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요한 순간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 인플루엔셜 / 328쪽

(2019. 9. 6. ~ 9. 8.)

수학자 중에서 수학에 대해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말이 좀 이상해 보일 것이다. 수학을 하는 것과 수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이 차이는 예술가와 비평가 의 차이, 과학자와 과학철학자의 차이, 그리고 새와 조류학자의 차이 등과 비교한 수 있다.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활동적으로 깊이 있는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수학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싫어하고 이야기하기는 더더욱 싫어한다. 대표적인 예로 나의 저명한 옥스퍼드 동국 수학자 엔드류 와일은 수학이 이렇고 저렇고 어찌구저찌구 하는 말은 질색이라는 인상이다. 이런 태도는 물리학 이론, 특히 양자역학의 해석을 두고 복잡하고 끝없는 담론이 필쳐 지는 데 대해, 여느 물리학자가 못을 박으며 심각하게 비판하는 말에도 잘 나타난다. “입 다물고 계산이나 해!” 나 자신은 일생 동안 일종의 아마추어 수학자로 살아왔다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항상 수학을 하는 것보다 수학에 대해서 생각 하는 것을 더 즐겼던 것 같다. 그렇다고 '수학 철학자' 가 되고 싶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그저 살아남을 만큼 수학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가 시간에 수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제일 적격인 것 같다. 그 때문에 나는 수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그 의중에 무언가 창출되는 것이 있으면 그래도 나은데, 말만 하는 것은 이득을 줄 만한 학문적인 업적은 당연히 못 되고 뚜렷하게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P.2)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과 만납니다. 단순하게 해 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기나 어떤 답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런 때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길을 보여줍 때가 있습 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일 것입니다. 수학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질문올 거듭하며 우리의 사고 능력을 고양시켜온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P.6)

지금 우리에게 다소 어려운 문제들도 언젠가는 상식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능과 상상력에 어떤 차이가 있다면,그것은 수학적인 이해력의 차이 때문일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새로운 사고가 상식이 되는 과정도 수학적인 이해력을 바탕으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학적인 이해력은무엇일까요?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에게 '수학은 무엇인가' 라는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한 여행입니다. 이 책은 강의를 하면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회는 생각이 서로 다른 이 들이 만나는 방법입니다. 때문에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것은 각자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해하는 정도가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함께 여행할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위치도 매우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길 위에서 서 있는 지점이 다르다 해도, 그 길은 같은 길이고,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여행이 각자의 방식으로 즐겁기를 바랍니다.

​(P.19)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리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approximation' 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 과정,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기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 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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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2

서머싯 몸 / 송무 / 민음사 / 526쪽

(2019. 9. 1. ~ 9.

「얼마간은 재미로 읽죠. 버릇이 그렇게 된 데다 읽지 않으면 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처럼 안정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얼마간은 제 자신을 알고 싶어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제 눈으로만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가끔은 제게 의미가 있는 어떤 구절, 아니면 어떤 어구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걸 만나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제 일부가 되지요. 전 제게 도움이 되는 것만 책에서 얻어내요. 같은 걸 열 번을 읽는다 해도 더 이상은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독자란 마치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읽거나 행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해요. 다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들은 꽃잎처럼 열리자요. 하나씩 하나씩 말예요.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활짝 핀 꽃을 보게 되는 겁니다」

(P.23)

필립이 오래전에 내린 결론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무엇보다 재미있지만 실생활에서의 효용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블랙스터블에서 깊은 사색 끝에 확립한 그 적절한 작은 준칙도 밀드레드에게 넋을 빼앗기고 있을 동안은 별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성이 구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삶에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필립은 그를 꼼짝 못하게 사로잡았던 격정, 그리고 밧줄로 땅바닥에 꽁꽁 묶인 듯 그 격정에 저항할 수 없었던 무력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책에서 지혜로운 말은 많이 읽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체험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 그것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고, 하지 않으면 어떤 피해가 따르는지 좀처럼 계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 존재가 불가항력으로 떠밀려갔다. 존재의 일부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존재 전체가 움직였다. 그를 휘어잡았던 힘은 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성이 하는 일이라고는 온 영혼이 갈구 하고 있는 그것을 쟁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뿐이었다.

머캘리스터〈너의 모든 행위가 만인의 보편적 행위 원리에 맞도록 행동하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定言命令)을 상기시켰다.

「제겐 전혀 의미 없는 말처럼 들려요」필립이 말했다.

「대단하군. 임마누엘 칸트의 말에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왜요? 남의 말이나 존경하는 건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 아녜요? 사람들은 남의 말을 너무 지나치게 존경해요. 칸트의 사상이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방식으로 생각한 것에 불과하죠」

「그래, 자넨 정언 명령을 어떻게 논박하려는가?」

(그들은 그것을 마치 제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처럼 이하기했다.)

「정언 명령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또한 이성이 가장 확실한 안내자인 듯이 말하고 있죠. 왜 이성의 명령이 감정의 명령보다 우월해야 되는 겁니까? 서로 다를 뿐이지요. 제 말은 그겁니다」

「자넨 정념의 노예로서 만족하나 보군」

「어쩔 수 없어 노예가 되는 것이지 만족하는 노예는 아니지요」필립은 웃었다.

(P.27)

필립은 이전에 자기 나름으로 확립했던 철학을 생각하며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 철학은 그가 겪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상이 인생의 중대한 문제들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다. 그 자신 어떤 낯선, 그러면서도 자기딴에 자리잡은 어떤 힘에 좌지우지되어져 온 것 같았다. 그 힘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쉴새없이 몰아갔던 그 지옥 바람과도 같이 그를 몰아갔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사고하지만, 막상 행동의 순간이 닥치면 본능과 감정,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무력해지고 말았다. 마치 그는 환경과 성격이라는 두 개의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그의 이성은 방관자처럼 사실을 관찰할 뿐, 무력하여 개입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천상에서 인간의 행위를 내려다보지만 현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에피큐로스의 신들 같았다.

(P.130)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크론쇼는 냉큼 대답하지 않았다. 할말을 찾는 모양이었다.

​「때론 두렵네. 혼자 있을 때는」그는 필립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자네는 그걸 벌이라고 하겠나? 아닐세. 난 두려움을 꺼리지 않네. 어리석지 않나. 언제나 죽음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저 기독교의 말 말일세.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는다는 걸 잊는 것일세. 죽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네, 현명한 인간이라면 죽음의 공포 따위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아. 그야 나도 죽을 때에는 살려고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미칠 듯이 무섭겠지. 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온 내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곤 못 배기겠지. 하지만 말일세, 난 그 후회를 인정하지 않네. 내 지금 비록 허약하고, 늙고, 병들어 가난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페르시아 융단을 기억하십니까?」 지난날의 저 여유 있는 미소가 크론쇼의 입가에 떠올랐다.

「자네가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서 내가 그 융단이 해답을 줄 거라고 했지. 그래, 해답을 찾아냈나?」

​ 「아뇨」 필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해 주시지요」

​ 「아냐, 아닐세. 그럴 수 없네. 스스로 찾지 않는 해답은 의미가 없네」

(P.164)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크론쇼는 냉큼 대답하지 않았다. 할말을 찾는 모양이었다.

​「때론 두렵네. 혼자 있을 때는」그는 필립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자네는 그걸 벌이라고 하겠나? 아닐세. 난 두려움을 꺼리지 않네. 어리석지 않나. 언제나 죽음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저 기독교의 말 말일세.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는다는 걸 잊는 것일세. 죽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네, 현명한 인간이라면 죽음의 공포 따위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아. 그야 나도 죽을 때에는 살려고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미칠 듯이 무섭겠지. 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온 내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곤 못 배기겠지. 하지만 말일세, 난 그 후회를 인정하지 않네. 내 지금 비록 허약하고, 늙고, 병들어 가난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페르시아 융단을 기억하십니까?」 지난날의 저 여유 있는 미소가 크론쇼의 입가에 떠올랐다.

「자네가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서 내가 그 융단이 해답을 줄 거라고 했지. 그래, 해답을 찾아냈나?」

​ 「아뇨」 필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해 주시지요」

​ 「아냐, 아닐세. 그럴 수 없네. 스스로 찾지 않는 해답은 의미가 없네」

(P.164)

노력과 결과는 전혀 맞아들지 않았다. 젊은 시절 빛나던 희망을 가졌던 대가는쓰라린 환멸뿐이었다. 고통과 병과 불행의 비중이 너무 무겁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인생을시작할 무렵의 그 드높았단 회망, 그의 육체에서 비롯했던 어쩔 수 없었던 한계, 친구다운 친구가 없어 느꼈던 외로움, 청년기 내내 견뎌내야 했던 애정의 결핍 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늘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참한 실패를 맛보아야 한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조건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또 어떤 사람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실패한다. 만사가 순전히 우연이란 말인가. 비(雨)는 착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내린다.그런데 인생에서는 어느 것에도 이유나 까닭이 없다.

크론쇼를 생각하며 필립은 그가 주었던 페르시아 융단을 떠 올렸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 갑자기 그 해답이 떠올랐다. 그는 픽 웃었다. 답을 알고 나니 수수께끼 문제를 받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답을 알아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가 답을 듣고 나면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해답은 분명했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우주를 돌고 있는 별의 한 위성 지구 위에서, 이 유성의 역사의 한 부분을 이루는 조건에 영향을 받아 생물이 발생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탄생했듯이 그것은 다른 조건 아래에서는 끝장을 볼지도 모른다. 다른 생명체보다 하등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 그 인간도 창조의 절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물리적 반응으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필립은 동방의 어떤 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 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 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 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 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출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 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필립은 벅찬 기쁨을 느꼈다. 소년 시절, 신(神)을 믿어야 한다는 무거운 신앙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이 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 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 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그는 우주의 역사에서 아주불은 순간, 지구의 표면을 점유하고 있는 바글대는 인간 집단 가운데 아주 하찮은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혼돈 속에서 허무의 비밀을 찾아냈으니 그는 전능자라 할 만했다. 필립의 벅찬 상상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얽히고설키며 잇따라 떠올랐다. 그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펄쩍펄쩍 뛰며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지난 몇 달동안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 삶이여!」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아, 삶이여, 그대의 독침은 어디 있는가?」

(P.363)

삶에 아무런 뜻이 없음을 마치 수학 공리의 중명처럼 힘있게 입중해 준 상상의 분출과 함께 또 하나의 사상이 용솟음쳤다 크론쇼가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해 주려 했던 듯하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 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쯜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 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빼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알지 못할 샘에서 흘러나와 알지 못할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사람은 과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 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 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 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삶들은-헤이워드의 삶도 그중 하나이지만-우연이라는 눈먼 무관심에 의해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끊겨버린다. 그래서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위안이 편하다. 크론쇼와 같은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늬다. 그러한 삶도 그 나름대로 정당하 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관점이 바뀌고 옛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 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P.366)

필립은 자기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인생을 양탄자의 무늬로 보게 된 자신의 사상을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권태이든 격정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 풍부하게 하니까. 그는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았다. 학생 시절, 학교 구내에서 대성당의 고딕식 건물을 바라 보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대성당 쪽으로 발길을 옮겨 구름 낀 하늘 아래 솟아 있는 거대한 잿빛 형상,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찬양과도 같이 높이 솟아 있는 중앙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연습장에서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다들 민첩하고 강하고 팔팔하다. 듣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외침과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청춘의 외침이 듣기를 강요한다. 눈앞의 아름다운 사물을 바라보는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P.419)

지난날의 기나긴 여정을 되돌아보며 필립은 자신의 과거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삶을 그처럼 힘들게 만들었던 불구도 받아들였다. 불구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졌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불구 때문에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도 아울러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괌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는 조롱과 멸시를 엄청나게 받아왔지만 그 조롱과 멸시는 그의 정신을 안으로 향하게 했고, 영원히그 향기를 잃지 않을 정신의 꽃들을 피워냈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그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오히려 드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알아왔던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생각해 보았다(그러고 보면 온 세상이 병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거기에 무슨 까닭이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은 불구이고 마음은 비뚤어진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에 병이 들어 심장이 허약하거나 폐가 허약했괴 어떤 사람들은 정신에 병이 들어 의지가 나약하거나 밤낮없이 술만 찾았다. 이 순간 필립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자와 같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맹목적인 우연의 무력한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필립은 그리피스의 배신을, 그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밀드레드를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 그네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한 가지 분별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잘못은 참아내는 일뿐이다. 그리스도가 죽어가면서 했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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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서머싯 몸 / 송무 / 민음사 / 518쪽

(2019. 8. 17. ~ 8. 31.)

그렇지 않아도 긴 소설인데 거기에 또 서문까지 붙여 더 길게 늘어뜨리게 되어 부끄럽다. 작가야말로 자기 작품에 대해서 말하기는 가장 부적합한 사람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저명 소설가인 로제 마르탱 뒤가릐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있다. 프루스트는 프랑스의 한 잡지에 자신의 위대한 소설을 논하는 무게 있는 논문 한 편이 실리기를 원했다. 그런데 자기 소설에 대해서는 자기가 누구보다 잘 쓰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책상 머리에 앉아 논문을 썼던 것이다. 그런 다음 역시 문필가인 젊은 친구 하나에게 자기가 쓴 글을 그 젊은이가 쓴 것처럼 이름을 붙여 잡지 편집자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젊은이는 부탁대로 했는데 며칠 뒤에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당신의 글을 실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작품에 대해 그처럼 피상적이고 둔감한 비평을 실었다가는 마르셀 프루스트 씨가 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것이었다. 작가들은 보통 자신의 작품에 민감하여 호의적이 아닌 비평에 대해서는 화를 내는 경향이 있지 만, 그렇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들은 많은 시간과 노고를 들인 자신의 작품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 점을 생각하면서, 더러 만족스럽게 여겨지는 대목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쁘게 생각하기보다는 본래의 생각을 완전히 표현해 내지 못한 점을 훨씬 더 괴롭게 느끼는 법이다. 완벽함을 지향했으나 거기에 도달 하지 못했음을 참담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P.5)

극작의 경험을 통해 나는 간결성의 가치를 배웠다. 나는 두 해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했다. 책의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도 몰랐다. 이것저것 한참 생각해 보고 난 뒤에야〈재속에서 나온 미인>이라는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말을 생각해 냈는데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 즈음에 이 제목을 누군가가 이미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제목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스피노자의 『윤리학』가운데 한 권의 제목을 골라 내 소설의 제목을 『인간의 굴레에서』라 붙이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제목을 붙일 수 없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또 하나의 행운이었던 것 같다.

(P.9)

갓난아이는 자기 몸이 자신 의 일부임을 알지 못한다. 주변의 사물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 발가락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것이 옆에 있는 딸랑이가 아니고 제 몸의 일부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점차 고통을 통해서 제 육체의 실재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에도 같은 체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 육체를 독립적이고 완전한 유기체라고 의식하게 되는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같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자신을 완전하고 독립적인 개성으로서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대체로 사춘기에 오지만, 그렇다고 자기와 남들의 차이를 분명히 의식할 정도까지 발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인생의 행운아는 오히려 벌통 속의 벌처럼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행 복하게 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 같은 활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성령강림절 다음 월요일에 햄프스테드 히스 공원에서 춤추는 사람, 축구 시합을 구경하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 팰 맬 가의 클 럽 창문에서 왕의 행렬을 구경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러한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필립은 제 불구의 발이 불러일으키는 조롱을 통해 순진한 유년을 거쳐 쓰라린 자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상황은 퍽 특이하여 일반적인 경우에는 잘 들어맞는 기성의 규준도 그의 상황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따라서 혼자 힘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책을 많이 읽어 마음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반쯤밖에 이해하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을 더 많이 발동시켰다.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수줍은 성격 밑 저 안에서 무엇인가 자라고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필립은 그것이 자신의 개성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놀랄 때도 많았다. 어떤 일을 이유도 모르고 하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게 될 때에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P.80)

필립에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책 읽는 습관 때문에 홀로 될 수밖에 없었다. 독서를 안하고는 배길 수 없게 되어 친구들과 한동안 어울리고 나면 곧 피곤해지고 조바심이 났다. 책들을 섭렵하여 아는 것이 늘수록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정신은 늘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친구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경멸감을 감출 줄을 몰랐다. 친구들은 그가 잘난 척하는 게 못마땅했다. 별것 아닌 것들만 잔뜩 알면서 뭘 잘난 척하느냐고 비꼬았다. 필립에게는 유머 감각이 발달하고 있었다. 자기에게는 상대방 약점을 잡아내어 신랄하게 꼬집어주는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독설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 때문에 상대방이 그를 미워하면 몹시 기분 나빠하는 것이었다. 처음 입학 했을 때 당했던 굴욕 때문에 자연히 동료들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런 태도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늘 남들의 공감을 못 사는 일만 하면 서도, 그 자신 인기가 있었으면 하고 내심으로 바랐다. 남들은 인기를 얼마나 쉽게 얻던가. 인기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는 했지만,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인기 있는 애들에게는 더 빈정대기도 하고, 사소한 농담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지만, 처지가 바뀔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팔다리만 멀쩡하다면 학교에서 제일 미련한 애하고도 기꺼이 처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필립은 기이한 버릇에 빠졌다.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되어보는 상상을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남의 육체에 자신이 영혼을 집어넣고, 그의 목소리로 말하고 그의 웃음으로 웃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하는 모든 짓을 상상 속에서 해보았다. 어떤 때는 상상이 너무 생생해서 자기가 정말 딴사람이 된 것처럼 여겨 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빈번하게 그는 환상의 행복을 즐겼다.

​(P.118)

일행은 언덕 기슭을 따라 소나무 숲을 걸었다. 소나무의 향긋한 내음에 필립은 짜릿한 기쁨을 느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근한 날이었다. 이윽고 높은 곳에 도달하니 햇빛에 빛나는 라인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뻗은 들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저 멀리에 도시들이 보였다. 들판 한가운데로 은빛 강물이 띠처럼 구비구비 흐르고 있었다. 필립이 알고 있는 켄트 지방에는 이처럼 넓은 공간이 드물어서-바다에서만 유일하게 수평선을 볼 수 있었다-지금 눈앞의 이 아득한 거리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뭉클한 감정이 갑자기 벅차올랐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때가 바로 딴 감정과 섞이지 않고, 순수한 심미감만을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 세 사람은 벤치에 앉고 다른 일행은 먼저 갔다. 두 여자가 독일어로 뭔가 정신없이 이야기하는 동안, 필립은 가까이 여자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 버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겼다. 「아, 정말 행복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P.155)

인생에 좋은 게 두 가지가 있네. 생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가 그것이지. 프랑스에서는 행동의 자유가 가능해.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 다만 생각은 딴 사람들처럼 해야 하지. 독일에서는 행동은 딴 사람처럼 해야 하지만 생각은 마음대로 할 수 있네. 두 가지가 다 좋은 것들이지. 내 개인으로서는 생각의 자유를 더 중시하네. 한데 영국엔 둘 다 없지. 다들 인습에 짓눌려 살아. 마음대로 생각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어. 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이야. 하기야 미국은 더 심하겠지

(P.158)

그가 무엇보다 동경하였던 것은 세상 경험이었다. 그 나이가 되었으면서도 소설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쳐준 것을 즐겨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 자신이 바보같이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불행한 재능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꿈꾸던 이상과는 전혀 달랐다.

​필립은 인생의 나그네가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전에 메마르고 험준한 세상을 얼마나 넓게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젊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환상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 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 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에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 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해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이상적인 책들, 그리고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대화, 이 두 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박는 못이 된다. 이상한 것은 쓰라린 환멸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무의식적으로 저마다, 억제할 수 없 는 내부의 어떤 큰 힘에 의해 그 환멸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해이워드를 사권 것은 필립에게 최악의 일이었다. 헤이워드는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만사를 문학적인 분위기를 통해서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성실하다고 착각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관능을 당만적 감정이라고 잘못 알았고” 우유부단을 예술적 기질로 잘못 알았 으며, 게으름을 철학적인 초연함이라고 잘못 알았다. 그의 정신은 속물적으로 세련을 추구하였으며, 따라서 모든 것을 감상(感f剔)의 금빛 안개 속에서 실물 크기보다 약간 크게, 흐릿한 윤곽으로 보았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누가 거짓말을 한다고 지적하면 거짓말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관념주의자였다.

(P.200)

「난, 내 시작품에 대단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네. 인생이란 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있는 것이니까. 내 목표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그것이네. 삶의 순간순간에서 그 순간의 정서를 음미하면서 말야. 난 내 글쓰기를 말이지, 존재로부터 기쁨을 흡수한다기보다 거기에 기쁨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행위라고 보네. 후세의 문제는 말일세-후세 따원 상관없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니 자넨 재미있을 거네만, 아다시피 난 가난해서 조그만 다락에서 살고 있어. 미용사들하고 카페의 보이들이랑 짜고 나를 등쳐먹는 상스러운 여자하고 말이지 영국 독자를 위해 쓰레기 같은 책을 번역하기도 하고 욕먹을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그림을 보고 논평을 쓰기도 하지. 하지만 자네,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뭩지 말할 수 있겠나?」

「글쎄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아닐세. 자네 스스로 답을 발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그런데 자넨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라 필립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요컨대,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너도 남에게 하라는 것인가?」

「그런 셈이죠」

「기독교로구먼」

「아네요」 필립은 분개해서 말했다. 「그건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보편적인 도덕률일 뿐이죠」

​「보편적인 도덕률 같은 건 없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께서 술에 취해 지갑을 여기에 놓고 갔는데 제가 집어갔다고요. 제가 왜 지갑을 선생님께 돌려드려야 할까요? 이건 경찰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지옥이 무섭고, 착하게 살면 천당에 갈 테니까 그렇겠지」

「전 둘 다 믿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칸트가 정언명령(定言命令)을 생각해 냈을 때도 그랬어. 자넨 신앙을 버렸지만 신앙에 바탕을 둔 윤리는 버리지 않았어. 어느 모로 봐도 자낸 아직 기독교인이야. 그러니 만약에 하늘에 신이 있다면 자넨 틀림없이 상을 받을 걸세. 전능하신 분이 교회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을 리 없어. 자네가 신의 법을 지킨다면, 내 생각엔, 자네가 믿든 믿지 않든 신은 상관하지 않을 거네」

​(P.348)

「자네, 클뤼니 미술관에 가봤나?거기 가면 페르시아 양탄자들이 있네. 색조가 절묘하기 짝이 없고 무늬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지 보기만 해도 절로 즐거운 감탄이 나오지. 그걸 보면 자넨 동방의 신비와 관능미가 부인지 알 수 있고, 하피즈의 장미와 오마르의 술잔을 볼 수 있네. 하지만 거기에서 곧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지. 자넨 금방 인생의 의미가 무어냐고 묻지 않았나. 가서 페르시아의 양탄자를 보게, 그러면 조만간 답을 얻을수 있을 걸세」

「난해하군요」필립이 말했다.

「난 취했네」크론쇼가 말했다.

(P.357)

「저 말야. 와서 내 그림 좀 봐주지 않겠나? 의견 좀 듣고 싶네」

「아니, 그런 거 않겠네」

「왜 말인가?」필립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이런 부탁은 그들끼리 으레하는 것이었고 아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클러튼은 어깨를 으쪽했다.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그림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겐 중요하네J

「아냐,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그건 마치 우리 신체의 기능과 같아. 소수만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네. 그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생각해 보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캔버스에 뭔가를 담으려고 하면서 영혼의 땀을 쏟아붓는가? 그런데 결과는 뭐지? 십중팔구 살롱에 낙선하고 마네. 입선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면서 고작 몇 초 동안 슬쩍 보고 말 뿐이지. 운이 좋으면 어느 바보가 그림을 사다 벽에 걸어놓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 작자는 별로 보지도 않네. 식당 방 식탁을 별로 보지 않듯이 말야. 비평이란 화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세.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화가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화가는 자기가 보는 대상에서 독특한 감각적 인상을 받아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네. 그런데, 왠지는 몰라도, 화가는 선과 색채로서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거야. 음악가도 마찬가지지. 시의 한두 출을 읽으면 어떤 음들의 결합이 마음속에 떠오른단 말야. 왜 그 말이 왜 그러한 음들을 떠올리는지는 자기도 몰라. 어쨌든 그리 될 뿐이야. 그리고 말야, 비평이 왜 의미가 없는지 두번째 이유를 말해 주겠네. 위대한 화가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보는 방식으로 자연을 보도록 강요하네.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또 다른 화가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그 사람 자제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대 화가를 통해 평가하네. 바르비 종 화가들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나무는 이러이러하게 본 다고 가르쳤지. 그런데 마네가 나타나서 다른 방식으로 그리니까 사람들은 나무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말하는 거야. 어떤 화가가 나무를 그런 식으로 볼 뿐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단 말이네.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네. 우리가 우리의 시각을 세상 사람들에게 강제하게 되면 세상은 우리를 위대한 화가라고 부르지. 그러지 못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해. 그러나 우리 자신은 마찬가지야. 위대하다든가 시시하다든가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니 까. 우리가 그리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 니까」

(P.404)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필립은 이런 느낌이 들었 다. 진정한 화가나 작가, 음악가에게는 자기의 일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삶을 예술에 종속시키게 된다는 것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힘에 굴복하여, 자 신을 사로잡고 있는 본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느라 그들의 인 생은 살아보지도 못한 채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 버리는 것이 아 닌가. 필립에게는, 인생이란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야 할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삶의 다양한 체험을 추구하괴 삶의 매 순간이 주는 모든 감동을 향유하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행동을 취하고 그 결과를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P.411)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상체계를 접할 때마다 그는 가벼운 흥분으로 떨면서 거기 에서 혹 행위의 지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곤 했다. 자기가 미지의 나라를 여행하는 나그네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 으로 나아가면서 그는 점점 모험의 매혹에 빠져들었다. 남들이 문학을 읽을 때처럼 그는 철학을 감정에 빠져 읽었다. 마음속에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누군가의 멋진 글귀에서 발견하면 가슴습이 뛰었다. 그의 정신은 구체성을 지향했기 때문에 추상 적인 영역에서는 좀처럼 감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적 추론 을 따라잡지 못할 때도 불가해한 영역의 언저리에서 제 갈길을 영리하게 찾아나가는 얽히고 설킨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야릇 한 기쁨이 느껴졌다. 위대한 철학자의 글에서도 도움될 만한 말 을 발견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정신은 아주 편안한 공감을 주었다. 갑자기 광활한 고지에 올라선 중앙 아프리카의 탐험가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고 평원이 사방으로 쭉 펼쳐져 있다. 마치 영국의 어느 공원에 서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토마스 홉즈의 견실한 상식은 기쁨을 주었괴 스피노자는 외경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처럼 고결하괴 그처럼 가까이하기 어렵고 그처럼 준엄한 정신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스피노자의 정신은 그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로댕의 조각「청동시대」를 떠오르게 했다. 그 다음은 흄이었다. 이 매력적인 철학자의 회의론은 필립에게 친족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복잡한 사상을 음악적이면서 균제되어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해 내고 마는 투명한 문체에 취해 그는 입가에 기쁨의 미소를 띠고 마치 소설책을 읽듯이 읽아 내려갔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어디에서 읽었던가. 모든 사람은 플라톤주의자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 아니면 금욕주의자나 쾌락주의자로 태어난다고. 한편 조지 헨리 루이스의 이야기는 (철학이 헛소리라고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의 사상이란 그 사람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점을 알면 그 사람이 쓴 철학을 대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되어먹은 대로 생각하는 것 같기만 하다. 진리란 사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진리라는 것은 한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철학자이며,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이 세워놓은 정교한 사상 체계라는 것도 그것을 쓴 본안 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요컨대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러고 나면 철학 체계는 저절로 형성되어 나왔던 것이다. 필립에게는 알아내야 할 것이 세 가지라고 여겨졌다. 사람과 그가 몸담고 사는 세계와의 관계, 사람과 그가 함께 어울려 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그것이었다.

(P.429)

그는 이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만사는 목적에 순응할 뿐이었다. 그는『종의 기원』을 읽었다 이 책은 그 동안 그를 괴롭혔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듯했다. 이제 그는 자연 탐험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어느 곳, 어느 자리에 반드시 어떤 자연적 특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추론한다. 넓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과연 여기에 예상했던 지류가 있고, 저기에 생물들이 많이 사는 비옥한 초원이 나타나며, 더 나아가니 산맥이 보인다. 뭔가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지면 뒤에 세상사람들은 그 발견이 왜 그때 당장 인정받지 못했을까 하고 놀라게 ,되는데, 실은 그 발견을 인정한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 도 그 발견이 그들에게 미치는 결과는 미미하다.『종의 기원』을 맨 처음 읽은 사람들도 이성적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행동의 바탕이 되는 그들의 감정은 그 책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필립은 이 위대한 책이 나온 지 한 세대 뒤에 태어났다, 그래서 동시대요을 경악시켰던 많은 요소들이 이미 시대 감정 속으로 사라져버려 이제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 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생존경쟁의 장엄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이 암시하는 윤리적 규준은 그의 성향과 잘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힘이야말로 정의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P.432)​

한편에는 성장과 자기 보존의 고유한 법칙을 가진 유기체인 사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개인이 있다. 사회는 자신에 이로운 행위를 미덕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악덕이라 부른다. 선 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그 이상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죄란 자유인이 벗어나야 하는 편견이다. 사회는 개인과의 경쟁에서 세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법, 여론, 양심이다.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간지(奸智)로 대항할 수 있다. 꾀는 강자에 맞선 약자의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들키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는 세상의 말은 이 현실을 잘 말해 준다. 하지만 양심은 내부의 반역자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회를 편들어 싸우며 개인으로 하여금 적의 번영을 위해 자신을 바치도록 만드는데 이것은 터무니없는 희생이다. 분명한 사실은 국가와 의식화된 개인, 이 양자는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이용할 뿐으로, 방해자는 짓밟아버리고, 충실하게 복종하는 자에게는 훈장, 연금, 명예 등의 상을 준다. 후자는 독립적인 사람의 경우에만 강할 뿐인데, 편의상 국가 안의 삶을 요령껏 살아나가면서 어떤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돈도 내고 봉사도 하지만 의무감은 전혀 갖지 않는다. 또한 상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는 홀로 세상을 사는 나그네와 같아,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쿠크의 티켓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인솔자를 따라다니는 관광단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본다. 자유인의 행동에 그릇된 행동이란 없다. 자유인은 마음이 내키면 무엇이든 한다. 그의 힘만이 자신의 도덕에 대한 유일한 척도이다. 국가의 법을 인정하며, 필요하면 위반도 하지만 죄의식은 갖지 않는다. 벌을 받게 될 때에는 벌을 받되 원한을 품지 않는다. 사회가 힘을 쥐고 있 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개인에게 옳고 그름에 관한 생각이 없다면, 양심이 힘을 잃게 되리라고 필립은 생각했다. 그는 양심이라는 악당을 가습에서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승리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가 이전보다 인생의 의미에 한 걸음 이라도 더 가까이 간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왜 존재하는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까닭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크론쇼 의 페르시아 양탄자 비유를 생각했다. 크론쇼는 수수께끼의 해답으로 그것을 주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본인이 스스로 찾지 않는 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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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2

아케이도 준 / 이선희 / 인풀루엔셜

카멜 다우드 / 문예출판사 / 416쪽

(2019. 8. 16.)​​

자기 손을 떠나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더구나 처지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지는 법이다. 도키에디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은행은 원래 그런 곳이다.

한자와의 귀에 조만간 금융청 감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정보가 들어온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P.23)

지금 가장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한자와 본인이다. 동네 주부들과 테니스도 치고 점심도 먹으러 다니는 하나가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하나는 “당신은 자기가 좋아서 일하는 거잖아!”라고 되받아친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자와 책임이고, 그로 인해 기수을 내팽개치는 일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P.49)

평생 편하게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은행 건물을 나와 교바시의 주상복합 건물 3층에 있는 회사로 들어가면서 곤도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뜻일까? 그런 뜻이라면 물론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병에 걸려도 은행에서는 이렇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먹고시는 것의 대가로 입행 당시에 가졌던 꿈과 희망 그리고 자존심은 어딘기에 던져버려야 했다.

인생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먹고살 걱정은 없다'는 보증도 바야흐로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곤도는 은행에 소속된 채 '조건부'로 다미야전기에 파견 나은 신세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도 앞으로 2년이 있으면 끊어진다. 그 시점에는 은행을 그만두고 다미야전기에 정식으로 전직해야 한다.

다미야전기라는 작은 회사의 일원이 되어서 병이 재발해도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을까? 다미야가 그것을 허락한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다미야는 은행에서 파견 나온 곤도의 말과 행동을 항상 냉소적으로 쳐다보았다.

곤도에게는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곤도의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월급쟁이 출신으로, 그들에게는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노후를 지낼 만큼의 여유밖에 없다. 곤도는 자기 부부가 멀리 떨어진 외로운 바다에서 어린 아이들을 껴안은 채 고무보트를 타고 표류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고무보트에는 구멍이 나 있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른다

(P.57)

은행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일 위를 달리는 롤러코스터의 승객이다. 처음에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지만 점점 길이 험해지면서 이윽고 급류 위를 건너거나 깎아지른 절벽을 질주한다. 말 그대로 높은 산과 험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긴 여행인 것이다.

입행 4년치쯤에 나타나는 최초의 커브 길에서 탈락한 자들은 이듬해에 동기들보다 기본급을 적게 받고, 과장대리로 승진하는 레이스에서도 뒤처지게 된다.

출세하는 사람과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미 20대에 정해지고, 마흔이 넘으면 롤러코스터의 여기저기에 빈자리가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대량 채용 시대였던 거품 경제 시대에 입행한 행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량 채용인데다 은행의 합병으로 인해 윗자리는 더욱 줄어들어서, 아직 를러코스터의 난간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탑승팀과 탈락팀 사이에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메우기 힘든 틈이 벌어진다.

(P.112)

“나도 사장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 그때마다 사장이 뭐랬는지 알아?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더군. 나는 이 회시에서 20년이나 있었어. 20년째 계속 과장으로 말이야. 한마디로 말해 나는 기둥에 박한 못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그 못에 걸리는 달력이 매년 바뀌어도 나는 바뀌지 않아. 녹이 슬어 서 뽑힐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그런 인생을 상상이나 할수 있어?”

“인생은 바꿀 수 있습니다!”

노다의 힘없는 눈동자 속에서 작은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곤도는 그 눈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지요. 지금 당신은 위축된 월급쟁이 근성을 그대로 드러낸, 한심한 아저씨에 불과합니다. '노'에 비해 '예스'란 말은 몇 배나 간단하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 월급쟁이가 '예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일은 무미건조해 지는 겁니다!”

곤도는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른 뜨거운 덩어리를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옛날,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희몸에 받고 신설 지점의 설립준비위원으로 발탁되었다. 아키하바라 동부 지점에 발령을 받았을 때, 온몸을 휘감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에 경험한 지옥 같은 날들과 너무나 대조적인-어느 의미에서 는 순수했던 -감정으로써 .

아무리 기를 써도, 아무리 이를 악물고 발버등쳐도 실적이 오 르지 않았다. 자신이 담당한 구역을 하루도 빠짐없이, 말 그대로 신발 바닥이 닳을 만큼 돌아다니는 사이에 미음의 소중한 부분 까지 닳아 없어진 나날들.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열리는 실적 회의에서, 두 눈에 부을 켜고 실적을 올리려는 지점장에 게 욕설을 들으면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을 때, 자신은 무슨 말홀 들어도 “네”라고빆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좋아했던 일, 잘할 수 있었던 일은 잿빛 모래 산으로 변하고, 어느새 위에서 시 키는 대로 삽으로 모래를 퍼서 다시 메우는• • •••• 그런 허무한 들이 반복되었다.

'일은 대충하고 여가를 즐기며 편안하게 살자.'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하 루의 절반이 넘는다. 따라서 일을 포기한디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을 포기한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소중한 일을 어떻게 포기言는가! 아무 생각 없이 적당히 하는 일만큼 시시한 것은 없

다. 그렇게 시시한 것에 소중한 인생을 바쳐야 하는가.

어쨌든 이 건은•••••• 곤도는 현실로 돌아와서 펼쳐진 원장의 페이지를 볼펜으로 톡 톡 두들겼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조사할 생각입니다. 사장님께 서 뭐라고 하든 말이죠. 만약 돌려받을 예정이 없다면 라파예트 라는 회시에 빌려준 3천만 엔을 특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특손은 특별 손실을 말한다. “세무상으론 손실로 처리할 수 없어 . " 곤도가 노다의 반론-을 일축했다.

'그건 세법상의 얘기지요. 나는 우리 회사의 회계 얘기를 하는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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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아케이도 준 / 이선희 / 인풀루엔셜

카멜 다우드 / 문예출판사 / 416쪽

(2019. 8. 13.)​

이른바 메가뱅크의 하나다. 도로에 본점이 있는 도고중양은행 간사이 본부의 점포는 약 50여 곳. 그중에서 오사카서부 지점은 오사카 본점과 우메다, 센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4대 지점의 하나로, 이른바 중핵 점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사노는 오랫동안 인사 분야에서 일해온 엘리트 은행원으로, 지점으로 나온 것은 18년 만이다. 지점장 경험을 잘 살리면 임원 자리가 코앞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실적을 올리려고 필사적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그렇듯이 도코중양은행도 합병으로 탄생한 은행으로, 자리에 비해 갑자기 행원 수가 많아졌다. 젊은 은행원 쪽에서 보면 예전에는 일류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보장되었던 과장 자리가 멀어지고, 순조롭게 은행원 길을 걸어온 아사노만 해도 부장 승진이 좁은 문이 되었다.

기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기회를 놓치면 잘해야 다른 지점의 지점장으로 수평 이동이고, 운이 나쁘면 관계사로 파견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아사노처럼 동기 중에서 선두로 달려온 자존심 높은 엘리트에게 출세의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굴욕임이 들림없다.

(P.35)

접수처에 은행 명함을 내밀자 “어서 오십시오”라는 말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라는 말도 없이 재빨리 접견실을 가리켰다. 은행 간판을 믿고 거드름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빈말이라도 친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사내에 활기가 없고 긴장감이 부족하며 해이해진 느낌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시시덕거리는 사람은 있어도 전회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전화벨이 귀에 거슬릴 만큼 계속 울려 퍼졌다. 손님인 한자와 일행이 근처를 지나가도 인사를 하기는커녕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한자와는 접견실로 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는 결국 사람의 모임이기 때문에, 사원의 모습을 보면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P.38)

부도란 당좌예금의 잔고 부족으로 기업이 할 수 없는상횡을 가리킨다.

참고로 당좌예금이란 기업이 주로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개설 하는 계좌로, 발행한수표나 어음은 이 계좌의 잔고에서 빠져나 간다. 편리하긴 하지만 이자는 한 푼도 붙지 않는 게 특징이다.

부도어음이란 서비스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상대 은행에게 내밀고 지급을 의했는데 “당좌예금의 결제 지금 부족으로 지급할 수 없다"라고 돌아온 어음을 말한다. '결제'라는 단어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쉽게 말하면 '지급'이란 말과 똑같다.​

경기가 나빠지면 어음을 결제할 수 없어서 어음 결제 기일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늘어난다. 연기에 이은 연기로 좀처럼 결제가 되지 않는 어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열 달 열흘짜리 어음은 임신이음, 210일짜리 어음은 태풍어음이라고 하고, 비행기 어음은 좀처럼 결제가 되지 않지만 가끔 결제되는 어음을 가리킨다.

다시 옆길로 새지만 일부러 '1차' 부도라고 횟수를 표기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어음 부도는2차까지 있기 때문이다. 1차부도에서는 제도상의 벌칙은 받지 않지만 두 번째 부도를 내면 자동적으로 어음교환소에서 거래정지처분을 받음과 동시에 "너는 믿을 수 없으니까 어음이나 수표를 몰수하겠다"라는 통지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난 또. 뭐라고. 부도라고 해도 어음과 수표를 발행할 수 없는 것뿐이짆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태는 기업 신뢰도에 치명타가 되고 “어음을 몰수당하는 녀석과는 절대로 거래한 수 없다!"는 반응으로 이어져서, 대부분 거래처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너에게 판 물건의 대금을 당장 현금으로 지급해!"라고 요구하면서 이른바 채권자라는 이름의 단체가 회사에 몰려오고,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하면 상대가 아무리 사정해도 빨간 딱지를 덕지덕지 붙여서 압류한다. 험상궂게 생긴 형씨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때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세상에서 말하는 '도산'이 되는 것이다.

(P.75)

“그 말은 곧 은행의 상식이 세상의 비상식이라는 거잖아!”

(P.134)

“과장님, 어떡하실 생각이세요? 위쪽에 보고하실 건가요?"

가키우치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아사노에게 보고하면 괜히 귀찮아질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을 한자와에게 떠넘기는 아사노의 행동도 미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회수할 전망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기 공으로 돌릴 것임이 를림없다. 그런 녀석에게 섣불리 정보를 말해줄수는 없다.

“당분간 위쪽에는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 상황을 살펴보는 게 좋겠어. 위쪽에 말하면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가키우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동감입니다. 진정한 적은 항상 등 뒤에 있으니까요."

(P.151)

은행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오지만 태도가 나쁘다는 면에서 국세국 직원은 폭력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폭력배는 카운터 앞에서 큰소리로 고함을 치는 게 고작이지만, 이 녀석들은 은행 안에까지 우르르 밀고 들어와 국가 권력을 등에 지고 거들먹거린 끝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셔터 내리게 해줄까?” 라는 말로 협박한다. 잘못된 엘리트 의식과 일그러진 선민사상의 산물로, 한심한 자들이 권력을 가지면 이렇게 된다는 패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기 TV 드라마에 나왔던 인정 많고 너그러운 조사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P.154)

대출의 핵심은 회수에 있다-이것도 역시 은행의 본모습이다.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게 철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이것이 은행 대출의 근간이자 은행의 사고방식이다.

거품 경제가 붕괴되기 이전의 주거래은행은 기업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은행은 어디에도 없다.

호송선단 방식이란 이름하에 보호를 받았던 과거에는 은행이 어려움에 처하면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은행도 의리와 인정을 우선시해서 영세 중소기업에게도 돈을 빌려주었고, 산더미 같은 대손을 만들어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과거의 산물이 되고, 적자가 나면 은행도 도태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하여 은행은 이제 중소기업을 도외줄 수 없게 되었다. 거래 기업을 지켜온 일본적 금융 관행인 주거래은행제도가 붕괴한 이는, 똑같은 금융 관행이었던 호송선단 방식이 붕괴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은행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거래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은행은 이제 특별한 조직이 아니라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는 평범한 회사가 되어버렸다. 은행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거품 경제 시대까지였다. 어려울 때 도의주지 않는 은행은 실질적인 지위가 추락해서, 기업에게는 수많은 주변 기업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P.218)

“결국 문제가 생기면 승부는 정치력에서 갈리니까. 가네시로 녀석이 정치력이 조금 더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가지모토 선배도 착각을 했어. 불상사로 이어지긴 했지만 애초에 관리책임이 라기보다 부하직원의 악의였거든. 그걸 잘 아는 가네시로 지점장이 지켜줄 거라고 기대한 모양인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든 책임은 부지점장에게 있다는 걸로 결론이 나왔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 정말 어리석었군."

(P.248)

은행이라는 조직은 어디나 벌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실적의 공은 다음 전근으로 사라지지만 벌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특별한 회로가 작동하는 조직이 바로 은행이다. 그 곳에 패자 부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가라앉은 것을 두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 토너먼트 방식이다. 그래서 한 번 가라앉 은 것은사라지는수빆에 없다. 그것이 은행 회로다.

(P.332)

은행이라는 곳은 인사가 전부다.

어느 곳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그 평가를 측정하는 잣대는 인사다.

하지만 인사가 항상 공정하니곤 할 수 없다. 출세하는 자가 반드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어디나 마찬가지고, 그것은 도쿄중앙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자와는 은행이라는 조직에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고색창연연한 관료체질.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위장할 뿐, 근본적인 개혁은 전혀 없을 만큼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만연 히는 보수적인 체질 탓에 젓가락 드는 자세까지 집착하는 유치 원 같은 관리체제. 특색 있는 경영방침을 낼 수 없는 무능한 임원 들. 대출에 소극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세상 사람이 수긍할 수 있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오만한 체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한심한 조직이다.

그래서 내가 바뀌주겠다 - 한자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업 2부 차장직은 그러기 위한 발사대로써 더할 나위가 없는 자리다. 수단이 어떻든 간에 출세하지 않으면 이보다 시시한 조직은 없다. 그것이 은행이다.

예전에 산업중앙은행의 입사시험을 봤을 때, 그는 멋진 꿈을 꾸었다. 이 굉장한 조직을 자기 손으로 움직여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거품 경제의 광기가 사라지면서 은행을 아름답게 치장했던 수많은 도금이 하나, 또 하나 벗겨졌다. 그리고 지금 은행은 처참하리만큼 볼품없는 납덩이 성(城)으로 변했다.

은행이 특별한 존재였던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은행은 세상에 존재히는 수많은 업종 중 하니에 불과하다. 볼품 없이 추락한 은행이라는 조직에서 예전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반대로 이 조직을 자신의 손으로 바뀌보고 싶다는 한자와의 생각은 오히려 강해졌다.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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