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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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

증강현실, 라이플로깅, 거울 세계, 가상 세계로 크게 나뉘는 메타버스의 세계는 현실을 떠난 또다른 세계에서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게임 등은 물론 보다 실감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제공하기에 비용절감 차원에서 기업들도 관심을 보일만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매트릭스 (Matrix)」에서 가상세계를 살던 네오는 진실을 알기 위해 빨간약을 선택했는데, 현실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파란약을 권하는지... 아무리 현대가 기술 복제 시대여서 삶마저도 복제할 수 있다지만, 그림자가 멀리 뻗어나가더라도 결국은 발끝에서 만나듯 결국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메타버스가 제공할 재미, 즐거움 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의 스마트폰이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처음 전화가 개설되었을 때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며, 자율주행차가 등장해도 자전거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메타버스 역시 얼마전까지 경영, IT 계의 화두였던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처럼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기업에 의해 어느 순간 상용화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바꾸는 기술이 아닌 현실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메타버스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판도가 바뀌기도 하겠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현실 속의 사람‘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해던 이런 언택트 세계를 메타버스 metaverse라 부릅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지구를 뜻합니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로 현실 세계를 초월해서 만들어낸 여러 세계를 메타버스라 합니다._김성균, <메타버스>, p16/428

그리고 이 물음표에 해당하는 물건을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1위 냉장고, 4위 세탁기의 역할까지 대체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눈치 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바로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 내 몸에서 절대 멀리두지 않는 물건, 명품 제외하고는 내가 외출할 때 소지하는 가장 비싼 물건인 스마트폰입니다._김성균, <메타버스>, p 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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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4- 부르조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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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3- 색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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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2-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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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1- 풍속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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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치산업과 자본주의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 또 사치수요의 증대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지녔는가는, 우리가 오랜 수공업의 틀 속에서 나타났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분화된 사치산업을 검토할 때야 비로소 완전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자본주의에 속하게 된 수공업의 분야가 언제나 사치수요를 위한 생산 활동을 행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기회에 획득할 수 있는 경제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95/243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 ~ 1941)의 <사치와 자본주의 Luxus und Kapitalismus>는 '사치'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엄밀하게는 '사랑' 보다는 '애정'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 싶다.)


 사치란 남녀 간의 사랑(특히 비합법적인 사랑)과 관련이 있는 육욕적인 소비 행위이며, 이러한 감각적인 소비 풍조가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서구 사회에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236/243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 산업생산의 조직에 대해서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매우 많은 경우(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문을 열어준 것은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는 수공업으로 철저히 둘러싸여 있던 도시에 진입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서구사회에 만연했던 '애인'을 갖는 풍조 속에서 애인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유효수요가 있었고, 이러한 유효수요가 때마침 인클로저(Enclosure Movement) 등으로 도시 근처에 밀집된 수공업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베르너의 주장에 대해 여러 문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살펴보려 한다.


 좀바르트는 먼저 거대한 궁정(宮廷)과 이를 둘러싼 귀족 사회에 대해 말한다. 프랑스에서 발달한 궁정사회의 중심은 왕과 그 주변의 연인들이었다. 전제권력을 지닌 왕은 자신의 향락욕구와 함꼐 애인(愛人)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침이 없었고, 이러한 풍조는 곧 궁정을 둘러싼 귀족들에게로 퍼져 나간다. 바로크(Baroque)를 탄생시킨 절대권력.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 ~1940)의 <풍속의 역사 Illustrierte Sittengeschichte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는 이같은 절대권력과 주변 귀족에 의해 방탕함(그리고 사치)이 퍼져 나가는 상황이 잘 표현된다.


 궁정을 맨 처음 만든 이는 프랑수아 1세이다. 그는 여성을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함으로써 궁정을 만들었다... 프랑수아 1세는 교활한 전제정치에 매혹적인 황홀함을 곁들여서 궁정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프랑스의 모든 활력과 세속적인 세계가 왕을 중심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여자와 함께 음모, 정사, 그리고 사치가 발생하였다.(p10)... 이 세계를 언뜻 들여다보면 그 세계 전체가 여성의 지배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동시대의 사람들도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243


 나는 앞에서 궁정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일반적인 방탕이 모범이라고 썼다. 우리는 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절대군주는 거의 모든 권력을 수중에 넣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향락욕구 역시 가장 대담하게 채울 수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지배계급, 곧 귀족이나 부호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는 계급에서는 변함없이 지저분한 방탕이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했다._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3 : 色의 시대>, p273 

그렇다면, 이들의 방탕함이 지배계급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1897 ~ 1990)의 <궁정사회 Die ho"fische Gesellschaft>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 ~ 1929)이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말한 '과시적 소비'는 품위유지비였으며, 이를 위해서 지출되어야 하는 금액이었다. 물론, 이러한 금액의 과다가 이른바 '혁명의 시대'를 가져오게 되지만, 이와는 별개로 '자본의 시대'의 씨앗으로도 해석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렇지만, 궁정사회만으로는 사치가 자본주의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사치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사회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확산되었다. 


 수입보다 지출을 적게 하고 가능하면 현재의 소비를 수입수준에 맞추고, 앞으로 소득이 더 높아질 것을 바라면서 절약한 차액을 의무적으로 재투자하라는 직업시민의 사회윤리가 존재한다. 이러한 직업시민적인 행동규범은 특권소비의 규범과 다르다. 이처럼 다른 윤리, 즉 지위에 기준을 맞춘 소비(status consumption ethod)의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오로지 한 가문이 기존에 누려온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사회적 체면을 높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는가의 여부는, 가계운영비/소비/지출에서 무엇보다도 그 가문이 소유하거나 추구하는 사회적 서열과 지위 및 특권에 좌우된다. 자신의 서열에 걸맞게 등장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존경을 상실한다._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궁정사회>, p154


 좀바르트는 <사치와 자본주의>에서 르네상스 말기부터 화폐경제, 도시의 활성화에 주목한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기존 지주 계층과는 다른 형태의 재력가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이 새롭게 귀족 계층에 편입되면서 궁정 사회는 도시 사회로 확대된다. 이는 부르주아(bourgeois) 귀족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바로크에서 로코코(Rococo)로 문화예술양식에서의 변화도 이 시기에 일어난다.

 

 특히 1600년에서 1800년에 이르는 200년 동안 옛 귀족과 새로운 화폐 재산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었다. 이 계층은 내적으로는 새로운 부를 대표하였지만, 외적으로는 아직도 봉건적인 생활양식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벼락부자들 중 대부분이 귀족 신분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뜻한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8/243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크고 일반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막대한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능력 이외에는 자신을 눈에 띄게 할 만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벼락부자들, 즉 이러한 졸부들이 자신의 물질적이고 배금주의적인 세계관을 오래되고 고귀한 가문들에게 전하였으며, 또 그로 인해서 그들이 사치생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는 사실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0/243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자신의 권력 충만의 중요한 조건으로서 늘 염두에 두고 면밀하게 감시했던 귀족과 시민사회의 각 최상층 사이의 사회적 장벽이 영국에서는 모호하고 느슨했다. 부유한 시민 출신의 영국의 대토지 소유주를 일컫는 특수계층인 젠트리(Gentry)는 특권 형성에 개입했고, 일반적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지위의 경쟁관계의 압력을 받았으며, 지위의 소비에서 그 무렵의 주도층인 귀족가문 못지 않게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영국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파멸한 무수한 가문이 있었다._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궁정사회>, p156



 그리고, 상류에서 하류로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말 그대로 이 시기는 '색 色의 시대'가 되버렸다. 남녀 누구나 공공연하게 정부(情婦)를 두고 있었던 시대에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치품의 수요는 급작스럽게 팽창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와 계급의 주변부, 예컨대 경제관계로 그들과 얽혀 있는 계급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무절제한 방탕이 자행되었다.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봉건주의의 침략을 받은 도시의 풍기를 비교해보면, 추악함은 언제나 상류층에서부터 가장 낮은 서민층으로까지 마침내 흘러가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다._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3 : 色의 시대>, p279


 또한, 사치품에 대한 강력한 유효수요(有效需要)는 도시에 밀집된 수공업자들을 자극하게 되었다. 화폐를 기반으로 큰 시장이었던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주로 외상거래로 이뤄지는 사치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는 점을 좀바르트는 지적한다.


  대도시들도 기본적인 의미에서는 소비도시였다. 대 大소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군주, 성직자, 고관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중요한 집단이 추가되었다. 즉 대자본가가 그들이었다.(p36)... 국민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 수입의 상당액이 도시에서, 특히 대도시에서 소비된다면, 사치 문제는 대도시 문제와 결합한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51/243


 사치품을 거래하는 상인은 다른 사정이 똑같다고 가정한다면 언제나 많은 자본을 수중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상품의] 회전이 (외상 제도 때문에) 느렸기 때문이다... 판로의 공간적인 확대, '해외시장', '수출'이 자본주의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였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뛰어난 연구가이며 진실로 생산적인 사상가인 칼 뷔허 Karl Bucher의 이론에서 강력한 버팀목을 찾았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수공업은 고객의 주문에 의한 생산이며 자본주의는 익명의 고객 집단을 위한 생산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수공업이 국지적인 판매라면, 자본주의는 초 超 국지적인 판매라는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이러한 유럽 사회 내부의 움직임과 함께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가 열리면서 해외에서도 사치품(또는 원재료)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를 가공하는 제조업과 거래하는 금융업이 함께 일어난 것이 유럽의 외부 상황이라 할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세계적으로 소비자 사회가 시작되었다. 앞선 몇백 년 동안에도 대륙간 교역을 통해 이국적인 물품들이 유통되었지만, 동양의 사치품이 일상용품으로 바뀌고 군주나 귀족뿐만 아니라 사회 중간층 가구도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에 와서 이루어진 일이다.... 대륙 간 교역으로 거래된 물건은 개인의 생활 방식과 공중 영역에서의 자기표현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유럽 사회 전역에서 널리 입수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자극성 식품은 커피와 차였다._ 세바스찬 콘라드 외,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 1750 ~ 1870>, p543/713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여성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설탕이 매우 빠르게 애용되는 기호품이 되었으며, 또 설탕이 있었기 때문에 코코아, 커피, 차 등의 자극제가 유럽에서 매우 신속하게 널리 애용되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품목의 무역, 유럽 식민지에서의 코코아, 커피, 설탕의 생산, 그리고 유럽 안에서의 코코아의 가공과 원당 原糖의 정제는 자본주의 발전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28/243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가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말한 근면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도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사치가 자본주의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생소할 수 있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사치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는 좀바르트 주장은 받아들이도록 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보자. 전쟁은 어떻게 자본주의 를 발전시켰는가. 다음 주제는 <전쟁과 자본주의> 다...






나는 <근대 자본주의> 중 재산 형성을 다룬 장에서 귀족의 궁핍화가 시민계급 대금업자를 부자로 만든 원천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봉건 재산이 부르주아 재산으로 전환되는 이러한 과정이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0/243

사람들은 사치가 당시에 발생 중에 있는 경제형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인 경제형태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따라서 경제적인 ‘진보‘의 지지자들은 모두 또한 사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들은 기껏해야 지나친 사치소비가 자본 형성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하였을 뿐,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자본의 재생산과 축적을 확실하게 해주는 검소한 사람들은 이미 충분하게 있다는 확신으로 자신을 위로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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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7-09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애/방탕-> 사치 -> 자본주의라니. 흥미롭네요. <유한계급론>은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ㅜㅜ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9 16:51   좋아요 3 | URL
좀바르트의 관점은 자본주의를 신성시하는 기존의 관점과 궤를 달리하기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베버보다 잘 짚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독서괭님 금요일 저녁 즐겁게 보내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07-09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유물론보다 관념론을 더 믿는 편이지만,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는 넘 ‘구라’가 심한 것 같습니다. ㅋㅋ 넘 마르크스를 의식해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성어린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9 22:13   좋아요 1 | URL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베버의 사상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서 그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 학문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4단계로 고요한 금요일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
 

"승리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은 군사작전에서 항상 있는 일이지만 군사를 잘 운용하는 사람은 실패한 것을 이용하여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21/58) - P21

자기를 알아준 은혜라는 것은 가벼운 일이고,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로움은 중요한 것이니, 저 유침은 천자의 조서를 어기고 강함과 약함을 헤아려서 억지로 생명을 보존할 수는 없었습니다.(24/58)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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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집트와 리비아로 넘어가 페르시아 제국의 대부분을 지나서 아테네에 나타났다. 투키디데스는 이 병을 앓았고 그 증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병은 폐렴 흑사병, 홍역, 장티푸스, 그리고 여러 다른 병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병명은 알 수 없다. 기원전 427년에 진정될 때까지, 이 병으로 중장 보병 4,400명, 기병 300명, 하층민 다수가 사망했다. 아테네 주민의 약 3분의 1이 휩쓸려나갔다.(92/499) - P92

페리클레스의 정책에 따라 시내에 밀집해 있던 아테네인들은 전염에 대단히 취약했고, 이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을 안겨주었고, 남은 모든 이들에게는 혼란을 불러왔다. 공황, 공포, 그리고 문명의 가장 신성한 유대가 너무나 심하게 붕괴되어서 많은 이들이 그리스 종교의 가장 거룩한 의식인 적절한 장례마저도 등한시할 정도였다. (92/499)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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