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백휴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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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장르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이 가진 뉘앙스는 시간 때우기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문학성이 없는 문학이라는 게 흔히들 하는 생각이다.

 

나에게 추리소설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이다.

셜록 홈즈를 좋아했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어릴 때부터 읽어왔기에 나에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채워주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책을 다시 손에 잡기 시작한 것이 바로 장르문학을 통해서다.

판타지와 스릴러를 섭렵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를 하던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채워진 나름의 무게가 느껴지는 와중에 있었다.

나는 장르문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를 보자마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마음 한편에서 불편하게 자리 잡았던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에 쐐기를 박아 줄 책이라는 나름의 믿음으로 겁도 없이 읽어갔다.

철학을 전공한 추리소설 작가.

이 타이틀이 이 책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이 책은 추리소설 작가와 철학자를 한 팀으로 묶어 이야기한다.

이 생소한 작업이 아주 찰떡같은 궁합을 보인다.

철학에 철자도 모르지만 내가 즐겨 읽는 추리소설에 담긴 철학적 사유와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이 즐겁다.

이미 읽은 이야기들은 다르게 느껴지고, 아직 못 읽은 책들은 비교하며 읽어 보고 싶어진다.

 

 

하나의 상징으로서 밀실은, 분열된 자아들이 서로 다투는 투쟁의 장이자 의미가 동결된(투쟁의 결과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혹은 임계점으로서의 자기의식의 회색 지대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기본 정서는 노스탤지어 nostalgia다. 누가 뭐래도 마음이 과거라는 콩밭에 가 있는 것이다. 노년의 인간에게 대부분 나타나는 보편적 정서지만 크리스티의 경우 개인에게 국한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녀가 속해 있던 영국 부르주아 문화 전체가 노쇠 현상을 겪는 가운데, 예외 없이 그녀의 작품에서도 한없이 뒤를 돌아보는 듯한 만년의 쓸쓸한 모습이 드러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르헤스를 추리소설가로만 보는 것도 어리석지만, 추리소설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더 어리석은 평가다. 어쩌면 올곧이 포의 유지를 받든 이가 보르헤스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추리소설 작품이 예시로 담겨 있어서 철학의 무게를 덜어준다.

동서양의 추리소설 작가와 철학자를 이어준 기획이 매력 있다.

없다고 생각했던 추리소설의 깊이를 이 책이 설명해 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지금 <장미의 이름>을 읽고 있는 중인데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쓴 이유가 21세기는 추리소설의 시대라고 생각하며 크리스테바와 각자 추리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고 곧바로 실천에 옮겨 쓴 작품이라고 한다.

에코와 크리스테바 둘 다 사상가인데 추리소설을 썼다.

 

추리소설을 가벼운 읽을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추리소설 따위나 읽고 있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당신들이 모르는 추리소설엔 이렇게 다양한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올해는 가지고 있는 책을 읽겠다 다짐하고 책 쇼핑을 줄이기로 다짐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책들 중에 읽어 보지 못한 작가나 책들의 목록이 자꾸 추가되어 마음만 바쁘게 만든다.

 

빠르게 읽으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책이다.

천천히 공부하듯이 읽어 가면서 읽은 책들에 담겨 있었던 철학적 사고를 업그레이드하면 좋을 거 같다.

추리소설을 얕잡아 보는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알려줄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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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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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

 

키가 크고 볼품없는 소녀 소네치카에겐 책이 전부였다.

책 세상에 빠져서 독특한 개성을 지녔던 소네치카.

그녀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 본 로베르토 빅토르비치.

 

유대인 화가로 프랑스에서 명성을 얻은 빅토르비치는 러시아로 귀국해서 수용소 생활을 5년간 마치고 보호관찰 기간 중에 있는 중년이었다.

책벌레 소네치카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던 와중에 도서관을 찾은 빅토르비치에게 선택(?) 당해서 결혼하게 된다.

 

마치 현자의 돌을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늦은 밤 아내와의 대화는 과거를 정화하는 마법이었다.

 

 

 

원석을 알아 본 빅토르비치와 소네치카의 결혼은 서로의 존중과 신뢰를 얻었다.

전쟁 속 궁핍을 견디며 서로의 충만한 시간은 아주 짧게 흘렀다.

아이가 생기고 책과 멀어진 소네치카에게서는 예전의 지적인 모습은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예술가인 빅토르비치에게 그녀는 더 이상의 영감을 주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 타냐는 커가고, 세상은 변하고, 타냐의 친구 야샤는 소네치카의 그늘 안에서 가족이 되어간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좋은 것들만 남겨두지 않는 법.

 

빅로트비치의 뮤즈가 된 야샤는 친구의 아빠를 유혹하고, 그들의 기묘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한다.

 

러시아인 소네치카

유대인 빅토르비치

자유로운 영혼 타냐

어릴 때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워왔던 폴란드인 야샤.

 

무너져가는 러시아

세상 곳곳의 돈줄을 쥐고 있는 유대인

어디 한곳에 속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혼혈인 타냐

끈질기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이민자 야샤.

 

소네치카의 결정을 이해하는 나, 그 이해 안에서 묘한 안도를 감지하는 나.

울화통이 터지는 와중에도 이해와 안도는 나에게 물음표만 던진다.

왜?

소네치카는 왜 그랬는데?

 

유대인은 예술작품을 남겼고

과거의 러시아인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며 지켜내고

러시아인과 유대인의 피를 가진 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나고

어딘가에서 러시아로 흘러들어 온 이민자는 자신의 고향으로 향한다.

 

러시아의 근대사를 한 가정으로 압축시킨 소네치카.

러시아 여자들 알고 보니 우리네 할머니들 보다 더한 삶을 살아냈구나...

 

전쟁은 여자들을 목석으로 만들어 놓고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남겨두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살아가야지...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이 되어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그렇게라도 살아내야 하는 법이지...

 





<스페이드의 여왕>

 

 

"아넬랴, 미칠 것 같군! 온 세상이 변해서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이 집만은 그대로야."

 

 

무르. 스페이드의 여왕으로 불리는 여자.

러시아의 높은 지위에 있는 예술가들을 자기 아래 무릎 꿇린 여자.

딸 안나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여자.

쭈그렁 할망구가 되어서도 온 집안 여자들을 닦달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여자.

 

안나 표도로브나.

안온한 아버지의 품에서 무르에 의해 새아버지 품으로 옮겨야 했던 여자.

무르의 행실로인해 평생 남편 마레크 외의 남자는 없었던 여자. 그럼에도 무르 때문에 마레크와 이혼해야 했던 여자.

안나 역시 딸 카탸에게서 아버지를 빼앗고 만다. 본의 아니게.

카탸 역시 딸 레노치카에게서 아버지를 빼앗는 일을 해버리고 얼굴 없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다.

 

이 집엔 4명의 여자와 남자아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30여 년 전에 헤어진 마레크가 방문을 한다.

 

한 시대를 자유롭게 휘두르며 살았던 무르는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 변덕스러움을 맞춰주며 살얼음판을 살고 있는 안나와 타냐와 레노치카에게 찾아온 마레크.

 

과거의 러시아가 무르라면

현재의 러시아는 안나와 카탸이고

미래의 러시아는 레노치카로 치환된다.

 

과거는 아직도 현재를 휘두르지만 미래는 감당하지 못할 터.

안나는 자기대에서 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마레크의 초대를 받아 그리스로 향할 계획을 세운다.

무르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무르를 속이는데 성공하고, 그리스로 떠나는 준비를 착착 진행시킨다.

과거의 끄트머리였던 안나는 그리스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에 무르가 마실 커피에 들어갈 우유를 사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안나의 비밀 여행을 알게 된 무르는 난리 법석을 피우지만 타냐의 손길이 무르의 뺨을 치는 순간 과거의 영광도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는 과거와의 단절을 진행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그 진행을 위한 희생은 불가피한 것.

 

소네치카와 스페이드의 여왕

두 편의 이야기는 그냥 읽으면 별 소득이 없다.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접목하면 아주 색다르게 느낄 수 있다.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자신이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산 작가다.

그 안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보았다.

 

어쩜 흔하디흔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짧은 단편에서 내가 너무 무식하게 거대한 덧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덧칠로 이루어져 있음이다.

누가 덧칠을 하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우리 할머니와 엄마들만 고달픈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여성들도 굴곡진 세월을 정통으로 맞받아치며 살아냈다.

21세기에 여자로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그들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에 묻어 두길.

그놈의 과거의 영광 찾자고 영국은 브렉시트로 만신창이 되어가고

러시아는 전쟁 2년째.

결국 그래봐야 뼈 때리게 개고생하는 건 모두 국민 몫.

 

정치하는 작자들이 총 들고 싸우는 법 없고

돈 없어 배곯는 일 없다.

그러니 민생도, 전쟁도 지들 꼴리는 대로 할밖에...

 

울 엄마 연세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작가님

여성 서사로 러시아 정세를 돌려까기 하시는 솜씨가 있으심.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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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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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엇보다 신나야 한다. 열광과 열정 그 자체여야 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른 기분이었다.

한때 나는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틀었다. 그 일이 일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는 모두 글 쓰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과 내가 들은 모든 말들과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내 머릿속에서 글이 되었고, 나는 그 넘쳐나는 글들을 쏟아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야행성이었던 나는 밤새도록 어느 게시판에 20개 이상의 글을 올리고 잠들었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서는 밤새 내가 한 짓에 사람들의 질타가 이어질 거라 생각하며 우울했었다. 더 욕먹기 전에 빨리 글을 지우자 생각하고 들어간 게시판에는 글마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매일 그렇게 쏟아 내고도 나는 쓸게 많았었다.

책과 음악과 영화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져갔었던 시간을 지나 그제야 폭발했었던 거 같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과정을 확인했다.

나는 그때 계속 쓰면서도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 두려웠었다. 쏟아내기만 하고 채우지 못하는 시간들이 결국 언젠가 나를 공복 상태로 만들어 놓을 거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컴퓨터를 켜는 날 보다 손도 안대는 날이 많아졌고, 일상에 지쳐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 나는 텅 빈 방이 되어버렸다.

 

그 방에서 책으로 허기를 매우며 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누군가 나의 등불이 되어줄 거라 믿으며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찾듯 책을 흡수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며 브래드버리의 책들을 사놨지만 읽지 못했다.

그리고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를 통해 그와 대면했다.

 

 

글쓰기에 흠뻑 취해 있어야만 현실이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글쓰기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그리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진실, 삶, 현실의 비법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어항 밖으로 튀어나온 물고기처럼 헐떡거리며 맥없이 쓰러지지 않게 해준다.

 

 

 

내가 잃은 건 열정이었고, 내가 배부르게 해주지 못한 뮤즈는 나를 떠났다.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위해 글쓰기 모드로 맹렬하게 타이핑을 치는 열정을 잊었다.

브래드버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열정을 끌어올리고, 떠나간 뮤즈를 되찾을 방법을 열심히 생각하는 나를 본다.

그 자체로 희망이다.

 

오래전 친구와 같이 블로그에 번갈아 가며 릴레이 소설을 한 편 써보자고 작정하고 첫 스타트를 내가 시작했다.

내가 쓴 소설을 이어받아 친구가 쓰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글에 대한 품평을 했다.

"네가 쓴 건 소설이 아니야.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설을 써."

냉정한 친구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우리는 또 만났다.

 

"너 재능 있어. 나 깜짝 놀랐잖아. 내가 한 마디 했다고 그다음 이야기가 그렇게 달라질 줄 몰랐어. 너 계속 써봐. 잘될 거야."

나에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 준 친구였다.

그냥 잘 쓴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해준 칭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브래드버리도 서른 넘어 89살의 유명한 미술사학자에게 팬 레터를 받으며 인정받았다.

그 인정이 그에게 어떤 힘을 주었는지는 그의 작품이 답을 주고 있다.

내가 브래드버리에게 배울 점이다.

작가는 인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인정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데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인 동시에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다.





브래드버리의 말에 따르면 매일 1000단어씩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겐 잠재의식이 감춰두었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매일 글을 쓰고, 표제 목록을 만들고,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들을 무심히 보지 않고 저장해두면 그것들이 저절로 아이디어가 되어 눈앞에서 떠다니는 때가 온다. 그것을 낚아채서 글을 쓰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할 일이다.

 

새해에 두 가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받았다.

두 권 중에 브래드버리를 첫 번째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어떻게 글을 쓰라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 글을 써온 사람의 노하우가 담겼다.

매일 쓰는 게 어떻게 노하우라는 거냐? 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게 다일 일은 없다. 그래서 노하우라고 하는 것이다.

 

글쓰기 감각을 잃고,

아이디어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자신이 쓴 글들이 창피하게 느껴질 때 브래드버리를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브래드버리의 몰입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찾았다.

망망대해에서 뭔가 다시 끄적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준 등대.

무엇보다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열정이라는 불씨에 숨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준 책이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을 거 같다.

 

글쓰기에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글쓰기가 어떤 건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지름길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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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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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눈을 돌려 과학의 이름 뒤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생계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 사람들의 충돌은 부드럽게 끝날 수 없었다. 이 충돌은 완벽하게 무의미했다. 방사능 폐수를 바다에 버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서로 욕하고 소리치는 동안에도 폐수를 바다에 계속 신나게 버리고 있었다.

 

 

 

문어, 대게, 개복치, 해파리, 고래.

이 바다 동물들은 인간의 먹이이기도 하다.

마침 결혼해 포항에서 살게 된 정보라 작가에게 포항의 물성들은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했다.

실생활에서 접하게 된 작가적 시선으로 쓴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환경에 대해,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와 부당함을 색다르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색다름은 우리의 '앎'을 자꾸 건드린다.

'앎'에서 끝나지 말고 '행동'해야 하는 때라는 걸 알려준다.

 

정보라 작가가 포항에서 살 게 된 이유도 다 신이 안배해 둔 걸까?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한 글이 아니라 SF의 탈을 쓰고 전달하니 그 이야기가 자꾸 새롭게 해석되고 부풀려진다.

이것은 비단 해양 생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직접적인 문제다.

다만 아직도 다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중일뿐.

 

닥쳐온 재난 앞에서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를 오염시키는 무자비한 인간들.

그 무자비한 인간들을 단죄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린 사람들.

그들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지들만 다른 행성으로 도망가려 하는 것들.

 

나는 내 나라가 외국자본에게 무상으로 땅을 주고, 각종 세금을 깎아주는 그런 선심을 정직하게 노동으로 먹고 살려는 자국민들을 위해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연신 생각하게 됐고.

오염수 방출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찬성하는 범죄를 범한 대가를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고스란히 치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열이 뻗친다.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하나뿐인 바다를 어떻게 해야 지켜낼지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행태가 어떤지를 문어, 대게, 개복치, 해파리, 고래를 통해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덩어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주인공들을 어딘가로 데려가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해대는 상황 앞에서 무력감에 거품 물게 되고

시어머니 병실과 남편의 병실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돌봄에 대한 무거움을 느꼈고

좁은 수족관에 갇힌 드넓은 바다의 생물들이 입을 뻐끔 거리는 걸 보며 내가 우리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아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현실의 불운과 부당함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와닿은 이유가 뭘까?

 

그 까닭을 작가 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실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였다.

그래서 SF의 탈을 쓰고도 정확하게 느껴졌다.

 

고통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담겼다.

우리가 우리 일이 아니어서 그저 듣고 만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포항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전해질지 기대된다.

바다에는 아주 많은 생물체가 살고 있고,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는 무한할 거 같으니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의 삶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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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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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평범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그것들을 더 잘 추적하고 수풀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들을 끈끈하게 감싸고 있는 외피에서 떼어내고, 그것들에 하나의 의미, 하나의 언어를 부여할 수 있을까. 마침내 그 평범한 것들이 자신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물들>이 아니라 <보통 이하의 것들>로 페렉을 만난 것도 인연인 거 같다.

이 책이 페렉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보여주는 거 같으니까.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안 어울리고 그저 끄적임 정도?

그 끄적임도 페렉이기에 책이 되는 것이지.

 

인상적인 대목은 빌랭 거리와 엽서들이었다.

 

빌랭 거리를 읽으며 영화 <스모크>가 생각났다.

하비 케이틀이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찍는 사진 한 장.

인물만 다르게 찍힌 이 사진이 어떤 걸 뜻할지 아무도 몰랐다. 모아 보기 전에는.

그 사진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페렉에게 빌랭 거리가 있었다면 내게는 대학로가 있다.

빌랭 거리는 페렉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이고 그곳엔 어머니가 하셨던 미장원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사라지고 장소만 남은 거리 빌랭...

그러나 그는 그곳을 쉬이 찾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 빌랭 거리의 철거가 결정되고 그는 그곳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대한 기록을 한다.

'장소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페렉이 기록한 빌랭 거리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는 대학로 거리가 떠올랐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던 시절과 젊음의 거리로 탈바꿈 한때

늘 사람에 밀려다녔던 그때의 대학로는 활기차고 열정적이었다.

지금 그곳은 비어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하게 줄어든 곳이 되었다.

얼마 전 대학로를 다녀와서 <보통 이하의 것들>책을 읽어서 그런지 더욱 빌랭 거리와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쓸쓸해졌다.

페렉은 빌랭 거리의 건물들을 번지수와 간판으로 적어갔지만 내가 대학로를 기록한다면 어느 건물은 누구네 집으로 어느 골목은 친구들과 고무줄과 땅따먹기를 했던 곳으로 기록될 것이다...

 

<생생한 컬러 엽서 이백사십삼 장>

일정한 형식을 띤 엽서들의 구성을 조합해서 243개의 엽서가 탄생했다.

한 페이지에 5개의 엽서들이 담겼다. 펼치면 열 개의 엽서들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

처음에는 무심코 읽다가 점점 수많은 인물들의 목소리가 날갯짓을 한다.

마치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인트로와 라스트 부분에 나오는 공항 씬에서 많은 사람들의 만남을 보여주는 영상처럼 저마다의 목소리로 사람들이 엽서를 보낸다.

 

어느 나라의 어떤 호텔에 있어.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어.

언제쯤 돌아갈 거야.

키스를 보내.

 

이 짤막한 글들이 다양한 언어로 자동 플레이 되면서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실험적인 글들이다.

제목처럼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으면 생기는 어떤 힘을 보여준다.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앎의 세계로 치환시킨 페렉의 열정.

 

이런 기록들이 아주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 가장 정확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20세기 사람들이 살았던 곳, 좋아했던 음식, 거리 풍경, 그들의 소통 방식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료.

페렉은 어쩜 이 <보통 이하의 것들>로 먼 미래 세대에게 교과서적인 인물로 남을지 모르겠다.

 

기록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페렉은 하나의 다큐를 글로 남겼다.

 

가본 적 없지만 빌랭 거리가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먹어 본 적 없지만 페렉이 1년 동안 먹은 음식이 어떤 건지 글로나마 알 수 있다.

페렉과 동시대에 살던 사람들 역시 그 거리를 걸었고, 그와 같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었을 테니, 지금 당장 우리에겐 의미 없는 기록 일지 모르지만 이 기록들은 미래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에도 의미를 주었던 페렉.

나는 무엇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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