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Falstaff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술, 밥, 책, 음악</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4 Jun 2026 21:16:59 +0900</lastBuildDate><image><title>Falstaff</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955427725875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Falstaff</description></image><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한때 전지현 대역배우였던 작가 - [조연 여배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5926</link><pubDate>Thu, 04 Jun 2026 04: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59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9426&TPaperId=173159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11/70/coveroff/k2220394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9426&TPaperId=173159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연 여배우</a><br/>등구운 지음, 이기선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06월<br/></td></tr></table><br/>.&nbsp; 1983년생 타이완의 배우, 모델 겸 작가. 국립정치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광고학을 복수전공하고 영국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전지현이 타이완에서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러 갔을 때 172cm, 52kg에 신체 사이즈 32/24/35를 유지하던 등구운이 전지현의 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많은 연극, 드라마, 영화, 광고에 출연한 배우인데 내가 원래 연얘가 중계를 거의 듣지 않는 편이라 어느 정도 스타였는 지는 모르겠다.&nbsp; 하여간 한국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자기 이름 鄧九雲도 타이완 발음 ‘덩주윈’ 대산 우리 발음인 ‘등구운’으로 읽어달라고 스스로 부탁해서 작가 이름을 박은 것이라 한다. 우리말 외에 타이완 사람이 자주 그렇듯이 만다린어는 기본이고 법으로 국가언어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영어도 모국어 수준에 일본어도 우리말 정도는 할 줄 안다.&nbsp; 위키피디아에는 등구운이 영국의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석사를 취득했다하고, 중국의 바이두 백과는 영국의 이스트 15 연기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스트 15가 에식스 대학에 포함되어 있는 기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영국에서 학위를 따 왔음에도 타이완으로 돌아오니 작업도 들어오지 않고, 기껏 얻어걸린 드라마에 출연중 사고가 나 스태프 한 명이 죽는 바람에 촬영 중단이 되어버린 일화가 나온다. 이것도 아마 픽션이겠지.&nbsp; 위키피디아 등구운 페이지에는 “이 항목에는 인생 경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기사에 대한 정보를 확장해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여배우는 더 하겠지. 그것도 인기 관리의 전략일 수 있으니 더는 모른 척하자.<br>&nbsp; 두 자매. 황청黃澄과 황첸黃茜. 띠동갑이다. 165cm, 56kg의 외양을 자랑하는 미인 동생 황청은 자기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 황첸한테 업혀 자랐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언니 겸 이모 겸 엄마 노릇도 해가며 살았다. 집안에 네 가족이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 황청을 안은 황첸, 아빠 순으로 앉아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왼쪽, 아빠는 오른쪽, 황첸은 아래쪽에 눈을 두고,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건 황청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황청이 여섯 살 때 사라졌다. 엄마 입에서는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언니한테는 십년 이상이 훌쩍 지나간 후에, 그 인간이 술을 엄청 퍼마셨으며, 집을 나간 이후에도 자기한테만 몰래 와서 돈을 얻어가고는 했단다.&nbsp; 황청이 본인은 그리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입술이 좀 짝짝이처럼 생긴 바람에, 대학시절에 일본배우 OO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그 소문을 들은 방송국에서 찍어간 적이 있었다. 몇 주 후에 일본 배우가 광고 촬영차 타이안을 방문했을 때 조명을 맟추어 볼 대역을 요구하여 22시간 동안 8천 위안을 받기로 하고 대역을 맡았다. 커피숍 한 달 알바비를 하루에 받을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싶어서. 그러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손만 나올 대역배우 자격으로 황청이 남자 배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의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후려 갈리니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해서, 아프지 않으세요, 얼마나 아프세요, 막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남자배우는 그 역시 조그마한 소리로 괜찮습니다. 더 실감나게 세게 때리셔도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실감나게, 빨리 끝내는 것이 덜 때리고 덜 맞는 일이다 싶어 마구마구 후려쳤지만 감독이 컷을 외칠 때마다 얼굴이 부은 남자가 서둘러 냉찜질을 하면서도 황청을 향해, 손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이렇게 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nbsp; 물론 이 남자는 작품의 뒤쪽으로 가면 이제 이름을 날리는 유명 배우가 되어 황청과 커플을 이루어 드라마를 찍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두 명 다 커플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 진짜 커플로 소문, 스캔들이 나 그걸 은근히 즐기는 가짜 연인으로 지내기도 한다.<br>&nbsp; 아빠를 쫓아버린 엄마는 두 딸과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애하고 혼자 사는 사람끼리 만나 가정으로 이루어 볼 생각이 없느냐면서 한 남자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린 선생. 엄마가 만나보니 큰 키에 섬세하고 자상한데다가 믿음직 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하지만 린 선생이 세 모녀가 사는 집에 와서 보니까 엄마가 아니라 첫째 딸 황첸이 마음을 아프도록 폭 찔러버린 거였다. 그리하여 린 선생은 황첸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버렸다.&nbsp; 황첸은 린 선생을 만날 때, 자주 동생 황청과 함께 외출했다. 황청의 나이가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때라 엄마와의 관계는 어느 새 잊어버리고 그냥 린 선생이 황첸 언니의 애인, 그것도 내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잘 사주는 좋은 애인이며, 다만 너무 좁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좀 불만인 남자 이상이 아니었다. 하여간 언니는 린 선생과 좋은 시간을 많이, 오래 보낸 모양이다. 그러면 탈난다. 탈 났다. 황첸의 배 속에서 린의 씨톨이 알을 만나 착상을 해버린 것. 린 선생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는 그냥 두고 볼 것이다.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황첸과 가정을 이루면 되는 거고, 그렇게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아직 혼인 전이니 여성이 임신중단애 관한 권리를 주장하면, 아이가 있는 돌싱남 입장에서 혼인 불가 통보로 이해하고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이후 성실하게 뒤처리와 계속 연인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면 그게 차선이다.&nbsp; 황첸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낳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엄마 모르게 연인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엄마한테 린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또 한 번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단 가위를 가져와 황첸의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자기 방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황첸이 침대위에 모로 누워 물끄러미 동생 황청을 보더니 너도 잘라줄까? 했고, 황청이 자기만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좀 이상해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황첸이 황청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는데, 이게 임신중절을 하기 전인지 한 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일 이후에 황첸은 엄마한테 질려 보따리를 싸 독립해 원룸으로 나가버린다.<br>&nbsp; 우리의 주인공 황청은 대역배우를 끝내고 소극장 연극 &lt;불면증&gt; 오디션에 참가, 섬세하고 신비로우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원한다는 극단의 요구에 부응하여 합격한다. 세 명의 여주인공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불순한 친한 척’ 속의 비틀림과 경쟁이 불타올랐고, 그렇게 연습을 해 드디어 초연의 막이 올라갔을 때, 관객석의 관객 절반 이상이 황첸 언니의 학교 연극반 동기들이었다. 황청은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오지 않을까봐. 원래 성격이 이렇다.&nbsp; 첫 공연이 끝나자 평소 황청과 황청의 연기를 시답지 않게 보던 단장조차 “오늘은 황청의 무대였어.”라고 촌평을 했을 정도의 성공.&nbsp; 황첸도 무대 위의 동생을 보니 내면에서 뭔가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고, 이제는 동생의 삶에 개입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관객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되리라고. 근데 그게 쉬워? 12살 차이나는 동생,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기한테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던 아이한테. 이 무렵 황첸은 ‘캉’이란 새로운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해, 작품이 진행될수록 결혼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애도 쓰고, 한 여자 아이를 입양한 후 캉의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 가서 살다가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다.&nbsp; 이후 황청이 미인대회 2등상을 타고, 타이완에서 제일 유명한 기획사에 들어가 영화 조역을 따지만 대가로 영화감독의 손을 타게 된다. 당연히 황청만 모르는 지저분한 소문도 다 났겠지. 그리하여 결정한 것이 연기력을 확장하기 위해 연극의 본거지, 셰익스피어의 고장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거였다. 이게 등구운의 이력과 매치되는 부분이다. 여태 히트작 하나 없는 등구운이 무슨 돈으로 영국유학? 엄마 같은 언니 황첸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부자 형부 캉이 뒤에서 팍팍 지원을 해준 덕분이다. 아, 나도 소싯적에 이런 누나, 매형 있었으면.<br>&nbsp; 영국에서 돌아온 황청. 이제 남은 건 황청이 스타, 아니면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의 배역을 한 번 멋있게 연기해보는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애에서도 성공을 해야겠지.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밝히지 않겠다. 연기는 인류가 행위했던 가장 오랜 예술 장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궁금하신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글도 잘 쓰고, 가끔 등장하는 러브씬도 과하지 않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11/70/cover150/k2220394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1170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전환과 환원, 그리고 시스젠더 - [디트랜지션, 베이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4345</link><pubDate>Wed, 03 Jun 2026 0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43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037676&TPaperId=173143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70/77/coveroff/k85203767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037676&TPaperId=173143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디트랜지션, 베이비</a><br/>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04월<br/></td></tr></table><br/>.&nbsp; 1981년생 백인 미국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교수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 나 시카고에서 성장했다. 햄프셔 칼리지를 거쳐 아이오와 대학에서 예술석사, 디트머스 대학에서 비교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 있고, 우간다에 체류했을 때는 트랜스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을 때였는데 동성연애 등에 관한 우간다의 개별문화를 조사하다가, 우간다 의회가 반동성연애법안이 제의하는 바람에 위협을 느껴(추정)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nbsp; 트랜스 여성, 즉 MF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다.&nbsp; 2021년에 결혼한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살다가 지금은 콜럼비아 산타마르타에서 터를 잡았단다. 나같은 이성애자는 모르겠지만, ‘결혼한 아내’라는 표현은, MF 트랜스젠더인 토리 피터스가 여성 또는 트랜스 여성과 동성결혼을 했다는 의미다. 여성간 동성결혼의 경우 배우자는 서로를 아내라고 부른다. 즉 부부는 두 아내로 구성된다. 그렇게 알고 있다.<br>&nbsp; 나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관해 별 관심이 없다. 주변에 눈에 띄는 성소수자도 없다. 만일 있다면? 당연히 똑 같은 대우를 하겠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속으로 조금 궁금한 게 있겠지. 그래도 하나의 질문 없이 그들과 일상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nbsp; 내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한다 해도, 나도 모르게 언어나 행동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그들이 눈치채고 기분 나빠 할 수 있겠지. 그것까지는 나도 어찌 할 수 없다. 그저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더 이상은 없다.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최대로 배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nbsp;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당연하게 많이 예민할 것이다. 다수자들이라면 아주 사소해 모른 척하고 지나칠 것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다수자들은 내 옆, 주위의 사람들도 당연히 다수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혹시 말할 수도 있겠지. 먼저 자신이 소수자라고 밝히면 더 세심하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이럴 때마다 일일이 커밍아웃하는 소수자도, 그걸 듣고 언행에 조심하는 것도 사실 좀 웃기다. 인종이나 젠더의 경우라면 탁 보는 순간 일종의 규범, 언행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어 자연스레 조절할 수 있으나, 다수자 입장에서 눈치채기 아주 어려운 성 소수자 배려는 그래 더 힘든 것 아니던가?&nbsp; 나와, 내가 아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하나같이 그들과 어떤 형태로도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반 정도는 있으나마나 자신한테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진저리를 치며 싫어한다. 지금 한국 꼰대 남자들의 수준이다.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진짜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꼰대 세대한테는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다. 그렇게만 알면 좋겠다.<br>&nbsp; 이 책은 미국의 톱5 출판사에서 펴낸 첫 트랜스젠더 작가의 책이라고 한다. 토리 피터스도 이게 첫 작품이라는데, 일곱 개 중요 문학상의 후보로 올라 이중 하나 PEN/헤밍웨이 상을 받았다.&nbsp; 근데 내가 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까?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서 ‘첫빠따’로 읽을 정도로 혹 한 이유는 뭐지? 다른 도서관에도 한 권 있어서 빌려 읽으면 될 텐데 굳이 희망도서를 신청했다는 건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뜻. 모르겠다. 잊었다.&nbsp; 제목 “디트랜지션Detransition”은 이 책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아들로 호적에 입적시켰는데, 자라면서 성정체성이 여자인 것을 알게 되어 여성으로 전환transition 해, 여성으로 한동안 살다가 또 뭔가 자각을 했는지 다시 남성으로 복원 또는 환원detransition한 사람을 일컫는다. 전환과 환원을 위하여 다량의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트랜스를 위하여는 에스트로젠을, 환원을 위해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해야 하는 모양이다.&nbsp; 주목할 것은 트랜스 여성이 되느라 에스트로젠 처방을 6개월 정도 받으면, 진짜로 그런지 트랜스들의 대화법이 그런지 하여간 고환이 쪼글아들어 후에 디트랜스를 해 다시 남성이 되더라도 영구 임신 불가능 상태가 된단다. 물론 디트랜스 기간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해 성기능은 원상으로 돌리더라도 그렇다는 말이다.<br>&nbsp; 이 책에서 MF 트랜스를 해 여성 에이미가 된 인물이 등장한다. 에이미는 같은 MF트랜스 여성 리즈와 서로 아내로 살다 헤어졌다. 에이미가 여성이 된 직후, 여성으로 살기 위한 거의 모든 하드, 소프트 웨어를 리즈가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경우에 리즈는 에이미의 트랜스 엄마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때 리즈는 사업에 성공해 돈이 무척 많은 개자식하고 살고 있었는데, 자기 아파트를 가지고 살던 에이미가 돈 많은 개자식의 폭행을 당하며 살던 리즈를 구해준 구석도 없지는 않다.&nbsp; 이렇게 살다가 에이미가 어느 하루, 선언하기를, 이제 우리는 찢어져야 하는 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길인 거 같다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기 위하여 나는 다시 남자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대판 싸웠겠지. 말이 그렇지, 아름다운 이별이 그렇게 많아? 이들도 서로 웬수 상태가 되어 헤어졌다. 뭐 다 그렇듯이.<br>&nbsp; 리즈의 문제는 도무지 혼자 있을 줄 모르는 거다. 혼자 만의 삶, 고독으로부터 도망을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 그런데 트랜스 여성이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은 시스젠더 여성인 아내와 살다 모험을 즐겨보려고 길거리로 나선 남자뿐인 거 같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한테 “남자는 다 개”라는 명제가 참이다. 리즈도 두 명의 유부남에게 큰 실연을 경험했으며, 지금 또 한 명의 잘 생기고 매혹적인 유부남 개자식과 밀회를 즐기고 있다. &lt;디트랜지션, 베이비&gt;의 막이 오르면 리즈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유부남 개자식의)BMW에 앉아서 콘돔을 사러 편의점에 간 그 개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nbsp; 그냥 보통의 한국 남자 꼰대들이 알고 있는 거라면, 매체를 통해 그나마 정보를 알게 되는 트랜스 여성들은 우리나라에서 또는 태국까지 원정을 가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고, 주름진 주머니까지 싹 잘라버린 다음에 고환이 있던 서혜부에 구멍을 내 직장 위쪽으로 질을 만든 사람으로 알았을 듯하다. 그러나 책의 두 주인공급 트랜스 여성들은 음경과 고환을 달고 있다. 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아 생식능력은 없지만 책을 읽어보면 음경이 발기도 되는 모양이다.&nbsp; 그런데 이런 상태, 유방이 부풀고 젖꽂지가 도톰함에도 음경이 달린 트랜스 여성만 찾는 남자를 구하는 방법은? 20세기에는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었겠지. 지금은 미국의 경우에 데이팅 앱에 접속해 취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nbsp; 나는 이런 거 모르고 살아도 괜찮은데, 자꾸 이렇게 알려줄 필요 없는데도 정보가 넘친다.&nbsp; 하여간 지금 리즈가 만나는 BMW 타는 수캐는 사실 HIV 양성반응자이다. HIV 환자하고 다르다. 그래도 조금 위험한 사람이다. 리즈한테는 치명적이지 않다. 리즈는 에이즈 예방약을 복용했다. 그걸 피임약이라고 일컫는다. 리즈는 에이미와 결혼시절에 자기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 했다. 위스콘신의 선량한 백인 엄마들이 지닌 여성성에 대한 갈망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br>&nbsp; 에이미가 에임스라는 이름의 남자로 환원한 후에 프로그래머로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한 시절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 수 있었을 만큼 고운 외모를 가진 남자이니 직장 안에서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많았겠지? 그렇다. 그러다가 하루 여성 상사 카트리나가 에임스에게 자기 집으로 업무를 가지고 좀 오라고 했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한테 그런 지시를 내렸으면 즉시 성희롱 관련해 직장 윤리위원회 회부감이지만 여성 상사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뭐 이것도 성차별이기는 한데 그냥 넘어가자.&nbsp; 이혼해 넓은 집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카트리나가 에임스를 부엌으로 데려가 음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커다란 냉장고를 열고 고개를 수그려 둥근 엉덩이가 눈 앞에 활짝 드러나자, 갑자기 충동이 인 에임스가 코와 입술을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카트리나의 엉덩이에 탁 밀착시켜 바지 속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냄새를 흠향하기 시작했고, 원래 그쪽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카트리나도 점점 고양되는 성적 흥분을 이겨낼 수 없었다.&nbsp; 이미 여성의 몸으로 여성과의 섹스를 알고 있는 에임스. 카트리나는 에임스와의 관계에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자기 계좌의 모든 돈을 한 장의 수표에 써서 넘겨줄 수 있고, 자기 소유의 서초동 7층 건물의 등기소유권도 넘겨줄 수 있을 만한 엑스터시, 진정한 오르가슴 중에서도 오르가슴의 왕을 배알하게 된다. 그러니 둘이 쉽게 떨어질 수 있어? 계속 몇 달 연애를 하더니, 카트리나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br>&nbsp; 트랜스여성을 졸업했지만 아직 아버지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한 에임스. 도저히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카트리나는 정상 가정을 만들지 못하면 당장 임신중단을 선택할 거 같고, 그래도 아이는 갖고 싶다. 이때 에임스 머리에 탁 떠오른 인물이 평소에 아이를 갖고 싶어 애달캐달하던 트랜스 시절의 아내 리즈. 에임스는 서둘러 리즈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 고민을 호소한다.&nbsp; 아이를 낳고, 셋이 키우자고. 트랜스 여성과 디트랜스 남성, 그리고 시스 여성이.&nbsp;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가족관계가 생기려 하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그것 참.&nbsp; 하지만 워낙 내가 이 동네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충격적인 스토리라도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어야 하건만, 일단 이들과 공감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트랜스나 퀴어 하여간 성소수자들이 읽으면 공감하고 잘 썼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70/77/cover150/k85203767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70775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벽을 비집고 나가면 거기가 지옥 - [세 번째 경찰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2402</link><pubDate>Tue, 02 Jun 2026 05: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24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020&TPaperId=173124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8/coveroff/89324760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020&TPaperId=173124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 번째 경찰관</a><br/>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플랜 오브라이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것 같다. 완성한 소설은 다섯 편 밖에 안 되는 과작 작가인데도 그렇다.&nbsp; 1911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영국 관세청 공무원 아버지와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의 12남매 가운데 (아마도) 둘째 아들 ‘브라이언 오놀란’으로 태어나 더블린에서 학교를 마쳤다. 당시 남학교는 거의 비슷했던 모양이라, 폭력과 체벌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던 청소년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냈지만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했는지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도 쓰면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나머지 평생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nbsp; 이이가 멀쩡한 본명을 두고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건, 당시 아일랜드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 필수사항이라 가끔 신문에 기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이어 소설도 몇몇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이이 작품인 줄 알았다고. 자기가 공무원이면서 공무원 사회를 우스갯거리로 삼고 그랬다나.&nbsp; 알코올 중독자는 끝이 좋지 못하다. 술 많이 마시면 작건 크건 반드시 사고를 치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술을 마셨다 하면 주로 주둥이에 발동이 걸려 높은 양반들과 조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였다니, 그것 참 별일일세. 인후두암에 걸린 오브라이언은 그러나 1966년 만우절날 심장마비로 갔다. 이이의 아빠가 열두 아이들을 남겨놓고 일찍 죽는 바람에 소설 쓰는 형하고 열 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는데도 애썼다는 좋은 형, 오빠였다. 동생들 가운데 잘 큰 아이들도 많다. 위키피디아에 다 나온다. 요즘엔 검색만 하면 안 나오는 게 없어.<br>&nbsp; &lt;세 번째 경찰관&gt;을 뭐라고 해야 할까? 포스트모던인데 이렇게만 말하면 아쉽다. 이거나 저거나 다 포스트모던이다, 하면 될 정도로 범위가 너무 넓어서 탈이라.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을 타고 땅속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 검은 금고를 찾아 저택의 비좁고 깊은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나’가 일단 땅속 나라로 들어가거나 창문을 뚫고 들어가 검은 금고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lt;세 번째 경찰관&gt;은 아이들 읽는 책이 아니라서 별의 별 말도 안 되는 발명품도 나오고, 희한한 이론도 등장하고, 결국 이름 없는 ‘나’는 재판 없이 교수형을 선고받아 목 매달리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해피엔드일 거 같지? 안 알려드린다.&nbsp; 왜 ‘나’가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는 지 알아보자. 놀랍게도 이 일은 살인 사건과 관련 있다.&nbsp; ‘나’는 그렇게 젊지 않다. 오래 전에 태어났다고만 나오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확실하게 젊지 않다. 아버지는 진정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손님이 별로 많이 찾지 않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제법 부유한 농장을 꾸리고 있었고, 형편도 넉넉했으며, 세 가족은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아버지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양치기개가 순서대로 죽었다.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됐고, ‘나’는 어른들에 의하여 곧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오브라이언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폭력과 체벌의 난장판인 남자 기숙학교로. 근데 책에서는 기숙학교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br>&nbsp; 열여섯 살이 되던 3월 7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학교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가 없는 드 셀비의 책 &lt;금빛 시간&gt; 초판을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부터 남은 평생을 드 셀비를 연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결국 ‘나’가 저지른 치명적인 범죄도 드 셀비를 위하여 벌인 짓일 수 있다. ‘나’가 학교에 있는 동안 농장과 술집은 ‘존 디브니’라는 남자가 맡았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이 고용해서 농장과 술집을 경영하고 대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이이의 급료는 아버지가 사망 전에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이미 지불한 총 자금에서 나온다.&nbsp; 20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집에 가는 대신 몇 달 동안 드 셀비의 저서 같은 것도 더 구할 겸 견문을 넓히려 여행 중에 큰 사고를 당한 ‘나’는 왼쪽 다리 대신 나무 의족을 단 채 집에 돌아왔다. 근데 존 디브니는 말로만 곧 그만두고 집에 갈 거라고 하더니 끝내 그럴 마음이 없이 뭉개버린다. ‘나’가 서른 살이 될 무렵 디브니와 ‘나’는 좋은 친구로 이름을 내기 시작해 동네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통틀어 제일 가는 두 크리스천”이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겉 보기에 좋은 친구였지만 세상의 어떤 두 사람도 사실 이 두 사람만큼 서로를 격렬히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지간이었다.&nbsp; 농사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나’는 드디어 “드 셀비 색인”의 원고를 다 썼다. 이때 디브니가 살살 꼬이기 시작한다. 책을 내라고. ‘나’ 수준의 향토 연구자가 책을 내려면 자가 출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디브니는 50년 동안 가축거래 사업을 하다가 은퇴를 했으나 여전히 대리인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이웃 매더스 노인에게 돈을 빌리라고 설득한다. 3천 파운드 이상의 현금은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거라나.&nbsp; 그리하여 어느날 밤, 존 디브니와 ‘나’는 속이 빈 쇠막대로 직접 만든 자전거 펌프(디브니)와 삽(‘나’)을 가지고 매더스 노인 집 근처로 갔는데, 노인과 딱 마주치자마자 먼저 디브니가 노인의 뒷목을 힘차게 가격해 거의 목숨을 끊어 놓았고, 이어서 ‘나’더러, 끝장을 내, 나지막하게 말했고, ‘나’는 삽날로 매더스 노인의 턱을 한 번, 두 번, 세 번… n번 찍어 완전히 보내 버린 후, 미리 파놓은 땅 속에 파묻어 버렸다. 노인을 정신없이 찍는 동안 디브니는 노인의 집에 들어가 검은 금고를 어디다 숨겨 놓았다. 이런 세상에.<br>&nbsp; 몇 년 후, 디브니가 금고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어 ‘나’는 그것을 찾으러 노인의 집에 다시 들어갔는데, 에그머니, 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매더스 노인과 맞닥뜨리고 만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금고를 찾으러 집 밖에 나가 노인이 일러준 곳의 경찰서로 가는데, 거기에 경찰관 세 명이 있으니, 첫째가 플렉 경사요, 둘째가 순경 맥크루스킨이고, 셋째가 순경 폭스가 된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 “세 번째 경찰관”은 순경 폭스라는 말씀.&nbsp; 그런데 여기까지, 즉 ‘나’가 경찰들을 만나는 순간, 본격적인 책읽기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모르시지? 이제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br>초판 표지<br>&nbsp; 예를 들어 첨부한 아일랜드 원서의 표지처럼 한 사람이 거울을 들고 더 큰 거울 앞에 서 있으면 n개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기 모습을 보는 행위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울과 거울 사이라면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주아주, 아주아주 짧지만 일정 시간이 필요하니까 거울 속에 n번 반사되어 아주 작은 ‘나’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좀 젊은 ‘나’의 모습일 거란 것.&nbsp; 빛의 속도? 초속 30만킬로미터. 거울과 거울 사이가 1미터라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는 2미터. 빛이 2미터를 왕복하는 시간은 2/300,000,000 초. 혹시 이 시간을 zero 0이 아닌 건 확실하니까 거울 속 나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실 분 있나? 그럼 이 책을 읽지 마시라. 3억 분의 2초는 zero 0이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는 맥크루스킨의 말은 틀렸다.&nbsp; 이 허들을 넘어가도 여전히 골 좀 썩일 일이 쌔고 쌨다. 나 같은 경우엔 각주 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드 셀비의 주장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 내용에 대해 오브라이언이 주석을 많이 첨부했고, 주석의 글씨가 너무 작아, 나는 주석 읽기를 포기했다. 이제 눈이 전 같지 않다. 그걸 읽어야 지금 ‘나’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 터인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독자는 다른 이유로 헤맬 것이다.<br>&nbsp; 하여간 재미있는 책이란 건 확실하다. 읽는 일이 좀 고되서 그렇지. 힘내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데 다만 읽은 다음에, 아니면 읽는 중에라도 내 욕은 하지 마시기 바랄 뿐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94/98/cover150/89324760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94986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헝가리 최후의 왕에 관한 익살극 또는 피카레스크 소설 - [죔레는 거기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0534</link><pubDate>Mon, 01 Jun 2026 05: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105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310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off/k58203281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3105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죔레는 거기에</a><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2024년 작품.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다 합해 11개의 문장이겠지? 아니다.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다 읽어봤는데,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짧은 문장으로 &lt;죔레는 거기에&gt;를 시작한다.<br>&nbsp;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br>&nbsp; 이렇게 결심한 사람은 주인공 카다 요제프. 오늘 1월 6일에 92세가 된 노인이다. 이 정도로 나이가 든 노인이 주인공이면 많은 소설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사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도 그럴까? 안 알려드린다.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확인하시라는 의미에서. &lt;뱅크하임 남작의 귀향&gt;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거 말고도 &lt;헤르쉬트 07769&gt;처럼 크러스너호르커이 역시 종말론적인 무게감 넘치는 작품이 아닌, 읽으면서 키득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도 썼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자체가 익살극이다.<br>&nbsp; 카다 요제프의 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헝가리 역사를 13세기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몽골의 오코타이 칸이 헝가리 왕국을 점령하고 벨러4세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아름다운 공주 욜란더를 자신의 아들이자 위대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카단 칸의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혈통이 문제다. 카단 칸은 노랑머리 여인과의 혼인 사실을 몽골의 왕족한테 보고하지 않았고, 벨러4세 역시 이 혼인을 교황이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 숨겼으나, 카단 칸과 욜란더 사이에 아들이 생긴다면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가를 이어갈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nbsp; 카단 칸이 욜란더를 지극히 사랑해서 철군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헝가리 땅에 살며 성姓 ‘카단’에서 n자를 삭제해 카다라는 이름으로 가계를 이루어, 아름다운 욜란더의 남편이자 아들 카다 벨러의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카다는 5년 후에 숟가락을 놨다. 아직 법적으로 혼인한 적이 없는 욜란더는 이후에 폴란드의 한 공작과 다시 결혼해 갔고, 아들은 헝가리 왕 벨러4세가 거두어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자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자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법. 이때 헝가리 왕가 아르파드 가문의 카다 벨러라는 이름을 받아, 이후 750년간 혈통을 유지해왔으나, 망한 왕조의 왕가들이 늘 그러하듯, 이 후손들도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으니, 마지막 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카다 요제프 되시겠다.<br>&nbsp; 문제는 1944년의 일. 19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란 이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황제들에게 지배를 받은 헝가리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망령을 떠올렸다. 불안은 근거 없이 찾아오는 법. 과거의 그들이 종전과 혼란의 틈을 타 다시 헝가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다급 및 조급증이 생겨 1944년 6월, 당시 왕이 없는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맡은 호르티 미크로시가 아르파드 왕가의 유일한 후손인 젊은 카다 요제프를 부다 성으로 불러서 갔더니, 그곳에는 호르티 섭정을 위시해 총리와 장관들, 독일국가를 대표한 사복입은 사람 한 명과 국회의장, 세르디 유스티니안 대주교 추기경 등이 모여, 카다 요제프를 헝가리 왕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거행해주었다. 이렇게 주장한다.&nbsp; 즉 자신은 벌써 왕이며, 이때 에스테르곰 대주교 추기경이 자기 머리 위에 아르파드 왕조의 창업군주 이슈트반1세가 만든 왕관을 씌어 주었으며, 대관식이 끝난 후에는 섭정이 직접 관을 내려 다시 추기경에게 보관하라고 당부했단다. 호르티 섭정은 카다 요제프가 헝가리 왕국의 왕임은 사실이지만 지금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이를 널리 공포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여 이 영광스러운 대관의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신임 왕 카다 요제프1세를 포함하여 모두 대관식과 새로운 왕의 즉위를 엄중한 비밀로 유지하기 바란다고 당부, 사실상 명령을 내렸다.<br>&nbsp; 다른 것도 아니고 왕위에 관한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한 생명 골로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서 누구보다 당사자인 카다 요제프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합죽이가 됩시다, 합! 입을 다물고 살았건만, 21세기 들어 세월이 하수상해지고 헝가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세력들이 어떻게, 어떻게 카다 요제프의 정체를 알아내 일차 왕림하면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익살극 또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nbsp; 그들은 92세의 노인이지만 그 나이치고 상당히 건강한 수준이며 정신도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할배를 꼼짝도 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그저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이제부터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 당신 앞에서는 앉지도 않겠습니다, 이렇게 예를 차리는 거였다. 이때까지 만해도 노인은 불을 때지 않는 실내에서 난로 위에 전기 풍로를 올려놓고 감자국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다시 전열기로 달려가 국수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말라고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지.&nbsp; 그들이 결국 알아낸 걸까? 이제 막 영국 여왕으로부터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받았고, 오래전에 이미 그 기사단에 선출되었다는 것을?&nbsp; 그럼 이들은 누구일까? 첫번째 방문에는 모두 여덟 명이 왔다. 늙은 요제프는 일곱인지 여덟인지 헛갈리지만. 그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기 관련 기술자, 기타치는 유랑가수, 자동차 도장공, 토종 종마 사육사, 말단 경찰, 고문 회계사, 체구가 다부진 퇴역 원사, ‘교수’라고 불리는 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이들 가운데 기타치는 유랑가수의 이름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 양반이 시도 썼으니 유랑가수라고 해도 좋겠지. 기타도 치지만 동유럽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도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인물. 그럼, 이름이 어디서 왔는데!&nbsp; 이 모임의 이름은 KP. 헝가리어로 Koordinalt Platform, “조율된 플랫폼.” 왕정복고 플랫폼 회원들이다.<br>&nbsp; KP 단원이 두번째로 방문을 했을 때, 요제프는 옷장 위에서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꺼내 보여주며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수여하며 자신한테 보낸 편지, 사실은 편지 봉투를 보여준다. 에게를로바 시, 탄치치 미하이 거리 23/d번지. 아, 또 주소가 나온다. 헤르쉬트 07769에 이어. 세번째 방문 때는 훨씬 많은 단원들이 모였는데, 이때는 헝가리인이 미국으로 밀반출했던 이슈트반1세의 왕관을 1978년 1월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되돌려줄 때 요제프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도 보여준다. 당연히 원본은 훼손 방지를 위해 숨겨 놓았단다.&nbsp; 카다 요제프의 집안도 헝가리의 세게드에서 살다가 19세기 말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에는 카다 집안의 법적 상속자로 아내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언덕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 미하이 거리 23/d번지로 옮겨왔다. 슬하에 딸 하나만 두어 카다 가문의 맥은 자신 대에서 막을 내려야 할 터. 그래도 자기가 카다 가문이 헝가리 아르파드 왕조의 맥을 이은 것처럼 두 외손자 가운데 하나가 대를 이어 왕조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아르파드 왕조를 계승하고 이미 1944년에 대관식까지 한 정식 왕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변했으니 폐하라는 거북한 호칭 말고 그저 “요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를 청한다.<br>&nbsp; 여기서 독자가 결정해야 할 것은, 요지 아저씨가 주장한 것들,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영국 여왕으로부터 받았고, 이미 기사단 신분으로 기사 작위도 얻었으며, 벌써 대관식을 거행한 정식 왕이기 때문에 새롭게 대관식을 여는 번거로운 절차 말고, 그냥 왕의 자리, 왕의 의자가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가서 앉기만 하면 끝난다는 주장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거다. 이에 따라 소설을 이해하는/따라가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텐데, 한꺼번에 두 가지 선택을 다 감안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나다. 한편으로는 정식 왕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노망난 후안무치의 설레발꾼이 벌이는 난장판을 구경할 수 있어서 넘치게 즐길 수 있으니까.&nbsp; 근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거나, 왕을 참칭하는 행위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사실 목숨을 내놓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작업이다. 아무리 헝가리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만 감히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다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크러스너호르커이 말고 다른 한 명을 고르라면 작가가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한 토마스 핀천 정도. 또 있나? &lt;황제를 위하여&gt;를 쓴 이문열?&nbsp;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팬이여, 일독을 망설이지 마시라.<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150/k58203281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55988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크로테스크하고 시니컬한 노랫말 - [결혼식 / 소시민의 칠거지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5256</link><pubDate>Sat, 30 May 2026 05: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52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152&TPaperId=173052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8/94/coveroff/k5821351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152&TPaperId=173052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혼식 / 소시민의 칠거지악</a><br/>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승진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 브레히트는 좀 읽었다. 웃긴게, 나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을 통해 브레히트를 알게 된 점. 이 책에서도 &lt;결혼식&gt;보다 &lt;소시민의 칠거지악&gt;을 읽기 위해 골랐는데, 독일어로(움라우트 표기 생략) Die Sieben Todsunden der Kleinburger, 일곱가지 죽을 죄. 이것 역시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먼저 들었다. 근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더라는 것. 이 작품이 바일이 브레히트한테 오페라 작곡을 위한 대본 성격의 희곡이 아니라, 발레극의 대본을 써달라고 해서 망명지인 파리에서 일부일 만에 썼다고, 역자 해설에 나온다. 해설을 읽은 다음에야 오페라가 이해가 되는 거였다.<br>&nbsp; 브레히트는 나치의 마수를 피해 모스크바에서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매카시 선풍이 불자 고국인 독일의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공산주의자. 그리하여 &lt;소시민…&gt;의 칠거지악, 일곱가지 죽을 죄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돈을 벌고 큰 집을 짓는 성공을 하기 위하여 저지르면 안 되는 죄목을 노래한다. 아주 지독한 반어법을 썼다.<br>&nbsp; 첫째. 불의를 저지를 때 게으름을 피우는 행위&nbsp; 둘째. 자신의 상품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자만&nbsp; 셋째. 비열함에 대해 분노를 표하는 행위&nbsp; 넷째. 스스로를 해하는 절제 없는 폭식&nbsp; 다섯째.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랑&nbsp; 여섯째. 배척당할 수 있게 탐욕을 드러내는 행위&nbsp; 일곱째. 더러운 방식으로 성공한 행복한 사람을 시기하는 행위<br><br><br>&nbsp; 죽을 죄가 저러니 가사를 읽고 도무지 이게 무슨 내용인 줄 꿈 속에서나마 알아차릴 수가 있었으랴. 안나 1과 안나 2는 같은 사람으로 봐도 좋은데, 이들이 성공을 위하여 루이지애나에서 도시로 흘러든다. 출발한 곳 루이지애나에서 부르는 노래가 첫번째 죽을 죄. 이것이 서곡. 1곡은 그냥 도시. 뉴올리언스 정도로 보면 된다. 이곳에서부터 안나 자매는 온갖 나쁜짓을 하는 데 게으름이 없다. 2곡은 멤피스. 카바레 댄서로 취직을 하고, 3곡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배우를 한다. 4곡의 필라델피아에서 스타가 되었는데 안나2가 먹성이 좋아 살이 찌기 시작해 폭식이 죽을 죄가 되는 것이고, 5곡은 보스톤에서 부자 남자 에드워드와 가난한 남자 아돌프 가운데 부자를 꼬인다. 이어 6곡으로 가면 테네시, 부자 남자 에드워드는 안나2 때문에 거렁뱅이가 됐고 이를 비관해 권총자살 해버렸다. 이어서 두어 명의 남자도 목을 매든지 빌딩 옥상에서 자유낙하 해버렸다. 마지막 7곡에서 두 안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루이지애나로 돌아와 큰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산다. 나는 행복하니까 시기하지 말라는 것. 흠, 그랬군.&nbsp; 그런데 &lt;소시민…&gt;은 단연 무대 공연을 보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 유튜브에 Seven deadly sin을 검색하면 화려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웃기고, 그로테스크하며 한편으로는 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브레히트-바일 콤비가 원래 좀 그렇다.<br>&nbsp; 사실은 원래 책의 목적인 &lt;소시민의 칠거지악&gt;보다 &lt;결혼식&gt;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nbsp; 단막극. 결혼식이 막 끝나고 신혼부부 마리아와 야콥의 집에서 축하연을 하며 생긴 일이다. 처음엔 정상적인 파티로 시작하지만 점점 엉망진창이 된다. 야콥은 아마추어치고 자신의 손재주에 자만심이 있어서 집안의 가구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 아교도 자기가 끓여 나무를 붙였는데 극의 후반으로 가면 이 아교에서 나는 냄새가 등장인물들을 환장하게 만들어버린다. 근데 이건 나중 일이고 처음엔 축하연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댄다. 그러니 소통도 없고 오직 시끄러울 수밖에. 그리고 당연히 말하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과 또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생길 수밖에. 그게 점점 심해지면 나중엔 신랑, 신부, 마리아와 야콥 사이에도 껄끄럽게 변한다.&nbsp; 각자 떠들어대다가 드디어 춤 출 시간이 되지만, 전통적으로 제일 첫 춤은 신혼부부가 마빡을 맞대고 추어야 하거늘 각자 다른 파트너를 골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조금 후에는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가구가 뿌지직 부러지거나 다리가 떨어지거나 하여간 뭔가가 다 망가지기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 마리아의 동생은 손님으로 온 남자와 즉석 연애를 시작하고, 하객 한 명은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을 한 것을 은근히 비꼰다. 이 시절이 1920년대라서 혼전임신이 상당한 수치였던 모양이다. 사태가 심각해진데다가 앞에서 말한 아교 냄새, 악취가 진동해 축하객들이 모두 퇴장한다.&nbsp; 드디어 둘만 남은 신혼부부. 이들은 젊은 사람답게 금방 화해하고, 이제 남은 게 딱 하나 있지? 그걸 치루기 위하여 야콥이 마리아를 번쩍 들고 침실로 가서, 침대 위에 내려놓는 순간, 와지끈, 침대마저 부서지고 만다.&nbsp; 역자 이승진 원광대 명예교수는 이 작품을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 개인의 소멸 같은 말을 보태 설명하고 있다. &lt;소시민…&gt;은 그렇게 해석을 해야 감상이 가능하지만, &lt;결혼식&gt;은 그저 재미있는 코미디로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브레히트 참 매력 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78/94/cover150/k5821351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7894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땅이면 만주 땅은 우리 땅? - [오픈 시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3359</link><pubDate>Fri, 29 May 2026 0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33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065&TPaperId=17303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2/35/coveroff/89364390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065&TPaperId=173033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픈 시티</a><br/>테주 콜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br/></td></tr></table><br/>.&nbsp; 1975년에 미국 미시간주에서 나이지리아 부모의 네 자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아마도 테주 콜이요루바족인 거 같은데,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가운데 이보족이 아닌 종족은 테주 콜이 처음이다. 치누아 아체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치고지에 오비오마, 전부 이보족이다. 따라서 작품 속에 종족간 분쟁에 따른 피해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나이지리아 작가이기도 하다.&nbsp; 나이지리아의 있는 집 사람들은 대개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귀국해 고급관리 등 지배계층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테주 콜의 부모도 미국으로 가서 대학에 다니다가 테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 엄마와 어린 테주만 먼저 나이지리아에 돌아온다. 아빠는 MBA를 딴 뒤에 귀국해 가족과 합류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테주 콜은 17세가 되자 자기 출생지인 미시간 칼라마주로 돌아가 칼라마주 칼리지에서 학사, 이후 미시간 주립대인 것 같은데 거기 의과대학에 진학했다가 중도작파하고 런던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대학으로 가서 미술사 석사를 받았다.&nbsp; 그리하여 이이가 쓴 첫 장편소설 &lt;오픈 시티&gt;의 주인공 줄리어스도 (컬럼비아 대학이 있는) 뉴욕의 종합병원에서 정신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 중인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으로 설정했다. 요루바족이기는 한데, 아빠가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엄마는 금발의 독일 여자로 설정했다. 유럽-아프리카 혼혈로 한 이유는, 작품 속에 줄리어스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가서 3주 정도 산책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br>&nbsp;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무려 1년 가까이 도서관 관심도서로 올려놓았던 건 또 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지금을 잊었지만.&nbsp; 하여간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장편소설일 경우에 메모할 준비를 딱 마친 상태에서 읽기 시작하는데, &lt;오픈 시티&gt;는 애초에 메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도시를 산책하면서 세상 오만 것에 대하여 사색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산책? 색깔과 방향은 다르지만 로베르트 발저나 W.G. 제발트의 문법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다.&nbsp; 그래서 지금 이틀 전에 읽은 책의 독후감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반면에 읽을 때는 좀 더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뭐 다 좋을 수 있나, 어디.&nbsp;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주인공 줄리어스가 참 나쁜 의사새끼라는 거였다. 학부 3학년 시절 은사였고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사이토 교수를 찾아가 “그에게 최근의 상담 사례 중 하나를 들려주었다.” 오순절교회파라는 보수적인 기독교들로 “그들의 하나뿐인 열세살짜리 아들이 나중에 심각한 불임 위험을 야기하는 백혈병 치료를 곧 받을 예정이었다. 소아과 의사가 그 가족에게 건넨 조언은 소년의 정액을 냉동 보관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했을 때 아내와 인공수정을 하면 자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였다.”&nbsp; 이걸 지난 시절의 은사한테 이야기해준다고? 의사의 비밀준수 의무는 내다 버렸어? 세상에 둘도 없는 지성으로 묘사하는 은사 사이토는 그걸 듣고 자빠졌어? 뭐 좀 이상하다.&nbsp; 저 뒤에 가면 정신의학과 의사들도 환자에게 “미쳤다”라는 말을 환자에게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면서, 사실 정신의학과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이 남들한테 인상깊게 해 줄 수 있는 스토리가 무척 많다고 지껄이기도 하는데, 이런 걸 듣는 초기 우울증 예비환자가 될랑말랑한 인간은 더럽게 기분이 나쁘더라는 거, 나빠지더라는 거. 가뜩이나 (특히 우리나라 또는 내 경우) 상담의 진입장벽이 높은 진료과목이 정신의학과인데, 거기 전임의 과정에 있는 새끼 의사이자 불과 1년 후에 개인병원을 동업해 개업할 작자가 이런 수준이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지.&nbsp; 그렇다. 저 위에 말한 오순절교회파 가족의 열세살짜리 소년 이야기 하나가 아니라 몇 개가 더 나온다. 그러면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nbsp; “나는 친구들이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내 환자들에 관해, 외계인의 방문과 정부의 감시, 벽 속의 목소리, 가족의 음모에 대한 의심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신질환, 특히 편집증 환자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언제나 많았다.” (p.396~397)<br>&nbsp; 딱 위의 생각을 먼저 해서 그렇지 사실 이 책에는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nbsp; 특히 이스라엘과 유대인, 그리고 미국에 의하여 자행되는 폭력이 그렇다. 이 독후감을 업로드할 때는 전쟁이 끝났는지 아직 진행중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지역 점령 여부를 보고 있자면, 작중 브뤼셀에서 줄리어스한테 아프리카인 철학자이자 PC방 점원인 파루크가 하는 말이 틀린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뭐라 했느냐 하면:&nbsp; “미국이 알카에다야.” 이어서 “미국은 일종의 알카에다야.”&nbsp;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폭파한 알카에다가 아니라 그들과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에서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력의 근거는 2차 세계대전 앞뒤로 독일 나치에 의하여 학살당한 유대인 6백만명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 6백만명의 목숨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했고, 땅을 빼앗았고, 그걸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2천년 전에 자기 조상들이 살았다는 이유로. 그럼 우리나라의 조상 가운데 한 국가인 고구려가 중국의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지배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여진인 등을 다 몰아내고 깔고 앉아도 되겠네?&nbsp; 파루크는 계속 말한다.&nbsp;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치 수용소를 지었나? 그리고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어떡하고? 유대인이 아니라서 그들의 죽음은 의미가 덜한 건가? 육백만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를 말해줄게. 그건 유대인이 선택된 민족이라서야. 캄보디아인들은 잊어. 미국 흑인들은 잊어. 이게 유일무이한 고통이야 하는 식이지 (중략) 유대인들은 세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이용해. 난 사실 정확한 숫자가 뭔지 아무 관심 없어. 젠장, 모든 죽음은 고통이야.” (p.248~249)&nbsp; 평소 내가 하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자기 종족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자기들도 다른 종족을 죽여도 된다고 믿는 이스라엘. 나는 현대의 이스라엘이 싫다. 테주 콜도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거 같은데 스스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여차하면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것이 “반유대주의”를 주장한다고 몰매를 맞을 수 있단다. 우리나라는 모르겠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근거가 있을 거 같다.<br>&nbsp; 이렇게 테주 콜, 또는 주인공 줄리어스는 뉴욕과 브뤼셀 거리거리를 산책하면서 주로 폭력에 대한 심사숙고를 펼쳐간다. 그러다가 저 뒷부분에 가면 줄리어스도 뉴욕의 거리에서 10대 청소년 세 명에게 얻어 터지고 발로 차여 꿰매거나, 이가 부러지거나 빠지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엉망이 되고 손을 밟혀 퉁퉁 붓고, 휴대폰과 지갑을 뺏기는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nbsp; 그리고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읽을 분들을 위해 어떤 것인지 지금 밝힐 수 없지만 줄리어스 역시 한 인간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들 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잊고 살았거나, 그것이 피해자에게 그렇게 중요한 폭력이었는지 감을 잡지 못했거나, 잊지도 않았고 감을 못 잡지도 않았지만 굳이 끄집어내어 죄책감에 시달리기 싫었을 수도 있다.&nbsp; 결국 누구나 폭행을 당하고 폭행을 저지르며 산다. 그렇게 살기는 한다. 나는 아니라고? 그걸 누가 알아. 폭력인 줄 모르면서 저지르는 폭력. 그걸 당신은 한 번도 저질러보지 않았다고?&nbsp; 사는 건 복잡하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62/35/cover150/89364390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62359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기대가 너무 컸다 - [생활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1106</link><pubDate>Thu, 28 May 2026 0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3011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030400&TPaperId=173011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54/21/coveroff/k5220304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030400&TPaperId=173011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생활수업</a><br/>왕웨이롄 지음,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08월<br/></td></tr></table><br/>.&nbsp; 《책물고기》를 읽고 백일이 지나 다시 왕웨이롄을 읽는다. 인상깊은 작가였나보다. 이이의 이름이 눈에 밟히자마자 서슴지않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언제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책물고기》가 2015년, 《생활수업》이 2022년. 7년 후의 작품들. 그동안 왕웨이롄은 광저우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직업이 있으면 아무래도 긴 작품을 쓰기 힘들겠지. 전작에는 작품이 제법 긴 분량의 단편을 실은 소설집이었던 반면, 이번 책엔 한 편 정도만 분량이 있고 나머지 일곱은 그렇지 않다. 페이지 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nbsp; 뭐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일 긴 작품 &lt;침묵천사&gt;가 제일 기억에 남고 어제 읽었는데 오늘 새벽에 독후감 쓰려니 &lt;침묵천사&gt; 말고는 기억에 남은 작품이, 아쉽게도, 없다. 다시 뒤적이면 생각이야 나겠지. 하지만 탁, 떠오르는 게 없는 바에 새삼스레 또 뒤적이고 싶지 않다. 그제 읽은 주이현의 소설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는 미리 페이지 표시를 해둔 인용 빼고 전부 기억이 나 바로 전에, 한 십분 전쯤에 독후감을 썼다. 그러니 왕 선생은 조금 더 분발하셔야겠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열 받지 마시라.<br>&nbsp; &lt;침묵천사&gt;. 대학 다니며 연애를 해, 작가가 말한대로 쓰자면, 섹스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더니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 듣는 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발성 기관에 하자가 있는 거 같다. 너무 젊어서 결혼을 하면, 예전 봉건시대야 의무사항이라 이냥저냥 평생 살 수 있었다고 쳐도, 지금 시대는 한 때의 기분 또는 흥분에 좌지우지된 경우가 많고, 이 커플 역시 젊음 특유의 불길을 감당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까지 이른 전형적인 젊은 부부로, 사는 내내 폭풍 같은 부부싸움으로 일관하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들이 나온 것에 결정적으로 실망한 아내가, 자기 인감도장 찍은 이혼서류를 내밀고 그냥 나가버렸다. 이래서 홀아비와 어린 아들 둘만 사는 가족과 아파트가 무대.&nbsp; 작가가 남자니까 이 홀아비의 직업도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착해 빠진 남자. 중국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 이 집도 부부가 함께 벌어 아파트 융자금을 갚아 나갔다. 그러다 아내가 나가버려 혼자 벌이로 융자금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아파트를 팔까 했지만, 아들 샤오이한테 엄마의 기억이 담긴 집을 지켜주고 싶어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남는 방 하나를 월세 주기로 했다. 이를 알고 아빠의 절친이 자기 고향 친척 가운데 괜찮은 여성 샤오징을 소개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nbsp; 그러면 한 집에 열 살 정도 먹은 사내 아이와, 아이 아빠, 그리고 비교적 젊은 여성이 동거하는 입장.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지? 게다가 아빠는 여지없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점잖고, 예의 바르고, 영낙없는 책상물림에, 떠난 아내 이후에 다른 여자를 안아본 적도 없는 순정파이자, 아이고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다. 말 못하는 아이야 제목대로 침묵하는 천사니까 착하기 이를 데 없고, 이런 집에 함께 살기로 절친이 보증한 여성이니 또 말 해 뭐할까, 이하 동문이지. 이 정도면 읽으면서 이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대로, 순서대로, 각본대로 똑바로 간다면 어찌 왕웨이롄일소냐, 하는 심정도 든다. 그렇겠지?<br>&nbsp; 중국의 저 북서쪽 끝자락 산시성 사람 윌리엄 왕의 솜씨가 좋다. 읽는 맛도 있고 다 그런데, 전작 《책물고기》 만큼은 아니었다. 혹시 모른다. 저번엔 기대하지 않았고, 이번에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54/21/cover150/k5220304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54214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누군가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9213</link><pubDate>Wed, 27 May 2026 05: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9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89&TPaperId=17299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5/94/coveroff/89320450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89&TPaperId=17299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a><br/>주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주이현. 드디어 2000년생, 21세기 출생 작가의 책을 읽는다. 아직 동국대 문창과를 졸업하지도 않았는데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하더니 벌써 소설집을 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는 데뷔작을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nbsp; 나는 이 책에서 &lt;보아&gt;를 제일 먼저 읽었다. 네 번째 순서로 실린 작품이다. 2024년 6월 웹진 &lt;비유&gt;에 발표했던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다음 날 아침에 데뷔작이자 표제작 &lt;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gt;부터 순서대로. 일정상 퇴근 시간에 맞추느라 제일 짧은 거 하나만 더 읽고 가자, 싶어서 고른 것이지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br>&nbsp; &lt;보아&gt;를 읽으면서, 앗, 또 한 명의 문제 작가가 나온 건가? 이렇게 생각했다. 강렬한 문장들. 첫 문단부터 그러했다. 두번째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br>&nbsp; “내가 홀로 먹고 자고 걸을 수 있는 작은 사람이 되었을 때, 너는 이미 기체와 빛으로 존재하기를 그만 둔 뒤였지. 그러는 대신 너는 그늘과 그림자로 존재하기를 택한 것 같았다. 너는 나의 눈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일방적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너를 절대로 돌아볼 수 없었어. 그래도 나는 네가 나의 뒷면에, 내 시선의 반대편에, 모든 종류의 사각지대에 늘 머무르고 있음을 알았다.”&nbsp; (p.256)<br>&nbsp; 보아?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스타 가수이자 탤런트 보아, 권보아? 그이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보아는, 화자를 보는 인격이다.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 비슷한 것. 예컨대 내가 거울을 보면 거울 속의 또다른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로부터 ‘보임’을 당할 때, 그 보는 행위를 하는 사람 비슷한 것. 어쩌면 또다른 나. 프레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무한 공간 속의 나.&nbsp; 사실 나를 관찰하는 무엇에 관한 생각은 누구나 한 번씩 하는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일단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읽었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위 인용문에서 화자 ‘나’가 “홀로 먹고 자고 걸을 수 있는 작은 사람이 되었을 때”는 정말로 젖먹이가 유아로 성장했을 때를 뜻한다. 저 1950년대 장용학 식으로 말하자면 화자 ‘나’에게 이름이라는 속박이 주어져 ‘나’의 행복이 거덜난 순간과 비슷할 수 있다. 그렇게 화자 ‘나’는 유아가 되고, 소년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이때 ‘나’ 앞에 다시 등장한 보아. 이때는:&nbsp;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아이들을, 어떤 어른들을, 나아가 어떤 행인들을 띄엄띄엄 건너다니는 너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 지,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 지, 어떤 식으로 소화해내야 할지 늘 고민스러웠지. 보아, 네가 내게서 떠나 있던 동안, 내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상상해본 적 있어? 없다면 당장 시작해봐. 어땠을까? 나는 슬펐을까? 외로웠을까? 두려웠을까? 반대로 아주 멀쩡했을 수도 있지만, 전부 아니야. 나는 화가 났다. 늘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nbsp; 이렇게 주이현은 자신의 격동하던 학창 시절을 화자 ‘나’와 보아를 통해 이야기한다.<br>&nbsp; 다음날, 일찌감치 출근한 열람실에서 이이의 데뷔작을 읽는다. &lt;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gt;. 역시 강렬한 문장들. 예를 들어보자.<br>&nbsp; “무심코 돌아본 곳에 묽은 액체처럼 엎질러진 자신의 흔적들이 보일 때, 멈추지 않고 한 뼘씩 앞으로, 도 아래로 흘러가는 그것의 궤적을 발견할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밝고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곤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나 율은 정작 그런 것들이 궁금한 적이 없었다. 율이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율에 의해 모서리부터 젖어가고 있는 루와 주안의 입장, 생각, 감상 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는 율의 발소리가 그들의 머릿속에서도 제대로 울려 퍼지고 있는가, 들리고 있는가, 눈치채고 있는가, 대비하고 있는가, 무엇이, 바뀌어가고 있는가, 율은 그런 것이 궁금했다.”&nbsp; (p.80~81)<br>&nbsp; 한 컷을 중첩에 중첩을 보태 묘사하며 긴 문장 속에 담는다. 긴 문장을 읽으면서 즐거울 수 있는 때는 문장 안에 리듬감이 담겨 있을 때일 경우가 많다. 그러면 문장이 길더라도 독자가 알아서 호흡을 유지하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다.&nbsp; 내가 우스개로 자주 말하는 “소설작법”에 의하면 긴 문장은 지옥이다. 그러나 간혹 사실이 아니다.&nbsp; 하여간 데뷔작이자 표제작 &lt;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gt;인 P시는, 아마도 작가가 직접 경험해본, 또는 우연히 살던 곳(이나 근처)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는 땅꺼짐, 싱크홀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껏 내가 매체에서 읽어보지 못한 정도의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해 P시의 상당한 부분이 꺼진 땅 속에 함몰되는 광경을 담았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시선은 “설탕조각처럼 부서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에 뭉개져 죽어버”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있지 않고, 성별이 확실하지 않은 등장인물 루, 주안, 그리고 율의 이탈離脫에 있다.<br>&nbsp; 연달아 읽은 이 두 작품에 국한해 말하자면, 나는 주이현에게 반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책을 더 읽었다. 그래서 좀 허탈했다.&nbsp; 주이현은,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학생이라고 면피하려는 생각이 있었을까? 제일 마지막에 실은 &lt;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gt;만 이야기해보자. 데뷔 즉 등단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단 책을 냈으면, 독자가 그 책을 읽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건 곧 프로페셔널, 즉 프로 작가여야 한다는 뜻이다. 주이현도 전업작가로 나선 걸로 아는데, 전업작가가 120쪽에 육박하는 짧지 않은 분량의 “습작”을 독자에게 읽어보라고 내놓으면 안 되지. 프로면 프로답게 전에 쓴, ‘쓴’이 아니고 ‘써본’ 습작 정도는 노트북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없었을까?&nbsp; 길게 썼다가 지웠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서.&nbsp;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독자가 주이현의 작품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또 한 독자가 주이현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고, 다른 또 한 명의 독자가 주이현의 작품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것도 무겁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건필을 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5/94/cover150/89320450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5946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레싱은 휴머니스트 - [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7380</link><pubDate>Tue, 26 May 2026 05: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73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1113&TPaperId=172973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80/6/coveroff/89310111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1113&TPaperId=172973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a><br/>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08월<br/></td></tr></table><br/>.&nbsp; 도리스 레싱을 읽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작품이 해피엔드로 끝나기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레싱이 심술 사나운 성격이라 그런 건 아니고, 사람의 심상과 마음의 변동, 이에 따른 행동의 이중성 같은 것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그게 너무 솔직한 바람에 독자는 자기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박아 놓고 절대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지나간 실수, 잘못, 악의, 행위 같은 것들을 기어이 들춰내게 만든다. 정말 가차없는 칼날이다.&nbsp; 나는 레싱을 사십대 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단 한 번도 즐겁게 읽지 못했다. 읽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어딘가 좀 불편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가. 독자에게 결코 친절을 베풀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작가로 새겨져 있다. 하긴 자신의 일생이 참 다사다난, 다양해서 그럴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그랬다.&nbsp;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이 소설집 《사랑하는 습관》을 읽으면서, 일곱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면서, 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작품들이 대개 그랬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변화, 그걸 변심이라 부르던, 질투라고 하던, 그냥 변덕이라고 여기던 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 결국 생각과 행동의 일관을 깨뜨리는 현상, 전에는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이제는 등장인물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슬퍼진 거 같다. 내가 내 마음, 정서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것 같다”라고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nbsp; 레싱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울해지는 대신 슬퍼지는 건,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사람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남자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의도적으로 남자에게 상처를 주어도, 레싱은 딱 한 장면을 강조하여 드러난 것만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의 바꿀 수 없는 성향일 수도 있고, 환경 때문에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또한 많고 많은 사람 사는 일에 그런 것도 생길 수 있다고 여긴다.&nbsp; 사람들이 도리스 레싱을 연상하면 페르시아 출생과 아프리카에서의 성장, 제1,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결혼, 가정, 모성, 계급, 이데올로기의 진보성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구분 또는 특징지우려 하는데, 이제 나는 이이의 이런 모든 성향을 다 합해 휴머니스트라 말하고 싶다.&nbsp; 레싱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뀔 줄 나도 몰랐다. 처음 읽은 이이의 작품이 아마 거의 대부분 독자들과 비슷할 텐데, &lt;다섯째 아이&gt;, 이어서 &lt;런던 스케치&gt; 이런 순서로 읽었다. 하여간 불편한 작품들. 지금 다시 읽어도 불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암울하고, 무겁고, 두렵기도 하고, 내가 레싱의 책이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될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을 만큼 거리감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레싱에게 휴머니스트라고 하게 됐을까? 여전히 레싱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비극 속에서 슬픔을 발견하고, 가끔 슬픈 비극은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혹시 내가 그걸 본 것일까? 설마. 어떻게 불편한 레싱 안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러나 봤을 것이다.&nbsp; 이 책은 1957년에 초판 출간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후 1979년에 레싱은 다른 작품들을 추가해 《19호실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놓았다. 문예출판사는 1979년에 추가한 작품들은 따로 골라 《19호실로 가다》로, 이전 초판본은 원래대로 《사랑하는 습관》으로 냈다. 그래서 《사랑하는 습관》의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 초반까지가 시간적 공간이다. 런던은 맹렬하게 공습을 받고 있어서 3년간 연애하던 약혼자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걷어찬 아가씨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아버지가 산산이 부서져 죽은 이야기도 나오고,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동계 휴양지로 여행간 영국인 연인이 아직 패전의 응결을 해소하지 못한 독일인과의 관계도 이야기한다.&nbsp; 전후의 불안정한 시대. 뭐든지 다 불안했던 시기. 절정기를 누리기 시작한 아메리카와 달리 전반적으로 가난한 유럽인들, 동쪽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볼셰비키 물결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시작, 스탈린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국 시민들,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바람에 공급과잉이 되어버린 젊은 아가씨들, 아직도 군데군데 폐허로 남은 옛 시가지, 이 와중에 큰 돈을 번 새로운 부르주아, 아직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옛 귀족 떨거지들. 이런 것들이 모두 레싱의 레이더에 걸린다. 여전히 조금은 암울하고, 무거우며, 전망도 보이지 않지만 삼십대 막바지에 이른 레싱은,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일찍 달관했는지 조금씩 휴머니스트가 되고 있었던 모양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80/6/cover150/89310111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480069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드러나는 날 것의 삶 - [뜨거운 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5596</link><pubDate>Mon, 25 May 2026 0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55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831525&TPaperId=172955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64/46/coveroff/k5428315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831525&TPaperId=172955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뜨거운 피</a><br/>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02월<br/></td></tr></table><br/>.&nbsp; 2년 전에 네미롭스키 선집의 1번으로 출간한 《무도회》를 재미있게 읽고 네미롭스키를 더 읽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가 금세 잊은 적 있다. 이번달에 책을 읽다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여행 중에 늘 가지고 다니지만 정작 집중해 읽지는 못하는 책이 네미롭스키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차,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도착 며칠 만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은 이이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단박 읽기로 결정한 것이 저번에는 소설집이었으니, 이번엔 장편소설 &lt;뜨거운 피&gt;였다.<br>&nbsp; 주인공 화자의 이름은 실베스트르. 그러나 30년 전쯤 ‘나’를 사랑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가 이탈리아의 곤돌라 뱃사공을 닮았다고 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실비오’였다. 그래서 이 시골 동네의 별로 친하지 않은 주민들은 ‘나’를 실베스트르라고 원래 이름으로 부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웃과 친척은 대개 실비오라고 한다. 독후감은 실비오라는 3인칭 별명으로 쓰겠다. 나는 3인칭으로 쓰는 게 편하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편해서. 편한 건 거의 언제나 좋은 거니까.&nbsp; 사실 이 소설의 중요한 스토리 가운데 하나가 누가 실베스트르에게 실비오라는 별명을 지었는지, 이걸 추리하고 맞추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독후감에 입도 벙긋하지 않을 터이다. 이 책, 나는 내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어 오랜만에 별점 만점을 줄 수 있을 정도, 웬만하면 당신도 직접 ‘아리따운 아가씨’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럼 이게 추리극일까? 읽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다. 혼외 연애를 둘러싼 치정극이라면 그게 제일 재미있는 추리극 아닌가? 그럼 작품 속 이야기를 소개해보자.<br>&nbsp; 장소는 프랑스 중부의 고집 센 농부들이 모여 사는 농장지대. 주민들은 대개 비사교적이며 형편이 넉넉하다. 자기 땅에서 이웃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랜 관습으로 굳어져 남의 일에 자신이 끼어들지 않게 매사에 조심한다. 외부인에게 배타적이고, 커뮤니티 안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 따돌림을 받으면 거의 암묵적 압박을 받아 헐값에 자기의 땅과 시설을 다른 주민들에게 팔아 치우고 타지로 떠날 수밖에 없게 유도한다. 농민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땅 욕심이 많아 이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새롭게 큰 농장주가 한 명씩 생긴다. 에밀 졸라의 작품 &lt;대지&gt;에 나오는 푸앙 가문 사람들을 연상하면 아마 비슷할 지도.&nbsp; 실비오는 늙고 가난한데다가 홀아비 신세. 아니, 결혼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숲 깊은 허름한 집에서 은둔하며 말년을 보내고 있다. 실비오는 젊은 시절 이 답답한 고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마자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아 그걸 차근차근 팔기 시작한다. 젊은 청년이 부동산을 급하게 파는데 그게 제값을 받을 수 있겠어? 그리고 이런 완고한 동네 사람들이 땅을 팔아 현금을 만들어 자기 고장을 뜨려고 하는 청년에게 제 값을 주고 그걸 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관습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터이지만, 어머니 정도는 실비오가 얼마든지 구워 삶을 수 있어서 과감하게 그렇게 했다. 실비오는 현금을 가지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 가서 사업을 벌였다. 구리, 향신료, 금 등. 취급품목은 화려했으나 용기와 배포만 있지 경험은 하나도 없는 초짜 사장은 당연히 탈탈 털려 불과 2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잠깐 연애를 해 실베스트르 대신 실비오라는 별호를 얻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늙어가고 있다.<br>&nbsp; 그래도 실비오가 성격이 올바라 책을 시작하는 가을 저녁 무렵 그의 작은 집에 사촌 에라르 부부와 아이들이 놀러 와서 불 앞에 모여 가벼운 펀치를 마시고 있는 것으로 막이 올라간다. 프랑수아와 엘렌 사이에 맏딸 콜레트가 있고, 아래로 두 아들과 어린 딸을 두어 2남2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콜레트와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 부모, 프랑수아와 엘렌 부부는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조금의 도덕적 실금도 가지 않은 채 결혼 20여 년이 지나도록 진실한 사랑을 유지하고 있는 모범가족이다. 오늘 모임은 콜레트의 약혼자 장 도랭을 실비오 아저씨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nbsp; 실비오가 보기에 사위 후보 장이 장인자리 프랑수아와 비슷한 성격인 듯하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거의 여성적이고 아내가 지배하기 쉬운 남편 스타일. 매사에 조심스럽고 비사교적이며 수줍음을 타기까지 하는 부류의 남자들.&nbsp; 이 가족모임에서 콜레트는 습관적으로 자기 부모가 결혼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달라고 조른다. 핑계김에 그걸 요약해보자.<br>&nbsp; 엘렌의 아버지, 그러니까 콜레트의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두 번 했다. 첫째 아내가 낳은 딸이 엘렌. 두번째 아내도 첫 결혼에서 얻은 딸 하나를 데려왔다. 세실 쿠드레. 세실이 엘렌의 의붓 언니. 계모는 기가 센 여자였던 반면에 세실은 어디가 좀 모자라 보인다는 평을 얻었다. 집에서 결혼시키기 위해 몇 번 맞선 자리를 마련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해서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다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훗날 갓난 여자 아이를 입양해 이름을 브리지트 드클로라고 짓고 나름대로 잘 키우다가 브리지트가 성년이 될 즈음 일찍 세상 떴다.&nbsp; 프랑수아의 아버지는 프랑수아를 원래 세실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래 부자가 엘렌의 집에 가보니 뚱한 성격의 세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아 그냥 돌아가려고 현관문을 열자 눈 오는 날 양 볼이 빨갛게 얼었으면서도 짓궂은 남자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열세 살 소녀가 눈에 띄었다. 사랑은 종종 한 눈으로 결정된다. 프랑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된 프랑수아는 곧장, 지금은 아니지만 아이가 적당한 나이 열여덟 살이 되면 꼭 결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일단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아 파리로 떠나 열심히 일했다.&nbsp; 당시 엘렌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늙어 병이 들었고, 계모는 엘렌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아마도 엘렌은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순 살이 넘은 부자 늙은이를 선택해 열일곱 살 때 결혼을 했다. 당연히 둘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남편은 모르겠는데 아내 엘렌의 마음 속에 사랑은 한 오라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라는 의무는 다 하겠다고 다짐한 엘렌. 이이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가히 홍살문이라도 하나 세워줄 만했다. 결국 심판의 날이 왔을 때, 남편은 엘렌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정도의 유산만 물려주고, 자기가 평생 모은 거의 전부의 재산은 자기 가문의 형제, 조카들에게 유증해버렸다.&nbsp; 과부가 된 엘렌. 지금 프랑수아가 오면 당장 결혼할 수 있을 터인데 그는 보헤미아에서 교사로 지내고 있어 적어도 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젊디 젊은 남녀, 프랑수아와 엘렌. 그토록 먼 거리에서 각자 홀로 지내며 정말 멀리 떨어진 연인만 사랑하고, 생각하고, 서로를 연상하면서 몸을 달래고 있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럴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사람 사는 일에 집중해, 사람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렌 네미롭스키. 가히 눈이 매섭다.&nbsp; 엘렌은 이 과정을 뺀 채 조만간 결혼하는 딸 콜레트에게, 그리하여 아빠가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결혼해 너와 세 동생을 낳고 편안하게 살고 있단다, 라고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마친다.<br>&nbsp; 얼마 지나지 않아 콜레트는 장 도랭과 결혼해 도랭의 집이자 직장인 풍차 방앗간, 물랭뇌프에서 산다. 방앗간 아래로 거품이 이는 녹색의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곳. 실비오도 가끔 그곳에서 송어낚시를 하고 그랬다.&nbsp; 콜레트. 실비오가 엘렌의 아이들 가운데 제일 아끼는 당조카. ‘당조카’는 북한말이고 당질이 옳은 표현이라는군. 하여간 콜레트 당질은 아빠를 닮지 않아 웃는 눈과 큰 입에 불꽃의 뜨거움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엄마 아빠의 가정처럼 남편 장 도랭과 즐거운 신혼을 보내던 콜레트. 그렇게 깨를 볶는 신혼을 지내고 있을 거라 누구나 생각하던 시기. 장 도랭은 이틀 예정한 출장을 갑자기 하루만에 마치고 다음날 밤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방앗간 옆을 흐르는 강변의 나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어느 검은 그림자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애초 예민하고 섬세하여 완력이 세다고는 할 수 없는 장은, 다리 구간에서 난간이 없는 곳까지 밀려가 강에 빠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nbsp; 이야기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급류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이렌 네미롭스키가 숨겨왔던 모든 비밀들이 이제부터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해 사람이 산다는 것의 날 모습이 드러나는데, 허, 그것 참.<br>&nbsp; 왜 여태 네미롭스키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64/46/cover150/k5428315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64460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문명 몰락, 그래도 희망은 있다 - [스테이션 일레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2547</link><pubDate>Sat, 23 May 2026 0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25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535282&TPaperId=172925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57/coveroff/k5325352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535282&TPaperId=172925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테이션 일레븐</a><br/>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07월<br/></td></tr></table><br/>.&nbsp;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1979년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머빌 섬에서 캐나다인 사회복지사 엄마와 미국인 배관공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번째 이름 세인트존은 할머니의 성씨 성 요한에서 가져왔다는데, 엄마의 엄마인지 아빠의 엄마인지는 영어로 알아낼 수 없다. 이 사람들이 그런 개념이 별로 없다.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가족은 역시 작은 섬인 덴먼 섬으로 이사해 청소년기를 홈스쿨링으로 통과한다. 학교도 다녔는지 위키피디아에 18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유명한 토론토 댄스 시어터 학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지만 잘 안 된 모양이다. 그래 이이의 사진을 보면 작은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체형이 무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졌는지, 기대치를 재능이 받쳐주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무용을 그만두고 소설쓰기를 시작, 2002년부터 작품을 발표해 &lt;스테이션 일레븐&gt;이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내셔널 북어워드, 펜 포크너 소설상, 베일리스 여성 소설상 후보로 지목되었다가 미끈덩, 바나나 껍질을 밟았지만 대신 공상과학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아서 C 클라크상과 토론토 도서상을 받았다고. 받은 문학상의 상금보다 더 대박을 친 것은 HBO Max가 &lt;스테이션 일레븐&gt;을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했다는 거. 그게 펜데믹 신드롬 중이던 5년 전, 2021년 12월이었다.&nbsp;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 “Executive Recruiter”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잘 나가는 회사원 케빈 맨델과 결혼해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로 이름이 바꾸고 딸 하나를 두었지만, 2022년 갈라섰다. 이혼 후 뉴욕에 살고 있다는데 2025년에 한 책방에서 로라 바리소지라는 사람과 재혼했다. 배우자의 이름만 보면 동성 결혼인 것 같다.<br>&nbsp; 이 책은 2014년에 출간했다. COVID-19 이전 시절이지만 이미 세상은 SARS를 겪은 후. 인수공통전염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중국 윈난성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SARS-CoV-1이라 명명했다. 약 1년간 지속한 펜데믹에 8천4백여 명이 감염되었으며 치사율은 11%였다. 이후 17년만에 중국 우한에서 두 번째 변종 바이러스 SARS-CoV-2를 확인했으니 이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라 했다.&nbsp; 에밀리 맨델은 바이러스로 인한 인간의 소멸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 이것을 소재로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쓴 사람이 맨델 한 명은 아니겠지만 그런 작품들 가운데 돋보이는 수준이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중국과 인근 동남아시아를 제외하고 SARS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가 캐나다였다. 251명의 환자가 발병해 이 가운데 43명이 사망, 평균보다 높은 치사율인 17퍼센트를 기록했으니 이런 작품이 나올 만했을 듯하다.<br>&nbsp; 작품은 한겨울 밤 &lt;리어왕&gt;을 공연하는 토론토의 엘긴 극장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리어 역을 맡은 배우는 51세의 아서 리앤더. 연극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배우로 더 명성을 높였다. 한때 잘 나가던 영화배우답게 세 번 결혼했고 지금 세 번째 이혼 소송중이다. 이이가 맨델처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속한 작은 가상 섬 델리노 출신으로 (작가처럼)무용이 아니라 연기를 배우러 뉴욕으로 향했다가 젊은 시절엔 사서도 한다는 고생 끝에 단역에서 시작해 한때 스타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찌그러져 이제 뉴욕 브로드웨이도 아니고 토론토에 와서 리어를 공연하고 있는 신세다.&nbsp; 공연일. 아침부터 아서는 피곤했다. 사흘 동안 불면증이 심했다. 나른하고 탈수증세가 있는 아서. 그럼에도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어 먹고 샤워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극장에 출근했다. 눈보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맞는지 회색빛으로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있다. 아서는 &lt;리어왕&gt; 공연만 끝나면 캐나다와 미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스라엘로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두번째 처 엘리자베스와 아들 타일러가 살고 있는 곳. 함께 살지는 못하겠지만 자주 타일러를 보고, 함께 여행하고, 캠핑도 가고, 영화 속 행복한 부자관계를 연출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서에게 행복은 주어지지 않는다.&nbsp; 4막, 왕이 실성하는 장면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남루한 넝마를 입은 리어왕, 아서는 대사 없는 배역인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글로스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기둥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거리가 맞지 않아 팔이 기둥에 세게 부딪혔다.&nbsp; “허리 아래로는 켄타우로스야.” 아서가 엉뚱한 대사를 하고 있는 것을 관객석 제일 앞자리에서 보고 있던 전직 파파라치, 연예담당기자이자 지금은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하여 배우고 있는 건장한 남자 지반 차드하리가 알아챈다. 지반의 머리 속에는 생명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차올랐고, 객석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뒷자리에 앉은 관객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무대로 뛰어올라가, 아서를 똑바로 눕히고 맥이 없음을 확인하더니, 기도를 확보한 다음 심폐소생술, CPR을 시작한다. 곧이어 객석 중에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무대에 올라 지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다. “심정전문의 월터 지코비요.”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얼마 없다. “지반 차드하리입니다.”&nbsp; 조금 후 응급구조대가 도착해 두 시민을 뒷자리로 밀려가고 아서는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그 전에 지코비 박사는 선고했다. “밤 9시 14분. 사망했습니다.”&nbsp; 무대 위 응급상황을 알아차리고 심폐소생술을 한 용감한 시민이 누구인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고, 급성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아서 리앤더는 모스크바에서 도착한 여객기 안에서 조지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2백여 명의 치명적 호흡기 전염병 보균자가 득실거리는 종합병원으로 실려갔고, 북미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펜데믹이 시작하는 바로 그날, 그 시간이었다.<br>&nbsp; 이야기는 대부분 이날의 공연에 직간접으로 관련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문명의 몰락은 그렇게 왔다. 조지아 바이러스. 인간의 문명을 모두 파괴해버릴 공포의 바이러스가 왜 하필 조지아에서 시발했을까? 이오지프 스탈린의 고향이라서?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순식간에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잠복기간이 겨우 몇 시간.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흘, 보통 사람이라면 이삼일 안으로 몸에서 생명을 뽑아가는 바이러스가 토론토를 덮쳤다. 이건 뉴욕과 LA를 비롯해 모든 미국의 대도시도 마찬가지라는 말과 같다. 토론토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메웠고, 이미 가득 찬 공항 행 고속도로 위에서 추운 겨울 폭풍을 차 안에서 견디다 몇몇은 행복하게도 가스 질식으로 죽었으며 몇몇은 가솔린이 다 떨어진 다음에 얼어 죽었다. 대부분은 걸어서 공항까지 도착했지만, 공항에는 “바이러스 감염지로 출입을 금함”, 이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을 뿐이라 기력이 다해 그냥 길 위에 쓰러져 유행병 증상으로 체온이 올라 죽었거나, 얼어 죽었거나, 하도 하가 치밀어 열 받아 죽어버렸다.&nbsp; 화가 지망생 시절에 아서와 결혼한 첫번째 아내 미란다 캐롤은 이혼 후 선박회사에 입사해 맹활약한 끝에 중요한 경영진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그림 대신 그래픽 노블을 만들었으니 &lt;스테이션 일레븐&gt; 이 책의 제목이다. 작품을 최고급 종이와 잉크로 자비 출판해 2권 열 세트 한정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두 세트를 전남편 아서에게 선물했다. 아서는 이 중 한 세트를 이스라엘에 사는 아들에게 보냈고, 한 부는 가지고 있다가 무대에서 심장질환으로 죽은 후, 대사 없는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 역을 하던 아역배우 커스틴 레이먼드의 손에 들어간다.&nbsp; 지금까지 등장한 주요 인물.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문명의 몰락 이후에 삶을 이어갈 사람이, 이스라엘에 살다가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려고 토론토행 비행기를 탔다가 현지 공항의 바이러스 오염 때문에 아이오와 공항에 내려 목숨을 구한 아서의 아들 타일러. 코딜리아 역을 했던 아역배우 커스틴. 그리고 바텐더를 하면서 응급구조대원이 되기 위하여 생명연장기술을 배우고 있는 지반 차드하리.&nbsp; 여기에 한 사람을 더 보태야 한다. 아서의 가장 친한 친구 클라크 톰슨. 한 시절 아서와 함께 연기를 공부했지만 도중에 길을 바꾸어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가 된 현명한 남자. 문명 몰락 이후에는 바이러스가 침공하지 않은 새번시티 공항에서 지난 문명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책이 끝나는 문명 후 19년,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지낸다.<br>&nbsp; 바이러스로 인한 문명의 몰락. 인구의 대부분이 한 번에 사라지면 제일 먼저 닥칠 것은 약탈과 싸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살인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 모두 각자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며, 자기 DNA의 연속을 위한 본능이다. 세상은 또다시 남자가 지배할 것이다. 최선의 미덕은 힘과 무기가 되리라는 건 자명한 상식이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런 야만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터. 이이가 만든 것이 유랑극단. 문명은 이미 사라졌을지언정 아직 예술을 기억하는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전문으로 공연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아 소규모 단위로 모여 사는 씨족과 부족 수준의 커뮤니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nbsp; 물론 이들도 다른 인간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무기를 들고 보초도 서고 경계도 하며 유랑의 길을 떠돌며 산다. 그래도 작가 맨델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문명 몰락 이후에도 누군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문명이라고 하면 그것은 “빛”. 아서의 아들인 것이 확실한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찾고자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빛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구하려 하는 빛은 어둠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진정한 빛, 전기였다. 그걸 누가 만들어내는지는 직접 확인하시옵고.&nbsp; 문명 몰락. 은근히 재미있다. &lt;스테이션 일레븐&gt;도 그렇고, 좀비에 의한 문명 몰락을 그린 콜슨 화이트헤드의 &lt;제1구역&gt;도 그렇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57/cover150/k5325352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90572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20세기 초 미국의 가난하고 외로운 삶 - [기차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0693</link><pubDate>Fri, 22 May 2026 0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90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290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off/k40203316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3169&TPaperId=17290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차의 꿈</a><br/>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데니스 헤일 존슨. 미국 국무부와 미국 정보부, CIA 등에서 일한 아버지 때문인지 1949년에 서독 뮌헨에서 출생해 필리핀, 일본, 미국 워싱턴 DC 교외에서 살았다.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인 아아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사사하며 예술석사 MFA를 취득했다. 그러나 20대 시절 존슨은 약물과 알코올에 흠뻑 젖어 살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창작마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약물과 알코올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중독자들도 그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그러나 존슨은 스물아홉 살 때인 1978년에 완전 금주를 시작해 성공했고, 83년엔 기타 약물도 끊어버렸다. 여간한 독종이 아니다. 시, 소설, 단편소설, 희곡, 에세이 등을 남겼다. 이름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 번 퓰리처 상 최종심까지 올라갔다. &lt;기차의 꿈&gt;도 두 권 가운데 하나.&nbsp; 지긋지긋하지도 않나, 세 번 장가들었고, 좋아했던 술이 나중에 심통을 부렸던지 2017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간암으로 죽었다. 죽고 나서야 미국 의회도서관 소설상을 받았다. 출판사 다산책방은 당연히 판매 목적이겠지만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 믿거나 말거나.<br>&nbsp; &lt;기차의 꿈&gt;은 장편소설이라 주장하지만 노벨라, 중편 정도로 봐야 옳을 듯하다. 주인공은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남자. 막이 올라갈 시점은 1927년 여름. 아이다호 팬핸들 스포켄 국제철도 공사장. 흑인 노동력을 대신해 철도 가설을 위하여 대거 수입한 인력이 중국인. 이 현장에서도 중국인 노동자가 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을 받아 그를 죽여버리려는 백인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루었다.&nbsp; 이 가운데 세 명, 철도회사 간부 시어스와 노동자 젤루이스 그리고 그레이니어는 모이강에 건설중인 50피트 높이의 다리를 중국인을 끌고 올라가 다리 아래 흐르는 급류에 던져 버리려 했다. 다리 꼭대기까지 끌고 가기는 했는데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에 중국인이 잽싸게 철골 빔을 타고 내려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어스 씨가 권총을 네 발 발사했지만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nbsp; 그레이니어는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가 중국인을 직접 처형하려고 해서? 천만의 말씀. 그레이니어가 가책을 느낄 만큼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도망치면서 자기한테 강력한 저주를 내렸을까봐 그게 걱정이 될 뿐이다. 그 다음에야 자신이 괜히 광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을 알아차렸다. 아내 글래디스가 갓난 딸 케이트를 넉 달 전에 낳았다. 애 키우는 젊은 남자가 옳고 바른 일만 해도 아차 하는 사이에 부정탈 게 많고 많은데 함부로 처형 팀에 합류하다니. 이거 뭐가 잘못된 건 확실하다.&nbsp; 아니나 다를까, 큰 산불이 나고, 그게 자기가 힘들여 번 돈으로 마련한 1에이커의 땅에 지은 오두막과 밭까지 번져 아내와 딸은 흔적도 없이 타 재가 되어버렸다. 그건 좀 나중 일이지만.<br>&nbsp; 1917년 여름이면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nbsp; 그레이니어가 일하는 철도 공사현장에는 전쟁 이야기도, 참전하자는 동요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 세월이 아니라 그런 장소였다. 중국인 처형 미수가 있고 41일이 지나 이들이 만든 다리를 기관차가 빽빽거리며 달려 지나갔다. 깊이 60피트 협곡 위 112피트 길이의 허공을. 이 다리를 건설해서 철로를 11마일 단축할 수 있었다. 그레이니어는 일이 끝나 한편으로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동료들처럼 환호와 환성을 질렀다.&nbsp; 이어서 1920년에 워싱턴주 북서부 로빈슨협곡 다리 보수공사를 거쳐 심슨 컴퍼니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목재 운반일을 했다. 이때가 35세. 여름 일이 끝날 무렵 그간 받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냈는데도 성실한 그레이니어가 받을 돈이 무려 4백달러에 달했다. 때마침 오한 환자가 급증해 1897년 독감유행처럼 번질까봐 산꾼대장이 보너스 4달러를 주며 산꾼들을 집으로 보냈다. 집에 가보니 이미 아내와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음.<br>&nbsp; 유타 아니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레이니어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모두 죽어 혼자가 되었다. 1886년에 그레이트 노턴 철도를 타고 새로운 가족이 될 아이다호 프라이 마을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들어온 소년은 고모부의 성 그레이니어를 따랐고, 이름도 고모부와 같이 로버트 그레이니어로 정했다. 프라이 마을에는 철도 공사를 위하여 백명 너머 중국인들이 살았다. 1893년에 철도가 완공되자 프라이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마을에서 추방해 이들은 서쪽 30마일 떨어진 몬태나로 가 훗날 차이나베이슨이란 동네를 이루었다. 로버트의 고모와 고모부는 이미 세상을 뜬 1899년에 프라이는 이턴빌과 합병해서 보너스페리로 불렸다. 로버트는 보너스페리 학교에서 글과 셈하는 법을 배웠으나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이 소년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 정여울은 그걸 파노라마라고 평했다. 고독한 남자가 살아온 파노라마 같은 삶의 이야기? 20세기 초반에 그런 사람이 한 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뭐 그런가 보다, 그냥.<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0/61/cover150/k4020331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10613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폴짝 뛰어서 평평하게? 그저 립서비스 시 - [축 생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8793</link><pubDate>Thu, 21 May 2026 0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87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597&TPaperId=172887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9/3/coveroff/89320445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597&TPaperId=172887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축 생일</a><br/>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nbsp; 김선우. 1970년생, 하다가! 70년 개띠가 벌써 쉰여섯 살이야? 아이쿠. 여태 나 혼자 늙어가는 줄 알았구나 싶었다. 김선우. 강릉에서 나 춘천에 있는 국립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아마 교사 생활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디선가 그렇다고 읽은 거 같다.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20대 시절에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소설도 썼지 아마? 이이의 인터뷰를 보니 소설도 출간했단다. 시집 앞날개에 소설 출간을 경력으로 소개하지 않은 걸 보니까 만족스럽지는 못했나 보다.<br>&nbsp; 《축 생일》 초판이 2025년 9월에 나왔다. 쉰다섯 살의 시인. 나는 이 시집이 처음 읽는 김선우이다. 그래 전에는 어떤 시를 썼는지 전혀 모른다. 한 편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을까? 모르겠다. 요즘 인터넷 좀 돌아다니면 넘쳐나는 것이 시들이니 뭐 한 두 편은 읽어봤을 수도 있겠지. 시들을 제대로 옮긴 건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자. 그래서 그렇게 읽은 걸 싹 무시하면, 이 시집이 처음으로 읽는 김선우다.&nbsp; 처음에는 시들이 통통 튄다. 김선우가 사용하는 다른 말로 하면, 폴짝거린다. 폴짝거려?&nbsp; 한 생명체가 도약하는 모습을 “폴짝이다”라고 쓰는 건 해당 생명체가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을 때 어울린다. 기린, 코뿔소, 히말라야 야크, 코끼리가 폴짝거리는 모습은 여간해 상상하기 힘든다. 대신 쿵쿵거린다라고 할까? 시집에서 제일 앞에 배치한 시부터 폴짝인다.<br><br>&nbsp; 폴짝인입니까?<br><br>&nbsp; 나도요 폴짝! 우리는 반가워서 폴짝폴짝 뜁니다<br>&nbsp; 그쪽 우물은 얼마나 깊었나요? 하늘은 동그랬나요?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었나요? 희미한 햇빛이 아주 잠깐 우물 바닥을 비추고 사라질 때나 뚝뚝 끊기는 바람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 머물다 가버릴 때 당신도 두 손 꼭 맞잡고 우물하늘을 올려다보았나요? 우물 속에선 내내 하늘을 쳐다봤죠 햇빛과 바람이 거기서 들어오니까…… 당신도 우물이 모든 걸 보내준다고 믿었나요? 그랬죠 그럴 수밖에요 내가 우물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물이 나를 사랑해서……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햇빛과 바람이……내게로 온다고…… 때로는 특별한 은총이라 느끼기도 했고요 우물하늘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오른손으로 왼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죠 왼손으로 왼뺨을 철썩철썩 때렸죠 의심하는 자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음…… 글쎄요<br>&nbsp; 폴짝,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줍니다&nbsp; &nbsp;(부분. p.9)<br><br>&nbsp; 시가 길다. 개구리 한 마리의 우물 탈출 서사. 우물을 사랑하고 우물도 나를 사랑했지만 그래도 우물 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바락바락 벽을 기어올라 “제기랄! 하늘이 이토록 드넓은 거였다니!” 눈알이 툭 튀어나온 채 햇빛과 나부끼는 바람 속에서 우물과 우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폴짝폴짝 웃고 또 폴짝폴짝 울며, 이런 젠장! 경탄과 경악을 하는 우물 안 개구락지였던 한 생명체를 시인은 폴짝인人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폴짝인의 서(序)를 소개하자면:&nbsp; 『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nbsp; 포섭되지 않기 위하여 개구리는 우물벽을 바락바락 기어올라 우물이라는 구조에서 탈출해야 한다. 새롭지는 않다. 20세기 초부터, ‘헤르만 허세’의 &lt;데미안&gt;에 의하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하여 죽을 똥을 싸왔으니까. 어떻게 하면 우물에서 기어 나올 수 있을까?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있던 2016년, 지금부터 10년 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br>&nbsp; “저는 여전히 책만큼 훌륭한 학교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가끔 중고등학생 독자들이 작가님이 우리 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거 같아요? 라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해요. ‘보나마나 학교는 때려칠 거고, 도서관에서 죽치며 살겠지. 거기가 제일 근사한 학교니까.’”<br>&nbsp; 인터뷰 당시 김선우가 46세. 아직 완경기에 달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밝혔듯, 남편의 스케쥴, 아이들 대학입시, 아파트 평수, 승용차 차종 등에 겁나게 신경 쓰는 시절이며,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낸 입장에서 팍, 말해버린 것이겠지. 근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중고등학생 독자들한테 했다니. 왜, 자기 딸 아들 더러 먼저 학교 때려치우라 그러지 않고? 10년 전에는 몰랐겠지. 이런 멋진 말을 하면서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거라는 걸. 물론 이미 시인이 된 자기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질문을 하는 어린 독자는 자기는 시인이 말하는 것을 왜 따라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음을 깊이 숙고해봐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말든지.&nbsp;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도 다 좋을 수 없다는 건 시에 나오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기어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황새, 너구리, 뱀이 우글우글거리는 것도 모른 채 개구리는 폴짝폴짝, 폴짝폴짝,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가는지, 시인이 그것도 봤대?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걸?<br><br>&nbsp; 산골, 폴짝인들<br><br>&nbsp; 착취당하고 싶지 않아&nbsp; 착취하고 싶지도 않아&nbsp;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어요&nbsp; 착취를 묵인하는 소비&nbsp;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nbsp; 꺼림칙해요&nbsp; 그뿐이에요<br>&nbsp;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br>&nbsp;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해로운 건&nbsp; 동물종 가운데 인간밖에 없다고요<br>&nbsp; 폴짝, 폴짝폴짝, 폴짝폴짝폴짝,<br>&nbsp; 사는 동안 있는 힘껏 내 삶을 책임지고 싶어요&nbsp; 그래봤자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어렵지만&nbsp; 최소한의 폭력&nbsp; 네, 그 정도라도 되면 좋겠어요<br>&nbsp;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nbsp; &nbsp;(전문. p.22~23)<br><br>&nbsp; 이것 참. 누군가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하고, 누군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삶. 착취를 묵인하고 심지어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 이것이 도시의 삶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딱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 더 무섭다. 슬며시 세상살이를 이것과 저것으로 양분하는 행위.&nbsp; 착취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시인은 도시인에게 폴짝, 개구락지 뜀박질을 권유한다. 시골로 가라! 자연으로!를 외친 루소 같아? TV에 나오는 자연인 같기도 하고. 산골로 가면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폭력, 참을 수 있는 수준만 행하고 견디면서 살 수 있다는데, 그것 참.&nbsp; 김선우가 딸 여섯 조르륵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 만든, 우스운 옛 습속의 딸부잣집 중 한 명이어서 그런지, 아마도 지긋지긋했을 것 같은 게마인샤프트에서 벗어나는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우물을 탈출하는 개구리, 착취 행위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산골행. 지금 김선우는 어디서, 어느 산골에서 살아? 하긴 그건 문제가 아니다. 자기도 산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시로 쓴 것일 수 있으니.&nbsp; 산골 생활 우습게 알지 마시라. 이 시는 산골로 폴짝, 한 마디를 위해 사용 수식한 단어들이 너무 컸다. 착취, 조장, 소비, 지구, 인간종, 폭력. 산골에서는 이런 단어들을 그래도 견딜만한 수준이 될 거라고? 정말? 독자들은 조심하시라. 산골. 다른 말로 하면 정글이다. 단어가 아닌 진짜 폭력, 자연에 의한 심각한 폭력이 눈을 크게 뜬 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걸.<br>&nbsp; 내가 말을 험하게 해서 그렇지 김선우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시에서 읽히는 첫인상, 선한 탈출과 선한 산골행일 것이다. 나도 알면서 일부러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건 아니고, 폴짝 뛰쳐나가는 행위, 자유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폴짝, 뛰쳐나가면 좋지. 그래서 성공하기만 하면. 학교를 때려치우고 교실 대신 도서관에 가서 진짜 스승이 빼곡 들어찬 책 속을 유영할 수 있으면 더 큰 시인이 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생각을 새파란 고등학생 독자한테 얘기해줄 수도 있지. 도시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진 청년 제위께 산골로! 마치 도시 속 브나로드 운동처럼 외칠 수도 있고.&nbsp; 좋다. 폴짝 뛰어 도약에 성공해 우물탈출을 했다 하자. 그럼 만날 수 있는 건 평평. 한자어로 쓰면 平平. 21세기 김선우 식 평등이다. 그것을 노래한다.<br><br>&nbsp; 평평으로<br><br>&nbsp; 平&nbsp; 어떤 것을 올리든 고르게&nbsp; 고르게 하려는 의지&nbsp; 한쪽으로 기울어지면&nbsp; 다른 쪽에 무게를 더하려는 의지<br>&nbsp; 平平&nbsp; 고르게&nbsp; 고르게 될 때까지&nbsp; 작고 가벼운 쪽으로&nbsp; 희미한 반짝임 쪽으로&nbsp; 선한 눈물의 방향으로&nbsp;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쪽으로&nbsp; 끊임없이 중심축을&nbsp; 이동하려는 의지<br>&nbsp; 平平平&nbsp; 마침내 저울이 지렛대가 되는 의지<br>&nbsp; 平平平平&nbsp; 고르게&nbsp; 고르게&nbsp; 고르게 하려는 의지를&nbsp; 지켜내려는 의지<br>&nbsp; 그때 비로소&nbsp; 자유는 자유&nbsp; &nbsp;(전문. p.29~30)<br><br>&nbsp; 폴짝 뛰어서 만든 평평한 세상. 미륵이 도솔천을 건너 환생했다. 이렇게 오해하지 마시라. 김선우가 노래하는 건 세상이 고르게 평평평평, 이런 상태가 된 미래 또는 약속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세상을 평평평평 고르고 고르며 고르게 하고자 하는 “의지”, 즉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자유로워진다는 선언이다. 행동은 완전하게 별개다. 시인은 왜 행동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행동, 즉 운동과 운동에 이른 성취까지 해야 혁명이 이루어질 터인데 말이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노? 뭐 사정이 있겠지.&nbsp; 폴짝폴짝 뜀박질도 그렇고 땅만 열나게 갈고 갈아, 다지고 다져 평평하고 평평하며 평평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시인. 시인의 동지, 동무들이 함빡 모였던 저 어둠의 시절에 이런 시 읊었으면 정말 조리돌림 당했을 텐데. 말과 생각만 혁명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는 전혀 발언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기소장을 받기 딱 좋았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건 그저 립 서비스잖아?&nbsp; 노래하기는 좋지만, 평평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자는 발언은 잃어버린 식어버린 운동시. 앙꼬 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 불알 빠진 껍데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9/3/cover150/89320445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790312</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어라, 이제는 읽히네 - [우주만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6864</link><pubDate>Wed, 20 May 2026 0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68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3368&TPaperId=172868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93/73/coveroff/89374433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3368&TPaperId=172868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주만화</a><br/>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br/></td></tr></table><br/>.&nbsp;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전에 읽은 책은 열린책들 Mr. Know 시리즈였는데, 말 그대로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다. 얼마나 경악했는지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나도 참, 심술이지 이 정도면. 그냥 읽느라고 고생했다 치고 슬쩍 넘어가야지 좀스럽게 그게 뭐야? 이때 Top 10의 거미줄에 걸린 책을 슬슬 읽어본다. 놀랍게도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쓴 &lt;말리나&gt;도 며칠 전에 읽었다는 거 아냐? 그것도 읽혔다. 아무래도 내가 열반할 때가 된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독후감에 후덜덜 단테 알레기에리의 &lt;신곡 지옥편&gt;도 인용했다. 심각하다. 안 하던 짓 자꾸 한다. &lt;말리나&gt;도 그렇고 《우주만화》도 그런데, 십년 전에 워낙 고생을 심하게 해서 오직 책 읽는 일에 집중하느라 독후감을 위한 메모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독후감 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읽은 거다.&nbsp; 구접스럽게 이런 얘기를 뭐하러 하느냐면, 그냥 간단하게 읽은 소감만 올린다는 말이지 뭐. 쉬운 말로 해서 핑계를 대는 중이다.<br>&nbsp; 민음사에서 낸 “이탈로 칼비노 전집” 6번 《우주만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구판으로 1965년에 소설집 형식으로 출간한 책. 신판은 같은 6번을 달고 나왔지만 신판은 《모든 우주만화》라고 간판을 살짝 바꾸면서 《티 제로》, 《다른 우주만화 이야기》, 《변형된 우주만화》를 포함해 구판보다 갑절 이상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11년 전에 읽은 열린책들 판은 민음사 신판의 순서를 바꾸어 유사한 주제로 구분해 놓은 책이었다.&nbsp; 여기까지만 들어도 좀 골치 아픈 책이다 싶지?&nbsp; 이번에는 어떻게 읽었느냐 하면, 제목이 《우주만화》이니까 정말로 만화책 보는 기분으로, 칼비노가 써내려간 대로, 어떤 주장을 펼치고 싶은 지 괜히 작가의 복장 속에 들어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채 그저 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읽었다. 크. 그랬더니 읽히더라는 것.&nbsp; 칼비노는 누가 뭐래도 환상 소설 작가이다. 그걸 독자가 해골 써가면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 무슨 현상을 은유하는 것일까 파봤자 이분 얘기하는 거하고 저놈 생각하는 게, 같으면 오히려 이상할 터. 그러느니 차라리 보이는 대로 보고, 읽히는 대로 읽는 편이 좋다.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보다 환상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br>&nbsp; 제일 앞에 놓인 작품이 &lt;달과의 거리&gt;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달과 지구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단다.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고. 달이 가까이 있으니까 달의 중력이 상당히 강해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어마어마했을 터. 사리 때 높은 파도가 치면 배 위에서 키 큰 사람이 손을 쭉 뻗으면 달을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니, 칼비노 구라도 이 정도면 예술 수준이다. 하긴 예술가 맞지.&nbsp; 지구 사람 가운데 아마 틀림없이 이탈리아 어부들일 텐데, 사리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훌쩍 달에 뛰어오르는 어부들이 있었다. 놀러? 천만의 말씀. 일당 받고 배 타는 사람이 달에 놀러가면 선장이 그걸 내버려 두나? 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서 식물 수액, 개구리 알, 역청, 제비콩, 벌꿀, 전분 결정체, 철갑상어 알, 곰팡이, 꽃가루, 젤라틴 물질, 벌레, 송진, 후추, 천연 소금, 산화물질 같은 것들이 빨려 올라가 서로 작용해서 달 우유, 문 밀크로 변질되는데, 이게 별미였다. 이게 리코타 치즈처럼 진득하니 그랬다나? 그걸 긁어서 커다란 숟가락 같은 걸로 마치 투석기를 쏘듯 하늘을 향해, 사실은 지구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향해 팡, 던지면 그걸 제대로 받든지, 바다에 빠져 둥둥 떠 있는 걸 건지든지 그랬단다. 이 일로 돈 좀 만졌다고.&nbsp; 그러다가 달과의 거리가 조금씩, 아주 세밀하게 조금씩 멀어진 게 아니라, 아마도 눈에 보이게 훌쩍 멀어져 내 사랑, 다이아몬드 같이 빛나는 눈을 가진 브흐드 브흐드 부인은 결국 달에서 탈출을 하지 못하고 지구를 떠났다는 이야기.<br>&nbsp; 이것만 있는 게 아니고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들어 있다. 빅뱅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아니지, 사람은 무슨. 하여간 생명체들. 만화 주인공들이 빅뱅도 구경하고, 태양이 처음 생길 때 퍼버벙 10의 n제곱 만큼의 수소폭탄이 터질 때도 있었다. 지구가 처음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죽상 상태에서 굳어갈 무렵, 한 여성이 땅 속 깊숙하게 들어가 스스로 지구의 핵이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나?&nbsp; 물론 아닌 것도 있다. 우주의 무한성. 10만 세기 전이라면 10만 곱하기 100, 1억년. 근데 10만 세기가 아니라 몇 십만 세기 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칼비노. 이 와중에서도 작가라는 직업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예전에 저질렀던 과오나 실수, 돌이켜 생각해보니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들. 이런 거 그냥 말로 “지금 떠올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 문장이면 끝날 텐데 그걸 몇십억년, 몇 백억년 전의 우주 공간에서 있었던 일로 만들어 하려면, 하루 세끼 먹고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nbsp; 하여간 나는 《우주만화》를 드디어 읽었다. 11년 만에. &lt;말리나&gt;도 읽었다. 다음에는 뭐? &lt;몽유병자들&gt;? 아니, 아니. 그건 아직도 자신 없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893/73/cover150/89374433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893734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자발적 소외를 택한 세 남자 - [거품]</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5122</link><pubDate>Tue, 19 May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51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285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off/k2821351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186&TPaperId=172851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품</a><br/>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1958년 12월 도쿄에서 태어난 개띠 남자 마쓰이에 마사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연년세세 높은 고과를 받은 모양이다. 해외문학 시리즈를 론칭하고, 계간지 창간에 힘을 보탰으며 여기저기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2010년 퇴직했다. 그의 편집 실력을 알아본 게이오 대학은 2009년부터 몇 년 간 초빙교수로 강단에 세우기도 했다. 마쓰이에는 그러나 퇴직과 더불어 창작을 시작해 2012년에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신쵸샤에서 출간하는 잡지 “신초”에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2013년 이 작품으로 일본 최대의 우익 신문 요미우리가 주최하는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았다. 54세에 소설쓰기를 시작했으니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이후 열심히 작품을 쓰고, 쓰는 것마다 일정부수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기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등극했단다.&nbsp; &lt;거품&gt;을 2021년에 발표했으니 마쓰이에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62세. 뭐 물론 글을 쓰기 전에 편집 일을 열라 했다니까 글의 흐름, 그러니까 세월에 따른 문법의 변화에 따라갈 수 있기는 했겠지. 그런데 글, 특히 픽션이란 것이 자신이 잡지 또는 작품을 편집할 때와 직접 쓸 때, 이 두 가지 경우는 거의 완벽하게 다른 일일 걸? &lt;거품&gt;이 이이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인데, 나는 책을 다 읽기 전에 이이의 나이, 출생지, 가방끈 같은 거 하나도 몰랐으니 지금 전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팍, 느낀 것만 이야기하는 바로서, 작품 곳곳에서 저 오래 전부터 유독 일본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보인 사소설의 경향성이 문득문득 찾아냈다는 거다. 그러면서, 2021년 작품이면 요즘 작가일 터, 거 독특하네. 이렇게 쑤석거렸다는 거 아냐? 58년 개띠 작가한테 말이지. 70년 개띠도 아니고 원조 개띠.<br>&nbsp; 막이 올라가면 가정집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은 사람은 십오세 청소년 가오루. 남자 아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욕실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는 가오루. 소년은 도쿄에서 나고 자라 지금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재학. 학교에 적을 두긴 했어도 1학기 초부터 등교를 하지 않고 있다. 가오루가 다니는, 아니지, 적을 둔 학교가 유별나게 수컷들의 세상인 밀림, 일찍이 모리스 샌닥이 이야기한 &lt;괴물들이 사는 나라&gt;라서 그런 건 아니다. 군복 같이 흰 플라스틱 칼라를 목에 댄 검정색 교복에 흰 플라스틱 칼라를 달고, 똑 같은 모자를 쓴 채, 딱 몇 시까지 등교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도와 검도를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하는 대학진학 기계들이 모인 곳. 검정 사각형 같이 딱 규격화된 인간들이 규격화된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하여 규격화된 방법으로 애들을 조지는 곳. 이게 너무 싫은 거다.&nbsp; 이것도 스트레스. 가오루는 습관적으로 공기를 많이 흡수한다. 흡수한 공기가 모두 폐로 들어가면 형관 내 산소농도가 높아져 더 건강하게 될 텐데, 그러지 못해서 소화기관으로 넘어간다. 공기는 위장과 소장을 거쳐 대장에 집중했다가, 가뜩이나 대장에 모인 섬유질 소화물과 유산균이 발효하여 생긴 가스와 함께 다량의 방귀를 생산한다. 정말 이런 이상 기질/병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 인구 70억 명가운데 뭐 있기는 하겠지. 하여간 가오루는 욕조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배에 힘을 빡, 주면 물 속에서 거품이 뽀그르르 올라온다. 꽤 큰 거품. 그게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폭, 터져 대기의 흐름을 타고 사라질 때까지 가오루의 몸을 형성하는 일부였다니 기분이 새롭겠지? 웃기게도 책에서 가스 거품이 터질 때 폴폴 풍기는 냄새는 1도 묘사하지 않았다.<br>&nbsp; 가오루의 부모 두 양반 다 학교 교사. 가오루가 집에 가서 나 학교 안 다니고 싶어, 라고 딱 꺠놓고 이야기했다. 잘했다. 확실하게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게다가 특히 아빠가 좀 깬 인간이라. 좋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래?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는 거 아냐? 대학은 안 가더라도. 그리하여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친척 가운데 도쿄에서 가장 멀리 사는 사람한테 보내기도 부자간에 합의했다. 엄마의 반대가 좀 있었지만 대가리 다 큰 자식한테 이기는 엄마 봤어?&nbsp; 아빠가 자신의 막냇삼촌한테 전화를 해 승낙 받았다.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7백km 이상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마을, 사리하마. 그러니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가 사는데 거기서 재즈 카페를 열고 있다.&nbsp; 가오루의 할아버지가 아홉 남매 가운데 맏아들이다. 다 합해 아들 여섯, 딸 셋. 가네사다가 막내. 가네사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당연히 육군에 징집되어 만주 괴뢰국에 주둔했다가 패전과 동시에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있었다. 불쌍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일 불쌍한 처지로 떨어졌던 인종은 소련에 전쟁포로로 잡혔던 패잔병들이었다. 독일군 포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혹은 중앙아시아 벌판에 그냥 떨궈놓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 포로들이 몇 년이 지나 거의 해골바가지 수준이 되어 어떻게 독일에 있는 집으로 갔는지 아시나? 걸어갔다. 일본 패잔병들은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가네사다의 경우에 바이칼 호수 근처로 데려가 벌목 작업을 시켰다고. 소련 병사가 하는 이야기가 기막히다. “너네 나라에서 너네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아.” 패전 일본은 자기들 살 방도를 찾기에도 바빠 쉼 없이 눈알을 굴렸을 뿐 아직 살아있는 병사들의 안위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nbsp; 미국군에 잡힌 병사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소련군에 잡힌 병사들은, 일본 정부에서 생각하기를,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이들이 일본으로 복귀하면 일본 적화의 분자로 활동하게 만들기 위해 철저한 빨갱이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돌아와도, 만일 돌아온다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하는 직위에는 절대로 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상은 냉정시대였거든.&nbsp; 1950년대 초에 귀국한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 가네사다가 이런 포로 출신이었다. 어디서도 가네사다를 고용하지 않았다. 큰형 구와타로를 비롯해 남매들도 가엽게 생각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막둥이를 바라봤다. 이러니 어디 사람이 살 수 있나. 성격은 살면서 여러 번 바뀐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거. 고쳐 쓰지도 못하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거는 아니잖아?) 가네사다는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곳이 저 남쪽의 해안도시 사리하마.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동네에 가서 선뜻 지원한 곳이 보험회사 외판원. 자기도 말주변이 이렇게 좋았는지 몰랐는데 작은 도시에서 거의 탑 급으로 실적을 올렸다. 기본급 외 성과수당으로 상당한 돈을 벌어, 벌어봤자 외판원 수입이니 큰 돈은 아니었어도 처자식 없이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한 가네사다는 번 돈을 계속 모아 50대 초에 원래 우유판매점이었던 건물을 사 거기다 재즈 카페 ‘오부브’를 열었다.&nbsp; 그렇다고 도쿄의 사나이 가문, 사나이가 “진짜 사나이”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의 가문 이름이 그렇다, 사나이 가문에 완전히 돌아선 건 아니고 중요한 관혼상제 때는 참석하려 애썼다. 그렇게 살았다.<br>&nbsp; ‘구두 くつ’의 러시아 말인 ‘오부브’를 혼자 운영해온 가네사다. 여름에는 해수욕객이 많아 손이 좀 달린다. 말이 재즈 카페이지 점식에 간단한 식사와 커피, 저녁에도 간단한 식사와 주류 같은 걸 파는데 큰 돈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 죽는 비용, 즉 병원비와 숨 넘어갈 때까지의 간병비만 있으면 된다. 그래 세상 살면서 이젠 아무 바라는 거 없이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여유작작하게 사는 데, 우울한 표정을 한 30대 정도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왔다. 세번째 주인공 오카다.&nbsp; 오카다는 불쑥 나타난 것처럼 어느 날 불쑥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람. 그게 5년 전이었다. 5년이 흘렀지만 아직 떠나지 않았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만 마치 카페에 최적으로 맞춤한 솜씨와 부지런함을 갖춘 인물이다. 게다가 잘 생겼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니까. 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가네사다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nbsp; “오카다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nbsp; 이거 뭐야? 독자로 하여금 오카다의 정체가 사람 죽이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아니면 살인범 또는 살인범에 가까운 범죄자인데 지금 몸을 숨기고 있다는 암시야? 끝날 때까지 작가는 이이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는다. 카페를 떠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 가네사다는 자기가 죽으면 카페와 모든 재산을 오카다에게 물려줄 생각도 한다.&nbsp; 이때 가오루가 막내 종조부에게 몇 달만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을 했고, 기차타고 해변에 도착해 세 남자의 자잘한 살림을 시작한다. 가오루는 당연히 짬짬이 구두 카페에 나가 서빙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조금씩 오카다에게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운다. 15세 사춘기면 이제 이성에 관한 호기심도 지극할 때. 한 여성에 대한 환상도 생길 만하다. 물론 아직 대장에 가득 고인 가스 때문에 방귀가 뿡뿡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소년은 성장하고, 종조부는 늙어가고, 오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3/18/cover150/k2821351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3181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빛을 내려면 어쨌든 반짝여야 - [아, 베이징]</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3294</link><pubDate>Mon, 18 May 2026 0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832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439&TPaperId=172832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19/62/coveroff/89673564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6439&TPaperId=172832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 베이징</a><br/>쉬쩌천 지음, 양성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06월<br/></td></tr></table><br/>.&nbsp; 쉬쩌천은 1978년에 장쑤성 둥하이현에서 태어난 중국 소설가, 단편 작가, 에세이스트이다. 출판사 글항아리의 책 앞날개와 위키피디아에서 이이의 가방끈에 대한 디테일이 조금 다른데 썩 중요한 건 아니다. 하여튼 위키에 의하면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장쑤성 성도에 있는 회음사범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졸업은 난징사대에서 했다. 이후 베이징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역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소설쓰기에 전념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 중국어도 할 줄 아느냐 묻지 마시라. 구글번역 돌려봤더니 그렇다는 말이다. 난징사범대의 동문목록에 이이의 이름이 올라 있으니 이게 맞는 듯.&nbsp; 쉬쩌천은 다작 성향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이의 작품 목록을 감안하면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단행본이 이 책 딱 한 권인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이니까. 그렇게 많이 썼는데 번역 단행본이 단 한 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고, 작품 목록에 우리나라 독자의 구미에 맞는 게 별로 없어 보여서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리를 좀 하게 된다는 말이다. 책이 재미없어서라는 말은 아니다. 혁명 전 몰락한 봉건 지주 가문의 불행을 그린 &lt;고대의 황혼&gt;과 문화혁명 당시 죄 없이 조리돌림을 당한 타지 출신 학교 교장 선생 이야기인 &lt;굵은 목소리&gt;는 이이가 쓰지 않더라도 이미 50년대와 60년대 초에 출생한 선배 작가들이 충분히, 그리고 다양하게 설레발을 푼 것들이며, 다른 작품들도 내 눈에는 그리 삼빡하지 않다는 것. 이미 누군가가 광장에 서서 크게 외쳐버려 이젠 읽는 중간에 벌써 기시감을 느끼는 정도가 되었으니 단순히 인구 비례로 따져 얼마나 많은 비슷비슷한, 고만고만한 작품 속에 반짝일 수 있겠느냐고. 하여간 빛을 내려면 반짝거려야 한다니까.<br>&nbsp; 책의 제목이 《아, 베이징》이라 해서 베이징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고향인 장쑤성, 장강 하류 지역의 시골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더 많다.&nbsp;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이징으로 상경해 베이징 대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에 계획을 바꿔 군대에 입대한 화자가 친척 할머니가 세상을 떠 장사지내러 고향에서 가니, 베이징 생활, 인민군 장교 출신이라는 권위를 누구나 다 우러른다는 &lt;귀향 이야기&gt;의 무대처럼 마을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장강의 지류가 흐르고 동, 서로 거리가 있는 마을을 중심인 소설도 몇 편 있다. 살아있는 개를 산 채로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에 빠뜨린 다음 솥뚜껑을 깔고 앉아 푹푹 삶아 특제 소스를 첨가한 별미의 개고기를 요리해내는 개백정이 홍등가 화제花街의 한 윤락여성한테 삶은 개를 화대 비슷하게 제공하다가 매춘부의 청부로 돈 많은 뱃사람을 칼로 난자해 죽이는 &lt;우뢰비&gt;도 &lt;귀향 이야기&gt;와 &lt;굵은 목소리&gt;와 같은 공간에서의 일이다.&nbsp; 그런데 열두어살 먹은 소년을 괴롭히기 위해 같은 반 악동들이 스무살 먹은 소년의 이웃집 지체장애 여성을 윤간하고 소년의 집에서 키우는 암캐의 코를 철사로 뚫어 괴롭히는 장면(굵은 목소리), 베이징에서 아가씨와 연애를 하지만 차마 시골의 아내한테 이혼을 하자는 말을 못하는 남자가, 자신이 동행한 동업자의 착한 아내와 대낮에 소파 위에서 교접하는 장면을 본 순간 꼭지가 돌아 시퍼런 칼로 평소에 동생이라 부르던 동업자의 두 개의 손가락에서 한 마디씩 잘라버리는 씬(오, 베이징)은, 이제 마음이 쫄보가 되어 영 읽기가 거시기하더라는 것. 전에 위화나 쑤퉁의 소설에서 여러 번 봤잖아, 이런 중국제 잔인, 잔혹한 장면은.<br>&nbsp; 나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lt;지난 몇 년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gt;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빌리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짧은 축에 드는 이걸 제일 먼저 읽어서 또 한 명의 마음에 드는 중국 작가를 발견했다고 자잘하게 좋아했는데, 집에 와서 더 읽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더라는 것.&nbsp; 기차 침대칸에서 자다가 기침이 멈추지 않고 발작적으로 쏟아져 다른 승객한테 영 면목이 없던 차, 여기저기서 막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욕설이 터지기 일보직전, 맞은편 칸 한 여성이 핸드백 속에서 물약을 건네주어 기침을 멈추게 도와준다. 아침이 되어 주인공 ‘그’는 여자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식당칸에 가서 아침을 사겠다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차량 사이의 연결부로 가 함께 담배를 나누어 피우기도 한다. 그러다 혹시 여자 사는 근방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뵙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고 번호를 얻어낸다. 여자는 산이 많은 도시에서 내린다.&nbsp; 날들이 가고 정말 이 이혼남 ‘그’가 여자가 사는 근처로 지나갈 일이 있어 기차에서 내렸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그때 들었던 걸 기억해 직접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 만난다. ‘그’는 정말로 그때의 고마움이라는 인연으로 한 번 보고 싶었던 것. 시간이 이미 오후 해질녘이라 둘은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고, 술도 마시고 객점에 들어 남자의 방에 함께 든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공무원 남편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는데 이후 무죄가 드러나 오히려 직장에서 승진 발령되어 아내도 자기 힘으로 더 좋은 보직으로 발령시켰지만, 착했던 남편은 그 일이 있은 이후 사람이 바뀌어 일단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 위주로 살기 시작했다. 만날 외박했다는 뜻이지 뭐.&nbsp; 여자는 그래서 홧김의 서방질이라도 염두에 두었던 듯하지만, 주인공 ‘그’는 둘이 함께 객점에 들었건만 오직 당시의 고마움으로 전에 말했듯 한 번 보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nbsp; 이게 끝인 건조한 사는 이야기. 이게 제일 좋았는데 그만 어이구, 산 개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져 넣지를 않나, 청부살인에다가, 개 코에 코뚜레를 하고, 나름대로 형수한테 이혼을 설득하다가 몸으로 말하게 된 순간을 들켜 손가락이 날아가니, 이거 원 살벌해서 말씀이야. 근데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분이 틀림없이 있을 터, 그분들은 재미나게 읽을 작품. 내 판단을 별점으로 말하자면 3.5? 세 개는 너무 짜다. 넷은 조금 과하지만 너그럽게 봐줄 수준. 그러니까 여태 말은 이렇게 했어도 괜찮다는 뜻이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19/62/cover150/89673564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519622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제일 재미있는 게 불륜 이야기라지만 - [페델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9397</link><pubDate>Sat, 16 May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9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4106&TPaperId=17279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5/91/coveroff/k2720341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4106&TPaperId=17279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페델타</a><br/>마르코 미시롤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br/></td></tr></table><br/>.&nbsp; 마르코 미시롤라는 1981년 이탈리아의 리미니에서 출생했다. 리미니?&nbsp; 잠깐 단테의 &lt;신곡&gt; 가운데 “지옥편” 5곡으로 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인도하여 지옥 구경을 시켜주는데 제일 먼저 지옥의 유황불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프란체스카는 왜 지옥으로 떨어졌을까? 사랑 때문에.&nbsp;&nbsp; 인용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편》 2007. 박상진 역.<br>&nbsp; “사랑은 온화한 가슴에 이내 스며드니,&nbsp; 지금은 내게서 없어진 아름다운 몸으로 이이를&nbsp;&nbsp; 사로잡았어요. 그 일은 아직도 나를 괴롭힙니다.<br>&nbsp;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nbsp; 이이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잡았어요.&nbsp; 보다시피, 이이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 (p.55)<br>&nbsp; 그러니까 프란체스카는 사랑 때문에, 드런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지옥으로 떨여졌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는 아마도 지옥편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br>&nbsp;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nbsp;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nbsp; 괴로운 것은 없어요.’” (p.56)<br>&nbsp;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공국의 공작이자 영주인 란체오토 말라테스타한테 시집온 아름다운 여성. 이이는 영주부인이 아니라 영주의 동생인 파올로의 짝이 될 줄 알았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 파올로는 젊고 무지하게 잘 생긴 미남자로 유명했거든. 근데 결혼식장에 입장해보니 신랑이 짐승 같은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을 가진 란체오토 영주님이었던 거다. 게다가 드럽게 못생기기까지 했다. 어때, 다른 작품 생각나는 거 하나 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lt;돈 카를로스&gt;.&nbsp; 근데 프란체스카는 &lt;돈 카를로스&gt;의 엘리자베스하고 좀 다른 캐릭터이다. 엘리자베스는 어쨌든 혼인의 순결을 끝내 지켰다. 반면 프란체스카는 아니다. 이를 눈치챈 영주님. 프란체스카와 동생 파올로 사이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영주님이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라고 광고했다. 그리고 정말로 군대를 소집해 적국을 향해 행진하는 동안 프란체스카는 친절한 시동생 파올로를 불러 뭘 했느냐 하면,<br>&nbsp; “어느 날 우리는 한가롭게&nbsp; 렌슬롯의 사랑 얘기를 읽었어요.&nbsp;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p.57)<br>&nbsp; 렌슬롯의 사랑 이야기는 당시 기준으로 봐서 야설 수준은 아니더라도 되게 야한 책이었다. 그런 걸 파올로가 소리내서 읽다가 점점 손끝이 이게 영 이상한 동네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뭐 다 그런 거지, 자동이거든. 그리하여 점점 달아오른 둘이 급기야 비단 모기장 드리운 기둥 침대 위로 홀라당 올라가 뜨거운 사이가 되었던 터, 딱 이 때 시간을 맞춰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 란체오토 말라테스타. 영주님은 관운장이 쓰던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훌렁 벗은 둘의 허리를 댕강, 잘라 죽여버리고, 두 연놈의 영혼은 사이좋게 손잡고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nbsp; 이거 이 책에도 안 나오고, 민음사 《신곡 지옥편》에도 안 나온다. 《신곡 지옥편》을 감명 깊게 읽은 러시아의 극작가 모데스트 차이콥스키가 쓴 작품 &lt;리미니의 프란체스카&gt; 이야기이다. 모데스트는 우리가 아는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카 이야기 어디 가서 들어보기 쉽지 않을 걸? 잘난 척하느라 그냥 써본 거다. 나는 잘난 척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지 몰라!&nbsp; 《신곡 지옥편》 5곡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어디서 지옥으로 미끄러졌느냐 하면, 지금이야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엔 리미니 공국이었던 곳.&nbsp; 그것 때문에 이렇게 길게 변죽을 울렸느냐? 설마. &lt;페델타&gt;의 지은이 마르코 미시롤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리미니에서 살다가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에 진학했는데, 작품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리미니에 살다가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밀라노대학에 다니던 중 자기 지도교수와의 염문이 알려져 중도작파하고 다시 리미니로 돌아가 아버지가 하던 철물점을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하는(윽, 스포일러군!) 여성, 소피아가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br>&nbsp; 작품의 제목 페델타. Fedelta 마지막 철자 a 위에 점 하나를 찍어야 하는데 찾기 귀찮으니 그냥 이렇게만 쓰자. 이탈리아 말로 정절. 충성심이란 뜻도 있지만 책에서는 ‘정절’ 또는 ‘혼인의 순결’로 이해하면 되겠다. 근데 작품의 주제는 정절과 정 반대말 ‘배신’이다. 즉 불륜, 혼외정사 같은. 그래서 &lt;리미니의 프란체스카&gt; 이야기를 열라 떠들었다.&nbsp;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 부르주아 집안의 1남1녀 중에서 장남. 밀라노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특별하게 뭘 한 게 아니라, 집이 좀 사니까 가능했겠지만, 이것저것 설렁설렁, 카피라이터도 해보고, 여행지 소개문도 써보다가, 아버지 뒷배로 밀라노대학 대학원에서 창작과목 전임교수 비슷하게 하는 중이었다. 자기 반에 작은 얼굴과 잘록한 허리에 어리게 보이는 스물두 살 먹은 소피아가 있었는데 은근히 눈길이 자꾸 소피아한테 가더란 것.&nbsp; 소피아 말고 다른 신입 여학생이 작품 초장에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화장실에서 교수가 소피아 학생을 껴안고 목을 쓰다듬는 것과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준의 장면을 목격해 교실로 돌아와 입을 털었다. 이 일 이후에 펜테코스테 교수와 소피아가 의심스러운 성격의 접촉을 가졌다는 소문에 힘이 실렸다고 쓰여 있으니, 아마도 교수가 소피아를 편애했던 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사실이고말고!) 이 뒷담화가 학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바야흐로 문제가 되었을 때, 펜테코스테 교수는 동료 교수 몇 명과 학장을 데리고 현장에 가 직접 상황을 재연해 주었다. 이렇게:&nbsp;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공동구역으로 나와서 손과 얼굴을 씻은 후에 말리고 있을 때, 여자 화장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라기보다 덜 닫혀 있어) 들여다보니 자기 수업을 듣는 소피아 카사데이가 거의 정신을 잃고 넘어져 있는 거였다. 그래 문을 열어놓은 채 들어가 학생을 향해 몸을 기울인 상태에서 이름을 여러 번 불렀고, 앉았다 일어날 수 있게 도왔으며, 잠시 구석에 기대게 조치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학생은 진정되어 얼굴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로 데려갔는데, 상황이 긴박하지는 않았어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입생이 현장에 있었는지는 눈치도 채지 못했다.<br>&nbsp; 그럴 수 있겠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이 일 때문에 제일 기분이 언짢은 사람이 누구? 당연히 아내 마르게리타.&nbsp; 오늘 아침 남편이 늘 복용하는 항히스타민제를 두고 와서 직접 가지고 학교까지 왔다. 구태여 문자나 전화로 알리지는 않았다. 마르게는 몰랐지. 한 10미터 정도 자기 앞을 걷던 여학생이 바로 소피아였던 것을. 소피아가 강의실에 들어가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한테 작은 소리로 말했다.&nbsp; “당신 부인이 날 따라왔어요.”&nbsp; 소설은 이 대사로 시작한다. 카를로가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담벼락에 걸터앉아 네미로프스키를 읽고 있다. 네미로프스키? 소설집 《무도회》를 쓴 작가? 맞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곧바로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해서 네미롭스키의 다른 책 한 권 읽기로 했다.&nbsp; 근데 이상하지? 마르게는 심지어 아직까지 (나중엔 알게 되지만) 소피아라는 이름만 들었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데 어떻게 따라오겠어? 소피아도 속으로 교수와 모종의 썸이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중인환시리에 일종의 염문이 살포된 상황에서 썸을 이어갈 수 없지. 당연하지.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도 교수는 아예 이 바닥에서 매장될 터인데. 그래서 교수 스스로 현장검증을 신청하기 전에 극비리에 시내 모 카페로 소피아를 불러내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테니 너는 저렇게 자세를 잡아라, 뭐 이 비슷한 시나리오를 짜고 그대로 진행한 거다. 똑부러지는 소피아는 몇 시간에 이르는 사전 미팅을 휴대폰에 전부 증거로 녹취했지만 그건 교수가 알 턱이 없다. 그래 잘 수습이 된 상태에서 교수가 다시 소피아를 만난다? 그건 곤란하고,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를 꿈꾸는 소피아는 소설도 잘 써지지 않아, 소설이고 뭐고 고향 리미니로 돌아가 아빠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로 결정해버렸다.&nbsp; 근데 미련이 남잖아? 교수도, 소피아도. 소피아가 기차를 타는 날이 하필이면 교수의 친엄마 생일날이었는데, 핑계를 대고 소피아 집에 들러 마지막 짐을 역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자진해서 해준다. 집에 가서? 그렇다. 그럼 짐만 옮겨주었을까? 에잇, 확 말해버리자. 그렇다 짐만. 시도는 했지만 소피아가 싹 거절해버린다.<br>&nbsp; 문제가 또 있으니 교수의 아내 마르게리타.&nbsp; 밀라노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부동산 중개업자. 자기관리에 철저한 비즈니스 우먼. 아직 애도 없다. 몸도 빵빵하다. 몸매를 위해 헬스에 다니는데 석달 전에 트레드밀을 겁나게 열심히 한 뒤 치골에서 무릎으로 이어지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래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nbsp; 물리치료를 받으면 꽉 막힌 좁은 치료실에 스물여섯 살 먹은 안드레아라는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가, 물리치료를 받기 적절한 반바지와 속옷을 입은 마르게리타를 뉘어 놓고 치골 부근의 근육과 힘줄을 열 손가락 모두 사용하여 꾹꾹 눌러 근육의 결과 밀도, 그리고 탄력까지 모두 짚어본 후에 허벅지 안쪽 근육, 소위 햄스트링이란 곳까지 모두 꼼꼼하게 훑는다.&nbsp; 30대 중반을 향해 돌진하는 여성의 농익은 몸은 안드레아의 손길이 금지된 곳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를 속으로 바라지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nbsp; 몇 년 전, 외국 여성이 우리나라 TV에 나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속담 가운데 하나가 “홧김에 서방질한다.”라고 했던 걸 기억한다. 서양에서는 그런 말이 없단다. 뭐 그런가 보지. 그러나 2년 전 여름에 읽은 모드 방튀라의 &lt;내 남편&gt;에서도 그랬듯이 &lt;페델타&gt;에서도 우리의 마르게리타도 홧김인지, 아니면 아슬아슬한 리비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자신이 결국 안드레아를 안다리후리기로 자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게 마르게리타가 딱 한 번 저지르는 불륜. 대단한 것이 안드레아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음에도.<br>이렇게 마르게리타와 카를로 펜테코스테 부부의 불륜. 불륜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진짜 사랑은 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마구 치고 나가는 그냥 그런 애정 소설. 잘 쓰기는 하지만 별거 없다. 조르조 바사니의 &lt;금테 안경&gt;을 읽을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역자 김희정의 우리말 문장도 거칠게 서걱거려 재미를 조금 떨어뜨리…는 거 같다.&nbsp; 오늘 독후감, 분량이 많지만 리미니 이야기 빼면 그냥 늘 쓰던 대로다. 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쐬주만 안 마시면 소설도 한 편 쓸 기세라니까, 글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5/91/cover150/k272034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35910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웃긴데 묘하게 기분 나쁜 - [피뢰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7507</link><pubDate>Fri, 15 May 2026 05: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75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9402&TPaperId=172775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04/98/coveroff/89329194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9402&TPaperId=172775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뢰침</a><br/>헬렌 디윗 지음, 김지현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01월<br/></td></tr></table><br/>.&nbsp; 헬렌 디윗은 2000년에 장편소설 가운데 제일 먼저 발표한 &lt;최후의 사무라이&gt;가 제일 유명하다. 이 책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 가운데 29번째 자리를 철퍼덕 깔고 앉았다. 헬렌 디윗이 비록 외교관의 딸로 유소년기에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라틴 아메리카를 누비며 성장해, 옥스포드 대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지언정, 졸업 후 소설 &lt;최후의 사무라이&gt;를 쓰는 동안, 부모가 독립한 자식을 지원해주지 않았는지, 디윗 자신이 도움을 바라지 않았는지 하여튼, 1957년생이니까 PhD까지 빠르면 1985~7년 정도에 공부를 마쳤을 터이니, 소설을 완성한 1998년까지 사전에 실린 단어에 딱지 붙이기, 회사 복사 담당, 던킨도너츠 직원, 변호사 사무실 따가리, 세탁 잡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단다. 위키피디아에 그렇게 써 있다. 던킨 도너츠 파는 박사님. 우리 같으면 생각도 하기 힘들 텐데, 이거 참 뭔가 부럽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여간 좀 낭비인 건 확실한데 거 생각이 복잡하네. 하여간 끝이 좋았으니 됐지 뭐.&nbsp; 여차하면 유명세를 타게 해준 &lt;최후의 사무라이&gt;에 이어 1999년에 두번째 장편소설 &lt;피뢰침&gt;을 완성하고 2003년에 출판 계약서에 엄지손가락에 인주 듬뿍 묻혀 지장을 꾹 누른다. 그런데 이게 책이 안 나오는 거라. 결국 좀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 2011년에야 다른 출판사 인쇄기를 통해 책이 나온다. 그리하여 비록 2011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난 세기에 완성한 작품답게, 작의 무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이다. 작품 속에 테스크탑도 나오지만 1990년대니까 PC와 별도로 워드프로세서라는 문서 작성기도 등장하고, 1분에 몇 글자를 오타 없이 타자하느냐 하는 것이 특히 여직원의 능력 척도 가운데 하나인 장면도 나온다. 좀 후진 동네, 후진 직장이었던 듯하다. 80년대라면 이해가 가는데 말이지.<br>&nbsp; 우리나라는 아직 십년 정도의 세월이 더 필요했지만 이때 미국의 기업에서 상당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 사업장 내 성희롱 문제였다. 앗,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자. 주인공 먼저 등장시켜놓고 보자.&nbsp; 주인공 조. 막이 올라가면 장소는 미국, 미주리 주의 유레카. 조는 32세, 외판원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다. 12권짜리와 15권짜리. 미주리에 유레카라는 도시가 정말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한 조는 6개월 동안 한 질은커녕 한 권도 팔지 못한다. 맨 농사 짓는 집만 있는데 누가 책을 보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등장인물이나, 나오는 배경 같은 것이 궁금해 백과사전을 들춰보겠느냐고? 조가 생각해보니 이건 자기 잘못도 아니고, 상품이 후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전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 첫째요, 그들이 배운 게 없는 것이 둘째요, 도무지 호기심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 합해 미주리 유레카 인간들 한테는 안 되는 거다. 그러나 기백이 하늘을 찌르는 조. 그는 생각을 달리해 빛나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일렉트로눅스사의 전기청소기의 가까운 대리점을 찾는데 그게 하필이면 플로리다에 있다. 어쨌냐고? 거기까지 갔다. 가자마자 트레일러 한 대 임대해서 숙소로 삼고 과감하게 대리점으로 직진, 그날로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nbsp; 하지만 얼마전에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에드나가 휩쓸고 지나가 거의 모든 집이 홀라당 떠내려갔거나 완전한 침수피해를 입어 모든 가전제품을 싹 교체해야 하는 처지가 됐고, 모르긴 해도 중앙/지방정부에서 보조를 해주었겠지, 집을 수리하는 것과 동시에 전에 썼지만 이젠 못 쓰게 된 전기청소리를 신품 일렉트로눅스 청소기로 썩 개비 해버린 상태였다. 아뿔싸, 조가 한 발 늦었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조가 청소기를 들고 나타나면 일렉트로눅스 전기청소기가 얼마나 튼튼하고 성능도 좋은지 정말 잘 쓰고 있다고, 커피와 차, 호박 와플 같은 걸 대접해주어 호박 와플이라면 이젠 질려버릴 정도였다나? 그래서 청소기 딱 한 대 팔았다. 새로 플로리다로 이사온 집에.<br>&nbsp; 낙담한 조. 그저 트레일러에 히루종일 박혀 엉뚱한 공상만 한다. 누군지 허리케인 에드나가 물러가자마자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아 온갖 가전제품을 팔아먹은 전임, 몇 대 전임도 아니고 조 바로 앞에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간 운 좋은 세일즈맨을 부러워하다가, 진짜로 엉뚱한 공상을 시작한다.&nbsp; (여기서 정중하고 진실하게 말씀드리는 바, 허리 아래 이야기 싫어하시는 분과 만 19세 미만이신 분은 나중에 다른 말씀하지 마시고 이쯤에서 읽기를 마치셨으면 좋겠습니다.)&nbsp; 공상 시작.&nbsp; 예를 들어 담벼락이 있다고 치자. 담벼락 위로 어여쁜 여인네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더하여 눈웃음이라니. 보는 거 하나로 눈이 뱅뱅 돌아간다. 그림이 그려지지? 좋다. 그러나 담벼락 아래, 이 금발의 눈부신 아가씨의 블라우스 밑으로는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에 손바닥 만한 팬티 한 장만 입고 있다. 때로는 아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을 수도 있다. 다 공상하는 놈 마음대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가씨 뒤에 털이 숭숭한 웬 쇠도둑놈 같은 사내가 한 명 서 있는데 벌써 아래도리를 훌렁 벗어 큼직한 것을 내놓고 있다가 그나마 미니 스커트를 위로 훅 올리고 앙증맞은 팬티를 아래로 쑥 내려버리거나, 처음부터 아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맨궁둥이 사이에다, 흠, 그만하자. 어떤 광경인 줄 아시겠지? 32세의 조, 이런 공상을 하며 열심히 자위라도 하려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두드려 패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니 이걸 어째? 겨우 서른두 살인데.&nbsp; 비슷하지만 다른 공상.&nbsp; TV 쇼. 흰 벽면에 구멍 세 개가 있고 구멍마다 어여쁜 아가씨가 목과 팔을 내밀어 손짓을 하며 방실방실 웃고 있다. 5미터 앞에는 대여섯 명의 패널이 앉아 아가씨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얼굴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뭔가를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손톱에 메니큐어를 칠해보라는 등. 근데 벽면 뒤에는 적어도 한 명, 어떤 때는 세 명 전부 다 앞에서 했던 공상 속의 쇠도둑놈 같은 털이 북슬북슬한 사내가 서 있어서 마찬가지로 궁둥이 사이로 흠흠. 패널들은 아가씨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몸짓의 비정상을 찾아내 어떤 아가씨가 지금 삽입 중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한 명일 수도 있고, 두 명, 세 명 다일 수 있지만 한 명도 없을 때는 없다. 역시 이런 공상을 하며 자위라도 한 번 해보려는데 도대체 그게 제대로 서야 뭘 하든 할 거 아닌가비여?<br>&nbsp; 이제 간략하게 이야기하자.&nbsp; 다시 플로리다 벌판에서 세일즈에 나선 조. 도중에 차를 세우고 오줌을 누다가 팍 떠오른 것이 요즘, 그러니까 1990년대 미국 기업에서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이슈 가운데 하나인 성희롱, 성추행 문제.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가 좋은 남자 사원들일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여직원들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낄까, 안타깝다, 에서 시작해, 만일 특정 여직원, 대단히 높은 급여를 받는다면,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조건으로 누구인지 모를 남자직원에게 딱 거기, 뒤 궁둥이 사이 모종의 장소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nbsp; 문제는 그런 여성을 찾는 일이다. 마치 화장실에 가거나, 코를 푸는 것을 당연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듯이, 리비도가 넘쳐 폭발할 지경의 남자 직원을 한 번 사정하게 해주는 대신 월급을 왕창 받는 동시에 회사 업무도 훌륭하게 수행하는 직원. 이들을 번개를 예방하는 피뢰침이라고 칭한다.&nbsp; 그래서 조는 인력 회사를 만들어 업무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과 생각을 공유하는 여성들을 뽑아, 고객 회사에 취직을 시켜 업무 시간에 고과우수자들만 대상으로 익명의 피뢰침을 통해 성적 불만족을 해소시켜 궁극적으로 업무 향상을 꾀하는 프로젝트를 이끈다. 반드시 지켜야할 것은 익명성.&nbsp; 프로그램을 짜서 특정한 고과우수자들 한테 내부 전산망을 통하여 알림이 도착한다. 오늘 피뢰침과의 만남이 있으니 시간을 통보하고 그 시간에 장애인 화장실로 가십시오. 회사에 장애인은 없다. 하지만 법령으로 장애인 화장실은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그러니 밀실이나 다름없다.&nbsp; 그래서 남자 직원이 남자 장애인 화장실에 가서 조금 기다리면 창문 비슷한 크기의 문짝 비슷한 통로가 열리면서 여성의 엉덩이가 뒤로 쑥 밀고 나온다. 그러면 부름을 받고 입장한 남자 직원은 아랫도리를 훌렁 벗고 먼저 콘돔을 완벽하게 착용한 다음, 벽면에 두 손을 의지해 하낫둘, 하낫둘, 그거, 만날 하는/했던 거, 열나 하고 일이 끝나면 세면대에 뒤처리를 한 후 모른 척하고 그냥 나와 다시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엉덩이만 내민 피뢰침은 뭐 했게? 대개 잡지를 보던지, 뜨개질을 하던지, 아주 똑똑한 한 명은 이 시간을 쪼개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를 프랑스어로 읽는다. 이 여직원은 피뢰침이 받는 많은 봉급을 모아 훗날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미국 대법관이 된다. 놀랍지? 이이 말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소송전문변호사가 되어 연수입 백만달러가 넘는 피뢰침도 생기고.<br>&nbsp; 근데 이게 웃기지가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리 풍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험한 방식으로 말이지.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고 성기만 노출해 섹스를 한다고? 기XX가 죽음을 맞은 파고다 극장의 화장실이 그렇게 생긴 건 다 아시지? 홀링허스트의 &lt;스파숄트 어페어&gt;든가 어디서 등장하는 동성애자 전용 화장실도 그렇게 생긴 것도. 헬렌 디윗도 133쪽에 이렇게 실토한다.&nbsp; “이성애자들이 게이들의 특정한 문화를 파악하고 그걸 베껴 가면서, 정작 그 문화의 가치 있는 요소들은 죄다 놓쳐 버리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br>&nbsp; 헬렌 디윗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결하기 위한 회사/권력/남성들의 행동을 이런 식으로 비틀었다가 점점 의식을 확장해서 장애인과, 피부색에 따른 인종등에 가하는 모든 차별까지 포함시킨다. 더 웃긴 건 처음엔 피뢰침의 벽 창문 속 엉덩이와 성기 제공으로 배배 틀린 시각으로 시작해, 그런 (분명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일종의 매춘) 행위를 통해 다수의 비 피뢰침 여직원들을 향한 성희롱과 성추행이 근절되었다는 주장을 또 뭐임? 그래서 결국은 누이좋고 매부좋은 미국식 결말로 향하는데, 그것 참. 왜 나는 이게 웃겼을까?&nbsp; 아주 묘하게 기분 나쁘게 끌고 가다가 또 한 번 묘하게 좋은 게 좋다고 끝맺는 거.<br>&nbsp; 1999년에 소설 쓰기를 마쳤으니 디윗의 나이 42세. 여전히 디윗은 남자의 섹스를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주장한다.&nbsp;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성기를 누군가의 안에 집어넣는 것을 상대방을 지배하는 행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중략) 문제는 그들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지배 욕구다.” (p.41~42)&nbsp; 대부분의 남자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삽입을 통해 여성을 지배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뭐 완벽하게 틀린 말은 아니다. 지배욕 충족을 아주 안 느끼지는 않지.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즉 삽입과 사정을 끝낸 후에 내가 이 여자를 지배했다는 느낌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남자에게 위안과 보람을 주는 건 “내가 이 여자를 만족하게 했다.”는 기쁨이다.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면 그것 때문에 남자들도 속으로 열폭하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나? 몇 안 되는 자칭 전문가들의 말 또는 쓴 글만 읽고 그렇거니, 하지 마라. 언니도 만족하지 않았지만 오직 파트너가 상심할까봐 아이 좋아, 아이 좋아, 좋은 척해봤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어. 하긴 글 목적 상 그렇게 썼겠지만.<br>&nbsp; 요새 독후감이 좀 길지? 조만간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어 며칠 술 안 마셨거든. 술 안 마시면 이런 꼴이 난다. 독후감 길어지고, 책 읽는 양도 못 말리게 많아져서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04/98/cover150/89329194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7049878</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방에 후르륵 - [에메랄드 시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5429</link><pubDate>Thu, 14 May 2026 05: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54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377&TPaperId=172754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3/28/coveroff/89546873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7377&TPaperId=172754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메랄드 시티</a><br/>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6월<br/></td></tr></table><br/>.&nbsp; 영어 제목은 모르겠고, 우리말 제목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아 크게 밑진 장편소설이 한 편 있으니 제니퍼 이건의 2010년 작품 &lt;깡패단의 방문&gt;. 아직 안 읽어 보셨으면 얼른 쇼핑하시라. 470쪽짜리가 10퍼센트 깎아서 12,400원이다. 이건 여사가 스물일곱 살 때인 1989년에 쓴 소설집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에메랄드 시티》. 내 속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욕을 와장창 먹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확 말해버리자. 잘 쓰는, 이라기보다 잘 쓴다고 하는 우리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곧바로 이 책을 읽은 건 진짜 고의가 아니었는데, 아니다, 됐다. 이제 배짱이 확 쫄아들어 말할 기력 달린다. 그냥 짧게 별점으로 말하자면 똑 같은 별 넷. 어제는 자라나는 새싹한테 별 셋 주기 미안해서, 오늘은 차마 다섯, 만점까지 올리기엔 아주 조금 거시기해서.<br>&nbsp; 열한 편의 단편소설을 모았다.&nbsp; &lt;깡패단의 방문&gt; 독후감에서 얘기했듯이, 제니퍼 이건이 젊었을 때 다른 인간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와 (얼마나 진했는 지는 몰라도) 연애를 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에메랄드 시티》에는 부잣집 남자와 연애 또는 결혼한 여자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모델을 꿈꾸며 미국 중서부 시골이나 북유럽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사진사, 아니지, 포토그래퍼 혹은 프로듀서한테 잘 보이려 안달이 난 쭉쭉빵빵하고 비쩍 마른 아가씨들도 나오고, 두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는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한테 최고의 복지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횡령이나 사기를 친 남편/아빠 이야기도 나온다.&nbsp; 작품의 무대는 미국을 비롯해서 아프리카, 아시아, 스페인, 리비아, 멕시코 등등 대륙을 불문하고, 백만장자부터 노숙인까지 빈부를 망라한다.&nbsp; 영어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했다고 해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다. 물론 미국 작품답게 하나같이 개운한 결말, 적어도 우울하지 않고 폭망도 아닌 상태로 끝을 맺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릿한 맛을 은은하게 전하기도 하니, 제니퍼 이건, 거 참, 잘 쓰네.&nbsp; 내가 지금 여기서 아무리 변죽을 울려도 확실히 직접 읽는 것에 비하지 못하니, 웬만하면 이 정도에서 독후감 접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을 후르륵, 삼복에 냉콩국수 들이 마시듯 후르륵 읽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쓰는 단어가 부족해서. 우리 작가들도 이렇게 좀 써 주었으면 좋겠는데….<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3/28/cover150/89546873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93289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딱 죽지 않을 만큼 슬퍼 죽겠다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3364</link><pubDate>Wed, 13 May 2026 05: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33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2733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off/89320440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2733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a><br/>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nbsp; 1987년이나 86년생 작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김수영∙신동엽∙김종삼의 시 연구로 박사까지 마친 소설가.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lt;녹&gt;이 당선해 등단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이이의 첫 소설집이라서 &lt;녹&gt;을 소설집의 첫번째 순서로 실었다. 이것 말고는 공개한 바이오그래피가 거의 없다.<br>&nbsp; ‘녹’이 rust를 말하는 줄 알았지만(오래 전 양귀자씨가 이 녹을 제목으로 하는 &lt;녹&gt;을 써서….) 결혼 이주 여성의 이름이다. ‘녹綠green.’ 화자 ‘나’는 전공을 밝히지 않은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몇 개 대학의 강사로 출강하는 워킹맘. 성이 ‘노’씨니까 ‘노 강사’라고 하겠다.&nbsp; 워킹맘 노 강사가 이혼한 다음에 가장 두려웠던 시기가 방학 시즌이었단다. 방학 기간 동안엔 수입이 없어서 생활비 조달 및 가계 유지가 힘들었다.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한 선배 언니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강좌를 알선해주어 3개월 동안 출강했을 때 수강생이었다.&nbsp; 이혼 후에 엑스가 당연히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물론 사소하지만 사람을 진짜 열 받게 만들면서. 매달 양육비를 2만원에서 5만원 적게 보내는 거다. 전화를 하면 자기 사정이 지금 워낙 좋지 않아 그랬다고, 다음에 한꺼번에 다 보내겠다고 핑계를 댄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술 한 번 안 마시면 될 것을. 담배만 끊어도. 하다못해 치킨 한 두 번만 배달 안 시켜도 충분하잖아. 노 강사가 전화통에다 대고 싫은 소리 하는 걸 녹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가 베이비시터를 하겠다고 졸랐다. 이주 여성의 시터 금액은 우리나라 사람의 반 정도란다. 이렇게 노 강사는 녹을 시터로 고용을 했다.&nbsp; 시터 녹은 아이 돌보는 일은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청소나 음식 같은 건 정말 훌륭한 수준이었다. 시터가 그런 일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해도 녹은 계속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했는데, 다만 노 강사 모르게 열살 먹은 자기 아들을 집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이게 불만이던 차, 강사의 어린 아들이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눈 주위를 여섯 바늘 꿰맨 작은 사고가 생긴다. 노 강사는 열이 잔뜩 받아 뭐라 한 바탕 지랄을 했고, 이후 녹의 아들도 출입을 자진해서 금지했는데, 착하디 착한 열살배기 아들은 비 오는 날이면 엄마 비 맞을까봐 우산을 갖고 강사님 아파트 현관까지 마중을 왔다.&nbsp; 그러다 어느 비 오는 어둔 저녁 시간에, 열살배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 죽었다.&nbsp; 방학이 끝나고 노 강사가 다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세상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 녹이 스케치북에 항의 글을 써서 들고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모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다음 학기부터 강사자리마저 떨려나게 된다.&nbsp; 스케치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nbsp; “노교수를 고발하는다&nbsp; 저가 아이을 잃었습니다&nbsp; 왜냐하면 노교수는 책임입니다”&nbsp; 이 문구를 본 노 강사는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마음 속으로는 녹의 문구를 교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직업병이었다고.&nbsp; “노교수를 고발하는다” → “노 강사를 고발합니다.”&nbsp; “저가 아이를 잃었습니다” → “저는 아이를 잃었습니다.”&nbsp; “왜냐하면 노교수는 책임입니다” → “노 강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는 “노 강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nbsp; 흠. 그렇군. 이게 직업병이군.&nbsp; 그런데 같은 작품 &lt;녹&gt;에서 공현진 박사님은 이런 표현을 쓰신다.&nbsp; “감사해요.” 13쪽. 어딘가 좀 어색하지 않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무 문제없이 흔하게 쓰는 표현이지만 내 세대가 듣기엔 영 이상하다. 대신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 또는 “고마워요.”는 익숙하다.&nbsp; 16쪽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nbsp; “교정 앞에 서 있는 녹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와 잎 들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nbsp; 조사 ‘로’는 (네이버 사전 참조)움직임의 방향, 경로,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위 문장에선 나뭇가지와 잎들의 “위치”니까 “녹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가 아니라 “녹의 머리 위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로 써야 맞는 거 같은데?&nbsp; 시비하는 거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직업병 말이 나온 김에.&nbsp; 단편소설집에서 특정 작품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좀 그래서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만 골라 이야기하다보니 쪼잔하게 이런 거 가지고 한 마디 하게 됐다.<br>&nbsp; 표제작 &lt;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gt;에는 채식주의자 남자 주인공 곽주호가 등장한다. 그가 전 애인하고 찢어지게 된 사연이 인상 깊은 것까지는 아니고 뭔가 좀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br>&nbsp; 그게 채식이야?&nbsp; 주호는 된장찌개에서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골라내고 있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주호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호가 평소처럼 고기를 골라 담은 접시를 여자친구 쪽으로 밀었는데 그녀는 평소와 달리 팔짱을 끼고 접시를 내려다보기만 했다.&nbsp; 질린다, 진짜.&nbsp; 갑자기 마음이 변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너는 정상이 아니야. 그녀는 식당에 주호를 두고 나가버렸다. 나도 안다고. 주호는 혼자 앉아서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p.55)<br>&nbsp; 주호의 전 여자친구는 이 씬에서 딱 한 번 출연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다. 이 귀절만 읽어보면 전 여친이 참 나쁜 여자같다. 저 소갈딱지하고는…. 그지? 이게 앞뒤 다 잘라버려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술이다. 주호 얘가 평소에 얼마나 찌질하게 전 여친을 대했으면 여태 잘 참다가 이제 와서 저 지랄을 하고 찢어지겠느냐고. 저 위 대목만 가지고 전 여친이 심했네, 너무했네, 판단하는 건 위험하지 않아? 마치 &lt;녹&gt;에서 노 강사 하는 얘기만 듣고 전 남편을 욕하게 되는 것처럼? 이 책 정말 읽어보신 분은, 흠, 흠, 웃지 마시라.&nbsp; 이런 게 다 소설의 힘이다. 그래서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눈에 힘을 빡, 주고 읽어야 한다.<br>&nbsp; 하나만 더 얘기해볼까? 여섯 번째 순서로 실린 &lt;권능&gt;.&nbsp; 주인공은 화자 ‘나’. 등장인물은 교회목사의 아내인 듯한 엄마와 엄마보다 열 살 많은 이모. 이모 딸 솔.&nbsp; 이모는 어려서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며 동생들을 다 서울로 데려와 뒷바라지했다. 그래서 엄마는 이모를 마치 엄마 비슷하게 대우한다. 여태 말도 높힌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이모는 결혼하고 10년이 훌쩍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다. 목사의 아내 엄마가 나를 낳으니 이모가 선물로 ‘나’ 한테 은목걸이를 사주었다. 혹시 잃어버리면 누구네 집 딸인지 알 수 있게 이름하고 (늘 바쁜 엄마는 전화를 받지 못할 일이 많으니까) 이모 전화번호를 새긴 목걸이.&nbsp; ‘나’가 조금 나이가 들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다른 아이 엄마들이 먼저 발견했다. 은목걸이에 작디작게 부적을 새겨 놓은 것을. 거기다 이모 전화번호를 박은 건, ‘나’ 덕에 자기도 아이 하나 회임해보려고. 난리가 났겠지? 목사 집에 웬 샤머니즘?&nbsp; 어쨌거나 ‘나’가 다섯 살 때 이모가 임신을 하고 이듬해 딸을 낳았으니 그 애가 바로 솔.&nbsp; 이모는 솔을 낳고 또 무꾸리 집에 가서 사주를 봤더니 명이 짧고, 남자 때문에 그렇고, 물 조심하란다. 그리하여 이 귀한 딸을 지키기 위해 별의 별 통제를 하고 ‘나’를 솔의 경비병 비슷하게 했던 모양이지. 솔은 아이가 착해, 혹은 물러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그저 어리숙하게 자라 대학에 들어간다. 진짜 바보스러울 정도로 엄마 말에 꼼짝도 못하는 솔. 하지만 2학년이 되자 봄 엠티에 가서 한밤중에 바닷물에 단체로 뛰어들었다가 솔만 빠져 죽고 만다.&nbsp; 솔이 대학 다닐 때, 살고 있는 빌라 옥상에서 대여섯 살 많은 ‘나’에게 솔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고민만 죽자고 하고 있는 솔이 어처구니없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nbsp; “너는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수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가 없어 보이는 솔이가 한심했다. 나조차 이모의 간섭이 견디기 힘들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데 그 모든 간섭에 항의하지 않는 솔이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게 고민이야?” (p.202)&nbsp; 문제는, &lt;권능&gt; 속에서 주인공 화자 ‘나’ 역시 독자가 읽기에 솔보다 하나도 나은 거 없이 수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 &lt;권능&gt;의 ‘나’만 그럴까? 아니, 아니. 우리 소설의 많고 많은 주인공들이 이런 성향을 흔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발적인 의지 없이 수동적이기만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이 그저 아프고 우울하다는 주장만 하는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거 같아 독자인 나도 슬프다. 슬퍼 죽겠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슬퍼 죽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150/89320440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3507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좀 있는 집 소년의 성장기 -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1483</link><pubDate>Tue, 12 May 2026 0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714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013&TPaperId=172714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3/37/coveroff/k2821350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5013&TPaperId=172714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a><br/>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 책,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책 읽고 저자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봤더니 전부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먼저 이야기해둘 것은 자기 살아온 것을 소설로 쓴 작품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왜 그런가 하면 이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딱 이 경우인데, 집안 대대로 의사, 장군, 기업가 등을 지낸 빵빵한 집안에서 아버지 역시 의사, 의사라도 그냥 의사가 아니라 독일 역사상 최연소 주립병원 원장을 지낸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로, 가족 모두 함부르크와 덴마크 사이에 있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가장 큰 헤스터베르크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 구내의 원장 관사에 살며 하여간 남들 눈에 모자란 것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살면서 자기가 겪은 지난 삶에는 나름대로 다 회한이 있는 법이라 쓸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암만. 자신이 살아온 내력의 쓸쓸함, 애잔함을 내가 무시하는 건 전혀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겪은 것이 가장 절실한 법이니까.&nbsp;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이자 화자 ‘나’이며 작가이기도 한 요하임, 애칭 요세 마이어호프의 아빠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가 병원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 어린이청소년정신병원에는 환자 수가 무려 1천5백 명이 넘었는데, 입원 환자 전부 정신병, 즉 조현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많은 수가 조현병 환자였지만 적지 않은 지독한 수준의 기형, 정신지체 같은 사유로 사실상 버려진 환자들도 또한 있었다고 한다. 즉 요하임 마이어호프보다 더 험한 세월을 사는 최소한 1천5백 편의 장편소설이 병원에 있었다는 얘기.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요하임보다 절절한 내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걸 생각하면 좀 그렇다는 거다. 입원 환자 가운데 누가 이 작품을 읽었으면 아마도 이렇게 한탄하지 않았을까?&nbsp; “나 같으면 앓느니 죽겠다!”&nbsp; 이런 의미에서 노골적으로 자전적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지 뭐 특별한 건 아니다.<br>&nbsp; 요하임 마이어호프는 1967년에 중서/남서부에 있는 홈부르크에서 아들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1972년부터 아버지따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헤스터베르크 정신병원의 원장 사택에서 자랐다. 자라도 오래 자랐다. 다 커서 훗날 연극배우가 될 때까지. 형제간 나이 차이는 각 3년. 당연히 다양한 놀이에 두 형들이 한 편을 먹고 어린 요하임은 다분히 따돌렸겠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으면 형들이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뭐 그랬겠지.&nbsp; 이대로 계속 쓰다가는 작품의 스토리를 다 실토할 거 같다. 시기를 훌쩍 넘어가자.&nbsp; 고등학생 시절 미국 와이오밍 주에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가 있었다. 이 시기에 세 형제 가운데 제일 공부 잘하는 작은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다시 귀국해 학교를 마친 다음에 요하임은 연극계에 투신해 지금은 독일에서 가장 바쁜 배우, 연출가, 영화 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단다.&nbsp;&nbsp; 연극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은 2011년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6부작 연극으로 만든 &lt;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gt;를 공연한 일로, 여기저기서 다양한 상도 받았다. 이후 6부작 가운데 (본문 이전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2부 &lt;언제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gt;를 우리말로 번역해 사계절에서 출간했다. 위키피디아에 6부까지 모두 소개한 걸 보면 이 책 말고도 다섯 권이 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 한 권이면 충분할 듯하다.&nbsp; 안타깝게 2017년에 뇌졸중이 발병해 그의 경력사항을 봐도 2017년 이후의 활동은 상 받은 거 하나 말고는 없다. 그때 겨우 쉰 살이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어떻게 하나. 사는 게 다 그런 걸.<br>&nbsp; 나는 이 책이 자전적 이야기인줄 모르고 읽었다. 알라딘이 내게 말하기를 AI가 나더러 이 책 읽으면 좋다고 권하다 해서 딱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거절당해 다른 동네 도서관에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해서 읽었다. 제목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라니까 삶과 죽음에 관한 좀 심각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뭐 사실 삶과 죽음에 관한 내용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그래도 첫 문장을 이렇게 써 놓으면 자전적 삶과 죽음, 둘째 형과 키우던 개와 아버지의 죽음은 아닌줄 안 게 당연할 수도 있지 않나?&nbsp;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은 이는 연금 수급자였다.”&nbsp; 사실 이 문장을 과하게 강렬하게 읽는 바람에 다음 문장을 놓친 내 잘못이기는 하다.&nbsp; “사랑하는 가족이 사고와 질병, 노환으로 떠나기 오래전의 일이었다.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까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기 오래전…”&nbsp;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말하고 싶어하는 또는 공연하고 싶은 죽음은 가족의 죽음인데, 초장에 저 연금수급자의 죽음을 과하게 진지하게 얘기한다. 일부러 그랬을까? 나 같은 독자 헛갈리라고? 게다가 아직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곱 살 먹은 주인공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단다. ‘나’가 작가 자신이며, 진짜로 정신병원 구내에 있는 원장 관사에서 살고 있으며, 거의 매일 밤마다 커다란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크고 높은 목소리로 울부짖는 비명을 들으면서 잠에 든다는 걸 전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화자 ‘나’가 정신병원에 살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으니 이거 뭔가 중요한 사연이 있는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지.&nbsp; 아니, 이 색다른 구성은 뭐야. 이거 흥미진진한데…&nbsp; ‘나’는 엄마가 딱 정해준 큰 길로 등교를 하는 대신 일곱살 생일 일주일 후에 정신병원 시설 담장 밖의 주말농장 쪽에 혹시 다른 길이 있을까 싶어 그쪽으로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만다. 조금 헤맨 다음에 드디어 길을 찾았지만 주말농장 철문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넘었다. 넘고 보니 늙은 남자를 발견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모두 베이지색 옷. 퍽 고상해 보인다. 발과 종아리는 풀밭 위에 놓였고 나머지는 꽃 속에 파묻혔다. 괜히 주말농장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각이다. 생일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보니 그렇다. (또 잠깐 헛갈림. 정신병원에 사는 아이가 험한 곳에서 생일선물로 손목시계를 받았다는 말이지?) ‘나’는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실까지 달려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nbsp; 그래서 담임선생, 교장선생까지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하고 물으니까 ‘나’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가 의사예요.”&nbsp; 아직도 이게 실명 자전 소설이라는 걸 모르는 독자는 거 참, 복잡하게 됐다. 다시 생각해봐야겠군.<br>&nbsp; 이후부터 아버지 헤르만 마이어호프 박사/교수, 어머니 마리아, 큰형 헤르만, 작은형 마르틴, 키우는 대형견 한 마리의 지지고 볶는, 지겹게 지지고 볶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귀엽게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시작한다.&nbsp; 예를 들어 식탁에서 가족들이 모여 퀴즈 시합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어린 요하임(요세)는 9시에 올라가 자라고 해서 주둥이가 댓발 나온다거나, 형들이 병원의 입원환자들한테 바보, 미치광이, 병신, 천치, 백치, 멍청이, 머저리, 사이코, 도라이 등등 마음대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거나, 아빠의 마흔번째 생일 선물로 감자요리 마흔개를 하려다가 엄마의 과잉친절에 기분이 상해 다 없애버렸다거나 뭐 이렇게 그냥 좀 있는 집 사는 이야기. 501호나 502호나 비슷한 이야기를 주절주절.&nbsp; 뭐 색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장소가 정신병원이니까 환자들과의 교류, 신병동에 주지사가 직접 방문해서 생긴 요절복통, 정말로 열람실에서 키득키득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든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것이 본문 483쪽 가운데 300쪽 가까이 차지한다. 이중에서 유별나게 특징적인 것은 주인공 요세,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전반성불안장애가 있다는 거. 즉 한 번 열을 독하게 받으면 거의 경련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증세가 있다. 발악 수준의 비명과 난장판, 그리고 경련, 실신까지. 이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작가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쉰 살의 나이에 뇌졸중이 발병한 것도 이런 사유 때문이 아닐까, 라고 위키피디아를 보면서 조금 생각해봤다.&nbsp; 그러다가 제일 앞 장chapter에 나오는 대로 “형과 너무 젊은 아버지, 조부모, 심지어 어린 시절 키우던 개” 가운데 조부모 빼고 등장인물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일곱 살짜리 요세는 스물다섯 살 연극배우 요하임 마이어호프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결말을 맺기가 좀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지,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하면 딱이다.&nbsp; 청소년 문학작품 출간에 전력을 다하는 사계절이 찍었다는 것 때문에 혹시, 했다가 역시, 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3/37/cover150/k2821350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73373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기근의 시절에 먹고, 먹고 또 먹다 - [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9593</link><pubDate>Mon, 11 May 2026 0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95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033568&TPaperId=172695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30/coveroff/k25203356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033568&TPaperId=172695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a><br/>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br/></td></tr></table><br/>.&nbsp; 양쐉쯔楊双子. 양씨 성을 가진 쌍둥이라는 뜻의 이름. 1984년생 타이완 쌍둥이 여성 맞다. 자매 가운데 언니는 창작에, 동생은 번역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가, 동생이 2015년에 암으로 먼저 갔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 양쐉쯔는 언니 쌍둥이 양뤄츠다.&nbsp;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면 타이완 타이중에서 나서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정치적 운동을 하고 뭐 이런 복잡하지만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정보만 좍 쓰여 있다. &lt;1938 타이완 여행기&gt;를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그래도 좀 알고 싶으면, 양솽쯔가 어느 종족인지를 찾아야 하지만 그런 건 찾을 수 없다. 2020년에 타이완의 만다린어로 이 책을 써서 2021년에 상을 받았고, 일본말로 번역 출간해 2024년에 일본에서 최우수 번역상을 받았으며, 영어로 번역한 건 미국에서도 국가도서상을 받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좋겠다. 여기저기서 상 잔뜩 받아.&nbsp; 타이완에 가장 많은 인구는 한족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에 장제스와 함께 중국의 보물을 잔뜩 싣고 도망한 한족이 한 20퍼센트 되나? 그 전에도 주로 푸젠성 출신 한족이 대거 타이완 섬으로 이주해 처음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원주민들을 무지하게 차별하며 섬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원주민의 고달픈 삶은 탕푸루이가 쓴 &lt;바츠먼의 변호사&gt;에 잘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서 1938년이라면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아 내지內地, 그러니까 일본 섬사람들이 이주해 타이완의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당시. 소위 내지인들은 조선에서 그러했듯이 타이완 본섬 사람들, 혼도진本島人을 아래로 착 내려봤겠지. 그러면서 말로만 내지인과 혼도진, 그리고 조센징 모두 천황의 자식들이니 어쩌니 떠들어댄 건 안 보고도 비디오 아냐?&nbsp; 위키피디아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을 책을 읽고 짐작하건데 양솽쯔 역시 타이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푸젠성 출신의 한족 집안의 따님일 듯하다.&nbsp; 그런데 타이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조금 달리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그렇게 많이 열 받지 않는다. 아 정말이라니까! 타이완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 사람들보다 더 싫어한다니까! 경제 수준이 우습게도 자기들 한참 아래였다가, 비슷했다가, 우리가 추월했다가, 다시 비슷해지는 것도 기분 나쁘고, 특별히 1991년에 우리나라하고 국교를 끊을 때 되게 기분 나쁜 방식으로 당했다고 여긴 듯하다. 사실 그때 좀 심하긴 했지.&nbsp; 여기에 타이완 섬이 사실상 수백년 이상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터라, 식민지라고 해봐야 그저 지배계급이 바뀌었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내 생각이니 믿지 마시라. 하여튼 식민 지배에 관해서 우리만큼 자만심 상해하지 않는 건 정말인 듯하다. 작품 속에 자꾸 타이완 식민지 사람들 이야기를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섞는 장면이 나오면 속이 편하지 않다.&nbsp; 양솽쯔도 일본에 우호적인 것처럼 보인다. 타이완 사람이면서 ‘솽쯔’의 한자어 표기를 대만 표준에 입각해 ‘雙子’ 대신 일본식 약자인 ‘双子’를 쓴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러하다.&nbsp; 위키피디아 되게 웃겨.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나오지 않고, 몰라도 전혀 상관없는 사생활 정보는 쓰여 있다.&nbsp; “Yang is married to her wife Lai Ting-ho.”&nbsp; 양솽쯔가 와이프 팅호와 결혼했다고? 그러면 양이 허즈번드, 남편이야? 아니다. 양도 와이프. 와이프만 둘 있는 결혼방식. 이건 독자가 굳이 알 필요 없잖아? 알건 모르건 상관은 없지만.<br>&nbsp; 작품의 주인공은 화자 ‘나’, 1938년 5월에 25세인 엄청 키가 큰 일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 여행을 좋아해 사실상 일본이 아니었던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특히 오키나와에서 남국 특유의 정취에 반해 언젠가는 타이완에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다. 특히 올해가 적기다. 아오야마가 쓴 소설 &lt;청춘기&gt;를 영화로 만들면서 거금의 고료가 들어왔던 거다. 게다가 잡지사 한 군데에서 남양南洋을 배경으로 연재소설을 써주는 조건으로 여행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소설이 일본의 남진南進에 협조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아오야마 입장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제국을 선양하는 어용 작가가 될 수 없어 이를 싹 거절했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 치즈코.&nbsp; 아오야마 치즈코는 165cm로 키가 엄청 크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크다. 몸집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골격도 만만하지 않아 엄마가 치즈코를 낳다가 세상 떴다. 아빠도 일찌감치 갈 곳으로 갔다. 숙부집에서 살게 됐는데, 기쿠코 숙모가 친딸처럼 키워 정이 돈독하다. 그래서 숙모한테 돈을 좀 한 5백엔 달라고 했다가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여행은 무슨. 스물다섯? 우리 때는 그때까지 시집 못 가면 목 매달아 죽었다 이것아! 숙부가 선 자리 알아보고 있으니 하나 골라라. 사실 혼기를 놓쳐 이제 중매가 와도 중년 홀아비 밖에 안 들어온다. 치즈코는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니 이런 말이 지겨울 수밖에.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뭐.&nbsp;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좀 있다. 잠깐 작은 절집에서 혼자 등이 꺼지지 않게 지켜야 할 때가 있었다. 한 열흘에 한 번 말라 비틀어진 중이 등에 쓸 기름을 가지고 올 때 음식도 조금 들고 와 그걸 먹으며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버텨야 했던 기억. 뭔 일이 있었던지 하여간 그렇게 몇 달을 지냈는데, 그때 너무 배를 곯아 절에서 내려올 때 심각한 각기병에 걸린 적이 있다. 이후에 키 큰 아오야마 치즈코는 식탐 많은 먹보 밉상이 되고 말았다. 밉상은 하도 먹을 생각만 해서, 1938년이면 일본은 물론이고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 사람들 모두 굶주릴 때인데, 더군다나 1930년대 중반이라면 세계적인 기근이 휩쓸 당시인데도 그저 먹는 거만 밝힌다는 뜻이다. 책에서는 한 번도 밉상이라고 나오지 않는다. 반대다. 쾌활하고 화통한 장부의 모습이라고만 나온다. 내 눈에 그렇다는 거다.&nbsp; 그리하여 아오야마 치즈코는 등장할 때부터 일본 찹쌀떡인 모찌를 한 입에 두 개나 쑤셔넣고 우물우물. 아오, 정말 밉상이라니까.<br>&nbsp; 딱 이때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州廳에서 아오야마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영화로 만든 &lt;청춘기&gt;가 1년이 지나 타이중에 개봉됐고, 이를 본 현지의 부인단체 ‘닛산카이’ 여사님들이 감동감화 받은 바 너무 커서 작가를 초청해 타이완 각지를 돌며 순회 강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사례금은 물론이고 뱃삯을 비롯한 모든 교통비, 숙박비, 식비, 기타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아오야마가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엄마 같은 숙모가 마련한 맞선은 한 번도 안 보고 그 길로, 1938년 초여름에 규슈 북쪽 끝의 모지항에서 출발, 타이완 북쪽 끝 지룽항에 도착한다.&nbsp; 지룽항에서 타이베이로 가 일박을 하고, 기차로 타이중으로 향한다. 이때부터 아오야마는 먹는 타령이다.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 하도 많이, 자주 먹어서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들이민 것이 어린 시절 등불 꺼지지 않게 지키라고 꼬마 여자 아이 혼자 절에 몇 달 동안 틀어박혀 있게 만든 거다. 하여튼 지독하게, 지겹게 먹는 타령이다. 타이중과 부인회 닛산카이에서 준비한 거의 최상급 일본 요리에는 별 관심 없고, 로마에 갔으면 로마 음식 맛을 봐야 하는 것처럼, 타이완에 왔으니 혼도진, 본지 사람들이 먹는 걸 자기도 먹어야겠다는 이미 불이 붙은 신념만 굳세진다.&nbsp; 여기에 등장한 인물이 왕첸허王千鶴. 이름 첸허千鶴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우.연.히. 같다. 21세 여성. 아오야마를 위하여 닛산케이 부인회가 고용한 통역사다. 그런데 음식 장만도 하는 식모이기도 하고,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고, 비서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또 뭐 있어? 하여간 뭐든 다 하는, 말로만 친구, 사실상 하녀, 이 정도면 하녀 가운데도 몸종 아닌가? 전직 공학교 국어교사. 공학교?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소학교. 혼도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공학교. 따라서 공학교 여선생은 내지인 눈으로 보면 인간도 아니다. 당연히 내지 본토에서 온 아오야마 치즈코 눈에는 자기 자매처럼 친근하지만 식민지 땅에서 사는 일본 여자들한테는 그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짐작하시겠지? 전직 공학교 국어 교사. 국어 교사라면 일본어 교사라는 말. 일본말 잘 하고, 내지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잘하고, 타이완 내 각종 언어도 당연히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프랑스어도 소통 가능할 정도. 언어 귀신.&nbsp;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때려 치웠다. 학교 교사도 그만 뒀다. 왜? 결혼 준비. 인텔리 남편감은 일본에서 일하고 있단다. 타이중의 유수한 왕씨 가문 첩실이 낳은 딸. 똑똑하지 않았으면 학교도 보내지 않았을 터. 교사를 할 정도니까 거의 영재 수준이다. 음식도 잘하고, 음식에 관해 많이 안다. 더 이상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안다. 그래 본격적으로 지금부터 타이완 음식 기행이 펼쳐지는데….<br>&nbsp; 머리 속에서 팍 떠오르는 이름 하나. 일본 작가 무라이 겐사이. 그가 쓴 사부작 &lt;식도락&gt;.&nbsp; 양솽쯔가 일본에 친숙하니 틀림없이 무라이를 읽었을 터. &lt;식도락&gt;을 보고 타이완에도 일본과 비견할 만한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나도 한 번 써볼까? 더구나 무라이의 음식은 거의 다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일본식으로 다시 만든 것에 불과하니, 타이완의 유구한 세월을 버틴 음식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lt;식도락&gt;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셈량도 했을 수 있다. 여기에 시대가 다르니까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남진정책과 전쟁 등에 반대하고 양념처럼 페미니즘을 좀 뿌려주면 어떨까?&nbsp; 이런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했을까?&nbsp; 그런데 말입니다, 음악을 문자로 설명하기 쉽지 않듯이, 음식도 문자로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 독자가 알지도 못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글로만 읽어 감흥이 오겠느냐고? 양솽쯔도 무라이한테 배울 것이 하나는 있었다. 문자로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것을 짐작했다면, 무라이처럼 삽화라도 그려놓았어야지.&nbsp; 게다가 양선생의 글 자체가 가볍다. 좋은 말로 해서 그렇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30/cover150/k25203356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13049</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과한 베드씬과 서걱거리는 우리말 - [천년의 즐거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5825</link><pubDate>Sat, 09 May 2026 05: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58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29&TPaperId=172658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02/56/coveroff/8932044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29&TPaperId=172658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년의 즐거움</a><br/>나카가미 겐지 지음, 이정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br>&nbsp; 나카가미 겐지. 1946년에 일본 와카야마 현에 있는 피차별 주거지, 옛날 우리 말로 하자면 향, 소, 부곡 같은 곳, 카스트적 게토를 일컫는 ‘로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친부도 다른 지역의 카스트 게토, 부락 출신으로 주로 암시장에서 기생하는 깡패, 폭력배 비슷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카가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거야 뭐 우리가 알 필요 없지.&nbsp;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아이를 건설업자한테 데려가 양아들로 입적시켰는데, 이 양아버지가 부락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벌인 사업이 성공, 덕분에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락(위키피디아 용어), 즉 로지(부락의 부분 네트워크) 학생을 위해 중등교육 인센티브를 주었는데 이 인센티브를 제대로 활용한 첫번째 로지 아이였다고 한다.&nbsp; 와카야마 현의 부락에 자신의 이복형제가 많이 살고 있는 조상 대대로 천대를 받던 곳이라 그곳 소년들은 너무 일찍부터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이어서 외면받을 짓을 골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도 없고, 그래봤자 학생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받을 터이니 기껏해야 글을 읽고 쓰는 수준에 머물렀겠지. 작품을 읽어봐도 열다섯 살 정도가 되면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댐 건설 막일을 하거나 벌목공을 하거나, 도둑질 혹은 지역 깡패로 장사하는 소상공인으로부터 소위 보호비를 뜯어 술과 여성을 사고, 근근이 먹고 산다.<br>&nbsp; 소설집 《천년의 즐거움》의 ‘천년’은 당연히 정확하게 1,00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카스트적 게토인 피차별 지역 ‘부락’이 생긴 것이 천년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과 부곡이 삼국시대에, 소가 고려시대에 생겨 조선 초기까지 유지되었다. 향, 소, 부곡이 일본으로 넘어가 부락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아니라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nbsp; 주로 소가죽 무두질과 가죽 신발을 만들어 파는 (우리말로)갖바치, 그리고 고리버들 작업을 하는 (역시 우리말로)고리백정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부락은 메이지 유신 당시 차별을 법적으로 철폐하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메이지 일왕도 몰랐을 것이다. 차별 철폐에 열을 잔뜩 받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걸. 바로 보통의 농민들. 이들이 칼과 낫, 그리고 죽창을 들고 부락에 침입해 중인환시리에 부락 사람들의 배를 꿰어 죽이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질 것은. 부락 사람들은 그리하여 더 깊은 곳을 찾아 움막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이렇게 사건을 피해 작은 움막이 모은 골목을 ‘로지’라고 한 것 같다.&nbsp;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향, 소, 부곡이 조선시대 초기에 없어졌다지만, 아마도 임진왜란을 겪으며 사라진 것으로 추리하는 바, 그럼에도 짐승을 잡고 짐승의 머리와 발, 내장 등 부속물을 얻어 그것을 일반 농민들에게 팔아먹고 사는 백정, 백정에게 가죽을 얻어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 나무껍질로 광주리를 만들어 파는 고리백정들은 큰 마을의 변두리 지역에서 옹기종기 움막을 짓고 그들끼리 따로 살았으니 그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명희가 쓴 미완성 명작 &lt;혼불&gt;에 잘 나와 있다.<br>&nbsp; 이 로지에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부부가 있으니 레이조와 오류. 작품은 전부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때 부부는 벌써 늙을 만큼 늙은 상태이다. 아마도 메이지 유신 당시 농민들이 저지른 학살을 피해 이 로지로 피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1세대나 2세대의 후손 정도 되는 듯싶다. 남편 레이조가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로 먹고 살았다. 그러다 세 돌까지 키운 아들이 차에 쌀을 넣고 팔팔 끓인 죽粥, 자가유를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바람에 크게 화상을 입고 죽는 모습을 보고, 다음해 교토의 절로 중이 되기 위해 수행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스물세살의 오류는 동네의 유일한 산파를 하고 살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로지의 거의 모든 아이를 받았다.&nbsp; 로지에서는 생식 능력을 잃은 완숙한 여성을 ‘오바’라고 칭했지만, 유일하게 아이를 받는 오류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건만 탄생에 관계하는 일종의 삼신할매 역을 해서 그랬는지 오류에게도 오바의 칭호를 붙여 “오류노 오바”라 부르기 시작했다.&nbsp; 몇 년 후 쿄토에서 수행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 레이조는, 로지로 돌아와 게보즈, 정식 중은 아니지만 절과 중이 없는 지역에서 중을 대신해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제사를 바치는 대리 중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아내는 거의 모든 로지 사람들의 탄생에 직접 간여하고, 남편은 모든 로지 사람의 죽음에 관여하니, 원래부터 터줏대감 부부의 로지 내 신망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br>&nbsp; 이야기를 주로 오류노 오바를 중심으로 이 로지에서 가장 오랜 가문인 나카모토 집안 출신의 남자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로 전개한다.&nbsp; 나카모토 남자들은 원래부터 씨가 좀 남달랐다. 키가 크든지 몸이 단단하다. 피부가 맑다. 로지 출신만 아니라면, 그래서 더 잘 배웠더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는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오류노 오바는 생각한다. 그렇게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 고귀한 핏줄 속에 또한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고 있으니, 여자를 가리지 않고, 악한 일도 가리지 않는 것. 사실은 여자를 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살면서 주위를 보니까, 꽃이 아름다우면 벌과 나비가 꿰는 법인 것처럼, 벌 나비가 아름다우면 꽃도 꿰는 게 인생살이라서, 여성들이 잘 생긴 나카모토 남자만 보면 눈알이 커지고 콧구멍이 넓어지며 아랫배에서 찌르르르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거다. 하다못해 오류노 오바마저 자기가 직접 받은 다쓰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놈의 전류가 짜릿짜릿하게 흘러 직접 다쓰오를 자빠뜨린 적이 있었다는 거 아니냐. 동정인 줄 알았더니 오류 아줌마가 세번째 여자였다고 해서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nbsp; 고귀한 피와 엉겨 흐르는 더러운 피는, 먹고 사는 일에도 영향을 주어, 폭력과 살인, 도둑질, 주로 히로뽕인데 마약복용까지 망라한다. 오류노 오바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일을 하는 사람 답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이든 기형이든, 아니면 지체장애든, 범죄자가 될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야 좋은 것이고 씨를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카모토 집안의 남자들이 이런 일을 하고 다니니 제 명에 죽는 사람이 드물거나 없다. 그래 거의 전부 2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을 하는데, 그때마다 오류노 오바는 고귀하고 더러운 피가 스러졌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연작 단편들의 결말을 장식한다.<br>&nbsp; 부락과 로지라는 특수한 장소. 특수한 사람들이 특별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작업이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문제가 있다.&nbsp; 나카모토 남자들은 성적으로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아무래도 DNA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다. 손끝만 대도 여자들은 곧바로 엑스터시의 황홀경으로 빨려간다. 소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픽션이고 조금의 과장일 터이니 웬만하면 독자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도 나카가미 겐지의 성애 장면은 과하다. 나카모토 남자들의 방중 광경은, 표현의 노골성은 다음으로 하고 지독한 가학/피학이 넘쳐 변태 포르노의 혐의를 받아 마땅하다. 여성/남성을 끈으로 묶고 애무나 삽입을 하거나, 여성의 전신을 바늘 쌈지로 찔러 온몸에 흐르는 피를 탐하다가, 비록 여성이 그렇게 해달라고 피학적 성애를 원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면 같은 것, 시신을 자신이 어렸을 때 산속 정령을 목격한 소나무 밑에 땅을 파고 유기하며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환상문학 장면과 비슷하게 처리하려는 거, 이건 뭥미?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경계를 슬쩍 넘어버리고 시침 뚝 떼는 듯해서 눈살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 지고 말았다. 에로틱한 장면, 야한 묘사 좋아하는 나도 그럴 정도이니 점잖은 독자들이야 어땠겠느냐고.&nbsp; 다른 하나는, 우리말 문장이 좀 서걱거린다는 거. 역자 이정미는 2022년에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이 책을 번역했다. 이때 같이 선정된 작가들이 엘리자베스 캐스켈의 &lt;메리 바튼&gt;을 번역한 김정연, 그라치아 델레다의 &lt;바람에 흔들리는 갈대&gt;를 번역한 김효정이었다. 이 정도면 믿고 읽을 수 있는 역자라고 생각했건만, 놓친 것이 하나 있다. 이정미의 역서를 보니까 이 책을 포함해 모두 스물세 권인데, 《천년의 즐거움》이 유일한 문학 책이다. 즉 이정미는 《천년의 즐거움》으로 문학 번역 데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주식, 스포츠, 자기계발서 등등. 처음 번역하는 텍스트로 만연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길고 긴 문장의 작가를 고른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이를 지원대상자로 선정한 인천대 남상욱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라고 했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번역도 습작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독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순은 비슷하지만 같은 문장 속에 우리말 단어를 어떻게 배치할까, 하는 것을 조금 더 신경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자주 들었다. 단어 배치까지 일본어 순서를 따른 것처럼 읽힌다. 내가 뭘 아나, 그렇게 우리말 문장이 서걱거리니까 혹시 그런 거 아닐까 짐작해보는 것이지.&nbsp; 결론. 과한 베드씬 묘사와 서걱거리는 우리말 문장. 이것들 때문에 나름 독특한, 독특해도 많이 독특한 작품이 좀 바랬다. 그래도 외면할 필요 까지는 없는 작품.<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02/56/cover150/8932044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025644</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나하고 맞지 않아서 아쉽지만 - [반가운 손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3993</link><pubDate>Fri, 08 May 2026 0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39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3567&TPaperId=172639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8/50/coveroff/k6920335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3567&TPaperId=172639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반가운 손님</a><br/>김지숙 지음 / 연극과인간 / 2025년 11월<br/></td></tr></table><br/>.<br>&nbsp; 김지숙이 좀 흔한 이름이라 혹시 헛갈릴 지 모른다. &lt;장수상회&gt;, &lt;바냐 아저씨&gt;, &lt;졸업&gt;을 공연한 유명 연극, 영화배우 1956년생 김지숙이 아니다. 아마 올해 나이 쉰여섯일 듯한 부산 출신 연극배우였던 이다. 단편영화를 하다가 마흔의 나이에 다시 부산으로 귀향해 연극 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딱 하나, 부산에 터를 잡고 가장 활발하게 연극판을 꾸리고 있단다. 원래 시, 소설 같은 것도 습작을 해, 부산 극작가 김문홍 문하에서 극작을 배우면서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희곡을 쓸 수 있었다고.&nbsp; 《반가운 손님》이 이이의 세번째 희곡집이다. 모두 다섯 편의 희곡을 실었다. 제일 앞에 “작가의 글”을 놓았다. 작가는 말한다.&nbsp; “이 책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nbsp; 이걸 읽자마자 곧장 책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더 읽는다고 아팠던 기억을 일컫는 문학적 ‘상처’를 파헤치겠는가 싶어서.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아픈 것도 싫고, 상처도 싫다. 거대한 비극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별로 기껍지 않다. 뒷방으로 찌그러졌으면 그저 세상 모른 척하며 조용히, 도서관에나 출근하면서 잔잔하게 숨쉬다가 그냥 그렇게 저물고 싶다.&nbsp;<br>&nbsp; 실린 작품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nbsp; &lt;매미가 운다&gt; ㅆㄴㄹ 드라마&nbsp; &lt;구워 먹을까요?&gt; 그로테스크 살인극&nbsp; &lt;반가운 손님&gt; ㅆㄴㄹ 드라마&nbsp; &lt;변신(變身), 변심(變心)&gt; 카프카 클리셰&nbsp; &lt;후두둑, 빗소리&gt; 그로테스크한 상처, 어쩌면 ㅆㄴㄹ<br>&nbsp;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 기호에 의해 말하자면, 즉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관계없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읽은 감상을 소개하면, 정말 안 맞는다.&nbsp; 표제 작품이며 소극장 이상의 무대를 전제로 쓴 것이 아마도 확실한 &lt;반가운 손님&gt;만 이야기해보자.<br>&nbsp; 1944년에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사치코. 화장을 해 분골을, 일본인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유골함에 담아 집에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80년의 세월이 지난 202X년 현재, 해방전에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달동네 산복마을의 노인 영숙의 집에 어쩐지 이 사치코의 하얀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일곱 살에서 한 살도 더 먹지 않은 어린 사치코가 연극의 첫 대사를 한다.&nbsp; “집 앞에 별이 한가득이다.”&nbsp; 달동네 산복마을. 하도 산비탈이라 영숙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항구에 정박했거나 예인을 기다리는 선박들의 불빛이 마치 별들처럼 빼곡하게 깜박거린다. 맞다. 사치코, 얘가 귀신이다. 그러니 첫 대사부터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nbsp; 산복마을도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황폐화하기 시작한 곳. 거주민들은 거의 영숙처럼 늙은이들이거나 싼 맛에 잠깐 머리 뉠 곳을 찾는 떠돌이 젊은이들뿐. 지금 산복마을에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들로 빈집을 개조하거나 비슷하게 변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인의 투자를 유치하려 해쓰고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사람이 담당 공무원인 주무관과 일본인 투자자 히로시.&nbsp; 히로시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할아버지가 식민지 조선에 와서 토지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다. 아버지 소년 시절에 아주 귀여워했던 동생, 그러니까 히로시한테는 고모뻘인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그만 일찍 죽어버렸다. 고모 죽은 다음 해에 일본이 패전을 해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됐다. 이때 아버지는 동생의 유골을 이 산복마을 어딘가에 두고 갔던 모양이다. 이후 일본에서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으나 결국 동생의 유골을 찾지 못했고, 죽어가면서 자기 아들 히로시한테 동생의 유골을 찾아 자기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해버렸다. 이런 몹쓸 늙은이같으니라고. 자기가 못했으면 말아야지 애먼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nbsp; 그래서 히로시가 아빠 죽어 장사 지내자마자 부산으로 날아와 옛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산복마을까지 기어올라와서 80년 전에 죽은 자기 고모의 유골을 찾으러 왔으니, 그 정성을 봐서라도 찾아주기는 해야겠지? 근데 등장인물이 바라는 걸 다 들어주면 현대 연극이 좀 덜 된 것 같기도 하고.&nbsp; 독자는 딱 안다. 어려서 죽은 히로시의 고모가 사치코인 것을.&nbsp; 사치코 귀신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영숙이나 기춘처럼 곧 죽을 늙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딱 한 명 등장하는 젊은 바리스타, 근데 웬 바리스타? 좀 난데없는 직업이기는 한데 뭐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하여간 한 방에 거금을 벌어 곧 늘 바라던 대로 산복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남게 되는 철우도 사치코 귀신이 눈에 보인다.&nbsp; 그저 그렇다. 모두 좋은 게 좋은 결말. 에필로그로 가면 귀신이 하나 더 늘어 둘이 된다. 누군지는 아시겠지? 강릉에서 왔지만 50년 동안 산복마을에서 살았으니 결국 부산 산복마을 토박이 귀신이 되는 영숙. 그리하여 마지막 씬은 감동이 이렇게 몸부림친다.&nbsp; “어둠 속에서 영숙(귀신)의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인다.”<br>&nbsp; 다시 말씀드리는 바이오니,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해 마구잡이로 쓴 독후감에 불과하다. 극작가 김지숙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쓴 것이니 절대 믿지 마시라.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고, 관람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라는 것이 세평이다. 이런 독후감밖에 남기지 못해 극작가에게 미안한 바도 크다. 김지숙은 앞서 이야기한 “작가의 말”을 이렇게 끝낸다.&nbsp; “저 역시 희곡을 쓰며 묵묵히 정진해 나아가겠습니다.”&nbsp; 나도 김지숙의 건필을 바라마지 않는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8/50/cover150/k6920335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885011</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수작이지만 추천하기 애매한 - [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1940</link><pubDate>Thu, 07 May 2026 0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619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5289&TPaperId=172619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4/95/coveroff/k32213528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5289&TPaperId=172619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a><br/>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2025년 부커 인터내셔널을 받은 책. 대개 “수상작”이라 하지 “상 받은 책”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 책이 부커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최초의 소설집, 즉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nbsp; 1948년에 인도 남부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인텔리 여성. 지금 78세니까 이이가 젊었을 당시에 대개의 인도 또는 무슬림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즉각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라고 《하트 램프》에 여러 번 나온다. 간혹 결혼 대신 대학에 입학시키는 가정도 있었는데, 이 책의 작가 바뉴 무슈타크의 집안이 그러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행간에 무슈타크라고 대학 진학을 쉽게 한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집안 내에서 나름대로 다툼을 겪었으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을 거쳐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1970년대 후반 인도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한 저항문학 운동 ‘반다야 사히티야’에 참여했다. 반다야 사히티야는 인도의 하급 카스트, 여성, 노동 계급의 삶을 문학으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무슈타크가 비교적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정 출신이라 하지만 남아시아의 무슬림 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으로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터, 평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판이 제대로 깔린 것이었으리라.&nbsp; 48년생 작가는 당시 관습으로 보면 거의 할머니가 될 나이인 26세에 자유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다. 스물여덟 살에 아이를 낳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에 걸린 다음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편소설집 여섯 권, 장편소설 한 편,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을 냈다. 인도는 땅도 넓고 사람도 많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한데, 무슈타크는 작품을 칸나다 어로 써서 인도의 여러 지역 언어, 우르두어, 힌디어, 타밀어, 말라얄람어 등으로 알려졌다.&nbsp; 2020년대 들어와 무슈타크의 새까만 고향 후배 디파 바스티Deepa Bhasthi가 근 반세기에 걸친 무슈타크의 단편소설집 여섯 권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작품 열두 편을 골라 영어로 번역했고, 이것이 저 먼 잉글랜드의 책가게까지 알려져 2025년에 부커-인터내셔널을 먹게 된 거다.<br>&nbsp; 이 책이 다분히 페미니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무슈타크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입각해 작품을 썼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내가 읽기로 바누 무슈타크는 여성 소설가로서 같은 세대를 사는 여성들의 여러 모습을 소설로 그려냈다.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의 독자가 읽으니 사회와 종교, 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했는지가 드러나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nbsp; 작품들을 읽어보면 아마도 1970~80년대 남 인도, 그리고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독자마저 갑갑한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 촉감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목을 콱 조르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한 순간의 빛도 발견하지 못하는 질식 상태.&nbsp; 그러나 이런 것들만 들어 있지는 않다. 앞에서 말했듯 무슈타크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 시절을 집중한 작품을 모은 것이 아니라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쓴 것 가운데 수작이라고 판정한 것들을 골라 실었으니. 그러니 여성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스토리가 다양하고 모두 나름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nbsp; 그런데 노작가의 평생 작업 가운데 좋은 것들만 골라 실은 소설집에 세계 유수의 상을 주는 건 반칙 아냐? 예를 들어, 아직 박완서 선생이 생존해 있다면, 그이의 작품 중 빼어난 것들만 골라 번역해 책을 만들면, 솔직히 우리끼리 얘긴데, 《하트 램프》는 게임도 안 될 거 같은데 말씀이지. 그렇다고 《하트 램프》가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재미도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수작秀作이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문화적, 지역적, 종교적 거리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읽어보시라 추천하기는 애매한 정도.<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4/95/cover150/k32213528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49500</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반스 선생.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9886</link><pubDate>Wed, 06 May 2026 0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9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5794&TPaperId=17259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78/coveroff/k23213579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5794&TPaperId=17259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a><br/>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하이브리드라고 규정한다. 즉 그의 말에 의하면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자서전이 합쳐진 책이란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학의 하이브리드가 어떤 방식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 독자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될 일이다. 주로 나이 든 픽션 작가가, 결국 개(책에서는 루이라는 늙은 개)한테 주지 못한 버릇인 픽션을 조금 섞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책. 그래서 상당한 부분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 같고, 어떤 쪽에서는 자기 삶의 특정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br>&nbsp; 작중 화자 ‘니’는 작가 줄리언 반스이다. 대략 76세부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78세까지의 반스.&nbsp; 책의 초반을 끌고 나가는 주제는 불수의 자전적 기억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nbsp; 혈액암에 걸린 줄리언 반스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닥터 재키 한테 엉치뼈 위에 뻐근한 느낌이 들게 하는 마취 주사를 맞은 후, 작은 드릴로 척골에 구멍을 내고 골수를 채취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의사 재키가 하는 말에 따르면 예후가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암에서 나을 방법은 없고, 평생 암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암은 반스를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으며 반스가 죽어야 암도 사라질 것이라고. 즉,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혈액암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nbsp; 반스의 책을 몇 권 읽어 엽기적이고 극단적 관심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 닥터 재키가 &lt;브리티시 메디컬 센터&gt; 스크랩 글을 보내주었는데, 기사는 좌측 시상 후부 출혈성 뇌졸중을 겪은 45세의 남자 케이스가 나온다.&nbsp; 마르셀 프루스트가 침상에서 먹었던, 먹어도 참 변함없이 여러 번 먹었던 마들렌을 떠올리며, 이때도 마르셀이 한 번 마들렌을 연상하고 그것이 불수의자전적기억IAM에 의하여 기억 속에서 잠재하고 있던 거의 모든 마들렌 먹던 기억이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시 반스는 엽기적인 인간이니, 마들렌, 비스킷 또는 애플파이로 변화시키지 않고, 만일 사람이 소리 죽여 방귀를 뀌었는데 이 순간 IAM이 작동해 몸에서 새 나간 모든 방귀가 시간별로 상황별로, 냄새의 강약 별로 떠오른다면 어떻겠는가, 아니면 평생 먹은 베이컨 샌드위치가 날짜별로 휙휙 지나칠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진이 빠질지 상상해보란다. 이게 좌측시상후부에 출혈성 뇌졸중이 발병해서 생기는 일이라면.<br>&nbsp; 이 기사를 읽은 70대 중후반의 줄리언 반스는 혹시 자기 뇌에서도 이런 IAM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지금 출혈성 뇌줄중이 있는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노령의 초입에 들어선 독자 나도 마찬가지인데) 반스는 지금까지 먹은 모든 파이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한 순간들도 시간 순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고, 진심이든 아니든 “사랑해”라고 말했던 모든 순간, “사랑해”라고 말해야 했으나 말하지 못했던,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 저질렀던 모든 거짓말, 위선, 피할 수 있었던 또는 피할 수 없었던 잔혹, 매정한 망각, 시치미, 지키지 못한 약속, 언행불일치의 기록 같은 것들이 와장장창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nbsp; 반스는 이런 불수의자전적기억IAM을 스펠링을 조금 다르게 나열하여 I AM, 즉 자신의 현재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나는, 이게 나 한테만 일어나는 특수한 기억현상이 아니고 내가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표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고 조금, 아주 조금 안심했다. 왜냐하면 이런 IAM 현상은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을 위주로 연상을 시작하는데, 글에 관한 한 세계적 명성을 즐기고 있는 반스의 경우에는 글을 씀으로 해서 IAM을 다스릴 수 있지만, 나같은 범부는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과 자책과 죄의식 때문에 이게 뇌 속에서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육체적으로도 떨림 혹은 호흡의 아주 약한 불규칙, 어쩌면 혈류 속도의 경미한 이상 같은 현상도 생긴다.&nbsp; 누구나 가지고 있는 IAM,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머리글자. 이걸 수천년 동안 잘 써먹은 집단도 있다. 우리가 한 낱낱의 행동, 생각, 감정을 다,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죽은 뒤에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협박해 돈과 권력과 최고의 위세를 얻은 집단. 오랜 동안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죄의 기록, 목록은 성베드로의 외상장부에 새겨져 있지 않고 우리 자신의 뇌, 시상 후부에 담겨 있으며 그걸 열 수 있는 열쇠는 신경의학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안다.&nbsp; 새로운 궁금증. 그러면 이제 누가 하느님의 역할을 대신할까? 뇌수술 전문의? 신경분석학자? 천만의 말씀.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한테 역할을 맡기면 괜히 얻는 것 없고 돈만 깨진다.&nbsp; 여기서 마르셀 프루스트, (당연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그에 관한 반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나,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생략한다.<br>&nbsp; 대신 하이브리드라고 말했으니 반스는 실제 자기가 겪은 실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화이기는 하지만, ① 두 중심인물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② 이야기를 하려면 대부분 픽션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제공해야 했고, ③ 이야기의 시작과 끝만 실화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중간의 빠진 부분은 개략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20년 동안 금지, 타 대학 배경은 10년간 금지했으나 2004년 부터는 그걸 20년씩 더 연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옥스포드 출신인 줄리언 반스 입장에서,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적어도 40년 전에 시작한 사건/일화라는 뜻이겠다.&nbsp; 반스는 60년대 중반에 옥스포드에 입학했는데 당시 여학생은 16.1%. 성비가 5.26.대 1.&nbsp; 이때 반스는 두 명의 친구를 만난다. 진과 스티븐.&nbsp; 스티븐은 반스처럼 중산계급 출신의 장학생이었지만 그는 장차 공무직 또는 경영 분야에서 일하려고 철학을 공부하며 뇌를 정리하고 있었고, 반스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더 진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철학과목을 듣고 있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아들들 답게 참을성 많고, 친절하고, 잘 파악되지 않는 명제나 이론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유분방함 같은 건 알지 못했다.&nbsp; 진은 처음에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두 남자 아이들과 달리 약간 더 화려하고 약간 더 불안정한 집안 출신이었다. 별거중인 부모 가운데 아버지는 애인이 있었고 집에서는 만날 말다툼이었다. 상황도 아슬아슬하고 이건 진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벌써 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로코에 가보았고 러시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스티븐과 반스 보다는 진취적이었다고나 할까?&nbsp; 셋 가운데 스티븐과 진이 드디어 사랑했던 모양이다. 반스는 다른 아가씨와 한 침대에 오르긴 했는데 하도 서툴러서 밤새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온 적 밖에 없었지만, 먼저 스티븐이 반스에게 와서 고백했다.&nbsp; “이제 결혼을 하든지 헤어져야 하겠어.”&nbsp; 진도 반스에게 와서 고민을 털어 놓았다.&nbsp; “이제 우리한테 남은 건 결혼하느냐, 아니면 헤어지느냐야.”&nbsp; 이들은 원만한 합의 하에 이별을 선택했고, 이후 몇 년간 전화, 우편 등으로 연락을 이어가더니 흐지부지 헤어졌다. 스티븐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 아내와 아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스티븐 혼자 잉글랜드에서 이것저것 하며 중산층 조금 윗길로 살아간다. 진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훼 회사를 차려 괜찮게 사는 평생 독신녀로 늙었다.&nbsp; 그러다가 반스를 찾아온 스티븐. 이제 반스에게 두 번째로 진과 만남을 주선하란다. 40여년 전에 그렇게 했으니 이제 한 번 더 못해줄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하지만 연락처가 없다. 전화번호 적어 놓은 건 벌써 번호가 바뀌었겠지.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인터넷 메일 주소를 찾았다. 반스가 힘을 보태 둘을 연결시켰고, 셋이 만나 적당한 시간에 반스가 자리를 피해주었으며, 이때부터 스티븐과 진은 로맨스 그레이, 늙은 연애를 꽃피우기 시작했는데, 아이고야, 마음은 20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나? 심지어 이미 70대 중반인 스티븐은 그때까지도 절륜한 전립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진 평생에 그런 밤은 또 처음 지내봤단다. 거 참 주책들이야.&nbsp; 하지만 쉽지 않다. 예전에 사랑을 쏟아주지 못한 스티븐은 늘 조금이라도 많은 사랑을 쏟아부으려 하고, 세상 살면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진은 그게 버겁다. 행복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한테만 골라 온다는 것을 이들은 몰랐고, 반스도 몰랐고, 나도 몰랐고, 세상 사람 거의 다 모른 채 그 자리를 오해 및/또는 착오에게 물려준다.<br>&nbsp; 이들의 결혼에 대표 증인으로 나섰던 반스는 이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 낯설지 않은 죽음. 그러나 자신의 작업을 중도에 죽음에게 뺏기기 싫어, 그럴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마음먹고 자신이 쓸 마지막 책 &lt;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gt;를 쓴다.&nbsp; 줄리언 반스답다. 팬으로 반스의 픽션은 거의 섭렵을 했으나 정작 더 이상의 픽션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들으니 섭섭한 마음을 피할 수 없다.&nbsp; 반스 선생.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안녕히<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78/cover150/k23213579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347845</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결론, 우울하게 열린 - [아그네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8117</link><pubDate>Tue, 05 May 2026 05: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81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370&TPaperId=17258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7/72/coveroff/8954611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370&TPaperId=172581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그네스</a><br/>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5월<br/></td></tr></table><br/>.&nbsp; 빠른 63년생이라 토끼띠가 아니고 범띠인 스위스 남자.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3년간 견습회계사를 거쳐 정식 회계사로 5년 동안 일했다. 이 다음에야 나도 한 번 공부라는 걸 해볼까 싶어서 취리히 대학에 입학, 영어, 경영정보, 심리, 정신병리 등 다양한 학문을 접했다는데, 그러니까 뭐 하나 제대로 한 건 없었다는 뜻이다. 이게 바람직한 대학 학부처럼 보인다. 일단 다양하게 공부를 해보고 정말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보이는 학문을 골라 대학원에 진학해 열공모드로 한 5년 보내며 학위를 차근차근 따는 게 요즘 시대에 맞지 않나? 그렇게 한다면 학부 학생 전원의 90퍼센트가 법학이나 의학을 지망할 거 같은 음울한 상황을 예견할 수밖에 없어서 문제지만. 법과 의학을 뭐하러 공부하려는 지 모르겠어. 법 공부하면 도둑놈, 사기꾼, 살인자들과 만나야 하고, 의학공부 해 봤자 해골 같은 노인들이나 피, 고름, 똥밖에 더 보느냐고? 나는 내 새끼들한테 농부가 되라고 권했다. 현대의 농부. 네가 포함된 팀에서 개발한 것으로 국민들을 5년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자-농부가 되라고.&nbsp; 윽,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nbsp; 하여간 슈탐은 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뉴욕, 파리, 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잠깐 살다가 1990년에 스위스로 돌아와 프리랜서 기자와 작가를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스위스에서는 잘 나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제법 먹고 사는 모양이다. 2014년에 독일에서 무슨 문학상을 받은 것이 여태 이 양반의 가장 큰 자랑이고, 그 전해에 부커-인터내셔널 상 최종후보였다가 미역국 마신 걸로도 어깨에 힘주고 다닌다. 우리나라에는 이이의 우리말 단행본 네 권이 있는데 이 책을 포함한 세 권은 절판이고 문학과지성사에서 2023년에 낸 &lt;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gt;만 살아 남아 있다.&nbsp; 우리나라에서는 몇 달 전에 세상을 뜬 배우 윤석화가 워낙 강렬해서, 아그네스, 하면 그이가 주인공을 한 연극 &lt;신의 아그네스&gt;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긴 올드팬이나 그럴 지도 모른다. 윤씨가 공연했을 때를 알아보니까 1983년 실험극장에서이었다. 나는 못 봤지. 마빡에 작대기 두 개에서 세 개 달고 저 이동면 낭유리 늑대 우는 골에서 밤마다 빠따 맞으며 노예생활할 때였는 걸. 반면에 스위스 사람들한테 아그네스는 여성의 이름으로 굉장히 촌스럽거나 색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br>&nbsp; 짧은 장편소설. 본문이 203쪽에서 끝나고 해설도 붙어있지 않다. 좀 불친절한 느낌. 모두 36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새로 페이지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18페이지는 공란이다. 한 페이지가 겨우 열아홉 줄, 한 줄에 띄어쓰기 포함해 스물아홉 자 들어간다. 19행, 29자. 이 문둥이네 출판사는 19, 29. 소수를 편애하는 거 같다. 마음먹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어치운다. 팍팍 진도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거면 좋겠는데 뭐 그건 아니다.&nbsp; 지은이 슈탐처럼 주인공 ‘나’는 프리랜서 작가 겸 소설가로 보인다. 하여간 글 써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이름 좀 알려졌지만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알아보는 독자가 있을 정도는 아니다. 있기는 있겠지만 겨우 몇 명 정도. 스위스 사람이 시카고에 와 있는데 누가 알아보겠어? 여기서는 미국의 호화 여객열차 풀먼호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 갔다가 내 맞은편에 앉아 눈에 들어온 아가씨가 아그네스. 그게 작년 4월이었다. 여느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마르고, 키가 별로 크지도 않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갈색머리에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즉 매력있고 수수한 모습이란 뜻이다. 다음날에도 아그네스는 도서관 그 자리에 앉았다. 오래 책을 보다가 ‘나’와 함께 잠시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우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nbsp; 아그네스에게는 허버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연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 연극배우. 자기가 도와달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친구.&nbsp; 세번째 만난 날은 도서관 밖의 자판기 커피 말고 길 건너 ‘나’가 자주 가는 작고 초라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제서야 아그네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한다. 물리학 전공이며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란다. 논문은 “수정격자 대칭군의 대칭성”이라는 주제. ‘나’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25세이고, 시카고대학 수학연구소에서 시간제 조교로 일한다. 첼로를 연주하고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여성. 부모는 몇 년 전에 명예퇴직하고 플로리다에서 연금생활자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시카고에 친구가 거의 없고 있다면 매일 만나 사중주를 연습하는 여자 세 명 정도.&nbsp;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말은 쑥스럽기도 해서 말하지 않았다. 아그네스의 무관심이 반갑기도 하고.<br>&nbsp;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 식당으로 가던 중에 인도 위에 한 여성이 누워 있었다. 아그네스 또래의 붉은 머리 아가씨. 창백하고 주근깨가 촘촘한데 ‘나’가 앉아서 들여다보니 무호흡이다.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가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요구해 알려주었다. 소방관이 도착해 여성은 이미 죽은 상태이며 아마도 자살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구급차에 실어 갔다.&nbsp; 식당에 들어가 만난 아그네스. 이이가 말한다.&nbsp; 나는 죽음이 두려워요. 언젠가는 죽겠지요. 누구나 그렇듯이.&nbsp; 죽어가는 과정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니까. 아직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 두려워요.&nbsp; ‘나’와 아그네스는 식당에서 나와 ‘나’가 사는 아파트 도럴 프라자 27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오랫동안 키스한다. 아파트에 들어와 처음 남자의 몸을 경험하는 아그네스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신발과 옷과 속옷을 벗는다. 아그네스는 며칠 후에 자기가 사는 작은 원룸에서 나와 이 아파트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아직 원룸의 기한이 남아 있어서 꼭 필요한 짐만 가져올 생각이다. 생전 처음 해본 섹스가 어떤 감각이었는지, 궁금해하지 마시라, 안 쓰여 있다.&nbsp; 사람이 함께 사는 일. 특히 성인이 된 후 계속 혼자 살다가 갑자기 함께 사는 일. 이거 생각보다 복잡하다. 아그네스는 ‘나’에게 자신과 사는 것을 소설로 쓰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쓴다.&nbsp; ‘나’는 아그네스를 사랑한다. 아그네스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자는 안다. 아그네스 역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그네스와 함께 스위스로 가서 살까? 미국 시민권이 없는 ‘나’는 시카고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언젠가는 가야 한다.&nbsp;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시카고 공립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것이 4월이었는데 어느새 추수감사절과 할로윈이 오고, ‘나’와 아그네스는 한 지붕 아래서 사랑을 하고 몸을 나누며 생활을 소설로 써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와도 아그네스는 부모가 있는 집 대신 시카고에 머문다.&nbsp; 나이 좀 든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일이 생긴다. 아그네스가 피임약을 복용했지만 임신하고 만다. ‘나’는 당황한다. 아이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겨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린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그것을, 아그네스는 임신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랬는지, ‘나’가 진짜로 영원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 둘 다 자연스럽지만 서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커지고, ‘나’의 소설은 이제 ‘나’ 혼자 쓴다.&nbsp; 에잇! 어차피 절판이니 팍 말해버리겠다. 결론은 책의 첫 문장에 나온다. 괜히 모른 척 뜸들이지 않겠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nbsp; “아그네스는 죽었다. 한 편의 소설이 그녀를 죽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7/72/cover150/8954611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772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코로나, 결손가족, 외로움, 그리고 별 -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6326</link><pubDate>Mon, 04 May 2026 0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63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3477&TPaperId=172563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9/87/coveroff/k7928334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3477&TPaperId=172563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하늘에 별을 뿌리다</a><br/>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3년 04월<br/></td></tr></table><br/>.&nbsp;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작품의 분량을 7쪽에서 시작해 278쪽에서 끝내니 순분량은 270쪽. 평균으로 보면 한 작품이 대략 54쪽 정도. 자간과 행간이 널럴하고 활자도 커서 내 경우에 어제 오전 9시 15분경에 빌려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컵밥 먹고 좀 쉬어도 오후 1시50분 정도에 다 읽었다.&nbsp;다섯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 이들은 누구 하나없이 소위 결손가족이거나 결손가정에 가까운 처지이다. 이런 가정의 구성원이 마음 속에 잡다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흔히 사람들은 외로움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들의 특징이라고도 하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 역시 외롭고 우울한 성격도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처지에서 그것에 벗어나기 위해 작은 애를 쓰고 있다.<br>&nbsp; 첫 작품 &lt;한밤중의 아보카도&gt;는 일란성 쌍둥이 동생을 뇌출혈로 잃은 서른두 살의 여인 아야. 친한 쌍둥이 동생이 죽어서 갈팡질팡이다. 데이트앱에 접속헤 여러 남자를 만나봤는데 처음으로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아소라는 이름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만나 데이트 중이다. 앱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과 달리 만난 날로 곧바로 호텔에 가자는 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한테 일정한 거리감을 가진 친절을 유지하는 걸로 봐서 여자 경함이 미숙한 것도 마음에 든다. 애인은 아니지만 죽은 여동생 유미가 진지하게 사귀던 무라세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시간에 걸쳐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유미의 명복을 빈다. 유미가 죽은지 2년이 넘었는데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무라세는 자기 마음에서 유미를 보내주어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nbsp; &nbsp;프로그래밍을 하는 아소 씨는 COVID-19가 왔더라도 원래 하는 일이 자기 집이 사무실 겸 숙소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업무량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아진 듯. 그리하여 아소씨는 아야와 비해 훨씬 일을 많이 한다.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서 음식도 먹고 길을 걷고, 손과 팔뚝이 만지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는 약한 수준의 접촉도 힘든다. 그저 둘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기만 하면 삼십대의 사랑이 잘 유지하기 힘든 법. 이들도 그 정도는 알아 차를 타고 바닷가로 놀러 가기로 한다. 한밤에 공기 좋은 옥상에 앉아 하늘을 보며 이게 무슨 별자리의 어느 별, 견우별의 어떤 별, 저건 직녀별의 또 무슨 별. 이렇게 여름 또는 겨울밤의 대표적인 대 삼각형. 이런 것을 알아간다. 주로 아소 씨가 말한다. 도쿄로 돌아와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는 아소 씨.&nbsp; 아야는 아소씨와의 사이가 진전되지 않는 틈을 타, 이제 동생이 죽은 다음에도 아직 동생의 환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라세와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동안 자기의 머리 스타일이 동생과 비슷해진 것을 알고 원래 자기가 하던 짧은 머리로 깎고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동생을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된다. 그러나 동생이 떠난 자리에 언니는 들어가지 못하지만.&nbsp; 별자리를 가르쳐준 데이트 앱의 아소 씨는 소식이 없다. 자기와의 통신을 멀리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딱 이 때 도쿄 지하철에서 퇴근시간에 어린 아이가 지악스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인들한테는 이게 아주 질색이다. 에티켓에 크게 결례되는 일이다. 아야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쿠, 아소씨 옆에 아이가 앉아 있고, 아이의 다른 쪽에 젊은 여자가 또 앉아 있었다. 조카 또는 외조카일 수도 있지만 조카처럼 한 다리 건널 필요 없이 딱 아소씨와 많이 닮았다.&nbsp; 지하철이 멈춰 이들이 내리자 아야도 함께 내린다. 뒤를 쫓아가 아는 척을 한다. 여자한테 먼저. 일과 관련해서 저를 많이 도와주시는 상사분이예요. 아소씨, 올해에도 많은 지도 바랍니다.&nbsp; 이렇게 넘어갔지만 여간해 울지 않는 아야가 오랜만에 눈에서 소금물 좀 뽑았다. 그래서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도 두 병을 사서 조금 먹다가, 무라세의 집에 가서, 이제 그만 동생을 놔주라고, 동생이 이제 하늘로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정 비슷하게 해댔다.&nbsp; 대답이 없던 무라세는 다음 날, 문자를 보내, 돌아오는 달에 한 번만 더, 늘 가는 작은 음식점에서 한 시간 동안 전에 늘 그랬듯이 동생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둘 다 그게 마지막 회동이 될 것임을 안다. 그래서 만나 음식을 먹고, 여전히 자잘한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아야가 밥값의 반 정도를 내고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무라세는 곧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빼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이고, 아야는 무라세가 보내준 흙으로 여태 수경으로 기르던 아보카도의 씨에서 난 떡잎 등을 분재할 생각이다.<br>&nbsp; 이런 거 말고도, 주로 이혼 가정. 영업사원과 통역원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바쁜 영업사원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시간이 많이 나는 오후 시간에 미국 남자를 만나 불륜을 갖게 되어 이혼한다. 전 아내는 딸과 함께 미국의 아이오와로 가버린 가정의 남자. 남자의 아파트 옆집에는 역시 이혼해서 딸 하나 키우는 싱글맘이 이사를 와 점점 친해지기도 하고, 후배의 소개로 괜찮은 학교 후배를 만나 좋은 관계도 유지하지만, 옆집의 싱글맘은 오랜 숙고 끝에 전남편과 다시 집을 합치는 것으로 정했으며, 그동안 학교 후배와는 싱글맘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라 자신이 연락을 멈춘 상태. 뭐 이런 이야기들.&nbsp; 지금 시절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나한테는 직접 와 닿는 점이 거의 없어서, 그냥 이런 시절을 보내는 세대도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감정밖에는 얻지 못했다.&nbsp; 이건 세대 차이이지 구보상의 글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 의견을 참고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공감하면서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볼 만도 하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9/87/cover150/k7928334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498743</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오발탄</category><title>아하, 활엽수림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5628</link><pubDate>Sun, 03 May 2026 1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562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1871&TPaperId=172556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3/coveroff/893200187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nbsp; 그저 옛생각이 나서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들췄다. 책꽂이에 40년 꽂혀있던 묵고 묵은 시집. 생각나면, 혼술에 얼근해지면 한 번씩 들춰보려 했지만 사실은 여간해 다시 읽게 되지 않는 것이 책인지라, 그저 종이만 바싹 말라가던 시집.&nbsp; 이 가운데 &lt;활엽수림에서&gt;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nbsp; 여태 내가 즐겨 쓰고, 정말로 내 머리에서 만든 묘사인 줄 알았던 것들. 세상에나. 예컨대:<br>&nbsp; "비인칭 주어로 살다."&nbsp; "생을 탕진한 죄"&nbsp; "무작정 살다."<br>&nbsp; 이게 다 황지우가 쓴 시 &lt;활엽수림에서&gt; 딱 한 수에 몽땅 나오는 거였다. 고백하노니, 정말 내가 만들어 쓴 구절인 것으로 알았던 것. 그래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써먹던 구절이다. 웃기지? 앞으로 다시는 누구, 누구를 흉보지 못하리라.&nbsp; 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으니:<br>&nbsp; "새벽 기슭에 서서 부은 눈으로 눈 덮인 산을 멩하게, 바라보다."<br>&nbsp; '멩하게' 다음에 찍힌 쉼표 ","에 연필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은 스물네 살의 나.&nbsp; 옛 시집을 읽는 재미가 퍽 좋다. 아직도 외우고 있는 시 &lt;歸巢의 새. 2&gt;가 이 시집에 실린 거였구나. "지 울음이 들릴락말락한 까마득한 달팽이管 속으로 날아가부럿다."&nbsp; 시 쓰는 고단함을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br>&nbsp; &lt;같은 緯度 위에서&gt;의 11행에 "&lt;악으로&gt; 詩를 쓰는 것이 아니다."에는 또 연필로 의문문이 보태졌구나. "愕?, 惡? 또는 깡다구?"라고. 웃기고 재미있다.<br>&nbsp; 그래도 나 같은 잡것들한테는 아마도 이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lt;심인&gt;이었을 거다. 이거 한 번 올려보자.<br><br>&nbsp; 심 인<br><br>&nbsp;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nbsp;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nbsp;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nbsp; 829-1551<br>&nbsp;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nbsp; 돌아와서 이야기하자&nbsp; 어머니가 위독하시다<br>&nbsp; 조순혜 21세 아버지가&nbsp;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nbsp; 내가 잘못했다<br>&nbsp; 나는 쭈그리고 앉아&nbsp; 똥을 눈다&nbsp; (p.29 전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33/cover150/89320018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3327</link></image></item><item><author>Falstaff</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재미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 [맛]</title><link>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3238</link><pubDate>Sat, 02 May 2026 0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underhorn/172532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737699&TPaperId=17253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off/k0227376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737699&TPaperId=172532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맛</a><br/>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01월<br/></td></tr></table><br/>.&nbsp; 소설집 《맛》, 하면 팍 떠오르는 작가가 로알드 달 말고 뮈리엘 바르베리의 책 아니었나? 난 그랬는데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뭐. 나는 바르베리의 책을 읽고 왜 우리나라의 소위 맛 칼럼니스트라 일컫는 작자 황땡땡은 일천한 지식과 그렇게 하찮은 단어만 구사하면서 자칭 기고가寄稿家라고 떠들고 다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를 일컫는 지 아시겠지? 요즘엔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nbsp; 사실 소설집 《맛》이라면 바르베리 한 권으로 충분하다. 근데 왜 또 로알드 달의 작품집을 골랐지? 로알드 달이라면 재미있게 본 영화 &lt;찰리와 초콜릿 공장&gt;의 원작을 쓴 어린이 책 전문작가인 걸 번히 알면서 말이지. 다 이유가 있다.&nbsp; (이유? 나 중딩 1학년 때 골목길에서 친구하고 농담 따먹기 하고 있다가 걔가 뭐라고 헛소리를 하길래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대보라 했던 적 있다. 걔가 대답을 못하니까 내가 또 “아니, 처녀가 아이를 배도 이유가 있는 법인데 왜 말을 안 하느냐”고 했다. 이때 골목을 지나던 호호 할머니가 “처녀가 애를 배도” 운운하는 걸 우연히 듣고는 나더러 ‘배워 먹지 못한 것 같으니’ 어쩌고저쩌고 막 야단을 친 기억이 난다. 아이고, 그땐 그런 시절이었지.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독후감과 상관없이 한 번 지껄여봤다. 그 할머니는 벌써, 벌써 갔을 거다. 편히 쉬시기를.)&nbsp; 며칠 전에 읽은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lt;섬에 있는 서점&gt;에서 서점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A.J.가 특히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소설가 가운데 로알드 달을 여간 편애하는 게 아니었다. 로알드 달? 마흔 살이 넘은 인도계 미국인 A.J.가 좋아한다니 어린이 책 전문가 로알드 달이 아니라 틀림없이 단편소설가 로알드 달일 터. 당장 개가실 내려가서 고른 책 두 권 가운데 하나가 《맛》이었다. 다른 하나는 금요일에 업로드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집 《오블리비언》이고. 월리스가 에세이스트인 줄만 알았던 것처럼 달 역시 어린이 책 작가로만 알았으니 새삼스레 무식이 탄로난 순간이다.<br>&nbsp; 위키피디아에서 로알드 달을 검색하면 상당한 분량이 뜬다. 너무 길어서 인터넷 책방 알라딘에 실린 정보를 적당히 섞으면, 1916년에 돈 좀 있는, 아니다, 실수, 웨일스 카디프의 부유한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기숙학교인 랩턴 스쿨에서 지긋지긋한 시절을 보내고 아마도 (내 생각을 말하자면) 교육받는다는 것 자체가 지옥불에 타는 거하고 비슷한 느낌이 들어 더 이상의 공부는 작파하고 석유회사의 아프리카 지사에서 일했다. 랩턴 스쿨의 남학생 기숙사. 완전 정글이었겠지. 역시 영화로도 만든 달 원작의 &lt;마틸다&gt;가 이곳을 모델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nbsp;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달은 영국 왕립공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 비행 에이스Flying Ace의 명예를 얻었지만 크게 부상해 정보장교로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 후 중령으로 제대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나, 자기도 자신이 그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을 거다. 전세계에서 2억 권의 책을 팔았으니 인세로 한 권에 천원만 받았다 쳐도 2천억 원.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영화로 만들어 매출에 따른 배당까지 받았을 터, 그럴 줄 알았으면 중령 달기 전에 얼른 제대해 일찌감치 책이나 쓸 것을. 돈 버는 재주는 아빠를 닮은 게 확실하다.&nbsp; 책방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말한다.<br>&nbsp; “도박과 내기에 대한 집착, 속고 속이는 의뭉스러운 술수, 통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목표를 향해 놀라운 집념을 발휘하는 인물 등을 보여주면서 인간사의 미묘한 국면을 차근차근 밀도 높은 이야기로 조여붙이는 그의 솜씨는 결말에서 으스스한 반전과 다층적인 유머를 선사하면서 정점에 달한다.”<br>&nbsp; 책가게 소개글도 일종의 광고니까 위 인용문이 조금 과장은 되어 있지만 맞는 말이다. 다만 달이 1916년생이니 지금 독자들이 읽으면 달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느꼈을 반전과 다층적 유머를 좀 덜 진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소설집 《맛》에서도 달 특유의 것이 확실한 내기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발랑 까진 독자의 눈에 결론이 어떻게 날지 보인다는 것. 물론 훤히 보이지는 않지만 거의 예상대로 스토리가 진행된다.&nbsp;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롭지 못하다는 건 전혀 아니다. 무척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출판사 교유서가에서 달의 단편집 세 권을 냈는데, 올해 안에 나머지 두 권도 싹 읽을 결심을 하게 만들 만큼 재미있다.&nbsp; 재미를 가장 잘 보장해주는 건 역시 악당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아니면 적어도 원래 치려 하던 사기 행각이 실패하는 모습. 달이 내기 전문 작가이니만큼 선량한 내기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적인 내기라면 그게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소설 스토리가 될 수 없을 터. 책 속의 내기에는 빠짐없이 좀스러운 사기꾼이 등장한다. 아니면 달의 십대를 망쳐버린 랩턴 스쿨의 폭력적인 교장처럼, 영화 &lt;마틸다&gt;의 군복 입고, 위압적이고, 뚱뚱하고, 못생기고, 힘세고, 냄새나고, 고함치는 여자 교장처럼 잔혹한 남자이거나. 딱 한 번 잔혹한 악당이 승리하는 작품도 있지만 어떤 건지는 알려드릴 수 없다. 짧은 소설이라 제목이라도 노출하면 그대로 결말 자체가 드러나는 꼴이라서.<br>&nbsp; 예를 하나 들어보자. 첫 작품 &lt;목사의 기쁨&gt;에 나오는 주인공 시럴 워닝턴 보기스의 직업은 목사가 아니다. 목사 명함을 파서 뿌릴지언정 그냥 골동 가구 판매상이다.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차의 팬벨트가 끊어지는 바람에 들른 농가에서 첫 경험을 한다. 거, 야한 생각 하지 마시라.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거실에 대단히 훌륭한 고가구가 좋은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해서, 그게 명품인지 꿈에도 모르고 사는 여자한테 거의 헐값에 건네받아 무척 비싸게 팔아먹은 경험을 말하는 거니까. 빙고! 보기스가 속으로 이렇게 외쳤겠지. 그리하여 지도를 한 장 사서 이후 런던 인근의 시골지역을 정사각형으로 쪼개어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똑 같은 짓을 시작했다.&nbsp;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뭐 거의 비슷하게 시골 사람들이 보수적인 구석이 많다. 의심도 많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영국 국교회 목사 옷을 한 벌 지어 입고 자기가 목사인 척하는 거였다. 이 찌질한 보기스 사장의 철칙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철저하게 깎을 수 있을 때까지 깎아서 가장 싸게 가구를 구입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돈을 받고 파는 것. 그래서 시골 농가를 뒤지며 농부들한테도 마구, 마구, 또 한 번 마구 값을 후려친다. 그럴려면 농부의 집에 있는 가구가 아무리 명품 itself라고 하더라도 아주 하잘것없는 하품으로 말해야 한다.&nbsp; 그러다가 하루는 남자만 있는 농가에서 영국의 가구 장인, 마치 건축가 하면 크리스토퍼 렌을 떠올리듯,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가구 장인인 토머스 치펀데일이 자필로 써준 영수증이 첨부된 진짜배기 고가구 명품을 발견한다. 이 장면만 딱 써 놓으니 별 감정이 없겠지만 정말로 작품 전체를 읽어보면 이미 게임이 어떻게 끝날 지 눈에 훤히 보이는 걸 워쪄? 그래도 재미있는 건 또 어떻게 할 건데?&nbsp; &lt;목사의 기쁨&gt;에서는 한 찌질이의 사기행각만 이야기하는데, 역시 달의 진가는 사기를 포함한 내기에 있다. 미리 짜고 또는 알고 하는 내기도 있고, 상상이 힘든 내기도 있다. 아오, 정말 읽어보셔야 할 터인데. 오늘은 내가 약한 샘플만 소개하고 마는 거 같아서 이렇게라도 좀 더 보태야겠다.&nbsp; &lt;목사의 기쁨&gt;을 포함해 모두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다 재미있다. 물론 감동/동감하고는 다른 재미를 말한다.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래, 그지? 딱 재미만 생각하고 읽어도 좋은 건 좋은 거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12/42/cover150/k0227376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12420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