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87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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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년은 당연히 1793년. 89년 바스티유 감옥이 깨지고 4년이 흘러 파리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그리고 막강한 마라가 권력을 틀어쥐고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짜리몽땅 장 폴 마라는 한두 주 있다가 탕 속에 더운 물을 받아 느긋하게 전신목욕을 즐기다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가 찌른 단검이 심장에 박혀 죽을 처지였고(샤를로트 코르데는 소설에선 마라의 부하가 내리친 의자에 해골이 쪼개져 현장에서 즉사한다), 산악파 행동대장답게 쾌걸의 거한 조르주 자크 당통(책에선 '당똥')은 몇 달 지난 후 자신이 발의한 법령에 의거해 (그로부터 1년 후 로베스피에르가 똑같이 당했듯이)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예정이었다.

 한편 왕당파의 핵심멤버로 일찍이 런던으로 망명하여 왕권중심제의 부활을 위해 프랑스 브루타뉴 지역으로 잠입한 랑뜨낙 후작은 정작 자신은 종교에 별 관심도 없었으나 천주교와 왕정에 기반을 둔 이 지역의 농민군들을 규합해 세를 불린 다음 영국 정규군을 수입해와 혁명군들을 괴멸시키는 야멸찬 야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그의 나이 이미 80이 넘은 노인이라는 점과 하필이면 해당 지역의 정부군 또는 청군 또는 혁명군의 사령관 고뱅이 자신의 종손(형 또는 남동생의 손자)으로 자식 없는 이 노인네 후작의 상속권자라는 점. 고뱅 장군을 어려서부터 훈육하고 자유사상에 물들게 한 고상하고 박애와 평등정신 넘쳤던 사제 씨무르댕(어감이 꼭 욕하는 거 같긴하다)이 등장해 이 양반이 혁명공회가 엄정한 반란군 토벌을 위해 임명한 전권대사로 종조부와 종손간의 싸움에 꼽사리를 끼는데 씨무르댕은 이미 예전 자상하고 사랑과 평화와 박애정신과 평등의식이 넘치는 사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 혁명의 엄정한 완수를 위해 추상같은 법의 집행 하나에만 목숨을 거는 정치인으로 바뀌어 나타난 거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은 한 편은 한 명의 노인, 다른 한 편은 둘이서 힘을 합해 브루타뉴 방데의 한 고성, 랑뜨낙 후작이 일찌기 어린 종손 고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얼러가며 키운 '라 뚜르그'에서 서로의 목숨을 걸고 운명의 한 판 싸움을 벌인다. 누가 이겼냐고? 혁명군(정부군) 병력 4천명, 후작의 농민 반란군 19명의 싸움. 4천의 정부군이 19명에 불과한, 그것도 농민군한테 깨지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게 말이 돼? 당연히 정부군이 이긴다. 근데 그게 끝이야? 에이, 아직 남았지. 그것도 중요한 게. 절대 안 알려줄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이렇게 방데 전투의 한 장면이 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

 내가 읽기엔 하나가 더 있다. 그리고 비교적 일찍 2권의 중간쯤에 쫑이 나는 거다. 책에서 랑뜨낙 후작 역시 엄정하기 짝이 없는 냉혈한으로 나오는 바, 일찌기 아이 셋을 유괴하고 아이들의 엄마를 비롯한 동네의 모든 성인을 총살한 적이 있다. 근데 하늘이 그렇게 무심하지 않았는지 아이 엄마를 관통한 총알이 다행스럽게도 허파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을 구하고, 당연히 아이들을 찾아 후작이 있는 곳, 그러니까 뜨거운 전쟁터 라 뚜르그를 향해 맨발로 걸어간다. 아이들은 성 안의 도서관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있지만 도서관에 뭐가 있냐하면 맨 종이와 양피지, 불에 잘 타인 인화물질. 여기다가 후작의 충견 이마누스는 성을 지키기 위해 화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놓은 상태.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른 채 두 사내 아이와 한 계집애는 정말 천진스러운 놀이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아이들은 줄곧 그러듯이 탁자에 기어올라 책을 한 권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그 책이 바르톨로메오의 순교에 관한 신학서적. 바르톨로메오가 누구냐 하면, 아르메니아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하다가 거기 종교 제사장들한테 찍혀 산채로 껍데기를 홀랑 벗긴 다음 십자가에 쿵쿵 못박고 그것도 모자라 대가리를 댕가당 잘라 죽임을 당한 성자다. 그 책을 어린 아이들이 발기발기 찢어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광경은 뭘 은유하고 있을까? 거의 무신론자 비슷한 위고가 다가오는 세대와 종교와의 결별을 그렇게 써놓은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 혁명과 혁명/반혁명 전투를 바르톨로메오의 순교와 비교해 놓은 것일까. 그건 이 책을 읽고 당신이 판단하시라.

 위고의 마지막 작품. 반은 역사적 진실이고 반쯤은 허구겠지. 격동의 한 시기, 서로의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영혼, 하지만 바보같기 그지없는 순진한 낭만주의의 끝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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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피타 히메네스 대산세계문학총서 60
후안 발레라 지음, 박종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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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 '나'는 몇년 전 세상 하직한 대성당 주임신부가 쓴 종이뭉치를 발견한다. 뭉치의 첫장엔 제가題字임이 분명하게 라틴어로 "Nescit labi virtus" 우리 말로 "덕은 추락하지 않는다"라고 써 있는 건데 당시 스페인에서도 라틴어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앗뜨거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손에 들어온 거다. 근데 막상 종이 뭉치를 열어보니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카가 삼촌인 주임신부에게 쓴 편지, 주임신부가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상황을 이야기한 것, 마지막으로 19세기 초반 소설의 에필로그 격인 이야기의 뒷담화.

 화자 말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 나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목차를 빼고 본문에서 첫 문장으로 나오는 엄숙한 라틴어, "덕德은 추락墜落하지 않는다"를 보고 속으로 이거 또 기독교적으로 골아픈 얘기들 아닌가 싶어 좀 캥겼음을 굳이 숨기지 않겠는데 근데 조금 이상한 건, 기독교적으로 골아픈 얘기를 담은 책 껍데기의 제목을 그림에서 보듯이 저렇게 발랄하게, 십자고상의 피흘리는 기독과 비교하면 발칙하기까지한 글씨체로 했다면 정말 오랜만에 우리나라 메이저 레이블인 문학과지성사가 미친 척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잇, 초장부터 결론을 내버리자.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드는 대산세계문학총서 가운데 제목을 저 글씨체로 뽑은 것들, 읽지마시라. 두 권 읽었으나 다 꽝이었으니 다른 것들도 비슷할 거 아닌가. 물론 이 발언에 나는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알량한 소신이 이러다 혹시 악플러로 고발당하는 거 아냐?

 이쯤에서 내 생활주변 실제 촌극 하나.

 난 유물론자.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래서 종교는 명백하게 아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다. 근데 내 친한 술친구 하나가 천주교 환자다. 천주교 환자들은 (내 생각으론 그냥 미사에 참석해서 참회하고 용서받고 착하게 살면 되는 거 같지만) 미사 참여 말고도 신자들끼리 레지오regio 그니까 군대 용어로 연대 혹은 대대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모여 실생활에서 서로 무지하게 가깝게 지내는데 단위조직이 한 열 가구 정도 되는 걸로 봐서 북조선의 5호감시제가 이 레지오를 본받은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 레지오 구성원들이야말로 영혼의 형제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형제 가운데서도 좌장이며 돈도 많아 술도 자주 사주고 인심도 좋고 성격도 너그러워 존경받는 김모씨한테 결혼 적령기의 예쁘장한 딸이 하나 있었다. 딸도 당연히 모태신앙으로 낳자마자 세례를 받아 끊임없이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은혜를 입은 바 적다고 할 수 없었으나 천주께선 김모양에게 순결의 미덕과 함께 젊음의 욕망을 함께 주셨으니 (원래 기독교 전 시대부터도 신들이란 것들은 꼭 그렇게 애매한 선물만 주는 걸 김모양은 몰랐던 거디다) 어느날 문득 김씨가 딸의 뒤태를 보니 몇 달 사이에 엉덩이가 펑퍼짐하고 옆구리가 두툼해져 여지없이 주리를 틀어버렸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이름이 뭐야? 아, 이름이 뭐냐는 수 세기에 걸친 질투의 물음. Il nome! 글쎄 누구야? 김모씨는 실제로 김모양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뭉텅 잘라버렸으나 결코 배부른 딸의 입에선 카시오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몇 주일 후 작년까지 자기 본당의 담임신부였다가 옆동네 성당의 담임신부로 옮긴 사제가 느닷없이 파계를 하고 김모씨에게 찾아와 자기가 김모씨의 사위임을 고백했고 김씨 가족은 그로부터 한달 후에 시골구석으로 이사를 했으며 또다시 한달 후에 김양의 결혼식이 저 먼 시골동네 성당에서 있었는데 평생 갈 거 같았던 영혼의 형제들 가운데 아무도 그들의 결혼을 축복하지 않았고, 김씨와 굳이 연락하려 하지 않았으며, 과거 본당의 담임신부를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참 대한민국의 종교인들은 어느 종교를 불문하고 대단하다, 대단해.

 하지만 가톨릭의 본산이자 아직도 그 자리를 하다못해 로마에게도 양보하고 싶어하지 않는 스페인은 좀 다르다. 내 말 못 믿겠으면 이 책 읽어보시라. 특히 대한민국식 가톨릭에 몰두하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다. 다른 분들껜 그냥 19세기 독자의 입장에서만 기막히다고 할 수 있을 뿐, 지금 독자들에겐 굳이 이걸 고전이라고 읽어야되나, 싶은 책을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책 내용은 내 생활 주변의 한 코메디를 소개한 걸로 너무나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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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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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었다. 난 보통의 독자다. 그럼 이걸로 빅토르 위고는 졸업, 혹은 땡! 맞지? 나도 위고 졸업장을 받은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존애하는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는데 이 이모가 위고 작품 가운데 딱 <레 미제라블>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만 빼놓고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면서 아주 곳곳에 유럽의 낭만주의에 대해 토론하면서 <웃는 남자>의 등장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또 가끔은 <93년>을 짤막하게 짚고 넘어가니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올 1월 다이허우잉의 책을 읽는 도중에 급하게 인터넷 접속해서 카드 긋고 산 책이 <웃는 남자>와 <93년>.

 상,하권 합해서 본문만 950쪽에 달하는 <웃는 남자>를 정말로 읽어보니, 물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완전 개인적 감상에서 얘기하자면,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능가하는 재미와 감동의 진짜 낭만주의 작품.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리하여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세기로 규정하는 것이다.

 먼저 그림 좀 보시고.

 

 


 앞의 것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 속 궁정광대 리골레토, 뒤의 것은 유랑 익살광대극단 단장 카니오. 내가 생각하는 등장인물의 캘릭터하고는 좀 맞지 않는 사진이지만 하여간 목적상 가져왔다.


 리골레토는 연극 또는 익살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둘째 사진은 내가 확실히 아는데, 젊은 마누라는 동네 총각하고 눈이 맞고 배가 맞았고, 하필이면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봐서 이 작것들을 죽여 말아 마음 속엔 눈물과 질투와 분노와 악마의 꿈틀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바야흐로 익살광대극을 시작해야 하는 희극 광대다. 그가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하게 분장을 하면서 노래하는 "의상을 입어라", 희대의 테너 아리아, 아마 한 번은 다들 들어보셨을 걸?

https://youtu.be/rRhmogBs-gU

 


 근데, 저 익살광대의 얼굴이 분장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외과수술을 해서 일부러 얼굴을 만든 거라면? 어린 아이를 유괴하지 않고 법적으로 돈을 주고 사서 목적상 외과수술을 하는데, 중국에서 천년 전부터 시행하던 마취술을 써 아이를 잠들게 해놓고 눈꺼풀을 아래 위로 찢고, 코뼈를 제거한 다음 나머지 살덩이도 콧구멍만 빼고 뭉개버리고 입술을 귀 아래까지 절개해 잇몸이 드러나면서 피수술자의 기분과 관계없이 언제나 함빡 웃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실제로 야만족들이 득시글거렸던 유럽에선 17세기까지 이런 행위를 해서 수술한 아이를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콤프라치코스'란 조직이 여럿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17세기 말에 들어서야 영국의 제임스 몇세던가 하는 작자의 치하에 이르러서야 이를 불법으로 여겨 처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에선 위 문단에서 내가 예로 들었던 외과수술을 받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사는 모습을 그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위 위고의 <환락의 왕> 리골레토는 거기다가 곱사등 시술까지 받은 후천적 기형이 아니었던가 의심이 가는 것이, 자신의 어여쁜 딸 질다에게 유독 자신의 가족관계와 자기 이름까지 알려주지 못하는 정경 때문이었다. 어려서 팔려와 기형수술을 받은 후 만토바 성의 익살광대로 되팔린 신세. 가족은커녕 자신의 진짜 이름도 모르는 광대가 리골레토 아니었을까.

 하여간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얼굴에 중점적으로 기형수술을 받아 기괴한 웃는 모습을 지니게 된 그윈플레인은 열살 때 콤프라치코스 일당이 잉글랜드에서 바다 건너로 도망치던 한겨울에 콤프라치코스 무리에 의하여 얼어 죽거나 굶어 죽으라고 외딴 잉글랜드 땅에 버려져 황량한 포틀랜드 일대를 방황하면서 인생을 시작하는데, 당시 지구를 뒤덮던 소빙하기를 맞아 눈내리는 밤 꼬마 그윈플레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이 터무니없이 엄정한 법에 의하여 교수형을 당한 다음 온 몸에 타르를 뒤집어 쓰고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썩지도 않으면서 오랜시간 인민들로 하여금 경계하라는 교훈을 내리고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시신이었고, 두번째가 젖먹이를 품에 안고 길을 가다가 기아와 추위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여인이었으며, 깊은 밤에 도착한 조촐한 시내의 두드려도 두드려도 결코 열리지 않던 시민들의 안식처로서의 집 혹은 도시였다.

 이것으로 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다.

 위고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곳곳에 예상치 못한 장치를 숨겨놓아 앞의 것이 뒤의 장면과 연결되는 은밀하고 교묘한 거미줄이 함빡 쳐져있어 서툰 독자가 자신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스토리를 조금 이야기하다보면 여차했다간 세밀한 복선이나 열쇠의 끄트머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자신이 있다고 어깨에 힘 줄 이유가 없는 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만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왠만하면 한번 읽어보셔. 소위 말하는 작중 클라이막스에 가서 당신의 가슴도 내것처럼 안타깝고 찌르르하고 가슴 아프고 가엽고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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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7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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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보헤미아의 숲 / 숲속의 오솔길>을 먼저 읽었고 그 책이 참으로 아름다워 기꺼이 <늦여름>도 고르게 되었다. 그러나 앞의 책에서 슈티프터가 자연과 숲과 산맥과 그 속의 생명을 묘사하는 방식이 느꺼울 정도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나로 하여금 책갈피 속으로 확 빠져들게 하는 대단한 흡인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어서, 각 100쪽 언저리의 두 단편소설(<보헤미아의 숲 / 숲속의 오솔길>)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라 받아들인 효용이 과연 촘촘하게 쓰여진 880 쪽의 길고 긴 장편소설에서도 가능할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 책을 살 때부터 조금 걱정이었고, 책을 읽기로 한 시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내 책읽는 방식을 서재친구분들은 아신다!) 읽기도 전에 왠지 부담이 되어 왔다는 걸 숨기지 못하겠다.

 게다가 막상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어찌도 내가 싫어하는, 싫어하다못해 아주 짜증을 내는 요소들을 그리도 골고루 갖추었는지. 내가 어떤 걸 싫어하는지 먼저 나열을 해보자.

 1. 스스로 한 건 하나도 없으면서 그냥 조상 잘 만나 큰 돈 상속받아 애초부터 부자로 살고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기로 예약되어 있는 거. 나와 내 친구는 이런 족속을 '물총 잘 맞았다'고 표현한다. 어떤 물총? 에이, 내 입으로 설명하긴 좀 그렇고, 집에 가서 아빠한테 물어보셔.

 2. 등장인물의 관심사는 전적으로 동류들에만 있으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난한 인민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동전이나 은화 한 잎 던져주곤 그걸로 입 싹 닦는 거.

 3. 몸과 마음이 고결하기 짝이 없어 매사에 조심 또 조심, 행실에 눈꼽만 한 과오도 일으키지 않으며 설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행위에 대한 끔찍하고 오버스런 자기 반성으로 인간성 과시하는 거.

 4. 배냇적부터 습관화 한 소위 신사 숙녀 의식에 절어 처음부터 끝까지 손끝부터 발끝까지 우아함과 고귀함과 순결함에 절어 소박한 식사를 하되 식사가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결코 배설은 하지 않을 거 같은 인물들.

 5. 완벽한 지성과 지식으로 무장한 무결점 무오류 인간, 특히 남자. 분명히 예수와 초등학교 동창일 듯.

 말 했다시피 이 책에선 내가 싫어하는 거, 빠짐없이 다 들어있다.

 거기다가 호흡이 유장하기 짝이 없어서 한 문단이 서너 페이지에 달하기도 하고, 도무지 마침표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까 봤던 내용 같은데 또 나오고. 허벅지 쥐어 뜯어도 도무지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고 밤만 깊어가는 진퇴양난. 어떤 기분인지 아시지? 이걸 다 합쳐서 무엇을 만드는가 하면 친애하는 한 서재동무님께서 얘기하시듯,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전형. 전형 가운데서도 완전한 전형을 만든다. 이 정도만 쓰면 이해하실 거다.

 근데 여기서 끝나면 내가 얘기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위에 써놓은 온갖 마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기다가 '재미없는' 독일소설에서도 드물게 철학, 문학, 역사 더하기 미학에 관한 한 끝판왕이 무려 두 명이나 등장하는 잘난 척까지, 그리하여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 예술에 관한 동의할 만하지만 색다를 것도 없고 분명히 과장되어 있는 무리수 마저 다 보태는 야만에도 불구하고, 난,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이 책 <늦여름>을 대단히 인상깊게, 그리고 좋게, 아울러 아름답게 읽었다는 사실.

 이거 대단히 드문 경험이다. 다 아시다시피 난 위대한 <파우스트>조차 개떡으로 아는 종자다. <파우스트> 말고도 누가 위대하지만 개떡인 책 딱 하나 골라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신곡>을 집어주는 인간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말하건데, 정말 근사하게 읽었고 근래에 보기드문 '생각하면서 읽을 책'으로 <늦여름>을 꼽겠다. 하지만 당신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 우연히 오프 라인에서 서로 볼 일 생기면 귀싸대기 한대 얻어맞기 십상일 테니까.

 내가 이 책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건 여러가지가 있지만 첫째가 오직 내가 읽어본 경험만으로 말하건데, 스티프터만큼 자연을 멋있고 맛있고 아름답고 경건하고 친숙하고 생동감있고 건강하고 태내적 익숙함으로 묘사하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나무와 숲과 숲 속의 식물과 곤충과 새들과 짐승과 돌맹이와 흙과 암반과 암괴와 화석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숲을 보는 것하고 오직 태생적 미학의 관념으로만 보는 숲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스티프터는 태생적 미학의 관념을 갖고 있는 위에다가 자연과학적 지식까지 습득한, 거기다가 글도 잘 쓰는 작가다. 그러니 애초부터 게임 끝. 미학적 관점은 회화와 조각과 조소와 건축과 구조물과 공예품과 화훼까지 끝간 데가 없이 광활한 조망을 이루고, 때에 따라선 독자를 가르쳐보려 들이대는 기미도 있기는 한데 그까짓 것만 좀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나처럼 이 책에 반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상찬했을지언정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라는 거.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동감이나 감동까진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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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ㅋㅋㅋ 제가 이 책 사놓고 그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전형에 1권 반쯤 읽었을 때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다시 이겨내야겠습니다. ㅋㅋㅋ 근데 지금 그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또 다른 하나인 <마의 산>을 예전에 읽다 말아서 다시 읽고 있는데 너무나 그 산은 넘기 힘들군요... <마의 산> 다 읽고 연달아 <늦여름> 읽으면 미쳐버리겠죠? ㅋㅋㅋㅋ

Falstaff 2017-03-07 14: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확실한 건 <마의 산>에 이어 <늦여름>까지 읽으시면 다른 건 몰라도 몸에 사리 생깁니다. 열반하실 수도 있고요. ㅋㅋㅋㅋ
근데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에 관해선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란 점을 확실히 밝혀야해요. ㅠㅠ 음악 듣는 거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생기는데 그걸 ˝나만의 명반˝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의 산>. 어제도 어디서 이 작품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삼중당 문고판으로 <마의 산>을 읽은 게 고딩 2학년 땐데, 지금 생각해도 첨부터 끝까지 스위스 산자락 요양원에서 미열에 시달리는 젊은이 얘길 어떻게 다 읽어치웠는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그 후엔 살면서 다시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더라고요.

귀도발도 2022-12-0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다뉴브에서 언급했길래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선생님의 이 재치있고 유쾌씁쓸한 리뷰를 만나게 됐네요. ㅋㅋㅋ 결론은... 선생님 리뷰 덕에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겁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ㅋㅋㅋ

Falstaff 2022-12-09 05:30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혹시 낚이신 건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어쨌든 즐기는 게 제일이니 아무쪼록 공감하며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대산세계문학총서 50
나다니엘 호손 지음, 김지원.한혜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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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나온 <큰 바위 얼굴>의 작가 이름은 '나다니엘 호돈'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세월이 지나니 이젠 이 사람 이름은 쓰는 사람 마음대로다. 나사니엘 호손(문학과지성사, 소담출판사), 너새니얼 호손(민음사, 문예출판사), 너대니얼 호손(푸른숲), 기타등등. 이거 뭐 대한민국 출판을 책임지는 것들이 외국어 표기에 관해선 다들 지 잘났다고 맘대로야.

 호손의 책을 한 권 정도 더 읽으려고 해서 <일곱박공의 집>을 고를까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를 고를까 잠깐 망설이다가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책. 왜냐면 오랜만에 시내 나가 5천원짜리 커피 마시며 사람 기다리다가, 물론 술 약속 시간 맞추려고 그랬는데, 커피집이 입구 전광판에 오늘 들어온 책 474권, 이렇게 써있는 중고책 가게도 겸해서 무슨 책들이 나왔나 둘러보다가 싼 김에 산 거다. 싸서 샀다고? 하이고, 커피값 5천원은 생각 안 해? 직장생활 하면서 하도 인스턴트 커피에 입이 길들어 난 몇 천원짜리 원두커피는 맛이 없어 잘 안 먹는데, 맛없는 원두커피 값 생각하면 절대로 싼 김에 산 거 아니다. 하여간 그랬다.

 이걸로 호돈인지 호손인지 하는 19세기 초반 태생의 미국작가는 내게 작별을 고한다. 아, 호손이 그리고 <블라이드데일 로맨스>가 후져서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내게 큰 어필을 하는데 실패했다는, 아주 전적으로 개인적인 기호에서 그렇다는 말씀. 이 양반이 1804년생. 마흔 여덟살에 출간한 이 책은 호손으로선 이색적으로 1인칭 시점에서 썼다고들 하는데 뭐 그리 관심이 있는 바는 아니고, 왜 개인적으로 내가 호손에게 실망했는가 하면, 실제로 호손이 유럽에 비해 완전 꼴보수 상태였던 아메리카에서 농촌 공동체 내의 사회주의를 실험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경험한 것을 소설적으로 만든 것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라고 하지만, 그 사회주의 농촌 공동체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해 7개월만에 쫑을 낸 것처럼 다분히 공동체를 좀 비틀어보려는 악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1인칭 소설이 제일 재수 없는 건 주인공 '나', 이 책에선 '커버데일'이란 작잔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무결점의 정의로운 자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거. 하지만 곳곳에 그놈의 '나'가 견지하는 시선의 삐딱함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건 거의 전적으로 작가의 사상 자체가 그래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뭐, 이 책에선 화자 '나'가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분히 관찰자로 등장하고, 주인공 삼인방이라고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화자, 즉 작가의 시선으로 보면) 다분히 위선적이고 허황한 성격의 박애주의자 홀링스워스와 그를 둘러싼 두 여자, 제노비아와 프리실라로 이 세 사람 사이에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설킨 로맨스를 그렸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 즉 결론에 이르는 화자 '나'의 선언이 어째 좀, 당최, 여간해서, 여기까지 써놓고 온라인에서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점 대여섯개 찍는 일. 이렇게. "…".

 마지막 문장, 혹은 '나'의 선언이 뭐냐고? 그거 아시면 책 못읽음. 그래서 안 알려드림.


 근데, 그러지 말고 호손이 쓴 다른 책 한 권 정도 더 읽어볼까? 그래 뭐 세상 별거 있나. 그깐 책이 뭐라고 단칼에 자르겠단 말을 해.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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