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하여 - 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오후
사이먼 크리츨리 지음, 변진경 옮김, 하미나 해제 / 돌베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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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지하게 자살을 실행에 옮길 사람은 볼 필요가 없다 (볼 사람도 없겠지만)

이 책은 자살을 하나의 대상으로 하고,

그 행위의 배경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렇다고 다른 자살에 관한 책보다 특별한 어떤 내용이 보이지는 않지만

깨알같이 예로 든 작가들이나 작품들에 대한 사실들은 재미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202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5년전 출간한 자신의 책에 대해 돌이켜보면서

2015년에 쓴 이 책의 마지막에 대해

다소 태평한 방식으로 너무 빨리 낙관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

불만족스럽다고 썼는데 나 역시 그렇게 읽었다

굳이 저자 나름의 결론을 도장 찍듯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찌보면 결론 내릴만한 말은 너무나 뻔하게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는거 아니냐 그 말이다

그런 불만족 때문인지 서문에 추가된 소셜미디어와 자살 세대라는 꼭지에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점은 새로웠다

만일 이 책을 읽을 작정이라면 반드시 서문부터 읽기를 바란다


자살이나 죽음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다보니

신간 목록에서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얼른 차례를 살펴보았는데

차례의 제목이 이 책을 읽게 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책을 읽는 내내 나름의 재미랄 수 있던 점은

이미 영상으로도 소개했던 장 아메리, 에두아르 르베, 에밀 시오랑과 같은 작가들을

저자도 언급하면서 특히 르베의 국내 미번역 소설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만큼

더욱 그 소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살을 했거나 자살과 연관된 작가들,

카뮈나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 같은 작가들이 등장해서 좋았다


그 다음으로 소셜미디어와 자살 세대라는 꼭지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저자가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른

2012년 이후 자살사고의 빈도 수, 자살 시도 정도, 자살 수 같은

다수의 행동에서 실제로 중대한 증가가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십대 초반 소녀들의 자살률은

2012년 이후 두 배가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통계를 들지않아도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악영향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 이용자지만 과장되고 편집된 채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과연 이 이미지들의 세계가 무슨 의미일까 하는 허탈한 생각을 하면서도

중독된 듯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 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원고를 쓰는 날 포탈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등장했다


이러니 최악의 SNS” 인스타 중독, 이렇게 무섭습니다


헤럴드경제 2021.9.21.

http://naver.me/xB4V4vfP


자살에 대하여 Notes on Suicide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뉴스에서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들으면서 자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용어의 대체가 과연 자살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다만 그 상황에 대한 구체적 방법까지 보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나아진 보도지침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쓴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큰 동기는 자살을 둘러싼 어휘를 넓히고,

그 현상을 기술하고 이해할 더 많은 단어를 찾으며,

공허하고 진부한 말보다는 공감으로 자살을 대하는 것이었다.

_29p


우리에게는 자살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자살자의 유족에 대한 자살자의 무책임을 들어 자살자에 대한 비난과

자살의 이유에 대해 우울증이나 어쩔수 없는 고통 때문이라는 의견들을 나타낸다

순수한 자유의지에 따라 자살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거나 신변상 특별한 문제가 없는 자살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자살을 둘러싼 어휘나 단어란 말은

말 그대로 용어의 문제도 있겠지만 자살을 둘러싼 생각의 폭이

한정되었다는 것으로 나는 읽는다

생각이 다양해져야 그에 따른 말도 생겨나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현상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서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듯 자살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질 때

자살에 대한 표현도 더 많아질 것이다


자살은 왜 비도덕적이라 여겨지는가


지금 이야기해보고 있는 이 책을 비롯해 제목에 자살이란 단어가 포함된 책을

지인이나 가족이 보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소설책이나 처세에 관한 책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까?

반대로 내가 읽고 있는 자살 관련 책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책상 위에 던져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만큼 자살이라는 행동에 대해 기본적으로 죄악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의 뿌리가 어디인지 역사적 종교적 사실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대충 짐작하듯 그런 생각은 기독교의 영향이 절대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종교인이기도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살이 부도덕하다거나 죄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인간 각자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국가나 공동체에 대해 어떤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국가나 공동체도 개인의 생존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살 유서


저자는 20135월 자살 유서 쓰기 워크숍을 조직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맨하튼의 작은 공간에서 설치 미술의 일환으로 2주 동안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자살자는 유서를 남긴다고 하고

저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자살 유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살 유서는 고대 이집트부터 존재했을 것이고

18세기 자살 유서의 특징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신문사에 유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생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는 프로이트의 논문을 근거로 자살 유서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졸업식 연설을 언급하기도 한다

자살 유서를 여러 편 쓰기도 한 커트 코베인의 유서를 통해

사랑과 증오의 양가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일반적 유서 보다 자살 유서가 좀 더 극적이라고 볼 때

상상하기도 싫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당신들은 어떻게 무슨 말을 남기겠는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인사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하는 독백같은 게 어울리지 않을까

이를테면 이렇게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자살자들


인간을 비롯 모든 생명체들은 죽음을 맞는게 필연인데

유독 인간의 죽음 가운데 자살로 죽음을 택하면

그 삶은 자살만이 대표 이미지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자살은 삶에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통해 삶을 봄으로써,

삶에서 복잡성을 박탈해버림으로써 그렇게 할 뿐이다

_124p


사고나 병으로 죽는 죽음과 자살로 죽는 죽음은

왜 그토록 다르게 취급될까

자살이 그토록 유별난 죽음인걸까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 하면서 자살이라는 주제는

곧 삶은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나 성격상 이 질문까지 나가는 것은 좀

오버스럽고 불필요하다고 본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이 책과 어울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답을 어느 승려가 한 말로 비유 해보자면 이렇다


삶에는 이유가 없다

주어졌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다

없는 이유를 자꾸 찾다가 못찾으면 자살밖에 없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책의 마무리를

굳이 이렇게 해야하나 김이 빠지는 것이었다


어쨌든간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데이비드 흄의 자살에 대하여

하미나 작가의 해제 역시 빠트리지 말고 읽어봐야 할 것이다


이런식으로 얇다면 얇은 이 책 내용의 빙산의 일부도 안될만큼 떠들어 봤다

그럴듯한 떡밥 같은 걸 던져놓고 이 책을 읽고 싶게끔 해야할까

글쎄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어차피 이런 책은 찾아서 볼 사람은 뜯어말려도 볼 그런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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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뒤르켕의 <자살론>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한 김호기
교수님의 강의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삶의 이유를 찾는 미션이 어쩌면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
까 싶기도 하네요.

얄븐독자 2022-07-25 21:07   좋아요 1 | URL
어느 스님의 말씀으로는 삶에는 이유가 없다, 그 없는 이유를 찾다 못찾으면 그 끝에는 자살밖에 없다 라 했는데 저는 공감하는 편입니다.

scott 2022-07-28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에는 이유가 없다

주어졌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다]
이 말에 깊이 공감 합니다

친구가 대학 1학년 때 스스로 생명을 끝내 버렸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 할 수 없고
머물 곳(마음)이 없어서
그만 ㅠ.ㅠ

얄븐독자 2022-07-28 00:59   좋아요 0 | URL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떠나면 더더욱 힘겨운것 같습니다 삶이란게 깃털처럼 가볍다가도 천근만근 보다 무겁기도 하네요
 
다이웰 주식회사 욜로욜로 시리즈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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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책은 무려 sf소설이다

아마 얄븐독자 채널에서 장르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을까 싶다

그만큼 나는 장르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편독이 심한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취향이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은 왜 읽고 이렇게 소개까지 하느냐 하면

sf소설인데 안락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침 도서관에 있어서 빌려왔다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읽어치웠다





이 책에는 표제작 다이웰 주식회사를 포함 총 4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국립존엄보장센터

다이웰 주식회사

하나의 미래

미래의 여자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앞의 두 작품은 안락사라는 공통점이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낙태시간 이동sf적 요소가 가득하다


이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만든 국립존엄보장센터는 분량이 가장 적었음에도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물론 관심분야라서 그랬겠지만

참고로 이 <국립존엄보장센터>는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번역 소개되었다고도 한다

더보기에 링크를 남겨둘테니 영문으로 소개된 작품에 관심 있다면 한번 보면 될 것 같다


http://clarkesworldmagazine.com/youha_10_19/


그래서 우선 국립존엄보장센터이야기부터 해봐야겠다

 

이 작품의 배경은 아마 멀지 않은 미래인 것 같다

현재의 한국처럼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나머지 생존세라는 세금이 있고

그 생존세가 시행된지 삼십여 년이 지난 어느날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국립존엄보장센터는 생존세를 체납한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일종의 안락사 기관이다

그나마 자진신고를 통해 센터에 들어가게 되면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소개되지만 자진 신고하지 않는다면 이런 서비스 조차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과연 존엄사가 보장이 되는 것인지 등등 읽어보면 작가의 솜씨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다

일단 센터에 들어오게 되면 손목에 24시간이 카운터 되는 팔찌를 차게 된다

주인공은 자식이 없는 할머니다

소설은 이 할머니가 센터에 들어가는 새벽 네 시부터 사망하게 되는 순간까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할머니의 뜻밖의 선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을 것 같다

25페이지라는 짧은 분량 안에 강제적 안락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할머니의 심정이 디테일하게 나타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주로 읽어봤던 안락사 관련 책들이 제3자의 눈으로 객관적 거리가 확보된 차가운 사실들의 기록이었다면 비록 sf소설이라는 허구적 세계지만 주인공의 주관적 감정을 읽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정적 공감은 더 와닿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이런 게 소설이라는 형식의 강점이고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짧은 단편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단편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담았고 전달했다고 생각 한다


할머니의 이야기와 더불어 센터에 먼저 들어와 있던 노인들을 등장시켜 근미래의 안락사라는 제도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갈등적인 면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현실적 제도로써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때 느끼지 못했던 살아 있는 감정 같은 것들을 할머니를 주인공 삼아 써내려간 작가는 과연 어떤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해봤기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싶었다


안락사 찬성론자인 나는 2021년의 현재와 같은 소극적안락사를 넘어 남녀노소, 질병의 유무를 불문하고 언제든 개인의 의사만 있다면 안락사가 가능한 적극적안락사가 시행되는 미래 배경의 소설이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읽지 않는 sf소설로 어쩌면 이미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sf소설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문학소설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작품속의 전개는 내가 sf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안락사나 존엄사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 어떤 주제의 소설보다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 시시콜콜 이야기 할 수는 없고

간단하게 소개해 보는 것으로 한다


다이웰주식회사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만연한 서울이 배경인데

아직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이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안락사 비용은 2450만원이다

이 비용이 없는 사람들은 감염자들이 썩어 죽을때까지 기다리거나 시신을 버리기도 한다

주인공은 안락사 회사의 계약직 직원인데 그의 어머니도 감염된다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먼저 읽었던 작품이 너무 좋았기 때문인지 이 작품은 조금 심심했다


다음으로 하나의 미래미래의 여자는 낙태와 관련 지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낙태의 찬반 여부를 따져봐야 할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보다 시간 여행과 같은 sf적 요소가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작품 가운데 미래의 여자에서의 반전은 재미가 있어서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이런식으로 남유하 작가의 sf소설집을 간단하게 이야기해봤는데 우연히 읽게 된 것치고는 좋았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관심분야라면 장르소설이라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겠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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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 - 최영미 시집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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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7번째 시집이 나왔다

 

20196월에 출간된 6번째 시집에 대해

그당시 sns에 피드를 남겨놓았는데

최근 최영미 시인이 직접 댓글을 달아서 살짝 놀랐다

시인의 계정을 방문해보니 새로운

시집에 대한 피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1인 출판사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인이 직접 이런저런 홍보를 하고 있었고

그런 일에 대한 고단함을 엿볼 수 있기도 해서

마음 한편 짜안했다



최영미


적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


이 문장을 이해하는 자

이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누구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5분 안에 웃길 수 있다


나의 본질을 꿰뚫은 어떤 개그맨에게

이 시를 바친다



시인이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걸어놓고 시를 지었다

당신들은 자기의 이름을 걸어놓고 이런 시를 쓴다면

어떤 문장으로 자신을 채우겠는가


모르긴 해도

적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쓰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설령 본인이 그런 성향이라 해도

대놓고 밝히지는 않고 숨길 것이다

우리는 적을 만들지 말라고

귀가 따갑게 배워왔으니까

그래야 세상 살이가 편하니까





원죄


모르는 사람과 악수하지 않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너무 표시내고

목소리가 크고

알아서 잘해주지 않고

눈치도 상식도 없고

높은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알아야 눈치를 보지)

신간이 나와도 책을 돌리지 않고

선배 대접을 하지 않고

후배를 챙기지 않고

(후배가 가방인가? 챙기게...)


_부분



누군가는 그러겠지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고

그런데 다수가 누리는 편리와 공정은

세상 피곤하게 사는 소수의 사람들

적을 앞에 두고 적과 싸워온

소수의 사람들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

옛말에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모르면 닥치고라도 있던가



순수한 독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더 똑똑해지고 싶어,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 (남들이 다 읽는 책이니 나도 봐야지), 토론에서 상대를 제압하려 혹은 영혼을 살찌우려,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 책을 읽는 것은 불순한 독서이다.


최고의 독서는, 가장 순수한 독서는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시간을 보낼 무언가 필요할 때, 이리저리 둘러봐도 마음 갈 곳이 없을 때, 너무너무 심심해 죽고 싶을 때 나는 책을 잡는다. 짧은 시나 추리소설이 시간 때우기에 좋다.


마음의 양식?

착한 사람은 마음에 양식이 필요하지 않아요. 욕심 많은 사람에겐 마음에도 양식이 필요하지요.



... 뭔가 뜨끔하다

솔직히 순수한 독서를 해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지적 허영과 허세 가득한 책읽기를 일삼는 사람이 읽고 있자니

한편으론 최영미 시인답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아리송한


인류의 가장 큰 허영은 양심.

아니, 예술인가



이렇게 촌철살인 같은 시가 시의 백미 아니던가


새 시집 가운데 몇 편의 시를 가져와본 것을

시집 리뷰랄 수는 없을 것 같고

최영미 시인이 그동안 쓴 시를 묶어

시집을 냈다는 소식쯤으로 봐주면 되겠다

사 읽어볼 사람은 알아서 읽어볼 것이니

내가 뭐라할 건 아니겠고

한 편 정도 더 읽고 영상을 마친다


안녕


내가 죽으면 묻어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죽으면 정말로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줘


살아서는 벗어나지 못했으나

죽어서라도 이 사나운 땅을 벗어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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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국영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아무튼 시리즈 41
오유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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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국영을 다룬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더 정확히는 장국영이라는 인물과 그의 영화를 이해해보려는 그런 이야기다

올해에도 41일엔 장국영이라는 키워드는 자연스레 보고 듣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를 아는 세대가 있는 한

그래서 그 팟캐스트를 찾아 다시 듣기도 했다

혹시나 궁금한 분들을 위해 팟캐 주소를 남겨놓는다


4월이 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꼭 영상을 올려야지 하면서 보낸 하루 이틀이 쌓여

결국 이렇게 4월의 마지막 날에 와서야

부리나케 책을 마저 읽고 원고를 쓰고 앉았다





이미 알고 있듯 장국영에 관해 쓴 책 영상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장국영 팬이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서 있는 그저 무심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장국영을 이런 식으로 추억하고 싶었다

요즘에야 장궈룽이라 부르지만 장국영을 추억하는 세대에겐 장국영이어야 하고

영원히 그렇게 불릴 이름 장국영아닐까 한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장국영의 애칭인 꺼거라고 하지만

내겐 그리 와닿지 않는 호칭이다


우선 이 책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무튼시리즈의 41번째 이야기는 장국영이다

그런데 눈치 빠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넘버링이 41번이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바로 41일 그 말이다

실제로 책의 발행일도 41일로 맞췄다

이런걸 요즘말로 지렸다라고 할 것 같다

이런게 편집자의 기획력 아니겠나 한다


아무튼 장국영의 저자는 장국영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너무나 쉽게 정해버린 경우라 하겠다

무슨 말이냐하면 내한한 장국영의 행사를 따라다니며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동행하는 통역사를 보고

장래의 꿈을 중국어 통역사로 정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인이 장국영의 통역사가 되겠다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꿈이 되었지만

저자는 현재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이 되었다


이 책은 물론 장국영에 관한 책도 맞지만 그보다는 장국영 팬 가운데 한 사람으로써

저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담긴 책이라고 보면 된다

출판사의 의도 역시 그것에 있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장국영의 팬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저자가 들려주는 덕질이야기 속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후영미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후영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장국영의 팬층을 1, 2,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1세대 팬은 1989년 장국영의 은퇴 선언 이전 팬을 말하고

2세대 팬은 그 후의 팬이라 할 수 있다

3세대 팬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후 팬이 된 세대를 말한다고 한다


영미荣迷라는 말은 중국어로 장국영의 팬을 뜻하는데

후영미后荣迷는 바로 3세대 팬을 말하며 영미와 구분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기존의 팬들은 노영미老荣迷로 재명명 되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의 인생 진로가 장국영 때문인지 덕분인지

그렇게 중국어 전공이 되었다고 했는데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함의라는

논문을 완성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쯤되면 진정한 덕후의 끝판왕으로 봐야할 것 같다

역시 세상은 덕후에 의해 바뀐다던가 그말이 진리인것도 같다


그리고 뒷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꽃 백합은 장국영이 가장 좋아한 꽃으로

저자는 종이 백합을 접어 꽃다발을 만들고 김포공항에서 장국영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덕질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으니 땡긴다면 한번 읽어보면 되겠다

장국영 팬이라면 모르긴해도 맞장구 쳐가며 읽어갈 이야기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스타에 대한 남다른 내면 보고서이자 인생 고백서이다

이 안에는 스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보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추억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참맛인 것 같다


아이러니한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거짓말처럼 들렸던

장국영의 사망 소식이 날아들었을 때도 지금처럼

마스크 착용의 일상이었는데 다시 한번 그런 일상 속에서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궈룽이 아니라 장국영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세대는

늘 남다르게 41일을 아니 3월의 마지막 밤부터

아 그때는 장국영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한다


인생의 지나버린 한 시기를 떠올릴 때

그게 스타가 되었든 아니면 친구나 연인이 되었든

그 누군가가 있음으로 그를 추억하는 힘이

잠시나마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누가 되었든 그가 있어 고맙다 생각할 것 같다


그게 저자에겐 장국영이었고

나나 당신들에겐 누군진 모르겠다만


장국영이란 인물과 영화에 관해 함께 들어볼만한 에피소드

[안알남]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179. 1부 [인물] 만우절 그리고 장국영

https://youtu.be/9zbO82afrxE


179. 2부 [영화] 장국영의 영화를 이야기해보려는 시도...part 1.

https://youtu.be/GqRbYf47XaE


179. 3부 [영화] 장국영의 영화를 이야기해보려는 시도...part 2.

https://youtu.be/f8uE1gyK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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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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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그러려니 한다
창비에게 출판업은 문화사업이라는 긍지가 있을까 묻고 싶지만 그 대답 또한 신뢰하기 어렵다
그저 과거로 부터 이어온 출판권력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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