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별 큰곰자리 35
이용한 지음, 이미정 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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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작가의 <고양이 별>은 길고양이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길고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이웃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유해동물로 비춰지는 존재들. <고양이 별>에서 그네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유없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반면, 어떤 이들은 괴롭히거나 심지어는 죽이려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알려준다.

아마도 <고양이 별>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이 보겠지만, 귀여운 고양이의 유쾌한 이야기 대신 각박한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통해 볕 좋은 양지에서 뒹굴거리는 게으른 고양이의 하품 뒤에 흘러 나오는 눈물의 의미를 아는 것도 또다른 아이의 성장이리라.

<고양이 별>에 그려진 이미정 작가의 그림은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없으면 나오기 힘든 작품이라 생각된다. 표정으로 전해지는 고양이 감정은 글에 대한 몰입감을 더해준다. 책은 슬픔과 안도감이 섞이면서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딸에게는 어떤 여운이 남을지 궁금하지만, 개인적으로 책이 남긴 여운은 아래 문장이 잘 표현해주는 것같아 옮겨본다. 이런 독백이 반드시 길고양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야. 자기들은 떠나면 그만이지. 아무도 남아 있는 고양이 따위 생각하지 않아. 저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먹이를 찾아방황하겠지. 지금의 배부른 기억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몰라. 지금의 행복한 순간이 나중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몰라."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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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16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는 고양이를 아끼시니, 이미정 작가의 그림체, 그림만 보셔도 고양이 향한 애정을 느끼실 수 있나봐요. 그 점이 신기, 아니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겨울호랑이 2022-06-16 07:43   좋아요 2 | URL
사실, 제가 특별히 고양이를 배려하거나 아끼는 편은 아닙니다. 원래 가족끼리는 그러는거 아니잖아요 ㅋㅋ 다만, 작가께서 고양이 습관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 성격 등을 워낙 예리하게 짚어 표현한 그림에 감탄할 수준의 애정은 저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얄라얄라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독서괭 2022-06-16 0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사랑스럽네요~ 길고양이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할 수 있는 책일 것 같습니다. 담아갑니다~^^

겨울호랑이 2022-06-16 07:45   좋아요 3 | URL
네, 고양이의 표정이 담긴 그림과 사람에 대한 고양이들의 생각들이 잘 담긴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독서괭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나의 의도는 1792년과 1815년 사이에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역사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어느 모델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한 가지는 여전히 분명하다. 프랑스 혁명은 일단의 복잡한 정치적·재정적·지적·사회적 문제들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그중 다수는 그 기원이 프랑스 외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발전상으로는 16세기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대양 무역의 확립과 17세기 전 세계적인 상업 회로들의 등장이 있다.

프랑스의 전쟁은 징세(다소 느리고 뒤엉킨 과정)에 내재한 문제들과, 가장 부유한 계층이 대체로 납세에서 면제되는 특권 체제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사실 프랑스의 식민지 야심을 지탱하는 돈은 세계 금융에서 나왔다. 18세기 내내 프랑스는 외국 채권자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제 자본시장에 갈수록 의존하게 되었다.

혁명적 움직임은 "어떤 일단의 통합적인 관념들, 희망과 항의를 표현하는 공통의 어휘, 한마디로 공통의 ‘혁명적 심리’와 같은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한 저명한 프랑스 역사가는 말한 바 있다. 계몽 운동은 그러한 "일단의 통합적인 관념들"을 제공했고, 프랑스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은 급진적 관념들을 옹호하고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주창했던 계몽철학자들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과 7년 전쟁(1756~1763)이 끝난 뒤에 평형 상태는 더 많은 강대국들을 포함하고 훨씬 넓은 지리적 범위를 아울렀다. 이 전쟁들은 프랑스와 에스파냐를 희생시켜 해상과 식민지에서 영국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세력 다툼의 분명한 메커니즘을 발전시켰다. 즉 프랑스보다 두 배가 넘는 전함을 보유한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함대가 앞바다에서 중요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고, 물자 보급을 차단하고,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군사력을 대륙에 봉쇄하는 사이, 영국은 대륙에서 동맹 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군사적·상업적 패권을 확립했다.

‘강대국 체제’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이 개별 국가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표와 열망을 형성하는 별개의 정치 세계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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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재현의 몫을 다양한 존재들에게로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문학이 언제고 해오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반복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날 때 발생하는 차이가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스티글러(B. Stiegler)의 말처럼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우리를 더는 나누어질 수 없는(in-dividual) 의미로서의 개인이 아닌, 무수히 나누어지고 데이터화되는 가분체(dividual)적 존재로 이끄는 듯하다. 조각나고 분열된 형태로서의 개인. 이 지점에서 주체는 이미 상징적 정체성 그 자체로 인해 분열되어 있다는 정신분석학의 오랜 명제를 떠올려볼 수도 있겠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분열과 연결에의 강박 사이에서 분투하는 세대를 위시하며 이들에게로 향하는 문학은 과연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냉전 종식 이후 짧은 단극시대를 지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시대로 규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의 질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선 이번 전쟁은 미국 단일패권 체제에 맞서 주요 강대국이 수행하는 최초의 군사적 도전입니다. 그동안 미중 갈등의 심화에도 군사적 충돌은 없었는데, 우끄라이나전쟁은 비록 대리전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미국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실질적인 군사적 도전이거든요. 이것이 ‘신냉전’이 될지 ‘세계대전’이 될지 몰라도 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의 대립 구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규범적 차원에서는 이번 전쟁이 군사적 수단을 통해 주요 강대국 간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되어도 일정한 타협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사력 사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이른바 ‘야만의 시대’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서구의 정체성이 균열되는 지점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냉전을 단순히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고 이해하지만, 사실 미국과 유럽이 함께 ‘더 웨스트’(the West)로서 대응했습니다.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 자유진영이라는 단일한 정체성 블록이 있었던 거죠.

저는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는 시각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미국의 패권 기반 약화가 이 전쟁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우선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양상입니다.

다음으로 미국의 경제적 패권 기반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일시적으로는 천연가스나 무기를 수출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겠지만, 달러표시자산의 신뢰성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우리가 ‘합리성’을 너무 과신하지 않았나 하는, 조금은 비관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성’을 상대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릅니다.

. 국제정치는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언론의 보도는 서구 사회와 언론의 시각에 지나치게 동조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국제정치학 수업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뿐 아니라 중동, 중국, 러시아의 국제방송 영상을 함께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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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의 정치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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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콕스는 실상 모든 본질적인 점에서 세계체제 시각과 일치하는,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명제를 주장했다. (1) 자본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체제(world-system)다. (2) 자본주의는 끝없는 자본의 축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로서 작동한다. (3) 자본주의 세계경제에는 핵심부-주변부의 모순에 기초를 둔 기축적 분업이 존재한다. (4) 그 체제에서 중심 국가의 자리에는 불가피하게 꾸준한 이동이 일어났다. (5) 자본주의는 여러번 창출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한번 창출되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330


 세계체제의 위기는 세계체제 전반의 기회이며, 어쩌면 특히 아프리카 경우에 그러하다. 현 세계체제의 진행 과정 자체가 위기를 악화시키며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한,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어떤 혼란, 다시 말해 25~30년에 걸친 세계적 대혼란을 수반하며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종류의 질서가 나올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24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은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The World-System and Africa>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냉전(冷戰)체제가 붕괴되는 세계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이러한 가능성을 아프리카에서 찾는다. 20세기 말 공산권국가의 붕괴로 세계체제의 패권을 확보한 자유주의 진영이지만, 공산권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체제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었다.


 이데올로기 면에서 맑스-레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주변부 및 반주변부 지역에서 국가 주도의 개혁이 상당한 경제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 제거해버렸다.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들의 붕괴가 실제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의 붕괴였다고 내가 다른 지면에서 주장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p113)...  자본의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지도 원리는 점점 더 커지는 실질소득의 양극화를 필요로 하고 또 불러일으킨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15


 이러한 자유주의 진영의 외부 환경의 변화에 더해, 근대세계체제의 핵심기조인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성도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서 함께 지적된다. '핵심부-주변부'의 불평등한 관계 안에서, '최소비용 최대이윤'의 추구는 끊임없는 주변부의 팽창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계산업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가게 되고, 중심부의 핵심 산업은 저비용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자유주의로 변모한 세계체제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20세기 말 경기순환의 대국면이 전반적으로 수축되고 세계화(世界化)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닥친 생태위기는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로 작동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월러스틴은 세계체제의 마지막 주변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1945년부터 1970년경에 이르는 꼰드라띠예프 A국면의 패턴이 수입 수준의 전반적인 향상 및 양극 간 격차 축소를 나타낸 반면에, B국면의 패턴은 국내적으로 수입 양극화의 상당한 증가를 보여주었다. 적은 비율의 사람들이 적어도 장기간에 걸쳐 꽤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소수의 집단을 제외하면 국내의 빈곤이 뚜렷이 증가했으며, 마침내 중간계층에서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 떨어져나가고 그밖의 중간계층 대부분도 실질수입의 감소를 겪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05


 잉여가치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배되기 마련이다. 이 분배의 조건은 결국 정치적인 문제로, 양측의 협상력에 달려 있다. 자본가들에게는 한가지 기본적 모순이 있다. 만약 세계적으로 노동에 대한 보수의 조건이 너무 낮으면 그것은 시장을 제한하며, 이미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알려준 대로 분업의 범위는 시장 범위의 함수다. 그러나 만약 그 조건이 너무 높으면 그것은 이윤을 제한한다. 노동자들로서는 당연히 자신들의 몫을 늘리기를 원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투쟁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노동자들은 그들 조합의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나타난 이윤 압박(profit squeezes) 현상을 낳았다. 자본가들은 일정한 선까지만 노동자들과 싸울 수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그 선을 넘어서 실질임금 수준을 너무 낮추면 그들의 생산품에 대한 세계적 유효 수요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되풀이된 해결책은 더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시장을 공급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취약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매우 낮은 임금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총 생산비용을 낮추어주는 새로운 인력계층을 세계 노동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세계의 탈농촌화는 이 필수적인 과정을 위협하며, 그럼으로써 자본가들이 그들의 세계적 이윤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두번째 장기적 추세는 생태학적 위기라 불리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이것은 비용의 외부화를 종식할 위협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75


 그렇지만, 월러스틴은 아프리카에서 희망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가 겪는 문제가 본문에서 제기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경제적 제국주의의 흐름과 정치적 제국주의 흐름 사이의 간섭과 방해다. '민족'과 '해방'이라는 좌파(the Left)이념으로 집권한 세력들이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세계질서에 편입되기 위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는 모순. 월러스틴은 비동맹 운동(非同盟 運動, Non-Aligned Movement, NAM)의 한계성을 이와 같이 지적한다.


 내가 보기에 경제적 제국주의가 반드시 정치적 제국주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때로는 정치적 제국주의에 의해 방해받기도 한다. 이 같은 방해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정치적 양상의 식민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경제적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8


 운동이 권좌에 머물러 있으려면, 이 지점에서 오로지 한 가지 정책만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니, 그것은 곧 진정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연기하고 그 대신 세계경제 안에서 '따라잡기'(catchup)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운동들이 세운 정권은 모두 한결같이 세계경제 내에서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들고자 했고, 또한 주요 국가들의 수준에 더 가깝게 자체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으레 주민 대중이 정말로 원한 것은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바로 부유한 나라들의 물질적 혜택을 '따라잡는 것'이었으므로, 운동 지도자들에 의한 전후 정책의 변경은 실제로 인기가 있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65


 동시에, 월러스틴은 이러한 한계를 유지하는 '억압의 한계'로부터 세계체제 전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억압은 결코 변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힘이 될 수 없기에, 억압이 강해질수록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억압을 대체하는 희망과 확신을 가진 대중적 지지를 통해 주변부의 변화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을 우리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서 발견한다.


 모든 반체제 운동의 경우 '잠정적인' 목적의 성취, 즉 국가권력 장악이 현존 세계체제를 침식하는 동시에 강화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지역권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강화작용보다 침식작용이 더 컸다는 것이 분명하다(p28)... 향후 25~50년의 중대한 정치적 전장이 국가 간 대립 또는 고전적인 형태의 계급투쟁(사적 부르주아 기업가 대 프롤레타리아 산업노동자)이 아니라 반체제운동들 내부 그리고 반체제운동들 일체의 울타리 안에 존재할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30


 무엇이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가? 억압의 수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억압은 흔히 변함없는 상수(常數)이며, 따라서 예전의 T1 시점에 동원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왜 T2 시점에는 동원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희망과 확신 - 억압의 끝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믿음, 더 나은 세상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믿음 - 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60


 월러스틴의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대륙의 문제로 하기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월러스틴이 아프리카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세계 힘의 중심점으로부터 먼 변방'이라는 점이 역으로 '세계 힘이 맞붙어 균형점'으로 자리잡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대칭적으로 생각할 지점을 던져준다. 또한, 본문에서 다루어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금융과 군수산업에 기반한 전쟁을 통해 세계적인 유효수요(有效需要) 창출을 통한 세계체제 유지는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도 낯선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통해 다른 제3세계에 비해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수 밖에 없었으나,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이 되는 것을 제한하는 분단체제의 한계를 실감하는 우리에게 아프리카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 문제를 고민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 생각된다...


 요는 현대 세계의 4대 힘의 중심인 미국, 소련, 서유럽, 일본, 중국은 모두 지역권의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겠지만, 그래도 남부 아프리카의 사태 전개는 그들의 어젠다에서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 지역으로서는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기도 하다. 그것이 행운인 동시에 불행인 이유는 다음번의 경제적 팽창 국면으로 들어갈 때, 아마도 남부 아프리카에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 다행스럽고 경제적 관점에서는 덜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48


 국제통화기금(IMF)은 채무상환위기에 처한 모든 국가에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더 적은 수입과 더 적은 주민 복지), 그리고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임금을 낮게 유지하거나 더 낮춤으로써, 내수를 위한 생산으로부터 무엇이든 세계시장에서 당장 팔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체제로 전환함으로써)을 권고했다. 이 껄끄러운 권고안을 위해 IMF가 지닌 무기는 어떤 특정 국가가 IMF의 정책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모든 서방 정부의 단기적 지원을 보류시키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채무위기가 일어날 경우)  해당 정부의 지불 불능 사태가 코앞에 닥치는 것이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 p108

‘탈식민화‘(decolonization) 과정이 1945년에 누구나 예견했던 것보다 여러 면에서 더 수월하게 이뤄진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만물의 상품화‘(따라서 세계경제의 양극화) 과정이 ‘원주민‘ 정부하에서 더 느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진행되리라고, 중심부의 선견지명 있는 정책입안자들이 내다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애초부터 걸어온 역사적 궤적에 들어맞는 일이 될 것이다. - P25

모든 운동을 하나로 묶은 것은, 첫째로 ‘인민‘은 누구이며 인민에게 ‘해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공동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이 운동들은 또한 권력이 현재 인민의 수중에 있지 않으며 인민이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불공정하고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상황에 대해 책임이 있는 집단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 P53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들의 전략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이중의 굴레에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운동들의 단 한가지 목표는 근대 세계체제의 주된 조정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근대세계체제 내에서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반체제운동을 궁극적으로 무력화하고 세계의 변혁에 대한 그들이 무능력을 확실하게 하는 목표이기도 했다. - P73

‘인종‘(race) 개념은 세계경제의 기축을 이루는 분업, 즉 핵심부-주변부의 이율배반과 연관되어 있다. ‘국민‘(nation) 개념은 이 역사적 체제의 정치적 상부구조, 국가 간 체제를 이루는 동시에 그로부터 비롯하는 주권국가들과 연관되어 있다. ‘종족집단‘(ethnic group) 개념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비임금노동의 구성분자들을 대규모로 유지하도록 해주는 가계(household) 구조의 창출과 연관되어 있다. 이 세가지 용어들 중 어느 것도 계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 이는 ‘계급‘과 ‘민족성‘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며, 역사적 체제의 모순들 가운데 하나다. - P151

구좌파운동들의 실패는 제일 먼저 1968년의 세계 혁명에서 정치적으로 큰 파급을 끼쳤다. 1945년 이후 구좌파운동은 지구 도처에서 - 공산주의운동들은 이른바 사회주의 블록에서, 사회민주주의운동들은 범유럽 세계에서, 민족해방운동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리고 포퓰리즘운동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지만 세상을 뚜렷이 바꾸지는 못했고, 그것이 이 운동들에 대한 신뢰를 철회한 1968년의 혁명가들이 제기했던 비판의 핵심이었다. - P243

1970년 무렵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하나의 긴 꼰드라띠예프 B 국면에 있었다. 이러한 B 국면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표준적인 특징들을 나타냈다. 세계적인 실업률 증가, 종전처럼 더이상 수익성이 나지 않는 주요 산업들의 반주변부 국가로의 이동(이 국가들은 이를 두고 자신들이 ‘개발 도상‘ developing에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를 통한 이윤 추구로부터 금융 부문에서의 이윤 추구로의 자본 이동,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비용을 내부화하려는 정부의 압력을 공격함으로써 그리고 복지국가의 보호 장치를 축소하여 세금을 인하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 등이 그런 특징들이다. 이 같은 정치적 노력을 두둔하는 취지의 담론을 우리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라고 불러왔다. - P244

우리는 종교에 기반을 둔 운동들이 국가권력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그들의 ‘근본주의적‘ 성격이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핵에너지 또는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가 샤리아나 낙태 반대 또는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구좌파 반체제운동들의 경우 국가권력이라는 목표의 성취가 그들의 전통적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약속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송두리째 앗아갔는지 살펴보았다. ‘근본주의‘운동들 또한 집권하게 되었을 때 어찌 이와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겠는가?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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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14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월러스틴의 책을 제법 읽었었는데 오랫만에 보니 반갑네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이런 학문적 업적을 남기시다니 대단하신 분입니다 정말..... 이분의 글을 읽고 나면 어떻게든 희망이 생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06-15 06:1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과 같이 어수선한 시기에 저자의 통찰력있는 분석을 더는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mini74 2022-07-08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북플로만 접하다 알라딘서재로 호랑이님 서재에 들어오니 너무나 귀여운 고냥님 사진이 ㅎㅎ
축하드립니다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2-07-08 22:58   좋아요 1 | URL
좀처럼 사진 찍기가 어려운데 가까운데서 모처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미니님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7-08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당선 축하드립니다.

최근에 이매뉴얼 월러스틴 책들 계속 올려주셔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2:59   좋아요 2 | URL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가 저자의 타계로 1914년까지 다뤄져 많이 아쉽습니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최근 정세에 대한 대가의 깊은 통찰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요......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2-07-08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기분 좋은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07-08 23:00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강나루 2022-07-09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당선 축하해요^^

겨울호랑이 2022-07-09 19:15   좋아요 0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러블리땡 2022-07-09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10 09:20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thkang1001 2022-07-10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7-10 09:30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덥지만, 건강한 일요일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7-10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차이퉁》의 그렇고 그런 쓰레기 기사는 늘 있었고, 몇몇 몹쓸 놈들이 익명으로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지 않는가?

여기서 이따금 언급된 뤼딩이라는 자가 《차이퉁》의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S.를 모조리 삭제하고, 전부 B.로 쓰시오."라고 말하면, 그저 애써 고생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악의 없는 도청자는 그 소리를 엿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에서는 절대적인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 카타리나가 바로 그 술집, 그러니까 불운했던 쇠너가 "앵앵거리는 여자와 함께 밖으로 사라져 버린" 그 술집을 탐색하러 가기 위해 카니발 옷을 재단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가 이미 퇴트게스와 인터뷰를 약속한 뒤, 그리고 《존탁스차이퉁》이 퇴트게스의 기사를 계속 실은 뒤였다. 그러니까 기다려야 한다. 확실히 입증되고 증거가 제시된 것은, 바로 하이넨 박사가 그의 환자 마리아 블룸이 급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너무나 놀랐고, 그가 "예상치 못한 외부 영향들을 입증하지는 못하겠지만 배제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 사실이다. 무고한 페인트공들이 여기서 책임을 떠맡게 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 수공업의 명예를 더럽혀서도 안 된다.

여기서는 보고하기보다는 거의 인용만 하도록 하겠다. 인정해야 할 것은, 카타리나의 "스토리"와 사진이 더는 1면을 장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루트비히 괴텐이 "사업가의 별장에 숨었던 카타리나 블룸의 다정한 연인"이라는 표제와 더불어 1면에 실렸다. 7 내지 9쪽에 걸쳐 많은 사진과 함께 실린 스토리 자체는 지금까지의 기사들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다.

카타리나의 아버지가 위장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게멜스브로이히의 한 신부가 제공한 놀랄 만한 ? 관계자 모두를 놀라게 한 ? 정보가 사실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블로르나는 하루 날을 잡아 그 마을로 갔다. 우선, 이 신부는 자신의 진술을 거듭 확인해 주었고, 《차이퉁》이 그의 말을 그대로 올바르게 인용했다고 인정했으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제시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심지어 그럴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자신의 후각이 항상 믿을 만하다며, 블룸이 공산주의자라는 냄새를 그냥 맡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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