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일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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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다니다 <사십일>이 눈에 번쩍 띄었다. 짐 크레이스. 근 4년 전 그가 쓴 <그리고 죽음>을 읽고 산다는 것이 참 덧없다고, 결혼 30년을 맞은 갱년기 또는 초기 노년기 부부가 이들이 처음 몸을 섞었던 해변을 방문해 그때를 기념하다가 악당에게 살해당한 시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심각한 수준으로 드라이하게 그려놓았던 걸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엔 분, 이어서 시간, 날짜 단위로 시신이 변하는 과정과 이들로부터 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몰려드는 파충류, 조류, 곤충, 갑각류,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이해하실 듯하다. 근데 문제는 끔찍하게 끔찍할 거 같고, 사실 내용도 그러한데 뭔가 삶이, 인간이라는 직립보행체가 중뿔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잘 강조해놓아서 읽어가며 점점 빠져들게 된다는 점. 아니나 달라 1999년 부커상 최종 후보short list에 올랐던 작품이며, 뉴욕 포스트가 올해의 최우수 소설로 선정했다고 해서 깜놀, 했던 적 있다.
  하여튼 그래서 고른 책인데, 웃긴 건, 이 책 <사십일>은 품절, 이 책을 고르게 만든 <그리고 죽음>은 판매 중. 둘 다 당시 영어책, 일어책 직역, 기타 나라에서 나온 책을 중역했던 자타가 인정하는 번역기계 김석희가 우리말로 바꾸었다.
  하여튼 이 책 <사십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가톨릭, 개신교를 불문하고 성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생애는 무조건 진리라고 믿는 신자, 신도, 형제자매들께서는 읽다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혈압 180을 상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애초에 읽기를 포기하시라. 이런 거 미리 일러드리는 것도 선독자(먼저 읽어본 놈)의 친절이니 조금은 고마워하셔야 할 듯. 내 비록 신약성서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찍이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로 가 40일 동안 온갖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금식기도는 아니고 하여튼 수도를 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성공회의 나라 영국 사람인 짐 크레이스는 그러나 책이 서문에 엘리스 윈워드와 마이클 솔 교수의 저서 <생존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평균적인 체중과 체력을 가진 보통 남자가 완전한 단식 ―단식기간 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 단식―을 하면 30일 이상 생존할 수도 없고, 25일 이상 의식을 유지할 수도 없다. 이 남자가 성서에 기술된 40일 단식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신이 도와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그런 종류의 개입을 기록하지 않고, 의학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럼 눈치 채셨나? 일단 이 이야기는 좀 뒤로 미루고 책의 스토리를 시작해보자.
  유대 땅의 황무지. 일 년에 비가 단 하루 정도 오는 척박한 대지라서 대상들이 낙타를 몰고 와 간이천막에서 며칠 묵다 가는 곳이기도 한데, 거구의 장사꾼이 하필이면 이 황무지, 한 시절 유대의 어버이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의 심장을 향해 번쩍, 잘 드는 단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던 성지이기도 해서 해마다 봄을 시작하는 달이 뜨면 많은 수도자, 기원자들이 모이는 성지이기도 한 이곳에서, 덜컥 열병에 걸려 혀가 숯이나 검댕처럼 새까맣게 변해 오늘 아니면 내일 죽을 것처럼 누워 있다. 환자의 이름은 무사. 무사의 젊은 아내는 임신 5개월로 아이의 발길질이 심해지는 시기였던 바, 하필이면 이런 때 남편이 숟가락 놓게 생겼으니 어찌 큰 근심이 아니겠느냐고? 아니다. 뼈만 남은 아내와 달리 거대, 비만한 체구의 무사는 덩치가 너무 커 앉았다가 빨리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었음에도 아내 미리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거칠고, 거칠고, 또 거친 잠자리와 툭하면 눈가를 퍼렇게 멍들이고 마는 구타와 심한 노역이어서, 미리 입장에서 남편이 빨리 죽어주는 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 여길 정도. 남편이 맞은 죽음의 침상에서 미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같은 대상인 무사의 삼촌, 사촌들이 부부에게 당분간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약간의 보물을 남겨두고, 장사를 오래 쉴 수 없어 떠나버린 날, 미리는 그래도 남편이니 그를 위해 맨손으로 남편을 위한 무덤을 파는데, 이 날이 올 봄 들어 처음으로 초승달이 뜨는 날이어서 다섯 명의 기도, 수도자들이 이 황무지로 오고 있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첫 번째 사람은 금발의 미남. 그리스 인. 나선형으로 휜 지팡이 소지. 이름은 심. 자신을 빼고 모든 사람을 숭배하는 범신주의자.
  두 번째 남자의 이름은 예루살렘 출신 석공이자 간암 환자인 노인 아파스. 40일 기도를 통해 신에 의탁하는 마지막 기회로 여김.
  세 번째는 부잣집 남자의 두 번째 아내 마르타. 첫 번째 아내가 불임으로 이혼당해 결혼했으나 마르타 역시 9년 동안 불임. 올해 임신 못하면 이혼 당할 예정.
  네 번째는 남쪽 사막에서 온 바두족 사내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음. 사냥에 능한, 한 마디로 야만인 비슷함.
  다섯 번째는 위의 네 명과 한참 떨어져, 한참 늦게 도착한,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난 청년 예수.
  그래서 예수는 네 명이 전부 동굴 하나씩을 선택해 자리에 들은 이후에야 황무지에 들어오는데, 다른 네 명과 달리 어떻게 하다 보니까 무사의 천막으로 향하게 된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금식기도에 접어들어야 해서 오늘 마지막으로 그저 입술을 축일 정도의 물과 작은 양의 빵을 얻으려 천막을 방문했는데, 무덤 파러 간 미리는 보지 못했고 무사만 혼자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것. 예수는 딱딱한 빵 껍질 조금을 먹고, 자기가 원했듯이 겨우 입술이나 축일 정도의 마지막 물 약간을 마신 다음, 무사의 침상으로 가, 그의 입술에 물을 적셔주고는, 정작 예수 자신은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는 순간이지만, 가슴을 퍽퍽 눌러 무사의 몸에 거하고 있던 열병의 악령을 물리치고 나서, 갈릴리 지역에서 늘 인사말로 쓰는 “그럼 다시 건강해지기를.” 하는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천막을 뜬다. 이어 쉽게 오르내리지 못하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 십자 모양의 입구가 있는 동굴에 자리를 잡는다.
  놀랍게도 짧은 시간에 거의 완치가 되는 무사. 그가 정신을 차려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라니. 절구 공이를 집어 들더니 삼촌, 사촌이 남기고 떠난 병든 당나귀를 때려죽여버렸다. 그럼에도 무사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모습. 갈릴리 청년. 무사가 예수를 갈릴리 청년이라고 알아볼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하여튼 그는 그런 뜻으로 진짜 예수의 별명이기도 한 ‘갈리’라고 예수를 칭하기에 이르면서 그를 찾는데 공을 들인다. 어떻게?
  예수를 뺀 나머지 네 명의 기도자들. 무사는 이들 앞에 나타나 대단한 뻥을 친다. 타고난 장사꾼이라 대담하고 일면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는데, 이 일대의 땅이 모두 자기 것이니 지금 당신들이 든 동굴의 세를 내라는 것. 그렇게 돈을 받고 한편으로 아내 미리를 시켜 음식을 만들어놓고 40일 금식기도라는 건 낮에 금식하라는 의미니까 밤이 내리면 천막에 와서 음식을 사먹으라 제의한다. 청년 예수는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는지라 절벽 아래 동굴에 박혀 오직 기도만 하고 있어서, 질병 치료사인 예수와 동업을 하고 싶어 애가 타는 무사는 긴 끈을 달아 음식과 물을 그의 동굴 앞에 가져다 놓고 이야기나 한 번 하자고 유혹하는 것. 바로 무사가 신약성서에 나온 사탄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좋다. 어차피 책은 품절이고 당분간 복간되지 않을 것이며, 복간한다 하더라도 리커버 에디션이나 그 비슷하게 껍데기만 바꿔 핑계 김에 가격을 올릴 터라 이 독후감은 노출이 되지 않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청년 예수는, 저 위의 윈워드와 솔 교수의 의견에 맞추어 단식 31일차에 세상 하직하고 만다. 이 정도면 기독교 신자, 신도, 형제자매들은 열 받을 만하겠지? 물론 제일 마지막 장면에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라서 얼굴을 지하 쪽에다 둔 상태, 그러니까 엎드린 형태로 묻힌 청년 예수가 벌거벗은 몸으로 부활한다는 팁은 있지만, 그럼 예수의 생애에 부활이 또 두 번이니까 그것도 문제거니와, 딱 꼬집어 부활이라고 선언하지도 않은 채 그냥 문학적 의미로 마감을 해버리고 만다. 하여간 40일에 열흘이 모자란다. 과학에 입각해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읽은 나는 다섯 번째 기도자가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고, 이후 계속 흥미진진하다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내용, 예수를 만나고, 암 환자와 불임에 시달리는 이들이 예수 덕에 치료를 기대하는 장면에 이르러 좀 지루해졌다. 그래도 이 책 역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E.M 포스터 상은 받았다고 하니 혹시 기억나시면 일독을 하셔도 나쁘지 않을 듯. 근데 웬만하면 뭐든지 일독하기만 하면, 나쁘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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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상화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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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 이시우李時雨라는 명문가 서방님이 숙녀 김신자 여사와 금슬이 좋아 아들 네 형제를 낳았는데, 첫째가 중국에서 장관급 대우를 받았던 독립투사 상정相定이요, 둘째가 민족의 해방을 위해 탄압을 무릅쓰고 저항의 노래를 그치지 않았던 시인 상화相和요, 셋째가 사학자, 사회학자로 서울대 교수를 지내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까지 지낸 상백相伯이고, 막내가 문필가이자 수렵인으로 이름을 낸 상오相旿였으니 비록 이시우 선생이 네 살 먹은 막내 상오를 남기고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아야 했다 하더라도 아들 농사 하나는 알뜰하게 하고 간 셈이다. 그러나 이 네 형제가 하나같이 고급한 공부를 마치고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이오, 나아가 해방을 위해 무력투쟁에까지 투신할 수 있었던 것은 대구 일대의 큰 부자였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일우 선생은 조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사숙을 시켰고, 경성 유학을 거쳐 일본 유학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었을 정도의 부와 혜안이 있었던 거였다. 심지어 둘째 상화는 더 나아가 프랑스 유학을 바라보고 일본의 대학 대신 아테네 프랑세라는 아카데미에 보냈는데, 그만 1923년의 관동대지진으로 꿈을 접고 귀국선에 오를 수밖에 없었단다.
  이상화는 열일곱 살 당시에 벌서 현진건, 백기만 등과 동인지를 만드는 등의 문학 활동을 시작한 바 있고, 스물두 살 때 인 1923년엔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김기진 등 당대의 쟁쟁한 젊은 시인들과 함께 「백조」에 동인으로 참가한다. 1922년. 3.1운동의 실패를 당한 창백한 인텔리겐치아들이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낭만 또는 퇴폐적인 경향의 시를 발표했을 때로, 일 년 후 발간한 「백조」 3호에 이상화도 <나의 침실로>를 게재하니 같은 동인지에 실린 시의 편편을 보자 하면,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 박종화의 <사의 예찬> 등이 있다. 훗날 대하역사소설 <금삼의 피>와 불멸의 <월탄 삼국지>를 쓴 월탄月灘도 처음엔 시로 시작한 것은 다들 아실 터. (<월탄 삼국지>하니까 저 먼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읽은 삼국지가 바로 <월탄 삼국지>였다.) <나의 침실로>는 인용하기에 많이 길어서 비슷한 경향의 상화의 대표적 퇴폐 시 <말세의 희탄> 전문을 소개한다.



  말세의 희탄



  저녁의 피 묻은 동굴 속으로
  아, 밑 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전문)


  상화의 시 속에도 당시 창백한 지식인들의 허무의식이 숨어 있고, 또 스물세 살의 청년에게 이런 감각이 유난히 빨리 스며드는 경향이 있다. 「백조」 자체가 동인들이 특정한 문학적 취향이나 정치적 목적을 공유했던 동인지라기보다 훗날 소위 청록파처럼 그냥 얼굴을 알고 지내고 가끔 만나 술잔 깨나 기울이던 ‘자칭 문인’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실어 폈던 것이니. 어쨌거나 한 집단,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승화되지 못한 거친 슬픔이나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라고 넘어가면 될 듯하다. 솔직히 살면서 왕년에 이런 종류에 한 번, 물론 잠깐, 몰두해보지 않은 청춘 있으면 두 명만 손들어 보시라.
  도쿄에서 아테네 프랑셰라는 아카데미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이상화는 다음 해인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다. 세상에나 가장 부르주아 적인 시인 이상화가 카프 발기인이라니. 당시에는 진짜 무산자 가운데 카프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당대의 천재로 일컫던 이용악 정도밖엔 없었을 것이니까 그것도 그냥 넘어가자. 애초부터 그들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희망하는 문학 장르가 그것이라는 말이니까. 이 당시 발표했음 직한 시 한 편을 읽어보자.



  구루마꾼


  ‘날마다 하는 남부끄런 이 짓을
  너희들은 예사롭게 보느냐?‘고
  웃통도 벗은 구루마꾼이
  눌 붉혀 든 얼굴에 땀을 흘리며
  아낙네의 아픔도 가리지 않고
  네거리 위에서 소 흉내를 낸다.  (전문)


  구루마는 요새는 보기 힘든데 양쪽에 고무타이어가 달린 바퀴 두 개가 달린 손수레로, 흔히 이야기하는 손수레보다는 크고, 전에 ‘리어카’로 불렸던 이송수단이다. 시장이나 역에서 사람들의 짐을 날라다 주고 삯을 받는 사람들을 구루마꾼, 나중엔 리어카꾼으로 불렀으며 거의 대부분 빈민으로 알았지만, 흠, 나중에 알고 보니 동대문 시장 리어카꾼은 30여 년 전 화폐가치로 권리금이 1억을 넘었다고 한다. 물론 1920년대엔 틀림없이 빈민이었을 거 같다.
  이렇게 살던 이상화에게 1926년은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된다. 바로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개벽」에 발표하고, 이 시 때문에 개벽은 판매금지라는 불벼락을 맞는다. 이 시가 좀 길다. 소싯적에 시에 곡조를 붙인 노래 깨나 목이 터지라고 불렀던 거라, 길더라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작이기도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로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전문)



  이 시는 읽을 때마다 참 먹먹하다. 유신시대, 5공 시절에도 막걸리 한 잔에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기도 했다. 하여튼 이상화는 이 일이 있을 후에 본격적인 요시찰 인물이 되고, 다음 해인 1927년에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테러가 벌어지자 또다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웬만하면 본격적인 룸펜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건만, 백부 이일우 씨 일가가 워낙 막강해서 그랬는지 학교에서 교직을 맡기도 하고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경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서른여섯 살이 되던 1936년, 맏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남경, 북경, 상해 등지를 유랑하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일제에 의해 고초를 겪는 등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해방 두 해를 남겨둔 1943년, 위암으로 생을 접는다.
  이렇게 또 한 명의 강직한 저항 시인은 역사 뒤로 사라지고, 해방이 온다. 분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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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02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덕분에 까마득한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를 다시 읽게 되었네요. 시인 이상화가 이렇게 강직한 분이셨음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Falstaff 2020-12-03 09:1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솔직히.... 요새 시의 개별화, 파편화 현상에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어 옛 시를 다시 찾기 시작했답니다. ㅋㅋㅋ 다 인생입지요.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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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팀 오브라이언 스스로가 1968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징집되어 1969년부터 70년까지 베트남전에 사병으로 참전한 전력이 있다. 1968년에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베트남으로 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1968년의 들불 같은 반전 운동을 겪은 미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청년들은 약간의 돈과 대량의 대마초가 든 가방을 등에 지고 캐나다로 거주를 옮겨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에 옮겼으며,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은 심각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다 베트남 전쟁에 휩싸이기 위한 군사교육을 받았고, 아주 적은 청년들은 미국 내에서 끝까지 참전을 거부하며 기꺼이 전과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하여 1968년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그 해를 기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은 전장으로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왔을 때 역시 미국 역사상 어느 전쟁과 비교해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반대하고,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지 않는/않았던 두 번의 전쟁이, 우연하게도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뿐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승리하지 못했으며, 베트남에서 건국 역사상 최초로 패전의 멍에를 썼다.

  불명예스러웠던 베트남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이 나와 있다.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프래툰> 같은 영화부터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하얀 전쟁>으로 제목을 바꾼 안정효의 <시장과 전장>,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등의 우리나라 소설들이 떠오를 뿐, 놀랍게도 외국(특히 패전국인 미국) 문학에서 진지하게 베트남 전쟁을 그린 소설 작품은 생각나지 않는다. 장교여야 하지만 작품을 쓰기 위해 일부러 사병으로 지원해 경험한 것을 쓴 태평양 전쟁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작가 노먼 메일러의 <밤의 군대들>은 위에서 얘기한 1968년 반전 운동을 현장 취재한 것이고, 알렉시 제니의 <프랑스식 전쟁술>은 미국과의 전쟁 이전 베트남에서 벌어진 독립투쟁으로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부분적으로 다루었으니 그것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인들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팀 오브라이언의 다분히 자전적, 경험적인 소설 또는 이야기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재미있게 읽었을 수밖에.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경험했던 베트남 전쟁에서의 여러 단편fragment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 먼저 발표하고, 나중에 그것들을 모아 서로 연관 있게 배열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말단 병사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책의 제목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각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짊어지고, 들고, 몸에 부착하고 다닌 것들을 개별 장비, 무기, 보호구, 개인 지참물 등을 뜻하고, 작가는 이것들에 관해 무게, 길이 등을 독자에게 상세하게 보고한다.

  전투를 위한 준비물과 무기 말고, 소대장인 지미 크로스 중위는 뉴저지 주의 마운트 서배스천 칼리지 3학년에 재학중인 ‘마사’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보낸 편지 뭉치와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과가 끝나면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보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때마다 뉴햄프셔 화이트산맥으로 낭만적인 캠핑을 떠나는 상상에 젖고는 한다. 헨리 도빈스는 덩치가 거구인지라 다른 건 빠뜨리더라도 여분의 식량은 꼭 가지고 다니고, 데이비드 젠슨은 야전 위생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칫솔과 치실을 항상 지참하고 여기다가 요양휴가 중에 훔쳐온 호텔용 크기의 비누 바를 배낭 옆구리에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4월 중순에 탄케 마을 수색 중 머리통에 총알이 박힐 예정인 테드 라벤더는 원래 겁이 많은 친구라서 이걸 보완하기 위해 진정제를 아침마다 서너 알씩 먹는 버릇이 있고 여기에 6~7 온스의 질 좋은 마리화나를 어딘가에 숨겨 다닌다. 밀림 속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콘돔은 무전병 미첼 센더스의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일곱 개의 훈장을 받고 제대해 귀국하는 노먼 보커는 쓰지도 않는 일기장을, 랫 카일리는 만화책을, 인디언 출신 침례교도 카이오와는 아버지가 선물한 신약성경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전쟁터는 진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 세상 어느 곳보다 징크스가 심하리라는 건 당연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만의 잡동사니를 마치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기도 하는데, 카이오와는 신약성경과 더불어 발소리를 없애주는 사슴 가죽 모카 신발 한 켤레(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아무 작품 참조), 데이브 젠슨은 카로틴이 풍부한 야맹증 개선 비타민, 리 스트렁크는 최후의 무기라고 주장하는 새총, 랫 카일리는 브랜디와 M&M 초콜릿, 테드 라벤더는 6.3 파운드나 나가는 야간투시경을, 그리고 헨리 도빈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적으로 여자친구의 팬티스타킹을 목에 두르고 다닌다. 도빈스는 얼마후 여자친구로부터 결별 선언 편지를 받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팬티스타킹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능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믿으며 계속 목에 감고 다닌 결과 책이 끝날 때까지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우리는 전쟁이라 부른다. 애초에 세상에 정당한 전쟁은 없다고 믿는 나는 같은 맥락에서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그래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참상, 시신들이 함부로 훼손된 광경, 차라리 몸이 터져 하늘로 솟구치며 나뭇가지에 바로 전까지 함께 농담한 친구의 내장이 걸리고, 나무를 기어 올라가 그걸 수습하는 일. 끊임없이 폭우가 내리는 절정의 우기에 마을의 공동변소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던 곳을 하필이면 야영지로 골랐다가, 하필이면 박격포의 집중 포격을 받고, 하필이면 가장 진중하던 카이오와가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하필이면 똥의 늪 속으로 빠지는 걸 뻔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출해낼 수 없는, 참경들.

  팀 오브라이언은 참경과, 그걸 목도했던 병사들이 훗날 무력감과 후유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이런 것들 ‘만’ 쓰고 있지 않다. 그는 과거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들과 이에 관한 트라우마와 치유라기보다는 그것, 기억들, 후유증과 함께 살아내기를 말하고 있는데, 이의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의 “이야기”,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 그것을 통해 전쟁, 궁극적으로 죽음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이 오브라이언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고, 단순히 이 책만 읽으면 결론을 낼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경험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단편의 모음을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다 빼고, 전쟁터에서 수컷들의 일상적인 욕설도 빼고, 빼어난 문장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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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딜런 토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아도니스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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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찌 고르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글쓴이가 딜런 토머스이잖은가 말이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미국의 유명 가수 밥 짐머만이 딜런 토머스를 숭배한 나머지 이름을 밥 딜런으로 고쳤다니. 이름까지 고친 그는 몇 십 년 후에 가사lyrics가 예술이라고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어 버렸단다, 으악.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딜런 토마스의 시는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번역시는 읽지 않는다, 라고 작정을 하기도 했고 영시를 즐길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딜런 토마스라는 웨일스 출신의 시인. 이이가 쓴 소설집이, 외국 작가가 쓴 단편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별 부담 없이 읽는 연작 형태의 성장소설이라니. 그리고 단편집의 저 도발적인 제목을 보시라. ‘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생각나게 하는 제목인데 거기다가 젊은이의 삐딱한 시선까지 곁들여 그냥 예술가가 아니라 ‘개예술가artist as a young dog'라고 했다. 제목으로 진짜 개쩐다.
  그러나 모두 열 편이 실린 이 단편집이 쩌는 작품들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작가 자신이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스완지의 농촌과 작은 도시와 해변에서 자라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파노라마라기보다는 시간별로 열 점의 수채화를 전시해놓은 것 같다. 자신의 리얼한 체험이라고 믿는 독자는 없겠지? 소년이었을 때, 사춘기 시절,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각 단계에서 작가가 상상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묘사했는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정당한 변주 기법이 들어갔을 터. 변주를 하지 않았다면 ‘개예술가의 회고록’ 쯤으로 제목을 달았겠지.
  그래. 수채화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극단적 은유의 나열로 골이 지끈지끈한 바로 다음에 담백한 수채화 구경을 하니 좀 개운해지는 것 같기는 한데, 다분히 도회적 취향인 나하고는 찰떡궁합까지 가지는 못해, 뒤로 갈수록 점점 곤란한 지경 근처까지 가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선 책의 편집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각주와 더불어 후주를 단 것까지는 좋다. 근데 후주가 무려 서른아홉 페이지에 달한다. 주석註釋 특유의 작은 활자로. 이미 서른세 페이지에 달하는 연표를 달고도 시시콜콜 작가가 왜 이런 ‘주석이 달릴 만한 단어나 문장’을 사용했는지 극히 세밀한 설명을 일반 독자에게 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봤자 내 인생에 더 이상 수능시험을 치를 일은 없을 텐데. 주석이 있는 페이지로 건너가서 주석을 해독하는 일이 정작 본문을 읽는 것보다 더 까다로우면 어떻게 하냐고.
  이런 수준의 단편을 모아놓았으면, 그것이 불과 240쪽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적당한 분량의 해설, 연표, 주석을 붙여 좀 얇은 책으로 해도 충분히 좋을 것을. 암만 생각해도 편집자의 의욕이 과했다. 솔직히 말해, “친절한 의도는 고맙다.” 근데 과했다.
  수채화 같은 단편들. 그건 보장. 수채화 좋아하시는 독자들에겐 후회 없는 선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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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1-1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특별히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죠?
소설을 수채화처럼 쓰는거 저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팔스타프님 이 리뷰 읽으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진단 말이죠.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Falstaff 2020-11-11 14:02   좋아요 0 | URL
옙. 제임스 조이스 작품들하고 유사점은 특별하게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읽고 있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완전 조이스인 걸요. 지금 연속해서 깜짝 놀라는 중입니다.
아이구, 전 완전 아마추업니다. 읽으신 다음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

em 2021-09-0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기하게 위 댓글처럼 저도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딜런 토마스 작품은 시 몇 편과 편지 몇 통, 희곡 등 영어로만 접한 바 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번역본 중 재미있는 작품이 있을지 찾아보다가 리뷰 잘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Falstaff 2021-09-07 19:25   좋아요 0 | URL
더블린 사람들을 생각하시게 제가 독후감을 쓴 모양입니다. 하하하.... 하긴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영국 땅이 웨일스이군요!
영어권 독자들은 이 딜런 토마스한테 껌뻑 넘어가는 모양이더라고요. 저야 뭐 극동의 변방 독자로 그것까지는 알지 못해도, 그래도 뭔가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셔요!
 
올랜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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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는 이 책 <올랜도>를 쓰는 일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한테 감사를 표하는 ‘서문’을 제일 앞에 달았다. 사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긴 한데, 본문 뒤편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명단을 읽어나가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조카, 언니의 아들, 줄리언 벨. 그의 가혹하지만 예리한 비판이 책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인 버네사 벨의 남편, 그러니까 형부인 클라이브 벨과 눈빛이 마주치기만 하면 스스럼없이 동침을 감행했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버네사는 남편의 애인이기도 한 양성애자, 덩컨 그랜트를 평생의 남자친구로 삼았다. 한 발 더 나가서, 버지니아 울프가 고마움을 표한 조카 줄리언은 1937년에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전사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생부가 엄마 버네사의 남편인 클라이브가 아니라 클라이브의 막역한 친구 로저 프라이 씨라고 굳게 믿었다. 줄리언의 여동생 퀜틴 역시 덩컨 그랜트 씨의 생물학적 딸이라고 했으니, 그것도 20세기 초반에, 이거 참, 대략 난감한 내력이다. 이런 내용은 지독하게 잘 생긴 청년 줄리언 벨의 열한 번째 애인 “K”양의 무척 야한 소설 <영국 연인>을 통해 알게 된 것에 불과하다. K가 알파벳의 열한 번째 철자다. 애초부터 이런 조금 덜 바람직한 가정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줄리언은 사랑과 연애에는 미친 듯이 몰두하되, 결코 결혼을 입에 담지 않았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봐 왔거든. 혼인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정은 이 책에서도 은근히 강조되는데, 그건 내가 설명하기보다 직접 읽어보시기 권하는 바이고, 사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버지니아 울프가 혼인제도에 대한 약한 네거티브 적 사고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에선 당연하기도 한 것 같고 그렇다.

  작품은 16세기가 끝나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하는 시기, 1580년대 말쯤에 열여섯 살인, 태생부터 귀족인 가문의 외아들 올랜도가 서까래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무어인들의 참수한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말기로 유명한 미남이자 무능한 장군이었던 로버트 데버루가 연속적으로 패전하기 바로 직전, 그의 위세가 하늘을 찔러 포도주를 퍼마시고는 자신의 애인이면서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여왕의 치마 속 사정(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한 시청각 경험)을 함부로 떠들고 다녀 스스로 명을 재촉하던 시기. 데버루는 결국 괘씸죄에 걸려 죽지 않기 위해 반란을 꾀했다가 도마 위에 늘인 목에 망나니의 도끼를 얹었지만 그렇다고 여왕의 마음이 좋지는 않았을 터. 그건 1601년 일이고, 이 시기는 데버루의 진심에 여왕이 의심을 품고 있던 때쯤으로 보인다. 이미 환갑 진갑을 넘긴 여왕의 늙은 마음이 공허할 때, 여왕은 올랜도 아버지의 성을 방문했고, 올랜도는 나무 아래서 스코틀랜드와 웨일 지역을 완상하다가 달음박질을 해 와 겨우 시간에 넘기지 않고 장미 향수가 가득 든 사발을 여왕에게 바칠 수 있었다. 근데 여왕이 보기에 열여섯 먹은 청년 올랜도가 근사했거나 귀여웠던 터. 평생 쉴 틈 없이 귀에서는 늘 대포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선 항상 독약 방울과 예리한 단도가 어른거리는 삶을 법적인 처녀 상태로 평생을 살아온 여왕이 젊은이를 간혹 옆에 둔다고 해서 어찌 큰 까탈이겠는가. 여왕은 올랜도를 런던의 왕궁에 불러 왕실 재무담당관이자 중신으로 임명하고 관직의 표지인 사슬과 발목에 가터 훈장까지 차려준다. 그리고 1588년, 영국 해군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일을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 불꽃놀이를 펼치던 날 밤, 당시 관습대로 삼십 일 동안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않아 옷 무더기 상태인 여왕이 올랜도를 불러 얼굴을 자신의 가슴 속에 푹 파묻어 버렸다. 여왕이 올랜도에게 바라는 건 침대 위의 봉사가 아니라 노년의 아들로서 자신의 허약한 몸의 수족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 쇠락한 자신의 몸을 기댈 참나무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으나, 마음이 그랬다는 것뿐이고 진짜로 올랜도가 여왕의 방문 밖에서 어느 계집아이하고 키스하는 걸 발견하고는 왕의 칼로 거울을 내리쳐 단칼에 박살을 내버렸고, 남은 생이 끝날 때까지 남자의 배신에 대해 신음하며 온갖 한탄을 늘어놓았다고, 울프가 창작한 전기작가는 말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올랜도는 세 명의 영애들과 혼담이 오간다. 클로린다는 흰 속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에 피를 쳐다보지 못하고, 식탁 위에 오른 산토끼 구이를 보자마자 졸도를 하는 데다가 혼인을 하면 남편을 개심시켜 악행을 고치겠는 말에 기겁을 해 파혼을 해버렸고, 얼마 후 천연두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했다. 두 번째는 파빌라. 가난한 신사의 딸인데, 어느 날 자신의 스타킹을 찢어놓은 스패니얼을 올랜도의 창문 아래서 채찍으로 반쯤 죽여놓는 걸 보고 그날로 파혼을 해버렸다. 이어 마지막 세 번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신생 식민지 아일랜드의 데즈먼드 가문의 딸인 유프로시니 양으로 잉글랜드 왕궁의 입장에서도 식민지 민심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혼인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으며 올랜도 역시 크게 이견이 없어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있나? 때는 1608년, 영국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템스강조차 꽝꽝 얼어붙는 날씨가 연이어 계속될 때, 서민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밖에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할 시절, 귀족들은 얼어붙은 템스강 위에 천막을 마치 도시처럼 치고 날마다 무도회를 벌였던 터다. 이때 올랜도 앞에 헐렁헐렁한 러시아 식 바지를 입고 기막히게 스케이팅을 하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으니 마르샤 스타니로브스카 다그마르 나타샤 일리아나 로마노비치 공주. 이 사샤 공주는 책이 끝날 때까지 자주 등장해 올랜도의 추억 속에서 기념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으로 반드시 결혼해주어야 하는 데즈먼드 가문의 딸 유프로시니 양과의 파혼을 조건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샤 공주와 올랜도는 야반도주하기로 뜻을 합쳤고, 자정에 만나기로 했으나 그날 밤새도록 뜻밖에 내리는 비만 철철 맞으면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사샤 공주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밤새 내린 비로 해동된 템스강에 여태 정박한 러시아 함선이 유유하게 조국을 향한 항해에 나서고.

  책에서 올랜도는 7일에 달하는 잠을 두 번 잔다. 한 번은 자신이 써왔던 57편의 작품을, 짧은 시 <참나무> 한 편을 빼고, 모두 불태운 날. 당대의 시인 니컬러스 그린이란 자에게 3백 파운드의 연금을 분기별로 나누어 지급하겠다는 호의를 약속했으나 그린은 풍자시를 통해 올랜도의 작품을 더할 나위 없이 장황하며 과장된 허풍으로 일관한다고 혹평한바, 문제는 누가 그 풍자시를 읽어도 혹평을 받은 헤라클레스의 죽음에 관한 시를 올랜도가 썼다는 걸 저절로 알게 묘사를 했다는 점이다. 그래 이 풍자시의 팸플릿을 장원의 가장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두엄더미 속에 빠뜨려버리라고 명령을 하고, 이젠 인간들과의 관계가 끝났음을 선언한 날이다. 7일 후 잠에서 깬 올랜도는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 특사로 보내달라고 요구하여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바스 훈장을 받고 공작 작위를 얻게 된다. 공작의 대관을 받은 날 밤에 두 번째 잠에 빠져 또다시 7일 만에 깨어 눈을 뜬 다음 옷을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서니, 에그머니, 올랜도는 여자로 변신해버렸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 <올란도>를 보면 올랜도로 분장한 틸다 스윈톤이 나신으로 거울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까지 나는 스토리 중심으로 독후감을 썼다. 책 분량의 반도 오지 않았다. 틸다 스윈톤 주연의 영화 <올란도>도 말했는데, 이 소설은 결코 스토리를 따라가는 작품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를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그것을 엮어가며 읽는 사람 있으면 두 명만 손들어 보시라. <올랜도>의 주인공 올랜도는 대략 1570년생으로 그가 서른 살까지 남자로 살다가 갑자기 여성으로 변신해 서른여섯 살의 완숙한 여인, 아들 하나를 낳아 잉글랜드 특유의 한사상속의 한계를 피해 예전에 비하면 빈털터리가 됐으나 그래도 유유자적하게 남은 평생을 관조하면서, 시 <참나무>로 문학상을 타 상금 2백 기니를 받고 7쇄 이상을 찍는 유명 작가가 되는 1928년까지 근 360년의 대하 로망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 책은 문학과 양성, 여성과 남성에 대한 거대 에세이라고 읽는 것이 타당하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재능있는 여동생 매리가 아니라 유명 ‘남자’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닉 그린 씨도 자신이 오직 시작making poetry에만 몰두하기 위하여는 당시 화폐 기준으로 연 3백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게 나중엔 ‘여자’를 더 강조하여 <자기만의 방>으로 변화 또는 진화하는 것. 물론 문학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인간사 거의 모든 면에 여성과 남성을 측면에서 본 것들을 조망하기 위하여 울프는 올랜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시키지 않았나 싶다. 참 다양한 측면에서 당대의 지식인이자 부르주아가 양성을 관찰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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