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이...
흘러 흘러 강물도 되고 바람도 되고
사람도 되었다가
한 줌 흙도 되었다가
그 어떤 것에게도
가 닿을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닌
따뜻한 온기이고 싶더라
 
늘 어디로든 떠나려는 사람
혼자있어도 괜찮아 보이지만 외로움에 죽을것 같은 사람 
늘 그리워만 하는 사람 
 
스텔라님의 자기소개서 이벤뜨가 뜨길래
이리저리 끄적여 보다가 다 지워버리고
천상 나같은 
엎어쳐도 메쳐도 *** 같은
길 위에서 흐르던 
그 걸음걸이 그대로
포즈를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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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3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소개서를 쓴다면 전 어떻게 무슨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깜소 2007-03-3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날씨 참 좋죠? 아침마다 이른 새볔 하늘을 보는데 오늘은 참 푸르렀어요... 안녕하셨어요?^^ 이참에 한번 써보세요~ 또각또각 발소리 뚜렷한 소개서가 나올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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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펌.참세상] 한미FTA가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건 불행, 변영주 감독

 

 음.. 하루종일 너무 많이 글을 퍼와서 민망... 그래도, 굳이 멀리 클릭걸음하기 귀찮은 분들이 놓치기에는 괜히 혼자 안타까운 게 많아서...;;;  다들 아시겠지만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 '밀애', '발레교습소' 만든 감독이고요. 음... 최민식씨보다는 존재 자체의 설득력이 훨 더 있지 않나 하는 개인적 편견으로, 와락 반가움이! 말씀도, 생각보다 차분하고 덜 씩씩하게 잘 하십니다. "피켓 재료 중 일부분이 각목..." ㅎㅎ 그리고 발언 내용으로 프린트 벌수 제한 규정은 첨 알았네요, 암튼 함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미 FTA 덕분에 오랜만에 변영주 감독 얼굴도 보고, 좋네요...;;;  

 

한미FTA가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건 불행
[현장인터뷰](2) - 변영주 영화감독
특별취재팀 
10일 신라호텔 앞에서 1인 시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물리적 저지와 진압으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다. 우비를 입고 신라호텔 입구로 향하던 이해영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과 미국 반전운동단체인 ANSWER 활동가인 브라이언 베커씨는 경찰의 저지에 의해 가로막혔고, 우비가 찢기는 등 몸싸움 끝에 방패에 밀려 벽에 고착된 상태에서 1인 시위 아닌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경찰들이 막아버린 동대입구 5번 출구의 모습

1인 시위 둘째 날. 신라호텔로 향하는 5번 출구 전체가 경찰에 의해 봉쇄됐다. 그나마 오늘은 1인 시위가 진행됐다. 신라호텔 앞에 배치된 수 많은 경찰들 속에 진정 홀로. 10시에는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11시에는 변영주 영화감독이 진행했다.

2차 한미FTA협상이 진행되는 신라호텔 옆 장충체육관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변영주 감독을 만났다.

본인 소개와, 1인시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달라

영화를 만드는 변영주라고 한다. 현재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한미 FTA협상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기 위해 왔다. 놀랍게도 참여정부라 말하면서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평화적인 각종 한미FTA와 관련된 시위들이 경찰들에게 막혀있다. 아무리 피켓 재료 중에 일부분이 각목이라고 할지라도 혼자 하는 시위인데, 우리가 신라호텔 로비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협상장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바로 신라호텔 앞에서 우리의 의지를 얘기하는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철저하게 지하철 안에서부터 봉쇄한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정부가 자신이 없는 것의 반증이다.

한미FTA는 두려움이다!
영화감독 변영주, 한미FTA저지를 위한 1인 시위 / 한미FTA 저지 집중투쟁 2일차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제작: 민중언론 참세상
촬영: 최은정
편집: 최은정
 
그렇게 두렵고, 말도 안 될 정도로 자신 없는 협상을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1인 시위를 이런 식으로 막거나, 사람들의 시위를 봉쇄한다고 해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정서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FA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고, 더군다나 정부주도의 일방적인 협상 진행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나는 한미FTA가 반드시 저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
한미FTA싸움은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스크린쿼터 싸움을 시작하면서 영화의 다양성이나 종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문제 등 비판적 여론도 적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 두가지 전제조건을 말하고 싶다. 스크린쿼터는 결코 영화인들의 밥그릇이 아니다. 영화인들의 밥그릇이 스크린쿼터이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스크린쿼터로 돈을 번 사람이 있거나 스크린쿼터가 축소 되서 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얘기냐면, 실질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몇몇 영화가 극장을 독점하거나 독립영화가 상영이 안 되는 것은 스크린쿼터의 문제가 아니라 90년대 미국과 체결한 무역협정 속에서 없어진 프린트벌수제한제도 때문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 편의 영화가 30%이상의 극장을 점유하지 못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있었다. 이것이 없어지면서 독점화현상이 일어난 것이지 스크린쿼터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로 스크린쿼터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세계 150여개국이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조약을 체결하면서 가장 우수한 문화보호제도라고 얘기한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깐느영화제 이사회마저도 만장일치로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데 이것을 터무니없이 날려버릴 수는 없다. 만약 정부가 이런 것들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스크린쿼터를 양보하자고 국민들에게 제안하고 국민들이 그것에 대해 공론을 통해서 축소됐다면 아마 영화인들이 이렇게 까지 투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휴지조각처럼 버려버리는 것 너무나 굴욕적이란 점이다.

정부는 작년에는 4대현안이라고 얘기하면서 영화인들을 압박하더니 이제는 선결조건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다버렸다. 4개 사안 모두 그렇게 터무니없이 내다줄 사안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영화인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보다 영화인들의 이기심만으로 영화를 소중히 여긴다고 하는 정부의 여론 조작이 국민들을 호도해서 오해들이 생긴 거라 생각한다.

진지하게 대답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

국민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일단 국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얼마 전 PD수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정말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이것이 정부의 치사한 점이다.

처음 한미FTA를 서두르겠다고 발표를 했을 때부터 이런 것들이 있다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스크린쿼터만을 앞장 세워서 영화인들과 이런 것들을 분리시키는 것에만 앞장서온 것이다. 지금 2차 협상까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한미FTA에 대해서 그 정도로 모른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불행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적은 게 불행이 아니라 한미FTA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이 불행인 거다.

그런 면에서 한미FTA가 이 상태에서 이뤄진다면 어떤 불행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아셔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고 이것을 알기만 한다면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역을 반대하거나 무역을 반대하거나 자유경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의 문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국민의 합의를 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되는 부분이지 이 상태로 빨리 끝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FTA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희망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영주 감독은 이날 장충체육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한미FTA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한미FTA는 두려움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다. 앞으로 10년이 지나고 나면 내 후배들이 너 그 때 어디있었니라고 물어볼 것 같은. 이를테면 87년도 6월 또는 80년 5월 만큼이나 중요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라고 생각하고 10년 뒤에 당신은 2006년 여름에 어디에 있었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미래와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나에게 있어서 한미FTA이다.
10일 신라호텔 앞, "난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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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적막한 길 하나 그려 놓고

그 길로 떠나려해

가는 길에

마주 오는 바람이라도 만나면

털지 못한 그리움 툴 툴 털어 주고

바람 지나간 그 길 어느 곳에서

헐벗은 나뭇가지 하나 꺽어

털린 가슴 뒤쪽 등이나 긁으며

 

시집 걸레와 찬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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