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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기는 요새 농사꾼들이 무신 수로 삼 한 뿌리 사가겄소. 죽는다, 산다, 해쌓아도 어제가 옛날이라. 산 넘으믄 또 산이 있고 갈수록, 그대로 옛날에는 겨울 한 철 뼈 빠지게 길쌈을 하믄 살림 한 모퉁이는 막았는데 그놈의 광목이다 옥양목이다 하고 기계로 짠 것을 풀어묵이니 손바닥만 한 땅만 파가지고, 흥 그놈의 땅이나마 질게(길게) 가지기나 함사? 장리 빚에 안 넘어가믄 천행이지 _ 박경리, <토지 8> , p 17/612


"돈이 있어야 안 살 물건도 사제요. 장꾼들이란 사고 접어도 급히 소용 안 되믄은 안 하고 기고 사고 접은 생각이 없어도 우짤 수 없이 소용이 되는 거는 사는 기고, 가만히 앉아서 살피보소. 장꾼들은 대개가 농사지기들인데 땅 파서 금덩이 나오잖으니께."_ 박경리, <토지 8> , p 26/612


 <토지 8>에서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간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려는 서희와 길상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아직은 공노인이 전면에서 조준구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안내하지만, 정작 서희 자신에게는 더 힘든 일이 간도에서 떠나는 결정이 아니었을까. 이번 주에 읽은 <토지 8>에서는 깊어가는 두 부부의 갈등과 함께 월선의 병세도 깊어가면서 소설의 전반을 어두운 분위기로 끌고 내려간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서인지, 공연히 페이퍼의 관심을 노인들의 대화로 옮겨본다. 무심히 흘러가는 듯한 객주집 주인과 공노인, 공노인과 등짐장수의 대화 안의 내용안에는 그들 자신은 의도치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당대의 세계경제와 역사의 흐름이 녹아들어있다. 이들 대화의 소재인 산업화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 교역품인 인삼(人蔘 Ginseng), 면화(綿花, cotton), 금(金 gold)이 그 흐름을 주도하는 상품/화폐들이다.


 인삼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교역품 가운데 '사무역 private trade' 상품으로 분류되었다. 이 시대에 사무역이란 일반적으로 배의 선장과 슈퍼카고 supercargo가 개인적으로 일정량의 상품을 배에 실어 거래할 수 있는 특혜를 일컫는다.(p101)... 사무역이 허용된 물품은 보석, 사향, 용연향 龍涎香 ambergris처럼 매우 귀하고 값비싸며,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인삼이 사무역품으로 분류된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02/354


 설혜심((薛惠心)의 <인삼의 세계사>에는 사치, 귀중품으로서 인삼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뛰어난 약효로 인해 중국에서 다량 소비되었고,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인삼. 만주, 시베리아 지역과 함께 고려인삼(高麗人蔘)은 최상품이었으며, 적어도 인삼 시장에서는 '북미산'은 3등품에 불과했음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성인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홍삼과 백삼이 있다. 원래 삼포(蔘圃)에서 채취한 것을 수삼이라 하며 수삼을 깎아 말리면 백삼이 되며, 홍삼은 수삼을 다시 쪄서 말리는 것이다. 홍삼은 본래부터 가격이 고귀하여 자고이래로 영약이라 하여 중국에서 대량적으로 수출이 되는 동시에 중국인에게는 특별한 약효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삼만은 여지없이 천대를 받아 약국에 건재물로만 취급되어 왔을 뿐이었다. _ 최문진, <개성인삼개척소사>, p67/86


 홍삼은 한국 정부의 독점적인 사업이다. 즉 정부가 삼포에서 인삼만 사서 인삼을 인삼과 홍삼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따라서 관공서에서 생산한 홍삼을 다른 사람에데 되팔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업에 종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포주나 인삼을 외국인에게 파는 등의 행위는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위반자는 인삼포와 인삼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몰수하고 심할 때는 사형에 처한다.... 종사자의 말대로 인삼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물산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홍삼제조권을 독점하고 있다. 판매과 구매를 엄금하는 것은 아니다. _ 시노부 준베이, <조선인삼의 가치>, p42/58


 홍삼(紅蔘)과 백삼(白蔘)으로 구분되는 전통의 인삼시장에서 홍삼은 중국과 무역에서 매우 중요한 삼품으로 취급받았기에 국가의 보호와 관리 대상이었다. 이러한 홍삼 시장을 일제가 그냥 둘 리는 없었고,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인삼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일제는 1900년 전호 인삼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최문진의 <개성인삼개척소사>에서는 개성상인에 의한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백삼'의 재발견 역사를 다루지만, 이것은 구한말(舊韓末) 미쓰이 독점 체제인 홍삼 시장에서 밀려난 개성상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직후부터 외국 신문에서는 한일간의 무역의 불평등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사에서 인삼은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주제였다.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통해 인삼 수출을 강제한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기사의 요지였다. 1887년 <타임스>는 주일 영사 해리 스미스 파크스(Harry Smith Parkes, 1828 ~ 1885)의 보고를 빌려 극심한 기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한국에 일본 배가 들어와 7세 아이를 5센트에 팔아넘기고 있다면서 일본에 비난을 퍼부었다. "인삼 말고는 일본에 수출할 물건이 없는" 한국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기조가 만연했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3/354


 1901년이 되면 일본의 한국 침탈이 한층 거세져 "열차, 철도, 한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작물인 인삼 수확량 전체"가 모조리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인삼밭 전체가 미쓰이(三井)의 소유가 되었다"는 기사가 <타임스>를 통해 전 영국에 퍼져나갔다. _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4/354


 인삼이 세계적인 사치품으로 중개무역 상품으로 거래되었다면, 면화는 다른 성격의 상품이다. 일상생활용품으로 널리 사용되는 면제품은 영국의 산업혁명의 성과와 직접 연관되어있으며, 교역상품이 아닌 노예제 플랜테이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경제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가관리회계에서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직접재료비(DM), 직접노무비(DL), 제조간접비(OH)로 구분한다면, 새로운 식민지 인도의 면화를 원재료(DM)로 영국와 아일랜드의 농촌 인력을 활용(DL)하여 만들어낸 면직물은 말 그대로 산업혁명 그 자체였고. 영국은 면직물 산업에서 최강자였다. 


 변혁은 직물 제조 공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났다.(p120)... 1820년 이후에는 방적업자들이 자신의 공장에 직포 작업장을 부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제철업에서처럼, 면공업에서도 산업의 변화는 대기업의 발흥이나 여러 공정의 통합과 결부되었다. 면방적과 직포에서 일어난 혁신들 대부분은 다른 직물들의 제조에 적용될 수 있었다. _ T.S. 애슈턴, <산업혁명> , p126


 이러한 영국의 강력한 면직물 공업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일본과 식민지 - 조선, 만주(1930년대 이후), 타이완 등 - 을 둘러싼 bloc경제를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토지 8>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조선에 세워진 면직물 공장들에서 옥약목과 광목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 전통의 무명산업은 붕괴되고 만다.


 1909년에 이르러 일본이 수입하는 면화 가운데 인도산 면화가 62%에 달하자, 일본인들은 대영제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염려하며 그로부터 헤어나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식민지인 만주, 타이완에서 들여오는 면화가 잠재적 해결책 중 하나였다. (p388)... 인본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면화는 1904~1908년 연평균 1,678만 2,917kg에서 1916~1920년 7,484만 2.741kg으로 증가했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8/689


  이상에서 처럼 실물경제에 있어 일제의 침탈은 사치품목으로는 인삼, 일상생활용품으로는 면화 등이 잘 보여준다면, 금융시장에서의 침탈은 '금'이 잘 보여준다. 당시 세계적으로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가 운용되었기에 각국은 화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해야 했다.(금태환 金兌換) 여기에 대해 헤르만 라우텐자흐(Hermann Lautensach, 1886 ~ 1971)의 <코레아 Korea>는 1940년대까지 일본의 금융제도를 지탱하는 역할에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선의 인삼, 면화 그리고 금이 절대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기록을 통해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철도, 항만 등 이른바 사회간접자본(SOC)는 이러한 과실을 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광물자원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나라이다. 주요 광산물 가운데 석유와 주석만 없다. 그러나 옛 한국에서는 이렇게 풍부한 광물자원이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계에 대한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 방식이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1916년에 미래의 광업권은 일본인이나 일본법하에서 생긴 법인(法人)에게만 허락한다는 규정을 공표하였다. 이 규정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7


 금광이 가장 중요하다. 종종 금과 직접적으로 결합되는 은과 함께 금은 1936년에 광업 총생산액의 64.7%를 차지앴다. 지난 10년간 조선총독부는 금 채광을 독려하기 위해 금광 탐사와 저품위 광석을 인근 철도나 항로로 운송하는 데 재정지원을 하였다. 1911년 금 생산액은 4,500,000엔에 달하였다... 1940년에는 아마 1억엔을 초과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금 생산은 일본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금 생산은 1937년에 세계 금 생산의 1.7%에 달하였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여전히 주장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시 들여다본다면, 이들의 연구가 실증사학(實證史學)을 표방하지만, 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를 편집한 편협한 주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근거한 극우(極右) 주장의 허구성도 여기에 뿌리를 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 폐해가 만만치 않음도 다시금 느낀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한국에 있어서 근대적 경제성장은 20세기의 식민지기 植民地期부터이다. 근대적 소유제도가 정비되고, 철도, 도로, 항만, 통신의 발달에 의해 전국적으로 잘 통합된 상품시장이 성립하고, 나아가 노동시장 및 금융시장이 20세기 후반까지 차례로 성숙하였다. 그러한 새로운 토대 위에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산업사회가 발달해 왔지만, 그 발달의 구체적 양상, 그 한국적 유형의 특질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19세기 말까지의 전통 경제체제가 전제로 또는 제약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_ 이영훈 외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 p389


 이처럼 <토지 8>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듯 나누는 노인들의 대화 안에는 이른바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이라는 근대 아시아의 식민제국이 실은 식민지 조선(朝鮮)에 기생하여 열강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다. 이러한 수탈의 결과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고단해질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할 것이고, 이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 각국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한 과거였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오늘날에도 일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계속 힘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토지>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어두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1865년 이후 농촌 면화 재배지역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새로운 노동 체제를 마련하는 데 국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국가는 면화를 재배할 수 있는 드넓은 새 영토를 확보하여, 그 지역을 정치, 군사적 그리고 관료주의적으로 지배했다. 그들 모두가 노동력을 통제하는 것이 영토 지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시대 관찰자들은, 이처럼 세계 시장을 위한 면화 재배로의 전환을 좌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이 패권을 쥔 제국들의 영토 지배라는 점을 상식으로 여겼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9/689 


PS. 센코카이(鮮交會)라는 일본의 조선철도 근무 경험자들의 모임에서 편찬한 <조선교통사>에서는 조선에 부설된 철도가 단순한 여객철도가 아닌 자원, 물자 반출을 위한 화물/산업철도였음을 잘 보여준다. 산업과 경기에 따라 화물 물동량이 크게 움직이고, 이러한 영향으로 운임이 변동되는 철도 통계 자료는 일제의 SOC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 여겨진다...


 한일병합 후 침체된 경제계도 차츰 회복의 징후를 보였으며, 각종 기업도 부흥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석탄과 건축 재료 등 화물의 움직임이 증가하였으며, 또한 풍년으로 인해 곡물 수송은 유례가 없는 호황을 보이고 평남선 개통, 이어서 경원/호남 양 선의 일부 개통과 함께 기존선의 영업 상태도 양호해졌다.(p135)... 1925년 4월 직영 환원 후 매년 경제계가 회복하여 쌀 반출과 조의 수입, 기타 각종 자재의 수송이 활발해졌으며, 1927년 4월경 일본 전국에 실시된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실시로 인한 충격 속에서도 호황을 유지하였다. 1928년 9월 이후에는 함경선 전선이 개통된 결과 함북 방면에서 목재와 석탄 등이 남하하였으며, 1929년에는 이원철산선과 차호선의 영업이 개시되면서 이 연선 광석의 반출 및 함경남도 흥남 유안공장의 조업과 이의 출하 개시 등에 의한 새로운 생산 분야 개척으로 수송량 증산을 가져왔다.(p138)... 1937년에는 중일전쟁 발발에 의한 특수 수송과 함께 병참기지로서 군수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반도 경제도 점차로 장기화되면서 물자와 교통 동원 계획을 바탕으로 전시체제로 재편성되고 생산력 확충을 위해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_ 센코가이,<조선교통사 3>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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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은 한국 정부의 독점적인 사업이다. 즉 정부가 삼포에서 인삼만 사서 인삼을 인삼과 홍삼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따라서 관공서에서 생산한 홍삼을 다른 사람에게 되팔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업에 종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포주나 인삼을 외국인에게 파는 등의 행위는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위반자는 인삼포와 인삼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몰수하고 심할 때는 사형에 처한다.. 종사자의 말대로인삼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물산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홍삼제조권을 독점하고 있다. 판매과 구매를 엄금하는 것은 아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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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니우스 박물지 -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지음, 존 S. 화이트 엮음, 서경주 옮김 / 노마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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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는 요소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곡물, 포도주, 올리브유, 양모, 아마, 직물 그리고 소는 최상급이다. 이탈리아 말이 다른 어느 지방의 말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금, 은, 구리, 철 등의 광산도 그 어떤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귀한 보물이 한량없이 넘치는 이탈리아는 육지와 바다에서 아낌없이 풍요로움을 베풀어 준다. _ 플리니우스, <플리니우스 박물지>, p538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 ~ 79) 의 <박물지>는 지구, 원소, 인간, 동물, 금속, 예술 등에 관한 고대 그리스•로마인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상의 내용이 플리니우스 개인의 업적만은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 헤로도토스의 <역사> 의 체계와 내용이 <박물지> 안에 잘 녹여져 있기에 고대인과 우리의 거리를 좁혀준다. 비록, 체계적인 분류법에 따른 항목 구분은 아니기에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오히려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박물지>를 읽으며 서양의
‘공간‘과 동양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제국의 중심 ‘이탈리아 찬가‘를 마지막으로 플리니우스는 <박물지>를 마무리하는데, 제국의 식생, 풍습 등에 대해 서술된 책을 읽다보면 제국주의 시대 탐험가 기록을 연상케 된다. 이처럼 제국의 공간을 중시하는 전통는 서구 문명의 공통분모라 여겨진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한 왕조가 끝나면, 다음 왕조에서 이전 시대의 역사를 정리해서 편찬하는 전통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플리니우스 박물지>는 서양의 공간과 동양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일깨운다.

동양에서는 ‘시간‘이, 서양에서는 ‘장소‘가 보다 중요한 개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근대 이후 생물학과 비교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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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3 1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탐나는 책인데...가격이 어마어마하네요
도서관 희망도서로도 받아주지 않는^^

겨울호랑이 2021-10-23 17:25   좋아요 2 | URL
가격이 조금 많이 세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ㅜㅜ ... 그럼에도 거를 수가 없네요...^^:)

그레이스 2021-10-23 17:27   좋아요 2 | URL
이미 장바구니에 들어 가 있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책이라

겨울호랑이 2021-10-23 17:29   좋아요 2 | URL
고전은 항상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에, 그레이스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10-23 1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동양의 시간과 서양의 공간… 무척 공감됩니다.
동양이 공간을 더 알고 서양이 시간을 더 알았으면 좋았을 듯 싶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23 17:27   좋아요 3 | URL
과거보다 여러 모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알아가기 좋은 여건이기에, 세계적인 관점에서 시공간의 통합 문명이 우리 시대에 꽃피우길 바라봅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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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ual Wallerstein, 1930 ~ 2019)은 근대 세계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볼 것을 제안하는 <근대세계체제 1 The Modern World- System>을 펴냈다. 세계는 노동양식에 따라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로 나눌 수 있고,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세계-경제체제가 1550년경 형성되어 확대 발전한 결과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체제의 중심부는 세계적인 분업체제에서 수익성이 높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나머지 지역들에서 잉여를 흡수한다. 그리고 그 작동 과정은 국가기구와 자본 사이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272/354

설혜심(薛惠心)의 <인삼의 세계사>는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케네스 포메란츠 (Kenneth Pomeranz)의 <대분기 Great Divergence>와 안드레 군더 프랑크 (Andre Gunder Frank) 의 <리오리엔트 ReORIENT : C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와 관점을 같이 하는 책이다. 차이가 있다면, 앞선 두 권의 책이 거시사(Macrohistory) 측면에서 시대를 분석한다면,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人蔘)의 미시사(Microhistory)를 통해 월러스틴의 체제론을 비판한다는 점일 것이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임노동이 우세한 중심부에 의해 주변부의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형태로 세계 체제가 유지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주변부의 원재료, 금/은 공급과 중심부의 상품의 교역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월러스틴 세계체제의 주요 내용이지만,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이라는 당시 최고의 명품(名品)의 소비지와 생산지 모두 유럽이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적어도, '인삼'이라는 품옥에 있어서 중심지는 동북아였고, 유럽은 주변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인삼'은 결코 계륵과 같은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갖기를 열망하는 품목이었다는 점에서 '인삼의 중심부'가 세계자본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미국이 직접 인삼 수출에 나서게 되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삼은 그동안 영국이 중국으로 수출했던 주요 상품으로, 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터라 영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 교역을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121/354

면화, 아편 등을 통해 현지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영국동인도 회사도 쉽게 확보하지 못한 상품, 신생독립국으로서 재정, 산업 기반이 약했던 초창기 미국이 낮은 품질의 인삼 수출을 통해 국제 무역을 참여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주변부' 유럽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함께, 대규모 은을 수탈당했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세계무역의 주체로서 동아시아 3국의 위상과 함께 중간교역지로서 조선(朝鮮)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고요한 은자(隱者)의 나라가 아닌 개성의 인삼 상인의 모습을 통해 근대 시기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음을 미루어 추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18세기 중반) 일본에서 통용되던 은(銀)화의 순도가 30% 내외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순도 80%의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은 은의 배합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그만큼 일본이 조선임삼을 수입하려는 의지가 강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특주은을 주조하는 데 매년 은 5.3톤을 사용했는데, 이 은은 조선에 머물렀다기보다는 다시 인삼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갈 운명이었다. 주경철을 이러한 은의 이동을 "세계 최대 은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 은 공급자(일본)를 조선의 인삼이 매개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파악했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90/35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적은 교역품인 '면화'와는 달리 '인삼'은 왜 잊혀졌는가? 저자는 인삼이 잊혀진 원인을 서구 과학의 한계에서 찾는다. 인삼의 효능을 실증적으로 입증하지 못했고, 야생 인삼의 고갈로 말미암아 '신포도 sour grapes'로 전락한 인삼의 역사를 저자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인삼의 세계사> 안의 인삼의 역사에서 서구 근대 사상에 미친 공자(孔子, BC551 ? ~ BC479)등 중국사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초기 계몽사상가들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 크리스티안 볼프(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1754)에게 미친 중국 사상의 영향이 은폐된 것처럼 인삼의 역사 또한 은폐되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인삼의 세계사>는 결코 어렵게 씌여지지 않았으면서도,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 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인삼(人蔘)은 서구가 교역했던 상품이었지만 결코 서구의 상품이 될 수 없었다.(p273)... 19세기 서구의 과학계는 유용한 이방식물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며 '근대적 의약학'을 성립해 나갔다. 하지만 인삼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데 실패했고, 인삼의 약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서양은 훨씬 오랫동안 인삼을 사용해온 동아시아의 지식체계에 도전할 수 없었다. 결국 서양의 의약학은 인삼을 자신들의 지식체계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오히려 그 효능을 폄하하며 배척해나갔다. 하지만 화기삼을 수출할 때는 동양의 의학적 전통에 기대어 그것이 고려인삼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양태를 보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27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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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2 1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럽중심주의 시선에서 벗어난 서술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요. 찜해 갑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22 19:14   좋아요 3 | URL
근대경제사의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주는 책이라 프레이야님께서 좋은 시간을 가지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레이스 2021-10-22 1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네요^^

겨울호랑이 2021-10-22 19:16   좋아요 3 | URL
^^:) 우리에게 친숙한 인삼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재밌는 책으로 생각됩니다

그레이스 2021-10-22 19:20   좋아요 2 | URL
혹시 내일이 인삼데이여서 올리셨나요?^^

겨울호랑이 2021-10-22 19:22   좋아요 2 | URL
아,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대신 「토지」 독서챌린지 페이퍼와 연관되어 그 전에 마무리를 하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대개 만물이란 정해진 모양이 없고 일에도 정해진 형세가 없는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이로움을 타고 있어도 해로움을 받으며 어떤 사람은 손에 넣은 것 때문에 더욱 잃게 된다. 이리하여 오(吳)가 제(齊)의 변경을 침략하여 마침내 구천(句踐)의 군사를 맞이하게 된 것과 같으며, 조(趙)가 한(韓)의 땅을 거두어들이고 마침내 장평(長平, 산서성 고평현)에서의 싸움이 있게 된 것과 같다.

굽어지고 곧은 것은 이미 다른 것이고, 강하고 약한 것이 같지 아니한데, 한 사람을 얻고자 한 나라를 잃고, 노란 새를 보다가 깊은 함정이 있다는 것을 잊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하지 않는 바이고 인자한 사람은 향하지 않는 바이다. 참으로 지난 일은 뒤쫓아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오히려 앞으로의 일은 쫓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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