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산업의 멸망
김인성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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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로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 나라, 이런 대한민국에게 IT 강국이란 타이틀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정말 IT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폰과 아이패드 따라잡기에 급급한 전자기기, 페이스북에 잠식되고 있는 한국형 SNS인 싸이월드 등 한국의 IT업계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나가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왜 한때 IT 강국을 자처하며 성장하던 대한민국의 IT업계는 선진 IT업계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일까? 저자는 그 해답을 한국사회의 '폐쇄성'에서 찾고 있다. 소비시장의 한계로 인해 해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외국인들이 우리 인터넷 사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실명제법이라든지, 크롬이나 넷스케이프에서는 지원조차 되지 않는 액티브X 설치 강요와 같은 국내 인터넷의 폐쇄성이 한국 IT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이런 폐쇄성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몇몇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IT업계의 발전이 가로막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4세대 이동통신 사업이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와이브로를 기억하는가? 와이브로는 휴대폰을 인터넷 단말기로 전환하여 기존의 무선 이동전화망을 통한 음성데이터의 송수신이 아닌 인터넷 단말기를 통한 데이터의 송수신을 통해 매우 저렴한 비용과 안정된 통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서비스로 이미 모든 개발을 마치고 상용 서비스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동통신 3사에 의해 매일 같이 광고되고 있는 LTE를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동통신업체들은 정부가 추진했고, 모든 개발을 마친 와이브로를 포기하고 LTE를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LTE가 와이브로보다 그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설비투자 없이 지속적으로 이윤을 안겨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음성통화를 이동통신업체들은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모든 기술이 준비되었음에도 이동통신업체의 이윤추구에 의해 소비자들은 더 저렴하고, 더 안정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동통신업체를 비롯한 국내의 IT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런 혁신 없는 이윤추구 행위는 당장에는 그들에게 안정된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IT업계에서 혁신 없이 영원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누군가 차고에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있을까봐 두렵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의 말을 그들은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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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서평단 알림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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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며칠 전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군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여러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평소라면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놀리면서 나중에 휴가 나오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자기가 맛집을 알아놨다고 이야기 해야 할 그 친구가 힘이 쭉빠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지금 안정적이잖아. 박봉이라고 해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매일 해야 할 일도 있고.."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나 시험 떨어졌어"

 

 친구가 그 말을 한 순간 정적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꼭 붙을 거야"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는 "그렇겠지"라며 힘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part. 2

 저자인 강수돌은 이책에서 가정, 학교, 기업 등등 사회 전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쟁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황폐화 시키는지 차분하게 논하고 있다. 우리는 자라나면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저자의 말처럼 훗날 전혀 기억나지도 않을 시험문제를 열심히 외우는데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된 후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일에 빠져 살아간다.

 태어나서 자라나고, 성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성과주의적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의 태도는 우리를 끝없는 경쟁 속에 몰아넣는다. 이 경쟁에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이들을 제치고 사다리의 끝에 오른다 하더라도 언제 내려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아가며, 결국 언젠가는 패자가 된다. 승자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회 전반에 이런 경쟁을 강제하고 있는 자본일 뿐이다.

 자본이 강제하고 있는 생존경쟁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것이 아니게 만들고 있다. "무엇이 나의 참된 행복인가, 무엇이 삶의 기쁨이요 존재의 기쁨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외피에 가려진 내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외피에 가려진, 있는 그대로의 나, 이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다양한 이분법 속에 뒤틀린 삶과 일, 가정, 사회, 그 모두를 건강하게 복원할 방도를 찾을 수 있다"(pp.30-31)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강제하고 있는 지금의 생존경쟁에서 이탈하여 나와 사회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강수돌은 생존경쟁에서 이탈할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동하는 연대를 통해 경쟁체제 속에서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대안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art. 3

 아직까지 군 전역이 986일이나 남은 신임 소위이지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아직 업무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해 선임들에게 이래저래 깨지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 되겠지만 최근 티비를 장식하고 있는 암울한 경제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11년 7월 1일, 다시 사회로 돌아가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더욱더 암울해질 것만 같은 경제상황 앞에 한숨을 진다. 그리고 군대 괜찮은 것 같은데 장기신청이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말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학생회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본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라고 생각했던 나인데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 삶을 자본의 논리로부터 구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것을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미 내면화된 경쟁모드를 어떻게 연대모드로 바꿀 수 있을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변화의 시발점으로서 나를 상상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저 나는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의문과 불안감만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내가 지금처럼 산다면 결국 평생을 이런 불안감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나는 이외의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난 알라딘에서 "객관식 민법"과 "객관식 경제학" 책을 주문했다. 이런 암울한 경제상황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전문직 자격증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part. 4

 강수돌의 이 얇은 책은 지금의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그의 글에 백번 동감한다. 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이땅의 방황하는 20대인 나는 나의 이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을 다스릴 어떠한 기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자신의 삶의 논리인 것처럼 굳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의 논리를 적극 추구하는 대신에 수동적인 생존논리에 갇힌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p.43)라는 그의 말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너무나도 불안한 이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 앎을 통해 무언가를 실천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불안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런 경쟁적인 삶의 태도로는 결국 끝까지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불안감이 사라져야만 내가 나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난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바꾸지는 못할 것 같다. 비겁한 변명 같지만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그런 삶의 태도가 얼마나 더 우월한지를 보여준다면, 그래서 나를 둘러싼 불안감을 일소할 수 있다면 그때가 되서야 난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내 생각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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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청년 2008-10-18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밤에 떠오르는 내용을 막 적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리뷰라기보다는 푸념에 가까운 글을 보게 되서 참 민망하다-_-;;; 서평단만 아니면 지우는 건데..ㅜㅜ

turk182s 2010-12-1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퀴...장교가셨나요..한동안 안들어왔더니만,,장교라니.
지금 기간이 5년인가요? 아직도6개월정도 남았군요,,,무사히 제대하시길 빕니다.

취업이 난리인시대이긴하지만,,장기복무는 신중히 생각하시리라 믿어요,,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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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마르크스적 계통과 진보적 사상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일반적 견해가 모든 인간적 사회적 현상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단정하려는 고정관념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한 것뿐이야. ‥ 계급주의 이론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재단하려는 자세는 자칫 '지적현실도피'가 아니면 '이념의 화석화' 또는 교조주의가 되지 않을까요?-245쪽

나는 언제나 개인을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 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 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민족의 역사에서도 임형이 원하는 것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절제의 현명함으로 움지여진 실례를 나는 것의 찾아 볼 수 없어요. 이것은 지성인의 바람이나 욕구와는 전혀 무관하게 걸어가는 집단적 행동의 특성인 것 같아.-267쪽

그것보다 더 큰 문제였던 것은 한국 국민의 나쁜 특성의 하나인데, 자기들을 지배하는 권력이 막강할 때는 평신저두하다가, 정권이 국민에게 자유를 주고 약한 기색을 보이면 즉시 태도가 돌변해서 제각기 자기 주장대로 행동하는 것이오. 이 때문에 민주당 아래서 이렇다 할 개혁의 성과는 없었어. 한국 민중에게 민주주의적 책임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요. 그때나 40년 지난 지금이나.-284쪽

한국 국민들에게는 그런 막강한 미국에 대해서 짚신 신고 화승총 같은 것을 메고 대항한 베트남 인민이 승리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사실이었지. 그런데 방금 내가 열거한 것과 같은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때늦은 자기비판을 듣고 보면, 하나도 불가사의한 거시 없다는 것을 깨달을 거에요. 한국인들은 미국의 물질적 힘만을 이해할 줄 알고 그것에 의존하려고만 하지, 그 물질적 힘을 제외한 나머지의 그 많은 요소와 덕성을 지닌 약소민족 인민대중이 지니는 힘을 불행하게도 이해하지 못해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을 오로지 미국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져버린 한국인들은 진정으로 강력한 인간의 사상과 힘을 모르고 있어! 이것이 한국인들 머릿속에 긴 세월에 걸쳐서 주입된 미국식 사고방식의 해독이라고!-355쪽

나는 '구체적인 상황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구체적 행동'이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섬세한, 마치 학문적인 정밀성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자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론'으로 세분화한 말들은 당면한 상황의 극복에는 다분히 비생산적인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비치더군 ‥ 세계의 정치개혁운동사에서, 어느 나라 경우에나 큰 공통점이 있어요. 즉 우익은 이권으로 뭉치고 좌익은 이념으로 모이지만, 동시에 우익은 이권분배의 크기로 분열하고 좌익은 이념을 지나치게 정밀화`세밀화하는 '작음'의 고질적 아집 때문에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에요.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나요?-624쪽

나는 1977년에 출판된 저서 '우상과 이성'의 서문에서 나는 지식으로서의 기본철학과 정신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 바 있어.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손에서 펜을 놓는 날까지 이 정신으로 탐구하고 쓰고, 세상에 알릴 결심이에요.-6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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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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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시간이며 곧 공간이다. 지금, 여기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돈이 없는 자는 근로자가 되어 자기 자신이 아닌 사업주를 위해 일해야 하며, 식당 그리고 카페 이 모든 공간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당한다. 
 
 "퀴즈쇼"의 주인공 이민수는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 놓은 빚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난다. 많은 추억을 간직했던 책들을 헌책방에 넘거야 했으며, 구경 한 번 못했던 고시원이 그의 새로운 생존을 위한 기지가 되었다.

 고시원, 도시의 삭막함을 그보다 잘 보여주는 건물이 있을까?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그곳은 가정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뒷골목과 같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도, 아니 알 필요도 없는 그런 공간.

 민수는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곳은 그의 공간이 아니었다. 매달 내야 하는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한, 그곳은 그를 반겨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쫓겨나야만 했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라는 김영하의 말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민수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20대의 모습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의 부재로 인해 억지로 대학이라는 공간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공간의 부재가 주는 불안을 탈피해보려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만족할 성과가 되기에는 그저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김영하는 인생은 퀴즈라고 이야기한다. 퀴즈의 특징이 뭘까?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퀴즈란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아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 해서 그 퀴즈를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며, 내가 모르는 퀴즈라 하더라도 주어진 힌트를 통해 얼마든지 풀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퀴즈는 많은 경우 운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삶은 많은 경우 운이다.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언제든지 우리를 토해낼 기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직 우리가 가지 못한 공간은 점점 더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으며 또 분노를 가슴 한 가운데 새기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부세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아주 평범한 이 땅의 20대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재수가 좋아.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네가 재수가 좋긴 하니?'라는 질문이 솟구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의문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주문을 건다.


 나는 재수가 좋아. 그러니깐 이 세상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눕힐 작은 공간이 있을 거야. 나는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있을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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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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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대사는 무엇인지. 하지만 겁이 났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가진 그 두께에 말이다. 그래서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는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자인 이영훈 교수가 그와 관련된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책을 구입할까 생각하다 이 책을 읽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사려는 생각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그리고 다 읽은 뒤 사지 않고 대출해서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물론 이런 평에는 나의 사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직 사심만으로 그런 평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전에 뉴라이트 진영의 이론가 중 한 명인 박세일 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읽었을 때는 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잘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할 것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역사는 특히 "기억투쟁의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역사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으며, 결국 현재의 누군가를 위해 재해석된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바로 이런 의도에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대립하는 '역사'는 무엇이며 이들이 제시하려는 대안적 '역사'는 무엇일까? 이영훈은 "언제부턴가 글쓰기에 자기검열이 걸렸다. ... 검열자는 한국의 난폭한 민족주의이다."(p.5)라고 이야기 한다. 또한 "지난 50년간 민족주의 역사학이 20세기 한국사의 기본 줄기를 얼마나 심하게 왜곡해" 왔는지 밝히겠다며 "본성이 자유이고 분별력 있는 이기심인 인간 개체가 민족의 대안이라고 주장"(p.6)한다.

 그는 많은 장에 걸쳐 민족주의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이며, 그런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만 보다 선진화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장들을 읽으면서 꽤 놀랐다. 마치 내가 베네딕트 앤더슨과 같은 진보적 학자의 글을 읽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민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PD 혹은 평등파 선배들과 공부를 했던 나이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민족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인간 개체'가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해방전후사를 어떻게 재해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관심이 갔고, 책을 넘기는 나의 손은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무지한 탓인지 몰라도 그의 글 속에서 그가 민족의 대안으로서 그토록 강조했던 '인간 개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역사의 해석을 '인간 개체'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책의 초반부에서 "사회주의는 인류의 사회-경제생활이 걸어온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계급적이며 공동체적인 존재로 규정한 사회주의자들의 인간 이해는 잘못이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번영하였습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자본주의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지요.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는 일찍이 누구도 상상하 적이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p.15)라고 적었고, 바로 이 이분법에 의해서 해방전후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비판하려던 민족주의 역사학이 남과 북이 통일되지 못한 채 분단국가가 되었다는 것에 중심을 맞춰 역사를 해석했다면 그는 남은 자본주의체제로 성공하였고,북은 사회주의체제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남한의 역사가 우월하며 그것의 정통성을 찾기 위해 그것에 중심을 맞춰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바로 이러한 결과론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시대의 정치는 한마디로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의 정치였습니다. 그 정치는 국가체제가 안정된 위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해지는, 토론과 조정이 가능한 공공선택의 정치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한 나라를 세우는 데 정치원리를 자유민주주의로 할 것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독재로 할 것인가, 경제원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 계획경제로 할 것인가를 두고 주민의 투표에 부칠 수는 없는 법이 지요. '나라세우기'의 정치는 전쟁과 같습니다."(pp.234-235) 바로 이 대목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해방 이후 우리에게는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선택의 기로가 있었고, 결국 자본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의 업적은 위대하다. 물론 책 여기저기에는 여러 이야기가 너저분하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말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가 제시한 여러 사료들은 분명 소중한 것들이라 생각되고,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료들을 접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그가 처음에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인간 개체'를 대안으로 내세운다고 이야기했으나 그가 이야기 한 것은 결국 그가 그토록 비판해 마지 않던 민족주의 역사학의 다른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는 "나를 국가주의자로 비판한 사람은 내가 우리의 건국사를 남달리 소중하게 평가하는 데서 그런 인상을 받았을지 모른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국가주의로 익는 사람이라면 국가주의 또는 자유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자유주의에서도 국가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거기서 국가는 자유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p.8)라고 하였다. 물론 그가 말한 것처럼 자유주의자에게 국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착각하고 있다. 자유주의자에게 국가가 소중한 이유는 국가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도구로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모든 내용이 결국 건국 당시의 정체를 옹호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비판의 비판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게 국가주의자라는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제기되었던 문제 즉 민족이 아니라 '인간 개체'로서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견 동의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인간 개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민족이 아닌 '인간 개체' 중심의 해방전후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도 민족 중심의 역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는 아마 그의 작업은 평생가도 완성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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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너구리 2008-02-2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말씀하시는 ‘인간 개체’중심의 역사는 미시사 연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