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문지클래식 8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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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여섯, 표제작 중편 하나를 엮은 책. 초판은 1976년. 따라서 작품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 대략 십 년의 세월동안 생산한 것들이다. 내가 읽은 책은 2020년 3판 1쇄다. 그러니까 홍성원의 대표작이자, 상당한 시간동안 우리나라 전쟁문학의 대표작으로 군림했던 <남과 북>을 발표하기 전까지 이이가 시장에 내놓은 50여 편의 중단편 소설 가운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하찮은 일상들을 직접 소재로 선택했거나, 때로는 (나) 자신이 이야기 속에 함께 버무려져 (내가) 바로 소설의 내레이터가 되기도” 한 것들을 골랐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책 뒤의 해설,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에서 첫 번째 작품의 제목처럼 “늪”을 건너거나 허우적대는 것 같은 가망 없는 희망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만일 홍성원의 작품을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삼십여 년을 다작한 작가의 방대한 작품을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겠지만, 나 같은 일반 독자는 그저 60년대와 70년대 소설 속에서 흔히 발견했던 권태와 무기력과 상실과 속화俗化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라고 간단히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1980년대 초에 이이의 <남과 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고 싶어 했다가 2018년에야 겨우 바라던 것을 이루었는데, 그전까지는 홍성원에 대한 끌림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남과 북>이 명불허전, 좋은 책이라는데 공감을 한 후에, 그의 다른 책을 찾다 작년에 문학과지성사의 문지클래식 시리즈로 출간했다는 얘길 듣고, 그래도 문지가 클래식이라고 선정한 책이니 좋을 것이라는 믿음 한 가지만 가지고 선택했다.
  전형적인 60년대 단편 스타일인 <늪>에선 김승옥의 기시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고, <무전여행>도 비슷한 기시감 위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극성도 독자에겐 너무 쉬운 복선을 앞에 두고 있다. <프로방스의 이발사>도 마찬가지로 발랑 까진 독자는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시작한다. 70년대로 접어들면, 범문화적으로 널리 유행했던 호스티스 소설과 유부녀의 일탈과 일상이 된 유부남의 바람기 또는 오입 풍습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기껏 잘 읽고 이런 독후감을 쓰는 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와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시엔 널리 읽혔는지 모르겠으나 별 특징도 없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기억할 만 한 미문도 없는 중단편 선집이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홍성원의 모든 업적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이는 대하소설에 그 본류가 있는 작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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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08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예전에 구판 버전 문지 소설명작선으로 나온 책으로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왜 이게 명작선에 들어가 있는지 의아했다는... 그때 읽어도 참 낡은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지금 읽으셨으면 참... 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적어둔 메모가 있어서 지금 오랜만에 다시 살펴보니 정말 김승옥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요(전 김승옥도 요새 다시 읽으라면 못 읽겠어요. 뭔가 토 나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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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놈팡이들을 학교 강의실과, 중국집 칸막이 방과, 영화관 구석 자리와, 후미진 골목길에서 자주 보아왔다. 여인들의 가방이나 열심히 들어주는 그런 놈팡이들은 하나같이 골통이 빈 너절한 속물들이다. 그들은 데모에 앞장을 서기도 하고, 어떤 서클의 회장도 하고, 바둑 5급에 당구는 삼백쯤 치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산악회나 봉사단 회원이고, 때 없이 술을 잘 사고, 족보에도 없는 춤으로 분위기를 잘 이끌고, 가끔 누군가에게 직사하게 얻어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또 누군가를 팬 뒤 한 달포쯤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한데 왜 모든 젊은 여자들은 이런 속 빈 건달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왜 나 같은 진지한 놈에게는 예쁜 여인들이 달려들지 않는 걸까? (<늪>, 11~12쪽)

똥개처럼 아무 때나 짖어댈 뿐 그는 정작 일을 당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나는 이런 ‘스물세 살’을 서울에서 이미 무수하게 보아왔다. 다방이나 달리는 버스 속에서 갑자기 광포해져서 ‘니나노’를 부르는 스물세 살, 학비를 대주는 자기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 구역질 나는 스물세 살, 꼬치 담배를 사 피울망정 신탄진만 찾는 가여운 스물세 살, 넉넉한 하숙비를 다 써버리고 멋으로 가정교사를 하는 꼴불견의 스물세 살. 학생회장에 출마한 후로 갑자기 친절해진 징그러운 스물세 살. 아아 그리고 너무나 많은 저 싸구려의 볼품사나운 스물세 살들. (<무전여행>, 67쪽)


Falstaff 2021-04-08 09:38   좋아요 3 | URL
솔직하게 얘기해서 아주 오래 전, 이십대 시절에 읽은 김승옥이 쇼킹이었습지요. 그러다가 직행버스에서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에서 <무진기행> 낭독을 해주었는데, 아이고, 그 촌스러움이라니. 그것도 쇼킹이었습니다.
70년대 말까지 신춘문예 응모하기 위한 공식으로, 김승옥의 내용과 황순원의 문체가 거의 정석이었답니다.
전 시대가 좀 겹쳐서 ‘토‘까지는 아니어도, 김승옥을 둘러싼 후광이 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1-04-08 10:05   좋아요 2 | URL
김승옥을 일컬어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감수성이란 게 60~70년대 20대 남자들‘만‘의 감수성 같아요. 저 대학 때만 해도 그 감수성에 캬~ 하는 남자들 많았는데.... 전 아무리 읽어도 잘 쓴 건 알겠지만 공감은 어렵더라고요. 암튼 지금 읽기엔 많이 낡은 감수성 같습니다. ㅎㅎㅎ

Falstaff 2021-04-08 10:25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 얘기를 디스카운트 해서 읽어도, 20대 남자들만의 감수성이란 걸 부인하기가 쉽지 않네요. 근데 당시엔 20대 여성들도 생명연습, 64 서울, 무진기행 같은 거에 꼴딱 넘어갔던 건 사실이예요. 이런 류의 작품이 김승옥을 통해 처음 나온 거니까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이제 시간이 흘러 김승옥이 저절로 감가상각을 당해 저부터도 ‘당시 20대 남자의 감수성‘을 부인하지 못합니다만.
뭐 사람이 만든 거 가운데 안 그런게 있겠습니까. ㅋㅋㅋㅋ

blanca 2021-04-08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우리 문학 과거 작품 중 폭력적이고 마초적이고 낡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요즘 나오면 난리났을 것들. 시대적인 관점에서 봐도 사실 작가는 그 안의 세태를 그리는 게 맞지만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냥 막 쥐어짜서 억지로 만든 이야기들도 있고...습작을 출판하며 했다는 느낌을 준 이야기들도 있고...

Falstaff 2021-04-08 10:28   좋아요 0 | URL
특히 이 책의 표제작 <주말여행>이 그렇더라고요.
물론 중산계급의 허위와 위선 등을 그리려 했겠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뭔가는 결여되어 있거나 별로 보이지 않거나, 있는데 제가 발견을 못했거나, 하여튼 셋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시간은 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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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생 모스크바 출생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책 뒤편의 역자 해설을 보니, ① 당시 대학생이던 아버지는 류드밀라가 첫 돌을 맞기도 전에 여대생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났고, ②-1. 2차 세계대전 당시 쿠이비셰프에 피난을 떠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갓집에서 어머니, 할머니, 이모 등과 함께 굶주림에 지친 삶을 살았으며,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에도 ②-2.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어머니, 외조부모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 언어학자였던 외조부가 숙청을 당해 더 어려운 처지에 당했다가, 대학과 연구소에서 퇴출당한 ③ 할아버지에게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밤마다 외조부의 괴상한 웅얼거림을 들으면서 잠을 이루어야 했다고 한다. 위에서 나열한 네 가지의 경우가 전부 이 책에 실린 열세 편의 중단편 소설의 소재가 된다.
  페트루셉스카야가 참으로 곤궁한 시절에 유소년 시절을 보낸 것은 맞지만 20세기에 폭력과 빈곤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세대는 사실 이이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였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 후 내전 시기의 전국적인 빈곤, 공포의 숙청과 또다시 겪어야 했던 2차 세계대전. 하긴, 당시의 어떤 지구인인들 그러하지 않았겠는가만 실제적인 생명의 위협과 빈곤을 혹독하게 겪은 마지막이 페르루셉스카야 또래였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들이 (조)부모와 다른 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무난하게 생존할 수 있어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 쓰고 싶었던 글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드디어 향유할 수 있었던 점.
  며칠 전에 읽은 《티끌 같은 나》의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1937년생으로 페트루셉스카야와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글을 쓰는 스타일은 어떻게 이렇게 상반될까. 같은 여성이고, 같은 또래이며, 두 명 다 러시아의 수도capital, 한 명은 모스크바 한 명은 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비슷한 소재,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물론 '가난'이라고 해도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같은 기아선상까지는 아니지만)를 다루고 있다는 점까지 유사하다. 그러나 토카레바를 읽으면서 빈곤 속에서 마치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듯한 반어적 일탈을 통해 빈곤한 사람들의 생명력을 볼 수 있었다면, 《시간은 밤》에서 페트루셉스카야는 빈곤이 어떻게 인간을 말살시키는가를 그려내는 데 더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빼어난 두 작가의 성과를 나 같은 아마추어가 비교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의 작품은 독자들의 기호에 따른 호오, 아니, 아니, ‘아주 좋음’과 ‘좋음’ 간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열세 개의 중단편을 묶은 선집이라고는 하나, 마지막에 실린 표제작 <시간은 밤>을 제외하고는 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짧아 손바닥 장掌자를 써서 장편掌篇소설이라 할 분량이며, 끝까지 읽어보면 개개의 소품들이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지언정 마지막 중편 <시간은 밤>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말은 장편掌篇소설 운운하지만, 개개의 짧은 이야기가 한 편의 중편소설 이상을 써도 무난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소설작품을 읽을 때 간혹 느끼게 되는 ‘소재의 경제학’으로 보면 소재가 분량에 비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건 거꾸로 각기 작품들이 대단한 밀도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이 ‘농축된 밀도’를 갖는 짧은 소설들이 만들어낸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표제작 중편 <시간은 밤>을 읽은 감상을 이야기해보자.
  작품은 전화로 읽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원고의 내용이다. 생전에 시인이었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면서 남긴 원고 <식탁 끝에서 쓴 수기>.
  안나 안드리아노브나라는 이름의 일인칭 화자 ‘나’는 50대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 세라피마 게오르기예브나와 아들 안드레이 내외, 딸 알료나와 알료나의 두 아들과 딸로 구성된 가난한 가족의 일원이다. 얼마나 가난한가 하면, 손등에 바를 크림 값이 없어 보습용으로 식용유를 바르고 다닐 정도다. 전에 경마 기수였던 슬픔을 머금은 표정의 잘생긴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진통제 서른 정을 대신 사주어 답례로 그가 손등에 키스했을 때 얼른 자기 손을 들어 얼마나 지독한 냄새가 나는지 확인을 해봐야 했을 정도. 강제 수용됐던 유대인이나 했을 법한 이야기.
  지금의 호구지책은 7년째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덕에 받는 의료수당과 비정규 시인의 자격으로 주로 어린이와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낭송회에 참석해 시를 낭송해주고 11루블, 어떤 땐 7루블을 받아 충당한다. 현재의 동거인은 큰 손자, 즉 딸 알료나의 큰아들 티모페이와 둘이 살지만, 폭행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던 자기 아들 안드레이가 출소했을 당시에는 방 두 개의 작은 아파트에서 자기 혼자의 노력으로 자신과 임신한 딸과 사위와, 새로이 가세한 안드레이까지 먹여 살려야 했다. 최악은 사위가 염치도 없이 친구들까지 데려와 냉장고를 완전히 비워버리기를 자주 하던 터.
  가난은 자주 사람의 염치를 증발시킨다. 화자 ‘나’는 떼쟁이, 말썽쟁이이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경련까지 일으키는 신경증 증상이 있는 손자 티모페이를 데리고 오랜 친구 마샤의 집에 방문하지만 환대받지 못한다. ‘나’의 모든 신경은 두 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티모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먹이는 일. 그리고 마샤도 이미 알고 있듯 조금이나마 마샤로부터 돈을 얻어내는 일. 이 장면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어려서는 그리도 예쁘고, 잘생기고, 착하고, 말 잘 듣던 연년생 남매 안드레이와 알료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돌변했다. 안드레이는 불량한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비행을 일삼다가 한 소년을 잡단으로 폭행해 친구들의 죄까지 다 뒤집어쓰고 2년 형을 받아 복역하다 1년 반여 만에 사면 출옥한다. 알료나는 의무적으로 가야 했던 집단농장에서 여자아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많이 받았던 사시카(알렉산드르)와 건초더미에서 처음 접촉을 해 티모페이를 낳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징집당해야 하는 처지라 서둘러 혼인신고를 하고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았으며, 이혼 후엔 늙고 인색한 부학장 사이에 또 딸을 낳고 집을 나가 부학장과 사실혼 관계를 이어가며 셋째를 임신해 또 아들을 낳는다. 그 후에도 가끔 집을 찾아와 엄마인 ‘나’에게 소액을 뜯어가고는 한다.
  물론 ‘나’도 그리 잘난 건 아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시를 쓰며 수습기자로 신문사에 근무할 당시에 유부남 화가와의 로맨스가 들통이 나, 직장과 남자는 여전히 체호프식이라서, 직장에서 쫓겨난 적이 있고, 이후 29세에 난데없이 고고학 탐험대에 합류했다가 고고학자와의 사이에 연년생으로 아들, 딸을 낳았다. 이때 고고학자의 아내가 집에 쳐들어와 유리창을 깨고 깨진 유리창으로 손목을 긋는 난리를 치뤘고 이후 그와 결혼해 별 수입도 없는 부부를 어머니가 먹여 살리며 갖은 구박을 당했던 과거가 있다. 남편은 다시 떠난 고고학 탐험 중에 ‘나’의 경우와 똑같이 다른 여자 대원과의 사이에 자식을 만들어내 이혼한 후엔 계속 독신으로 산다.
  안드레이는 아내의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2층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가 부러졌고, 몇 달 깁스를 해 완치가 된 후에도 발꿈치에 치명적인 후유증이 생겨 걷거나 서서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처지. 아직 교류를 계속하고 있던 왕년의 문제아 출신 친구들은 이제 거의 범죄인 비슷하게 되어 아들의 입장에서는 큰 금액의 빚을 ‘나’가 대신 갚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있는 아들의 목숨을 건 일일 수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 것.


  문제는 역시 글이다. 이렇게 단순히 도식적으로 써놓으면 그냥 그런 궁상스런 이야기겠거니 할 수 있지만 빼어난 문장은 독자에게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라도 충분한 공감을 가져다준다. 앞뒤 위아래, 좌우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삶의 곤고함, 빈곤이 한 사람을 파멸시키는 결말. 거의 끝장 수준에 이르는 빈곤을 읽는 일은 독자에게 편하지만은 않다.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진솔함일 터이다. 감정의 과잉이 없는 서술과 이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문장들.
  이미 여든이 넘은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이제야 읽어볼 수 있었을까. 그간의 세월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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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06 09: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문장도 정말 빼어나죠. 저도 폴스타프 님처럼 여든이 넘은 작가의 작품을 이제야 읽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절판)도 운좋게 중고로 구입했는데요, 몇 작품만 읽었는데도 역시 좋더군요. 진짜 암울한 러시아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한...

요즘 <피에 젖은 땅> 읽고 있는데요, 스탈린 치하 러시아는 정말 말도 못하게 끔찍한 나라였더군요. 대숙청 대숙청해서 아, 그렇구나 했는데, 그 지경인지는... 휴... 그런 세상을 살아내고, 글을 쓰는 러시아 작가들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Falstaff 2021-04-06 09:50   좋아요 3 | URL
러시아하고 아일랜드 물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짝 동네 사람들 가운데 ‘구구이 관주‘인 작가들이 많잖아요. 요즘엔 또 헝가리 출신들이 눈에 띄고. 솁스카야 할매 책을 또 구하신 것도 행운이네요. ㅎㅎㅎ 저도 함 뒤져봐야겠습니다.
저는 토카레바가 조금 더 좋았습니다. ㅎㅎㅎ

러시아 사람들의 사고체계가 좀 이상해요. 여러 책을 통해 공통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게 된 건,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귀환한 군인들을 무지무지 비하하더라고요. 포로? 안 죽고 어떻게 포로가 됐지? 이런 생각을 꼬맹이부터 국민 전반에 걸쳐 하는 게 특색이 있었습지요.
기본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들 위에 스탈린이란 깡패가 군림했으니 그리 끔찍한 일들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저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잠자냥 2021-04-06 10:29   좋아요 2 | URL
저도 토카레바 쪽이 좀 더 좋았습니다. 그 유머가 역시... ㅎㅎㅎㅎ

coolcat329 2021-04-06 10:33   좋아요 2 | URL
<피에 젖은 땅>은 832페이지네요. 상도 많이 받아 좋아보이네요...잘 읽히는지요? 😅

잠자냥 2021-04-06 10:36   좋아요 4 | URL
벽돌책입니다. ㅎㅎ 주말에 읽기 시작해서 지금 절반쯤 읽었어요. 어렵지 않고 잘 읽힙니다. 소름끼치는 장면도 많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으시면 스탈린에 대해 정말 다시(?)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원래도 흉악한 인간이지만.... 히틀러냐 스탈린이냐. 정말... 하....

coolcat329 2021-04-06 10:39   좋아요 2 | URL
아 잘 읽히다니 반갑네요 ㅎ 굉장히 끌리네요...

잠자냥 2021-04-06 10:41   좋아요 2 | URL
<피에 젖은 땅> 리뷰대회도 있으니 읽고 참여해 보세요. ㅎㅎ 낚시는 아니고요. 읽어야 할 책 같습니다.

다락방 2021-04-06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 님 리뷰 읽고서 장바구니에 이 책 넣어둔지 오래인데, 폴스타프님 리뷰까지 읽고 나니 ㅋㅋㅋㅋㅋㅋㅋ아 결재를 해야겠습니다. 지름이란 무엇인가.
이 책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읽다보면 할 말이 엄청 많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나 저렇게 갑자기 임신해 아이를 낳는다거나 유부남과 사귀다 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은 여자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책은 이 리뷰 만으로도 할 말이 많은데 이걸 책으로 읽는다면 아마도 고통과 분노가 쓰나미로 몰아닥치지 않을까요..

아무튼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4-06 10:28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읽으면 틀림없이 열 깨나 받으실 겁니다. ㅋㅋㅋㅋ
남자새끼들 하나같이 결혼해서 처가집에 쳐들어가 장모한테 얹혀 살며 집구석 찬장 위의 모든 음식을 거덜내거든요.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서 도망쳐버리고요.
심호흡 하시고 읽으세요.

잠자냥 2021-04-06 10:30   좋아요 2 | URL
제 친구가 이 책 읽고 왈..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섹스에 미쳐가지고 애 만들고 도망가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4-06 10:44   좋아요 3 | URL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보면 거기에서 한 등장인물이 콘돔 없는 원나잇으로 아버지 다른 아이 셋이나 낳잖아요. 아오 ㅠㅠ 임신 진짜 이거 어떻게 해야돼요. 세상에 벼락이라도 내려서 임신 남자가 했으면 좋겠어요 ㅠㅠ

coolcat329 2021-04-06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하..요즘 새로운 패턴이 생기고 있습니다. 잠자냥님 글 읽고 언젠가 읽어야지 보관한 책들, 폴스타프님이 쐐기를 박아 고정시켜주십니다.

Falstaff 2021-04-06 11:14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관한 모든 책임은 쿨캣님한테 있는 겁니다! ㅋㅋ

잠자냥 2021-04-06 11:26   좋아요 2 | URL
아니 그럼 폴스타프 님과 저는 알라딘 낚시 커플?!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4-06 11:2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잠자냥님, 미끼를 다시죠, 그럼 제가 채 올리겄습니다.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4-06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면 이 책을 안볼수가 없네요~!!

coolcat329 2021-04-06 11:55   좋아요 2 | URL
그쵸ㅜ 이분들 개미지옥이에요.

Falstaff 2021-04-06 12:17   좋아요 2 | URL
개미귀신 대신 요괴인간으로 하면 안 될까요?? ㅋㅋㅋ

coolcat329 2021-04-06 13:13   좋아요 2 | URL
아 ㅋ 파리지옥을 쓴다는게 개미지옥으로 썼네요.
근데 요괴도 생각해보니 맞네요. 일단 읽고 나면 홀려버리니까요 ㅋㅋ

잠자냥 2021-04-07 12:11   좋아요 2 | URL
개미지옥 요괴인간 폴스타프&잠자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딩 2021-05-08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밀도, 대단한 서평, 대단한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당선작.

Falstaff 2021-05-08 21:0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초딩 님도 페이퍼 선정 축하합니다. ^^

이하라 2021-05-09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날 되세요~

Falstaff 2021-05-09 13: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ㅎㅎ 근데 알라딘에서 말하는 ‘당선‘이 ㅋㅋㅋㅋ.... 너무 큰 단어 같아서 좀 민망하긴 합니다. ‘선정‘ 정도로 했으면 좋겠는데 발표를 그리 해버려서요, ^^;;
 
로비스트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6
쉬잉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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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세기 전인 기원전 484년, 위나라에서 고단한 몸을 쉬고 있던 공자에게 제나라가 고국인 노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궁지에 몰린 노나라는 신하 염유冉有의 말에 따라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초빙하기에 이른다. 일찍이 포나라에서 공자 일행을 붙잡아 만일 위나라로 가지 않으면 보내드리리라, 하기에 절대 위나라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그길로 위나라로 내뺀 적이 있는 공자. 이런 선생더러 “맹세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명색이 맹세인데 말입니다.”라고 시비를 붙은 인물이 단목사(책에 따라 端木賜(두산백과, 네이버 검색) 또는 端沐賜(사기열전, 중니 제자 열전. 민음사 2007)) 자공子貢. 이때 공자 가라사대, “강제된 맹세라면 귀신이라도 들어주지 않는 걸, 하물며…” 말을 맺지 못했던 적이 있다. <사기 세가>에 나오는 얘기다. 이것을 보면 천하의 현철이었던 공자 역시 임기응변의 중요성을 인정하였거니와 스스로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스승 공자가 죽고 6년 동안이나 묘의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자공의 놀라운 임기응변은 틀림없이 공자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겠다.

  노나라는 춘추시대 중원 한복판에 있었다. 노른자 땅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매우 불리하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 나라의 덩치가 클 도리가 없고, 크더라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야금야금 주변국에 먹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었을 터. 게다가 노나라는 공자의 모국답게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그저 인의예지신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기를 좋아해 외침을 당하면 대적을 하기보다 거의 언제나 주변의 다른 나라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기원전 484년도 마찬가지였다.

  제나라 대부 전상田常, 원래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가 또 다른 세력들이 두려워 대신 이들의 군대와 협력해 노나라를 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래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 접경에 와서 진을 펼치고 있었을 때, 국력이 약한 나라의 원로로 눈물을 훔치고 있던 공자는, 많고 많은 제자 가운데 자기로부터 임기응변을 제대로 전수받은 자공을 불러 어떻게 해서라도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라는 특명을 전한다.

  사기열전에 보면, “자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일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돈을 잘 굴렸다.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일찍이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을 쌓아 두기도 하였다.” 이 내용을 극작가 쉬잉은 주목, 강조한다. 당장 제나라가 쳐들어오는 판국에 자공은 나무 널빤지를 다량으로 사두기 위해 목수에게 가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일단 침략을 받으면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는 노나라 군사들은 거의 몰살을 당할 터이니, 이들을 매장하려면 무지막지한 수량의 관이 필요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이 정도의,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두뇌 회전과 순발력이면 가히 최상의 협상꾼이 되리라는 공자의 생각이 틀리진 않았을 터. 그리하여 자청해 후배 자공의 경마잡이로 나선 거친 성격과 용맹한 자로와 함께 먼저 제나라 전상의 막사로 향한다.

 공자의 제자요, 상인으로 이름을 높인 자공을 맞은 강대국 제나라의 최고 권력자 전상. 그는 자공에게 설득을 당해 노나라 대신 오나라를 치기로 계획을 바꾼다.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공으로부터 노나라에서 만든 관 짜는 판자를 도매가격으로 넘겨받기로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언제나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해왔던 노나라는 다른 어떤 곳보다 높은 품질의 방패를 생산했다. 그리하여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제의하고, 전상 역시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오나라로 길을 떠난 자공. 그는 오나라 국무총리 격인 태재이자 간신인 백비에게 뇌물을 주고 합려의 아들 부차를 만나, 월나라 구천을 꺾어 기세가 올라 이제 중원을 도모할 시기를 노리고 있던 부차에게 제나라를 물리치고 이어 내친김에 진晉나라까지 점령하여 패자霸者에 오르라고 쑤석거린다. 부차는, 사기열전엔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는 경색지국의 아내 서시와 천하의 간신인 백비의 꼬임에 넘어가 선왕부터 왕실에 충실해, 먼저 월나라 구천을 멸망시키라고 간하는 참모 오원五員, 즉 오자서伍子胥에게 보검 촉루蜀鏤를 내려 자살하게 해버린다. <로비스트>는 현대문학 작품이다. 그리하여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스스로 자기 목을 찔러 죽어가면서 오자서는 비통하게 오나라와 부차를 저주한다.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러나 오자서를 주살하는 일은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오기 1년 전, 기원전 485년에 있었다. 쉬잉은 극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오자서와 서시를 작품에 끌어들였을 것이다. 게다가 간신 백비에게 자공은 노나라에서 만든 최고 품질의, 어떤 방패라도 막지 못하는 창을 염가에 판매하겠다고 제의한다. 제나라 전상에게 방패, 오나라 백비한텐 창을 팔아먹는 자공. 쉬잉은 처음부터 극을 비장하게 끌고 가려 하지 않았다. 이건 유명한 모순矛盾 이야기.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전국시대에 초나라 상인이 한 자리에서 방패도 팔고 창도 팔다가 생긴 일인데 이걸 공자의 제자 자공이 써먹었다.

  <로비스트>의 원래 제목은 세객(說客). 능란한 말솜씨로 각지를 유세하고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이 책에선 당연히 자공을 말한다. 자공은 노나라를 구하기 위해 오나라와 제나라, 오나라와 진晉나라,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을 발발시켜야 했고, 결과, 목적으로 한 노나라는 멸망하지도 않았고, 전쟁의 참화를 겪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시 시각으로 중국이 전 세계였으니, 자공의 세 치 혀로 세계대전을 발발시켜 수많은 군사, 농민들이 죽어갔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쉬잉이 만든 자공은, 자신 때문에 생긴 거대전쟁과 중원을 불길로 인해 자책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스스로 나는 개자식이다, 라는 회한 또는 자의식에 젖어 있으며, 이건 당연히 2천5백 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만든 의식의 차이이리라. 춘추시대 역사를 재미있어하는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당신이 사기 열전의 오자서 열전과 중니 제자 열전까지 읽었더라면 더욱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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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의 회고록 환상문학전집 24
도리스 레싱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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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뒷면에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유력 신문매체인 포스트디스패치가 이 책을 평한 내용을 적어놓았다.


  “레싱의 소설들 중 가장 술술 읽히는,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

  썅. 속았다. 이 책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다. 레싱이 쉽게 읽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여태 읽어본 레싱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웠다. SF 소설이라 뻥을 쳤지만 절대로 과학픽션 아니다. 환상소설이라고 해도 별로 맞는 의견은 아닌 거 같다. 그럼 뭐냐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상상력으로 만든 은유의 골짜기. 가장 비슷한 작품을 들라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사라마구는 그래도 줄줄 읽히기나 하지.
  그러나 만일 포스트디스패치의 의견이 맞는다면? 먼저 우리말로 번역한 책을 읽고 단언을 하면 안 되겠지만, 서부로 가는 관문 역할을 백 년 넘게 해온 거대도시 세인트루이스, 그래봤자 박물관 가보면 인디언들 유물밖에 없지만, 그 동네 대표 신문사의 의견이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가정을 한다면, 간결하지 않은 레싱의 “영어문장”에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 싶다. 만일 그렇다면 그걸 우리말로 번역한 이선주도 고생 깨나 했을 거 같아, 일단 노고에 감사의 말을 보탠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우리말 문장을 읽는 일이 고통스러웠다는 거다. 당연하지, 번역서를 읽었으니. 요리가 다 끝나 마지막으로 내 앞에 정찬이라고 차려준 게 이 책이었으니까.
  지금 역자 이선주 탓을 하는 거 아니다. 이건 분명히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도리스 레싱,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3년 전에 읽은 <마사 퀘스트>라서 이이의 문장이 원래 그런지는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데, <생존자의 회고록>의 문장은 누보로망을 읽는 거 같았다. 누보로망처럼 미분하는 듯한 세밀함은 아니지만 특정 상황이나 사물을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묘사하기 위해 한 문장 안에서 중언부언 하는 거. 이런 문장은 주로 작품의 앞쪽에 많이 배치되어 있어서 초장부터 독자에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잘한 펀치, 잽을 날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역자의 정성이 가세해, 우리말로 쓰면 조금 어색한 수동태와 지시대명사를 반복하기 시작하면 이젠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
  이 책, 겨우 278쪽. 이 정도면 하루에 뚝딱할 분량이다. 그러나 도리스 레싱이라서 처음부터 하루엔 도저히 불가능하고, 하루 반나절이면 될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 이틀 꼬박 걸렸다. 그리고 지금 독후감을 쓰려 화면을 열어놓고 보니, 한 반 정도나 읽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거, 이거 어떻게 해. 뒤에 해설이라도 달렸으면, 분명하게, 나는 처음에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가 한 스무 장 넘기고 나서, 커피 한 잔 마신 다음, 겸허하게 역자 해설을 살펴보고, 본문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을 거다. 불행하게도 이 책에 역자 해설, 없다.
  그래 무턱대고 읽다보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영국 땅이 무대인데, 큰 재해, 책에서는 ‘그것’으로 인해 기존의 문명 대부분이 사라져버리고 이제 혼돈의 상태로 접어든 디스토피아의 단계로 접어든 상황이다. 주인공 ‘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아파트의 특징은 한 셀, 네 면의 벽으로 된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 그러던 어느 날, ‘나’ 앞에서 작은 진동이 생기는 거 같더니, 이게 웬일이니, 벽이 열리고 다른 세계가 보이는 거였다. 벽이란 무엇일까? ‘나’의 강박관념? 그럴 수도 있다. 벽이 상징하는 바가 ‘나’를 배반할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지. 그리고 등장하는 중년 남자와 열두어 살의 에밀리 카트라이트. 남자는 ‘나’에게 에밀리를 맡겨놓고 다시 벽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아파트 밖은 이미 야생 비슷한 상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곳을 떠돌이들이 무리를 지어 모였다가 떠나버리고, 가끔은 거주자들이 떠난 빈 건물이나 빈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잠깐씩 산다. 나는 여기서 벽 너머와 현재 ‘나’가 거주하는 곳의 차이, 에밀리와 ‘나’ 사이에 연관성 등을 탐색 또는 추리하기 시작한다. 혹시 벽 너머는 작가 도리스 레싱의 과거, 불우했던 아프리카 시절의 덜 자란 자신이고, 화자 ‘나’는 현재의 작가는 아닐까 싶었다. 이때부터 거의 이런 시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중년 여인이 된 ‘나’가 과거의 ‘나’, 작중 에밀리 카트라이트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할 테니까.
  에밀리는 ‘나’에게 올 때 휴고라는 이름의 동물을 한 마리 데려온다. 어쨌거나 동물이다. 불독 만한 크기에 고양이라기보다 개처럼 생긴 몸통이지만 고양이의 노란 얼굴을 한 생물. 애완 말고 말 그대로 반려견/묘 사이의 애매한 짐승인데 저 뒤편에 가면 의인화까지 벌어진다. 그러나 기대하지 마시라. 독자는 결코 휴고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터이니.
  이게 내가 읽은 <생존자의 회고록> 전부다. 작품의 디스토피아를 초래한 “‘그것’은 역병, 전쟁, 기후변화, 인간의 정신을 왜곡시키는 폭정, 종교의 야만일 수 있”다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리하여 속수무책으로 인류의 문명이 사라진 이후를 묘사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더 이상의 이 책에 대한 사색은 나로 하여금 뇌경색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고는 없다. 그러니 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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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02 13: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레싱이 술술 읽히는 작가는 아니잖아요!? 내용만 봐도 난해할 거 같은데 ˝가장 술술 읽히는 레싱˝이라니 ㅋㅋㅋ 아 전 3월달에 <마사 퀘스트> 읽다가 절반쯤 읽고 일단 덮었어요. 그것도 그다지 잘 읽히지는 않더라고요.... 그나저나 레싱에게 이런 환상문학(?)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뇌경색주의보!! 잘 새겨듣겠습니다!

Falstaff 2021-04-02 14:59   좋아요 3 | URL
어휴... 이거 원 텍스트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우리말 번역을 너무 충실하게 해서, 번역문 읽는 어려움까지 추가했었습니다. 너무 성실한 역자, 그래서 한 단어도 !빼먹지 않으려는 의무감이 조금 힘들더군요.
어떤 의미인줄 아실 겁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21-04-02 15: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건강검진했습니다. 위 내시경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해장국에 쐬주 한 병 깠습니다.

여러부운! 건강검진 후, 내시경 하느라 싹 비운 배 속에 절대 쐬주 붓지 마세요! 한 세 병 마신 효과 납니다. 죽었다가 지금 깼습니다!!!!

잠자냥 2021-04-02 16:36   좋아요 5 | URL
크하- 말만 들어도 제 속이 쓰립니다........으으.......

coolcat329 2021-04-02 19:35   좋아요 4 | URL
우와 사랑니 뽑고 술 마시는 사람은 봤는데요...위 내시경하고 드시는 분은 첨입니다. 여러모로 폴스타프님은 대단하세요!

Falstaff 2021-04-02 20:58   좋아요 3 | URL
아이고, 이게 참. 자랑할 것이 술 밖에 없으니 난감하기도 하고 뭐.... 흑흑흑.... ^^

붕붕툐툐 2021-04-02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썅. 속았다에서 빵터졌습니다. 아~ 진짜 폴스타프님 유머 너무 사랑합니다~❤

Falstaff 2021-04-03 12:31   좋아요 0 | URL
어흑! 그 감탄사 때문에 독후감 하나가 강제 비밀처리된 적도 있는뎁쇼. (실화)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ㅋㅋㅋㅋ

보라돌 2021-04-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 싶어서 남들은 어떻게 읽었나 싶어서 들어왔더니, 저 혼자만 헤매는 게 아니었네요.
독후감은 안헤매고 재밌게 읽고 갑니다 ㅋㅋ

Falstaff 2021-04-14 08: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위안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alummii 2022-11-08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이거 방금 장바구니 담았다가 뇌경색 때매 버렸어요 ㅋㅋ

Falstaff 2022-11-08 19:49   좋아요 2 | URL
ㅋㅋㅋ 잘 하셨습니다. 내용도 지금 전혀 기억 안 납니다.
 
비구름이 모일 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베시 헤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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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읽은 베시 헤드. <비구름이 모일 때>는 1969년 출간. 1967년에 탈고했으나 아프리카에서는 출간을 해주는 출판사가 없어 2년을 묵인 69년, 뉴욕과 런던에서 책이 나오는 바람에 인세로 집을 한 채 지은, 헤드 최초의 장편소설. 67년 탈고니까 이이의 나이 30세에 쓴 작품이다. 이어 2년 후 장편 <마루>를, 73년에 <권력의 문제>를 연달아 출간하니 이때가 헤드의 전성기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읽은 순서는 <권력의 문제>, <마루>, <비구름이 모일 때> 즉 몇 년 차이가 나지 않지만 거꾸로다.
  처음 <권력의 문제>를 읽고 두 가지 측면에서 심란했다. 작가 베시 헤드의 기구한 생애를 알게 되어 심란했고, 책이 도무지 읽히지 않아 더 심란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37년에, 흑백 혼혈로, 그것도 백인 엄마가 낳은 흑인 혼혈로 태어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외갓집은 외갓집대로 가문의 오점이라 낳자마자 흑백 혼혈인 부부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버리고, 생모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여기까지도 기구한데, 열한 살이 된 1948년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국회를 통과해 흑인으로 살기에 가장 지옥 같은 나라에서 교사 등의 직업인으로 살다가 성폭행을 당해 입원하기도 하고, 심지어 조현병으로 엄마처럼 정신병원에도 몇 번 들락거리기도 하고, 결국 이웃나라인 보츠와나로 망명해 교사로 있으면서도 가난과 고통을 겪는다. 자신의 경험을 <권력의 문제>의 소재로 사용한 자체가 먼저 심란할 만했다.
  그리고 이를 능가하는 몸에 와 닿는 심란함. 책이 읽히지 않았다는 점. 처음에 5~60쪽까지 읽어나가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 꼼꼼하게 읽어보니, 작품의 화자가 정상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전에 조현병을 경험해봤듯이, 조현병 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 그렇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1부 주인공 벤지의 화법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난 후 비로소 술술 읽히기 시작했고, 이 작품 하나로 베시 헤드를 좋아하게까지 되었다.
  <마루>는 고귀한 영국인이 데려다 키운 아프리카 최하위 부족이자 불가촉천민인 부시먼 출신의 고아 여자애가 열일곱 살이 되어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자, 귀부인이 50 파운드를 손에 쥐어주고는 귀국해버리는 바람에 저 시골 벽지에 교사로 발령받은 이야기다.
  <비구름이 모일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목숨을 걸고 신문기자를 하다가 파괴선동자라는 혐의를 받아 2년 동안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나오자마자 보츠와나로 밀입국한 ‘마카야’라는 흑인 미남과, 엄청난 거구로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보츠와나로 와서 골레마음미디 마을의 번영을 위해 농업과 축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사업을 추진하는 토종 영국 백인 남자 길버트 벨푸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베시 헤드 자신이 보츠와나로 망명한 이니 아무래도 마카야에게 더 방점이 찍히는 건 사실이다.
  마카야는 한겨울인 6월에 국경마을에 숨어 있다가 한밤중을 틈타 2미터의 철조망을 넘고 중간지대 8백 미터를 전력을 다해 뛰어간 다음, 또다시 철조망을 타고 넘어 보츠와나에 도착한다. 아침이 되어 운 좋게 트럭을 얻어 타고 작은 촌락에 도착해 경찰서장에게 국경을 넘어왔음을 보고한다. 마카야가 왜 국경을 넘었을까. 이미 보츠와나의 유력 신문 1면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위험한 파괴 선동자가 금지령을 피해 달아나다.”라고 큼지막하게 기사가 떴으며, 마카야를 한 번 딱 보고 백인 경찰서장 조지 애플비스미스가 사진의 당사자임을 알아차렸는데도. 그건 흑인을 보이, 개, 캐퍼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가 제일 중요한 이유이고, 두 번째가 자유의 땅을 밟아보고 싶어서였다.
  경찰서장은 그에게 행동을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입국을 승인한다. 마카야가 경찰서를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중요한 조연인 디노레고라는 노인인데, 그는 마카야와 몇 마디 이야기를 해보고, 자신의 고집 센 딸과 맺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 자기네 동네인 골레마음미디 마을도 데려갔고, 그날로 거구의 영국인 길버트와 안면을 튼다. 길버트가 이야기해보니, 마카야가 아프리카 사람으로는 드물게 부족주의에서 벗어난 사상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라 자신이 고용하겠다고 제의를 해, 이후 젊은 청년 길버트-마카야, 젊은 여성 마리아-폴리나 세베소, 현명한 노인 디노레고-음바밀리페디, 이렇게 세 커플이 한 편이 되어, 약한 자들이 벌이는 선의의 행동을 억누르는 취미를 가진 악당 추장 마텐지의 방해를 극복하는 아프리카 판 브나로드, <상록수> 비슷하다.
  잘 읽히고 좋은 내용이지만 베시 헤드의 첫 작품이라서 그런지 (근데 아마추어가 이렇게 얘기해도 좋은지 몰라?) 꼭 계몽소설을 읽는 기분이 드는 걸, 읽는 내내 숨기지 못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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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01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인생이 참...기구함 그 자체네요. 작가 검색해보니 1986년 50도 안돼서 간염으로 가셨네요.ㅠ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던 시기였다는데 안타깝습니다. 고생한 비쩍 마른 외모를 상상했는데, 둥글둥글 맘좋은 푸근한 아주머니 인상이네요.

Falstaff 2021-04-01 09:37   좋아요 1 | URL
옙. 세상에 불쌍하지 않은 인간이 있겠습니까만, 참 힘들게 산 사람이더군요.
그래도 그 시절에, 여자가, 배워서 학교 교사까지 했으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진짜 흑인 여성과 비하면 조금은 나은 환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에휴, 참 누구나 사는 건 쉽지 않아요. 그저 평범하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장땡입니다.

바람돌이 2021-04-0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작가의 삶은 진짜 뭐라 말하기 힘드네요. 새로운 작가를 Falstaff님덕분에 알게는 되었는데 마지막에 계몽소설 딱 얘기하시는데 느낌이 옵니다. 아프리카식 브나로드. ㅠ.ㅠ

Falstaff 2021-04-01 10:11   좋아요 1 | URL
창비세계문학에서 나온 권력의 문제 읽으셔요. 잘 읽히지 않지만 임팩트가 큽니다.
제가 읽은 헤드의 작품 가운데 브나로드는 이 책 한 권이예요. ㅎㅎ

바람돌이 2021-04-01 10:12   좋아요 1 | URL
오 추천까지! 감사합니다. 브나르도는 빼고 권력의 문제부터 읽어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1-04-01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생경한 세계인데 Falstaff님의 정서를 따라가며 책 맛보기 한 기분입니다. 작년에, 황상민 박사님의<만들어지는 병, 조현병>을 읽다가 어려운 대목이 있었어요. 일부러 독자가 조현병의 심화 과정, 혹은 만들어지는 과정을 느끼게 하려고 조현병 환자가 주치의였던 자신에게 썼던 편지를 그대로 본문에 수록했는데 정말 머리가 빙빙 돌며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권력의 문제>에서도 그런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문장들이 등장하나보네요.

Falstaff 2021-04-01 16:42   좋아요 2 | URL
<만들어지는 병...>을 읽어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권력의 문제>에 나오는 문장들이 처음엔 상당히 어색하더군요. 근데 암만해도 일반 독자들에게 잠깐이 아니라 상당부분을 읽으라고 썼기 때문에 조현병 환자가 직접 쓴 편지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