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이득은 그 이익을 취한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에게는 이득인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정이 당연시되는 사회분위기가 되면 결국 아무도 규칙을 지키려고하지 않게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개개인들이 규칙을 지켜야 모두에게 효용을 가져온다.

부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부정을 막기위해 개개인의 양심에만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의 의지는 생각보다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의 자율성이나 이타심에 기댄 역사상의 많은 유토피아들이 실패하면서 밝혀져온 바 있다.

법체계나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저질러질 수 없도록 그 구조 자체가 제대로 설계되어야한다.

예전에는 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돈이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근무했던 설계사무소에서의 5년동안 그런 행위들을 목격한적이 없는 것을 보면, 요새는 확실히 빈도수도 줄고 거의 근절된 행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건축 인허가 행위에 있어 부정이 사라지게 만든 많은 요소들이 있겠으나, 그 중 구조적으로 큰 역할을 한게 온라인 건축인허가 시스템인 '세움터' 라고 생각한다.

세움터는 인허가의 모든 절차를 전산화, 온라인화 한 시스템이다. 건축주가 공무원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아도 필요서류들을 준비해 건축법 및 조례에 맞는 설계안을 건축사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서버에 업로드하여 건축 인허가를 얻을 수 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때 공무원을 대면하는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온라인 처리가 원칙이기 때문에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생겨날 부정행위들의 여지가 매우 줄어들었다. 또한 입력한 수치나 조건에 따라 건축법에 적합여부를 따져볼 수 있기때문에 규정에 없는 기준을 근거로 특혜를 주는 대신에 금전이 오가는 행위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움터라는 구조의 변화가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한 행위의 상당부분을 근절한 셈이다.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했을때는 항상 두가지 방향성을 고려해야한다. 하나는 채찍이나 당근을 통해서 개개인들의 행동을 올바르게 유도하는 것, 다른 하나는 문제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어 그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것. 세움터는 바로 두번째 부분에서 꽤나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세움터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부터였는데, 그 당시 정부 기조 중에 하나가 정보의 공개였고 그 철학과 우리나라의 높은 컴퓨터 및 인터넷 사용률이 어우러져 훌륭한 결과물이 나온 듯 하다.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해야할 일들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시스템을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높으신 분들께서도 철학이 있어서 잘들 하시겠지만 괜히 나라 걱정이 되는건 왜일까.

보수 정권은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때 핵심보다는 처벌강화같은 즉각적적인 방법론을 주로 적용하는데, 그렇게하면 대중적들의 환호는 얻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한계가 있는데 말이지...(아니까 계속 쓰는 거겠지ㅋ)

그나저나 건축사가 있어야 세움터에 도장을 찍을텐데ㅋㅋ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뻘소리가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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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에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우리는 독립을 맞이한다. 자력이 아닌 독립이었으므로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진주한다. 이념에 따라 나라는 둘로 나뉘었다.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토지개혁을 시행했고 이승만은 남한 총선거를 주장했다. 김구는 하나의 나라를 위해 남북을 오갔으나 안두희에게 허망하게 암살당하고 만다. 결국 남과 북은 갈라져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암묵적 승인을 얻은 북한의 기습적 공격으로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게 된다.

한국전쟁 3년은 거시적으로 볼때 이차세계대전 양대 승전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의 힘싸움이었다. 그 이념 다툼은 두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자력으로 독립을 얻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혹독했다. 북한은 거의 모든 산업시설을 잃었고, 남한 역시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상실했다.

전쟁이 휴전으로 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거저얻은 독립을 진정한 우리들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게된다. 반도의 남쪽에 한정되었지만 4.19 5.18 그리고 6월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가게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동시에 경제적인 독립이 진행되었다. 국민 소득이 증대되었고 국민총생산이 어느덧 10위권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댓가가 필요했다. 산업화를 일구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혹사당하자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위해 투쟁하였으며 수많은 이기 죽거나 다쳤다. 산업화와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존재였던 박정희는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심복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한다.

우리 전 세대의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풍족한 의식주 생활을 누리고 있다. 어쩌면 여전히 독립은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람들은 정책보다는 정치인들의 이미지나 즉각적인 감정에 반응하며, 지역주의나 세대간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수직적 위계 문화는 더 높은 경제적 성취를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 70년을 맞은 지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한다. 우리가 그동안 성취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되, 더 완성된 독립을 향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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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라는 질문은 논리를 무너트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엄정한 논리라도 왜? 라는 잣대를 가져다대는 순간 무너지는 일이 흔하다.

어떻게? 라는 질문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성을 가진다. 실현하는 내용들이 구체적일수록 전제 역시 힘을 얻는다.

오빠 날 왜 사랑해? 라는 질문은 남자를 당황시킨다. 처음렌 그럴듯한 이유를 대다가도 곰곰이 생각하던 남자는 내가 얠 왜 좋아하지? 라는 연애 회의주의의 늪에 빠지게된다.

오빠 날 어떻게 사랑해? 라는 질문은 남자에게 목표의식을 심어준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돕는다. 예를들면 남자들은 이런 대답을 놓고 고민할 것이다. "너에게 줄 차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어.", 혹은 너를 만족시킬 스태미너를 갖추기위해 운동을 하고 있지, 기대해요^^v"

이상으로 왜? 와 어떻게? 에 대한 짧은 단상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마치도록 하겠다. #정성스러운 #개소리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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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는 절대자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의 안정감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 열매를 입으로 가져간 인간은 절대자의 손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되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하는 방랑자적인 위치에 놓이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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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갈구한다. 사람들은 고독-궁극적으로는 죽음-앞에서 평안함을 원했다. 불변의 절대자라는 존재야말로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에서 인간을 건져낼수 있는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절대자의 영원성의 이미지가 자신과 하나되는 것, 그럼으로 생에대한 긍정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본질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에 평화를 얻었고, 사회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절대자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양으로 내어 주었다는 선홍빛의 서사구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문학적인 상상력이 덧붙여져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종교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크리스챤임이 분명하다. 오분도 채 되지 않는 문답과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기독교의 가치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절대자에게 인간의 마음을 돌리는데 5분은 긴 시간이 아니지만, 절대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피조물이 초월적인 권력을 통해 자신에게 복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어느것에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연인처럼, 혹은 자식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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