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색의 역사 - 미셸 파스투로블루 /한길 아트 2002'

많은 색 중에 왜 하필 블루인가- 라는 의문은 책에서 줄곧 설명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서양-특히 유럽- 중심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시아나 극동 문화권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가지 놀란 사실은 색 이라는 것은 '인식'되어져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하늘,바다 같은 현재 우리가 푸른색을 떠올리는 것들이 고대에서는
푸른색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푸른 색을 지칭 하는 '말' 이 없었다는 것
무지개 마저 7가지 색으로 보지 않았으며 3-4가지의 색으로 파악되었다는 것

'절대'색이 처음 부터 있었겠지만 인식되지 못하는 색은 없었다는 것
예를 들면 파란색이 차가운 속성을 가진것은 불과 몇백년되지않는다는 사실
중세에서는 파란색을 따뜻한 색으로 볼 정도였으니...

그림에서와 같이 고대에서는 흑,백,적이 3대 색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초록의 등장 또한 오랜 시간 후였고, 더더욱 파란색의 등장과 사용은 불과 몇백년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운 읽을 거리


'색' 이야기를 떠나 어떤 대상 혹은 개념이라는 것이 시대적 상황이나 사람들의 인식에따라
얼마든지 뒤바뀔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것 같다. 과거 고대,중세에 비하면 현대는 그야말로
색의 홍수를 넘어 익사직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색을 쓸 수가
있고 사용에 따른 제재나 영심의 가책도 없으니. 중세에는 색의 혼합을 터부시했다고 하니...

색과 인간과의 이야기를 통해 사물에 대한 다른 시각과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책 이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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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삶이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가는 과정인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삶이 된다."

"자살을 통해 삶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독단이 폐기 되었다.
죽음은 삶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살은 절대적 개성, 즉 자기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의 표현이며
절대적 정체성의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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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 달의 궁전


더~~~ 럽게 재미 있음!

갈 데까지 가보면 그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지
하지만, 정말로 '갈 데'까지 가보는 사람은 많지않아
그 종국이 두렵기 때문이지

이름에 신경쓰면서 읽어야 함
작가가 이름에 설치해 놓은 장치들이 기특함

마지막엔 조금 늘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게 처리해 버린 점이 있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거야 지극히 개인적인 편력이므로 혼자 삯일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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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 쿳시 -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읽어내기에 짜증남
'그'의 남발로 인한 헛갈림
현재형 시제가 마음에 안듬

여하튼 짜증도 나지만 할말도 많을 소설

악려에서 느낄수 있었던 것처럼 도스토예프스키가 쓴것은 아닐까 하는 것
작가가 얼만큼 그를 연구하고 익혔ㄴ느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흉내낸것같은
예를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흔히 범하는 화자 와 나를 헛갈리게 하는것같은 조차
작가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렇게 읽히게 하는거 또한 장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의 '역사'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완전한 '실제'는 아닌
물론 그러기에 소설이겠지만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와
글쓰기에 관한 인식 혹은 태도에 관해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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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트루니에 - 마왕

본문 중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가장 살인마적인 악의적 전위들 중의 하나가 <순수성>의 개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순수성은 천진성의 악의적 전위이다. 천진성은 삶에 대한 사랑이고 천상적이자 동시에 지상적인 양식에 대한 미소 띤 수락이며, 순수성-비(非)순수성이라는 처절한 교차 개념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그 자발적이고 거의 선천적인 신성(神聖)을 사탄은 역으로 바꾸어 자신을 닮은 모사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생(生)에 대한 공포이고 인간에 대한 증오이며 허무에 대한 병적인 열정이다. 화학적으로 <순수한> 육체란 철저하게 반자연적인 그 상태에 이르기 위해 야만적인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순수성의 악마와 교합한 인간은 자신의 주위에 파괴와 죽음을 씨뿌리고 다닌다. 종교적인 정화작용, 정치적 숙청, 종족의 순수성 보호 등 그 잔혹한 개념의 변화 형태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한결같이 종국에는 범죄에 즐겨 등장하는 도구는 불(火)-순수성의 상징이자 지옥의 상징이다.

사슴 사냥에 있어서 말의 원초적인 역할로 말할것 같으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 진다. 즉 항문 천사가 남근을 이고 있는 천사를 학대하는 것. 즉 오메가에 의한 알파의 추격 내지는 사형이다. 그 암살놀이에서 겁장이에 엉덩이만 큰 짐승에게는 공격과 몰살시키는 주도권이 주어지고, 숲 속의 왕이자 머리에 이고 있는 뿔에 당당한 남성을 짊어진 짐승은 헛되이 공격하는 짐승에게 눈물로 자비를 애걸하면서 쫓기는 먹이가 된다. 그 놀라운 자연의 전위(轉位)작업에 티포쥬는 다시 한 번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칼덴보른의 닫힌 어항 속에 가두어 놓은 이 아이들을 가지고 무얼 해야할까? 이제야 나는 왜 폭군의 절대적인 힘이 항상 폭군을 미치게 만드는지 알겠다. 왜냐하면 그가 그 힘으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한히 행할 수 있는 <힘>과 유한히 행할 줄 아는 <앎>사이의 그 불균형보다 더 잔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이 빈약한 상상력의 한계를 깨뜨리지 않는 한, 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의지를 강간하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

과잉 적응자는 마치 <물 속에 있을 때의 고기처럼> 자신의 환경 안에서는 행복하다. 물론 물고기란 전형적으로 물에의 과잉 적응 어류이다. 그것은 물고기의 행복이란 완벽한 만큼 더욱 불안정한 것이라는 풀이가 된다. 왜냐 하면 만약에 물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짜거나, 혹은 수위가 너무 내려가면...... 어찌될까?
그러니 차라리 단순히, 가능하면 적당히 물에 <적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마치 수륙 양서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눅눅한 곳에서나 건조한 곳에소나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두 환경에 대충은 적응할 수 있다. ........................반면에 수륙 양서동물인 우리들은 항상 사물들과 일치가 빗나가고, 일상적인 삶에서도 늘 당하거나 깨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에서 오는 모든 배신들에 대충 대항할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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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풍부함, 잘 짜여진 날실과 씨실의 옷감이 주는 탄탄함 같은 구조
작가의 박식함
맛있는 책. 입맛을 한참 다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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