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어스 / 전은경 / 문학동네 / 128쪽

(20.2.27.)

오름은 그의 정신을 해방시켜 멀리 위쪽 우주의 어느 장소로 인도했다. 온갖 예술 아이디어가 만나고 결합하는 곳이었지. 물질도, 생명체도, 단 하나의 원자 재료도 없는 행성이었지만 상상력이 뭉쳐 있어서, 가까이 있는 별들을 춤추게 했지. 내 친구는 그곳에서 순수한 판타지에 푹 잠겨, 대부분의 이들은 평생 겸험 못할 힘을 가득 채웠다. 그 힘의 장에 한순간만 머물러도 장편소설을 너끈히 생산해 낼 수 있었지. 모든 자연법칙이 사라진 것 같은 기이한 장소였다. 차원들이 정리 안 된 원고처럼 겹쳐 있고 죽음은 그저 허튼 농담이고 영원도 눈 깜짝하는 순간과 같은 곳. 그 장소에서 돌아온 내 친구의 머릿속은 이미 모두 결합되고 갈고닦은 단어와 문장과 아이디어로 꽉차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냥 줄줄 쓰기만 하면 되었어. 그는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너무 탁월해서 행복했지만, 자기가 직접 기여한 것은 거의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 내 친구는 오름의 영향력 아래이 이야기를 쓰고 여러 번 읽고 나서 자신이 정말 시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P.53)

이 모든 일이 왜 네게 일어났는지 이상할 거야. 아주 간단해. 너는 글을 너무 잘 써! 네 원고는 오름이 완전히 관통했어. 우리에게 원고를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다!

문장 하나하나에 대부분의 책 한 권보다 많은 게 담겨 있어! 이 정도 질의 책을 한 권만 출간해도, 그때부터 독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책만 요구할 거야.

"네가 쓴 작품을 읽을 수 있는데, 독자들이 뭐하러 질이 떨어지는 책을 읽겠어, 계속계속?"

"다른 작가들도 널 본받겠지! 조금 덜 쓰지만 더 훌륭한 책을 쓸 거야......"

"넌 차모니아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바로 그 이유로 너 자신의 가장 끔찍한 적이기도 해!"

(P.58)

꿈꾸는 책들이 깨어났다! 연기 기둥이 몇 킬로미터나 솟아오르고, 무게를 잃은 종이와 타버린 생각들도 함께 솟구쳤다. 수많은 불꽃이 그 안에서 흩날렸고, 불꽃 하나하나가 타오르는 단어였다. 단어들은 별과 함께 춤추려고 높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마치 부흐하임의 검은 남자가 다시 부활해 집 한 채 한 채, 거리 하나하나, 구역 한 구데 한 군데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타닥거리며 타는 소리는 고통스럽게도 그림자 제왕이 웃음을 상기시켰다. 그도 부흐하임을 파괴하는 가장 크고 가장 끔찍한 화재에 휩싸여 불꽃을 튀기며 위로 올라갔다. 방화자이자 점화 불꽃이었던 그는 별이 되려고 위로 날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오름을 느꼈다. 오, 충실한 친구들이여, 오름은 단어들의 소용돌이로 내 머릿속을 채우더니, 심장이 몇 번 두근거리는 사이 여러분이 방금 읽은 이야기로 배열됐다. 나는 불타는 도시를 뒤로하고 출발해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앗다.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어스 / 전은경 / 문학동네 / 112쪽

(20.2.27.)

멀리서부터 이미 그 도시의 냄새가 난다.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냄새, 엄청나게 큰 고서점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 같다. 폭풍이 아는 듯하다. 책먼지로만 이루어진 폭풍. 그곳은 여전히 독서가 진짜 모험인 장소니까. 지금 이 이야기는 당연히 부흐하임.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대한 것이다.

(P.9)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생각이 햇살처럼 머릿속을 관통했다. 별똥별처럼 불꽃을 뿜으며 내게 쏟아져내리고, 쉭쉭 소리내며 뇌피질에서 타올랐다. 정확하고 유일무이한 눈송이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수정처럼 완벽한 문장들이었다. 단어는 다이아몬드가, 문장은 완관이 되었다.

나를 전율하게 만드는 냉기가 이 원고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얼음이나 눈 같은 지상의 냉기가 아니라......

장엄하고 영원한 우주의 냉기였다. 원고는 천재적인 문장으로, 시인이 나만을 위해 쓴 것 같은 예언으로 끝났다. 그 문장은 이랬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P.15)

우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서 벌어진 일은, 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평생 상상도 못했다! 네벨하임 트럼나팔 악사들은 악기를 연주해 내 뇌를 춤추게 만들었따! 끓는 액체에서 수증기가 빠져나올 때 이런 느낌일 테지!

음악이 된 자는 음향이 된다! 음향이 된 자는 파동이 된다! 그리고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게 뭔지 아는 자는, 오, 친구들이여, 우주의 기쁜 비밀에 꽤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아니면 깨어 있나?

화성 표면에 시를 깎는 회오리바람이 보였다. 우리는 낯선 차원을 표류한다. 얼어붙은 시간의 대양을 건넜다. 우리는 모든 상상력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나아갔다. 무중력상태였고, 몸이 없었고, 걱정거리도 없었다. 우리는 우주의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나는 우리가 사랍공원에서 연주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과 함께 춤을 추었다!

피스토메펠 스마이크가 허풍을 떤 게 아니었다. 음악이 왜 다른 예술보다 훨씬 뛰어난지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악기에서 풀려난 음악은 음악 그 자체다. 음악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16) 아톰 익스프레스 (2020-04)

아톰 익스프레스

조진호 / 위즈덤하우스 / 396쪽

(2020. 2. 19. - 2. 22.)

<야밤의 공대생 만화> 처럼 재미있게 과학을 소개시켜주는 만화책을 찾다가 알게된 책이다.

저자는 <판타스틱 과학책장>의 저자 중 한 작가였던 조진호 작가님인데

어메이징 그래비티 라는 재미있는 과학 만화책을 찾아 보다가 알게된 책

철학부터 열역학까지, 어메이징 <아톰 익스프레스>

김상욱

나는 <그래비티 익스프레스>를 읽은 후 바로 조진호 작가의 팬이 되었다. 중력 이야기를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철학 압문서로 손색없을 정도의 깊이로 다룬다는 것이 그 책의 매력이었다.《아톰 익스프레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다시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책을 철학에서 시작하는 것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원자'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쟁을 들여다보면 이런 질문의 답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걸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오늘의 과학이 일반인의 눈에 너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왜 일반인이 할 만한 질문을 다루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에 대한 논의는 이미 다 끝났기 때문이다. 남은 질문은 상식이나 경험으로 접근하기 힘든 것들이다.

원자는 경험으로 쉽게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근대의 원지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화학자다. 물리학자는 20세기가 들어서야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원자라는 개념을 만들어가는 화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 책을 통해 생생히 그려진다. 플로지스톤이라는 직관적인 개념이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아는 것은 '열(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음이 된다.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가 이렇게 쓰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화학이라고 하면 소금물의 농도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화학빈응에서 생성되는 질량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문제를 즐겁게 푸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 발견의 역사에서 이런 정량 분석은 문제의 핵심이었다. 숫자를 맞추려는 노력을 통해 원자의 본질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 과학의 많은 문제들은 실험과 이론이 정량적으로 불일치한 것인 경우가 많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수학은 자연의 언어다. 작가는 이런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을 양자역학이라 한다. 이 책에서 양자역학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이 책의 종착지는 양자역학의 시작점이다. 양자역학은 전기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원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힘이 전자기력이기 때문이다. 원자들로 이루어진 화합물의 전기분해를 연구하던 패러데이가 전자기유도 현상을 발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기에 대한 연구가 우리를 빛에 대한 이해로 이끈 것은 의외의 결과다. 빛을 이해하고, 전기라는 새로운 도구를 얻은 인류는 원자를 이해하는 양자역학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원자를 찾는 이 책의 여정에 전기가 포함되어 반갑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과학의 모든 질문은 원자로 귀결된다. 조진호 작가의 안내를 따라 모든 질문의 종착지, 원자에 다다르는 과학의 위대한 여정을 떠나보자.

​(P.4)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적 지식들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 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이런 문장일 것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영원히 운동을 계속하는 작은 입자로서 거리가 어느 정도 이쌍 떨어져 있을 때에는 서로 잡아당기고, 외부의 힘에 의해 압축되어 거리가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

- 리처드 파인만 -

(P.9)

정량적인 분석으로 물질을 탐구하는 리부아지에의 방법을 어느덧 과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화학 실험에서 질량과 부피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수치로 기록하는 과정을 과학자들은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된 것이다.

원소라는 것은 라부아지에의 말대로 화학적으로 분해하여 더 나올 것이 없는 상태가 된 물질을 뜻한다. 연금술사들의 염원과 달리 한 원소를 다른 원소로 전환시킬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더는 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고체, 액체, 기체가 개별적인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의 세 가지 다른 모습임을 깨달은 것이다. 얼음, 물, 수증기는 하나의 물질이 취하는 세 가지 모습이다. 각각의 모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주변 온도가 얼마나 차고 뜨거운지다. 뜨거울수록 형태는 수증기 같은 기체로 변하고, 차가우면 얼음 같은 고체로 변한다. 그 중간쯤이 액체다.

(P.93)

혼합물과 화합물을 구별해야 한다. 혼합물은 단순히 물질이 섞인 것이다. 여러 물질들이 얼마든지 다양한 비율로 섞일 수 있다. 하지만 화합물은 다른 차원의 섞임이다. 화합물의 구조를 보면 원자들 간의 작은 그룸이 기초를 이루는데, 이 구릅은 원자들 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딱 필요한 개수의 원자만을 필요로 할 것이다. 돌터에게 화학반응은 원자의 정체를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였다. 돌턴의 원자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생각에서만 머물렀던 것과 달리 일정 성분비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같은 화학의 엄연한 실제 현상으로 닻을 내리고 있다.

돌턴은 원자를 이용해 화학의 세계를 만들기로 한다. 첫째, 원소는 원자라는 매우 작은 최종 입자로 구성된다. 둘째, 원자는 크기, 질량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종류의 원자는 이 속성들이 완벽하게 똑같다. 즉 같은 원소의 원자들의 구별은 의미 없다. 셋째, 원자는 새로 만들어지지도 파괴되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다. 넷째, 화합물을 만들때 다른 종류의 원자들은 정수배로 결합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화학 변화는 원자들이 결합 또는 분리되면서 배열을 바꾸는 과정이다.

(P.103)

물질은 최소 단위 입자인 원자로 이루어진다. 원소별로 고유한 원자가 존재한다. 이 같은 단순한 가정으로 부터 완성된 것이 화학 체계이며 원소의 원자량은 화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수치다.

(P.138)

자연을 이해하려면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된다는 겁니다. 측정 결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 지를 궁리하는 것만이 과학자들의 소임 같아요.

(P.175)

전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힘은 전기의 양에 정확히 비례한다는 것이다. 패러데이의 전기분해 규칙 '전극에서 석출되는 화학 물질의 양은 전류의 크기와 시간을 곱한 값에 비례한다.!' 페러데이는 이 같은 규칙이 완벽하게 보편적인 것인지 가능한 많은 용액들을 전기분해해서 확인했다. 용액의 종류, 전극에서 석출되는 물질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석출되는 물질의 양은 항상 전류의 양과 비례했다.​

자연의 규칙을 한 발견했을 때, 얘기치 않은 추가적인 발견을 기적처럼 마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석출된 다양한 화학 물질의 질량 수치를 관찰하던 패러데이는 놀라운 발견을 한다. 또 다른 규칙이었다! 동일한 양의 전류로 인해 전극에서 석출되는 물질의 양이 주기율표의 원자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패러데이가 전기분해를 통해 낚아챈 두 가지 규칙이다. 첫째, 전기분해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의 양은 오로지 흘려준 전기의 양에 비례한다. 전극의 모양, 분해되는 전해질의 양, 전지와 전선의 종류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둘째, 전류의 양이 일정할 때 전국에서 석출되는 물질의 질량은 원자량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P.183)

열의 에너지를 한 형태로 인신학 일은 원자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단서다.

과학의 역사에서 무엇과 다른 무엇이 등가라는 것을 알 때마다, 인류는 인식의 높은 계단 하나를 성큼 올라서곤 했다. 과학적인 의미에서 A와 B가 등가라는 것은 둘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가속되는 좌표계에서의 자연법칙이 중력장 안에서의 자연법칙과 동일하다는 등가 원리를 이용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등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엄청난 진보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같은 의미로 열은 역학적인 일과 등가라고 말한다. 역학적인 일이란 당구공이 서로 부딪치며 난장판이 되는 상황, 대포알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상황, 무거운 것을 들고 10미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상황 등등과 어울리는 개념이다. 일의 양을 계산해내는 방법은 뉴턴을 필두로 한 고전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놓았다. 열도 온도계와 저울 등이 있으면 그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역학적인 일이 열로 변환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열이 일로 변환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열과 일, 둘은 등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건 열과 일이 어째서 서로 등가인가 하는 점이다. 망치로 철판을 두드리면 철판에 열이 생기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망치로 두드리는 역학적인 일이 철판의 온도로 올리는 상황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열과 일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는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에너지는 화학 변화, 운동, 빛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기차의 전진 같은 '일'로, 물이 끓는 것과 같은 '열'로... 에너지가 전환될 때의 형태는 이토록 다양하지만, 에너지의 총량은 변치 않는다.

​(P.244)

모든 가설은 역학적으로 잘 정의된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올바른 수학적 증명을 통해 명백한 결과로 이어져야만 한다. 만약 결과가 충분히 많은 사실들과 부합되면 그런 사실들의 진정한 본질이 모든 면에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족해야만 한다.

(P.291)

어쩌면 과학은, 있는 것을 발견하는 동시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무수한 이론들은 그러한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위험한 발언일지 모르지만, 과학을 움직이는 힘들 중에 분명 상상력이 있다.

그러나 이 상상력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을 바쳐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고

마침내 그 세계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어떤 과학자가 징검다리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원자의 존재가 증명되는 과정을 함께 지나오며 하나의 징검다리를 건너욌다.

우리는 또 하나의 강을 건너왔고 이제 또 이 길을 것이다. 다시 새로운 강 앞에 설 때까지.

(P.3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15) 판타스틱 과학책장 (2020-03)

판타스틱 과학 책장

이하음,조진호,이정모,이명현 / 북바이북 / 348쪽​

(2020. 2. 19. - 2. 22.)

​​

작년말부터 '아이들에게 권장해줄 만한 재미있는 과학책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재미있는 책을 찾으려다 보니 과학책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 졌다.​

우선 만화책과 과학책 소개하는 책들을 뒤져 보고 있다.

그중 오랫동안 많은 과학책들을 써온 유명한 저자들이 과학책을 선별해서 소개해주는 좋은 책을 하나 찾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 괴짜 과학자들의 이야기, 어른들이 읽을 만한 과학만화책들을 재미있게 소개해주고 있다.

꼭 읽어야 할 과학의 고전들에서 시작해서 고전들과 관련된 최근의 저작들 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앞으로 읽어볼 과학책 목록을 작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연선택설은 그다지 어려운 개념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 심지어 생물교시들도 오개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딱히 쉬운 개념도 아닌 것 같다.『종의 기원』은 재미없는 책이고 재미가 없으면 읽을 수 없다. 재미를 찾아서 조금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금 돌아가는 것이 나처럼 23년이 걸려서 한 권 읽는 것보다는 1704배쯤 낫다.

그렇다고 다짜고짜『다원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9)이나『찰스 다원 평전』(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2010) 같은 정통 평전을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들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된다. 일단 작고한 도서평론가 최성일이 쓴 양장본『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의 574~578쪽으로 시작하자. 그 다음에는 찰스 다원이 쓴『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만화『찰스 다원 : 그래픽 평전』(유진 번 글•사이먼 거 그림,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2014)을 추천한다.

평전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비글호 항해기를 다루고 있다. 항해기를 읽으면 비로소 다원을 사랑하게 된다.『찰스 다원의 비글호 항해기』가 최고다. 다원의 여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훔볼트를 알아야 한다. 훔볼트가 없었으면 다원도 없었다. 그리고 다원과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설을 발견한 알프레드 월레스의 탐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훔볼트의 대륙』(올리 굴케 지음, 최윤영 옮김, 2014)과『진화론 산책』(산 B.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살림Biz, 2012) 가운데 훔볼트와 그리고 월레스를 다룬 1~3장은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끝까지 읽어도 좋다.

최고의 만화책은『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제이 호슬러 글• 케빈 개년 외 그림, 김명남옮김, 궁리, 2013)다. 이 책이 10년만 일찍 나왔어도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다만 제대로 이해하려면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뭐는 그렇지 않겠는가. 장대익 교수의 해제가 붙어 있는『그래픽 종의 기원』(마이클 켈러 글• 니콜 레이저 풀러 그림, 이충호 옮김, 랜덤하우스고리아, 2010)도 좋다.

글로 된 책으로는 중학교 생물교사인 윤소영 선생님이 쓴 『종의 기원』(사계절, 2004)이 있다 윤소영 선생님은 다윈보다 다원의 진화론을 더 잘 설명한다. 다원 이후의 진화이론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다.

다원에서 최근에 이르는 진화이론을 논쟁적으로 살펴보기 를 원한다면『다윈의 식탁』(장대익 지음, 김영사:2008, 바다출판 사2014)이 최고다. 1859년 영국에서『종의 기원』이 나왔다면 2008년 한국에서는『다원의 식탁』이 나왔다. 다원 이후 150 년 동안의 진화론 발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외국 출판 사들이 왜 이 책의 판권을 사서 출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다 른 나라에는 이런 책 없다.

『종의 기원』안 읽어도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종의 기원』을 읽어야 할까. 위의 책들을 차례대로 읽었다면 힘들여서 재미없는『종의 기원』을 읽을 필요 는 없다. 그리고 아직 추천할 만한 번역본도 없다. 차라리 최신 진화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편이 낫다.

(P.21)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원소에 관한 종결자가 등장했다.『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2011)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더 이상 원소에 관한 책을 쓸 마음을 접었다. “이쑤시개를 하키스틱처럼 사용해 물령물령한 공들을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하자, 두 공이 닿는 순간 갑자기 한 공이 다른 공을 집어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공이 있던 자리에는 하나의 공이 홈집 하나 없이 흔들거 리고 있었다.” 머리말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원소 번호 80번인 수은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깨진 온도계에서 새어 나은 수은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수은의 영어 이름은 태양계 첫 번째 행성과 같은 머큐리다. 그런데 원소기호 'Hg'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스어로 물水을 뜻 하는 'hydr'와 은을 뜻하는 'argyros'가 합쳐진 말이란다.

이 책은 단순히 에피소드를 통해 원소를 설명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원소를 빙자하여 생물학에서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 전반을 소개한다.

(P.82)

다이아몬드의 논리는 명확하다. 문명 발달의 기초는 농업이며, 잉여생산물이 생기면 기술을 발달시킬 전문가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문자와 정치조직이 발달했다. 그런데 농업의 발달 정도를 결정한 것은 바로 환경이라는 것이다.『총.균.쇠』는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류사의 중요한 요소들을 한 권의 책 으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는 분명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P.92)

칼 세이건은『코스모스』에서 숱한 전설과 신화와 종교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것들이 좋든 싫든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온 배경이라는 자각을 하자고 말이다. 한때 인류에게 지혜를 선사한 것에 경의를 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우리는 과거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다. 현재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과거의 인식 체계 속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 칼 세이건 의 생각이다.

지금은 과학의 세계다. 과학적 인식론이 삶의 동력이 되어야 할 시기다. 과거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이자 지혜인 종교, 신화, 설화의 지혜로움에 경의를 표하지만 이제는 결별하자는 것 이다. 그들에 의해서 구축되었던 가치관, 도덕, 삶의 태도가 이제는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또 다른 변혁의 시대라는 것이다. 칼 세이건이『코스모스』에서 숱한 신화, 설화, 종교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이들과의 아름답지만 냉정한 이별을 위한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P.102)

『시간의 역사』는 결국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책장용 책이어야만 하는가. 좀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당연히 정통으로 현대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몇몇 천체물리학 마니아에게만 해당할 뿐,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먼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는 대중과학책을 통해서『시간의 역사』, 더 나아가서는 호킹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현정준이 옮긴『시간의 역사』(삼성출판사. 1990)는 현재 절판 상태다. 영문판은 여전하 공항서점 판매대에서도 구할 수 있다. 이런 책이 절판 상태여서 독자들이 구할 수 없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가 나와 있다. 솔직히 처음 호킹의 책을 접言는사람에게 나는『시간의 역사』보다는『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시간의 역사』와 달리 '벌레구명과 시간여행' 이리는 장을 하나 추가했고 개념과 현상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많은 그림을 보충했다. 가독성이 훨씬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시간의 역사』읽기의 첫 출발로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내용은 거의 같기 때문에『시간의 역사』를 따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읽은 후에는, 현정준이 옮기고 청림출판에서 펴낸『시간의 역사 2』(1995) 또는『쉽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2000) 읽기를 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두 책 모두 절판됐다. 사실 이 두 책은 같은 책이다. 제목을 달리 해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냈다.『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의 배경이 되는 숱한 에피소드를 다룬 책으로, 생생한 배경 자료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가 우주의 역사와 진화를 과학의 창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딱딱한 책이라면『쉽게 풀어 쓴 시간의 역사』나『시간의 역사2』는 그 배경이 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한 책이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그림 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의 가독성을 배가시길 수 있을 것이다. 이해도도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P.115)

토머스 s. 쿤이『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설명했듯이 과학도 시대의 산물이다. 새롭고도 탁월한 발견과 이론이 반드시 천재적인 과학자가 있어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뉴턴이 없었어도 만유인력의 이론은 나왔을 것 이고, 아인슈타인이 없었어도 상대성 이론은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과 동시대에 살던 이들 중에 그 이론을 자신이 먼저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여러 과학자들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특별한 인물이었던 이유가 있다. 바로 수많은 현상을 탁월하게 간결한 식으로 요약했다는 점이다. 물리학자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아름다운 공식 속에 모든 것을 담아냈다. 맥스웰도 마찬가지다. 패러데이나 가우스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전기와 자기를 해박하게 설명했지만, 맥스웰은 그들의 장황한 설명을 몇 개의 방정식으로 요약했다.

책도 마찬가지다.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다양한 양상을 이기적인 유전자의 활동으로 파악함으로써 멋지게 요약했다. 에드워트 월슨도『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생물학적 원리로 탁월하게 요약했다. 앞서 말한『과학 혁명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과학 발전의 양상을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로 탁월하게 요약했다. 이런 책들은 출간 당시에 화제가 될 뿐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는다.

화제의 책이 되기 위한 또 한 가지 조건은 시사성이다. 깊이 있게 잘 쓴 책이 시대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각각 2010년과 2014년에 큰 화제를 모았던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나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 그런 사례다.

사실『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40, 50대의 평은 다 비슷비슷했다. 그들이 대학 때 읽었던 온갖 사회과학서적들에 다 나온 이야기라고 말이다. 바꿔 말하면 그 책이 그 시대에 나왔다면 고만고만한 책들 중 하나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달라진 것은 시대 상황이다. 그 책들은 다시금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 불평등 문제가 회두로 제기되는 시대가 왔음을 말해준다.

다시『통섭』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그 번역서가 나온 시기는 우리 사회에 학문 간 융합이 화두로 떠오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번역서가 뒤늦게 7년 뒤에 나온 것이 오히려 시대 상황과 들어맞은 셈이었다.

이런 우연한 조합이 책에 행운이 되곤 하는 반면, '다윈 탄생 200주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처럼 기념행사에 맞추어낸 책들은 기대한 효과를 그다지 못 볼 때가 많다. 비슷한 부류의 책이 너무 많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니 출판이 요지경일 수밖에.

(P.189)

이제는 어른을 위한 과학만화책으로 돌아가보자. 『로지코믹스』(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글 •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외 그림, 전대호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는 과학교양 부문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과학만화책이다.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그의 생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칸토어,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폰 노이만, 괴델 등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들의 이야기도 주인공과 역여서 줄줄이 등장한다. 300쪽이 넘는 꽤 묵직한 만화책이지만 이 많은 이론을 소상히 담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면을 큼지막하게 그림으로 채우기 때문에 내용을 많이 담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단편적인 소개에 그친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불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수학과 논리학을 꽤 안다는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한 내용일 것이고, 반대로 관심과 소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머리 아프게 하는, 딱 그 정도의 난이도다

(P.269)

고전 중력 이론에 대한 여러 책들이 있지만 마리 비구뢰의『과학 안단테』(장 마리 비구뢰 지음, 림Books, 2008)를 추천하고 싶다. 고대 세계관부터 뉴턴의 만유인력까지 범위를 좁혀서 밀도 있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인물 이야기와 당시 사회적 상황이 적절하게 담겨 있으며, 스토리성이 대단히 풍부하다. 다른 책과 비교했을 때 내용이 대단히 세밀하다는 점도 인상 깊다.

게다가 수식도 전혀 없다. 고전 중력 연구는 수식을 거의 쓰지 않고, 직관과 상상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지 않은가. 이때는 정말 과학의 에덴동산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과학자들은 별을 바라봤고, 공상을 했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냈다. 중력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 중에 하나는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엄연한 현상을 엄청나게 추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추상적인 시공간을 머 릿속으로 많이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책과 맥락을 같이 고전 중력에 관한 책 세 권을 더 소개 한다. 사이먼 싱의『빅뱅 - 우주의 기원』은 빅뱅 세계관에 이르는 고전 과학의 역사를 서술한 수작이다. 만일 이런 책들을 읽고 욕심이 생긴다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과학의 탄생』(이영기 을김, 동아시아, 2005)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경고하건대, 이 책은 분량으로나 내용의 난이도로나 지독해서 체력과 인내심 을 공고히 하고 시작하는 것이 심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책으로는 필자가 쓴『어메이징 그래비티』가 있다. 이 책은 만화다.

(P.3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14) 머니볼 (2020-02)

​​

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 김찬별, 노은아 / 비지니스맵 / 424쪽

(2020.2.9. ~ 2.18.)

예전에 브래드피드 주연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은 있는데,

실제 원작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원작을 알게 되고 작년에 읽어볼려고

몇 번이나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결국은 읽지 못하고 반납을 몇번하나

나와 연이 없는 책인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쳐 가고 말았었다.

최근에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세이버매트릭스"와 관련된 내용을 생각하다보니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야구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통계에 대한 책이며 통계를 통해 기존의 기성세대(세력)에 대항한

사람들의 예기이며 그것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빅데이터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며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허무맹랑한 주장들의 시작에 관한 이이야기며

새로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제공해주는 책인것 같다.

================

외형적으로 머니볼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투자 기술처럼 보인다. 새로운 기록 분석법을 동원한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세이버매트릭스' 라고 불리는 통계학적 방법론이 곧 머니볼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탐구와 그 이면에 깔린 진정성까지 아우른 것이 머니볼의 진짜 모습이다. 빌리 빈 단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거액의 보너스를 받고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빅리그에 입성했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은퇴했다. 이후 그는 절대 돈을 목적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삶의 거친 굴곡을 겪은 빌리 빈이 반칙이나 편법 없이 순수한 성취를 위해 진심으로 고민한 결과가 머니볼을 설명하는 가치라고 감히 정의해본다.

2003년 책《머니볼》이 발간되고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실제 메이저리그의 문화도 그게 바뀌었다. 신인 선수 드래프트부터 선수들의 기록을 분석해 적용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4구를 얻는 능력이 값지다는 건 상식이 됐고,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더 세밀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노하우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수를 뽑고 연봉을 주는 구단은 더 이상 없다.《머니볼》에 소개 된 2002년 드래프트의 극적인 선수 선발도 이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됐다. 머니볼의 성공을 모방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게 기록을 분석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작용과 반작용을 거친 미니볼은 이제 과학 기술의 발전까지 얹어 경기장에서 실시간으로 공의 움직임과 선수의 이동 거리를 측정한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머니볼》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분석 방법은 시효가 지났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머니볼 덕에 숨기진 가치를 인정받은 해티버그와 브래드포드는 향후 수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꽤 높은 연봉까지 받았다. 스펙이 내실을 여전히 압도하는 우리 현실에서《머니볼》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가 작게는 위안을, 크게는 해답으로 가는 방법을 열어준다 이것이 다시《머니볼》을 읽는, 그리고 그때마다 매력을 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P.3)

퓨슨은 폴의 컴퓨터를 한참 노려보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퓨슨은 컴퓨터가 마치 자신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했다는 듯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 “그건 어디다 쓰려고 그러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도대체 뭘 하지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자 폴은 별일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통계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전부 다 출력해서 보는 것보다는 컴퓨터로 보는 게 더 편하니까요." 폴은 통계 수치를 이용해 아마추어 선수들을 새롭게 분석하고자 했다. 그는 경제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지만, 그의 실제 관심사는 단순한 경제 학보다는 심리학과 경제학의 접점에 있었다. 그는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 하는 사람이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살려 월스트리트의 금융 전문가로 일하며 쉽게 돈을 버는 것보다 야구 선수 뽑는 일에 훨씬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 바닥에서 일하며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로 선수 출신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전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둘째로 사람들은 최근의 성적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성적이 반드시 미래의 성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로 사람들이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거나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실에도 편견이 작용한다. 자신이 본 것에만 전적으 로 의존할 때 사람들은 환상 속에 갇히게 된다. 반대로 그런 환상을 뚫고 현실을 올바로 본 누군가한테는 돈을 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야구에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것도 많다.

(P.41)

빌리는 야구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1990년 오클랜드 메이저리그 팀 관계자들은 빌리가 스프링 트레이닝을 끝낸 뒤 메이저리그 벤치와 트리플A를 오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빌리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는 더그아웃을 벗어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 프런트를 찾아가 전력분석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전력분석원이란 앞으로 상대할 팀을 미리 살펴보고 상대팀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는 사람을 말한다. 빌리는 야구 선수로서 전성기에 들어선 나이에 선수를 그만두고 관전만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제나 경기를 즐긴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경기 도중 한 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제5의 외야수가 프런트 일을 맡겠다고 나서자 애슬레틱스의 구단 프런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치 출세한 정치인이 선거운동을그 만두고 선거사무소 직원이 되겠다고 하거나, 영화배우가 세트장 밖으로 걸어나와 카메라맨이 되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프런트 직원 중 메이저리그 출신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들은 모두 메이저리그 선수를 동경했다. 1년간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면 손목이라도, 그게 아니더라도 손가락 몇 개쯤은 기꺼이 포기할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도 당황했던 사람은 애슬레틱스의 단장 샌디 엘더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빌리를 프런트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때의 황당함을 이렇게 회상했다. “선수를 그만두고 전력분석원이 되고 싶다고 히는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를 고용한다고 해도 부담스러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전력분석원이 하는 일은 별게 아니었으니까요.” 빌리보다 앞서서 크리스 피타로도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스 카우터로 일하고 있었다. 빌리는 피타로에게 전화해 자신의 결정을 알렸는데, 그는 쉽사리 믿지 않았다. “시합에 나가면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생활을 포기히는 사람은 아 무도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죠. 난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한 겁니다. 그런데 빌리는 스스로 은퇴를 선택했어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결국 빌리 빈은 열일곱 살 이후로 줄곧하고 싶었던 말을 마침내 꺼냈다. 그는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빌리는 부질없이 매달렸던 재능에 대한 미련을 마침내 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 매를 맺지 못하는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야구는 기술일 수도 있고 요령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는 야구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근거 없는 기대와 꿈에 짓눌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과거에서 이제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빌리가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야구를 협오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그는 곧 야구의 신비주의를 무너뜨릴 무기를 쥐게 될 것이다.

(P.89)

"언제부천가 빌리는 호세 칸세코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기보다는 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어요." 1993년 앨더슨은 모든 일에 창조적 열정을 가지고 덤벼드는 빌리의 모습에 감명받아 그를 자신의 보좌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에게 저평가된 마이너리그 선수를 찾아오는 임무를 맡기면서 에릭 워커의 소책자를 건네주었다.

빌리는 워커의 소책자를 읽어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때의 흥분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야구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달랐어요. 나 역시 주관적인 사고에 매몰돼 있었지마, 이 책의 내용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워커의 책은 빌락 품고 있었던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야구를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야구인들이 만들어낸 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빌리 빈 역시 그러한 환상 속에 머물러 지냈던 사람이다.

빌리 빈은 자신이 성공을 원하는지 아니면 진실을 찾고 싶은지 구태여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며 그에겐 진실의 추구가 곧 성공의 열쇠이기도 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야구의 전통적인 통념에 대해 타고난 회의를 지니고 있었기에 에릭 워커의 소책자가 야구에 관한 급진적이고 합리적인 접근 방식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한 접근 방식은 단장에게 전례 없이 권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빌리는 에리 워커가 어디서 나타난 인물인지, 또 그가 쓴 책에 어떤 내용이 더 숨어 있는지 궁금해했다.

엘더슨은 이런 빌리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선수로 뛸 때는 그린 방식으로 하지 않았어'라 고 말할 상황에 빌리는 선수 시절의 모든 편견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어요.”

(P.99)

4년이 지나도록 제임스는 여전히 <야구 개요>를 자비로 출판하고 있었는데, 독지들의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내면의 독백처럼 시작했던 일이 처음에는 수십 명의 지식인이 주고받는 토론으로 발전하더니, 마침 내 바보들은 끼어들 수 없는 일련의 주장으로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다. 철저한 지성으로 무장한 야구 분석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이들의 연구 분야에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라는 명칭을 붙였다.-(미국야구연합회 Soceity ofr American Baseball Research_SABR 에서 따온 단어)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제임스의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그중 하나는 야구에 대한 분석이 상 호 검토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제임스와 달리 통계 이론에 깊은 관심과 이해력을 갖춘 사람들이 통계 작업을 수행했다. 과거에는 야구 연구가 별난 취미에 그쳤다면, 이제는 학문적 원칙에 입각해 일정한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좀더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그만큼 진전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참여한 고도의 교육을 받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단지 야구가 좋아서 뛰어든 것이었다. 대부분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성으로, 분석적인 성격을 지닌 이들한테 야구의 새로운 진실을 추구히는 일보다 더 큰즐거움은 없었다. 딕 크레이머는 이러한 즐거움을 "야구는확률론적 사고와 어울리는 연속극이다” 라는 말로표현했다.

(P.123)

1990년대 후반까지도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새로운 생각에 여전히 거부반응을 보였다. 마치 외부의 목소리에 이미 면역이라도 된 듯했다. 예를 들어 1999년 1월, 존 헨리라는 이름의 부자가 플로리다 말린스를 사들였다. 대부분의 구단주는 유산 상속자거나 대기업 회장, 아니면 둘 다였다. 하지만 헨리는 새로운 유형의 부자로, 금융시장에서 지능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인물이었다. 그는 통계분석을 통해 세상사의 비효율성을 파헤칠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금융시장에서의 비효율성을 이용해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야구 선수시장에서도 그와 유사한 비효율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훗날 헨리는 ESPN의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금융계와 야구계는 모두 확신과 편견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확신과 편견을 모두 없애고 데이터로 대체한다면 화실한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많은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장 그 자체는 생각이 없는, 즉 타성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지요. 사람들은 야구에서도 자신이 남보다 똑똑하며, 구장에서 벌어지는 경기 역시 자신의 믿음이나 이미지에 띠라 그대로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을 통해 얻어진 실제 데이터이며, 이는 개인의 지각이나 믿음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지요

(P.134)

빌리 빈은 1997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빌 제임스의《야구 개요》열두 권을 모두 읽었다. 제임스의 글은 마치 빌리를 향해 성공적인 야구 선수에 대한 잘못된 통념의 희생자라고 말하는 듯 했다. 또한 그는 빌리를 비롯해 용기가 있거나 변화를 원하는 구단주나 단장에게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임스가 《야구 개요》의 집필을 중단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그때까지도 이러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구단은 존새하지 않았다. 구단이 잡을수 있는 새로운 기회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야구계 외부에서 제임스와 다른 분석가들이 개발한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지식을 발전시키고 확장하는 것이었다. 오클랜드 애스레틱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선택했다.

애스레틱스가 제임스의 생각을 차용했다고 해서 그를 흉내 낸 것이라 고 말할 수는 없다. 엘리아스스포츠뷰로가 《야구 개요》를 표절하려고 했을 때 드러난 것처럼 제임스를 모방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주장하는 요지도 바로 모방자가 되지 말고 스스로 합리적인 방식을 찾자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대답이나 쉬운 해결책에 만족하지 말고 가설을 세우고 중거를 찾아 실험해보자는 것이다. 또한 유명한 야구 선수가 진실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나를 모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P.145)

1980년대 초반 미국의 금융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컴퓨터 기술과 지적 진보가 결합하면서 금융선물과 금융옵션이라는 전례 없이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옵션과 선물은 주식과 채권의 파생물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성격이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지는 바람에 월스트리트에서는 별도로 '파생상품'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새로운 파생상품은 기존의 주식이나 채권과는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선물과 옵션은 정확히 정량화할 수 있는 일정한 가치를 지닌다. 반면에 주식이나 채권은 그 가치가 정확하게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누구도 말할 수 없으며,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그러나 주식이나 채권의 파생물을 다시 원래대로 붙여놓으면 원래의 주식이나 채권, 즉 기초자산과 정확하게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 만약 파생물이 원래의 주식이나 채권보다 많다면 중권시장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고, 중개인들은 파생물만 거래함으로써 큰 이익을 남기게 된다.

그 뒤로 거의 10여 년간에 걸쳐 이 점을 빨리 간파한 사람일수록 사실상 위험부담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러한 계산 법을 남들보다 앞서 알아챈 이들은 일반 중권업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버드나 스낸퍼드, MIT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온 숙련된 수학자와 통계학자 그리고 과학지들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투자자들이 엄청난 거액을 벌어들이면서 월스트리트의 투자 행태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즉 직감에 의존하는 대신 정량적 분석을 통해 투자하게 되었다. 파생상품의 탄생이 낳은 경제적 의의는 오랜 기간 리스크에 집착해오던 금융인들한테 좀 더 정확하게 위험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또한 사회적 의의로는 큰 야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효율성'은 새로운 곧 '기회'로 연결된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동시에 똑똑한 '두뇌'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오랜 진리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는점을 들 수 있다.​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