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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시인선 122
배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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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재하는 이의 책은 숱하게 차고 넘치지만 그 부재가 최근의 일이며 그

부재의 당사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 듯한 느낌이라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건 인지상정의 일 아니겠나. 물론 일면식 없는 이를 단지 책으로

첫대면을 하는 일일 지라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우연히 신간 소식으로 저자가 이미 지병으로 고인이 되었음을, 그리하여 유고

시집임을, 그 가운데 훗날의 장례식같은 시가 눈에 띄어 그의 시집을 구해보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병을 이길수 없음을 직감하고 쓰지 않았을까 싶은 시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 심정은 참담이었을까 달관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 올리는

애도였을까. 시집을 들고 오는 길 횡단보도 옆으로 지는 노을을 보는데 왜

갑자기 모두가 이별이예요 라는 가사의 노래가 날벼락처럼 입가에서 터지던지


시집 뒤편에 부쳐진 이영광 시인의 발문을 먼저 읽어봤다 뭔가 각별한 사연 같은게 있나 했다 그런게 있다면 한줌이라도 더 나눌수 있지나 않을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배영옥 (1966~2018)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뭇별이 총총2011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2019

여행 산문집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2014

20186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뒷표지에 촛불 하나 밝히고 있는 이 시집은 시인의 1주기 기일에 발간 되었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 70편의 시가 있다

유고 시집의 목차를 시인이 손수 가지런히 나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가장 훗날에 와야할 시를 첫 시로 앉혀놓았는데

그 시를 읽고 있자니 한없이 아득해지는건 뭔지


첫 시 훗날의 시집의 첫 연이다


필자는 없고

필사만 남겨지리라


시인은 단 두 행으로 생과 사, 유와 무를 표현하고 있다

짐작하듯이 시인은 없고 시만 남으리라는 전언이다

없는 시인을 기리며 남겨진 시집을 읽는 독자는 그저 헛헛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이미 자신의 부재가 상정되어 있다

유고 시집을 가지게 되는 시인은 어쩔수 없는 불완전한 완결을 이루어 놓는다



훗날의 시집



필자는 없고

필사만 남겨지리라


표지의 배면만 뒤집어보리라


순환하지 않는 피처럼

피에 감염된 병자처럼


먼저 다녀간 누군가의 배후를 궁금해하리라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나의 전생이여


마음이 거기 머물러


영원을

돌이켜보리라



또다른 시를 읽어본다



훗날의 장례식


주인공인

나만 없을 것이다

벅찬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찍 떠났으므로

엉킨 실타래 같은

검은 부재의 바람이 불고

태극기 휘날리고

잿빛 비둘기들만 구구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무거운 공기가

이제 진짜 안녕이라며

작별을 고할 것이다

새 없는 공중으로 검은 비가 내릴 것이다

한가한 사람들도 오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인 나만 홀로

슬플 것이다



두 시의 공통점이랄수도 있는 점이 있는데 눈치 챘는지 모르겠다. 훗날의

시집과 훗날의 장례식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자신이 부재하고

맞을 훗날에 대한 생각이 많았나 보다. 우리도 그런 생각 살다보면 하지

않는가. 내가 없는 세상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특히나 자신의

장례식장엔 누가 올까 같은 어찌보면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부질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게 사실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나만 없을 것이다


그러게 내 돌잔치에 내가 있었고 내 졸업식장에도 내가 있었는데

왜 내 장례식장이라고 주인공인 내가 없을까

절을 꿉벅꿉벅 두 번 씩이나 하고 일어나는 저 사람들은 누굴 위해 우는걸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끌어안고 병마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장례식장 풍경을

그려봤을 것이다. 나도 없는데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꼽아봤을 것이다.


시인을 알았던 이들에게나 뒤늦게 검은 시집을 집어든 나같은 독자들에게나

이제 시인은 추억만이 가능하다 그러라고 쓴듯한 시를 소개해본다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을

 

나는 끝내

의자 아래 묻힌 신전을 모를 것이고

의자 또한 나를 모를 것이고

의자 위의 사과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데

나는 오늘도 의자를 기다리는 사람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애써 소환하는 사람

의자를 관()처럼 떠받드는 사람

오래도록 동행해야 할 목숨과

매일매일 불화하는 사람

짙어지는 어둠과

푸르른 이끼를 끌어다 덮는 사람

그러니 나날이 봉분을 쌓는 어지럼증이여

의자를 경배하라

나는 오늘도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을

뿌리 깊은 의자에 묻히노니,

아무도 나를 찾지 마라


1년전 611일 시인은 영면에 깊게 들었다 그리고 1년 후 611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와 그를 알던 모르던 뭇사람들에 의해 그의 이름이 다시

호명되고 있다 그런 이름 부름을 깊고 깊은 뿌리 내린 어딘가에서 듣고는 있을까

아니면 단호한 일갈처럼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가 있을지

살아 있는 우리야 알 수 없지만 시인의 사정에 아랑곳 없이 우리는 이렇게 시인을 찾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하지 않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발설하였으므로,

 

내가 끝내 영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2018611

 

배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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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었다고 그 책에 대해 모두 리뷰를 하고 싶다거나 리뷰를 하는건 아니다. 어떤 책은 단 한 줄 평을 남기는 것으로 읽기를 마칠 때도 있고 또 어떤 책은 그 단 한 줄의 평도 남겨지지 않고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또 어떤 책은 읽는 내내 뭔가 불편한데 그 불편한 뭔가를 찾기 위해 리뷰를 할 때도 있다. 쓰고 말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뭔가가 툭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니까.




https://youtu.be/JTbXlkj1evU


테드 창의 작품집 숨에 실린 여러 작품 가운데 한 편에 대한 리뷰 영상을 올린 것으로 테드 창의 이번 소설집 리뷰를 더는 하지 않을 것이라 내심 생각하며 읽지 않은 작품들을 마저 읽어 나갔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읽는 내내 뭔가 좀 불편해서 그 불편과 그 외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이렇게 두 번째 리뷰 영상에 대한 원고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만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라는 작품은 작품 내외부적으로 참 이야기 할 게 많은 작품이다. 201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그 이듬해 테드 창에게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안겨 준 작품으로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 가운데 가장 긴 중편에 속한다. 이번 작품집에 포함되기 전에 단행본으로 국내 출간이 되기도 했다.


무엇이 불편했던지 이야기해 보기 전에 줄거리를 간략하게 후려쳐보자면


디지언트digient 라고 불리는 디지털 생명체가 있다.

유전적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생성되는 생물학적 계산 지능 이라고 옮긴이는 설명 하고 있다. 이 디지언트를 키워나가며 벌어지는 일들과 주인공의 디지언트에 대한 감정선들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편했나?


첫째, 잭슨이라는 디지언트를 키워가는 주인공 애나의 애정을 넘어 집착에 가까워보이는 감정상태가 솔직히 오버스러워 보였다. 나는 반려동물이나 식물 또는 자식을 키워본적 없고 심지어 다마고치 같은 게임 캐릭터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가상의 프로그램이라고 봐도 무방한 잭슨에게 마치 자식을 대하는 애착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게 나는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영화 허를 보진 않았지만 그런 예처럼 인간 아닌 가상의 프로그램에게 감정이 생길수 있을까. 아이폰에 탑재된 시리가 지금보다 더욱 발달하여 거의 인간과 동등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인간을 대하는 감정처럼 느낄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는 로봇외피라는 하드웨어에 디지언트라는 소프트웨어를 탑재시켜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질수 있는 존재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개개의 디지언트를 법인화 시켜 독립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려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인공지능 존재에

여성이나 남성의 성역할까지 부여하려 한다. 언젠가 닥칠 현실이긴 할텐데 과연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사이는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둘째, 이 소설에 등장하는 디지언트들의 지능 발달 상태가 뭔가 앞뒤가 안맞는게 아닌가 할만큼 어떤 면에선 인간과 동등하거나 뛰어넘은 지능을 보이는 반면 어떤 면에선 아이같기만 해서 어거지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소설의 시간 흐름을 살펴보니 다음처럼 여러차례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일 년 후, 일 년 후, 다음 해, 다음 해, 일 년 후, 일 년 후, 한 달 후, 일 년 후, 일 년 후, 이 년 후, 두 달 후, 한 달 후


대략 104개월 동안의 시간 흐름이다. 10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10살 짜리 아이의 지능을 가지게 될동안 인공지능은 얼마나 발전할까를 상상해 본다. 물론 인공지능이라고 무조건 인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지능 개발이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해도 10년의 시간을 생각해보자면 디지언트인 잭슨은 뭔가 좀 모자라보이는 것 같은 반면, 10년 동안 과연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이런 의구심이 작품에 대한 의구심으로 합당하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중편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했음에도 자연스런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sf소설에 리얼한 뭔가를 바라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마블 히어로 영화를 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니까.


또 하나 생각해볼 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대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다. 인간이 창조하는 피조물인 인공지능에게 과연 인간은 어느 영역까지 능력을 부여할 것이며 애착을 느낀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의 애착일까.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창조주인데 그 창조주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공지능이란 존재는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인간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시각을 짐작해볼수도 있을 것같다. 물론 전지전능한 신의 생각을 어찌 알까만은. 나는 무신론자라서 그런건 없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지금 이야기한 내용은 이 소설의 일부일 뿐이다. 이게 전부인냥 착각해서는 안된다.


정리를 해보자면 작품속의 모든 상상력에 대해 이게 가능하냐 아니냐 시비를 가리는건 무의미 하다. 이런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는 도래하기 전의 미래에 대해 미리 한번쯤 상상해보고 이야기 해보는데 있다.

기발한 착상과 그럴듯하게 전개되는 테드 창의 여러 중단편들을 읽어봤는데 짧으면 짧을수록 더 인상에 남은 작품들이었고 반대로 길면 길수록 내겐 다소 지루한 작품으로 읽혔다.

이것으로 테드 창의 리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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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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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독자라면 모를리 없는 테드 창의 소설집이 최근 출간 되었다는 것도 모를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표제작 숨을 포함한 9편의 단편 소설 가운데 6번째 작품인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이 한 편을 콕 찝어 이야기 하고 싶은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영상을 통해 말하게 하는 유튜브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의 내용이 전달될 것이다.

#기록 #기억 #망각 #병렬적구성 #기억의전달방식 #유튜브



 

왜 유튜브 이야길 하냐면 먼저 소설의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 먼 미래는 아닐것으로 보이는 소설 속의 세계는 몸에 장착된 개인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가 사용되고 있다. 그 저장된 기록에서 사소한 장면까지 검색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내가 친구 아무개와 서점에 간 날 이라고 검색하면 과거 아무개와 서점 간 날의 녹화 영상이 모두 시야의 좌측 하단에 영상으로 뜬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개인의 생체적 기억, 그러니까 인간이 뇌로 하는 기억이라는게 무용한 세계라는 것이다. 기억이 기록되고 그 기록은 디지털 기억으로 저장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기억되는 세계여서 더 이상의 망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축복이고 망각은 저주일까? 이 지점에서 저자는 한 사례로 러시아의 솔로몬 셰레셰브스키(Solomon Shereshevskii)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허구의 인물인지 실재 인물인지 궁금해 찾아봤다.

솔로몬 셰레셰브스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192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기자로 일한 실재 인물로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연설문을 따로 메모하지 않고도 나중에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 주위 사람들을 놀래켰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특이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 셰레셰브스키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력이 낮았고 자신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어 과거의 현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던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남자를 연구한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아(Aleksandr Luria) 박사의 책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세계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은 미국의 질 프라이스의 자서전적 기록물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라는 책으로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유튜브와 무슨 상관이냐 할 것이다

유튜브가 지금은 구독자 1000명 시청시간 4000시간이라는 수익창출 플랫폼을 기본으로 많은 사용자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고 업로드 하는 vlog 채널이 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이라면 자연히 이런 연관성을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vlog채널들은 초기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모르긴해도 가까운 시기에 소설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일상이 업로드 가능할 날이 올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들은 더 이상 넌 어려서 모르겠지만 이라거나 또는 유소년기나 청소년기의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망각이라는 서랍 속에 감출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황을 작가는 아주 그럴듯하게 상상하는데 그 내용들이 과연 축복일지 저주일지.

 

이 작품은 병렬적 구성으로 기억의 전달 방식과 그 방식의 한계점 등을 대비해 이야기 하고 있다. 테드 창의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역시 병렬 구성이었는데 개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끊기고 또다른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되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져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작가의 전략적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역량 부족인건지 이야기의 전달 방법에 있어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문자가 없던 시대의 구전 문화에서 기록 문화로 바뀌는 장면을 소설적으로 압축해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소설 속 현재의 세계를 대비하면서 기록이라는 기억의 전달과 디지털 기억으로 탈바꿈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소설화한 솜씨는 탁월하다고 본다. 괜히 유명상을 휩쓴 작가가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했다.

 

정리 겸 이야기해 보자면

많은 sf소설은 정말이지 현재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이 그랬다. 특히나 유튜브라고하는 플랫폼이 전지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이렇게 나 역시 내 생각이나 기억들을 유튜브에 담아놓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소설 속의 기억력을 잃어버린 인간사회에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리는 어떤 지나간 기억을 그리워하고 아름다웠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기억이 망각과 함께 어느 정도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고호가 그린 해바라기나 별빛 가득한 밤의 그림과 그 정물과 밤풍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언제든 리플레이해보는 것 가운데 아름답다고 할만한 건 어느쪽일까? 소설 속 현실에 우리가 있게 된다면 아름다웠던 추억이라는 말은 더는 쓰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의미를 아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더는 기억의 필요가 없어진 미래, 망각의 염려가 사라진 미래. 궁금키도 하지만 거기에 가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이래저래 이야기해볼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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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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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신춘문예 낙방 후 절필선언을 하고 아이슬란드로 날아가 71일 히치하이킹 여행 후 쓴 원고를 32번 투고 거절 당한 후 33번째 투고하여 나온 눈물 겨운 여행에세이.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다보니 그 흔한 텐트 치는 법도 모른다. 그렇다보니 여행기라는 책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이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있다

 

첫째, 저자의 다소 특이한 이력과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책의 이력 때문이다

30년 동안 매번 봄마다 신춘문예 낙방이라는 실패 끝에 절필선언을 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라 단정하고 실패를 찬양한다고 해서 간 아이슬란드에서의 고생 직싸게 하는 이야기는 여타의 여행에세이 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른두 번의 투고 거절을 거쳐 서른 세 번의 투고 끝에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여행기라면 흔히 유명 관광지나 먹거리의 사진 위주의 책을 떠올리는데 이 책은 글 위주의 여행기인데 저자의 30년 낙방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문장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셋째, 여행의 장소가 아이슬란드였기 때문이다. 아마 유럽이나 미국 등과 같이 잘 알려진 곳이었다면 이 책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걸 싫어하지만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북유럽 국가들의 거리를 배회해보고 싶다. 햄버거 하나에 2만원 한다는 살인적 물가에 달랑 300만 원을 장만해 아이슬란드 71일 히치하이킹을 한 저자를 따라할 엄두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 아이슬란드.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현지의 땅과 배경 위주의 여행기가 아니라 그 땅을 밟고 숨쉬는 여행자의 인간 드라마 같은 여행기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어 찡한 가슴을 선물처럼 받으며 마지막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렇게 각별하게 읽은 책소개를 해본다.



70대 미국 할머니 메리엔.
내가 혼자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랑 손주들이 날 보고 미쳤다는 거예요. 아니, 텔레비전 앞에 매일 붙어 사는 걔들이 미친 거지, 내가 미친 거예요?
389p

다시 산다면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고문 따위 붙들지 말아야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내일‘, ‘다음‘ 따위의 단어도 버려야지. ...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중요하지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네 꿈이 뭐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라고 묻지 않고 "지금 하고 싶은 게 뭐니?" 라고 묻는 것도 자연이 눈 앞에서 꿈틀거리고 뒤집히는 걸 수시로 목격하며 사는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4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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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이재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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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청소하면서 들은 건 몇 개 없다고 한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전문적인 비평이나 지식의 나열 없이 음반을 들으며 인스타그램에 짧게 쓴 글들로써 지극한 사적 감상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 계정 @round.midnight 의 주인장이 듣는 음반과 그 단상들의 모음집. 음반에 대한 짧은 메모를 따라 찾아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그에 얽힌 생각들이 오히려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음반 타이틀이나 제목들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어 뭔가 응? 스럽기도 하지만 나같은 영알못에겐 다행스럽기도 하고 재미가 있다


큼지막하게 옛 음반 사진들을 한 면에 배치한 판형이 어떤 감상에 빠져드는데 일조하는게 아닐까 싶다. 신세계처럼 펼쳐지는 낯선 음악들을 들어보고 저자처럼 아날로그식으로는 못듣겠지만 음악파일로 구비해둘만한건 없나 촉각을 곤두세워 보는 일은 즐겁다.

대략 4000여 개 노래 파일들이 담겨진 내 플레이어의 폴더를 살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게 없는건 당연히도 너무나 옛날옛적 닳고 닳은 노래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뭔가 새로운것 뭔가 다른걸 듣고는 싶은데 아무거나 듣는건 안될때 이런 책에 기대어 음악 감상의 폭을 넓혀가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후속편을 내 준다면 좋겠다. 이를테면 멍때리면서 듣는 음악 같은 ㅋ

어떤 물질적 물성을 가진 사물들에 비해 음악이란건 소리라는 무형의 어떤 것인데 그것에 물질적 물성을 부여하는 것이 레코드자켓이나 CD케이스 일 것이다. 촉각과 시각을 통해 그것을 느껴지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동감하는 부분이다. 요즘이야 스트리밍이 대세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반영구적 기록매체라는게 CD라 했지만 반백년도 못가 용도 폐기 직전의 매체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굳이 CD음반을 비롯 LP나 카셋테잎 등을 구입하고 플레이어로 듣는건 분명 스트리밍이나 mp3파일로 듣는것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과학적 이론적 근거가 없다한들 주관적 감상의 세계에 진입하다보면 그런것쯤은 조족지혈 거리도 안된다.


인간의 감성 이란게 때론 부질없고 허튼 것일 뿐이기도하지만 때론 그것으로 인해 어떤 모든게 뒤집히기도 하니 뭐라 할 수가 없다.
저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압구정역 근처 상아레코드에서 CD를 샀다는 대목에서 그때쯤이면 나도 일렉기타리스트 친구를 따라 어쩌면 그 레코드 가겔 한두 번은 들렀을것 같다는 회상에 잠기듯 어떤 음악을 듣고 음악에 잠긴다는 것의 매력은 사적인 어마어마함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바이널이든 CD든 물리적 저장 매체로 듣는 음악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머릿속에 각인되고 회자되기 좋다. 소리 위에 얹혀진 그림이나 사진 같은 이미지의 심상 때문이기도 하고, 그걸 구입하고 재생한 순간의 기억 덕분이기도하다.
어쨌든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해서 듣는 음원으로는 얻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돈을 주고 산 음악은 그 좋은 부분을 억지로라도 찾아내게 된다. 그렇게 체화한 음악을 들을 때는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저절로 이런저런 게 연상된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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