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ㅣ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
고운기 지음 / 현암사 / 2009년 12월
평점 :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이라니. 제목만 보고는 일본의 고전이나 동양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 중 한 책이다. 즉,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이 우리 역사와 문화의 보고인 삼국유사라는 얘기다. 일본의 추앙받는 인물과 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가 담긴 삼국유사, 일단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에 대한 궁금증이 발생한다.
우리는 삼국유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려 중기 몽골의 침략이 한창일 때 승려 일연이 지은 책.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를 알려 주는 중요한 사료.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신화가 수록된 책. 신라의 향가가 수록되어 전하는 책. 대부분 중고교 시절에 이 정도는 배우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책이라는 삼국유사가 조선 시대 내내 내용이 황탄하다고 하여 홀대받았고, 근대에 들어와 일본 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삼국유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승되어 왔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충격이지만,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자못 안타깝기조차 한 사실이다.
근대에 들어와 삼국유사가 일본 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 이들이 삼국유사를 재조명하였다는 것은 삼국유사가 귀한 서적으로 보존되어 내려왔으며, 삼국유사의 가치를 파악하고 있었다는데서 비롯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도쿠가와 가문의 노력이 드러난다. 서적을 좋아했던 도쿠가와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 장군들로부터 수천 종의 조선 서적들을 선물받는다. 그 중에 삼국유사도 들어 있었다. 그 후 삼국유사는 도쿠가와 가문의 개인 도서관에 귀한 서적으로 계속 보관되어 왔다. 도쿠가와 가문은 전문 사서 역할을 하는 관리를 두어 도서 목록을 계속 정리하여 왔는데, 그 중에 삼국유사는 도서 목록 분류 및 순서를 통해 중요한 서적으로 인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자그마치 300년 동안이나 전문 사서를 통해 소중한 서적으로 간직해 온 것이다. 기록을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 사서를 이렇듯 소중히 보관하고 관리해 왔다는 것은 존경할 만한 습관과 노력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13세기 말에 쓰여진 이 소중한 서적을 얼마나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었을까? 저자가 찾아 본 바로는 삼국유사는 단군 신화와 지리에 대한 고증 근거 자료로만 주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또한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서도 삼국유사에 대한 인용 기록은 책의 가치에 비해 많지 않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역사서(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다섯 책, 조선 후기에 간행된 서적 아홉 책에서 인용되었다. 아홉 책 중 네 책이 실학자들이 쓴 책이니 실학자들이 우리 역사와 국토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유학자들이 쓴 책이라 삼국유사의 기록들을 황탄하다고 하여 믿지 못하고 오직 지리에 대한 증거 자료로 많이 활용할 뿐이었다. 나름 합리적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삼국유사의 본래 가치를 무시당해 온 것이다.
오늘날에는 삼국유사 현상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삼국유사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간된다고 한다. 무려 367종이라는 삼국유사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다. 뒤늦게라도 삼국유사의 진면목을 인정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인정받지 못한 우리의 고전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정받고 소중히 전해 내려왔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