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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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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 이름 슈웨블린Schweblin으로 짐작하면 20세기에 독일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와 정착한 집안인 거 같다. 197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 소설 쓰기에 전념한다. 2002년에 <소란의 핵심>을 발표해 데뷔했으며 이후 부커상 외국어부문 최종심에 두 번 오르는 등 맹활약을 하면서 국내외의 다양한 문학상을 섭렵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학 객원교수로 지내고 있다. <리틀 아이즈>가 처음 읽는 슈웨블린인데, 2018년 작품으로 번역 기간을 거쳐 2020년에 두 번째 부커 인터내셔널상의 최종 리스트에 올랐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지만 미역국 먹은 후에 번역을 해 2021년 창비에서 나왔다. 창비는 책의 띠지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올 겨울에 어울리는 단 한 권의 SF∙공포소설
스산하고 고요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서스펜스”

Samanta Schweblin
출간 전에 창비_인스타를 통해 가제본 본을 독자에게 뿌렸으나, 무료로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놀랍게도 인터넷 책방 독자리뷰에 만점을 주지 않는 무례를 저질렀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띠지에 어떻게 쓰인 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건만, 이걸 SF∙공포소설이라고 주장하면 거 참, 게다가 숨통을 조여오는 서스펜스 우짜고 한 건 그저 웃자고 했던 일 같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웃자고.
처음엔 나름대로 긴박하고 경박하게 흘렀다. 장소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사우스벤드라고 하는 작은 마을. 동네에 요주의 인물로 점 찍힌 맹랑한 고등학생 카티아와 에이미의 그룹에 새롭게 로빈이 들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셋은 피의 맹세를 하고 평생 함께 할 것임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으로 서로 자기 가슴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부모가 직장에 간 틈을 이용해 로빈의 집에 가서, 넓은 거실에 모여 앉았고, 로빈이 조금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쫄기는 싫어서, 셋 모두 훌러덩, 브래지어를 풀렀더니, 덜러덩, 가슴이 아래로 툭 떨어졌는데, 이걸 향해 서 있던 동물 인형의 눈이 깜빡, 하는 순간 카메라에 찍혀버렸다. 카티아가 인형한테 누구 가슴이 제일 예쁘니? 하고 물어보고, 로빈이 위저 보드의 알파벳을 가져오니까 인형이 단어를 조립해 만들어 보이기 시작한다.
“금발”
카티아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자랑스럽게 웃었으나, 저런 저런. 인형은 계속 글자를 만들어 나간다.
“개 같은 년들.”
셋은 학교에서 생물 수업을 함께 듣는 좀 모자란 욍궁둥이 수전을 입에 올리며 걔를 왕따시키는 건 물론이고 어떻게 돈까지 갈취할 것인지 따따부따 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자기들이 몹쓸 짓을 하고 있어서 욕을 먹을 만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욕을 듣는 거하고는 다른 일이니까. 인형이 글자를 조립하는데:
“너희는 내게도 돈을 줄 것이다. 녹화된 가슴 한 쪽에 400 총 2,400달러”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로빈도 억지로 웃는 시늉을 했다. 에이미가 누구한테 받을 거냐고 물으니까, 인형은 또다시 단어를 쓰기를,
“돈을 주지 않으면 가슴 영상을 수전에게 이메일로”
이제 심각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형은 계속 쓴다.
“나는 똥싸는 로빈 엄마와 자위하는 로빈 여동생 영상도 가지고 있다. 각 6장씩.”
여태 인형 또는 애완동물 겸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동물 인형을 집안에 갖춰 놓았더니, 세상에나, 이게 특정 앱으로 연결된 사람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장치였던 거다.
‘켄투키’라고 부르는 이 인형의 외형은 두더지, 토끼, 까마귀, 판다, 용, 부엉이 등이고, 몇 번째 버전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아르헨티나 멘도사 여자 알리나는 멕시코 비스타르모사에서 지낼 당시 신품을 279달러 주고 구입했다. 알리나 같은 사람을 ‘켄투키의 주인’이라고 하자. 반면에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아메리카의 아줌마 에밀리아는 고액의 연봉을 받고 홍콩으로 일하러 간 아들이 상당한 돈을 주고 얻은 IP를 통해 독일 중부의 에르푸르트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코걸이를 한 아가씨 에바의 켄투키와 연결을 했다. 스스로 인형이자 관찰자 켄투키가 ‘되는’ 대가였다. 즉, 알리나는 켄투키가 있는 공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하여 279달러를 주고 인형을 샀으며, 엄마 혼자 두고 홍콩에 돈 벌러 간 에밀리아의 아들은 엄마가 심심하지 않게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한 것. 책의 제목 ‘리틀 아이즈’는 인형의 얼굴에 박힌 조그만 두 눈알을 의미한다.
별의 별것을 다 보겠지?
제일 앞에 나오는 불량소녀 예비자 로빈의 집에 있던 켄투키는 보아하니 초기 모델 같은데, 그게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켄투키 주인이 켄투키가 된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엄마는 화장실의 문을 열어 놓은 채 용변을 보았으며, 여동생은 켄투키가 옆에 있거나 없거나 그냥 자위를 해버렸고, 불량소녀 셋도 켄투키 앞에서 훌러덩 브래지어를 벗어 던져버렸다. 켄투키가 된 사람은 원격지에서, 지구 반대편일 수도 있는데, 어느 곳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걸 다 보면서 녹화를 떠 놓았고 그걸 빌미로 이제 로빈에게 2,400달러, 약 3백만원을 갈취하려 하는 거다.
뒤에 보면 녹화를 뜨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앱이 지원하지 않는다. 개발자가 이런 경우도 예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요가 방법을 창출하는 법. 사람들은 곧바로 태블릿의 장면이나 영상을 휴대폰으로 다시 찍거나 녹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켄투키가 된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에밀리아 같은 경우엔 자기 주인 에바가 잘 생기기는 했지만 좀 지저분하고 면도도 며칠 안 한 거 같고, 털이 숭숭한 거구의 애인 클라우스와 짙은 밤을 보낸 아침 둘 다 홀랑 벗은 채 거실을 돌아다녀도 클라우스의 큼지막한 음경도 모른 척하려 애쓴다. 반면에 에바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클라우스가 에바의 지갑을 뒤져 지폐 몇 장을 꺼내는 걸 본 순간에 돌변, 어떻게 하면 에바에게 클라우스가 돈을 훔쳐간 걸 알려줄 수 있는지 갑작스런 흥분에 휩싸인다. 자기가 보기엔 명백한 절도행위니까. 독일 에르푸르트 경찰서 전화번호도 찾아보고, 에바의 집을 둘러보다가 알게 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도 하고.
이런 경우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사는 그리고리도 마찬가지여서, 이 청년은 전문적으로 IP가 날아간 켄투키의 IP를 새로운 ‘켄투키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판매를 하고 있는 일종의 중개상인데, 일을 하다가 브라질 북부의 외딴 마을에서 납치, 유괴된 아이를 발견하고는 구출해주기 위해 아이의 엄마, 관계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등 갖은 애를 쓴다. 그래서 아이가 탈출에는 성공하지만 혹시 켄투키의 이런 기능을 이용해 아이의 부모가 자기도 모르는 돈벌이를 한 건 아닌지 조금은 의심하면서, 아직은 법 테두리를 벗어난 건 아니지만 일종의 범죄일 수도 있는 IP 중개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는 일도 있다. 세상에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거거든.
다른 거 다 놔두고, 정말로 자기 집 안에 자신과 가족 모두를 관찰할 수 있는 타인의 눈을 두고 싶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그렇게 많을까? 작 중간 이후에는 켄투키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는 걸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나는 좀 회의적이다. 아직 화상전화가 일상수준에 오르지 않은 일.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변기에 앉아 유튜브 보며 매화타령을 하고 있다가 마침 힘차게 방귀가 나오기 바로 직전에 전화벨이 울렸고, 습관적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 같이 도봉산에나 가자고 좋은 마음으로 바깥 사돈이 전화를 준 것이었는데 아뿔싸 하필이면 이때 아까 나오려던 힘찬 방귀가 진동을 해버렸으면 그걸 어째? 아니면 덥디 더운 여름날 윗도리를 벗고 소파에 앉았는데 전화가 오면, 전화 한 통 받자고 허겁지겁 와이셔츠 입고 넥타이 메고 슈트 찾아 입어야 하는 거야? 최종 면접 보고 결과 기다리는 회사에서 온 전화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집안에, 켄투키가 된 인간이 접속을 했으면 어떤 시간이든지 자기 사생활을 거의 완전히 노출해야 하는데 말이지. 이게 가능하다는 전제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건 말았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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