작가가 데뷔를 했는지 어땠는지 알 게 뭐람, 하던 시절.&nbsp; 하여간 &lt;어떤 작위의 세계&gt;와 《검은 이야기 사슬》을 읽었으면 운 좋게도 (아직 절판되지 않은) 정영문의 최고 유명작,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상문학상을 받았으면 그냥 유명작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하여간 찾아 읽을 수 있는 유명작은 다 읽은 셈이어서 그랬을까?<br>&nbsp; 이제 이이가 혈기방장하던 스물여덟 살 때 발표한 데뷔작, 장편소설 &lt;겨우 존재하는 인간&gt;을 읽었다. 여태 절판상태로 있다가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은 책인데, 나도 참, 2024년 7월에 출간한 걸 여태 몰랐다.&nbsp; 작품의 화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니’.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의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으니 주인공 ‘나’는 스물여섯에서 일곱 정도의 젊은 사내로 봐도 좋겠다. 남자의 경우 스물여섯에서 일곱이면 대학을 막 졸업해 어디 취직을 했거나, 쉬고 있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갔다 와서 2~3년차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일 터. 그러니 아직 삶에 익숙하다고 보기는 힘들 때였을 것이다.&nbsp; ‘나’의 아버지는 20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 법원에서 (판사가 아니라 법정 서기 신분으로) 평생 일하다 정년퇴직 후 뇌졸중과 치매를 앓고 있고, 어머니는 당시의 어머니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전업주부였고, 지금(1995~96년)은 병자 남편을 수발하는 요양보호사 겸 가정주부이다. 내가 굳이 괄호를 치고 1995년~96년을 강조한 건, 책을 읽는 시각을 지금 기준이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읽어도 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나’의 전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뜻한 바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게 염증이 나고 권태스러워서 학교를 때려치운 후, 그동안 번 돈으로 다세대주택 하나를 전세로 얻었든지, 어차피 오늘 내일 하는 아버지의 돈을 엄마가 뒤로 빼 주어 샀든지, 작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 먹고사니즘은 전적으로 엄마가 보내주는 후원금에 의지한다.&nbsp; 후원금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어머니들처럼 한달에 한두 번 정도 아들 사는 연립주택에 찾아와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 더러운 아들 집구석을 깔끔하게 대청소해주고, 이젠 먹지 않아 안 해오지만 전에는 온갖 반찬거리도 바리바리 싸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아주고는 했다. 당연히 여간해 갈아입지 않아 뻣뻣하게 풀먹인 듯한 팬티 등 속옷 일습도 깨끗하게 빨아 빨래걸이에 널기까지 해주었다.<br>&nbsp; 자식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 부모한테 원인이 있다. ‘나’는 어릴 때 학교 성적이 조금 좋았던 듯하다. 그래서 판사가 아닌 법원서기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법원서기가 아니라 판사 신분의 법원 공무원으로 평생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이면 날마다 김칫국물을 벌컥벌컥 마셨겠지. 하지만 ‘나’는 공부보다 예능쪽, 이를테면 피아노 연주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재능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이 미국의 저 유명한 문필가 커트 보니것의 경구:&nbsp; “부모를 미치게 하고 싶은데 게이가 될 용기가 없다면 예술계로 진출하라!”&nbsp; 이 말 대로 예술을 하기로 결심하려는 것 같아 피아노 레슨을 단칼에 중단시켰으며, 그래서 ‘나’는 이후 살면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게 되었으니, 세상에 남은 건 그저 따분한 일과 지루한 일과, 뭐 둘 다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권태뿐이었다.&nbsp; 그리하여 ‘나’의 비행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을까?&nbsp; ‘나’가 세상에 나온 기념으로 아버지가 직접 심은 등나무 줄기도 제법 튼실해진 ‘나’의 나이 열네 살 때, 아버지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등나무의 밑둥을 잘라버리고 그 위에다 휘발유를 들이부어 등나무를 기어이 말려 죽인 일이 있다. 막 극성의 사춘기를 달리고 있던 ‘나’는 이 의식을 행함으로 사실상 부모와의 끈, 저 예전 탯줄로 이어지기 시작한 지긋지긋한 끈을 딱 잘라버렸을 지도 모른다.<br>&nbsp; 하여간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하고, 평론가 김경수가 쓴 해설에 의하면 잠깐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때려치운 이후에 ‘나’는 도심에 새로 조성된 시립공원의 한쪽 구석의 벤치에 앉아 있다. 6월의 아침.&nbsp;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자의 삶과 권태. 그러나 노숙인으로 대표하는 다른 무위자들과 다른 것은 언제나 엄마가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 크지 않은 연립주택에서 나쁘지 않은 먹을 거리로 배를 채우며, 꾀죄죄하지 않은 의복을 걸치고 산다. 다만 하는 게 없을 뿐. 이때 “하는 게 없다”는 건 다분히 독자 같은 보통의 사람이 보는 시각이요, 겨우 존재하는 사색과 권태와 우울과 절망의 대가인 ‘나’의 눈에는 참 여러가지 현상이 눈에 보인다. ‘나’ 자신부터 그렇지. 여름 아침에 무료하게 따사로운 기분과 평화를 느끼는 기분. 이게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순수한 은총인가 말이지. 근데 한편으로, 굳이 ‘나’한테까지 은총의 빛을 이렇게 아낌없이 쏟아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하는 마음도 든다.&nbsp; 사물은, ‘나’말고 보통의 인간은 찬란하다.&nbsp; 일요일 아침이었던 모양이지? ‘나’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두 여자 아이. 틀림없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존재한다. 가까운 곳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는 비둘기들이 후두염 환자들이 내는 목소리 같은 방자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두렵게 한다. 비둘기는 ‘나’를 두렵게 하는 얼마 안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나’는 지나가는 사람과, 공원에 오기 전에 본 아스팔트 도로 중앙선 근처에서 메마른 피와 엉겨붙은 털뭉치로 존재하는 한 시절 살았던 포유동물에 관해 생각하고, 줄을 맞춰 뭔가를 잔뜩 지고 바쁘게 이동하는 개미떼를 관찰한다. 절반이 잘렸지만 그래도 살겠다고 흙을 향해 기어가 기어이 굴을 파고 들어가는 모습과 파인 굴의 흔적을 오래도록 관찰한다.&nbsp; 이 가운데 제일 지면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거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지는 아닐 것 같은, 거지는 아니겠지만 거지일 수 있을 것 같은, 원숭이를 닮은 남자. 이들의 대화랄까, 관계랄까, 하여간 약하디 약한 연대는 하지 즈음부터 시작해 겨울이 공원을 할퀼 때까지 이어진다.&nbsp; ‘나’는 며칠 전에 본 아스팔트의 털뭉치처럼, 거리로 달려나가 아스팔트 위로 몸을 던져 기어코 몸이 짓물러터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살지만, 자신도 결코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안다.&nbsp; 틱. 방아쇠 당긴 소리. 한 번 이렇게 말했으니 ‘나’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죽이고 싶은 작가의 마음.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니.<br>&nbsp; 어느새 밤이 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료품점에 뭔가 먹거리를 사들고 집에 간다. 옥상. ‘나’는 한번도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갖지 않았다. 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 아니었다. 날아봤자 언젠가는 날개를 접고 다시 하강해야 하는데,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막강한 권태일 것이 분명하니. 그러나 날리고 싶은 건 있다.&nbsp; 엄마가 왔다. 이번에도 먼지가 잔뜩 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그동안 벗어놓기만 했지 한 번도 빨래하지 않은 천 뭉치들을 주워 세탁기에 돌린 다음에 펴 걸고, 베란다에서 유일하게 만났던 C로부터 선물받은 나팔꽃에 물을 준다.&nbsp; ‘나’는 엄마를 뒤에서 꽉 껴안으려 엄마한테 간다.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꽉 껴안아서, 힘껏, 비실비실한 ‘나’가 얼마나 세게 껴안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가능한대로 제일 세게 껴안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번쩍 들어 3층 연립주택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멘트 포장길에 내던지고 싶은 충동.&nbsp; 당신들 때문이다. 당신들이 외아들 하나를 향해 저질렀던 구질구질한 사랑, 상한 음식 같은 사랑, 넝마 같은 사랑. ‘나’를 짓누르며 혐오감에 북받치게 하면서도 어쨌든 참아내게 했던 것. ‘나’의 넋을 빼놓는 질긴 음모와 견딜 수 없는 포만감을 강요하던 것들.&nbsp; 초인종이 울린다. 이 연립주택 3층 꼭대기 집에 찾아올 사람은 단 한 명이다. ‘나’는 문을 열고 말한다.&nbsp; “누구셔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9/46/cover150/89984548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2946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꿈과 꿈꾸는 행위, 그리고 - [노스탈지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1447</link><pubDate>Mon, 29 Jun 2026 0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614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02&TPaperId=17361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96/coveroff/89374648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02&TPaperId=173614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스탈지아</a><br/>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 지음, 한성숙 옮김 / 민음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커르터레스쿠의 소설집 《멜랑콜리아》가 2019년 작품이다. 그걸 먼저 읽고 흥미롭기는 한데 소년/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의 수사가, 그러니까 (청)소년이 쓰는 단어/문장치고 수식이 너무 과해 조금 얹혔었다. 그럼에도 이이의 주인공들이 사물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작가의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기억하기를 잘했지.&nbsp;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480번으로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의 1989년 작품, 작가가 서른세 살 때 &lt;꿈&gt;이라는 제목으로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은 작품이 책방에 나왔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다른 독자들 한테도 《멜랑콜리아》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여러 도서관을 통틀어 내 책상에 놓인 &lt;노스탈지아&gt;. 딱 한 권이다.<br>&nbsp; 아, 이이가 젊은 시절에는 이랬구나.&nbsp; 이게 책을 읽은 첫번째 소감이다. 《멜랑콜리아》도 서로 약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단편을 모은 책이다. &lt;노스탈지아&gt;도 마찬가지. 다섯 편의 개별적인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퉁쳐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멜랑콜리아》와 마찬가지로 소설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그냥 소설책이어서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책. &lt;노스탈지아&gt;도 《멜랑콜리아》처럼 한 권으로 묶어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1989년에 《잠》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발표하여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았는데 잔인한 장면묘사와 아슬아슬한 성적 표현 때문에 검열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가, 1993년에 &lt;노스탈지아&gt;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재출간했다고 작가 연보에 나온다. 그러니까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굳이 분명하기 바란다면 &lt;노스탈지아&gt; 역시 소설집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br>&nbsp; 이 책의 원래 제목이 &lt;잠&gt;. 그래서 다섯 작품 모두 꿈이 나온다. 희망사항을 일컫는 꿈이 아니라, 자면서 뇌활동의 결과로 뭔가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이루어진 유성sound 영상. 그래서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긴 분량인 &lt;REM&gt;의 “REM”이 가리키는 것이 잠잘 때 뇌의 활동이 활발해져 눈알이 빠르게 운동하며 Rapid Eye Movement 꿈을 꾸는 단계를 뜻한다.&nbsp; 현대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가장 기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꿈 이야기하는 것. 그럼에도 커르터레스쿠가 꿈꾸는 행위와 꿈 이야기를 갖고 나타났을 때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꿈도 꿈 꾼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니, 나 같은 범부들이야 수염 허연 조상님이 나와 숫자 여섯 개를 불러주어 혹시 로또라도 맞을까 김칫국물 벌컥벌컥 들이켠 이야기나 하겠지만, 현대 루마니아 문학계의 큰 별이라 일컫는 커르터레스쿠 같은 장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하면 이거야말로 독자가 꿈 해몽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수준의 그 무엇이냐, 그래, 초현실주의적的이고, 보르헤스적이며, 오비디우스적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략난감이며 오리무중이다.&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책 좀 읽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려 하니, 루마니아 검열당국이 지적한 아슬아슬한 성적 묘사가 깜찍하게 재미있어서는 아니고, 도무지 끝간 데 없는 장황한 묘사가 간혹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 놓기는 하지만, 일관된 긴 어둠의 통로와 이어지는 지하의 제법 큰 공간에서 펼치는 큰 구라, 동유럽 작가들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거대한 묵시록적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nbsp; 동유럽, 나아가 전 유럽에 지하 땅굴로만 이어진 특별한 통로가 있어서 저 마드리드부터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베이징까지 도무지 못 가는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없던 건 아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 99번, 두샨 코바체비치가 쓴 &lt;옛날 옛적에 한 나라가 있었지&gt;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그러나 코바체비치의 지하 땅굴은 광범위한 지하망과 생존을 위한 땅굴이었던 반면, 커르터레스쿠는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과거의 죽음과 밀접하니, 지난 금요일에 업로드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 &lt;슬픔의 물리학&gt;에 등장하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의 거처와 비슷하다. 흠. 코바체비치(구 유고슬라비아), 커드러레스쿠(루마니아), 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전부 동유럽 작가. 우연은 아닐 거 같다.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옛 독재시절의 길고 괴로웠던 시간의 터널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다는 내 의견이 조금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긴 하지만.<br>&nbsp; 독후감에서는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앞에 배치해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lt;룰렛 승부사&gt;만 소개하겠다. 분량도 제일 짧다.&nbsp; 룰렛. 도박장에서 스테인레스 금속 구슬이 뱅뱅 뚜르르르 굴러가다가 작은 박스에 쏙 들어가면 번호나 색깔에 돈을 건 숱한 사람들의 탄성과 비명이 터지는 룰렛. 그거 아니다. &lt;룰렛 승부사&gt;의 룰렛은 영화 &lt;디어헌터&gt;, 크리스토퍼 월켄이 베트콩의 포로수용소에서 자기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 그것을 말한다.&nbsp; 화자는 약 60년간 글 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노인. 룰렛 승부사는 그의 친구다. 실존했던 사람이라는데 당연히 허구. 하여간 그 친구 아드리안은 곤충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리고, 지저귀는 새들을 돌로 쳐 죽이는 거친 아이였다가, 발작적 분노의 순간을 겪으며 성적 욕망이 왕성한 청소년을 거쳐, 강간과 강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인 죄수로 악당의 3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전형적인 범죄자였다. 화자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이 아드리안이 점차 악마화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그걸 글, 일종의 보고서로 쓴 것이 &lt;룰렛 승부사&gt;이다. 거친 아드리안은 힘 없는 찌질이 제레누스를 한 번도 때리지 않고 오히려 그런 위기에서 구해주어 특별한 관계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소설가와 범죄자가 제대로는 어울리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nbsp; 제레누스가 쓴 책이 제법 많이 팔려, 팔려도 너무 많이 팔려 이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시절이 왔고, 그래서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어여	쁜 아내 자랑도 할 겸 시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들렀더니, 그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차려놓고 세 명의 사업가와 함께, 의자에 거의 누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멋대로 앉아 있는, 잘 차려 입은 아드리안을 만나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제레누스는 알아차렸다. 내 술고래 범죄자 친구 아드리안과 룰렛 승부사는 동시에 태어난 검은 쌍둥이라는 것을. 독자가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모른다. 검은 쌍둥이. 쌍둥이 자리, 6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 또 나온다는 걸. 이 장면부터 아드리안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승부사라고만 할 예정이라는 것도.<br>&nbsp; 사업가들과 승부사는 ‘나’ 제레누스의 눈이 안 보이게 검은 천으로 가리고 어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간다. 길고 어둡고 지저분한 좁은 통로를 거쳐 나중에 옛 코냑 공장의 작업장이라는 것이 알려질 제법 넓은 지하에는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그저 술통 비슷한 것과 열에서 열다섯 정도의 잘 차려 입은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nbsp; 시간이 좀 흐르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으로 갈아입은 술고래 친구가 등장하고, 이미 관중 또는 돈을 걸 신사 숙녀들한테 검증을 받은 리볼버 권총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총알 하나를 보여준 후견인이 총과 총알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곧바로 탄창에 총알을 넣고 한 바퀴 차르르르 돌린 후에 권총을 승부사에게 건네면, 벌써 통 위에 올라선 승부사는 극도의 공포에 질린 얼굴표정을 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채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꽉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nbsp; “딸깍.”&nbsp;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피와 살점과 뇌수의 흔적이 잔뜩 묻은 회벽에 한 번 더 피와 살점과 뇌수와 뼈조각을 보태면 돈을 건 관중들이 따는 거고, 아니면 승부사와 후견인이 돈을 번다. 생존할 확률은 5/6. 그러면 아무도 여섯 번을 생존할 수 없다. 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아니다. 살 확률은 5/6. 여섯 번 내리 살 확률은 (5/6)^6. 내가 계산해드리지. 33.490%. 여섯 번 방아쇠를 당겨도 살 확률은 1/3이 넘는다. 책에서는 네 번 이상 생존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nbsp; 연이어 생존에 성공해 큰 돈을 번 승부사는 하도 많이 죽음과 직면해 더 이상 실제로 살 마음이 없는지, 이제 스스로 후견인을 겸하면서 마음대로 도박 룰을 정한다. 그리하여 권총 탄창에 실탄 두 발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고, 세 발, 네 발, 다섯 발을 넣고 쏴도, 안 죽는다.&nbsp; 결국 여섯 발을 다 넣을 테니 돈을 걸라고 하는 승부사.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안 죽겠지? 그렇다.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시고 과거 어느때보다 큰 돈을 건 부쿠레슈티의 도박사들.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리볼버를 머리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아이쿠, 부루레슈티에, 그만 다른 곳도 아니고 부쿠레슈티에 큰 지진이 나서 승부사가 딛고 선 통이 흔들, 총이 머리통 위를 살짝 지나가버린다.&nbsp; 왜 안 죽었을까? 세번째 실린 작품 &lt;쌍둥이 자리&gt;에서 (p.269)쌍둥이자리 사람들은 스스로 몰입하고 만족한다는데 이거하고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96/cover150/89374648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496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버림받은, 갇힌, 어둠의 공감각과 시간 - [슬픔의 물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5877</link><pubDate>Fri, 26 Jun 2026 05: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55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355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off/k852137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355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픔의 물리학</a><br/>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br>&nbsp; 나는 1913년 8월 끝자락생. 남성. 수두, 홍역 등 유년기 모든 질병과 함께 전쟁도 통과함.&nbsp; 나는 해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남. 오늘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죽을 것.&nbsp; 나는 1968년 1월 1일생. 남성. 68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기억함. 지금 사는 올해는 기억 못 함. 몇 년도인 지도 모름.&nbsp; 나는 언제나 태어나 있음. 빙하기의 시작과 냉전의 끝을 기억함. 죽어가는 공룡을 보는 것은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었음.&nbsp;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음. 마이너스 7개월. 올리브 열매 만하고 무게는 1.5그램. 성별 모르고 꼬리가 없어지고 있음.&nbsp; 나는 1944년 9월 6일생. 남성. 일주일 뒤 아버지는 전방으로 떠남. 어머니 젖이 말라 와인에 적신 빵으로 나를 달래줌.&nbsp; 나는 기억함. 장미 덤불로, 자고새로, 은행나무로, 민달팽이로, 6월의 구름으로, 가을의 보라색 크로커스로, 체리꽃으로, 눈으로.<br>&nbsp; 프롤로그를 정리하면 이렇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2011년에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 &lt;슬픔의 물리학&gt;을 출간해 불가리아 국가문학상을 받고 특히 독일에서 필명을 떨치게 되는 ‘나’는 1968년 1월 1일생에 제일 가깝다. 직업이 작가이고, 책이 무지하게 팔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 인터뷰 따위는 가뿐하게 사절하고 그저 책 읽고, 글 쓰고, 세계로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 그걸 글감으로 작품을 쓰는 사람. 반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자신을 투영한 허구의 인물이다.&nbsp; 그럼 다른 ‘나’는 누구일까?&nbsp; 1913년 8월 끝자락에 딸 일곱이 있는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사실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1944년 9월에 아들을 낳고 일주일 만에 큰 전쟁터였던 헝가리 방면으로 떠난다. 1944년생 ‘나’는 자라 변호사 여성과 결혼해 1968년생 아들을 낳는데, T시에서 아파트를 배정받기 위하여 곳곳을 다니며 그리 크지 않은 지하방에서 생활한다.&nbsp; 그런데 이들 전부 ‘나’이다. 심지어 초파리, 민달팽이, 6월의 구름 같은 것도 모두 ‘나’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nbsp; ‘나’, 작가가 자신,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공감하여 들으면서 스스로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놀라운 공감각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와의 공감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이야기의 예를 들어보자.<br>&nbsp; 어린시절 ‘나’는 어린이용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게 기억에 콱 박혔다. 신화 가운데 파시파에가 아름다운 흰 소와 관계하여 낳은 황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 이야기가 제일 심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니까 자기가 도와 왕이 된 미노스가 다스리는 크레타 섬에 아름다운 황소가 한 마리 있어서 그걸 희생해 바치라고 요구했다. 욕심 많은 미노스가 정말 바치려고 보니 이게 아까웠다. 그래 다른 소를 희생했다. 명색이 포세이돈인데 그걸 몰라? 그래 주문을 걸어 미노스의 정숙한 아내 파시파에가 흰 소에 반하게 만들었다.&nbsp; 이제 신의 심술 때문에 암소와 비슷하게 발정을 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재주꾼 다이달로스에게 나무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해 그 안으로 들어간다. 흰소가 발정한 나무 암소에 다가와 다른 암소들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교접을 하니, 파시파에는 그 일 때문에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nbsp; 미노타우로스가 사람의 몸을 하되 얼굴은 뿔이 달린 황소의 모습이라 이를 불길하게 여긴 미노스는 다시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라 해서 그 한 가운데로, 어린 미노타우로스, 여전히 엄마 파시파에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는 아기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nbsp; 미노타우로스는 자라면서 괴물이 되어 1년에 아테네의 처녀 일곱 명, 총각 일곱 명을 일용할 양식으로 잡아먹는다. 훗날 아테네에 영웅이 나왔으니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괴물을 소탕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크레타 섬에 와서 미노스의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여버린다.&nbsp; 이때 미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자기 동생을 살해한 뒤에 어떻게 미궁에서 빠져나오겠느냐고 하면서 테세우스에게 실의 한 끝을 계속 잡으며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일을 끝낸 테세우스는 실을 따라 밖으로 나왔고, 나라에 죄를 짓게 된 아리아드네를 옆구리에 차고 그길로 크레타를 떠나 낙소스 섬에 도착한다. 거기서 아리아드네한테 야매로 장가를 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에 그냥 두고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섬에 홀로 남은 아리아드네, 한탄만 하고 있는데 다른 배가 도착하니 선주가 누군고 하면 바로, 바쿠스. 주신이다. 그래 그의 여인이 되어 낙소스 섬을 떠난다는 이야기.<br>&nbsp; ‘나’가 이야기를 보는 관점은 어린 아이가 갇힌 상황. 버림을 받은 일. 그러면 아이는 얼마나 공포에 떨겠는가 하는 것이다. 막강한 영웅, 헤라클레스와 맞장을 떠도 전혀 꿀릴 것 없으며, 어쩌면 헤라클레스의 다른 버전인 것처럼 거의 비슷한 모험을 감행하는 영웅 가운데 영웅 테세우스가 어찌하여 크레타 섬에 들어와 비록 이상한 모습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의 가슴에 양날 검을 박을 수 있겠느냐, 이런 걸 따지지는 않는다. 대신 버림받은 아이의 상태에 깊게 공감한다.&nbsp; 1925년, 열두 살의 ‘나’. 내 안의 할아버지. 즉 실체는 할아버지이되 2011년이 되어 그 상황을 공감각을 이용해 느끼는 것은 작가인 ‘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나’에서 작은 따옴표 ‘…’는 사라질 수 있다. 나는 불가리아 돈 5레바를 들고 장터로 달려간다. 구경을 할 수 있고, 소소한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고, 달고 맛있는 군것질도 할 수 있다.&nbsp; 시장 속에 작지 않은 천막이 쳐 있고, 입구에는 어른 한 명이 큰 소리로 미노타우로스를 구경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열두 살의 어린 미노타우로스란다. 나는 어린 시절 충격적으로 읽은 그리스 신화의 장면이 떠올라 도무지 충동을 감출 수 없다. 그래 딱 하나 있는 5레바 동전을 내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무대가 있었고 무대 가장 안쪽에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객석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드디어 쇼를 시작한다. 이제 객석으로 돌아앉은 소년은 집에 있는 책에서 흑백 삽화로 본 괴물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 무섭기는커녕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다. 얼굴이 크고 털이 많이 났으며 좀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몸은 그냥 보통의 소년이다.&nbsp; 집에서 버림받아 순회 서커스 또는 쇼단에 팔려 장터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여주는 대가로 음식과 허름한 옷을 얻는 소년.<br>&nbsp; 1913년생 나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새에 엄마와 일곱 누나들과 어떻게 하든 먹고 살아야 한다. 없는 살림에 수탉이 그려진 마차가 딱 하나 그나마 재산이라고 있는데 그걸 타고 제분소로 간다. 엄마와 나와 누나 세 명이 함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훗날, 꼴에 이것도 마차라고, 마차를 가지고 있었다고 부르주아 신분을 가진 반동분자 가정으로 몰리는데 그건 나중의 일이고, 하여간 제분소에 가서, 엄마와 누나들이 일을 하는 사이에 어린 나는 제분소 창고의 빈 밀가루포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nbsp; 잠에서 깨 보니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두려움의 첫 발자국이었다.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할 만큼의 두려움. 너무 시끄럽고 부산한 제분소. 하얀 거인 두 명과 흰 안개 같은 밀가루가 날려 거미줄마저 희다. 절박함은 더욱 거세게 밀려오고 그때서야 나는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 크게, 크게 외친다. 절망과 분노, 당혹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눈물이 유일한 위안이다. 바는 버려졌다.&nbsp; 누나와 엄마는 나를 버리고 수탉이 그려진 마차를 타고 갔다. 얼마나 갔을까? 큰누나가 엄마한테 말한다. 막내가 안 탔어요. 엄마가 대답한다. 그래서?&nbsp; 전쟁 중에 자신이 맡아 키워야 하는 아이가 여덟 명. 이 가운데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그리 크게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세 딸은 말이 없다. 잠시. 어쨌든 마차는 멈췄다.&nbsp; “내가 갔다 올 게요.”&nbsp; 마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제분소로 원피스 치마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큰누나. 나, 하마터면 미노타우로스 꼴 날 뻔했다. 이게 1913년생 ‘나’.<br>&nbsp; 이렇게 ‘나’는 할아버지의 유소년 시절뿐 만 아니라 청년 시절, 2차세계대전 중 헝가리에서 부상당해 여성 혼자 사는 집의 지하실에 숨어 몇 개월을 살던 시기의 정황까지 공감한다. 죽음의 침상에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준 편지 한 장. 해독할 수 없는 헝가리어로 쓰인 편지 위에 연필로 외곽선을 따라 그린 한 아이의 작디작은 손바닥 그림. 그리고 주소.&nbsp; 이미 성공한 작가가 된 ‘나’는 정말로 헝가리의 주소지를 찾아가고, 늙은 여성을 만나고, 늙은 여성이 낳은 ‘나’보다 나이를 좀 덜 먹은 것처럼 보이는 건장한 사내를 만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nbsp; 이렇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훗날 &lt;타임 셸터&gt;를 위하여 20세기, 그리고 지구 탄생의 시점부터 시간을 구분하여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lt;타임 셸터&gt;의 중요한 등장인물 가우스틴과 함께.&nbsp; ‘나’의 공감능력에 가우스틴의 엽기적 발상을 합하면 독자는 슬픔의 양자 물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명색이 “양자” 물리학이니, 아니, 물리학이니, 그리 만만하지 않겠지만. 양자물리학 쪽으로 일천한 독자는 정말 드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는 생각과 함께 재미나게 읽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 그래서 별점 하나 깠다는 것도 안 비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150/k852137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8614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