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군국주의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전쟁을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만 보았다. 그렇지만 전쟁은 의심할 바 없이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p7)... 전쟁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즉 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을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사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했다. 왜냐하면, 모든 자본주의와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조건들이 처음으로 전쟁에서 충족되었기 때문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3/147


  과연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가?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 ~ 1941)는 <전쟁과 자본주의 Krieg Und Kapitalismus>에서 이 질문에 대해 집중하면서, 전쟁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입증한다. 이를 위해 베르너는 1) 자본주의 성장에는 근대 국가가 필요하며, 2) 근대 국가는 무력(武力)의 산물이었고, 3) 무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효율적인 시장이 필요했으며, 4) 그 결과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전쟁과 전쟁 준비는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국가 형성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독특한 발전을 위한 전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특별히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전적으로 무기의 산물이다. 근대 국가의 겉모습, 즉 국경선도 그 내부 구성 못지 않게 무기의 산물이다. 행정과 재정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전쟁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곧바로 발전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3/147


 내가 언제나 무엇보다도 먼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근대 군대가 1) 재산 형성자로서, 2) 성향 형성자로서, 3) (특히) 시장 형성자로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발전을 얼마나 촉진시켰는가이다.(p15)... 근대 군대는 상비군이며 국가 군대이다. 이미 언제나 존재한 두 가지 경향, 즉 제후를 유일한 지휘관으로 여기는 것과 그에게 지속적으로 군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계속해서 효과를 거뒤 마침내는 보편타당한 원칙이 되었다. 이 두 원칙의 승리는 외견상으로는 말하자면, 상징적으로는 국가 상비군의 식량 조달과 장비를 위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거나 제공하는 것에서 표현된다... 세 가지 계기, 즉 자금 조달, 지속성 및 국가에 의한 관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21/147


  좀바르트에 의하면, 전쟁은 국가의 군수품 수요와 민간의 군수품 및 물자 공급 모두를 자극하게 되고, 생산과 유통 혁신을 가져왔다. 막대한 무기 수요는 무기 생산 시스템의 변화를 자극해 분업(分業)을 통한 생산 방식이 나타났고, 피복과 선박에 대한 수요는 경공업과 중공업 등 산업 전반에 경기호황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의 푸거가와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금융재벌이 등장하면서 금융업의 발달도 함께 나타났다는 것이 좀바르트의 분석이다.  

 

커지는 무기 수요를 완전히 또 제때에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은 경제 생활의 형성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p60)... 다음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소총 산업이 그 당시에 이미 매뉴팩처 단계를 넘어 공장 방식으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아담 스미스가 미숙한 핀 산업 대신에 이 선진 산업에 입각해서 노동 조직 관념을 얻었다면, 그는 이미 그 당시에 사회의 대기업에서 노동 성과 상승의 이유를 올바르게 인식했을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64/147


 증대되는 무기 수요는 경제 생활의 형성에 큰 작용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진행 과정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p67)... 군대의 피복은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즉 필요한 물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은 도외시하기 때문에, 피복과 피복 재료에 대한 매우 많은 수요는 이제 시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p98)... 나는 결론으로서 조선(造船)과 자본주의라는 두 현상 간에, 넓은 의미에서는 전쟁과 자본주의 간에 존재하는 연관을 지적하고 싶다. 이 연관은 아마도 그 군사 활동의 전체적인 거대한 작용을 보여줄 것이다. 제철 공업이 특히 무기 수요에 의해 그리고 조선이 전함 수요에 의해 한층 더 높은 형태로 번형되었다면, 따라서 제철 공업과 조선이 결국 전쟁이 낳은 아이들이라면, 전쟁은 이로 인해 다시 파괴자가 되었다. 즉, 유럽 삼림의 파괴자가 되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24/147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총포와 무장된 범선, 숙련된 선원들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침략해 들어가면서 이전 시대까지 유럽 열위(劣位)를 한 번에 뒤집는다. 치폴라(Carlo M. Cipolla, 1922 ~ 2000)는 그의 저작 <대포, 범선, 제국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Early Phases of European Expansion 1400~1700>에서 이렇게 생산된 무력을 바탕으로 유럽 우위를 설명하지만, 이언 모리스(Ian Morris, 1960 ~ )는 조금 관점을 달리한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Why The West Rules - For Now>에서 그는 서양의 압도적인 무력도 중요했지만, 보다 근원을 '에너지 활용 능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조금은 다른 해석이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서구에서의 고전 역학에 기반한 물리학의 발전과 발전이 가져온 교통혁명은 소수의 유럽인이 세계를 틀어쥐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5세기 말 유럽 팽창의 역사에서 지중해 세계의 공헌은 기술적이라기보다 재정적 · 상업적인 것이었다. 14, 15세기에 대서양 유럽이 개발한, 대포로 무장한 배는 유럽의 영웅담을 가능케 한 발명품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선원이 전례 없이 막대한 양의 물리적 에너지를 이동과 파괴를 위해 제어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경제적인 고안물이었다. 어느 순간 유럽이 극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비결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66


 마운틴은 배와 항구를 날려 버리는 것은 서양의 지배를 설명하는 가장 인접한 원인, 서양의 장점이 길게 열거된 사슬의 마지막 고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의 공장들이 포탄과 뛰어난 대포,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전함을 생산해낼 수 있고, 영국 정부가 지구 반대편에서 수행되는 원정을 기획하고 자금을 대며 지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인이 어느 누구보다도 에너지 대사슬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뿐 아니라 매우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자신들의 위력을 전 세계에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정리될 수 있다.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p104/472


 교통 혁명의 전체적인 효과는 일련의 부수적 효과와 연결된 직접적인 운송 개선에서 생겼다. 그러한 부수적 효과의 하나는 철도 역사의 건축에 따른 도시 경관의 개조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경제적 공간의 창출이다. 따라서 철도와 해운의 역사는 단순한 교통의 역사를 뛰어넘는다.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이주의 성장과 변화다. 이는 몇몇 지역에서 발흥한 산업자본주의와 새로운 변경의 개척 같은 다른 자극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세계사의 한 과정이었다._ 세바스찬 콘라드 외 1,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750~1870>, p553/713


 이언 모리스는 최근의 서양의 우위가 단순한 무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Science Technology)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 서구의 에너지 활용이 다각화 된 것은 좀바르트가 지적했듯 대형 선박 건조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원 고갈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가 <엔트로피 Entropy: A New World View>에서 지적했듯, 서유럽의 문명사가 거칠게 표현해서 자연파괴의 역사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현대 서양의 우위는 과학기술의 승리가 아닌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 덧붙이자면, 치폴라 역시 <시계와 문명 Clocks and Culture: 1300-1700>에서 과학 혁명에 대해 말하기에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로 넘기는 것으로 하자.


 다시 좀바르트로 돌아가서, 우리는 전작 <사치와 자본주의>와 <전쟁과 자본주의>를 통해 유럽 사회의 사치품 수요와 군수품 수요가 자본주의의 탄생에 기여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 일상생활의 구조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1> 에서 기술, 화폐, 도시화 등 다른 요인들과 함께 역사의 하부 지층으로 보다 잘 설명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본주의 태동기에 사치와 전쟁이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좀바르트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일종의 소규모 "군사 케인스 주의" - 군사비 지출이 그 지출을 부담하는 국가 시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그럼으로써 조세 수입을 늘리고 새로운 군사비 지출을 지불할 능력을 상승시키는 관행 - 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후 모든 군사 케인스주의와 마찬가지로, 다른 관할권역으로의 영구적인 유효수요 누출  때문에, 또 비용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군사비 지출의 기타 재분배 효과들이 이런 목적을 위한 자본가 계층의 조세 납부 의지를 꺾었기 때문에, 군사비 지출의 "자기 팽창"은 엄격하게 제한된다._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 p91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 ~ 2009),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이 분석했고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가 전망했듯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력 사용에 의해 경쟁자들을 제압하기보다는 체제 내 안정과 안정 속에서의 번영을 추구하며 제국주의 노선을 수정했고, 그 마저도 제국주의가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자 식민지 독립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오일쇼크 전까지.


 전쟁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국민의 열정에 부채질 하는 일을 용이하게 해주는 요인으로는 전쟁의 경제적 원인, 즉 인구의 압력과 시장 확보를 위한 경쟁적 투쟁을 들 수 있다.(p459)... 만일 여러 나라들이 그들의 국내정책에 의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국 상품을 타국에 강매하거나 이웃나라의 매출을 격퇴시켜야 할 절박할 동기는, 그것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대금을 지불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역수지가 자국(自國)에 대해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국제수지(國際收支)의 균형을 뒤집으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할 동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_존 메이나드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p460


  이로부터 우리는 좀바르트가 두 저서 <사치와 자본주의>, <전쟁과 자본주의>를 통해 사치와 전쟁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좀바르트 이론이 자본주의의 변화상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자본주의 태동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음도 알게 된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근검, 절약하는 청빈하고 신앙심 깊은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물질과 영토 등에 욕심을 내던 이들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좀바르트의 이론은 절대체제로서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눈돌릴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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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7-18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자본주의 발달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한 표 겁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8 17:55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대체로 전쟁 수행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며, 전후 복구에 따른 유효 수요 증가 등을 고려했을 때 대체로 인접국가의 전쟁 관련 기업들을 특수를 누린다고 여겨집니다만, 범위를 넓혀 본다면 전쟁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집단도 있느니만큼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7-18 17:59   좋아요 1 | URL
평등은 태초 이후 그리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전쟁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집단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맘에 들지 않지만 서글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1-07-18 18:03   좋아요 0 | URL
네... 특히 자본주의 자체가 불평등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보니 더욱 그런 면이 어둡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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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대사는 어찌 보면 다양한 색깔이 섞여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처럼 보이고, 또 어찌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모순과 갈등이 얽히고설켜 있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꿈틀거림이 내재되어 있다.

봉건 모순에는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불균형한 토지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신분 차별과 일부 특권층의 토지 소유 및 농업생산의 독점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였다. 이런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제도를 타파하려는 민중 봉기는 역사의 추진 동력이 되었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이를 개혁하지 않고는 평등과 인권을 추구하는 근대를 지향할 수 없었다.

비록 수많은 농민군이 우수한 근대 무기 앞에 죽어갔지만 동학농민혁명이 던지는 의미는 저항적 민족주의 또는 생존적 민족주의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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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유럽 팽창의 역사에서 지중해 세계의 공헌은 기술적이라기보다 재정적 · 상업적인 것이었다.14, 15세기에 대서양 유럽이 개발한, 대포로 무장한 배는 유럽의 영웅담을 가능케 한 발명품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선원이 전례 없이 막대한 양의 물리적 에너지를 이동과 파괴를 위해 제어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경제적인 고안물이었다. 어느 순간 유럽이 극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비결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 P165

전함의 혁명적인 특성 덕분에 유럽 인들이 대양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확립하는 데는 몇 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럽 인들의 이점은 전함에 있었기 때문에 근 3세기 동안 유럽의 우위는 바다에 한정되었다.
- P169

18세기는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알렸다. 1장에서 제시했듯이 유럽의대포 주조자들은 17세기 중반으로 넘어가기 직전 효과적인 야포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함포와 범선과 더불어 유럽 인들은 비유럽권이 이를 흡수하기도 전에 급속도로 자신들의 새로운 발명을 향상시켰다. 그러므로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었고 또 더 이상 해상력에만국한되지도 않게 되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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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으로 인해 어떤 것의 위치가 달라지고 그것의 영향력으로 인해 다른 어떤 것이 발생되고 그것의 파급 효과로 인해 다른 무엇이 생겨 나고... 이런 함수 관계가 흥미로워요. 역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러하지요.
이런 것들을 정리해 놓는 저자들이 위대해 보입니다.
같은 현상도 다른 사람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달라질 거예요. 이 부분도 흥미로워요. ^^

겨울호랑이 2021-07-18 12:55   좋아요 1 | URL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면서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학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부여한 의미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그 세계가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대가(大家)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용아, 나는 죽어도 무당은 안 될 기다. 용이가 다른 각시 얻어서 살아도 나는 무당 안 될 기다.'  계집애는 해죽이 웃었다. 아니 고달프게 웃었다. 신이 오르면 넉살 좋게 목을 뽑고 초혼가에 자지러지며, 천대에 대항하여 사내같이 굵게 놀던 월선네하고는 달리 말이 없고 또 말재주라고는 없던 월선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러서는 힘껏 제 마음을 표시한 셈이다.(p494)... 물방앗간 옆에 쌓아올려 놓은 보릿대에 기대서서 월선이는 남의 얘기처럼 말했다. '아무 데 가믄 우떻노.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매는 한탄하지마는.' 남의 말같이 하는데 월선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용이하고 살 수 없다면 애꾸눈이건 절름발이건 월선에게는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따라가든지 그는 제 집 없는 뜨내기의 신세인 것이다._박경리, <토지 1>, p496/530


 이번 주 <토지 1>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월선과 용이의 사랑 이야기다.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상민과 천민의 신분 차이는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고 각자 자신들의 가정을 꾸렸다. 스무 살 연상의 봇짐장수와 결혼한 월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동으로 돌아왔지만, 용이의 본처인 강청댁의 핍박에 간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떠난 월선을 찾던 용이의 기억에 담긴 지난 시간의 기억은 월선의 아픈 마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월선은 간도에서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용이의 아이를 가진 임이네의 등쌀에 힘든 나날들을 보내다 서희를 따라 떠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용이의 아들 홍이를 아들처럼 돌보다 결국 암(癌)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월선. 의도치 않은 선행학습(?)으로 이들 사랑의 결말을 알아 버리고 나니 월선의 죽음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선(禪)문답 같은 이들의 대화에는 끊어질 듯 이어온 이들의 사랑이 짙게 배여 있다. 사랑의 붉은 실이 있다면, 용이와 월선의 손을 이어주지 않았을까. 홍연(紅緣). 




 마루에 올라선 용이는 털모자를 벗어던졌다. 솜을 두어 누덕누덕 기운 반두루마기도 벗어 던진다. 그러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임자."...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_박경리, <토지 8>, p292/504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죽음 앞의 인간 L'homme Devant la Mort>에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아리에스는 자신의 죽음이 '두려움'이었다면, 다른 사람과의 이별은 육체적인 이별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죽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죄(악)과의 이별이었기에,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용이와 월선의 헤어짐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아리에스가 말한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르다. 용이와 월선은 그들의 고된 삶을 긍정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면, 아리에스의 '타인의 죽음'은 현실 부정을 통한 아름다움의 승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차차 정리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토지1> 속의 용이와 월선의 가슴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다가올 아내와의 헤어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에게 다가올 저 순간에 나는 과연 망설임없이 한(恨)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용이와 월선의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죽음은 오히려, 그때까지 억압되어 있던 비장감(파토스)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는 과도한 감정 표출(혹은 지나친 무관심)에 대응하기 위한 방패막이로써 간주되던 침실에서의 의례 혹은 애도의 의식들이 본연의 의례성을 상실하게 되고, 유족들의 고통이 자발적으로 표출되는 장으로 개조된다. 그런데 이들이 비통해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순간으로서의 찬양의 대상이 된다. 죽음은 아름다움이었다._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p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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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17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은 끝까지 구구절절 마음 아리게 해용~ 겨울호랑이님의 독서챌린지를 격하게 응원합니당!!😊

겨울호랑이 2021-07-17 12:32   좋아요 2 | URL
둘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요....ㅜㅜ 붕붕툐툐님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이지만 건강하게 보내세요!

samadhi(眞我) 2021-07-17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겨울호랑이님이 발췌해 놓으니 시처럼 읽히네요.

겨울호랑이 2021-07-17 2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amadhi님. 작품 속에서 애잔하게 진행된 이들의 사랑은 독자들의 시간 속에서는 얼음 조각처럼 페이지 페이지를 장식하며 끊임없이 감정을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

samadhi(眞我) 2021-07-17 23:55   좋아요 1 | URL
다시 읽어보면 그 전엔 찾을 수 없었던 재미와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21권을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네요. 안 그래도 읽을 책 많은데 욕심 내지 않을랍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올려주시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7 23:57   좋아요 1 | URL
^^:) 읽어야할 책이 많은데 시간은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도 선뜻 다시 읽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